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캐럴>을 이전의 모든 연말 휴가철 책들과 구분해주는 것은 이 명절이 스크루지에게 첫째 마당에서 상기시키듯, "다른 어떤 계절보다도 이때 결핍이 무엇이며 풍요가 무엇인지를 가장 뼈저리게 절감하게 마련"임을 의식적으로 인식시킨다는 점이다. _ 찰스 디킨스, <주석 달린 크리스마스 캐럴>, p39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1812 ~ 1870)의 <크리스마스 캐럴 The Annotated Christmas Carol>과 차이코프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 1840 ~ 1893)의 <호두까기 인형  The Nutcracker>. 크리스마스에 널리 사랑받는 이들 작품이지만, <크리스마스 캐럴>안에 담겨진 의미는 사뭇 진지하다.  


 스크루지의 영혼은 말리의 영혼처럼 "현찰 통, 열쇠, 자물쇠, 장부, 증서 묵직한 철가방"에 짓눌려 있다. 그의 직업은 엄밀성과 정확성을 요구하기에 엄격한 수학과 경제학의 법칙들을 흔들어놓는 인간적 감성이나 나약함이 설 자리는 전혀 없다. 그의 작고 좁은 세계에는 헛소리나 개소리 같은 헛것들이 들어설 자리가 전혀 없다. 그의 냉랭한 의견들은 당시 경제이론가들의 뒤틀린 학설들을 그대로 반영한다. 가난한 자들이 가난한 이유는 스스로의 잘못 때문이니 스크루지는 "게으름뱅이들이 흥청거릴 돈"을 제공할 의향이 전혀 없다. 그가 이들에게 제공하고자 하는 유일한 해결책은 감옥과 구빈원인데, 이미 자기 뜻과는 상관없이 이 기관들의 유지비를 내고 있다. _ 찰스 디킨스, <주석 달린 크리스마스 캐럴>, p122


 주인공 스크루지는 전형적인 맬서스주의자(Malthusianism)다. 또한, 모든 것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시장주의자이기도 하며, 개인의 효용극대화를 추구한는 공리주의자(Utilitarianism)다. 그런 그에게 무능력하고 천성적으로 게을러 가난해진 이들에게 자선은 낭비에 불과하다. 열악한 삶의 조건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은 이들을 잉여인력으로, 그리고 이들을 악덕(惡德)의 근원으로 본다는 점에서 그안에 자리한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 1766 ~ 1834)이론을 발견하게 된다.


 지주들은 꼭 필요한 인력 외에는 가급적 빈민들을 자신의 땅에 들이지 않기 위해 남아 있는 빈민 오두막을 허물어버린다. 이로 인한 주택부족은 필연적으로 혼인의 강력한 억제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구빈법 제도가 오랜 세월 존속해 올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이러한 억제요소 덕분일 것이다. 이와 같은 여러 억제요인에도 불구하고 끝내 결혼을 선택한 빈민들은 더럽고 초라한 거처에 머물며 보잘것없는 보조금에 의지해 연명해가거나,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비좁고 불결하기 짝이 없는 구빈원에 수용되어야 한다. 구빈원의 끔찍하고 비위생적인 환경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특히 어린아이의 사망비율이 두드러진다. _ 맬서스, <인구론> , p356


 그런데 여기서 살아남은 과잉인구의 존재로 인해 노동유지기금은 본래의 적정 인원수보다 훨씬 더 많은 이들에게 분배되어야 하고, 그 결과 근면하고 신중한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이 게으르고 무지한 빈민에게 돌아가게 된다. 이는 해가 갈수록 구빈원 바깥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의 삶을 무겁게 짓누르는 부담이 되어 결국엔 개탄해야 마땅할 거대한 악덕을 낳는다. 전체 인구 가운데 자선에 의지하는 이들으 ㅣ숫자가 비정상적일 만큼 높은 비율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_ 맬서스, <인구론> , p357


  소설에서 냉혹한 스크루지는 크리스마스 전날 밤 유령을 만난다. '과거-현재-미래'의 유령을 만나면서 점차 변화되었다는 것은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다. 과거의 자신과 현재 자신을 둘러싼 주변의 평가와 미래의 자신의 죽음을 본 스크루지가 마음을 차츰 열어가는 과정에 대해 <주석 달린 크리스마스 캐롤>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가난한 이들의 진정한 보호자는 '현재의 크리스마스 정령'이다. '과거의 크리스마스 정령'은 "이미 지난 일들의 그림자"를 보여줄 능력만 있을 뿐, 판단을 내리거나 지난 일들을 바꾸지 못한다. '미래의 크리스마스 정령'은 뒤를 돌아볼 역량을 갖고 있지 않다. 이 음침한 추수자는 오직 앞으로만 나아갈 뿐이고 그의 필연적인 여정은 그 어떤 것도 바꾸지 못한다. 오직 '현재의 크리스마스 정령'만이 사건들에 대해 논평하고 스크루지에게 구원의 기회를 제시한다. _ 찰스 디킨스, <주석 달린 크리스마스 캐럴>, p123

 마치 그리스 신화의 운명의 세 여신 모이라이(Moirai) - 클로토(Klotho), 라케시스((Lachesis), 아트로포스(Atropos)-를 떠올리게 하는 이들 존재를 거치면서 스크루지는 자신 안의 숨겨진 어린이와 같은 감성을 의식의 세계로 끄집어 올릴 수 있었고, 행복하게 마무리된다. 여기서 잠시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 ~ 1616)의 <맥베스 Macbeth>를 떠올리게 된다. 스크루지와 같이 이질적인 세 존재들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스크루지는 자신을 반성하고 다른 미래를 그렸다면, 맥베스는 미래를 향해 폭주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예언의 시점이 달랐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예언이 보여주는 미래의 전망이 달랐기 때문이었을까.


 스크루지에게 세 정령은 과거-현재-미래의 순서로 자신의 삶을 보여주면서 비참한 결말을 통해 변화의 계기를 마련했다면, 맥베스에게 세 마녀는 '가까운 미래 - 먼 미래 - 훗날'과 그의 인생에 내릴 빛나는 미래를 하면서 이들의 운명을 바꿨다. 이후 구두쇠 스쿠르지는 좋은 이웃이 되지만, 충신 맥베스는 대역죄인으로 변화된다는 점에서 이들 작품 안의 예언(oracle)은 여러 모로 비교된다.


 맥베스 : [마녀들에게] 말해라, 너희는 누구인가?

 마녀 1 : 맥베스 만세! 글래미스 성주 만세!

 마녀 2 : 맥베스 만세! 코더의 성주 만세!

 마녀 3 : 맥베스 만세! 훗날 왕이 되리라.

 뱅코   : 장군, 왜 놀라시오? 그처럼 좋은 말을 겁내는 듯하시오?... 내 말은 없었는데, 과연 너희가 시간의 씨앗을 살펴 자랄 싹,  못 자랄 싹을 알 수 있다면 내게 말하라. 나는 너희의 호의도 악의도 구하지 않으며 미움도 원치 않는다.

 마녀 1 : 맥베스보다 작으나 크다.

 마녀 2 : 그처럼 행복하지 못하나 더 행복하다.

 마녀 3 : 왕은 되지 못하나 왕을 낳을 것이다. 따라서 맥베스와 뱅코 만세.

 마녀 1 : 뱅코와 맥베스 만세.

 맥베스 : 잠깐, 불완전한 말이다. 더 말하라. _ 윌리엄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 전집> <맥베스> , p645


 그(스크루지)가 크리스마스의 기쁨과 슬픔의 장면을 보면서 느끼는 양심의 가책은 진실되다. 그는 자신의 옛 사랑 벨의 딸을 바라보며, 자신이 무엇을 놓치고 살아왔는지, 그의 탐욕으로 인해 상실한 가능성들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그가 이 세 정령과 여행을 다니는 동안 그의 내부에 감춰져 있던 또 다른 분위기가 되살아난다. 음울한 안개가 크리스마스 날의 눈부시게 밝은 해 앞에서 물러나듯이, 차감고 딱딱한 외피는 녹아 없어진다. 그의 독기 섞인 냉소주의에도 불구하고 스크루지가 완전히 크리스마스 정신을 상실하지는 않았고, 다만 그 정신이 잠자고 있었음을 보게 된다. 그 정신을 되살리는 일은 별로 어렵지 않다... 그가 선택한 것은 일상사의 기쁨과 성가심으로부터 자신을 차단하는 것이었고, 그 결과 한때 자신의 성품에서 핵심적 부분을 차지했던 감성들을 억압하게 되었다. _ 찰스 디킨스, <주석 달린 크리스마스 캐럴>, p115


 구두쇠 스크루지에게 구원의 기회를 제공하는 현재 크리스마스 유령과의 배회에서 스크루지에게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바로 '결핍'과 '무지'의 모습이다. <올리버 트위스트 (Oliver Twist)>의 페이긴 집단의 아이들 모습과도 같은 소년, 소녀의 모습을 통해 현재 크리스마스 유령은 가난한 이들 - 특히 어린이들 - 에 대한 무관심과 사회적 책임을 작가는 독자들에게 분명하게 묻는다. 


 가난한 이들의 아이들에 대한 그의 배려는 유령 소녀와 소년인 '결핍'과 '무지'를 통해 추가로 표현된다. 이들을 변호하면서 '현재 크리스마스의 정령'은 모든 버려진 아이들을, 잉글랜드의 공장과 콘월의 탄광에서 일하며 런던의 야학에 다니는 "비참하고, 처참하고, 무시무시하고, 끔찍하고 비천한" 아이들을 위해 호소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디킨스는 예언자의 역할을 떠맡아 하며 사회의 무관심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경고한다. 결핍과 무지는 어린이들을 방치한 나라의 산물들인 것이다. _ 찰스 디킨스, <주석 달린 크리스마스 캐럴>, p40


  이들은 남녀 어린이였다. 누렇고 깡마르고 남루하고 찡그리고 사나운 인상이었지만 그래도 미천하게 납작 엎드린 모습이기도 했다. 우아한 어린 생명이 이들의 안색에 생기를 주고 가장 신선한 색조로 빛나게 했어야 하건만, 꼭 늙은이처럼 깡마르고 쪼글쪼글한 손으로 꼬집고 비틀어서 너덜너덜해진 얼굴이었다. 천사들이 권좌에 앉아 있어야 할 자리에 악마들이 들어가서 도사리며 협박하는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어떤 변화, 어떤 타락, 어떤 인간성이 아무리 심하게 변질된 상태라고 해도, 이 놀라운 창조된 세계의 온갖 신비를 다 둘러보아도, 이들보다 더 섬뜩하고 무시무시한 괴물들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_ 찰스 디킨스, <주석 달린 크리스마스 캐럴>, p262


 "얘들은 인간의 아이들입니다." 정령이 아이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런데 자기네들의 아버지에 대해 탄원을 하면서 나한테 달라붙는 거지요. 이 사내아이는 '무지'라고 합니다. 여자아이는 '결핍'이지요. 둘 다. 또 이들과 같은 급의 모든 아이들을 조심해야 할 거요, 특히 사내아이는요. 아이 이마에 파국의 조짐이 적혀 있는 것이 내 눈에 보이기 때문이오. 그것을 지우지 않는 한 조심해야 하오." _ 찰스 디킨스, <주석 달린 크리스마스 캐럴>, p263


 개인적으로 <크리스마스 캐럴>은 매년 크리스마스 즈음에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와 함께 하는 크리스마스 세트와 같은 책이다. 매년 읽는 책이지만, 올해 책이 주는 의미는 예년과는 참 다르다. 예전에는 스크루지의 굳었던 마음이 풀리는 것처럼 다가올 새해를 맞아 새롭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즐겁게 읽었다면, 올해에는 '무지'와 '결핍'의 어두움이 무엇보다 크게 느껴지는 것은 2022년 한 해를 보낸 내 자신과 주변 상황때문일 것이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주는 것이 고전이 가진 매력이지만, 올해 <크리스마스 캐럴>에서는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보다 우리를 둘러싼 어두움에 시선이 가는 것을 어쩔수가 없다. 이러한 어두움이 계속되지 않기를 원한다면, 우리 자신의 변화만이 유일한 해결방안이 될 것이다. 2022년의 마지막은 희망과 기대보다는 더 굳은 각오로 마무리 되는 것 같다...


 "그런들 어떻소? 죽어야 할 것 같으면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겠소, 잉여인구도 줄일 겸." 정령이 대답했다. 스크루지는 정령이 자기가 했던 말을 인용하는 것을 들으며 고개를 숙였고, 뉘우침과 애통함에 압도되었다. "이보시오, 인간." 정령이 말했다. "댁이 돌덩어리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잉여'라는 게 무엇이고 그게 어디 있는지 발견하기 전에는 그 사악한 괴담은 좀 자제하시오. 어떤 사람이 살고 어떤 사람은 죽어야 할지를 당신이 정하겠다는 거요? _ 찰스 디킨스, <주석 달린 크리스마스 캐럴>, p244 


 "꼬마 팀은 안 죽고 살아 있었기에 스크루지가 이 아이의 제2의 아버지가 되어주었다." 이 문장은 나중에 첨가한 것으로 본래 원고에는 나오지 않는다. 디킨스는 교정쇄 단계에서 독자에게, 현재의 크리스마스 정령이 언급한 빈자리가 이제는 없고 사람이 달라진 스크루지는 '무지'와 '결핍'의 유령들의 운명에서 적어도 한 아이는 건져낼 수 있었음을 확인시켜줘야 할 필요는 느꼈던 것이 분명하다. _ 찰스 디킨스, <주석 달린 크리스마스 캐럴>, p306


 여전히 정령은 무덤만을 가리킬 뿐이었다. "인간들의 삶의 여정은 계속 그대로 그 길을 따라 산다면 결국에는 예정된 지점에 도착하겠지요. 하지만 만약 그런 길에서 떠난다면 도착점도 바뀔 것이오. 정령님이 나한테 보여주고 있는 바도 그런 것이라고 말해주시오!" 정령은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_ 찰스 디킨스, <주석 달린 크리스마스 캐럴>, p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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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12-23 22: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스크루지 나오는 책이 크리스마스 캐럴이었지요. 크리스마스가 되면 생각나는 책 중의 하나예요.
겨울호랑이님, 이번 일요일이 크리스마스입니다.
따뜻하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메리크리스마스.^^

겨울호랑이 2022-12-23 23:17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 말씀처럼 <크리스마스 캐럴>의 스크루지는 산타 클로스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캐릭터라 생각합니다. 크리스마스가 일요일이어서 공휴일이 줄어 아쉬움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미사를 한 번에 끝낼 수 있다는 작은 즐거움을 느끼려 합니다.ㅋ 서니데이님께서도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

:Dora 2022-12-24 09: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메리크리스마스~

겨울호랑이 2022-12-24 09:31   좋아요 2 | URL
도라님께서도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

그레이스 2022-12-24 09: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디킨스가 그의 작품들에서 멜서스주의, 공리주의, 자본주의를 일관되게 비판하고 있더라구요.

성탄절에 읽는 크리스마스캐럴!

복된 성탄되세요.

겨울호랑이 2022-12-24 10:17   좋아요 2 | URL
그레이스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디킨스의 맬서스주의, 공리주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어린 시절 노동현장에서 힘들게 일해야 했던 작가 자신의 불우한 경험이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감사합니다, 그레이스님께서도 따뜻하고 행복한 크리스마스 되세요! ^^:)

하나의책장 2022-12-25 18: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크리스마스만 되면 크리스마스 관련된 책과 영화가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겨울호랑이님도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셨나요?
돌아오는 주가 지나면 2023년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네요ㅎㅎ
따뜻하고 행복한 저녁 보내세요! Merry Christmas🎄❤

겨울호랑이 2022-12-25 21:35   좋아요 0 | URL
올해는 유난히 12월부터 추운 겨울인 듯합니다. 덕분에 가족과 함께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냈습니다. 하나의책장님께서도 좋은 시간 되셨는지요? 이제 한 주만 지나면 2022년도 마무리되네요. 남은 한 주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