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 3번째, 키스와나브라운의 이야기입니다.
흑인의 처지를 바꾸어보려는 딸과,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고 사는 어머니의 대화로 이루어진 내용입니다.
마치 대한민국 80년대 데모를 하는 대학생과 자녀들이 걱정되는 어머니의 대화 같습니다.
흑인, 그리고 거기서도 흑인 여성의 마음과는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만.
이 건물에 살고 있는 모든 가구가 가족을 부양하고, 성경을 읽으며, 금요일 밤에 받는 빈약한 급료에서 얼마씩 돈을 각출하여 언젠가는 브루스터플레이스를 희미한 추억거리로 만들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엄마는 절대로 믿지 않을 것이다. -142쪽
그리고 많은 친구들이 하는 것처럼 너도 정신 바짝 차리고 어떤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중요한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거야.
(....)
엄마와 아빠, 그리고 린든힐스에서 사는 교육받은 흑인들처럼 저도 중산층 건망증이라는 불치병을 앓게 되겠죠.
(...)
산다는 건 현재를 받아들이고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거란다.(...) 넌 네가 아닌 것이 되려고 지나치게 노력했으니까.
(...)
흑인인 것을 창피하게 여기는 백인의 굴종적인 검둥이가 되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단 말이예요! - 156~158쪽
옴니버스 4번째 루시엘리아 루이즈 터너 이야기입니다.
가난으로 인해 둘째 임신한 아기를 낙태시키고, 첫째 딸은 남편과 말다툼할 때 부주의하게 감전사했습니다.
껍데기만 남아 있는 루시엘리아를 다시 살리려는 첫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 "메티"할머니의 구원이
참으로 경건하게 다가옵니다. 눈물을 한없이 흘린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을 정도로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한 달 된 아기와 함께 아픈 몸으로 홀로 보낸 좌절의 시간들. 남편이 없다고 무시하고 조롱하는 듯한 사회 복지사의 눈길에 한마디 반박도 할 수 없었기에 느꼈던 굴욕감. 수없이 많은 날 밤마다 초대하지 않아도 가랑이 사이로 기어드는 그 생경한 욕망의 충동들. 설명이 가능한 증오와 설명이 불가능한 사랑으로 온통 짜 들어간 그물에 글려 '왜, 무엇 때문에' 하고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의문들. 그런 것들이 눈앞에서 어찌나 혼란스러운 형태로 계속 선회하던지 그녀는 어느 것 하나라도 제대로 붙잡아 이 남자에게 대꾸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 167쪽
내 분명 약속하겠어. 당신을 증오할 거야. 그리고 당신에 대한 증오를 더 빨리 시작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 나 자신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야. 내 아기를 구해낼 수 있을 정도로 더 빨리 하지 않은것을. 이 세상에 이럴 수가. 사랑하는 내 아가. - 184쪽
말라비틀어진 과거의 고통에 대한 추억은 이런 상황에서 전혀 위안이 될 수 없었다. 그런 기억들은 뜨거운 다리미 위로 떨어진 차가운 물방울과 같았다. 방안이 다리미에서 나는 냄새로 가득한 가운데 물방울은 지질지질 춤을 추다가 쇳 소리를 내며 사라질 것이다. - 187쪽
매티는 계속해서 시엘을 살살 흔들어 주었고, 시엘은 영혼이 온통 지쳐 버린 유대인 어머니들이 화장실 마룻바닥에서 자기 자녀들의 내장을 닦아내야 했던 독일의 다카우 시로 갔다. 다음으로 두 사람은 세네갈의 어머니들이 노예선 측면의 나무 판때기에다 어린 아기들을 패대기쳐 머리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죽은 곳을 지나갔다. - 18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