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하필 이런 시국에 이런 대형 참사가 또 생기다니! 윤석열이 당당히 맞서겠다고 어이없는 헛소리를 지껄인 후에 틀어박혀서 칩거 중인데, 뭔가 상황이 자꾸 꼬여가는 중에 한덕수 총리는 또 권한대행 주제에 쓸데없이 고집을 부리고, 이재명과 파란당은 또 그걸 탄핵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탄핵하는 건 또 처음 보네. 사실 이태원 참사때도 그렇고, 이번 비상계엄과 탄핵 국면에서 한덕수 진짜 꼴보기 싫었고, 저런 인간이 한 나라의 총리라고 삿된 말로 쪽팔린다고 생각했다. 뻔히 쉬운 단어를 두고 어려운 영어단어 쓰는 버릇도 우스워보였다. 그렇지만,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건, 헌법재판관이 현재 6명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건, 국회라는 점이다. 특히 지금 뭐라도 된 양 날뛰는 파란당이 초래한 잘못이다. 한덕수가 잘 한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민주당 역시 잘 한 것 업다. 암튼 진짜 뭐 이렇게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가는 지 너무 꼴보기가 싫어서 한동안 뉴스를 안 보고 있었다. 그래서 비행기 사고가 났다는 사실을 몰랐다.
잠시 뭘 기다려야 할 상황에 마땅히 할 게 없어서 습관처럼 SNS에 들어갔다. 별 생각없이 피드를 훓어 내려가다가 제주항공 참사? 아니 사고 였던가? 암튼 그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뭔가 사고가 났구나. 비행기 사고라면 대개 대부분 살거나, 대부분 죽거나 둘 중 하나다. 이건 후자이겠구나 하고 직감했다. 일단 빨리 뉴스부터 찾아봤다. 아! 또 이렇게 소중한 목숨이. 다른 걸 다 떠나서 희생된 승객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유가족 인터뷰를 보는데 자꾸 눈물이 났다.
사고 장면을 보면서 그간 보았던 수많은 비행기 사고 관련한 영화들이 생각났다. 처음 생각난 건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이었다. 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에서는 비슷한, 아니 실제 사고 원인이 무엇인지와 관계없이 비행기가 추락한다는 비슷한 상황에서 모두를 살린다. 영화를 본지 오래라 디테일은 기억나지 않고, 실화를 따로 찾아보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그 상황이 너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기적처럼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또 경우와 상황이 완전히 다르지만, 유독 최근에 비행기 관련 영화를 몇 편 본 것이 다 생각났다. 조정석의 말도 안되는 코메디 영화 [파일럿], 비행기 납치 월북 시도를 막아낸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하이재킹], 가상의 기내 독극물 유출 및 납치 시도를 가정해 만든 망작 [비상선언] 등이다. 파일럿과 비상선언은 별로 언급할 말이 없지만, 하이재킹은 제법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하정우 배우가 연기한 부기장이 실제 상황에서 승객들을 구하기위해 폭탄을 몸으로 막아 돌아가신 수습 조정사 역할까지 맡은 것도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실제 사건을 잘 살리면서 영화적 재미도 놓치지 않았다. 아니, 영화 얘기를 꺼낸 것은 그렇게 많은 영화에서 동체 착륙 장면을 봤어도 이런 대참사가 일어나지 않는데, 역시 현실은 현실이구나. 실은 동체 착륙이라는 것이 이렇게 위험한 일이구나. 영화는 역시 영화구나 하는 당연한 걸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많은 분들이 돌아가신 사고 때문에 한동안 머리가 멍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갑자기 예전에 난기류를 만나 비행기가 엄청나게 흔들려, 이러다 죽는 건가 하고 생각했던 일이 떠올랐다. 이제 구체적인 시기는 기억나지 않는다. 사진을 찾아보거나 여기 서재 글을 검색해보면 나오겠지만. 암튼 오륙년 전 늦가을 혹은 초겨울 무렵이었다. 제주에서 발표를 요청 받아 가는 날이었다.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부터 몇 가지 일이 꼬여서 심란하고 머리가 복잡했다. 그래도 일단 서울을 떠나 제주로 가는 것이니 기분을 풀어보려 노력했다. 얼른 제주로 가서 가볍게 점심을 먹고 발표를 한 후에 저녁에 맛있는 걸 먹고 하루 푹 쉴 생각이었다. 한창 일이 바쁜 시기였지만, 제주까지 와서 당일 바로 올라가기는 너무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충분히 여유있게 시간을 두고 비행기를 예약해 두었는데, 예정된 출발 시간을 한참 지나도 비행기가 이륙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뭔가 안내 방송만 몇 차례 나오고 꽤 긴 시간이 흘렀다. 비행기를 자주 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주는 비행기로 제법 갔었는데, 이렇게 한 시간을 넘기도록 출발을 못하는 일은 처음이라 이러다 못 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럼 이 바쁜 시기에 차라리 잘 됐다며 돌아가서 얼른 일이나 하자 라는 생각과 그래도 억지로 시간 만들어서 월차까지 썼는데 하는 아쉬움이 동시에 들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기다리고 있어야 하나 답답함에 몸이 막 뒤틀릴 것 같을 때쯤 되어서 비행기는 이륙했다. 그리고 얼마나 갔을까? 나는 비행기 입구에서 나눠주는 신문 하나를 정독하고 있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비행기가 위아래로 크게 출렁였다. 사람들의 놀라는 소리와 동시에 나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느낌에 외마디 비명 까지는 아니고 소리를 냈다. 아니 내가 일부러 소리를 냈다기 보다는 저절로 나온 소리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겠다. 머리로는 잠깐 이러고 말겠지 했는데, 그 뒤로 몇 번이나 더 그보다 더 심하게 기체가 요동쳤다. 안전벨트 등이 켜지고 기장이 난기류를 만났다고 안내 방송을 하는 사이, 복도를 오가며 승객들 반응을 살피고 안심시키던 승무원이 앞쪽 간의 의자를 펼쳐 앉은 후 안전벨트를 달칵 채웠다. 마치 이 동작이 스위치라도 된 것처럼 갑자기 기체가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격렬하게 상하좌우로 움직였다. 승객들의 웅성이는 소리와 몇몇 비명들이 커졌다. 그러다 문득 기체가 밑으로 가라앉는 것처럼 한참을 아래로 떨어지다가 다시 위로 솟구쳤다. 이때 정말 진심으로 이 비행기가 추락하는 건가? 나 이대로 죽는 건가? 이렇게 허무하게 가는구나. 이런 생각들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손잡이를 꽉 잡고 이를 악 물고 버티고 있었다. 그때 어쩌다 저 앞쪽 간이 의자에 승객들을 마주보고 앉은 승무원과 눈이 마주쳤다. 아마 그는 계속 불안해하는 여러 승객들과 일부러 눈을 맞추며 눈빛으로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의 표정과 눈빛 덕분에 아주 조금 불안감을 떨쳐낼 수 있었지만, 그래도 비행기라는 것이, 하늘에 떠 있나는 것이 이렇게 공포스럽고 불안한 일이었구나. 이대로 기체가 곤두박질 추락할까봐 무서웠다.
실제로도 난기류 속에서 요동치던 시간이 길었던 것이지, 아니면 내 두려움 때문에 그 시간이 유독 그렇게 길게 느껴졌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제법 긴 시간이 지나서야 기체는 다시 안정을 되찾았고, 안전벨트 등이 꺼졌다. 기장은 다시 방송으로 뭔가 설명했던 것 같은데, 당시 내 귀엔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긴장을 조금 풀었던 건, 앞에 앉아있던 승무원이 벨트를 풀고 일어나 통로를 걸어오면서 양측 복도쪽 승객들의 어깨를 쓸어주는 등 괜찮은지 살피며 다가올 때였다. 내가 앞에서 두세번째 좌석 복도쪽에 앉아 있었으므로 그는 금방 내게도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얼굴을 가까이 대고 괜찮은지 물었네. 나는 아마 작은 목소리로 네, 괜찮아요 라고 답을 했었던 것 같다. 아니, 솔직히 어떻게 답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물을 한잔 달라고 했었던 것도 같다. 그는 아마 친절한 목소리로 곧 전체 승객들에게 음료와 물을 나눠드릴 예정이라고 답을 했을 것이다.
그날 이후로 비행기를 서너번 정도 더 탔을 것이다. 매번 비행기가 이륙하고 나면 그때 그 공포가 다시 생각난다. 다시는 비행기를 안 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리고 이번 사고를 뉴스로 보고 나서 이제 무서워서 비행기 못 타겠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이번 사고로 저가 항공사에서 주로 운행하는 비교적 작은 기체에 대한 두려움도 커졌다. 저 위에 말한 난기류를 만난 날도 저가 항공에 작은 기체였다. 뭐, 물론 아직 정확한 사고의 원인은 알 수 없고, 언론에서 목격자 증언과 몇몇 영상들을 근거로 추정하는 새떼 충돌이 원인이라면, 저가 항공이나 작은 기체가 문제가 아닌 것이겠지만. 잘은 모르지만, 난기류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용띠해 잘 가.
이제 해가 바뀌기까지 하루하고 몇 시간 남았다. 작년 이맘때쯤 작은 아이가 내년이 용띠해라고, 그럼 내년에 태어난 아기들은 아빠랑 같은 띠냐고 물었었다. 그런 걸 띠동갑이라고 부른다고 알려줬었다. 뭐, 용띠해라고 내게 특별히 좋았다거나 나빴던 것은 없었다. 그건 다른 어떤 해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올해 나는 제법 큰 변화들을 겪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 변화의 흐름 안에 있다. 어떻게 어디로 흘러갈지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 꽤 오랜 시간을 어디 머물러 정착하지 않고 계속 흘러다닐지도 모른다.
올해 나는 장거리 달리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10킬로미터 코스 대회에 두 번 참가했다. 첫 대회는 처음이어서 놀랍고 신기한 경험이었고, 두번째는 한 번 겪어봤음에도 계속 놀랍고 신기했다. 그리고 대회가 아니라도 종종 혼자 15~20킬로를 뛰는 나를 발견하고 그것도 신기했다. 지난 한 5년 동안 나는 1~3킬로 정도씩 달리기를 했었는데, 그때 내 생각은 사람이 3킬로 이상 먼 거리를 왜 굳이 달려야 하나 이런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5킬로 미만으로 달린 후엔 별로 달린 기분이 들지 않고, 왠지 게으름을 피운 듯한 기분이 든다. 예전에도 지금도 달리기가 재밌고 좋은 것은 같은데, 달리기에 임하는 자세는 많이 달라졌다. 내년에도 또 즐겁고 신나게 달려보자. 중간중간 대회에도 나가보고.
올해 내가 또 몰입했던 것 중 하나는 프로야구를 다시 보는 것이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랐고, 롯데 자이언츠 어린이 회원인가 뭐 그런 것도 했었고, 무엇보다 사직구장에서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 최동원 선수와 같은 훌륭한 선수들을 직접 보았던 팬이라 앞으로도 평생 롯데가 아닌 다른 구단의 팬이 될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나다. 그럼에도 먹고 사는 일에 지쳐 엄청 오랜 시간동안 야구를 안 보고 살았다. 가끔 한 두 경기를 중계로 보아도 선수들을 모르고 시즌의 흐름을 모르니 제대로 즐길 수가 없었다. 그런 것들을 제대로 즐기려면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올해는 조금 시간 여유가 있는 편이어서 롯데가 늘 하던 봄데 마저도 못하고 하위권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을 때 과감하게 야구에 다시 빠져들었다. 그리고 서울에 자리잡은 지 거의 20년 만에 처음으로 수도권 구장들에 직관을 가기 시작했다. 고척, 잠실, 문학 이렇게 세 곳을 다섯번인가? 갔었다. 수원이나 대전도 가보려고 했고, 대전은 어렵게 예매도 했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 포기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았던 건 여름 휴가 일정에 맞춰 사직구장 예매에 성공하고, 아이들과 다녀왔던 일이다. 이건 아마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아이들 둘 다 마찬가지일텐데, 아이들도 올해 좋았던 일을 꼽으라고 하면 가장이 붙지는 않더라도 사직구장에 갔던 날이 세 손가락 안에는 들어갈 것이다.
그간 아이들과 나는 저 언급한 수도권 야구장들을 다니며 원정팀 응원팬으로의 서운함과 불리함 등을 계속 느꼈다. 긴 시간 사직에서 야구를 봐왔던 시절에는 절대 몰랐던 일들이었다. 그런데 몇십년만에 다시 사직에 와보니 역시 야구는 홈구장에서 봐야 하는 것이었다 를 깨달았다. 내 경우에 그랬고, 아이들은 사직이 처음이라 아마 훨씬 더 좋았을 것이다. 어쩌다 아빠 잘못 만난 덕에 같이 롯데를 응원하게 되었는데, 가는 곳마다 원정팀이라 소외되고, 뭔가 홀대받는 느낌인데다 경기를 지는 날이 대부분이어서 안타깝고 분하고 그랬는데, 비오는 날 사직에서 정말 멋지게 이겨서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거기에 정말 운이 좋게도 응원석 바로 근처 자리를 예매할 수 있었다. 고척이나 문학에서 그렇게 노력했어도 못 구했던 자리였는데.
올해 롯데는 객관적으로 잘 했다고 볼 수 없는 성적을 거뒀지만, 재미있는 경기를 많이 했다. 그리고 비교적 젊은 선수들로 세대교체 과정을 잘 밟아간 한 해였다. 내년에는 좀 더 착실히 성장해서 제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다음으로 올해 기억할 것은 언어 익히기이다. 일부러 공부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아서 부자연스러움을 무릅쓰고 익히기라는 입에 잘 붙지 않는 단어를 가져왔다. 아마 10년 가까이 되었을 것이다. 심심할 때 여러 언어의 단어나 표현들을 찾아보며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던 것이. 그러다 요 앞에 사기 당할 뻔한 일들을 소개한 글에 적었던 언어 익힘 앱들을 만났었다. 거기에 썼던 누군가 특정한 언어를 배우기 원한다고 등록하면, 해당 언어 네이티브들과 연결해주는 앱을 통해 다양한 나라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정말 즐거웠다. 나는 영어 하나만 희망 언어로 등록했었는데,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어 배우기를 원하는 많은 나라 이용자들이 한국인을 찾아서 말을 걸어왔고, 내게도 종종 연락이 왔었다. 게다가 유럽이나 동남아시아 쪽 많은 사람들은 영어를 네이티브 못지 않게 혹은 제법 잘 했으므로 내 영어에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어차피 영어 외에 의사소통이 될만큼 아는 언어도 없었기에 어느 나라 사람과 대화하더라도 영어로 할 수 밖에 없었다. 이건 약간 편견이 섞인 말일 수 있는데 그 앱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 중에 딱 두 나라만 영어를 사용하기 싫어하는 느낌을 받았다. 중국과 일본이다. 이 두 나라 사람들은 굳이 번역기를 통해서라도 각자의 말로 소통하자고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앞서 내가 편견일 수 있다고 한 이유가 있다. 그ㅗ앱에서 당시에 주로 접한 중국인은 시도때도 없이 사기를 치려고 말을 걸어오는, 분명 누군가의 사진을 도용한 것으로 추정하는 젊고 어여쁜 프로필 사진을 앞세운 사람들이었기에 애초에 언어가 목적이 아니었다. 일본인은 엄청 소수만 만났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가 영어로 말을 걸어도 일본어로 답하거나, 굳이 번역기를 돌려 어색안 우리말로 답하곤 했다. 그외 나라 사람들과는 대부분 영어로 했다. 아주 가끔 러시아 사람, 동유럽 사람, 남미 사람 등 영어를 아주 잘 하지는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당연히 나보다는 훨씬 나아서 늘 배울 점이 있었다.
이 앱을 쓰면서 두 가지 아쉬움이 있었다. 첫번째는 이 앱이 채팅으로 대화하는 것과 음성 녹음 파일을 주고 받는 것 외에도 실시간 통화 기능을 제공했는데, 주로 멀리 있는 나라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느라 시차 때문에 통화를 많이 활용하지 못 했다. 또 내가 밖에 있으면 주위 소음 때문에 통화가 어려워서 혼자 집이나 사무실에 있을 때 활용해야 하는데, 그 시간을 서로 맞추기가 참 어려웠다. 두번째는 그들도 그렇고 나도 마찬가지였는데, 아무리 모국어라고 해도 낯선 언어를 체계적으로 정확하게 잘 알려주는 일은 어렵다는 것이다. 그 앱을 통해 알게된 인도네시아 사람이 있는데, 그는 영어 강사다. 바하사 인도네시아를 가르치는 것은 아니지만, 영어라는 언어를 가르치는 사람임에도 그는 내게 인도네시아어를 효과적으로 알려주지 못했다. 나 역시 책도 찾아보고 검색도 많이 해봤지만, 우리말을 제대로 잘 알려주지 못했다. 해당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을 연결해준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한계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암튼 이 앱을 몇 년동안 꾸준히 썼는데, 어느 시점부터 중국계 아리따운 여성들이 마치 바이킹의 대이동이나 훈족의 대이동처럼 이 앱으로 대거 유입되면서 도저히 쓸 수 없는 상화이 되어 결국 지워버렸다. 이후에도 이런저런 앱들을 많이 찾아다녔다. 무료앱도 있었고 유료앱도 있었다. 어떤 건 소액 결제를 해보기도 하고, 어떤 것은 무료 범위 안에서 쓰다가 지우기도 했다. 그러다 시간이 좀 흘러 올해 초에 만난 것이 듀오링고였다. 이 앱의 가장 큰 장점은 쉽고 간편하게, 마치 게임에서 간단한 퀘스트 해결하고 보상 받는 것 처럼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용자들 간의 경쟁을 유도해 조금이라도 진도를 더 나가도록 하기도 한다. 내 생각에 듀오링고의 단점은 체계적으로 설명하거나 순서를 밟아간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게다가 우리말 번역과 어순은 부자연스럽고 심지어 잘못된 내용도 있었다. 즉 알려주는 내용이 정확하게 맞는 표현인지 확신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말로 영어를 익히는 코스들에는 비문이 가득하고, 어순도 종종 잘못된 것을 맞다고 우긴다. 몇몇 단어들은 정말 어색하기 짝이 없게 옮겨놓았다. 영어를 기반으로 일본어를 익히는 코스에도 이상하거나 어색한 영어 표현들이 종종 나온다. 어이가 없는 오류들도 있다. 분명 철자가 맞는 정답인데도, 계속 오답이라고 나와서 더는 진도를 나갈 수 없는 오류가 몇 번이나 있어서 운영진에게 여러 차례 제보 했었는데, 바로바로 반영이 되지 않았고, 나중에 바로 잡고 난 후에도 피드백을 주지 않았다. 이건 진짜 좀 어이 없는데, 같은 단어라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발음이 달라지는 일본어 단어들이 있는데, 가끔 이 발음을 틀린다. 분명 앞에서 제대로 알려줬는데 나중에 뒤에 가서 엉뚱한 발음을 한다. 아, 그리고 이것도 진짜 짜증나는데, 얘네가 최근에 영어 코스에 새로운 기능(아마도 실시간 대화)를 넣어놓고 이걸 쓰려면 유료 결제를 하도록 유도하고 있는데, 이게 좀 비싸기도 하고, 이미 나는 유료 결제를 해서 사용하고 있는데도, 다시 추가 결제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좀 어이가 없고 화가 나기도 한다. 이게 짜증나는 것이 그냥 한번 물어보고 안 한다고 답한 사람한테는 이제 노출을 안 해야 정상인데, 매 챕터마다 두세번씩 징검다리처럼 밟아 나가야 하는 커리큘럼에 포함시켜 두었다. 징검다리 하나를 모두 마치고 다음을 클릭했는데 또 결제하라고 나오고 안 한다고 선택하면 그 챕터 마치기 전에 또 나온다.
이런 몇가지 단점들에도 올해 초에 시작한 듀오링고를 꾸준히 계속 쓰는 것은 아까 말한 장점. 마치 게임하듯 접근한다는 이 앱의 본질적인 태도 때문이다. 내용으로 따지면 훨씬 체계적으로 잘 알려주는 앱들도 있는데, 걔네는 며칠 연속 하다보면 지겨워서 손을 떼게 된다. 듀오링고의 장점은 부담없이 열어보게 만드는 그 태도에 있다. 또 하나 내 기준에서 좋은 점은 영어를 제외하고 다른 언어들은 우리말 기반이 아니라 영어 기반으로 익혀야 하는데 내 기준에선 둘 다 모국어가 아니라 둘 다 한꺼번에 배우는 느낌으로 접근하게 된다. 영어로 일본어를 배우지만, 그러려면 마치 영어가 내 모국어가 된 것처럼 생각을 전환해야 한다. 중국어도 마찬가지고, 인도네시아어도 그렇다. 아주 가끔 들여다보는 스페인어나 독일어도 마찬가지다. 이 지점이 나는 아주 재밌다.
아, 이렇게 길게 쓰려고 시작했던 것은 아닌데, 또 쓰다보니 엄청 길어졌다. 얼른 마무리하고 오늘치 듀오링고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