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등한시했던..
그래 최애는 도스토예프스키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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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밑줄긋기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번


어머니는 신부의 어머니가 되기는 싫어한다. 그냥 딸의 어머니로 남기를 원하고 지금의 위치에 만족하고 있다. -18쪽



어머니는 안 보이는 곳에서 딸이 나쁜 영향을 받을까봐, 무엇보다도 한 남자가 에리카를 지금과는 다른 인간으로 변형시킬까봐 노심초사한다. - 20쪽


예술적이고 인간적이며 개인적인 생각으로 에리카는 하나의 공식을 유추해낸다. 즉 그렇게 오랜 세월을 어머니에게 종속되어 살아온 자신이 이후에 결코 한 남자에게 종속될 수는 없다는 그런 공식이다.
어머니는 에리카가 늦게라도 결혼하는 걸 반대하고 있다. 자기 딸이 도무지 어디에고 종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 21쪽


˝우리끼리만 사는 거야. 에리카야. 우리는 그 누구도 필요 없지 않니?˝ - 22쪽



박사님은 벌써 십 년 전부터 모차르트 <레퀴엠>의 마지막 비밀을 규명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이 작품을 결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박사는 <레퀴엠>이 음악사상 가장 천재적인 작품이라고 말한다. - 32쪽


들꽃 에리카. 그녀 이름은 이 꽃이름에서 딴 것이다. -35쪽



자식은 어머니의 우상이고, 어머니는 자식에게서 그저 약소한 대가를 요구할 뿐인데,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식의 삶 전체인 것이다. -39쪽



눈(雪)이여 내 눈물을 따라가라. 그럼 시냇물이 너를 곧 데리고 갈테니.(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나그네 제6곡 ‘홍수‘의 한대목)-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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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마지막날
3일 내내 오전에 아내와 딸과 함께
티클래스에서 평온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오늘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피아노 치는 여자>를 시작했습니다.



* 엘프리데 옐리네크(1946~)
옐리네크는 1946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 교육을 받았으며, 빈 대학교에서 미술사학과 음악사학, 연극학을 전공했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67년 시집을 출판하며 작가로 데뷔했고, 이후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발표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옐리네크의 작품들은 대체로 오스트리아 사회의 어두운 이면과 여성 억압, 권력 남용 등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그녀는 특히 나치 시대의 역사와 오스트리아 사회의 깊숙이 뿌리내린 반유대주의를 강력하게 비판하며, 이를 통해 오스트리아 사회 전체를 성찰하도록 유도한다. 옐리네크의 작품들은 그 솔직하고 과감한 표현 때문에 종종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아 많은 문학상을 수상했다.


《내쫓긴 아이들》: 1965년 오스트리아에서 발생한 실제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가정 내 폭력과 청소년의 범죄 심리를 깊이 파헤친 작품으로, 옐리네크의 초기 대표작 중 하나이다.



《피아노 치는 여자》: 옐리네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큰 성공을 거두며 유명해진 작품이다. 가족 내의 폭력과 성적 학대를 다루며,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강렬하게 드러낸다.

《노라가 남입을 떠난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이브센의 희곡 《인형의 집》을 패러디한 작품으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성 역할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리자의 그림자》

《우리는 미끼새들이다》

《 오 자연이여 그로부터 도피여》

《욕망》

《죽은 자의 아이들》



옐리네크는 20세기 후반 독일어권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그녀의 작품들은 사회 비판적 성격이 강하며,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페미니즘 문학의 중요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옐리네크는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에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며 현대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04년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핀천도 타지 않은 노벨상을 내가 탔다니 조금은 우스꽝스럽다. 나는 핀천이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보다 노벨상을 먼저 탄 것은 자연의 법칙을 위배하는 일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또한, 노벨문학상을 받아야할 사람은 본인이 아닌 페터 한트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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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영 분석 심리학의 탐구 시리즈 중 2번째입니다.
첫번째 무의식의 제일 위 상층에 있는 <그림자>를 읽고, 그 아래층에 있는 아니마와 아니무스입니다.

남성속의 여성, 여성속의 남성이라는 뜻을 가진 이 책으로 이부영 교수의 두번째 정신분석심리학으로 여행을 떠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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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티클래스˝에서
비오는 연휴 아침에~

와이프와 재즈와 커피와 체리빙수.
불행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딱 그 경계선에 있는 차분한 마음이 제일 좋네요.

고등학교때 간략한 내용으로 답 맞추기 급급했던 채만식 선생과
설레는 마음으로 만났습니다.

1924년 이광수의 추천으로 문단에 등단했던 것과, 1943년 친일문학단체인 조선문인보국회의 평의원으로 활동했던 상황을 다시 살펴봐야겠습니다.



<나무위키 발췌>
여타 친일파 문학가처럼 강연과 친일적 소설과 시로 친일 행위를 하였다. 그러나 대중들 사이에서 채만식의 친일 행위는 별로 주목받지 않으며, 그 이미지도 옅다. 그 이유는 그가 변절한 이후 상대적으로 부각되는 행적을 보이지는 않았으며, 무엇보다 채만식은 광복 이후에 〈민족의 죄인〉(1948.10, 1949.1)이라는 중편 소설을 발표하여 자신의 친일 행적을 뼈저리게 반성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친일 행위를 한 사실이 변하지는 않지만, 채만식은 적어도 포장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면서 다른 친일 문인들보단 양심이 있다는 평을 받는다.




바스티유 함락과는 항렬이 스스로 다르기는 하지만, 아무튼 윤직원 영감은 그처럼 육친의 피로써 물들인 재산 더미 위에 올라 앉아 옛날 그다지도 수난 많던 시절과는 딴판이요, 도무지 태평한 이 시절을 생각하면 안심되고 만족한 웃음이 절로 솟아날 때가 많습니다. - 63쪽


향교의 맨 우두머리 가는 어른을 직원(直員)이라고 합니다.
직원을, 옛날에는 그 골에서 학문과 덕망이 높은 선비가 여러 사람의 촉망으로 뽑혀서 지내곤 했는데, 근년 향교의 재정이며 모든 범백을 군청에서 맡아보게 된 뒤로는 전과는 기맥이 좀 달라졌는지, 장의(掌議)라고, 바로 직원의 아랫길 가는 역원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한테 사임이며 농토 같은 것을 줄 수 있는 다액 납세자라면 직원 하나쯤 수월한 모양입니다.
윤두꺼비(윤두섭)로서야 과거를 보아 벼슬을 해서 양반이 되겠습니까, 능참봉을 하겠습니까. 아쉰 대로 향교의 직원이 만만했겠지요. 그래 그는 직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윤두섭이란 석 자 위에 무어나 직함이 붙기를 자타가 갈망하뎐 끝이라 윤두꺼비는 넙죽 뛰어 윤직원 영감이 되었던 것입니다. - 67쪽


윤직원 영감이 인간 생긴 것치고 이 세상에서 제일 귀애하는 게 누구냐 하면, 시방 어디 갔느냐고 찾는 태식입니다.
지금 열다섯 살이고 나이로는 증손자 경손이와 동갑이지만, 아들은 아들입니다. 그러나 본실 소생은 아니고, 시골서 술에미(酒女)를 상관한 것이 그걸 하나 보았던 것입니다.-74쪽

세상에 수형처럼 빚 쓴 사람한테는 무섭고, 빚 준 사람한테는 편리한 것이 없답니다. 기한이 지나기만 하면 거저 불문곡직하고 수형 액면에 쓰인 만큼 차압을 해서 집행 딱지를 붙여 놓고는 경매를 한다나요. 가령 그게 사기에 걸린 돈이라고 하더라도, 수형이고 보면 안 갚고는 못 배긴다니, 무섭지 않고 어쩌겠습니까. - 119쪽

˝거 뭐, 청국이 여지읎넝개비데? 워너니 즈까짓 놈덜이 어디라구, 세계서두 첫찌간다넌 일본허구 쌈을 헐라구 들 것잉가?˝ - 138쪽

무엇이구, 멕이먼 되는 세상잉개루.... 148쪽


마찬가지로, 돈을 쓰는 데 요모조모로 아끼고 졸이고 깎고 해 가면서, 군것은 먼지 한 낱도 안 붙게시리 씻고 털고 한 새말간 알맹이돈을 만들어 쓰곤 하는 대복이의 그 극치에 다다른 규모도, 그러니까 뻐젓한 도락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151쪽

그러나 여기, 일흔 두 살 먹은 허-연 영감태기가, 열다섯살배기 동기 계집애를 아탕발림시키느라고, 나이를 일곱살을 야바위쳐서, 예순 다섯 살로 속이던 것이랍니다.-180쪽

공자님은 가죽 책가위가 세 번이나 해지도록 책 한 권을 무려 천독은 했습니다. 그러고서도 아직도 놓지를 않는 터이니까 앞으로 만독을 할 작정인지 십만독 백만독을 할 작정인지 아마도 무작정이기 쉽습니다. 196쪽

매일 아침 소변으로 눈을 씻으면 안력이 쇠하지 않는다는 것은 전부터 일러 오던 말인데, 윤직원 영감은 시방 그 보안법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 263쪽

동변을 받아 먹으면 몸에 좋다는 것도, 오줌으로 보안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옛날부터 일러 내려오던 말입니다. 265쪽


시골서는 동변쯤 받아 먹기가 매우 편리했지만, 서울로 오니까는 그것도 대처(도시)의 인심이라, 윤직원 영감 말따나, 오줌도 사 먹어야 하게 되었습니다. - 265쪽

자 부아라, 거리거리 순사요, 골골마다 공명한 정사,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남은 수십만 명 동병을 하여서, 우리 조선 놈 보호하여 주니, 오죽이나 고마운 세상이여, 으응....? 제 것 지니고 앉아서 편안허게 살 태평세상, 이걸 태평천하라구 허는 것이여, 태평천아....! 2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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