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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 - 유가.묵가.도가.법가
이중텐 지음, 심규호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선진제가의 백가쟁명을 간단하게 요약한다면 크게 세 가지 큰 논쟁으로 개괄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첫 번째는 유가와 묵가의 논쟁이다. 그 논쟁의 초점은 '인애'인가 아닌가 '겸애'인가로 모아진다. 두 번째는 유가와 도가의 논쟁으로, 그 초점은 '유위'와 '무위'의 구별이다. 세 번째는 유가와 법가의 논쟁인데, 논쟁의 초점은 '덕치'와 '법치'의 문제다.(p128) <백가쟁명> 中
이중톈(易中天, 1947 ~ ) 은 <백가쟁명 百家爭鳴>에서 유가 儒家, 묵가 墨家, 도가 道家, 법가 法家 사상을 비교, 대조하고 있다. 저자는 시기적으로 가장 먼저 세상에 나온 유가를 중심으로 이들의 사상이 어떻게 대립하고, 영향받았는지를 위와 같이 정리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백가쟁명>에서는 여러 각도에서 이들 사상들의 영향관계와 차이점들을 제시하면서, 선진 先秦 시대 중국 사상의 전체적인 모습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이를 다 요약하기는 어렵지만, 이번 리뷰에서는 짧게나마 핵심 쟁점을 '정명 正名'의 관점에서 정리해보고자 한다. 먼저, 유가와 묵가의 논쟁이다.
"명분이 바르지 않으면 언어가 순통하지 못하고, 말이 이치에 순통하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예악이 일어나지 못하고 예악이 일어나지 못하면 형벌이 적합하지 못하며, 형벌이 적합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손발을 둘 곳이 없게 된다." 공자의 말은 아주 분명하다. '정명 正名'이 어찌 쉬운 일이겠느냐?(p53) <백가쟁명> 中
1. 유가와 묵가의 논쟁 : 인애 VS 겸애
저자는 <백가쟁명>에서 유가와 묵가의 논쟁을 인애와 겸애로 요약한다. <백가쟁명>의 본문을 통해 인애는 가까운 것으로부터 먼 곳으로 나가는 사랑을 의미하는 것으로, 겸애는 차별없는 사랑으로 대비된다.
그렇다면 무엇이 인애 仁愛인가? 친정 親情, 즉 자신에게 가까운 신변에서 시작하여 점차 타인까지 미루어나가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먼저 자신과 자신 주변의 사람을 사랑하고 더 나아가 친척과 마을 사람들까지 사랑하라는 것이다.(p182) <백가쟁명> 中
이른바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마치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남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다른 나라를 자신의 나라처럼 보거나 다른 가족을 자신의 가족처럼 생각하며, 다른 사람을 자신을 보는 것처럼 대하는 것이다. 이런 사랑이 바로 '겸상애 兼相愛' 또는 '겸애'이다.(p174) <백가쟁명> 中
'사랑'에 대한 유가와 묵가의의 입장차이는 '정명론'에서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면'에 해당된다고 생각된다. 사랑을 가까운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유가의 입장은 '일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일종의 차선책인 반면, 묵가는 이를 '명분이 바르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차별없는 사랑을 주장한 것에 이들의 차이가 있지 않을까. 어느 사상이 보다 현실적인지, 아니면 보다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답은 독자 자신들이 내려야 할 것이다.
2. 유가와 도가의 논쟁 : 유위 VS 무위
공자에게 인간됨의 가장 높은 경계는 '인 仁'이고, 치학 治學에서 가장 높은 경계는 '락 樂'이다.(p100) <백가쟁명> 中
"도 道를 잃은 후에 덕 德이 있게 되고, 덕을 잃은 후에 인 仁이 있게 되며, 인을 잃은 후에 의 義가 있게 되고, 의를 잃은 후에 예 禮가 있게 된다. 예는 충신이 부족한 것이며 어지러움의 시작이다." 다시 말해 인이나 의를 강조하다 끝내 예를 말해야 할 지경까지 이르면 더 이상 수습할 수 없다는 뜻이다.(p329)... 노자의 주장은 아득하게 먼 옛날 여전히 도가 존재했던 씨족사회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원시 씨족사회는 계급이나 모순, 투쟁은 물론이고 지혜나 도덕도 없고, 정부도 없는 '무'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도가가 말하는 '도', 즉 무 無 또는 무위 無爲이다.(p331)<백가쟁명> 中
유가와 도가의 논쟁은 '유위'와 '무위'에 대한 논쟁이다. 이를 도가의 입장에서 치환 한다면, '하덕'과 '상덕'의 형태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덕과 상덕은 무엇일까? 유가에서 강조하는 '인', '의' 그리고 '예'는 도가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하덕'에 속한다. 반면, 도가는 '상덕'에 속하는 '도'와 '덕'을 강조하는데, 이들의 차이는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도덕경> 제 38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상덕 上德을 지닌 이는 스스로 덕이 있다고 여기지 않으니, 이로써 덕이 있고, 하덕 下德을 지닌 이는 스스로 덕을 잃지 않았다고 여기니, 이로 인해 덕이 없게 된다." 의미는 분명하다. 최고의 도덕은 도덕이 필요 없다. 필요 없기 때문에 오히려 덕이 있게 된다.(p320) <백가쟁명> 中
상덕을 지녔다면 생기지 않았을 혼란을 하덕의 강조를 통해서는 해결될 수 없다는 주장을 통해 유가를 비판하는 도가의 사상은 '정명'에서 '명분이 바르지 않으면'에 대한 다른 답이라 여겨진다. 문명 文明 이전으로 돌아가 도와 덕의 시대를 지향한 도가와 문명 이후 인간됨을 강조한 유가의 입장 중 어느 편을 더 중하게 생각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우리가 생각할 문제다.
3. 유가와 법가의 논쟁 : 덕치 VS 법치
저자는 <백가쟁명>을 통해 성현 聖賢의 질서를 강조한 유가 사상과 일반인들의 질서를 강조한 법가 사상을 비교하면서, 이상적인 면에서는 유가의 손을, 현실적인 면에서는 법가의 손을 들어준다. 그리고, 법가의 현실적인 면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이 바로 '양면삼도'다.
세 勢를 통해 위신을 세우고, 술 術을 통해 신하를 부릴 수 있으며, 법을 통해 백성을 제어할 수 있다. 이것들이 바로 군주의 수중에 있는 지휘도 指揮刀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법가의 '양면삼도 兩面三道'이다. 양면은 '이병 二柄', 즉 상과 벌, 포상과 징벌이고, 삼도는 세와 술, 법이니 권세를 통한 장악과 음모와 계략, 그리고 엄격한 형법을 말한다. 이것이 바로 한비가 군주에게 바치고자 했던 핵심 내용이다.(p448)<백가쟁명> 中
저자가 보다 현실적이라 말한 법가와 유가의 논쟁은 '정명'에서 어디에 해당할 것인가. 아마도 '예악이 일어나지 못하면 형벌이 적합하지 못하며' 대목이 아닐까. 전국 시대 戰國時代 말기의 극심한 혼란 속에서 예악이 무너진 상황에서 법가는 형벌을 바탕으로 백성들의 손발이 향할 곳을 제시했기에 보다 현실성을 가졌음을 생각하게 된다. 개인들이 성현의 모습을 본받으면서 수양할 것을 강조한 유가와 현실의 제약조건을 인정하고 '제약조건 하의 최선'을 강조한 법가 중 우리가 취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이 논쟁이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과제다.
이처럼 <백가쟁명>에서는 유가를 중심으로 다른 사상들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두 가지 면에서 좋은 입문서라 여겨진다. 첫 번째는 이러한 사상의 차이와 더불어 현실적 의미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저자가 이끌어준다는 점에서다. 두 번째는 균형잡힌 시각이다. 시기적으로 먼저 성립한 사상이 후대 사상들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렇다고 반론할 수도 없기에 불리한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유가의 불리함에 대해서는 저자 이중텐이 직접 나서서 설명하면서 균형을 잡아준다는 점은 쉬운 해설과 더불어 이 책의 다른 장점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점에서 생각해볼 때, <백가쟁명>은 고대 중국 사상의 좋은 입문서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