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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평점 :
독립운동가 안중근이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실제 사건을 다룬 소설이 「하얼빈」이다. 제목이 왜 하얼빈일까? 사살한 곳이 중국의 하얼빈이어서다. 안중근은 1909년 10월 26일 아침에 중국 하얼빈역에서 일본 제국주의 우두머리인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쏘아 죽인다.
일본의 횡포가 점점 심해지고 있는 우리 민족의 암흑기에 안중근이 이토를 사살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
안중근이 제 손으로 보드카를 따라 마셨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신문을 꺼내 우덕순 앞으로 내밀었다. 우덕순은 일본 글이 서툴러서 읽기를 더듬거렸다.
우덕순이 말했다.
-이토가 온다는 얘기냐?
-그렇다. 하얼빈으로 온다.
-온다고?(103~104쪽)
안중근은 이토를 쏘러 가자는 말에 두서없이 따라나선 우덕순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느껴졌다. 우덕순의 질문 없음을 안중근은 신뢰했다.(135쪽)
하얼빈에서 안중근은 여러 신문들을 사서 읽었다. 신문 기사들은 이토가 하얼빈에 도착하는 날짜와 시간을 점점 구체적으로 보도하고 있었으나 명시하지는 못했다. 아마도 25일에서 26일 사이일 것 같았다.(139쪽)
둘은 계획을 짜서 우덕순은 채가구 역에서, 안중근은 하얼빈 역에서 잠복하고 있다가 이토를 암살하기로 한다. 둘 중 한 사람은 이토 암살을 성공해야 했다. 안중근이 이토를 총으로 쏴서 이토가 죽든 죽지 않든 안중근은 바로 체포될 것이므로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우덕순도 마찬가지였다. 안중근에게는 처와 자식들이 있다. 우덕순 또한 결혼해서 딸을 얻었는데 딸은 죽었고 처는 서울에 산다. 두 사람은 가족과의 이별도 각오해야 했다.
사건 당일 안중근은 이토를 향해 총을 쏘는 데 성공했고 이토 히로부미는 하얼빈역 철로 위에서 죽는다. 안중근은 그 자리에서 체포되고, 우덕순 역시 체포된다.
이토 히로부미는 어떤 사람인가? 일본인들이 보면 일본의 근대화를 위해 노력한 애국적인 인물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조선 측에서 보면 주한 특파 대사로서 을사조약(1905년)을 강제로 체결하였으며, 1905년에 초대 조선 통감으로서 우리 국권을 강탈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안중근이 이토를 사살한 것에 대해 애국의 문제만으로 보면 안 된다. 그러면 그의 업적을 폄하하는 것이 된다. 약육강식의 제국주의에 저항하여 싸운 의거이기 때문이다. 안중근은 애국심만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가 쓴 ‘동양평화론’(안중근이 1910년 3월 옥중에서 쓴 동양평화 실현을 위한 미완성의 논책)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안중근의 국제 평화주의 사상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의 평화를 지키는 일이었고 나아가 세계의 평화를 추구하는 일이었다. 그가 말하는 동양 평화란 자국의 평화만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만약 자국의 평화만을 외쳤다면 국가 이기주의라는 오명이 붙여질 수 있다.
최근 들어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대한 신문 기사를 볼 때마다 나는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던 트럼프에게 반감을 품곤 한다. 신문 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은 쇠퇴한 지역 산업을 되살리고 세수 확대를 통해 재정 건전성을 확보한다는 두 가지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매일신문, 2025년 8월 24일)
미국이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은 알겠으나 미국보다 더 어려운 국가가 많다. 약소국에 대한 배려 없는 약육강식의 일방주의가 세계를 지배하는 상황을 만들고 있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각각 그 나라의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트럼프도, 안중근도 애국자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제삼자 입장에서 보면 트럼프가 지구촌을 약육강식의 정글로 만들고 있는 인물이라면, 안중근은 약육강식에 대항하여 싸우고자 했던 인물이었다. 두 인물은 그렇게 비교가 되어 흥미롭다.
한편 관세를 무기로 타국에 압력을 가하며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챙기겠다는 것은 오직 트럼프의 애국심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내 생각엔 애국심보단 이기심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자기 나라의 이익만 중시하는 것은 자기 이익만 중시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개인 이기주의, 집단 이기주의, 지역 이기주의, 국가 이기주의는 우리 모두가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80년대 만 해도 학교에서는 나라 사랑의 한 방법으로 학생들에게 국산품 애용을 장려하곤 했다. 그러나 나라 사랑만을 강조한다면 미국 우선주의나 일본 제국주의를 닮을 위험성이 있다. ‘나라 사랑’만큼 중요한 것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저항 정신’이다. 안중근 의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것에 그치지 않고 불의에 항거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점에서 위대한 인물이다.
자유와 평화는 누구의 것만이 아니어야 하고, 어느 국가의 것만이 아니어야 한다. 자유와 평화는 이기주의와 애국주의를 극복하여 전체 인류 사회의 것이어야 한다. 이것이 안중근 의사의 염원이기도 할 것이다.
사형장에는 미조부치 검찰관, 구리하라 전옥이 통역과 서기를 데리고 미리 와 있었다. 안중근이 중앙에 앉고, 미조부치 일행은 연극의 관객처럼 빙 둘러앉았다.
구리하라 전옥이 집행을 선언하고 나서 안중근에게 말했다.
―할말이 더 있는가?
안중근이 대답했다.
―없다. 다만 동양 평화 만세를 세 번 부르게 해다오.
구리하라가 말했다.
―허락하지 않는다.(276~277쪽)
옥리들이 안중근의 머리에 흰 종이를 씌웠다. 안중근은 종이가 버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옥리가 안중근의 겨드랑이를 팔에 끼고 계단 위로 올라갔다. 옥리가 안중근의 목에 밧줄을 걸고, 교수대 바닥을 밟았다. 바닥이 꺼졌고, 안중근의 몸이 허공에 매달려서 아래쪽으로 내려갔다.(277쪽)
1910년 3월 26일 안중근은 사망한다. 그의 나이 31살이었다. 그 뒤 35년이 지나 우리 민족은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