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12월 10일은 세계인권선언 채택 70주년이었다. 조금 시간이 지났지만, 이번 페이퍼에서는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을 맞아 인권(人權, Human Rights)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유엔인권위원회는 인류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인권의 표현을 찾기 위하여 유네스코(UNESCO)에 인권에 관해 전세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견해를 조사해줄 것을 의뢰하였다. 이 요청을 받은 유네스코는 가맹국들의 사상가와 문필가들에게 설문을 돌려 각자의 종교적, 문화적, 지성적 배경에서 도출된 특유한 인권관을 조사하였다... 인권위원회는 선언문 기초 작업에 착수할 때부터 원칙을 세워 보편적 인권이 18세기 유럽 계몽주의에서 기원한 서구의 발명품이라는 가정을 거부하였다. 그 대신 위원들은 계몽주의 인권 사상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던 공동선에 대한 어떤 보편적 관념을 확인하기 위해 전세계의 위대한 종교, 문화 전통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이러한 오랜 토론의 결과가 1948년 12월 10일, 인류 역사 속에서 발전해온 세속적, 종교적 인권개념을 집대성한 최고의 인권문헌인 '세계인권선언'의 채택으로 이어졌다.(p56) <세계인권사상사> 中


  미셀린 이샤이(Micheline Ishay)가 저술한 <세계인권사상사>는 이러한 배경 아래에서 만들어진 세계인권선언에 담긴 세계 여러 문명권과 다양한 종교의 영향을 비교, 제시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짧은 페이퍼에 담기에는 무리가 있으니 과감히 생략하고, 세계인권선언에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살펴보자.


 <세계인권선언>의 주요 성안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카생(Rene Cassin)은 <세계인권선언>을 사원 입구의 주랑으로 이루어진 현관에 비유하여 인권의 중심 사상을 선언했다. 카생은 <세계인권선언>이 프랑스 혁명 당시에 외쳤던 구호처럼 "존엄성, 자유, 평등, 박애"의 네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세계인권선언>의 전체 30개 조항 중 27개 조항이 4개의 기둥으로 각각 나뉘어 있으며, 이들 4개 기둥이 모여 주랑 현관의  천장에 해당하는 28~ 30조를 함께 떠받치고 있다.(p36) <세계인권사상사> 中


  비록, 유엔인권위원회가 서구 중심중의에서 탈피해서 세계인권선언서를 작성하려고 노력했다지만, 카생의 설명을 듣자면 세계인권선언이 유럽 중심주의라는 형식적인 틀까지 깨뜨리지는 못한 듯하다. 유럽 건축 양식을 빌려 카생이 설명한 유엔인권선언의 세부 구조는 다음과 같다.  


[사진] 주랑 현관(출처 : 위키백과)


 첫째 기둥은 인권의 일반 원칙과 개인의 자유를 의미하며 전문과 제1~11조가 이에 해당한다. 둘째 기둥은 개인과 개인이 속한 사회집단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권리를 의미하며 제12~17조가 이에 해당한다. 셋째 기둥은 시민적 자유와 정치적 권리를 의미하며 제18~21조가 이에 해당한다. 넷째 기둥은 사회적, 경제적 영역의 권리를 의미하며 제22~27조가 이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천장은 인권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국제적 질서 그리고 권리들을 서로 조화시키기 위한 원칙을 의미하며 제28~30조가 이에 해당한다.(p37) <세계인권사상사> 中


 위와 같이 개인과 집단 사이의 권리와 이들을 조화시킬 수 있는 질서를 규정한 세계인권선언이지만, 우리 현실 속에서 유엔인권선언이 잘 지켜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어떤 부분에 있어서 우리의 권리가 침해되고 있는가? 세계인권선언의 대상을 개인으로 한정해 살펴본다면, 세계인권선언의 내용을 경제민주주의와 정치적 평등으로 크게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 문제를 바라보는 로버트 달(Robert Dahl, 1915 ~ 2014)의 입장은 다분히 비판적이다. 


 단순하게 요약해 보자면, 한 입장에서는 미국이 세계 최초로 민주주의, 정치적 평등 그리고 정치적 기본권을 성취함으로써 미국인들의 이상은 실현된다. 두 번째 관점에서는 재산권을 보호받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고 부유해질 기회를 보장받음으로써 미국인들의 이상은 실현된다.(p172)... 이와 같은 상호 대립적인 이상들 가운데 어떤 쪽을 선택해야 할 지를 두고 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미국인들은 생각을 달리하고 있다.(p173) <경제 민주주의에 관하여> 中


 모든 국가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완전한 정치적 평등이란 미국 시민이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직은 아니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경쟁적 소비주의 문화에 내재한 공허함을 자각하는 동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민권의 문화가 가져오는 보상과 도전의식의 가치를 깨닫게 될 때, 그들은 미국을 저 멀리 잘 잡히지 않는 목표에 훨씬 더 근접할 수 있도록 만들기 시작할 것이다.(p133) <정치적 평등에 관하여> 中


  로버트 달에 따르면 기존의 재산권, 경제적 불평등, 법인 기업의 비민주적인 권위가 지향하는 경제발전이 민주주의와 정치적 평등 그리고 정치적 권리보다 우선하기 때문에 현재 우리의 권리는 침해받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재산권보다 인권을 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식의 확산만이 경제 민주화와 정치 평등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길임을 그는 지적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개별 리뷰에서 상세히 살펴보도록 하고, 그렇다면 이번에는 현상황 아래에서 우리는 어떤 길을 가야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볼 차례다. 이에 대해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 쿠미 나이두(Kumi Naidoo)의 말을 옮겨본다.

 

 인권선언문은 시민적,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권리를 구별하지 않았다. 먹을 것에 대한 권리를 보장할 필요성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필요성을 구분짓지 않았다. 현실에서는 그 둘 사이가 본질적으로 연결돼 있음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그 후 수십 년간, 각국 정부들은 그 두 종류의 권리 사이에 구별을 만들었고 그로 인해 그 권리들이 인식되고 보호되는 데 있어서 불균형이 생겨났다.(p4)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8년 12월호 : 유엔인권선언 70주년에 부쳐 > 中


 인권운동에 있어서 우리는 표현하고 시위할 수 있는 권리를 계속해서 주장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정부가 시행하는 경제, 금융 정책과 그것이 인권에 미치는 영향을 연결 지어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동료조직들과 협력해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정부에 묻고 부패와 불법자금의 흐름과 취약한 국제적인 조세구조를 밝혀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서로 손을 잡고 친구, 동료들과 연합을 구성해야만 가능한 거대한 일이다. 인권운동가, 변호사, 노동조합, 사회운동가, 경제학자, 종교지도자 등 여러 조직에 걸친 협력이 필요하다.(p5)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8년 12월호 : 유엔인권선언 70주년에 부쳐> 中


  쿠미 나이두의 제언을 듣다보면, 자연스럽게 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 ~1883)의 <공산당 선언>의 유명한 구절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Workers of the world, unite!'를 연상하게 된다. 또한, 연대와 단결의 근간이 타인에 대한 공감임을 생각해본다면, 아담 스미스가 <도덕감정론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에서 강조한 '동감(同感, sympathy)' 문제도 피할 수 없을 듯하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는 지난 250여년 동안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안고 살아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유엔인권선언 70주년을 맞아 '인권'에 대해 미처 정리되지 않은 여러 질문을 던져본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것은 다음 독서 여정이 될 것임을 확인하면서 이번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4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와같다면 2018-12-22 17: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분노. 차별. 경멸이 가득한 세상
연대한 우리가 어떻게 사회를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지..
요즘 참 생각이 많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12-22 19:19   좋아요 2 | URL
비록 지금 많이 혼란스럽지만, 이러한 혼란도 일종의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2018-12-22 2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22 2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23 1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23 2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