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의 전차는 약과 바퀴를 굴리며 달려 온다

 

 

 

1

 

최근 몰라보게(알아는 본다) 살이 쪘다. syo에게는 개인사적으로 형성된 종말체중이라는 게 있어서, 질병, 감금, 경연 등에서 비롯된 부득이한 사정을 제외한 그 어떤 이유로든 종말체중에 도달하는 순간 이번 생은 그길로 자체 종말에 들어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현재 종말체중값은 70kg으로 맞춰져 있는데, 지난 31, 날도 날인지라 유달리 결연한 마음으로 체중계에 올라서 봤더니, 이런, 종말의 군대가 달려오는 말발굽 소리가 귓전에서 들린다. 아무래도 최근 폭발적으로 무분별해진 식습관과 그와 반비례하여 한없이 제로에 가까워진 운동량 때문이겠지.

 

위기감에 팔굽혀펴기를 해보았다. 이 대목에서 syo가 처음 돼지 된 후로 25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르도록 왜 단 한 번도 원하는 만큼의 체중에 도달한 적이 없었는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살을 빼는 것과 팔굽혀펴기란 아예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딱히 진지한 관계인 것도 아니어서, 살을 뺄 목적으로 팔을 굽혔다 폈다 반복하는 일은 뭐랄까, 맛있는 멸치볶음을 만들겠다는 사람이 동해 바다에 산업폐수를 방류하는 공장을 환경단체에 고발하는 일과 비슷하다. 만약 이 갑자기 팔굽혀펴기를 하고 syo가 왜 그러느냐 물었는데 이 살을 빼려고 이러는 거라고 대답했다면, 아마 syo에게 욕을 배부르게 먹였을 것이다. 3일을 굶어도 속이 든든할 만큼. 진짜 인간이란 참.

 

나는 살을 빼는 방법을 그 누구 못지않게 많이 그리고 정확히 알고 있다. 알면 뭐하겠노.

 

하여튼 그런 의지로, 매트 위에 엎드려서 으쌰으쌰 팔굽혀펴기를 했는데, 네 번째 세트였나? 전체 한 100개 남짓 했다 싶을 때 갑자기 오른쪽 손목이 시큰한 것이다. , 이런 적이 없었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런 적이 없었고 이러면 안 되기 때문에 이러지 않기로 했다. 좋아, 팔목 아프니까 오늘은 운동 쉰다. 운동이란 할 이유는 하나뿐인데 쉴 이유는 십만 대군이다.

 

종말의 군세가 가까이 달려오고 있는데, syo는 하루 3개의 약과를 꼬박꼬박 먹고 있다. 뭐 좋다고 아주 장복 중이다.

 

 

 

2


 

1970년대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자유주의자나 마르크스주의자가 '몰성적인gender-blind' 범주를 사용한다고 비판했다.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개인'이나 마르크스주의에서 말하는 '노동계급'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범주는 개인과 노동자에 존재하는 성적 차이를 무시하며, 따라서 자유주의나 마르크스주의로는 여성 억압을 설명할 수 없다고 페미니스트들은 주장했다. 그러나 유색인 여성들은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비롯한 페미니즘이 '노동계급 여성'이나 '여성' 같은 몰인종적인 범주를 사용한다고 똑같이 비판할 수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비판했다. 인종 억압(과 이성애 중심주의를 비롯한 다른 형태의 억압들)을 수용하려면 두 가지 선택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성차별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사회관계체계'를 가정할 필요가 있다면, 인종주의(를 비롯한 여러 억압 형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를 넘어서는 체계를 가정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선택은 수많은 질문을 제기했다. '체계'란 정확히 무엇으로 구성되는가? 얼마나 많은 체계가 필요한가? 체계들은 서로 어떤 관계를 맺는가? 그 결과로 나온 관점은 단순한 다원주의와 어떻게 다른가? 다른 선택은 마르크스주의 같은 포괄적인 이론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각기 다른 형태의 억압을 하나로 환원하지 않고 어떻게 통합할 것인지가 막연하다는 이유로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선을 그었기 때문에 이런 선택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체계를 여러 개로 늘리는 것도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서로 다른 형태의 억압이 정확히 어떤 관계를 갖는가는 예나 지금이나 명료하지 않고, 의견 불일치가 존재한다.

_ 낸시 홈스트롬, 사회주의 페미니즘

 

유효한 질문은 다음과 같을 수 있다.


  <질문 1> 사회주의에 페미니즘을 입힐 것인가, 아니면 페미니즘에 사회주의를 입힐 것인가.


  <질문 2> 그것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질문 3> 차이가 있다면 그 차이는 체계인가 아니면 체계를 낳는가.


  <질문 4> 돋보기의 배율에 따라 무한한 수로 분열 가능한 체계 속에서 어떤 입장을 선택한다는 것은 반드시 다른 입장에 속한 무언가를 배제하는 결론으로 치닫는가.


  <질문 5> 질문 4가 참이라는 답을 내린다면, 한 입장은 다른 입장을 되도록 철저히 배제함으로써 자신의 승리 확률을 높이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자기의 승리를 기약 없이 미루더라도 다른 입장(그 입장은 언젠가 세력을 키워 내 입장을 정복하려 들 수 있다)의 숨 쉴 구멍을 열어주는 것이 옳은가.

 


 

우리는 모두 한때 어머니의 몸속에 있었다. 모두 한때 유아였고, 그때 어머니는 거대했다. 우리는 어머니의 젖을 빨았다. 기억은 전혀 없지만, 우리의 운동감각적 · 정서인지적 학습은 의식적 기억에 한참 앞서 시작된다. 심지어 우리는 출생 전부터 시작된 학습 과정, 그리고 그 후 언어와 문화와 젠더화된 삶에 따라 나오는 무수한 상징적 연상들에 의해 형성된다. 그것이 세상을 반으로 가르고 우리 사이에 경계를 새겨, 우리가 서로 같은 점보다 다른 점이 훨씬 많다고 느껴지게 한다.

_ 시리 허스트베트,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를 바라보는 한 여자

 

 

 

--- 읽은 ---



54. 돈의 흐름이 보이는 회계 이야기

구상수 지음 / 길벗 / 2019

 

재미는 있으나 후속 공부가 뒤따르지 않으면 쉽게 휘발될 것이다. 오히려 회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보다, 진짜 교과서로 회계원리를 배우다 보니 개념들에 묻어 있는 역사성이나 사회성 같은 것들을 접할 기회가 없던 이들에게 더 재미있고 유익할 책이 될 것 같다.

 

  우리도 영어의 표현방식에 따라 익손계산서이익계산서라고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손실을 앞세워 손익계산서라고 하는 것일까?

  이익보다 손실을 앞세운 것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그중 가장 흥미로운 주장은 유교의 삼경 중 하나로 꼽히는 주역에 근거한 설명이다. 주역64괘 순서에는 손()괘 다음에 익()괘가 온다. ()주역에서 인간과 자연의 존재 양상과 변화의 원리를 상징하는 기호다. 64괘 중 손괘와 익괘에 대해 공자는 덜어내고 그치지 않으면 반드시 더하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손실을 다 메우고 나야 비로소 이익이 발생한다는 뜻이다.

_ 구상수, 돈의 흐름이 보이는 회계 이야기

 

 

 


55. 샤를 보들레르 :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

샤를 보들레르 지음 / 정혜용 옮김 / 은행나무 / 2014

 

보들레르는 이제 완전히 죽었을까?

 

보들레르가 현대라는 말을 쓴 것은 그가 살고 글을 썼던 19세기의 어느 시점을 가리키기 위해서라기보다, 어느 시대를 사는 사람이건 자기가 속해 있는 자기 현대의 삶을 그리려면 이런 태도와 기교가 필요하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그러니까 아이러니는 현대는 굉장히 역사적인 개념인데도 보들레르의 현대는 오히려 몰역사적이고 무시간적인 방식으로 쓰였다는데 있다고, 나는 그렇게 읽는다. 이것은 더 큰 아이러니를 피하기 위해 채택할 수 밖에 없는 작은 아이러니에 불과하다. 만약 보들레르의 현대가 정말 보들레르가 살던 그 현대에 국한되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보들레르의 이 책을 <삼국사기>와 다른 방식으로 소비할 이유가 없고, 우리 대중 독자들이 <삼국사기>를 읽지 않듯 보들레르는 읽히지 않을 것이다. 모든 작가는 불멸의 명성을 얻고 싶을 것이고 불후의 작품을 남기고 싶을 것인데도, 진정한 작가라면 그 시대에만 소용될 뿐 현대의 모양이 바뀔 때면 가루가 되어 역사의 바람에 흩날려 사라져야 한다는 거대한 아이러니, 그 아이러니를 피하기 위해 보들레르의 현대는 방법론적 의미에서 모든 현대를 지시하는 것으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이건 결론이라기보다는 질문이다.

 

철두철미 소요객인 사람과 열정적 관찰자에게 다수를, 사람 물결을, 움직임을, 순간과 무한을 자기 거처로 삼는 것은 어마어마한 즐거움이다. 자기 집을 벗어나 있기, 하지만 어디서든 자기 집인 양 느끼기. 세상을 바라보기, 세상 한가운데 있으면서 세상 속에 숨어 있기. 이런 것들이 독립적이고 열정적이며 편향되지 않은 정신의 소유자들이 느끼는 쾌락들, 말로는 어설프게밖에 규정할 수 없는 쾌락들 가운데 몇 가지이다. 관찰자는 여기저기에서 자신의 익명성을 즐기는 군주다.

_ 샤를 보들레르,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

 

 

 


56.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

박정호 지음 / 더퀘스트 / 2020

 

경제학에 대해서 인문학이 하고 싶은 말과, 인문학에 대해서 경제학이 하고 싶은 말 중, 어느 말이 더 말 많은 말일까? 길고 깊지 않은 syo의 독서 경력에 비추어보면, 그 둘은 어우러짐을 빙자하면서 실은 자주 다투거나 서로의 영역을 침공하는데, 보통 인문학은 경제학을 총론적으로 공격하고 경제학은 인문학의 각론에 침투한다. 그것은 인문학과 경제학이라는 학의 특성을 보여주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 방식의 차이를 인지하면, 경제학과 인문학이라는 단어가 하나의 제목에 자리를 공유할 때 그 책이 실은 인문학 책인지 경제학 책인지 서툴게나마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을 갖게 된다. 그런 기준에서 보면 이 책은 명백히 경제학 책이다.

 

인문학인지 경제학인지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책을 만나고 싶다. 만날 때가 되었다.

 

저명한 신화학자이자 시카고대학 교수인 웬디 도니거는 그의 저서에서 신화는 현미경 기능과 망원경 기능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망원경 기능이란 신화의 내용이 일상을 초월한 초자연적인 내용과 세계관을 토대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신화를 통해 당시 사람들의 철학관, 세계관, 자연관 등을 엿볼 수 있다는 의미다. 이와 달리 현미경 기능이란 신화의 내용이 고대의 소소한 일상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신화를 통해서 고대인의 경제 문제를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은 바로 이 현미경 기능에 근거한 것이다.

_ 박정호,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

 

 

 


57. 머더봇 다이어리 : 시스템 통제불능

마샤 웰스 지음 / 고호관 옮김 / 알마 / 2019

 

이야기를 찾아 매체의 바다를 떠도는 사람들은 늘 새로운 것을 갈망한다. 이야기 바깥의 평범한 세상에서는 만나기 힘든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들. 그것은 우리의 삶이 우리에게 지나치게 평범하거나, 그 어떤 비범한 삶도 반복 속에서 결국 평범해지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평가할 때 반전이 얼마나 예측하기 어려웠는지에 배점을 크게 잡는 것도 같은 맥락일지 모른다. 이야기 바깥에서는 혹여 뒤통수 맞을까 봐 두 개밖에 없는 눈으로 늘 360도를 감시하는 삶을 살면서도, 이야기에게는 때리라고 호쾌하게 통수를 내주는 것으로 모자라 살살 때리면 짠 점수를 주는 것이다. , 인간이란.

 

그런 면에서 보면 SF의 강점은, 서사가 뒤통수를 노리지 않아도 설정이 뒤통수를 때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화자가 당연하게 내뱉는 모든 단어가 새롭다. 그리고 좋은 SF작가일수록 그런 설정들을 설명해주지 않는다. 읽어나가는 독자가 눈치껏 알아채야 한다. 그래서 모든 SF소설은 그 자체로 추리소설인 셈이다. 문제는 소설 내부에 등장하는 탐정이 명쾌하게 그 트릭을 설명해주는 일이 없으므로 멍하니 읽어나가다가는 끝내 무슨 말인지 모르고 책을 덮는 일도 생긴다는 것. 그런 과정이 귀찮은 독자는 SF를 읽기도 힘들다.

 

이 작품의 서사는 간단하다. SF가 아니었다면, 플롯만 놓고 보면 정말 범작 이하의 탐정소설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처음부터 끝까지 새롭고 재미있는 것은 이 책 속 세상 자체가 우리에게 새롭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주인공이 밥만 먹어도(주인공은 밥을 먹지 않는다, 그러므로 더욱더) 재미가 있을 것이다.

 

구성체를 반은 봇, 반은 인간으로 생각하는 건 잘못된일이다. 그러면 마치 두 절반이 별개인 것처럼 들린다. 봇 부분은 명령에 따라 일을 하려 하고, 인간 부분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도망치려 하는 식으로 말이다. 실제로는 그 반대였다. 나는 혼란스러워하는 하나의 완전한 존재였다. 무엇을 원하는지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무엇이 필요한지도 전혀 모르는.

_ 마샤 웰스, 머더봇 다이어리 : 시스템 통제 불능

 


 

--- 읽는 ---

축복받은 집 / 줌파 라히리

엑시트 EXIT / 송희창(송사무장)

인기 없는 에세이 / 버트런드 러셀

생활 속 법률 상식 사전 / 김계형, 이재호

사회학의 쓸모 / 지그문트 바우만 외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 / 제바스티안 하프너

사회주의 페미니즘 / 낸시 홈스트롬

마키아벨리, 군주론의 탄생 / 마일즈 J. 웅거

간절하게 참 철없이 / 안도현

/ 최희봉

외로움을 씁니다 / 김석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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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3-03 14: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헉 보들레르가 그림도 그렸어?라고 깜놀했습니다. ㅎㅎ
한동안 사회주의 페미니즘에 대한 글들이 막막 올라오겠군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당연히 syo님 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페미니즘 소개글을 머리를 빠개며 열심히 읽고 있는데 보니 아래쪽에 정리를 다 해놓으셨더군요. 이런거 너무 좋아요. 내 머리를 게으르게 하는 자 syo! ㅎㅎ

운동이란 할 이유는 하나뿐인데 쉴 이유는 십만 대군이다는 오늘의 문장으로 어디 추천할데가 없나 둘러보겠습니다. ^^


syo 2021-03-03 14:19   좋아요 3 | URL
운동은 정말 뭐랄까요,
하는 사람은 만 가지 이유로 하고 한 가지 이유로 그만두지만, 안 하는 사람은 한 가지 이유로 시작해서 만 가지 이유로 그만두는 희한한 생활양식인 것 같아요.
단순히 습관의 문제는 아닌 것 같고....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여러 저자의 짧은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라, 편차가 좀 있긴 하지만 재미도 있고 그리 어렵지도 않은 것 같아요. 물론 아직 100쪽밖에 못 읽은 상태에서 드리기는 뭣한 말씀이긴 하지만.....

미미 2021-03-03 14:25   좋아요 1 | URL
만가지 이유로 하고..헉..명언이네요. 경험해봤기에 아픈말이고요👍👍

cyrus 2021-03-03 15: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건강을 위해서 하리보를 덜 사먹으려고 해요. 최근에 나온 하리보 신상 제품들이 눈에 아른거려서 괴롭습니다.. ㅎㅎㅎ 편의점과 다이소를 지나갈 때마다 파블로프의 개가 돼서 입 안에 침이 고여요. 이번 설날에 약과를 안 먹어서 그런지 약과도 당기네요.. ^^;;

감은빛 2021-03-03 17: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니, 근데 syo님과 ˝살이 찐˝ 혹은 ˝돼지˝ 라는 수식어는 전혀 연결이 되지 않아요.
명백한 오류라고 볼 수 있어요. ㅎㅎㅎㅎ

오늘도 또 장바구니와 보관함에 책들을 담네요.
syo님 서재를 방문하지 말아야겠어요. ㅠㅠ

반유행열반인 2021-03-03 20: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운동을 체중이 아닌 다른 이유(예:무거운 걸 잘 든다, 숨을 잘 쉰다, 땀흘리고 씻으면 개운하다, 팔굽혀펴기 백 개 해야 약과 하나 준다 등등)를 붙여 하면 좀 할 만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나새끼도 무거운 거 안 들면 되지...숨 안 쉬어지면 죽지 뭐...잘 안 씻어...약과 안 좋아해 하면서 결국 안 할 가능성이 높네요...우답우답이었습니다 ㅋㅋㅋㅋ

붕붕툐툐 2021-03-03 2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약과가 손목 시큰거리는데 직효인건 모르셨군요? 장복하셔서 그만한 겁니다~ 라고 말할 수 있음 좋겠어요. 약과 넘나 맛나죵?ㅎㅎ
 
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이주윤 지음 / 한빛비즈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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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주윤 선생님께,

 

생판 모르는 마당에 다짜고짜 사랑해서 죄송한 저는 알라딘 마을에서 책 읽고 독후감 쓰는 syo라는 잡놈입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언젠가 꼭 한번은 선생님의 작품을 향한 저의 끓는 애정을 담아 힘찬 응원의 아리아를 들려드려야겠다 마음먹고 있었는데요, 어느덧 겨울은 가고 바깥에 봄은 오고 있어서요. 이때가 좋은 때다 싶었습니다. 게다가 저의 경우, 우리 비혼/미혼인 들의 영원한 2학기 기말고사 설 명절역시 다소간 마찰은 있었으나 비교적 무탈하게 통과할 수 있었기에 흥겨운 마음 금할 길이 없는지라 그 금할 길 없는 흥에 대판 취해 무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졸필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이번 설 어떻게 지나셨는지요. 혹시 그간 장동건도 똥 누고 방귀 뀐다는 아버님 말씀에 감화되셔서 똥 잘 누시고 방귀 시원하게 뀌시는 장동건강한 남자분 만나 혼례를 올리셨는데 그것도 모르고 제가 물색없이 우리 비혼/미혼인카테고리에 작가님을 함께 묶는 빅실례를 범한 건 아닐까 저어됩니다. 물론 아닐 것 같긴 합니다. 아니지요?

 

저는 처음 선생님의 글을 만났을 때, 어떤 운명 같은 끌림을 느꼈습니다. 이건 곱게 말한 거구요. 간략하게 말해서, 제가 쓴 줄 알았습니다. 이런 대목이요.

 

하루의 대부분을 산송장처럼 누워 지낸다. 늦잠 자고 일어나 낮잠 자고, 낮잠 자고 일어나 늦잠 자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간이 훌쩍 흘러가 버린다. 반복되는 늦잠과 낮잠 사이에 이렇게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데 그마저도 누워서 가능한 일이니 딱히 침대를 벗어날 이유가 없다. 먹고 싸는 일만 어떻게 좀 해결된다면 평생을 누워서 살 수도 있을 것만 같다. 한창때에 왜 그러고 사느냐 물으신다면, 모르겠다. 세상만사 모두 귀찮다. 젊은 놈이 별소리 다 한다며 혀를 끌끌 차신다면,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젊은 놈도 사람이니 귀찮음을 느낄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농담처럼 말했지만 진담이다. 나는 사는 일이 진심으로 귀찮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매일 그렇다.

 

혹은 이런 대목도요.

 

  그리하여 나는 내 글을 소리 내어 읽어 본다. 걸리는 부분이 한 군데도 없을 때까지 계속, 계속. 얼마큼 많이 읽어 보느냐 하면은 턱이 빠지기 직전까지, 목소리 쉬기 직전까지, 열 받아서 아이패드 작살내기 직전까지. 쉼표를 여기 찍었다가 저기 찍었다가 하면서, 숨울 여기서 쉬었다가 저기서 쉬었다가 하면서, 그 느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기 위해서는 자꾸만 읽어봐야 한다.

  그렇게 아무리 읽어 보아도 어디에 쉼표를 찍는 게 더욱 적확한지 결정을 내리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럴 때는 마감이 있는 게 너무나 고맙다. 마감이 없었더라면 나는 성대결절에 걸렸을지도 모른다. 내가 무식하게 글을 쓰는 것도, 굳이 이럴 필요까지 없다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의 느낌은 사뭇 다르지 않은가. 문장에서 느껴지는 결연함이 다르잖아. 나만 느낀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하여튼 나는 그래.

 

이건 우리가 매사를 귀찮아하지만 만사를 귀찮아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가 되겠고, 또 읽기에 따라서는 귀찮지 않은 일에 그럴 필요까지 없는최선을 다하느라 그 나머지 일이 대체로 귀찮은 인간이라는 이야기기도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저 두 개의 문단은 한 인간의 성격이 굉장히 정합적임을 보여주는 증거인데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모순적인 모습으로 보이는 거죠. 그러나 저는 압니다, 그게 어떤 마음인지. 선생님이 말씀하시지 않아도 거울 속의 제가 말해주니까요. 선생님과 저의 차이라고는 고작 선생님은 여자고 저는 남자라는 것(고작이 아니군요), 그저 선생님이 저보다 글을 더 잘 쓰신다는 것(그저도 아니군요) 정도랄까요. 그런 몇몇 요소들을 제외하면 선생님과 저는 겁나 닮았다고 일단 저는 우겨볼 텐데, 이런 우김조차 우린 닮았다니까요. 증거를 대 볼까요. 지금, 누워 계시죠?

 

이주윤 선생님, 선생님은 뭐랄까. 참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작가입니다.

 

선생님의 다른 책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는 삶을 위해는 얼마나 팔렸나요. 저는 그 책이 잔뜩 팔려서 선생님께서 계속 쓰는 삶을 이어나가시길, 그래서 선생님이 쓰신 글을 자주 읽을 수 있기를 겁나 앙망했습니다만, 뭐라 하면 좋을까요, 선생님의 책은 제가 읽고 즐기기에는 너무 좋지만-그것은 제가 선생님의 개그 코드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그렇다고 친구들에게 이 책 사라고 추천하기는 좀 애매한 데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된 노릇인가 하면, 제 친구 새끼들은 대체로 올해 책 두 권 읽으면 내년에는 당당하게 독서를 거를 수 있는 메탈-멘탈Metal-Mental을 지닌 친구들이오라, 그 녀석들이 평생을 읽고서 떠날 책이래 봐야 채 100권이 넘지 않을 모양인데, 100권 중 한 권을 추천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일단 위대한 작가들의 이름이 너무 많이 떠올라서 선생님의 책을 권하기가 다소 아리송까리송해진 것입니다. 게다가 제가 애들에게 선생님의 책을 권한다면 아마도 야, 이 책 겁나 웃겨- 라는 추천사를 부착하게 될 터인데, 선생님의 말재간이 제겐 너무나 웃기지만 직장생활과 부부싸움과 육아-현재 선생님과 제가 공통적으로 하고 있지 않은 세 가지-에 트라이앵글 초크를 당하고 있는 저 상처 입은 짐승들의 거친 감수성에도 맞물릴지 확신이 없는 상황이랄까요. 우리 같은 소수의 인간들은 웃고 웃기는 것조차 소수소수해야만 하는 운명인 것일까요? 그 답은 제가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선생님의 글이 제게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위안이 된다는 사실을 꼭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잡소리로 가득한 편지를 띄운 것이지요. 언제 결혼할 거냐는 물음이 언제 행복할 거냐는 물음과 연결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은, 그 사람들이 웃는 곳에서 웃지 않는 우리들이 그 사람들이 웃지 않는 곳에서는 잘도 웃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마다의 언어가 있다면 모두 같은 언어를 쓰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나의 웃음과 같은 문법의 웃음을 가지고 귀찮은 하루하루를 그래도 이어나가는 사람이 어딘가에 있다는 정보는 그야말로 생활정보지요. 저와 같은 얼치기 독자에게 선생님이 필요하듯, 계속 쓰는 삶을 지향하는 선생님께도 저 같은 얼치기 독자나마 필요하실 거고, 우리는 그래서 각자의 자리에서 낄낄대며 이러구러 생활할 수 있는 거겠지요.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응원하는 사이입니다. 혼자 있어도 혼자 있지 않은, 더 정확히 말하면 같이 있지 않아도 혼자 있는 게 아니라서 어렵게 같이 있을 필요가 없는, 책과 독후감으로 혼자서 같이 있는, 선생님과 저는 그런 사이가 되어버렸습니다. 거부권은 없으십니다. 그런가보다 하세요. 저는 물지 않습니다. 훈련을 꽤 잘 받았거든요. 그리고 이빨도 시원찮습니다.

 

그럼, 마이클 잭슨 선생님의 주옥같은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유아낫얼론하니,

위아더월드니라.

 

좋은 봄 맞이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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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1-03-02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지금 도서관 왔는데 내친김에 이 책 빌려갑니다 ㅎㅎ^^

syo 2021-03-03 12:01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제 개인적인 취향에 불과할까봐 걱정했는데,
다른 댓글들을 읽어보니 페넬로페님의 선택을 지지하는 게 저 하나만은 아닌가보네요 ㅎㅎ
모쪼록 즐거운 독서 되시길.

난티나무 2021-03-02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무 좋아요. 👍
책 두 권을 당장 읽고 싶게 만드는 글이네요. 근데 별은 네 개, 그래서 빼신 거겠죠? 읽을 목록에 추가추가!!

syo 2021-03-03 12:03   좋아요 0 | URL
저는 보통 웃기거나 슬프거나 혹은 감탄스럽거나 해서 ‘엉엉 울 정도‘가 되면 별 다섯을 매기는데요 ㅎㅎㅎ
재미있는 책이고, 읽고 있자면 희한하게 작가님의 인생을 응원하게 되는 그런 책입니다 ㅎ

행복한책읽기 2021-03-02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를 이주윤 작가 세일즈맨으로 임명합니다. 쾅쾅쾅!!! 기혼자인 나에게 땡큐하게 만들다니. ㅋㅋ 오늘 반납 있어,(그 스피노자, 펼쳐보지도 못한) 도서관 갈 건데 대출하겠음^^
syo님 셤 끝나니 글의 향연이 펼쳐질판. 아이 좋아라~~~~^^

syo 2021-03-03 12:05   좋아요 0 | URL
글 올리고 아무 생각 없이 하루 지났더니, 이주윤 선생님의 이름이 뜨문뜨문 북플에 보이네요!
제가 한 건 팔았군요 ㅋㅋㅋㅋㅋㅋㅋ

부족한 글 늘 아껴주시는 읽기님.
그러나 아시다시피(그리고 글에서 드러났다시피) 저는 굉장한 게으르니스트여서 ‘글의 향연‘은 아무래도 개최가 어렵겠습니다 ㅎㅎ

stella.K 2021-03-02 15: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주윤 작가가 또 책을 썼군요.
옛날에 그런 영화가 있었는데,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나이‘인가
와이프가 너무 사랑스러운데 너무 부지런해서 남자가 너무 피곤해했는데
이 와이프가 어느 날 갑자기 사고로 죽어요.
그때부터 남자는 침대에서 한 발자국도 안 나오죠.
그 영화 앞부분만 보고 나중에 결말이 어떤지 아직도 확인을 안 해봤어요.
지금도 볼 수 있나 모르겠어요. 제목도 활실한지도 모르겠고...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는 삶을 위해』이거 대따 재밌는데...

syo 2021-03-03 12:07   좋아요 0 | URL
이 책이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는 삶을 위해>보다 먼저 나온 책입니다.
재밌기로는 난형난제지요.
웃기는 사람에 대한 동경은 진짜 고질병이네요. 낫질 않는다.....


blanca 2021-03-02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누군가 했더니 내가 읽고 웃다 쓰러졌던 책이네요. ㅋㅋ<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저는 이 시리즈 다 좋더라고요. 작가가 이 리뷰 꼭 읽었으면 좋겠네요.

syo 2021-03-03 12:09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그 책도 재밌죠!
저는 쓰러지진 않았지만 읽다가 책을 몇 번 집어 던졌어요! 와재밌어! 이러면서...
다음 책이 얼른 나왔으면 좋겠어요.

반유행열반인 2021-03-02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의 시작에 애독자 편지 받은 이주윤 선생님은 좋겠네요 ㅎㅎㅎㅎ

syo 2021-03-03 12:11   좋아요 1 | URL
이주윤 선생님이 이 편지를 읽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도 사람인데,
그리고 한낱 백수인 syo조차 가끔씩 검색창에 이름 석자 때려넣곤 하는데,

감은빛 2021-03-02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대체 뭘 먹으면 이런 글을 쓸 수 있나요?
아니 질문을 바꿔야겠군요.
뭘 읽으면 이런 글을 쓸 수 있나요?
근데 syo 님이 읽은 책들은 다 여기 서재에 있으니,
이건 물을 필요가 없는 질문이군요.
그럼, 제가 이렇게 멋진 글을 못 쓰는 이유는
syo 님 만큼 책을 읽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겠군요.

사랑 고백을 받은 작가님이 너무 부럽네요. ㅎㅎ

syo 2021-03-03 12:13   좋아요 0 | URL
제가 이 책을 읽고 이주윤 선생님께 드리고 싶었던 질문을 그대로 제게 하시는군요 ㅎㅎㅎㅎ
세상에는 워낙 재밌고 좋은 글이 많으니까,
자꾸자꾸 먹다 보면 조금씩 내 글도 재밌고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불확실한 희망을 품고
이것저것 와구와구 먹는 중에 있지요^-^

라로 2021-03-03 0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 샘난다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syo 2021-03-03 12:13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누가요??

Cinema Paradiso 2021-03-03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안녕하세요~

저는 syo님의 글을 재밌게 읽고 있고 Syo님의 알라딘 친구이기도 한 시네마라고 합니다. 처음으로 글을 남겨봅니다 :)

저는 요즘 책과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온라인 살롱 <북카페 아트시네마> 카톡방을 운영하고 있어요.

최근에 (syo님 포함) 알라딘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분들이 다같이 모여 대화를 나누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고, syo님도 참여하셨으면 싶어서 글을 남깁니다.

Syo님. 예전에 이런 글을 남기셨죠?
‘Syo는 책과 노래라는 두 날개로 날아오르는 사람이라고’ 시대가 시대인지라 노래방을 가기 힘들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북카페 아트시네마>가 Syo님의 새로운 유희의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북카페 아트시네마
https://open.kakao.com/o/g34W35Eb

syo 2021-03-03 12:20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시네마님.
이런 공간이 있었군요.

제가 원체 게으름쟁이라 열심히 활동할 것 같지는 않지만,
부러 방문하셔서 링크까지 남겨주시니 안 들어가 볼 도리가 없네요 ㅎㅎㅎㅎ

또 봄. 2021-03-04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덕에 재미난 책 알아갑니다.
보자마자 구매했어요! :)
 

 

초겨울사거리 1

 

우리는 손을 잡고 햇볕 젖은 내리막길을 따라 걸었다. 가파른 그 길을 내려갈 때는 고개를 조금만 들어도 눈앞이 온통 하늘이어서 마음이 다 부드럽다. 봄은 아직 덜 익었고 마스크만 없었으면 몰래몰래 입도 맞출 우리가 봄과 나란히 익어간다. 우리는 잘 익어간다. 사랑이라는 소리를 자주 내고 잘도 웃는다. 요구하는 대신 욕구하며, 걱정할 자리에서 꼬박꼬박 다정하다. 꼭 잡은 손이 외투 주머니로 들어가는 궤적이 어느덧 우아하고 매끄럽다. 구천구백구십구만 구천구백구십구 번쯤 해본 일 같다. 일억 번째 봄이 오고 있다. 우아하고 매끄럽게, 새콤한 그 봄 속으로 우리가 걸어 들어간다.

 

 


 

--- 읽은 ---



51. 김상욱의 과학 공부

김상욱 지음 / 동아시아 / 2016

 

배우고 익히고 그 안에서 뭔가 발견하기도 하고 마침내 그것을 통해 끼니를 창출하는 공부를 지닌 사람이 늘 부러웠다. 거기쯤 도달하면 공부의 주인은 마음속에 자기의 안경과 사전을 품게 되고, 그것들을 사용해 세상을 보고 번역한다. 그래서 그의 말에, 글에, 그러니까 생각과 행동에, 그의 공부가 묻어난다. 그것이 역량이고, 곧 그 사람의 실재다. 누군가가 있다는 것, 나 여기 있소- 하고 세상에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사람들이 그 목소리가 누구의 목소리인지 구분할 수 있는 축복 같고 때론 기적 같은 그 일. 그 시작은 공부다. 그리고 끝도 공부겠다.

 

  물리학자들을 괴롭히는 질문 하나, "빅뱅 이전에 무엇이 있었나요?"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동방신기."

  여기서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면 당신은 비실비실 배삼룡이나 땅딸이 이기동이 누구인지 알고 있음에 틀림없다. 사실 많은 심오한 질문은 따지고 보면 과거에 대한 것이다. 미래에 대한 질문조차 그 단서는 과거에 있다. 미래가 과거와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할 거라는 가정이 없다면 예측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_ 김상욱, 김상욱의 과학 공부

 

 

 


52. 돈의 속성

김승호 지음 / 스노우폭스북스 / 2020

 

요즘 이 장르의 책이 손에 잡히면 피하지 않고 읽는 중인데, 이 책은 확실히 독보적인 데가 있다. 하나 마나 한 소리를 하지 않거나, 최소한 하나 마나한 소리를 할 때 쓰나 마나 한 문장을 동원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 마나한 소리 그 이상으로 들린다. 명민하다. 명민하였으니 그만한 돈을 벌었겠지- 라고 생각하면 이 칭찬은 하나 마나한 칭찬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모든 돈 번 이들의 글이 다 명민한 것은 아니니 최소한 나도 하나 마나한 소리를 한 것은 아니다. 넓게 읽히고,

 

욕심은 리스크를 낳는다. 이 욕심이 대중에게 옮겨 붙으면 낙관이라는 거품이 만들어진다. 거품은 폭락을 낳는다. 그러나 자포자기하고 두려움에 떠는 시기가 오면 봄이 오고 해가 뜬다. 이건 굳이 통계나 패턴으로 증명하지 않아도 인문학적인 지식으로 알 수 있다. 모든 욕심의 끝은 몰락을 품고 있다. 그리고 모든 절망은 희망을 품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_ 김승호, 돈의 속성

 

  

 


53.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

오찬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

 

좋은 세상은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이 많다. 답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정치/경제/사회적 이슈를 놓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좋은 세상이라는 건 그저 저마다의 좋은 세상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게 좋은 세상은 네게는 좋은 세상이 아니거나, 우리에게 좋은 세상은 사실 내게 좋은 세상보다는 나한테 조금 덜 좋은 세상이거나. 그래서 모두에게 좋은 세상을 만들자는 깃발 아래 모여든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자기가 원했던 그대로의 세상을 획득하지는 못하고, 차마 좋아지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세상 참 좋아졌다고 말하기에는 뭔가 떨떠름한 세상이 만들어지곤 한다. 최악의 경우 가장 강한 한 사람에게만 완벽한 세상이 태어나기도 하고.

 

더 좋은 세상을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다는 것이 이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는 증거는 아니다. 그냥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는 뜻이냐며 윽박지르는 사람들 역시 이 세상이 완벽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저 목소리 높은 사람들이 말하는 더 나은 세상이 내게도 더 나은 세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냥 우리는 늘 싸우고 있다. 세상은 좋아지기도 하고 더러 나빠지기도 하지만 어쨌든 싸움 속에서 굴러간다. 누군가 선봉에 서서 피 흘리며 싸우는 동안 후열에 숨어 눈치를 보다가 승리의 단맛이 잡힐 것 같다 싶을 때 튀어나와 그 열매에 혀를 대는 인간이 있다. 나다. 내 좋은 세상이 승리하는 데 아무것도 기여하지 않는 스스로의 모자람을 감추기 위해, 키보드 위에서만 정의를 들먹이거나 내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 확증된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만 소리 높여 분노하며 자신의 양심에 밥상을 차려주는 인간도 있다. 그것도 나다. 나는 세상이 큰 틀에서 좋아졌다고 생각하고, 이런 좋은 책과 저자들의 노력에 힘입어 세상은 내가 원하는 쪽으로 조금씩 좋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을 품은 게 아니라서 더 비겁한 모양새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번 생에는, 이 훌륭한 책을 칭찬할 자격조차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두 가지 팩트가 있다. 하나는 이 사회가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팩트이고, 하나는 현재 이 순간에도 불평등에 노출되어 삶이 위태로운 사람이 반드시 있다는 팩트다. 전자는 후자를 드러내는 걸 두려워하지 않을 때 지속적으로 그 방향성이 유지된다. 세상이 좋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세상의 불평등조차 낙관하라는 태도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지금 아파하는 사람을 보며 한 사회의 불평등을 탓하는 건 확증편향과 무관하다. 오히려 그걸 무시하고 '그래도 과거보다 나아졌다'는 망상에 빠지는 게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착각이다.

  곳곳에 첨단시설이 즐비해졌다는 팩트는 아무리 더워도 휴게실에 창문 하나 낼 수 없어 생을 마감한 '' 노동자의 비 극을 덮을 수 없다. 손가락 절단 사고가 과거보다 줄었다고 해서 허술한 안전장치 때문에 끔찍하게 죽는 '' 노동자의 불행이 기쁨으로 둔갑될 수 없다. 모든 것이 다 배달되면서 개인의 편리가 증가했다는 사실이 하루 열다섯 시간씩 배달하는 '' 사람의 고충을 해결하지 않는다. 여성도 차별 없이 교육받는다는 변화된 통계 자료가 데이트 폭력으로 목숨을 잃을 수 있는 '' 당사자의 불안한 마음을 줄여주지 않는다.

_ 오찬호,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

 

 

 

--- 읽는 ---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를 바라보는 한 여자 / 시리 허스트베트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 / 박정호

머더봇 다이어리 : 시스템 통제불능 / 마샤 웰스

돈의 흐름이 보이는 회계 이야기 / 구상수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 / 샤를 보들레르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 에드거 앨런 포

지지 않는 하루 / 이화열

스피노자 매뉴얼 / 피에르 프랑수아 모로

정동정치 / 브라이언 마수미

모든 곳에 존재하는 로마니의 황제 퀴에크 / 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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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1-03-01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억 년 만에 일 등!! 내리막을 초봄사거리로 만드는 비가 오네요.

syo 2021-03-01 11:27   좋아요 1 | URL
창문 쳐다보면서 커피마시기 좋은 날이네요. 시청각이 쾌적합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03-01 11:28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커피 한 잔 더 내려 마셔야겠다!!!

syo 2021-03-01 11:29   좋아요 1 | URL
조심하세요, 아시겠지만 커피 많이 마시면 그냥 저 창밖의 봄비처럼 오줌 누게 됩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03-01 11:36   좋아요 0 | URL
봄비만 같다면 좋은 거 아닌가?!?!(이미 내리는 중입죠)

2021-03-01 1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01 1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3-01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syo다~~~~~기다렸어요. 아팠어요?? 소식 뜸해 하나마나한 걱정 아닌 걱정했지비요.^^;; 나 모르는새 syo 팬이 된건가??? ㅎㅎㅎ
여는 글은 오늘 내리는 비처럼 촉촉해 일억 번째 봄 속으로 syo님 말길 따라 우아하고 매끄럽게 걸어가유~~~^^

syo 2021-03-01 12:08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에요, 읽기님 ㅎㅎㅎㅎ
하던 공부가 있었는데 2월 말에 시험이어서요, 한 보름 정도 폐관수련을 했습니다 ㅎㅎ
이제 다시 책도 좀 읽고 글도 써야지 하는데, 때마침 봄비도 또닥또닥 내리네요.
좋은 날, 운치 있는 휴일 보내세요 ㅎㅎ

바람돌이 2021-03-01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여긴 비는 안오는데 그래도 남편이랑 손 꼭잡고 산책나가고싶게 만들어지는 글이네요. 소파랑 물아일체의 경지에 이른 저 남편이를 아떻게 낭만남편이로 변신시킬까 고민하게 됩니다. ㅎㅎ
시험은 당연히 잘 치셨을터이니 결과가 좋기를 응원합니다.

syo 2021-03-02 10:12   좋아요 0 | URL
하루 지났더니 비가 눈이 되었다는 소식이네요.
봄이 오면 두분 손 꼭 잡고 산책 나갈 일이 좀 더 생기시겠지요. 스프링 매직.
바람돌이님께 새 봄 즐거운 일이 잔뜩 찾아오길 기원합니다^-^

행복한책읽기 2021-03-01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못다한 얘기. 돈의 속성은 나도 syo님처럼 회피 말고 읽어보자 싶어 오래전 구매했으나 읽지도 않고 처분도 못하는 중. ㅠ 오찬호 씨 글은 내가 생각하는 지점과 닿아 있어 급 읽고 싶음이요. 허나 스피노자 대출해놓고 못 읽고 있으니 언제 ㅠㅠ syo님처럼 속독하고파요.^^;;

syo 2021-03-02 10:14   좋아요 0 | URL
속독의 허망함을 제가 몸소 증명하고 있습니다.
맨날 다 까먹어요......

<돈의 속성>도 예상보다 훨씬 괜찮았고, <세상이~>는 예상만큼 괜찮은 책이었지요 ㅎㅎ
스피노자가 읽기님께도 힘을 주는 따뜻한 철학자가 되면 좋겠네요 ^-^

라로 2021-03-01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지? 갑자기 나이 팍 들어서 돌아온 것 같은 토비님? 고생 많았구나... 수고했어요.
그치만 나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공부하는데,,,시무룩 하지만, 토비님은 뭔가 마무리를 짓고 온 것 같아요. 응?
아무튼, 토비님이 돌아오니까 알라딘 세상이 환해진 것 같긴해요. ^^

근데 김상욱이라는 사람 얼굴이 유열하고 닮아보여,,,라며 혼자 웃었음.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syo 2021-03-02 10:16   좋아요 0 | URL
마무리는요..... 이제 시작이지 ㅋㅋㅋㅋ 끝 있어요?
유열이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몰라서 찾아봤어요. 어릴 적에 유열이라는 사람 이름 들은 기억은 있는데, 그건 너무 어릴적이야.....

오랜만에 돌아왔더니 라로님 간호일지가 좌르르 있네요^-^

감은빛 2021-03-02 20:01   좋아요 1 | URL
와! syo님 유열이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모를 정도의 세대였군요. 깜놀!
한참 전에 딸들과 [유열의 음악앨범]이란 영화를 봤는데,
딸들이 유열이 누구야 하길래, 뭐라 설명할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냥
˝예전에 유명했던 가수, 라디오 디제이 오래한 사람˝ 이라고만 답했네요.

감은빛 2021-03-02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syo 님 서재에 오면 읽고 싶은 책이 자꾸 생겨서 큰 일이네요.
물론 다른 분들 서재도 대부분 마찬가지지만,
여기는 하나의 글에 책들이 많기도 하고,
syo 님 독서 취향이 제 취향을 포괄하면서 훨씬 넓기도 해서 그런 것 같아요.

오늘도 보관함과 장바구니에 책을 담아갑니다. ㅠㅠ

syo 2021-03-03 11:59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알라딘에는 정말 책뽐뿌 달인들이 많죠?
막 추천하고 그럴 생각으로 글을 쓰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syo가 그 말단에 이름을 올렸다니, 뿌듯합니다!
어떤 책인지 모르겠지만, 독서는 읽는 사람의 역량이 중요한 활동이니까, 감은빛님께서 읽으시면 뭐라도 저보다는 더 좋은 독서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폴리티컬이코노믹스

 

 

 

1

 

백수에게 연휴란 휴일이 아니라 노동의 중첩이었다. 은 명절 연휴를 맞아 대구가 아닌 성남행을 택했고, 덕분에 syo는 혼자 있을 때보다 두 배 이상의 요리와 두 배의 설거지와 세 배의 빨래와(얜 왜 이럴까) 일곱 배 정도의 인간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했다. 아오, 저 가부장가장 새끼. 심지어 두부는 나중에 니 혼자 먹어라-라고 당당하게 선언하는 바람에, 신에게는 아직 3kg의 두부가 남아 있사옵니다…….

 

사람 난 자리는 몰라도 든 자리는 안다더니. 진짜 자립해야 돼. 내가 돈만 있었으면 저런 화상이랑 같이 안 살 것을. 우리 관계는 입장 바꿔서 내가 돈을 벌고 얘가 살림을 해도 내가 빡치는 불평등 구조다. 아주 가끔 생색이라도 내듯 설거지를 하긴 하는데 세척이 끝난 프라이팬을 검지 손가락으로 주욱 밀어보면 십중팔구 손끝에 기름이 맺힌다. 세탁이 끝나는 소리가 들렸을 테고, 내가 허공에 수건을 탁탁 터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리가 없을 텐데, 방안의 그는 기척이 없다. 결국 나 혼자 두 명분의 옷과 수건과 속옷을 다 널고 이제 남은 양말들(나는 백수라 나갈 일이 없어서 양말 빨래는 100% 그의 것이다)을 얹으려는 찰나, 방문을 스윽 열고 나오더니 양말 두어 개 건조대에 띡 걸쳐 놓는다. 정말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그러고는 괜히 널려 있는 수건의 균형을 맞추는 척, 팬티들의 각을 잡는 척 건조대 근처에서 십몇초를 머물더니 나와 슬쩍 눈을 마주치고는 책상에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노동량은 최소화, 양심에 밥 주기는 최대화하는 그의 호모 이코노미쿠스적 마인드는 정말 존경스러울 지경이다. 뿐이랴. 물건 쓰면 제 자리 두는 법이 없다. 벨트를 풀어 아무 데나 던져놓고, 드라이를 하고 드라이어를 아무 데나 던져놓는데, 그 두 아무 데나가 또 기가 막히게 겹치는 바람에 벨트가 완벽한 위장술을 발휘해 드라이어 선 속에 숨었다. 그걸 끝내 못 찾고 자는 나를 깨워 내 벨트를 빌려서 차고 출근한다. 치우고 정리하는 사람은 늘 따로 있는 법이다. 지가 무슨 엔트로피의 화신인 줄 아나보다. 같이 회사 다니던 시절, syo10시까지 야근하고 11시에 집에 돌아와 보면 테이블 위에 라면 먹은 흔적들 그대로 올려놔서 온 집에 라면 냄새가 진동을 한다. 보면 방에 드러누워 핸드폰 게임을 하거나 자고 있다. 겁나 지치고 짜증 난 목소리로 야- 한 음절 내뱉으면, 주인마님 드실 수정과에 침 뱉다가 걸린 삼쇠 같은 얼굴을 하고서는 아, 치운다는 게 그만 깜빡 졸았네- 운운하며 느릿느릿 고무장갑을 낀다. 누운 건 존 게 아니지, 적극적으로 잔 거지. 퇴근하고 7시에 라면 먹었는데 11시가 깜빡은 아니지, 질 좋은 수면이지. 그리고 삼쇠 놈이 씻은 그릇과 냄비는 어차피 내가 쓰기 전에 다시 설거지를 하게 될 것이다…….

 

연휴가 끝나면 이혼이 급증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실제로 통계가 뒷받침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통계도 필요 없게 되었다. 바로 여기, 내가 온몸으로 그 주장을 뒷받친다…….

 


 

  공갈협박범 딜레마의 결론을 정리하면 이렇다.

  1. 비합리적인 상대에 맞서 합리적으로 싸우는 것은 종종 비합리적이다.

  2. 비합리적인 상대에 맞서 비합리적으로 싸우는 것은 종종 합리적이다.

  3. 이 게임(그리고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비슷한 상황들)을 숙고해보면, 게임에 임하는 합리적 방법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말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심지어 '합리적'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4. 입장을 바꿔 생각하며 상대의 행동을 예측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노력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당신과 상대는 결국 다른 사람이다. 상대가 어떤 것에 반응하고 왜 반응하는지 알기는 어렵다. 주어진 상황에서 남들은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_ 하임 샤피라, n분의 1의 함정

 

타인과 함께 사는 일은 서로의 생활 습관, 집이라는 장소에 대한 인식과 시선의 차이를 알아차리면서 화들짝 놀라는 일이 아닐까. 놀란 뒤 필요한 건 서로에게 맞춰 가려는 의지와 노력이다. 병아리의 말처럼, 함께 살기 위해서는 서로를 정! ! 사랑해야 한다. 사랑이 추상적인 감정이 아니라 노동이라면, 정말 사랑한다는 말은 정말 열심히 노동하겠다는 의지와 같은 말이다.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감정노동, 가사노동, 돌봄노동 등의 다양한 노동을 어느 한쪽만 감수해선 안 된다. 사랑한다는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노동이 서로를 살아 있게 하니까. 제발 함께 사랑(노동)해 주세요.

_ 홍승은,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2

 

syo는 많이 읽는 편이다. 권 수에 집착하는 건 아니지만- 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 사람은 많이 읽건 적게 읽건 이미 독서의 양에 집착 중인 것이다. 집착하지 않는 사람에게 그 주제는 언급 거리 자체가 되지 않는다. syo는 그냥 읽는데, 어떤 날은 많이 읽는데도 더 많이 읽고 싶고, 어떤 날은 면적을 줄이고 줄여서 점처럼 뾰족한 독서를 하고 싶기도 하다. 그런 걸로 보면 어떤 날은 권 수에 집착을 하는 것 같으면서도 또 어떤 날은 그러지 않는 것도 같다. 집착은 있는 것 같은데 집착 자체에 대한 집착은 없는 듯. 그럼 뭐, 건강한 축이다.

 

syo는 부지런히 쉬운 책을 읽는다. 원전을 사 놓고도 개론서를 읽고, 가끔 쓰레기를 만나는 위험을 무릅쓰고서 에세이를 장복 중이며, 뭘 다뤘건 만화라면 일단 펼쳐는 본다. 깊이 있는 책은 깊겠지만 행복은 깊은 곳에만 있는 것은 아니어서, , 지금 너무 좋다, 그냥 좋다, 행복하다, 하는 순간적인 감정 상태를 자주 만나는 것이 삶의 목표인 사람은 깊이 있는 책을 읽지 않아도 좋다. 물론 읽어도 좋겠지만.

 

읽으면서 내가 읽는 방식과 목적에 대해 자꾸만 생각하는 일은 좋다. 그건 무조건 이득이다. 심지어 읽는 시간을 좀 깎아서 생각하는 데 쓰더라도 너끈히 남는 장사다. 이게 무슨 말인지, syo가 뭐 어떤 감정을 말하려 하는지, 그리고 그걸 굳이 말로 하려다 보니 그 표현이 얼마나 서투르고 또 부정확한지, 읽는 사람들은 다 알 거다. 그게 재밌다. 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는데 그걸 잘 표현을 못하네, 혹은 쟤가 표현은 잘 못하는데 그게 어떤 말인지는 알겠네. 세상에는 표현을 잘 못해내기 때문에 그 못함까지 포함하여 그 못함을 유발하는 뭔가를 기가 막히게 알아채게 만드는 경험들이 있다. 아는 사람들끼리 넌지시 주고받는 마음. 말로 하는 데 만져지는 것 같은 것. 카오스의 시그널.

 


 

모두가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매일 수없이 쏟아지는 정보와 이미지에 지쳐 이제는 자신만의 알맹이를 돌보고 싶을 때가 많을 것입니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영상 콘텐츠 시장은 이제 그 기술의 정점과 함께 종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생각지도 못한 더 큰 기술력을 자랑하는 매체가 우리를 한순간에 장악해 버릴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자기 자시노가 서로의 삶을 바라보는 진실한 이야기에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마음의 근육을 단련시켜주는 글을 읽고, 서로간 격려의 말을 주고 받고, 이를 곰곰이 되새기며 명상이나 수행을 하려는 움직임도 많아지고 있는 요즘입니다. 화면 속 이야기들도 모두를 구해내는 수퍼히어로가 아닌 우리의 시선이 미처 닿지 않는 곳에서 피어나는 작고 아름다운 이야기에 더욱 집중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기술의 발달로 이제는 누구나 그럴싸한 사진과 영상을 제법 잘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이 모든 것들을 만들어내는 동력은 결국 진심과 진실이라 생각합니다. 따뜻한 온기를 가진 사람의 어여뿐 마음 같은 것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수많은 서사를 진실하게 담고 있는 책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_ ()(월간지)편집부, Chaeg 2021. 1. 2

 

세상을 바라보는 위치와 방향과 방식을 자각하고 반성해야 한다. 다시 말해 세상을 알 수 있게 해주면서 동시에 우리 눈을 가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에서부터 더 넓고 깊은 인식이 시작된다.

_ 한형식, 마르크스 철학 연습

 

 

 

3


 

여자들이 남자들과 다른 방식으로 공적 질서 안으로 들여지는 것과, 공적 질서로부터 여자들이 배제되는 것, 이 두 가지 상황은 모순적이지 않고 동시에 일어날 수 있다. 이 두 가지 중 하나만 존재했다면 이것들은 지금만큼 강력하진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첫 번째 명제를 주장할 때, 저쪽은 두 번째 명제를 내세우며 부인할 수 있고, 우리가 두 번째 명제를 주장하면 저들은 반대로 첫 번째 명제를 들먹이며 부정할 수 있다. 우리가 두 가지 말을 하면 그들은 비논리적이라는 비논리적인 말로 도피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까 언뜻 보면 공존이 불가능해 보이는 저 두 명제가 실제로 공존하면서 서로의 존재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위협으로부터 서로의 존재를 지탱하는 것이다. 마치 적대하는 두 나라의 군부 세력들이 군비축소를 외치는 자국 시민들로부터 자신의 덩치를 지키기 위해 서로를 이용하듯.

 

 

 

--- 읽은 ---



45. 서른과 마흔 사이

오구라 히로시 지음 / 박혜령 옮김 / 위너스북 / 2020

 

스탠퍼드 설립에 관한 일화는 근거 없는 낭설로 밝혀진 지 오래지만, 책 쓰다가 구글에 한 번 때려 넣어보지도 못할만큼 이런저런 업무로 많이 바쁘셨나 보다. 출간 당시 55세였던 저자가 그때까지도 바빴다는 건 좋은 시그널이다. 저자가 시키는 대로 30대를 보내고 나면 나도 55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수 있겠구나. 심지어 이런 낭설(들어만 봐도 딱 이상하다)의 진위 같은 거 확인해보지 않고 인용하는 세심하지 못한 일처리 감각을 지녔음에도 저리 바쁠 수 있다니, 작은 단점 같은 건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훌륭한 지혜가 듬뿍 담긴 책이겠구나 하는 믿음이 생긴다.

 

인생의 진검승부는 30대에 펼쳐진다. 20대에는 제아무리 빨라봤자, 또래보다 3~4년 정도 앞설 뿐이다. 하지만 30대에 들어서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30대의 10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남은 인생의 모두가 결정된다. 30대에도 여전히 20대의 혈기와 낭만적 생각, 구체화되지 않은 막연한 비전과 꿈을 고집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져 다시는 특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다.

_ 오구라 히로시, 서른과 마흔 사이

 

그러나 30대가 다 저물어 가는 마당에 보면 이 문단은 뭔가 저주에 가깝다?

 

 

 


46. 차이나는 클라스 : 국제정치 편

JTBC <차이나는 클라스> 제작진 지음 / 중앙books / 2020

 

딱히 감상이라고 할 만한 게 생기지는 않는 독서였다. 책이 좋지 않아서 그렇다기보다 형식이 강연 형식이라는 것, 국제정치와 관련한 지식 전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 뭐 그런 것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 각자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교양의 바운더리는 조금씩 다를 것이다. 국제정치에 관한 지식이 그 안에서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분들에게는 이 책이 어떤 의미일까. syo의 교양나라는 국제정치보다는 양자역학에 노른자를 내주는 약간 변태 같은 곳이라서, 그냥 흐음- 흐음- 하는 독서로 마무리 되었다.

 

  저는 도덕적이라고 간주되던 세대의 정치적실패가 우리 사회에 냉소주의­무력감­패배주의를 팽배시킬까 두렵습니다. 86세대의 마지막 시대적 과제는 다음 세대에게 지옥(헬조선)을 물려주지 않는 것, 다음 세대에게 성숙한 민주주의를 실현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 그렇게 기품 있게 자신의 자리를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86세대 등 기성세대는 68혁명의 부재가 자신을 어떻게 기형화했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청년세대는 보다 적극적으로 정치적 변화에 동참하고, 스스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인류 역사는 해방의 역사였고, 모든 해방은 자기 해방이었습니다. 흑인을 해방시킨 것은 흑인이며, 여성을 해방시킨 것은 여성이었고, 학생을 해방시킨 것은 학생이었습니다. 누구도 대신 해방시켜줄 수는 없습니다.

_ JTBC <차이나는 클라스> 제작진, 차이나는 클라스 : 국제정치 편

 

 

 


47. 징구

이디스 워튼 지음 / 이리나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19

 

역자 후기에 따르면 이디스 워튼은 생전에 친구인 헨리 제임스 짭 소리를 자주 들었다고 한다. 제임스 녀석도 친구가 됐으면 아니라고 해줄 법도 한데, 그런 분위기에 은근슬쩍 동조했다는 듯. 그런 정보를 모르고 읽었는데 진짜 헨리 제임스의 느낌이 있었다. 그러니까 인물의 감정과 생각이 변화하는 한 계단 한 계단의 높이가 낮아서 어떨 때는 마치 언덕처럼 느껴지는 부드러운 흐름 같은 것. 흉내낸다고 될 게 아닌 이런 능력이 닮은 걸 놓고 아류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냥 헨리 제임스가 가지고 있었던 재능을 이디스 워튼도 갖고 있었던 것 아닐까. 오히려 발랄한 데가 있는 이디스 워튼 쪽이 나는 더 좋았다.

 

  “처음엔 다 그렇게 좀 아픈 법이지.”
  “아빠!”

  아버지가 걸음을 멈추자 예상치도 못했던 표정이 담뱃불 빛에 드러났다.

  “나도 다 겪은 일이거든.”

  “? 아빠가요?”

  “내가 말 안 했던가? 아빠도 한때 소설을 썼었어. 대학을 막 졸업했을 땐데, 의사 되기가 그렇게 싫더라. 그래, 난 천재가 되고 싶었어. 그래서 소설을 썼지.”

  의사가 말을 멈추자 테오도라는 연민의 정을 담아 조용히 아버지를 붙잡았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미쳐 날뛰는 파도 속에서 구원의 손기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빠, 아빠!”

  “일 년 걸렸어. 일 년 내내 정말 힘들여 글을 썼지. 다 썼는데 아무데서도 출판을 안 해주더구나. 그때 집으로 돌아오던 걸음이 생각나서 널 마중 나왔지.”

_ 이디스 워튼, 에이프릴 샤워

 

 

 


48. 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이주윤 지음 / 한빛비즈 / 2019

 

숨만 쉬어도 고통받는 이 땅의 천만(?) 비혼/미혼인들이여,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 최대의 잔소리/헛소리/개소리/뻘소리/쉰소리 폭격이 있었을 것인데 어떻게 다들, 무고하신지요. 저는 괜찮습니다. 쏘쏘. 어떻게든 살아냈습니다. 이제 추석까지는 한 세월이 남았으니, 우리는 충분히 먹고 넘치도록 마시면서 최선을 다해 행복의 적립금을 쌓아야 합니다. 그때까지 수많은 다른 미혼/비혼인들의 말을 듣고 글을 읽으며 혹시나 발생할지도 모를 불안을, 그러니까, 내가 좀 이상한 게 아닐까, 남들 다 사는대로 못/안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만 이 모양 이 꼴인 것은 아닐까, 따위의 어두운 생각들을 씻어냅시다. 모양도 꼴도 우리는 모두 어슷비슷합니다. 이렇게도 다들 하루하루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또 누구는 상대적으로 좀 더 진지하고, 누구는 또 좀 더 웃기고 그럽니다. 그러는 와중에 진지하던 사람이 좀 웃긴 일을 벌이기도 하고, 웃기던 사람이 좀 진지해지기도 하면서 그렇게 삽니다. 나는 문제 없다고 파워당당하다가도, 어쩐지 세상 행복한 저것들을 보면 괜히 얄미워 끝없이 시니컬해지다가도, 또 어떤 날에는 내가 지닌 넓고 시원한 자유의 촉감과 면적에 소스라치게 행복해하기도 하면서. 우리가 다들 그렇게 유사합니다.

 

  전 부치러 고향에 내려간다. 지하철을 타고서 경기도 평택시로 내려간다. 가양역에서 9호선을 타고 노량진까지 가서, 노량진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고 평택역에 내린다. 노량진역 에스컬레이터, 내 앞에 선 남자와 여자가 손을 꼭 잡고 있다. 남자는 회색 코트를, 여자는 분홍색 코트를 입었다. 남자는 못생겼고, 여자는 그저 그렇다. 명절 연휴 첫날에 에스컬레이터에서 손을 잡고 있다니. 지난달에 결혼한 모양이지. 아니나다를까 여자의 손가락에서 다이아 반지가 빛나고 있다. 여자여, 너는 시댁에 가는가. 시댁에 도착하면 너희는 붙잡은 그 손을 놓게 되겠지.

  "이제 왔니? 좀 빨리 오지 않구선."

  너는 시어머니의 빈정거림에 서둘러 분홍 코트를 벗고 앞치마를 두를 것이다. 그러고는 거치적거리는 반지를 빼내어 주머니에 넣겠지. 너의 다이아 반지는 컴컴한 주머니 속에서 빛을 잃는다. 너의 손을 절대로 놓지 않을 것 같던 남자는 이제 너의 손이 아닌 리모컨을 잡고서 네가 아닌 텔레비전을 본다. 여자여, 너 전 부치러 시댁에 가는가.

_ 이주윤, 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49. 퀀텀

로랑 셰페르 지음 / 이정은 옮김 / 과포화된 과학드립 물리학 연구회 감수 / 한빛비즈 / 2020

 

양자역학이라는 것을 대중에게 이해시키기 위한 시도는 양적으로 부족하지 않은 것 같다. 그 어떤 철학자의 개론서보다, 양자역학을 개론하는 책이 이제 더 많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 읽으면 된다. 당연히 한 권 한 번 읽어서는 모르겠고, 될 때까지 그냥 읽고 까먹고 읽고 까먹고 하다가 어 됐네, 하면 되는 것. 그 많고 많은 책 중에 그래도 빼도 될 책을 골라본다면, 아마 이 책은 절대 거기 끼지는 않을 것 같다.


감수자 네이밍 센스 지렸다.

 

우리 지구인은 삶을 평면으로만 인식합니다. 참 이상한 습성이죠. 지평선을 보며 미래를 읽으려 하고, 또 미래를 살피며 스테이크가 완벽하게 익었는지 알아내려 하죠. 머리 위에 있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린 위를 가끔 흘끗 쳐다볼 뿐이죠. 몇몇 천진한 사람들은 용감하게도 지구의 안정적인 유한성 너머를 의구심 어린 눈으로 바라봅니다. 하지만 대부분 이런 실존적인 아찔함에 부딪치기를 꺼리죠. 그래서 자신들의 평면적 문제로 돌아갑니다. 구름, , 태양. 이 정도가 우리의 수직적인 시야와 하늘, 그 너머의 방대함을 떠올릴 때 생각나는 전부죠. 우리는 소우주에 틀어박혀 무한히 큰 것과 무한히 작은 것 사이에서 살아갑니다. 카망베르 치즈가 투명한 덮개 속에서 숙성하는 것처럼요.

_ 로랑 셰페르, 퀀텀

 

 

 


50. 자본주의

홍기빈 지음 / 책세상 / 2010

 

자본주의 세상에서 자본자본 사는 우리는 다른 어떤 생명체보다 자본주의에 대해 상세하게 알고 있을 것만 같지만 막상, 그래서 자본주의가 대체 뭔데? 하는 질문을 들으면 그, 그거슨- 하면서 꿀도 안 먹었는데 말을 먹게 된다. 그러면서도 대부분의 우리는 하루 중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것보다 자본주의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빈도가 더 크고, 자본주의가 다 그런거지- 하는 말을 체념과 달관과 풍자가 섞인 현자의 말로 받아들이는데 암묵적 합의가 되어 있는 것도 같다. 자본주의, 대체 그게 뭐길래?

 

이 책에 따르면, 놀랍게도 자본주의란 딱히 한 번도 제대로 정의된 적이 없는 개념이다. 정확히 말하면 수많은 사람이 정의하였지만 그 정의에 포함되지 않는 것들이 늘 있어왔고, 그 포함관계를 둘러싼 싸움이 당연히 정치적인 동시에 경제적이기도 해서, 정의 대상이 정의하는 사람들의 역량을 아득히 뛰어넘는 바람에, 결국 모두가 아는 듯 모두가 모르는 희한한 단어가 된 듯하다. 나는 그런 단어란 오직 사랑뿐이라고 생각했는데, , 역시 자본주의. 사랑보다 더 많이 입에 오르는 자본주의.

 

스피노자의 말처럼 어떤 것을 정의한다는 것은 그것이 아닌 것도 함께 밝히는 것이다. 이 모든 현실 자본주의체제들을 순수한 시장 경제가 아니라는 이유로 자본주의 범주에서 배제하려 든다면, 자본주의는 일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진정한 사회주의처럼 역사에서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반대로 그렇다고 해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 자본주의라는 명칭으로 부르다가는 자칫하면 파시즘 경제, 소련 경제, 최근의 중국 경제까지 모두 다 자본주의라는 이름을 달게 될 위험이 있다. ‘자연적 자유의 체제로 자본주의를 정의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우파 혁명의 불을 댕길 이상과 당위로서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현실의 경제 체제에 대한 규정으로서는 최소한 앞에서 본 것과 같은 수많은 논쟁에 휘말려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_ 홍기빈, 자본주의

 

 

 

--- 읽는 ---

잊혀진 여성들 / 백지연 외

돈의 속성 / 김승호

김상욱의 과학공부 / 김상욱

혐오의 시대, 철학의 응답 / 유민석

한 번 보고 바로 써먹는 경제용어 460 / 신성출판사 편집부

비전공자를 위한 이해할 수 있는 IT 지식 / 정지훈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 테리 이글턴

스피노자의 동물 우화 / 아리엘 수아미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 / 오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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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1-02-15 10: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원칙대로라면 제가 쇼님이 되어 삼씨를 미워해야 하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런데도 삼씨가 그렇게 막 밉지는 않고요. 그건 다 쇼님의 문장력과 삼씨에 대한 따뜻한 마음 때문이리니..... 두 분 오래오래 행복하세요!!!

syo 2021-02-15 11:07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여러분들이 이렇게 옹호해준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삼이는 한껏 당당하게 저러고 사는 중입니다.. 제가 이야기를 했거든요. 아무리 내가 너를 못나게 써도 사람들은 너를 좋아하더라고...

미미 2021-02-15 1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밤에 저의 ‘그‘에 관해 글을 써두었는데 언제 풀어야할지 고민하던차에 이 글을 읽으니 부담감이 좀 사그라드네요ㅋㅋㅋㅋ syo님 얄짤없으실것 같은데 의외로 봐주시는 거 같아 놀랍고 그런 와중에도 깜빡졸았다는 핑계에 대한 분석이 너무 재밌어요! 책을 빨리 내주시길 바래봅니다.👍

syo 2021-02-15 11:08   좋아요 2 | URL
관대한 것은 왜냐하면 생계비를 오직 저새끼가 대기 때문에 ㅋㅋㅋㅋㅋㅋ 참는 거라기보다 인내당하는 중이랄까요...

행복한책읽기 2021-02-15 1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syo 글은 언제나 맛있음. 체하지 않으려 천천히 먹는 중 ^^

syo 2021-02-15 16:36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제 일상의 소소한 고뇌가 그나마 조금의 즐거움이라도 된다니 그것참 다행이지요ㅋㅋㅋ 그마저 아니었으면 삼이 저거 벌써 이 세상 사람 아니었을텐데...

blanca 2021-02-15 1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삼은 ㅋㅋㅋ 우리집에도 한 명 있어요. ㅋㅋㅋㅋ 저 책 마흔과 쉰 사이는 없나요? 아, 그리고 나는 syo님이 서른 언저리인 줄...글 속 에너지가 왠지 그래서요...

syo 2021-02-15 16:38   좋아요 1 | URL
1가정 1삼 이론.... ㅋㅋㅋㅋㅋ
평생 이 모양으로 좀 철없이 살 모양이에요 ㅎ 저 자신은 좀 즐기는 중입니다...ㅎㅎ

stella.K 2021-02-15 1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제 대구 내려간다고 하지 않았나요?
다시 올라 온 건가요? 제가 요즘 스요님의 근황에 대해 너무 띄엄띄엄 아는가 봅니다.ㅠ
3.1절도 다가오는데 하루라도 빨리 스요님의 독립을 지지합니다.
스요님은 깔끔하시고, 삼님은 너무 드러분.ㅎㅎㅎ
아, 어쩐담...ㅠㅠ

syo 2021-02-15 16:41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드러운 놈이랑 같이 사는 깨끗한 놈의 스트레스도 무시할 만한 건 아니더라구요 ㅋㅋ

대구는 잠깐 다녀온 거구요 ㅎ
syo의 근황 같은 거 띄엄띄엄이라도 아시는 것 자체가 놀랍습니다 ㅋ 그게 뭐라구요...

반유행열반인 2021-02-15 17: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밉다밉다 하면 더 스트레스니까 사이좋게 지내요 ㅎㅎㅎ사랑하며 지내란 소린 차마 못함....오우삼님이어...

syo 2021-03-01 11:18   좋아요 1 | URL
무려 보를만에 돌아왔습니다!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나서 댓글만 읽고는 제가 무슨 말을 해놨는지 기억도 못할 지경이네요.....

감은빛 2021-02-21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른과 마흔 사이]를 쓴 저자가 55세에 책을 출간했단 말이죠.
근데 왜 서른과 마흔 사이를 논했죠?
마흔과 쉰 사이가 아니고 말이죠.

그나저나 백수가 되셨는데 저는 전혀 모르고 있었군요. 언제?

누군가와 함께 사는 일(결혼을 포함해서)은 정말 힘들고 피곤한 일이죠.
더구나 남성으로서 같은 남성과의 동거라면
(물론 당연히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그럼에도)
거의 대다수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아주 오래전에 선배랑 1년, 후배랑 1년.
이렇게 약 2년을 같이 살아봤는데, 진짜 피곤한 일이었어요.
게다가 저랑 함께 살았던 후배 녀석은 syo님의 동거인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게으름과 귀차니즘과 더러움을 장착했기에 삶이 고통이었죠.
당시 우리집엔 세탁기가 없어서 모든 빨래를 손빨래로 해야 했어요.
그 시절엔 지금처럼 코인 빨래방이 생기기도 전이라 달리 방법이 없었죠.
근데 그 녀석은 그냥 빨래를 쌓아놓고 안 하더라구요.
속옷과 양말은 한 번 입고 던져 놓았다가 일주일쯤 후에 귀찮다고 그냥 버리고
내 속옷과 양말을 빌려 달라고 난리치고,
겉옷은 던져놓았다가 입을 옷이 없으면 냄새 맡아보고 그냥 다시 입더라구요.
근데 나중에 한 여름에는 냄새 때문에 빨래 쌓아놓지 말라고 잔소리를 했더니,
담배 냄새로 빨래 썪어가는 냄새를 지우기 위해 무슨 짓을 했는지 아세요?
1.5리터 콜라 페트병 2/3를 자른 높이까지 담배꽁초와 시커먼 액체가 가득찬 재떨이를
벗어서 던져놓은 옷들 앞에 갖다 놓았어요.

한 번은 제가 집에 다녀온다고 1주일 동안 자취방을 비웠다가 돌아왔는데,
세상에 현관 문 앞에서부터 방까지 딱 한 사람 지나갈 자리를 통로로 남겨두고,
나머지 공간을 죄다 쓰레기로 채워놓았더라구요.
태어나서 그런 장면을 처음 보았기에 그 충격이 너무나도 컸어요.

그런 인간하고 1년을 같이 살았다니, 지금 생각해도 내 자신이 대단하게 느껴지네요. ㅎㅎ

얄라알라북사랑 2021-02-22 03:02   좋아요 0 | URL
감은빛 님도 [서른과 마흔 사이]를 콕 집어 이야기하셨네요?^^ 저도 syo님 리뷰들 읽으며 45번에서 동공지진이 가장 크게^^;;;이유는 굳이 말 안 할까봐요

그나저나 일종의 저장강박 성향의 친구분과 지내셨군요...참 많이 인내하셨겠어요. 휴.

syo 2021-03-01 11:22   좋아요 1 | URL
댓글이 늦었습니다. 죄송해요.
잠적하고 공부하느라.....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양태란 정말 놀랄 정도로 다양하죠?
전 가끔 쟤는 나보다는 금수에 더 가깝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저쪽에서도 저를 비슷하게 보겠지만.....

사람은 역시 같이 살아봐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아님 그런 거 모르고 평생 좋은 꼴만 보고 살다가 가는 것도 좋겠구요....

어쨌든 이번 동거가 끝나면 왠만하면 혼자 살아보자는 생각입니다 ㅎㅎㅎ

 

 

 

그믐

 

 

 

1

 

가만히대신에 가만가만이라고 쓰면서 차근차근 가만가만해지는 내가 나는 좋아서, 주로 밤에 글을 씁니다. 갈팡질팡하는 말끝의 긴 꼬리를 잡고 단번에 갈 수 있는 의미까지 휘휘 에둘러 도착하는 일이 나는 기껍고 때로 설레기도 합니다. 나는 나를 알 수 없어서 미칠 것만 같던 밤들을 건너는 방법으로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가는 말의 쪽배를 집어타 보기로 한 겁니다. 단어는 종종 식은 촛농처럼 내 밖의 어둠이나 내 안의 어둠이 다녀간 흔적이 됩니다. 그 긴긴 몸피에 촛농을 떨어뜨리면 따갑다는 듯 간지럽다는 듯 괴롭다는 듯 황홀하다는 듯 몸부림치는 문장을 의뭉스러운 눈을 하고 지켜보는 일이 나는 좋습니다. 이렇게 문장과 나는 서로를 괴롭힘으로써 서로를 위로하고 서로의 딱지를 떼어내면서 서로를 애무합니다. 말해지는 것들이 있어야 말해지지 않는 것들이 보이겠으므로 말하고, 말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어야 말해지는 것들이 선명하겠으므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 일에 관해서는 우리 둘의 생각이 같습니다. 잘 없는 일입니다. 잘 없는 일이 일어나는 밤입니다. 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건 늘 밤입니다. 내가 사랑한다는 말을 쓰는 대신에 사랑한다는 말을 쓰지 않는 것으로 어떤 잘 없는 일이 일어나는 밤이 당신의 방 창문을 톡톡 두드렸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지나가는 비라고 여겨도 좋겠습니다. 자꾸만 지나가겠습니다. 가만히, 아니, 가만가만 그 소리를 들어주세요. 내가 던진 말의 긴 꼬리가 서울을 크게 에둘러 당신의 몸피에 도착하는 밤이 기껍고 설렐 수 있도록, 따가움과 간지러움과 괴로움과 황홀함을 조금 준비하였으니 부디 집어타고 좋은 꿈 가득한 좋은 연휴 보내시길.

 

 



누구나 흉중에 언덕과 골짜기와 연못의 심상이 있을 겁니다만 그동안 고심이 깊어 나한테 그 어떤 선물 한번 하지 않고 살았어요 당신의 숨소리를 받아 내 호흡으로 삼을 수 있다면 세상의 풍문에 귀를 닫고 실로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게 찰랑거릴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을 연못의 감정이라고 부를까 해요

_ 안도현, 연못을 들이다부분

 

  모든 연인들이 그렇듯이, 두 사람은 자신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마치 그런 대화를 통해 자신들의 존재를 가능하게 해준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정말이지 내가 옛날에 당신을 얼마나 갈망했는지 알아요?" 캐서린이 말했다. "수업시간에 앞에 서 있는 당신 모습은 아주 크고 사랑스럽고 서툴러 보였어요. 나는 당신에게서 뭔가 격렬한 것을 보고 싶다고 갈망했는데, 당신은 전혀 몰랐죠?"

  "몰랐소." 윌리엄이 말했다. "나는 당신이 아주 정숙한 숙녀라고 생각했거든."

  그녀는 즐거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요, 정숙하고 말고요!" 그녀는 조금 차분해져서 과거를 돌아보는 듯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나도 나 자신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정숙함을 던져버릴 이유가 없을 때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얼마나 정숙해 보이는지!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기 위해서는 사랑에 빠져보아야 해요. 당신과 함께 있을 때 나는 가끔 내가 세계 최고의 헤픈 여자가 된 것 같아요. 헤프지만 열정적이고 신실한 여자. 그 정도면 정숙해 보이나요?"

  "아니." 윌리엄은 빙긋 웃으며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이리 와요.“

_ 존 윌리엄스, 스토너

 

 

 

2

 


텍스트에서 말하는 것만큼이나 말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텍스트가 말하지 않는 이유는 그저 그 주제에 관심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주제가 말할 필요가 없는 당연한 것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후자가 훨씬 위험하다. 학자의 구력과 학문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더욱 위험하다. 모든 논리는 그 가장 기저에 전혀 의심받지 않는 명제를 정초하고 그 위로 다른 명제들을 차근차근 쌓아나가는 방식으로 축조되기 때문이다. 건물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건물주는 자신의 기반이 되는 명제가 공격받는 일에 점차적으로 더 큰 부정적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100층을 쌓아올린 탑을 다시 처음부터, 혹은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지어 올리라는 요청은 누군가에게는 생의 부정과 필적한 크기의 공격일 수 있다. 말하지 말아야 할 절실한 이유도 없이 말해지지 않은 것들을 발굴하고, 적극적으로 말하지 않기 위해 박아놓은 말뚝을 뽑겠다고 밝히면서, 책은 시작한다.

 

 

 

--- 읽은 ---


42. 분자 사용 설명서

김지환 지음 / 재단법인 카오스 기획 / 반니 / 2018

 

과학책은 참 잘 모르겠다. 과학에 대한 지식을 쌓으려고 읽는 건데 쌓여 있는 지식이 없으니 읽기 어려운 건 물론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유독 과학에서 더 그렇다. 나는 아직도 과학책을 읽을 때 주입식 교육과 성적을 받기 위한 암기 위주의 학습이 이루어지던 시절 억지로 만들어 놓은 지식들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시간이 지나도 그것들은 남고 새로 읽은 과학책들은 어지간히 좋은 책들이어도 결국 다 사라진다. 뭔가 독하게 덤벼들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쉬운지 어려운지 말하기는 어려운데, 쉽게 설명하려 노력하고 있음을 말하기는 쉽다.

 

  계가 복잡할수록 그 계를 설명하는 일반적인 해가 존재하지 않고 대부분 구체적인 경우를 각각 생각해야 합니다. 화학과 생물이 다루는 세계는 물리가 다루는 세계에 비해 복잡하고 따라서 단순화한 몇 가지 법칙과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에는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하고 명료한 아름다움이 없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다거나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없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_ 김지환, 분자 사용 설명서

 

 

 


43. 루소와의 1시간

이명곤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9

 

루소는 너무 예전에 읽어서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 거대한 명망에 비해서 책 자체는 무릎을 탁 칠만큼 좋은 데가 없었던 것 같다. syo의 소양의 문제이거나 번역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추후 다른 책을 통해 그의 인생사 역정 스토리를 주욱 읽으면서 루소는 더 마음에 안 드는 인간이 되었다. 그냥 힙한 찌질이 같았다. 그 와중에 글은 잘 쓰는.

 

루소가 동일한 사실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공존하고 있었던 것에 분노를 느낀 것은 바로 절대적 상대주의아래 그 근거가 되고 있는 윤리적 이기주의때문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성찰이 없이 교육에 대해서, 도덕에 대해서 그리고 정치에 대해서 다양한 이론들이 난립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주제들에 대한 이론이 아무리 탁월하다고 해도 그 밑바탕이 되는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해 무지하다면, 이 이론들은 한갓 사상누각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_ 이명곤, 루소와의 1시간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해 무지한 철학자가 짜장면이라면, 루소는 삼선간짜장곱빼기라고 해도 좋겠다. 심지어 저도 무지한 주제에 그 무지를 모를뿐더러(곱빼기), 타인의 무지까지 비웃고 있다(삼선).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외치지만, 그 자연상태에 대해서는 그냥 자기 머릿속으로 이럴 것이다 하고 추측해본 것에 불과하다. 그래놓고 또 데카르트를 깐다.

 

논리, 없다.

 

자연인다른 동물들과의 비교에서 루소가 내린 결론은 자연인은 다른 동물과 평등하다는 것이다. 인간이 동물에 비해 나약하다고 하는 것도, 반대로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우월하다고 하는 것도 사실상 이 둘 모두를 동시에 고려해 보면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으며,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이다. 자연 안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가 사실은 공평한 것처럼사자가 사슴보다 더 나은 조건을 가지고 있더거나, 참새가 올빼미보다 더 나쁜 조건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모두 인간의 주관적인 편견에 불과하다자연인으로서의 인간은 자연 안에서의 모든 생명체와 평등한 것이다. 이는 인간이 문명을 건설하기 이전의 원시 상태에서의 일종의 이상적인 생태공동체를 가정하게 한다.

_ 같은 책

 

1. 인간이 이런 부분은 강하지만 저런 부분이 약하니까 퉁-

: 이건 사실 논리도 뭣도 아니다. 그냥 자기 생각.

 

2.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으니 모두가 평등

: 누가 평등을 저렇게 정의하나. 평등은 강한 자도 약한 자도 없이 똑같은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게 아니라, 강한 자와 약한 자가 선명히 존재하는 곳에 필요하다. 평등의 옳고 그름, 얼마만큼 조절해야 진정한 평등인지에 대한 논의를 하자는 게 아니라, 평등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전제 조건 자체에 대한 인식이 틀렸다.

 

3. 모든 생명체가 사실은 공평하고 사자/사슴, 참새/올빼미의 조건 비교는 인간의 주관적인 편견에 불과하다.

: 모든 생명체가 사실은 공평하다면, 조건 비교는 당연히 인간의 주관적인 편견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데 모든 생명체가 사실 공평하다는 것이 루소라는 인간의 주관적 편견일 때, 이 이야기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4. 인간이 문명을 건설하기 이전의 원시 상태에서의 일종의 이상적인 생태공동체

: 평등에 관한 헛소리에 가까운 정의 덕분에 이런 희한한 결론이 나온다. 늑대가 인간의 목덜미에 이빨을 박을 권리와 인간이 늑대의 아가리에 횃불을 쑤셔 넣을 권리가 공평하게 존재한다고 해서, 그것이 이상적인 생태공동체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놀라울 정도다. 아니면, 루소의 책을 읽은 늑대가, 아 그렇구나, 우리는 이상적인 생태공동체니까 내가 인간 너희들에 목덜미를 물지 않을게, 너희도 내 입에 횃불을 집어넣지 않을 거지? 하며 가만히 옆에 서 있는단 말인가.

 

재미있는 건, 루소는 시종일관 여성을 남성과 다른 존재, 달라서 다른 일을 해야 하고, 남자가 하는 공적인 일에는 손을 대서는 안 되며, 남자와 다르게 끓어 넘치는 그 성적 욕망을 억제할 수 있도록 교육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인간과 사자와 사슴과 참새와 올빼미는 퉁치고 평등하고 공평하다고 주장하는 자의 행태치고는 놀랍다.

 

물론, 원전을 읽으면 이렇게까지 허술한 이야기를 해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책 속의 루소가 택도 없는 개소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은 읽던 당시에도 들지 않았으니까. 이제부터 다시 한 번 루소의 책들을 읽어보긴 할 텐데, 뭐랄까, 큰 기대는 없다. 솔직히 말해서, 루소는 죽은 것 같다. 1789년을 위해서 필요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날에는 뭐랄까, MS-DOS 같은 느낌이다. 없었으면 안 될 한 획이라는 건 알겠는데, 그 획의 끝자락이 이젠 여기서 너무 멀게 느껴진다.

 

 

 


44. 죽음의 선고

모리스 블랑쇼 지음 / 고재정 옮김 / 그린비 / 2011

 

잘 나가는 사람들이/만 인정해서 더 힙하게 느껴지는 작가나 책 같은 것들은 늘 있다. 범인들은 그 존재조차 잘 모르고, 그게 또 잘 나가는 사람들한테는 더 열심히 사랑할 이유가 되는. 나만 아는 맛집이 있는데 지금 네게 이 맛집에 대해 말하고는 있지만 실은 나는 네가 이 맛을 알기를 원하지 않고 그저 내가 이 맛을 안다는 사실만을 네가 알기를 원하는 그런 맛집이랄까. 워낙 맛집이라 한번 읽어보기 전에는 힙한 척 나대면 안 된다는 소문이 쫘악 퍼지기 전의 벤야민이 그랬듯, 모리스 블랑쇼가 그렇다. 그래서 막 선집이 나오기 시작했을 때, 알만한 사람들만 환장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syo는 블랑쇼를 까맣게 몰랐지만 다행히 블랑쇼 블랑쇼 거기 맛집인데- 외치는 철학자 몇 사람에 대한 개론서를 읽는 중이어서, 죽은 지 10년도 안되서 따끈따끈한(?) 이 프랑스 작가가 내 있어빌리티 구축을 위한 최선의 선택지가 될 수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래서 책이 나오자마자 사 놓았는데 그게 벌써 10년이다. 지금의 syo는 그때의 어리석은 syo가 아니라고 생각했건만 역시 어리석음이란 상대적인 것이라, 10년 전의 syo가 보기에 똑똑하다 못해 후광이 비칠 정도인 오늘의 syo는 블랑쇼가 보기에는 해파리냉채하고 구분이 잘 안 되는 동물일지도 모르겠다. 읽었는데, , 읽었는데. 그밖의 다른 말을 할 수가 없네.

 

그 이야기들을 하는 데 나는 극도의 어려움을 느낀다. 이미 여러 차례 그 사건들에 글의 형태를 부여하려고 시도를 해보았다. 내가 몇 권의 책을 쓴 것은 그 책들을 통해서 이 모두에 종지부를 찍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소설들을 썼지만 그 소설들은 말이 진실 앞에서 뒷걸음치기 시작하던 순간에 태어났다. 진실을 무서워하는 것은 아니다. 비밀을 누설할까 봐 두려운 것도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말은 내가 원했던 것보다 훨씬 취약했고, 훨씬 교활했다. 이 교활함이 일종의 경고임을 나는 안다. 진실을 조용히 내버려두는 편이 더 품위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진실은 드러나지 않는 편이 극도로 유용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나는 곧 끝을 내기를 원한다. 끝을 보는 것, 그 또한 품위 있고 중요한 일이다.

_ 모리스 블랑쇼, 죽음의 선고

 

 

--- 읽는 ---

여자들의 무질서 / 캐럴 페이트먼

물리 오디세이 / 이진오

글이 만든 세계 / 마틴 푸크너

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 이주윤

서른과 마흔 사이 / 오구라 히로시

n분의 1의 함정 / 하임 샤피라

마르크스의 특별한 눈 / 고병권

차이나는 클라스 : 국제정치 편 / JTBC <차이나는 클라스> 제작진

돈의 속성 / 김승호

에티카를 읽는다 / 스티븐 내들러

홉스 / 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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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2-10 21: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syo님! 즐겁고 행복 가득한 설명절되십시요!ㅎ 맛나고 영양높은것도 마니 드시고, 두부 억지로 드시지 마시구요!ㅎ

syo 2021-02-11 16:51   좋아요 2 | URL
막시무스님도 평화로운 고단백 명절 보내소서....

반유행열반인 2021-02-10 22: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은 꿈 가득한 좋은 연휴 보내시길.

syo 2021-02-11 16:51   좋아요 2 | URL
꿈보다 좋은 현실 가득한 좋은 연휴 보내시길.

행복한책읽기 2021-02-11 00: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두부로 명절 준비 다 끝내고 섣달 그믐날에도 바지런히 읽고 쓰는 syo님. 루소는 죽은 것 같다!! 에 완전 동의👐👐 죽은 자 자꾸 부활시키지 말고, 산 자랑 알콩달콩한 명절 보내시와유~~~~ 그믐날의 syo는 사랑이네요. 사랑꾼 syo님이 갖은 양념 버무린 사랑시를 한껏 뿌려 놓았네요. 이 몸은 그대 글의 황홀함에 올라타 꿈꾸러 갑니다~~~^^

syo 2021-02-11 16:53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 두부는 아직 첩첩산중입니다.....
루소는 제 서재에서 정기적으로 야금야금 때려볼까 생각 중입니닿ㅎㅎㅎ
읽기님도 안온하고 뜨끈뜨끈한 명절 보내세요^-^

바람돌이 2021-02-11 00: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yo님의 오늘 서문은 약간 황정은풍의 느낌 물씬입니다. 저는 황정은작가를 아주 좋아하므로, 그러므로 syo님의 오늘 서문도 굉장히 좋습니다. ^^ 스토너는 저도 읽었는데 왜 저는 저런 대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거죠? 이러다간 어디가서 읽었다 소리도 못하겠어요. 내일부터 설연휴 시작이네요. 부디 좋은 시간 되시고 새해에는 복도 듬뿍 받아 하고 있는 공부가 결실을 맺기를 기원합니다.

syo 2021-02-11 16:54   좋아요 1 | URL
풍이라도 황정은풍이라니 영광입니다. syo는 그 누나를 사랑하여 자주 몸부림칩니다....
저는 스토너가 되게 귀엽게 야한 책이어서 좋았습니다. 좋은 거 늦게 알아가지고 열심히 하는 귀요미 스토너.....
늘 감사합니다. 모래요정님도 축복 가득한 명절 보내세요^^

유부만두 2021-02-12 1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루소 싫어요. 이렇게 루소 책이나 이름만 나오면 득달같이 달려와서 싫어욧! 하는 제가 루소 보다 더 찌질할지도 모르지만 아 루소 싫어요. 그런데 syo님은 안 싫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급 미소)

syo 2021-02-15 09:48   좋아요 0 | URL
이렇게 명절이 끝나고 나서야 댓글을 다네요.....
루소의 찌질함에 대해서는 더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 같아요.
ㅎㅎㅎㅎㅎㅎ 유부만두님도 새해 복 잔뜩잔뜩 받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