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같은 사람


엊그제 오랜만에 마을 활동가 한 분과 마주쳤다. 가끔 스치고 지나갔던 기억은 있는데, 말씀을 나눈 건 몇 년만인 것 같다. 딱 나를 보자마자 오키나와 여행 소식을 페이스북에 올린 일행의 사진에서 봤다고 인사를 해왔다. 그리고 그 사진과 함께 올린 글을 상기시켰다. 그 일행은 나보다 거의 10살 가량 많은 여성 선배였는데, 기대하지 않고 갔던 여행이 무척 좋았다면서 일행들에 대해 한 마디씩 남겼는데, 내게는 "오빠 같은" 이란 수식어를 달았었다. 나도 그 선배가 그 글을 올렸을 때 보고 속으로 왜 오빠라고 표현했을까? 궁금했는데, 조금 생각해보니, 회의 같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몇 차례 그 선배의 사소한 실수들을 바로 잡아주거나, 이런저런 잡다한 부탁들을 여러번 해결해줬던 기억이 났다. 여행 때도 일행 중 딱 나이대가 중간이라 위로 선배들 챙기고, 아래로 동생들 챙겼던 모습을 보고 그렇게 쓴건가 생각하고 잊고 있었는데, 그 분이 다시 언급하셨다.


그 분도 아마 나와 그 선배의 나이 차를 대략 짐작하신 듯. '오빠'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그 선배 같은 연차가 오래된 활동가도 오빠처럼 의지할 만한 분 이시군요. 뭐 이런 느낌의 말씀을 하셨는데, 나는 당시 경황이 없어 그 말을 바로 알아듣지 못하고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그냥 웃고 넘겼고, 나중에서야 그 분이 그런 뜻으로 말을 한 게 아닌가 짐작했다.


그 분은 짧은 대화에서 또 다른 기억을 상기시켜주셨는데, 오래 전 지역 시민신문에 육아일기 성격의 글을 연재했던 얘기를 꺼내면서 아이들은 얼마나 자랐는지 물어보셨다. 큰 아이가 중2라고 했더니 깜짝 놀라셨다. 하긴 그때는 아마 큰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것이다. 아이들과 지낸 이야기를 비정기적으로 블로그에 쓰고 있었는데, 누군가 제안해서 시민신문에 1년 조금 넘게 연재했었다. 아빠랑 함께 놀기 라는 컨셉으로 글을 쓰고 싶었지만, 바쁘게 지내다보니 실제로 아이들과 놀 여유가 별로 없었고, 그냥 단순히 놀았던 걸 글로 풀어낼 수 없으니 매번 뭔가 독특한 소재를 찾아야 해서 글을 연재하는 입장에서 쉽지 않았다.


그래도 당시에 재미있게 읽고 있다고 인사해주신는 분들이 있어서 바쁘고 힘들어도 억지로 쓰긴 했는데, 나중에 신문 개편 과정에서 다른 기획을 이유로 연재를 그만하자고 편집장님이 먼저 제안해주셔서 속으로 다행이라 생각했었다. 


그 분에겐 내가 오래전에 아이들과 놀면서 지낸 이야기를 연재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었구나 새삼 깨달았다. 정작 나는 연재를 그만둔 후로 오랫동안 그 사실을 잊고 지냈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가끔 무서울 때가 있다. 내가 살아온 시간 동안 어떤 순간을 공유했던 누군가에게 나는 늘 그 기억으로만 남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 나쁜 짓 하지 말고, 실수하지 말고 살아야겠구나 싶다.


통상적으로는 술꾼,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과격한 운동권, 빨갱이, 또 누군가에게는 독설가로 기억에 남아있겠지. 어쩌면 육아하는 아빠, 늘 아이랑 함께 다니는 아빠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이미지로 남느냐는 내가 결정할 수 없다. 나는 그저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나를 보여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부부 간의 평등














어제 밤 9시 반에 회의를 마치고 뒷정리를 하고나니 10시였다. 선배들이 근처 술집에 자리잡고 있다고 연락이 왔다. 간단히 마시고 헤어지려던 자리는 부부 간의 불화, 불평등에 대한 주제로 대화 주제가 바뀐 후로 갑자기 불이 붙었다. 운동권이지만, 좌파라고 떠들고 다니지만, 집에서는 손도 까딱하지 않는 남자들이 있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 부부 간의 평등은 쉽지 않다. 


물론 좌파니 우파니 보수니 하는 이념과는 상관없이 어려서부터 습관적으로 집안 일을 잘 하는 남자들도 분명 있고, 요즘 젊은 층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고 들었다. 다만, 여전히 그 한계는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나 역시 결혼하기 전부터 사회를 바꾸기 위해 활동하는 활동가로서, 남녀 불평등을 말로만 떠는 사람이 되지 위해 많이 노력했다. 그리고 결혼 후에 가사노동과 육아를 함께 하기 위해 많이 애썼다. 아무리 야근을 하고 돌아와도, 아무리 술을 마시고 새벽에 돌아와도 아이 천 기저귀는 다 빨아서 삶아놓고 잠들었다. 그래서 잠을 두세시간 밖에 못 자더라도, 내가 하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에 그랬다. 평일에는 할 수 없었던 집안 일과 육아를 주말에 몰아서 다 하려고 애썼다. 그래서 주말에 잡힌 회의나 행사에 늘 아기를 데리고 다녔다. 그래도 아마 애들 엄마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많았을 것이다.


현실은 그런 것이라 믿는다. 어제 몇몇 선배들의 솔직한 속내 이야기를 들으며, 분명 공감하지만 그 이면에 숨은 진실. 그렇게 밖에 될 수 없었던 다른 이유들도 분명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누구나 다 각자의 현실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이 책에 그런 면이 얼마나 담겨 있는지 모르겠다. 사소한 일로 서로의 차이를 깨닫는 일화들이 소개되어 있는 건 봤는데, 전체적인 분위기는 또 어떨지 모르겠다. 어쨌건 궁금하니까 한 번 읽어봐야겠다.


주말마다 이어지는 일정으로 아이들과 지내야 할 시간이 자꾸 줄어든다. 아이들은 자꾸만 훌쩍 커버리는데, 아이들은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데, 나는 자꾸만 바쁘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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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아야 할 날
잊지 못할 것 같은 날

1980년 5월 18일 광주를 잊지 말아야 한다. 4월 3일을, 4월 16일을, 4월 19일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 동네 합창단 6주년 기념 공연에서 광주에 대한 웅장한 곡이 나왔다. 합창단과 정가악단의 콜라보. 곡을 듣는 동안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 감정이 솟구쳤다. 앞서 합창단이 어머니에 대한 노래를 불렀을 때도 그랬다. 그 노래를 부를 때는 합창단 여성 분들 중에도 눈물을 훔치는 분들이 많았다. 대부분 50대 중후반이거나 60대 초반인 분들.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리며 감정이 북받쳤을 것이다. 한 분은 계속 우느라 노래를 잘 못하는 듯 보였는데, 옆에 계신 분이 손을 잡아주자 조금 진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합창단에 들어오라는 제안을 여러 번 받았다. 친한 형들이 많아서 나도 가볼까 하는 생각을 몇 번 했다. 한 번은 라이브 카페에서 한 팝송과 가요를 3곡 정도 불러 비공식 오디션 같은 것도 봤는데, 합격 통보도 받았다. 하지만 가고 싶어도 꾸분히 연습에 참가할 자신이 없었다. 저녁에도 회의가 자주 생기고, 특히 공식 연습이 있는 월요일엔 중요한 회의가 많았다.

옷을 맞춰 입고 멋진 화음을 들려주는 형들을 보며 이 사람들은 나와 완전 다른 삶을 사는구나 싶었다. 저런 멋진 무대를 소화해낸 성취감을 가진다면 얼마나 졸을까? 상상할 수 없었다. 아주 오래전 대학시절 노래패에서 처음으로 공연했을 때 너무 떨려서 실수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공연이 끝나고 무대에 섰던 30여 명 중에 아는 얼굴들을 찾아 차례로 인사를 나눴다.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

광주의 진실에 대한 증언이 차례로 나오고 있다. 전재산이 26만원 밖에 없다는 학살자가 국민 세금으로 경호를 받으며 잘 먹고 잘 살다가 죽는 꼴은 보지 말아야 할텐데. 꼭 사형대에 세워 억울하게 희생당한 수많은 민중들의 넋을 위해 아주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도록 해야할텐데

언젠가 천안함의 진실도, 세월호의 진실도 다 밝혀질 날이 오기를.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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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주의자


학생운동 시절부터 늘 회의, 회의 또 회의 이러면서 살았다. 잡지사 겸 출판사에 있을 때는 조금 덜했지만, 시민단체 시절과 지금 협동조합에 일하면서 늘 회의에 치여 산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4건 이상 회의에 참석했던 날, 누군가 내게 말했다. "회의주의자!" 회의에 참석하다보면 삶에 회의가 드는 경우도 있다.


오늘 오전에 약 3시간 이상 많은 인원이 참석하는 회의가 있었다. 인원이 많은 회의는 힘들다. 아니 원래 회의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회의 주최자가 명확한 주제에 대해 충분히 논의를 권하되, 주제를 벗어나지 않도록, 특정한 사람에게 발언이 쏠리지 않고 균등하게 발언 기회가 주어지도록, 그러면서도 원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논의를 잘 끌어가야 한다. 이렇게 회의가 진행되려면 주최자가 경험이 많고, 적절한 시점에 잘 개입하면서도, 각자의 발언을 요약 정리하면서, 이견에 대한 합의와 상호 이해를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오늘 아침에는 회의에 앉아 있으며, 대체 내가 왜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회의가 들었다. 회의에 참가한 것 만으로 회의주의자가 되어버린 상황. 회의 자리에서 발언을 주로 하다보면 그 발언자가 그 일을 떠맡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지간하면 발언을 자제하고 흐름을 따라가는 이유다. 그러나 아침 회의에선 명확하게 요구받은 내용이 있었고, 주최자가 나를 콕 찍어서 의견을 요청하기도 해서 어쩔수 없이 회의에 젖어 멍하니 있던 상태를 벗어나 회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회의를 아주 많이 해본, 회의에 익숙한 사람이고, 회의 진행도 많이 해본 사람이고, 회의가 주제를 따라가지 못하고 산으로 바다로 가는 상황을 무척 싫어하는 편이라, 그런 회의에 참여하는 일이 무척 괴롭다. 그런 상황에 처하면 나도 모르게 회의에 개입하게 된다. 입을 여는 순간 일이 또 하나 늘어날 것이 눈에 뻔히 보이는데도 어쩔 수 없다.


결정적인 것 하나


위는 내가 주도하지 않는, 다른 주체들이 주도하는 회의에 참여해야 할 경우에 주로 일어나는 일이고, 내가 주최하는 회의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사전에 회의자료 준비에서부터 주요 안건에 대한 설명과 이야기의 흐름을 주도하는 일까지 맡아야 한다. 또 업무상 소위 말하는 급이 높은 사람들, 이를테면 고위 공직자나 시의원이나 국회의원 등 힘있는 사람들과 회의를 해야 할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단순히 논의에 잘 참여하는 것에 더해 뭔가 임팩트 있는 인상을 심어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를테면 결정적인 것 하나를 던지는 것이다. 논의 흐름상 중요한 어떤 의견, 반드시 짚어야 할 어떤 논점, 논의를 매끄럽게 풀어갈 수 있는 어떤 흐름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 순간 그 힘있는 어떤 분을 포함한 회의 참석자 전원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


오늘 오전 긴 회의를 마치고 자리를 나설 때, 같이 참석했던 한 여성 참가자가 친근하게 다가오더니, 귀속말을 하듯 귀 가까이 입을 대고 살짝 속삭였다. 내가 주장했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말이었고, 내가 그걸 말해줘서 고마웠다는 말이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회의에 불려다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문제는 회의에 참여하면 대개 일이 더 생긴다는 부작용이 있다. 그리고 회의는 야근을 부른다. 낮에 회의를 다니느라 못한 일을 남아서 해야 한다.


또 내가 주최한 회의는 회의록이나 회의결과 문서를 작성해야 한다.


제일 하기 싫은 일


제일 하기 싫은 일을 하나 꼽으라면 회의록을 만드는 것이다. 몇몇 능력자들은 회의 진행 중에 노트북으로 발언들을 다 기록하고, 회의가 끝남과 동시에 회의록을 만들어 내기도 하더라. 하지만 내 경우에는 논의 흐름 자체에 집중하거나, 대개 회의 안건 자료를 설명하느라 기록까지 챙기지 못한다. 대개는 핵심 내용을 적어놓고, 논의 내용은 녹음해놓았다가 나중에 녹취록을 풀어서 회의록을 만든다. 그러면 그 녹취록을 푸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만약 2시간까지 회의 녹취록을 풀려면 거의 3시간 이상이 걸린다.


게다가 그 녹취록의 흐름에 따라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핵심만 정리하는데 또 시간이 걸린다. 이건 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가늠하기 어렵다. 예전엔 이런 일에 무척 능숙했다. 만약 회의에 집중했고 바로 회의록을 쓸 여유가 있을 때는 녹취록도 듣지 않고, 1시간도 걸리지 않아 회의록을 뚝딱 만들기도 했다. 왜냐하면 집중했기에 대부분의 중요한 발언들 핵심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과 올해는 연합회 담당자가 있음에도 경험 부족을 이유로 내가 대부분의 실무를 도와줬다. 사실 도와줬다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실제로는 거의 대부분의 일을 내가 한 거이나 마찬가지다. 회의 기록도 마찬가지다. 늘 회의에 들어갈 때는 담당자에게 기록을 요청한다. 나는 그 담당자를 대신해 회의 자료도 만들어주고, 회의 안건을 설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의를 마치고 그 담당자가 보내온 기록을 보면 실망스럽다. 핵심을 놓치고 군더더기를 적어놓거나, 표현이 정확하지 않거나. 심지어 엉뚱한 내용을 기록해두기도 한다. 대략 2달 전에 들어온 연합회 담당자는 벌써 3번 연속 회의 기록을 맡겼는데 자료를 주지 않았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 들을 수 없었다며 기록을 못 했다고 했다. 아니 정확하게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어도, 외국어가 아닌 우리말로 하는 회의 기록을 하나도 못 했다는 게 말이 되나? 그래도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내가 회의록을 대신 만들었다. 두 번째는 앞 부분의 아주 일부분만 기록하고 역시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번에도 내가 대신 만들었다. 세번째는 기록해놓은 파일이 실수로 지워진것 같다고 했다.


아, 아무리 잘 이해해주려고 해도 이렇게 나오면 참 곤란하다. 그래도 혹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 기죽일까봐 별 말하지 않고 대신 해줬다. 그리고 내가 만들었다는 걸 연합회 다른 조합 사람들이 알면 안 되니, 모두 그 분이 공유하도록 했다. 내 소중한 시간을 이렇게 계속 뺏기면서 나는 아무런 실속이 없다. 참 허무하다.


야근


회의는 야근을 부른다. 앞서 말했듯 회의를 하러 돌아다니느라 일할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고, 회의 결정사항에 따른 역할분담으로 일이 더 생기기 때문이다. 어떤 일은 기꺼이 즐겁게 할 수도 있지만, 또 어떤 일은 진짜 하기 싫은데, 관계 때문에 어쩔수 없이 떠맡기도 한다. 이럴 때는 야근을 하려고 앉아는 있지만, 자꾸만 마음은 콩밭으로 가기 마련이다. 자료를 찾는 다는 핑계로 SNS 나 검색 결과를 뒤적이며 필요 이상의 시간을 보낸다.


야근은 피로를 낳고, 술을 부른다. 피곤한 몸과 머리는 이상하게 더욱 쉽게 잠들지 못한다. 이럴 때 술을 한 잔 먹어야 빨리 잘 수 있다. 빨리 자야 다음날 아침에 또 출근할테니. 그런데 자려고 마신 술은 다음날 아침 숙취를 부른다.


이상하게 꼭 야근을 하고 나면 한 잔 생각이 간절하다. 그리고 나는 저녁에 회의나 다른 일정이 없는 한 자주 야근을 한다. 저녁에 회의가 잡히는 경우도 많다. 남들 퇴근할 시간에 나는 회의 시간에 쫓겨 이동한다.


만원버스


어제가 그랬다. 6시 30분 회의였는데, 사무실에서 상담 전화를 받다가 10분 전에야 출발했다. 이동 시간이 최소 20분은 걸리는 곳이었다. 게다가 꼭 급할 때 버스는 늦게 왔다. 그리고 그 버스는 완전 만원버스였다. 그 버스를 놓치면 다른 방법이 없어서 뒷문으로 억지로 밀고 들어갔다. 내 뒤에도 두 명 정도가 더 밀고 들어왔다. 우린 잡을 수 있는 손잡이도 없이 사람들 틈에 끼어 이리저리 떠밀리며 움직였다. 


후끈한 공기 속에 누군가의 체취가 코를 자극했다. 왼쪽 앞에 선 키 큰 젊은 남성은 자꾸 팔굼치로 내 가슴을 밀었고, 오른쪽 뒤쪽에 선 여성은 자꾸만 내 팔에 몸을 기대었다. 물론 나도 차가 흔들릴 때마다 앞 뒤의 누군가에게 기대었다. 바로 서곤 했다.


문득 아주 오래 전, 고등학교 때 만원 버스에서 내게 푹 안겼던 인연으로 잠시 사귀었던 여성이 떠올랐으나, 계속 흔들리는 차량 안에서 그런 상상을 할 수 있는 사치는 허용되지 않았다. 어떻게든 손잡이를 잡고 체중을 버티기 위해 허리와 허벅지와 발목에 힘을 꽉 줘야 했다.


목적지에 다와서 버스를 내리는 순간 이미 지쳐버렸다. 하지만 나는 회의 장소로 걸어가 약 1시간 반 가량 회의에 참여했고, 당연하다는 듯이 회의 뒷풀이에 참석해 맥주를 조금 마셨다. 


여성 출마 프로젝트 2020


녹색당에서 여성 출마 프로젝트 2020을 추진 중이다. 학생 운동과 시민 운동과 마을 활동 영역에서 20여년을 지내보니 대부분 일은 여성들이 다 하는데, 어디 나가서 목에 힘주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성이더라.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어딜 가나 항상 그랬다.


어쩌다 핵심 부분 일부만 읽은 이 책 [내 안의 가부장]에 그 이유를 추정해 볼만한 내용이 있긴 했다. 어쩌면 가부장제는 우리 생각보다 더 강하게 개인들을 세뇌시켜 그 체제를 견고하게 만들어 왔을 것이다. 나도 내 주변의 활동가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 자기 안의 가부장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세상을 바꾸려면 더 많은 여성들이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청년들이 정치인이 되고, 더 많은 소수자들이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학자 중 한 명인 정희진 선생님이 인구의 1%가 녹색당원이 된다면 99%가 행복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동의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준연동형비례대표제, 석패율제, 권역별비례대표제, 패스트 트랙, 청소년 참정권 등등 공부해야 할 것도 많고 신경써야 할 일도 많다. 



며칠인지 모를 기간 동안 연속으로 술을 마시고 있다. 물론 어떤 날엔 가볍게 맥주 한 캔 마셨고, 또 어떤 날엔 막걸리 두어잔 마시기도 했지만, 적은 양의 술이라도 술은 술이니까 연속 음주는 맞다. 얼마나 오래 연속인지 기억도 안 날 정도니까 아마 꽤 오래 된 것 같다.


오늘은 정말 술을 입에 대지 않고 연속 기록을 끊어 버리겠다. 집에가서 운동하고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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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씬하시네요"와 "니가 임신했냐?" 사이에서


2010년 가을에 ["날씬하시네요"와 "니가 임신했냐?" 사이에서]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내용은 대략 이런 것이었다. 애들 엄마는 예전에 내 지인에게 "어쩌다 이런 애와 결혼했냐?" 와 같은 질문을 받으면 "몸매 보고 결혼했는데, 속았다." 라고 답변했다. 농담 반, 진담 반 질문에 역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답변한 것이다. 그 답변이 스스로 재치있다 여겼는지, 이후 그 답을 여러번 사용했다. 결혼 전엔 실제로 몸매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지만, 결혼 후 완전 망가져가는 과정에서 그 '속았다'는 표현이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그러려니 넘어가곤 했는데, 둘째를 임신해 배가 불러가던 그가 내 배를 보더니 "니가 임신했냐?"고 물었던 건 좀 충격이 컸었다. 그래서 둘째가 태어난 시점부터 다시 꾸준히 운동을 하던 과정에서, 어느 날 둘째가 다니던 어린이집 선생님이 아이를 안겨주고, 아기띠의 허리끈을 채워주며 "아버님, 끈을 더 늘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물었다가, 쉽게 '달칵'하고 채워지자, "아버님, 정말 날씬하시네요!"라고 놀라며 했던 말을 듣고 우쭐한 마음에 썼던 글이다.


운동을 오래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는 일은 쉽지 않다. 마음은 예전처럼 쉽게 무게를 올리고, 난이도 높은 동작들을 해낼 것 같은데, 막상 몸은 뻣뻣하고 근육은 힘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머리로는 한창 운동할 때를 떠올리지만, 몸은 운동을 모르던 시절의 상태라는 걸 깨닫는 것이다.


관절 통증으로 제법 오래 운동을 쉬었던 탓에 다시 시작한 운동이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다. 한편 당황스럽고, 한편 몸이 고되다는 걸 새삼 깨달으며, 예전에 "니가 임신했냐?"라는 충격적인 말을 듣고, 결혼 후 오래 방치했던 몸을 다시 만들어가던 과정이 떠올랐다.


통증의 원인과 처방은?


게다가 예전보다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관절 통증을 느끼는 상황에서 운동하는 건 더 어렵더라. 한의원 한 곳과 정형외과 한 곳과 의료협동조합 마을 주치의까지 3명의 의사를 찾아다녔지만, 아무도 내 통증의 원인을 진단하지 못했다. 류머티스성 관절염이 아닐까 의심해서 의료보험도 적용되지 않는 고액의 혈액검사를 받았지만, 결과는 류머티스성은 아닌 걸로 나왔다. 다른 진단은 오랫동안 잘못된 자세로, 하루종일 앉은 자세로 지내는 것과 스트레스였다. 일리 있는 진단이었지만, 어떤 날은 손목이 아프다가, 다른 날엔 손목은 씻은 듯이 낫고, 어깨가 아프고, 또 다른 날엔 어깨는 멀쩡하고 발목과 무릎이 아픈 등 비정기적, 불규칙적으로 온 몸의 관절이 아프다 말다 하는 현상을 설명해주기엔 부족했다. 


또 다른 진단은 관절 통증이 있는 날엔 붓기가 동반되는 현상에 따라 신장이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나는 이 진단이 가장 그럴듯하게 느껴진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평소 물을 자주 마시지 않는 편이라 깨달으며, 관절 통증이 있는 날엔 전날 물 섭취가 부족했던 것 같다고 느꼈다. 또 주위에서 관절 통증을 잦은 음주와 연결하는 이들이 많았는데, 실제로 술을 마실 때는 물을 잘 마시지 않으므로 조금 상관관계가 있다 여겼다.


이후로 가능하면 물을 많이 마시려고 노력 중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아직 정확한 원인을 진단하지 못 했으니, 신장 때문이란 건 하나의 가설 일 뿐이니까) 확실히 예전보다 통증 빈도와 강도가 줄어들었다. 


나쁜 자세와 오래 앉아있는 업무 패턴 때문이란 진단도 일리가 있다는 걸 또 깨달은 것이 이후 가능하면 자주 자세를 바로 잡으려 노력하고, 운동을 통해 관절 주변 근육의 힘을 키우려 노력한 것이 조금씩 시간이 지나며 역시 통증의 빈도와 강도를 줄인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물과 운동


어쨌거나 의사들도 모르는 원인을 내가 장담할 수는 없겟지만, 한 편으로 내 몸이니 내가 잘 알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내가 내린 처방은 위에 나온 것처럼 물과 운동이다. 사실 이는 10대 후반 본격적으로 운동에 재미를 붙여 꾸준히 즐기던 시절에는 당연한 것이었다. 이 처방이 효과를 거두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열심히 운동을 해보련다.


준비운동과 마무리운동의 중요성


운동할 때 나쁜 습관 중에 하나는 준비운동(워밍업)과 마무리운동(쿨다운)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었다. 다른 이유는 없고 성격이 급해서, 귀찮아서 그랬다. 바쁘니까 그냥 본 운동만 제대로 해도 되겠지 여겼던 것이 어쩌면 관절에 무리를 준 것은 아닌지 싶다. 그래서 이제 본 운동보다 준비운동과 마무리운동에 더 공을 들인다. 


운동 시간이 훨씬 더 소요되지만, 오래 쉬어서 뻣뻣하고 근육 힘이 약해진 몸에게 적응할 시간을 주고, 그래서 본 운동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몸의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무슨 일을 하던 준비와 마무리가 중요한 법이다.


준비 운동


준비 운동은 두 가지가 필요하다. 워밍업이란 단어에서 알 수 있듯 몸을 움직여 덥혀주는 것과 몸을 부드럽게 풀어주어 긴장과 수축에 적응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달리기와 스트레칭이 필요하다. 달릴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면 버피가 좋은 대안이다. 사실 스쿼트(앉기) + 엎드려뻗쳐 + 팔굽혀펴기 + 양다리 끌어오기 + 스쿼트(일어서기) + 제자리 점프 로 이어지는 버피는 본 운동으로 해도 충분할만큼 과격한 운동이다. 어디 나가서 달릴 여유가 없다면 버피 몇 차례만으로 충분히 워밍업이 될거란 의미로 준비운동으로 적합하다는 뜻이며, 실제로 나는 버피를 워밍업으로 자주 활용한다.



또다른 워밍업은 타바타 인터벌을 활용한 순환운동이다. 타바타 인터벌이란 일본의 운동생리학자 타바타 이즈미가 개발한 운동과 쉼 사이의 간격을 말하는데, 이를 활용한 운동법을 타바타 트레이닝이라고 부른다. 고강도의 20초 운동과 10초 휴식을 8회 반복하는 것으로 쉬엄쉬엄 천천히 하는 것이 아니라 고강도라는 단어가 중요하다. 즉, 죽을 것처럼 20초 운동하고 10초를 쉬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사실 한 가지 동작을 이렇게 8회 반복하기는 제법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 순환 운동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2가지 혹은 4가지 운동을 순서대로 돌리는 것이다.


여기에 넣을 동작은 운동 목표와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에어스쿼트, 푸쉬업, 런지, 싯업을 주로 순환운동으로 활용하며 철봉이나 평행봉이 있다면 풀업과 딥스 등을 활용할 수 있고, 스텝박스를 활용해서 더욱 다양한 동작을 해볼 수 있다.


하지만 타바타 인터벌을 활용한 최고의 운동은 역시 앞서 언급한 버피다. 버피를 타바타 방식으로 하면 그야 말로 죽음이다. 마지막 8세트가 끝나는 순간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워 한동안 터질 것 같은 심장으로 숨을 헐떡이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다. 예전에 층간 소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반지하 집에 살 때는 밤마다 버피 타바타를 즐기기도 했다.


스트레칭에 대한 얘기는 따로 안 해도 되겠지. 요즘은 스트레칭에 좀 더 집중해 기본적인 동작들 외에 각 부위별로 다양한 동작을 해보려고 판형이 크고, 그림이 잘 나온 스트레칭 책을 사서 펼쳐보면서 따라하고 있다.


마무리 운동


마무리 운동에서도 역시 스트레칭은 빠지지 않는다. 가만 보니 운동은 스트레칭으로 시작해 스트레칭으로 끝나는 구나. 근데 난 그걸 빼먹고 본 운동만 했었네. 그리고 앞서 워밍업으로 몸을 덮혔던 동작을 조금 가볍게 반복하며 쿨다운 할 수도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쿨다운 운동은 캐틀벨 스윙이다. 이유는 모르지만 다른 운동보다 캐틀벨 스윙으로 운동을 마무리했을 때 기분이 좋다고 느꼈다. 만약 핏니스클럽에 로잉머신이 있다면 이것도 좋은 마무리 운동이다.


본 운동


본 운동은 운동 목표에 따라 달리 선택할테고, 운동과 휴식의 효과적인 병행을 위해 분할 운동을 많이 할 것이다. 언젠가 알라딘에서 고백한 적이 있듯이 나는 몇 년째 스내치 동작을 가장 좋아하고, 잘 하고 싶다. 바벨 스내치는 특히 어려운 동작이고, 부상 위험도 크다. 작년 여름 무릎 인대를 다친 것도 바벨 스내치를 하다가 실수로 동작이 틀어져서였다. 그래서 요즘은 바벨 스내치를 시도하지 않고 캐틀벨 스내치를 해보려고 하는데, 아직 캐틀벨 운동에 익숙해지지 못해서 집에 있는 캐틀벨의 무게가 스내치 동작을 제대로 하기엔 너무 무겁다. 조금 가벼운 캐틀벨을 사야하나 계속 고민 중이다.


스내치에 빠지기 전에는 주로 프레스를 많이 했다. 벤치 프레스, 푸쉬 프레스, 밀리터리 프레스 등을 주로 했었다. 이젠 프레스 동작을 거의 하지 않는다. 내가 클린 앤 저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온 몸의 근육을 쥐어 짜내어 한 순간에 들어올리는 스내치에 비해 클린 앤 저크와 프레스는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 약수터와 핏니스클럽에서 가장 열심히 했던 운동은 벤치 프레스였는데, 지금은 집에 벤치와 바벨이 있어도 벤치 프레스를 하지 않는다. 역시 재미를 느끼지 못해서다.


동작의 난이도와 투여되는 힘에 비해 가장 큰 효과를 거두는 운동은 아마 스쿼트와 데드리프트일 것이다. 최근에 백스쿼트가 허리에 부담이 크고, 불가리안 스플릿 스쿼트라는 대체할 다른 동작이 있기 때문에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소식을 접하고 충격이 크지만, 운동하는 사람 치고 백스쿼트를 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나도 꾸준히 백스쿼트 무게를 늘리기 위해 노력했었고, 그 효과는 다른 동작에 비해 컸다.


백스쿼트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접한 후 요즘 나는 오버헤드 스쿼트를 주로 한다. 사실 오버헤드 스쿼트는 스내치를 완성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동작이므로 예전에도 많이 하긴 했다. 다만 예전에는 스내치를 위한 동작이었다면, 요즘은 그 자체로 하나의 본 운동 동작이 된 것이다.


바벨 데드리프트는 가장 무거운 무게를 들어올릴 수 있는 동작이다. 운동을 쉬었다가 다시하는 입장에서 온 몸의 근육 협응력을 높이며, 약해진 악력을 다시 기를 수 있는 좋은 동작이다. 요즘은 캐틀벨 데드리프트를 더 많이 하는데, 바벨 데드리프트와는 다른 맛이 있어서 좋다.


집에 있는 실내 철봉과 덤벨 등을 활용하면 훨씬 더 다양한 운동을 할 수 있다. 나는 핏니스클럽에서 머신 운동만 반복하는 행위를 그만둔 지 오래되었는데, 머신을 벗어나보니 정말 다양하고 재밌는 운동의 세계가 다시 펼쳐졌다.


작은 아이가 우리 집에 오면, 마치 놀이터에서 놀이 기구를 타듯이 실내 철봉에서 논다. 가끔 아이의 동작들을 보면서 운동이란 저렇게 기능적으로 움직여야 하고 본능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깨닫는다. 머신에 올라 고립 운동으로 저중량 고반복을 이어가는 건 너무 지겹고 비효율적이다. 


음, 정말 장황하게 적었는데, 주로 내가 이렇게 몸을 움직이며 재미를 느낀다는 얘기다. 글을 쓰다보니 버피 타바타를 하고 싶은데, 집에서는 층간 소음 때문에 할 수가 없다. 일터와 집 근처엔 마땅한 소공원 같은 공간도 없다. 예전에 일터 옥상에서 해본 적이 있었는데, 속옷을 포함해 옷이 모두 땀에 젖어버려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수 많은 사람들과 마주치기 민망해서 다시 시도하지 못했다. 게다가 그 땀에 젖었던 옷을 입고 버스에 오르면 주변 사람들은 또 무슨 죄란 말인가!


아! 이렇게 쓰고보니 정말 버피 타바타를 하고 싶구나! 집 근처에 작은 공원 하나 있으면 정말 좋겠다!


매일 술 마시기 위해 매일 운동하기


언젠가 술 자리에서 운동 얘기를 하다가 그 힘든 운동을 왜 하냐는 물음에 "매일 술 마시기 위해 매일 운동한다"고 답한 적이 있다. 역시 술꾼에게 모든 결론은 술로 통한다. 운동은 재미도 있고, 보람도 느끼고, 그를 통해 이쁜 몸을 만들 수도 있지만, 역시 운동하는 이유는 오래오래 매일매일 술을 마시기 위해서다!


아마 재작년 가을 어깨 인대를 다치기 전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샤워를 마치고 거울을 보며 이쁜 내 몸매에 반하곤 했던 게 말이다. 이제 다시 되찾아야겠다. 


매일 술을 마시기 위해, 매일 샤워하며 내 몸매에 반하기 위해, 관절 통증을 이겨내기 위해, 스내치를 완성하기 위해 오늘도 이를 악물고 몸을 움직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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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5-10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생각해요. 내가 좋아하는 거 하면서 지내기 위해서, 먹고 싶고 마시고 싶은 거 즐기기 위해서 운동해야 겠다고요. 맛있는 거 먹고 마시는 거 저는 행복하거든요. 계속 행복하려면 건강해야겠더라고요.

감은빛님 운동 페이퍼 읽는 거 저는 너무 좋지만, 무리하지는 마세요! 이를 악물기 보다는 할 수 있는 만큼만 합시다.

감은빛 2019-05-14 18:50   좋아요 0 | URL
제가 운동을 너무 오래 쉬었나봐요.
오랜만에 하려니 몸이 막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네요.
이를 악물어야 간신히 기대치보다 한참 못 미친 결과를 볼 수 있어요.

물론 다시 꾸준히 하다보면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되는 때가 오겠지요.
다시 몸 만들기 생각보다 쉽지 않네요.
 


옥희 나와


오키나와 여행 얘기가 나온 건 작년 초겨울 어느날 새벽, 술자리에서였다. 해외 여행을 아직 한 번도 못 가봤다는 선배와 오키나와를 한 번 다녀왔는데, 정말 좋았다는 후배가 마음이 맞아 "가자. 가자." 했고, 나도 예전에 미군기지로 인한 피해를 주제로 한 국제컨퍼런스를 진행했을 때, 오키나와 참가자들을 안내하며 짧게 영어 통역을 했던 기억이 있어서 언젠가 가보고 싶은 곳 명단에 들어있었기에 마음이 동했다. 그날 새벽의 결론은 사람을 모으자! 였다. 렌트카 기준으로 차 1대 혹은 2대에 맞추거나, 성비를 고려해 숙소에 들어가 인원을 모으자는 것.


어렵게 오키나와 일정을 한 번 정했다가 다든 바쁜 사람들이라 취소되었을 때, 내 팔자에 무슨 해외 여행이냐! 싶어서 그냥 포기했다. 그런데 올해 초에 이 사람들이 다시 사람을 모으기 시작했다. 어느새 7명이 모였다고 내게 마지막 멤버로 들어오라는 권유가 왔다. 늘 바쁘지만, 훨씬 더 바쁠 시기라서 좀 망설였는데, 이렇게 지르지 않으면 평생 또 기회가 없을 거란 생각에 합류했다.


막상 단톡방에 들어가보니 멤버 구성이 재미있었다. 동네 선후배들. 다행히 나는 모든 멤버들과 어느 정도 친분이 있었다. 이 구성으로 3박4일 해외여행이라.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니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단톡방의 제목 "옥희 나와"는 누군가 오키나와 여행갈 거란 얘길 했는데, 듣던 사람 중 성함이 '옥희'인 분이 "왜 날 부르냐?"고 물었다는 마치 거짓말 같은 일화에서 착안해 정했다고 했다. 멤버들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유쾌했다. 그런 분위기가 좋았다. 여성 4분과 남성 4이었던 멤버는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성 1분이 빠져서 성비가 안 맞게 되었지만, 그대로 7명이 가는 걸로 정했다.


여행을 다녀온 시점에서 참가자들의 우애는 무척 깊어졌다. 우린 수시로 톡을 주고 받았고, 자주 만나 술을 마셨고, 다음 여행을 어디로 갔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수없이 나눴다. 베트남,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주로 언급되었고, 나는 몽골에 다시 가고 싶다고 했다. 어디를 가던 돈이 필요하니 매달 일정 금액을 모으는 여행계로 하자고 했고, 가장 믿을 만한 분을 계주로 선출했다.


우리 7명은 각자 캐릭터가 뚜렸했는데, 환상의 궁합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서로 사전에 조율하지도 않는데 역할분담을 잘 맡았다. 신기했다. 일부러 그렇게 시켜도 쉽지 않았을텐데,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서로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 누군가가 사전에 여행 계획과 비행기와 숙소, 렌트카 등 예약을 도맡았고, 가서는 일정 진행과 안내를 맡아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여행이었고, 누군가가 그때 그때 필요한 사소한 일들을 다 챙겨주지 않았다면 상당히 불편한 여행이었을 것이다. 누군가 식사 준비를 비롯해 먹거리를 챙겨주지 않았다면 여행 비용이 훨씬 더 들었을 것이고, 누군가 숙소와 이동하는 차 안에서 분위기를 잘 띄워주지 않았다면 서로가 친해지는데 훨씬 더 시간이 걸려 조금은 서먹한 분위기가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맏언니, 맏형으로서 든든하게 챙겨주지 않았다면 서로 조금씩 더 부담을 가졌을 것이다.


나는 운전을 주로 맡았고, 전체 일행 중 딱 중간인 나이대여서 위로 선배들을 챙기고, 아래로 후배들과 소통하는 중간 세대로서 여러가지 일들을 신경쓰고 챙겼다. 내가 잘 하지 못하는 영역 혹은 미처 신경쓰지 못했던 부분들을 잘 챙겨주는 일행들이 고마웠고,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또 최선을 다해 잘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무엇보다 늘 유쾌하고 즐거운 분위기가 제일 좋았다. 그래서 일행 모두 한결같이 또 다음 여행을 생각하는 것이리라.


예전에는 친한 친구와 여행을 가도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다투거나, 속으로 상처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한때 여행은 무조건 혼자 간다는 원칙을 세워 홀로 여행을 다닌 적도 제법 있었다. 그런데 7명이라는 인원이 큰 갈등 없이 재밌게 3박4일을 지낸 건, 대단한 일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 멤버들 중 일부가 지난 어린이날 연휴에 당일치기로 강화도 여행도 다녀왔다. 그것도 역시 12시를 넘긴 시간 술자리에서 급하게 제안되어 시간이 되는 사람들만 3명이 단촐하게 다녀왔다. 


이 친밀감과 유대감이 얼마나 갈지, 정말 이 멤버 그대로 또 어디론가 여행을 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 관계가 너무 소중하고 좋다.


바쁘게 지내는 와중에 문득 문득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았다. 오키나와 여행에 대해서도 풀어놓고 싶은 얘기가 잔뜩 있었고, 일부는 폰에 메모로 남아있다. 하지만 막상 쓰려고 하니 시간이 부족하고 엄두가 안 난다.


일상에서 가끔 남겨놓는 메모들을 보며, 이런 조각 얘기들을 이어붙여 재밌는 이야기들을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은 있으나, 늘 시간이 문제다. 바쁘고 바쁘고 또 바쁘지만, 그래도 소중한 관계들이 있어 버틸 수 있는 것 같다.


+ 일본 떠먹는 요구르트 뚜껑에는 요구르트가 묻지 않는다. 아무리 뒤집어보고, 일부러 묻혀봐도 안 묻는다. 신기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눠준 한국 요구르트를 여는 순간 묻어 있는 요구르트를 보며 일행 모두 같은 행동을 취했다. 혀로 뚜껑에 묻은 요구르트를 핥으며 이게 당연한 행동이지 생각해본다.


+ 역시 술꾼들이 포함된 멤버 구성답게 매일 밤 아와모리를 마셨다. 맛있었다. 처음 먹었는데, 지금까지 먹어온 어떤 술보다 내 입맛에 맞았다. 덕분에 매일 행복한 술자리가 이어졌다. 늦게까지 술을 마셨어도 누구 하나 아침에 늦게 일어나 일정에 차질을 주는 일도 없었다. 서로 배려하고 서로 먼저 움직이는 아름다운 술자리와 여행이었다.


+ 오키나와 음식은 죄다 엄청나게 짰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짠 맛! 너무 짜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 생각할 정도였다. 그리고 엄청 기대했던 회는 생각보다 별로였다. 일본 회는 우리처럼 활어회가 아니라 쫄깃한 씹히는 맛이 없었다. 회 센터를 한 바퀴 돌아봐도 살아서 팔딱이는 생선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죄다 썰어서 포장해놓은 갖가지 회들만 전시되어 있었다. 그래도 참치는 많이 먹었다. 참치는 우리나라에서 먹던 맛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 생각보다 아름다운 오키나와의 자연을 별로 즐기지 못했다. 도착한 날엔 비가 왔고, 다음 날엔 많이 흐렸다. 날씨만 맑았어도 훨씬 좋았을텐데, 타이밍이 아쉬웠다.


+ 공항에 도착해서 입국 수속을 마치고 렌트카 업체를 기다리는데, 다른 업체들은 두번씩 버스가 왔다갈 시간동안 우리 업체는 오지 않았다. 뭔가 잘 못 되었다 싶어서 전화를 하자고 했는데, 일본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내가 영어로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니, 처음에 받은 직원은 영어가 서툴어 잘 알아듣지 못하다가 다른 직원을 바꿨고, 그 직원이 영어로 특정 위치를 언급하고 조금 기다리라고 했다. 그때 우리 일행 모두 나를 구원자처럼 쳐다봤다. 이후 길을 물어보거나, 특정한 물건을 찾거나, 식당에서 주문할 때 영어로 했는데, 나도 워낙 오랜만에 영어를 쓰는 거라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 다시 영어공부를 해야겠구나 싶었다. 동네로 돌아오니 어느새 내가 영어를 아주 잘 하는 것처럼 소문이 돌고 있었다. 역시 소문은 진실이 아닐 확률이 크고 빨리 돈다.


더 쓰고 싶은 얘기 거리는 많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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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9-05-09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옥희 나와‘ 정말 멋진 제목이네요. 한 편의 콩트나 단편 하나 뚝딱 나올 거 같은...^^

감은빛 2019-05-10 21:16   좋아요 1 | URL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단편 소설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라서 메모장에 간단히 적어놓기는 했어요. 그걸 언제 풀어놓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이러다 금방 잊혀져 버릴지도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