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별스런 너에게
이창미 지음 / 프로방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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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뿌리

나뭇가지는 바람이 흔드는 대로
몸짓을 한다
꽃잎도 덩달아 바람과 눈 맞추려
바람 따라 흔들린다

그 누가 그 무엇이
나의 몸과 눈에 콩깍지를 씌우더라도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뿌리로
나무는 머문다.

바람에 흔들려 낙엽 되어 떨어져도
바람에 메말라 헐벗은 나뭇가지로 남아도
바람 타고 하늘로 가지 뻗는 나무가 되리라. (-65-)


활짝 피어 봐

아침이 오는 길목에
추위 또한 자주 변덕을 부려도

성큼 다가온 듯
아침의 향기가 스며들긴 하여도

활짝 핀 하루
늘 새롭고 늘 활기차게
오늘도 문을 열고 큰 걸음 한다

오르막 내리막 힘들어도
움츠리지 말고 눈 동그랗게
어깨 쫙 펴고 땅을 올려 본다

부딪치기 싫어
꼬리 접지 말고 가 본다
활짝 피어 본다.

오늘 하루 여정이 
기쁨과 행복으로
활짝 웃을 수 있는 희망으로
햇살은 좋다

활짝 피어 봐 (-126-)


토할 수 있는 힘

먹어선 안 될 걸 삼켰다
소화가 될 리 없다
토하고 싶다.

고통스럽게 울컥 올라온다
꺼낼 수도 없다

가슴에 박혀 답답함만 호소한다
내가 삼킨 것 그 누구도 모른다
토하고 싶다

세상엔 삼킬 수 없는 일이 참 많다
삼킬 수 없는 것을 토할 수 있다면
토할 수 있는 힘이 남아 있다면 
토하고 싶다. (-218-)


인생길 함께 하는 사람

필요한 곳에서 빛나게 살자

내가 필요할 때 없는 사람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

좋을 때 나와 함께 하는 사람
힘들 때 나를 떠나는 사람

우연은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인가
좋은 사람으로 만나 인연에 공들여
그리운 사람으로 남자

행복은 모르게 스며들어
자리 잡지 못하면
모르게 가버리네

인생길 함께 하는 사람이 있다면
소중한 행복이리라. (-267-)


가을이다. 가을은 시가 생각나는 계절이다.높고 푸르른 하늘 위에서 때로는 내 마음을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그러한 좋은 시, 내 마음 속 응어리진 감정들을 표출할 수 있는 그런 좋은 시들이 생각난다. 시는 우리 삶에 스며들어서 내 마음을 흔들어 놓게 된다. 시는 커피와 잘 어울리는 문학이었다. 그리움을 시로 쓰면 시는 그리움이 되어지고, 슬픔을 시로 쓰면 시는 슬픔이 되어졌다. 시인 이창미 <시작이 별스런 너에게>는 가을에 어울리는 시로서 자신의 삶과 희노애락을 투영하고 있었다. 삶에 대해서 어느 순간 불쑥 들어오는 요동치는 감정들, 그 감정들조차 보듬어 안고 끌어안고 살아가리라. 우리에게는 이창미 시인의 이러한 의지와 용기가 필요하다.그리움을 회피하지 않고, 내 안의 그리움을 인정하면서 살아가는 그런 삶이 말이다.슬픔을 회피하지 말고 내 안의 슬픔을 인정하면서 살아가야겠다. 커피 한 잔 속에는 눈물 젖는 그리움이 있으며, 흔들리는 마음을 우뚝 서있는 나무의 가지로 투영하고 있었다. 삶에 대한 의지, 자신에 대한 의지가 돋보였다. 세상 속에서 자신의 존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후회하는 삶이지만, 그 삶조차도 나에게 소중한 삶이리라, 시는 우리의 삶을 노래하고 있기에 우리는 시를 통해서 위로를 얻게 된다.나의 삶과 너의 삶이 다르지 않다는 것, 나의 감정과 너의 감정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시 한 편 한 편 속에서 느끼게 되었다. 살아가야 한다는 의지, 나에게 주어진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곰곰히 생각하게 되는 시집, 그런 시집이 내 앞에 놓여져서 참 좋다.반드시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하지 못하지만,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는 삶을 나는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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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의 어머니
조열태 지음 / 브레인와이즈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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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이 빨리 정신차리셔야 돼. 어머님 아버님이 말년에 행복하게 지내시지 못하면 자식들도 편치 못하게 돼.지금 어머님이 굉장히 많은 증오심을 가지고 있는 줄은 당신도 알거야.조강지처를 안타까워하고 아껴줄 줄 알아야 하는제,이건 아버님 혼자 즐거우시면 된다는 식이니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 사실 나도 아버님이 굉장히 실망이야.(-75-)


의사는 뜸들임 없이 치매라고 밝혔다.어렴풋이나마 혹시 어머니가 치매가 아닐까 의심은 했었다.그래도 막상 그렇다는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얼떨떨했다.우리 엄마가 치매라....이제 다시는 정상으로 돌아올 수 없지 않은가! 막막하기도 했다. (-142-)


"고모,만약에 아버지가 경제권을 모두 엄마에게 넘기고, 아파트도 엄마 명의로 해주고, 집에 있는 물건에 손대지 않는다면 그때는 그냥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
"너그 아버지가 그렇게 해주겠다고 하더나?"(-210-)


"네 정신병원이 아닙니다.정신병원하고 같이 붙어 있습니다.들어가는 입구 왼쪽이 정ㅅ힌병원이고 오른쪽이 노인 전문병원입니다.할머니 같은 경우는 우선 주사로 약물 주입시켜 약에 대한 적응력을 기르게 하면 됩니다.나중에 부작용 없이 혼자 약을 들 수 있게 말이죠."(-298-)


"이번 여름에 꼭 얼음골에 데리고 가다오.휴가 때 서울에서 자식들이 내려와서 전부 어데 데리고 놀러 가 준다고 이웃에서 자랑할 때마다 나도 거짓말로 우리 자식들도 내려와서 같이 어데 갔다 온닿하고 말 한다 아니가?" (-360-)


치매 , 참 무서운 병이다.그 증상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다양하고, 가벼운 치매에서 중한 질병으로 생각할 수 있는 치매도 있다.인지 장애를 가진 치매도 있으며, 뇌손사으로 인한 치매도 있다. 특히 알코올성 치매는 치유가 불가능할 정도로 중독적이며, 상대적으로 폭력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치매에 대한 인식이 열악한 반면, 치매에 대한 불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막연한 불안과 근심을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은 소설이며, 주제가 치매다. 주인공 봉수와 경수는 형제이며, 부모님의 이상한 행동 변화를 감지하게 된다. 학교에서 교감을 거쳐 교장까지 역임하셨고, 퇴직 이후 게이트볼 회장까지 역임을 하셨던 아버지가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일들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놓치게 되는 문제들을 이 소설은 짚어 나가고 있었다. 엄마의 이유없는 의심 증상은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고, 가족을 때로는 고통스럽게, 때로는 가족들을 난감하게 할 때가 있다.소설에서 아빠의 외도 증상에 대해서 , 자신의 집 문서나 돈을 가족이 아닌 남에게 쓴다는 사실에 대해 어머님의 말만 믿고 오판을 하게 되고, 가족들은 발칵 뒤집히게 된다. 흥신소에 의뢰해 아버지를 추적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자칫 잘못된 길로 빠질 수 있었다. 가화만사상이라 하였던가, 가족에게 집안의 평온은 첫번째 요건이다. 아버지의 이상한 행동에 원인이 있는게 아니라 어머니의 이유없는 의심 증상에 원인이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현상에 대해서 해석을 잘못하게 되고, 어머니에 대한 과거의 기억과 경험과 직관적인 사고가 모든 책임을 아버지에게 되돌려 놓는 잘못된 오판을 하게 된다. 그 과정 하나 하나가 이 책 속에 세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현상과 상황에 대해서, 누군가 하는 이상한 행동에 대해서 집안의 가족들이 바라 보는 시선은 사뭇 다르다. 각자의 안목의 차이, 경험의 차이에서 비롯된 삶의 패턴 속에서 우리는 잘팡질팡하게 되지만 결국에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나가게 되었다. 길어야 7년을 살아가는 치매 환자들에 대한 특징, 그들의 치매 속에 숨어있는 우리의 모순된 생각들이 곳곳에 스며들고 있으며, 지혜로운 선택과 결단만이 가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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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리는 디자인의 비밀
최경원 지음 / 성안당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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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건축에 비해 현대 건축이 이룬 근본적인 혁신으로 재평가되는 것은 '공간'이다.서양 현대 건축에서 나타나는 진정한 혁신은 건축을 보는 시선의 변화, 즉 건물 밖이 아니라 건물 안을 보는 관점의 변화였다. 대부분 현대 건축가들이 장식 없는 건축만을 볼 때 현대 건축이 가져야 할 진정한 가치란 '공간'임을 인식했던 선구자적 건축가는 바로 프랑스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이다. (-13-)


병산서원은 우리나라 고건축에서도 손에 꼽히는 명작이다.입교당 마루에 올라서서 밖을 바라보면 멋진 풍경과 더불어 왜 그런 평가를 받는지 금방 알 수 있다.안도 타다오의 건축에서 지향했던 접근들이 우리 고건축에서는 그보다 더욱 정교한 논리와 편안한 자연을 통해 실현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66-)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기능주의 디자인을 보면 장식이 없고 생산성이 좋은 기하학적인 형태로만 디자인되어 있다.예쁜 색이나 아름다운 비례 같은 것은 강조되지 않았다.이렇게 독일에서 시작되었던 기능주의 디자인은 미국에서 실용주의라는 이름으로 발전한다. 어느 편으로 보나 군더더기 없는 미니멀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이러한 디자인을 모더니즘 디자인이라고 이름까지 붙이게 된다.(-116-)


대체로 디자인은 예술이 아니라고 하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단순하다. 디자인은 순수미술이 아니라는 것이다.즉 디자인은 생산 체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며 대중을 위한 일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순수 미술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디자인은 실용품을 대량으로 찍어내는 일이고, 순수 미술은 작가의 작품을 단 하나만 만들기 때문에 디자인은 절대로 순수 미술이 될 수 없다는 논리는 근거가 없다.순수 미술이 예술인 것은 맞지만, 예술의 범주 안에는 순수 미술만 있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171-)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디자인했던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디자인한 커피 세트를 보면 그런 경향을 잘 읽을 수 있다. 커피 세트 디자인이라고는 하는데 어디를 봐도 이것이 커피 세트라는 실마리를 잡기 어렵고 도저히 용도를 알 수 없는 형태이다.이것이 실생활에 사용되는 물건이라는 것부터 의심스럽다.물론 알고 봐도 커피 세트라는 것이 잘 믿어지지 않는다. (-258-)


디자인은 현대의 산업 구조와 맥을 같이 하게 된다.실용성을 강조하고, 그 실용성이 자본 취득에 도움이 될 때 우리는 그것을 디자인이라 부르며,다양한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다.여기서 디자인은 편협하고, 다양성을 중요하다 말하지만 획일성을 띄고 있다.자본의 힘이 강한 나라의 디자인이나 주류의 디자인이 널리 퍼지고 쓰여지는 이유는 편협성과 획일성을 드러내는 단적인 예이다. 대표적으로 예술적 감각이나 디자인으로 효용가치가 높다 하여도, 최빈국 나라들의 디자이너와 그들이 만든 디자인이  널리 쓰지 않고, 지역적인 이유, 그들이 만든 디자인이 소비되지 않는 작금의 현실을 보면 그렇다. 이런 모습은 최근의 현상이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주류는 전쟁의 원흉인 독일이다. 독일이 추구했던 디자인, 그들이 생각하는 디자인적 가치들을 받아들이고 소비해온 것을 보면 우리가 주류의 디자인에 얼마나 맹목적으로 다가가는지 확인할 수 있다.여기서 한국의 디자인이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고, 관심 가지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한국의 한옥 문화, 그안의 자연미를 전세계 글로벌 국가의 디자이너들이 눈여겨 보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동양의 디자인 하면 일본의 디자인을 손꼽아왔던 이유도 여기에 있으며, 중국의 힘이 일본을 압도하면서, 이제 동양의 디자인은 읿본에서 중국으로 이전되고 있는 현상이 도드라지고 있다.


디자인하면 유럽이 떠오른다. 그리고 미국의 디자인의 특징도 나열해 볼 수 있다.프랑스와 독일은 서로 다른 개성을 드러내고 있으며, 그 안에 디자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미적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디자인은 순수 예술과 차별화하고 있다. 철저히 대중성에 기반을 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 대중성에 도취하며, 널리 쓰고 싶어한다. 과거 기하학적인 구조의 디자인을 추구하고 그 쓰임새를 강조했다면, 이제는 디자인에 파격을 주는 독특한 개성을 추구하는 디자인을 우리는 수용하고 있다. 상식을 파괴하는 디자인, 어떤 용도로 쓰여질 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디자인에 호기심을 느끼고, 모방하고 싶은 심리는 디자인 트렌드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았다. 디자인은 항상 시대의 변화에 따라간다. 때로는 과거의 디자인을 다시 끌어와 대중적인 디자인으로 탈바꿈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디자인에 대한 개념 파괴,과거의 획일화된 디자인에서 벗어나 자연미를 강조하는 자연스러운 디자인을 추구하는 이유는 시대의 변화와 트렌드와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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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조조전 9 - 북방 통일, 중원의 패주
왕샤오레이 지음, 하진이.홍민경 옮김 / 다연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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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가는 병사를 대동하고 서둘러 막사를 나갔다. 조조는 책사들의 부축을 받으며 대책 논의에 들어갔고, 한참이 지나서야 화타를 떠올리며 다시 손을 뻗어 진맥을 보게 했다.
"어떤가? 내 보기엔 거의 다 나은 듯 하네."
"과연 명공의 병은 심장과 간 사이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하하하!"
조조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45-)


하유는 격노하여 심배를 향해 채찍을 휘두르여 했다. 하지만 그보다 한 발 앞서 누군가의 채찍이 심배를 향해 날아갔다.바로 신비였다.신비는 수비군의 성을 바치고 투항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군령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무조건 말을 달려 성로로 달려갔다. 성로 안은 시체들로 가득했고.그의 딸 헌여을 제외한 수십 명의 잔혹하게 죽어 있었다. 신비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딸을 안고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미친 듯이 심배를 찾아 해맸다. 그렇게 원수를 눈앞에서 보게 되자 신비의 눈이 뒤집혔고, 무조건 그를 향해 채찍을 휘두르며 욕설을 퍼부었다. (-136-)


"소인은 원씨에게 큰 은혜를 입었고 한때 원담 밑에서 관료로 있었지요. 죽어야 한다면 시신을 거둔 뒤 기꺼이 그러겠습니다."
미음 약한 중장통이 조조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옛 주인을 잊지 않다니 의로운 인사입니다. 그냥 한번 봐주시지요."
사실 그가 그리 말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다. 왕수는 청주에서 명성이 자자했다. 그를 얻으면, 청주의 민심을 얻는 것이었다. (-249-)


염유는 고작 스물을 넘긴 청녀이었지만 이미 난세의 기인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그는 윶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양친을 잃고 사방을 떠돌다 선비족에게 붙잡혀 변방에 노예로 팔려갔다.그러나 그는 타고난 영특함과 친화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샀고, 호인의 언어를 배웠으며, 기마술과 궁술을 익혔다.심지어 선비와 오환 각 부족의 두목과도 친분을 쌓았다. 천하가 대란의 소용돌이에 빠졌을 때 그는 선비족을 선동해 조정에서 임명한 호오환교위 형거를 죽였고, 자신을 그 자리에 추대하도록 만들었다. (-381-)


선량한 거북이 오래 산다 해도, 언젠가 죽는 날이 올 것이고,
이무기가 구름 위에 올라타도, 끝내 멈지로 돌아가게 되리라.
늙은 천리마는 마구간에 누워 있으나, 그 뜫이 천리 밖을 내달라고,
사내대장부의 몸은 비록 늙었으나. 그 장대한 뜻은 아직 다하지 아니했네!
성공하거나 실패하는 것이, 반드시 하늘의 뜻을 따르는 것만은 아니리,
시로써 내 뜻을 읊을 수 있으니, 참으로 다행이리라!(-454-)


조조의 위세는 점전 더 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천하의 13개 주 중에서 7개의 주(사례,기주, 청주, 병주, 연주, 서주, 예주) 를 획득한 조조는 중국을 통일하려는 야심찬 꿈을 꾸게 된다. 그의 꿈이 현실이 되려면 먼저 원소를 넘어서야 했다. 조조는 먼저 원공로, 즉 원술을 넘어섰으며, 이제 원본초, 원소 차례이다. 그 시대는 난세였고, 그 난세의 영웅이 되었던 건 조조였다. 인재를 구하는데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조조는 인재가 비록 도덕적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신에게 충섬심을 발휘환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사람으로 쓰려 하였다.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때로는 산적으로 살아야했고, 때로는 해적이 되어야 했던 그들이 어느 새 조조의 주변부로 모여들고 잇었다.


삼국지 조조전 9번째 이야기는 원소의 몰락과 그 후계자에 관한 이야기다. 원소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그 후계자로 막내인 원상에게 원소의 후계자 겪인 대장군을 맡기는데, 그것은 또다른 원소의 패착이었다. 원소에게는 세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장남이었던 원담과 둘째였던 원희가 원상을 그냥 그대로 두지 않았을 것이다. 하북 땅을 점령하고 있었지만, 원소의 죽음 이후, 그 자리는 조조의 몫이 되고 말았다. 세 자식들 간의 권력 다툼으로 어부지리로 덕을 본 것은 조조였다. 살아남느냐 아니면 죽을 것인가, 그 경계선에 서서 자신의 냉철함을 드러내고 있었던 조조 곁에는 곽가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었다. 하지만 곽가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화타라는 명의가 있었지만, 곽가를 살리지 못하였고, 조조는 곽가의 죽음에 대해 큰 상실감을 느끼게 되었다.


원소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고, 그 잔해들이 곳곳에 흩어졌다. 조조는 원소가 사라지면 천하의 패권은 자신의 것이라고 쉽게 예단하였다. 하지만 원소가 남겨놓은 군량이나 군인들은 조조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자신만의 온전한 조직을 형성하고 있었던 10만 대군 원소였기에 가능하였고, 조조는 천하의 패권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적이었던 인물들을 포섭해 민심을 달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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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선생님
강성률 지음 / 작가와비평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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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들은 나라는 아이에게 관심조차 없다!'
두 손을 들어 올리는 모양도 취하고, 고함을 지르며 탁자를 내리치는 흉내도 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은 여전히 각각, 자신의 몸속에 다른 사람이 들어와 있는 것처럼 꺼졌다. 아니나 다를까.클라이맥스에 도달할 즈음 대사를 까먹고 말았다. 충혈된 두 눈으로 아무리 원고를 들여다봐도 연결되는 대목은 발견되지 않았다.(-44-)


불의의 접촉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민수는 백묵으로 책상의 한가운데에 '38선'을 그었다. 물론 상대방의 동의하에 체결된 신사협정이었다.그러나 공간이 협소하다 보니 책이나 공책, 지우개나 칼, 어떨 때는 신체의 일부분이 넘나들기 마련인 바, 둘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상대를 응징하곤 했다.(-106-)


1980년 1월 3일, 한 장의 편지가 도착했다.'2월 2일로 결혼 날짜를 잡았으니 그리 알라'는 김씨의 일방적인 통고.당사자와 일언반구 상의도 없이 결정을 내린 김씨의 처사가 당황스럽긴 했으되, 고대하고 있던 소식인 것만은 분명했다. 작년 봄, 그러니까 광주 상무대에서의 보병학교 훈련 시작 한 달 만에 외출을 했고, 바로 그날 민수는 약호식을 올렸다. 약혼한 지도 거의 1년이 되어가는 마당에 결혼을 미룰 까닭이 없었다.연천읍의 한 다방에 들어가 전화를 걸어갔다. (-169-)


하지만 정치는 어디까지나 정치, 민수로서는 교수직에 진출하는 것이 발등에 떨어진 일이었던 바, 그럼에도 인사문제는 좀체 풀리지 않았다.그러다가 마침내 전공분야마저 공채에서 사라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더 이상 버티는 것은 인간으로서 자존심 마저 버리는 일이라 여겨졌다. 농사를 짓건, 장사를 하건 그건 알바 아니었다.(-236-)


"김교수 ,날세."
"예, 아이고 선생님,그동안 잘 계시고요?"
부도라고 하는 쓰나미가 일상의 삶을 휩쓸고 지나간 다음, 얼마 되지 않아 전화가 걸려왔다. 학교로 그를 찾았던 일이 불과 작년 어느 때인데, 갑자기 웬일이실까?
"다름이 아니고, 우리 큰 아들을 이 참에 여워야 쓰겄넌디, 자네가 주례를 쪼까 서주어야 쓰겄네."
"예? 제가요?"
경제 위기가 아니더라도 주례는 서지 않기로 결심한 터, 거기에는 10여 년 전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딸과 관련이 있었다. (-307-)


상당히 묘한 소설이다.이 책의 주인공 민수는 1950년대 중반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이다. 그대 당시 대한민국은 격동의 대한민국이라 부를 정도로 6.25 전쟁 이후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내포하였고, 다이나믹하였으며, 인구 팽창이 현실이 되었다. 배고파도 아이를 낳으면 알아서 클거라는 사회적인 믿음, 아들이 살림밑천이라 부를 때가 있었다.그건 우리 사회가 제1차 산업혁명 체제 하에서 농업기반 경제구조였기 때문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민수가 다닌 백수남 초등학교는 원래 백수남 국민학교가 맞다. 지금이야 초등학교라는 명칭이 익숙하지만, 그 때 당시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로 불리었다. 민수는 국민학교 5학년에 다니고 있었고, 학급 부반장이었다. 아버지는 국민학교 기성회장이었고, 학교 내에서 특별한 위치에 있었다. 지금과는 너무 다른 그 분위기는 베이비붐 세대만이 느낄 수 있는 학교 정경이다. 그때 당시 대한민국에는 웅변 대회가 있었고, 웅변대회의 주제는 대부분 애국과 사회 문제를 엮어가는 것이었다. 때로는 반공을 웅변 속에 집어 넣는 경우도 있었고, 학교에서 웅변을 장려하게고 있었다. 민수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였기에 학급 내에서 주목 받게 된다.하지만 민수는 그런 현실이 싫었다. 7개를 틀리면 7대를 맞는 학급 내 반 친구들이 내심 부러웠으며, 1개 틀렸는데 100대를 때리는 선생님의 행태에 대해 억울함을 느끼게 된다. 그때만 해도 때리면 때리는 데로 다 맞아야 하던 시절이었고, 학생들은 감히 선생님께 대들지 못하였다.그래서 민수는 한개를 틀려서 100대를 꾸역꾸역 맞아가게 된다.


그렇게 민수는 5학년이 지나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명문 중학교에 입학하고, 명문 고등학교에 입학하였고, 명문 대학교마저 자신의 실력으로 패쓰하게 된 민수는 삶의 고비 고비때 마다 호랑이 선생님이 때린 회초리를 기억하게 된다. 자신에게 때린 매가 민수의 삶에 큰 변화를 주었고, 민수는 사회의 중추적인 역할, 대학교 교수가 된 이후에도 호랑이 선생님에게 깍뜻하게 대하였다. 돌아보면 이 책을 읽게 되면 지금의 정서와는 동떨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호랑이 선생님은 이제 사라졌으며, 자칫 아이들에게 매를 들었다가는 아이들에게 혼쭐날 수 있는 작금의 시대이다. 스마트폰이 우리 사회에 보급되면서 도리어 선생님의 권위가 떨어진 상태였다. 1960년대의 우리 사회의 교육의 현주소를 느낄 수 있는 책,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속담이 먹혀 들었던 그 시대의 온전한 자화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삶이라는 것은 이렇게 교차되고 있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과거의 한 모습이 그때는 익숙함으로 남아있었지만,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묘하게 어색하고,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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