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1. 2시 공연으로 <뮤지컬 니진스키>를 봤다. 몇 년 전 니진스키 영혼의 절규를 어렵게 진빠지게 읽었던 터라 그 이름만은 잊지 않고 있었다. 친구 역시 나에게서 선물받은 이 책 때문이었을까 이 공연 광고를 보자마자 예매를 해두고는 함께 가자고 하여 주말 첫 공연을 보게된 거다. 대학로에 있는 아트원시어터 공연장은 다른 소극장들에 비해 규모가 좀 있어 보였다. 지하 공연장으로 가서 앉았는데 만석은 아니고 드문드문 빈자리들이 눈에 띄었다. 역시 뮤지컬은 여자들의 취미인가 싶게 이날 공연을 보러온 남자는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적었다. 무대는 뮤지컬 무대치고는 다소 소박해 보였다. 시작 되고 105분을 쉬는 시간 없이 공연이 이어졌다.

 

뮤지컬에는 총 5명의 인물이 나온다. 니진스키, 디아길레프, 스트라빈스키, 로몰라. 그리고 니진스키의 또다른 분신 역할과 기자 역할을 동시에 했던 한스까지. 단출한 출연진 때문인지 니진스키의 일대기가 매우 압축되어 있다. 러시아 발레단에서 춤추던 니진스키를 눈여겨본 공연기획자 디아길레프는 니진스키를 더 큰 무대인 프랑스로 데려온다. 디아길레프가 만든 발레뤼스에서 니진스키는 스트라빈스키라는 음악가와 협업한 작품인 <페트루슈카>에 출연하여 대성공을 거둔다. 그리고 그곳에서 로몰라라는 헝가리 귀족 아가씨를 만났다. 상업적인 성공에 관심이 많은 디아길레프와 새로움을 추구하던 니진스키는 마찰을 빚게 된다. 무용가로서는 영원히 자신의 이름을 남길 수 없다고 생각한 니진스키는 자신이 직접 안무를 한 작품을 만들기를 원하고 디아길레프도 안무가로서의 니진스키를 지지해주었건만 니진스키가 안무한 작품인 <봄의 제전>은 사람들에게 외면 받는다. 이 일로 두 사람은 멀어지고 니진스키는 자신을 이해해주는 로몰라와 결혼을 한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무용단을 창단하려던 것이 무산되고 자신이 안무한 작품들이 외면 받는 등의 이유로 니진스키는 정신질환으로 병원에서 요양을 하게 된다. <뮤지컬 니진스키>의 내용은 니진스키의 삶을 이 정도로만 압축하여 보여준다. 파란만장했던 니진스키의 일대기가 너무 평면적이어서 니진스키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냥 한 편의 드라마로 볼 수도 있겠으나 좀 더 자세하게 니진스키의 삶을 아는 사람이 보면 공연이 니진스키의 삶을 너무 단적으로 보여주고, 어쨌든 공연을 위해 디테일한 부분을 쳐내다보니 사실과도 어긋나는 내용이 있어 몰입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무대는, 조형물을 움직이는 변형 없이 조명을 달리하고 배경에 영상을 띄워서 그때그때 화면 전환을 하여 화려한 맛은 없다. 그리고 음악이 좀 많이 아쉽다. 그래도 끝나고 나면 기억에 남는 음악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이번 경우에는 모든 음악들이 내용 전달을 위해 만들어져서일까 인상적으로 남는 음악이 전무하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배우들의 노래실력이 좋아서 음악의 아쉬움을 좀 달래주는 정도. 그렇다고 춤의 신 니진스키의 일대기를 그린 뮤지컬이라 하여 제법 그럴듯한 발레를 볼 수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무대, 음악, 춤 모두가 뭔가 조금씩 부족하여 전체적으로는 인상에 잘 남지 않는 공연이랄까. 아무튼 나는 그렇게 봤다.  오히려 뮤지컬을 보고나서 나중에 정식으로 발레공연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뮤지컬 니진스키> 공연을 기념하기 위해 가져갔던 <니진스키 영혼의 절규>를 집에 와서 잠시 펼쳐보았다. 공연에 나왔던 인물들의 사진들을 다시 보고 띄엄띄엄 니진스키의 일기를 읽었다. 여기에는 니진스키가 디아길레프에게 쓴 편지를 옮겨본다. 편지의 내용만 보도라도 니진스키에게 디아길레프가 어떤 존재인지를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고....

 

편지 8

세르게이 디아길레프에게

 

사람에게

 

나는 당신을 이름으로 부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당신의 이름으로 불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성급하게 쓰고 있지 않습니다. 당신이 나를 신경과민이라 생각하는 걸 원치 않으니까요. 나는 과민한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침착하게 쓸 수 있습니다. 나는 쓰는 걸 좋아합니다. 나는 세련된 문장을 쓰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세련된 문장을 쓰는 걸 결코 배우지 않았답니다. 나는 사상을 기술하고 싶은 겁니다. 내겐 사상이 필요합니다. 나는 당신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나를 미워한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을 한 인간으로서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과 함께 일하고 싶지 않습니다. 한 가지 사실을 당신에게 말하고 싶군요. 나는 많은 일을 한다는 것을. 나는 죽지 않았습니다. 나는 살아 있습니다. 내 속에는 신이 살고 있습니다. 나는 신 안에 살고요. 신은 나의 속에서 삽니다. 나는 춤에 관한 작업으로 매우 바쁩니다. 나의 춤은 진보하고 있습니다. 나는 잘 쓰긴 하지만 어떻게 세련된 문장을 써야 할지는 모릅니다. 당신은 세련된 문장을 좋아하지요. 당신은 공연단을 조직합니다. 나는 공연단을 조직하지 않습니다. 나는 시체가 아닙니다. 나는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죽은 사람입니다. 당신의 목표가 죽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당신을 친구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나의 적임을 알기 때문이지요. 나는 당신의 적이 아닙니다. 적은 신이 아니니까요. 신은 적이 아니고요. 적들은 죽음을 추구합니다. 나는 삶을 추구합니다. 나는 사랑을 지니고 있습니다. 당신은 악의를 지녔구요. 나는 포식동물이 아닙니다. 당신은 포식동물입니다. 포식동물은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사람들을 좋아했지요. 나는 백치가 아닙니다. 나는 인간입니다. 나는 백치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백치입니다. 당신은 나를 어리석다고 생각했지요. 나는 당신을 어리석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어리석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나는 타락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타락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당신에게 굴종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요. 나는 나에게 굴종하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당신은 굴종하는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붓지요. 나는 굴종하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나는 타락을 불러냅니다. 당신은 타락을 두려워합니다. 나의 타락은 한갓 타락입니다. 나는 당신의 미소를 원치 않습니다. 그건 죽음의 냄새를 풍기니까요. 나는 죽음이 아닙니다. 나는 미소하지 않습니다. 나는 웃기 위해 쓰지 않습니다. 나는 울기 위해서 씁니다. 나는 감정과 이성을 지닌 사람입니다. 당신은 지성은 지녔으나 감정이 없는 인간입니다. 당신의 감정은 사악합니다. 나의 감정은 선합니다. 당신은 나를 파멸시키고 싶지요. 나는 당신을 구제하고 싶습니다. 나는 당신을 좋아합니다. 당신은 나를 싫어하지요. 나는 당신의 안녕을 바랍니다. 당신은 내가 불행하기를 바랍니다. 나는 신경과민을 가장했더랬습니다. 나는 어리석은 척했었지요. 나는 어린애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신이었습니다. 나는 당신 안에 있는 신입니다. 당신은 짐승이지만 나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이제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제 사람들을 누구나 다 사랑합니다. 내가 듣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는 당신의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항상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나는 나 자신의 것입니다. 당신은 나의 것입니다. 나는 타락하는 당신을 좋아합니다. 나는 타락하는 나 자신을 좋아합니다.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나는 나 자신의 것입니다.

 

당신은 나의 것, 나는 신.

당신은 신의 존재를 잊었습니다.

나는 신의 존재를 잊었습니다.

당신은 나의 속에 있고 나는 당신 안에 있습니다.

당신은 나의 것,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은 죽음을 원하는 사람

당신은 죽음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사랑, 사랑, 사랑해요.

나는 사랑이지만 당신은 죽음입니다.

당신은 죽음을,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나는 사랑해요, 나는 사랑해요, 나는 사랑해요.

당신은 죽음이지만 나는 생명이오.

당신의 생명은 사랑이 아닙니다.

나는 당신을, 당신을 사랑해요.

나는 피가 아니요, 나는 정신입니다.

나는 당신 속의 피요, 정신입니다.

나는 사랑, 나는 사랑입니다.

당신은 나와 함께 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의 안녕을 바랍니다.

당신은 나의 것, 당신은 나의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4페이지 이상 더 계속되지만 거의 번역이 불가능한 언어 유희의 반복이라 여기서 생략한다. : 역자)

 

나는 당신에게 많은 것을 쓰고 싶지만, 당신과 함께 일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목표는 다른 것이니까요. 나는 당신이 어떻게 가장하는가를 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가장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의 복리를 원할 때의 가장은 좋아합니다. 당신은 악의적인 사람입니다. 당신은 제왕이 아닙니다. 하지만 나는 왕입니다. 당신이 나의 왕이 아니라 내가 당신의 왕입니다. 당신은 내게 위해를 바라고, 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당시는 악의에 찬 사람입니다. 하지만 나는 자장가를 불러주는 사람입니다. 로카바이, 바이, 바이, 바이. 평화롭게 자거라. 로카바이, 바이, 바이, 바이, 바이.

사람이 사람에게

 

바슬라프 니진스키.

 

 

 

 

 

 

 

 

 

 

 

=> 위 사진들은 책 <니진스키, 영혼의 절규>에 실린 사진들이며 책날개에 소개된 니진스키의 일대기이다. 

 

 

 

=> 요건 공연날 찍은 사진으로 공연 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뭐니뭐니해도 친구와의 술 뒷풀이가 좋았더랬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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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6-05 17: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평범한 이들이 천재를 극화하는 것은 참 어려운 작업인 듯합니다. 그래서 천재이겠지만요. 니체, 베토벤 등과 같이 나진스키도 정신분열증으로 고생한 것을 보면 천재가 아닌 것이 다행입니다^^:)

설해목 2019-06-05 17:4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천재는 정말 남다른 점이 있어 천재인 것 같긴 해요. 머릿속으로는 온갖 것이 떠오르는데 현실은 그걸 표현할 수 없을 때, 혹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그럴 때 천재는 무너지고 마는 것 같기도 하고....
저 역시 천재가 아니라 정말 다행입니다! ㅎㅎ

카알벨루치 2019-06-06 0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뮤지컬도 보시고 고독사는 절대 안되겠는데요~멋집니다

설해목 2019-06-07 09:16   좋아요 1 | URL
ㅎㅎㅎ 고독사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좋은 관계를 잘 만들어가겠습니다!
비오는 금요일 아침~~ 굿모닝입니다. ^^
 

지난주 금요일 드디어 최은미 작가님을 만났다. 한때 나는 책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한달에 한두번은 작가와의 만남을 다녔었다. 좋아하는 작가를 만나기 위해 파주며 강남이며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고 주말 행사도 열심히 참석했더랬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저자와 직접 만나는 만남에 대한 열정이 시들해졌고 요 몇 년 동안에는 따로 시간을 내어 간 적이 거의 없다.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최은미 작가의 북토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정말 간만에 작가와의 만남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무엇보다 직접 만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금요일 저녁 퇴근을 하자마자 지하철을 타고 경복궁역으로 향했다. 함께 가기로 한 친구를 만나 '김영철의 동네 한바퀴'에서 본 '용금옥'이란 추어탕 집에서 먼저 저녁을 먹었다. 서울식 추(어)탕을 하는 곳으로 TV에 나오셨던 사장님과 그 따님이 마침 자리에 계서서 TV에서 보았다는 알은체를 좀 했다. 추어탕을 무지 좋아하는데 이날 먹어본 추어탕은 뭐랄까 김영철 아저씨 말대로 육개장과 추어탕의 중간쯤 되는 맛이었다. 미꾸라지의 비린내가 전혀 없고 각종 야채와 두부까지 들어간 서울식 추탕은 친구의 입맛에 잘 맞았다. 물론 내 입맛에도 잘 맞았지만 나는 사실 통추어탕을 즐기는 사람으로 미꾸라지 특유의 냄새가 없는 것이 조금 아쉽긴 했다. 시간이 허락한다는 추어튀김까지 먹고 싶었으나 행사 시간에 맞추기 위해 추탕 한그릇씩만 간단하게?! 먹었다.

 

행사장소에 가기 전에 작가님에게 드릴 꽃다발을 사기 위해 서촌 이곳저곳을 헤매도 꽃집을 찾을 수 없었다. 친구가 지도를 검색해서 가보면 그곳에는 꽃집 대신 이미 다른 가게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준비를 할 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사인받을 책 4권은 미리 준비하여 출근하면서부터 짊어지고 왔으면서 꽃다발은 미처 생각을 하지 못한 게 후회가 되었지만 초행인 곳에서 더 헤매도 찾을 길이 없어 아쉬운 마음을 달고 행사장소로 향했다.

 

북토크 행사는 서촌에 자리잡은 동네책방인 부쿠엠에서 진행되었다. 사실 그 전 주말에 미리 한번 왔다갔더랬다. 혹시라도 길을 못 찾을까봐는 아니고 서촌에서 나름 유명하다는 메밀음식점인 '잘 빠진 메밀' 식당에 왔다가 근처에 있다고 하길래 미리 가봤더랬다. 서점은 아담하고 따뜻한 분위기였다. 매니저분이 먼저 반겨주시고 소규모로 마련된 행사자리에는 한 분의 독자가 앉아계셨다. 아직 시작 전이라면 꽃다발을 살 수 있을까 싶어 매니저님께 근처 꽃집을 아는지 여쭤보니 모른다며, 그리고 이미 작가님이 와계시다며 한쪽을 가리켰다. 들어설 때 누군가가 책을 보고있다는 건 알았는데 그 분이 작가님이실줄은.....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서 알은체를 하고 싶었지만 소심한 나는 그저 몰래 사진만 찍었다.

 

오기로 하신 분들이 길을 헤매어 행사는 10분 정도 늦게 시작되었다. 총 7명의 독자가 옹기종기 모여서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최근에 출간된 <어제는 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정말 봄이라는 계절에 대해 사소한 것까지 모두 담아냈구나, 소설 전체에 계절감을 이렇게 잘 표현된 글이라니 하며 감탄을 했었는데 최은미 작가님 역시 계절을 잘 표현한 글을 좋아하신다고 했다. 작가님은 이 작품의 정수진이 글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지켜나가려고 애쓰는 모습이 작가로 살아온 본인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는 면에서 애착을 느끼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중편이라는 형식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해준 고마운 소설이라고 하셨다. 그동안에도 단편들을 쓰며 1인칭으로 쓴 소설들이 있었지만 그 경우는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시점을 골라서 쓴 것이라면 <어제의 봄>은 정말 1인칭의 매력에 푹 빠져서 쓴, 1인칭다운 1인칭으로 쓴 최초의 소설이라고 하셨다. 1인칭 소설은 어쩌면 3인칭 소설보다도 더 객관적일 수도 있다고 한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엄기호의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라는 책을 언급하시면서 자기 안에 매몰되어 있을 때는 글을 쓸 수조차 없는 상태라고. 어느 정도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는 상태라야 1인칭으로 쓸 수 있다고. 그래야 독자가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 질 수 있다고. 또한 원고지 200매~250매라는 중편의 매력이란 것이, 한 사람의 인물이 겪은 하나의 사건을 밀도 있게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중편이라는 형식이 아니었다면 이 소설이 언젠가 선보이긴 했을 테지만 장편은 아니고 단편으로는 좀 더 헐거운 이야기가 되었을 거라고 했다. 맞다. <어제의 봄>은 중편만의 매력을 느끼기에 정말 딱인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어제의 봄>을 쓰면서 참고한 책이 세 권 있다고 하셨는데 하나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내 이름은 루시바턴>이고 또하나는 록산 게이의 <헝거> 그리고 엄기호의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이다. 세 권 모두 나는 아직 읽어보지 않은 책이라 작가님의 설명을 온전하게 이해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작가님이 어떤 부분에서 <어제의 봄>을 쓰는데 참고하셨는지 잘 이야기해주어 이 책들은 꼭 한번은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내 이름은 루시바턴> 역시 <어제는 봄>처럼 글을 쓰는 여성 작가의 1인칭 시점으로 쓰인 소설이라고 하는데 알고보니 작가는 바로 <올리브 키터리지>를 쓴 분이다. 그런데 내가 왜 아직까지 이 소설을 읽지 않았는지 심지어 갖고 있기조차 하면서.... --;; 조만간 이 책을 읽고 <어제의 봄>을 다시 읽어야봐겠다.

 

<어제는 봄>에 대한 이야기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또 하나는 작가님이 파주 마장호수 출렁다리에서 겪은 경험에 대한 이야기였다. 남편과 아이와 놀러간 그곳에서 아이와 남편은 무섭다고 해서 출렁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작가님 혼자서 출렁다리를 건너갔다고 한다. 그리고 도착한 곳에서 뒤돌아 보니 건너편에 아이와 남편이 서 있는 걸 보면서 복잡한 심경이었다고 했다. 그리우면서도 해방감을 느끼고 미안하면서도 뭔가 기쁜 그런 복잡한 마음이었다고 했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감정이 바로 이런 모순되는 감정이 아닐까 싶다. 여자는 글을 쓰기 위해서 극복해야할 것이 많다는 작가님의 말 역시 이런 감정과 통하는 것 같다. 남자 작가와는 다르게 이래저래 신경써야 할 것이 많아 글과 씨름해도 모자랄 시간에 그 외의 것들과도 씨름해야 하는 여성 작가들의 처지. 물론 보편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작가의 글쓰기가 남성 작가에 비해 녹록지 않다는 건 분명해보인다.  

 

<어제는 봄>은 현재 진형의 문장을 취하고 있지만 작가님은 주인공 정수진에게는 이미 지나온 봄이라고 설정하고 쓰셨다고 한다. 어제로 명명되는 봄은 정수진이 이선우를 만난 봄이기도 하고 스물셋에 겪은 그날의 봄이기도 하다. 어쨌든 정수진은 하나의 소설을 완성함으로써 봄을 보내버렸다. 이 소설에 대한 에피소드 하나를 말씀해주셨는데 정수진 앞에 나타난 이선우란 남자의 이름에 관한 거였다. 나이와 직업 등등에 비추어 이선우는 약간 비현실적인 이름 같을 수도 있다면서, 사실은 <아홉번째 파도>의 담당편집자가 그 소설에 나오는 '서상화'란 이름이 이십대 초반 청년의 이름과는 조금 어울리지 않으니 이선우로 바꾸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는데 작가님께는 몇 년 동안 서상화였기때문에 도저히 바꿀 수가 없었다고 하신다. 그래서 다음 소설을 쓰게 되면 꼭 이선우란 이름을 쓰겠다고 약속을 하셨다고... 그리고 <어제의 봄>에 작가의 말을 끝내 실지 못했다고.. 편집자의 곤란함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말을 덧붙이면 이 소설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차마 실을 수 없었다고 했다. 이 소설을 읽은 남편분의 반응이 궁금하다는 질문을 내가 했는데 남편분은 자신의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고 했다. 글을 쓰던 초창기에는 읽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해주었는데 지금은 그정도는 아니고 이 소설 역시 읽지 않았을 거라고...  

 

등단을 한지 10년이 되었는데도 아직 정면을 바라보는 프로필 사진을 찍는 것이 어색하고 힘들다고 하셨다.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바라볼 자신이 없다고. 나는 나를 정면으로 직시하고 있는 것일까, 소설 쓰는 최은미를 나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사십대를 맞은 나를 제대로 마주할 수 있을까, 나라는 사람(작가)이 소설의 인물에 제약을 두지는 않을까 하는 내면의 갈등을 여전히 하고 있다고 하셨다. 요즘 팟캐스트니  TV니 유튜브니 하며 다양한 매체에서 자신을 드러내기를 서슴지 않는 작가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이런 고민을 끊임없이 하며 자신을 내보이는 것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작가님의 모습이 그래서 더욱 좋았다. 믿음이 갔다. 

 

직접 뵌 작가님은 내가 상상했던 이상으로 매력적이었다. 잔잔한 톤의 목소리에는 마음을 끌어당기는 부드러운 힘이 느껴졌고 말을 할 때마다 자주 붙이던 '사실은'이란 단어에는 자신의 생각을 다시 한번 고르고 잘 전달하고픈 마음이 담겨 있었다. 사인을 받을 때 우리 고향의 아픈 이야기를 소설로 남겨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더니 나를 알아봐주셨다. 아마도 내 리뷰를 읽으신 모양이다. 시댁이 삼척이고 남편이 그곳 사람이라 자연스레 알게 되었고 쓰게 되었다고 하신다. 삼척과 남다른 인연이 있다는 걸 알고나니 나는 더더더 작가님을 좋아하게 되었다. 언젠가 삼척에서도 만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헤어지며 악수를 청했는데 잡은 손이 어찌나 말랐던지. 앞에서부터 차근차근 소설을 풀어내야 하는 스타일이라 남들보다 조금 어렵게 소설을 쓴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마르고 가는 그 손가락들이 그 증거가 아닌가 싶다. 이날은 낭독도 함께 이루어졌는데 행복하게도 작가님께 지목당해 독자낭독을 내가 했다. ㅎㅎ 작가님과 함께 낭독이라니.... 게다가 정면 사진을 찍기 힘들어하는 작가님에게 사진을 한장 찍어달라고 부탁해 기념사진도 찍었다!  어서 빨리 작가님의 신간을 만나고 싶다. 그저 작가님이 소설의 정수진처럼 지랄맞게라도 좋으니 건강하게 오래오래 글을 써주셨으면 더 바랄게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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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9 17: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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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9 17: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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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9 18: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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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9 23: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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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30 18: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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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31 12: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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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5-31 2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작가와의 만남이라...

싸인본에 연연하지 않지만 좋아하는
작가 분의 책이라면 - 수년 전에 이창래
선생 강연회에 가서 받은 사진 생각이
납니다.

사진도 같이 찍으시고 좋으셨겠습니다.
아이 부러워라.

설해목 2019-06-02 15:26   좋아요 0 | URL
히히~~ 맞아요. 좋아하는 작가님과의 만남, 사인본 책 그리고 사진까지...
요런 추억 만드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
 

5월이 딱 1주일 남았다. 가정의 달인데 가족때문에 힘든 한 달이었다. 가정의 달을 맞아 모처럼 고향에 내려갔지만 무기력한 어른 4명이서 하는 여행은 이른 더위 만큼이나 서로를 지치게 했다. 서로에 대해 차마 하지 못하는 말들이 쌓여서 그것이 혹시라도 터져나올까봐 조심조심하며 보내고 왔는데 결국은 터질 것은 터지는 법. 얼굴을 맞댄 채가 아닌 전화기를 붙든 채 터져 나온 고성과 짜증과 한탄과 서운함 그리고 눈물이 내내 고막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가족의 우울함에 대한 원망을 죽은 동생에게 퍼붓었다. 몇날 며칠을 퍼부었다. 어제는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도와달라고 매달리는, 꿈인지 뭔지 모를 상태에서 가위에 눌려 깨어난 후로 밤을 꼬박 샜다. 출근길 아파트 복도 창으로 바라보이는 신림 정신과 간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병원 옆건물에 있는 단월드센터를 향하는 마음도 점점 커진다. 출근해서는 정신없이 일하다가 갑자기 휴대폰에 깔린 타로 어플을 열어 6월의 타로점을 쳐봤다. 5월의 타로점은 더 없이 좋았는데... 믿을 게 못된다는 걸 몸소 겪었으면서도 또다시 나는 6월의 타로점에 매달려본다. 내 가정은 없지만 이런 저런 경조사로 지출이 컸던 5월이었던 지라 당장 데려오고 싶어도 그러지 못한 책들을 6월에 데려와야겠다. 그것 하나 생각하며 남은 5월을 버틴다.

 

 

 

한바탕 가족들과 전쟁을 치르고나서 가장 먼저 잡은 책이다. 아빠와 나는 성격이 비슷해서 가슴에 담아놓기보다는 생각없이 바로 밖으로 내뱉는다. 그리고는 금방 잊어버린다. 그걸 들은 엄마와 남동생은 성격이 또 비슷해서 좀처럼 반응하지 않고 대신 상처를 오래 갖고 간다. 극과극인 어른 넷이서 주고 받은 게 상처뿐인 5월이 빨리 가버렸으면 좋겠다. 참을성이 점점더 적어진다. 특히나 가족과 나 자신에 대해서는 무자비할 정도다. 이 책을 읽어보니 화는 인간에게는 하등 쓸모없는 감정이며 더불어 자신을 망치는 지름길임을 알긴 알겠는데 도무지 어찌해야 화를 멈출 수 있는지를 모르겠다. 화를 낼 때마다 암세포가 하나씩 생긴다고 생각해도 도저히 갑자기 솟구치는 화를 어쩌지 못하겠다. 순간 터져나오는 욕설을 고스란히 혼자 듣고 있으면서도 그래서 다시 우울해지면서도 그 악순환을 빠져나올 방법을 모르겠다. 요가와 명상으로 다스려지기에 내 안의 화는 이미 심하게 변질된 건지도 모르겠다. 도서관에서 대여하여 읽었는데 자주자주 들춰봐야 화를 다스리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구입해서 곁에 가까이 둬야겠다.

 

 

 

 

이승우의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를 먼저 읽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유용한 팁이 많아 거의 온통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다. 이 책과 동시에 출간된 것이 <소설을 살다>이다. 사실 소설의 기술에 대한 산문이라길래 <당신은~>만 먼저 구입해서 읽었다. 기술이 필요하지 이미 경지에 오른 소설가의 마음가짐까지 챙겨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가 도서관에서 <소설을 살다>를 빌려 읽게 되었다. 도서관에 소장된 건 이번에 나온 개정판이 아닌 그전에 출간된 책이었다. 그런데 글이 너무 좋아 온통 밑줄 긋고 싶은 문장들 천지였다. 적어도 소설을 쓰려면 이런 정도의 사유는 해야 하는 거구나. 어떤 각오와 자신만의 고민이 있어야 하는 거구나. 새삼스런 깨달음에 한번은 꼭 직접 뵙고싶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리고 6월이 되면 이 책부터 가장 먼저 구입할거다. 소설을 향한 한 사람의 진득하고 곡진함을 엿볼 수 있었던 귀한 책들이 아닐 수 없다. 

 

 

 

 

좀 전에 알라딘 신간 알림 메일로 받은 따끈한 신간 소식이다. 시인의 첫 시집을 만난 이후로 나는 일명 친구들 사이에서 심보선 시인 빠순이로 통했다. 시인이자 사회학자라는 묘한 정체성을 가진 시인에게 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한때 나는 심보선 시인이 참여하는 거의 모든 행사에 참석할 정도로 열성적으로 시인을 쫓아다녔었다. 시인이 참여하는 행사는 바로 현재 우리 사회의 바로미터이기도 했기에 나 역시 더욱 열성적이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그 마음이 많이 시들긴 했지만..... 아니 마음이 시든 건 아닌데 실천이 따라주지 않는 몸이 되긴 했다. 몸은 조금 굼떠졌어도 마음은 여전하여 이렇게 신간 소식을 접하면 설렘을 감출 수 없다. 직접 만나는 시인도 좋지만 글로 만나는 시인은 더 좋다. 게다가 이번엔 시집이 아닌 시인의 첫 산문집이다. 몇 년 전부터 시인의 산문집이 나올 거라는 건 출판 관계자를 통해 알고는 있었는데 이렇게 내 마음이 한없이 바닥을 헤매일 때 애정하는 시인의 산문집을 만나게 되니 정말로 위로받는 기분이 든다. 이쪽의 풍경은 아직은 어둡지만 이 산문집으로 곧 환해질 거라 믿는다.

 

 

 

 

알라딘 페이퍼를 통해서 품절된 이 책의 새로운 출간을 바라는 마음을 종종 드러냈었는데 드디어 이렇게 정말로 이쁜 표지를 하고 내 앞에 다시 나타났다. ㅎㅎㅎㅎ 정말로 간절히 바라면 이렇게 기적같은 일도 일어나는구나 싶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바로 냉큼 데려오지 않았다. 지갑사정도 있지만 뭔가 뜸을 들여야 내 수중에 들어왔을 때 그 기쁨이 배가 될 것 같아서.... 그래도 더는 못 참겠고 6월이 되면 데려올테다. 그리고 소설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마치 처음 만나는 글인양 다시 읽을 거다. 개정판 전의 소설집도 가지고 있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다.

 

 

 

 

이승우 작가의 산문집들을 읽으며 자연스레 떠올랐던 작가다. 게다 이승우 작가는 <소설을 살다>에서 마루야마 겐지와 <소설가의 각오>를 잠깐 언급하기도 한다. 이승우 작가의 산문집들을 읽으며 소설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가짐을 절로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그러다보니 이 작가의 책들이 떠오를 수밖에.. 최근에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라는 신간이 나왔는데 관심이 간다. 한국과 일본의 문학풍토가 똑같을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소설가가 가져야할 마음가짐이나 태도는 국경을 초월하여 전해지는 울림이 있을 것 같아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소살가의 각오>만큼 비장한 제목은 아니지만 뭔가 따뜻하면서도 울림이 큰 조언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울할 때면 더 우울감에 빠지고 싶어 <달에 울다>를 자주 찾아 들었는데... 간만에 <달에 울다>를 주말에 다시 읽어봐야겠다.

 

 

 

 

 

요즘 알라딘 서재에서 가장 핫한 책이 테드 창의 <숨>이 아닐까 싶다. 사실 나 역시 이 소설집의 소식을 접하지마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SF소설, 과학소설 이런 장르소설에 대한 선입견때문에 거의 접할 일이 없던 내가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읽고 단박에 사고전환을 할 정도였으니... 이후 테드 창이 받았다던 상을 역시 받았다고 하는(3관왕이라고 했던가..) 켄 리우 작가의 <종이 동물원>까지 구입한 걸 보면 테드 창의 소설이 나에게는 하나의 세계를 열어준 셈이다. 그런 테드 창의 신간이니 이번 소설집이 반가울 수밖에...이번에는 또 어떤 이야기들로 굳어 가는 나의 뇌를 사부작사부작 만져줄지 기대가 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복권에 당첨된다면 한방에 지르고 싶은 시리즈!! 일년에 한권씩이라도 모아보자 싶은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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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3 16: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23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23 17: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23 17: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23 17: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23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24 0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9-05-23 1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래 전에 대학 친구가 가족의 본질
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듣고 가히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문득 드네요.

지금까지 그렇게 솔직한 말은 들어본 적
이 없더라는. 다시 만나 보고 싶은 친구
네요.

페소아 시집을 잔뜩 사서 읽다가 나 역시
나하고 시는 맞지 않는구나 싶어서 어디
에 치워 두었네요.

앤드루 포터의 책은 신간 출간 기념으로
다시 한 번 읽었습니다.

세밀화는 정말 복권이나 맞아야 살 수 있
는 그런 책인가요 핫하

설해목 2019-05-23 23:59   좋아요 0 | URL
정말이지 가족이란 존재가 버거울 때가 있긴 있네요.
사랑해서 힘들게 한다는 말........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

저도 고백하자면 페소아는 시도 좋지만 확실히 <불안의 책>이란 산문들이 더 좋긴 했어요.

앤드루 포터의 이 책을 만나기 위해 저자의 다른 소설책을 무시했다면 너무 뻥이려나요. ㅋㅋ

가격이 너무 세서... 정말이지 눈먼돈이 생겨야지 지를 수 있는 시리즈긴 합니다. 그래서인가 더더더 갖고 싶어요. ㅎㅎ

2019-06-01 1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렇게혜윰 2019-06-04 17: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이 없었으면 우린 병원에 있을거야...

설해목 2019-06-04 17:30   좋아요 0 | URL
맞아.... 책이라도 곁에 있으니 정신 붙들고 살지 싶어...
 

 

며칠전 요가 수업에서 들은 곡이다. 모든 동작을 끝내고 매트에 편안하게 누워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 노래를 듣게 된 것이다. 듣는 순간 가슴이 벌렁거리면서 정말로 손끝 발끝까지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선생님께 노래를 물었고 will blunderfield라는 가수의 요가음악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가수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요가를 가르치는 사람이다. 이 노래를 알게 된 이후로 내내 사무실에서도 집에서도 이 노래만 듣고 있다. 블로그 배경음악으로 있던 100곡의 곡도 다 지워버리고 이 한 곡만 배경음악으로 해놓았다. 사용중인 음악어플에서는 이 노래가 듣기 허용이 안 되어 있어 네이버 블로그 배경음악 듣기로 외부에서도 언제든 무한반복으로 듣기 위한 조치였다. 10년 넘게 블로그를 하면서 그때그때 내 마음을 적셨던 노래들을 모아놓은 음악들이었고 내 블로그에 음악을 들으러 오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을 만큼 나름 다양하게 선곡된 플레이리스트였는데.... 이 한곡으로 인해 그 플레이리스트를 없애버린 거다. 언제까지고 이 노래만을 듣지는 않겠지만 지금 내 정신과 마음은 이 노래를 필요로 하는 상태라는 것만은 알 수 있다.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단번에 빠져버린 거겠지. 가사는 다음과 같다. 처음 시작하는 부분은 마하 만트라에서 발췌한 부분이라고 한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질병을 막아준다는 의미의 만트라라고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이가 내레이션하는 부분은 작가  Marianne Williamson가 쓴 책  <A Return to Love>에 실린 문장을 인용하였다고 한다. 사실 가사에 실린 만트라도  Marianne Williamson의 문장도 잘 이해할 수 없고, 내포한 의미조차 전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 몸과 마음이 위로받는 느낌이랄까. 얼마전부터 매일밤 명상의 시간을 갖지만 10분조차 온갖 생각과 불안에 휩싸여 나를 놓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 실망스러웠는데 이 음악으로 다시 나를 들여다보려한다. 아니 들여다보기보다는 나를 내려놓으려한다. 단 몇 분만이라도...

 

<Long Time Sun>

 

- will blunderfield

 

Om Tryambakam Yajamahe
Sugandhim Pushtivardhanam
Urvaarukimiva Bandhanaan
Mrityor Mukshiiya Maamritat (repeated throughout the majority of the song)
{We Meditate on the Three-eyed reality Which permeates and nourishes all like a fragrance. May we be liberated from death for the sake of immortality, Even as the cucumber is severed from bondage to the creeper.}
[This Mahamritunjaya Mantra of Shiva, is to protect and cure the persons from diseases, fear of death.]

A Return to Love  by Marianne Williamson

Our deepest fear is not that we are inadequate. 
Our deepest fear is that we are powerful beyond measure.
It is our light, not our darkness that most frightens us. 
We ask ourselves, Who am I to be brilliant, gorgeous, talented, fabulous?
Actually, who are you not to be? 
You are a child of God. Your playing small does not serve the world. 
There is nothing enlightened about shrinking
so that other people won't feel insecure around you. 
We are all meant to shine, as children do.
We were born to make manifest the glory of God that is within us.
It's not just in some of us; it's in everyone. 
And as we let our own light shine, we unconsciously give other people permission to do the same. 
As we are liberated from our own fear, our presence automatically liberates others.


May the long time sun
Shine upon you
All love Surround you, Surround you!
And the Pure Light that burns bright within you
Guide your way home, Guide your way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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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5-14 1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가의 세계에 들어 가셨나 보네요...

영생 프로젝트? ㅋㅋㅋ

저도 운동해야 하는데, 수영 배우겠다고 했더니만
저희 회사 이사님이 초를 치시네요... 손에 장을
지지시겠다고라.

음악은 잔잔하니 요가에 딱입니다.

설해목 2019-05-14 14:26   좋아요 1 | URL
네.. 올초에 필라테스하면서 요가도 추가로 하고 있어요. 몸이라도 다스려보고자.. ㅋㅋㅋ
수영은 정말 배우고 싶은 것 중에 하나인데 가라앉을까봐 무서워서 못배우겠어요. -.-
한동안은 이 음악으로 릴렉스 좀 해보려구요. ^^

뒷북소녀 2019-06-03 18:27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 배워야 돼요. 수영은.
가만히 있음 두둥 떠 있는데, 우리는 자꾸 가라앉을까봐 걱정을 하니까요.
필라테스도 힘들텐데... 요가까지라니.
아무쪼록 건강한 체력으로 더 건강한 독서하시길^^

2019-05-14 17: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14 17: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제는 봄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2
최은미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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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지 않은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많은 책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글을 쓰고 있는, 글을 쓰고자 하는 많은 여성 작가들이 떠올랐다. 오랜 역사 동안 남성에 비해 억압과 차별을 더 많이 받아온 여성은 분명 하고 싶은 말이, 바라는 욕망이,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남성보다 더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남성 위주의 시스템에 맞춰 살아야 하는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이 소설을 읽으며 새삼 깨닫게 되었다.

 

#글을 쓰는 여자

 

, 정수진은 직장을 다니면서 틈틈이 습작을 하고 철마다 응모를 하여서 10년 전에 등단을 하였다. 등단할 당시 예정에도 없던 임신으로 수진은 이미 만삭이었고 수순에 따라 결혼을 하고 터전을 잡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살림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10년 동안 꾸준히 글을 쓰고 있지만 어떤 결과물도 내놓지 못한 상태다. 스물세 살에 정한 글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한번도 버린 적 없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림을 하면서 그 정체성은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스스로를 자책하게 만들고 그래서 자주 흔들린다.

 

나는 10년째 병에 걸려 있었다. 청탁을 받지 못하는 등단 작가라는 저주에,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울분에, 장편소설만 당선되면 이 모든 게 한 방에 해결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 고문에, 그리고 양주에. _ p.18~19

 

앞 동에는 공부방이 있고, 나는 일주일에 두 번 거기서 중학생 아이들의 논술을 봐준다. 나머지 시간엔 노트북을 메고 소설을 쓰러 간다. 아무도 읽지 않는 소설을 쓰러 간다. 봄에는 나머지 시간'을 확보하는 게 특별히 어렵기 때문에 틈만 나면 무서운 집중력으로 쓴다. 아무도 읽지 않지만 언젠간 읽힐 수도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쓴다. 고문당하며 쓴다. _ p.27.~28.

 

하지만 나는 안다. 나를 가위눌리게 하는 진짜가 따로 있다는 걸, 나는 일하는 다른 엄마들처럼 경제활동을 하면서 이러고 사는 게 아니다. 다른 작가들처럼 원고료를 받고 책을 내고 사는 것도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_p.34

 

쉬면 죄책감이 들어 쉬지 않았다. 쉬지 않고 소설을 썼다. 나는 직장맘도 아닌데 돌 갓 지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겼으니까. 아이의 평생 인성이 결정된다는 생후 3년이 지나기도 전에 아이를 떨어뜨려놓았으니까. 아이와 둘이 있는 게 힘들어서가 아니라, 그런 게 절대 아니라, 소설을 쓰려고 그런 거니까, 소설을 썼다. 기껏해야 소설을. 청탁받지 않은 소설을. 아무도 원하지 않는 소설을._p.63

 

글을 쓰면서 살겠다고 생각한 스물세 살 이후로 내 정체성은 언제나 글 쓰는 사람이었다. 그것 말고 다른 사람이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다른 사람이었던 적이 없었다. _p.136

 

수진은 경제적인 활동을 하지 않으면서도 아이와 살림에 전적으로 올인하지 못하는 자신 스스로에게 인색하다. 차라리 돈이라도 버는 직업을 가졌다면 아이와 살림에 소홀해도 가족에게도 사람들에게도 좀 더 떳떳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돈은 벌리지 않고 결과물은 내놓지 못한 채 생산적이지 않은 것 같은 글쓰기를 10년째 해오면서 주위 사람은 둘째 치고 수진 스스로가 자신감을 잃고 때로는 스스로를 자책하고 자신에게 분노한다. 이런 수진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떠오르는 작가들이 있다.

 

즉 여성이 픽션을 쓰고자 한다면 돈과 자신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전하는 것뿐입니다. _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펭귄클래식) 중에서..

 

그보다 내게 더 큰 고통으로 남아 있는 것은 그 시절이 내게 심어놓은 공포와 쓰라림이라는 독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원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 꼭 필요한 것은 아닐 수도 있지만 필요한 것으로 보였던, 걸려 있는 돈이 워낙 중하기에 위험을 무릅쓸 수는 없는 그런 일을 마음에 없는 말을 해가가 비위를 맞추면서 노예처럼 일한다는 것, 그리고 별것 아니지만 소유자에게는 중요하고 세상에 드러내지 않으면 죽는 거나 마찬가지인 재능이 소멸하고 있다는 것, 나 자신, 나의 영혼과 더불어 소멸하고 있다는 생각, 이 모든 것들이 꽃피는 봄날을 갉아먹고 나무속을 파먹는 녹이 되어 갔습니다. _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펭귄클래식) 중에서..

 

책을 쓰는 사람은 언제나 주변 사람들과 분리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고독해야 한다. 저자의 고독, 글의 고독. 자신을 둘러싼 침묵이 무엇인지 자문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집 안에서 한 걸음 옮길 때마다, 하루가 흘러가는 매시간, 밖에서 들어오는 빛이든 켜 놓은 전등 불빛이든 어느 빛에서나, 정말로 그래야 한다. 몸이 처한 그러한 실제의 고독, 그것은 침범할 수 없는 글의 고독이 된다. _ 마르그리트 뒤라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글 중에서..

 

절망을 버티며 쓰기. 아니, 절망을 품고 쓰기. 그 절망의 이름은 모르겠다. _ 마르그리트 뒤라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글 중에서..

 

수진이 등단을 했을 때, 뜻하지 않은 임신 대신 예정에 없던 결혼 대신 좀 더 글쓰기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10년 후의 수진은 스스로 작가라 자부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수진은 남편과 엄마에게서 벗어날 수만 있으면 무슨 짓이라도 할 거라고 말한다. 그만큼 가족이란 존재가 수진의 글쓰기에는 든든한 지원군이 아닌 방해꾼이다. 아이 역시 사랑스럽고 귀한 존재지만 때때로 글을 쓰는 수진을 힘들게 하는 존재이기는 마찬가지다. 아이가 자람에 따라 수진의 역할은 점점 늘어가고 그럴수록 글쓰는 데 써야할 시간과 열정과 집중이 줄어든다. 수진은 그런 상태로 10년째 글쓰기에 매달려 온 거다. 수진의 소설이 10년째 마무리 되지 못하는 건 어쩌면 이런 환경에서는 당연한 것일 수도... 그래서 지금이 중요하다. 자신의 정체성인 글쓰는 사람을 바꿔야 할지도 모르는 결정의 시간. 소설에서도 인생에서도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하는 시간. 더는 이렇게 수동적으로 살아갈 수 없는 최후의 시간. 수진은 자신의 삶에 터닝포인트가 될 그런 봄을 맞고 있다.

 

#무엇을 쓰려고 하는지

 

 

나는 양주 이야기를 10년째 쓰고 있었다. 한 이야기를 10년 동안 붙들고 있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지겹고 힘든 일이었다. 스스로의 능력이 의심스러워지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선우 경사의 답변 속에서 어떤 단어들을 볼 때, 나는 그 단어 하나만 갖고도 양주 이야기를 바로 끝장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른 소설도 얼마든지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_p.17~18

 

아빠는 그 길을 택했구나. 그 길로 간 것이구나. 그러면서 예감했다. 이제부터의 내 인생은 아빠가 한 선택과 아빠가 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 선택, 그 둘 사이의 줄타기가 될 거라는 걸. 하루의 대부분을 자살하지 않기 위해 애써야 살 수 있을 거라는 것을. _p.91~92

 

수진은 등단을 한 이후로 10년째 한 가지 주제인 양주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양주는 수진이 태어나 자란 곳, 수진이 빨리 벗어나고 싶어 안달하게 만들던 곳. 지금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고 친정 엄마가 여전히 사는 곳, 수진이 다니던 여고 뒷산에서 아버지가 자살을 한 곳. 엄마의 친한 지인이 사라진 곳. 스물세 살 때 일어났던 일을, 그 당시의 수진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곳. 수진은 그런 양주에 대한 이야기를 10년째 쓰고 있다.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이다. 혹은 지금은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훗날 독자가 될 수도 있는 누군가에게 하는 행위이다. 너무 민감하고 개인적이고 흐릿해서 평소에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를. 가끔은 큰소리로 말해 보려 노력해 보기도 하지만, 입안에서만 우물거리던 그것을, 다른 이의 귀에 닿지 못했던 그 말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적어서 보여 줄 수 있음을 알게 된다. _ 리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 중에서

 

존재에 대한 결핍감이야말로 욕망의 원천이다. 결핍이 클수록 욕망도 커진다. 결핍에 대한 감각이 예민한 사람일수록 욕망에 대해서도 예민해진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다. 객관적인 정황과 상관없이 나는 늘 무언가 결여되어 있다는 인식에 붙들려서 지냈다. _ 이승우, 소설을 살다 중에서..

 

자살한 아버지를 완벽하게 빼닮은 유일한 사람인 수진은 아버지의 선택을 이해하려 10년째 양주 이야기를 붙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버지를 닮았으니 자신도 언제 어떤 상황에서 그런 선택을 하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그래서 자신이 겪은 결핍과 공포를 자신의 딸이 겪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수진은 이번에야말로 꼭 이야기를 마무리짓고 싶은 건지도...

 

하지만 그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털어놓을 수 있는 그런 달달한 이야기가 아니다. 범죄에 대한 이야기이자 삐뚤어진 가족의 초상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픽션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수진 자신에게는 결코 완벽한 픽션일 수 없는 경험의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더욱 수진은 10년 전 양주의 사건을 완벽한 픽션으로 둔갑시켜 모든 이들에게 털어놓고 새출발을 하고 싶은 욕망에 시달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사건을 모를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소설로 읽힘으로써 수진은 그제야 자신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던 과거에서 놓이게 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 그럴 여지라고 생길 테니까.

 

#새로운 만남

 

나도 모르게 웃었다. 그러면 까맣고 예쁜 내 딸 윤소은이 다가와 엄마 웃어?’라고 물었다. 내가 웃었기 때문에 아이는 안도하는 표정으로 저녁 내내 잘 놀았다. 우리의 저녁은 즐거웠다. 남편이 회식이나 야근을 하면 나는 저녁 시간이 힘들었지만 이젠 덜 힘들었다. 이선우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남편도 모르고 친정 엄마도 모르고 하늘도 땅도 모르는 사이에, 이선우는 그렇게 18층 우리 집으로 들어와 내 아이를 웃게 하고 있었다. _p.80

 

수진은 양주 이야기를 마무리 짓기 위해 집근처 경찰서의 경찰을 만나게 된다. 이름은 이선우. 10년째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고여 있던 수진의 삶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자신에게 꼬박꼬박 작가라고 말해주는 사람. 자신이 물어보면 성심껏 대답해 주는 사람. 그렇게 선우는 수진의 마음을 봄비처럼 촉촉하게 적시고 수진은 어느새 선우로 흠뻑 젖어버린 마음을 알아챈다.

 

이제껏 함께한 적이 없었던 두 사람을 함께하게 해보라. 때로는 세상이 변할 때도 있지만, 그러지 않을 때도 있다. 그들은 추락해 불에 타오를지도 모른다. 혹은 타올라서 추락하거나. 그러나 때로, 새로운 일이 벌어지면서 세상이 변하기도 한다. 나란히 함께 그 최초의 환희에 잠겨 몸이 떠오르는 그 최초의 가공할 감각을 만끽할 때, 그들은 각각의 개체였을 때보다 더 위대하다. 함께할 때 그들은 더 멀리, 그리고 더 선명하게 본다. _ 줄리언 반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중에서..

 

서른아홉 수진의 봄에 한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그래도 아직은자신을 여자로 생각할 수 있을 때, 자존감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지는 않은 그때 선우를 만났다. 선우를 통해 글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도 여자라는 정체성도 더욱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선우를 향한 마음이 커갈수록, 선우의 마음을 알아갈수록 또 다른 고민 역시 생겨났다. 수진은 선우와의 만남을 어떻게 마무리 지을까. 소설에서는 명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 새로운 사람과 함께한 그 봄날의 만남이 마흔살을 맞은 수진을 다른 사람으로 바꿔놓았다는 사실이다.

 

#최은미작가의 결

 

흙이 사람이 되기 위해 신의 숨결이 필요했던 것처럼 일상이나 현실이 소설이 되기 위해서도 작가의 숨결이 필요하다. 일상이나 현실에 당신의 숨결을 불어넣어야 한다. 말하자면 당신만의 시각, 당신만의 욕망이나 해석. 그런 것들에 의해 너무나 익숙하고 낯익어서 구질구질하기까지 한 우리들의 일상은 돌연 낯설게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낯익은 일상을 낯설게 만들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당신은 소설이라는 걸 썼다고 할 수 있다. _ 이승우,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중에서..

 

이 소설을 포함해 올해 최은미의 소설들을 모두 읽었다. 단편집 2권과 장편소설 그리고 이 소설까지. 스릴마저 느껴지는 탄탄한 서사의 장편소설에 감탄해서 읽은 작가의 단편소설들은 내가 읽은 요즘 작가들과는 확실히 결이 달랐다. 단편임에도 서사가 풍부하고 그야말로 이야기다운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번에 읽은 중편 분량의 소설에서는 또 다른 작가의 결을 느낄 수 있었다.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나 일상 너머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끝내 밀어붙이는 힘. 예를 들면 이런 문장들이 최은미만의 결을 생각하게 했다.

 

젊은 할머니, 내 친정 엄마처럼 젊은 할머니로 보인다. 나는 저 여자가 업고 있는 아이의 엄마일 다른 여자에게 잠시 부러움을 느낀다. 손주를 봐줄 수 있다는 건 생계를 위해 직접 뛰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고 그건 아직 남편과 살고 있다는 얘기라고, 저 나이가 되도록 큰 탈 없이 가정을 유지했다는 얘기라고, 저 여자의 딸일 아이 엄마는 온전한 가정에서 자랐으며 때문에 아이도 잘 키울 거라고, 나는 혼이 나간 젊은 할머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_ p.37~38

 

나는 아이를 보며 내 엄마 아빠의 결혼 생활을 보았고 엄마가 나에게 했던 분풀이와 탄식을 다시 들었다. 아이는 때때로 내 지난 시간을 들추기 위해 보내진 심판관처럼 느껴졌다. 나는 내 안에서 들끓는 욕들을 아이가 알아챌까봐 겁이 났고 내가 묻어둔 기억들이 아이에게 이식될까봐 두려웠다. 나라는 인간을 형성해온 것들을 완전히 떼어두고 아이를 대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달을 때마다 벌을 받는 것 같았다. _p.56~57

 

이 소설은 열린 결말이다. 아직 한 권의 책도 내지 못한 아이를 둔 마흔의 기혼 여성이 어떻게 자신의 글쓰기를 이어갈지 그에 대한 결론은 독자의 몫이다. 그리고 이 소설이 또 재미난 건 추리적인 요소에 있다. 작가가 흘려주는 힌트들을 꿰맞추다 보면 양주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최은미가 쓴 소설이자 나, 정수진이 쓴 소설이기도 하다. 그 이중적인 의미를 염두에 두고 읽는다면 더 많은 의미들이 독자를 생각에 잠기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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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5-12 2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설해목님의 글 한 편으로 몇 권을 읽은 기분이 되었네요.

이 주제에 관해서 저도 몇 권을 읽었지만 제가 할 자격이 있는 말 같은 건 별로 없더라구요.

설해목님의 감상을 읽는 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됩니다.

설해목 2019-05-13 09:32   좋아요 1 | URL
소설을 읽고 여러 책들이 떠오르더라구요.
이 주제에 대한 책들 좀더 읽어보고 싶기도 하구,
한편으로는 이 한편의 소설로도 글을 쓰는 여자에 대해서 알아야할 건 다 알게 된 것 같기도 하구요.
이 소설 덕분에 주말 이런 저런 책들 다시 뒤적거리며 보냈네요. ^^

hnine 2019-05-13 05: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은미 작가 좋아하시는군요. 저도 이 작가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는 이유가 될 것 같네요. ^^
청탁받지 못하는 등단작가보다 차라리 등단에 계속 실패하는 예비작가가 나을지. 막상막하일지.
등단 못하고 있던 시절에도 자기는 글 쓰는 걸 멈춘 적이 없었고, 등단 여부에 상관없이 글을 쓰는 사람은 모두 작가라고 생각한다던 구병모 작가 인터뷰도 생각나요.

설해목 2019-05-13 09:37   좋아요 0 | URL
네.. 최근에 읽은 우리나라 젊은작가 중 가장 저랑 잘 맞는 작가입니다. 최은미 작가는..^^
그런 말도 등단해서 책이 그래도 팔리는 작가의 여유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글을 쓰는 이유도 결국 누군가에게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만큼이나 클 텐데
오랫동안 결과물을 내지 못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일 것 같아요.
그래서 오랜 기다림 끝에 등단한 작가들 보면 정말 인간승리란 생각이..ㅎㅎㅎ

2019-05-15 1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15 1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