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 한 팀이 된 여자들, 피치에 서다
김혼비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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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오늘 제가 1골 1도움으로 A매치 데뷔골을 기록했습니다 역사적인 날이라 기록을 반드시 남겨야겠다 싶습니다! 오늘의 친선경기는
1쿼터 2:0 승
2쿼터 0:2 패(벤치워머로 쉼)
3쿼터 1:0 승
4쿼터 4:0 승(1골1어시스트기록)
..........

경기를 몇 시간동안 했는데, 쿼터가 더 많은 듯한데 기록이 제대로인지 모르겠네요 중요하고 정확한 것은 제가 1골 1어시스트를 했단는 것! 경기 말미에 갑자기 심장마비가 온 회원이 있어 119부르고 심폐소생술 하고 큰일 날 뻔했으나 다행히 병원에서 입원해서 회복중에 있습니다 정말 천만다행입니다 회복중인 회원님의 쾌유와 회복을 위해 기도합니다!


늘 지는 것에 익숙했던 저희 팀이 오늘 제대로 승리한 하루입니다!

1골1어시스트!!!
아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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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8 2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19 0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알벨루치 2019-02-19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쉬나 유치스랍네요 내가 20년만 젊었어도 안 부끄러울껀데 ㅜㅜ

cyrus 2019-02-19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기 한 쿼터에 몇 분 동안 진행되나요? 저는 전, 후반 30분씩 하는 줄 알았어요. 1골 1도움이면 MOM에 선정될만한 활약입니다. ^^

카알벨루치 2019-02-19 16:25   좋아요 0 | URL
쿼터별로 하는데 시간은 자유롭게 합니다 저희는 아마추어이니(어디서 많이 본 표현인데...ㅋ) 30분, 25분, 20분 하기도 하고 15분씩 전.후반 하기도 그래요 어젠 25분인가, 25분인가 쿼터로 하고 마지막경기는 각각 15분씩 전.후반으로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Mom까지는 아니구요 제가 공격수가 아니고 윙백으로 뛰었네요 ㅎㅎ

stella.K 2019-02-19 18: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쨌든 쓰신 기록이 카알님 소속팀 전적인 거죠?
제가 책을 읽어 본 것이 아니라 잠시 여자 축구의 기록인 건지
어리둥절 했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카알벨루치 2019-02-19 19:31   좋아요 0 | URL
책을 안 올릴려니 그래서 책하나 걸었는데 책 내려겠습니다 ㅎㅎ제 축구 이야기로 만족해야긋습니다~ㅎ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지적 참견 시점>이 아닌 <나혼자 산다> 

   작년부터 즐겨보던 TV프로그램 중에 <전지적 참견시점>이란 방송이 있다. 그 인기는 다들 익히 아실 것이다. 처음에 나는 <전지적 작가시점>이라고 어렴풋이 기억했다. 저 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독자가운데서도 그런 분들이 몇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학창시절에 배운 1인칭 주인공 시점,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뭐 이런 거 있지 않은가! 공부도 잘 안 한 1인인데, 어찌 이럴 땐 기억도 잘 안 나는 내 뇌의 밑바닥에 침전되어 있는 불완전하고 불투명한 데이터를 끄집어내는지 참 우스운 노릇이다. 딸내미가 아빠, 전지적 작가 시점이 아니고, 전지적 참견 시점이야!’라고 몇 번이나 이야기하고 한참 보고 나서야 <전지적 참견 시점>이란 것을 제대로 기억하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 이렇게 뭐 하나 각인시키는 것도 시간이 걸리는 모양이다. 어쩔!

 

근데, 실컷 적어놨더니 기안84가 <전지적 참견 시점>에 나왔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어쩔! 내가 유일하게 챙겨보는 프로그램이 두 개인데, 그게 헷갈렸다. 아....

 

오늘 페이퍼는 <나혼자산다>에 나온 기안84이야기로 시작한다. ㅠㅠ

 

 

만화하면 그분이 생각난다, 삼촌!

   엊그제 방송된 내용에 기안84의 만화회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기안84가 젊은 나이에 만화, 웹툰 회사를 차렸다. 만화를 보면. 만화 하면 떠오르는 분이 한 분 생각 난다. 바로 우리 작은 아버지, 삼촌이시다. 삼촌은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서울로 상경한다. 순전히 만화때문이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언제나 만화에 몰두하는 삼촌이 이런 모습에 대해 만화 그리면 돈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하시면서 역정을 내셨고, 삼촌은 할아버지를 피해 다락방에 올라가서 그렇게 좋아하는 만화를 그리셨다. 삼촌이 그린 그림들과 습작노트는 전부 내 차지였다. 그걸 보면서 삼촌의 그림솜씨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삼촌은 당시에 문화자체에 만화가 끼어들 틈이 없던 시기였고, 만화라는 장르에 대해 사람들은 그냥 만화방에서 양아치나 공부 안하는 농땡이들이 보는 그림책 정도에 불과했다. 사회적 인식이 그러했다. 어쨌든 삼촌은 자기가 좋아하는 만화라는 하나의 무기만을 가지고 홀홀단신으로 상경한 것이다. 그리고 성공하셨다? 물론 성공하셨다. 당시에 이름을 걸고 하는 만화가가 있었던 반면에, 화백 밑에 들어가 그림을 그려주면서 일당을 받는 케이스가 있었는데, 삼촌은 후자를 선택했고, A4지 한 장당 몇 만원씩 받았으니 할아버지 눈에는 정말 돈도 안 될 것 같은 만화를 통해 자수성가를 한 셈이다. 집도 사고 결혼도 하고 가정도 이루고...그런데, IMF가 문제였다. IMF가 터질 때 등장한 것이 인터넷이었다. 그 인터넷으로 통해 온라인 시장이 등장했고, 만화라는 종이책이 인터넷의 스크린책으로 둔갑할 기미가 보였다. 그때 많은 실업자가 생겼고 만화계에 닥친 충격도 만만찮았다. 그리고서 삼촌은 그토록 좋아하는 만화를 접었다....삼촌의 그림 솜씨는 정말 탁월했는데...그 피를 이어 받아 나도 만화가를 해보고 싶었는데, 꿈이다.......

 

 

 

만화의 불투명한 미래

   세월이 많이 흘렀다. 우연히 삼촌과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삼촌이 웹툰이 이렇게 발전할지 알았다면 당신 자신도 계속 만화를 할 것인데, 라는 후회 가득한 고백을 하셨다. 만화를 좋아하는 나도 인터넷이 등장할 당시만 해도 만화, 종이, 아날로그는 사장할 기세였다. 만화가인 당사자 삼촌께선 얼마나 더 큰 충격을 받으셨을까! 지금 삼촌은 이 사업, 저 사업 하시다가 만화와는 거리가 먼 업종에 종사하고 계신다. 그래서 삼촌의 이름으로 만화를 한번 출판했음 좋겠다고 운을 뗐는데, 삼촌께서 틈틈이 삶의 한켠에서 느낀 사색과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하셨고, 기회가 된다면 책으로 내볼까 하시는 생각도 하고 계셨다. 그래서 내가 응원한다고 했다. 삼촌은 나의 어릴 적 우상이었는데...

 

 

 

삼촌의 뒷통수를 치게 만든 웹툰

   그 웹툰이다. 삼촌의 뒷통수를 치게 만들었던 웹툰! 웹툰이 돈이 된다는 사실에 많은 만화가 지망생들이 달려들 것이다. 4포 시대에, 취업도 안 되는 이 시대에 웹툰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불어 넣어줄 수 있는가! 다행이다. 젊은이들을 올인하게 만드는 직종이 하나 자리매김했다는 것 자체가 말이다. 솔직히 이전에는 만화가라면 누가 거들떠봤는가! 대형 베스트작가인 허영만, 이현세(첨ㅇ엔 나는 이현세를 이문세로 적고 이현세로 보고 있었네, 어쩔!)...요즘의 윤태호, 웹툰 작가들이 등장하기 전까지의 과도기에는 만화계에 진출할 엄두를 다들 내지 못했던 것이다. 삼촌께서도 만화에 대한 불투명한 미래와 예견을 후배들에게 해주었는데, 그래도 그 중에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에 올인한 친구들은 성공한다는 에피소드를 말씀해주기도 하셨다. 만화...아뜩하다!

 

 

다시, 기안84이야기로

   거기서 5명의 직원들과 일하는 모습들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6명이 회사인 셈이다. 기안84, 젊으니깐 소탈하고 거리감 없는 모습들이 좋은 시너지 효과를 얻게 될 것 같다. 그런데, 내가 거기서 본 것은 프로페셔날한 기안84가 직원들에게 웹툰 컷에 대해 세세하게 설명하고 충고하며 케어하는 장면이었다. 이미 웹툰작가로 명성을 굳힌 기안84의 레벨에 미치지 못하는 직원들의 화면터치나 그림들을 기안84는 날카롭게, 치열하게 업그레이드시켜주면서 마감을 하고 있다. 웹툰작가에겐 마감’deadline시한이 중요하니깐! 마감이 얼마나 중요하면 사훈으로 그렇게 마감시한을 앞당기자는 슬로건을 내걸었을까!

 

 

 

무심 이병욱의 <그분을 기억한다>

   그 장면을 보니 무심 이병욱님의 첫 번째 단편소설 중 <그분을 기억한다>가 생각이 난다. 시골초등학교로 전학 온 도시학교의 미술부 출신의 주인공, 그의 그림을 보면서 미술부 선생이 감탄을 자아냈다. 그의 그림은 종종 상을 탄 이력도 있다. 그리고 새롭게 오신 의욕이 불탄 미술부 선생님, 그는 금요일 오후, 토요일 오후까지 미술부원들에게 그림연습을 시킨다. 때론 일요일에도 나와서 연습을 시킨다. 그리고 섬세하고 디테일하게 아이들에게 미술지도를 한다. 그리고 대망의 전국 어린이 그림그리기 대회가 덕수궁에서 열렸다. 새벽부터 준비해서 상경한 시골학교의 미술부 친구들이다. 무언가 하나 대박을 터틀릴 것 같은 의욕으로 가득 무장한 미술선생님은 대회를 마치고 내려올 때도 꿈에 부풀어계셨다. 아이들도 물론이다.

 

나 참, 버스에서 사이다 박사를 내린다는 것을 잊고 말았구나! 미안하다. 내가 출장비 받은 게 많으니까 사이다를 두 병씩 사 주마. 그깟 놈의 사이다가 문제냐, 우리 미술반 모두가 상을 휩쓸텐데!”(210p)

 

드디어 대회입상결과가 발표되었다.

어쩔! 한 사람도 입상하지 못했다.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시골학교에서 미술지도에 공을 얼마나 들였던가! 그 충격은 아이들에게도 상처였다. 주인공은 그림그리기를 접었다. 미술지도 선생님도 그 사건 이후로 학교에서 보이지 않았다. 여러 가지 무성한 소문만을 남긴 채!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오래전부터 도제식 교육이 많은 효과를 누린 것은 사실이다. 위대한 왕, 알렉산드로스를 알렉산드로스로 만든 것은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위대한 스승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모방은 제2의 창조라는 말이 있듯이, 모방을 통해 더 나은 창조, 재창조가 이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위대한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스승 베로키오는 제자의 그림 솜씨를 보고는 '다시는 물감에 손대지 않겠노라'고 맹세한 기록이 있다고 한다. 이 당시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나이가 스무 살이었다. 하지만 실은 베로키오가 재능 넘치는 도제에게 더 많은 그림을 위임하고 자기는 수익성이 높은 조각상 제작에 전념하겠다는 사업상의 결정을 내렸다고 보는 것도 무방할 것이다. 아무튼 다빈치와 같은 천재라면 스승을 탁월하게 뛰어넘어버려 신경쓸 것도 없다(물론 음악가 살리에리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재능에 대해 거대한 시기와 질투의 괴물에 시달렸긴 하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천재가 아니다. 그러면 이런 도제식 교육이 오히려 젊은 유망주들을 아작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심 이병욱의 <그분을 기억한다>는 바로 그런 케이스이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모방은 모방의 달인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 다빈치 같은 위대한 천재가 아닐 바에야 결국 모방, 카피copy의 카피꾼으로 전락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그 어린 미술부의 유망주들을 낙심하게 만들고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않게 만들었던 그 종국적인 원인은 무언가?

 

 

 

창조의 부재는 동심童心의 부재였다!

의욕 넘치던 미술지도 선생님이 떠나가고 새롭게 선생님이 오셨다.

 

여기 미술반 맞지요? 내가 당분간 미술반 담당입니다. 뭐 미술이라는 게....뭔가 그리는 게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각자 만화를 그려도 좋고 낙서로 그려도 좋고, 여하튼 떠들지만 말고 조용히 그림 그리고 있으면 됩니다. 알았죠?”(211p)

 

   아이들의 모든 것에 어른의 기교와 테크닉과 감각과 시각까지 주입하려고 했던 미술반 선생님의 도제식 교육의 참담한 비극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요근래 인기가 넘쳤던 SKY캐슬이 생각이 난다(근데, 난 그 드라마를 제대로 보지 않았다. 결론도 모른다 ㅜㅜ 드라마를 보지 않기에...)

요즘 헬리콥터 부모가 너무나 많은데, J.S.밀이 그렇게 대단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제임스 밀의 교육 탓이기도 한데, 하지만 제임스 밀의 아들에 대한 ,<주지주의> 교육이 20세부터 아들의 정서적 갈증을 느끼게 만들었다고 한다. J.S.밀의 특이하고도 유니크한 연애와 결혼도 이런 정서적인 갈증, 정신적인 노선에서 연유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밀의 연애와 결혼은 보편적이지는 않은 경우이다.

    

아무튼 부모가 자녀의 교육에, 스승이 자녀의 교육에 얼마나 관여해야 옳은 것일까? 어쩌면 오늘날의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에 대해 나름 생각해 본다. 물론 정답은 없다.

 

 

    

모방과 창조에 대한 귀한 통찰에 대한 그림이 있어 소개해 본다. 과거에 적은 글인데, 그래도 옮겨 본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  나는 지금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읽고 있다. 그런데 이 책 진짜 대단한 책이다. 매 페이지마다 명화를 수록할 정도의 꼼꼼한 챙김과 함께 늘어놓은 곰브리치의 진정한 미술에 대한 자세와 생각들...특히, 마태오의 성서를 기록하는 장면을 그린 그 그림은 참으로 예술, 미술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고 그 미술, 즉 미술의 결과인 작품을 보는 사람에 따라서 평가나 생각들이 얼마나 좌우되는지를 알고 있다. 나는 문득 이 대목을 가만히 생각해보면서 느끼는 것은 미술이란 영역에서 활동하는 그 예술가들, 미술가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 예술적, 미술적 상상력이란 것이 형언할 수 없는 정도의 정신적 크기라는 것에 은근히 압도되었다.

 

​ 

20080129, ...

 

 

특별히 마태오의 성서를 기록하는 대목에 대해서 내가 글을 적어놓은 것을 찾아보니 아마도 분실한 듯.  하드디스크를 뒤져도 없늘 걸 보니 백업하는 와중에 날아간 듯 싶다.

 

기계적인 기술이냐? 창조적인 시도이냐?

  내가 이 부분을 후배들에게 이야기해준 적도 있는데, 아래의 마태오가 성경을 기록하는 장면이다. 왼쪽 그림은 천사가 직접 손을 지시하면서 문자하나 하나까지도 직접 기록에 개입했다는 신학의 '기계적 영감설'과 같은 그림이다. 이를테면, 메신저인 천사나 하나님이 받아적으라고 해서 마태오가 받아쓰기를 하듯이 '받아적는' 장면을 구현했는데, 카라바조는 오른쪽 그림에서 그는 예술적인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런 기계적인 받아쓰기가 아니라 마태오의 개인적인 모든 것을 동원하여 천사와 함께 성경을 기록하는 다소 '창조적인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나는 이 두 그림이 주는 차이가 굉장히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神은 우리가 가진 모든 개인적인 능력과 은사와 창조성과 역량을 무시하고 배제한채 우리를 '받아쓰기용' 정도로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용하실 때 우리의 모든 것, 모든 경험, 더 나아가 우리의 모든 실패와 시행착오와 열등감과 트라우마와 심지어 죽음까지도 통째로 사용하셔서 그분의 나라에 기여하게끔 하실 것이다. 물론 그 기여는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다.

 

 

오른쪽의 그림은 그런 인사이트insight를 내게 주었다.

 

 

20141128일 금요일...

 

    

  이 그림도 굉장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말이 달리는 모습을 굉장히 과장되게 표현했는데, 그림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는 그림이다. 그림은 사진이 아니다. 그림은 사실적인 사진이 아니라 그림은 작가, 예술가의 개인적인 모든 감정과 편견과 의견이 조합되어 드러나는 표현물이다.

 

 

제리코의 그림은 그런 의미에서 창조적이다. 말이 달리는 긴 롱다리가 굉장히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그림만이 보여주는 달림의 힘참과 말의 힘을 느낄 수 있어 이 그림이 특별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순전한 내 생각이다.

 

 

20141128일 같은 시각의 사색...

    

 

 

서양철학사는 힐쉬베르거, 서양미술사는 곰브리치? ㅋㅋ(이것도 과거의 생각이다, 철학의 문외한이 외치는 어불성설을 널리 양해하시길~)

 

 

창조의 부재는 동심의 부재!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자신만의 영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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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2-18 0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참시>에 기안84가 나왔어요?? 헐 ㅎㅎㅎㅎ 기안84도 이제 매니저를 쓰나보죠?? 좋겠다..... 응??

카알벨루치 2019-02-18 09:27   좋아요 0 | URL
악!!!! 실수닷! <나혼자 산다>네 ㅜㅜㅜ

syo 2019-02-18 09:28   좋아요 1 | URL
앗 ㅎㅎㅎㅎ 그런 사연이 ㅎㅎㅎㅎ 속았다....

카알벨루치 2019-02-18 09:32   좋아요 0 | URL
뭘 속아...ㅜㅜ어여 고쳐야겠다 악 ㅜㅜ

2019-02-18 0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18 0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2-18 15: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에 대한 평가를 재고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미 오래전에 페미니스트 미술사가들은 이 책이 여성 미술가에 대한 평가가 박하다고 지적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서양미술사는 ‘곰브리치’ 한 사람의 이름으로 고유 명사화된 상태입니다.

카알벨루치 2019-02-18 17:55   좋아요 0 | URL
제가 미술사는 문외한이라~폭넓은 수용이 필요한 부분이네요 ~

무심이병욱 2019-02-18 2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분을 기억한다‘의 작가 이병욱입니다. 카알벨루치님의 이 글을 이제야 읽었습니다. 님이 도제식 예술교육의 폐단을 날카롭게 지적했듯이, 우리는 어느 때부턴가 예술교육을 한답시고 실제로는 예술성을 망가뜨리는 오류를 범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성찰에서 ‘그분을 기억한다‘가 쓰였습니다. 현대 미술의 거장 피가소 그림에 담긴 것은 아이들 같은 천진만난함(솔직히 말하면 ‘장난‘)이라고 저 무심은 생각합니다. 하긴 피카소 스스로 자신의 그림을 높이 쳐주는 세태를 ‘뭘 모른다‘는 뜻으로 비웃은 적도 있었지요.
 
당신의 아주 먼 섬
정미경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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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지인의 이야기이다.
재벌이 아닌 다음에야 유학시절은 다들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로 추측해 본다. 부담스런 금액이지만, 한번 쯤은 신고 싶은 나이키 에어 신발을 구매했다. 그 새 신발을 신고 볼일을 보고 차에 타려는 찰나였다. 새 신발이라 너무 애지중지한 탓인지, 순간적으로 착각을 한 탓인지, 지인은 그 신발을 살포시 도로 위에 벗어놓았다. 그리고서 차는 출발했다. 도로 위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나이키 새 신발...




정미경의 『당신의 아주 먼 섬』은 그녀의 유고작이다. 남편의 말에 따르면, ‘그녀의 몸을 삭아내리게 했던 그 소설’이라고 한다. 체력적으로, 육체적으로 항상 자신의 한계를 알던 작가는 자기가 감당할 분량만큼만 글을 썼다. 그래서 교수직 제의도 자신의 체력의 분량을 알기에 거절했다고 한다. 그의 남편, 화가 김병종의 이야기이다. 글을 치다가 병원에 들렀는데, 그녀는 다시 자신의 데스크로 돌아오지 못했다. 미완의 삶이고 미완의 인생이다. 그리고 이 원고 또한 정미경이 출력만 해놓고 다듬고 다듬은 완전체의 작품이 아니다. 태아로 치면, 육삭둥이, 칠삭둥이쯤 된다고 보고 싶다. 태아는 세상에 이렇게 작품으로 등장했는데, 태아를 낳은 작가 정미경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미완의 작품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인생 자체가 미완이지 않는가 라고 하면서 화가인 남편은 안타까워하고 그녀를 그리워하는 대목이 더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그게 인생이다.



나는 소설의 내용보다 정미경 작가에 대해, 그의 삶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되었다. 나는 정미경작가를 우연찮게 알았고, 문체나 이야기가 참 세련되었다는 생각에 덥썩 덥썩 잘 읽는다. 그리고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모든 게 만족할만 했다. 근데 정미경의 다른 작품을 읽지 않은 독자라면 이 책을 권하지 않겠다. 하지만 정미경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유고작을 꼭 읽어보길 바란다. 그녀의 미완성의 작품 속에 남겨진 한 소설가의 미완의 인생이 서늘하게 느껴진다. 근데 인생이란게 완성, 완벽이란 게 있을까? 그녀의 이야기 가운데 뭔가 덜 풀어헤친 듯한, 덜 다듬어진 듯한 그 개운치 않음을 남편의 글을 통해 알게 되었다. 아직 나이키 새 신발은 더 신어야하는데...질이 나게 뻔질나게 더 신어야 하는데...그녀의 유고작은 마치 너무 애지중지하게 여기던 나이키 신발을 벗어놓고 인생의 막차는 출발해버렸다...



정미경의 유고작은 도로 위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나이키 새 신발 같구나!

˝할미, 나 돌아가면 보고 싶을 거 같아?˝
˝말이라고, 들어온 자리는 없어도 나간 자리는 있는 겨.˝
˝겨우?˝

˝남의 마음에 자리 하나 만드는 게 쉬운 일인 줄 아냐.˝

할미는 이우더러 술 한 잔을 따르라 하고는 첫잔을 바다에 힘뿌렸다. 다시 한 잔을 청해 넘칠 듯 부은 술잔을 조심스레 입에 대고 달게 마셨다. 뱃전에 팔을 걸치고 앉아 있는 할미 등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보내야 더 좋은 사람이 오는 법이여.˝

배를 띄운 후로, 판도는 없는 사람처럼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먼 하늘에 별 몇 개가 가까스로 돋아났다. 저- 별빛은 지푸라기로 변한 누군가가 놓쳐버린 행복의 순간일 수도 있고 스쳐갔으나 잡지 못한 빛나는 순간이기도 하며 다시는 들 을 수 없는 지상의 음악일 수도, 배는 천천히 미끄러져 포구 쪽 으로 나아갔다. 어이어이. 할미는 이우보다 더 오래 울었다(19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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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2-13 1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로 위의 신발... 왠지 짠하네요.

카알벨루치 2019-02-13 23:53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이 책은 내용이 아니라 읽는과정과 마무리글, 그리고 정미경작가의 삶까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2019-02-13 2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13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뒷북소녀 2019-02-14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정미경 작가.

카알벨루치 2019-02-14 13:47   좋아요 0 | URL
네~^^정미경 작가 넘 좋네요!

자목련 2019-02-15 17:04   좋아요 2 | URL
강력추천, 정미경의 소설 진짜 진짜 좋아^^

stella.K 2019-02-14 14: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 정미경 작가의 책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하도 안 읽어서 중고샵에 내다 팔은 것 같아요.
이렇게 빨리 갈 줄 알았으면 그때 읽어 볼 걸 전 항상
나중에 뒷북입니다.ㅠ
김병종 화가의 아내셨군요.

참고로 쓰신 글 중에 여류라는 단어는 쓰지 말아야할 단어라는군요.
괜히 딴지 걸고 갑니다.ㅠㅋㅋ

카알벨루치 2019-02-14 15:20   좋아요 0 | URL
전 김병종 화가가 누군지 모르는데 아시는군요 전 이 소설책 읽으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여류” 란 단어를 쓰는 것도 차별이라고 생각하시는가 봅니다...단어를 삭제하긴 했습니다만 어쩔!!!

stella.K 2019-02-14 15:06   좋아요 1 | URL
ㅎㅎ대세를 따라야하지 않을까요?
차별이라고 하니 말입니다.
또한 카알님의 신변의 안전을 위하여.ㅋ
기분 나쁘셨다면 용서하시길...ㅠ

카알벨루치 2019-02-14 15:10   좋아요 0 | URL
제가 대세를 잘 읽지 못해 그 단어를 사용했다면 잘못이지만, 제 글에서 전혀 그런 의도는 없는데, 한 작가의 삶에 대한 이야기인데...그냥 씁쓸합니다요 ~

카알벨루치 2019-02-14 15:20   좋아요 0 | URL
장모님이 그런 이야길 하시더군요 혹자는 “다시 태어나면 여자로 태어나고 싶지 않다”는 말...그 말을 꼭꼭 씹어보면 우리나라의 과거역사와 정서가 얼마나 여성에 대한 차별이 심했는가를 알 수 있지요...제가 공부를 좀 하겠습니다~

stella.K 2019-02-14 15:20   좋아요 1 | URL
압니다. 이해합니다.
의외로 모르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저 자랐을 때만해도 그 단어는 늘상 사용했던 단어고 조금도 문제가 안 됐거든요.
시대의 흐름에 맞추는 것도 필요한 거죠.
여성의 권위가 그래도 예전에 비해 향상된 시대를 살고 있으니.
거듭 용서하시길...

stella.K 2019-02-14 15:21   좋아요 1 | URL
댓글 쓰는 동안 또 쓰셨군요.
네. 멋지십니다. 카알님은.^^

카알벨루치 2019-02-14 15:28   좋아요 1 | URL
“여류” 란 단어를 찾아보니,
여류1 女流 [여류]

명사 어떤 전문적인 일에 능숙한 여자를 이르는 말.

이렇게 나오는데, 아마도 이 사전적 정의 외에 그 단어가 사용되는 맥락에서 여성에 대하 비하나 차별이나 무시라는 문화적 맥락이 단어에 가미된 것 같다는 생각인데, 제가 지방에 있어서 더 그런 부분에 민감치 못한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전 젠더 이데올로기에 대해 전적인 찬성이나 동의는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충분한 공감과 이해의 깊이가 있다면 사회가, 공동체가 차별이란 구도로 서로를 얼싸안지 못하는 분위기는 없겠지요 하지만 이런 제 생각은 너무 이상적이긴 합니다....

용서는 무슨 그런 말씀을...제가 둔해서 모르는 것은 깨우쳐야죠 ㅎ

cyrus 2019-02-14 17: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완성(未完成) 작품은 ‘미-완성(美-完成)’이기도 하죠. 완성되지 않은 작품은 때론 아름다운 (완성형) 걸작일 수도 있어요. ^^

카알벨루치 2019-02-14 19:58   좋아요 0 | URL
아름다울 미 완성이네요! 멋진 해석입니다~^^

페크(pek0501) 2019-02-14 1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김병종 화가가 모 일간지에 많이 나고 그랬어요. 연재를 했던 것도 같고... 기억이 희미하네요.
왜 그렇게 빨리 가는 분이 많은 걸까요.
유고작, 이라는 말이 참 슬프게 다가오네요.

카알벨루치 2019-02-14 19:58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웬지 더 안타깝게 만드는 유고작입니다 책을 읽을땐 몰랐는데 남편의 이야기가 마지막에 나오는데 읽고난 후 그 느낌이 싸하게 다가오네요! 인생이란 것이...

scott 2019-02-14 19: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전 문예지에 수상작 후보로 읽다가 상받은 다른 작품보다 훌륭해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어요. 거의 신경숙의 궁상스러운 작품들이 베스트로 올랐던 시절이였는데 ...정미경 작가님 작품중 어떤 작품부터 읽을까망설였거든요 카알벨루치님 딱 한권 골라주세요. ^ㅎ^

카알벨루치 2019-02-14 19:56   좋아요 1 | URL
다른 작품을 읽고 이 책을 읽으시면 차이가 느껴지는데, 거기서 작가의 삶을 생각하게 하더군요~ㅎㅎ<아들의 연인>을 추천합니다 단편소설집입니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무심 이병욱의 두 번째 소설, K의 고개중에 가장 인상적인 단편 <수심 9미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두 주인공, 이대연 선생과 하 사장

   이야기는 현직 교사인 이대연과 운진읍의 허름한 횟집 주인인 하 사장이 등장한다. 스킨 스쿠버를 취미로 즐기는 이대연과 하 사장이 스쿠버에 필요한 꼼프레서가 매개가 되어 주말마다 두 사람은 같이 잠수를 하게 된다. 꼼프레서는 300만원 정도하는 가격이고 읍내에는 하 사장만이 가지고 있는 잠수에 필요한 도구였다. 공기통에 공기를 집어넣는 도구인 셈이다. 이대연에겐 잠수는 스포츠이지만, 하 사장에게 잠수는 생업이었다. 변두리에 허름한 횟집에 장사가 잘 될 리 없다. 그래서, 하 사장은 자기가 강에서 잡은 쏘가리를 다른 횟집에 넘겨주면서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스쿠버의 취미생활과 잠수라는 생업

   이대연과 하 사장은 이렇게 만나 각각 스쿠버를, 잠수를 시작한다. 이대연은 쏘가리를 잡지도 못한 반면, 하 사장은 쏘가리를 작살로 잡으면서도 죽이지 않고 15마리씩 잡아 올린다. 이대연에겐 스쿠버는 스포츠였고, 모처럼 꼼프레서가 있는 하 사장의 도움으로 잠수를 할 수 있게 되어 너무 감사한데, 이젠 쏘가리를 잡지 못하는 것이 기분이 안 좋은 것이다. 이대연은 가족들에게 쏘가리를 잡아 올 테니 매운탕 끓일 준비를 하라고 김칫국부터 마셨다. 하지만, 두 주에 걸쳐 허탕을 쳤다. 기분을 잡친 탓에 쏘가리 회를 먹고 가라는 하 사장의 아내의 제안을 뿌리친다. 이대연은 하 사장이 잡은 쏘가리 한 두 마리라도 자기에게 주면 가오가 설텐데 말이다. 이런 사정도 모르고 이대연의 아들은 아빠, 쏘가리는 어딨어?’라고 질문한다.

 

, 여기서 우리는 왜 하 사장이 쏘가리를 이대연에게 주지 않았는가? 라고 질문해보자. 하 사장은 부자가 아니다. 쏘가리 잡아 근근히 새활하는 그에겐 쏘가리는 금빛무늬의 지폐’(223p)와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대연에게 쏘가리는 취미활동에 의해 생겨난 부산물에 불과한 것이다. 이대연은 그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쏘가리 사진 (사진출처: By Gaeho77 - 자작, CC BY-SA 4.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71392813)

 

만원짜리의 선물, 만원어치의 도리

   그리고 그는 꼼프레서를 사용할 수 있게 해준 하 사장에 대한 고마움의 도리를 매주 갈 때마다 만원 어치의 생필품 정도만의 선물로 퉁 친다. 나중에 하 사장과 잠수도 못 하게 되었을 때 그는 이 만원어치의 선물별 쓸데없는 습관’(249p)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대연은 하 사장과의 관계를 자신의 취미생활을 유지시켜주는 무엇thing에 지나지 않았다. 이대연도 양심이 있는지라 한 번씩 그런 생각을 한다. 자신이 하 사장과 스포츠만을 하는 단순한 관계를 너머 좀 더 사려 깊은 행동을 했더라면, 이를테면 쏘가리를 잡지 못해도 거기서 회를 시켜 먹고 회값을 지불하든지...단지 만원어치의 도리를 넘는 좀 더 인간적이고 친밀하고 배려하는 관계성이 필요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들.

 

 

 

이대연 선생의 욕심과 그 변화

   쏘가리를 잡지 못하는 이대연에게 하 사장이 비밀을 하나 가르쳐준다.

 

이런 플래시를 구해서....바우 틈바구니들을 비춰 보드래요.”

 

이대연은 플래시를 주문해서 주말을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이대연도 쏘가리를 잡게 되었다. 이대연은 쏘가리 잡는 비밀을 하나 챙겼다. 이제 이대연에겐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작살로 쏘가리를 잡는데, 어떻게 죽이지 않고 산 채로 잡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쏘가리 잡는 일은 이젠 아무것도 아니고 오직 산 채로 비밀만 알아내면 된다.’라는. 아아 나의 무지몽매함이여.‘(248p)

 

하지만, 이대연은 그 비밀을 밝히지 못한다(물론 후에 우연히 알게 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왜냐하면 허 사장이 죽었기 때문이다.

 

 

 

 

전기배터리로 고기잡는 사건

   어릴 적 시골에서 종종 강가의 고기들을 잡기 위해 전기배터리를 사용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 그러면 고기들이 충격을 받아 허연 배를 드러내며 강물 위로 고기가 뜨게 된다. 그러면 바구니나 뜰 채로 고기를 거둬들이기만 하면 된다. 얼마나 쉬운가! 하지만, 그 전기배터리로 고기를 잡는 행위는 물고기의 생식력을 멸종시키는 사악한 짓이다. 우리 집안의 먼 친척인 한 분은 그렇게 고기를 잡다가 감전사하여 돌아가셨다. 위험한 행위이다. 소설 속에서도 전기배터리로 고기를 잡는 통에 고기의 생식력이 멸종되었다며 혀를 차는 사건이 발생한다. ‘전기배터리사건 이후로 허사장의 쏘가리 잡기는 주춤한다. 생계가 위협을 받게 된다.

하지만, 하 사장의 이런 궁핍한 처지에 대해 이대연은 별 상관하지 않는다. 그에게 하 사장은 모르는 사람들인 셈이다.

    

내 입장을 속으로 정리했다. 강이 망가져 하 사장이 그리 되었다 해도 나는 상관없다. 쏘가리들을 구경하기 힘들게 되었다 해도 나는 그냥 스쿠버 하는 재미로 강물에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236p)

인간이 얼마나 간사한가! 스쿠버만 하면 된다고 했다가 쏘가리를 잡는 걸 보고 쏘가리를 잡고 싶어했던 이대연, 그런데, 쏘가리 씨가 마른 것처럼 보이니 다시 자기 취미생활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런 심리! 문학이 위대한 것은 우리에게 뭔가를 가르치기 보다는 우리를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은 인간을 보여준다.

 

 

 

 

우째 한 놈도 없지?

   하 사장은 이번에 물거품이 심하게 이는 뻥대 강의 바위 쪽으로 가자고 한다. 그곳은 종종 사람들이 급류에 휘말려 죽기도 하는 위험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이대연은 어린 아이 만한 쏘가리를 잡고야 만다. 전기배터리 때문에 멸종되다 싶이 한 쏘가리가 어찌 거기에 있었단 말인가!....시간이 흘렀다. 운진읍의 그 강에는 이제 소수력 댐이 생겨 생태계가 완전히 파괴되고 만다. 댐에 사용된 시멘트가 강의 생태계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하 사장에게 이제 생계는 절망적인 위기에 놓였다.

 

우째 한 놈도 없지?”

 

   하 사장의 이 말은 그의 아뜩한 미래에 대한 절망적인 발언으로 보인다. 시간이 지나 운진읍에 마이카 바람이 불 때 하 사장도 검정색 새 지프차를 샀다. 도저히 감당 안 되는 시츄에이션인데...쏘가리를 잡아서 할부금 내기도 벅찬 그 새 차를 샀단 말인가! 하 사장의 죽음을 그의 아내로부터 소식을 전해 듣고 부조금을 들고 하 사장 아내를 찾는 이대연, 그러면서 하사장은 지프차 할부금과 빚으로 인해 신용불량자가 된다.

이대연은 문득 하 사장의 죽음이 자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사장은 이전에 월남전이 어땠느냐?’고 묻자, 허허 웃더니 사람 사는 게 다 그렇고 그런 거죠. 전쟁터나 여기나 다 같드래요.’답한 적이 있었다(253p).

 하 사장은 잠수의 달인이었고, 강에 익사한 사체를 건질때 경찰들이 항상 찾는 잠수부 출신이었는데, 그가 소주 한병 마시고 강에서, 수심 9미터에서 죽었다는 것은 자살로 설명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 사장은 그 전쟁터에서 결국 낙오하고 만 것이다...

 

 

하 사장의 몰락에 대한 이대연의 책임

   이대연은 하 사장이 죽은 이후에 자신의 만원어치 도리를 넘어선 그 무언가가 필요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 사장의 몰각에 자신도 한몫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종종 우리 마음의 마지노선을 정하고 그것을 인간에 대한, 사람에 대한 도리라고 치부하고 있지는 않은가! 뭐 그런 생각을 해본다.

 

 

 

 

수심 9미터 같은 깊은 삶의 바닥으로 내려앉다

   이대연이 하 사장의 죽음에 대한 애도를 표하기 위해 그의 아내를 만난다. 그 꼼프레서를 가져가기 위한 것도 있었다. 이전에는 쏘가리로 가득했던 수조는 텅 비어 있었고, 텅 빈 수조 안에는 걸레뭉치와 작은 방비들이 어색하게 채워져 있었다. 더군다나 하 사장의 아내는 가슴 골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부담스러운 옷차림으로 이대연을 맞았다.

 

너무 고마워요. 방에서 쉬다가 가드래요.”(256p)

 

쏘가리의 멸종, 남편의 죽음, 그리고 남겨진 하 사장의 아내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뇌쇄적인 기운은 수심 9미터에 깊은 삶의 밑바닥에 가라앉은 기운이었다. 이 대목이 <수심 9미터>, 이 소설의 백미이다.

 

 

이 단편소설을 읽으면서 우연히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선지자 요나에 대한 이야기와 오버랩된다.

 

 

 

 

요나의 수심 깊은 곳의 물고기 뱃속

   요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져버리고 자신의 소명의 목적지인 니느웨가 아닌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게 된다. 그는 거기서 풍랑을 만나게 되고 배가 난파되기 일보직전의 상황에서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고 말한다. 이 모든 풍랑과 폭풍우의 책임에는 자신의 여호와에 대한 불순종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가 바다에 뛰어들자, 풍랑은 잔잔해진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삼키워지게 된다. 요나는 수심 깊은 그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의 기도를 한다. 삼일 동안 그 물고기 뱃속에서 사투의 기도를 통해 그는 바닷가로 토해지게 되는 기적의 주인공이 된다. 그는 그토록 싫어했던 니느웨를 향해,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이 식민지생활을 할 때 일본을 싫어했듯이, 여호와의 미션을 감당한다. 그런데, 요나는 자신의 설교에 회개하고 돌아오는 니느웨의 모습이 정말 꼴불견의 꼬락서니(?)로 보였다. 그만큼 싫었던 것이다.

 

    

 요나와 큰 물고기(사진출처: Fruitfulife)

 

 

 

더 수심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요나

   선지자 요나는 선지자답지 않게 니느웨가 얼마나 잘 되나 보자 싶어 집을 짓었는데, 거기에 여호와께서 박넝쿨로 멋지게 그늘을 만들어주어 다행히 시원하게 보낼 수 있었다. 팔레스타인 지방의 박넝쿨은 30-40cm까지 자라기도 하고 그늘에 유용하지만, 벌레에 약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늘에서 시원함을 느끼는 요나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벌레를 보내셔서 박넝쿨을 다 없애버려, 요나에게 시원함의 그늘을 삭제시켜버렸다. 그랬더니 요나가 완전 불평 불만자가 되어버렸다. 이젠 살기보다는 죽고 싶다고 푸념을 한다. 여호와의 니느웨 인들을 향한 사랑이 지독히도 싫었던 이단아같은 선지자 요나의 이야기이다. 이런 모습 때문에 함량미달의 선지자가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한다.

 

 

 

살기 위한 몸부림과 죽기 위한 몸부림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있을 때는 살고자 기도하면서 사투를 벌였다. 그래서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팔레스타인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 사라져버린 그늘로 인해 죽고 싶다고 불평과 불만을 토해내고 있다. ! 이것이 인생이 아닌가!

우리는 죽을 것만 같은 삶의 전쟁터에서 살기 위해 몸부림친다. 큰 위기와 나를 압도하는 절망과 아픔과 상처 앞에서 살고자 고군분투한다. 그래서 살아남는다. 하지만, 아주 사소하고도 지엽적이고 하찮은 일들에 때때로 목숨을 건다. 그러면서 죽고 싶다고 한다. 요나와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게 인간이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요나 4:3, 8)

 

거대한 대의명분과 위대한 슬로건에는 살기 위해 몸을 불사르지만, ‘잎새에 이는 바람과 같은 사소한 말의 칼날과 내 삶의 자잘한 먼지들로 인해 우리는 울분을 토하며 죽고 싶어한다. 이 얼마나 모순적인 인생인가!

 

    

 

 

 

과연 이대연은 안전한가?

   자주 이대연은 하 사장과의 관계에 대해 자가 진단을 하지만 별다른 진전이나 발전적인 관계는 보이지 않았고, 결국 하 사장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과연 이대연은 안전한가?

이대연은 보이지 않는 수심 9미터에 가라앉아 있진 않은가! 무더위를 식혀줄 그늘이 사라졌다고 투덜대는 함량미달의 선지자 요나! 요나는 일상의 사소함 가운데 수심 9미터로 가라앉아 가는 중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안전한가?

 

 

 

    

 

 

 

 

 

 

 

 

 

 

*이 책 K의 고개는 이웃이신 무심 이병욱님께서 친히 보내주신 책입니다. 좋은 단편소설집을 읽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할 따름입니다. 특히, 이발소이야기를 다룬 <이발 유정>도 특이하고, 7개의 단편이 모두 재미있었고 특별히 변두리 이야기라서 더 정겨웠습니다. 작가님의 자전적인 이야기도 스며들어 있다고 봅니다. 무엇보다도 무심 이병욱님은 소설이 읽히지 않는 시대이니깐 자신은 계속 더 소설을 쓴다고 하는 사명의식이 더 대단해 보였습니다. 작가님, 더 많은 글을 우리에게 소개해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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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2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oren 2019-02-12 18: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쏘가리 이야기 재미있네요. 제가 어릴 때 봤던 풍경도 떠오르고요.

아주 옛날이었는데, 아마도 60년대말이나 70년대 초쯤이었을 껍니다. 말도 ‘버버버버‘ 거리는 ‘버버리 아저씨‘가 우리 마을 인근 어디에서 살았는데요, 그 사람은 꼭 우리 마을에서도 제일 수심이 깊은 쏘에서 쏘가리를 잡았더랬지요. 장착한 장비라고는 오로지 물안경과 작살 밖에 없었고요. 황금빛이 번쩍거리는 팔뚝만 한 쏘가리를 잡아 올릴 때마다 물 위로 튀어나와 우리들에게 자랑하곤 했더랬지요. 쏘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신작로 한켠에서 멀찌감치 구경하던 우리 꼬맹이들 한테요. 그런데, 그 쏘는 워낙 물살이 사납게 휘돌아 나가는 곳이라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할 것 없이 ‘접근 금지 구역‘에 가까웠지요. 아마도 그 때문에 그 버버리 아저씨가 그 쏘를 독점하다시피 하면서 쏘가리를 많이 잡았던 것 같아요. 물론 그 아저씨는 그게 직업이자 생업이었을 듯하고요. 한 철이 언제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시즌 때는 그 쏘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으니까요. 그런데 나중에 차츰 자라고 어른에 가까워 지니까 그 쏘에 얽힌 슬픈 비밀을 듣게 되더라고요.(아마도 우리집에서 함께 살았던 막내고모한테서 들은 얘기일 껍니다.) 앞집 순옥이 바로 위에 언니하고 저 아래 사는 양계할배네 맨 큰 딸하고 둘이서 멱을 감다가 그 쏘에 함께 빠져 죽었다고요.

카알벨루치 2019-02-12 19:22   좋아요 0 | URL
옛날에 그런 비극적인 일과 사건이 많았죠 이 소설은 그런 옛날의 기억과 추억을 소환해주는 듯해 너무 좋더군요 많이 알려진 작가와는 다른 느낌이~ 지금은 우리가 너무 문명화가 되어 숨 쉴 겨를도 없이 살아가는 듯 합니다 강에 얽힌 사연이 어릴 적 많았는데 사건 사고가 줄어든 건 다행인데 추억을 소환하는데는 너무 큰 변화가 발목을 잡기도 하네요 독일이나 유럽 은 몇십년이 지나도 그대로인 일관성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너무 급변해서 문화의 정통성이 많이 떨어지는 건 사실입니다 김정운교수 이야기입니다 긴 댓글 감사합니다 오렌님~

무심이병욱 2019-02-12 2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심 이병욱입니다. 카알벨루치 님의 리뷰를 읽으면서 제가 쓴 ‘수심 9미터‘ 이상의 글이 재창조됐음을 목격했습니다. 님의 리뷰는 작가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까지 낱낱이 들어올렸습니다. 성경의 내용까지 원용될 줄이야!
소설책이 안 팔리는 시대이므로 소설을 쓴다고 천명했지만 가슴 한켠으로 스며드는 쓸쓸함까지 붙잡기는 어려웠는데 -----카알벨루치 님의 리뷰를 읽으면서 용기를 얻었습니다. 제 머리 속에는 아직도 소설로 써서 발표해 달라‘는 소재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잠시 쉬고 다시 집필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렵니다. 어느 대작가가 말한 황홀한 감옥 속으로.

카알벨루치 2019-02-12 20:08   좋아요 0 | URL
응원합니다 별 소용없는 저의 비천한 안목입니다 용기가 되셨다면 전 너무나 감사할 따름입니다 텍스트는 언제든지 살아숨쉴 것이기에 주욱 계속 쓰시면 되겠습니다 응원합니다^^

“남들로 하여금 말하게 내버려두어라 그리고 너는 너의 길을 걸으라” -단테 <신곡>중에서

카알벨루치 2019-02-13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가적인 부연설명을 붙이자면, 여호와 하나님은 왜 요나의 박넝쿨의 그늘을 삭제시켰는가? 인간의 사소한 즐거움과 위로를 방해하는 처사를 즐기는 사디스트 하나님인가? 그런 질문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나서 4장 끄트머리에선,

“4: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 하는 자가 십이만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사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요나의 니느웨에 대한 편견을 지적하며 요나의 마음을 돌아보게하기 위해 이런 깨달음을 주시고자 하는 의도가 들어있지만 요나는 여전히 뿔난 망아지 모양으로 있는 채 요나서의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내용의 오해가 있을까봐 추가설명을 올립니다

오늘도 모든 분들 행복하소서 🙏

단발머리 2019-02-13 09:26   좋아요 1 | URL
요나서가 하나님의 질문으로 끝난다는 게 특별하기는 해요. 요나가 또 고집쟁이 답을 할 것이 하도 확실해서 그러신걸까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결국 요나는 하나님의 마음을 끝까지 헤아리지 못할것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카알벨루치님도 좋은 하루 되시어요~~

단발머리 2019-02-13 09: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내면을 보여주는 문학의 힘이 느껴지는 소설이네요. 이기적인 이대연의 마음이 저의 마음인 적도 많았구요.
그 와중에 요나 이야기가 반갑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카알벨루치 2019-02-13 09:07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열독중이시죠?
문학은 정말 수 많는 창window을 통해 인간의 관점과 시각을 도발하고 도전하고 위로하고 분노케하고 들었다놨다 하는 듯 합니다 이 리뷰땜에 작가님하고 통화도 했답니다 ㅎㅎ 요나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의 내면을 들추어내게 하는 또 다른 창입니다 화이팅~^^
 

이정재, 최민식, 황정민이 주연한 영화 <신세계>는 내가 드물게 두번 본 영화이다 이정재는 조직폭력배에 잠입하여 오랜세월을 견뎌 넘버2까지 오른 비밀경찰이다 하지만 이정재는 자신이 경찰인지, 깡패인지 정체성에 혼돈이 온다는 이야길 한다



<익명의 독서중독자들>이란 만화책을 보면 등장인물중 경찰 캐릭터가 나오는데 그 친구는 자신이 경찰인지, 조직폭력배인지 혼동스럽다는 이야길 한다 이를테먄 자아정체성(self identity)에 대한 질문이다 작가는 영화 <페이스오프>등의 영화에서 소재를 가져왔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신세계>패러디 느낌이 난다



노벨문학상 수상출신 터키의 작가 오르한 파묵의 <하얀 성>은 이런 자아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누구인가?” “너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우리를 잘 알고 있는가?”



이에 대한 작품의 이야기는 이슬람학교 교사, 성직자, 일반적으로 지식이 넓은 이를 부를 때 쓰는 ‘호자’(17세기 오스만 제국인물)와 노예로 끌려온 이탈리아 베네치아인 ‘나’, 그리고 군주로 불리는 ‘파디샤’가 등장한다 여기서 호자는 동양을 상징하고, 노예인 나는 서양을 상징한다 노예인 <나>는 호자와 한집에 살면서 많은 지식을 서로 주고 받는다 <호자>는 나를 통해 상호성장하면서 어린 파디샤의 후원과 인정을 받아 황실점성술사의 자리까지 이르게 된다



작가 오르한 파묵은 <호자와 나>의 관계는 기름과 물처럼 섟이지 않을 것 같은 분리, 차별, 단절, 구별의 구도가 아니라 서로가 닮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방으로 들어온 남자(호자)는 믿을 수 없을만큼 나와 닮아 있었다 내가 저기에 있었다’(28p)

작품의 초반부에 두 사람이 대면하는 장면에서 파묵은 서로가 닮았음을 이야기한다

‘호자가 내게서 배운것 만큼 나도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어’(90p)

‘그 때 나는 내가 되어야 할 사람을 보았다 지금은 그도 나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둘은 같은 사람이었다’(105p)

‘난 너처럼 되었어 이제 네가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알아 나는 네가 되었어’(107p)

‘그는 내가 되고, 나는 그가 되기를 원했다’(108p)



우리는 흔히 출신배경과 피부색과 삶의 모든 요소요소들을 따지면서 차이를 강조한다 그리고 그것을 대별점으로 부각시켜 서로 간의 ‘건널 수 없는 강’을 만들기에 혈안이 된다 대표적인 게 정치, 이데올로기가 아닐까 싶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고 있다 절반을 넘었다 해방이 되고 6.25가 터지기 이전 이승만은 미군정의 힘을 등에 업고 “빨갱이 소탕작전”을 거국적으로 펼친다 그 “빨갱이”이란 딱지 안에는 복합적인 것들이 가득하다 독립군, 가난, 농경사회, 배고픔, 빈부격차, 혁명의지, 친일파청산...왜곡된 시각과 개인적인 사심이 넘치는 기득권의 나부랭이들은 빨갱이축출을 빌미로 염상구는 강동우의 아내 외서댁을 줄기차게 욕보여 임신까지 하게되고 이를 자랑삼아 온동네방네 나발을 불어대자 외서댁은 저수지에 자살소동을 벌인다 염상구가 독자를 더 기가 차게 만드는 것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외서댁의 남편, 강동우가 분명 나타날 것이고 그러면 자기가 빨갱이 강동우를 잡아 공을 세우고자 함이었다 허출세는 빨갱이라 불리는 남편을 둔 마삼수의 아내, 몰골댁과 강동기의 아내, 남양댁을 수시로 겁탈하면서 그 행위를 빌미로 애들 끼니값으로 쌀을 살 수 있는 돈을 쥐어준다 이데올로기는 가정도 안중에 없게 만드는 괴물이다 물론 인물들의 성적 욕망이 캐릭터화 된 것도 있을 것이다



다시 파묵의 이야기로 돌아오자
차이와 구분을 강조하면 함께 나아갈 수 없다

“우리는 우리를 잘 알고 있을까,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잘 알아야 해”(186p)

“사람이 누구라는 게 뭐가 중요합니까 중요한 일은 우리가 했던 일과 앞으로 할 일이지요”

‘호자는 이제 ‘가르치다’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우리는 함께 연구하며, 함께 찾아야 하며, 함께 걸어가야 했다’(41p)

‘상대방보다 더 옳은지 그른지 더 행복한 지 또는 더 불행한 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이들은 서로에 관하여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에 몰입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해서 서로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219p)



그리고, 그들은 옷을 바꿔 입는다
이 이야기는 <서로의 삶을 바꾼 두 사람의 이야기>이다
호자와 나는 서로 종이 위에다 자신의 삶의 역사를 적는다 그 이야기를 끊임없이 나누며 소통한다 마치 동서양이 서로 역사를 탐색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함께 글을 쓰는 것처럼 함께 거울도 볼건가?”(80p)



그 거울 앞에 섰을때 두 사람은 얼마나 서로 닮았는지, 내가 너인지, 너가 나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의 친밀함과 닮음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니 옷을 바꿔 입어도 표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나를 벗어나 새로운 ‘나’가 될 수 있는가?


‘<하얀 성>은 터키에 유입된 서양의학, 천문학, 무기제조 등 서양문물의 역사를 기술, 동시에 인간이 자신의 주변을 통해 정체성을 탐구하는 텍스트’(216p)이라고 할 수 있다 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에서 선정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파묵은 고향인 이스탄불의 음울한 영혼을 탐색해가는 과정에서 문화간의 충돌과 복잡함에 대한 새로운 상징을 발견했다”




작가, 오르한 파묵은 동양과 서양을 대표하며 상징하는 두 인물, 호자와 노예를 통해 지구촌에 공존하는 인간, 인류가 얼마나 극명한 차이를 가지는가가 아니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닮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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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2-08 19: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동네 도서관에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희망 도서 신청을 넣었습니다.

까일까봐 조마조마한 맴입니다 -
아무래도 만화는 증오하는 도서관 직원
분들이 가열차게 까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

카알벨루치 2019-02-08 19:38   좋아요 0 | URL
민원 넣어야겠네요 ㅋㅋ

설해목 2019-02-09 00:20   좋아요 1 | URL
안그래도 저도 동네 도서관에 구입신청 해볼까 하는데... 만화라 까일까요. 음~~
그래도 일단 찔러봐야겠어요!

카알벨루치 2019-02-09 01:17   좋아요 0 | URL
찔러 보는겁니다~다들 이 책에 관심이 많으시네 노력에 비해 넘 빨리 읽혀서 허탈할수도 ...만화이니 그래도 책을 찾고 읽고 느끼는 것이 진정한 독서의 맛 아닙니까까까까~~~~

서니데이 2019-02-08 2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익명의 독서중독자들>은 제목부터 읽고 싶은 느낌이 듭니다.
알라딘 서재에는 익명의 독서중독자들이 많이 계실 것 같기도 하고요.
잘읽었습니다.
카알벨루치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카알벨루치 2019-02-08 21:0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오시다니 감사~Have a nice weekend!

oren 2019-02-08 23: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알벨루치 님의 글을 읽으니 문득 쇼펜하우어가 언급했던 산스크리트 말 ‘탓 트왐 아시(Tat twam asi)‘ 생각이 납니다.
* * *
…… 이러한 사람들은 모두 자아와 타아 사이에 심한 구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고상한 사람에게는 이 구별이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다. 개별화의 원리, 즉 현상의 형식은 그를 강하게 사로잡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는 그가 보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을 대하는 것과 같은 정도로 가깝게 느낀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고통과 다른 사람의 고통 사이에 균형을 이루려고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고통을 완화시키기 위해 자기의 향락을 포기하고, 희생을 감수한다. 그는 악인에게는 큰 칸막이로 보이는 자타의 구별이 사실은 보잘것없는 기만적인 현상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안다. 그는 직접 추리를 거치치 않고, 자신이라는 현상이 동시에 다른 사람이라는 현상이며, 이것이 모든 사물의 본질을 이루고 있고, 모든 것 안에 살고 있는 생에 대한 의지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또 이것이 동물들이나 모든 자연에까지 미친다고 인식한다. 그러므로 그는 실제로 어떠한 동물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4권 의지로서의 세계에 대한 제2고찰> 중에서

카알벨루치 2019-02-08 23:33   좋아요 1 | URL
탓 트왐 아시 뜻이 뭔가요? 설명한 내용을 의미하는건가요?

oren 2019-02-08 23:56   좋아요 1 | URL
‘탓 트왐 아시‘라는 말은 우리 말로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 심오한 말입니다. 저도 쇼펜하우어의 책에서 처음 발견했는데, 아무튼 그 책에서 맨 처음으로 등장하는 대목만 여기에 옮겨보겠습니다.(좀 더 자세한 뜻은 인터넷에서 찾아 보시면 어느 정도 감을 잡으실 수 있을 듯합니다.^^)
* * *
…… 우리는 회화에서 타인의 매개를 통해 높은 단계의 이데아들을 인식할 수 있지만, 또 식물을 순수하게 관조적으로 직관하거나 동물, 특히 자유롭고 자연스럽고 쾌적한 상태에 있는 동물을 관찰함으로써 이러한 인식을 직접 얻을 수도 있다. 동물의 여러 가지 기묘한 모습과 그 행동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자연이라고 하는 큰 책을 읽고 배우는 것이며, 참된 사물 기호의 해독인 것이다. 우리는 그 속에 의지를 나타내는 여러 가지 정도와 방식을 보는데, 이 의지는 만물에 동일한 것이며, 어떠한 곳에서도 바로 생명으로서, 현존으로서 객관화되기를 원하면서 무한히 변주하고 다양한 형태를 취하고 나타난다. 이 형태들은 모두 여러가지 외적 조건에 대한 적응으로 같은 주제의 변형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것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이 기호의 내적 본질을 해명하여 반성하고, 한마디로 이것을 전달하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인도의 성서들에 자주 나타나는 ‘Mahavakya‘, 즉 ‘위대한 말‘이라 불리는 다음과 같은 산스크리트의 문구를 사용하면 좋으리라 생각한다. 그것은 ˝탓 트왐 아시(Tat twam asi˝, 즉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 당신이다˝라고 하는 문구다.
-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3권 표상으로서의 세계에 대한 제2고찰> 중에서

카알벨루치 2019-02-09 00:49   좋아요 0 | URL
oren님 괜히 여쭤봤네요 머리에 쥐날라 합니다 ^^ 그래도 감사합니다 성실하고 정성스런 댓글에 감동, 역쉬 산불왕이십니다👍👍👍

희선 2019-02-09 0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달라서 좋기도 하고 비슷해서 좋기도 한 듯합니다 하지만 어떤 때는 다르다고 아예 모르는 척하기도 하죠 저도 그런 마음이 아주 없지 않군요 찾아보면 누구나 비슷한 점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없으면 어떤가 싶기도 합니다 하나 같은 점 있네요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죽는다는 거...

경찰과 범죄자는 비슷한 점이 많아요 경찰은 조금만 잘못하면 범죄자가 될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선을 넘지 않으려고 애써야겠지요


희선

카알벨루치 2019-02-09 00:55   좋아요 1 | URL
인간이란 것이 때론 종이 한 장 차이이란 생각이 드는데,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들로 편을 가르고 있진 않는가 뭐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희선님^^

bookholic 2019-02-09 0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번에 이렇게 다양한 책을 읽는 것이 가능하시군요... 부럽습니다^^ 혹시나 해서 카알벨루치님의 서재에 가봤더니 지금 읽고 있는 책리스트에 101권이 있던데요.. 실화인가요?^^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카알벨루치 2019-02-09 00:57   좋아요 0 | URL
다 읽다가 만 책들, 잊지 않으려고 기록장에 남겨두는 것이죠 부담됩니다 그거 보면 ㅋㅋ 읽는중인 책을 먼저 읽으려고 하는데 자꾸 독서가 문어발식이 되니 그런 현상이 발발하는 것입니다 사달난 실화입니다 북홀릭님~<태백산맥>6권 들어갑니다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