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 온도 차 무엇

 

 

 

1



 

  나의 그리움이 누구 하나를 그리워하는 그리움이 아닌지 모른다

  물빛처럼 평등한 옛날 얼굴들이

  꽃나무를 보는 오후에

  나를 눈물나게 하는지도 모른다

 

  그믐밤 흙길을 혼자 걸어갈 때 어둠의 중심은 모두 평등하듯

  어느 하나의 물이 산그림자를 무논으로 끌고 들어갈 수 없듯이

_ 문태준, <중심이라고 믿었던 게 어느날> 부분

 

우연히 만난 시가 퍽 아름답다는 것은 잘 살고 있다는 뜻이다. 꾸준히 시집을 읽으며 절반은 놓쳐도 나머지 절반에는 붙들린다면, 내 삶이 그래도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뜻이다. 책장에 줄 세워놓은 저 나침반들. 저 쨍한 거울들.

 

 

 

2



정말 뜬금없는 이유로 자기가 묵고 있는 집의 하녀 포티스에게 음심을 품은 여행자 루키우스. 어떻게 한번 해보려고 아주 씩씩하게 부엌으로 돌진, 요리중인 포티스를 발견한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나의 귀여운 포티스만이 주인을 위해 군침 도는 냄새를 풍기며 싱싱한 쇠고기와 순대로 맛좋은 요리를 만들고 있었다. 그녀는 리넨 옷을 입고서 발간 천으로 가슴 주위를 동여매고 있었다. 그녀는 꽃다운 손으로 냄비 안을 휘저으면서 요염한 자태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또한 팔이 가볍게 움직일 때마다 그녀의 엉덩이도 부드럽게 요동치면서 몸 전체가 관능적으로 물결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인상 깊어서 나는 멍하니 선 채 정신없이 감탄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침내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이렇게 말했다.

_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 황금 당나귀

 

, 무려 1세기의 작업 기술을 한번 감상해보자.


"안녕, 포티스. 냄비를 젓는 모습이 너무 매력적이야. 또 엉덩이가 움직이는 모습도 아름다워. 그러니 당신의 고기 수프는 얼마나 맛있겠어! 당신의 고기 수프에 손가락을 적실 수 있는 사람은 정말로 행복하고 축복받은 사람일 거야.“

_ 같은 책


통하겠냐?

 

그러자 예쁘고 괄괄한 포티스가 뒤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얼른 아궁이에서 떨어지세요. 아무리 약한 불이라도 불똥이 튀면 당신은 화상을 입을 수도 있어요. 그런 일이 벌어지면 그 불꽃을 끌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요. 내가 요리를 잘한다고요? 물론이죠. 어떻게 요리해야 사람들이 군침을 흘리는지 잘 알죠. 사람들의 입맛을 잘 알죠. 그리고 부엌 아궁이뿐만 아니라, 침대 시트 속에서도 어떻게 뜨겁게 달구는지도…….

_ 같은 책

 

통했다?!

 

물론 이건 저따위 고기 수프에 손가락 적시는 헛소리로만 이루어낸 것은 아니었고, 처음 루키우스가 이 집에 묵으러 왔던 날 자리를 봐주던 포티스에게서 이미 시그널을 확인했던 것그리고 그 이후에는 머리칼 페티시가 있는 루키우스의 머리칼 찬양 드립이 길게 이어지다가 이렇게 된다.

 

내가 사랑하는 포티스는 노련하게 머리를 치장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의 머리칼은 자연 그대로의 생머리였지만, 그것만큼 매력있는 모습은 없었다. 그녀는 길고 진한 머리칼을 땋아 목덜미 위에서 리본으로 동여맨 다음 목까지 느슨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나는 근질거리는 욕망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머리칼을 머리 위쪽으로 땋아 올린 부분에 열정적인 키스를 했다. 그러자 그녀는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이면서 곁눈으로 나를 훔쳐보았다. 그리고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왜 이래요, 어린애같이! 지금 당장은 달콤하지만, 씁쓸한 뒷맛은 생각 못하네요. 조심하세요. 오늘은 꿀맛을 보았지만, 머지않아 씁쓸한 맛을 삼키게 될지도 몰라요.“

_ 같은 책

 

포티스, 침대 시트 달구는 멘트로 훅 땅기더니 이번에는 확 밀기 스킬 시전. 루키우스는 환장.

 

, 아름다운 내 사랑이여! 그렇게 아름다운 입에서 조심하라는 말이 나오다니……. 당신의 키스만 있으면 나는 당장 당신의 불에 구워질 준비가 되어 있어.“

  이렇게 말하면서 나는 그녀의 허리를 팔로 감싸며 그녀가 항복할 때까지 키스를 퍼부었다.

_ 같은 책

 

아, 루키우스 선수, 나는 불고기가 될 거예요 어택 들어가네요. 포티스 선수는 과연 이 막무가내 몸통박치기 공격을 어떻게 받아낼 것인지?

 

그러자 그녀는 내 포옹에 화답하듯이 나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숨소리에서는 계피 향내가 났다. 그리고 그녀는 자기 입술을 내 입술에 갖다 대고서 자기 혀를 슬쩍 내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_ 같은 책

 

네, 포티스 선수, 대담한 반격입니다. 루키우스 선수 지금 그로기 상태에 빠졌는데요.

 

마침내 서로의 혀가 섞여 나오는 천상의 음료를 맛보자, 나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 포티스! 죽을 것 같소. 당신이 나를 어여삐 여기지 않는다면 나는 죽은 목숨과 다름없어.

_ 같은 책

 

아아아, 루키우스 선수 비굴한 기술을 선보이는데요. 자고로, 네가 지금 어찌저찌 해주지 않으면 나는 죽어버릴 테야- 하는 남자는 추후에 쓰레기로 밝혀지는 경우가 잦단 말이지요. 루키우스 선수, 자충수를 둔 것일까요? 자살폭탄 테러에 포티스 선수는 어떻게 반응할지?

 

그러자 그녀는 내게 숨막히게 키스를 퍼부으면서 대답했다.

  ”죽는 것 따위는 무서워하지 말아요. 당신이 조금 더 버틴다 하더라도 죽지는 않을 거예요. 나는 내 모든 영혼을 받쳐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정말이지 당신을 사랑해요. 난 완전히 당신의 여자가 되었어요. 이제 이런 우리의 흥분을 더 이상 미루지 말아요. 횃불을 켤 시간이 되면 당신 침실로 가겠어요. 그러니 방으로 가서 오늘 밤에 벌어질 전쟁에 대비하세요. 밤새도록 당신과 격렬한 길고 즐거운 전쟁을 벌일 거예요.“

_ 같은 책

 

, 그게 또 먹힙니다아아아아! 어제 처음 본 사람에게 모든 영혼을 받쳐사랑한다고 고백하는 포티스 선수네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어쨌든 오늘 밤에 전쟁이 벌어지긴 벌어질 모양입니다. 선수들 최선을 다하시길. 오늘의 중계는 여기서 마치며 끝 곡으로 임재범의 <너를 위해> 띄워드립니다. 지금까지 해설에 syo, 중계에 syo였습니다. 여러분, 전쟁에 대비하시길.

 

내 거친 생각과(당신의 고기 수프는 얼마나 맛있겠어!)

불안한 눈빛과(, 포티스! 죽을 것 같소)

그걸 지켜보는 너으어으어(당신이 조금 더 버틴다 하더라도 죽지는 않을 거예요)

그건 아마도 전쟁 같은 사랑(난 밤새도록 당신과 격렬한 길고 즐거운 전쟁을 벌일 거예요)

 

전쟁 양상에 대한 충실한 묘사도 있더라구요. 세심하다 후후후.

 

 

 

--- 읽은 ---



211. 서평 쓰는 법

이원석 지음 / 유유 / 2016

 

- 일독(1708xx)

- 재독(210619)


서평가로서 책 속의 정보를 대할 때에는 언제나 그 정보의 본질, 배경, 맥락, 함의 등이 얼마나 잘 소개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 책에 대해 서평을 쓰려 한다면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확실하지 않거나 의혹이 생긴다면 관련된 자료를 대조해 가며 읽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확장된 인식을 가지고 서평을 써야 잠재 독자가 그 책을 읽을 때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_ 이원석, 서평 쓰는 법

 

자료 대조. 저런 대목을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일독할 당시, cyrus님과 오프라인 왕래가 없었던 syo이원석cyrus 님의 필명인가 했다. 당연히 아니었지만. 재독을 해봐도 그런 오해를 할 법했구나 싶다. 서평에 대한 관점도 문체도, 이원석 선생님과 cyrus 님은 좀 닮은 것 같다. 알라딘에서 짬 좀 찬 사람이라면 알라딘의 서평 기계 하면 바로 cyrus 님을 떠올릴 거라고 생각한다. 가끔 보면 정말 만든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서평을 써내시거든.

 

그렇다면 이 책이야말로 cyrus식 머신 서평으로 가는 디딤돌이 될 것인가?

 

물론 syo는 그 길을 가지 않을/못할 것이다. 이번 생은 너무 멀리 돌아왔다…….

 

그나저나 cyrus님 요즘 뜸하군. 돌아와요.

 

 

 


212. 사생활들

김설 / 꿈꾸는 인생 / 2021

 

참은 고통이 있었고 누른 울분이 있었던 것 같다. 전자는 글쓰기의 연료가 되고 후자는 엔진이 되어 작가 김설 선생님이 탄생한 듯. 자기 글쓰기의 연료와 엔진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오래 쓴다. 반대로 말하면 오래 쓰는 사람은 자신을 되짚는 과정을 한 번은 반드시 거치는 것. 어느 순간부터 나는 왜 쓰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자주하기 시작했다면, 지금 알이 흔들리는 중인 것. , 하고 껍질이 깨지면, 그 안에서 쓰는 내가 노란 부리를 내민다.

 

정말 말도 안 되게 빛나는 문장을 만나는 순간이 나는 너무나도 좋다. 그런 문장은 마치 "당신의 삶이 지금은 바닥을 치고 있지만 언젠가는 달라질 테니 잘 참고 견디라"고 나에게 해 주는 응원 같다. 어려서부터 책은 나에게 매우 중요했고 지금도 그렇다. 책을 읽으면 속이 든든해졌으니 나에게 책은 밥이었다. 가난한 내게 허락된 유일한 사치는 책을 읽는 시간이었고. 버릇처럼 끼고 잠들었고 서점에 들르게 되면 뭐라도 들고 나왔다.

_ 김설, 사생활들

 

 

 


213. 다시 시작하는 독서

박홍순 지음 / 바이북 / 2016


- 일독(1703xx)

- 재독(210620)

 

그러면 도대체 무엇이 해로운 책인가? 새로운 발상이 없거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사실상 없다면 해로운 책에 속한다. 옹호든 반박이든, 즉 나의 생각과 일치하든 안 하든 의미 있는 발상이 있거나 논의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다면 '음란한' 성행위를 매개로 하든 폭력을 매개로 하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형식이 소설이든 논문이든, 문장과 표현이 쉽든 어렵든 하등 문제 될 게 없다.

_ 박홍순, 다시 시작하는 독서

 

syo는 박홍순 선생님을 참 좋아하지만 이 선생님은 가끔 사람을 숨 막히게 하실 때가 있다- 로 시작하는 리뷰를 쓰는 중이다. 확실히 좋은 책이긴 하다. 이런 책을 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옳고 좋은 말들은 빠짐없이 잔뜩 들어 있는 책인건 분명한데, 이런 책을 내야겠다는 마음을 왜 먹으셨는지, syo는 늘 그게 궁금하다.

 

 

 

--- 읽는 ---

애덤 스미스 구하기 / 조나단 B. 와이트

조각가 / 스콧 맥클라우드

마션 / 앤디 위어

시를 잊은 그대에게 / 정재찬

전쟁은 끝났어요 / 곽재식 외

밤을 걷는 밤 / 유희열,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무자비한 알고리즘 / 카타리나 츠바이크

처음 회계 / 편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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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1-06-20 17: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뭔놈의 연애가중계인가 생생한데 웃겼어…안녕 오랜만이다 개놈아 너 안 죽었었구나??

syo 2021-06-20 17:51   좋아요 2 | URL
저 책이 다 했지요. 전쟁씬 들어가면 더 웃깁니다 ㅋ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6-20 18:35   좋아요 1 | URL
전쟁 씬도 중계해 주시나요?🥺

새파랑 2021-06-20 1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황금당나귀>가 재미있는건지 syo님이 재미있게 쓴건지~ 둘 다 이겠지만 어쨋든 저책은 읽고 싶어 지는군요^^
 

 

르네상스 놈들은 쌍꺼풀에 진심인 편

   


 

1

 

코로나가 터지고 제일 귀찮은 일 중 하나는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코로나가 터지고 제일 즐거운 일 중 하나는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니까, syo 포함,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금씩 더 아름다워진다. 가릴수록 드러나는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움이란 이렇게 역설적인 것.

 

 

 

2

 

요즘 유행하는 놀이를 해보았다. 알라딘에서 발붙이고 살려면 이걸 해야 하는 분위기다.



왼쪽 상단이 실물과 가장 가깝다. 왜냐하면 실물이기 때문이다.

 

무쌍으로 살아온 인생 이제 곧 40. 40년은 긴 세월이라 이제는 쌍꺼풀을 단 내 얼굴을 보니 헛구역질이 다 난다. 기괴함 그 너머의 기괴함. 쟤네들 다 정상은 아니지만 20세기 쟤는 동공 면적이 내 꺼 4배는 되겠다. 


그래도 쌍수는 역시 르네쌍수. 잘 보면 배경도 깨알같이 모나리자 식으로 바꿔준다. 오토바이 탄 아저씨는 바위처럼 보인다. 그 시절에는 오토바이 탄 아저씨 같은 건 없었어서 그런가.

 

 

 

3



역시 왼쪽 상단이 실물과 가장 가깝다. 실물인데 실물과 가장 가깝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당연히 마스크 때문이다.

 

syo는 프로 마기꾼으로서, 저 마스크 안쪽으로 아무리 제초해도 박멸되지 않는 얼굴 털들을 숨겨놓았다. 그걸 가리고 다니니 어쩐지 문명인 같아 보여서 좋다. 스무 살에는 재수를 했었는데, 아침에 면도하고 학원에 가면 점심 먹을 때쯤 다시 수염이 돋아나 있었기에, 점심때나 얼굴 보는 다른 반 친구들은 syo에게 세상에는 면도라는 활동이 있음을 자꾸만 알려주었다. 몰랐겠냐. 모닝 얼굴을 매일 확인하는 같은 반 친구는 그런 게 아니라고, 쟤 얼굴에 수염 없는 꼴을 보려면 하루 세 번 칫솔질 대신 면도칼질을 시켜야 한다며 내 편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친구들은 자기들의 털이 보통 털이라면 내 털은 한 단계 위의 털이므로 같은 이름으로 불려서는 안 된다며, 내 털에 털 그 이상의 털이라는 뜻으로 터락션Turaction”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발음기호는 [춰롹↑ㅋ션ㄴ]

 

내 눈은 꼬리가 처진 편인데, 이놈들 눈은 다 왜 이래. 눈알은 세 배가 되었고.

  

 

 

--- 읽은 ---



208. 호빗

존 로날드 로웰 톨킨 지음 / 이미애 / arte / 2021

 

신화나 동화를 보면 신이나 영웅들의 승과 패를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다. 아니 쟤는 저 동네에서는 지금 적보다 훨씬 막강한 애를 맨주먹으로 때려 잡아놓고 왜 여기 와서는 저 허접한 애한테 쥐어터지고 앉았냐. 아니 저 신이라는 작자는 세상 못할 일이 없다고 해놓고 왜 여기서는 등신같이 쥐로 변해서 고양이한테 쫓기고 비둘기로 변해서 독수리한테 쫓기고 지랄이야 아예 그냥 처음부터 번개를 던지든가 산을 집어던지든가 하면 되잖아, 이게 말이 돼? 이건 일본 소년만화에 길들여진 탓. 걔네는 랭킹이 확실해서, 기연을 만나거나 노력하거나 아니면 뜻밖의 상성 문제로 랭킹이 엎어지는 수는 있어도, 기본적으로 AB한테 이겼는데 BC한테 이기면 AC한테 이긴다. 그런 관점에 지나치게 익숙해지면 폐해도 크다.

 

사실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만화가 먼저가 아니라 신화와 동화가 먼저다. 판타지 소설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있는데 그건 뭔가 엎치락뒤치락 하는 과정에서 과학적이지 않은 일들이 수학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발생하는 데서 시작된 것이다. 본령은 그런 것. 그러니까, 이게 뭐야? 이게 납득이 돼? 하는 지점이 나오면 그런 생각을 하는 나를 조용히 들여다보면 된다. 판타지는 그런 맛으로도 본다.

 

바로 그 때문에 용의 관심을 끌었던 거야. 잘 알다시피 용이란 놈들은 인간과 요정과 난쟁이들에게서 황금과 보석을 훔치는데, 어디서건 가리지 않고 발견하는 족족 훔치거든. 그리고 목숨을 부지하는 동안에는 약탈한 물건들을 절대로 빼앗기지 않고 간직한다네. 그런데 용이란 놈들은 살해를 당하지 않는 한 영원히 사니까 실제로는 그 보물을 영원히 소유한다고 할 수 있지. 그놈들은 그냥 소유만 할 뿐, 놋쇠 반지 하나도 즐길 줄 몰라. 사실 그놈들은 지김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은 잘 알지만, 훌륭한 물건과 조야한 물건도 구별할 줄 모른다네. 스스로는 아무것도 만들 줄 모르고 심지어는 갑옷 비늘이 조금 헐거워져도 고칠 줄 몰라.

_ 존 로날드 로웰 톨킨, 호빗

 

 

 



209. 두 글자로 깨치는 불교

가섭 지음 / 불광출판사 / 2014

 

쉬울 줄 알았는데 뜻밖에 어렵다! 나는 불교 학교를 6년이나 다녔는데! 심지어 반야심경도 외울 줄 아는데!

 

그건 아무래도 체계가 부족하기 때문인 것 같다. 두 글자 짜리 불교 용어(?)들을 사전식으로 풀어놓은 책인데, 내용 자체가 부실한 느낌은 절대 아니지만, 영어 공부를 하겠다고 사전을 펴놓고 순서대로 외우는 느낌의 뭔가 부질없는 짓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자꾸 들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얼핏 보면 현상들은 모두 둘로 나뉘어 존재한다. 그래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인해 항상 대립하고 갈등한다. 이러한 분별은 자기중심적인 사고와 욕망이 되어 마음의 틀을 이룬다. 둘 사이의 접점을 찾지 못하고 나누어 인식하는 습관은 상대를 경쟁과 정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하는 결과를 낳는다.

  현대문명을 한계점으로 몰아온 분리 ­ 경쟁 ­ 정복 ­ 지배의 논리를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문명을 건설할 수 있는 패러다임을 불이사상에서 발견할 수 있다. 불이는 현상적 차별에 대하여 분별이 없는 것, 또한 온갖 분별을 초월한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세상의 이치르 현상적 모습은 독립적인 고정된 실체를 갖고 존재하지 않는다는 연기적 관계로 이해한다.

  그래서 불이는 발생론적인 측면보다는 관계론적인 측면이 더 강하다. 불이사상은 이 우주 안 모든 것들의 관계에 대한 근원적인 통찰을 의미하며, 이분법적 사고의 틀을 허물어야 얻을 수 있는 마음이다.

_ 가섭, 두 글자로 깨치는 불교

 

 

 


210. 데이터사이언스 입문

타케무라 아키미치 지음 / 황석형 외 옮김 / 인피니티북스 / 2020

 

사전과 개론서의 짬뽕 느낌인데, 개론서 수준의 사전은 약하고 사전 같은 개론서는 재미없는 법이다.

 

 

 

--- 읽는 ---

사생활들 / 김설

시를 잊은 그대에게 / 정재찬

애덤 스미스 구하기 / 조나단 B. 와이트

황금 당나귀 /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

내가 누구인지 뉴턴에게 물었다 / 김범준

흥미로운 베이지안 통계 / 윌 커트

전쟁은 끝났어요 / 곽재식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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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1-06-19 14: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르네쌍수 괜찮은데요 ㅎㅎㅎ 뭐, 쌍수를 추천하는 건 아닙니다^^

syo 2021-06-19 15:01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ㅋㅋㅋ 우리 사이의 가치관 차이는 메울 수 없겠습니다.....

미미 2021-06-19 14: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저희 도장 사범님인줄 알고 너무 놀랐습니다!(똑닮ㅋㅋ)혹시 운동도좀 하시나요? 배경은 왜 점점 매드맥스화 되는지 syo님 추측도 일리있지만 제 생각엔 마스크 땜 미세먼지 설정화 된건가 싶기도해요ㅋㅋㅋ르네쌍수도너무나 잘어울리시는데 왜그러세요ㅋㅋ저 좀 더 웃어도 되죠?😆 다른 분들도 제발다 올려주시길!

syo 2021-06-19 15:02   좋아요 4 | URL
저는 아저씨를 바위로 만들었는데 미미님은 아저씨를 미세먼지로 만드셨네요.
누가 더 악당인가요? ㅋㅋㅋㅋㅋㅋㅋ

제발 다 올려달라는 표현은 틀렸어요.
언급했듯이, 알라딘에서 활동하려면 기본적으로 다 올려야 하는 그런 분위기입니다. 부탁은 필요 없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얄라알라북사랑 2021-06-19 15:0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실물 공개 사진에 눈이 먼저 가고, 활자는 나중이네요^^: 미미님 말씀하시는 매드맥스 배경은 저 이륜차 때문?^^

syo 2021-06-19 15:08   좋아요 3 | URL
이래저래 오토바이 아저씨만 안됐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06-19 15:0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가장 마지막 사진 눈알 흘러내려요…더워서 녹았나 우는 건가…

syo 2021-06-19 15:09   좋아요 4 | URL
마스크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얼굴에 부당한 하얀 것이 있어서 알고리즘이 어버버버한듯.

수연 2021-06-19 15:0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곧 마흔이 왜 곧 스물처럼 나왔나요? 사기입니다!!!!!!!!!!!!!!!!!!!!!!!!!!!!!!!!!!!!!!!!

syo 2021-06-19 15:08   좋아요 3 | URL
사기가 아니라 마스크님이 역사하사 이루어진 기적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06-19 15:0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15세기 르네상스 버전은 눈병 걸렸어요 혹시 일 년 전 르네상스인가…

syo 2021-06-19 15:10   좋아요 4 | URL
저 시절 눈알은 대체로 저렇습니다. 모나리자 각막염....

페넬로페 2021-06-19 15:0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syo님!
무슨 아이돌입니까?
왜이리 잘 생겼나요?
르네상스 쌍꺼풀도 괜찮은데 아시잖아요!
실제로는 저렇게 될수 없다는 거 ㅎㅎ^^
저의 남편도 오후되면 수북하게 수염이 자라는 사람이라 그 고충을 잘 알지요~~
오늘부터 춰롹 션이라 불러야겠어요^^

syo 2021-06-19 15:12   좋아요 4 | URL
수직선의 한쪽 끝에 아이돌을 놓고 반대쪽 끝에 돌아이를 놓으면 syo는 반대쪽으로 열심히 달려갑니다.
르네쌍스 쌍꺼풀이 괜찮다니 ㅋㅋㅋㅋ 다들 농담도 잘하신다.

춰롹션은 발음이 중요합니다. 롹을 거의 멍멍이가 ‘왕!‘하고 짖듯이 발음해줘야 합니다. [춰롹!ㅋ션ㄴ]

얄라알라북사랑 2021-06-19 15: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수연님 말씀 동감, 그러고 보니 40 언저리의 1/2의 실물이신데요?

syo 2021-06-19 15:30   좋아요 3 | URL
걱정하지 마세요.
마스크 내리면 바로 30되고,
핸드폰 사진 보정빨 빼면 광대뼈까지 내려온 다크서클까지 더해져서 40을 완성합니다^-^

새파랑 2021-06-19 15:3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syo님은 글도 잘쓰고 책도 잘읽고 잘생기시기 까지 하군요. 역시 세상은 불공평하군요~!!!

syo 2021-06-19 15:58   좋아요 4 | URL
말씀하신 모든 게 진실도 아니거니와, 진실이라 하더라도 텅텅 빈 제 통장 잔고가 그 모든 불공평을 공평하게 만듭니다.

다시 생각해보니까, 말씀하신 모든 게 진실이 아닌데다 통장까지 텅장이니, 이건 진짜 불공평하군요.....

잠자냥 2021-06-19 18:12   좋아요 2 | URL
아 새파랑님 이런 말 하면 안된다니까욬ㅋㅋㅋㅋ 다부장님도 그렇고 미녀 미남 소리 들을라고 올린 거라니까! 낚였네, 낚였어! ㅋㅋㅋㅋ

syo 2021-06-19 18:40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님, 하고 싶으신 말씀 있으시면 하셔야죠, 왜 참고 계세요. 그저 낚이지 않겠다는 의미없는 강박에 휩싸여서 욕망을 억누르지 마시고, 마음껏 말씀하세요 ㅋㅋㅋㅋㅋㅋㅋ

북다이제스터 2021-06-19 16: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헉, 예상과 달리 실물 사진이 미남이세요. ㅋㅋㅋㅋㅋ

syo 2021-06-19 18:29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 실물 사진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실물 실물은 아마 예상하신대로일 겁니다 ㅋㅋㅋ

난티나무 2021-06-19 16:5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니 왜 자꾸 얼굴 공개하시는 거예요 다들! 물어내요. 내 환상 다 깨짐!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1-06-19 18:13   좋아요 1 | URL
전 사실 폴스타프 님 르네쌍수가 젤 궁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21-06-19 18:31   좋아요 3 | URL
난티나무 님 // 아름다운 환상은 깨고, 냉혹하고 차가운 현실을 마주하셔야지요. 원래 현실은 차갑고 건조한 법입니다......

잠자냥 님 // 폴스타프 님 몰이 한 번 해볼까요 우리? ㅋㅋㅋㅋㅋㅋ

난티나무 2021-06-19 18:46   좋아요 2 | URL
내 환상이 아름다웠다고는 말 안 했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6-19 20:06   좋아요 1 | URL
사실 전..... 천연 상태에서 쌍풀.....입.니.다.

잠자냥 2021-06-19 18: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숙취로 고생 중인
토요일 오후에 진짜 큰 웃음 터졌어욬ㅋㅋㅋㅋㅋㅋㅋ 즤집 고양이들이 다 어리둥절해서 쳐다 봄 ㅋㅋㅋㅋ 이달의 빅웃음상 쇼!

syo 2021-06-19 18:31   좋아요 2 | URL
왜 남의 얼굴 보고 함부로 터지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도 거울 보고 가끔 터지니까 흔쾌히 봐 드리는 겁니다.

잠자냥 2021-06-19 18: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4세기(왼쪽 상단) 사진이 젤 마음에 드는군요. ㅋㅋㅋㅋㅋㅋ 어서 많이 본 얼굴이다 했더니! 아니 이럴 수가 우리 초딩 조카 닮았어요! ㅋㅋㅋㅋㅋ

syo 2021-06-19 18:33   좋아요 2 | URL
제가 무려 초딩 조카 님을 닮았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
혹시 초딩 조카님이 미미 님 동네에서 도장 사범으로 근무하시는지 여쭤봐주세요.

잠자냥 2021-06-19 18:34   좋아요 1 | URL
쇼님 귀요미상이네요. ㅋㅋㅋㅋㅋ

syo 2021-06-19 18:41   좋아요 1 | URL
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건 좀 그런 편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붕붕툐툐 2021-06-19 21: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저 진짜 syo님은 영원히 상상 속에 남겨두고 싶었는데, 실물 공개로 이제
.
.
.
.
더 좋아져 버려따!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6-19 21:39   좋아요 1 | URL
꿀꿀 붉은돼지일 줄 알았는데 말이죠…

syo 2021-06-20 00:59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ㅎㅎ 붉지는 않지만 뱃속에 돼지 한 마리 품고 있는 건 사실이지요 🐷

scott 2021-06-19 21: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댓글 달려고 왔다고 끊임없이 스크롤을 주르륵
관상 이야기 할려다고 입 만 벌리고
가여 ㅋㅋㅋㅋㅋㅋ

소요님 아이도루 ㅋㅋㅋㅋ

syo 2021-06-20 01:00   좋아요 1 | URL
댓글 수가..... ㅋㅋㅋㅋㅋㅋㅋㅋ 생각보다 파장이 크네요.

공쟝쟝 2021-06-19 23: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아 18세기 쇼님 아이도루 데뷔하자 남방계 상으로다가 ㅋㅋㅋ

syo 2021-06-20 01:01   좋아요 0 | URL
내 꺼풀에 손 대지 마라.... 나는 무쌍이 좋아요 ㅎㅎㅎㅎ

독서괭 2021-06-20 0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syo님까지 하시다니… 난티나무님 위 댓글에 공감합니다. 제가 상상한 syo님 이미지랑 너무 다른데요? 제 환상이 아름다웠던 건 아닌 것도 마찬가지 ㅋㅋㅋ 살 많이 쪘다고 맨날 그러던 것도 다 거짓부렁이였던 것…
하지만 syo님 덕에 실물과 어플보정컷이 매우 다르다는 건 확실히 알겠네요ㅎㅎ

syo 2021-06-20 17:44   좋아요 1 | URL
1. 저 사진에는 얼굴만 나왔기 때문에
2. 자기 뭄무게를 다는 저울은 자기 안에 있기 때문에

사진과 별개로 숨겨진 돼지가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번에 몇 개의 환상을 박살낸 것에 대해서는 뿌듯해하고 있는 중입니다 ㅋㅋㅋㅋㅋㅋ
 

  

말의 거처

 

 

 

1

 

도저히 말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크나큰 말들, 인간이 지닌/지녀야 할 것들 중에서 차마 그 처분을 결정하기 가장 어려운 것들을 둘러싼 거대한 말들 앞에 섰을 때, 그간 말해야 할 것들에 대해 말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런 것들이야말로 진정 말이라고 한다면, 인간은 말이 아닌 것들만 말하면서 말인 것들을 말하고 산다는 착각에 빠지기 쉬운 동물일 것이다. 진짜 말 앞에서 크게 한 번 침묵했던 사람들이 다시 입을 열었을 때, 그곳에서 나올 말들.



 

그가 유키코에게 마음을 고백한 장소도 그곳이었다. 시험공부를 하다가 그 앞에서 만나 샌드위치를 나눠 먹고 있을 때였다. 배가 고팠는지 한창 열중해서 먹던 유키코가 멀리 보이는 교내의 숲과 지금 그들의 발 앞에 놓인 땅을 손가락으로 이으며, 날아온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심지 않아도 저 숲에서 자라는 것들이 날아와 여기에 자리 잡는다는 뜻이었다. 그러고 보니 사흘에 한번씩 뒤엎고 갈아가며 필요 이상의 개간 작업을 한 공간에 이름을 알 수 없는 무언가들이 다시 자라고 있었다. 날아와서, 행로와 목적도 없이 날아와서 여기에.

  그러니 그날의 사랑한다는 말은 그 살아 있는 것들의 이동만큼이나 자연스럽고 당연했다.

_ 김금희, 마지막 이기성

 

 

 

2

 

남의 큰 아픔보다는 나의 작은 아픔이 오래 기억에 남고, 또 나의 작은 아픔보다는 나의 큰 아픔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지만, 사실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다. 내 어떤 작은 불행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통해 겪었던 고통보다 더 오래 남기도 하고, 또 내게 아무 상관이 없는 어떤 남의 티끌 같은 불행이 내가 오래 앓아오고 있는 잔병보다는 더 크고 긴 아픔으로 남기도 하는 것이다. 아픔의 생명력은 그 크기나 거리와 비례관계가 없다. 아픔은 가끔 생물이다. 그게 우리 곁에 얼마나 오래 남아 있는지, 어떻게 다시 생각나는지, 혹은 잊히는지, 그런 건 종종 우리 소관을 벗어난다.



인간에게 특정한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바로 결함이라는 것. 그러므로 인간이 배울 만한 가장 소중한 것과 인간이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은 정확히 같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슬픔이다.

_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3

 

다가서선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다가갈 수밖에 없는 사랑과, 다가갈 수밖에 없음을 알면서도 다가가지 않으려 애쓰는 사랑이 번갈아 일어날 때, 우리가 사랑에게 하는 것들과 사랑이 우리에게 남기는 것들.



 

사탕 하나를 입에 물고 있어도 그 쾌감은 자족(自足)을 위해 체계를 만들며, 그 맛의 긍지 속에서 궁지(窮地)로 졸아든다. '질투'스러운 감정들이 변명 없이 증명해주는 것처럼, 욕망은 점()(占性)으로 치닫고, 그래서 점성(黏性)으로 무장한다. 물론 리비도(libido)의 자폐적 순환을 막는 방법이 없진 않다. 그러나 이른바 리비도의 그 악명 높은 점착성(Klebrigkeit) 탓에 사태는 자주 혼란스러워지고 악순환의 고리 또한 여간 성가셔 보이지 않는다. 애착은 생명의 진화사 일반에서 어떤 자리와 방향을 차지하고 있을까?

_ 김영민, 집중과 영혼

 

 

 

4

 

그냥 그대로 되어가는 것들이 있다. 아무것도 만지지 않았는데 저절로 움직이면서 만들어지는 마음들이다.



 

나는 그날 콘라딘이 내게 무슨 말을 했고 내가 그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많은 것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내가 아는 것은 다만 우리가 젊은 두 연인처럼 한 시간쯤 길을 따라 오르내렸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불안해하며 서로를 어려워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그것이 겨우 시작일 뿐이며 이제부터는 내 삶이 더 이상 공허하거나 따분하지 않고 우리 둘 모두에 대한 희망과 풍요로 가득차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_ 프레드 울만, 동급생

 

 

 

5

 

뱉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말은 사실 뱉기 전에 돌이킬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던 말일 확률이 높다. 그런 말은 전조 없이 단번에 탄생하지 않는다. 단지 내 마음이 그 말을 빚으러 가는 걸음걸음을 내가 몰랐거나 모른 척하고 있었을 뿐. 너를 잘 모른다고 생각하며 헤어졌지만 후에 돌이켜보면 나를 잘 안다고 믿었기에 헤어진 것이었을 때가 많은 것도 실은 같은 이야기다.



 

"당신은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 역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고 해두죠." 그가 말했다. "그렇지만 당신은 압니다. 내게 필요한 건 우정이 아닙니다. 내 인생에는 단 하나의 행복만이 가능합니다. 그건 당신이 그렇게 싫어하는 단어입니다……. 그래요, 사랑……입니다."

  "사랑……." 그녀는 천천히 마음속으로 반복해보았다. 그리고 문득 레이스를 풀어낸 그때, 덧붙여 말했다. "그 말이 내게 너무나 많은 걸 의미하기 때문에, 당신이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의미하기 때문에, 그말을 좋아하지 않는 거예요." 그녀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_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6

 

지금 이 순간 우리더러 보라고 머나먼 자리에서 빛을 쏘아대던 저 별의 십억 년 동안 이어진 노력을 생각하듯이, 나란히 숨 쉬는 모든 순간이 실은 몇만 광년을 걸어 여기에 도착했음을 늘 알아야 한다.


 

  나무는 그늘을 그냥 드리우는 게 아니다

  그늘 또한 나무의 한해 농사

  산수유나무가 그늘 농사를 짓고 있다

  꽃은 하늘에 피우지만 그늘은 땅에서 넓어진다

  산수유나무가 농부처럼 농사를 짓고 있다

  끌어모으면 벌써 노란 좁쌀 다섯 되 무게의 그늘이다

_ 문태준, 산수유나무의 농사〉부분

 

 

 

--- 읽은 ---



205. 그러라 그래

양희은 지음 / 김영사 / 2021

 

나의 하루 속에 내게 아무것도 아니며 나를 위한 그 무엇도 될 수 없을 것 같은 순간들이 얼마나 있는지 생각하다가 아찔해지곤 한다. 생은 짧고, 아무리 늘여도 부족할 것이고, 책은 많고, 아무리 읽어도 넘쳐날 것이라서, 맥없이 낭비한 시간들이 마른 가랑잎처럼 과거를 굴러다니다 바스라지는 모습을 보면 아, 벌써 내 인생도 가을인가, 한겨울에 후회하기 싫으면 이제라도 슬슬 이파리 관리 좀 들어가야 하나, , 이번 생은 너무 늦었나, 아닌가, 아직 할 만한가, 막 이러면서 고뇌한다. 하지만 고뇌하는 중에 청소기는 밀어야 하고, 그릇은 닦아야 하며, 쓰봉은 내놓아야만 한다. 이럴 시간 없는데, 이럴 시간 없는데…….

 

어떤 경지에 도달하면 마침내 알게 되는가 보다. 청소기를 미는 동작 하나, 수세미로 그릇을 훔치는 방향에 관한 미세한 습관 하나가 어떤 의미가 되는지를. 매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말고는 달리 이유가 없는 매일의 사소하고 소소한 일거리들이 내게 무엇이 되어 주는지를. 나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하니까, 언젠가는 알게 될 거라고 하니까.

 

청소기를 돌리고 냉장고와 창틀에 쌓인 먼지를 훔쳤다. 쓰레기봉투를 묶었다.

 

내 부엌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밥을 해 먹는 일, 제철 채소를 사다가 나물을 무치고, 맑은 국을 끓이고 제철 생선 두어 마리를 맛나게 굽는 일. 그게 무슨 대수냐고 웃을지는 몰라도 내게는 중요하다. 일 바깥의 일상을 소중히 하는 것, 그것이 내 일의 비결이다.

_ 양희은, 그러라 그래

 

 

 


206. 백의 그림자

황정은 지음 / 민음사 / 2010

- 일독(롱타임노씨)

- 재독(210618)

 

이 누나는 왜 맨날 사람을 울리고 그래. 진짜. 에이. 어른 남자가 막 울고 그럼 안 되는 건데.

안 되나요.

안 되지 않을까요.

안 되는군요.

안 되면 안 울 건가요.

안 우는 것도 마음대로 안 돼요.

안 되면 그냥 울어버려요.

울면요.

우는 거죠.

우는 거구나.

, 하고 내가 말했다.

울면 우는 거죠.

그러네요, 하고 내가 대답했다.

 

계속 걸었다.

  이따금 발밑에서 축축한 뼈가 부러지는 소리를 내며 나뭇가지가 부러졌다.

  무재 씨, 하고 내가 말했다.

  섹스 말인데요, 그게 그렇게 좋을까요.

  좋지 않을까요.

  좋을까요.

  좋으니까 아이를 몇이나 낳는 부부도 있는 거고.

  글쎄 좋을지.

  궁금해요?

  그냥 궁금해서요.

  여기서 나가면 해 볼까요.

  나갈 수 있을까요.

  언제까지고 숲이 이어져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나는 좋아하는 사람하고 하고 싶은데요.

  좋아하면 되지요.

  누구를요.

  나를요.

  글쎄요.

  나는 좋아합니다.

  누구를요.

  은교 씨를요.

  농담하지 마세요.

  아니요. 좋아해요. 은교 씨를 좋아합니다.

_ 황정은, 백의 그림자

 

 

 


207. 프로페셔널 스튜던트

용섭 지음 / 퍼블리온 / 2021

 

전문성을 쌓고 대체 불가능한 인간이 되어라. 이게 핵심이다. 그런데 그게 핵심이 아닌 자기계발책도 있었던가. 코로나도 때리고 AI도 때리고 시대는 이렇게 막 변하는데, 그때마다 이 새로운시대, ‘전례 없는위기를 넘기는 법을 알려준다고 나서는 책들이 언제나 같은 이야기만 반복한다면, 그리고 그 이야기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면, 대체 자기계발서는 왜 필요한 거고, 나는 왜 잊을 만하면 이 장르를 읽고 그러는 걸까?

 

뻔해서 어딜 가져와도 구구절절 뻔한 이야기지만, 그래도 한 대목 가져와보자.

 

당신의 10년 후, 아니 당신의 1년 후 어떤 기회가 올지 어떤 위기가 올지 모른다.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변수도 많아져서 더 이상 위기를 미리 감지하고 피해가는 건 불가능하다. 위기를 피해가는 게 아니라 이젠 위기를 맞더라도 빨리 대응해서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다. 결국 새로운 전문지식을 계속 배우는 능력과 함께, 위기대응력, 순발력, 생존력이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프로페셔널 스튜던트의 태도다.

_ 김용섭, 프로페셔녈 스튜던트

 

 

 

--- 읽는 ---

호빗 / 존 로날드 로웰 톨킨

두 글자로 깨치는 불교 / 가섭

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왔는가 / 제이컵 솔

다시 시작하는 독서 / 박홍순

황금 당나귀 /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

서평 쓰는 법 / 이원석

데이터사이언스 입문 / 타케무라 아키미치 외

미분방정식 / 남영만, 김종규

상표전쟁 / 신무연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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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1-06-18 1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 되는 건 아닌데 울지 말아요 ㅎㅎㅎ나도 읽어야지 황정은 킵해 놓은 게 많아 야금야금 빼 먹을 수 있는 건 좋네요. syo님도 디디의 우산 책등만 그만 보고 책장도 보시죠 ㅎㅎㅎ

syo 2021-06-18 19:03   좋아요 2 | URL
디디의 시간이 도래했군요.
책장 옆 책 더미에 올려놓았습니다. 책상 위의 책들이 사라지는 족족 하나씩 하나씩 책상 위로 올려놓을 테니 조만간 책상 위의 디디를 만나겠네요.

그렇지만 책상 위에 책이 백만 권이라고 합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06-18 19:07   좋아요 1 | URL
아이참 철학 책 이런 거 졸린 거 집어치우고 후다닥 읽으실 거 잖아요 ㅎㅎ심지어 책이 빨간색이야 외면할 수가 없잖아요

syo 2021-06-18 19:26   좋아요 2 | URL
맛있는 건 아껴먹는 습관이 있단 말이에요.....
근데 아껴도 너무 아꼈네. 출간과 동시에 사놓고 아직 안 읽음.
 

 

여름잠

 

 

 

그늘 방향으로 걷는 사람들. 잎을 스치는 바람에 묻어날 것만 같은 초록. 세상의 부피가 커지는, 여름이다. 그림자의 윤곽이 바짝 마른다. 그늘을 벗어나면 그림자로 그림을 그리며 척척 걸어가는 저 더운 사람들.

 

여름에는 천천히 걸어야지 발걸음을 세다가도 문득 빛살이, 구름이, 온갖 지나치게 선명한 것들이 눈길을 잡아채면 아, 잊었다, 처음부터 다시 하나, , …….

 

이 계절의 땅 위에는 엇갈리고 다시 만나 이어지는 길들이 수없이 놓여 있고, 산책하는 이들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무한해서, 모든 것이 흐름이고 또 흐름이다. 가장 추운 곳에서 와서 가장 추운 곳으로 지구를 굴리며 돌아가는, 복숭아 향기가 잔뜩 묻은, 밤의 어깨에는 낮이 깨문 이빨 자국, 늦도록 잠 못 드는 마음들이 부채를 부치면, 일렁거리는 이름들이 밝다. 하나, , …… 처음부터 다시,

 

 

 

--- 읽은 ---



201. 포옹

정호승 지음 / 창비 / 2007


- 일독(그언젠가)

- 재독(했을걸?)

- 삼독(210608)

 

  나는 나를 벽에 걸어놓아야만 벽이 아름다워지는 줄 알았다

  내가 벽에 걸려 있어야만 인간이 아름다워지는 줄 알았다

  밤하늘이 아름다운 것은

  스러져 보이지 않는 별들 때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캄캄한 내 눈물의 빈방에

  한 줄기 밝은 햇살이 비치는 것은

  사라져 보이지 않는 어둠 때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빈 벽이 되고 나서 비로소 나는 벽이 되었다

_ 정호승, 빈 벽부분

 

서로를 안아주는 동안, 우리 안에 있던 그 많은 소란스러운 것들은 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오래도록 포옹이란 서로에게 뭔가를 주고 또 채워 넣는 동작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그게 실은 서로에게서 뭔가를 가져가고 그럼으로써 비워주는 일이라는 걸. 포옹하는 동안 포옹 이외의 모든 것이 녹아나고 마침내 오직 포옹하는 너와 나, 그리고 너와 내가 하는 포옹만이 남았을 때, 이 포옹이 마무리되면 우리가 두 개의 빈 벽이 되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때, 그 순간이 너무 아름다워서 벽도 인간도 인간이라는 벽도 모두 다 같이 아름다워진다. 우리는 이기거나 지면서, 원하거나 원하지 않는 것들을 내 안에 어떻게든 우겨넣기 위해 저 소란 속으로 다시 들어가야 하겠지. 그러다 눈물도 차마 캄캄한 어느 밤이 되면, 내일은 벽에 걸어놓은 나를 잘 챙겨입고 다시 안으러 가야지, 안아주러 가야지, 마음을 먹기도 할 테고. 포옹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과 포옹이 있는 곳에는 그 밖에 다른 무엇도 없다는 사실을 이제 다 알아서. 나를 걸어놓은 벽은 다시 빈 벽으로, 다시 빈 벽으로, 그제서야 비로소 나는 다시 벽으로.

 

 

 


202.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

이유경 지음 / 다시봄 / 2013

 

- 일독(1708xx)

- 재독(210608)

 

독서 공감이라는 말을 대충 생각했었다. 그러니까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 사이의 공감이라든지, 혹은 읽지 않은 이도 공감할 만한 독서 기록이라든지, 뭐 그런 걸 뜻하는 게 아닌가 했던 것. 다시 읽어보니, 이유경 선생님이 하고 있는 공감은 무려 소설 속 등장인물들에 대한 공감이고, 읽는다는 그 사람은 소설 바깥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소설 안의 사람들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니까 어쩌면 독서 공감보다 공감 독서에 가까운 읽기.

 

그러나 책으로 공감하고 책으로 사람을 읽는 일이 실로 가능하다면, 그래서 그 엄청난 역량을 우리가 독서 공감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 경지는 공감 독서를 거쳐서야 비로소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설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감정을 느끼고, 그와 연관된 독자 자신의 추억을 되새기면서 스스로에게 또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등장인물들의 행동에 일일이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반응하며 나의 행동을 반성/예측하는 넓은 의미의 공감 독서’. 그러니까 타인에 공감하고 그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일이 반드시 책을 거쳐야만 이루어질 일은 아니겠지만, 기왕 책 속에 난 길을 통해 공감의 영토에 도착하려고 마음 먹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먼저 공감 독서를 통과하고서야 마침내 독서 공감에 이를 수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 재독으로 얻은 교훈이라 하자.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모든 신비한 힘이 나를 위해 움직인다고 생각했던 때가 내게도 분명히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순간들이, 바로 이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다는 생각이 들었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이토록 가치 있는 사람을 내게 주기 위해서 그간 나에게 방황과 기다림이 주어졌던 거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이 책의 여자에게도 믿어도 좋다고 말하고 싶다. 베를린 장벽은 당신이 프란츠를 만나기 위해 무너진 것이 맞다고. 당신은 그 운명의 힘을 제대로 느낀 거라고. 그리고 내가 내 인생의 그 시점에 그를 만났던 것도 '나를 위해' 일어난 일이었다고. 그게 무엇이든 또 어떤 힘이든, 그것이 '나를 위한' 거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나를 위한 것이 맞다고.

  그러나 그것은 언제고 끝난다고, 지나가버린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 모두가 어쨌든 결국은 과거형으로 끝을 맺게 된다고. 순간은 영원할 수 없다고. 영원할 수 없고 지속될 수 없기 때문에 순간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잊을 수 없는 거라고, 내내 기억할 거라고. 잊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칠거라고. 그렇지만 잊혀질 거라고.

_ 이유경,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

 

 

 


203. 타르인의 사막

디노 부차티 지음 / 한리나 옮김 / 2021

 

국경 북쪽에 펼쳐져 있다는 타타르인의 사막, 쳐들어오지 않는 타타르인의 공격을 막기 위한 요새, 없는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보루 위에 한 평생을 쏟아붇는 군인들, 존재의 의미를 확언받기 위해 누구보다 타타르인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는 그 군인들의 역설적 열망. 이 모든 것들이 안개 낀 타타르인의 사막처럼 모호하고 환상적으로 그려져 있-

 

다고 읽었다면 당신의 삶은 괜찮습니다.

 

나는 이 책이 너무 아프다. 전투가 일어나지 않는 국경을 방어하며 찬란하고 아름다운 도시와 단절되어 살아가는 이들이 스스로를 부여잡기 위해 의미 없는 요새에 더 열심히 집착하고 어떻게든 의미를 부여하는 것. 그건 10년이 넘는 백수 생활 동안 syo가 늘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는 짓과 완전히 똑같기 때문이다. 이들의 삶을 알레고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정말 좋겠다. syo에게 이 책은 비유도 상징도 아닌, 하다 못해 농담 한 마디 없는 거대하고 막막한 사막 같았다. 내 발목이 반쯤 파묻혀 있는 바로 지금 여기의 사막.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그의 나날들은 지나갈 것이다. 그제야 어떤 깨달음이 일어, 그는 못 미더운 눈으로 주위를 살펴보고, 이어 뒤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발소리를 느끼게 되리라. 자기보다 일찍 몽상에서 깨어난 사람들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오는 모습을 보게 되리라. 먼저 도착하기 위해 그를 따라잡으려는 사람들이다. 그는 삶을 맹렬하게 재는 시간의 고동소리 또한 듣게 될 것이다. 이제 창가에는 웃는 얼굴 대신 무표정하고 무관심한 얼굴들이 고개를 내밀 것이다. 만일 그가 길이 얼마나 남았는지 묻는다면, 그들은 여전히 지평선을 가리키겠지만 어떤 선량함이나 기쁨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한편 그는 친구들도 불 수 없게 될 것이다. 누군가는 지쳐서 뒤에 남는다. 또 누군가는 일찌감치 앞질러 가는데, 그는 고작 지평선에 있는 작은 점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저 강을 지나 10여 킬로미터쯤 더 가면 도착할 거라고. 그러나 길은 결코 끝나지 않고, 하루하루의 날들은 점점 짧아진다. 여행의 동반자들은 더욱 드물어지고, 창가에는 고개를 내젓는 창백하고 냉담한 얼굴들만이 보인다.

  드로고가 온전히 혼자 남을 때까지, 어두운 납빛에 물결도 없는 광활한 바다의 가냘픈 흔적이 지평선에 나타날 때까지 그럴 것이다. 어느덧 그는 지칠 테고, 거리에 있는 집들의 거의 모든 창문은 닫혀 있을 것이며, 간혹 드물게 보이는 사람들은 슬픔에 잠긴 몸짓으로 그에게 대답할 것이다. 좋은 것은 뒤에, 아주 뒤에 있는데, 그가 모른 채 그 앞을 지나쳐버렸다고. , 되돌아가기에는 이제 너무 늦었고, 뒤에서는 그를 쫓아오는 무리의 웅성거림이 점점 크게 들려온다. 하지만 텅 빈 하얀 길 위에서, 그들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_ 디노 부차티, 타타르인의 사막

 

 

 


204. 한 컷의 인문학

권기복 지음 / 웨일북 / 2020

 

에바 일루즈, 엘리자베트 벡-게론샤임, 한병철, 앤서니 기든스, 벨 훅스, 모리치오 비롤리, 찰스 테일러, 퀜틴 스키너, 필립 페팃……. ‘한 컷이라는 수식어를 단 표제는 초보 독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런 것 치고는 인용되는 이들의 구성이 놀랍도록 새롭다. 플라톤이나 마르크스 같은 전통의 강자들도 등장하지만, 허어, 필립 페팃이라는 양반은 그 존재 자체를 처음 알았다. 정말 묘한 책이 아닐 수 없다.

 

과거에는 사랑의 아픔을 자기 안으로 받아들이고 성장한다는 삶의 보편저 서사가 있었다면, 이제 사랑의 아픔은 필사적으로 피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사랑은 이제 어쩔 수 없이 나의 자존감을 걸고 뛰어들어야 하는 영역이, 실연은 삶을 뒤흔드는 재앙이 되었다.

  실패와 아픔은 자아를 좀먹는다. 다시 일어서기 힘든 세상이니까. 이제 실패를 두려워하는 만큼 진지한 사랑을 하려는 사람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타인을 사랑하느라 에너지를 소비하느니 그 시간에 스스로를 사랑하는 게 더욱 합당하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이른바 나르시시즘의 시대가 도래했다.

_ 권기복, 한 컷의 인문학

 

 

 

--- 읽는 ---

백의 그림자 / 황정은

그러라 그래 / 양희은

프로페셔널 스튜던트 / 김용섭

호빗 / 존 로날드 로웰 톨킨

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왔는가 / 제이컵 솔

죽은 백인 남자들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 / 도나 저커버그

틀리지 않는 법 / 조던 엘렌버그

해커와 화가 / 폴 그레이엄

우리말 교실 / 조현용

철학 한 입 / 데이비드 에드먼즈, 나이절 워버턴

데이터사이언스 입문 / 타케무라 아키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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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1-06-17 2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오셨어요~ 기다렸어요~ 이유경 선생님의 글에 대한 평에 공감하는 바입니다. syo님이 사랑하는 복숭아의 시절이 다가오네요^^

syo 2021-06-18 00:24   좋아요 2 | URL
간만에 잠수가 길었습니다 ㅎㅎㅎㅎ 언제나 기다려주시는 독서괭님^-^
올해 복숭아는 맛이 있기를 기원하고 있어요. 맛있다는 소문이 들려오면 또 100복 100북을 도전하는 것으로....

다락방 2021-06-17 2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쇼 선생님의 이렇게나 좋은 글에 댓글이 없는 건 너무 좋은 글이기 때문인가요..
이유경 선생님 측근이라 이런말 하는 거 맞습니다.
그럼 이만..

syo 2021-06-18 00:24   좋아요 1 | URL
앜ㅋㅋㅋㅋㅋ 선생님, 여기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1-06-17 2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슬슬 모셔 놓은 백의 그림자를 펴 볼까 합니다. ㅎㅎㅎ

syo 2021-06-18 00:25   좋아요 2 | URL
문득 황정은 선생님을 복습할 때가 되었다 싶더라구요.
오랜만에 읽어도 너무 좋은 <백의 그림자>
 

 

멸치로도

 

 

 

1

 

떡볶이를 먹고 책상 앞에 다시 앉았지만 여전히 첫 문장은 나오지 않았다. 첫 문장만 있다면 모든 게 있을 텐데, 첫 문장이 없어서 아무것도 없는 광막한 백지가 있었다. 그리고 백지를 마주 보며 아무 생각도 없는 syo가 있었다.

 

 


2

 

그러다 친구가 보내준 링크를 타고 금희 누나가 쓴 글을 읽었다. 무려 현대식품문학이라는 혁신적인 지면(?)에 실린여름의 앤초비라는 엽편소설이다. 여름의 풀벌레 소리를 듣고 있던 우리 둘의 대화는 이내 끊겼지만 그 밤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뚜렷하게 서로가 서로의 옆에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라는 단정한 마지막 문장 아래로 간략한 작가 소개, 그 아래로 은빛 멸치 사진과 상품 보러가기링크, 냉 멸치국수 레시피 링크가 따라붙고, 그 아래로 울릉도 건오징어(375g), 딱새우(200g), 볶음땅콩(300g) 등의 관련 상품 30건이 노출되는 식이었는데, 여러모로 대단했다. 금희 누나의 글로 멸치를 팔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그러니까, 멸치를 살 생각이 없거나 살까 말까 망설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장바구니에 정치망 은빛 멸치를 투척하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파워를 금희 누나의 글 속에서 발견해내다니, 기획자도 누나도 모두 대단했다.

 

문학으로 앤초비 구매를 독려하는 목적과 멸치로 문학의 구매를 독려하는 목적이 절묘하게 버무려진 이 짧고, 짧아서 찐한 글의 첫 문장을, 금희 누나는 이렇게 적었다.

 

서로의 마음을 긁은 뒤에 떠난 휴가는 당연히 즐겁지 않았다.”

 

완벽하진 않을지 몰라도 완벽으로 다가가는 첫 문장이다. 이어서 우리가 도로를 달리고 달려 남해까지 흘러든 건 그렇게 멀리 가고 싶었다기보다는 이런 상태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면 영영 되돌릴 수 없는 나쁜 상태를 맞을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을 것이다.” 라는 조금 긴 문장이 이어지는데, 이 두 번째 문장은 내용으로 첫 문장을 보충하는 동시에 그 길이로 첫 문장의 간결함을 돋보이게 하는 방식으로 첫 문장을 완벽 방향으로 조금 더 밀어준다. 다음 문장은 더 이상 대화하지 않게 되는 것이 가장 나쁜 상태라고 남편은 말하곤 했다.” 인데, 긴 문장 다음에 다시 간결한 문장을 내려놓아서 좋았다. 짧길짧. 나라면 이다음에 다시 간결한 문장을 선택할 것이다. 짧길짧길보다는 짧길짧짧이 아름답지! 누나가 고른 다음 문장은 나는 그보다 더 나쁜 건 지금껏 했던 대화들은 어디로 흘려보냈는지 잊은 채 도대체 뭐가 문제야?’ 하고 되묻는 상태라고 생각했다.” 였다. 그러니까 대충, 짧길짧중. , 이런 수를. 언제나 그렇듯 누나는 이긴다…….

 

< 여름의 앤초비 / 김금희 >

 

 

 

3

 

문제는 언제나 첫 문장이다. 첫 문장은 시작의 끝인 동시에 끝의 시작이다.

 

 

 

4

 

엽편의 아름다움은 읽기만큼 쓰기에 욕심을 내는 사람에게 더 선명하다. 짧은 글일수록 문장은 밀도를 요구한다. 문장이라는 물건이 지니는 매혹적인 특성은, 한 것, 그러니까 빽빽한 것이 곧 뻑뻑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으로부터 온다. ‘고밀도의 가벼운이라는 수식어가 붙어도 어색하지 않은 희귀한 문장들을 만나면 아낌없이 전율해주는 것이 참된 독자의 태도라고 믿는 편이다. 엽편은 짧아서, 짧기 때문에, 짧음으로써 그 전율적인 문장을 내 손끝에서 구현해보겠다고 달려드는 욕심쟁이들의 좋은 선생님이 된다.

 

 

 

5

 

금희 누나는 심지어 멸치로도 한다. syo는 징징거리지 말자.

 

 

 

6

 

찾아보니 정세랑 선생님의 글도 있었고, 김연수 선생님의 아직은 봄이니까, 미나리는 얼마든지도 있었다.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오래 전, 그러니까 지난 세기에 일어난 일이다.” / 미나리는 얼마든지, 아직은 봄이니까, 그러니까.”

 

마지막 문장을 보고, , 하는 탄식이 나왔다. 저런 건 syo가 요즘도 종종 마무리 투수로 써먹는 문장인데……. 과연 김연수에서 시작해 김연수를 거쳐 마침내 김연수에 도착하던 syo의 독서수련시절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 읽은 ---



197. 하루 5분의 초록

한수정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

 

그림은 귀엽고 말은 다정하다. 잘 살펴보면 우리 주변의 식물들이 종종 그렇다. 잘 살펴봄에는 하루 5분의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5분의 시간을 설명하고 마련하는 데는 물리학이 아니라 심리학이 필요하다. 물리적으로 시간은 늘 있고, 단지 그 시간이 심리적으로 더 많이 있거나 더 적게 있거나 한다. 살펴보는 기술은 정말 소중한 동시에 유용한 기술이라서 배울 기회를 만나면 반드시 배워두고 싶다. 5분은 오히려 싸게 치는 것




 


198. 소설 제주

전석순 외 / 아르띠잔 / 2018

 

여섯 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읽으면서는 하나하나 다 짚고 이야기해보자 했었는데, 네 번째 작품인 이은선 선생님의 귤목에서 어어어 하기 시작해서, 다섯 번째 작품인 윤이형 선생님의 가두리를 읽는 순간에 그냥 다 포기하고 읽기나 열심히 했다. 윤이형 선생님을 진짜 어떡하면 좋을까. syo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도 아니면서 syo에게 가장 많은 밑줄을 선사하는 이 신비로운 선생님을.

 

그런데, 김경희 선생님의 등장인물들은 말투가 왜 그럴까?

 

여자는 시선을 조금 먼 곳에 던졌다. 멀리 무언가가 열심히 햇빛을 튕겨내고 있었다. 누군가 혼잣말처럼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지만 파도 소리 때문에 확실하진 않았다. 하지만 귀를 기울여보면 아이의 목소리를 골라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벨롱장은 그쯤일지도 몰랐다. 남자와 옥신각신하는 동안 이만큼이나 걸어온 건가 싶었지만 여자는 그럴 수도 있다는 쪽에 무게를 뒀다. 거기쯤에 체험학습을 나온 아이가 있어 꽃잎이 그려진 책갈피나 어디에 써먹을지 알 수 없는 구슬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을 것이었다. 이제 여자는 아이가 물건을 파는 쪽이 아니라 사는 쪽일 것만 같았다. 어쩐지 자신이 직접 만들어서,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게…… 아이에겐 없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대신 그런 물건을 찾아 종종거리며 벨롱장을 돌아다니고 있지 않을까. 딱히 무엇을 사야 할지 알 수 없지만 사고 나면 꼭 필요했다는 생각이 들 것이었다. 어쩌면 그동안 책갈피나 구슬 없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의아할지도 몰랐다. 끝내 그것들 없이 살아온 시간이 다 거짓말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다. 벨롱장은 그런 곳이니까.

_ 전석순, 벨롱

 

 

 


199.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김신지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

 

사건이라는 용어를 철학적으로, 그러니까 그 사건을 통과한 사람을 다시는 그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만드는 단절의 자리에 꽂아두는 깃발처럼 생각한다면, ‘기록하기로 한다는 것은 당연히 사건이다. 한번 기록에 뜻을 품은 사람은, 저마다의 사정으로 인해 짧거나 긴 시간 동안 기록을 정지할 수는 있어도 결코 종료할 수는 없게 된다. 그런 이유로 세상에는 기록하는 사람과 기록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기록하지 않아도 사는 데 특별한 불편함은 없다. 게다가 오늘날은 딱히 내가 하지 않아도 세상이 나에 대해 기록한다. 오히려 기록되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판. 이런 세상이다 보니 기록의 필요성은 더 옅어지는 것 같다. 그러면 기록하는 사람은 왜 기록하는가?

 

사실 그냥 하는 것 같다. 시작할 때는 의도가 있었지만 습관이 되는 순간 의도는 희미해진다. 그저 기록하는 내가 있을 뿐. 기록을 통해 뭔가 얻어져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좋은 내가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기록하는 사람이 이 책을 읽고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이 책을 읽었다는 기록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기록하지 않는 사람이 이 책을 읽고 기록하는 사람이 된다면, 조만간 그 사람에게도 이 책은 기록으로만 남을 것이다. 기록하는 사람에겐 동력이 불필요하니까. 기록하지 않는 사람이 이 책을 읽고도 기록하지 않는 사람으로 남는다면 이 책은 기록으로조차 남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거의 대부분의 독자에게 하나의 과도기적존재로만 작동할 것이다. 올라간 후에는 늘 치워지는 사다리처럼. 생각해보면 사실 그런 대접을 받는 책들이야말로 진짜 의미가 있는 것들이다.

 

기록이라는 단어는 기록할 기()’기록할 록()’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적고 또 적는 셈이죠. 사전적 뜻은 주로 후일에 남길 목적으로 어떤 사실을 적음. 또는 그런 글.” 현재에 서서 후일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지금 이 순간을 미래로 부치고 싶어하는 사람일 겁니다. 그는 아는 거예요, 지금이 단 한번뿐이라는 걸. 같은 순간을 절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걸. 그러니 기억하고 싶다면, 이 순간을 적어서 미래로 부쳐두어야 한다는 걸.

  기록한다는 것은 무엇을 기억할지 정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살면서 마주치는 모든 것을 기록할 순 없으니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더 중요해지고, 덜 중요한 것은 덜 중요해지겠죠. 그게 무엇이 되었든 자기만의 기록을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시간을 다른 방식으로 겪게 됩니다. 하루가 촘촘해질 테니까요. 기록해둔 지금은 분명 미래에서 우리를 기다려줄 테니까요.

_ 김신지,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200. 약한 연결

아즈마 히로키 지음 / 안천 옮김 / 북노마드 / 2016

 

아즈마 히로키는 좀 재미있는 것 같다. 얇은 책 두 권을 읽은 것에 불과하지만…….

 

이 책은 자기계발서라고 봐도 된다. 역시 독자의 마음이란 사람의 마음의 부분집합이어서, 괜찮게 생각하는 사람의 글은 장르에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괜찮아 보이는 모양이다. 철학을 가지고 생활로 내려와 어슷비슷한 말을 해도 사이토 다카시는 싫어서 까는 거고, 아즈마 히로키는 좋아서 빠는 것.

 

인터넷은 기호로 구성된 세계다. 글자만의 얘기가 아니다. 음성과 영상도 마찬가지로, 결국 인터넷은 인간이 만든 기호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터넷에는 누군가가 올려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만 있다. '표상 불가능한 것'은 거기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인터넷은 무의미하다, 정말 중요한 것은 말로 할 수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런저런 불만이 있지만 우리는 인터넷과 언어에 의존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말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평소와는 다른 검색어로 검색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해 분투할 때 그 말은 원래 의도와 조금 다른 방법으로 전달된다. 철학적 표현을 쓰자면 '배달 오류'가 일어난다. 우리는 이 배달 오류를 통해 말로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더라도, 말로 할 수 없는 것이 이 세계에 존재한다는 사실만큼은 알게 된다. 한마디로 기호를 다루더라도 기호가 되지 않는 무엇이 세계에 있다는 사실에 대한 외경을 잊어서는 안 된다.

_ 아즈마 히로키, 약한 연결

 

이런 문장은, 독자의 콧잔등에 어떤 색의 안경이 올려져 있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해석된다. 밉게 보면, , 이놈의 자기계발서가 다 그렇지, 또 뻔하고 모호한 이야기를 뭐 있는 척 해놨네- 하고 끝날 수도 있고, 곱게 보면 좋은 말씀이지, 훌륭한 말씀이야, 자기계발서답지 않게 수준이 높은데- 하며 지나가고 그러는 것이다. 그러니까 책의 훌륭함을 논할 때는, 이게 라면인가 끓여놓은 뿌셔뿌셔인가도 중요하지만, 먹는 사람이 누구이며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도 잘 살펴야 한다는 지극히 뻔하고 당연한 결론.

 

 

 

--- 읽는 ---

타타르인의 사막 디노 부차티

포옹 정호승

내가 누구인지 뉴턴에게 물었다 김범준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 고미숙

우리에게는 헌법이 있다 이효원

약의 과학 크리스티네 기터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 / 이유경

이토록 매혹적인 고전이라면 / 홍진호

한 컷의 인문학 / 권기복

라캉의 주체 / 브루스 핑크

무사시노 외 / 구니키다 돗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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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1-06-08 12: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다른 것보다 말이지요. 김금희가 누나에요? 그것만 말해봐요 ㅎㅎㅎㅎㅎ 그래요? 김금희가 누나에요? 🤭

syo 2021-06-08 12:47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ㅋㅋ 명백히 누난데요? 형아는 아닐거잖아......

단발머리 2021-06-08 12:50   좋아요 4 | URL
김금희씨 보소서. 누나랍니다.
김금희씨는 쇼님 누나래요. 누나~~ 🤭🤭🤭🤭🤭🤭🤭🤭🤭🤭🤭

syo 2021-06-08 13:04   좋아요 5 | URL
헤헤, 잘 쓰면 다 형 누난데 이 누나는 실제로도 누나라서 부담없는 누나임. 😁

반유행열반인 2021-06-08 13: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진짜 어마어마한 마케팅이라고 생각했는데 ㅋㅋㅋ더현대 투홈의 멸치와 마른어물들은 너무 비싸네요…. 그래도 금희언니 쪽글이라도 얻어 읽어 행복했다…

syo 2021-06-08 14:18   좋아요 3 | URL
이런 기획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멸치 말고도 갈치 참치 개복치....

새파랑 2021-06-08 14: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ㅋ 댓글 보고 김금희 작가님 나이 검색해 봤네요 ㅎㅎ 금희누님 완전 동안이시네요^^

syo 2021-06-08 14:18   좋아요 4 | URL
ㅎㅎㅎㅎㅎ 금희 누나 동안 누나....

독서괭 2021-06-08 15: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윤이형 작가님 잔뜩 칭찬해놓고, 김경희 작가님에게 질문을 던져놓고, 전석순 작가님의 글을 인용해놓은 건, 그러니까.. 궁금하면 직접 읽어보라 이거죠? ㅋㅋ 이런 영업전문syo님 같으니라구..

행복한책읽기 2021-06-09 06:41   좋아요 2 | URL
저도 이건 먼 수작이지 했는데, syo님 영업전략이었군요^^

syo 2021-06-17 18:59   좋아요 1 | URL
특별히 그런 의미가 있었던 것은 아닌데, 뭐 어떻게든 이름들을 많이 많이 넣어보자 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은 또 아니고..... 결론적으로 영업이 되었다니 ㅋㅋㅋㅋㅋㅋㅋ

답이 늦었습니다 ㅎㅎㅎ

붕붕툐툐 2021-06-08 2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yo님이 독서수련기간이 있었다고요? 그 커리큘럼 좀 공유해 주십쇼~

syo 2021-06-17 19:02   좋아요 1 | URL
누구에게나 코흘리던 시절은 있기 마련이니까요.
어디 한 번 콧물 자국 확인해 보고, 재밌게 생긴 콧물 자국이면 페이퍼로 올릴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ㅎㅎㅎ

행복한책읽기 2021-06-09 06: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호. 김금희 작가가 syo님 누나였군요. 싸인 좀 받아주세요^^

syo 2021-06-17 19:00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 진짜 우리 누나였으면 제가 지하철 대신 누나를 업고 다녔을 텐데 말입니다.....

유부만두 2021-06-14 14: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떡볶이를 드셨군요. 매운맛입니까?

syo 2021-06-17 18:57   좋아요 1 | URL
카레떡볶이였습니다. 어떤 맛이었느냐 하면 망한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