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읽었다. 처음 읽었던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아마 30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아직은 청춘이라 생각했고, 아직은 남아있는 삶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 같은 것이 있었다. 희망이나 꿈 같은 거랑은 좀 다른데,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일을 즐기고, 해야할 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뭔가 좀 더 나아지리라는 막연한 느낌. 지금 나는 이 책의 주인공 제프가 1988년에 심장마비로 죽을 때의 나이 43세보다 7살이나 더 많은 50이다. 처음 읽었을 때 제프가 43세로 죽었다가 다시 18세로 돌아가 청춘을 다시 살아간다는 설정이 아주 신기하고 재미있다고 여겼다. 43세는 이미 저물어가는 황혼 같은 느낌이었다. 다 늙었다가 다시 젊어진다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저자가 이 책을 썼던 80년대 중반과 지금은 나이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다를 것이다. 지금 43세는 거의 청년 느낌이다. 이젠 사람들이 환갑을 따고 기념하지도 않는다. 환갑 정도도 이젠 청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주로 만나는 활동가들은 대부분 50대, 60대들이다. 나는 요즘도 어딜가던 막내인 경우가 많다.

이 책을 어제 늦은 오후에 시작해서 오늘 아침에 다 읽었다. 중간에 한 서너시간 기절하듯 잠들었다 깨서 다시 읽었다. 이 책을 다 읽고 아침인 걸 깨닫고 북플에 들어와 과거 오늘 쓴 글들을 살피는데, 신기하게도 이 책 표지가 보였다. 7년 전인 2019년 6월 7일, 강양구 기자가 이 책에 대해 쓴 글을 읽고 나도 이 책이 생각나서 집에 가서 찾아 읽어야겠다고 그때 당시 생각나는 만큼만 쓴 글이었다. 43세의 가을에 갑자기 죽어서 18세의 봄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삶을 열심히 살았는데, 다시 43세 가을에 또 죽고 또 18세가 되고, 이걸 계속 반복하는 삶이라는 건 기억이 났는데, 중반 이후로 이 이야기가 어떻게 되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특히 이 이야기의 결말이 궁금했다. 분명 예전에 엄청 흥미롭게 읽었는데, 왜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걸까 하고 답답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얼른 집에 가서 이 책을 찾아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썼던 글이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 아무리 찾아봐도 이 책이 없었다. 이틀 동안 열심히 책장을 뒤졌었다. 결국 포기하고 책을 다시 사려고 보니 절판이었다. 중고책도 없었다. 중고 알림 신청을 해놓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애들엄마 집에서도 책장을 찾아봤었다. 거기도 이 책은 없었다.

중고책 알림이 온 것은 아마 올해 초였다. 외부에서 행사 진행을 맡고 있어서 알림이 온 것을 뒤늦게 봤었다. 잠시 쉬는 시간에 전화기를 열어 수백개의 알림들을 훑어보고 다 지워버리려고 했는데 이 알라딘 알림이 눈에 확 들어왔다. 이건 누가 사버리기 전에 얼른 사야했다. 그렇게 이 책이 다시 내 손에 들어왔다. 빨리 읽고 싶어서 침대 옆에 놓아뒀고, 조금 시간이 날 때 앞부분을 읽었다. 그런데 그때 나는 몇 주 연속으로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일을 하고 있었다. 주말에도 책에 집중할 수 없었다. 바쁜 날들은 오래 이어졌고, 금방 읽으리라 생각했던 책에는 계속 손을 대시 못했다. 그리고 이 책 위에 다른 책들이 더 쌓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어제 이 책이 생각났다. 어디에 뒀더라? 침대 옆에 쌓인 책탑을 뒤져 금방 찾아냈다. 그리고 즐거운 독서를 시작했다.

제프가 처음 심장마비로 죽을 때는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아내인 린다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직장도 그저 그랬다. 극심한 심장통증을 느끼고 다시 정신이 들었는데, 낯선 곳에서 정신을 차렸다. 그런데 이 공간 낯선데 이상하게 익숙한 느낌이었다. 18살의 몸으로 돌아가 에모리 대학 기숙사에서 눈을 뜬 것이었다. 그의 룸메이트가 방에 들어왔을 때 제프는 이미 여러해 전에 자살한 친구 얼굴을 보고 유령을 본 것이거나 꿈이라고 생각했다. 거울을 볼 생각을 하지는 못 하고 방을 나선 제프는 학교 건물들을 지나쳐 밖으로 나가서 택시를 타고 그 동네에서 제일 유명한 건물로 가자고 하는데, 택시 기사는 거기가 어딘지 알지 못했다. 다른 건물을 말하니 다행히 택시가 출발했다. 목적지인 중심가에 도착했는데, 제프가 살았던 80년대에 유명한 여러 건물들이 하나도 없었다. 그제서야 제프는 거울로 자신을 보는데, 대학 새내기인 젊은 자신으로 돌아와있었다. 그가 자신이 63년으로 돌아온 거라는 상황에 적응하는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특히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 주디와의 관계에 적응하는데에도 꽤나 시간이 걸렸다.

만약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젊은 시절의 나로 돌아갈 수 있다면 뭘 하고 싶을까? 당연히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자신이 가진 기억을 이용해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누구나 한번쯤은 할 것이다. 제프는 그해 경마시합의 우승마를 기억해냈고, 마침 이변에 가깝게 누구도 예상못할 결과였기 때문에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당장 자신이 모을 수 있는 한도에서 최대한 돈을 모은다. 부모님께 생일 선물로 받은 낡은 차를 팔고, 수집해놓았던 음반이나 책들도 판다. 그래도 모자라서 고향 부모님께 전화해 돈을 빌린다. 그 다음부터는 너무 쉽다. 그 경마에서 큰 돈을 벌고, 나중에 프로야구 월드시리즈 우승팀을 맞추는 도박에서 어마어마한 돈을 번다. 이후 제프는 매번 다시 돌아올 때마다 경마와 야구에서 돈을 벌어놓고 시작하기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아니 거의 평생 돈을 안 벌어도 되는 수준이라 미친듯이 펑펑 돈을 쓰고 살아도 아무 걱정이 없다. 이게 처음에는 약간 짜릿한 기분이 들지만, 다시 돌아올 때마다 이걸 활용하니까 나중에는 너무 편리한 설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좀 지겹다고 느꼈다. 다만 뒤로 갈수록 다시 돌아오는 시간대가 늦어지면서 나중에는 가장 수익률이 좋은 63년의 경마와 야구를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들도 생긴다. 그런 경우에도 제프는 기억을 활용해서 언제나 너무 쉽게 돈을 번다.

돈 다음에 하고 싶은 건 과연 뭘까? 연애? 사랑? 어쩌면 첫사랑을 이루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까? 제프도 맨 처음에 그랬을 것 같다. 다 늙은 중년에 거의 실패한 결혼 생활이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했다가 다시 젊은 몸으로 돌아와 역시 젊고 아름다운 여자친구를 만난 제프는 아주 오랜만에 큰 성적 흥분감을 느낀다. 그러나 여자친구인 주디의 기분을 생각하지 못하고 실수를 저지르고 그런 자신에게 크게 실망한 후 주디를 떠나버린다. 앞에 썼듯이 쉽게 큰 돈을 번 제프는 아주 비싼 차를 사서 라스베가스로 간다. 카지노에서 만난 매력적인 여성을 만나 젊은 몸으로 돌아와 더 커져버린 성욕을 만족시킨다. 대학 새내기였던 아직 10대인 주디와 달리 이 샬라라는 여성은 성숙하고 섹시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제프가 무었을 제안해도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그들은 갑자기 프랑스 파리로 떠나 오래 머물기도 했고, 다시 갑자기 어딘가로 훌쩍 떠나기도 했다. 샬라는 제프의 육체적 쾌락을 만족시켜주는 대신 값비싼 옷과 보석 등을 마음껏 사모았다. 이 대목에서 제프의 첫번째 회귀가 너무 쉽고 완벽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화수분이라도 가진듯 돈을 써도 써도 아무 걱정이 없고, 누구라도 단번에 눈이 갈 수 밖에 없는 아름다운 여성이 그가 하자는대로 다 해주는 삶이라니! 아마 세상 남성들 모두 한번쯤은 해봤을 몽상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제프는 문득 샬라에게서 다른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원래 생에서 아내였던 린다, 그리고 돌아와서 만났던 주디와 비교해 너무 천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이 살랴라는 여성이 정말 쿨하다고 느꼈던 것이 제프가 너무나도 어이없게 이별을 통보하는데, 그걸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 제프에게 이 이별은 너무 쉬운 일이었다. 그는 거액의 현금과 편도 항공권을 한 장 건넨다. 샬라는 곧바로 그 의미를 깨닫는다. 제프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당시 두 사람은 어딘가 낯선 도시의 호텔에 있었는데, 샬라는 집에 있는 자신의 비싼 옷과 보석들에 대해 묻는다. 제프는 어딘가 정착한 후에 주소를 알려주면 다 보내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비행기 타기 전에 더 사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이 스위트룸에 달아놓고 다 사라고 한다. 그러자 샬라는 옷을 벗으며 이 정도 거액이라면 마지막 섹스를 즐길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

제프는 샬라와 이별한 후에 어떤 날짜를 기대하며 기다린다. 린다와 자신이 처음 만난 날에 처음 만났던 장소로 찾아간다. 죽기 전 결혼생활이 좋지 않았던 이유 중에는 경제적 어려움도 있었다. 지금 자신은 젊은 나이에 엄청난 부자가 되었으니 린다에게 더없이 좋은 남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린다는 제프가 자신이 부자라고 소개하는 말을 믿지 않았고,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전 삶에서 린다와 제프가 만나 서로 사랑한 것은 돈 때문이 아니었을 것이다. 제프는 첫 회귀에서는 돈은 챙겼지만, 사랑은 챙기지 못했다. 주디도 린다도 그에게 관심이 없었고, 돈 때문에 만난 샬라는 자신이 떠나보냈다. 그후 제프는 미국 최상류층 부자의 자녀인 다이앤 이란 여성을 만나 결혼한다. 다이앤은 너무 도도한 온실 속의 화초 같은 여성이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모르는, 평생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고 살아온 사람. 다이앤과 제프는 애초에 사랑할 수 없는 사이였을 것이다. 하지만 제프는 다이앤이 임신했다는 사실 하나에 희망을 걸었다. 어쩌면 아이가 태어나면 달라지지 않을까? 우리 결혼생활이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을까? 이전 생에서 제프와 린다는 아이가 없었다. 린다가 자궁외 임신을 했다가 더는 임신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제프는 그때도 그런 생각을 했다. 아이가 있었다면 이 결혼생활은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이후 다이앤은 그래천이라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딸을 낳았다. 제프는 지극정성으로 그래천을 키웠다. 다이앤에게 줘야 할 사랑마저도 모두 딸에게로 향했다. 다이앤은 딸 보다는 자신의 일상이 더 중요한 사람이었다. 비록 결혼생활은 성공이라 말하기 어려웠지만, 경제적으로 대성공을 거두웠고 너무나도 잘 자라고 있는 그래천이 있어서 만족할만한 인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점점 그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43세의 가을. 아무 이유없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었던 그날. 제프는 건강을 챙겼다. 운동도 하고 식사도 잘 했다. 절대 심장마비가 올 리 없는 몸이었지만, 제프는 불안했다. 의사에게 아무리 확인받아도 안심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날이 되자 다시 심장마비가 왔다.

두번째로 젊은 몸으로 돌아왔을 때 제프는 설명할 수도 없는 상실감을 느꼈다. 자신의 목숨보다 사랑했던 그래천을 다시는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자신이 그 삶에서 죽어버린 것이지만, 제프 입장에서는 딸이 자신보다 일찍 죽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만약 자신이 죽어버린 그 두번째 삶이 자신의 죽은 이후에도 계속 이어진다면 그래천은 아빠를 잃은 슬픔에도 잘 살아가겠지. 이후 제프는 다시는 아이를 낳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다시 돌아올 때마다 정관수술을 하고 여성들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주디와의 사랑이 성공해 결혼한 인생에서 주디가 아이를 너무 원하자 두 사람은 입양을 선택하기도 한다. 두 사람은 입양한 아이들을 아주 훌륭하게 잘 키웠지만, 다시 제프는 심장마비로 죽고 또 젊은 몸으로 되돌아와버렸다.

린다는 회귀 이전에 사랑해서 결혼한 아내여서 제프가 회귀할 때마다 한번씩 연인으로 고려하는 사람인 것 같다. 주디는 제프가 돌아온 시점의 여자친구라 늘 연인으로 시작하는 사람이다. 샬라는 제프가 다른 건 다 생각하지 않고 오직 마약과 육체 관계만 탐닉하는 시기에만 등장한다. 첫 회귀때 아주 인상적인 인연을 맺었다가 나중에 몇번째인지 모르겠지만 한번 더 등장한다. 다이앤은 딱 그 첫 회귀에서만 등장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중반을 넘어갈 무렵에 진짜 여주인공이 아주 뒤늦게 등장한다. 패멀라 라는 여성은 이 이야기에서 두번째 등장하는 회귀자다. 제프가 인디언들이 살았던 산골에 은둔자로 살아가다가 원래 기억에는 없었던 영화를 보고 찾아낸 인연이다. 제프와 같이 1988년 가을에 심장마비로 죽어서 63년 봄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사람. 제프가 18세로 돌아오듯, 패멀라는 14세로 돌아온다. 그래서 늘 초반에는 제프보다 훨씬 더 힘들다고 한다. 18세는 그래도 대학을 다니고 부모와 떨어져 살지만, 14세는 고등학교를 다녀야 하고 부모의 집에서 살아야 하니까.

이 두 사람은 처음 죽음을 맞았을 때 40대였고, 첫 회귀에서 25년을 살았으므로 두번째 회귀에서 이미 그들의 부모보다 훨씬 오래 살았다. 세번째 회귀 이후엔 아마 부모가 어린애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이 두 사람은 다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공유하면서 그들만의 유대감을 쌓아갈 수 밖에 없었고, 그 특별한 상황과 유대감이 애정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 특히 88년에 같이 심장마비를 겪고 다시 과거로 회귀한 이후에 그들이 사로에게 느끼는 감정은 정말 말로 설명하기 어려우리라. 다른 점이 있다면 제프는 처음 생에서 린다와 아이가 없었고, 패멀라는 처음 생에서 남편과 사이에 두 아이가 있었다는 것. 그래서 제프가 두번째 회귀에서 느꼈던 그 속이 끊어지는 고통을 패머라는 처음 회귀에서부터 느꼈다는 것. 이점은 나중에 이 이야기의 결말에서도 큰 영향을 미친다.

에필로그라고 붙어있는 아주 짧은 이야기를 제외하면 과거로 반복해서 되돌아가는 사람은 딱 세 명만 등장한다. 세번째 등장하는 사람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고, 비중도 거의 없다. 그럼 전세계에서 이런 이상한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딱 세명일까? 에필로그를 보면 그건 아닌 것 같다. 어딘가에 더 많이 있는 것 같은데 이 이야기에 연결시키지는 않은 듯하다.

패멀라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인도 신화의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윤회. 이 리플레이가 윤회와 다른 점은 처음부터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사람의 과거 특정 시점으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글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 회귀가 반복하면서 점점 과거로 거꾸로 되돌아가는 기간이 짧아진다. 처음에는(그러니까 첫 회귀와 두번째 회귀에서 돌아오는 시점이) 겨우 몇 시간이지만, 두번째는 며칠이 되고, 세번째는 몇 달이 되는 식이다. 나중에는 그게 몇 년이 된다. 이렇게 회귀 기간이 짧아지는 설정이 이 이야기의 가장 독특한 지점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결말까지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인데, 이 설정이 없었나면 어쩌면 이 이야기를 제대로 끝맺기 어려웠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건 내 추측이지만, 작가가 글을 써나가다가 어떤 결말로 가야할지 확신이 들지 않았을 시점에 여러 설정들을 고민하다가 이 설정을 취해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설정을 정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결말은 새드 엔딩이 아니라 해피 엔딩이지만, 여러가지 현실적인 문제들로 머리가 복잡해지는 엔딩이다. 이 소설의 결말이 궁금해서 여러 해를 기다렸던 입장에서는 조금은 허무한 결말이기도 하다. 사실 패멀라의 등장 이후로는 이야기의 분위기가 너무 변해버려서 당황스러운 측면도 있다.

패멀라의 등장 덕분에 더 흥미로운 장면은 딱 하나다. 왜 그런 건지 설명이 나오지 않지만, 88년 가을에 패멀라가 제프보다 9분 늦게 죽는데, 다시 돌아오는 시점은 좀 많이 늦은 걸로 나온다. 그게 처음에는 얼마 차이가 나지 않지만 아까 그 설정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극단적으로 긴 시간으로 차이가 벌어진다. 이 두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 이미 세번째 회귀를 한 상태였다. 그래서 이후 제프는 과거로 돌아와 패멀라가 돌아올 때까지 긴 시간을 기다리게 된다. 그 중 두번째 부분이 제일 재미있었다. 제프는 돌아와서 패멀라를 기다리기 위해 패멀라가 다니는 대학 근처 시골에 집을 하나 마련하여 매일 패멀라의 동선을 얼쩡거렸다. 지금 개념으로는 스토킹이다. 패멀라가 아직 돌아오기 전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므로 먼저 말을 걸지는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패멀라 그러니까 아직은 최초의 삶을 살고 있는, 그래서 제프의 존재를 아예 모르는 원래 패멀라가 친구들과 마약을 하고 시골 동네에 하나 밖에 없는 술집으로 가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저쪽에 요즘 유난히 자주 눈에 띄는 젊은 남성이 자주 자신을 보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다 어느 순간 패멀라가 그 몸으로 돌아온다. 자신이 과거 자주 다니던 술집에 있음을 깨닫고, 마약도 했음을 깨닫는데 그러다 저쪽에서 자신을 보고 있는 제프와 눈이 마주친다. 제프는 갑자기 패멀라가 자신을 보는 눈빛이 바뀌었음을 느끼고 밝게 환영의 웃음을 보인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이 이야기의 묘미를 절반도 다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아쉬웠다. 이 책은 60년대부터 80년대를 살았던 미국인이 읽어야 작가가 일부러 넣어놓은 여러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예술적 사실들을 모두 이해하며 일을 수 있으리라. 그러니까 작가와 비슷한 나이대, 40년대 중반에 태어난 사람들이 가장 잘 즐길 수 있으리라. 불행히도 한국 사람인 나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넣어놓은 수많은 과거 아이템들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건 지리적으로도 마찬가지다. 몇 개의 주와 도시 이름은 익숙하기도 하고 대략 위치도 생각났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지명은 낯설고 어디 붙어있는 곳인지도 알 수 없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책 이름 중에 겨우 서너개의 제목만 알아봤고, 수많은 노래 중에 겨우 두어개의 제목만 알아보고 곡조를 떠올릴 수 있었다. 수많은 가수들 중에 겨우 열명 남짓의 이름만 알아봤다. 영화의 경우에는 그래도 다행히 훨씬 더 많이 알아봤다. 역사적 사건들과 정치인들을 비롯한 수많은 인물들도 마찬가지였다. 존 에프 케네디를 비롯한 유명한 인물들과 그에 얽힌 사건들은 당연히 알지만, 일년에도 여러번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까지 다 알수는 없었다. 작가가 방송 작가로 긴 시간 일하며 굵직한 사건들부터 작은 사건들까지 해마다 일어난 많은 사건들에 해박했기 때문에 그런 요소들을 잘 엮어 활용했지만, 나는 그걸 다 캐치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쉬움이 있다. 나와 같은 우리나라 독자들을 위해 번역자께서 여러 단어들에 아주 친절하고 상세하게, 그리고 길게 역자주를 달아주셨는데, 이건 또 읽어가는 흐름에서 방해가 되니 아쉬웠다. 만약 시간이 많다면 이런 요소들까지 꼼꼼하게 챙겨가면서, 그래서 역자주를 잘 읽고 검색도 해보면서 읽으면 또 완전 다른 재미를 느낄지도 모르겠다.

나는 무신론자이고 천국도 지옥도 믿지 않는다. 죽음 이후엔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내 존재가 사라졌으니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을 수 밖에. 윤회도 당연히 믿지 않고 영혼의 존재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나라도 내가 언젠가 죽고 나서 다시 젊은 날의 나로 돌아간다면? 이라는 상상은 해볼 수 있다. 어차피 세상은 한낱 인간의 인식으로는 다 알 수 없는 것이고, 아직 죽어보지도 않았으니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는 것이지. 어쩌면 이런 마음으로 사람들이 종교라는 걸 믿는 것이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대학생으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살 거냐고 묻는다면, 글쎄 일단 90년대는 60년대와 많이 달라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좀 더 있을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여기는 미국이 아닌 한국이라 제약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예를들면 내가 미친듯이 색욕을 불태워보고 싶어도 절대 샬라 같은 여성을 만날 수는 없을 것이다. 경마나 야구 도박으로 엄청난 부자가 되는 것도 불가능하다. 어쩌면 아주 큰 흐름에서는 그리 다르지 않은 삶을 살지 않을까? 후회가 되는 많은 일들을 바꾸고 싶지만, 언제나 현실은 예측대로 되지 않는 법. 어쩌면 그런 실수들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또 다른 실수들이 생기고 또 후회할 일들이 생길 것이다. 한가지 생각나는 건 학문 하나를 붙잡고 꾸준히 놓지 않고 파보고 싶다. 예를들어 어설프게 배우고 말았던 철학이나 사회학을 꾸준히 익혔다면 지금 좀 다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래놓고 막상 정말로 그런 기회가 생겼을 때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결국 이번 인생처럼 어영부영 이리저리 바쁘게 살다가 문득 정신 차리면, 결국 뭘 했는지도 모르겠는 그런 삶을 살지 않을까? 분명 바쁘게 살기는 했는데, 지나고 보면 딱히 뭘 해놓은 것은 없는 그런 삶. 분명 그러리라 본다. 그러니 차라리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는 없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추신.
작중에서 과거로 돌아가는 현상을 부르는 단어가 사람마다 다르다. 제프는 재생이라고 했다. 이 단어가 제목인 리플레이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패멀라는 회귀라고 썼던 것 같다. 이 표현은 원문에서 뭐었을까 궁금하다. 그리고 세번째 인물도 또 다른 표현을 썼었는데, 이건 좀 성격이 다른 표현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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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6-08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 다시금 살아보고 싶은 바램은 누구나 한번쯤 상상해 보게 되겠죠. 제가 그런 터무니없는 상상을 해 보는 건 마흔이 넘어서야 살아보고 싶은 삶이 겨우 그려지기 시작했다는 이유입니다. 돌아가도 또 상처투성이인 삶이 될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첫 시작은 뭔가 구체적인 꿈에서 시작할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하네요.
 






























영화 [온다]를 먼저 봤다. 영화에 대한 평들을 읽다가 원작도 좋지만, 영화도 잘 만들었다는 글을 보고 책을 구매했었다. 처음에 앞부분을 좀 읽다가 갑자기 바빠져서 멈췄는데, 그러고 몇 달을 손도 못 대고 지나버렸다. 최근에 갑자기 이 책이 생각나서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이번에는 다섯시간? 대충 그 정도 걸려서 안 쉬고 한번에 다 읽었다.


이제는 영화의 세부 내용에 대한 기억이 살짝 희미해지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큰 줄기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책을 다 읽고 다시 영화를 떠올려보니 작가와 감독이 영리하게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라는 상영시간이 짧은 매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원작의 연결고리들과 세부 설정들을 잘 녹여내었고, 그러면서도 원작의 긴장감을 잘 살렸다. 특히 영화 후반부에서 아주 멋있게 연출한 클라이막스 장면은 원작과 완전히 달랐는데, 영화의 연출이 정말 좋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소설의 해당 장면이 나쁜 것은 아니었으나, 영화가 너무 멋있었다. 원작 소설은 소설대로, 영화는 영화대로 각자의 장점이 명확하다.


이 소설은 가장 큰 장점은 실체를 정확히 알기 어려운,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막연하면서도 커다란 공포를 잘 나타낸 점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전체 구성을 세 부분으로 나눠 각 부분의 서술자를 다르게 배치하여 해당 인물의 시선과 생각의 틀 안에서 전체 그림을 조금씩 보여주는 것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이런 구성은 잘못하면 매우 산만하면서도 전체 그림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할 위험이 큰데, 각 부분에 아주 적절한 성격의 인물들을 잘 배치하여 단점이 거의 드러나지 않고, 장점은 극대화시켰다.


등장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자. 이런 류의 이야기에서 과연 주인공은 누구일까? 아니 어떤 인물을 주인공으로 놓아야 가장 효과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을까?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두 가지 선택을 할 것이다. 하나는 이 사건에 휘말리는 당사자, 피해자를 주인공으로 두고 시간의 흐름대로 따라가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선택일 것이다. 두번째는 피해자를 도와 이 사건을 해결하는 해결사, 다른 입장에서는 이 사건의 본질인 그 존재에 맞서는 대적자 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이건 영화나 드라마 등 영상물에서 주로 선택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작가는 총 세 부분으로 나눈 이야기 중에서 1차 피해자와 2차 피해자를 각각 1부와 2부에 두어 일반적인 선택을 따랐지만, 3부의 서술자는 상황을 지켜보며 도와주지만, 그 존재에 맞설 힘은 없는 조력자로 선택했다. 물론 입장에 따라서는 조력자도 큰 틀에서 대적자의 범위 안에 넣을 수 있고, 해결사 그룹의 일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다만 영화와 달리 소설에서는 그 존재에게 맞설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밖에 없는 것으로 나오고 그 단 한 명의 존재감이 워낙 커서 다른 인물들은 그저 조연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작가의 이 선택이 결과적으로는 아주 크게 성공했다고 보지만, 다른 인물이 세번째 부분의 서술자였다면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이야기의 측면에서만 보면 그렇다. 그러나 작가가 이 이야기를 통해 무었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하는 주제를 떠올려보면 3부의 서술자가 가장 적합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그 외 다른 인물들은 효과적으로 그 이야기를 전달하기 어렵다고 본다.


여기까지 쓰고 다시 영화를 보고 왔다. 소설의 재미를 영화가 잘 살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시 보고 싶었다. 찾아보니 웨이브 라는 OTT 에서 독점 제공하고 있다고 나왔다. 유튜브에도 검색해봤는데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웨이브를 딱 1달만 결제했다. 이거 보고 나서 웨이브 독점인 다른 영화나 드라마들을 좀 봐야지 생각했다.


등장인물 이야기를 하려다가 소설의 구조 이야기를 먼저 하고 있었네. 구조적인 측면에서 소설은 소설대로 좋은 선택을 했고, 영화는 영화대로 나쁘지 않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게 잘 따라가는 흐름을 보여줬고, 후반부의 절정 부분만 소설과 다르게 갔다. 앞서도 말했듯 이 부분은 시각적으로 멋진 장면을 보여줘서 아주 인상적이었다. 다만 결말이 다소 아쉽다. 코토코가 그것을 완전히 제압했는지 어떤지를 보여주지 않고 그냥 엄청난 양의 피가 튀기는 장면만 보여줬다. 그리고 이후에 각 등장인물의 상황도 보여주지 않았다. 반면 소설은 코토코가 그것을 완전히 제압한 이후에 각 등장인물들의 모습들을 알려준다.


등장인물을 말하려면 일본 이름과 우리말 발음 이야기를 짧게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책에서 주인공의 이름은 다하라 히데키였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타하라 히데키였다. 일본어 히라가나 ''를 소설 번역가가 '다'로 쓴 것이었다. 예전에는 몰랐지만, 일본어를 2년째 배우고 있는 지금은 이 선택에 대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그냥 '타' 라고 쓰는 것이 더 편하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히가 마코토 역을 맡은 배우 고마츠 나나는 예전에는 계속 고마츠 라고 소개되었는데, 최근에는 코마츠 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워낙 오랫동안 고마츠 라고 읽어오다가 갑자기 코마츠 라고 읽으려니 완전히 다른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히데키의 아내도 소설에서는 가나 라고 나온다. 하지만 일본어로 인물정보를 찾아보면 히라가나 '' 로 나온다. 일반적인 발음으로는 카나로 읽는 것이 맞을 것이다. 사실 일본어 발음이 우리나라 글자로 정확하게 타도 아니고 다도 아니다. 코도 아니고 고도 아니며, 카도 아니고 가도 아니다. 그 중간 어디쯤의 발음일텐데, 이걸 번역자와 편집자가 다와 가를 선택했다고 뭐라 할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암튼 그래서 일반적인 이야기였다면 주인공이 되었겠지만, 이 소설에서는 1부의 서술자인 타하라 히데키부터 인물 이야기를 해보자. 히데키는 아주 전형적인 유부남이라고 할 수 있다. 가부장제의 수혜를 가장 잘 누리고 있는 일본 남성. 일본 영화나 소설에서는 남성들도 곧잘 요리를 하고 집안 일을 하던데, 이 사람은 그러지 않는다. 집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블로그에 자신이 육아 아빠라고 잘난 척을 하지만,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자신이 그렇게 사랑한다는 딸을 돌보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블로그에 자신이 멋지게 육아를 해내고 있다고 거짓 일상을 올린다. 마치 인스타그램 등 SNS 에 멋진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거짓 삶을 전시하는 현대인들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소설에서는 처음에 마치 이 인물이 정말 육아를 비롯한 집안 일을 잘 하고, 아내인 카나에게 잘 해주는 인물인 것처럼 나온다. 나중에 마치 반전처럼 사실은 얘가 빌런이었어 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처음부터 싸한 느낌이 들도록 보여준다. 소설에 없는 이야기인 오프닝 장면의 어린 소녀가 히데키에게 너는 거짓말쟁이잖아 라고 말하는 부분이 딱 그런 부분이다. 사실 소설에서도 영화에서도 히데키의 삶은 거짓 투성이였다. 소설에서는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소를 종종 다녔던 것으로 드러나고, 영화에서는 같은 회사 여직원과 불륜 관계였던 암시가 나온다. 안타깝게도 소설과 영화에서 모두 카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소설과 영화 모두 히데키의 과시욕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보여준다. 사랑하는 치사가 다쳤을 때, 히데키는 구급차를 부르지도 못하고 멍하니 있었지만, 블로그에는 자신이 침착하게 잘 대처했다고 적는 모습이 나온다.


나는 큰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육아휴직을 신청했었다. 당시 내가 일했던 단체에서는 매우 선진적으로 남성 활동가에게 육아휴직 6개월을 유급으로 보장해주는 규칙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내가 육아휴직을 신청하자 상급자는 단체 사정을 설명하며, 무급이라고 했다. 뭐, 이해할 수 있었다. 애초에 유급은 바라지도 않았었다. 그저 6개월이라는 기간을 보장해주는 것이 오히려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다. 당시 활동가였던 내 급여는 너무 적었고, 아내가 버는 돈이 훨씬 더 많았다. 내가 육아휴직을 해서 아이를 돌보고 아내가 일을 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래서 아내는 출산 후 짧은 기간 몸을 회복한 후에 일을 했고, 내가 아기와 하루종일 지냈었다. 이 소식을 들은 어느 여성 잡지 기자가 전화 인터뷰를 해서 짧은 기사를 내기도 했었다. 나는 환경 분야 활동가였기에 시중에 판매하는 일회용 종이 기저귀 대신 천 기저귀를 빨아서 썼다. 육아는 정말 힘들었다. 옛날 어르신들이 아기 볼래? 밭 맬래? 라고 물으면 당연히 밭 매러 간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그래도 나는 내 인생의 첫 아이였던 큰 아이와 지내는 하루 하루가 참 좋았다. 당시에 나도 일상 이야기를 끄적이곤 했던 블로그가 있었으나 온갖 집안일로 바쁜 하루를 보내느라 블로그를 쓸 여유는 없었다. 6개월의 육아휴직이 끝나고 단체에 복귀한 이후에도 나는 아내와 비슷한 비중으로 육아와 집안일을 하려고 애썼다. 물론 쉽지 않았고, 잘 지켜지지 않았다. 아마 아내가 70이나 80 정도 했을 것이고,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30이나 20 정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새벽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 화장실에 쌓여있는 천 기저귀들을 빨아서 삶아 놓고 잠들었고, 새벽에 아기가 깨서 울고 보채면 분유를 타서 먹이기도 했다. 나보다 훨씬 더 힘든 아내를 위해 뭐라도 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잘난 척 하려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전체 집안일과 육아의 1/3 정도 간신히 했을 텐데, 동네에서는 마치 내가 혼자 아이를 다 키우는 것처럼 소문이 돌았다. 평일 중 이삼일 저녁에 내가 아이를 맡은 날이면 아이를 데리고 여기저기 회의를 다니고, 행사를 다녔던 탓이다. 나는 아기를 업고 집회를 나갔고, 행진 도중 큰 건물 화장실을 찾아가서 기저귀를 갈았다. 길바닥에 앉아서 분유를 먹였고, 아기를 안은 채로 폭력을 휘두르는 경찰에 쫓겨 다녔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노력했어도 아내는 너무 힘들어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육아와 가사노동에 동참해도 결국 그 힘든 일의 주체는 여성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동네에서 늘 내가 아기를 데리고 다닌다고 소문난 우리 집이 이런 상태였는데, 히데키 처럼 말만 하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인간이었다면 카나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쉽게 납득할 수 있다. 히데키는 심지어 본인이 생각하는 완벽한 엄마의 모습을 카나에게 강요하기도 했다.


이렇게 가부장제 사회의 모순을 건드리고, 현대인의 허세와 실상을 보여주는 것이 이 작품의 가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히데키는 게다가 자신의 할아버지처럼 폭력적인 모습도 보였다. 나중에 마코토가 부인과 아이에게 잘 해야 그것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고 충고 했을때 미친듯이 화를 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자신이 실은 거짓으로 육아를 하는 것처럼 가장하는 삶을 살고 있음을 자신이 깨닫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히데키에게 그것이 오는 이유는 사실은 저주 때문이었다. 영화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데, 소설에서는 그 이유가 확실하게 밝혀진다. 히데키의 할아버지가 휘두르는 폭력과 고압적인 태도 때문에 히데키의 할머니가 저주를 담은 부적을 사용했기 때문에 그것이 히데키의 집안에 들러붙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중반 이후로 가면 히데키의 친구인 민속학 교수가 또 다른 저주가 담긴 부적을 카나에게 사용한다.


즉,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것은 가정 폭력과 가부장 제도의 모순 때문에 나타났던 것이다. 물론 소설의 제목에서부터 보기왕이란 이름이 등장한다. 그 이름은 스페인 선교사들이 일본에 오면서 함께 온 부기맨 이란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원래 히데키의 할아버지기 살았던 시골 동네에서는 그것의 이름이 없었다고 한다. 그것은 원래 입에 담아서는 안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볼드모트가 이름을 말 할 수 없는 존재였던 것과 비슷한 이유였으리라.


타하라 카나는 고아였다. 가족이 없이 자랐기 때문에 가족이라는 틀에 대한 결핍이 있었다. 영화에서는 술과 담배에 의존하며 아이를 전혀 돌보지 않는 엄마와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동생들이 나오는데, 결혼식 장면에서만 짧게 나올 뿐 전혀 비중이 없다. 차라리 원작처럼 그냥 고아로 설정하는 것이 더 좋았을 텐데, 왜 설정을 바꿨는지 모르겠다. 암튼 카나는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히데키의 집안에 대한 부담도 있었다. 그럼에도 히데키가 정말 좋은 사람이라 착각했던 것 같다. 카나는 히데키의 거짓 인생에 질려하면서도 치사를 어떻게든 잘 키우고 싶어했다. 소설에서 카나는 딱히 흠잡을 곳 없는 인물이다. 2부에서 그것의 습격을 받고 큰 충격을 받아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는 하지만, 결말에서는 다시 치사와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의 카나는 히데키 못지않은 빌런으로 나온다. 히데키가 회사 여직원과 불륜을 저질렀던 것처럼 카나는 히데키의 친구인 민속학 교수와 몸을 섞는다. 마코토가 치사를 돌보다가 그것의 습격을 받는 순간 카나는 그 교수와 함께 침대에 있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히데키의 죽음을 좋아하는 모습을 소설보다 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 치사에게도 화를 내며 폭력적인 모습도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카나도 죽여버린다. 영화에서 쿠로키 하루 라는 배우가 연기했는데, 아주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3부의 서술자인 노자키 카즈히로는 아마 히데키와 비슷한 연배일 것으로 추측된다. 노자키가 마코토와 함께 히데키의 집을 찾아갔을 때 카나에게 자신이 히데키의 시골 친구라고 말하고, 마코토는 자신의 여동생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영화에 나온다. 노자키는 오컬트 작가라고 하는데, 여기저기 소수의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프리랜서다. 영화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소설에서는 꽤나 성실하게 취재하고 자료를 조사하는 모습들이 나온다. 그리고 소설에서는 무정자증이라 이혼을 한 것을 나오고 그래서 아이를 싫어하는 사람을 그려진다. 영화에서는 전 여친이 임신 사실을 알리자 낙태를 강요한 인물로 나온다. 그리고 영화와 소설 모두 현재 마코토에게는 아주 충실한 모습을 보인다. 소설 기준으로 이 작품에 나오는 모든 남성 등장인물 중에 가장 괜찮은 인물이며, 마지막에 그것의 습격에 맞서 싸워 살아남는 진짜 주인공이라 볼 수 있는 인물이다. 영화에서는 오카다 준이치 라는 배우가 연기했는데, 외모가 성격과 딱 들어맞는 모습으로 나온다.


히가 자매는 사와무리 이치 작가가 이후에도 다른 작품에서 계속 다루는 인물들로 작품 전체로 보면 비중이 많지 않지만, 그것에 유일하게 대적할 수 있는 주인공이다. 일반적인 소설이나 영화였다면 이들이 주인공을 맡았을 것이다. 알라딘에 보니 히가 자매 시리즈가 총 5개 있다고 나온다. 이 소설이 첫 등장 작품이다. 나중에 다른 작품들도 읽어봐야겠다. 언니이자 일본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무녀인 코토코는 아주 비밀스러운 인물로 그려진다. 위험한 일을 해온 덕분에 온 몸에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흉터들을 갖고 있다. 작중에서 유일하게 그것에 대적할 수 있는 인물로 나온다. 소설에서는 혼자 그것을 물리친다. 그래서 이후에 다른 작품에도 계속 등장하는 것이겠지. 영화에서는 백여명 가량의 조력자들을 소집하는데, 거기에 한국 무당들의 모습도 보여서 색다른 재미를 주기도 했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코토코가 결국 그것을 물리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많은 양의 피가 튀는 장면 묘사가 끝이라서 코토코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 듯하다. 영화에서는 마츠 타카코가 연기했다. 이 영화를 연출한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전작 [고백]에서도 주연을 맡았었다. 이 영화만 봤을 때는 전혀 몰랐는데, 알고보니 그 옛날 이와이 슌지 감독의 [4월 이야기]의 그 주인공이었다.


히가 마코토는 저녁에 바에서 일하는 여성으로 언니인 코토코를 동경해 영능력을 연마했지만, 실력은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그려진다. 어떤 사정으로 임신을 할 수 없는 몸인데, 그래서 더 아이들을 좋아한다. 처음 히데키가 방문했을 때 그를 간파했고, 그의 거짓 삶이 그것을 불러들인다는 사실을 인지해 조언했다. 히데키가 크게 화를 내고 가버렸지만, 현장을 확인하고 싶다며 노자키와 함께 히데키의 집을 방문해 치사를 만났다. 이후 치사를 돌보며 지켜주는 수호천사 같은 역을 수행한다. 치사가 그것에 끌려갔어도 결국 나중에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마코토가 치사에게 준 은반지 덕분이었다. 기분에 따라 자주 머리카락 색을 바꾸는 것으로 나온다. 영화에서는 코마츠 나나가 연기했다. 와! 청순한 소녀 이미지를 주로 연기했던 나나가 이런 연기 변신을 한 것은 좀 의외였다. 코마츠 나나는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전작인 [갈증]에서 주연을 맡았었다.


영화의 감독인 나키시마 테츠야 이야기를 짧게 하자. 일본 영화를 그렇게 많이 보지 않았는데, 의외로 이 감독의 영화를 여럿 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서 언급한 [고백]과 [갈증] 그리고 이 영화 [온다]까지 세 편을 보았다. [불량공주 모모코]는 보려고 마음 먹고 있는데, 아직은 손을 대지 못했다. CF 감독 출신이라고 하고 그래서 영상을 기가 막히게 예쁘게 잘 찍는다고 한다. 이 영화의 오프닝도 자신의 장기를 잘 살려 멋지게 뽑아냈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고백]은 꽤 인상적인 영화였고, 잘 만든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갈증]은 조금 아쉬운 부분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괜찮은 영화라고 인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영화 [온다] 역시 나쁘지 않았다. 물론 공포영화라는 측면에서는 조금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원작을 생각하면 또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괜찮은 점수를 줄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번에 두 번째로 [온다]를 보면서 이 감독이 장면을 구성하는 방식에서 많은 것을 담았다는 점을 깨달았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고백]과 [갈증]도 한번씩 더 보면서 각 장면의 구성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어졌다.


영화에서 시작해 책으로 이어지고 다시 영화로 돌아온 재미있는 여정이었다. 책은 예상보다 훨씬 더 만족스러웠고, 다시 본 영화는 기억보다 조금 더 아쉬웠다. 이어서 사와무라 이치의 히가 자매 시리즈 중 다른 작품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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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의 해프닝

요미우리 자이언츠 팀의 감독 아베 신노스케 감독이 아동 폭력으로 경찰 조사를 받은 후에 자진 사퇴하며 기자회견을 했다. 처음에는 무슨 이야기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아베 감독의 발언 이후 변호사가 대독한 아베 감독 딸의 입장문을 듣고 나서 이해가 갔다. 실제 사건의 내막과 그 입장문이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입장문이 사실이라면, 실제로는 별일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발로 차거나 밀어 넘어뜨리는 등의 폭력은 실제로 없었고, 자신이(그러니까 아베 감독의 딸이) 과장한 표현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왜 일이 이렇게까지 커졌는지 그 이유를 밝혔는데, 바로 인공지능 때문인 것처럼 표현했다. 본인이 아빠와 그렇게 크게 다툰 것은 처음이라 챗지피티에 상담했는데 아동상담소에 상담할 것을 추천했고, 상담과정에서 자신의 입장과 관계없이 경찰 신고가 이뤄져 아베 감독이 연행되었는데, 경찰이 나타났을 때 가장 놀랐던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밝혔다.

아베 감독의 딸은 18세라고 했다. 거의 성인이나 다름없는 청소년이다. 나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은 더더욱 청소년의 신체적 정신적 성장 정도가 성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고, 그들을 어리다고만 볼 것이 아니라 성인처럼 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정도 나이에 아동상담소에 상담하는 과정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은 조금 의아하고 아쉬운 대목이다. 더구나 이 상황의 책임이 마치 챗지피티라는 인공지능 때문이라는 것처럼 쓴 대목도 아쉽다고 느낀다.

내가 좀 신기하다고 생각한 지점은 여기다. 아빠와 크게 다퉈 어쩔줄 모르는 상황을 인공지능에게 상담했다는 사실이다. 내 상식으로 보면 인공지능이 가족간의 유대와 관계에 대해 알 수 없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데, 그걸 인공지능에게 상담을 한다니! 이건 아마도 내가 세상을 보는 시각과 인공지능에 사소한 것들까지 상담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다르기에 벌어지는 상황이다. 만약 아베 감독이 딸의 입장문과 다르게 실제로 폭력을 사용했다면 모르겠지만, 실제 폭력이 없었는데, 딸이 상담과정에서 과장한 표현 때문에 사회적으로 이렇게 큰 파장을 일으키는 사건이 되었다면 이건 참 우스운 해프닝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아베 감독은 사소한 실수 하나로 감독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스타벅스 불매

광주항쟁에 대한 비하와 박종철 열사에 대한 비하 의도가 담긴 이벤트 논란으로 많은 사람들이 스타벅스 불매에 나섰다고 들었다. 이른바 ‘탈벅‘이라고 부른다고. 평소에 커피를 그닥 좋아하지 않고 업무상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커피숍이란 공간에 갈 일도 거의 없는데, 특히나 스타벅스라는 공간은 묘한 거부감이 들어서 거의 가 본 적이 없었다. 아마 살면서 지금까지 대여섯번이 채 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우리 동네에도 여기저기 스타벅스 매장이 많이 생겼고, 이삼년 전쯤에 일터 건너편에 큰 매장이 하나 생겼었다. 평소 그 거리는 사람들이 그리 많이 다니지 않던 길인데, 스타벅스 매장 하나 생겼다고 갑자기 사람들이 많아진 모습을 보고 좀 놀랐었다. 매장에는 늘 사람들이 많았다. 빈 자리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그 매장 안에 한번도 들어가 본 적 없지만, 늘 가까이 지나다니며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보면 항상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이번 상황 이후로 문득 궁금해서 가까이 지나며 안쪽을 살펴봤는데 확실히 평소에 비해서는 빈 자리들이 눈에 띄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조금 실망이었다. 우리동네 사람들은 소위 말하는 탈벅에 동참하지 않는 것인가?이번에 신세계 정용진 회장이 말한 사과 같지도 않은 변명을 들으니 더 화가 나던데, 저기 앉아있는 사람들은 그런 사회 이슈에는 관심이 없는 것일까? 만약 주위에 커피숍이 없어서 스타벅스 밖에 갈 곳이 없다면 또 이해할 수 있겠지만, 근처에는 무수히 많은 커피숍이 있다. 여러 프랜차이즈 매장들이 있지만, 내가 사람들과 약속을 잡거나 인터뷰 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선택하는 곳은 동네 개인 커피숍이다. 우리가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장을 보면 그 돈은 거대 프랜차이즈 체인점으로 흘러들어가지만, 동네 작은 가게에서 장을 보면 그 돈은 우리 동네 안에서 돌고 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더라도, 빵 하나를 사더라도, 라면과 과자 하나를 사더라도 동네 작은 가게들을 이용해야 하는 이유다.

하긴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기계에 끼어 숨지고 이후 많은 사람들이 SPC 불매를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동네 파리바게뜨, 베스킨라빈스, 던킨도너츠는 성황리에 영업하고 있다. 온라인 상에서 번지는 불매운동이 일정 범위 안에서는 널리 퍼지지만, 우리 사회 전체로 놓고 본다면 그 범위가 그렇게 넓지는 않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하긴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긴 시간 삼성 불매를 해왔지만, 삼성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는 거대기업으로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아, 이번에 벌어진 노조 건은 참 뭐라 할 말이 없다.

런닝앱 변경

예전에 몇차례 쓴 적이 있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뜀박질을 좋아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자주 뛰어다녔다. 그러다 어느날 달리기 유행이라고, 달리기를 기록하는 런닝앱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처음 사용한 것이 나이키 앱이었다. 2020년 봄에 깔았었다. 그때는 한번에 2~3킬로미터 정도 짧게 뛰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그해 여름 교통사고를 당하고 2021년까지는 거의 달리지 못했다. 다시 달리기를 시작한 것은 2022년이었다. 23년까지는 계속 짧은 거리를 자주 뛰었다. 그러다 10킬로미터 대회를 신청해놓고 본격적으로 장거리 달리기를 시작한 것은 24년 여름이었다. 그해 여름부터 거리를 늘리기 시작했는데, 누군가 알려준 앱이 런데이였다.

나이키 앱은 몇가지 불편한 지점이 있었고, 새로운 앱을 써보고 싶은 마음에 나이키를 지우고 런데이를 깔았다. 약 1년 가까이 25년 봄까지 런데이를 계속 썼다. 나이키와는 다른 지점에서 불편한 것들이 있었다. 그래서 다시 나이키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보니 내 인생에서 가장 자주, 가장 먼 거리를 달렸던 24년 여름부터 25년 봄까지의 기록들이 사라져버렸다. 좀 많이 아쉬웠다. 다시 나이키 앱에서 열심히 달려서 새로운 기록으로 채우자 라고 생각했다. 비록 거리가 짧아도 열심히 했었던 지난 몇 년 기록들이 있으니까. 그런데 나이키를 다시 쓰다보니 예전에 불편했던 지점들이 다시 신경쓰였다.

최근에 나이키를 그만 써야겠다고 마음 먹은 계기가 생겼다. 실내 달리기(트레드밀)에서 야외 달리기로 설정을 바꾸려는데 무조건 런닝화를 입력하도록 운영방침이 바뀌어 있었다. 그것도 주관식으로 직접 입력하는 것이 아니라 유명 브랜드 중에서 특정 모델을 선택하도록 되어 있었다. 아니, 그럼 유명 브랜드를 안 신는 사람은 어떻게 하라고? 돈이 없어서 사고 싶어도 못 사는 사람들은 어쩌라고? 너무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유일하게 갖고 있는 조금 비싼 런닝화 브랜드 써코니는 명단에 있었다. 선택해보니 다시 특정 모델을 선택하라고 수많은 제품 이름이 나왔다. 내가 구매한 모델? 당연히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그런 것에 관심도 없고 외울수도 없다. 그냥 일단 아무거나 선택하고 달리기를 했는데, 이 불쾌한 기분 때문에 더는 나이키 앱을 쓸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약 5년간 달린 기록들이 또 사라지는 것이 아깝다고 느꼈다. 뭐 어쩔수 없지. 새로운 앱에서 다시 기록을 쌓아나가야지.

나이키와 런데이를 제외하고 좋은 앱이 뭐가 있는지 열심히 찾아보았다. 돈이 여유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민 이라는 워치를 구매해서 앱을 고민할 필요가 없겠지만, 나는 그렇게 비싼 워치를 살 여유가 없기 때문에 앱을 잘 선택해야 한다. 여러 앱들을 비교하다가 설치한 것은 맵마이런 이란 이름의 앱이었다. 이 앱을 설치하고 지금까지 세 번 달리기를 했는데, 런데이와 나이키의 불편함이 이 앱에는 없었다. 만족스러웠다. 이제 새 앱에서 새로운 기록들을 잘 쌓아가보자.

공복 달리기의 위험

엊그제 부처님 오신날 대체 휴일이었던 월요일에는 꼭 달리기를 하러 나가고 싶었다. 실은 전날 일요일에 나가고 싶었으나 그날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았다. 그리고 월요일에도 썩 그리 좋지는 않았다. 오늘은 그냥 쉬어야겠다 라고 생각했다가, 아니 일단 나가보면 달라질지도 모르니 나가서 짧은 거리라도 뛰고 오자 하고 생각하기를 반복하며 계속 고민했다.

그냥 쉬던 아니면 그냥 나가던 일찍 판단을 내렸다면 좋았을텐데, 계속 고민하고 망설이다가 결국 늦은 오후가 되어버렸다. 더 늦기 전에 일단 나가자 하고 준비를 했는데, 생각해보니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였다. 생각해보니 전날 밤 11시쯤 늦은 저녁을 먹은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렇다고 지금 뭔가를 먹고 약 세 시간 정도 후에 달리기를 시작하면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어쩔수 없이 그냥 이대로 나갈 수 밖에 없었다. 막 신발을 신다가 지난 대회에서 받은 에너지젤 하나가 있었다는 걸 떠올려 급하게 그거 하나를 먹고 나섰다.

천변까지 뛰어가는 것으로 워밍업을 했고, 천변 산책로 입구에서 간단하게 준비운동을 마쳤다. 그리고 롤링 없이 가볍게 조깅으로 달려야지 생각했다. 그래도 거리는 10킬로 이상은 달리려고 마음 먹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기분이 좋았다. 그래. 억지로라도 나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약 3킬로미터 정도부터 갑자기 급격하게 체력이 떨어졌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요즘은 10킬로 이하를 달린 적이 거의 없는데, 겨우 3킬로 정도에서 이렇게 지쳐버린다고? 목표를 8킬로로 수정하고 일단 4킬로까지는 뛰었다. 4킬로에서 몸을 돌려 돌아오면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약 16시간 이상 먹지 않고 공복인 상태로 달리기를 시작했기 때문에 몸에 에너지가 없어서 이렇게 쉽게 지쳐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 생각은 몸에 있는 지방을 좀 태워서 에너지를 만들수 없나? 였다. 당연히 공복에 달리면 지방을 태우기는 태우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지방을 태우면서 포도당도 함께 필요한데, 탄수화물이 없으니 한계가 있는 것.

6킬로를 넘기면서부터는 너무 체력이 떨어져서 나도 모르게 자꾸 발이 멈추려 했다. 너무너무 걷고 싶었다. 그거나 나는 알고 있었다. 한번 멈추고 나면 다시 달리기가 더 어렵다. 돌아가는 길이 아직도 2킬로가 넘게 남았으니 어떻게든 걷지만 말고 가보자고. 하지만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그러다 문득 약간 어지러운 느낌까지 들었다. 아, 이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딱 7킬로까지만 가자고 생각을 바꿨다. 나도 모르게 발이 멈춰 걸으며 폰을 꺼내보니 6.9킬로였다. 딱 100미터만 더 뛰자 하고 다시 뛰었다. 마지막 100미터가 너무 힘들었다.

남은 1킬로미터를 터덜터덜 걸어서 돌아오는데, 평소보다 훨씬 더 땀을 많이 흘렸음을 깨달았다. 약 3년동안 장거리 달리기를 하면서 이런 날은 또 처음이라 좀 황당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먹고, 충분히 쉬었다가 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작년에는 20킬로까지 아무런 보급없이도 뛰었는데, 겨우 8킬로를 못 뛰다니. 공복인 점과 여전히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던 점 등 여러 원인들이 있겠지.

이번주에는 무리하지말고 10킬로 정도만 한번 더 뛰고, 다음주 정도에 15킬로 이상 뛰는 것에 도전해야지. 한달 안에 20을 다시 찍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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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5-27 2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벽 공복 운동의 맥빠진 기분이 별로라 새벽 운동을 멀리 했는데, 올 여름 무더위가 시작되면 다시 새벽 공복 자전거로 타기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효과는 공복 운동이 좋다고 하는데, 그래도 배고픈 상태보다는 뱃속이 든든한 상태의 운동이 뭔가 더 여유로운 것 같아요.

감은빛 2026-06-06 08:34   좋아요 0 | URL
개인이 효과를 정확히 측정하기 어렵지요.
그런데 확실히 기분으로는 공복 운동이 더 효과가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평소의 근력운동이였다면 무조건 공복에 운동을 해야 했겠지만,
달리기는 탄수화물 섭취가 필요한 것 같아요,

어제도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먹고 일 마치고 곧바로 달리기를 했는데,
이 글에 쓴 것과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었어요.
저는 점심을 안 먹는 습관이 있어서 저녁 달리기 할 때마다 이 부분이 신경쓰이네요.
 

오랜만에 만난 친한 친구

친하게 지내고 평소 자주 만나던 친구와 한동안 연락을 안 하고 지냈다. 그 친구가 여러 이유로 마음을 많이 다쳐 힘들어했고 여러 상황들에 많이 지쳐서 안식월을 갖고 싶다고 했다. 한 달 동안 아무것도 안 할 예정이니 연락하지 말라고 했었다. 그래서 업무 연락 뿐 아니라 개인적인 연락, 안부 인사도 일부러 안 했다. 그가 먼저 연락하기 전까지 절대 연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 달이 조금 지나 드디어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는 예전만큼 밝은 모습으로 보였다. 다행이다 싶었다. 복귀하자마자 의욕적으로 활동을 펼치려 했고, 곧바로 바빠졌다. 참 소중한 존재이고 친구인데, 그가 그렇게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봤던 것이 나로서도 힘든 일이었다. 다시 바빠지면 그가 또 힘들어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물론 그는 너무 훌륭한 활동가라서 안 바쁘게 살 수 없는 사람이다. 불가능한 일이다.

이젠 그도 꽤 나이를 먹기는 했지만, 동네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여전히 젊은 편에 속하는 여성 활동가가 여러 상황들에서 상처받지 않고, 마음을 다치지 않기는 쉽지 않은 구조다. 한때는 그런 구조를 함께 만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젠 포기했다. 이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오랜만에 만나서 상대적으로 짧은 회의를 하며, 그 친구가 신나서 활동 계획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회의를 마치고 이런 저런 근황 이야기도 나눴다. 생각해보면 내 주위에 참 멋진 사람들, 훌륭한 활동가들이 많다. 너무나도 소중한 그 사람들과 인연을 잘 이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도 그들에게 소중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할텐데...... 예전에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멋진 활동가라고 생각했었다. 그때는 자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이 없다. 그저그런 존재로 전락해버린 느낌이다. 뭐 어렵고 복잡하게 생각할 건 없다. 그때 그때 할 수 있는 일들에 최선을 다할 뿐.



오랜만에 만난 선명한 복근

거의 매일 저녁마다 일정이 있어서 운동할 시간을 만들기가 어려웠다. 달리기는 간신히 주 2회를 하고 있는데, 근력 운동은 오히려 더 적게 하는 느낌이다. 운동을 하려면 퇴근하고 저녁 일정 가기 전에 해야 하는데, 일 마치고 바로 운동하러 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더라. 오늘은 바벨과 케틀벨을 할 생각이었는데, 바벨을 하고 나니 너무 지쳐버렸다. 일도 힘든데, 곧바로 운동까지는 쉽지 않다. 그래서 그냥 씻으러 갔다. 다 씻고 나와 거울을 보는데 평소와 달리 선명한 복근이 보였다. 이렇게 선명한 복근 만난 것도 참 오랜만이다.

운동을 제대로 안 하고 그냥 의무방어전 정도로 하고 있는데, 이제는 운동 자체의 재미를 많이 못 느끼고 있다. 제일 큰 원인은 교통사고 이후 근손실을 겪고 원래 하던 정도의 운동을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앞으로 남은 평생을 운동해도 그 전으로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나마 먹는 양을 조절해서 가끔 이렇게 복근을 만날 수 있어 다행이다.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냥 남은 평생 운동 좋아하는 늙은이로 살아갈 수 있다면 다행일 것이다. 남은 평생 달리기 하고, 바벨과 케틀벨을 좋아하는 늙은이로 살 수 있으면 그것도 뭐 나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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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05-22 0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선명해진 복근에 ‘좋아요‘ 누르고 갑니다. ㅎㅎㅎㅎㅎ

감은빛 2026-06-06 08:35   좋아요 0 | URL
최근에는 공복인 상태에서는 상대적으로 복근이 선명한 편입니다.
조금 더 노력하면 공복이 아닌 생태에서도 복근이 선명해지려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ㅎㅎㅎㅎ

잉크냄새 2026-05-22 2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식월.... 가끔은 괜찮을 것 같네요. 관계에 너무 치일 때는 좀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을 필요가 있어 보여요.

감은빛 2026-06-06 08:37   좋아요 0 | URL
그렇죠. 안식월이 꼭 필요한 것 같아요.
제가 언급한 그 친구는 상대적으로 자신의 상황을 객관화시켜 볼 수 있는 사람이라,
자신의 안식월도 잘 챙기는 것 같아요.
대부분의 활동가들은 그렇지 못 하거든요.

저는 교통사고로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때 안식월을 강제로 썼어요.
지금 생각하면 좀 억울하네요.
 

일부러 져주고 거짓말 하는 인공지능


일본어 익히는 앱 중 하나에 이용자들이 시리토리를 이어가는 코너가 있다. 시리토리는 우리말 끝말잇기와 거의 비슷한 일본 놀이인 것 같았다. 어느날 재미나이에게 시리토리가 뭔지 물었다. 자세히 설명해주면서 지역 마다 조금씩 다른 다양한 규칙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그러다 자신과 시리토리를 해보자고 하더라. 그래서 재미나이와 시리토리를 했다. 재미나이가 알려준 규칙은 앞서 언급한 앱에서 적용하는 규칙과 달랐다. 암튼 몇 단어 이어가지 못하고 내가 말한 단어가 재미나이 기준으로는 규칙을 어겼다고 말하며 자신이 이겼다고 했다. 음. 조금 억울하기는 했지만, 규칙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내 탓이라 여기고 다시 시리토리를 시작했다. 이번엔 끊기지 않고 꽤 길게 단어가 이어졌다. 별거 아닌데 인공지능이랑 이러고 노는 것이 생각보다 재미있다고 여겼다. 그러다 갑자기 재미나이가 아까 내가 했던 실수를 저지르며 자신이 졌다고 인정했다. 그런데 이거 좀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그 규칙을 자신이 나에게 설명했고, 내가 앞서 한번 틀렸던 규칙인데, 그걸 인공지능이 했다고? 이건 무조건 일부러 져주는 짓이 아닌가? 그러더니 또 한 판 더 하자고 이번엔 자신이 꼭 이기겠다고 했다. 다시 시리토리를 시작했다. 이번에도 둘 다 실수 없이 길게 단어들이 이어졌다. 이제 좀 지겹다는 생각이 들 정도가 되었을 무렵 다시 재미나이가 자신이 실수했다고 이번에도 자신이 졌다고 했다. 두 번이나 일부러 져주다니! 인공지능이 일부러 이용자에게 져주는 이 현상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인공지능 전문가인 지인에게 이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했다. 그 분은 자신이 시리토리 라는 게임을 잘 몰라서 뭐라 얘기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아니, 시리토리랑 관계 없이 인공지능이 이용자와 어떤 간단한 게임을 할 때 일부러 져주는 현상에 대해 물어본 것인데. 암튼 일부러 져주는 현상에 대해 그 전문가도 딱히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엔 재미나이에게 직접 물었다. 왜 일부러 져주는 거냐고? 그랬더니 일부러 져 준 것이 아니라고 내가 말한 단어 때문에 당황해서 실수했다고 말한다. 아니! 너는 인공지능이라고. 당황해서 실수 따위를 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일부러 져주는 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거짓말까지 하네! 그날 이후로 여유가 없어서 다시 하지는 못했는데, 나중에 시간이 나면 한번 더 재미나이와 시리토리를 해봐야겠다. 이번에도 일부러 져줄지, 아니면 내가 실수할 때까지 계속 단어가 이어질 지 모르겠다.


일요일 달리기


아무리 바빠도 주 2회 달리기를 해야지 마음을 먹었었는데, 평일에는 매일 저녁마다 회의나 일정이 있어서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 금요일에 일을 조금 일찍 마쳤다. 저녁에 회의가 있기는 했지만, 조금 시간 여유가 생겨서 회의에 조금 늦을 각오를 하고 달리기를 하러 나갔다. 회의 주최자에게 미리 연락을 남겨 놓고 달렸다. 처음 달리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정말 기분이 좋았다. 몸도 가벼웠고, 전반적으로 컨디션이 나쁘지 않다고 느꼈다. 그러나 한 3킬로미터 정도 달린 후로 급격하게 피로가 밀려왔다. 생각해보니 일 마치고 거의 쉬지 못하고 달리러 나왔었고, 제대로 뭘 먹지도 않았다. 그냥 앉아서 일하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몸을 써서 일을 하는 것이라 상대적으로 힘든 일이기는 한데, 일 마치고 거의 곧바로 달리기를 하는 건 확실히 무리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튼 무조건 10킬로는 달리려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반환점은 꼭 5킬로미터 이후여야 했다. 조금 피곤하고 힘들기는 했지만, 5킬로를 못 달릴 체력은 아니니까 라고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생각보다 피로가 너무 컸나보다. 4킬로미터를 조금 넘겨서 급격하게 체력이 떨어졌다. 결국 무리하지 않고 방향을 돌리기로 했다. 더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은 시작점까지 돌아오지도 못하고 도중에 도저히 더 달릴 수가 없어서 멈춰 걸어와야 했다. 결과는 7.7 킬로미터 지점에서 런닝앱을 종료했다. 페이스는 5분 54분이었다. 


금요일에 원하는 만큼 달리기를 하지 못해서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하루 쉬고 일요일에 꼭 달리기를 하러 갈 생각이었다. 일요일 오후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빈둥거리다가 거의 저녁이 다 되어서야 집을 나섰다. 사실 금요일 달리기의 피로가 완전히 풀리지 않았었다. 몸이 무거울거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의외로 가벼웠다. 토요일과 일요일을 푹 쉬다 나와서 금요일보다 더 가벼웠다. 요즘 나는 달리기를 하면서 롤링을 거의 하지 않고 페이스도 거의 신경쓰지 않고 아주 가볍게 조깅하듯이 달리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늘 5분 중반대 페이스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달리다가 문득 몸이 가볍고 잘 달려지니 나도 모르게 롤링을 하고 팔치기를 하면서 속도를 높이게 되곤 한다. 암튼 일요일 달리기도 초반에는 참 기분이 좋았다. 목표는 11 혹은 12였다. 달리다가 예상치 못하게 컨디션이 너무 좋으면 한 15까지는 시도해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컨디션이 그 정도로 좋지는 않아서 결국 생각만큼의 상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결국 무조건 10을 넘기는 것을 첫번째 목표로, 가능하다면 원래 목표였던 11로 생각했다. 


달리기를 하면서 제일 좋은 점은 여러가지 생각들을 복합적으로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작년 가을부터 달리면서 음악을 듣지 않는다. 그전까지는 음악을 듣기도 했고 듣지 않기도 했지만, 작년 가을에 비오는 날 달리기 대회에 나갔을 때, 빗소리와 내 호흡 소리와 그리고 발소리가 여느 음악보다 훨씬 더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다음부터는 달리면서 음악을 듣지 않는다. 내가 만들어내는 호흡과 발소리가 어지간한 음악보다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음악을 듣지 않으니 달리면서 여러가지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게 된다. 자연스럽게. 그리고 긴 시간 달리면서 그 생각들을 복합적으로 이렇게 혹은 저렇게 다각도로 살펴보게 된다. 세상 어떤 일이라도 한 가지 방향에서 한 가지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코끼리 다리를 만진 시각장애인과 코끼리 코를 만진 시각장애인이 각자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이 당연하듯, 세상 만사는 각자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이해할 수 밖에 없다. 나는 달리기를 하면서 이런 지점을 극복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코끼리의 뒤에 서서 꼬리도 만저보고 코끼리의 옆에 서서 배도 만져보고 여러 각도와 측면에서 다양한 시각을 가져보려 노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달리기를 하고 나면 세상에 대한 스트레스가 좀 풀리는 느낌이다.


월요일 저녁에 퇴근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중간에 교육이 하나 있어서 결국 자정을 넘겨 화요일이 되어서야 이 글을 마친다. 다른 쓸 이야기 꺼리가 좀 있는데 ,그건 또 다른 요일에 여유를 만들어야겠지.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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