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레나는 알고 있다
클라우디아 피녜이로 지음, 엄지영 옮김 / 비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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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스스로 목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여자가 천천히 오른발을 바닥에서 몇 센티미터가량 들어 올려 내디디면서 힘겹게 천천히 왼발을 움직이고 있다.

머릿 속에서는 두 발이 어서 빨리 움직이라는 명령을 내리고 있지만 바닥을 딛고 있는 두 발은 움직여지지 않고 있다.

그녀는 긴 한 숨을 내쉬며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르며 두 발이 움직여 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오전 10시 수도를 떠나는 기차를 타야 하는 그녀,엘레나

한 시간 전인 오전 9시에 약을 먹었으니 약효가 떨어지기 전까지 반드시 기차역에 도착해야 한다.

약효가 서서히 나타나면서 몸이 뇌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려면 반드시 10시 기차를 타야 한다고 그녀는 생각할 뿐 아니라 또 그렇게 알고 있다.

어서 서둘러야 한다.

그녀가 복용해야 할 약 봉지에는 의사들이 알아 보기 힘든 글씨체가 적혀 있다.

레보도파

어서 빨리 몸 속에 레보도파 약 기운이 퍼져 나가야 한다.

그녀는 힘겹게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며 거리 이름을 주문처럼 외우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걸어나간다.

중증 파키슨 병을 앓고 있는 엘레나는 레보도파를 복용하지 않고 서는 혼자 움직일 수 없다.


'인생은 물물교환이 아니야 엄마 이 세상에는 우리도 모르게 하느님의 뜻에 의해 이루어지는 일도 있잖아.'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딸 리타는 비가 내렸던 어느 저녁,성당 종탑에 목을 맨 채로 발견 되었다.

모두들 입을 모아 자살이라 했지만, 엄마 엘레나는 알고 있다.

딸 리타는 누군가에 의해 살해 된 것이다.

엄마 엘레나는 딸을 살해 한 자를 찾아 내기 위해 마지막으로 딸과 함께 있었던 목격자를 찾아 나선다.

레보도파 약을 복용하지 않고서는 움직일 수 없는 엘레나의 머릿 속으로 부르사코, 아드로게, 템페를레이 로마스,반피엘드, 라누스, 라누스, 반피엘드, 로마스,템페를레이, 아드로게, 부르사코 도시들을 오고 간다.

목도 눈썹도 약 없이 움직여지지 않는 그녀는 생각한다.

그날 거기서 엘레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무엇이였는지.

그녀는 알고 있다.

딸 리타가 떠난 세상에서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어떤 형벌이 내려질지...

엘레나는 딸이 살해 당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누가, 왜 그녀의 딸을 살해 했을까?

그 날 저녁 비가 내리던 날 혼자 종탑에 올라갔던 리타는 스스로 밧줄의 매듭을 정교하게 맬 수도 없었을 것이고 딛고 서 있던 의자를 스스로 발로 차버린 채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을리도 없다.

엄마 엘레나는 딸을 살해 한 자를 찾아내야 한다.

하지만 사건에 대해 아는 사람도, 누군가를 의심하는 사람도 범행 동기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성당의 신부는 엘레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날 따님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했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거예요. 자신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인 육체를 자기 멋대로 처분하고 만 것입니다.'

카톨릭 교리에서 자살은 살인과 마찬가지로 죄로 여긴다.

우리의 것이 아닌 육체를 어떤 식으로든 함부로 사용하는 것은 모두 죄가 되어 자살이든 낙태든 안락사든 어떤 이름을 가지고 있든지 간에 생명을 죽이는 것은 모두 죄가 된다.

중추신경계가 마비 되는 파킨슨 플러스 증후군을 앓고 있는 엘레나는 뇌가 움직이라고 명령을 내려도 신경 물질 전달체인 도파민이 해당 신체 기관에 이 명령을 전달하지 못하기에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

그녀는 약 없이 움직이지도 못하고 수시로 우울증이 올라오며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이제 서서히 기억력 조차 흐려져 숨만 쉬는 살아 있는 시체처럼 몸이 돌처럼 굳어져 버릴 것이다.

딸의 죽음이 살인이라는 걸 입증 하려면 누군가 그녀의 손과 발이 되어 주어야만 한다.


[그녀를 대신해 움직이고 행동할 수 있는 다른 이의 몸, 그녀 대신 필요한 것을 조사하고, 물어보고, 걷고, 시선을 돌리지 않고 사람들의 눈을 똑바로 볼 수 있는 타인의 몸, 엘레나가 명령을 내리면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육체, 엘레나 자신의 육체가 아닌, 다른 이의 유게, 빚을 갚아야 한다고 느끼는 누군가의 육체, 이사벨의 육체]


이 십년전, 이사벨이라는 여자가 낙태 수술을 받기 위해 길을 가던 중 우연히 리타를 만난다.

리타는 카톨릭 교리를 내세워 낙태 수술을 막기 위해 강제로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끌고 간다.

임신 상태의 이사벨을 만났었을 때 엘레나는 약 복용이 전혀 필요 없는 건강한 상태 였기에 비가 내렸던 그 날 딸이 데리고 온 그 낯선 여자를 집안에 들어 오게 했다.

엘레나는 딸 리타가 그녀의 낙태를 막았기에 생명에 대한 빚을 졌다고 생각했다.

거동이 불편하게 된 지금, 엘레나는 지난 시절의 빚을 청산 하기 위해 이사벨에게 부탁한다. 딸을 살해 한 용의자를 찾아 달라고....

[엘레나는 이십 년이 지난 오늘 과거의 빚을 청산하기 위해 대문을 두드린 한 여자를 바라볼 뿐이다. 물론 이사벨은 그 빚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이사벨은 찾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그녀를 바라본다.

가슴에 처박힌 것이나 다름없는 엘레나의 머리, 앞으로 기울어진 몸통, 심하게 굽은 등을 본다. 그러고는 침에 젖어 축축해진 손수건을 꼭 움켜쥔 채 무릎에 올려 놓은 두 손과 왼쪽으로 흰 몸을 본다. 그리고 진흙이 묻은 구두와 주글주글 주름이 진 치마를 본다. ]

이사벨은 낙태 하러 가는 길에 자신을 붙들어 맨 그녀, 리타를 그날 이후 부터 줄곧 마음 속으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살고 있었다.

동성애를 숨긴 채 이사벨과 결혼 한 남편은 강압적인 폭력을 휘둘렀고 이사벨은 성폭행을 당하듯 임신하게 되었다.

그녀는 남편과 사이에서 단 한 번도 생명을 잉태 하고 싶지 않았기에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았다.

번개 소리가 무서워 어린 시절 부터 비가 내릴 때면 성당 근처도 가지 않았던 리타는 번개와 천둥이 무시 무시하게 내리치기 이틀 전 엄마의 치료를 담당하고 있는 베네가스 박사를 만나러 갔었다.

약 없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엄마는 입 조차 제대로 다물지 못해서 침을 한 가득 씩 흘리고 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치료법도 해결책도 없는 무시무시한 병,

'지금 어머니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은 너'라는 말을 베네가스 박스에게 들은 딸 리타, 엄마는 서서히 온 몸이 굳어 가고 있다. 언젠가 숨 조차 쉬지 못하는 돌덩이가 될 것이다.


장례식장에 근조 화환이 여러 개 도착했다. 목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엄마 엘레나는 누가 보냈는지 글씨조차 제대로 볼 수 없다.

살인도 죄, 자살도 죄 라는 말을 한 후안 신부는 딸 리타가 잠들어 있는 관 앞에 서서 기도를 올리고 있다.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삭되며...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

-'지혜서' 3장 1절, 2절


국교가 카톨릭인 아르헨티나 출신의 작가 클라우디아 피녜이로의 엄마는 실제로 오랜 세월 파킨슨 병을 앓다 세상을 떠났다.

자살로 추정되는 딸의 사망 원인을 찾아 나서는 엄마 엘레나는 딸을 잃고 나서 신부님에게 자신은 앞으로 어떤 이름으로 불려져야 하는지, 묻는다.

자식을 먼저 앞세운 여자는 뭐라고 불리게 되는지, 미망인도 고아도 아닌 엄마 엘레나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육체 처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서서히 굳어 가고 있다.


[그들은 말다툼을 벌였다. 매일 저녁만 되면 어김없이, 어떤 문제든 가리지 않고, 사실 중요한 것은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택한 대화 방식, 즉 싸움을 통해 자기의 생각을 전달하려고 하는 대화 방식이었다.]


강한 신앙심과 모성애를 갖고 있는 엄마 엘레나를 돌보는 딸 리타에게 선천적 장애로 인해 등이 굽어 버린 남자 친구가 있었다.

자신이 도와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떠 앉게 된 리타가 정말로 누군가에게 살해 당한 것이라면 , 아니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엄마 엘레나가 딸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면 이 모든 원죄는 성경의 말씀처럼 고스란히 리타가 죄인인 것일까?

어린 시절부터 엄격한 가톨릭의 교리와 사회 규범에 의해 강요 된 믿음과 생활 규범대로 살 수 밖에 없었던 여자들...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강압 된 폭력에 의해 강제 임신해 버린 이사벨의 육체는 그저 동성애를 즐기는 남자들의 생식 기계가 되어 버렸다.

'나를 잘 알지도 못한 부인의 따님처럼, 자기도 엄마가 되지 못했으면서 내 몸을 마치 자기 것처럼 함부로 대하던 댁의 따님처럼 부인도 똑같은 우를 범하시는군요.'

엘레나의 육체는 약 없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고, 이사벨의 육체는 남자들의 번식을 위한 육체가 되고 그리고 리타는 여자로 태어난 운명의 희생양이 되었다.

가톨릭 신앙에서 여성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여성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신은 알고 있을까?

아니, 엄마 엘레나는 알고 있을까?

아이를 낳고 기르고 키우는 여성들의 삶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 나기 힘들다.

사회적 관습과 규범에도 여성은 생명을 잉태에서 양육하며 자신이 낳은 아이를 돌보고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

생명을 낳고 사람을 돌보며 가족의 안정을 보듬고 품어야 하는 여성, 엄마라는 존재, 딸이라는 운명은 세상의 모든 여성들이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아니, 그걸 운명 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전통적인 가부장적인 문화에서 여성의 성역할은 오랜 세월 동안 정해져 있다.

출산과 양육 그리고 돌봄은 선대 부터 내려온 것으로 여성의 삶,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가로막는 올가미이기도 했다.

가톨릭교를 믿는 인구가 60퍼센트가 넘는 아르헨티나는 2020년 임신중단에 관련된 법을 개정했다.

법이 개정 되기 전에는 성폭행으로 임신한 경우나 폭력이나 기타 생명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임신일 경우에만 합법적으로 임신중단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2020년 법 개정 부터 아르헨티나 여성들은 임신 십 사주 이내에는 임신 중단을 스스로 선택 할 수 있게 되었다.

파킨슨 병 진단을 받게 되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조언'이 담긴 책자를 받게 된다.

평온함, 즐거움을 위한 사소한 활동 조차 하기 힘든 파킨슨 병은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짊어지기 힘든 힘겨운 짐덩이 같은 병이다.

딸의 죽음을 파헤칠 수록 엄마 엘레나는 딸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엘레나, 당신은 지금도 여전히 어머니예요.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거고요.'


엄마 엘레나의 육체는 마치 가부장적 질서와 종교의 굴레에 갇혀 버린 듯 돌덩이처럼 굳어져 간다.

여성에게 딸이라는 명칭과 어머니라는 명칭이 사라져 버리면 이 세상에서 무엇으로 불리게 될까?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알고 있을까?

'여성은 남성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육체다.'

-시몬 드 보부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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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사람들을 오해하는 것이고, 오해하고 오해하고 또 오해하다가, 신중하게 다시 생각해본 뒤에 또 오해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우리는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 어쩌면 사람들에 관해서 맞느냐 틀리느냐 하는 것은 잊어버리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이 최선인지도 모른다.]-필립 로스의 '미국의 목가' 중에서


1933년 미국 뉴저지주 뉴어크에서 태어난 필립 로스의 부모님은 유대계 미국인 2세대로 그의 아버지 허먼 로스의 부모는 오스트리아 통치를 받았던 르비브(현재 우크라이나 ) 출신이고 그의 어머니의 가족들은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브에서 미국으로 건너 왔다.

1900년대 뉴욕 맨해튼에서 유대계 이민자들은 백인들이 키웠던 애완견 보다 지위가 낮을 정도로 반유대주의가 극심했는데도 불구하고 필립 로스의 아버지 허먼 로스는 메트로폴리탄 보험 회사에 판매원 부터 시작 해서 회사 상사들의 반유대주의와 인종 차별에 맞서 불굴의 의지로 버티고 버틴 끝에 지점장 자리 까지 올라 갔다.

공립 학교를 다녔던 필립 로스는 자신의 아버지를 자랑스러워 했고 부유한 WASP 계층의 삶을 부러워 하지 않았다.

유대계 이민자 2세 였던 로스의 부모는 아이들에게 유대교를 강요 하거나 이디시어도 가르치지 않았고 딱히 계율이나 율법도 알려주지도 않았다.

하지만 영특 했던 로스는 유대교의 교리나 독특한 문화와 관습, 계율, 율법들은 자신이 태어나고 성장한 고향 뉴어크 위케이크의 유대인 밀집 거주 지역의 이웃들의 삶을 통해 어렴풋이 터득해 나갔다.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광적으로 독서에 몰입했던 로스는 학교 생활 내내 지극히 평범한 모범생이면서 친구들 사이에 코메디언으로 불릴 정도로 유머 감각이 뛰어 났다.

너무나도 평범해서 학창 시절 친구들은 그가 20세기 현대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될 줄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필립 로스는 자신의 작품 속 분신이자 또 다른 자아 네이선 주커먼 교수를 통해 각기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 미국의 유대계 중산층의 삶을 현미경처럼 깊이 분석하고 탐구하며 유대인의 문제를 미국 사회 전체의 문제로 확장 시켜 나갔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작품이 오로지 유대인과 유대계 문화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며 자신의 정체성을 유대인이 아닌 미국인으로 미국 내 유대계 공동체나 종교 시설에 가도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 인터뷰를 통해서 밝혔다.

그에게 독자는 일반 독자와 유대인 독자로 나눠지는데 일반 독자들 중에 일부는 그를 향해 여성 비하 ,혐오주의자라 비난을 퍼붓고 유대인 독자들은 기대와 경멸, 기쁨, 비판, 상처, 호기심과 분노의 화살을 그의 심장을 향해 날렸다.

미국에서 가장 큰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포트노이의 불평>은 단숨에 초대형 베스트가 되면서 엄격한 계율과 율법에서 숨 막혀 했던 수 많은 유대교 신자들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만들기도 했다.


'유대인은 서구 사회의 전형적인 아웃사이더로서 물론 사회적 적응의 달인 이었다.'-데이비드 싱어


1969년 2월 <포트노이의 불평>은 필립 로스에게 작가로 가장 영예로운 상을 받게 만들기도 했지만 온갖 매체와 주요 인사들의 쏟아지는 질문 공세와 방문 요청에 몸이 두 동강나 버릴 정도 였다.

팝 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은 창작자로 은둔 하지 않고 마치 헐리우드 유명인들 처럼 미디어의 덫에 스스로 들어가 카메라 조명 세례를 즐겼지만 필립 로스는 예술가를 위한 창작 구역인 '야도 (Yado)에서 4개월 동안 은신하며 세상과 단절 된 채 글쓰기에 몰두 한다.

4개월 동안 필립 로스가 미디어의 시선에서 사라지자 각종 매체들은 그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신경 쇠약증으로 은둔하고 있다등등의 루머를 만들어 냈고, 몇몇 유대계 단체들은 그에게 소송 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들끓어 올랐던 1960년대 미국에서 필립 로스의 <포트노이의 불평>은 마치 종교적 자기 고백서 처럼 읽혀지기도 했는데 특히 10대들은 그의 솔직함 속에 드러나는 대담한 고백이 마치 온갖 비리와 의혹, 허위와 위선으로 가득 찬 세상을 향한 도전처럼 받아 들였다.

부유한 부모를 둔 성장통을 앓는 16세 소년 홀든 콜필드가 거친 세상에 순진한 아이들을 지키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기를 결심한 것과 달리 <포트노이 불평>의 앨릭 잰더 포트노이는 씹에 미친 자위로 체면과 격식, 규율과 규범 그리고 수 천 년 동안 전해지고 있는 종교적 율법을 향한 도전이였다.


[나는 일 년 짜리도, 일 년 반 짜리도, 또 몇 달 짜리 사랑도 해 보았어요. 부드러우면서도 관능적인 사랑이었죠. 하지만 결국에는 죽음처럼 불가피한 일이에요-시간이 지나면 욕정이 시들해져요. 결국에는 도저히 결혼으로 발을 내디딜 수 없더란 겁니다. 그런데 왜 결혼을 해야 하는 겁니까?]-'포트노이의 불평' 중에서

금지된 성(性)적 행동이나 가족 질서를 뒤 흔들어 버리며 자기 고백을 하는 한 남자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이 미국의 독실한 유대교 신자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으로 사회적 체면은 물론 수 천년 동안 지속되었던 자신들의 종교적 공동체에 금이 갈지 모른다며 유대인의 정체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유대계 작가들의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출간 할 수 있게 출판계에 돈을 뿌리기 시작한다.

1960년대 미국 출판계에는 홀로 코스트에서 살아 남아 미국 땅으로 건너 와 예술 영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유대인들의 체험서들이 베스트 셀러에 수 주 동안 올라가 있을 정도로 미국 땅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유대인들은 드러 나지 않게 세상을 향해 유대인들은 전쟁과 살육의 피해자라는 것을 널리 알렸다.


[4월의 어느 날 프랭크는 병원으로 가서 할례를 받았다. 다리 사이의 통증 때문에 그는 이틀 동안 몸을 질질 끌고 다녔다. 통증은 그에게 분노와 영감을 주었다. 유월 절 뒤 그는 유대인이 되었다.]-맬머드의 점원 중에서

필립 로스는 자신의 작품에서 유대교, 유대인 문화를 찬양 하지 않았다.

그저 죄를 지은 이들이 내뱉는 속죄에 이중적인 속내를 솔직하면서 명징된 언어로 풀어 냈다.


"이봐, 유대인(Jew)! 여기!"하고 부르는 소리가 여러 번 들린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말이 그냥 "이봐, 너(you)! 여기!"였다고 믿기로 하고, 계속 열심히 내 할 일을 했다.-'울분' 중에서

금욕과 파토스 아래에는 오로지 분노만이 서려 있을 뿐 그것 말고는 아무런 죄가 없다고 외치는 유대인의 고백이 의미하는 인간의 참된 본성은 결국 너도 나도 크게 다르지 않는 인간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1970년대 공산 체제의 동유럽 국가들에게 방문 신청권을 손에 쥐고 비밀 경찰의 밀착 감시와 미행을 받으면서 조심스럽게 문학계 인사들과 작가들을 만났다.

그는 지하에서 목숨을 걸고 창작 활동을 하는 반체제 작가들의 작품들이 영어로 번역 출간 될 수 있게 적극 도우며 목숨 걸고 서방 세계로 탈출해서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들의 작품도 미국에서 출간 될 수 있게 도왔다.

미국 땅을 벗어난 필립 로스는 자신의 작품이 다른 국가에서는 고통스러운 할례에서 유대인 정체성을 발견 하지 않고 오히려 금지된 욕망에 사로 잡힌 주요 인물들의 모습에서 자신들의 모습, 주변인들의 삶을 이입 시켰다는 사실에 유대인의 족쇄에서 벗어나 더 열정적으로 글쓰기에 몰두한다.

1986년 필립 로스는 홀로코스트에서 살아 돌아 온 화학자 프리모 레비와 만나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며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나는 아직도 이탈리아에서 지배적인 진부한 생각을 공격하고 싶었습니다. 즉 유대인은 온화한 인간이다. 학자 (종교적이건 세속적이건)다. 호전적이지 않다. 수모를 감수한다. 아무런 반격이 없이 수백 년 동안 박해를 참아왔다는 생각, 절망적인 상황에서 저항할 용기와 기술을 발견한 그 유대인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 의무라고 여겨졌습니다.]-프리모 레비


필립 로스는 작가로 입지를 굳히고 난 후 1970년대 부터 80년대까지 십 여 년에 걸쳐서 중부와 동부 유럽 국가에서 공산 체제에 저항하는 작가들을 만난 후에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체제에 저항하며 창작의 자유, 민중의 자유를 외쳤던 공산 체제 출신 작가들에게 자신의 모든 원고를 불 태워 버리라는 유언을 남기고 41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프라하 태생의 독일계 유대인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이 이들의 정신적 지주 였다.

카프카의 '성(城)은 2차 대전에서 살아 남은 유대인 작가들에게 집단 수용소로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난 그레고르 잠자가 커다란 해충으로 변했던 것처럼 마침내 수용소에서 겨우 목숨을 건지고 살아 남았지만 어떤 국가에서도 자신들은 그 나라의 해충 처럼 느꼈다.

동유럽 유대인들에게는 다른 국가에 퍼져 있는 유대인들과 다른 정체성이 있다.

이들은 이디시 언어를 구사 하며 책을 쓰고 연극을 올리며 하시디즘과 시온주의 사상을 신봉한다.

그러기에 대규모 동유럽 유대인들은 가장 먼저 팔레스타인으로 이주 해서 이스라엘 건국 땅에 피와 땀, 눈물을 가장 많이 흘렸다.

['묘한 장치이지요.' 라고 장교가 탐험가에게 말하고는 탄복해 마지 않는다는 눈길로 평소부터 잘 알고 있는 그 장치를 새삼스럽게 살펴보았다.

탐험가는 단지 예의로 사령관의 청에 응한 것 같았다. 사령관은 그에게 불복종과 상관 모욕으로 인해서 유죄 판결을 받은 한 사병을 처형하는 자리에 참석해 달라고 요청했던 것이다.]-카프카의 단편 <유형지> 중에서

카프카는 단편 <유형지>에서 사형수의 발목과 팔목, 목 등에 채워져 있는 얽히고 설킨 사슬의 묘사 부터 머리를 두 동강 내는 기계 장치를 상세하게 묘사했다.

처형이 시작 되기 전 부터 독자들은 카프카가 천천히 세세하게 알려주는 사형기계가 과연 어떻게 사형수를 형장의 이슬로 만들지 조마 조마 한 심정으로 읽어나간다.

죄수는 머리를 수그리고 평화로운 표정을 지었다. 사병은 죄수의 셔츠로 기계를 닦고 있었다. 장교는 탐험가 곁으로 갔는데, 탐험가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한 발짝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나 장교가 그의 손을 잡고 옆으로 끌어 당겼다.'당신을 믿고서 몇 마디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그가 말했다.

'괜찮지요?'

'그럼요.' 하고 탐험가는 눈을 밑으로 깐 채 귀를 기울였다.

-카프카의 유형지에서



1932년 7월 빈의 요양소에서 폐결핵질환으로 죽기 딱 열 한 달 전에 카프카는 느닷없이 프라하와 아버지의 집을 영원히 떠나 버리겠다고 결심한다.

그는 학교를 졸업 한 후에도 줄곧 마음 속 깊이 가족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지만 단 한 번도 홀로 살았던 적이 없었다.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프라하의 '노동자 사고 보험 사무소' 법률 사무소로 출근 했고 일을 마친 후 늦은 시간 동안에 글을 썼다.

영원히 프라하를 떠나겠다는 결심을 하기 10년 전 프란츠 카프카는 폐질환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연금 생활자가 되었다.

이 시기에 그는 여러 명의 여인들과 편지를 주고 받았고 약혼도 했지만 번번이 사랑의 결실 앞에서는 아버지에게 '결혼은 금지 된 것' 이라는 편지를 보낸 즉시 어떤 여인과의 사랑도 삶의 희망도 저버리듯 자포자기 한 상태에 빠져 버렸다.



'세상에 대한 그의 지식은 특별하고 심오하며, 그 자신이 심오하고 특별한 세계였다. 그에게는 기적에 가까울 만큼 섬세한 감정이 있었고, 무시무시할 정도로 비타협적이고 명료한 정신이 있었으며, 그래서 삶에 대한 정신적 두려움이라는 짐 전체를 자신의 병으로 감당하려 했다.'

-밀레나 예센카폴라크

만일 프란츠 카프카가 나치 침공 이후에 살아 있었다면 히틀러가 지배하는 시민 사회에 해가 되는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유대인이라는 죄목으로 수용소로 끌려 갔을 것이다.


[굴을 팠는데 잘된 것 같다. 밖에서 보면 단지 커다란 구멍 하나만 보일 뿐이다. 그러나 이 구멍은 사실 그 어디로도 통해 있지 않아 몇 걸음만 가면 단단한 자연석과 만나게 된다. 고의적으로 이런 속임수를 부려보았다고 자랑해 보이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허사로 돌아간 수많은 시도들 중의 한 잔재인데, 결국에 가서는 이런 구멍 하나를 무너트리지 않은 것이 나에게는 잘된 듯 싶다. ]-카프카의 '굴' 중에서

카프카가 문학으로 파 놓은 굴에 수 많은 유대인 작가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았고 탐구 하며 문학의 언어로 전 세계에서 자신들의 위상을 단단하게 쌓아 올렸다.

예술은 어떻게 창조 되고 만들어지는 것인가?

앞 선 이들이 파 놓은 굴 속에서 온갖 불안과 고립, 불만과 희망을 발견하며 스스로의 한계에 도전 하고 극복하며 은밀한 편집증적인 시선으로 세상의 이면을 예술 작품으로 탄생 시키는 것이다.

카프카는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성의 토지 측량사는 다른 언어로 살아 남아 여러 갈래의 작품으로 변형되고 있다.


'나는 나 자신을 '연출'하지 않습니다. 가장 생기 있는 가능성으로 보이는 것에 반응하지요. 입에서 나오는 것과 서술하는 것 사이에 이루어야 할 필수적인 균형 같은 것은 없습니다.

살아 있는 것과 함께 가는 거지요.'-필립 로스

어떤 작가는 단 여섯 줄의 시를 완성하고 어떤 작가는 수천 페이지에 글자를 새긴다.

필립 로스는 현미경 같은 펜 촉으로 인간을 관찰했고 탐구 했고 분석했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서 말할 때 가장 솔직해 지길 힘들다. 내 전부가 누군가에게 보여진다는 건 어느 누구도 원치 않는다.

그러기에 소설이나 기타 다른 매개를 통해 나와 너를 발견하며 세상에서 가장 근원적인 질문 나와 너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소설의 도움 없이도 세상에 관해 많이 알 수 있지만, 어떤 것도 소설의 방식으로 아는 것을 가능하게 하지는 않지요. 어떤 것도 세상을 소설로 만들 수는 없으니까요. 소설은 유일 무이한 양식의 정밀한 조사와 상상으로부터 파생하고 그 지혜는 상상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습니다. 소설은 실제로 행동에 영향을 주고 의견을 형성하고 행동을 바꿉니다. 책 한 권이 물론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지요. 모든 것은 모든 것을 바꿉니다.

삶이 반드시 하나의 경로, 하나의 단순한 연속성, 하나의 예측 가능한 패턴을 가지고 있는게 아니니 반대의 삶, 반대의 삶들, 반대로 살기라는 관념, 삶은, 소설가와 마찬가지로 변화를 일으키려는 강력한 충동을 갖고 있습니다.]-필립 로스


필립 로스의 철학과 사상, 인터뷰와 생각이 담긴 이 책 <왜 쓰는가?>를 탐독 하는 동안 책장에서 카프카의 전집, 평전,밀란 쿤데라의 작품, 이반 클리마, 프리모 레비, 브르노 슐츠, 아이작 바세비스 싱어, 맬러머드, 솔 벨로의 책들을 꺼냈다.

필립 로스가 평생 동안 출간 한 서른 한 권의 책들 중에 스물 일곱 권이 소설들로 소설이라는 변장과 꾸밈과 책략 속에 자신의 삶과 주변인들의 삶, 가족들의 모습을 담아냈다.

'삶은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을 배우게 되면 행복은 두 번 다시 자연스럽게 생겨날 수 없다.'- 미국의 목가 중에서

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준 이들은 이교도들과 백인 기득권들 층으로 가득 찼던 보험회사에서 간부까지 올라간 유대인 아버지와 오로지 자식에게 사랑과 정성을 가득 담아 주었던 어머니로 그의 모든 작품 속에 이들의 모습이 투영 되어 있다.

자신의 작품 <새버스의 극장>에서 세계 대전에 참전해서 필리핀 상공에서 격추되어 실종된 공군 조종사였던 형 모트의 묘지를 찾아가 묘석에 돌멩이를 얹으며 영원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형의 영혼에 동생의 사랑을 새겨 넣었다.


오래된 무덤들 최초의 해안의 유대인들이 초기에 만든 매장지에 이르자, 그는 진행 중인 장례식에서 한참 떨어져 물길을 따라 움직였으며 작고 빨간 집을 지나갈 때는 경비견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조심해서 항해 했다.

조부모의 묘지를 찾으려고 가랑비를 맞으며 십 분 동안 어슬렁 거리는 소년...

사랑하는 누구도 살아서 나오지 않는 그곳에서 작가 필립 로스의 분신이 소년 모트는 이렇게 중얼 거린다.

우리 아들이자 형 네이선, 우리의 소중한 아버지 에드워드, 남편이자 아버지 루이스를 기억하며 나의 묘석에는 사랑하는 뭐? 그냥 바로 그렇게. '사랑하는 뭐.' 데이비드 슈워츠, 조국을 위해 복무하다 죽은 사랑하는 아들이자 형제 1894-1918, 거티를 기억하며, 진실한 아내이자 충실한 친구, 우리의 아들, 열 아홉살, 1903-1922, 무명, 그냥 '우리 아들.'-필립 로스의 <새버스의 극장> 중에서

필립 로스는 평생 동안 '살아야만 하는 삶'에 대해 미치도록 집착해서 글을 썼다.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삶은 미국의 동부 뉴저지 어느 동네의 유대인 마을 일 수 있고, 동유럽의 심장 프라하 일 수도 있고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의 게토 거리 일 지도 모른다.

우리는 무엇을 통해 살아야 할 의지를 다지게 될까?

필립 로스는 8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 전 까지 총 서른 한 권의 작품을 남기며 노벨문학상을 제외한 미국을 넘어 세계 저명한 문학상은 거의 전부 수상 했다.

그는 생애 마지막 시기에 더 이상 창작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땅 속에 묻혀 있는 자신의 핏줄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내가 여기 왔어요.'

20세기 최고의 미국 작가로 평가 받았던 제롬 샐린저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작품을 발표하고 반 평생 은둔한 채 살면서 펜을 놓았고 필립 로스는 다양한 국가 인종 종교인들에게 공격을 당해도 끝까지 숨거나 은둔하지 않고 쓰고 또 썼다.

매년 미국 전역에 저명한 문학 상을 수상한 작품들이 발표 되고 있지만 다음 세기에도 필립 로스를 뛰어 넘을 미국 태생의 작가는 없을 것 같다.


'방에서 혼자 글을 쓰는 것이 내 삶의 거의 전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파티를 즐기듯이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즐깁니다.'-필립 로스 (1933-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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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06-01 14: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필립로스는 ‘소설가야말로 가장 훌륭한 철학자‘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작가네요! 글 읽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하는 스콧님의 페이퍼도 늘 멋집니다^^*

2023-06-01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3-06-02 10: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필립로스는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피해자라고만 말하기 보다는 솔직하고 재미있게 이야기해서 더 와닿고 좋은거 같아요 ㅋ <미국을 노린 음모>도 그래서 좋았습니다.

<포트노이의 불평>이 당시에 상당히 충격적이었나 보군요. 지금읽어도 충격적입니다 ㅋ

scott 2023-06-02 22:40   좋아요 0 | URL
로스옹 유머감각 뛰어나서 여자들 한테 인기가 많았고 그걸 즐기기도 했죠.
앞으론 로스옹 같은 글을 쓰는 작가들이 나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마치 해부학자 처럼 자신의 정체성에 메스를 갖다댄 인물중의 인물

시시한 작품이 없을 정도인데
한국어판 몇개는 번역에 문제가 ㅋㅋㅋ
그래도 명작 ^^
 


''인간을 사랑 할 수 있는 사람,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 그러면서도 자신의 품으로 들어오려는 사람을 손을 벌려 안아줄 수 없는 사람, 그가 바로 선생님이었다.'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중에서


1914년 일본 아사히 신문에 연재 된 작품 <마음>의 '나'는 어느 해 여름, 친구와 함께 찾아간 가마쿠라에서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가마쿠라 해수욕장에서 서양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그 '선생님'과 '나'는 매일 같이 해수욕장에서 그 선생님을 관찰하며 며칠 후 도쿄 집을 방문하며 깊은 교류를 나누는 사이가 된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입학했지만 인생에 진정한 스승을 만나지 못했던 '나'는 부유한 아내의 재산으로 고등유민 처럼 살고 있는 지식인 '선생님'의 인품에 빠져 들게 된다.

반면 그 '선생님'은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비밀을 털어 놓을 상대를 찾고 있었다.


[나는 과거의 한 사건을 계기로 사람을 믿지 않게 되었네. 그래서 실은 자네도 예외는 아니라네. 하지만 아무래도 자네 만큼은 의심하고 싶지 않네. 자넨 내가 의심하기에는 너무 단순한 사람인 것 같아서. 나는 죽기 전까지 이 세상에 단 한 명이라도 좋으니 마음 놓고 흉금을 터 놓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자네가 그 단 한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되어줄 수 있겠는가? 자네는 진정 뼛속 깊숙이 까지 진심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나'와 '선생님'은 교류를 지속해가면서 서로의 마음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동안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주고 받는 의리, 사랑, 우정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마음을 다해야 하는지를 깨달아가며 한 인간으로 차츰 성장해 간다.

'나는 인간을 덧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인간이 어찌할 도리가 없이 갖고 태어나는 경박함을 덧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상 만물의 영장류 중에서 오로지 인간 만이 자신의 앞날에 대해 번뇌하고 고뇌 하며 살아간다.

유전적으로 인간과 가장 가까운 유인원은 같은 서식지에서 함께 협력하며 공생 하는 동료 유인원들에게 순간의 덧없음이나 인생의 번뇌를 토로 하며 감정을 공유 하지 않는다. 이들은 오로지 생존과 번식 능력에 맞춰 오랜 시간 동안 진화 해 갔고 기후 변화와 인간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긴 것을 제외 하고는 삶이 모습이나 생존 본능 조차 백 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인간의 세상이 광역 통신망으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 되어 있어도 유인원들의 삶의 생태계는 태초에 이들의 생명이 움텄던 시대에서 멈춰 버렸다.

우리가 흔히 동물의 습성이라 부르는 것은 유인원들이 도구를 사용해서 나무 구멍에서 흰 개미떼를 긁어 내어 혀로 핥아 먹거나 일본 원숭이들이 온천 물에 흙이 뭍은 고구마를 씻어 먹는 모습 등을 볼 때다.

이런 동물의 습성을 한 개체군의 집단 문화라 부르지도 않는다.

이들의 습성에는 법이나 윤리, 제도가 없고 시간이 흐를수록 개미를 핥는 도구가 다른 용도로 발전되거나 응용되지도 않고 흙 뭍은 고구마는 다음 세기에도 그저 온천수에 씻어 먹는 걸로만 이어질 뿐이다.


[우리 종의 특별한 성취는 문화에 대한 우리의 특별히 강력한 능력 덕분이다. 여기서 '문화'는 공유되고 학습되는 지식의 광범위한 축적과 시간에 따른 기술의 끊임없는 개선을 의미한다.]

-캐빈 랠런드 '다윈의 미완성 교향곡' 중에서


만물의 영장류 중에 가장 약한 종이였던 인간이 지구에서 강력한 집단군으로 진화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문화'로 지식을 서로 공유하고 전파하고 협력해서 종족을 보존해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인간'이라는 종은 살 수 없는 곳도 살 수 있는 생태계로 만들어 거주 영역을 무한대로 늘려 나갔고 동물의 세계와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행동 양식과 습성, 방대한 문화적 지식을 축적하고 보존해서 발전 시켜 나갔다.

'인간'은 생태적, 사회적, 기술적 한계에 도전해서 원자를 분열 시켰고, 물질을 발견해서 합성 시켰고 물이 흐르지 않은 곳을 물이 흐르게 만들었고 유전자 지도를 읽었다.


지구 생태계의 모든 종은 저마다 독특하다.

물 총새는 먹잇감을 향해 정확하게 물을 총알처럼 발사 하고 꿀벌에게 양식을 빼앗길 수 없는 꿀 벌 새는 주둥이가 뾰족한 바늘처럼 진화해서 꽃 수술을 찔러 먹는 걸로 자연에서 살아 남았다.

자연 생태계 포식자 자리에 가장 상위권에 위치한 인간은 세상의 모든 꿀을 채취 할 수 있는 도구와 기술을 갖고 있다.

인간은 지난 세기 동안 도시를 건설하고, 수억 권의 책을 집필하고, 교향곡을 작곡하고, 우주 정거장을 만들고, 원자를 쪼개고, 인터넷을 발명하며 뜨거운 열대 우림부터 꽁꽁 얼어붙은 툰드라까지 거의 모든 지구의 땅을 장악했다.

이토록 지구라는 행성을 뒤 흔들어 놓는 인간은 서로 가르치며, 언어로 소통하며 끊임없이 학습하고 진화 하고 있다.


“인간의 마음과 문화는 오랜 시간 상호작용 하며 서로의 모습을 서로에게 어울리도록 빚어낸 것이다.”


기원전 6000년 부터 메소포타미아와 인더스강 문명에서 소를 키우기 시작했던 인류는 동물을 이용해서 대량의 식량을 키워 안전하게 다음 세대까지 종족을 보존 하며 온갖 도구를 제작해서 다양한 작물을 재배해 나갔다.

마차를 만들어 더욱 편리하고 효율적인 물자 수송망을 구축해서 서로의 영역과 영토를 넓혀 나가기 위해 피를 흘리는 전쟁을 치루며 제국을 건설 했고 혁명을 일으켜서 사회와 문화의 발전 속도를 높여 나갔다.

인간은 서로 협동하며 개발하고 연구 하고 발전 시켜 나간 기술, 건축, 과학, 예술에서 수학한 결정체들은 생명을 연장 시키며 생물학적 진화의 시대와 유전자-문화 공진화의 시대를 지나 문화의 진화가 지배하는 세 번째 시대를 경험하는 유일한 종이 되었다.



"서로 너무 나도 다르고, 매우 복잡한 방식으로 서로 얽혀 있는, 정교하게 구성된 이런 형태들이 모두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법칙에 의해 탄생하였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여러 가지 힘에 의해 그토록 단순한 시작에서 부터 가장 아름답고 경이로우며 한계가 없는 형태로 전개되어 왔고, 지금도 전개되고 있다는, 생명에 대한 이런 시각에는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중에서


찰스 다윈은 자신의 저서 '종의 기원'의 마지막 장에 '자연 선택'에 따라 동물은 진화했다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인간의 발전을 견인한 '문화'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다.

반세기를 지나 영국의 저명한 진화 생물학자인 케빈 랠런드 세인트앤드루스대 교수는 다윈이 인간의 지적 능력의 진화를 논의하면서도 지식 부족으로 시도하지 못한 지점부터 인간의 능력의 발달 단계를 추적해 나간다.

그가 추적하는 인간의 능력이란 어떻게 인간이  서로의 마음을 각기 다른  적합한 형태로 빚어내어  영향을 주고 받으며 끊임없이 사회적으로 학습하고 협력하며 혁신 하며 진화해 나갔는지 인간의 마음이 어떤 과정 속에 빚어졌는지 지난 세기에 다윈이 풀지 못한 인류의  수수께끼를 하나씩 풀어 나간다.


[집단 간의 문화적 다양성은 다른 집단의 외부인보다는 지역에 관한 유용한 지식을 가진 자기 집단의 구성원을 알아보고 그 구성원에게 배우는 것을 우선시하도록 했을 것이다. 이론적 분석에 따르면 이러한 환경에서는 지역의 전통에 순응하는 것이 선호 되며, 그에 따라 어느 집단 소속인지를 드러내는 '민족적 표지'가 진화하고 집단 내 협력이 증진되며 다른 집단과의 갈등이 증가한다. 언어와 방언은 민족적 표지로 효과적으로 기능하며 지역적 학습과 내 집단 선호 성향을 부추길 수 있다.]


결국 인간은 끊임없는 학습과 모방, 가르침, 언어, 지역적 관습을 서로 교류 하고 보존하면서 '문화적 집단'에 속한 종족을 보존 하고 유지 하며 지구라는 행성에서 가장 강력한 인간 생태계 군집을 만들어 냈다.

인간은 무자비할 정도로 자원을 개발하고 발굴한 원료와 원자들로 눈부신 기술 과학 발전을 이룩해서 전기와 전선 ,축음기와 음반을 넘어 재생과 제조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서로의 문화와 언어를 실시간으로 학습하고 공유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영국의 앨런 튜링은 '애니그마'라는 기계의 암호를 해독한 천재 과학자로 그는 세계 최초로 컴퓨터를 만들었다.

그가 1937년에 쓴 논문은 현대 컴퓨터 발명의 문을 열어 프로그래밍 기술을 어떻게 발전 시켜 나갈 수 있는지 그 '열쇠'가 담겨 있었다.

지난 반 세기에 걸쳐 그 프로그래밍을 해독해나간 후대 과학자들은 1996년 딥 블루라는 슈퍼 컴퓨터가 체스 게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체스 선수 카스파로프를 상대로 이길수 있는 계산법을 계발해서  기계가 인간의 생각과 마음을 읽는 프로그래밍으로 발전 시켜 나갔다.

마침내 튜링이 고안한 프로그래밍 계산 능력의 열쇠를 쥔 후대 과학자들은 생각하는 기계를 통해 인간의 마음을 방대한 데이터와 수치를 계산해 엄청난 속도로 모방 학습을 시키고 있다.

이제 기계들은 인간의 얼굴과 목소리로 연기를 하고 노래를 하고 그리고 실시간 학습 교사처럼 묻는 말에 대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정보를 복제 하고 수치를 계산하고 인간의 마음과 생각의 축적을 읽어 나가며 학습 하는 기기 AI는 곧 몇 년 안에 인간이 다른 동물들처럼 '자연 선택'에 따라 진화한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진화해 온 존재" 처럼 자연 생태계를 점령 할 지 모른다.


'대상이 없으니까 움직이는 거라네.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움직이고 싶어지는 거지.'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중에서


나와 선생님은 서로 사제 관계이면서 부자지간 같은 사이로 서서히 발전 해 나가면서 '나'는 가부장적인 세상을 증오 하며 지성의 세상, 참된 인간 관계에 눈을 뜨게 되지만 결국 사회에서 번듯한 자리에 앉아 밥벌이를 하기 위해 선생님에게 취직 자리를 부탁하는 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어느 날 나에게 두툼한 부피의 선생님이 보낸 '유서'가 도착한다.


'마음 깊숙이에서는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믿고 사랑하는 단 한 사람마저 날 이해하지 못하는 구나 싶으니 참으로 슬펐다네. 이해 시킬 방법은 있지만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싶으니 참으로 슬펐다네.

이해 시킬 방법은 있지만 이해 시킬 용기가 없다는 생각을 하면 더더욱 슬퍼졌네. 나는 적막했어. 이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채 그저 나 홀로 살아간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자주 있었네.'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린 선생님은 지금 보다 훨씬 더 쓸쓸해질 미래의 나를 견뎌내기보다는 쓸쓸한 지금의 이 상태를 참아내기 위해 자유와 독립과 자기 기만으로 가득 찬 현대 사회에 태어난 대가를 치룬 결과라는 말을 남기고 생을 마감한다.


자연 생태계의 최고의 포식자 자리에 앉은 인간은 조상 대대로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고 전달하고 학습하며 인간의 마음을 인류의 눈부신 진화와 발전으로 유도했지만 궁극적으로 인생살이에서 겪게 되는 문제들 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일 뿐이다.


[현대의 청년에게는 이상이 없다. 과거에 이상이 없었고 현재에도 이상이 없다. 가정에서는 부모를 이상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 학교에서는 교사를 이상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 사회에서는 신사를 이상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 사실상 그들은 이상이 없는 것이다. 부모를 경멸하고 교사를 경멸하고 선배를 경멸하고 신사를 경멸한다. 이런 모든 것들을 경멸할 수 있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단 경멸할 수 있는 자에게는 자기 자신 안에 이상이 없어서는 안된다. 자기 안에 아무런 이상도 없이 이런 모든 것들을 경멸하는 것은 타락이다.]-1906년 나쓰메 소세키

멀리 바라보면 21세기가 첫 시작했던 2000년이라는 숫자는 그저 찰나의 순간 정도로 느껴 질 정도로 2023년을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과 접속하면 과거의 시간 속을 여행 할 수 있는 시대다.

이에 반해 매년 뜨거워 지고 있는 지구에서 인간은 여전히 광범위한 영역을 침범 하며 각종 오염 물질을 배출하고 있다.

이 모든 댓가는 각종 질병과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퍼져 나가 나날이 치솟고 있는 에너지 비용에 대한 막대한 세금을 지불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100년 전 소세키의 선생님은 자살로 스스로의 생명을 끊어 버렸고 100년 후의 인류는 전쟁과 전염병 그리고 극심한 자아 도취와 광기로 물들어 버린 시대에서 여기 저기서 사이비 전문가 가짜 지식인들만 넘쳐 나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은 스스로 지각하지 못한 채로 자신들의 재능과 지식이 후대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상상 조차 하기 힘들게 되어 버렸다.

누구나 손쉽게 정보를 검색하고 습득해서 모방 할 수 있는 시대에 각종 사기 수법을 점점 교묘 해지며 인간이 서로 같은 종을 공격하고 있지만 이에 대응하는 강력한 법적 제재나 처벌이 행해지고 있지 않다.


모방을 수행하는 인간 뇌의 신경망에는 '거울 뉴런'이라는 발화 되는 뇌 세포가 있다. 이 세포는 모방을 촉진하며 확장해 나가면서 측두엽과 두정엽과 같은 부위가 커지게 진화 되어 인간이 경험하고 느끼는 감정 영역을 조절하며 세상을 조망하고 수용하는 능력으로 확장 시켜 나갔다.

사람들이 긴장하고 공포를 느낄 때 기쁨의 미소를 지을 때 거울 뉴런의 세포에 산소가 공급되어 공감과 감정의 전이가 일어 난다.

2023년을 살아가고 있는 현재 우리의 감정은 무엇을 보며 긴장하고 공포를 느끼며 기쁨의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수 많은 종류의 식물로 뒤덮여서 덤불에는 새가 지저귀고 다양한 곤충이 날아다니며 축축한 땅 위로 지렁이가 기어 다니는 얼기설기 얽힌 강 둔덕을 관찰하다가 이처럼 서로 다르며 복잡하게 상호 의존하는 정밀하게 구성된 형태들이 모두 우리 주변에서 작용하는 법칙에 의해 발생되었다고 생각해 보면 흥미롭다.

그리하여 자연의 전쟁 및 기근, 죽음으로부터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대상 즉 고등 동물의 탄생이 직접적으로 이루어졌다.]

-찰스 다원 <종의 기원> 중에서


다윈은 다운 하우스에서 <종의 기원>의 마지막 원고를 완성하고 난 후 드넓은 정원을 바라 보았다.

그는 자신이 자연 세계에서 복잡한 구조가 존재하게 된 과정을 어느 누구 보다도 가장 설득력 있는 논리를 펼쳐 보였다고 자신하며 인간은 거대한 자연 생태계의 전쟁 속에서 어떤 종보다 가장 고귀한 존재로 살아 남았다고 생각했다.


다윈은 인간의 무한한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헤아려서 <종의 기원>을 완성했을까?


진화의 렌즈로 인간의 마음을 관찰 하고 분석해 보면 창조적이고 분석적인 힘으로 문화적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간은 여전히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고 베르디의 오페라를 보며 한 소절에 각자의 마음을 이입 시켜 음률에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종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고 각종 연극과 영화, 다양한 예술 영역으로 모방 하고 발전 하며 새로운 창작물로 거듭 탄생 시킬 수 있는 종으로 자연 생태계의 보존도 오로지 '인간'만이 할 수 있다.

나무가 사라져 버린 자리에 나무를 심듯이 인간의 마음은 찰나의 순간에 사라져 버리더라도 이해 하고 학습하고 모방하면서 또 다른 서로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기에 인간은 다시 한번 ‘자연 선택’을 벗어나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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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5-23 0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세키가 말한 ‘현대 청년에게는 이상이 없다……’, 는 거 지금 사람한테도 해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이 다 이해하기 어렵겠지요 마음에 나온 선생님은 자신을 다 이해해줄 사람을 만나고 싶어했지만, 누구나 그런 생각할 것 같아요 그래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사람을 만난 사람은 있을 것 같네요

어제 라디오 방송에서 이탈리아하고 미얀마에 재해가 일어났다는 말 들었습니다 그것도 기후변화 때문일 듯합니다 앞으로 좋아지는 건 바라지 못하는 건지, 속도를 늦추는 것밖에 못할지도... 그것도 잘 못하는 것 같네요


희선

scott 2023-05-23 15:56   좋아요 1 | URL
소세키 시대 100년 전 청년들도 저런 생각을 했다는 건 과학 기술의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인간의 마음과 정신은 그다지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기후 변화가 정말 심각한 건 지구 전체가 사계절이 아닌 오로지 물과 뜨거운 태양빛으로 녹아 내리고 타들어 가고 있어서 언젠가 우리 지구도 우주 속 먼지 한 줌이 될 것 같습니다 .

새파랑 2023-05-23 14: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즘 소세키의 <마음>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딱 리뷰가 올라오는군요~!! 이 책 너무 좋은거 같습니다 ㅜㅜ

scott 2023-05-23 15:57   좋아요 3 | URL
하루키 옹 신간 을 읽으셔 야 합니다
아마도 올해 안으로 거리와 그벽이 번역 출간 될 수도 ㅋㅋ

제 투비에 매주 한 번 조금씩 맛보기 번역으로 올리고 있습니다
새파랑님이 분명 좋아 하실 스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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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의 5월의 커피 코스타리카 라 알퀴미아 #2

우선, 알라딘 커피 노트에 적힌 설명에 의하면 미디엄 로스팅 된 청사과, 벌꿀, 부드러운 바디감이라 적혀 있다.

홀빈으로 구입해서 에스프레소 용으로 갈아 발뮤다 더 브류기기에 내려 마셔 보았다.

레귤러 버턴을 누르면 한 잔 추출 하는데 대략 3분 내외로 12그램의 원두를 넣고 내려 마셔 보니 코스타리카 라 알퀴미아 #2의 첫 맛은 부드러운 바디감에 은은한 단맛이 느껴졌다.

두 번째 내려 마셨을 때 미세하게 신맛이 느껴졌는데 상큼한 청사과의 그 맛은 아니였다.

코스타리카 라 알퀴미아 #2의 원두는 재배 후 화이트 허니 프로세스로 가공한 원두로 원두를 재배 한 후 펄프를 제거 해서 점액질로 둘러싸인 파치먼트 채로 건조 시킨다.

이런 과정을 하는 원두는 주로 코스타리카 지역에서 생산되는 원두로 이 지역에서 생육하는 원두들의 생산량이 극히 적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허니라 명명한 것은 원두 점액질을 얼마나 벗겨 내느냐에 따라 화이트-옐로-레드-블랙으로 나눠지는데 화이트에 가까울 수록 점액질을 많이 제거하고 건조 시켜서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원두 변질을 방지 해서 가장 신선한 상태를 유지하게 만든다. 알라딘은 코스타리카 라 알퀴미아 #2를 미디엄 라이팅 로스팅 된 원두를 판매 하는 데 이 원두는 미디엄 로스팅 하면 고소하고 상큼한 맛이 더 느껴지는 원두가 된다.

알라딘 원두들의 공통된 맛은 부드러운 바디감~

5월의 청사과 맛은 ~

디저트 맛으로 음미 해야 할 것 같다.(ノ≧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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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3-05-19 21: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cott님 ㅋㅋㅋ저는 집에서 너 커피 먹지 마 해가지고 드립 금지 당하고 맛없는 디카페인캡슐만 먹어요 ㅠㅠ 커핑노트에 청사과는 좀 무리다 무리…

2023-05-19 2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19 2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19 2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3-05-20 01: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cott 님이 원두를 갈고 내려서 마셨군요 그러면 scott 님만의 맛이었을 것 같습니다 로스팅도 하실 수 있는지... 그런 거 다 하려면 시간 많이 걸리겠네요 자기한테 맞는 거 찾는 것도... 다음엔 미디엄 로스팅이 나오길...


희선

2023-05-21 17: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23-05-20 07: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간식 먹고 싶어지는 스콧님의 페이퍼😳

scott 2023-05-21 17:13   좋아요 1 | URL
괭님
바로 이웃에 살고 계셨다면
이 사과 파이 나눠드리는데 (진심 ^ㅎ^)

그레이스 2023-05-20 09: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청사과맛은 모르겠구요, #4은 먹어봤어요. 체리맛요.
처음 마실때 체리맛? 했어요.
근데 한모금 넘기고 나서, 입안에 약하게 남는 맛이 있었어요. 체리맛.
체리맛이 처음부터 나거나, 진하게 나면, 전 안 마실것 같아요.^^
미세하게 남는 그 맛을 즐기려면 커피만 천천히 음미해야 할듯요.
그런데 자주 졸리고 피곤해서 마구 들이키다 보니 이런 맛을 느낄 틈이 없는 듯요.ㅎㅎ

오랜만에 댓글 다네요

2023-05-21 17: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20 1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21 17: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꼬마요정 2023-05-20 23: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커피는 기계가 혹은 남이 내려주는 게 제일 맛나는 듯요. ㅎㅎㅎ 저는 이거 저거 다 써봐도 커피는 핸드드립이나 기계드립이 제일 맛있더라구요. 발뮤다 꺼는 진하기 선택이 되던데 아이스로 마시기 괜찮은가요?

밤인데 커피 마시고 싶어집니다… 음.. 한 잔 할까요?^^

2023-05-21 1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21 2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23 16: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피나 바우쉬 - 끝나지 않을 몸짓 현대 예술의 거장
마리온 마이어 지음, 이준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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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현대 무용에 노래와 연기, 대사를 집어 넣으며 무대 예술의 혁명을 일으킨 피나 바우쉬는 2009년 6월 30일, 암 진단을 받은 지 단 5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어느 누구도 그녀의 죽음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는 암 진단을 받기 5일전 2009년 6월 25일, 부퍼탈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 될 새로운 작품인 앙상블 무대를 준비 하고 있었다.

그날 무대 위에서 관객들을 향해 부드러운 미소로 건넸던 피나 바우쉬는 어느 누구에게도 작별 조차 하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예순 여덟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천재적인 무용가 피나 바우쉬를 위해 부퍼탈 시민들은 오페라 하우스 앞에 꽃을 놓고 촛불을 켰다.

그녀의 무용단 탄츠테아터는 묵묵히 예정된 폴란드 초청 공연을 떠났다.

피나 바우쉬가 서른 여섯 해 동안 탄츠테아터를 이끄는 동안 그녀가 창작한 춤의 언어는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매년 새로운 작품을 선 보였던 피나 바우쉬는 사생활도 없이 오로지 연습, 안무 구상, 공연, 투어로 이어지는 삶을 살다 갔다.


1913년 5월 29일, 파리의 샹젤리제 극장에서 처음 초연 되었던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은 음악의 시작과 함께 무대 위에 무용수들이 등장 하자마자 관객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62년의 세월이 흐른 후 1975년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 부퍼탈 탄츠테아터의 공연으로 새롭게 탄생한다.


무대 바닥에 토탄이 두텁게 뿌려져 있는 땅 위에서 붉은 옷을 입은 무용수들은 무자비 할 정도로 난폭한 감정을 드러내며 서로를 탐닉한다.

각자가 선택한 여성과 남성은 죽일 태세로 서로를 쫓아 다니며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채 광폭의 움직임으로 무대 전체를 뒤흔들어버린다.

탄츠테아터가 평단과 관중에 인정 받게 된지 4년 만에 피나 바우쉬는 앞선 작품들의 고정된 고전적인 몸짓을 전부 털어 내버리고 확고한 스토리도 음악도 무대 디자인도 없는 모호한 무용수들의 몸짓을 통해 시적인 이미지, 현대인들의 자화상을 무대에서 펼쳐 보인다.


'바우쉬는 자기 자신, 무용수, 관객을 용서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예술로 마법을 걸 줄 안다. 이것은 이미 오래전 부터 더 이상 독일 무대에 없었다. 피나 바우쉬는 연극의 모든 부문으로 돌격해서 이를 밀쳐 넘어뜨린다.'


아잇적에 우리는 숨박꼭질 놀이를 했지.

너 우리 놀이 아직 기억하니

모두 숨고, 한 아이는 기다려야만 하지

나무나 벽에 얼굴을 대고

손은 눈 위에, 마지막 아이가

자리를 발견할 때까지, 그리고 눈에 띄는 아이는

술래랑 경주를 해야만 하지

걔가 먼저 나무에 가 서면, 걔는 자유고

그렇지 않으면 걔는 그 자리에 서 있어야만 하지

마치 나무나 벽을 손바닥으로 치는 게

그 아이를 묘석처럼 땅에 못 박기라도 한 듯이.

그 아이는 마지막 아이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움직이면 안 돼, 그리고 이따금 마지막 아이가

너무 잘 숨은 통에 발견되지 않기도 하지.

그러면 돌처럼 굳어 거기 서 있는 아이들 모두,

각자 자기 자신의 기념비가 되어, 마지막 아이를 기다리지.

그리고 이따금 한 아이가 죽는 일이 생기기도 해

그리고 개가 숨은 곳은 발견되지 않고, 그 어떤

배고픔도 열외로 그 아이를 발견한

죽음에서 그 아이를 끌어내지 못하지

망자들은 더 이상 배고픔이 없으니,

그러면 부활은 취소되고, 술래는

모든 돌을 네 번 씩 들춰 보았지.

-하이네 밀러의 극작품 <시멘트> 중에서


나는 피나 바우쉬가 안무한 글루크의 오페라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를 본 이후로 <봄의 제전>, <반도네온>,<왈츠>, <카네이션>,<창문 닦이>, <콘탁트호프-14세 이상 신사숙녀>,<물>. <천지>,<러프 컷>,<보름달>,<대나무 블루스>, <....돌에 낀 이끼처럼, 아, 그렇게, 그렇게, 그렇게....>작품을 차례 차례 보는 동안 그녀가 무대에서 보여 주는 춤의 언어의 공통된 스타일을 알게 되었다.


피나 바우쉬가 안무 한 무대 위의 무용수들은 연극적인 요소를 도입해서 노래 하고 대화하며 관중들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무대에서 무용수들이 광란의 몸짓을 하는 동안 관중들은 무대 디자인이나 음악 따위는 눈과 귀에 들어 오지 않는다.

무용수들의 몸짓을 통해 덧없는 사랑과 행복의 쓴 맛을 느끼며 산산 조각 나버린 청춘 그리고 망상의 현실을 마주 하게 된다.

무용수들은 서로에게 달려 들고 멸시하고 괴롭히며 밀치다가 무대 위를 두 다리와 두 손으로 기어 다닌다.

허공 속에서 광란의 몸부림을 치던 이들은 울고 웃고 노래하다가 무대 뒤로 사라져 버린다.

관중들은 도대체 이런 춤을 통해 무엇을 느끼고 보았을까?


<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 성 안으로 이끌고, 다른 사람들이 뒤따른다>라는 작품을 초연 할 당시 이 무대를 본 관객들 모두 폭발해 버렸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의 한 대사를 인용한 이 무대에서 무용수들은 아무 움직임 없이 바닥에 누운 채, 마치 악몽을 꾸기라도 한 듯, 움찔 거리기 만 한다.

야유를 내지르는 관객들을 향해 피나 바우쉬는 이렇게 외쳤다.


'보고 싶지 않거든 집에나 가시고 우리가 작업 할 수 있게 내버려 두세요.'


안무의 틀을 벗어 던진 이 무대는 시간이 서서히 흐르면서 무대 전체에 물을 퍼붓고 꽃가루를 뿌리고 와인 잔을 부딪치며 담배 연기가 피어 오른다.


도대체 춤은 무엇을 보여줘야 하고, 관객은 어떤 시선과 태도로 바라 봐야 할까?


'최상의 표현 방식은 노래일 수도 있고, 문장이나 장면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 상관 없어요. 모든 게 가능하답니다.'-피나 바우쉬


피나 바우쉬는 끈질길 정도로 자신이 창작한 춤의 언어를 밀고 나가며 관객들이 스스로 무언가 발견하기를 원했다.

이는 관객들에게만 해당 되는 것이 아니라 피나 바우쉬가 이끄는 탄츠테아터에 소속된 무용수들에게도 적용 되었다.


'그녀의 안무에는 확실함이란 없습니다. 제가 무언가 시작하면 그것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 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무대에서 춤을 추다 보면 두려움이 밀려 들다가 환희로 가득 차 오르다가 돌연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춤을 추고 있다는 건 내 안의 그 무언가를 찾고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겠죠.'


피나 바우쉬는 무용수들을 선발 할 때 나이, 국적, 소속되었던 학교, 무용 단체에 대해 묻지 않았고 키와 몸무게도 상관이 없었다.

대신 굉장히 정확한, 폐부를 찌르는 질문을 하는데,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많은 시간 동안 무대 위에서 춤을 추며 자신 안에 있는 그 무언가를 찾아내야 한다.

이런 질문들은 한 작품을 공연 하고 나면 약 백 오십 개 정도 쌓이는데 어제 공연 했던 동작이 오늘 공연에서 취소 되고 전혀 다른 동작으로 뻗어 나가면서 세세한 걸 발견하고 조합하고 그러다 폐기 하면서 미세한 물의 파동처럼 비로소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나는 절대로 앞에서 부터 시작하지 않습니다. 앞에서 뒤로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부분들을 가지고 작업했어요. 그것들은 서서히 커지고 조합되고 밖으로 자라나죠. 저는 절대로 백 퍼센트 만족 했던 적이 없을 정도로 끔찍하게 철저하게 모든 걸 뒤집고 또 뒤집어버립니다.]


1975년부터 1980년 까지 피나 바우쉬가 안무 한 모든 무대를 직접 구상하고 디자인한 롤프 보르칙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창조적인 무대로 피나 바우쉬의 무용 언어를 확립 시키며 춤의 이미지를 입체적으로 펼쳐 보였다.

피나 바우쉬의 작품에는 리듬과 타이밍, 대조의 삼 박자가 정교한 콜라주 처럼 맞물리는데 앙상블 장면에서 독무가 뒤이어 나오다가 분주한 몸 놀림의 무용수들의 춤 사위 뒤로 대화가 오고 간다.

무용수들이 무대 위를 종횡무진 하며 뛰어다니는 동안 관객들은 자신의 유년기, 청년기, 노년기로 이어지는 삶의 환희와 고통을 골고루 맛보게 된다.

귀에 익숙하지 않은 낯선 음악과 함께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아우성 소리가 몸짓의 언어와 부딪치는 순간, 무대 위의 세상은 섬뜻할 정도로 두려우면서 위협적이다.

이런 춤, 이런 공연을 보고 나면 한 동안 몸 속 전체에서 끌어 오르는 감정의 소용돌이로 인해 이따금씩 악몽을 꾸게 된다.

불편한 장면, 불길한 미소,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보여주는 피나 바우쉬는 관객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생존자들에게는 한순간이 있다. 붕괴 직전인 건물들 사이, 외줄 위에서 그들은 축제를 즐긴다. 안무는 죽음의 무도의 전통 안에 있다.'-미셸 푸코

몽환적인 아름다움, 꿈 속 같은 편안함, 동화 속의 행복한 결말을 폐기 처분 해 버린 피나 바우쉬는 차갑게 고통 받고 있는 인간의 심장 속을 파헤쳐 보이며 끔찍한 인간의 숙명과 원초적인 욕망의 불기운을 관객들에게 보여 주었다.


'나는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게 만드는가에 더 관심이 있다.'


인간은 무엇에 기뻐하며 웃고 울며 살아갈까?


1984년에 초연된 작품 <산에서 통곡 소리 들리나니>는 마태 복음 2장 18절의 구절로 흙바닥을 누비는 무용수들은 안개에 휩싸인 채 앞을 보지 못해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무대 곳곳에서 풍선들이 터지고 수영모에 수영복을 입고 고무장갑을 낀 이들의 흉칙한 모습이 보인다.

남자는 여자를 때리고 여자는 다른 여자의 머리 채를 잡아 당긴다. 서로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동안 무용수들 몸 곳곳은 멍 투성이가 되면서 어느 덧 이들의 머리카락은 회색빛으로 변하며 노인의 모습이 된다.

마지막 무대 하늘 위에 둥그렇게 뜬 종이 달을 향해 한 노인이 숨 가픈 목소리로 이렇게 외친다.

'여보세요'


그녀가 단독 안무 한 마지막 작품 <....돌에 낀 이끼처럼, 아, 그렇게, 그렇게, 그렇게....> 무대는 어떤 이미지도 없고 최소한의 소도구들만 등장한다.

끝없이 펼쳐진 소금 풍경들은 소름 끼칠 정도로 관객들 시선에 차가운 빛으로 일렁 거린다.

'아름다운 것들은 뭔가 움직임과 연관되어 있다니, 희한하죠.'


그녀의 춤의 언어에는 엄마가 아이에게 스프를 떠 먹이고, 두 연인은 다정하게 서로의 생일을 축하하며 케이크에 꽂혀 있는 촛불을 끄고 노년의 부부는 다정하게 서로의 손을 맞 잡고 침대에 누워 있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에 어떤 제목도 달고 싶어 하지 않은 채 매년 새로운 작품을 작업 하며 서로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나라와 협업을 하며 연습-공연- 투어에 자신의 모든 걸 쏟아 부었다.

그녀는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 곳곳을 누비며 자신이 창작한 무용 언어를 전파 했고 찬사와 비판을 한 몸에 받으며 때로는 부드러우면서 고집스러웠고 과격할 정도로 엄격할 정도로 어떤 부담감이나 요구도 견뎌냈다.



'나는 지칠 겨를이 없습니다. 경험하고 배우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요. 어제 보다 더 많은 곳을 보며 더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인생은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린답니다

.-피나 바우쉬(1940-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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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3-05-08 0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피나 바우쉬 예전에 영화 ˝그녀에게˝보고 처음 알았는데 따끈따끈 새 책이 나왔네요 오호~마구 읽고 싶게하는 스콧님 리뷰😉

2023-05-08 0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08 0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08 1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08 1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3-05-08 0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암이라는 걸 알고 닷새 만에 죽다니... 그럴 수도 있군요 암이라고 하면 말기라 해도 한두 달 길면 석 달 남았다고 할 것 같은데... 흔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불꽃처럼 살다 갔다는 느낌이 듭니다 피나 바우쉬 안무는 포스트모더니즘이네요 이렇게 말하는 것보다 자유롭고 상상력이 넘친다고 해야겠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은 많이 좋아해도 싫어하는 사람은 뭐 저런 게 있나 할 듯합니다 피나 바우쉬는 그런 거 마음 쓰지 않았겠네요


희선

2023-05-08 1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3-05-08 12: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술 음악에 이어서 이제는 무용까지~! 스콧님의 지식 범위는 무한대입니다 ㅋ
피나 바우쉬도 엄청 대단한 분이네요. 저런 열정이 있어야만 자기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나봅니다~!!

scott 2023-05-09 15:34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 ㅋㅋ
그냥 제가 좋아하는 것만 읽고 보고 체험해보고 ㅋㅋㅋ

열정의 불이 너무 강렬해서 이분은 개인 사생활이 없었습니다 ^^

책먼지 2023-05-09 13: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콧님 이런 글은 진짜 돈받고 파셔야 되는 것 아닌가요?😭 미셸 푸코 인용해주신 부분과 그 아래 단락들이 확 와닿았어요.. 무언가에 미쳐서 거기에 온 삶을 다 바치고 떠난 사람의 기백이 느껴집니다!! 한겨레 주말판에서 이 책 소개 읽고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진짜 완전 읽고 싶어졌어요!!!

2023-05-09 15: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11 1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11 14: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12 1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