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남 차별주의

친한 형 중에 아주 심각한 여남 차별주의자가 있다. 만약 이 인간이 인종차별주의자였다면 입에 담고 싶지 않은 쌍욕을 퍼붓고 다시는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여남 차별주의에 대해서는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다. 일단 차별은 분명한데 이걸 뭐라고 하기가 참.

예를 들면 이렇다. 내가 이 형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면 이 사람은 ˝뭐, 임마!˝ 혹은 ˝뭐, 이 자식아.˝ 라는 반응을 보인다. 꼭 내가 아니라도 상대가 남성이면 대체로 그렇다. 그런데 만약 여성이 뭐라고 말을 건네면, 거의 무조건 ˝그래?˝ 혹은 ˝정말? 그렇구나˝ 라고 아주 부드러운 말투로 답한다. 언젠가는 그런 적도 있었다. 이 형이 어떤 상황에 대한 법적 절차를 오해해서 내가 차근차근 설명해주고 있었는데, 내 말을 그대로 믿지 않고 자꾸 의심하고 있었다. 그래. 당연히 의심할 수 있다. 나도 성별에 관계없이 처음 접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대체로 그러니까. 다만, 다각도로 객관적 사실을 제시하는 경우에는 의심을 거두고 스스로 알아보겠다는 태도도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내가 긴 시간 힘들게 설명해도 듣지 않더니, 옆에서 이 상황을 잘 알지 못하는 어느 여성이 내 편을 들면서 한번 생각해보라고 하자, 곧바로 태도를 바꿔 그 여성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이 형 기준에서 성별이 여성이라면 나이에 관계없이 ‘언니‘ 라고 부르며 거의 대체로 그 말을 믿고 따르는 편이다. 반대로 남성이 하는 말은 대체로 의심하고 반발하고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주 심각한 차별주의자의 태도다. 최근에 내가 이런 사실을 지적했더니 그제서야 깨달은 듯 아주 크게 웃으며 그 사실을 인정했다. 본인은 그렇다고. 본인에게 아들은 아들놈이고 딸은 귀한 따님이라고. 딸만 둘인 내 입장에서는 아들을 키워본 적이 없어 공감하기 어렵지만, 아들을 차별하는 태도는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 형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무조건 여성의 말만 듣겠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뭐, 어쩌겠나? 하필 내가 생물학적 남성이라 이 인간에게 아무 이유없이 무시당하는 것은 아쉽고 안타깝지만, 어떤 이유에도 관계없이 무조건 여성을 옹호하는 사람이 한 명 정도 있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이 사회에서 아니 전 세계에서 여전히 여성은 차별당하고 무시당하고, 남성들이 휘두르는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범죄 통계를 보면 여성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절대 다수는 남편이거나, 남자 친구이다. 대체로 가장 가까운 남성이 가해자일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나 역시 남성으로서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당하는 것이 매우 불쾌하고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어쩌겠는가? 현실이 그런 것을. 언제나 여성은 남성들에게 피해를 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 물론 반대의 경우도 없지는 않다. 영화 [미저리]의 경우도 있고, 아주 가끔 아내에게 매 맞는 남성도 있다고 들었다. 엄여인으로 알려진 엄인숙이라는 범죄자도 있고, 이은해 라는 범죄자도 있다. 그리고 이름은 모르겠지만 모텔에서 남성에게 약물을 먹여 살해한 소위 말하는 강북 모텔 연쇄살인 사건 피의자 김모씨도 있다. 하지만 이는 전체 수만건? 혹은 수십만건의 범죄 중에 손에 꼽을 만큼 소수일 뿐이다.

아, 그러니까 이렇게 여성에게 불합리한 세상에 무조건 여성의 편이 되어주는 차별주의자 한 명 정도는 괜찮지 않나? 라는 얘기다. 물론 앞서 말했듯 나는 남성으로서 그 인간에게 차별을 당하는 입장이므로 늘 최선을 다해 제대로 된 인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하겠지만, 뭐 내가 가끔 무시당한다고 해도 무슨 큰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조금 기분이 나쁠 뿐이겠지. 수많은 여성들이 하루에도 수십번, 아니 수백번 남성들에게 불쾌감을 느낄수 있을 것이다. 아니, 물론 그게 무조건 다 남성 탓이 아닐수도 있다. 어떤 여성들은 과도하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실수로 착각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계속 얘기하지만, 그런 실수나 착각을 감안하더라도 절대적으로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경우는 많을 것이다. 아주 사소한 잘못이라 하더라도.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장면이 하나 있다. 한때 출판 영업자로 살던 무렵에 아주 친했던 친구이자 동료가 있었다. 정말 둘도 없다는 상투적인 표현을 떠올릴 정도로 친했었다. 내가 출판사를 그만두고 환경운동 판으로 돌아간 후로 그는 결혼을 했고, 딸을 낳았다고 했다. 몇 년이 지난 후 우연히 만나 너무 반가운 자리였었다. 여러 주제로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꾸준히 이어오고 있었던 여성들의 집회와 행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페미니즘을 차별이라 말하며, 여성들을 비난했다. 나는 그런 그의 태도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 그는 여성인 어머니와 아내가 있고, 너무나도 사랑스러울 딸을 키우고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몰상식한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내가 물었다. 너는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있는데,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 그는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답했다. 나는 성별을 떠나 우리는 모두 인간이고, 상식적으로 인간이라면 살인이라는 범죄에서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목소리를 비난할 수 없을 거라고 답했다. 내가 두 딸을 키우는 아빠라서가 아니다. 나는 결혼하기 훨씬 이전부터, 그러니까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하기도 더 전부터 남녀를 떠나 우리는 모두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학생운동에 몸 담았던 선배들이나 동기들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가부장적인 태도로 여성 동기들이나 후배들에게 부당한 태도를 보일 때 나는 누구보다 강하게 반발하고 저항했다. 사회를 바꾸고자 운동을 한다는 인간들이 자신의 삶은 성차별적인 태도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고 인정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사실 나는 이 형 처럼 살 수도 없고,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다. 가끔은 그런 태도가 한심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너무 어이없는 그 일관적인 태도, 무조건 여성만 존중하는 차별주의 태도가 이 불합리한 세상에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온 세상이 다 여성의 편이 아닌데, 절대로 여성의 편이 되어줄 남성이 하나 쯤은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아니, 심지어 목사마저도 여성에게 자신 앞에서 빤스를 벗어야 신도임을 증명할 수 있다는 성범죄를 저지르고, 심지어 처벌조차 받지 않는 세상인데! 종교마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여기는 세상인데 말야.

외모 지상주의

아마 이런 이름의 만화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네이버 라는 포털 사이트에 연재했던? 아니 어쩌면 지금도 연재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웹툰 제목이다. 어쩌다 그 만화를 봤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키가 작고 좀 뚱뚱하고 상대적으로 외모가 좀 부족한 어느 고등학생에게 어느 날 갑자기 아주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쉽게 말해 근육질의) 잘 생긴 새 몸이 하나 더 생기는 얘기다. 어쩌면 남성 버전의 [서브스턴스]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 웹툰의 시작이 훨씬 먼저였다. 아, 혹시 저 영화에 원작이 있다면, 그게 먼저일 수도 있겠는데, 찾아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암튼 웹툰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내 기준에서 이 웹툰은 그야말로 볼 가치가 없는 작품이다. 제목이 마치 외모 지상주의를 비판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 만화는 외모 지상주의를 부추기는 내용이다. 좀 심하게 말하면 그냥 쓰레기다.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나 외모에 대한 동경은 있다고 본다. 예쁜 여성을 좋아하는 남성 만큼이나 멋진 남성을 좋아하는 여성도 많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사회적인 분위기가 바뀌며 남성들은 대놓고 여성의 외모를 맘놓고 말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어가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여성들은 크게 거리낌없이 남성의 외모에 대해 말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적어도 내 주변의 여성들은 대체로 그렇다.

이렇게 외모 이야기를 꺼내는 건 최근에 본 중국 배우 때문이다. 일본에 천년에 한 번 나올 정도의 미소녀(1000年に1人の美少女)라는, 소위 말하는 천년돌이라는 하시모토 칸나 이야기가 있다. 그의 외모가 돋보이는 것은 확실히 맞지만, 몇몇 영화에서 본 모습은 그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다. 아, 물론 미에 대한 관점은 사람마다 다를 수 밖에 없으므로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암튼 천년돌이라는 명성에 비해 그 정도로 예쁜 얼굴인가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 중국에서 4천년에 한 번 나올 미녀(四千年美女) 라는 쥐징이 라는 아이돌 출신 배우를 보았다. 하시모토 칸나에게는 미안할 얘기지만, 쥐징이의 외모는 확실히 돋보인다고 느꼈다. 이 사람 정말 예쁘긴 예쁘구나. 아니 근데 일본엔 천년돌이 있고, 중국엔 4천년돌이 있는데, 한국에는 그런 아이돌이 없나? 찾아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들어본 적은 없다. 아, 물론 나 같은 늙다리가 알고 싶어도 알수 없을 수도 있겠지.

결혼하기 전, 연애하던 시절에 애들엄마가 질투하던 대상은 모니카 벨루치였다. 아마 그 질투라는 것이 얼마나 진지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쩌면 장난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몇 차례 내가 모니카 벨루치를 좋아하는 것에 대해 뭔가 불만을 표현했던 적이 있었다. 20대 중반에 영화 [라빠르망]을 보고 완전히 반해서 이후 [도베르만]과 [늑대의 후예들] 그리고 [말레나] 등 출연한 영화들을 열심히 찾아봤었고, 나중에 [매트릭스] 시리즈에 나와서 너무 유명해진 배우다. 그냥 그는 내가 절대 닿을 수 없는 어떤 존재, 말 그대로 이상에 가까운 이상형이었다. 현실에서 내가 평생 그를 마주칠 확률조차 0에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모니카 벨루치 이전에는 소위 말해 책받침 여신들이라 불렸던 배우들이 있었다. 소피 마르소, 브룩 쉴즈, 왕조현. 음 그리고 누군가 외국 배우가 한 명이 더 있었던 것 같은데 모르겠네. 한국 배우 중에 책받침에 종종 등장했던 건 최진실이었다. 사실 그땐 오히려 어려서 그 여신들이 얼마나 예쁜지 실감하지 못했었다. 나중에 어른이 되고 나서, 이젠 더 이상 책받침을 갖고 있지 않을 시절에 다시 생각해보니 그들이 정말 뛰어난 외모를 가졌었구나 생각했었다.

아니 그러니까 사람을 사랑하는 감정이라기 보다는 그냥 정말 아름다운 사람을 동경하는 감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젊은 시절 모니카 벨루치가 그런 존재였다면, 최근 갑자기 불쑥 쥐징이를 보면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아, 이 사람 정말 예쁘다. 아, 아까 일본의 하시모토 칸나 얘기를 했었는데, 일본어 공부한답시고 한참 일본 영화나 드라마를 보던 시절 참 예쁘다고 느낀 배우는 이마다 미오와 코마츠 나나 였다. 음, 이렇게 얘기하고 보니 그러네. 연예인들 중에는 외모가 돋보이는 사람들이 꽤 많구나. 생각해보면 아름다운 연예인들을 얼마든지 더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의외로 주위에도 외모가 출중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남성 중에서도 여성 중에서도. 고등학교 시절 친구 중에 키도 크고, 어깨도 넓고, 얼굴도 아주 잘 생긴 훤칠한 녀석이 있었다. 여성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았지만, 남자 녀석들도 그를 동경하는 혹은 부러워 하거나 질투하는 놈들이 많았다. 이렇게 잘 생긴 그는 본인 스스로 잘 생겼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기 때문에 늘 주위 사람들을, 특히 이성을 잘 이용할 줄 알았다. 늘 그는 여성들과 함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주위에 정말 눈에 번쩍 띌만한 미모의 여성이 있었다. 여상 야간 반에 다니며 낮에는 커피숍 등에서 알바를 하던 아이였다. 처음 본 순간 연예인이라고 생각할 만큼 눈부신 외모였다. 정말 사람이 이렇게 예쁠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당연히 그의 주변에는 남성들이 많았다. 한때 아까 언급한 잘 생긴 아이, 그리고 그 무리와 친하게 지냈던 시절에 이 아름다운 아이와도 친해질 수 있었다. 한창 예민한 사춘기 시절의 나에게 이 두 남녀의 외모는 동경과 질투의 대상이었다. 차마 사랑한다는, 아니 감히 좋아한다는 감정조차 가질 수 없었던. 그런데 이 두 사람과 친해진 후에 보니 이들의 삶도 너무 힘들고 피곤한 것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출중한 외모로 인한 어려움들이 있었다. 한때는 그들과 친하다는 것이 나에게는 자부심일 때도 있었지만, 점점 그들 역시 그냥 인간이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다. 새삼 그 시절을 떠올리니 그립기도 하다. 막상 그 시절엔 정말 인생 살기가 싫었었다. 그저 죽고 싶었던 시절들. 아니 그냥 훅 시간이 지나버려 얼른 어른이 되고 싶었던 시절들.

아, 그러니까 외모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훅 30여년 전으로 가버렸는데, 아마 추억 보정일 수도 있겠지만, 그 시절 그 두 사람 이후로 내가 실제로 만나본 사람 중에 그 정도로 멋진 외모는 없었던 것 같다. 젊은 시절의 모니카 벨루치를 본 적도 없고, 이마다 미오나 코마츠 나나 혹은 쥐징이를 실제로 본 적이 없으니. 아니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그냥 그렇다고. 주위에 어린 아이돌이나 배우들을 좋아하는 중년의 남성들과 여성들이 있던데, 나도 언제까지나 책받침 여신들이나 모니카 벨루치만 좋아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나도 쥐징이나 이마다 미오나 코마츠 나나 같은 젊은 사람들을 좀 좋아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나이 먹었다고 늘 옛날 연예인들만 좋아하란 법은 없지 않은가.

치이카와 혹은 먼작귀

아이들 덕분에 [먼가 작고 귀여운 녀석들(?)] 이란 애니메이션을 꽤나 보고 극장판 애니도 극장에서 보았다. 작은 아이는 평소에도 만화와 애니를 좋아하는 소위 말하는 덕후라서 그러려니 했는데, 성인이 된지도 좀 지난 큰 아이까지 이 만화에 푹 빠져서 인형들과 공식 굿즈들, 한정판 굿즈들 구하느라 제정신이 아닌 걸 보며 의외다 싶었다. 일주일에 3일 이상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버느라 노동의 고단함을 아는 녀석 마저 그런 쓸데없는 걸(전적으로 가난하게 살았던 아빠 관점에서) 사느라 돈을 쓰는 모습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심지어 이 영화를 두번, 세번씩 보느라 계속 극장에 가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나이든 아빠가 무슨 힘이 있겠나? 아직 젊고 어린 딸들이 놀아주기만 한다면 무조건 따라야지. 아무리 재미없는 극장판 만화라도 같이 봐야지. 이 늙은 아비랑 같이 시간을 보내준다는데, 이보다 큰 영광이 어디 있으랴!

영화를 보기 전에도 보고 나서도 작은 아이가 계속 물었다. 아빠는 누가 제일 귀여워? 음, 내 눈에는 아무도 귀엽지 않았다. 주인공 3인방도. 그 외 여러 인물들도 모두. 하지만 말을 하지는 않았다. 대신 속으로 생각했다. 아빠 눈에는 언제나 니들이 제일 귀엽단다. 너네가 아무리 자라도, 성인이 되어도, 설령 지금 아빠처럼 중년이 된다 하더라도, 아빠 눈에는 언제나 아기란다. 아빠 아기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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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10-11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형님이란 분이 중국 고저 소설 홍루몽에 나오는 가보옥과 비슷한 성격이신것 같네요.소설속 가보옥이 남긴 명언이 “여자의 몸은 물로 만들어졌고, 남자의 몸은 진흙으로 만들어졌다. 나는 여자를 보면 온몸이 상쾌해지지만, 남자를 보면 탁한 냄새가 나 숨이 막힌다”이지요.
요즘 말로하면 그냥 여미새이신것 같습니다^^

yamoo 2026-10-12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형님이란 분이 제가 아주 아주 혐오하는 부류의 사람이군요!ㅎㅎ

잉크냄새 2026-10-12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의 회사 생활을 돌아보면 형님이란 분과 유사한 사람들이 꽤 많았던 것 같네요. 그렇다고 딱히 여성을 존중하는 태도는 아니었고 그냥 남녀간의 구별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기억나지 않는 책받침 여신은 <그렘린>의 피비 게이츠 일걸요? ㅎㅎ
 

어느 날 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눴다. 처음에는 여러 명이 있는 자리였고, 대화가 막 섞였고, 목소리가 큰 몇 몇 사람들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나중에 일부 사람들이 돌아간 뒤에 조금 조용한 사람들이 남아서 대화를 나눴다. 이때 나는 예전부터 친하게 지내기는 했지만, 아주 친하다고 하기에는 약간의 거리감을 느꼈던 어느 형과 대화를 나눴다. 처음엔 노래 이야기였다. 나도 일본어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일본어 노래를 꽤나 들었지만, 이 형님은 일본어를 잘 하기도 하고, 일본 문화 전반에 대해 잘 아는 분이었다. 내가 최근에 듣고 있는 일본 노래 두어 곡을 얘기했더니 본인이 좋아하는 가수와 곡들을 알려줬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주제가 노래에서 영화로 넘어갔다. 우리는 몇몇 아주 유명한 영화 OST를 들으며 해당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 [4월 이야기], [라스트레터] 등의 영화에 대한 솔직한 감상들이 오갔고, 이어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 [아무도 모른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등 영화들. 그리고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와 [우연과 상상] 등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여기서부터 좀 신기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이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워낙 유명한 분들이라 대화가 이어지는 것이 당연할 수 있다. 그런데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대중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각 작품을 대하는 느낌이 꽤나 비슷했다. 나는 소위 말하는 좀 까칠하고 까다로운 관객이자 독자라 어지간한 작품을 대하더라도 뭔가 문제를 찾는 편인데, 이런 내 태도에 대체로 사람들이 불편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다수는 작품은 작품일 뿐인데, 왜 그렇게 예민하게 따지냐고 했다. 나는 굳이 따지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이런 부분이 눈에 띄니까 말한 것 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다.

암튼 그렇게 소위 말하는 까칠한 부분까지도 이해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은 법. 주제는 자연스럽게 영화 자체에서 감독의 성향으로 그리고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우선 [러브레터]의 나카야마 미호 이야기를 했고, [라스트레터]의 히로세 스즈 이야기를 했다. 나는 이어서 이상일 감독 이야기도 했다.

그리고 어쩌다 왕가위 감독으로 이야기가 넘어갔다. 아마 음악 때문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 계속 뭔가 음악을 찾아서 틀어놓고 있었다. 마침 누군가 영화 [동사서독]의 음악을 틀었고, 너무 자연스럽게 [중경삼림] 과 [타락천사] 이야기로 이어졌다. 특히 [타락천사]의 삽입곡이었던 망기타(忘记他) 이야기를 내가 좀 길게 했었다. 이 곡을 떠올리면 몇몇 여성들이 생각난다. 그중에 지금은 덧이름을 바꾼 옛 알라딘 서재 이웃 ‘양철나무꾼‘님도 생각난다. 이 이야기는 그 형에게 하지 않았지만, 그 시절 알라딘이라는 공간에서 ‘마녀고양이‘ 님과 ‘양철나무꾼‘님이 나에게 미친 영향력이 꽤나 컸었다.

암튼 그러다 갑자기 내가 [일생소애] 라는 노래를 틀었다. 그 형님도 이 노래를 좋아해서 배우 서기가 영화 [서유항마편]에서 불렀던 장면을 찾아 보여줬다. 나 역시 당시에 이 장면을 보고 [서유기: 월광보합]을 보면서 느꼈던 감동이 생각나 잠시 그 시절로 기억을 되돌렸다. 당시 내 기준에서 홍콩 영화계 여배우는 왕조현, 임청하, 구숙정 밖에 모르는 시절이었는데, 이 영화 덕분에 주인 이라는 배우를 알고 좋아하게 되었었다.

우리는 주성치 라는 감독이 가진 매력이자 독특한 특징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가 발굴해낸 몇몇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어쩌면 대화가 끊어지거나 원활하게 이어지지 않았을 확률이 높았다. 음악에서 영화로 다시 음악으로 그리고 다시 영화로. 일본에서 중국으로 그리고 한국으로 거기서 다시 몇몇 인상적인 감독이나 배우 이야기로 넘나들며 폭넓게 이야기를 나눈 경험은 흔치 않았다. 다 언급할 수 없어서 건너뛰었지만, 몇몇 우리나라 감독의 작품들과 음악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었다. 확실히 나는 좀 폭이 좁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정말 세상은 넓고 알아야 할 것들, 해야 할 것들은 많았다.

내가 이성애자 남성이자 중년 남성이라 가지는 어떤 특정한 편견과 시선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쩌겠는가? 나는 이미 50년을 그렇게 살아온 것을. 그럼에도 그 변명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시각과 환경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다.

제일 신기한 것은 나 혼자 이런 독특한, 혹은 까칠하고 모난 성격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모두 다르다. 그럼에도 누군가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신경 써주는 것은 너무나도 신기하면서도 당연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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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글을 쓸 때마다 그 글의 시작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많이 고민하는 편이다. 그저 가볍게 두드리는 별 것 아닌 글 하나라고 해도 그렇다. 중국 영화 [먼훗날 우리]의 리메이크 영화 [만약에 우리]에 대한 글을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라고 고민을 해봤는데, 마땅히 떠오르는 좋은 아이디어가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다시 생각해보면 꼭 해야 할 말이 그리 많지도 않은 묘한 영화였다. 어찌보면 원작에 충실한 영화이고, 한국 상황에 맞게 잘 만든 영화이기도 했다. 중국 원작과 달리 전형적인 한국 영화 같은 느낌이 강했다. 이걸 지난 번 글에 "세속적이고, 적당히 후려치고, 적당히 뭉개고, 적당히 빠져나가는" 이라고 표현했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 표현은 좀 많이 과했다. 내용은 익숙한데 전혀 같은 영화 같지 않고, 한국식으로 잘 바꿨다는 점은 리메이크를 잘 했다고 칭찬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원작의 그 처연하고 아련한 느낌을 이 영화에서는 느끼기 어려웠다. 그 지점에서 나는 그리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운 영화라고 본다.


류뤄잉 감독의 영화 [먼훗날 우리]에 대한 글 "만약에 라는 잔인하고 부질없는 상상" 읽으러 가기: https://blog.aladin.co.kr/idolovepink/17070415


[먼훗날 우리]를 보고 쓴 글의 제목을 "만약에 라는 잔인하고 부질없는 상상" 이라고 썼었더라. 그런데 이 글도 똑같은 제목을 붙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만약에' 라는 상상은 잔인하고 부질없는 법이니까. 하지만 같은 제목을 다시 쓸 수는 없어서 조금 바꿨다. 


원작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 린젠칭도 그리고 이 영화에서 구교환이 연기한 이은호도 모두 현재 시점에서 팡샤오샤오와 한정원을 향해 만약에 라고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샤오샤오도 정원도 아니라고 답한다. 원작에서는 이 부분의 분위기를 정말 잘 살렸다. 이 장면을 여러 번 돌려 보면서 계속 내 젊은 시절 실패한 사랑의 기억을 떠올렸었다. 이 장면 덕분에 너무 감정적으로 흔들려 이런 저런 글들을 메모장에 잔뜩 적어 놓았었다. 이 영화에서는 이 장면에서 그렇게 슬프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여전히 이 만약에 라는 질문이 가진 특유의 성질 때문에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지만, 그냥 거기까지였다. 이어지는 두 남녀 주인공의 연기는 그 이상 더 감정을 끌어올리지 못했다. 처음에 한번 보았을 때는 그걸 두 배우의 연기 탓으로 돌렸다. 확실히 한정원 역의 문가영의 연기는 뭔가 조금 안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구교환의 연기는 언제나처럼 괜찮았지만, 문가영 과의 합이 잘 맞는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건 원작의 저우동위와 징보란의 연기가 훨씬 더 자연스럽고 잘 어울린다고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암튼 처음에는 연기 때문에 그 가장 중요한 장면에서 감정을 잘 살리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를 두 번째 보면서 이 장면을 다시 찬찬히 돌려보고, 그리고 원작의 해당 장면을 다시 찾아본 후로 생각을 바꿨다. 이 우리나라 영화가 원작의 내용들을 충실히 잘 따라가는 것은 맞지만, 대부분 미묘하게 감정선이 다른데, 이 장면도 마찬가지였다. 원작에서 두 사람은 훨씬 더 진지하고 절박한 느낌이었다면 이 영화에서는 그런 절박함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화면의 구성이나 풍경도 원작 쪽이 훨씬 더 스산하고 쓸쓸했다. 


그리고 이건 두 남녀 주인공의 성격과 현재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원작의 린젠칭과 한국영화의 이은호는 둘 모두 직접 만든 게임이 잘 풀려서 성공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상태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성격은 좀 다르다. 중국의 사회와 문화를 잘 몰라서 린젠칭이 얼마나 전형적인 인물로 그려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은호는 정말 전형적인 성격으로 보인다. 그리고 여 주인공은 훨씬 더 많이 다르다. 샤오샤오는 예측하기 어려운 통통 튀는 매력이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 속이 깊고 현실적인 인물이다. 그에 비해 한정원은 현실적인 인물인 점만 보이고 다른 매력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현재 시점에서 정원은 건축가가 되어서 은호에게 명함을 내민다. 하지만 현재 시점의 샤오샤오는 여전히 불안정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정확하게 직업을 밝히지도 않고 얼마나 안정적으로 생활하는 지도 드러내지 않는다. 이는 옷차림에서도 일정 부분 드러나고 젠칭이 데려다 준 집에서도 드러난다. 그런데 정원은 그렇지 않다. 옷차림도 세련되었고, 자신이 안정적으로 잘 살고 있다고 직접 말하기도 한다. 이런 설정의 차이가 그 결정적인 장면에서의 감정선을 다르게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 영화의 해당 장면을 몇 번씩 돌려보다가 처음 원작을 봤을 때는 캐치하지 못했던 재미있는 것을 하나 발견했다. 샤오샤오가 마치 젠칭의 내연녀 처럼 보일만한 상황이 벌어지고, 샤오샤오가 젠칭의 호텔 방으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하면서 두 사람이 렌터카를 빌려서 베이징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 후에 차 안에서 나누는 대화 장면이었다. 젠칭은 자신의 성공이 샤오샤오 덕분이었음을 밝히며 샤오샤오에게 '최우수 전 여친상'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샤오샤오는 그 말에 크게 웃으며 언제나 자신의 전 남친들은 모두 성공했다고 말한다. 영화의 내용으로 보면 젠칭의 성공은 확실히 샤오샤오 덕분이다. 그리고 샤오샤오는 그 전 연애에서도 불행했고, 젠칭과도 결국 행복하지 못했고, 이후로 10년 동안의 연애 역시 순탄치 않았음을 암시한다. 그런데 어쨌든 '최우수 전 여친상' 이라니! 이런 개념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재미있기도 하면서 단번에 샤오샤오를 보여주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원작이 전체적으로 훨씬 더 절박하게 여러 상황들을 보여준다면, 한국 영화에서는 매번 그 절박함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샤오샤오와 젠칭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젠칭은 베이징에서 집을 갖는 것이 꿈이었다. 그걸 위해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처럼 나온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남성을 만나 그 꿈을 이루려고 한다. 절박하다. 왜냐하면 고향으로 돌아가기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베이징에서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이다. 정원에게는 그런 절박함이 없다. 정원은 보육원 출신이지만, 서울에서 고시원에 잘 살고 있다. 고시원과 잘 살고 있다는 말이 맞지 않을 수 있지만, 암튼 샤오샤오 만큼의 절박함은 묘사되지 않는다. 이는 정원이 은호의 방에 들어가는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다. 샤오샤오는 아예 자신의 방을 빼고 남자친구와 동거하다가 남자친구와 갑자기 헤어지면서 갈 곳이 없어서 젠칭을 찾아간다. 하지만 정원은 남자친구와 헤어졌지만, 고시원에 방은 남아 있었다. 다만 그 방에 겨우 한 뼘도 안되는 햇빛이 들어온다는 이유로 은호를 찾아와 동거를 시작한다. 저번 글에서도 이런 설정이 현실적이지 않고 남성 판타지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썼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남녀가 유별한 상황에서 그렇게 손쉽게 여성이 남자 혼자 사는 작은 방에 들어갈 수 있나? 사귀는 사이가 아닌데도? 이번 영화에서 정원은 좀 더 어이가 없었다. 샤오샤오는 정말 잘 곳이 없었지만, 정원은 여전히 고시원이 있었다. 그런데 햇볕을 이유로 사귀지도 않는 남자 방에 들어간다고? 이게 현실에서 설득력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젠칭의 방은 정말 좁다. 도데체 어떻게 생겨먹은 것인지 잘 알기 어렵게 복잡하게 작은 방들이 얼기설기 얽혀 있는 집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살고 있었다. 정말 당시에 아니 심지어 지금도 베이징의 많은 젊은이들이 그렇게 살고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은호의 방은 넓고 쾌적하다. 책상과 침대 외에도 공간이 넓다. 고향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서울에 그렇게 괜찮은 방을 제공해 줄 수 있나? 아무리 2008년 이었다고 해도 저 정도 방이면 월세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아, 물론 언덕길에 계단을 빙빙 돌아 올라가는 장면으로 보아 교통이 편리한 좋은 동네는 아니고, 방이 아주 좋은 것도 아닌 것은 맞다. 다만 젠칭에 비하면 은호가 덜 절박하게 보인다는 것. 그러니까 한국 영화는 여러 모로 계속 평이하고 무난한 느낌을 받는다. 


시기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 원작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대는 춘절이다. 류뤄잉 감독이 자신의 소설 [춘절 귀가]라는 작품을 영화로 만든 것이라 시작하는 장면도 춘절에 고향인 야오장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마지막은 춘절 연휴가 끝나는 무렵 고향에서 베이징으로 돌아오는 장면이다. 둘이 처음으로 육체 관계를 맺는 것은 양력 1월 1일 새해이기는 하지만, 계절로는 겨울이다. 그러니까 흔히 연말연시라고 부르는 시기에서 음력 설인 춘절까지가 가장 중요한 시간대로 계속 반복된다. 한국 영화에서는 여름이다. 두 남녀가 처음 만나는 시기가 여름 휴가 시기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현재 시점인 2024년 여름에 베트남 호치민에서 우연히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원작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바꾼 것이다. 이 선택은 꽤나 괜찮은 것 같다. 흑백으로 시작하는 현재 시점의 꽤나 세련된 정장을 입은 정원의 모습을 먼저 보여주는 것이 관객들의 흥미를 끌어낼 수 있는 선택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도 원작처럼 과거는 컬러 화면으로, 현재는 흑백 화면으로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서늘하고 차가운 느낌의 현재 시점 장면은 원작에 비해서는 분량이 제법 줄어들었다. 


과거 상황의 첫 장면은 버스 정류장이다. 원작에서 열차 풍경이 독특하고 좋았는데, 버스 장면은 좀 너무 뻔한 느낌이었다. 저 위에 링크를 걸어 놓은, 원작을 보고 쓴 글에서 과거 서울로 올라온지 얼마 되지 않았던 젊은 시절에 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갔던 상황을 길게 썼었다. 설연휴에 였고 폭설이 내려 버스를 17시간이나 탔었다. 하필 내 또래로 보이는 여성이 옆 자리(창가 자리)에 앉아 있어서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았었던 기억이었다. 이 영화에서 은호와 정원이 서울에서 고흥까지 버스를 타고 내려가는데, 하필 서로 옆 자리였다. 은호는 자신의 자리였던 창가 자리를 엉겁결에 정원에게 양보하는데, 이 부분이 얼른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한 눈에 호감을 갖게 된 여성이라고 해도 아무 사이도 아닌데, 저렇게 손쉽게 양보를 할까? 은호가 정원을 처음 보는 장면에서 정원은 빨간 우산을 펼쳐 들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 빨간 우산을 보고 나도 모르게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4월 이야기]를 떠올렸다. 어쩌면 문가영의 표정이 마츠 다카코와 닮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얼핏 들었다. 


이 영화는 과거 두 사람이 처음 만나는 장면과 현재 우연히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을 겨울에서 여름으로 바꾸기는 했지만, 나머지 주요 내용들은 거의 그대로 따라간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육체 관계를 맺는 것도 남자친구의 외도를 깨닫고 12월 말일에서 1월 1일 새해로 넘어가는 밤 술을 진탕 마시고 놀다가 눈이 맞은 것으로 똑같다. 현재 시점에서 두 사람이 호텔 방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남성이 딸의 전화를 받고 영상통화를 방안 곳곳을 보여주는 장면도 똑같다. 과거 시점의 마지막, 여성이 남성을 떠나는 장면, 남성이 여성을 따라갔다가 전철을 따라 타지 않고 결국 헤어지는 장면도 똑같다.


원작에서 훨씬 큰 비중을 가졌던 남자 주인공의 아버지 역할이 이 영화에서 많이 축소된 점은 좀 아쉽다. 원작이 춘절이라는 시간 배경에서 고향에 남아 있는 가족, 즉 연로한 아버지에 의미를 많이 부여하고 여자 주인공도 아주 잘 따르는 것으로, 그러니까 젠칭과의 사랑과는 별개로 젠칭의 아버지와의 인간관계라 형성되었던 것에 비해 이 영화의 정원은 은호의 아버지와 그 정도로 교감하지 못한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편지를 읽는 것은 좀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원작의 감동을 가져오려면 그 감동으로 연결해 줄 두 사람의 이야기도 따라서 만들었어야 했다.


음, 이래저래 주저리 주저리 영황에 대해 많이 떠들었다. 리메이크로서 나쁘지 않았다. 꽤나 괜찮은 지점들도 제법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부분들이 계속 눈에 띄었다. 전체적인 분위기 자체를 원작이 훨씬 더 잘 살린 것에 비해 아쉬운 점이 많았다. 즉, 계속 원작과 비교하다 보니 더 아쉬웠던 것이다. 비교하지 않았다면 조금 더 나았으리라.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덧붙이자면 여러가지 아쉬움 중에서도 한정원 역의 배우 문가영에게 아쉬움도 있다. 저우동위와 비교해 연기와 전체적인 분위기가 좀 아쉬웠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이 영화를 두 번 보고 몇몇 장면들은 더 많이 돌려봤다. 그리고 원작을 다시 한 번 봤다. 쭉 이어서 보지는 않았고, 중간에 조금씩 건너 뛰면서 보기는 했지만, 저 위에서 강조했던 가장 중요한 순간은 여러차례 돌려서 보고 또 보았다. 미안한 얘기지만, 이 영화 덕분에 원작의 해당 장면을 다시 본 것이 가장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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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6-10-08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끝의 문장이 인상적입니다.ㅋㅋ 배우 구교환은 디피~ 라는 영화에서 좋게 봤어요. 연기를 자연스럽게 잘하는 것 같더라고요. ‘최우수 전 여친상‘, 은 제가 봐도 재밌네요. 자기가 뭔데 평가하고 심사해? 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 같네요.ㅋㅋ
원작과 비교해 보는 것 흥미로워 보입니다. 저도 그런 영화가 있었는데 제목이 생각나지 않아요. 그래서 감은빛 님처럼 꼭 기록하는 습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잘 읽고 갑니다.^^
 

사랑, 인연, 그리고 첫사랑


지난 주에 했던 SF모임은 역대 최고의 흥행을 이뤘다. 일단 3개 단위의 연합 소모임이라는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참석자 수가 많지 않았던 경험을 극복하고 현재 참여 의사를 밝힌 인원이 모두 다 참여했다는 점이 중요하고(그래봐야 몇 명 되지도 않지만 ㅠㅠ) 그 다음으로 참석자 대부분이 이 책이 참 좋았다는 것을 고백하듯 이야기를 나눈 점이 정말 좋았다. 한동안 소원했던 이 모임을 다시 활성화 시키고자 내가 제안한 방법, 미리 공유 문서에 나누고 싶은 주제와 내용을 간단히 적어 달라고 한 것이 꽤 괜찮은 효과를 거뒀다고 생각한다. 이건 나중에 기록으로 남아 여러모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글을 하나 쓸 생각인데, 오늘 하고 싶은 내용은 따로 있다. 나는 책 모임에서 주제나 소재에 대한 이야기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보다 더 신경쓰는 부분이 바로 연결되는 작품들에 대한 내용이다. 이 소설을 읽고 떠오르는 혹은 연상 되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이 소설이던, 만화나 웹툰이던,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이던 상관없이 그로 인해 확장해서 다른 이야기들이 무궁무진하게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이 정말 재미있다고 여기고 또 중요하다고 여기기도 한다. 그런데 꽤 재밌게 읽었던 이 책의 두 번째 단편소설 [우리를 아십니까]를 두고 연결되는 작품들을 생각했을 때, 바로 떠오르는 것이 딱 없었다. 조금 더 고민하거나 조금 더 확장하면 연결되는 작품들이 없을 수 없지만, 그 당시엔 나도 여유가 없어서 조금 고민하다 그만 비워두고 다음 단편으로 넘어갔었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나서 모임을 앞둔 시점에 뭐라도 하나는 적어야 할텐데, 계속 생각나는 작품들이 조금씩 애매하다는 생각에 고민이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 이렇게 순수한 사랑, 게다가 작중 두 사람은 첫사랑이었을텐데, 첫사랑을 그려낸 작품은 생각보다 많을 거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리고 나는 순간 번뜩하고 뭔가를 떠올렸다. 바로 내 첫사랑. 그 달콤하고도 쓰린 기억을 담았던 단편 소설. 이 이야기를 하려면 시간을 거슬러 1996년으로 가야 한다. 학생회 활동과 학회 활동과 동아리 활동 그리고 짝사랑했던 여성에 대한 감정 때문에 정말 너무너무 힘들었던 시절. 대학교 2학년은 사실 너무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시기였음에도 외부에서 끊임없이 많은 것을 요구 받았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때 욕심이 많았던 나는 빨갱이 운동권으로서 학생운동도 하고, 학생회 활동도 하고, 학회와 동아리 활동도 하느라 정말 너무 바쁜 시간을 보냈고, 그 와중에도 너무 좋아했던 여성에 대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힘든 시간을 보냈다. 물론 곧 군대를 갈 에정이라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라는 생각으로 거의 자포자기와 가까운 마음이기는 했다. 그런 와중에 동아리 후배 하나가 본인이 동아리를 잘 지키고 있을테니, 군대에 잘 다녀오라는 얘길 하면서 자신이 동아리 소식지를 만들테니, 나에게 단편 소설 하나를 써 달라고 요구했다. 나는 그 요구를 받아들였고, 입대를 위해 부산을 떠나는 바로 전날까지 단편소설을 하나 썼다.


그 시절엔 피씨도 타자기도 없어서 나는 공책에 손으로 직접 글을 써서 소설을 적었었다. 나는 꽤 유명한 악필이라 이 글씨를 과연 누가 알아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긴 했었다. 다만, 그 후배도 나 못지않은 악필이라 생각해서 그 녀석은 알아보겠지 하는 마음으로 입대를 앞두고 소설을 써나갔다. 나중에 기회가 있다면 자세히 적을 수도 있겠지만, 이 첫사랑은 묘하게도 신경숙 소설가와 연결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단편의 제목과 형식을 신경숙의 소설들에서 차용하는 방식으로 글을 썼다. 창작이라는 과정은 지난하고 힘들고 어렵다. 그 당시에도 그랬다. 나는 생전 처음 군대를 가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더 많이 흔들렸고, 당시 짝사랑했던 여성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더 많이 괴로웠다. 그래서 소설을 쓰는 것도 더딜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약속은 했으니, 지켜야 하는 법. 나는 입대하기 바로 전 날 이 소설을 완성했고 두꺼운 공책 한 권을 후배에게 넘기고 열차에 올랐다.


나중에 한참 나중에 들은 소식은 그 후배가 결국은 제대로 동아리를 운영하지 못하고 잠수를 타버렸고, 준비했던 소식지도 결국은 흐지부지 없어져 버렸다는 거였다. 뭐, 세상에 내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는 일이 뭐가 있을까? 다 그렇고 그런 거지. 그렇게 완전히 포기하고 있던 어느 시점에 휴가를 나와서 한참 후배들과 만났을 때 묘한 상황을 겪었다. 그때 나는 아마 상병 말호봉 정도, 곧 병장이 될 것이고, 병장이 되고 나면 조금만 더 버티면 제대할 수 있는 시기였다. 전방에서 군 생활을 했고, 군생활 자체를 경멸하면서도 이왕이면 잘 해야 한다는 어찌할 수 없는 지긋지긋한 본능 때문에 포상휴가도 제법 받았었는데, 그 날도 포상 휴가를 나왔던 어느 날이었다. 우연히 동아리 선후배들 자리에 낄 수 있었고 별 말 없이 시간을 지나고 있었는데, 내 이름을 물어본 한 후배가 깜짝 놀라며 자기 옆 친구에세 호들갑을 떨며 내 이름을 강조했다. 자세히 들어보니 상황은 이랬다. 동아리를 책임지고 소식지를 만들겠다고 큰 소리 쳤던 후배 녀석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잠적해 버렸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주고 갔던 그 공책을 두 세명의 여성 후배들에게 던져 주고 타자를 쳐서 문서 파일로 만들라고 지시 했었다고, 그리고 그 지시를 받아서 순진하게 알아보기 어려운 글씨를 억지로 타이핑 했던 사람들이 바로 내가 만났던 후배들이었다. 그런데 그 후배들의 반응이 좀 심상치 않았다. 내 소설은 첫 사랑 이야기를 모티브로 쓴 것인데 당연히 100퍼센트 경험은 아니고 허구의 이야기이다. 아직 어렸던 여성 후배들은 내 소설을 소설이 아닌 에세이 처럼 받아들였고, 나를 마치 비련의 주인공처럼 대하며 자신들이 내 소설을 열심히 타이핑 했다는 것을 알려줬다.


입대하기 바로 전 날까지 공책에 써서 넘겼던 소설이었기에 나에게 복사본은 없었다. 다만 정말 긴 시간 고심해서 썼기에 전반적인 내용은 다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 우연히 만난 후배들이 자신들이 타이핑한 문서, 결국 소식지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아무 쓸모가 없어진 문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첫 사랑의 기억을 소설로 남긴 운이 좋은 사람이 되었다. 물론 그 소설의 작품성이나 내용은 절대로 다시는 언급하지 말아야 할 금기사항이지만.


암튼, 나는 그 두번째 단편에서 연결되는 작품을 내가 썼던 단편 소설을 언급했다. 그때는 시간에 쫓겨서 별 생각이 없었다. 내가 썼고, 몇몇 소수를 제외하고 읽은 이가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단편 소설이기는 하니까 그게 뭔 문제야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모임에서 내가 이 이야기를 전하자 모임 구성원들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니 그 소설을 공유하고 이야기를 하던가. 아무도 모르는 소설을 제목과 내용만 던지고 그렇다고 하면 누가 납득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다. 그래. 이건 내가 쓰긴 했지만, 발행된 적이 없는 어쩌면 그럴 가치조차 없는 글이었기에 언급하면 안 되는 것이었구나. 암튼 나는 항의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얼마나 열심히 글을 썼는지, 입대를 앞둔 어린 청년이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글을 썼는지를 전달하며 달랬다.
















그리고 며칠 시간이 지나서 꿈을 꾸었다. 저번에 꿈에 대한 글을 쓰면서 여러 상황에 처한 꿈을 꾸었지만 반대 성별인 여성이 되어 보는 꿈을 꾼 적은 없는 것 같다는 내용을 썼었다. 어쩌면 실제로 그런 꿈을 꾼 적이 있었다고 해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 글을 쓰고 며칠 후에 거짓말처럼 여성으로 살아가는 꿈을 꾸었다. 좀 신기했다. 꿈에서 나는 꽤나 매력적인 젊은 여성이었다. 현실의 나는 외모로는 정말 볼품없는 늙은 남성일 뿐인데, 꿈 속의 나는 정말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나를 좋아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꿈도 어느 정도는 현실을 반영할 수 밖에 없어서 꿈 속에서의 내 삶도 그리 평탄치 않았고, 어려움을 많이 겪을 수 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이 꿈은 확실히 신기했다. 꿈을 한창 꾸는 과정에 중간에 깨달았는데, 내가 여성이 되었구나. 내가 여성으로서 삶을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당연히 이게 꿈이라고 깨달은 시점이었고, 이후로는 그 전과 달리 좀 뻔한 결말로 흘러가는 상황이었다. 아, 내가 여성이 되었구나 하는 순간 그게 꿈이란 걸 깨달은 것이고, 그게 꿈에서 깨어나는 흐름으로 넘어갈 확률을 높인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에는 대학 시절 꽤 긴 시간 짝사랑했던 여성에 대한 꿈을 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이해가 되지 않는데, 그 시절에 나는 정말 너무나도 소심해서 아주 오래 좋아하고도 좋아한다는 말 한 마디도 꺼내지 못했었다. 그런데 꿈 속의 나는 너무 대담하게 그 시절 그 여성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건넸던 것이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아, 이건 꿈이구나. 현실은 절대 그랬을 리 없으니. 그리고 정말 상상하고 싶지 않았던, 너무나도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결말에 이르렀다. 당연히 그 여성은 나를 거절했고, 나는 너무나도 큰 충격에 빠져 삶을 정상적으로 이어갈 수 없었다. 비록 꿈 속의 일이기는 하지만 너무 멍청하고 바보같은 일이 아닌가. 나 같은 인간을 누가 어찌 좋아할 거라고 그렇게 바보처럼 고백을 한 단 말인가. 제발! 


딱 그 시점에서 꿈에서 깨어났다. 온 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샤워를 하며 꿈에 대해 생각했다. 대학생이었던 시절, 정말 긴 시간 짝사랑했던 사람을 아주 오랜만에 다시 떠올렸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했다. 한 편으로 그 사람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 나는 심장 박동이 빨라지며 설레는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30년 전 일이다. 이미 나는 이렇게 늙어버렸다.


그 시절 우리


원래는 이 글을 쓰고 싶었던 건데, 이건 다음에 써야겠다. 올해 2월 4일 나는 중국 영화 [먼 훗날 우리] 라는 작품에 대한 글을 썼었다. 내 소중한 이웃 잉크냄새님께서 소개해 주신 [後來] 라는 노래 덕분에 알게 된 류뤄잉 감독의 영화였다. 이 영화를 실제로 본 것은 25년 연말이었다. 아주 좋은 작품은 아니었지만, 여러가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작품이라는 생각에 두 번을 더 보고 류뤄잉의 노래를 수백번 들으며 곱씹고 또 곱씹어 쓴 글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도 한국에서 리메이크 영화 촬영이 이뤄지고 있다는, 아니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원작 영화가 꽤나 좋았기 때문에 리메이크 작을 보고 다시 꼭 글을 써야지 생각했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 영화를 봤는데 실망이 컸다. 어쩌면 기대가 큰 탓도 있을 것이다. 나는 원작인 중국영화를 꽤나 좋아했으니까. 한국 영화는 정말 너무나도 그냥 한국 영화였다. 세속적이고, 적당히 후려치고, 적당히 뭉개고, 적당히 빠져나가는. 너무나도 젼형적인 한국 영화였다. 원작의 감흥이나 감동은 많이 사라졌다. 다만 그렇다고 이야기 자체의 감동이나 감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한국식으로 포장된 이야기는 중국 이야기 보다 설득력이 있었다. 물론 나는 해당 이야기의 주인공 세대보다는 조금 더 나이가 많기 때문에 곧바로 이해가 가지 않는 지점들이 이었지만, 전체적으로는 그 시절의 그런 감성들을 잘 살려냈다고 본다.


SF 모임에서 읽었던 책 이야기와 [먼 훗날 우리]의 리메이크 작인 [만약에 우리]에 대한 이야기는 별도로 글을 쓸 생각이다. 다만 오늘은 그냥 그냥 그냥 멍하니 자판을 두드려 본다. 생각의 끝에 무슨 이야기가 펼쳐질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냥 첫 사랑의 그 분을 꿈에서라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쁜 현실에서 내가 늘 놓치는 어떤 것들을 꿈에서라도 챙겨 가기를.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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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6-10-01 15: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멍하니 자판을 두들겨도 이런 글이 나온다는거죠? 공을 많이 들인 그 글들은 기대를 갖고 기다리겠습니다. ^^ 토막난 우주를 안고서는 저도 전에 볼까하고 찜해뒀다가 저런 식으로 특정한 주제로 작가들이 각자 글을 쓰는 방식의 작품집이 저에게는 안 맞더라구요. 맞는 작가와 안 맞는 작가가 너무 뒤섞여 있어요. ㅎㅎ 하지만 감은빛님 글을 보니 이 책에 다시 호기심이 생기네요. ^^

감은빛 2026-10-03 18:07   좋아요 0 | URL
이 글을 두드렸던 새벽에 너무 피곤하고 졸렸는데, 이 글은 꼭 쓰고 자고 싶어서 억지로 자판을 두드리며 버텼는데, 나중에는 머리가 텅 비어버린 느낌이었어요. 바람돌이님.

그죠. 저렇게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모아놓은 책들은 호불호가 명확하죠. 상대적으로 일정한 퀄리티를 보장하기 어려운 구조죠. 근데 저 책은 확실히 괜찮았습니다.

잉크냄새 2026-10-01 2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시절의 짝사랑이나 첫사랑이 완성형의 결말을 가지는 경우가 별로 없기에 소식지에 실리지 못한 글의 내용이 더 궁금해지네요. ㅎㅎ

감은빛 2026-10-03 18:09   좋아요 0 | URL
네, 잉크냄새님. 당연히 제 첫사랑도 처참하게 실패했었죠. 달콤했던 기억과 쓰리고 아픈 기억을 담아 썼던 소설이었습니다. 궁금하시게 해서 죄송하지만, 저 소설 문서 파일이 더이상 열리지 않더라구요. 아주 오래된 파일이라 그런 것인지, 뭔가 오류가 생긴 것인지. 저도 다시 읽어보고 싶었는데 열어볼 수가 없었습니다.

chika 2026-10-02 0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몇개이상 혹은 감은빛님 소설에 대한 호기심 인원이 많으면 글 업로드 해주기... 뭐, 이런거 없을까요? ^^;;

감은빛 2026-10-03 18:11   좋아요 1 | URL
치카님. 요 바로 위에 잉크냄새님 댓글에 답글로 썼는데, 해당 소설은 파일이 열리지 않아서 저도 다시 읽어 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아, 물론 소설의 완성도가 너무 처참해서 잘 열린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ㅎㅎㅎㅎ
 

춤을 추고 싶지는 않지만......


한때는 참여하는 독서모임이 많았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사람들과 책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참여하는 단체나 단위에서 책 모임이 있다면, 혹은 새로 생긴다면 꼭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출판사에서 일하던 시절에는 일부러 여러 독서모임에 참여해 보다 많은 독자들을 만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생명 운동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중심으로 모인 이 바닥에서 나름 유명한 독서모임이 하나 있었다. 내가 그 모임에 참여했던 시절에는 전성기는 지난 후여서 얘기를 들었던 정도로 사람들이 많지도 않았고, 예상했던 정도의 적극적인 활동도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정말 좋았다. 그 바쁜 와중에도 어떻게든 시간을 쪼개어 그 모임에는 꼭 참여하고 싶었었다. 만약 일정이 안 맞으면 늦더라도 꼭 뒤풀이는 가고 싶었었다. 그만큼 그 모임 참가자들이 정말 좋았었다. 


독서모임을 거의 나가지 않게 된 건 녹색당을 탈당하면서였다. 그때 우리 지역에서는 만독(만만한 독서모임)이라는 이름의 모임을 하고 있었고, 나는 매번은 아니지만, 가능하면 참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녹색당이 민주당의 위성정당에 참여하겠다는 반민주적인 만행을 저지하고 싶었지만, 결국 실패한 후로 우리 지역에서 함께 활발하게 활동했던 당원들 20여명은 다같이 탈당했다. 그리고 만독도 결국은 흐지부지 없어져 버렸다. 우리가 탈당을 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활동은 이어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만독도 유지하고 싶었으나, 모임을 주도하셨던 분들은 의욕을 잃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다. 독서모임이 많았던 시절에는 읽어야 할 책들과 바쁜 일정 중에 억지로 모임에 참여할 틈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실제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었는데, 막상 참여할 독서모임이 없어지고 나니 많이 허전했다. 그래서 친한 사람들 몇 분들께 SF 읽기 모임을 하자고 제안했다. 다들 좋다고는 했지만 누군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서 첫 모임이 이뤄지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해야지. 해야지. 말만 하면서 또 시간이 한참 지났다. 그러다 예전에 만독을 주도하셨던 선배 한 분을 우연히 만났는데, 그 분이 최근(그러니까 그 당시에) SF를 읽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의외였다. 책을 정말 많이 읽으시는 분이시지만, 주로 사회과학과 인문학 책들을 읽으셨고, 문학 쪽은 그리 관심이 없었다고 생각했었다. 암튼 그 분이 SF에 관심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같이 SF 읽기 모임을 하자고 제안했다. 역시 그 선배님이 움직이니 드디어 첫 모임이 만들어졌다. 막상 모이고 나니 아주 중요하지는 않지만, 꼭 짚어야 할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바로 이 소모임을 어느 단위에 속하도록 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다들 지역에서 다양한 활동들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모인 사람은 많지 않았는데, 이 모임을 주도적으로 만든 이들이 최우선 순위로 활동하는 단위가 달랐다. 이런 문제는 의외로 사람 마음을 건드려 불화의 씨를 퍼뜨릴 여지가 있었다. 그래서 내가 제안했다. 연합 소모임으로 만들자고. 그래서 모인 사람들 다수가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세 단위(협동조합 두 곳과 지역정당 한 곳)가 연합해서 만든 소모임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했다.


처음 몇 번의 모임은 정말 좋았다. 구성원 대부분이 내가 참 좋아하는 사람들이기도 했고, 녹색당에서 활동하던 시절에는 자주 만나고 함께 고생했었지만, 탈당 이후로 몇 년 동안은 그만큼 자주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함께 나누는 이야기들이 모두 정말 좋았다. 그러나 언제나 시간이 지나면 그 애정과 관심이 식을 수 밖에 없는 법. 늘 최우선 순위에 두었던 이 모임에 어쩔 수 없이 내가 한 번 빠졌는데, 그날 이후로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그리고 첫 모임을 만든 구심점이 되어 주셨던 선배가 갑자기 "이젠 SF에 관심이 없어졌어." 라는 이유로 모임에 안 나오셨다. 다들 각자의 위치에서 너무 바빴던 구성원들은 각자의 바쁨을 이유로 모임에 소홀해지기 시작했다. 모임 날짜를 잡는 일이 너무 힘들어졌다.


나 역시 계속 바빴기 때문에 한동안 이 모임을 잊고 지냈다. 그리고 나는 주로 추리소설을 읽었기 때문에 SF 소설을 떠올리지 않았었다. 그러다 어느날 다시 SF를 읽기 시작했는데, 이 이야기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졌다. 그래서 다시 사람들에게 연락했다. 다들 "그래. 모여야지. 모이면 너무 좋지." 라고 말을 했지만, 일정 정하는 것이 늘 숙제였다. 그래서 내가 제안했다. 일단 투표창을 띄워서 무조건 많은 사람들이 가능한 날짜를 정하자. 일단 다시 모이면 그 다음은 어떻게든 굴러갈 거라는 예상은 적중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SF 모임은 꽤 성공적이었다. 세 단위의 연합 소모임이라는 정체성에 어울리지 않게 소수의 참가자들만 남았지만, 새로운 참가자가 들어오기도 했다. 뭐든 저절로 잘 굴러가는 일은 없다. 누군가 시간과 노력을 부어야 굴러갈 수 있다. 어렵게 다시 모인 이 모임이 다시 흐지부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리라 마음 먹었다.


사실 나는 SF 라는 장르를 한참 늦게 만났다. 아마 제일 먼저 접한 작가는 필립 케이 딕이었다. 워낙 유명한 작가이기도 하고, 영화나 드라마 등 영상물로 만들어진 작품들이 많아서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SF 라는 장르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진 계기는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라는 책을 읽은 것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당시 운동가로서 내가 가진 시야가 얼마나 좁았는지를 확인했고, 사회변혁운동에 대한 내 태도와 자세가 너무 경직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아마 이 책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여전히 SF 라는 장르의 매력을 잘 알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 이렇게 소중한 SF 읽기 모임이 만들어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그리고 당시 이 책을 냈던 메이데이 출판사에 영업 담당자가 따로 없었기 때문에 내가 메이데이 출판사의 영업 업무 일부를 도와주기도 했었다.





























SF 읽기 모임에서 함께 읽은 책은 아니지만, 저번에 읽고 짧은 글을 쓰기도 했던 이 책 [모두를 파괴할 힘]에서는 차별에 맞선 전세계적 규모의 혁명이 일어난다. 그 혁명은 마치 축제와도 같았다. 해방구가 된 도시에 모인 사람들은 춤추고 노래하며 혁명을 즐겼다. 그래서 다시 저 책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가 생각났다. 다시 읽어보고 싶었는데, 책을 찾을 수 없었다. 분명 책상에서 가장 잘 보이는 책장에 두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기억이 이 집에서의 기억이 아니었던가? 이사 오기 전의 집이었나? 생각해보니 이 집으로 이사오고 난 후에는 내 취향대로 책 정리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더 찾아볼 시간 여유가 없어서 그냥 돌아섰다. 주말에 짬이 나면 다시 찾아봐야지.


암튼 내가 살아있는 동안 어떤 형태로든 혁명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지만, 만약 혁명이 벌어진다면 나는 어떻게 그 혁명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몸치라서 춤을 추지는 않겠지만, 노래라면 함께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 외에도 다양한 일들을 함께 할 수 있겠지. 모든 차별을 무너뜨리고 모든 억압을 깨부수는 그런 날이 과연 올까?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덕분에 아주 짧은 시간 기분은 좋았다.


시간이 휙휙 지나가고 있다. 8월 말에는 가을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는데, 갑자기 훅 가을이 와버렸다. 이젠 반팔과 반바지가 안 어울리려나. 다시 긴팔, 긴바지 입는 것이 너무 어색한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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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9-10 14: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2026년에 SF소설을 접하신 것이 다행이세요.한 15년전만 하더라도 SF소설 간행하는 출판사도 적었거니와 판매 부진으로 절판되기 십상이라 실제 서점에서 책 구하기기 매우 힘들었거든요.개인적으로 많은 SF소설을 수집했지만 일반 책방에서 거의 절판 상태라 구입하지 못하고 거의 전국의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모은 기억이 나네요ㅜ.ㅜ

감은빛 2026-10-03 18:13   좋아요 0 | URL
카스피님. 제 글을 잘못 이해하셨네요. 올해 SF 소설을 접한 것은 당연히 아니구요. 제가 처음 필립 케이 딕 책들을 읽었던 것은 20년도 더 지난 옛날입니다. 그리고 저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를 읽고 SF 소설에 흥미를 가진 것은 대략 16년 전이었어요. 그런데 또 저는 SF를 그리 열심히 읽지는 않았습니다.

잉크냄새 2026-09-10 2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모임이든 구심점이 될 누군가와 그의 희생 없이는 오래 지속되기 힘든 모양입니다.
독서 모임이라는 것을 한번도 해보지 않은 입장에 그 경험이 어떤 것일까 무척 궁금하네요.

감은빛 2026-10-03 18:16   좋아요 0 | URL
다양한 주제와 형태의 취미 모임들이 있겠지만, 언제나 가장 만족도가 높은 것이 독서모임인 것 같아요. 좋아하는 책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좋지만, 해당 책에서 상상과 현실로 이어지는 다양한 이야기 꺼리들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이 또 너무 좋더라구요. 게다가 지금 이 SF 모임은 대부분 저와 아주 친하고 긴 시간 활동을 함께 해 온 좋은 동료들과 함께라서 더 좋은 것 같아요.

잉크냄새님께서도 그런 즐거운 경험을 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페크pek0501 2026-09-18 16: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독서 모임을 해 본 경험자로서 느낀 건데 구성원의 열정이 밑바탕 되어야 하더라고요.
열정과 신뢰, 가 중요해요. 같은 대목을 읽어도 다르게 해석할 가능성이 있음은 독서 모임에서 얻는 큰 수확이었어요.^^

감은빛 2026-10-03 18:18   좋아요 0 | URL
그렇죠. 페크님. 사람마다 느끼고 생각하는 바는 다를 수 밖에 없으니, 그 차이가 흥미와 재미로 이어지는 것이죠. 한동안 모임이 중단되었다가 다시 모인 거라서 더 모임 분위기가 좋아져서 정말 다행이라 느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