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집 대성당안에 담긴 단편소설의 제목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안 되는

문유석의 쾌락독서는 저자의 독서가 뼈대가 된 삶과 생각들을 엿볼 수 있다. 고무적이다. 그 책 속에는 저자의 고3 시절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저자는 아무래도 공부를 잘했겠지. 평생 1등 한번 해 본 적이 없는 나와는 다른 종족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판사가 되었다면 말이다.

 

 

 

어릴 적부터 독서를 좋아했던, ‘활자중독에 가까운 저자는 사직도서관에서 짬짬이 만화책도 탐독하고 소설책도 쌓아놓고 낄낄대며 자기만의 휴식을 취하였다. 공부를 죽으라고 해도 안 되는 나 같은 사람(물론, 죽으라고 공부한 적도 없지만, 원래 그게 안 되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이 있는가 하면, 공부도 적절하게 하면서 휴식 차원에서 독서를??? 제대로 하는 인간이 있다. 그런 괴물같은 인간이 바로 저자였다. 독서가 체내화된 그 고3에겐 고마카와 준페이의 인간의 조건같은 책은 꿀잼 그 자체였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소설을 읽어가면서 쾌락에 젖어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툭 치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는 고교 선배였고 재수생이었다.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 사직도서관 문이 열리는 시간부터 닫히는 시간까지 열심히 공부하면서 재수중이었다. 저자는

 

나는 놀랐다. 왜요? 아니 내가 뭘 하든 무슨 관계가 있기에....’

 

 

 

재수생 선배의 심각한 태도에 저자는 항변 한 번 못하고 소설책을 반납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억울하기도 하고, 항변하지 못한 자신이 창피했다. 내가 뭘 잘못했지? 아니, 세상에 책 읽는 것조차 남에게 폐가 된단 말야?

 

 

 

투덜대며 걷던 내 머리를 순간 스친 생각이 있었다. 나는 늘 누구에게도 폐 안 끼치고 살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게 폐가 될 수도 있는 거였다. 우연히 단지 공부 하나는 잘하게 태어나서 상대적으로 노력을 덜 하고도 좋은 성적을 얻는 자의 존재란 죽을 만큼 노력하고도 좌절을 반복하는 이에게는 상처와 절망을 줄 수 있는 것이었다. 내가 아무런 악의를 갖고 있지 않더라도 말이다.’(125-126p)

 

 

 

누구에게나 결핍은 있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누리는 타인의 존재를 편하게 받아들일 만큼 수양이 된 사람은 많지 않다....그건 부조리하다고 생각했지만, 인간 세상은 원래 부조리하다. 논리의 문제가 아니었다....그건 논리의 문제가 아니었다. 선택의 문제였다. 내 평소 사고방식대로라면 도서관에서 그 선배에게 유감이지만, 이건 내 공부 방식일 뿐이라고 말하고 내 자리로 돌아갔어야 한다. 후배를 그런 식으로 불러낸 그 선배야말로 찌질한 짓을 한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에는 그 선배의 표정이 너무나 절박해 보였다. 아무런 심적 여유도 없이 찌들 대로 찌들어 있었다. 내게는 여기가 아니어도 선택의 여지가 얼마든지 있었다. 내 선택은 잘못된 건 아니구나, 생각이 들었다...’(127-128p)

 

 

 

저자에겐 고3 수험생이 도서관에 앉아 소설책을 탐닉하는 것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재수생인 선배에겐 도움이 안 되는(?)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저자 문유석은 자신의 입장만을 생각했다면 선배와 따지면서 다툴 수도 있었던 문제였는데, 그냥 넘어가 지더라는 것이다.

 

 

 

친구가 이런 에피소드를 듣곤 이렇게 대구한다.

 

 

하여튼 너란 놈은 반성을 해도 참 재수없게도 한다. 공부를 너무 잘한 탓에 존재 자체만으로 누군가에게 폐가 된다는 걸 돈오돈수로 깨쳤다니 그게 무슨 원효 해골 물 마시는 소리야?”(129p)

 

 

 

저자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안 되는> 일에 대해 자신이 내려놓았다. 3이란 나이에 그렇게 했다는 것 자체가 저자의 떡잎이 남다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내겐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다른 이에게 <도움이 안 되는> 일들이 많고, 저자의 이야기처럼 존재 자체만으로도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저자가 재수생 선배에 대해 그런 태도를 취할 수 있었던 것은 선배에 대한 <공감共感> 때문일 것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앤과 하워드에겐 스코티란 8살짜리 아이가 있다. 오늘은 아이의 생일이다. 빵집에 생일케이크를 주문했다는 이야기로 레이먼드 카버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런데, 딸 아이가 생일날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것도 뺑소니에게 말이다. 충격을 받은 아이, 하지만 겉으로는 멀쩡했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애 엄마는 생일파티를 취소하고 남편과 함께 병원으로 간다. 단순한 접촉사고 정도로 생각했다. 의사도 곧 깨어날 거라고 하며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아이는 계속 혼수상태이다. 부부는 멘붕상태다. 아이를 간호해야 하기에 교대로 집으로 오가며 아이가 깨어나길 기다렸다. 그런데, 계속 집으로 전화가 오는 것이다. 정신이 없는 부부에게 딸 이름스코티이야기를 끄집어내니 뺑소니범의 전화가 아닌가 신경이 곤두선다. 미치기 일보 직전이다.

 

 

 

그런데, 병원에서 만난 다른 가족이 있다. 그 부부의 아이 프랭클린은 파티에서 칼에 찔려 죽어가고 있었다. 프랭클린 부모는 아이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작가 카버는 스코티의 엄마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다.

 

 

그녀는 두려웠고, 그들도 두려웠다. 다들 그런 공통점이 있었다. 그녀는 그 사고에 대해 더 많은 얘기를 하고 싶었다.’(110p)

 

 

스코티는 단순한 뇌진탕 정도로만 생각했지만, 백만 명당 한 명꼴로 발생하는 희귀병이었다.

 

 

 

 

 

 

 

 

스코티는 죽었다.

 

이렇게 놔두고 갈 순 없어. 안 돼.”

 

 

부검입니까?”

 

 

스코티는 희귀병이라 부검까지 해야 한다고 병원에서 이야기한다. 아이의 시신을 그대로 남겨두고 돌아오는 부부의 가슴은 얼마나 아팠을까!

 

 

딸을 상실한 깊은 슬픔의 운을 떼고 있을 찰나에 또 전화가 걸려온다.

 

 

여보세요!”

제발

누구세요?”

당신 스코티 말이오. 당신을 위해 내가 그 애를 준비해놓았소.”

스코티를 잊어버렸소?”

이 못된 새끼야! 네가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어, 이 못된 자식아.”

스코티 말이오. 스코티에 대해서 완전히 잊어버린 것 아니오?”

 

그리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내 손에 잡히기만 해봐.”

 

 

 

전화를 건 사람은 누구였을까? 뺑소니범이었을까?

 

 

 

 

 

 

케이크를 가져갈 거요, 말거요? 나는 다시 일해야 하오. 빵장수들은 밤에 일하오.”

신경 좀 쓰세요. 신경 좀.”

 

 

 

 

상실의 상처와 슬픔, 갑작스런 이별, 준비되지 못한 이별, 상실감을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의 심각함, 아들 스코티의 죽음 앞에서 빵집에 앉아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안 되는> 그 사람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된다. 그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아마 제대로 드신 것도 없겠죠.”

내가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땐 뭘 좀 먹는 일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127p)

 

 

 

빵과 커피와 그리고 별 것 아닌 것 같은 이야기가 오간다.

 

 

 

이 대목에서 눈물이 터져버렸다.

 

 

 

...레이먼드 카버가 또 나를 울컥하게 하는구나!

아픔과 상처, 슬픔과 충격, 당황과 데미지, 그 앞에서 어찌할 수 없는 스코티의 부모, 앤과 하워드....빵집주인이 줄 수 있는 것은 빵 뿐이었고, 그는 자녀도 없었다. 애도 없었다. 근데 그 고통 앞에서의 공감과 그 빵이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변변히 먹지도 못하고 아들의 죽음에 심신이 거덜 난 그들에게 그 빵냄새와 빵의 온기...이미 영업시간은 지났고, 바깥은 깊은 밤으로 가는 깜깜함만 가득한데, 빵을 만들려고 준비하는 빵집 가게만은 환하게 빛나고 있다.

 

 

고통에 대해서 어떤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빵집 주인을 때려죽이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가 내미는 인간적인 제스쳐가 두 부부를 감싼다.

 

 

 

이 냄새를 맡아보시오.”

퍽퍽한 빵이지만, 맛깔난다오.”

 

 

부부는 빵을 배불리 먹었다. 밤새도록 그 빵집 가게에 앉아 있었다.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그들은 이른 아침이 될 때까지, 창으로 희미한 햇살이 높게 비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는데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128p)

 

 

 

레이먼드 카버의 이 단편의 감동이 나를 휘감는다. 그래도 이 감동을 좀 덜어내야 책을 완독할 수 있을 것 같다.

 

 

 

 

 

Epilogue...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기괴하게, 심지어 무섭게 받아들일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존재는 다양하다. 귀여운 강아지와 고양이뿐만 아니라, 고요히 수조 안을 헤엄치기만 하는 열대어이기도 하고, 독방에 갇힌 장기수에게는 창살 사이로 비치는 햇살 한 자락일 때도 있다. 그보다 훨씬 우리를 닮은 존재가 친구가 되어주고, 손발이 되어준다면 어떨까. 도시의 한구석에서 잊힌 채 살아가며 고독사를 두려워하는 노인들이라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먼 훗날의 막연한 공포만을 생각하지 말고 지금 당장 이웃들이 겪고 있는 구체적인 결핍과 고통을 생각해보자. 인류는 아직도 배고프다. 우리는 벌써 발전을 멈출 만큼 멀리 오지 못했다.’(쾌락독서, 227p)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서 햇살의 눈부심은 아랍인을 살인하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안 되는> 신호였지만, 독방에 갇힌 장기수에게 비치는 햇살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살아있음의 기운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의 세월 가운데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시간과 공간이 가득하길 바라. 왜냐하면 문유석의 말대로 우리는 아직도 결핍과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고 인류는 아직 배가 고프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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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4 0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14 0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8-12-14 1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단편은 저도 무척 좋아하는 단편이에요. 마음이 무거운 어느 날에 부러 찾아 또 읽기도 했던 단편이에요. 저 순간 빵집 주인이 내미는 빵이, 저는 정말 별 거 아니지만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이 좋은 소설을 여기서 만나네요.

그나저나, 필체 참 좋으세요!

카알벨루치 2018-12-14 10:20   좋아요 0 | URL
아침부터 칭찬에 배가 부릅니다 ^^ 카버는 어찌 이렇게 글을 쓸까요? 무라카미 하루키도 카버 이야길 하던데 다 서로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듯 합니다! 다락방님 오늘도 즐겁게 꽉차게 보내세요 댓글 흔적 감사합니다 ㅎㅎㅎ

syo 2018-12-14 1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보기엔 공감 아닌 것 같은데요, 문유석 판사님, 전혀 공감 못하신 것 같은데??
그냥 공감할 수 없고 짐작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이해하시고, 양해하시고, 양보하신 것 같아요.
사회는 크고 넓고 복잡해서 살며 마주친 모든 일에 공감할 수도 없는 판이니까, 어쩌면 공감만큼이나, 혹은 공감보다 더 중요하고 귀한 능력 아닐까요? 공감할 수 없는 일에도 이해하고 양해할 수 있다는 것은.

그나저나 애시당초 워낙 뛰어난 사람이셨군요. 아 부러워 죽겠네.

카알벨루치 2018-12-14 11:27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공감이란 것은 그 안에 들어가서 체험해 본 자, 경험해 본자가 고갤 끄덕이는게 공감이지 문 판사님의 태도는 공감은 아닌 듯 하네요 그럼 글 수정해야겠네 뭐라하지? 이해? 내가 영어로도 많이 생각해봤죠 conceieve, accept, hug....다 일소하고 그분이 가진 독서의 내공이 어렴풋이 고3때 뿜어져나온것 같아요 어릴적 독서가 정말 중요하단 생각.


근데 쇼님을 그분 글에서 봤어요! 그 문체가 ...얼마나 반갑던지~ 뒤로 갈수록 조금 달라지긴 해도! 진짜 재밌게 글을 쓰셔서 많이 웃었네요 그 누구처럼 ~ㅎㅎ

그나저나 일등 한 사람의 기분은 어떤건지? 난 무엇으로 일등 함 해보나...아니네요 그것도 내려놓아야죠 일등 하면 뭘 합니까 ㅋ하루의 만족과 하루의 피스가 내게 있음 감사한 것이죠....ㅋㅋ부러우면 지는 것, 난 쇼님이 부럽구만유 ㅋㅋ아니네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 앞에 한 말이 있어서 ...

syo 2018-12-14 12:28   좋아요 1 | URL
<개인주의자 선언> 예전에 읽다가 만 기억이 나네요. 글을 너무 잘 쓰셔서 오히려 빡쳐서 못 읽겠다 했던 기억인데, 그 속에서 저를 보시다니 도대체 뭘 보신 거예요 ㅋㅋㅋㅋㅋㅋ

<개인주의자 선언>도 이 책도 한번 읽어보고 싶구만요. ㅎ

카알벨루치 2018-12-14 12:45   좋아요 0 | URL
쇼님 글이 어때서? 아직도 <강원국의 글쓰기> 리뷰하신 그 글은 심쿵하게 남아있는데요~제가 철학책을 잘 읽지 않아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아 공감이 안되는 부분이 있을거예요 그래서 다른 글보다 강원국의 글쓰기는 비유나 접근이 나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스타일로 감칠맛나게 적었다는 생각을 그때 했더랬어요! <쾌락독서>읽어보면 느낌 나는데~~~ㅎ

문 판사님 50대 초반이실텐데 문체는 아마 독서파트니깐 더 자유롭게 글을 적으신듯 해요

이참에 <개인주의자 선언>도 읽어봐야겠네요 어디 꽂혀있을텐데 ㅎ맛점하세요 쇼군님~

stella.K 2018-12-14 15: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유석 판사는 이미 공공의 적이잖아요.ㅋ
그런데 글을 올리셨다하면 한 편의 알흠다운 논문처럼 쓰시는
카알님께서 1등을 못하셨다고 대놓고 자랑하시면 좀 위험한 거 아닌가요?
1등은 못해도 알흠다운 논문을 쓸 수 있지 않나하는 자부심.ㅋㅋㅋㅋ
왜 그런 책 있지 않습니까?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는 책인가?
전 그런 책이 맞을 것 같아요. 제가 그나마 오늘 날까지 건강을 유지하며 사는 건
열심히 살지 않은 덕이라는 것.음하하~

카알벨루치 2018-12-14 14:57   좋아요 1 | URL
맞아요 1등이 뭐가 중요합니까 그죠?

하루하루 소확행을 추구하면서 나만의 케렌시아를 찾는 2018트렌드형 인물인 저는 적절하게 게으름을 유지하며 사는 탓입니다(근데 이 문장 말아 아상합니다 ㅠㅠ)글쓰는 건 진짜 케렌시아인 듯 합니다 다들 그렇죠? 작가님^^

페크(pek0501) 2018-12-14 2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도, 사진도 간지 쩔어요...
 
쾌락독서 - 개인주의자 문유석의 유쾌한 책 읽기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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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어간다! 오늘 온 책, 하루만에 다 읽어버릴까 조금 남겨둘까 고민하고 있다! 빨리 읽어버리기엔 좀 아까워 아껴 읽고싶기도 하다


이 책 읽으면서 이웃님들 문체가 많이 생각났다 나보다 연배가 많으신데 문체는 훨씬 젊은 듯 하다




가슴에 와 닿은 한 문장이다




“삶은 글보다 훨씬 크다”.....

밑줄긋기 성공했다!!!

아무리 시시하고 소박한 이야기더라도말이다. 글이란 뛰어난 문장만으로 얼마든지 써낼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좋은 글은 결국 삶 속에서 나오는 것 아닐까.
문장 하나하나가 비슷하게 뛰어나더라도 어떤 글은 공허하고, 어떤 글은 마음을 움직인다.
그렇다고 좋은 글을 쓰려면 우선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삶은 글보다 훨씬 크다(18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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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3 2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13 2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8-12-13 2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밑줄긋기 성공을 감축드립니다^^:)

카알벨루치 2018-12-13 23:44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겨울호랑이님 귀여우십니다 축하인사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금방 <쾌락독서>완독 했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후애(厚愛) 2018-12-14 16: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밑줄긋기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책들을 읽다보면 마음에 드는 글들이 있는데 너무 많아서 밑줄긋기 하기가 귀찮아 질 때가 있습니다. ㅎ
한번도 가슴에 와 닿는 한 문장을 발견하지 못했네요.^^;;
거의 여러개 입니다.ㅋㅋ
따뜻한 오후 되시고, 즐거운 주말 되세요.^^

카알벨루치 2018-12-14 17:24   좋아요 0 | URL
후애님 감사합니다~밑줄긋기가 필사나 글쓰길 대신해버리면 안될텐데 뭐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근데 이거 진짜 좀 신기합니다 ㅎㅎ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니콜라이 고골의 입문 소설로 외투를 선택했다.

 

 

 

 

 

 

2

이야기는 단순하다. 만년 9급 문관이었던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의 외투이야기이다. 그는 대단한 집안 출신도 아니었다. 이름부터가 아카키 아카키예비치, ‘아키키의 아들이란 정말 대수롭지 않고, 볼품없는 이름이다. 하지만 아카키예비치는 자기 맡은 정서하는 일을 성실하게, 충실하게 하고도 남는 친구였다. 그의 열성에 맞추려면, 적어도 ‘5급 문관정도의 대우는 해줘야 한다. 하지만, 그가 근속해서 얻은 것은 독설가 동료들의 표현대로라면 단춧구멍의 훈장 걸쇠와 치질뿐’(15p)이었다. 아카키예비치는 한 달 급료가 400루블이지만, 그는 늘 자기 일에 하루하루를 만족하며 살았다. 말 그대로 평범한 소시민,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이다.

 

 

심지어 누구에게도 조언을 해 본 적이 없고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인생길에도 흩뿌려져 있는 여러 불행만 아니었다면 아마 노년까지 그렇게 흘러갔을 것이다.’(19p)

 

 

 

 

 

 

그런데, 한해 겨울 페테르부르크에 강력한 적이 나타났다. 바로 그것은 북쪽의 한파였다. 그 한파를 이겨낼 유일한 자구책은 바로 얇고 초라한 외투였다. 그런데, 그 외투에 문제가 생겼다. ‘속이 비칠 정도로 해졌고 안감이 찢어져 너덜너덜 해져버린 것이다. 그는 수선사 페트로비치에게 찾아가 외투수선을 맡겼다. 하지만, 수선사는 도저히 수선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미 외투가 닳을 대로 닳았고, 완전히 옷이 삭은 것이다.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에게 충격적인 말을 수선사가 던진다.

 

 

 

 

 

 

외투를 새 것으로 하나 장만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27p)

 

 

아카키예비치에겐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옷값은 150루블, 거기다가 좀 더 낫게 담비가죽, 비단안감까지 대면 200루블은 족히 나간다고 했다. 여차여차해서 80루블로 새 외투를 맞추기로 했다. 반년 동안 모은 동전의 총액을 은화로 바꾸었던 그는 몇 년 동안 모은 돈 40루블이 전부였다. 그는 저녁에 촛불도 켜지 않고, 속옷도 빨리 닿지 않도록 속옷 빨래도 덜 맡기고, 집에 돌아오면 속옷을 일부러 벗어놓고 실내복만 걸치고 생활했다. 저녁마다 굶는 것도 완전히 습관화시켰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더니, 국장이 예상외의 보너스를 주었다.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60루블을 보너스로 받았고, 그리하여 여윳돈 20루블이 졸지에 생긴 것이다. 두세 달 정도를 굶은 끝에 그는 정말로 80루블을 모았다.

 

 

 

 

 

 

 

5

페트로비치는 마침내 새 외투를 그 앞에 가져왔다.

      

그날은....정확히 무슨 요일인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페트로비치가 마침내 외투를 가져온 그날은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의 생애에서 가장 장엄한 날이었을 것이다.’(35p)

 

 

아카키 아카키예비치가 출근하기 직전에 외투가 와서 그는 그 자랑스런 외투를 입고 출근할 수 있었다. 고골은 아카키예비치의 외투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실제로 새 외투는 두 가지 이점이 있었다. 하나는, 따뜻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분이 좋다는 것이었다.’(38p)

 

 

다 떨어져서 너덜너덜해지고 부끄럽기 짝이 없던 외투, ‘실내복 같은 외투가 사라지고 날개 같은 새 외투를 입은 아카키예비치는 직장의 관리들의 구경거리가 될 정도였다. 축하 인사는 곧 계장에 의해 축하파티로 이어졌다. 새 외투를 걸친 아카키예비치를 축하하고 자신의 명명일(命名日)파티를 겸하게 된 것이다. 새 외투를 샀다고 축하잔치를 벌였다. 과연 그게 진정한 축하인가? 고골은 이렇게 적고 있다.

 

 

마침내 관리 중 한 사람인 어떤 계장이 자기는 전혀 오만 사람이 아니며 심지어 자기보다 직급이 낮은 사람들과도 교제한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듯 말했다.’(38p)

 

 

 

 

 

 

직장 상사의 파티초대는 결국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벌써 몇 년째 저녁에 거리에 나가지 않았던인물이었는데, 새 외투 덕에 외출하게 되어 기분이 좋아졌다. 파티에 갔지만, 파티의 주인공은 계장이었고, 자신은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소음, 말소리, 사람들의 무리, 이 모든 것이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에게는 어쩐지 낯설었다. 그는 무엇을 해야 할지, 손과 발을 어디에 두고 몸 전체를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44p)

 

 

마치 물과 기름처럼, 아카키예비치는 그 무리에 합류할 수가 없었다. 본질적으로 어울릴 수가 없는 구도였다. ‘정말 그 자리에 내가 없었음하는 그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7

정미경의 단편소설집 『내 아들의 연인에 보면 <내 아들의 연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잠시 보면,

 

아들 현이는 유복하게 자란 애인데, 그의 애인, 도란이는 컨테이너 박스에 아버지랑 산다. 그래도 용케 박사과정까지 자기가 벌어 공부한다.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났을까? 현이의 엄마는 도란이를 이쁘게 보고 점수를 준다. 예의가 바르고 요즘 애들처럼 발랑 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화점에 가서 명품 옷 선물도 해주기도 하고 많이 챙겨주고 싶은 딸같이 여기는 아들의 연인이었다. 그런데, ‘아들의 연인도란에 대해 엄마는 점점 그 격차를 느낀다.

 

 

뼛속 깊은 데서 나오는 다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도란이 나이는 남대문 좌판에서 산 옷을 걸쳐도 깜찍하고 눈부실 나이지만, 여기, 이곳에서는 아니었다. 졸지에 옷 하나 유행 따라 차려입지 못하는, 보살핌 없이 자란 처녀티를 내며 무르춤해서 서 있는 도란이 대신 내가 몇 가지 옷을 골라 봤다.....도란이는 어쩐지 눈에 안기는 구석이 없는 아이, 무얼 입혀도 때깔이 나지 않을 아이처럼 미워 보였다.’(142p)

 

 

 

도란이가 제일 먹고싶어하는 팥빙수를 현이 엄마가 소원대로 사주었다. 현이 엄마는 느낀다.

 

 

난 팥빙수를 그렇게 맛있게 먹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154p)

 

 

현이 엄마가 느낀 감정은 다름’, ‘차이에서 오는 거대한 벽이었다. 맛있게 먹는 것이 그냥 맛있게 먹는 단순한 차원을 넘는다......그 틈은 좀체 메워질 수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흔히 신데렐라의 이야기를 하면서 신데렐라가 왕자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에 혹하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정작 나이가 들고나서 신데렐라 이야기는 정말 말 그대로 신데렐라 이야기, 동화 속의 이야기가 아닐까 그런 질문을 던지지 않는가! 송충이 솔잎을 먹고 자라야 한다는 뭐 그런 이야기. 왕자와 결혼해서 과연 왕후로서의 그 모든 격차와 차이와 이질감과 벽들 가운데서 그 벽들을 익히고 느끼고 배우면서 왕자와 이혼하지 않으면, 쫓겨나지 않으면 행운이 아닐까? 내가 너무 비관적인가! 그게 현실적이지 않은가! 뭐 그런 상상을 해 본다.

 

 

 

 

 

 

8

그렇게 따지면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느끼는 이 보이지 않는 벽이란 것이 소위 사람은 모두 다가 평등하게 태어났다고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다르게 대하는 이런 태도와 관점과 시각과 차이는 어찌할꼬! 현이와 도란이가 그러했다. 현이는 도란이가 컨테이너에 산다고 해서 헤어진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결코 넘을 수 없는 벽, 넘고 싶지 않은 벽이 도란이에겐 있다고 말한다. 좋은 게 좋은 것인지 모르고, 그것을 취할 줄도 모르면서 뼈저린 가난에 살아온, 그것도 컨테이너에서 자라온 도란이와 호의호식하면서 부유한 계층에서 자란 현이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했던 것이다(혹여나 컨테이너에서 산다는 말로 인해 독자 분이 마음 상하지 않았음 한다. 우리가 사는 것은 다 다르기에)..

 

 

 

 

 

다시 외투의 이야기로 돌아오자. 자신의 피 같은 노력과 수고와 행운으로 그는 새 외투를 걸치고 온 파티는 자신의 있을 곳이 아니었기에 그는 조용히 빠져나온다. 그렇게 빠져나와도 파티의 주최자인 계장은 그를 시선에도 두지도 않기에 붙잡지도 않았다. 그냥 한낱 9급 문관, 일개의 9급 문관에 불과했지, 외투 타령한 것은 허울 좋은 이야기에 불과했던 것이다.

 

 

나오려고 하는데, 들어올 때 걸쳐둔 자신의 외투가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자신의 자랑거리이자, 자신이 가장 애지중지하는 모든 것의 상징이 바로 그 외투였다. 그 외투가 떨어져 있다니! 외투가 떨어져 있다니 뭔가 불길한데...

 

 

 

 

 

 

10 

이건 내 외투야!”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그는 불한당의 습격을 받는다. 외투 때문이다. 외투를 빼앗긴다. 그는 발길질을 당하고서 만신창이가 되어 눈 위에 나자빠져 정신을 잃었다.

 

 

 

 

 

 

11

아카키예비치의 '외투 강탈 사건'은 순조롭게 조사가 진행되지 못했다. 심드렁한 경찰서장은 외투를 잃어버린 피해자의 입장을 헤아리기는커녕 딴 질문만 해대고 있었다. 외투를 강탈당한 사건으로 인해 그는 태어난 지 처음으로 자신의 직장에 결근했다. 직장동료들인 관리들은 아카키예비치의 사정을 알고서 동정하여 그를 위해 모금을 했지만, 푼돈이었다. 그는 경찰서장보다는 고관을 찾아가는 게 낫다는 주변 관리의 조언에 고관을 찾아가지만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 고관은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의 외투를 찾아 줄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질책성의 모욕만 퍼부어댔다.

 

 

당신이 지금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지 아오? 당신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군지나 아오? 당신은 알고 있소? 알고 있느냐고? 내가 당신에게 묻고 있쟎소.”(57p)

 

 

 

 

 

 

12

아무런 소득도 없이 돌아온다. 낙담하고 절망한 채...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페테르부르크의 강력한 추위, 한파 덕분에 병은 더 악화되었다. 그에겐 이제 새 외투가, 바람막이가, 보호막이 없었다. 의사는 찜질 처방만 해주고 떠났다. 의사는 하루 반이 지나면 죽음의 고비는 넘길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카키예비치는 계속 헛소리를 해댔다. 꿈속에서, 현실에서 페테로비치에게 옷을 만들어 달라는 둥, 집주인 여자에게 도둑을 잡아달라는 둥, ‘새 외투가 있는데 왜 낡은 외투가 자기 눈 앞에 걸려 있냐고 묻기도 했다. 때로는 각하, 잘못했습니다!’란 말을 욕을 섞어가며 해댔다.

 

 

다만 두서없는 말과 생각이 하나같이 똑같은 외투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외투가 있었다. 외투, 외투, 외투.....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에겐 외투가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13

    

그리고, 그는 죽었다.

 

 

 

 

 

 이렇게 갑작스런 죽음은 『체호프의 단편선』에서 등장하는 <관리의 죽음>과 닮아 있다. '그는 죽었다'....독자들에게 주인공의 죽음에 대해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았던 체호프와는 달리, 고골은 어느정도 죽음을 예고하지만, 여전히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의 급사는 당황스럽다.

 

 

그에게 남겨진 것은 거위 깃털 펜 한 묶음, 관청에서 사용하는 백지 한 뭉치, 양말 세 켤레, 바지에서 떨어진 단추 두 세 개, 그리고 .....실내복 같은 낡은 외투가 전부였다.’(59p)

 

 

 

 

 

 

14

한 사람이 불쌍하게 죽었다. 그것도 외투 때문에 죽은 것이다. 어떤 이에겐 불필요하고 대수롭지 않는 것이, 어떤 이에겐 생명과도 같이 여겨지는 것이다. 피츠제랄드의 위대한 개츠비의 문장이 생각 난다.

 

 

누군가를 비판하고자 할 때 모든 사람이 너처럼 유리한 상황에서 자라난 것이 아님을 기억하렴”(의역했음).

 

    

 

 

 

 15

영화 오두막에서 보면, 남자주인공 맥이 오두막에서 자신의 과거를 보게 된다. 맥의 어린 시절은 술주정뱅이 아버지에게 폭력과 구타를 점철되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13살에 집안의 술병에 살충제를 타놓고 가출해버린다. 아버지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던 맥, 하지만 가출한 후 평생 마음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죄책감...영화에서는 술주정뱅이 아버지의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 가 보여준다. 아버지도 상처받을 만큼 받으면서 자란 불쌍한 인생이란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그 대목이 나는 인상적이었다. 고통에 대한 공감이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았던 용서가 영화에서는 이루어진다.

 

    

 

 

 

 

16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정말 고관 앞에서 찍 소리도 못하고 신음하면서 그렇게 죽어가야만 하는 인생이었던가! 외투 한 벌 마련하기 위해 몇 달을 굶기까지 하면서 그렇게 처절하게 삶을 대했던 인물에게 그 외투를 빼앗아가는 이 이야기의 구조는 현실과 너무나 닮았다는 데서 울분이 터지고 비애가 느껴진다.

 

 

 

 

 

 

17

구약성경에 보면 악한 왕이었던 아합왕과 그의 아내 이세벨이 등장한다. 남편보다 아내가 더 사악한 여자였다. 아합 왕이 왕궁 근처에 있는 나봇의 포도원이 탐이 났다. 하지만 나봇은 조상들의 유산이기에  그 포도원은 절대로 팔 수 없다고 왕의 제언을 거절한다. 나봇이 상심한다. 하지만 이세벨은 남편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다독인다. 그리고서 신하들을 불러 모함을 하여 나봇을 죽이고 나봇의 포도원을 아합에게 준다. 파렴치하기 짝이 없는 커플이다. 그렇게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그 두 사람의 최후는 처참하다.

 

 

 

 

 

 

 

18

아합이 길르앗 라못에서 전쟁을 하던 중에 무심코 쏜 적군의 화살에 맞았다. 부상이 심하지 않아 빨리 치료하고자 전쟁터에서 빠져나가고자 했다. 하지만, 웬걸 전쟁이 너무나 맹렬하여 아합은 전차 바닥에 피를 다 쏟고 저녁에 죽었다. 그의 병거에 흘린 피를 창녀들이 목욕하는 곳에서 씻는데, 그 피를 개들이 핥았다고 전한다. 바알이란 우상숭배자였던 악녀, 이세벨은 후에 예후에 의해 창밖으로 던져진다. 그녀의 육신은 사방으로 튀었고 사체를 수습하고자 하니 두골과 발과 손만 찾았을 뿐, 나머지는 시체도 못 찾았다. 성경의 예언자 엘리야의 '개들이 이세벨의 살을 먹을지라'(열왕기하 9:36)는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고 예후는 말한다. 성경에서 이세벨은 악녀, 우상숭배자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성경은 무고한 자를 향한 갑질의 고통을 가하는 자에 대한 심판의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나봇의 포도원 문제로 아합과 이세벨을 꾸짖는 예언자, 엘리야

 

 

 

 

 

 19

 작가 고골은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를 그렇게 불쌍하게 죽게 내버려두는가? 고골은 우리 독자들의 상심한 마음을 그만의 방식으로 그렇게 방치 해 버리지 않는 데서 희망적이다. 결말에서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의 원혼을 위로해주는 고골의 터치가 부드럽다.

 

 

 

! 바로 너로구나! 마침내 너를, 네 옷깃을 잡았다! 난 네 외투가 필요해! 날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그렇게 책망하다니, 이제 네 외투를 내놔!”(68p)

 

 

 

 구약성경에서 등장하는 두 인물은 악한의 표상으로 등장하지만, 이 작품의 고관은 아주 단란한 가정의 '훌륭한 남편이자 존경받는 아버지'(65p)로 작가는 표현한다. 그렇게 악한 인물로 비쳐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말이 칼이 되었을때,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의 마음은 더 이상 삶을 추스릴 수가 없게 되었다. 열병으로 급사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더 이상 어떤 것도 바라지 않았다. 유령이 되어서도, 고스트ghost가 되어서도‘이제 내 외투를 내놔! 이제 네 외투를 내놔!’만을 외치고 있다......

 

 

 

 

 

 

 

20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최규석의 만화 『송곳』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다.

 

 

 

 

 

 

 

 

 

노조활동을 하던 주인공이 부서를 이동하게 되었다. 회사의 미운 털이 박힌 노조의 해드인 주인공의 자리에 컴퓨터가 없는 것이다. 푸르미 기업을 향해 그가 할 말을 한다.

'내 책상에는 컴퓨터가 없다....'

(근데, 종영된 <송곳>드라마도 있었네...참 나는 무인도에 사는 것 같구나! ㅎㅎ)

 

 

 

 

 

 

 

 

 

Epilogue...

 

 

고골은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첫 대목에 이런 문장을 남긴다.

 

 

'요새는 개인도 누구나 자신이 당한 일을 사회 전체가 당한 모욕으로 생각한다.'(9p)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아카키의 아들들'이 보인다. 2의 아카키 아카키예비치, 3의 아카키 아카키예비치......그들의 '외투'를 좀 찾아주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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쟝쟝 2018-12-12 1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리뷰로 소설을 한편 다 읽어버렸습니다... 읽는데 저에게도 아카키씨의 외투 같은 것이 있네요.. 아끼고 아껴서 겨우 살 수 있는??? 맥북이요... 내년엔 책 지출을 줄여서 맥북을.... ㅎㅎㅎ

카알벨루치 2018-12-12 11:55   좋아요 0 | URL
ㅎㅎ 소설리뷰를 너무 노출심하게 해서 다른분들 이 책 못 읽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쩝~맥북 좋지요! 전 어느 순간부터 기계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았습니다 나이탓이기도 하고...근데 책은 좀 안되네요 ㅎ

쟝쟝 2018-12-12 12:03   좋아요 1 | URL
읽고 싶어졌어요. 동화같은 소설이네용... 현대의 아카키들에게 외투 처럼 약간 무리해서라도 필요한, 갖고 싶은 물건이 있다면 그건 맥북이라고...제 욕망을 투사해봅니다 ㅋㅋㅋㅋ

카알벨루치 2018-12-12 12:06   좋아요 1 | URL
읽고싶어졌다니 진짜 다행입니다 일러스트 그림이 있어 잘 읽힙니다 고골을 그렇게 읽을수 있다는게 얼마나 좋은지요~~~ 저도 한 때 맥북 노랠를 불렀죠 위시리스트에 빠지지 않는. 근데 지금은 그냥 그래요 ㅎㅎㅎㅎ욕망하고픈 물건이 있다는 것도 좋아요 😀

cyrus 2018-12-12 17: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골의 <외투>는 열린 해석을 할 수 있는, 흥미로운 작품이에요. 고골이 쓴 <코>도 좋았어요. ^^

카알벨루치 2018-12-12 17:20   좋아요 0 | URL
<코>도 읽어봐야겠네요 ㅎㅎ
 
20세기 사진 예술
쾰른 루트비히 미술관 지음, 주은정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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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기의 사진이 거기에 진열되어 있었다. 거기엔 전쟁, 피난길, 탈출, 가난, 사물, 사람들, 예술, , 마릴린 몬로, 윈스턴 처칠, 찰리 채플린 ....20세기의 모든 사람들이 있었고, 20세기의 사건과 사고가 거기 있었다. 존재의 흔적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져 있었다. 사진만 두어 번 보았다. 대출도서라 더 붙들고 있을 수가 없었다. 책장을 덮으니 20세기가 끝이 났다. 삶은 사라지고 인간은 사라지지만 남은 것은 오로지 기록이다. 사진의 기록이다. 그 기록, 삶의 기록이 때론 악취가 될 수도 있고, 때론 향기가 될 수 있겠다 싶다.

    

 

사진이란 것은 내 나름대로 정의하건대, ‘한 순간(one moment)에다 의미를 부여하여 방점을 찍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0세기는 지나갔고, 우린 21세기를 살고 있다. 나 또한, 삶의 막바지에 다다라서 우린 21세기의 끝자락 아니 그 어느 지점에서 마침표를 찍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서 나 자신과 또한 다음 세대, 후세들이 마침표를 찍은 우리의 방점들을 뒤돌아보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삶, 인생의 순간순간은 어떤 방점으로 남을까?

 

    

 

사진들을 보면 <무제>라는 제목 없는 사진이 종종 등장한다. 아무리 제목이 <무제>라도, 그래도 사진이 좋으면, 사진만 좋으면 제목이 무제라는 것이 무슨 흠이 되겠는가?

 

 

 

<무제의 삶>이라......내용만 좋으면, 컨텐츠만 좋으면, <무제>도 감사한 것이고, OK이다! 문득 우리의 삶이 때론 제목없음, ‘제목이 달리지 않은삶이라 할지라도, 삶의 내용과 스토리와 컨텐츠가 좋으면, 사진에서 보여주는 한 컷, 한 풍경, 한 전망, 한 시각이 좋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용납되어질 만한, 환영받을 만한 구색이 아닐까 싶다.

 

 

 

20세기의 사진을 훑어보았는데, 기분이 묘하다. 한 세기가 그렇게 시작되어 그렇게 책으로, 사진으로 배열되어 있다는 것, 그것이 이 책의 장점인 듯하고, 나는 <무제>의 사진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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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12-10 2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동시에 글을 올렸네요.
이렇듯 제가 지켜보고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두고 계시기를 ㅋㅋㅋㅋㅋㅋㅋㅋ

카알벨루치 2018-12-10 22:14   좋아요 0 | URL
무서워 쇼님아~ㅋㅋㅋ

2018-12-10 2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10 2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르트르(Jean Paul Sartre)는 현대사회에서 삶의 모든 주체는 인간이라고 주장하였으며, 까뮈(Albert Camus) 역시 현대사회에서 ()을 믿는 것은 현세의 아름다움에 대한 모욕이며 죄악이라고 주장하였다. 헤밍웨이는 대부분의 작품 속에서 신(God)의 부재(不在)나 죽음을 다루고 있고, 포오크너 역시 신은 아직 존재하되 너무 늙어 인간에게 더 이상 아무런 힘도 행사할 수 없다고 주장하여 사실상 신(God)의 존재를 무시하고 있다.

    

 

 

 

모더니즘 소설이 전통적인 작품과 두드러진 차이를 보이는 것은 plot의 구성이나 주인공의 성격묘사에서 보다 관점(Point of view)의 다양한 사용 방법이다. 소설의 기법에서 중요한 영역을 차지하는 전통적 시점인 전지적 시점(omniscient point of view)의 오랜 관용에서 탈피하여 복수시점을 시도하기도 하고 1인칭 시점을 많이 사용하는데 인간의식의 흐름을 표현하면서 언어의 유희와 같은 새로운 내러티브 전략을 시험하기도 한다.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The Sound and the Fury)는 이러한 모더니스트기법을 성공적으로 성취한 대표적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의식에 대한 새로운 표현 방법의 추구와 더불어 모더니즘 소설들은 시간의 개념에 관한 새로운 변화를 추구한다. 모더니즘 소설에서 '시간'은 무엇보다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며 심리적인 특성을 나타낸다. 즉 인간 의식은 과거와 미래, 추억과 회상 또는 새로운 꿈과 기대가 끊임없이 혼합된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아울러 모더니즘 작가들은 시간을 작품의 중심 주제로 삼기 시작한 것이다.

    

 

 

 

윌리엄 포오크너는 소리와 분노에서 몰락하는 한 남부 명문 가문의 비극적 가족사를 통해 인간은 누구나 시간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시간을 다루는 새로운 기법 중에서도'의식의 흐름'이나 '내면적 독백'의 수법은 모더니즘 소설의 특징으로 부각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의식의 흐름'기법은 등장인물의 내면적 의식의 흐름을 표현하기 위한 기교이며 '내면적 독백'은 말해 주는 화자의 존재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서 토막 난 단편적 의식을 독자에게 가능한 한 직접 전달하기 위해 사용되는 기법이다. 제임스 조이스는율리시즈에서 내면적 독백의 기법을 너무나 효과적으로 활용하였고, 윌리엄 포오크너 또한 소리와 분노의 '퀜틴의 장'에서 성공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모더니즘 작가들은 인간 의식의 복합성과 시간의 새로운 유동성을 효율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소설이 갖는 공간적인 제약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전통적인 소설에서는 주인공의 인생 편력을 연대기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작품의 시간적 길이가 보편적으로 길었으나 모더니즘 소설에서는 주인공의 삶 가운데 오직 하루만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시간을 평면적으로 파악하는 대신 입체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는 '블룸의 날'로 부르는 1904616(목요일)하루 동안에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윌리엄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도 하루 동안에 일어난 사건을 다룬다. 1부 '벤지의 장'192847(토요일), 2부인 '퀜틴의 장'191062(목요일), 3부 '제이슨의 장'192846(금요일), 4부 '딜지의 장'192848(일요일)을 각각 시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모더니즘 작가들의 또 다른 특징은 작품에 신화(myth)를 이용하는 것이다. 엘리어트(T.S.Eliot)는 제임스 조이스가 정신적 공허감과 황무지 의식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역사를 통제하여 그것에 어떤 형체와 의미를 부여하는 한 방법으로 작품에 신화를 끌어들인 것을 높이 평가했으며 엘리어트 자신도 자신의 작품인 황무지에서 종교적인 신화와 전설을 사용하여 전통적인 가치관을 상실한 채 방황하는 현대인의 정신적 황폐성과 무질서에 상징적이고 시적인 질서를 부여하는 효과적인 장치로 활용하고 있으며 윌리엄 포오크너도 작품 속에 구약성서의 기독교적 신화를 활용하고 있다. 이처럼 모더니스트작가들은 신화를 어떤 메시지로 활용하는 것보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할 뿐이다

 

 

 

 

한편 인간이 의식하는 진리는 객관적이거나 절대적일 수 없다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따른 회의주의(skepticism)는 모더니즘작가들에게 작가 개인의 해석의 주관성을 뒷받침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기성의 소설형식과 기법에 대해 회의적 태도를 갖게되는 기반이 되기도 했다. 그들은 또한 삶의 가치와 본질에 회의하는 실존주의 철학에도 매혹되어 20세기 현대사회의 인간조건을 비관적 허무주의 관점에서 보려고 하였다. 따라서 1차 세계대전 이후의 현대사회의 상황을 도덕적 및 정신적 황무지로 간주하는 황무지의식은 엘리어트의 황무지에서 가장 훌륭하게 표현됬으며 윌리엄 포크너, 어네스트 헤밍웨이, 제임스 조이스 등은 현대사회의 도처에서 발견되는 삶의 공허감과 허무주의를 자신의 작품에 개성적으로 묘사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또한 모더니즘 소설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자신의 운명은 자신이 결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며 전통적 기준에서 바라보면 그들의 삶이 불안하고 불확실하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자신의 인생을 새로운 관점에서 주관적으로 창조하고자 하였다.

 

 

 

 

*. 이걸 내가 대학때 썼단 말인가! 내가 미쳤구나! 먼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구만. 어째 나이가 들면서 더 멍청해지는 듯 하다.어쩔 <소리와 분노> 제대로 읽어보려고 샀는데, 기억에 없는 걸 보니 제대로 안 읽었나 보다. 햐...어쩔 100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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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12-08 1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십니다 - 대학교 때 포크너를 ㅋㅋ

전 아직 포크너 책은 한 개두 안 읽었네요.
책은 가지고 있지만 말이죠.

카알벨루치 2018-12-08 21:27   좋아요 0 | URL
좋은게 얼마나 좋은건지 모르고 억지로 했던 머 그런거 있쟎아요! 다시 수업 듣고싶은 마음이네요...ㅎㅎㅎ마르케스가 포크너를 좋아했죠...

syo 2018-12-08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떡잎부터....

카알벨루치 2018-12-08 23:18   좋아요 0 | URL
어디서 이것 저것 보고 짜집기 한거 겠죠 떡잎 이야기 나올라믄 멀었죵 ㅋㅋ

북프리쿠키 2018-12-09 1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학때 게임과 연애 딱2가지 했다는 -.-

카알벨루치 2018-12-10 07:01   좋아요 1 | URL
저두 저두!!! ....Under attack....뭐 이런거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