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문학사상 세계문학 1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19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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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로 말하면 고양이다. 고양이 주제에 어찌하여 주인의 심중을 이같이 정밀하게 기술할 수 있을까 하고 의심하는 자가 있을지도 모르나, 이 정도는 고양이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이래봬도 독심술이라는 걸 터득하고 있다. 인간의 무릎 위에 타고 앉아 잠자고 있는 중에, 나는 나의 부드러운 털옷을 살그머니 인간의 배에다 비비댄다. 그러면 한가닥의 전기가 일어나 그의 마음속 생태(生態)가 손바닥 보듯 나의 심안(心眼)에 내비친다.(p388)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中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 ~ 1916)의 작품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吾輩は猫である>의 주인공은 이름없는 고양이다. 이름은 없지만, 인간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가진 고양이의 입을 빌려 작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작품 속에서 우리는 20세기 초 서구 유럽을 따라잡기 위해 그들의 과학(科學)과 사상(思想)을 받아들였던 당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뉴튼의 운동 제1법칙에 의하면, 가령 다른 힘을 가하지 않는다면 일단 움직이기 시작한 물체는 균일한 속도로써 직선으로 움직인다. 만약 이 법칙에 의해서만 물체의 운동이 지배된다면, 주인의 머리는 이때 에스킬루스와 운명을 같이했을 것이다. 요행히 뉴튼은 제1법칙을 정함과 동시에 제2법칙도 제도해주었으므로, 주인의 머리는 위태위태한 중에 일명(一命)을 건지게 되었다.(p329)... 라이프니츠의 정의에 의하면, 공간은 가능한 동재현상(同在現象)의 질서다.(p330)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中

 고대의 신은 전지 전능하게 숭앙받아왔다. 더구나 예수교의 신은 20세기인 오늘날까지도 이 전지 전능의 탈을 쓰고 있다. 그러나 속인들이 생각할 수 있는 전지 전능은, 때로는 무지 무능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이렇게 말함은 분명 패러독스다. 그런데 이 패러독스를 도파(道破)한 자는, 천지 개벽 이후로 나뿐일 것이라 생각한즉, 나 스스로도 대단한 고양이라는 허영심도 생기는 것이니...(p201)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中


 그렇지만, 당대 유행한 서구사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긍정적이지 않다. 고양이 또는 다른 등장 인물들의 입에서 나오는 대화 속에서 우리는 이성(理性)을 강조한 서구사상에 대한 비판과 전통사상에 대한 그리움, 향수를 발견하게 된다.


 인간은 건방진 것 같아도 역시, 어딘가 얼빠진 데가 있다. 만물의 영장이니 어쩌니 하면서 아무데나 만물의 영장을 내세우고 나오지만, 실제로 요만한 사실마저 이해하지 못한다. 더구나 아무렇지도 않은 양 태연자약해하는 데는 한바탕 웃고 싶어진다. 인간, 그는 말물의 영장이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나의 코는 어디있나 가르쳐 다오, 가르쳐 다오 하고 떠들어대고 있다.(p430)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中


 나는 서양인보다, 옛날 일본인 쪽이 더 훌륭하다고 생각해. 서양인이 하는 방식은 적극적이다, 적극적이다 하고 요즘 꽤나 유행하는데, 그건 커다란 결점을 갖고 있다고. .. 서양의 문명은 적극적이요, 진취적일지도 모르지만, 필경은 만족하지 못하고 일생을 사는 사람들이 만든 문명이건든. 일본의 문명은 자기 이외의 상태를 변화시켜서 만족을 얻으려는 게 아니지. 서양과 크게 다른 점은, 근본적으로 주위 환경은 움직일 수 없는 것이라는 일대 가정(假定)하에서 발달했다는 것이야.(p346)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中


 우리는 자유를 원하다가 자유를 얻었다. 자유를 얻은 결과, 부자유를 느끼고 난처해한다. 그러니까 서양 문명 따위는 얼핏 보기엔 좋은 것 같아도, 결국은 틀려먹은 걸세. 이에 반해서 동양에선, 옛부터 마음의 수양을 해왔다. 그쪽이 옳은 걸세.(p499)<나는 고양이로소이다> 中

  조금 나간 것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속에서 이루어지는 당대 일본 사회에 대한 비판과 과거 일본 전통에 대한 향수를 넘어선 감정을 느끼게 되어 불편함을 느낀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아래 대화 속에서 자위대 쿠데타를 외치다 할복자살한 미시마 유키오(三島 由紀夫, 1925 ~ 1970)의 군국주의 성향도 작품 내에서 느꼈다면 다소 지나친 것일까.


 얼마 전부터 일본은 러시아와 대전쟁을 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일본의 고양이므로 물론 일본 편이다. 되도록이면 혼성 고양이 단체를 조직해 러시아 병정을 할퀴어주고 싶을 지경이다.(p222)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中


 이러한 불편한 감정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라는 작품 안에서 인간 삶의 보편성을 발견할 수 있기에 좋은 작품이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보편성은  인간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인생을 말하는 고양이의 통찰이 그냥 얻어진 것은 아니었다는 일종의 개연성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마치 소설 <소나기>의  소녀의 죽음처럼 간접적으로 전해지는 이성 친구의 죽음. 이러한 삶의 고통을 통해 고양이는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미케코는 이 근처에서 유명한 미모를 자랑한다. 나는 고양이임엔 틀림없지만 물정은 그런대로 대충 알고 있다. 집에서 주인의 씁스레한 얼굴을 보거나 오상에게 얻어맞고 기분이 좋지 않을 땐, 반드시 이 이성 친구를 방문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한다. 그러면 어느새 가슴이 후련해지며, 여태까지의 근심 걱정이나 고생살이도 모조리 잊어버리고, 새로 태어난 것 같은 심정이 된다.(p65)... "세상사는 내 맘대로 디지 않는 법이지, 미케 같은 잘난 고양이는 요절(夭折)하겠다, 못난 떠돌이 고양이는 건강하게 장난치고 있겠다......"(p105)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中


 그리고, 이러한 아픔 속에서 얻은 혜안(慧眼) 때문일지는 몰라도, 고양이가 말하는 삶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결론적으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느껴지는 군국주의(軍國主義)에 대해서는 한국인으로서 거북함을 느끼지만, 그 안에 인간 보편의 지혜 또한 발견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이 작품이 지금껏 사랑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면서 이번 리뷰를 갈무리 한다.


 인생의 목적은 구설(口舌)이 아니라 실천에 있다. 자기 생각대로 착착 일이 진척된다면, 그것으로 인생의 목적은 달성된 것이다. 수고와 걱정과 입싸움이 없고서 일이 진척된다면, 인생의 목적은 극락(極樂)의 방법으로 달성되는 것이다.(p192)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中


 세상을 살다보면 사리를 안다. 사리를 알게 되는 것은 기쁜 일이나, 그와 동시에 나날이 위험이 많아서 방심할 수가 없게 된다. 교활해지는 것도 비열해지는 것도, 표리(表裏) 두 겹으로 된 호신복을 걸치는 것도 모두 사리를 아는 결과이며, 사리를 안다는 것은 나이를 먹는 죄다.(p215)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中


 자신의 추함을 자백하는 것은 존경할 만하다. 모양새로 말하면, 분명 미친 놈의 짓이지만 말하는 것은 진리다. 이것이 진일보(進一步)하면, 자신의 추악함이 무서워진다. 인간은 내 몸이 가공할 악당이라는 사실을 철두철미하게 느낀 자가 아니고선, 고생한 사람이라곤 할 수 없다. 고생한 사람이 아니면 도저히 해탈(解脫)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p355)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中 



PS. 그러고 보니, 이 녀석 내 무릎 위에서 생각을 읽는 중이었군... 어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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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3 09: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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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3 11: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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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12-03 10: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개화된 지식이라고 하더라도
자국 민족주의 정서로부터는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러시아 병정을 할퀴어 주고 싶다라...

겨울호랑이 2018-12-03 11:27   좋아요 2 | URL
레삭매냐님 말씀처럼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 말한 것처럼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는 파스퇴르의 말도 이의 연장선상인 듯합니다...

붉은돼지 2018-12-03 1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냥이가 많이 큰 거 같습니다. 고양이 처음 키워보는 저로서는 이 고양이들은 귀엽기는 엄청 귀여운데 도무지 소통이나 교감은 영 안되는 것 같아서 조금 안타까운 마음도 있습니다....손가락 깨물고 발가락 깨물고 하는 거 아무리 겁주고 얼르고 심지어 조금 때리기까지 해도 영 알아먹지를 못하는 것 같아요 ㅜㅜ...

겨울호랑이 2018-12-03 11:31   좋아요 1 | URL
네, 한참 성장기에 있어서인지 사료도 엄청 먹고 움직임도 빨라졌네요. 아마 붉은돼지님 댁의 고양이도 많이 컸겠지요. 처음에는 아장아장 걸어 거의 줍다시피 들어올리곤 했는데, 이제는 제법 날쌔져서 손에 잡기도 쉽지 않습니다.ㅜㅜ 저희 집 귀요미도 시도때도 없이 마냥 놀아달라고 울어대는데, 참 당황스럽습니다. 동물과 교감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초보 집사인 저도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2018-12-03 11: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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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3 14: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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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5 06: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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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1 16: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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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1 22: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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