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성수, 「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

‘차별은 어떻게 생겨나고 왜 반복되는가’라는 부제가 달린 책이다. 


차별이 반복되는 것과 관련하여.................... 


성소수자와 이주자에 대한 차별은 심각한 수준이지만 처리 절차에 대한 신뢰 부족, 관련 정보 부족, 보복 우려 등으로 문제 제기조차 힘든 상황이라 신고되지 않은 ‘숨은 차별’이 많다고 할 수 있으며, 국가 차원의 대응도 매우 부실하다.(54쪽)


사정이 이런데도 차별이 없기 때문에 차별에 대한 정책이나 법이 불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면 무지한 것을 넘어 무책임한 것이다.(54쪽)


흥미로운 것은 주저하고 침묵하는 정치인들도 약속이나 한 듯 “성소수자 인권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이주자 인권 보호도 중요하지만……”이라는 단서를 단다는 것이다. 원칙적 입장이라도 밝혔으니 다행일까? 아니다. 차별 문제가 제기된 지 이미 10여 년이 흘렀다. 구체적인 정책이나 입법으로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안 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55쪽) 





**












윌리엄 러츠, 「더블스피크」 

‘대중을 유혹하는 은밀한 이중화법의 세계’라는 부제가 달린 책이다.


이중화법이 넘쳐나는 이유와 관련하여.................... 


워싱턴의 한 커뮤니티 칼리지는 연방 고등교육법(HEA) 제3부에 따라 연방 정부가 지급하는 지원금 신청서에서 “학생 평가, 교육 전략, 학습 지원, 그리고 학생들이 만족스럽고 생산적인 삶으로 이어지는 기술과 지식을 기술과 지식을 습득하는 데 성공하도록 효과적으로 장려하는 개입 등의 종합적 과정을 조직하는” 것을 주요 목표 중 하나로 언급했다. 물론 “우리는 이 아이들에게 삶을 꾸려 나가는 법을 하는 데 필요한 내용을 가르치려고 한다”는 식으로 썼다면 지원금을 결코 받지 못했을 것이다.(88쪽)


왜 모호하게 말할까? 답은 간단하다. 교육계의 많은 사람들이 명료한 언어로는 충분히 인상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또 그 일을 해내기 위해 얼마나 똑똑해야 하는지를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듯하다. 어쨌든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라면, 그건 별로 대단한 게 아니라는 뜻이 되니까. 그래서 이중화법이 넘쳐난다.(88쪽) 


암스트롱은 한 연구를 인용하면서 과학 저널에 실린 논문을 읽는 학자들은 글이 명료할 때보다 이해하기 어려울 때 저자의 능력을 더 높이 평가했다고 보고한다. 또한 다른 연구들에서는 할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일수록 글을 모호하게 쓰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결론짓는다. 다시 말해, 다른 많은 전문 분야와 마찬가지로 학계에서도 이중화법이 이득이 된다.(90쪽)  

 




***












아리안 샤비시, 「우리에겐 논쟁이 필요하다」

‘우리를 분열시키는 이슈에 대해 말하는 법’이라는 부제가 달린 책이다. 


인종 차별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에서도 흑인은 이유 없이 체포될 가능성이 백인보다 다섯 배 높고 구금당하는 비율도 백인의 다섯 배에 달한다. 실험에 따르면 경찰과 민간인 모두 무기를 소지한 백인보다 무기를 소지하지 않은 흑인에게 총을 쏠 확률이 높게 나타난다. 실제 데이터를 보더라도 경찰에게 총격당한 흑인이 무기를 소지하지 않고 있던 경우가 백인의 두 배다.(131~132쪽) 


조지 플로이드가 살해당한 지 두 달 후, 경기장에서 무릎을 꿇고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에 연대를 표현한 선수들에 대한 반발로 일부 축구 팬들이 돈을 모아 ‘백인의 생명도 소중하다(White Lives Matter)’라는 현수막을 맨체스터 경기장 상공에 띄웠다.(142쪽)


반흑인 인종차별을 다스리려는 노력이 지나친 나머지 증거가 없는데도 백인이 역차별을 당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1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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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11-30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무지를 가장하여 무책임에 면죄부를 주고자 합니다.

희선 2025-11-30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은 누군가를 차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차별하기도 하겠습니다 말하기보다 행동하기가 중요할 듯합니다 그래야 할 텐데... 저도 잘 못하는군요


희선

yamoo 2025-12-01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슷한 3권의 책인데, 모두 분열을 일으키는 화법(말)에 관한 책인듯합니다. 저는 ‘착각‘시리즈를 모으다 보니, 맨 위 책이 눈에 확 띠네요! 구매대상 책으로 확정~~~
 

며칠 뒤면 12월이다. 앞으로 새해 계획을 세우는 이들이 많을 것 같아 ‘새해, 글쓰기에 도전하는 이들에게’라는 제목의 글을 골랐다.


....................  


오래전이었다. 신춘문예에 단편 소설을 응모하여 일곱 번이나 낙선한 뒤 드라마 작가로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는 다음 해에 신춘문예에 당선되기 위해 7년이나 습작 기간을 가졌으리라. 그런 긴 세월을 보냈기에 드라마 작가로 성공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은 실패할 때 배울 기회를 갖게 되는데 그 이유는 실패의 원인을 찾기 위해 애쓰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낙선할 적마다 자기의 소설 작품에서 부족한 점을 보완하려 궁리함으로써 성장과 발전의 기회를 여러 번 가졌을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그가 일곱 번 낙선한 건 좋은 경험이라 볼 수 있다.


나 역시 글을 쓰느라 노트북을 끼고 살았으나 오랜 기간 동안 성과가 없었다. 내게 '글쓰기'는 불러도 대답 없는 연인 같아 때로 맥이 풀렸고 때로 소질 없음을 탄식했다. 글쓰기를 포기할까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구점에 가서 공책 한 권을 사고 나면 언짢은 기분이 풀리곤 했다. 매일 글을 써서 그 공책을 글로 가득 메우고 나면 나의 글쓰기 역량이 지금보다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 새 희망의 길을 열어 주어서다. 우연히 유튜브 동영상으로 봤던 장면을 다시 보는 것도 새 희망을 갖게 했다. 높은 곳에 오른 다이빙 선수가 공중에서 세 번 회전한 후 멋지게 입수하는 장면이었다. 그것을 보면서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없구나 하고 희망을 가졌던 것이다. 그 다이빙 선수도 수없이 실패하면서 꾸준히 연습하여 공중회전을 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자, 나도 꾸준히 습작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번엔 밑바닥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야겠다. 언젠가 수영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도 모르게 깊은 곳에서 수영을 하게 되었다. 수영을 그만하고 싶을 땐 내 발이 밑바닥에 닿지 않아 당황했다. 물속에서 발버둥을 쳤으나 내 몸이 올라가지 않고 점점 내려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내 발이 수영장 밑바닥에 닿았다는 걸 알았다. 그제야 몇 번의 시도 끝에 밑바닥을 발로 차고 헤엄쳐서 몸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할 수 있었다. 내가 밑바닥에서부터 출발했기에 물속에서 무사히 나올 수 있었다. 이 일로 '밑바닥'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건강을 염두에 두고 어떤 운동을 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몇 년 전부터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다. 나로선 도전이었는데 활력을 얻고 싶어 용기를 냈던 것. 처음 발레를 시작할 때 밑바닥에서부터 배우는 게 좋았다. 왜냐하면 발레를 배우면서 나의 발레 실력이 수영장 밑바닥처럼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고 오로지 한 단계씩 올라가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계속 배울 예정이니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 발레 실력이 향상될 터였다. 발레만 그렇겠는가. 글쓰기를 비롯해 악기 연주, 그림, 외국어, 요리 등 뭐든 꾸준히 배우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실력이 향상되지 않겠는가. 실력이 점점 향상되는 것은 그 자체로 값지다. 최소한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게 될 테니까.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를 통해 운때가 맞아야 성공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운이 들어오는 때가 언제인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운때를 기다리며 꾸준히 노력하는 것뿐이다. 노력하다 보면 자신의 실력과 운때가 서로 만나서 결실을 거두는 날이 반드시 오기 마련이다. 물론 아무런 노력 없이 사는 자에게는 운때가 소용없다.


새해 계획을 세운 사람들이 많겠다. 요즘 글쓰기 강좌가 인기 강좌로 떠오른 것을 보면 글쓰기에 도전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 같다. 앞으로 이들이 전념을 다했지만 성과가 없다고 쉽게 단념하지 않기를 바란다. 목표를 이루려면 으레 실패라는 정거장을 거쳐야만 한다고 여기길 바란다. 실패했다는 것은 더 나은 인생을 위하여 분투했다는 것이고, 분투했으니 이전보다 높은 단계에 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실패한 횟수가 늘었다는 것은 자기의 글쓰기 역량이 그만큼 신장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를 믿고 목표를 향해 정진하는 과정을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

2023년 1월에 경인일보의 오피니언 지면에 실린 내 글을 <추억의 글>로 올린다.





(후기)..............................

주 1회로 인문학 강좌를 수강하고 있다. 수강생이 열 명이 넘는데 그중 책을 낸 이들이 몇 명 있다. 이번엔 세 명의 수강생이 책을 내어 합동으로 출판 기념회를 갖는다고 한다. 날짜를 잡아 강좌가 시작되기 전에 수강생들이 모여 점심을 먹고 소감을 나누며 사진과 영상을 찍는 조촐한 모임이다. 바야흐로 누구나 저자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느끼게 된다.


내가 수강하는 강좌는 미리 책을 읽고 가야 하는 강좌다. 그리고 책을 낸 수강생들끼리 모이는 '스터디 모임'을 두 개 갖고 있다. 하나는 '철학이나 사회학 관련 책'을 읽고 얘기 나누는 모임이고, 또 하나는 '세계 단편 소설'을 읽고 얘기 나누는 모임이다. 이렇게 세 군데에서 다룰 책을 매달 읽어야 하는 과제가 있다 보니 바쁘다. 그래서 내가 꼭 읽어야 한다고 여기는 필독서를 많이 읽지 못하고, 지인들이 낸 책들은 아예 읽을 엄두를 못 다. 


한 달을 반으로 나누어 15일은 책을 읽고 15일은 글을 쓴다. 물론 외출하는 날에는 책을 읽지도 글을 쓰지도 못한다. 지난 토요일에도 지방에 결혼식이 있어 다녀오느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밖에 있어 신문을 볼 시간조차 없었다. 그 다음날은 쉬느라 집안일 외에 아무것도 못했다.    


게다가 연로한 친정어머니의 집 살림까지 도맡아 해서 두 집 살림을 하고 있어 시간이 축난다. 


칼럼으로 써 놓은 글들이 있으나 신문에 기고할 목적으로 쓴 것이라 이곳 서재에 올릴 수가 없다. 신문에 기고할 글은 미발표 글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2023년 신문에 기고했던 글을 오늘 올리는 이유를 쓰다 보니 글이 길어졌다. 글을 새로 쓸 여유가 없어 이미 올렸던 글을 또 올리는 것에 대해 양해해 주시기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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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5-11-28 09: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은 정말 열심히 사시네요. 그런 열정이 지속되면 언젠가는 책을 내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전 시간문제라고 생각합니다..ㅎㅎ

그나저나 신춘문예 7번 낙선하고 드라마 작가된 분...저는 그것도 운이라고 생각합니다.. 10번 낙선하고 계속 드라마 시나리오 써도 데뷔 못하는 사람 여전히 많습니다. 작품이 의외로 좋은 낙선작도 많이 봤어요. 이건 진짜 운과 연대의 영역이라 생각하는 1인이에요. 누구나 노력합니다만...드라마 작가는 진짜 우연적인 인맥이 좌우하더군요..

페크pek0501 2025-11-29 11:11   좋아요 0 | URL
(앞으로 두 번째 책을 내겠지요...ㅋ) 열심히 사는 건 아닙니다. 밤을 새고 글을 쓸 정도의 노력은 안 합니다. 건강을 챙기며 즐길 뿐입니다. 글쓰기의 가장 큰 성과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할 줄 아는 사람이 된 것, 입니다. 친정어머니가 늙어가는 걸 보면서 느낀 점은 나이 들수록 취미 생활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노인정에 가는 취미를 붙이기 전까지 제가 어머니와 시간을 함께 보내 줘야 한다는 게 힘들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 혼자 계시지 못하더라고요. 그땐 학교에서 논술 선생으로 일할 때라 제가 시간적 여유가 없었거든요. 저는 우리 애들한테 심심하니 와 달라고 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운이 좌우한다는 것, 동감입니다. 운과 우연성을 소재로 칼럼을 쓰고 있어요.^^

잉크냄새 2025-11-30 1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넘어진 사람이 일어나는 첫 단계는 땅을 손으로 짚는 것이죠. 그것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넘어진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겠고요.

페크pek0501 2025-11-30 13:37   좋아요 0 | URL
넘어진 사실을 인정해야 조심할 수 있겠지요. 뭘 배우든 기초 단계에 있다는 것은 향상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질 만하죠.^^

희선 2025-11-30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쓰기는 해도 해도 잘 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쓰는 게 중요하겠지요 재능 타령하기보다 쓰기, 꾸준히 쓰는 게 재능이다 하는 사람도 있기도 하네요 성과가 없으면 어떤가 싶기도 합니다 자신이 좋아서 쓴다면... 제가 그러네요

페크 님 여러 사람과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시는군요 하나 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즐겁게 하시면 좋겠습니다 십일월 마지막 날이에요 십이월 반갑게 맞이하시고 늘 건강 잘 챙기세요


희선
 
아름답고 쓸모없는 독서
김성민 지음 / 다반 / 2020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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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모두 잠든 밤, 부엌에서 책을 읽는다는 저자. 내공이 보통이 아니다. 유명한 소설가가 쓴 리뷰보다 잘 썼다고 생각한다. 내가 읽은 리뷰집 중 최고였다. 리뷰를 잘 쓰고 싶은 이들에게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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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18 1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1-18 1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1-19 0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1-19 1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넬로페 2025-11-18 14: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꼭 읽어보고 싶네요^^

페크pek0501 2025-11-19 12:39   좋아요 1 | URL
저는 좋았는데 페넬로페 님이 읽으시면 어떨지 모르겠어요.
저는 텍스트에 충실한 리뷰를 좋아합니다. 책의 핵심을 건드리지 않고 그 언저리에서 맴도는 리뷰를 선호하지 않아요. 알고 싶은 것은 책의 내용과 그것을 읽은 리뷰 작성자의 시각이기 때문. 일독을 권합니다..^^

서니데이 2025-11-18 2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늦은 시간 주방의 식탁에서 쓰는 글들도 좋은 것 같아요. 아마도 그 시간이 좋은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서평집인 것 같은데, 좋다 하시니 나중에 소개 읽어보겠습니다.^^

페크pek0501 2025-11-19 12:42   좋아요 1 | URL
예전 제가 아는 선배도 밤 12시부터 부엌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다고 들은 적 있었어요. 저도 한때 부엌 식탁에 시집 몇 권을 쌓아 놓고 국이나 찌개 끓는 시간에 들춰 보곤 했어요. 돈 버느라 바쁠 때여서 시간이 너무 소중했거든요.
이 책의 목차 읽어 보시어요.^^

yamoo 2025-11-21 14: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그런가요?? 최고의 리뷰집이라니, 저도 구매해야겠네요...좋은 리뷰집을 찾기 어렵지만, 좋은 리뷰집이라니, 혹합니다..^^

페크pek0501 2025-11-26 16:20   좋아요 0 | URL
제가 읽는 것 중 최고였어요. 줄거리를 엮는 솜씨가 탁월합니다. 사이사이 사유를 넣는 것도 좋더라고요. 한번 읽어 보세요.^^

꼬마요정 2025-11-22 2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좋은 서평을 쓰고 싶은데 말입니다. 밤에 글을 쓰면 집중은 잘 되는데 확실히 감정이 많이 들어가는 것 같아요. 그래도 차분히 글을 쓸 수 있는 시간 너무 소중합니다.

페크pek0501 2025-11-26 16:22   좋아요 1 | URL
저도 좋은 서평을 쓰고 싶은데 마음뿐입니다. 줄거리를 요약해 쓰는 것도 쉽지 않지요. 그래서 밤에 쓴 편지는 부치지 말아라, 라는 말이 있을 겁니다. 감정이 많이 들어가서 말이죠. 다음날 아침에 다시 읽어 보고 보내야 합니다.ㅋㅋ
 

대략 이십여 년 전 일이다. 전화로 점을 볼 수 있는 철학관이 있다는 지인의 말에 귀가 솔깃해서 돈을 송금하고 점을 본 적이 있다. 나의 생년월일과 생시를 알려 주고 전화를 끊으면 역술인이 한 시간 뒤쯤 우리 집으로 전화를 걸어 와 ‘나’에 대해 얘기해 주는 방식이었다. 오래돼서 역술인에게서 들은 것을 다 기억할 수는 없다. 내가 뭔가 일을 하고 있고 ‘바위를 뚫는 의지’를 가져서 결국 해 내고 만다고 했던 말만 뚜렷이 기억한다. ‘바위를 뚫는 의지’라는 말이 문학적 표현 같아 지인과 통화하며 함께 웃었던 것까지 기억난다. 


그때는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에 독서에 열중하던 시절이라 그 말이 기분 좋게 들렸다. 지금 생각해 보니, 뭔가 열중하는 일이 있긴 한데 내가 재능을 타고 나지 못했으나 지구력이 강해서 포기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싶다. 신기한 것은 내가 주부이고 특별히 하는 일이 없다고 딱 잡아뗐는데도 역술인이 한사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분명히 있다고 우겼다는 점이다.


‘나의 서재’에 첫 번째 글을 올린 날(2009-01-30)부터 시작하여 오늘이 천 번째 글을 올리는 날(2025-11-14)이다. 그때 듣던 ‘바위를 뚫는 의지’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대충 계산해 보면 약 십칠 년간 한 달에 다섯 개의 글을 올린 셈이다. 어떤 달은 네 개의 글을 올렸겠고 어떤 달은 여섯 개의 글을 올리기도 했겠다. 확실히 난 지구력이 있는 사람이고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인가 보다.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노력했다기보다 즐  겼  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라고 내게 묻는 이가 있다면 나의 대답은 이러하다. “낱말과 문장을 가지고 많이 노십시오. 많이 놀수록 효과가 커집니다.”


책을 읽다가 좋은 문장을 발견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 부분에 밑줄을 그어 놓고 그 문장들을 노트북을 사용하여 타이핑으로 필사해 ‘나의 서재’에 올린 적이 많다. 그것들을 포함해 이곳에 올린 모든 글은 내가 약 십칠 년간 ‘낱말과 문장을 가지고 놀던 시간들’의 결과물이다. 예전에 비해 나의 글쓰기 능력이 조금이나마 향상되었다면 ‘낱말과 문장을 가지고 놀던 시간들’ 덕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며칠 전 남산에 가서 가을을 느끼고 왔다. 


  간 김에 2025년의 가을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천 번째 올리는 글을 기념하며 가을 풍경을 함께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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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11-14 1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폐크님.천밴째 글쓰기 축하드려요^^

페크pek0501 2025-11-14 13:54   좋아요 0 | URL
카스피 님에 비하면 천, 이라는 숫자는 아무것도 아니지요.ㅋㅋ
그러나 저 개인으로 볼 땐 의미가 있어요. 처음에 리뷰를 올렸더니 서재가 생기더군요. 그래서 글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여기까지 올 줄 몰랐어요. 우연, 이 큰 작용을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차트랑 2025-11-14 1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천 년 후에도 저 단풍이 지금과 같기를.....

아, 저도요 축하드립니다 천번 째를요!

축하를 하러왔다가
깜박 잊었지 뭡니까.
카스피님 축하 글 보고 다시....

페크pek0501 2025-11-14 14:00   좋아요 0 | URL
천 년 후엔 단풍도 달라질까요? 잘 모르겠어요. AI 시대가 자연까지 변화시킬지 모르죠.
차트랑 님의 축하 댓글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hnine 2025-11-14 15: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000이라는 숫자가 각별하지요.
저도 1,000번째 리뷰를 올리고 나서 혼자 흐뭇하여 자축하는 페이퍼를 올린 적이 있어요. ‘올해 몇권 읽기‘ 같은 목표도 세워본 적 없는데 어느 날 문득 리뷰가 1,000번째 된 걸 보니 그때까지의 시간이 감격스러웠나봐요.
pek님, 천번째까지 꺾이지 않는 의지로 달려오셨듯이 앞으로도 한결같으시리라 봅니다.

페크pek0501 2025-11-14 13:59   좋아요 0 | URL
나인 님, 대단하십니다. 리뷰가 천 편이라니요. 우와!!!
알라딘에는 리뷰의 고수들이 많이 계시긴 하죠. 비교하면 저는 햇병아리이죠.
그래도 천 번째, 이다 보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어요.
별 일 없는 한, 앞으로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달릴 듯 합니다. 나인 님 뒤를 살살~~ 따라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잉크냄새 2025-11-14 2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재 초기에 즐겨찾는 서재의 의미있는 숫자를 갭쳐해서 알려주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당일 100명 방문이라든지, 누적 1000명이라든지, 서재지수 999 라든지, 페이퍼 100이라든지....
의미있는 숫자를 캡쳐해주는 방문자에게 책 선물을 하는 이벤트를 열기도 하고, 또 방문자는 알 수 없는 즐찾 100명이라든지 하는 날에는 작게 이벤트를 열던 시절이 떠오릅니다. ㅎㅎ

페크pek0501 2025-11-15 13:26   좋아요 1 | URL
저도 생각나는 게 있어요. 방문자 3만 명이 넘었다고 제가 페이퍼를 썼었지요. 그땐 그 숫자가 황송하더라고요.ㅋㅋ
맞아요, 책 선물 이벤트가 있었어요. 저는 삼행시를 짓는 어느 서재 님이 연 이벤트에서 책 선물을 받은 적이 있어요. 이벤트를 여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희선 2025-11-14 2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 님 축하합니다 오랜 시간 글을 쓰셔서 천번째 글에 이르렀군요 앞으로도 즐겁게 글 쓰시기 바랍니다 단풍이 예쁘네요 이번엔 좀 늦었지만 아직 단풍을 볼 수 있군요 시간이 흐르면 한국에서 단풍 보기 어렵다는 말이 있기도 하던데... 가을 얼마 남지 않았겠습니다 이번 가을을 더 짧은 느낌이 들 듯합니다


희선

페크pek0501 2025-11-15 13:32   좋아요 0 | URL
1000번 째, 라고 제목을 붙였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드네요. 같은 뜻이라도 숫자가 주는 느낌이 따로 있지요.
단풍을 이번엔 못 보게 될 줄 알았어요. 단풍을 볼 수 있는 기간이 길었으면 합니다. 아름다운 것은 오래 버티지 못하네요. 꽃도 그렇고요. 짧아서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희선 님은 저보다 글을 더 많이 올리셔서 훨씬 많은 누적수를 기록할 것 같군요. 딱 떨어지는 숫자가 될 때 저처럼 페이퍼로 알려 주십시오. 고맙습니다.^^

stella.K 2025-11-15 2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무는 여름 보단 가을이 화려하죠.
저 화려함도 이번 주까지고 내일 비가 오고나면 거의 다 떨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저도 천번의 글 축하해요! 뭔가를 꾸준히 한다는 건 참 쉽지 않은 것 같아요.
2천 때 또 알려 주세요!^^

페크pek0501 2025-11-16 19:41   좋아요 1 | URL
아, 누구신가요? 너무 오랜만인 것 같아요. 반가워요.
저는 꽃보다 단풍이 더 맘에 끌려요. 뭔가 익어가는 느낌이랄까요...
천 번이 대단한 것 같지만 제 서재에 댓글 남기시는 분들 중에서 천 번을 옛날에 넘으신 분들이 많죠.
2천 때라 하시니 너무 먼 미래 같습니다. 글 올리는 행위를 앞으로 천 번을 더 해야 한다니...ㅋㅋ 그러나 가랑비에 옷 젖듯 그렇게 또 하나씩 올리면서 2천회를 맞이해 보겠습니다.^^

모나리자 2025-11-15 2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천 번째 글이라니요 대단하세요 ~!!
바위를 뚫는 의지 정말 있으시군요. 남산의 가을 풍경도 너무나 아름다워요! 자연이 주는 색깔은 흉내 낼 수 없는 것 같아요. 눈이 호강 하네요.^^

페크pek0501 2025-11-16 19:45   좋아요 2 | URL
모나리자 님, 대단하지 않습니까!!! 하하~~
그러나 모나리자 님은 마이페이퍼와 마이리뷰의 수를 합치면(제 서재 오른쪽 상단에 나와 있는 숫자를 더하면 되지요) 저보다 훨씬 많을 겁니다.
어느 새 즐찾 등록은 643명이 되었답니다. 백 명을 기록한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죠.
바위에 낙숫물이 떨어져 구멍을 내는 ‘기적‘을 믿겠습니다.^^

서니데이 2025-11-18 2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크님도 알라딘 서재에서 리뷰와 페이퍼를 많이 쓰셨군요.
자주 읽어서 잘 몰랐는데, 벌써 1000번째가 되다니 축하드립니다.
날씨가 추워지고 있어요.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페크pek0501 2025-11-19 13:01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은 저보다 훨씬 많이 올리셨죠.
천 번, 이라고 하니 정말 많아 보이지 않습니까?ㅋㅋ
서니데이 님도 감기 조심하세요. 겨울이 와서 저는 좋습니다. 폭염에 시달리느라 여름이 지내기 힘들었거든요. 창문을 열면 찬 공기가 신선하게 느껴져요. 강추위만 없다면 겨울을 가장 사랑하겠습니다.^^

yamoo 2025-11-21 14: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1천번째 글을 쓰셨다니 대단하십니다. 저도 그무렵부터 알라딘을 했는데...왜 저는 500개도 못썼을까요?? 게을러서 그럴 겁니다. 아마도..그런 지구력을 가진 페크님이 부러울 따릅입니다. 얼마 전에 하루에 그림 하나씩이라도 그리자..라거나, 하루에 글 하나 쓰는 게 어떨까..라는 생각은 했더랬습니다만..여전히 생각만..^^;;

페크pek0501 2025-11-26 16:19   좋아요 0 | URL
1천번째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앞으로 1천번을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면 대단한 숫자 같아요. 야무 님은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까. 화가 겸 글쟁이, 는 더 멋지지요.
저도 ‘매일 쓰자‘라는 폴더가 있답니다. 몇 번 하다가 흐지부지 되었답니다.^^
 
고리오 영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박영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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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오 영감」의 줄거리를 간략히 요약하면, 돈이 많았던 고리오 영감이 두 딸에게 전 재산을 다 쓴 뒤에 그 딸들에게 외면을 당한 채 싸구려 하숙집에서 죽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 결말에 이르기까지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이 읽는 재미를 준다.


고리오 영감 다음으로 주목할 인물이 라스티냐크다. 그는 고리오의 둘째 딸 델핀과 사귀게 되는데 하숙집에 함께 사는 고리오 영감이 그녀의 아버지임을 나중에 알게 된다. 연애를 출세의 도구로 삼으려던 라스티냐크는 델핀을 사랑하게 되고 고리오에게 아버지를 대하듯 잘해 준다. 고리오가 병들어 죽어 갈 때 라스티냐크가 보살피고 임종을 지키고 장례를 지내 준다. 


하숙집 주인인 보케르 부인이 하숙인 고리오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고 고리오의 시신을 감싸 줄 시트를 내 주면서 시트 값을 계산하는 장면이 있다. 이것을 보면 19세기 자본주의 사회의 분위기가 느껴져 지금의 이 시대의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비정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출세 지향적인 라스티냐크라는 청년이 출현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발자크(1799~1850)가 19세기에 쓴 이 소설은 프랑스 파리를 무대로 인간의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청년이 상류 사회의 귀부인과 친분을 맺어 신분 상승을 꿈꾸고, 고리오의 두 딸은 각각 애인를 두고서 결혼 생활을 유지하며, 고리오는 결혼한 딸이 딴 남자와 연애하는 것을 보며 나무라기는커녕 딸의 행복을 응원하는 등등 흥미로운 요소가 많다. 


남편이 자기의 친자식이 누구냐고 물었다고 첫째 딸 나지가 아버지인 고리오에게 전하는 장면은 놀랍기까지 하다.


대답하오. 당신이 낳은 아이 중에 내 자식이 있소? 저는 그렇다고 대답했어요. 어느 아이요?라고 그는 물었어요. 장남인 에르네스트라고 대답했어요.(323쪽)    


아버지의 분별없는 사랑과 집착이 낳은 비극


부모의 사랑이 비극을 자초하지 않으려면 사랑의 한계선을 넘지 않아야 한다


보케르 부인이 파리에서 사십 년째 운영하는 싸구려 하숙집에는 여러 명이 하숙하고 있다. 그 하숙인들 중 고리오 영감은 제면업으로 큰 돈을 번 사업가이다. 부유한 농부 집에서 외딸로 태어난 그의 아내는 고리오에게 종교적 찬미와 무한한 사랑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아내는 아무런 근심 없이 행복하게 칠 년을 살고 나서 죽었다. 이들 부부에게 딸 둘이 있었는데 홀아비가 된 고리오에게 부성애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사랑의 대상인 아내를 잃자 그의 사랑은 두 딸에게로 옮겨간다.   


고리오는 매년 육만 프랑 이상을 벌어들이는 부자였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천이백 프랑 이상 쓰지 않았다. 딸들의 기분을 충족시키는 것만이 그의 행복이었다. 가장 우수한 선생들이 훌륭한 교육처럼 보이는 모든 기예를 그녀들에게 가르치게 했다.(124쪽)


아무리 돈이 많이 들더라도 딸들이 원하면, 이 아버지는 서둘러서 그 소망을 만족시켜 주었다. 그는 그 선물의 대가로 단지 한번만 껴안아보는 것으로 만족했다.(124쪽)

 

고리오는 두 딸을 귀족과 결혼시키며 딸들에게 거액의 지참금을 준다. 첫째 딸 나지는 레스토 백작의 부인이 되고, 둘째 딸 델핀은 뉘싱겐 남작의 부인이 됨으로써 두 딸은 상류 사회에 진입한다. 


제면업자였던 고리오는 오 년간이나 딸들과 사위들이 일을 그만두라는 종용을 해 오자 일선에서 물러난다. 그들은 고리오가 장사를 계속하는 것을 창피하게 여겨 달가워하지 않았다. 아내도 없고 일거리도 없는 이 노인은 마음이 오직 자식에게 쏠려 머릿속에 딸들 생각만이 꽉 차 있게 되었다. 과부가 자신의 인생길을 오직 자식 뒷바라지를 하는 데 바치듯이, 홀아비 고리오는 인생길을 두 딸의 뒷바라지를 하는 데 바친다. 


딸들은 씀씀이가 커 결혼한 뒤에도 돈이 모자랄 수밖에 없었고 그럴 때면 하숙집을 찾아와 아버지에게 돈 부탁을 한다. 고리오는 그 돈이 어디에 쓰는지 알고도 돈을 구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가령 딸들은 무도회에 입고 갈, 금은박으로 장식한 의상을 마련하기 위해 또는 애인을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돈 부탁을 하는 것이다. 


어째서 고리오는 딸들의 그런 요구를 다 들어주었을까? 금은박으로 장식한 의상이 필요한 딸에게는 사치와 허영에 빠져 살면 안 된다고, 애인을 위한 돈이 필요한 딸에게는 남편을 두고 애인을 만나면 안 된다고 야단을 치거나 타일러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딸들의 요구를 무조건 들어주고 싶은 고리오는 영속 연금 공채를 팔기도 하고, 종신 연금을 저당잡히기도 하고, 도금한 은 식기를 팔기도 하면서 돈을 마련하며 점점 가난해진다.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을 받는 데 익숙해진 딸들은 그 익숙해진 관계를 당연시하고 보답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다.


결혼한 딸들이 불행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로 인한 괴로움 때문인지 고리오는 병이 든다. 병은 회복되지 않고 가벼운 혼수상태에 빠지고 그 상태는 오랫동안 계속되어 라스티냐크는 고리오가 잠든 줄 알았다. 크리스토프라는 소년이 고리오의 딸들을 부르러 심부름을 갔다 와서 보고했다. 소년의 보고에 따르면 고리오의 첫째 딸은 남편과 다투고 있어서 갈 수 없다며 다 끝나면 곧 가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둘째 딸은 무도회에서 새벽에 돌아와 지금 자고 있어 만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고리오가 자기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놓았는데 그중에는 다음과 같은 말도 있었다. 


아! 내가 만일 부자였고, 재산을 거머쥐고 있었고, 그것을 자식에게 주지 않았다면, 딸년들은 여기에 와 있을 테지. 그 애들은 키스로 내 뺨을 핥을 거야!(368쪽)


결국 고리오는 앓다가 죽는다. 위독한 상태에 있는 그가 임종할 때 그 자리에 사위들은 물론이고 두 딸도 없었다. 딸들은 왜 오지 않았을까? 그 이유가 아버지가 돈을 다 써서 가난하기 때문일까? 이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물론 아버지가 부자라면 아버지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딸들이 한걸음에 달려왔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다. 아버지가 자기밖에 모르는 딸들로 키웠다는 점이다. 즉 효심이 있는 딸들로 키우지 못했다는 점이다. 딸들이 원하면 뭐든지 들어주는 고리오는 한마디로 말해 두 딸을 잘못 키운 아버지였다. 잘못 키웠기에 결혼한 뒤에도 아버지에게 돈 부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리오는 아버지로서 딸들을 어떻게 키웠어야 했을까? 고리오는 자식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줄 게 아니라 자신의 욕구를 제어할 줄 아는 자식으로 키웠어야 했다. 결혼하고 나면 아버지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립적으로 돈 문제를 해결하는 딸들이 되게 만들었어야 했다. 그것이 부모를 위해서도, 본인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탈무드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 중 하나인 ‘고기를 잡아 주기보다는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치라’는 말은 고리오에게도 필요한 말이겠다. 


자식에 대한 사랑의 한계선은 어디쯤에 두어야 할까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 부모가 자식을 학대한 사건이 뉴스에서 보도되기도 하나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부모는 자식을 사랑한다. 그러나 사랑은 판단을 무디게 하므로 사랑하는 자식일수록 매로 다스리라라는 속담은 헛말이 아니다‘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속담도 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사랑하기는 하여도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사랑하기는 좀처럼 어렵다는 말이다. ‘사랑은 내려가고 걱정은 올라간다’는 속담도 있다. 사랑은 언제나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베풀어 주게 되고 걱정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끼친다는 말이다. 이런 속담들만 봐도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기는 쉬우나 그에 비해 자녀가 부모를 사랑하기는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자식을 사랑함에 있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무조건 베풀기만 하는 사랑이 좋은 게 아니다. 자식에게 집착하는 것도 좋은 게 아니다. 자식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부모로서 꼭 갖추어야 할 것이 있으니 바로 분별력이다. 사랑은 분별력을 갖지 않으면 올바른 길을 잃기 마련이다. 분별력을 갖고 부모가 자식들이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것, 그것이 부모의 진정한 사랑이라고 본다.

 

분별력이 있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자식 사랑에 한계선을 정해야 할 것 같다. 한계선은 어디쯤에 두어야 할지 생각해 보았다고리오는 자기 딸들이 먼 훗날 자기처럼 가진 것을 자식에게 모두 내 주어 빈털터리의 몸으로 죽기를 바라지는 않을 터이다부모들이 자식에게 사랑을 베풀되, 자식이 자신의 인생과 똑같이 살아도 괜찮다고 여겨지는 딱 그 선을 한계선으로 정해 그 선을 넘지 않도록 하면 자식 사랑의 부작용이 생기지 않으리라 믿는다.


파리와의 대결을 외치는 라스티냐크


고리오가 지는 해라면 라스티냐크는 뜨는 해이다. 시골 출신의 순수한 청년이었던 법대생 라스티냐크는 사치 허영 불륜 출세욕 탐욕 등이 난무하는 혼탁한 도시인 파리에 어울리는 인물답게 공부는 뒷전이고 사교계에 진출하고자 한다. 같은 하숙집에서 지내는 보트랭이 출세하는 방법에 관해 알려 준 것이 그에게 영향을 끼치기도 했겠고, 그가 무도회에 직접 가 보고 느낀 것이 영향을 끼치기도 했겠고, 무엇보다 파리 자체의 분위기의 영향이 컸으리라고 짐작된다. 


본격적으로 사교계에 진출하려는 것을 암시하듯, 소설의 마지막에서 라스티냐크는 파리를 내려다보며 다음과 같이 우렁차게 말한다.


이제부터 파리와 나와의 대결이야!(396쪽) 


라스티냐크는 앞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고리오 영감이 자식에 대한 강한 집착으로 인해 불행을 낳았듯이, 출세에 대한 집착이 강한 라스티냐크 역시 행복한 삶을 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무엇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행복’과 동행할 수 없으므로. 



<내가 뽑은 밑줄긋기>.................... 


인생이란 부엌보다 더 아름답지 않으면서도 썩은 냄새는 더 나는 거라네. 인생의 맛있는 음식을 훔쳐 먹으려면 손을 더럽혀야 하네. 다만 손 씻을 줄만 알면 되지. 우리 세대의 모든 윤리가 거기에 있네.(149쪽)


돈이 바로 인생이야. 돈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지.(315쪽)




<리뷰를 마치며>.................... 


발자크의 작품은 「붉은 여인숙이라는 단편 소설로 처음 만났다.「붉은 여인숙」은 워낙 수작이라 내게 짙은 여운을 남겼다.  


「고리오 영감」은 아버지가 가진 것을 모두 딸들에게 주고 나서 딸들에게 외면당하는 점에서 셰익스피어의 「리어왕」과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고리오 영감과 리어왕을 비교하는 이들이 많다. 나는 「고리오 영감」을 읽고 푸시킨의 단편 소설 「역참지기」가 떠올랐다. 

 

「역참지기」는 이런 내용이다. 역참에 머물던 경기병 대위가 역참지기의 딸에게 반해 버려 그녀를 데리고 사라져 버린다. 아내 없이 사는 홀아비 역참지기는 사랑하는 외딸을 애타게 찾아다닌다. 간신히 찾아낸 아버지는 딸이 그 경기병 대위와 편안히 살고 있는 모습을 확인한 뒤에도 안심하지 못하고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죽는다.


「고리오 영감과 「역참지기」는 자식에 대한 지나친 사랑과 집착으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를 그린 소설이라는 점에서 두 작품은 닮았다. 





날씨가 쌀쌀해져 오랜만에 순댓국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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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5-11-08 12: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두 딸을 키우는 아빠라서 흥미롭게 읽었어요. 자식은 부모를 닮아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요. 부모가 아무리
싫어도 그 영향을 벗어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죠. 우리 딸들은 저와 애들 엄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느껴요. 저는 비록 제 부모님께 잘 해드리지 못하고 불효자로 살고 있지만, 제 딸들은 너무 잘 자라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딸 바보라 자식 자랑만 남기고 가네요. ㅎㅎㅎㅎ

페크pek0501 2025-11-09 10:12   좋아요 0 | URL
자식 사랑 실컷 하셔도 됩니다.ㅋㅋㅋ
원래 아빠들은 딸에 약하죠. 엄마들은 아들에 약하고요.
유전자의 힘은 세죠. 어딘가 모르게 부모를 닮거든요. 외모도 많이 닮고요.
저 역시 애들 키우는 일에 많이 마음 써서 키운 것 같지 않은데 잘 자라줘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감은빛 님 덕분에 무플을 면했네요. 감사드립니다.^^

잉크냄새 2025-11-09 1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본성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군요. 그것이 고전이 살아남은 이유이기도 하겠죠.

페크pek0501 2025-11-09 11:16   좋아요 0 | URL
정말 그래요. 소설에서 유부녀를 사귀어 출세하려는 청년을 보니, 우리 사회에서 한때 유행했던 제비족, 이 생각나더군요. 제비족들은 출세보단 돈을 뜬기 위한 것이었겠지만 젊은 남자가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기혼 여성을 상대로 했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고전이 말해 줍니다.^^

그레이스 2025-11-09 14: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민음사 고리오영감은 어떤지요?
저는 을유가 좋던데,,,
화자의 마지막 다짐이 기억에 남는군요!

페크pek0501 2025-11-11 11:04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 님, 민음사를 선호하는 편이고 다른 출판사의 고리오 영감과 대조하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잘 읽히는 걸로 보아 번역의 문제는 없는 듯합니다.
을유는, 저는 글자 크기가 작아 요즘은 사 보지 않아요. 예전엔 그러니까 젊을 땐 을유 팬이었죠.ㅋ 고리오 영감, 쓸 게 많았는데 반 이상 삭제했는데도 긴 리뷰가 되었어요. 그만큼 언급할 만한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어요.^^

희선 2025-11-12 19: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모가 자식을 사랑해도 거리를 두어야 할 텐데, 고리오 영감은 그러지 못했네요 돈보다 사랑을 더 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고리오 영감 같은 사람은 지금도 있겠습니다 부모가 잘해줘도 자식은 뭘 잘해줬냐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모 자식 어려운 사이일 듯합니다


희선

페크pek0501 2025-11-14 11:12   좋아요 1 | URL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것 같아요.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도 부모와 자식에 대해 언급한 구절이 있어요. 자식을 사랑하게 되니 고통이 따르다고 했죠. 적당하기가 어렵습니다. 자식을 덜 사랑하고 이웃을 더 사랑하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 봤습니다.^^

金慶子 2025-11-16 2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리오 영감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돈이지요.
그래서 자식에 대한 사랑의 표현도 돈으로 한 것 같아요.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에게는 돈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자식에게는 돈을 물 쓰듯이 사용하는 것 같아요.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페크pek0501 2025-11-18 12:1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중요한 건 돈돈돈, 입니다. 발자크 자신이 가난을 경험했던 터라 ˝돈이 바로 인생이야.˝(315쪽)라는 말이 마치 자신의 외침처럼 느껴집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반가웠습니다.^^

모나리자 2025-11-16 2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리오 영감을 요즘의 딸바보라고 할 수 있는데 도가 지나칠 정도로 딸들만을 위해서 살았네요.
결혼한 여자들이 불륜을 하고 사치를 하는 것은 당시 프랑스 사회의 부조리한 면을 소설에 잘
표현한 것 같아요. 재산을 나눠 받고 나면 돌변하는 자식들은 오늘날에도 많이 볼 수 있지요.
그 옛날에 쓴 고전이지만 지금에도 공감할 수 있고 인간 사회는 어느 시대나
비슷하고 닮았다는 사실도 놀랍고 인간의 본성 또한 똑같다는 걸 확인하게 됩니다. 교훈적인 내용도 들어 있어서 재밌을 것 같아요.^^

페크pek0501 2025-11-18 12:21   좋아요 0 | URL
우리 남편도 딸바보, 랍니다. 딸이 원하는 건 무조건 들어주려고 해요. 오늘 외식하면 안 돼? 오늘 찜질방 가면 안 돼? 라고 물으면 다 된다고 합니다. 안 되는 게 없습니다. 결국 다음에 가자고 하며 제가 악역을 담당하지요.ㅋㅋ
예. 시대를 초월해 사람 사는 세상은 비슷한 것 같아요.
자식에 대해서는 사랑의 절제, 가 필요한 것 같아요. 적당한 거리 두기, 가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