비를 기다리는 밤

 

 

1

 

나는 밤을 편애하는 사람들이 사는 별에서 왔다. 어둡고 추운 밤을 오래 들여다보는 일은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들에 어둠이 자욱하면 총을 든 나는 도화지처럼 서서 밤이 내 몸에 그림 그리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밤이 들고 오는 크레파스는 사실 매일 조금씩 다른 검정색이었다. 1월의 크레파스가 보기에는 가장 좋았다. 차갑지만 쨍한, 총을 쏘면 맑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깨질 것 같은 검정이었다. 하늘과 땅이 한 색이었다. 이 밤을 사랑하면 세상의 모든 밤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더라도 최소한 견뎌낼 수는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눈동자가 비교적 검은 아이에서, 머리칼이 유난히 검은 어른으로 자랐다. 밤은 자꾸 나를 덧칠하고, 나는 밤을 사랑하고 닮아갔다. 사랑은 밤에 깊어지고, 나는 밤이면 사랑을 자꾸 덧칠한다. 낮에는 읽지만, 밤에는 읽고 쓴다. 낮에는 잠들지만, 밤에는 잠들고 꿈을 꾼다. 밤은 내게 더 많은 숙제를 떠안긴다. 밤이 없는 나는 불완전하다. 나는 밤에 더 많이 내가 된다.

 

그럼에도 가끔은 밤이 무거워 마음이 결린다. 밤의 독서는 생의 어두운 면과 조응한다. 자정이 지나면 나는 불안과 불행을, 아픔과 슬픔을 탐지하는 눈을 크게 뜬다. 낮이라면 언뜻 지나쳤을 불안과 남의 것인 불행이 자꾸만 발목을 잡아채고, 등장인물의 아픔 위로 나는 넘어져 그들의 슬픔을 세심히 번역한다. 그렇게 지어진 글들이 실은 죄 남의 것들이다. 번안된 노래가 심장에 명중하기가 어렵듯, 그렇게 만들어진 글들은 먼지로 만들어져 부유하고, 쌓이고, 부패하고, 잊힌다. 현명한 사람들은 달빛 아래서 쓴 글은 햇볕에 말리기 전에는 내놓지 말라고 권한다.

 

그럼에도 밤에 무엇인가를 끄적대는 일은 내게 있어 혈족의 계보 같은 것이라, 거절하고 거절해도 도달하고야 마는 하구 같은 곳이라, 나는 오늘도 무던히 그 길을 간다. 조금 지나면 비가 내릴 것이라 한다.

 

사흘의 낮을 지나면 나흘의 밤이 이어지는 일주일로 만들어진 우주에 살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런 별이 은하계 어딘가엔 있을 것이다. 가보지 않은 별이 가끔 그립다.


나는 어째서 이토록 그 강을 사랑하는 것일까 .탁하게 흐리고 뜨뜻미지근하던 그 강물에 왜 이리도 알 수 없는 그윽함을 느끼는 것일까나 자신도 이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다만 오래전부터 이 강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날 것만 같은말로 설명하기 힘든 위안과 고요를 느꼈다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멀어져그리움과 추억으로 만들어진 나라에 들어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바로 이런 점들 때문에 나는 세상 무엇보다 스미다강을 사랑한다.

아쿠타카와 류노스케나의 스미다강

 

겨울비 박준

 

비는 당신 없이 처음 내리고 손에는 어둠인지 주름인지 모를 너울이 지는 밤입니다 사람을 잃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광장으로 마음은 곧잘 나섰지만 약을 먹기 위해 물을 끓이는 일이 오늘을 보내는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한결 나아진 것 같은 귓병에 안도하는 일은 그 다음이었고 끓인 물을 식히려 두어 번 저어나가다 여름의 세찬 빗소리를 떠올려보는 것은 이제 나중의 일이 되었습니다 

 

 

 

2



한참을 달리고 나니 마음이 가라앉아서어느 집 대문 그늘 아래수거를 기다리고 있는 쓰레기들 뒤에 앉았다나는 울지 않았다더 울 필요도 없었다나는 두 눈을 감고 창피한 마음에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한동안 그러고 있다가 나는 상상 속의 경찰을 불러냈다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경찰을그는 다른 경찰들에 비해 백만 배는 더 큰 덩치에 안전을 책임지기 위해 완전무장을 하고 있었다심지어 그는 방탄차까지 몇 대씩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그와 함께라면 나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그는 나의 안전을 보장해줄 터였다그가 책임을 져줄 것이므로 이제 마음을 놓아도 될 것 같았다그는 아버지처럼 억센 팔로 내 어깨를 감싸주면서 내게 그렇게 여러 발의 총을 맞았는데 다치지는 않았는지 물었다나는 상처를 입었지만 병원에 가봤자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그는 한 손을 내 어깨에 얹은 채 가만히 있었다그가 나의 아버지가 되어 모든 일을 처리해줄 것만 같았다그런 생각을 하자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그리고 내게 제일 좋은 방법은 현실이 아닌 곳에서 사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에밀 아자르자기 앞의 생

 

상상 속에 많은 친구를 두고 살던 아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밤이면 이불 덮은 마음이 늘 왁자지껄했다. 새우처럼 웅크리고는 서늘한 이부자리가 체온으로 차츰 덥혀지는 것을 몸이 감각하는 동안, 마음은 친구들의 출석을 불렀다. 꿈결의 입구까지 나를 데려다 줄 다정한 친구들이 모여들어 밤으로 나를 칭칭 감았다. 작은 빛 하나 없는 방, 어둠은 바다였고, 나는 배였고, 나는 파도였고, 나는 조개였고, 나는 선원이었고, 나는 노래였다가, 내가 다시 내가 되면 어둠은 썰물처럼 물러가고 이름 모를 아침 새가 우는 소리로 창문을 두드리곤 했다.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면 나는 받아쓰기를 하고, 곱셈과 나눗셈을 배우고, 올챙이의 뒷다리를 관찰하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이 읽게끔 소략하게 줄인 프랑스 작가의 소설책을 읽고, 강아지 밥그릇과 물그릇을 채워주고, 막 숟가락질을 배우기 시작한 동생의 손놀림을 지켜보며 저녁을 먹고, 작은 빗자루와 쓰레기를 들고 건성건성 방을 치우고 나면 다시 이부자리는 펼쳐진다. , 슬슬 친구들이 올 시간이야.

 

마지막 친구를 죽였던 때가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때쯤 나는 친구들보다 <수학의 정석>을 한 페이지라도 더 많이 푸는 일이나, 평생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은 영어 단어를 외우는 일이나, 가본 적도 없고 가보고 싶지도 않은 나라의 토양의 특성에 대해 공부하는 일에 많이 신경 쓰는 아이가 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아이에게 상상 속의 친구를 굶겨 죽이는 일 같은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다. 그리고 인간의 일이 다 그렇듯이, 한번 떠난 친구는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3



갈비뼈

 

  그렇다면 당연히아니 무엇보다도 그녀를 새로이 창조해야 할 것이다어쨌든 내 갈비뼈로 그녀를 만들지 않았던가하느님은 원형이 혼자서 너무 외롭고 불완전한 것을 알아차리시고 말씀하셨다.

  "그래여자가 하나 있어야겠어."

  그래서 심심풀이로덤으로그러니까 별다른 생각 없이 가볍게 손을 놀려 그녀를 창조하셔서 원형에게 붙여주었다원형은 그녀와 함께 행복해지는 것말고 다른 도리가 없었다그래서 그들원형과 갈비뼈피조물과 덤남자와 부산물은 함께 살았다그런데 함께 살아가는 동안 기묘하게도 두 사람의 역할이 바뀌었다분명 남자가 할 일이 많아서 그것에 주의할 시간이 별로 없었으리라그래서 부속품덤은 자신이 잘난 줄 알고 오만불손해졌다이런 것을 전부 이해하고 능력껏 받아들여야 한다그러나 남자들이여우리가 잠깐 정신을 놓은 사이에 상황이 이리 되었으니그녀를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정육점 주인이 살에다 뼈를 덤으로 얹어주듯이하느님이 조각을 떼어내 손바닥으로 몇 번 쳐서 그녀를 만들어주셨기 때문이다이제 이 뼈를 교육시키고 여러 가지를 가르쳐야 한다아주 별 볼일 없는 여자도 자신이 동등한 줄 알고 온갖 일에 참견을 하기 때문이다그렇다그녀를 새로이 창조해야 한다그러니 우리 작은 것부터 시작하자.

산도르 마라이하늘과 땅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쩐닼ㅋㅋㅋ적당히 깝치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러니 우리 작은 것부터 시작하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뭔 똥폼을 또 저리 쿨하게 잡고 앉았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이고 배야.

 

산도르 마라이가 아니라 톨스토이에 괴테가 살아 돌아와도 이런 글을 소설 등장인물의 말도 아니라 그냥 에세이로 써 제끼면 오랑캐 소리 면하기 힘든 법이다...... 20세기 인간을 21세기 관점에서 평하는 일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인간이 syo인지라 아이구 송구스럽습니다요.

 

 

 

--- 읽은 ---

자기 앞의 생 / 에밀 아자르 지음 / 마누엘레 피오르 그림 / 용경식 옮김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 우치다 타츠루 지음 / 이경덕 옮김

흐름으로 읽는 프랑스 현대사상사 / 오카모토 유이치로 지음 / 차은정 옮김

수학의 감각 / 박병하 지음

 

 

 

--- 읽는 ---

숙련자를 위한 고전노트 / 이수은 지음

How to read 푸코 / 요하나 옥살라 지음 / 홍은영 옮김

오래된 연장통 / 전중환 지음

세상을 바꾼 화학 / 원정현 지음

권력 / 스기타 아쓰시 지음 / 이호윤 옮김

자본론 함께 읽기 / 박승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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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2-19 0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도르 마라이... 뭐죠? 오만년전에 산도르 마라이 하나 읽었었는디...... 아웃이다 아웃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욕 쓰고 싶지만 제 서재가 아니므로 건너뛸게요. 후훗

syo 2019-02-19 09:52   좋아요 0 | URL
저게 한 300페이지쯤에 나오거든요. 그 전까지도 읽는 중에 어어, 어어어, 요것바라? 어어 이럴 때가 가끔 있었는데, 갑자기 저게 뽝!!!!

하아...

뒷북소녀 2019-02-19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흘의 밤이 지나면 나흘의 밤이라... 그렇다면 72시간 연속 근무해야 되는데도요?ㅋㅋㅋ
이건 웃자고 드리는 말씀이구요... <비를 기다리는 밤> 이 글 너무 좋네요.
저도 어제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어죠.

syo 2019-02-19 13:41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사람이 한치앞만 보는 법인지라, 근무 같은 상황을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백수라서.....

사실이지만, 웃자고 드린 말씀입니다 ㅎ

저도 빗소리 듣다가 잠들었습니다. 빗소리 들으면서 일어났구요. 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19-02-19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덤 같은 소리 하고 있네요 욕 대신 우아하게 배열된 ㅋ의 위치와 개수가 적절해 보입니다. 밤과 비와 책이 키운 아이가 쓴 글을 읽을 수 있어 다행입니다. 일기장에 꽁꽁 숨겨 놓지 않고 펼쳐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syo 2019-02-19 14:58   좋아요 1 | URL
이쪽이야말로 늘 감사합니다. 언제나처럼 좋게만 봐주시는군요. 열심히 살아도 산도르 마라이 같은 필력을 가질 수는 없겠지만, 열심히 살아서 산도르 마라이 같은 품성을 가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라캉 입문서만 들입다 파다가 배운 것

 

 

1

 

타인의 욕망이 필요하다.

 

 

 

2

 

요즘처럼 이래저래 생각이 많은 날들이 지나고 나면, 조금쯤은 변해 있곤 했다. 소소하고 시시한 변화들이지만, 어쨌든 그런 시간들이 한 움큼씩 모이고 쌓여 천천히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순진하게도. 참 어리고 어리석을 적 이야기다.

 


 

3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그저 딱 한 뼘만 더 자라고 싶다는 고백 속에 들어있는 작은 욕심은 참 순박하고 귀여워, 만나면 머리를 쓱쓱 쓰다듬거나 어깨를 도닥여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너는 아직 훌륭하구나, 너는 아직 단단하구나, 너는 아직 반짝반짝하구나.

 

 

 

4

 

하지만 그게 너의 말이 아니라 나의 말이 되면 나는 그저 아슴아슴할 뿐이다. 좋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방법이 그저 좋은 사람이 된 것 같다는 느낌밖에 없다면, 얼마나 무서운 일일까?

 

내가 계단을 오를 때 내 눈도 거길 함께 오르는 법이다. 어제보다 오늘의 내가 더 나은 사람이 아닐까 싶을 때, 나는 네 가지 가능성을 생각한다. 비유하자면, 하나, 내 눈은 한 뼘 나아갔고 내 발은 두 뼘 나아갔다. , 내 눈은 멈춰있고 내 발이 한 뼘 나아갔다. , 내 발은 멈춰 있는데 내 눈이 한 뼘 물러났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 , 내 발이 한 뼘 물러났는데 내 눈은 두 뼘 물러났다. 하나이거나 하다못해 둘만 되도 좋겠는데, 알고 보면 셋일 수도 있고, 심지어 넷이 아니라는 법도 없잖아.

 

 

 

5

 

라캉이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말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는 그저 타인이라고 하지 않고 대타자/대문자 타자라고 했던 것이 후려쳐 퍼져 있는 건데, 그 뜻을 새겨 생각하는 것이 점점 의미를 더해가는 것 같다. 오늘의 짧은 앎일 뿐이라 언제든 정정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지만, 오늘의 입장에서 단언컨대, 저 말은 결코 그러므로 남의 시선이 강요하는 것들에서 벗어나 진짜 내가 바라는 것을 찾고 추구하자로 바꿔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 (그나마) 정상적이고(그 경우 신경증에 걸려있다), 그렇지 않으면 망한다(그 경우 정신병이나 도착증에 걸린다).

 

세상의 어떤 도 태어나면서부터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 아기 때 주어진 다양한 장난감들(타인의 욕망이다) 중에 우주선 장난감(타인의 욕망이다)에 유독 흥미를 가진다. 낮보다 밤이 좋고(타인의 욕망이다) 밤이면 아버지와 함께 하늘을 보며(타인의 욕망이다) 별자리(타인의 욕망이다)를 가리키고 그 속에 숨어 있는 이야기(타인의 욕망이다)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각종 발사체(타인의 욕망이다)가 우주로 쏘아 올려지는(타인의 욕망이다) 장면에 심장이 뛰고, 우주를 다녀온 사람(타인의 욕망이다)의 인생에 관한 책(타인의 욕망이다), 우주에 대한 지식(타인의 욕망이다)이 들어 있는 책(타인의 욕망이다)을 읽느라 잠 못 이루는 밤이 이어진다. 그리고 어느 날 생각한다, 나는 우주인이 될 거야. 그게 내 꿈(꿈이라는 용어, 꿈을 가져야 한다는 관념조차 타인의 욕망이다)이야. 미안한데 아이야, 그건 타인의 욕망이란다.

 

어색하게 읽힌다면, 그것은 철학적 용어인 라캉의 대타자를 일상용어인 타인으로 무지막지하게 치환했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다. 실제 대타자는 내게 특정 생각을 강요하는 타인이나, 다수가 유익하다고 믿는 단 하나의 가치관을 의미하는 용어가 아닌 것 같다(물론 그것들을 다 포함하고 있음에도). 라캉에 대한 긴 이야기는 하고 싶지도 않고 할 자격도 없어서 멈추겠으나, 어쨌든 라캉의 저 말을 진짜로 네가 바라는 걸 하라는 단순한 자기계발적 조언으로 치환하는 것은 굉장한 기만이고, 그 자체가 누군가의 욕망이다. 나의 욕망은 나의 것이라는 이유만으로(실제로 그렇지도 않다) 올바르고 자연스러운 것, 남의 욕망을 나쁘고 억지스러운 것으로 치환하는 이분법적 사고다. 네 욕망을 결코 너 혼자 만들 수 없다는 말을 어떻게 저렇게 땡겨 쓰나. 그냥 라캉이 그랬다는 말 같은 거 하지 않고 네가 바라는 일을 하라라고 주장하면 충분할 것을, 왜 전문가의 권위를 빌려오려고(타인의 욕망이다), 전문가의 말을(전문가의 욕망이다) 마음대로 조리(이게 당신의 욕망인가)하는 것일까.

 

그리고 무분별한 의 강조는 나는 나라는 생각을 불필요할 정도로 강화한다. 나는 내가 가장 잘 안다는 미친 생각을 머릿속에 심어 넣는다. 나는 결코 나를 속속들이 알 수가 없다. 나 말고는 누구도 모르는 내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은 다 알아도 나이기 때문에 결코 나만큼은 알 수 없는 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거울이 필요하다. 내 마음 바깥에 있는 거울이 필요하다.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건 그저 모든 거울이 거울을 대주는 사람의 욕망을 포함한다는 피치 못할 사실이다. 그들은 그들의 욕망에 따라 거울의 각도와 곡면, 조명의 조도를 조절하여 나를 비춘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그 거울을 결코 버릴 수 없는 것도 욕망 때문이다. 나 역시 내 이미지를 받아들면 나의 욕망(이라고 믿고 있는 또 다른 타인의 욕망)에 따라 부지불식간에 포토샵을 가동한다. 사실 자아포토샵은 의식의 부팅과 동시에 자동으로 실행되며 심지어 '종료하기'메뉴도 없는 아주 괴랄한 어플리케이션이다.....

 

 

 

6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은 좌절을 수반할수록 건강해지는 것 같다. 아직 괜찮은 사람이 되지 못해서 짐작만 할 뿐이지만, 괜찮은 사람일수록 자기가 진짜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기가 어렵지는 않을까? 이성적인 사람일수록 자기 이성을 미친 듯이 의심하고, 합리적인 사람일수록 나야말로 합리성의 기준이라는 생각이 얼마나 비합리적인 것인지 잘 인식하는 것처럼. 내가 어제보다 조금 더 망한 것 같다고 느끼는 경험을 가끔씩이나마 하지 않고, 그저 순탄하게 앞으로 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주변 풍경을 둘러봐야 한다. 내가 주조할 수 있는 모든 나의 욕망이 실제로는 이런 저런 타인의 욕망을 용광로에 넣고 녹여 만들어 낸 작품의 카탈로그 안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타인을 더 많이, 더 넓게, 더 깊은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내 욕망을 내 욕망답게 만드는 일임을 알게 된다.

 

 


7

 

대체 왜 글이 이런 식으로 마무리되는지 모르겠다.....  촉촉갬성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어째서 분노로 끝나는가.

 


 

  

 

--- 읽은 ---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 박준 지음

나의 사랑, 매기 / 김금희 지음

지하에서 쓴 수기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 김근식 옮김

푸코 & 하버마스 : 광기의 시대, 소통의 이성 / 하상복 지음

 

 

--- 읽는 ---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 우치다 타츠루 지음 / 이경덕 옮김

흐름으로 읽는 프랑스 현대사상사 / 오카모토 유이치로 지음 / 차은정 옮김

How to read 푸코 / 요하나 옥살라 지음 / 홍은영 옮김

수학의 감각 / 박병하 지음

캘리번과 마녀 / 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 황성원, 김민철 옮김

자기 앞의 생 / 에밀 아자르 지음 / 마누엘레 피오르 그림 / 용경식 옮김

오래된 연장통 / 전중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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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물고기 2019-02-16 1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라캉 에크리가 나왔는데 가격이 무시무시하지만 주석이 없다고 하니 더 무서워서 고민중이네요 ㅎ

syo 2019-02-16 18:02   좋아요 0 | URL
저 같은 경우는, 제 비루한 지력으로는 어차피 죽을 때까지 에크리를 읽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파악하였기 때문에 가격이건 주석이건 전혀 고민거리가 되지 않았어요 ㅎㅎㅎㅎㅎ 안사안봐 랄지요.....

카알벨루치 2019-02-16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적 감수성, 감수성적 철학의 분위기... 자아포토샵 이란 말이 멋지네요

syo 2019-02-16 20:48   좋아요 1 | URL
보들보들한 걸 쓰려고 시작했는데 왜 저렇게 성토 분위기가 되어버렸는지 모르겠네요, 아아 ㅎㅎㅎ

AgalmA 2019-02-17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주비행사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닐 암스트롱은 그런 대타자 욕망이 없었어요. 어려서부터 비행기 장난감을 좋아했다고 하더군요. 부모님이 인형이나 리본을 사줬으면 달랐을거다 해야 하나요ㅎ? 머리가 좋았고 엔지니어 일을 하다보니 비행기 조종사도 되었고 그게 또 당시 추진중인 우주 비행 일로까지 엮이게 된. 그가 하던 일들은 대부분 초창기라 대타자 모델이 없었죠. 내성적인 성격으로 치밀하고 냉정한 사고를 했는데 강한 내적 통제력이 그가 성공적인 우주비행사가 된 역할이 컸더군요.
그러니까 환경적인 여러 요인과 그의 성격이 그 사람을 이끈 것이기도 합니다.


정신분석에서 ‘타인‘을 끌어들여 너무 이분법적 분석만 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인간이 인간 사이에 있으니 그게 가장 큰 요인이긴 합니다만. 프로이트도 그런 한계를 느껴 말년에 문명, 원형(에로스와 타나토스) 같은 것도 고민한 것이었죠.
안 그래도 라캉 <에크리> 번역이 나와서 궁금이 요동쳐서 곧 살 거 같긴한데 이러한 제반의 한계를 그 책을 통해 알 수 있었음 싶네요.

syo 2019-02-17 18:04   좋아요 0 | URL
사실 제가 이런 글을 쓸만큼 대타자라는 것에 대해 똑바로 알고 있지는 않다보니, 잘은 모르겠지만요. ˝우주비행사˝라는 자리 자체가 어떤 국가/사회/과학계의 커다란 욕망의 소산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닐 암스트롱이 처음부터는 아니더라도 어느 시점부터는 ‘그렇다면 우주비행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품었다면, 그 생각의 근거나 이유, 그로 하여금 최종적으로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도록 만든 ‘우주비행사‘라는 자리의 이상적인 형상, 우주비행사가 되면 누릴 수 있는 경험에 대한 예측 같은 것들을 형성하는데 대타자의 개입이 없다고 할 수 있으려나요.

그나저나 저는 에크리를 읽고 에크리를 더 모르게 될까봐 읽지를 못하겠어요.....

AgalmA 2019-02-17 18:21   좋아요 0 | URL
<퍼스트맨>을 읽어보면 그가 우주비행사가 된 건 그의 유능함이 마침 잘 맞았단 생각이 들더군요. 국가/사회/과학계의 욕망이 그를 원해서 그렇게 된 거다라고 결과론적으로는 말할 수 있지만, 그가 ‘우주비행사 되기‘라는 욕망에 사로잡혀 우주비행사가 됐다고는 보기 어렵더군요. 그 프로젝트 때문에 죽어나간 사람이 수백명이었고 수시로 친구와 동료들이 죽어나가는 걸 보면서 고작 그런 욕망으로 그가 그 일을 한 건 아녔죠. 나는 예외다! 라고 생각한 오만한 인간도 아녔고요. 달 착륙 첫 인간이라는 타이틀을 매우 불편해하며 우주 비행 일 은퇴 이후 각종 스포트라이트와 인터뷰를 피한 것을 보더라도 그에겐 과시적 욕망이 없었어요. 그는 당시 그 일 자체에 굉장히 몰두해 있었어요. 우주비행사가 되는 일이 아니라 그 일을 해나가는 과정을.

syo 2019-02-17 18:48   좋아요 1 | URL
일단 닐 암스트롱에 대해 비난하거나 비판하거나 할 생각이 하나도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전 제 욕망이 타인의 욕망이라는 사실 자체가 비난받거나 계도되어야 할 상태가 아니라고 생각하구요. 닐 암스트롱이 ‘과시적 욕망‘을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아갈마님께서 지금 생각하시는 ‘욕망‘과 제가 생각하고 있는 ‘욕망‘이 좀 다른 것 같아요. 저는 뭔가 하거나 되거나 가지기를 ‘원하게‘ 되는 정서 자체를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닐 암스트롱이 어떤 동기를 가지고 우주비행사가 되기를 원했는지와 관련없이 ‘우주비행사가 되자‘는 생각을 품은 자체를 욕망이라고 보았어요. 그리고 그가 그 욕망을 품은 시점이 언제부터인지와 무관하게 욕망이 발생한 순간 그 욕망이 대타자의 욕망에 포획되어 있는 상태로 태어났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구요 ㅎㅎㅎ

국가/사회/과학계가 최종적으로 그를 원한것도 사실이겠지만요, 제가 말한 국가/사회/과학계의 욕망은 이를테면 우주 개발에서 러시아를 이기고 싶어한 미국의 욕망, 인간의 위대함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사회의 욕망, 연구의 영역을 우주로 넓히고 싶어하는 과학계의 욕망 같은 것이었어요. 그런 욕망들이 ‘우주비행사‘가 어떤 일을 해야하며, 어떤 의미이고, 어떠한 차원에서 일종의 ‘위대함‘을 대표하는지 등등, 자기들의 욕망에 부합하도록 우주비행사에 대한 기본적 상을 형성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닐 암스트롱이 우주비행사가 되겠다는 마음을 품은 시점에, 우주비행사가 어떤 것일지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그런 국가/사회/과학의 욕망이 작용한 것이고요.

닐 암스트롱 개인에 대해서 저는 하나도 몰라요. 아무래도 읽어보신 아갈마님의 말씀이 맞겠지요?? 하지만 아갈마님께서 말씀하신 데 제가 100퍼센트 동의한다고 해서 제가 말씀드리는 부분에 대한 결론이 달라질 이유가 없는 것 같아요....

AgalmA 2019-02-17 1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닐 암스트롱을 옹호하려는 입장에서 글을 쓴 게 아닙니다.
현대사회는 인간이 ‘타인의 욕망‘을 통해 많은 부분 자신을 형성한다는 것에 전면적인 반박을 하긴 어렵죠. 자본주의나 자유주의, 민주주의 그런 것들도 우리가 배운 것에서 비롯된 것이니까요.
제가 말하고 싶은 논지는 외부의 요인으로써만 자아를 결정론적으로 판단할 때 간과할 것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겁니다. 많은 것을 ‘욕망‘으로 포괄할 때 그게 어찌 보면 인간을 기계론적으로 설명할 위험이 있어서요. 구조주의가 그 때문에 비판당하는 것 아닙니까.

syo 2019-02-17 19:03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구조주의의 함정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제가 그런다고 뭘 알게 될 것 같진 않지만요 ㅎㅎㅎㅎ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일년 쯤 뒤에 이 글을 다시 보면......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19-02-17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욕망하고 있는 것들이 실은 누구의 욕망인지 궁금해지네요.

syo 2019-02-17 20:39   좋아요 1 | URL
제 생각엔 아마도 끝내 그걸 알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부모가 어릴적부터 강요해서 변호사가 되겠다는 마음을 품고 변호사가 된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 변호사의 욕망은 단지 부모 욕망의 복제품이 아닐 거예요. 언어, 윤리, 제도, 감정.... 수두룩빽빽한 욕망의 원천들이 총출동해서 내 욕망을 빚는거고, ‘변호사‘라고 후려쳐서 따지면 부모의 욕망이 내 욕망인 것 같지만 기실 그건 언어적 착각이지요.....

그래서 저는 도리어 마음이 편해요ㅎ

반유행열반인 2019-02-17 21:37   좋아요 1 | URL
그쵸...누구 밑에서 어떤 환경에서 자랄지는 순전히 운과 우연이 결정하고 그 외의 것들은 내가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않은 결과일테니...그저 짐작만 할 수 있겠죠. (바람들을 계속 집요하게 파고들지 내려 놓을지는 순전히 내 탓!!)

syo 2019-02-17 23:12   좋아요 1 | URL
자유의지랄지, 확고한 자아랄지 이런 것들에 대해 제가 너무 경기하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ㅎㅎㅎ 아직 더 많이 읽어봐야겠고, 더 많이 살아봐야겠어요. 그래봐야 뭐 크게 깨친 인간이 될 것 같지는 않지만서도....

페크(pek0501) 2019-02-17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저를 포함해 이기적인 것 같아요. 인간은 저를 포함해 비합리적이고 어리석은 것 같아요. 인간의 기억력은 저를 포함해 믿을 수가 없어요. 인간은 저를 포함해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같아요... 등등 이렇게 말하면 되는 거지요?

<지하에서 쓴 수기>는 참신한 작품으로 읽으며 반해 버렸던 경험이 있어서 재독할 책 10위 안에 드는 책입니당~~.

언제나 세상에는 책이 아주 많이 많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시는 syo 님!!!

syo 2019-02-18 09:18   좋아요 0 | URL
잘 모르겠어요. 그냥 저는 언제나 저를 잘 모르겠고, 제 생각이 맞는지도 항상 확신이 없는데, 다른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일정 정도 확신을 갖고 있는 것 같아 보여서 그저 샘이 났던 걸지도요? ㅎㅎㅎㅎ

몇년 전에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 판으로 읽었을 때 정말 너무 지루하고 힘들게 읽어냈거든요. 금방 다 까먹었구요. 이번에는 창비로 읽었는데, 다른 번역이라 그런건지 그 사이 제가 좀 더 자란건지, 이번에는 읽을만하더라구요. 페크님의 말씀에 공감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ㅎㅎㅎㅎ

독서괭 2019-02-18 0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글이네요.
괜찮은 사람일수록 자기가 진짜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기가 어렵다는 말에 매우 공감합니다. 직장에서 보면 진짜 괜찮은 분들은 나는 그렇게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며 좋은 자리를 마다하고 정작 욕심과 자만만 가득한 사람이 그 자리를 꿰차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요..ㅠ

syo 2019-02-18 09:22   좋아요 0 | URL
인간의 일이라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을 수는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완벽 쪽으로 가까이 가기 위해 처음 변해야 할 것도 역시 인간의 마음에 관한 것이지 않을까 싶어요. 자기에 대한 과도한 확신이나 불신이나 죄다 타인을 더 들여다보면서 고쳐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슬쩍

 

 

망가진 온도계를 만져보는 일은 처음이라 조금쯤은 의아한 눈빛일 수 있었겠으나 막상 손끝이 닿자 기다렸다는 듯이 자그마하게 자라나는 수은 기둥을 보니 정말로 의아하였습니다. 겨울은 끝도 없이 춥고 나는 이런 겨울은 처음인데 온갖 산 것들을 죽은 것으로 오해하기에 겨울은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혹은 손끝을 가져다 죽은 것의 깊은 잠을 깨웠다고 다시 한 번 믿어 보기에도 모자라지 않았으니 제법, 제법 겨울이었겠습니다. 나박나박 눈 위로 눈 앉는 소리에 몸 뒤척이는 밤 위에 밤 쌓여 짙고 깊어질수록 아이들은 온도계에 관심을 가지는 듯했습니다. 앞을 지날 때마다 한 번씩 슬쩍 만지고 가는 모습이 자주 보였습니다. 슬쩍과 슬쩍이 참 많이도 모였을 테니 우리는 아마 우리가 숫자로 확인한 것보다는 슬쩍 더 추운 겨울을 보냈던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혹은 서로가 서로를 위해 조금 더 따뜻하다는 오해를 선물처럼 주고받으며 슬쩍 더 잘 견뎌낼 수 있었던 거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모른 척 슬쩍 손을 잡아줄 수도 있었을 텐데요. 아닌 척 슬쩍 안아줄 수도 있었을 텐데요. 아무것도 에돌지 않고, 의아함도 오해도 없이 곧장 따뜻할 수 있었을 텐데요. 무엇이 두려웠던 걸까요, 우리는. 포옹 뒤에 입맞춤이 찾아올 것이 두려웠을까요, 포옹 뒤에 입맞춤이 찾아오지 않을 것이 두려웠을까요. 오해 위로 오해가 쌓이기에 부족함이 없는 그 겨울에, 우리는 서로를 오해했을까봐 겁냈을까요, 오해가 아니었을까봐 겁냈을까요. 온갖 산 것들이 사실은 죽었을까봐 망설였을까요. 죽은 것들이 아직 살았을까봐 끝내 손끝을 거두었을까요.

 

그 겨울이 어떤 방식으로 끝나고 새봄이 왔는지, 오늘 우리의 회고 사이에는 오해가 있을 수 있으므로 조금쯤은 의아한 눈빛일 수 있겠으나, 그래도 나는 그 겨울에 오해하기 어려운 슬쩍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온도계가 망가져도 수은 기둥은 따라 망가지지 못할 테고, 그릇에 따라 생김이 바뀔 수 있겠으나 슬쩍 손끝이 닿으면 슬쩍 부풀어 오를 테고, 우리가 그것을 알아채거나 알아채지 못하거나, 오해하거나 오해하지 못하거나, 잊었거나 잊지 못했거나, 죽었거나 죽지 못했거나, 이 모든 게 끝도 없이 추운 그 겨울의 탓이었거나 그렇지는 못했거나, 어쨌든 나는 이제 조금만 추워지면 덜컥 그 겨울의 슬쩍을 생각합니다.

 



사랑이라 썼다가그 다음은 쓰지 못했다.

다자이 오사무 지음유숙자 옮김사양

 

언젠가 매기와 함께 여의도 역에 갔다가 이 역의 환승 통로가 이렇듯 깊은 이유는 강의 밑바닥을 팠기 때문입니다라고 쓴 안내문을 봤기 때문이었다그때 빡치는 사람이 많나봐매기가 말했던 것이 기억났다오죽하면 한강물 탓이라고 써놨겠어했던 것이.

김금희나의 사랑매기

 

하밀 할아버지왜 대답을 안 해주세요?”

넌 아직 어려어릴 때는 차라리 모르고 지내는 게 더 나은 일들이 많이 있는 법이란다.”

할아버지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어요?”

그렇단다.”

할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울음이 터져나왔다.

에밀 아자르자기 앞의 생

 

 

  

--- 읽은 ---

뻬쩨르부르그 이야기 / 니콜라이 고골 지음 / 조주관 옮김

슬픈 인간 / 정수윤 엮고 옮김

사양 / 다자이 오사무 지음 / 유숙자 옮김

 

 

--- 읽는 ---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 박준 지음

캘리번과 마녀 / 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 황성원, 김민철 옮김

나의 사랑, 매기 / 김금희 지음

자기 앞의 생 / 에밀 아자르 지음 / 마누엘레 피오르 그림 / 용경식 옮김

인생교과서 부처 / 조성택, 미산, 김홍근 지음

수학의 감각 / 박병하 지음

지하에서 쓴 수기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 김근식 옮김

 파이썬으로 시작하는 코딩 / 브라이언 칼링, 말리 아데어 지음 / 민지현 옮김 / 권갑진 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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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2-14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캘리번 몇 쪽까지 읽었어요?
(지금 다른 책 읽고 있는 1人)

syo 2019-02-14 11:05   좋아요 0 | URL
1장이요.
저는 서론 포함해서 매 장마다 페이퍼를 하나씩 내놓을 생각인데, 1장은 좀 곤란하네요ㅋㅋㅋㅋㅋ
마르크스면 어떻게 좀 비벼 보겠는데, 제가 생각보다 푸코를 너무 모르네요 ㅋㅋㅋㅋㅋ 아, 재작년에 그렇게 푸코를 읽어댔는데?

다락방 2019-02-14 11:06   좋아요 0 | URL
우앙. 너무 멋진 생각이다.

나는 페이퍼를 쓸 수 없을 것 같다, 라고 생각했는데요 읽다가 딥빡오는 부분을 만났어요? 조만간 페이퍼로 돌아오겠습니다. 후훗.

syo 2019-02-14 11:30   좋아요 0 | URL
역시 다락방님 페이퍼는 딥빡 페이퍼가 제맛이지!

뒷북소녀 2019-02-14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모의 질문을 유심히 보게 되네요.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있을까요?

syo 2019-02-14 14:01   좋아요 0 | URL
저는 저 장면을 보면서, 하밀 할아버지가 사실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하고 느꼈거든요.

그냥 사랑할 땐 사랑 없이 살 수 없을 것처럼 사랑하고, 살 땐 사랑 없이 살 수 있을 것처럼 살면 되지 않을까요.

페크(pek0501) 2019-02-15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1번 째로 좋아요를 누르고 갑니다요... ㅋ

syo 2019-02-15 18:06   좋아요 1 | URL
올해의 칼럼니스트께서 41번째 좋아요를 박아주셨네요 ㅎㅎㅎ 영광입니다
 




 

1

 

서문과 서론만 가지고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려나 싶었는데 세상에나.

 

 

 

2


우리는 또한 자본주의에서 여성들이 남성에게 종속된 것은 여성노동의 비생산적인” 본성 때문이 아니라 여성들이 임금을 받지 못하는 조건 속에 있기 때문이며남성의 지배는 임금인 남성들에게 부여한 권력에서 비롯된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

  또한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관계가 노동의 위계를 구조화하고권력을 노동계급의 특정 부문으로 위임하며재생산 노동을 비롯한 어마어마한 착취의 영역을 감추고 자연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_ 9

 

우선, 돈 몇 푼 받겠다고 저렇게 아등바등 할 거면 차라리 나가서 일을 하라는 식으로 덤벼드는 인간들에게, 세상만사를 또박또박 금액으로 환원할 줄 아는 성실한 자본주의의 농노가 되신 것을 축하한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인간에게 노동이란 것이 대체 무엇이건대, 우리는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과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거의 등가로 놓을 만큼 분노하는 것일까요.

 

이 책은 자본주의의 진보성 신화를 해체할 뿐 아니라 자본주의는 노동력의 꾸준한 확장과 노동비용 절감에 몰두하기 때문에 여성의 노동을 비롯해서 그 노동이 생산해낸 주체들과 그들의 노동을 천대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_ 10


노동을 천대하는 것이 자본의 본성이라는 통찰도 중요하지만, 이 대목에서 밑줄을 긋고 싶은 부분은 아무래도 노동이 생산해낸 주체같습니다.


주체가 노동을 생산하는 것일까요, 노동이 주체를 생산하는 것일까요? 모든 주체는 노동을 생산할까요? 모든 노동은 주체를 생산할까요? 주체를 생산하지 못하는 노동과, 노동을 생산하지 못하는 주체가 각각 어떤 문제를 야기한다면, 어느 쪽이 더 심각한 문제를 낳을까요? 개인적으로는 어떻고, 사회전체적으로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그러나 어쨌든, 노동이 주체를 생산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노동의 가치가 주체의 가치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눈에 보이든 아니든, 내가 만드는 것이 언제나 나를 만듭니다.

 

그러니까 싸워야지요. 무려 나를 가치 있게 만드는 일인데요.

 

 

 

3

 

맑 선생님은 상품의 가치를 그 상품을 생산하는 데 투여한 (사회적)노동으로 측정합니다. 노동자는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생산하는 생산자고, 같은 원리에 의해 노동력의 가치, 즉 임금은 노동력을 생산하는 데 투여한 노동의 총량으로 측정할 수 있는데요. 노동자는 먹어서 노동력을 만듭니다. 노동자가 먹는 음식의 가치가 임금에 포함되죠. 노동자는 입어야 합니다. 노동자가 입는 옷의 가치가 임금에 포함되겠네요. 노동자는 쉬어야 합니다. 노동자의 휴식과 여가에 드는 비용이 임금에 포함되어야죠.

 

그런데 노동자가 먹는 음식에는 누군가의 가사노동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시장에서 식재료를 사온 누군가가 요리라는 노동을 통해 만든 음식이 노동자에게 제공되니까요. 노동자가 입는 옷에는 누군가의 가사노동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시장에서 옷감을 사 온 누군가가 옷을 짓거나, 만들어진 옷을 사온 누군가가 세탁을 하여 노동자에게 깨끗한 옷이 제공되거든요. 노동자의 휴식과 여가에는 말할 필요도 없이 누군가의 가사노동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고된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치킨에 맥주를 사들고 돌아와 희희낙락 방 문을 열었더니 쓰레기더미가 쌓여 있으면 그 위에 누워서는 노동력 충전이 될 리가 만무하거든요. 분명히 누군가의 노동이 특별한 가치를 만들었고 또 분명히 그 가치가 노동자의 노동력 속에 함유되었는데, 그 가치는 누구로부터 보상을 받아야 하는 걸까요.

 

노동력의 가치가 어떻게 측정되어야 하는지를 명쾌하게 규정했던 노동자의 영원한 친구 맑쌤은 왜, 노동력이라는 상품 속에 녹아 있는 특정한(특정한 주체가 생산한) 가치를 0으로 측정하여 노동자의 임금 수준을 확 깎는데 일조하고 말았을까요?

 

사실 맑스와 부인 예니 인생살이를 지켜보고 있자면 납득이 가지 않을 일도 아니네요. 예니가 자신에게 해준 모든 일에 정서적 가치는 무한하나 경제적 가치는 0라고 우기지 않았다면, 우리 선생님, 남편으로서 스스로의 무능함을(경제적으로는 물론 심지어 정서적으로도 한없이 0으로 수렴하는데.....) 견뎌내기가 참 어려웠을 것 같아요.

 

아니면 이런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 지성의 화신인 이 몸이 오랜 연구 끝에 내린 결론에 따르면, 결국 자연스럽게 프롤레타리아트의 임금이 생활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떨어지고, 부는 부르주아지에게 집중된다. 양극화. 생산력은 넘쳐흐르는데 생산양식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지. 그럼 뻥! 하고 터진다. 그렇게 사회주의 생산양식이 등장한다. 혁명. ~ 혁명. 그 혁명을 앞당기려면 노동자의 임금이 한시라도 빨리 최저생활수준 근처까지 떨어져야 할 테고...... 그렇다면 노동자 임금의 시작점을 좀 낮게 잡아볼까. 뺄 만한 게 뭐가 있을까...... 보자, 음식, 안 되고. , 안 되지. ? 안 되지, 큰일 나지. 여가? 담배 없이 어떻게 살아. 가사 노동? 안 되지, 예니가 나한테 어떻게 하는데, 안 되지. , 안 되고말고. ......되나?


농담입니다.

 

 

 

4

 

언젠가 친구 한 놈과 도서관 건물을 빙빙 돌며 이런 주제의 사고실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맑스의 방식으로 노동력의 가치를 측정해보면 노동자의 임금이 과소평가되고 있고, 그 이유는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가사노동이 무급으로 처리되기 때문이라고 syo가 주장했습니다. 친구는 처음에, 가사노동의 가치는 측량하기가 어렵다고 했지요. syo는 점근적 측정법을 제시했습니다. 현재 시장에서 상품화되어 있는 가사노동의 가격을 중심으로 어느 지점의 가격을 정한 다음, 나머지는 니가 그렇게 좋아하는 시장에 맡기면 되지 않겠냐고요. 그러자 친구는 갑작스런 임금 인상으로 인해 고생할 자본가들을 걱정하기 시작하더군요. 백수가 별 걱정을 다 하고 있긴 한데, 이건 그저 사고실험일 뿐이고, 어느 정도의 임금 상승은 불가피하겠으나 그것보다 지금 우리의 논점은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제공하는 노동력 안에 들어 있는 가사노동의 가치를 측정하여 그 비율만큼을 가사노동 제공자에게 환원하는 것이 옳지 않느냐는 점이라고 짚었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드디어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어요. 가족 간에 제공하는 노동이나 편의 같은 것들은 사랑과 유대의 산물인데, 거기에 가격을 매기면 마치 돈을 주고 감정을 사는 꼴이 되지 않느냐고요. 그렇지. 그런 말이 나올 줄 알았지. 조금만 더 캐면, 내가 밖에서 뼈 빠지게 노동해서 노동한 만큼 벌어온 돈인데, 그 노동을 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왜 의무적으로 나누어 주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까지 나오게 생겼군.

 

옳고 그름을 떠나, 이런 태도는 점진적이라서 지켜보기에 재미가 있지요.

 


자본주의 사회의 여성과 남성의 권력 차이는 가사노동이 자본주의적 축적과 무관하기 때문도 아니고, 문화적 기획이 영원히 존속하기 때문도 아니다. 특히 여성의 삶을 지배했던 엄격한 규칙들을 고려하면, 가사노동이 자본주의적 축적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남녀간의 권력차는 특정 사회적 생산체제의 결과로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 남녀간의 권력차를 만들어 내는 사회적 생산체제란 노동자의 생산 및 재생산에 들어가는 무임노동의 이익을 보면서도 그것을 사회경제적 활동이나 자본축적의 원천으로 인정하지 않고, 자연자원 또는 개인적 봉사로 신비화하는 체제를 말한다. _ 21쪽


맑 선생님 사후에 가장 실컷 두드려 맞은 부위가 바로 토대와 상부구조개념이 아닐까요. 경제결정론자라는 비난을 넘어 지옥에서 온 경제지상주의자라는 소리까지 듣게 되자,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맑 선생님의 절친 엥 작은 선생님께서 그게 아니라고 열심히 해명을 하였으나, 원래부터 한편이었던 열성팬들 말고는 아무도 그 말을 들어주지 않았고...... 하여튼, 그 개념은 여러 방식으로 변형되고 극복되어 이데올로기라는 꽃으로 피었습니다.

 

syo가 신봉하는 이데올로기론. syo는 맑스보다 이데올로기님을 더 믿습니다.

 

이것은 syo의 지론입니다만,

 

모든 이즘은 이데올로기입니다. 자본-이즘은 물론, 다문화-이즘, 성평등-이즘, 심지어는 모두가 사랑하는 민주-이즘까지 모든 이즘은 결코 객관적이고 불편부당한 지식의 집합체 따위가 아닙니다. 모든 이즘은 권력을 지향하고, 쟁취한 권력을 지키기 위한 사상적 무기들을 내포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무기들을 아주 조용하고 은밀하게 휘두르길 좋아합니다. 당하는 이들이 무엇에 내 목이 달아나는지도 모르고 당할 수 있도록. 아기들의 허벅지에 주사를 놓고, 토실토실한 엉덩이 사이에 좌약을 넣고, 무르고 여린 귓속에 사상을 놓/넣는 거죠. 잘 자라렴, 이 사회(라고 명찰을 단 자본과 국가)를 빛낼 훌륭한 일꾼(일벌레)이 되어주렴.

 

안녕하세요, 음모론자 syo입니다. 으흐흐흐.

 

자본이 그랬다는 말이라면 syo100퍼센트 믿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아직 모르는 뭔가가 실컷 남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자본의 심성을 누구보다 먼저 꿰뚫어본 맑 선생님조차, 걔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는 제대로 짐작해내지 못했거든요. 난 자본 걔가 그냥 크게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만 만들 줄 알았지, 저렇게까지 집요하고 꼼꼼한 새끼일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지 뭐야. 이러면서 수염을 벅벅 긁으셔도 소용 없으세요, 맑 선생님.

 

 

 

5


사실상 우리가 캘리번과 마녀에서 배울 수 있는 정치적인 교훈은 사회·경제적 체제로서의 자본주의가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에 항상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왜냐하면 자본주의는 그 사회적 관계 속에 짜여진 모순(자유에 대한 약속과 억압의 만연이라는 현실번영에 대한 약속과 빈곤의 만연이라는 현실)을 착취대상(여성식민지 신민아프리카 노예의 후손들지구화로 인해 갈 곳 잃은 이민자들)의 본성을 폄하함으로써 정당화하거나 애매하게 흐려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_ 41

  

앞으로 이 책에서 자본의 이런 본성을 깊이 있게 파헤칠 모양이지요. syo는 맑 선생님의 거친 수염을 움켜 쥐고 옆에 앉아 실비아 페데리치의 말을 들으려 합니다.

 

그 전에, 저 대목만으로 느낄 수 있는 바가 있어 잊어버리기 전에 기록해 두어야겠습니다.

 

아마도 이 책은 여성과 여성의 노동을 구하는 책인 동시에, 여성과 여성의 노동을 구하는 방법을 익히는 책이 될 것 같습니다. 전자는 이 책을 여성을 위한 책으로 만들지만, 후자는 이 책을 만인을 위한 책으로 만듭니다.

 

폄하하고, 배제하고, 억압하고, 빈곤을 선사하는 일이 자본의 본성이라면, 오늘 우리가 그 본성으로부터 여성을 구하고, 다음 날 식민지 신민과 아프리카 노예의 후손을 구하고, 마침내 이민자까지 구하고 나도 싸움은 끝나는 것이 아니겠습니다. 자본은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 것이고, 그들의 노동에 베일을 씌워 훔쳐 갈 것이니까요. 그때도 우리는 눈을 뜨고 있어야 합니다. 전투는 끝나도 전쟁은 끝나지 않고, 우리는 우리가 배제로부터 벗어나고 나서도 배제 속에 남아 있는 이들을 돌아볼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해요. 억압 속에 있는 지금이야말로 억압에 민감한 눈과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적기입니다. syo는 여성이 아니라서 여성에게 다른 모든 약자를 위해 나서 달라고 말할 자격도 의사도 없으며, 자본과의 싸움이 더 크고 선결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과제라는 생각 역시 눈곱만치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자본의 손아귀 아래에서 노동의 가치를 빼앗겨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프게 공감할 만한 어떤 마음가짐이 있을 거라고 믿으며 조심스럽게 한 마디를 보태볼까 합니다.

 

내가 만드는 것의 가치를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체제는 폭력적이고, 심지어 그 폭력을 휘두르는 이유가 스스로를 더 크고 굳게 만들기 위해서일 때 체제는 비열하기까지 합니다. 체제가 내 노동을 배제하는 것도 입 다물고 참아줄 가치가 없는데, 배제됨으로써 체제에 복무하는 것은 분노할 가치가 있는 일이지요.

 

 


6

 

시초축적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너무 진을 빼버렸다.....

본문 읽으면서 해야겠네요.

 

 

마지막으로 서론과 서문에서 뽑은 두 개의 바로 이 문장들을 남깁니다.


만일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위 여성성이 생물학적 운명이라는 미명하에 노동력의 생산을 은폐하는 노동기능으로 구성된 것이라면, “여성의 역사는 계급의 역사이다. _ 35 

 

여성의 신체가 재생산 활동의 장을 의미하는 기표로서 남성과 국가에 의해 전유되어 노동력의 생산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라면(이를 위해서는 성적인 규칙과 규제심미적 계율처벌 같은 것들이 따라온다), 신체는 그것을 부정하는 노동규율(work-discipline)의 종식을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는 근원적 소위의 장이다. _ 348 

 

도우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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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2-13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우리가 배제로부터 벗어나고 나서도 배제 속에 남아 있는 이들을 돌아볼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해요‘


양미간에 주름 빡 잡고 읽으면서 저 문장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치고 있습니다. 와, 잘 읽었어요, 쇼님. 다음편 시초축적을 기대할게요. 그리고 같이 읽어주어 고맙고, 결국 이런 글을 써주어서 고맙습니다. 아주 좋네요. 앞으로도 매달 같이 읽었으면 좋겠어요.....3월달은 [가부장제의 창조]로 할건데, 같이, 응? ( ˝)

syo 2019-02-13 15:51   좋아요 0 | URL
미미합니다;;; 별 내용도 없어요 ㅎ

다음 달은 이번 달 되가는 거 보구 결정할까요? ㅎㅎㅎㅎ
읽다 보니 맑스도 더 읽고 싶고, 푸코도 더 읽어야겠고 막 이런 생각들이 들어가지고.....

블랙겟타 2019-02-13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쿠! syo님도 본격적으로 ㅎㅎㅎ
저는 이렇게 잘쓸 자신이 없는데. ㅠ


다락방 2019-02-13 16:01   좋아요 1 | URL
겟타님은 겟타님 스타일대로 쓰시면 되는겁니다. 빠샤!! 👊

블랙겟타 2019-02-13 16:12   좋아요 0 | URL
네. 엄살 좀 부려 봤어요 ㅎㅎㅎ
그래도 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안돼죠 ㅋㅋ
그냥 제 스타일로 ㅋㅋㅋ

syo 2019-02-13 16:11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남의 집에서 왠 씨알도 안 먹힐 엄살놀이세요!
겟타님 우리가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떡하니 써내실 거 다 아는데^-^

블랙겟타 2019-02-13 16:15   좋아요 0 | URL
네...뭐.. 그렇죠..하하..
(빈껍데기에 불과한 허센데..제..제대로 써야겠다... ^^;;;;)

2019-02-13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13 16: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9-02-13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고급져서.... 마르크스랑 겹쳐서 읽고 풀어주니 너무 고급져서.....
감동의 물결이 거침없이 밀려옵니다! 역시나 믿고 보는 쇼님!!

syo 2019-02-13 17:26   좋아요 0 | URL
둥기둥기장이들이 출동하셨어ㅋㅋㅋㅋㅋㅋ

카알벨루치 2019-02-13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맑스 강의 듣는듯~전문가 납시요 ㅎㅎ

syo 2019-02-14 00:35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 아닌 거 알면서 또 이러신다 ㅎㅎ

카알벨루치 2019-02-14 00:39   좋아요 0 | URL
철학의 귀재가 내뿜는 뽐뿌질에 눈 돌아가시겠네~나도 철학을 좋아해서 대학1학년 때 니체를 읽었는데 철학책을 멀리하니 어렵네 이참에 러셀의 <서양철학사>를 펼쳐바? 아니 아니지...자연스럽게 읽어야지 ㅎㅎㅎㅎ두꺼운 건 제 질량값을 하니...쇼군이 전에 페이퍼에 쓴 러셀 이야기도 있고 하니 ...쿨럭

syo 2019-02-14 10:49   좋아요 0 | URL
‘귀재‘ 같은 소리 하지도 마세요. 다른 분들이 보면 저 귀싸대기 맞아요 ㅋㅋㅋㅋ
저는 그저 알라딘의 입문서 빠돌이로서 본분에 충실하게 입문서 수준의 겉지식만 늘어놓았을 뿐입니다. 카알님도 입문서라고 남부끄러워 마시고 입문서와 사랑에 빠져 보시는 것이? 흐흐흐.

idahofish 2019-02-14 0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쇼님과 친구님의 사고실험 대화... 와... 너무 판에 박힌 듯한 저 사고의 흐름! 근데 그거에 대고 또 ‘이런 건 점진적이어서 보는 재미가 있다’니... 쇼님 악취미네요 ㅎㅎㅎ
여튼, 이 포스팅을 읽으니, 저도 저 책 사놨는데... 닥치고 읽겠습니다. 꾸벅.

syo 2019-02-14 10:51   좋아요 0 | URL
실제로는 저것보다 더 긴 대화였는데요. 처음에는 아니었지만 대화가 이어지는 중에 이 친구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로 가는 것은 피하고 싶어서 숨기고 있는지 조금씩 알 것 같더라구요.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세상에서 제일 착한 게 저 친구지만, 사람이 착하고 아니고랑 무관하게 주입받는 이데올로기가 있는 법이니까요.

원래 착한 사람 옆에는 언제나 못된 친구가 있는 법입니다. 으하하하.

반유행열반인 2019-02-14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목소리만 쓱 훑고 좋아요 먼저 누르고 다시 읽자-하다가 그러면 안 되지, 그러다 안 읽지, 하고 경건한 태도로-아침부터 카페라떼 한 잔 시켜 놓고 정자세로 경건하게 정독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믹스커피만 먹던 제가 무려 카페에 나오다니.) 그러기 위해서는 제 몫의 돌봄 노동을 또 누군가(돈이 많았으면 아웃쏘싱, 물론 없으니 직계존속...)에게 미뤄 놓아야 합니다. (10년 전에 입학했다 결국 졸업은 포기한)대학원 수업 기말 페이퍼에 돌봄 노동 관련해서 썼었는데 Syo님을 진작 만나 가르침 받았으면 마르크스의 사상을 이론적 배경으로 삼아 조금 더 탄탄하게 (아마도 학위논문까지) 썼을 것 같네요...
인용문과 syo님 글을 번갈아 읽다보니 음, 좋은 책이겠군, 그러나 원문은 도저히 읽을 엄두가 안 나는 독서력 하수입니다...고병권 선생처럼 자본 강의 펀딩이라도 하고 싶네요. 명사 손쓰애임요(경상도 억양으로)와 함께하는 자본과 분노(의 포도알갱이) 강의! (꼭 수강하겠습니다ㅋㅋ)

syo 2019-02-14 11:01   좋아요 1 | URL
열반인님, 전적으로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이러시는 건, 저를 멕이시는 거예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전 돌봄 노동에 대해서 열반인님의 발톱만큼도 알지 못합니다. 설령 안다 해도 돌봄 노동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다양한 감정의 소용돌이 바깥에서 구경만 하면서 알게 된, 그야말로 껍데기 같은 지식일 뿐이지요.

원래 색칠하고 꾸며서 있어 보이도록 만드는 부분은 항상 껍데기잖아요. 그런 고로 겉보기에 뭔가 그럴 듯해 보이는 글이 나왔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돌봄 노동을 하고 그걸 미뤄 놓기 위해 아웃쏘싱과 직계존속 사이에서 고민하셔야 하는 열반인님께 닿을 만한 내실있는 앎이라고는 저한테 1도 없어요......

맑선생님 사상도 그저 아는 척하기에 좋을 만큼, 혹은 그보다 쪼끔 더(ㅎㅎㅎㅎ)알고 있는 정돈데, 거기다가 막 가르침, 논문, 이론적 배경, 이런 단어를 투입하시면 저는 어쩌라구욬ㅋㅋㅋㅋㅋㅋㅋㅋ 앜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19-02-14 11:29   좋아요 1 | URL
원래 워십이라고는 뼛속부터 안 되는 신성모독적 인간인데 syo님이 실험 삼아 당하시는 겁니다... 괜히 그런 전문 단어를 남발해야 권위가 부여 되고 바람잡이도 되고...연구자는 바깥에서 관찰해야 객관화도 잘 되는거에요...간주관성 이런 거 다 개소리고 내부자는 그냥 일기 쓰다 끝나요...ㅋㅋㅋ저도 겉보기의 젠더와 사회적 지위만 돌봄 노동에 가까운 듯하고 본질은 나쁜 아버지 쪽에 가깝지 않나...싶습니다...반성만 하고 나아지지 않아요... 꾸며댄다고 되는 것과 아닌 부분이 있는데, syo님은 쪼끔 더 아시는 것들을 꾸민다기보다 잘 소화하셔서 베푸는 글을 쓰시니 받아 먹는 입장에선 황송할 따름입니다.

syo 2019-02-14 11:32   좋아요 1 | URL
열반인님, 당신은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시군요 ㅋㅋㅋㅋㅋㅋ
그렇다면 제가 포기하겠습니다. 저는 누구보다 포기가 빠른 남자니까요 ㅋㅋㅋㅋㅋ

뭘 받아드신다는 건지,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그냥 하는 데까지 하는 걸로 할게요 감사합니다 ㅎ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19-02-14 11:45   좋아요 0 | URL
포기하셨으면 앞으로는 제 감탄사에 “당연하죠 저니까” “제가 좀 합니다” “으쓱” “우쭐”하는 느낌의 리액션을 하셔야 하는데...괜찮으시겠어요?ㅋㅋ 사양지심 말고 저런 반응도 기대됩니다. (자존감 고양 효과도 기대됩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글들이니까.)

syo 2019-02-14 11:57   좋아요 1 | URL
패배를 인정하였으니 순순히 저 리액션들을 접수, 앞으로는 적시에 사용해 보도록 할게요 ㅎㅎㅎㅎ

에, 그러니까, ˝당연하죠 우쭐하는 저니까 제가 좀 으쓱합니다.˝ 였나?

반유행열반인 2019-02-14 12:13   좋아요 0 | URL
자꾸 이러시면 저는... 인공지능 syo님의 알고리즘이 자꾸 궁금해지려고 합니다.
알아낸 점
1. ㅋㅋㅋ이나 이모티콘 같은게 들어가면 비슷한 개수의 ㅋㅋㅋ과 약간 변형되었지만 같은 류의 이모티콘으로 반응한다.
2. 댓글의 분량에 부합되는 대댓글을 남긴다.
3. 겸손과 겸양의 용어가 많이 탑재되어 있다.
4. 유저의 특성과 관심사, 최근 리뷰 등이 반영된 결과가 산출된다.
5. 키워드 입력-산출이 비교적 정확도가 높고 적절하다.
6. 사교성과 예의를 위한 의례적 표현을 적정 수준으로 구사한다.
미래 인류의 기술은 정말...놀랍습니다. (자꾸 인공지능설을 굳혀서 죄송합니다. 오늘도 반성만 하네요. 일절만 하자ㅠㅠ)

syo 2019-02-14 12:28   좋아요 1 | URL
놀랍네요. 분석하신 제 댓글 패턴 중 1, 2번은 정말로 제가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는 것들이고 3, 4, 5, 6번은 제가 그렇게 하고 싶어하는 것들입니다......

제가 정말로 인공지능이었다면, 열반인님의 댓글을 보고 인류를 정복하려면 아직 더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겠습니다. 아니면 나 말고 다른 인공지능이 여기있네? 했거나요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19-02-14 12:43   좋아요 1 | URL
때려 맞춘 것이 본의 아니게 영업 기밀을 아웃팅한 느낌...비밀댓글로 바꿔야 되나...(제 쪽은 인공지능보다는 인공바보에 가깝습니다...)

김단 2019-02-19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이 책 읽는 중인데, 너무 좋은 책이고 하나하나 좋은글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저에게는 좀 어려워서 이해되지 않은 부분들이 있었는데 잘 설명해주셔서 많이 도움받고 갑니다.
공감가는 글들이 많네요

syo 2019-02-19 13:40   좋아요 0 | URL
김단 님께 뭐라도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좋은 책이니까 끝까지 포기하지 마시고 천천히 읽어나가셨으면 좋겠어요 ㅎㅎㅎ
 


호반정경湖畔情景 3

 

 

1

 

슬픔이라는 덩치 크고 멍청한 단어를 조리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내어놓는 일은 늘 탐탁치가 않지만, 빈곤한 역량은 언제나 나를 탐탁찮은 길 위에 세운다.

 

 

 

2

 

두 종류의 슬픔과 알고 지냈다. 일부러 드러내지 않아도 눈치껏 알아주었으면 싶은 슬픔과 무심코 드러내도 눈치껏 모른 척 해주었으면 싶은 슬픔.

 

 

 

3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사정이고, 친절한 친구일수록 마음 구석에 뭉쳐둔 눅눅한 슬픔까지 발견하여 다정하고 온유한 말로 닦아줄 가능성이 높다. 타인의 슬픔을 성분 분석하는 일은 과학보다는 미학이 맡은 재주라서, 내 젖은 슬픔과 비슷하게 생긴 타인의 슬픔이 그에게는 부서질 듯 건조한 슬픔일 수가 있다. 위로받고 싶은 슬픔을 무시하는 일은 위험하고, 무시되고 싶은 슬픔을 위로하는 일은 위태롭다. 어쩌면 슬픈 이의 취약한 마음에 내 무딘 지문을 불붙은 인두처럼 뜨겁게 눌러 찍는 일이 될 수도 있음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타인의 슬픔을 만지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다.

 

 

 

4

 

그럼에도 우리는 종종 좋은 마음으로, 그러나 명백히 섣부르게 타인의 슬픔을 건드리고 만다. 마치 조금이라도 빨리 그 불길을 잡지 않으면 내 정원도, 내가 공들여 길러놓은 여린 꽃들과 달콤한 열매들도 잿더미가 되어 버릴까 두려워 조바심치는 이웃사람처럼. 슬픔을 역병처럼 다루는 태도가 역병처럼 번져 있다. 감기, 수두, 홍역, 페스트.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을 합리의 영역에 가져다 놓아도 괜찮다고 주장하는 매정한 병명들.

 

한 마음의 매운 기침 몇 번에 그를 둘러싼 모든 마음이 금세 각자의 기침을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 슬픔의 전염성을 성토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하지만 자주 슬픈 사람은 그 장면을 조금 더 깊은 눈으로 들여다보고 싶다.

 

 

 

5

 

너로부터 옮은 바로 그 감기를 내가 앓아도 네 기침 소리와 내 기침 소리가 같지 않듯이, 나의 슬픔이 너를 슬프게 하여도 우리의 슬픔은 같지가 않다.

 

 

 

6

 

그리고 그것이 그대로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우리가 마주 앉았으나 서로의 눈을 바라보지 않았을 때, 혹은 바라보았으나 눈동자 뒤에 숨었을 무언가를 억지로 꺼낸다든지 짐작하려들지 않았을 때, 나의 슬픔이 나의 슬픔으로 온전하고 너의 슬픔이 너의 슬픔 그대로 드러나 서로의 슬픔이 맞닿되 섞이지 않았을 때, 그런 일이 있었지, 참 슬펐어, 딱 거기까지만 이야기해 주었을 때 가장 힘이 되었다고 일러주고 싶다. 나의 슬픔이 누군가 이미 극복하고 정복한 슬픔과 완전히 같지는 않다는 사실이 나약하다고 비난받는 기분을 느끼지 않게 해주었고, 그럼에도 언제나 어디서나 누군가 슬픔을 앓고 있다는 사실은 퍽 든든했다고 고백하고 싶다. 아무리 도망쳐도 결코 피할 수 없는 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는 싸움을 하고 있는 이가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라는 진실을 조용하고 은밀하게 너는 전해주었다. 감추고 싶은 슬픔을 감추는 일이 내 몫이라면 만지고 싶은 슬픔을 만지는 일은 너의 몫이라서 내가 해변처럼 조개를 감추는 동안 너는 성큼 밀물로 왔다가 썰물로 그저 돌아갔다. 아무것도 두고 가지 않았고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다.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네가 내게 그런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선잠 / 박준

 

그해 우리는

서로의 섣부름이었습니다

 

같은 음식을 먹고

함께 마주하던 졸음이었습니다

 

남들이 하고 사는 일들은

우리도 다 하고 살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발을 툭툭 건드리는 발이었다가

화음도 없는 노래를 부르는 입이었습니다

 

고개를 돌려 마르지 않은

새 녘을 바라보는 기대였다가

 

잠에 든 것도 잊고

다시 눈을 감는 선잠이었습니다

박준선잠」 전문 

 

고통이여너는 왜 나를 귀찮게 따라다니는가무엇 때문에 늘 나보다 한 발 앞서서 방에 들어가고너 아니면 기쁨과 안식이 기다릴 침대에 선수쳐 눕는가무엇 때문에 내 손길이 닿는 모든 것에서목을 축이려는 유리컵과 가까이 다가가는 입술 어디에서나 너의 자취가 느껴지는가고통이여나는 너를 가슴에 품고 애지중지하지 않는다너를 부둥켜안지도 않고 네 그림자를 숭상하지도 않는다울부짖으며 너를 부정하고활력을 불어넣어 스스로를 잊게 하는 기쁨을 소리쳐 부른다아름답고 고매한 수식어로 너를 꾸미지도 않으며네가 정의라고 믿지도 않는다다만 네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너를 혐오할 뿐이다.

산도르 마라이하늘과 땅

 

저는 인간을 좋아합니다이곳저곳 항구를 떠돌며인간의 열기 속에서눈 내리는 날 강아지처럼 천진난만하게 구르고 싶습니다언제 제 생이 다할지 알 수 없지만그날이 올 때까지 소박하고 순수하게 작업에 정진하고 싶습니다.

하야시 후미코저는 인간을 좋아합니다 

 

 

 

--- 읽은 ---

새로운 엘리트의 탄생 / 임미진 외 4인 지음

하늘과 땅 / 산도르 마라이 지음 / 김인순 옮김 

 


--- 읽는 ---

뻬쩨르부르그 이야기 / 니콜라이 고골 지음 / 조주관 옮김

슬픈 인간 / 정수윤 엮고 옮김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 박준 지음

숙련자를 위한 고전노트 / 이수은 지음

책 쓰자면 맞춤법 / 박태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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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쟁이 2019-02-11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요한 파도가 되어주는 사람과 그런 이를 고마워 하는 슬픈 사람. 두 사람이 참 아름다워요. 마냥 꿈 처럼.

syo 2019-02-11 23:00   좋아요 0 | URL
좋은 사람 좋은 건 알고 알아도 끝까지 알지 못하는 일 같아요. 뒤지지 않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요.

반유행열반인 2019-02-12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섣불리 위로하지 않는 법...제가 조금 일찍 배웠어야 하는 덕목 같아요 ㅠㅠ 친밀함의 적정한 온도 유지하기, 안전 거리 확보 이런 게 왜 이리 어렵고 서툰지... 성질 급하고 쓸데 없이 부지런한 사람들이 남의 슬픔 걷어 낸답시고 먼지털이로 툭툭 털어주다 슬픈 사람 매 맞은 것마냥 눈물 더 빼게 만드는 것 같아요...(반성하는 먼지털이맨 1인...)

syo 2019-02-12 10:10   좋아요 0 | URL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위로가 필요한 인간의 배부른 투정일지도 몰라요. 위로는 받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실낱같은 자립성도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랄까요...... 위로가 필요한 어떤 사람도 수동적 대상으로 완전히 전락하고 싶지는 않은 법이니까요. 두 개의 입장에서 다르게 생각해야하지 않을까요. 위로하는 사람일 때 적당한 거리를 생각하고, 위로받는 사람일 때 지나친 욕심은 아닌지를 생각하고..... 물론 말처럼 잘 될 리가 없겠지만요.

반유행열반인 2019-02-12 10:18   좋아요 1 | URL
브로콜리너마저-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https://youtu.be/eHG3LQCpVok
노래 제목만으로도...위로 받는 사람도 안 될 걸 알고 위로 하는 사람도 안 될지도 모른다는 걸 알고 그러면서도 ‘조심스레’ 애쓰는 모습을 보이는 게 오히려 위로가 되는지도 모르겠어요. ‘섣불리’를 ‘조심스레’로 제대로 못 바꿀 것 같으면 그냥 입 다물고 주위를 빙빙 도는 편이 나을 것도 같고...조만간 위로할 일을 목전에 두고서 syo님 글에서 힌트를 얻을 듯 말 듯 뭔가 복잡한 마음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