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병


나는 심각하게 바쁘고 중요한 때일수록 자꾸 딴 짓을 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고질병이 있다. 머리로는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라고 계속 외치고 있음에도 내 몸은 머리의 말을 듣지 않고 계속 엉뚱한 짓에 몰두해 있곤 한다. 지금 이 순간이 그렇고, 오늘 아침에 그랬고, 어제도 그랬다. 고질병이라 표현했듯이, 당연히, 이번만 그런 것은 아니다. 지금껏 살면서 수없이 많이 그래왔다. 변명을 하자면, 바쁜 때에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딴 짓을 하면,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얼마 남지 않은 남은 시간에 몰려서 더욱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하여 더 멋지게 일을 잘 할 수 있다고 억지로 우겨본다. 물론 엉뚱한 짓을 할 시간에 일을 멈추지 않고 계속 한다면 조금 더 여유있게 더 잘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딴 짓처럼 보이고, 엉뚱한 짓처럼 느껴지는 일을 하고 있는 그 시간이 내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잠시 머리를 식히고, 복잡한 머리를 환기 시키는 역할을 할 수도 있고, 그 엉뚱한 일을 통해 뭔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거나, 막혀있던 어떤 흐름을 뚫어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어쨌거나 확실한 것은 딴 짓 하느라 보낸 시간만큼 더 긴박한 상황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더 긴장하고 더 집중해서 일을 할 수 있다. 대개 이 집중력에 의존하느라 바쁘고 심각하게 중요한 때일수록 자꾸 딴 짓을 하게 된다.


불치병


정말 수십번 반복해서 여기 이 서재에 이야기 하는 것 중 하나는 사람 얼굴과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아주 심각한 병이 있다는 이야기다. 이 말도 여러 번 반복했는데, 과거 개그맨 전유성 씨가 길에서 본인의 딸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는 말을 듣고, 나도 그렇게 될까봐 두려워하며 살고 있다. 사실 아주 오래전에 이미 어머니를 길에서 못 알아보고 지나쳤고, 여동생은 버스 안에서 마주쳤으나 못 알아보고 웬 낯익은 여성이 있네 라고 생각했었다. 가족들을 못 알아볼 정도니 다른 사람들은 말해 뭐 할까.


최근 어느 모임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그 중 한 여성이 유독 낯이 익다고 느꼈다. 이건 아마 틀림없을 것이다. 분명 나와 제법 인연을 맺고 있는 분일텐데, 내가 지금 기억을 전혀 못 하고 있다는 것. 그때부터 내 머리는 저 분이 누구인지 기억해내기 위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모임 진행자가 말하는 내용은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누굴까? 떠오를 듯 떠오르지 않는 이름. 분명 과거 어느 기억 속에서 본 얼굴이 었을텐데, 그게 어떤 장면인지를 떠올리면 단서가 될 수 있을텐데. 아무리 애를 써도 떠올릴 수 없었다.


한참 후에 서로 의견을 주고 받는 와중에 그 여성 분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나를 향해 '동기' 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아! 그래. 과거에 일했던 환경단체에서 함께 신입활동가 교육을 받았던 동기였다. 우리는 교육 기수로 11기였다. 전국에서 50명이 넘는 인원이 모였었다. 아마 55명쯤이었던 것 같다. 출신지역도, 연령대도 다양했다. 당시 10대 후반의 막내부터 40대 후반의 큰형님까지 서로 간의 나이 차도 컸다. 각자의 배경도 다양했다. 전체 평균을 내면 그 여성 활동가와 내가 딱 중간 정도인 20대 후반이었다. 사실 나는 40대 형님들, 30대 후반 형님들과 친하게 지내느라 20대 여성 동기들과는 친하게 지낼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동갑이었던 여성들 몇 명을 제외하면 다른 여성 동기들은 잘 기억나지도 않았다. 암튼 그 '동기' 라는 단어 덕분에 이름은 아직 떠오르지 않았지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분명히 기억해냈다.


중간에 쉬는 시간에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정말 오랜만이야. 못 알아봐서 미안!" 어색한 표정으로 말을 걸었는데, 그는 밝게 웃으며 "오랜만이예요. 이상하게 다른 동기들은 만날 기회가 없는데, 쌤은 그래도 가끔 보게 되네요. 신기해요." 아, 그 말은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아주 오래 전 동기 모임이 마지막이 아니라 그 이후로도 가끔 봤었다는 이야기인데. 허! 왜 나는 전혀 기억을 못 하는 것일까? 그는 거기서도 봤었고, 저기서도 봤었고 이러면서 나와 만났었던 장소를 언급했다. 그리고 내가 자주 가는 우리 동네 거점 공간의 이름을 말하며 최근에 봤다는 말투로 말을 했다. 아! 하마터면 이게 십 몇년 만이지? 하고 물어볼 뻔했는데, 내가 미처 그 말을 하기 전에 그가 먼저 말을 해줘서 다행이었다. 앞서 언급한 함께 교육을 받았던 시기는 이미 20년도 더 전이었다. 마지막 동기 모임은 아마도 18년 전? 그 정도였을 것이다.


암튼 그렇게 막 반갑다고 한참 떠들던 와중에 한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 친구, 전혀 나이든 티가 나지 않았다. 그 시절의 그 얼굴이 그대로 보였다. 아무리 동안이라도 벌써 20년이 넘게 지났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나는 이렇게나 확 늙어버렸는데. 서로 최근에 만났거나 온라인 상으로라도 소통하는 동기들 이름과 근황을 말하다가 우리 진짜 더 늙기 전에 소식이 닿는 사람들만이라도 동기 모음 한 번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 얘기는 몇 년 전에 다른 동기들을 만났을 때에도 늘 나왔던 이야기들이었다. 그때와 그~때에도 꼭 그러자고 했었지. 그리고 잊어버리기 전에 우리는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그때 깨달았다. 아, 나 정말 이 친구를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만난 적이 있긴 하구나. 내 폰이 이미 그의 이름이 저장되어 있었다. 번호가 다른 것으로 보아 최근에 저장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오래된 일도 아닌 것 같았다. 그러자 한 가지 뻔한 모습이 머리 속에 떠올라 또 부끄러워졌다. 정확히 언제였을지 모르겠지만, 그와 만났었던 그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내가 그때에도 똑같이 엄청 오랜만인 것처럼 말을 걸었다가 저기서도 봤었고, 거기서도 봤었고 이런 반응과 마주했을 것이다.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다. 아! 정말!


난치병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 편이다. 자주 만나는 사람들은 자주 만나도 좋고, 가끔 보는 사람들은 가끔 보기에 더욱 더 좋다. 우연히 마주치는 인연은 그래서 더 특별해서 또 좋다. 이렇게 사람을 좋아하지만, 나는 또 그 만큼 혼자 조용히 지내는 시간도 좋아한다. 요즘 어딜가나 MBTI 이야기가 늘 나온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I' 와 'E' 중에 뭐냐고 물으며 헷갈린다고 말을 하는데, 나를 그렇게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아는 분들은 대체로 'E' 라고 생각한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세상에 어느 누가 딱 잘라서 내향형이고, 한치의 의심의 여지도 없이 외향형이고 그러겠는가? 그저 성향을 나타내는 지표 중 하나라고 이해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최근 여행을 가서는 'T' 와 'F' 를 두고 말들이 많이 나왔다. 6명이 1박 2일로 놀러간 자리에서 나를 포함해 4명이 T 라고 했고, 나머지 2명이 F 라고 했다. 그때부터 무슨 말을 할 때마다 무슨 유행어처럼 "너 T야?" 라고 정색하며 말하곤 했다. 그러면서 F 두 사람은 서로를 위로하는 제스처를 취하며 소수자의 비애를 느끼는 듯 연기했다. 예전에 한 때는 J 와 P 를 두고도 말들이 많았던 것 같고, N 과 S 를 두고도 어떤 유행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요즘은 T 에게로 화살이 가해지는 것인가 하고 생각했다.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정확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F 는 감성형으로 공감을 잘 하는 편이고, T 는 논리형이라 공감보다는 먼저 따지고 들어가는 편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나는 어려서부터 남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공감하지도 못했다. 나는 늘 스스로를 특이한 아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나만 혼자 동떨어진 생각과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여겼다. 특히 학생운동을 하던 시절의 내가 그런 경향이 강했다. 잘난 것 하나 없는 주제에 내가 무척 잘난 놈이라 느끼며 나는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들을 고려하는 편이라고 자만하곤 했다. 공감 이라는 단어는 내게는 없는 것과 다름 없는 단어였다.


나이가 들면서 성향도 조금씩 바뀌고 성격도 좀 바뀌었다. 그리고 부산에서 부산 사투리 주로 쓰던 젊은 시절의 나와 지금 사투리 억양이 별로 남지 않은 (그렇다고 서울말이나 표준어를 잘 쓴다는 것도 아니지만) 지금 나이 든 나는 성격이 많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그럼에도 늘 고민이고 잘 되지 않는 것은 남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공감하는 것이다. 이거 참 쉽지 않다. 난치병이다.


10년 전의 강의


오늘 페이스북이 10년 전의 내가 쓴 짧은 글을 보여줬다. 그날 나는 녹색당에서 주최한 정희진 선생님 강의를 들으러 갔었다. 강의 장소는 환경재단 레이첼 카슨 홀이었다. 이날 나는 아이들을 돌보는 날이어서 퇴근하고 아직 어렸던 당시의 아이들을 데리고 간단히 뭔가를 먹인 후에 강의 장소로 데려갔다. 레이첼 카슨 홀은 이미 서 있을 자리도 없을 정도로 꽉 차 있었고, 아이들이 머물 장소가 없었다. 복도는 추웠고 다른 대기 장소는 전혀 없었다. 경비 아저씨가 머무는 아주 좁은 공간에 난로와 티비가 있었는데, 여기에 여분의 의자가 하나 있었다. 나는 경비 아저씨께 아이들이 여기 빈 의자에 앉아서 기다릴 수 있을지 여쭤봤고, 아저씨께서는 흔쾌히 허락하셨다. 아이들은 간이 의자 하나에 불편하게 끼어 앉아 난로의 온기를 쬐며 티비에 빠져들었다. 덕분에 나는 레이첼 카슨 홀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 간신히 서 있을 공간을 조금 확보하고 강의를 들었다.


강의는 무척 흥미롭고 또 신선했다. 그날 따라 나도 아이들도 몸 상태가 썩 좋지 않고, 무척 피곤한 상태였는데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해서 강의를 들었다. 그러나 한참 시간이 지나 아이들이 어쩌고 있는지 걱정이 될 무렵, 마침 작은 아이가 나를 찾는 걸 느꼈다. 상황을 보아하니 경비 아저씨께서 잠시 자리를 비우신 틈을 타서 아저씨께서 앉아 계시던 간이 의자 마저 아이들이 점령해 티비에 열중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작은 아이는 배가 고프고 졸리다고 나를 찾았던 것. 아무리 좋은 강의라도 배고픈 아이들을 외면하고 들을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하고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식당을 찾아 나왔다.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녹색당 행사에 아이들을 데려갔을 때마다 아이들은 피곤해하며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잠들었다. 나는 내려야 할 전철 역에서 양 팔에 하나씩 잠든 아이들을 안아 올려 내리곤 했다. 아이들의 가방들과 내 가방들도 당연히 챙겨야 했고, 아이들이 입은 두터운 잠바들과 내 잠바들이 한 쪽 팔에 하나씩 아이들을 동시에 안아 올리기 어려게 만들었지만, 어떻게든 힘으로 극복해야 했다.


제일 큰 난관은 개찰구를 지날 때에다. 교통카드를 찍어야 나갈 수 있는데, 양 팔에 하나씩 아이들을 안은 처지라 카드를 찍을 손이 없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아주 난감했는데, 그때 옆을 지나던 어떤 여성 분이 도와주겠다고 하여 잠바 주머니에 든 카드를 찍어달라고 부탁드렸었다. 그 다음부터는 개찰구까지 와서 도와주실 여성 분을 스캔하기 시작해 조심스럽게 부탁을 드리곤 했다. 아이들은 계단을 올라 역 밖으로 완전히 나서서야 찬 바람에 잠이 깨기도 하지만, 설잠에서 깬 탓에 더 짜증을 부리기도 했다. 작은 아이는 대게 더 내 품으로 파고 들었지만, 큰 아이는 그래도 맏이라고 내려서 걷곤 했다. 본인도 아직 어린데 그래도 언니라고 아빠를 배려한 것이다. 그때 역시 맏이였던 입장에서 내 마음이 참 아팠다. 본인도 어리광 부리고 싶고 더 안겨 있고 싶었을텐데. 짜증 하나 없이 투정 하나 없이 묵묵히 내 손을 붙잡고 걸었던 아이였다.


그랬다. 10년 전 그날 강의도 인상 깊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훨씬 더 나의 뇌리에 깊이 남아 있었다. 그날 내 품을 파고들며 칭얼대던 작은 아이의 온기와 말없이 내 손을 잡고 걷던 큰 아이의 손길이 지금도 느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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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2-28 0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면인식장애(안면실인증)가 있다는 사람 가끔 있기도 하더군요 그런 사람 소설에도 나와요 그 소설을 쓴 작가가 그렇기도 하다고 합니다 그 작가도 엄마를 못 알아 본 적 있답니다 그래도 자주 만나는 분은 괜찮은 듯도 하네요 자주 어울리는 사람...

여기 알라딘 서재에서는 사람을 못 알아볼 일이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굴을 보고 만나는 게 아니어서 다행이네요 그런 거 다른 사람한테 말해두면 이해해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따님이 많이 커서 어릴 때 일을 생각하기도 하시는군요 페이스북이 십년 전에 쓴 짧은 글을 알려줬다 해도... 시간이 지나서 누군가의 마음을 알게 되는 일도 있겠습니다

이월 이틀 남았네요 감은빛 님 남은 이월 잘 보내시고 삼월 잘 맞이하세요 삼일절...


희선

잉크냄새 2024-02-28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질병은 대부분의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바쁘고 긴박할수록 드라마는 더 궁금하고 더 재미있고 와우나 디아블로는 던전을 꼭 돌아야 직성이 풀리지요.
 

켈로이드


며칠 전에 북플에서 '지난 오늘' 글들을 읽다가 5년 전쯤인가 켈로이드로 고생했던 시기에 쓴 글을 읽었다. 그때 그 글에도 강조해서 썼었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온 몸 여기저기에 흉터가 정말 많은 편인데, 켈로이드라는 단어 자체를 그 당시에 처음 들었다. 그러니 당시 처음 방문했던 무척 불친절한 의사가 말한 것처럼 내가 켈로이드 체질일 리는 없었다. 다행히 두 번째 찾아간 우리 동네 의료협동조합 주치의가 자세히 설명해주셔서 무릎 같은 관절 부위나 상처가 무척 크고 넓은 경우에는 그럴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했었다. 


그때 처음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았던 경험을 쓴 글에 댓글이 많이 달렸었다. 켈로이드가 잘 낫지 않고,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은 후에 조금 크기가 줄어들고 낫는 듯 하다가도 안 맞으면 다시 심해지기도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켈로이드 때문에 긴 시간 고통받고 있다는 등의 댓글들이 있었다. 또 스테로이드 주사 외에 연고 형태의 바르는 약에 대한 정보를 주신 분도 계셨다. 그 댓글들 덕분에 나는 켈로이드라는 생소한 현상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두번째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으러 가서는 연고를 처방해달라는 요청도 할 수 있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스테로이드 주사를 약 8개월 동안 네번인가 다섯번인가 맞았다. 처방받은 연고는 1개 구매해서 딱 마지막 주사 맞을 때 즈음에 다 썼다. 그 연고의 덕분에 주사 맞는 주기가 길었음에도 빠른 속도로 흉터 크기가 줄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말 다행히도 내 켈로이드 흉터는 빠른 시간 안에 완치되었다. 이후로 다시 흉터가 커지거나 부풀어 오르지 않았다. 지금 보면 이젠 이게 켈로이드가 맞았던가 싶을 정도다. 지금은 그냥 웃으며 당시를 떠올릴 수 있지만, 그때 당시엔 좀 많이 힘들었다. 일단 흉터 크기가 무척 컸고, 부풀어 오른 정도도 무척 높아서 바짓단에 닿고 쓸릴 때마다 통증이 컸다. 살면서 무릎, 어깨, 골반 등 관절을 다쳐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던 시절이 꽤 길었다. 이 당시에도 무릎 상처 때문에 거의 6개월 동안 다리를 절면서 살았는데, 이후에 켈로이드 때문에 다시 1년 가까이를 고통 받았었다.


그때 다친 무릎이 왼쪽이었는데, 오른쪽에 비해 왼쪽 무릎은 정말 흉터가 많다. 그때 상처 이후로도 한번 더 큰 상처를 입었었는데, 이 흉터도 또 켈로이드가 되는 건 아닌가 싶어서 걱정도 많았다. 정말 다행이도 이번에는 켈로이드가 되지는 않았다. 다만 다른 흉터들 보다는 조금 부풀어 오르기는 했는데, 흉터의 크기가 그렇게 넓지는 않아서 켈로이드가 되지는 않았다고 여겼다.


새삼스레 지금 켈로이드 얘기를 하는 것은 3년 반 전에 당한 교통사고로 인해 내 옆구리에 남은 큰 수술자국 흉터들 때문이다. 언젠가 같이 목욕탕에 갔던 후배가 이 흉터를 보고 "형, 어릴 때 패싸움 하던 시절에 칼 맞은 자국이예요?" 라고 물었었다. 한때 좀 어두운 삶을 살았던 시절에 칼을 휘두르는 상대에 맞서 싸움질을 한 적은 있었으나 정말 다행스럽게도 칼을 맞은 적은 없었다. 그래서 칼을 맞은 흉터가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내 옆구리에 남은 수술자국은 길고 흉측하다. 게다가 꽤 오랜 기간동안 이 흉터도 조금 부풀어 있었다. 몸을 씻을 때마다 오돌도돌하게 부풀어 오른 흉터가 만져져서 빠르게 씻던 손길을 잠시 멈추고 다시 조심스레 손을 움직이곤 한다.


그렇게 씻을 때마다 신경 쓰이던 이 흉터들을 최근에 샤워하면서 다시 자세히 살펴보았다. 부풀어 올라있던 흉터들이 많이 작아지고 많이 낮아졌다. 켈로이드라고 할 정도로 부풀지는 않았었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일 정도이긴 했는데, 이제는 예전처럼 신경쓰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나는 켈로이드 체질은 아닌 것 같다. 다행이다.


히라가나


요즘 영어와 일본어 익히는 일에 재미를 붙였다. 이런저런 다양한 언어들을 조금씩 손 댔다가 멈추기를 벌써 수년째 하고 있는데, 그 기간동안 그닥 외국어 실력이 늘지는 않았다. 사실 뭐 처음부터 외국어를 잘 하고 싶어서 손을 댄 것도 아니고 그저 재미로 조금씩 들여다보다 그만뒀다 했던 일이라 그냥 재밌게 잘 놀았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조금 욕심이 생겼다. 영어는 확실히 예전에 비해 실력이 줄었다고 느껴서 다시 좀 꾸준히 접할 기회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왔고, 기존 사용하던 여러 앱들에 더해 최근에 다른 앱 하나를 더 깔았다. 확실히 사람은 새로운 자극이 들어오면 재미를 더 느낀다. 이 새로 깐 앱이 구성 면에서는 좀 아쉬움이 있지만, 재미는 있었다. 그리고 기존 쓰던 다른 앱들도 다시 손을 대다보니 새로운 활력을 느꼈다.


일본어는 딱 계기가 된 일이 있었다. 일본 어느 대학의 환경대학원 학생들이 나를 인터뷰하러 찾아왔던 일이었다. 통역을 해주신 한국인 교수님께서 워낙 잘 해주셔서 당시 나는 영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우리 말로만 말을 했었다. 다만 그 대학원 학생 중에 이스라엘과 인도에서 온 학생들이 소수 있었는데, 그들은 영어로 소통했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 영어를 알아듣기 위해 좀 집중을 하긴 했었다. 그리고 인터뷰를 마친 후에 나에게 제일 먼저 연락을 했었던 학생과 잠시 대화를 나눴는데, 그때 나는 주로 영어로 말을 하다가 문득 일본어로 한 마디라도 말을 걸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런데. 그런데. 정말 단 한 단어도 생각이 안 나는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머리가 하얗게 변한 느낌이었다. 나와 대화했던 학생을 포함해 그날 방문했던 학생들 10명은 일부러 내게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등등 인사말을 우리말로 했었다. 그래서 나도 헤어지기 전에 인사만이라도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마저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게 말 한마디도 못 해보고 헤어진 그들은 나중에 인스타그램과 이메일 등으로 다시 연락을 해오며 다음에 꼭 기회를 만들어서 오겠다고 했다. 이번에는 인터뷰가 아니라 강의를 들으러 오겠다고 했다.


미래는 알 수 없는 일이니, 정말 그들이 다시 올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만약 다시 온다면 그때는 아주 가벼운 대화만이라도 일본어로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아주 가끔 손을 대다가 멈추곤 했던 일본어를 다시 익히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살았던 부산은 일본과 가장 가까운 도시라서 그랬는지 몰라도 다양한 일본 문화를 가장 먼저 접하는 곳이었다. 지인들 중에 일본어를 공부하는 사람도 많았고, 일본어를 제법 잘하는 사람도 많았다. 나는 일부러 일본어를 공부한 적은 없지만, 일본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 등을 많이 접했기 때문에 자주 쓰는 단어나 표현들은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래서 아마 영어 다음으로 잘 할 수 있는 언어가 일본어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좀 익혀보려고 마음 먹었던 것이 한 십여년 전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당시에 본격적으로 공부해봐야지 생각했다가 바로 막혔던 지점이 바로 히라가나, 가타가나를 외우는 일이었다. 뭔가 일부러 외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데다가 모양도 익숙하지 않은 이 글자들을 익히는 일이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그래서 다시 방향을 바꿔 글자는 포기하고 그냥 듣고 알아들을 수 있는 표현이나 단어를 늘리는 것으로 조금씩 하다가 말다가 했었다.


이번에 오랜만에 다시 일본어를 익히면서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부터 시작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이번에는 새로운 글자들을 익히는 일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한번 재미를 느끼면 확실히 속도가 붙는다. 십년이 훌쩍 넘는 기간동안 외우려다 포기하기를 반복했던 히라가나를 단 며칠만에 다 외웠다. 일단 글자를 다 알아보는 단계가 되고 나니 발음으로만 알던 단어들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와! 이제 정말 번역되지 않은 일본 만화를 읽을 수 있는 건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직 가타가나도 외워야 하고, 무지 어려울 것 같은 한자어도 천천히 익혀야 하겠지만, 한자 위에 가나를 표기한 글이나 만화라면 읽을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무척 기분이 좋아졌다.


어떤 일이든 뭔가 확 바뀌는 계기, 어떤 변곡점 같은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영어는 군대 제대하고 아직 휴학 중이던 시절에 회화학원을 다니며 원어민 선생님 한 명과 친해진 일이 계기가 되어서 확 늘었다. 그때는 미국이나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떠나는 것이 유행이었고, 하다못해 동남아로라도 연수를 다녀오던 시절이었는데, 나는 어학연수는 못 가더라도 회화학원이라도 다녀야지 생각했던 것이 뜻하지 않게 강사랑 친해졌다. 같이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고, 당구를 치러 다니고, 카페에서 수다를 떨거나 같이 장기를 두는 등 어울리다보니 어법에 맞지 않더라도 영어로 떠드는 일에 조금 자신이 생겼고, 그래서 이후로는 주저없이 영어를 말할 수는 있게 되었다. 몰론 여전히 영어를 잘 한다고 말할 정도는 못 되지만.


이번에 히라가나를 익힌 일이 내게는 일본어를 익히는 일에서 변곡점이 되는 사건이라 여긴다. 앞으로 좀 더 재미있게 일본어를 듣고 읽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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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4-02-14 2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가지 이상의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분들을 보면 신기해요. 제 경우는 중국어가 늘수록 영어 구사에 문제가 발생하더군요. 중국 생활 초기에는 가끔 만나는 서양인들과 짧은 영어로 소통했었는데 중국어가 늘수록 그들과의 대화에 중국어가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옵니다. 단어 한두마디의 실수가 아니라 전체 문장 자체가 중국어를 기반으로 구성되어버려요. 중국에서의 생활이라는 지리적인 여건이 언어 의식에 영향을 미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I GO TO SCHOOL 이라는 짧은 문장조차 중국말이 먼저 튀어나오는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희선 2024-02-15 0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말 알아 들은 다음에 글자 공부해도 괜찮지 않나 싶어요 그게 기억에 잘 남기도 하니... 들었던 낱말을 보면 이렇게 쓰는 거구나 하면서... 관심을 가지고 즐겁게 하면 어느새 익히게 되겠습니다

영화회화는 원어민 선생님과 친해져서 여러 말 하시다 잘 하시게 됐군요 다른 나라 말은 문법 같은 거 많이 생각하지 않고 해 보는 게 중요하겠네요


희선

2024-02-15 16: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스팸 난리


왜 이러지? 최근에 그러니까 작년 연말부터 각종 스팸이 진짜 미친듯이 온다. 일단 문자 메시지, 하루에 수십개씩 오고 있다. 확인하는대로 바로 스팸 신고 버튼을 누르는데, 끝없이 오고 있다. 이 번호를 한 15년 이상 쓰고 있는데, 이 정도로 스팸을 많이 받는 건 처음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있으나 마나 한 스팸 신고를 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 그냥 계속 무시하고 있었는데, 그 한도를 넘어서는 느낌이다.


두번째는 라인. 라인 앱을 깔았던 건, 해외에 있는 몇몇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내게 라인 설치를 원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몇 년이 지나면서 이제 그들 대부분과 더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라인은 이제 내게 전혀 쓸모가 없는 앱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앱을 지웠다 라고 생각했는데, 최근에 깨달았다. 앱을 아예 삭제한 것이 아니라, 그저 내 눈에 띄지 않도록 바탕화면에서만 없앴던 거였더라. 그걸 깨닫게 해준 것이 스팸이었다. 예전에도 가끔 라인으로 스팸이 오곤 했기 때문에 뭐 그러려니 했다. 자주 쓰지도 않는 앱인데, 스팸이라도 와서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뭐 이런 생각까지 했었는데, 그 후로 수시로 스팸이 왔다. 문자 메시지로 오는 스팸은 적어도 새벽에는 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라인은 새벽에도 종종 울린다. 불면증도 있고, 밤에 좀 예민한 편이라 이렇게 울리는 스팸은 정말 사람을 화나게, 짜증나게 만든다. 참고 참다가 이젠 정말 라인을 삭제해야지 생각했다가 그러니까 생각만 하고 깜빡했는데, 이 글을 쓰면서 떠올려보니 최근에는 그래도 라인은 잠잠하네.


세번째는 텔레그램. 텔레그램은 내가 쓰고 있는 여러 메신저 앱들 중에서 가장 스팸이 없는 앱이었다. 나는 남들이 다 카톡을 쓸 때, 카톡을 안 깔고 버티면서 메신저가 필요하면 텔레그램으로 연락하라고 했었다. 카톡보다 더 오래 썼는데, 정말 스팸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최근에 오기 시작했다. 텔레그램은 스팸도 좀 남다르다. 어느 순간 어떤 누군가가 나를 비롯해 수백명을 한 방에 초대해서 뭔가 불법적인 것 같은 것을 홍보하는 글을 남긴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어떤 수상한 방에 끌려들어왔다는 사실을 나중에 깨닫는다. 그러면 그때부터 그 수백명이 수시로 방을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나도 내가 끌려 들어왔다는 걸 깨달으면 무엇을 위한 방에 어쩌다 끌려왔는지도 모르고 그냥 방을 나온다. 처음 몇 번은 그렇게 남들 따라서 방을 나오고 말았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나를 끌어들인 그 놈을 차단했어야 한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서 그 다음엔 방을 나가기 전에 차단하려고 보니, 어라, 벌써 없는 계정으로 나온다. 그러니까 최초의 딱 하나 홍보글을 남기려고 그렇게 수백명을 한번에 몰아넣고 방을 만들었던 것이다. 와, 이거 참!


네번째는 왓츠앱. 왓츠앱은 처음 깔았을 때부터 잊을만 하면 한번씩 스팸이 왔다. 왓츠앱으로 오는 스팸은 딱 전형적인 패턴이 있었다. 주로 프로필에 아름다운 중국 여성의 사진이 있는 분이 어설픈 한국말로 말을 건다. "사업 때문에 연락 드린다."고 하면서 누구 아니냐고 묻거나, 누구 아시냐고 묻거나 한다. 가끔은 그냥 "한국인이시냐?"고 묻기도 한다. 맨 처음에 이게 스팸인지 몰랐던 나는 그렇게 밑도 끝도 없이 물어오는 중국 꾸냥들(아마도 실체는 아니겠지만)께 친절하게 대답했었다. 아, 이게 아름다운 여성이라서 친절했던 것이 아니라(정말로?) 그냥 누구에게라도 초면에는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버릇이라서 그랬다.


예전에 알라딘 서재에 쓴 적이 있는데, 로맨스 스캠인가 하는 것도 두어 번 연락 받아 봤었다. 한 번은 페이스북 메시지로 받았었고, 또 한 번은 탄뎀이라는 언어익힘앱으로 받았었다.


아, 그러고 보니 최근에는 인스타그램 메시지로도 스팸이 몇 건 왔었다. 이 인스타그램은 서로 팔로우가 맺어져 있지 않으면 메세지를 바로 보낼 수 없는 것인지 몰라도 그냥 메시지에 들어가면 안 보이는데, 거기서 파란 글씨로 된 "요청"이란 버튼을 누르면 나오더라. 몰랐는데, 어쩌다 한번 찾아 들어가보니 스팸이 여럿 와 있었다.


와! 진짜 스팸의 시대도 아니고 무슨 스팸이 이렇게나 많은 것인지. 일 때문에 전화도, 문자도, 메신저도 정말 자주 그리고 또 많이 쓰는 편인데, 요즘은 가끔 업무 연락보다 스팸이 더 많은 날도 있는 것 같다.


책 모으는 사람들


1. 전 알라딘 MD


우연히 기사를 하나 읽었는데, 지금은 모 출판사에서 간부로 일하고 계시는 예전 알라딘 MD님 이야기였다. 책을 2만원 사모았는데, 그중 약 1만 5천권 가량 책을 두는, 아니 책만 두는 아파트가 있다고 소개하는 기사였다. 그는 부모님이 계시는 본가와 혼자 사는 서울 집, 그리고 책만 두는 인천 아파트 이렇게 세 곳에 책들을 분산해 두었다고 했다. 평소라면 그냥 스쳐 지나갔을 이 기사를 왜 읽었느냐 하면, 예전에 내가 출판사 마케터로 일할 당시에 그가 여기 알라딘의 인문,사회,과학 분야 담당 MD였어서 친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사로라도 오랜만에 소식을 접해서 반가웠다. 요즘은 작가로서 활동하시는, 그래서 가끔 책으로 이름을 접하는 그의 전임자와도 친분이 있었다. 다소 낯을 가리는 듯한 그 전임자와 친해지기 위해 노력해서 간신히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관계를 만들어 놓았는데, 갑자기 그만둬 버리고 후임으로 온 사람이 바로 오늘 기사에 나온 그 사람이었다. 바갈라딘 이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한 사람. 이 분은 전임자보다 훨씬 더 사교성이 있었다. 금방 딱 필요한 만큼의 친분을 쌓았다. 내가 출판사를 그만두고도 오랫동안 이 분은 알라딘에서 계속 일했다. 이제는 그 전임자가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내가 아는 한 알라딘 인문, 사회, 과학 담당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 분이 맡았던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오래 일했었다. 나중에 다른 출판사로 옮겼다는 소식을 접했다.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언젠가 내가 다시 출판계로 돌아가 마케터로 복귀한다면(사실 그럴 수 있을지 조차 알 수 없지만) 알라딘에 신간을 들고 찾아갔을 때, 그가 맞아 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암튼 기사에 나온 그는 책을 사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2만 권이라. 개인이 가진 책의 양으로는 정말 많긴 하다. 예전에 일했던 출판사들 중 한 곳은 책을 물류 대행업체 창고에 두지 않고, 자체 창고를 운영했었고, 나는 마케터이자 창고 책임자이기도 했다. 그때 우리 창고에 있었던 책이 약 4만 권 정도였었던가? 수십종의 단행본과 수십호의 잡지를 가진 출판사 창고에 있던 책이 그 정도였는데, 개인이 가진 책이 2만 권이면 정말 많은 것이다.


2. 현 소규모 출판사 공동대표


책을 엄청 사모으는 지인 중에 딱 한 명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이 사람을 떠올린다. 책에 미친 사람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사람. 책이 너무 많아서 이십년 가까이 이사도 못 가는 사람. 내가 그를 만나보기 전에 그저 소식만 접하던 때는 아마도 십오년이 훌쩍 넘은 전이었고, 그를 처음 만난 때가 딱 십일년 정도 전이었다. 그때 그의 집에 초대받아 놀러갔었는데,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거의 작은 도서관 수준으로 책이 많았다. 집에 다른 것들은 거의 없었는데, 그냥 책만 있었다. 앞서 바갈라딘 님이 최근에 2만 권을 모았다고 한다면, 이 분은 이미 십년 전에 2만 권쯤 있었을 것이다. 집에 가스레인지도 없고, 옷장도 없고, 티비도 없는데, 그 넓은 집을 책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넓은 거실을 빙 둘러 서있는 서가는 책으로 가득 찼고, 작은 방에는 책탑으로 가득했다. 베란다에도 아직 풀지 않은 책 상자들이 가득했고, 구석 구석 자투기 공간마다 묶어놓은 책들이 놓여 있었다. 


그 이후로 한 서너 차례 그 분의 집에 놀러 갔었다가, 안 간 지 제법 오래 되었다. 그 분은 지금까지 꾸준히 어마어마하게 책을 사 모으고 계시고, 벌써 예전부터 집에 둘 자리가 없으니 사무실에도 책 탑과 상자들을 쌓아두기 시작했다. 아마 그 출판사 사무실에는 본인이 낸 책들보다 사 모은 책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아, 물론 창고가 아닌 사무실이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대체로 출판사 사무실이라면 책 탑이나 상자가 아닌 서가에 책들을 잘 정리해 둘 것이다. 그것이 출판사 소유의 책이라면, 하지만, 그 분의 개인 책이기 때문에 서가에 두지도 않는 듯하다.


3. 다행이다.


어쩌면 내가 좀 더 부자였다면, 아니 그러니까 이렇게 돈과는 철저히 관계 없는 일을 하는 삶을 살지 않고, 평균적인 수준의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직장이었다면 아마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책을 사모았을 것이다. 그러지 못하는 현재의 삶이 한 편으로는 아쉽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내가 책을 그렇게 본격적으로 사 모으지 못하는 이유는 일단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저 맨 위의 바갈라딘 님처럼 책만을 위한 집을(그것도 아파트를) 따로 둘 여유는 당연히 없고, 두번째에 소개한 분처럼 넓은 집과 사무실을 책을 위해 투자할 여유도 없다. 우리 집은 작고, 좁고, 낡은, 허름한 곳이라, 책을 많이 두고 싶어도 둘 수 없다. 


집이 작고 좁은 것과 함께 잦은 이사도 책을 모으는데 큰 방해 요인이다. 저 앞선 두 분의 사례처럼 긴 시간 안정적으로 책을 보관할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2년에 한번 혹은 그보다 더 자주 이사를 다닐 때마다 대대적으로 책들을 처분하곤 했다. 


지금도 어쩌면 올 봄에 이사를 나가야 할지도 모를 상황이라 책들 때문에 걱정이 많다. 여기 올 때 저 많은 책들을 옮기느라 죽을 고생을 했는데, 이제 나이 들어서 더 힘을 쓰지 못 할텐데, 저 책들을 어떻게 옮겨야 하나? 이제 책 사는 거 금지 라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곤 하지만, 그게 가능했으면 내가 아니지. 오늘도 장바구니와 보관함을 들락거리며 입맛을 다시는 나를 본다.


아, 지난 주에 받은 책들 박스만 뜯고 아직 훑어보지도 않았구나. 주말 내내 몸이 좀 좋지 않아서 이불 속에만 있었더니 차가운 작은 방 바닥에 책 상자를 그대로 방치해 두었네. 얼른 집에 가서 책들 살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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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1-23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궁금해서 바갈라딘 님 인터뷰 찾아 읽었네요. 그리고 저는 그 분에 비하면 한없는 꼬꼬마 ㅋㅋ 거침없이 더 사도 되겠어요!! 우하하하

감은빛 2024-01-26 19:22   좋아요 0 | URL
기사 읽으셨군요.
다락방님께서는 이런 반응이실거라고 예상했습니다. ㅎㅎ

잉크냄새 2024-01-23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보관보다 이동에 제약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중국에서 귀국시 고생해봐서 잘 알지요.

감은빛 2024-01-26 19:23   좋아요 0 | URL
아유, 중국에서 책 가져오시려면 정말 힘드셨겠어요.
같은 동네에서 이사하는 것 만으로도 저는 정말 힘들었어요. 잉크냄새님.

레삭매냐 2024-01-23 2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포스팅을 읽고 나서 바갈라딘이
진행하던 팟캐의 추억이 생각나서
언급해 주신 기사를 찾아 봤네요.

3인조(?)인가 신나게 떠들던 시절
이 그립네요.

마케터로 알고 있었는데 다시 출판사
로 돌아가신 모양이네요.

이사할 때마다 눈물을 머금고 책들을
엄청나게 들어냈는데, 빈 공간에는 다
시 새로운 책들이 점령을 하더군요.

저희 독서 모임 동료 분 중에서 더 이
상 책을 사들이면 불싸지르겠다고 선
언하신 옆지기님의 명언이 떠오르는
그런 밤입니다.

감은빛 2024-01-26 19:27   좋아요 0 | URL
레삭매냐님, 안녕하세요.
바갈라딘님이 진행했던 팟캐스트가 있다고 들었어요.
저는 팟캐스트 라는 걸 들어 본 적이 없어서,
당연히 바갈라딘의 팟캐스트도 들은 적이 없는데,
재미있었을 것 같아요.
바갈라딘님과 함께 진행했던 분도 아마 제가 아는 분이었던 것 같아요.

저도 이사할 때마다 책 처분하느라 정말 힘들었어요.
아까운 책들을 줄이는 것도 속상한 일이고,
줄이려고 줄이려고 해도 더는 줄일 책들이 없는 현실도 골치가 아프구요.
결국 남은 책들을 묶고 포장해서 옮기는 일도 힘들구요.

그렇다고 불까지 지르시다니!
무서운 분이시군요.

희선 2024-01-24 0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인이면서 다른 글도 쓰시는 장석주 님도 책 많다고 들은 듯해요 그러고 보니 이분은 출판사 하셨지요 이런 거 나중에 알았네요 바갈라딘이라고 하는군요 그 분 나온 라디오 방송 들었어요 지금은 여기에서 일 안 하시는군요 예전에 책이 많다고 들은 것 같아요 책만 두는 아파트라니... 멋지네요 책이 많으면 이사할 때 힘들겠습니다

이번주는 많이 춥네요 겨울이니 그렇다고 생각해야겠지만, 추위가 좀 길게 가겠네요 감은빛 님 감기 조심하세요


희선

감은빛 2024-01-26 19:30   좋아요 1 | URL
기본적으로 교수, 시인, 소설가 이런 사람들은 책이 많을 것 같아요.
예전에 조교 사무실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한 적 있었는데,
교수님 연구실 옮기는 일을 도우러 갔다가 정말 수많은 책들 정리하느라
엄청 힘들었거든요.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 직업은 책이 많은 것이 당연하겠지요.
저 바갈리딘님도 마찬가지겠구요.
제가 그 다음에 소개한 출판사 대표님도 마찬가지구요.

아, 물론 시인이나 소설가들 중에서는 책이 그렇게 많지 않은 분들도 계시겠지요.
제가 아는 시인들 중에서 책을 많이 사지 않고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시는 분도 계시더라구요.

cyrus 2024-01-24 06: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제 반가운 분이 제게 전화를 걸어왔어요. 예전에 알라딘에 활동했고, 책과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분이에요. 그분이 이사해야 해서 집에 있는 책들을 처분해야 한 대요. 그래서 시간 나면 자기 집에 와서 자기 책 몇 권 챙겨가래요. ㅎㅎㅎ 저도 집에 책이 많아서 책 보관할 공간이 없지만, 조만간 만나자고 했어요. 이사 준비하는 애서가분들 사연을 들어보면 남일 같지 않군요. ^^

감은빛 2024-01-26 19:32   좋아요 1 | URL
그러고보니 시루스님 댁에도 책이 엄청 많았죠!
여기 알라딘 이웃 분들은 다들 책 많으 사는 분들이시니.
시루스님, 얼른 그 분 만나서 좋은 책들 많이 얻어오세요.
그 책들 읽고 시루스님께서 남겨주실 좋은 글들 기대하겠습니다.

페크pek0501 2024-01-27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어 보지 않아 책을 몇 권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제 짐작으로는 천 몇 백 권쯤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것도 많아서 책장에 다 꽂지 못해 침실에 쌓아 놓은 책이 많아요.
그런데 언제나 뛰는 놈 위에 날으시는 분들이 있기 마련이라 책 때문에 집이 세 채인 분, 책 때문에 이사를 못가는 분, 아예 책을 두기 위한 집을 장만하기도 하는 분도 있으시니... 그래서 결론은 나 정도면 괜찮다는 것, 입니다. 후후후~~~

감은빛 2024-02-08 19:19   좋아요 0 | URL
페크님. 이 댓글 보고 답을 달아야지 생각하고 시간이 휙 지났네요.
벌써 달이 바뀌어 설 명절 직전입니다.

여기 알라딘 이웃 분들은 대개 책을 많이 갖고 계시니,
이 글에 공감을 많이 해주시네요.
저도 작은 방 가득 책이 쌓여있는데, 한 편으론 든든하고 한 편으로는 마음이 무겁네요. 이 양가감정은 쉽게 해결되지 않겠지요.

꼬마요정 2024-02-08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만권이라니... 놀랍습니다. 저도 집에 책이 넘쳐나서 이제 줄여야겠다고 하는데도 잘 안 주네요ㅠㅠ 책이 많으면 이사 가기 힘든 거 진짜 공감이에요. 저도 결혼할 때 제 책 배낭에 넣어서 들고 왔는데, 수십 번을 오르락내리락 했습니다. 아.... 진짜.... 제 물건 별로 없는데 책이..... ㅠㅠ 공간이 없어서 책을 못 사는 건 아쉽지만 다행이기도 하다는 말씀 공감이에요. 줄여야 하는데... 줄일 수 있겠죠?^^

감은빛 님 설 명절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세요^^

감은빛 2024-02-14 18:40   좋아요 0 | URL
꼬마요정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저는 지난 두 번 이사할 때, 모두 후배들 불러서 짜장면 사주면서 직접 짐을 다 옮겼어요. 그때 왔던 후배들이 책 때문에 엄청 투덜댔죠. 게다가 저는 아령, 역기, 실내철봉 등 무거운 운동기구들도 많이 갖고 있어서 그것 때문에도 많은 잔소리를 들었어요. 아마 속으로는 훨씬 더 심하게 욕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리고 나중에 짐 정리를 도와주러 온 다른 친구가 다시 또 책과 운동기구 때문에 폭풍 잔소리를 하고 갔어요. ㅠㅠ 이젠 이사가 너무 두렵습니다!

얄라알라 2024-02-08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번. 책 때문에 이사도 못 가신다는 출판사 공동대표님...거주지가 아파트는 아니시겠죠?
2만원을 분명히 넘을 책들이 아파트에 보관되면 무게가 엄청날 것 같아요...


명절 인사 드리러 왔다가, 후덜덜 놀라고 가네요^^

감은빛 2024-02-14 18:42   좋아요 1 | URL
다행히 그 대표님이 아주 오랫동안 살고 있는 집은 단독주택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1층이 아닌 2층이라서 혹시 무너지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얄라알라님.
먼저 인사하러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최근에 '인생 영화'가 뭐냐고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예전에는 가장 감명 깊게 본 책이나 영화 등에 대해 자주 생각하던 시기가 있어서 바로 답을 하기도 했었는데, 그런 질문을 엄청 오랜만에 들어서 바로 답을 못 했다.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뒤늦게 좀 생각해보니 몇 개의 영화가 떠올랐다.








처음 떠올린 영화들은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3색 시리즈인 [블루], [화이트], [레드]이다. 알라딘에서 DVD를 검색하니 19금 상품이라고, 별도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해당 상품 페이지에 접속이 가능하네. 이 세 작품 모두 포스트가 정말 예뻐서 예전에 90년대에는 이 영화 포스터들이 카페 같은 곳에 많이 걸려있기도 했었다. 이미지를 검색해서 가져와봐야지.




알라딘에서는 이미지를 삽입할 때 크기를 조정하는 기능이 없구나. 가져온 포스터들의 크기를 미리 줄여서 다시 넣었다.


어떤 계기로 이 영화들을 봤던 건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이 3색 시리즈를 소개하는 글을 읽었던 것 같다. 이 세 영화를 보고 딱 생각나는 것은 영상미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영상미를 잘 살려주는 아름다운 세 여주인공의 모습이다. [블루]의 줄리엣 비노쉬, [화이트]의 줄리 델피, [레드]의 이렌느 야곱까지. 당시 사춘기에서 이제 막 성인으로 넘어가는 시기의 나에게 이 세 배우의 미모는 여러모로 인상적일 수 밖에 없었다. 영화는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책받침 사진으로만 접했던 소피 마르소나 브룩 쉴즈 보다 직접 연기를 봤던 이 세 배우가 더 인상적이었다.


이 세 영화 중에서는 가장 마지막 작품인 [레드]가 더 기억에 남는다. 영화의 분위기나 내용도 그렇고, 작중에서 모델로 활동하는 여주인공의 모습도 그랬다. 이렌느 야곱의 그 모습에 반해서 같은 감독과 배우의 [베로니카의 이중생활]도 나중에 찾아서 봤다.


이 영화들을 본 지 거의 30년이 다 되어서 이제 세세한 부분들은 기억이 안 난다.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씩 찾아서 봐야겠다. 
















그 다음 생각나는 영화는 [라빠르망]이다. 생각해보면 이 영화 내용은 그리 재미있거나, 인상적이지 않는데, 긴 시간이 지나도 계속 기억에 남는 이유는 역시 여주인공이 모니카 벨루치이기 때문인 것일까? 음, 이렇게 보면 내게 인상 깊은 영화는 모두 여주인공이 아름다운 영화인 거 아닌가 싶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에는 결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지나고 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고, 아니 오히려 그런 선택이 더 현실적이고 합리적일 수 있겠다고 바뀌었다. 이 영화를 리메이크한 헐리우드 영화도 있다고 하던데. 결말이 다르다는 글을 어딘가에서 읽었던 것 같다.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한 장면을 고르자면, 어느 공원에서 모니카 벨루치가 뱅상 카셀을 기다리는 모습이다. 여성은 눈 덮힌 공원에서 남성을 기다리고 있는데, 남성이 거의 도착한 것을 알아차렸을 때, 반가워하며 맞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뒤 돌아서서 눈을 감는다. 그 장면이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었고, 나중에 내가 연인을 기다릴 때 한 번 똑같이 해봤다. 연인을 기다리는 설렘과 두근거림이 더 커지더라.


그 다음 영화는 인도 영화 [가지니]이다. 알라딘에는 아예 상품이 없다. 인도 영화는 정식 수입, 발매되는 경우가 적은 탓이리라.



영화의 내용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내용들의 짜깁기에 가깝다. 단기 기억 상실이라 5분 정도(?) 암튼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초기화 되는 내용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메멘토]에서 가져왔고, 재벌 회장인 남자 주인공이 가난한 여성을 만나 연애하는 이야기는 신델렐라 이후로 늘 이용되는 진부한 설정이다. 마지막에 주인공이 폭력조직을 찾아다니며 복수에 성공하는 이야기도 여느 액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이후에도 계속 기억하게 되는 건 이유가 있다. 일단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에 절묘하게 배치하여 액자 구성을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력이다. 아미르 칸의 과한 연기와 춤은 인도영화 특유의 방식이라, 인도영화를 즐기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아신 역시 마찬가지다. 정말 영화 속 칼파나 캐릭터 자체가 된 듯한 모습이다. 재미있는 건 이 영화가 두 번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2005년에 타밀어로 만들 당시에는 다른 남자 배우인 수리야 라는 사람과 찍었었다. 이걸 나중에 2008년에 힌디어로 다시 찍으면서 여배우는 아신을 그대로 두고, 남배우만 아미르 칸으로 바꿨다.


내가 타밀어 버전의 2005년 작을 보지 않아서 내용이 바뀌었는지 알 수 없으나, 아마 거의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타밀어 인구 보다는 힌디어 인구가 더 많을 거라는 추측에서 다시 찍은 이유는 짐작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남배우가 바뀐 것은 언어 때문일 수도 있고, 아미르 칸이라는 유명한 배우를 통해 훨씬 더 흥행에 유리하도록 한 것이겠지. 나중에 안 내용인데, 아신이라는 이 여배우 많은 언어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더라. 타밀어와 힌디어는 물론이고 텔루구어, 말레이어, 산스크리터어를 하고, 영어와 프랑스어를 잘 한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12월 말일에 남녀 주인공이 만나서 즐겁게 지내다가 헤어질 때, 남성이 여성에게 사귀자고 고백하는데, 여성이 생각해 보겟다고 답한다. 둘은 그렇게 헤어지고, 그 다음 날인 새해에 다시 만나 여성이 남성에게 답을 하는 장면이다. 여기에서부터 영화의 분위기가 확 바뀌어 본격적으로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나는 여성이 남성에게 답하는 그 내용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교제를 수락하면서 다만 결혼은 자신이 돈을 많이 벌어서 승합차(인도식으로 뭐라고 부르는 단어가 있던데, 우리 봉고차 보다는 좀 작은 차)를 3대 구매한 이후에 하겠다고 답한다. 여성은 남성이 대기업의 회장이란 것을 모르고 가난한 배우 지망생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남성이 마음만 먹으면 그 봉고차 3대가 아니라 3백대 아니 3천대도 바로 사 줄 것인데. 


이번에도 인도 영화를 하나 더 보자. [가지니]가 없어서 이 영화도 알라딘에 없을 줄 알았는데, 있네. 우리 말로 [때로는 행복, 때로는 슬픔]이고 원어로는 [까비 꾸씨 까비 감]이다. 인도에서 흔히 3대 칸으로 불리는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이 큰 남자 배우가 샤룩 칸, 아미르 칸, 살만 칸이다. 인도 영화를 쉽게 접하기 어려운 한국에 사는 내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내가 접할 수 있는 기준으로는 샤룩 칸이 가장 영화를 많이 찍고 또 그만큼 흥행도 크게 하는 것 같다. 아미르 칸이 그 다음이고, 살만 칸이 그 다음이 아닐까. 


샤룩 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영화는 인도 영화 중 가장 대표적인 가족 영화가 아닐까 싶다. 가족 간의 갈등과 청춘의 사랑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음, 이렇게 쓰고 보니 사실 이 영화보다 더 좋아해서 자주 보던 영화가 있었는데, 그걸 빠뜨렸네. 이번 영화도 알라딘에는 없다. 



[꾸츠 꾸츠 호타 해]라는 영화로 1998년에 나온 전형적인 인도 청춘 영화다.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90년대 인도 청년들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한번 엇갈렸다가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되는 이야기 구조도 재미있고, 대학 다니던 시절에 함께 어울려 다니는 그 모습들을 보는 것도 즐겁다. 늘 기억나는 모습은 [코이 밀 가야] 라는 제목의 노래를 부르며 흥겹게 춤추고 노는 장면이다. 인도 영화하면 곧바로 떠올리는 전형적인 장면이 바로 단체로 춤추고 노래 부르는 장면이겠지. 아마도 "누군가를 만났어."로 옮길 수 있는 이 노래의 제목은 국내 어느 SF 단편집의 제목으로도 쓰였다. 극 중 노래를 부를 때에는 "코이 밀리 가야"라고 부른다.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반복되는 이 가사 부분과 유치하고 웃기는 춤 동작들이 재밌다. 이 글을 쓰면서 유튜브에 찾아보니 그 옛날 내가 즐겨봤던 인도 영화의 춤추는 장면들을 대부분 다 찾을 수 있다. 음, 신세계를 발견한 기분이다. 한때 내가 인도 영화를 정말 즐겨 보기는 했었구나. 


이외에도 샤룩 칸이 나온 많은 영화들을 즐겨 봤었다. 911 테러 이후로 미국 사회에서 차별 받는 아랍인들의 삶을 그린 [내 이름은 칸]도 무척 인상적인 좋은 영화다. [Rab ne bana di jodi]는 우리말로 옮기면 "신이 맺어준 한 쌍" 정도 뜻이 될 것 같다. 아마 살면서 가장 많이 본 영화를 꼽으라고 한다면 이 영화를 바로 떠올릴 것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이 영화의 남녀는 생면부지의 상태에서 어떤 사건으로 인해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 남성은 여성을 데려와 자신이 살던 공간을 내어주고, 사용하지 않던 2층 공간을 쓴다. 두 사람은 식사를 할 때에만 얼굴을 보고, 서로 남처럼 살아간다. 여성은 남성에게 고마움을 느끼지만, 사랑을 느끼지는 못한다. 이 영화를 본 시기에 나는 애들 엄마와 사이가 무척 좋지 않았다. 아니 오랫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이 영화를 보던 시기가 이렇게 계속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다시 좀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그러나 내 생각과 달리 애들 엄마는 계속 냉랭한 태도를 취했고, 그런 모습 때문에 계속 이 영화를 반복해서 봤었다. 물론 이 영화가 가진 유치하지만 유쾌한 내용들 때문이기도 하다. 이 영화도 찾아보니 알라딘에는 없다.



아, 한 대여섯 영화 소개하려고 글을 시작했는데, 인도 영화만 벌써 몇 개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외에도 샤룩 칸의 영화 중 [옴 샨티 옴], [데브다스], [잡 탁 헤이 안], [딜왈레] , [해피 뉴 이어], [깔호나호] 등 제법 많이 봤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아미르 칸 영화도 좀 보자. 제일 유명한 영화는 아마 [세 얼간이]일 것 같다. 참 잘 만든 영화임에 틀림없다. 개인적으로 아미르 칸의 영화들은 샤룩 칸의 영화들 보다는 좀 더 깊이가 있고, 내용이 확실히 좋다.














[세 얼간이]처럼 [파나], [PK] 이런 영화들은 대중적인 재미와 함께 조금씩 생각할 꺼리들을 남긴다. [라가안]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한때 우리 아이들이 참 좋아했던 영화 [둠3]도 그렇다. [둠]과 [둠2] 와는 달리 3편에 아미르 칸이 나오면서 오락적인 재미도 더 커졌지만, 그 안에 삶에 대한 진정성 있는 의미를 남겼다. 나는 개인적으로 아이슈와라 라이 덕분에 [둠2]를 더 좋아하지만, 영화의 만듦새와 흥행 모두 3편이 훨씬 더 낫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언급할 영화는 바로 [당갈]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여성 레슬링 선수 이야기다. 실제 이야기와 얼마나 비슷한지는 알 수 없지만, 각색된 이야기의 재미 요소들도 좋고, 그 안에 담긴 끈끈한 삶의 모습들도 참 좋았다. 특히 이제는 늙었구나 싶은 아미르 칸의 연기도 정말 좋았다. 완고하고 보수적인 아버지의 모습과 딸의 훈련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치는 모습들. 이 영화를 아직 어린 둘째 아이와 같이 봤는데, 아이에게 아빠가 레슬링은 안 배워서 모르고, 태권도는 가르쳐 줄 수 있는데, 아빠랑 같이 훈련해볼까? 물었었다. 뭐 대답은 말할 것도 없이 싫다고 돌아왔다. 아빠는 말야, 몽골에서 일본 대학생들한테 태권도를 가르쳐 본 사람이야 라고 마치 이게 자랑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을 해봤지만, 아이는 무슨 이야기인지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자, 이제 드디어 마지막 영화다. 의도치 않게 인도 영화를 너무 많이 소개하느라 에너지를 다 써버렸다. 이 영화에 하고 싶은 말이 제일 많았는데, 과연 다 펼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



2014년에 개봉한 [I Origins] 라는 영화다. 영화를 시작할 때 저 포스터에 나온 것처럼 사람의 눈동자를 클로즈업해서 화면 가득 찬 모습을 보여준다. 이어서 많은 사람들의 눈동자를 연속으로 보여준다. 사람의 눈이 저렇구나. 눈동자를 확대해서 보면 저렇게 예쁘구나. 하고 느낀다. 물론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고, 약간의 시각 효과를 통해 더 예뻐 보이도록 조정했겠지만.


남자 주인공은 사람의 눈동자를 연구해 어떤 것을 밝히려는 연구자다. 그는 우연히 거대한 광고판에 담긴 얼굴 사진에서 여자 주인공의 눈동자를 보고, 나중에 이 여성을 우연히 만나 사랑하게 되는 내용이다.


이 영화에는 중간에, 아니 중간보다 좀 더 앞 쪽이던가. 암튼 정말 깜짝 놀랄 큰 사건이 배치되어 있다. 너무 놀라운 일이라서 좀처럼 진정이 안 되고, 이거 지금 이런 전개로 가서 나중엔 뭘 어쩌라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 봤을 때에는 이 장면의 충격이 너무 커서 뒤쪽 내용에 잘 집중을 할 수 없었다. 내 기준에서 이 영화는 그냥 거기서 끝난 것 같았다. 이게 이 영화의 최대 단점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봤을 때에도 여전히 충격은 컸지만, 이제 드디어 영화 뒤쪽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겠더라. 그리고 좀 많이 억지스러운, 그래서 이거 보여주려고 그렇게 일찍 그렇게 충격적인 장면을 넣었나 싶은 결말로 이어진다.


그러니까 사실 이 영화는 아주 훌륭하거나 뛰어난 영화라서 내게 가장 인상적인 영화가 아니라, 중간에 등장하는 그 충격적인 정면이 너무나 강해서 도저히 잊을 수 없어서 인상적인 영화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비록 영화의 길이에 비해 너무 짧긴 하지만, 남녀 주인공이 우여곡절 끝에 만나 사랑하게 되는 장면은 그럭저럭 재미있다. 시작할 때 눈동자 장면의 강렬한 인상과 여주인공의 아름다운 눈과 외모가 한껏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 높았다가 중간에 완전히 박살 내버리는 그런 영화다.


이 영화를 쉬 잊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주제곡이다. The Do(자판에 없는 단어라, 적을 수 없는데, 저 o 가 그냥 o 가 아니라 스플래쉬 오 인가 뭐 그렇다.) 라는 밴드의 [Dust it off] 라는 노래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기묘한 느낌에 빠지도록 만드는 이 노래를 좋아하게 되었다. 이후 시간이 많이 지났어도 늘 내 플레이리스트에 들어가는 곡이다. 



그래서 이 중에서 '인생 영화'가 뭐냐고? 모르겠다. 하나만 정하라고 하면 정할 수가 없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자꾸만 다른 영화들이 또 떠오른다. 어, 이 중에 한국 영화가 하나도 없네. 한국 영화로 한정하면 뭐가 있을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타짜]와 [도둑들]이다. 둘 다 최동훈 감독 영화네. 이번에 [외계+인] 1부는 완전 망했던데, 2부는 아직 안 봐서 모르겠지만.


진짜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영화가 2개 더 있다. [아바웃 타임]과 [이터널 선샤인]이다. 이 둘에 대해서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써야겠다. 아, [비포 선셋]을 보기 전이었다면 [비포 썬라이즈]를 꼽았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비포 선셋]을 보고 말았다. 그리고 [비포 미드나잇]은 고민 끝에 보지 않았다. 이렇게 쓰고 보니 궁금하긴 하네. 음, 나 도대체 몇 편의 영화를 언급한 거지? 일단 오늘은 이만하고, 나중에 시간 날 때 세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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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1-15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인도 영화 진짜 많이 보셨네요. 저는 언급하신 인도영화는 본 게 없어여 ㅋㅋㅋㅋㅋ

감은빛 2024-01-23 19:00   좋아요 0 | URL
한 때 인도영화에 푹 빠져 지냈어요.
저에게 인도영화의 재미를 알려준 선배 활동가가 계셨는데,
같이 일했던 단체를 그만둔 후에 연락이 끊겨서
오랫동안 소식도 모르고 있었다가
나중에 아주 나중에 그 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어요.
그 소식을 딱 듣는 순간, 그 분의 그 선한 웃음을 머금은 얼굴이 떠올랐고,
뒤이어 몇몇 인도영화 장면이 떠오르더라구요.

잉크냄새 2024-01-16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지니>는 2008년 인도 여행을 할때 바라나시에 있던 극장에서 본 영화네요. 허름한 로컬 극장에서 뜬금없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인도식 마샬라 무비에 놀라고 액션 장면마다 의자 위로 올라서 박수를 치며 열광하던 인도 관객에게 놀라고 3시간이 넘는 긴 상영 시간에 놀란 기억이 나네요.

카스트 제도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극장좌석이 3단계로 나뉘어져 있었죠. 예를 들면 다이아,골드,실버 정도...전 골드 정도에서 영화를 봤는데 영화에 대한 반응이 극심한 차이를 보이더군요. 근엄한 다이아, 어중간한 골드, 신나서 난리난 실버...실버표를 끊지 않은 것이 아쉬웠었죠.

감은빛 2024-01-23 19:03   좋아요 0 | URL
와! [가지니]를 인도에서 보셨군요!!
인도 극장이 말씀하신 그런 분위기라는 걸
제게 처음 인도영화의 재미를 알려주신 분이 말씀해주셨었어요.
비록 저는 한번도 인도에 가 본 적이 없어서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그 분이 왜 인도영화를 좋아하는지 막 설명하는 걸 듣고 나니,
저도 인도영화가 막 좋아지더라구요.

잉크냄새님, 말씀 남겨주셔서 무척 고맙습니다!

얄라알라 2024-02-08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I Origin] 영화 자체도 충격이었지만, 남주의 신선한(??) 외모에 놀라서 남주 온라인 스토킹했던 기억이 나네요. 영화 ˝한니발˝에서는 안 신선한 역할로 나왔지만요.

의외로 올려주신 작품 중 아는 게 없어서 감은빛님의 영화 취향을 더 알아보고 싶다는 궁금증이 ㅎ

감은빛 2024-02-14 18:34   좋아요 1 | URL
얄라알라님. 정말 I Oringins 영화는 너무 충격이었어요.
딱 그 정만까지 앞 부분은 참 재미있게 좋게 봤었는데요. ㅠㅠ
[한니발]은 안 봤는데, 얄라알라님께서 언급하셨으니 한번 봐야겠네요.

안그래도 이 글을 쓰고 나니 다른 영화 이야기들을 더 하고 싶어졌어요.
영화나 드라마 관련 글을 좀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중입니다.
시간이 나는대로 하나씩 써볼게요.

꼬마요정 2024-02-08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인도 영화 본 게 <카쉬미르의 소녀>, <나는 파리다>, <바후발리>, <주바안> 정도 본 것 같아요. <세 얼간이>이랑 <당갈> 유명하기도 하고 감은빛 님이 추천하시니 보고 싶네요.

저도 <이터널 선샤인> 너무 재밌게 봤어요^^

감은빛 2024-02-14 18:36   좋아요 1 | URL
꼬마요정님. 말씀하신 인도영화들 중에는 [바후발리] 밖에 본 게 없네요.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인도영화를 접할 기회가 너무 적어서 아쉬워요.
다음에 [이터널 선샤인]을 비롯해 다른 영화들 이야기도 좀 해보려고 해요.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
 

용의 실체는 공룡 혹은 고래


눈을 뜨자마자 습관처럼 태블릿을 켜고 유튜브에 접속해서 뉴스 영상 하나를 찾아서 재생시키고 일어나 물을 마시고 화장실을 다녀왔다. 밤 사이 사건 소식을 전하는 내용이었는데, 중부고속도로 어딘가에서 얼어 있는 노면 때문에 연쇄 추돌 사고가 일어났다고 했다. 짧은 뉴스가 끝나고 나니, 갑자기 최재천 교수님의 영상이 자동 재생으로 이어 나왔다. 올해가 용띠 해라고 용의 실체에 대해 교수님께서 자신의 의견을 펼치는 내용이었다. 과거 미국 모 대학에 계실 때, 학술 교류 행사 같은 곳에서 어느 타 대학 교수님이 전 세계 많은 나라의 용의 모습을 비교해 설명하면서 서양 용은 날개가 있는 도마뱀 형태에 가깝고, 동양 용은 날개가 없고 뱀의 형태에 가깝다는 내용 등을 발표했다고 했다. 재미있는 것은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 다 용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는 것, 구체적인 내용들은 조금씩 다 다르다는 점이다. 이어 최재천 교수님은 자신은 용이 무엇인지 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교수님이 말씀하신 답은 공룡의 뼈나 고래의 뼈였을 것이라는 추정이었다. 전세계 대부분의 나라에 용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면 분명 무엇인가를 보긴 봤다는 것인데, 우리는 용이라는 동물이 현재 존재하지 않으며, 그 형태가 존재하기 어려운 상상의 산물이라는 것도 안다고 했다. 호모 사피엔스가 살면서 전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공룡 뼈들을 보았을 것이고, 해안가에서는 고래 뼈를 보았을 것인데, 그 거대한 뼈를 보며 상상한 동물의 형태가 용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라고 말씀하셨다.


믿음과 의심, 신뢰와 불신


어떤 단어들을 나란히 나열하는 류의 제목을 좋아한다. 가만 생각해보니 이건 제인 오스틴 소설들을 좋아하게 된 이후로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만과 편견]은 평생 가장 많이 다시 읽은 소설이고, [이성과 감성] 역시 두세번 읽었다. 대립하는 혹은 반대되는 혹은 유사한 단어를 병렬로 두는 것을 제목으로 삼는 것이 재미있다고 느끼고 그렇게 제목을 정하는 것을 종하하는 성향은 분명 저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작년 연말, 아마도 한 달쯤 지난 일인 것 같다. 밤 늦게까지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크게 의견 다툼이 일어났다. 매일 뉴스에 오르내리는 유명 정치인에 대한 내용이었다. 나는 평소 정치인 이야기를 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관심도 두지 않으려고 하지만, 알고 싶지 않아도 뉴스를 볼 때마다 자꾸 알려주니 어쩔 수 없이 소식은 듣고 있지만, 그냥 흘려 듣는 편이다. 평소라면 다른 사람들이 그 정치인 이야기를 떠들어 대는 걸 그냥 흘려 들었겠지만, 그날은 내가 언성을 높여가며 대화에 끼어든 이유가 있었다. 그 자리에 있던, 내가 참 좋아하는 후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 물론 그 자리에 있던 선배와 후배들 모두 내가 참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암튼 나를 제외한 세 명이 해당 정치인에 대해 불신하는 주장과 신뢰하는 주장으로 나뉘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나는 이런 류의 대화에 끼어드는 것 자체가 불쾌하기 때문에 딴 생각을 하면서 그냥 앉아 있었는데, 도무지 이 대화가 끝나지 않을 것처럼 계속 같은 주장이 반복되고, 양측은 도저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국물을 뜨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양측을 잠시 진정시킨 다음, 일단 흥분하지 말고 차근차근 대화를 해보자고 말을 시작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어떤 것이든 곧바로 믿지 않았다. 교과서에 나온 내용도, 선생님의 설명도, 뉴스나 신문에 나오는 소식도. 뭐든 정말 실제로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무엇이든 의심부터 하고 보는 성향으로 자란 것은 어렸을 때 읽었던 위인 전기 내용들 탓이 크다. 어렸을 때 나는 방학 때마다 외갓집에서 며칠씩 시간을 보냈었다. 같이 놀 또래도 없고, 마땅한 장난감도 없던 그 곳에서 나는 외삼촌들의 책장에서 이것저것 책들을 꺼내 읽으며 시간을 보냈는데, 그 책장에는 엄청나게 크고 두꺼운 백과사전과 인명사전이 있었다. 나는 인명사전을 읽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 사전에는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사람들에 대한 기록들이 정리되어 있었는데, 중요한 인물들은 그 분량이 몇 쪽에 달하기도 했고,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거나, 별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인물들은 매우 적은 겨우 몇 줄 정도의 설명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설명들 중에는 간혹 대립되는 주장들이거나, 전혀 다른 행적에 대한 설명들이 같이 담겨있기도 했다.


나는 그런 내용들을 유심히 읽으며 생각했던 것이다. 역사라는 것은 기록이다. 그 기록을 남긴 사람이 골라서 남긴 것이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기술했다고 해도 그 취사선택 과정에서 그 사람의 생각이나 취향이 반영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기록을 남긴 사람이 많으면 더 다양한 시각에서 어떤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내용들을 볼 수 있겠지만, 불행히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과연 그 사람이 그 당시에 실제로 어떻게 했는지를 지금의 우리는 알 수 없다. 흔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도 한다.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과거부터 일본 땅이었다고 끊임없이 우기는 그 기록들만 나중에 아주 먼 나중에 남게 된다면, 그 먼 훗날의 사람들은 독도가 처음부터 일본 땅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될 확률은 지극히 낮고 거의 일어날 수 없겠지만, 가정한다면 그렇다는 얘기다.


달리 얘기해볼까? 이승만 이라는 사람은 어떤가? 일제시대 당시부터 그가 독립운동에는 거의 기여하지 않고, 자신의 사리사욕만 채우는 사람이었다는 기록들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그는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고, 이후에는 부정선거를 지시하며 독재를 이어갔다. 그런데 일각에서 그를 대한민국의 국부로, 훌륭한 독립운동가로 칭송하는 사람들도 있다. 최근에 모 정당의 비대위원이 언급했다는 김구 선생은 어떤가? 이승만과 달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굳건히 지켜오며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되었던 선생을 레지스탕스나 범죄자로 취급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열거하면 끝도 없을 것이다.


내가 작년 연말 늦은 밤에 지인들에게 얘기한 것도 비슷한 취지였다. 우리는 정말 역사적 사실들만 제대로 모르면서 알고 있다고 착각할까? 지금 현재 일어나는 많은 사건들 역시 그 전말이 드러나지 않은 채 묻히는 일이 대부분이다. 누군가가 어떤 정치인들, 법조인들에게 뇌물을 주거나 성상납을 했다고 하는데, 그런 일들이 제대로, 낱낱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지는 경우를 보았던가? 일부러 밝히지 않았던, 고의로 묻어버렸던 어떤 일들은 그렇게 묻혀지기도 하는 법이다.


90년대 중반에 나는 경기도 화성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그때 화성 부녀자 연쇄 살인사건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봉준호 감독이 [살인의 추억]을 만들어서 개봉했던 2003년에 이 사건은 영구미제 사건이었다. 2019년에 이 사건의 진범이 이미 범죄를 저지르고 복역 중이었던 이춘재라는 인간이라는 것이 밝혀지기 전까지 이춘재를 제외한 어느 누구도 그 이어지는 연쇄 살인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벌어진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도 이춘재가 모든 것을 명확하게 다 밝혔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그가 말하지 않은 또 다른 범죄가 있을 수 있고, 반대로 정말로 그가 저지르지 않은 범죄를 자기 짓이라고 말했을 수도 있다. 비슷한 시기에 연쇄 살인을 저지르고 다녔던 두 사람의 사례 중에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유영철은 정남규가 저지른 살인을 자신이 한 짓이라고 했고, 언론에서 그것을 접한 정남규는 화가 났다고 나중에 밝혔다.


우리는 여전히 91년 3월 26일 대구에서 실종된 5명의 국민학생들(개구리 소년)이 어떻게 사망했는지 알지 못한다. 수많은 실종자들, 살인을 비롯한 각종 범죄의 피해자들 중 여전히 누가 어떻게 범죄를 저지렀는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 최근 뉴스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흔히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의 경우도 이제는 그 진실을 밝히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당시 검사와 검찰 수사관이 어이없는 불법 수사로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딸과 글을 읽지 못하는 아비를 가스라이팅하고, 윽박지르고, 속여서 살인죄를 덮어 씌웠음이 이제 겨우 밝혀졌을 뿐이다. 이들이 이후 재심을 통해 무죄로 밝혀지고, 그 억울함을 널리 알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정작 그 살인사건의 진범을 잡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천안함 사건의 정확한 진실을 알지 못하고, 세월호 사건의 진실 또한 알지 못한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바로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그것이 정말로 진실이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는 누구나 각자의 기준에서 자신만의 취향이나 성향이 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나는 어떤 특정한 정당과 그 정당의 인물들을 무척 싫어한다. 나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문제에 대해서 나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내 주장은 내 편견과 감정에 치우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작년 연말의 그 순간으로 돌아가서 좀 더 다양한 각도에서, 좀 더 넓은 시각에서 세상을 보면 좋겠다는 취지의 내 발언을 그 사람들은 다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는 알겠다고 하면서도 결국은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는 않았다. 그래. 사람은 그런 법이다. 우리는 누구나 남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남이 되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남들이 어떤지 알 수 없다. 아니, 남들을 언행을 보고 듣고 느끼며 표면적을 어떤지 짐작할 수는 있지만, 정확히 남들이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하고 말하는지 알 수 없다. 어느 누구라도 마찬가지이고,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용띠해


올해는 용띠해라고 한다. 틀린 말이다. 아니, '아직은' 틀린 말이라고 정정하자. 오늘이 양력으로는 1월 10일이지만, 음력으로는 11월 29일이다. 설날이 되기 전까지 음력으로는 아직 해가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12간지에 따라 띠를 붙인 건 음력이 기준이다. 많은 사람들이 양력 1월 1일부터 만나는 사람들마다, 전화 통화하는 사람들마다, 연락하는 사람들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새해 인사를 건네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런 인사를 듣고 "아직은 설이 되지 않았으니, 새해 인사는 그때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1월 1일을 '가짜 설' 혹은 '까치 설' 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신정과 구정이라고 구분하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이 방식은 좀 받아들이기 어렵다. 설은 그냥 설인 것이고, 1월 1일은 그냥 양력으로 해가 바뀐 날이다. 내 기준에서는 본질적으로는 다른 개념을 같은 층위에 놓고 엮었다는 생각이 드는 구분이다.


얼마 전에 작은 아이가 내게 물었다. 아빠는 그럼 태어난 지 몇 년 지난거야? 올해가 용띠해이고, 아빠도 용띠잖아. 이렇게 물었다. 아, 생각해보니 그러네. 그럼 12년씩 더해보면 되는데. 음. 벌써 그렇게 되었군.


저 앞에 소개한 최재천 교수님 영상에서 교수님이 재미있는 말을 했다. 12간지 중에 오직 용띠만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동물이라고 말한 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용띠들이 유난히 건방지다고 말씀하셨다. 물론 농당으로 하신 말씀이라는 건 당연히 알지만, 살면서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바로 한 해 선배인 토끼띠들에게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 이건 일종의 띠에 대한 컴플렉스인 걸까? 농담이다.


어떤 편견에 사로잡히지 말자고, 어디 한 쪽으로 치우치지 말자고 자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일개 하찮은 인간에 불과하다. 늘 실수하는 나 같은 인간이 어찌 그렇게 훌륭한 태도로 살 수 있겠나? 그냥 살아야지 뭐. 그냥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버겁고 힘든 삶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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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1-11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죽을 때까지도 모를 진실이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당시엔 진실을 안다고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거죠. 저는 제 마음도 잘못 알고 착각할 때가 있는 걸요. 진실은 너무 멀리 있다고 자주 생각합니다.^^

감은빛 2024-01-15 18:01   좋아요 0 | URL
페크님,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렇더라구요. 가끔 자신의 마음이나 생각도 착각하기도 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