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새벽형 인간이다.

정확히 다섯 시를 넘어가면 머릿 속에 불이 켜지고 천천히 팔 다리를 움직이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이렇게 하루를 새벽 다섯 시부터 시작한 것 고등학교에 입학 하고 부터다.

집에서 먼 거리(지하철로 30분, 버스로 50분)에 있는 학교에 통학하는 동안 몇 번을 제외하고는 교문이 열리는 시간에 도착해서 하루를 시작했다.

학급 친구들 보다 2시간 먼저 교실에 도착 하니 그날 해야 할 것, 하지 못한 것을 하는 시간으로 알차게 사용했고 이 습관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루를 언제 ,몇 시에 시작하느냐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의 종류와 범위가 달라진다.

세상의 반을 정복했던 나폴레옹은 하루 4시간만 잤고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하루 11시간씩 자면서 연구 활동과 저술, 강연을 펼치며 세기의 업적을 세웠다.

자연의 세상에서도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먹이를 찾는 습성을 가진 동물과 그렇지 않은 동물로 나뉜다.

자연계에서 새벽 부터 활동하는 부류들은 극소수들로 대부분 천적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해가 지고 난 후에 활동하는 습성을 가진 부류들이 더 많다.

개개인의 생체 시계는 모두 달라 각자가 필요로 하는 만큼 잠을 자야만 하루 종일 좋은 컨디션을 유지 할 수 있다.

늘상 일어나는 시간에 일어나지 못한 하루에는 하루 종일 몸이 천근만근처럼 무겁고 편두통에 시달리게 되듯 각자 자신의 신체 조건에 맞는 생체 시간이 있다.

2009년독일의 한 연구 기관에서  발표된 결과에 따르면 잠을 적게 자는 사람들에게 발견되는  돌연변이 유전자가 있는데 이는 마치 눈동자 색깔, 머리카락, 신장 크기가 제각기 다른 것처럼 개개인 마다  수면 시간과 활동시간이 다르고  연령에 따라 변한다는 것이 의학적으로 증명되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선 개개인의 몸속에 내재된 고유 생체 시계에 맞춰 활동 할 수 없다.

나처럼 아침형 생체 시계를 가진 부류들은 오후 5시부터 극심한 피로감에 시달리기에 자정에 가까워 질 수록 집중력과 판단력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잉글랜드부터 이집트 그리고 대서양 해안에서 티그리스 강까지 이어지는 대 제국을 통치하고 지배 했던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아침형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해가 뜨기 시작하는 시간에 침대로 돌아갔고 늦은 오후 시간에 일어나 대부분의 일을 처리 했다.

당시 로마인들의 하루의 시작은 오전 6시로 공공 기관의 시작은 오전 9시였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남긴 <명상록>의 첫 구절 대부분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침대에서 나오기가 힘들면...'

뒤이어 이런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네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라.

- 어떤 곳이라 하더라도 자기 자신의 영혼 보다 더 평화롭고 더 한적한 피신처를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끊임없이 이 피신처를 자신에게 대비하고 원기를 회복하라. 

그리고 <명상록>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너는 5막이 아니라 3막 만을 마쳤을 뿐이라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극과는 달리 3막에서 인생이 끝이 날 수 있고 3막의 지루함과 고단함의 고비를 넘어가면 전과 다른 세상이 눈 앞에 펼쳐 진다.

2026년 1월 27일에 개설한  첫번째 유튜브 채널에 숏츠 영상을 올리고 지금까지 이 채널에 동영상 106개를 올렸고 두번째 개설한 유튜브 채널에는 지금까지 127개 영상을 올렸다.

첫번째 채널 [https://www.youtube.com/@Scott-MoveableFeast]

두번째 채널   [https://www.youtube.com/@Artistway-official]

처음 채널을 시작 할 때 내가 직접  영상의 콘텐츠를 기획해서 스크립트를 작성하고 편집과 음원 그리고 음성과 자막 생성 삽입까지 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차츰 내 영상을 보는 시청자들이 늘어 나고 있는 동안 어느새 나는 애니메이션을 기획해서 제작하고 내가 좋아하는 여러 장르를 영상으로 제작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 만해도 로봇과 함께 살게 되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운전 할 때 지도 역할을 해주는 네비게이션을 비롯해서 집안에 로봇 청소기가 이제는 필수품이 되었듯이 나를 대신해서 주문을 하고 심부름도 하고 함께 거리를 활보 한다 해도 그다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 하고 부터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이 아이디어를 확장해서 어떻게 영상으로 제작할지 기획 하기 시작하고 영상 작업을 위한 스크립트를 짜고  프롬프트 작성을 하며 여러 버전의 편집본을 제작 해 둔다.

우리는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돈을 벌고, 미래를 계획한다. 하지만 인생의 본질적인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비탈리 카스넬슨의 <죽음은 통제 할 수 없지만 인생은 설계 할 수 있다> 중에서

이 세상이 내가 상상하고 꿈꾸는 데로 움직이지 않지만 내가 기획했던 것들을 입체적인 결과물로 만드는  동안 나라는 인간은 세상의 단 하나 밖에 없는 크리에이터, 즉 창조주가 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만물에게 주어진 시간은 정확히 24시간이다.

24시간 동안  각자의  삶에 맞는 목적과 행위, 사고를 하며 생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 겨우 2막이 시작 되었는데 2막에서 끝이 날 수 있는 것도 인생이다.

그러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마지막 조언처럼 지금의 내 인생이 몇 막에서 끝이 나버릴지 모르니 절대로 희망의 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매일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는 듯이 살아가면서도, 거기에 초조해 하는 것이나 자포자기해서 무기력한 것이나 가식이 없다면, 그것이 인격의 완성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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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아내를 친구 이자 시인인 사토 하루오에게 양도 하겠다는 기사를 신문에 게재한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친구 사토 하루와 사랑에 빠져버린 아내 치요코를 주도 면밀하게 관찰 하며 <여뀌 먹는 벌레>라는 작품을 집필한다.

 
'별일 아니다. 그녀와 결혼하고 부터 이 긴 세월 동안, 그는 어떻게 이혼해야 할지 하는 문제 만을 계속 고민하며 살아왔다. 헤어지려는 일념밖에 없는 남편이었다. 문득 그렇게 생각하니, 스스로의 냉혹한 모습이 가나메 자신에게도 생생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그는 아내를 사랑해 주지 못하는 대신 모욕감 만큼은 결코 느끼지 않도록 항상 신경을 썼지만, 여자한테 그런 배려가 가장 커다란 모욕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여뀌 먹는 벌레> 중에서 


준이치로는 상인과 정치인에게 아내라는 존재가 필요 하겠지만 예술가에게는 전혀 필요 없는 존재라는 말을 남기고 첫 번째 아내를 친구에게 양도 하고 스무 살 연하인 문예지 기자와 결혼을 한다.


'이번에 우리 세 사람이 합의하여 치요코는 준이치로와 헤어져 하루오와 결혼하기로 하였기에 알려 드리오며, 준이치로의 딸 아유코는 어머니와 같이 살기로 하였습니다. 물론 쌍방의 쿄류는 종전과 다름없을 것입니다. 가까운 시일 안에 적당한 중매인을 내세워 결혼 피로연을 갖고자 하며, 그 일은 추후 통지해 드리겠습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치요코,사토 하루오

                                 <아사히 신문> 1930년 8월 19일자


준이치로는 두번째 결혼 역시 3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이혼을 하는데 그 이유는 혼인 생활 중에 알고 지냈던 네즈 마쓰코 라는 여인에게 흠뻑 빠져 버렸기 때문이다.


간사이 지방의 오사카 거상의 딸이였던 네즈 마쓰코는 가세가 기울어져 갔던 시기에 정략 결혼을 하지만 남편의 폭력으로 고통의 나날을 보낸다.


이를 지켜 보았던 준이치로는 마쓰코에게 폭력을 저지르는 남편으로 부터 해방 시켜야 한다는 일념에 사로 잡히고 두 사람은 몰래 동거를 시작한다.

마침내 마흔 한 살 생일 날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스물 다섯인 마쓰코와 결혼 도장을 찍고 서로 부부가 된 그날 준이치로는 마쓰코에게 자신을 하인으로 불러 달라는 계약서를 내민다.


준이치로는 절대로 아내 마쓰코 보다 먼저 밥을 먹거나 숟가락을 들지 않았고 그녀가 자리에 앉기 전에 먼저 앉지 않았다.

아내가 식사를 할 때는 옆에서 시중을 들었고 식사를 마친 후에야 밥을 먹었다.

 
'이처럼 슌킨은 고집도 세고 제멋대로였지만 다른 고용인들에게는 심술궂게 행동하지 않았다. 유난히 사스케를 대할 때만 그녀의 심술이 심해졌는데 원래 그런 기질이 있는 데다 사스케만이 애써 비위를 맞추려 했기에 그를 가장 편하게 생각해서 그런 극단적인 행동이 나타났던 것이다. 사스케 또한 고달프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기쁘게 받아들였는데, 필시 그녀의 유난스러운 심술을 응석으로 여기며 일종의 은총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슌킨 이야기> 중에서 


세번째 결혼한 아내와 주종 관계를 맺은 준이치로는 아내 마쓰코를 관찰 하며 <슌킨 이야기><장님이야기> <갈대 베기>를 집필한다.


'여자! 그것은 내가 태어난 그날부터 오늘까지 나를 이끌어 줄 유일한 빛, 암흑 속에 떠다니는 배를 비춰 주는 유일한 별, 여자 없이는 내게 시도 예술도 없다. 마쓰코... 내 육신의 어머니일 뿐 아니라, 나의 삶, 나의 사상, 이념 그리고 나의 모든 것이다.'



준이치로는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 '세키'를 항상 그리워 했다.

대단한 미모에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가졌지만 불우한 결혼 생활로 인생의 빛을 발하지 못했던 어머니 '세키'의 삶의 조각을 자신의 작품에 투영 시키며 유년 시절의 기억의 조각을 맞춰 나갔다.


1942년에 발표한 작품 <세설>은 마쓰코를 만나지 않았다면 절대로 탄생 되지 않았다.

준이치로는 <세설>이라는 작품 이전인 1910년대 발표한 작품에는 여성 숭배, 페티시즘,마조히즘에 몰두 하며 발에 집착하는 변태 성욕자들을 등장 시켰다

1923년 어머니의 외모를 쏘옥 빼닮은 마쓰코, 그는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간사이 지방으로 이주 하고 본격적으로 작품 집필에 몰두 한다.

<겐지 이야기>를 현대어로 번역하면서 집필 구상을 마친 <세설>은 아내 마쓰코의 실제 자매들의 모습 속에 간사이 지방의 상류 계층 여성들의 삶을 담았다.


<세설>은 셋째 유키코의 혼담 문제가 중심이지만 사계절의 흐름을 통해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과 일상을 영상기를 돌리듯 펼쳐 보인다.
 












'이곳 아시야 부근은 원래 대부분이 숲이나 밭이었는데 다이쇼 말 무렵부터 조금씩 개발한 땅이다. 그래서 이 집의 뜰도 그렇게 넓지는 않으나 옛 모습을 전해 주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두세 그루 들어서 있고 서 북쪽으로는 이웃집 정원수들 너머로 롯코 일대의 산이나 구릉이 바라다 보이기 때문에, 유키코는 우에혼마치의 큰집으로 돌아가 너댓새 있다가 돌아오면 마치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생기에 넘치는 기분이 되곤 했다. 그녀가 지금 서서 내려다보고 있는 남쪽으로는 잔디밭과 화단이 있으며 건너편에는 조그마한 동산이 꾸며져 있다. 그 동산에는 희고 가느다란 꽃이 달린 공조팝 나무가 정원 석 사이에 있는 마른 연못으로 드리워져 있고 연못가에는 벚꽃과 라일락이 피어있었다. 벚꽃은 사치코가 워낙 좋아하는 꽃이라서 비록 한 그루라도 뜰에 심어 집에서 꽃구경을 하고 싶다고 해 두세 해 전에 심은 것이다. 벚꽃이 필 때는 그 나무 밑에 의자를 내놓고나 모포를 깔았는데 어찌된 일인지 나무가 잘 자라지 않아 매년 꽃은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라일락은 눈처럼 만발해서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라일락 나무 서쪽으로는 아직 움이 트지 않은 백단향과 벽오동이 있고 그 남쪽으로는 프랑스어로 <세렌거>라고 하는 일종의 관목이 있었다. 유키코의 프랑스어 선생님인 쓰카모토 부인이라는 프랑스 사람은 자기 나라에 흔한 세렌거 꽃을 일본에 와서는 본 적이 없는데 이 뜰에서 보니 신기하다면서 아주 정겨워했다. 그래서 유키코도 이 나무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고, 프랑스어 사전을 찾아보고, <세렌거>가 일본어로 는 <사쓰마우쓰기>라는 댕강목의 일종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이 꽃은 항상 공조팝나무나 라일락이 진 뒤, 별채의 울탈 옆에 있는 황매화나무와 거의 동시에 피어서 이제야 겨우 어린잎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쓰마우쓰기> 너머는 슈토르츠 씨네 뒤뜰과의 경계라서 철망을 쳐놓았는데 그 철망을 따라 벽오동 아래 잔디밭에 오후 햇볕이 화창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준이치로의 <세설> 중에서 


<세설>은 아사히 문화상, 마이니치 출판 문화상을 받으며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반열에 올라 선다.

80세로 생을 마감한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나는 여자를 나보다 높은 존재로 우러러본다. 우러러 볼만한 존재가 아니면 여자로 보지 않는다.' 라는 말을 남겼다.


1960년 <세설>이 프랑스어로 번역되고 이 작품을 읽고 큰 감동을 받은 프랑스 작가이자 철학자 샤르트르는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 다른 일정을 미루어 놓고 준이치로가 묻혀 있는 곳부터 찾아 갔을 정도였다.

 

'그래서 모두들 시냇가 풀숲으로 쭈욱 들어가 보았다. 그 주변은 희미한 어둠에서 시시각각 캄캄한 어둠으로 변해 가는 미묘한 때였다. 그때 양쪽 기슭의 수풀 속에서 반딧불이가 휙휙 참억새 높이로 낮게 활 모양을 그리며 시내 한가운데로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한줄기 시냇물을 따라 어디까지고 어디까지고 한없이 양쪽 기슭을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것은 우거진 키 큰 풀과 그 사이를 날아다니는 반딧불이가 위쪽으로는 날아오르지 않고 물을 쫓아 낮게 날아다닌 탓이었다.

새까맣게 어두워지기 직전 움푹 들어간 시냇물 수면에서 짙은 암흑이 기어 올라오고 아직도 근처의 풀이 움직이는 모양이 어슴푸레하게 시각에 느껴졌을 때였다. 멀리멀리 이어지는 시내 끝까지 무수한 선을 그리면서 양쪽으로 뒤섞이며 점멸하고 있던 유령 같은 반딧불은 지금도 꿈속에 까지 여운을 남기고 있는지 눈을 감아도 생생했다. 정말 오늘 밤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것을 맛보는 것만으로도 반딧불이를 보러 온 보람이 있었다. 역시 반딧불이 잡이는 꽃놀이처럼 회화적인 것이 아니라 명상적인 것이라고 해야 좋을 것인가. 그런데도 옛날이야기 속 세계처럼 어린아이 같은 면은 있지만..... 그 세계는 그림으로 그리기보다 음악으로 연주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토나 피아노로 그런 느낌을 작곡한 것이 있어도 좋을 텐데.....'

-세설 중에서

<세설>은 1940년대 이전의 일본 문학에서 무시되고 멸시 되고 간과 되었던 여성의 모습, 그녀들의 일상과 문화를 한 순간 화려하게 피어나는 벚꽃 처럼, 가볍게 흩날리는 가랑 눈 처럼 세파의 폭풍속에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섬세한 필체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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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라 칼만, 우리가 인생에서 가진 것들
마이라 칼만 지음, 진은영 옮김 / 윌북아트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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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무얼 가지고 있나?

집과 가족.

그리고 아이들과 음식.

친구 관계.

일.

세상의 일.

그리고 인간 다워지는 일

기억들.

근심거리들과

슬픔들과

환희.

그리고 사랑.

내 친구(남자)가 말했다.

내 어휘집에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삭제하면,

행복해질 거라고. 동의할 수 있을 듯하다.

어머니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지만,

그땐 너무 어려서 이해하지 못했다.

때로, 이런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특별히 행복하거나 만족스러운.

그럴 땐 수많은 사람을

내가 다 먹여 살릴 수 있을 것만 같다.

온 세상을 품에 안을 수 있을 것만 같고.

하지만 어떨 땐, 작은 방조차 겨우 가로지른다.

나는 두 팔을 축 늘어뜨린다. 얼어버린다.

우리 할머니는 늘 땀에 젖어 계셨고

항상 궁지에 몰린 것 같았다.

아마도 자기가 사랑한 남자와

결혼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은 어떤 것을 가졌다가 기진맥진하고

낙담할 수 있다. 그리고 감정이 차오를 때면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누구든 어떤 날에든 그럴 수 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하지만 그러고 나면 다음 순간이 있다.

그리고 다음 날, 그리고….

당신은 시간을 찾자마자 더 많은 시간을 원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 사이에 더 많은 시간을 충분한 시간이란 결코 없을 것이다

. 그리고 절대 붙들고 있을 수도 없다. 

 너무나 이상하다. 우리는 살아간다. 

그런 다음 우리는 죽는다.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이상하다.

- 마이라 칼만의 <우리가 인생에서 가진 것들> 중에서

두 손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사용 할 수 있는 인간은 매일 무언가 쥐고, 만지고 들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 나는 무엇을 손에  쥐고 있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커다란 무게로 삶을 짓누르며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때가 많다.

내가 짊어지고 있는 고민과 걱정 덩어리들이 한 손으로 들 수 있는 양배추 크기였다면 매일 몇 장씩 잎을 떼어내서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 해서 전부 씹어 삼켜 버릴 수 있다.

양배추를 가지고 있었을 때와 양배추 한 덩어리를 전부 먹어 치우고 났을 때의 마음 상태가 다르듯 

당장 눈으로 볼 수 있는 금전이나 물건도 사용하면 닳아 없어지는 마당에, 하물며 손에 잡히지도 않는 사랑이나 행복을 어떻게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태어나는 순간 아무 것도 손에 쥐지 않고 태어나는 인간은 성장하는 동안 무엇이든 쥘 수 있을 것만 같아도  흐를 수록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항상 시간에 쫓기지만 정작 삶의 소중한 시간은 허비하며 살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아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을 놓치는 동안 가까스로 정신을 붙들고 있기도 하고, 꼿꼿하게 버티고 있기도 하며, 어깨 위에 세상의 모든 무게를 짊어지며 살아간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생의 무게를 벗어던지기 위해 인생을 행운의 날벼락 같은 숫자에 맡길 때도 있다.

산책 하듯 강변 길을 걸어 가면  꿈의 숫자, 로또 1등  당첨자들을 쏟아내는 행운의 명당 판매점이 있다.

 경제가 나쁠 수록 불티나게 팔리는 건 저가형 상품을 판매하는 상점들과 그리고 로또다.

로또 복권 당첨 확률은 815만분의 1일 정도로 낮은데도 불구하고 로또를 살 때 마다 '혹시 모르지, 당첨될 지도 '라는 꿈에 잔뜩 부풀러 오른다.

이따금씩  이런 느낌이 들 때가 있다.딱히  행복하지 않아도 꽤 만족스러울 때면 내 몸 하나 온전히 버텨 내는 것 만큼 내 손길이 닿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만 같다. 

취업난, 월급난, 물가난에 허리가 휘어지는 나날 속에  커피 한 잔 값으로 로또에 당첨될 수도 있다는 망상을 하며 일주일의 고된 시간을 버티며 어떤 것을 가졌다가 낙담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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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 수많은 빌딩 사이에 구부정한 자세로 망치를 천천히 내리치는 동작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망치질 하는 조각상이 서 있다.

이 조각상은 평일에는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망치질을 하고 주말과 공휴일에는 쉰다.

1979년에 뉴욕의 한 갤러리에서 ‘노동자’라는 제목으로 처음 발표된 망치질 하는 조각상은 10년 뒤 미국 워싱턴에 ‘서류가방을 든 '화이트 칼라 직장인으로 도심 한 가운데 설치 되었지만 시민들의 무관심으로 박물관 옆으로 옮겨졌다.

서류 가방을 든  조각상과 달리 망치질 하는 조각상 전 세계 11개국 도시에 세워질 정도로 인기가 많다. 그 중에서 서울 광화문 흥국 생명 앞에 세워진 조각상이 가장 크다.

세계적으로 널리 사랑을 받고 있는 망치질 하는 사람을 조각한 조너선 보로프스키는 예술적 분위기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대학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지만 우연한 기회에 용접으로 추상 조각을 만들고 부터 철제 조각물을 다루는 작업을 시작했다.

보로프스키가 대학을 마쳤던 1960년대 미국 사회는 대통령을 비롯해서 사회 저명 인사들과 유명인들의 잇따른 암살, 베트남 전쟁에 반대 하는 반전 시위, 인종 간의 갈등과 부의 불평등으로 사회 곳곳은 시한 폭탄이 매일 터졌던 혼돈의 시기 였다.

이런 혼돈의 시기와 달리 정작 예술계는 다양한 실험과 혁신이 가득한 자유로운 분위기가 조성 되어 어떤 재료로 작업을 해도 부유한 자산가들과 후원자들 덕분에 전시장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창작 환경이 이전과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지만 정작 브로프스키는 작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어떤 창작물도 생산 할 수 없게 된 그는 매일 두 세 시간씩 앉아서 종이에 숫자를 쓰기 시작 했다.

첫 날 1에서 1000까지 숫자를 쓰기 시작한 브로프스키는 다음 날 1001부터 쓰기 시작했다.

그의 부모는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한 자식이  창작은 하지 않고 매일 숫자만 세고 있다며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매일 두 세 시간씩 숫자만 종이에 적었던 브로프스키는 2년 동안 지속한 후에야 마침내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이때 부터 작품을  완성하게 되면 그 날 센 숫자와 작업을 연결 시켜서 서명 대신 그 날의 마지막 숫자를 적어 나갔다.

2년 동안 매일 두 세 시간씩 숫자를 적은 브로프스키는 5년 동안 조각품을 만들면서 완성품을 전시 할 때 1에서 234만6502까지가 적힌 종이 더미를 작품으로 내놓았다.

서울 광화문에 세워진 '망치질 하는 조각상'에 새겨진 숫자는 ‘2,669,857’이다.

이 숫자는 그가 조각상을 만들기 위해 숱한 망치질을 한 회수에 해당할 것이다.

그대는 왜 글을 쓰지 않는가? 글을 쓰라! 글쓰기는 그대를 위한 것이고, 그대는 그대를 위한 것이며, 그대의 몸은 그대의 것이니, 그것을 취하라. 나는 그대가 왜 글을 쓰지 않는지 알고 있다.

-엘렌 식수의 <메두사의 웃음 >중에서 


브로프스키가 ‘2,669,857’의 망치질로 22m, 55t에 육박하는 거대 조각상을 탄생 시켰고 나는 지난 2023년 1월 12일 부터 지금까지 1110일 동안 2010개의 글을 투비컨티뉴드에서 발행했다.

지난 3년의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매일 하루에 하루에 두 편 씩 자정을 넘기면 '모닝 페이지'를 발행 하고 오전 10시에는 연재 시리즈 노트를 발행하는 동안  한 회  당 글자 수가 700자 이하로 써 본 적이 없다. 

그동안 20개 시리즈를 발행 하면서 회 당 4천에서 5천을 넘는 분량의 글을 썼고 창작 소설 <그 해 여름의 수수께끼>와 100편 분량의 대 장편 <굿바이, 부다페스트>의 마지막 회는 3만 5천 자를 넘게 쓰고 대장정의 마무리를 했다.

내가 지난 3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써온 글자수를 종이에 새겨서 발행 해 본다면 망치질 하는 조각상이 서 있는 빌딩 높이 만큼 될 것이다.

빌딩 높이 만큼 썼지만 이에 대한 보상은 베스트셀러 한 권 판매량 인세와 비교 할 수 없을 정도이고 노동자의 최저 하루 임금 수준에 달하는 보상에도 미치지 못했다.

나의 하루 수면 시간은 5시간을 채 넘지 않는다.

아침 출근 길에 나서자 마자 사회라는 챗바퀴 속으로 들어 가서 하루 일과를 마치고 노트북의 전원을 켜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3-4시간 정도 뿐이다.

세상의 모든 생물들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은 정확하게 24시간이다.

이 시간 안에 유충에서 번데기가 되어서 날개 짓을 펴고 하늘을 나는 나비가 되고, 하루 반나절 동안 울어 대는 매미들도 8일 동안의 생을 다하기 위해 강렬한 태양 빛을 받으며 울어 댄다.

세상은 언제 부터인가, 영상의 시대, '말의 시대'가 되어 여기 저기 다양한 플랫폼에 자신의 얼굴이나, 목소리, 손목만 내놓는 영상물로 넘쳐 나고 있다.

학교나 직장에서도 말을 잘하는 사람, 프레젠테이션을 잘하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부각 되어 소위 잘나가는 사람, 주목을 받는 인재로 인정 받고 있는 시대다.

이런 시대의 변화로 인해  1인 미디어 채널로 누구나 자유롭게 영상을 찍고 편집하는 사회가 되었다.

직장이라는 곳은 세가지 사항에 부합되는 인재 상相을 찾아 발탁한다.

 그 세가지 사항에 해당하는 인재란, 각종 사안에 대한  문제 제기와 분석, 해결을 잘 하는 이들로  문제 제기를 잘하고 분석을 잘하면 똑똑한 인재로 각인 되고 여기서 한 가지 더 나아가 해결을 잘하면 유능한 인재로 부각된다.

반면, 글을 잘 쓰는 이들은 어떤 조직에 가서도 그림자 역할과 수행을 도맡으며 승진의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펜보다 입, 말이 절대적으로 우세한 시대에 글을 쓰는 이들이 있다는 건, 자신의 생각을 담은 글, 세상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글 속에는 생각이 담기고 삶이 담긴다.

내가 처음 투비에 글을 쓸 때 부터 꾸준하게 매일 글을 읽어주고 응원해 주는  보이지 않는 구독자들 덕분에 매일 망치를 들고 망치질을 하듯이 자판기를 1110일 동안 두드릴 수 있었다.

매일 투비에 다양한 장르의 글들이 발행 되고 있지만 투비 메인 화면에서 구분해 놓은 태그들을 눌러 봐도 조회수가 낮은 글들은 피드백 화면에서 쉽게 찾기 힘들고 언제 부터인가 이곳 창작 플랫폼은 인적이 드물다 못해 어떤 글을 써도 조회수 10 에서 20을 넘기 힘들어졌다.

우리 부모님의 세대와 비교 할 수 없는 편리함과 기술이 완비된  인공지능 시대에  살고 있지만 행복의 크기는 이전 세대들에 비해 더 작아지고 줄어 들었다.

세상에 모든 이들은 각기 다른 재능을 갖고 태어나듯이 우리는 자신이 살아 온 만큼의 삶의 경험, 생각한 만큼의 글을 쓸 수 있을 것이고 또는 영상을 제작 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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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에 출간 된 유발 하라리에 초대형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의 10주년 기념  서문에 이런 글이 실렸다.









-인공 지능의 시대,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2011년 여름 <사피엔스> 집필을 마무리 하면서 이 이야기로 다시 돌아올 일은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이 책을 각별히 좋아하는 데다가 성공까지 거둬 감사한 마음이지만, 이 책을 통해 인류에 대한 이야기는 일단 전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휴머니티 2.0'은  여전히 진화해 가고 있고 그래서 다른 이에게 맡겨두는 것이 최선이라 여겼다.

그러던 중 2016년 미국 대선의 여파로 나는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 상상 속의 질서와 지배적 구조를 창조해내는 인류의 독특한 능력을 재검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가 배운 것은 가짜 뉴스가 진짜 뉴스보다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다는 점, FBI가 대통령을 선출 할 수 있다는 점,페이스 북이 선거판의 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 억만장자가 경쟁 후보 보다 적은 돈을 써서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점, 마지막으로 한 국가가 적대적인 두 진영으로 쪼개져 더 이상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달리 말해서 이 모든 현상이 말하는 바는 대규모로 상상 속의 질서를 창조해내는 인류의 독특한 능력이 현재 우리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우리는 국민국가의 자본주의 시장이라는 상상 속의 질서 덕분에 힘을 가질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전례없는 번영과 복지도 이루었다. 하지만 그 상상 속의 질서가 오늘날 우리를 분열시키려 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마주한 커다란 도전 과제는 세계적인 규모로 새로운 상상 속의 질서를 만들되 국민 국가나 자본주의 시장에 기초하지 않는 것이다. 국민국가나 자유시장 또는 개인의 주권이나 자연의 지배에 기초하지 않은 채로 세계적인 규모로 새로운 상상 속의 질서를 만들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이 책에서 내가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 이다.

-2023년, <사피엔스 >10주년 기념 특별 서문 중에서

 과학적 지식으로  인간의 유물과 선사시대의 흔적을 분석하여 인류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이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독특한 시각을 펼쳐 보인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처음 읽었을 때 인류의 복잡한 역사를  이해하고 식견을 넓히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영어판과 한국어판을 모두 읽고 소장한 나는 2023년 4월에 출간된 10주년 출간 기념 서문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10 주년 기념판 첫 장에 실린 서문은 유발 하라리가 인공지능(AI) 글쓰기 프로그램 ‘GPT-3’에게 대필을 의뢰했고 ‘GPT-3’는 세계적인 석학 유발 하라리 교수가 출간한  책과 논문, 인터뷰, 기타 기고문등을 모조리  학습 해서 그의 언어 스타일로 교묘하게 편집해서 서문을 완성 했다.

이 서문을 10주년 기념판에 실은  하라리 교수는 자신이 직접 쓴 서문에  “‘GPT-3가 쓴 서문에 어떠한 수정이나 편집도 없었다”고 밝혔다.

이 서문을 ‘GPT-3’가 썼다는 걸 밝히지 않았다면 독자들은 유발 하라리 교수가 썼다고 당연히 믿었을 것이다. 

 이치에 맞게 시의 적절한 내용이 모두 포함된 GPT-3가 쓴 10주년 기념판 서문에는 지난 시절의 이야기와 현 시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반영 시키는 논리적인 치밀함과 놀라울 정도로  설득력 있는 어조를 펼쳐 보였다.

유발 하라리 교수가 2011년 사피엔스를 쓸 당시에 인공지능의 수준은 이 정도가 아니였다.

2013년에 출간된 인공지능 작가 AI-제임스가 쓴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아침 9시 17분이였고, 집은 무거웠다.'

인공지능 작가 AI-제임스의 소설 '길 1(1 the Road)'은 맞춤법도 정확하고 문장과 문장 사이의 쉼표도 정확한 위치에 찍었고 서툴지만 은유적인 암시와 표현까지 써서 총 2000단어의 조합으로  로드 여행 산문 형식의 글을 완성했다.

최초의 인공지능 소설로 기록된 '길 1(1 the Road)'은 인간이 개입하지 않은 학습된 기계가 무작위적으로 편집하고 짜집기 해서 완성했기 때문에  이 소설을 놓고 문학적 작품성을 논하기 힘들다.

하지만 앞서 유발 하라리가 의뢰해서 완성한 사피엔스 10주년 기념 서문을 쓸 정도의 능력을 키운 인공지능은 현재 쉽게 ‘대화형’으로 요청하면 생성 결과를 곧바로 내놓으면서 인간에게  말동무 혹은 개인 비서가 되고 있다.

그림, 언어, 음악, 영상, 코드 등을 생성하는 인공지능의 학습 속도는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발전 하면서 가히 AI빅뱅이라 할 정도로  다양한 서비스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생산성 도구’다. 말하자면 글쓰기 도구  역할을 하는 워드프로세서처럼 인간이 생산성 있는 작업을 할 때 결과물 산출을 도와주는 도구다.

워드프로세서가 글쓰기의 기본을 갖춘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만 글을 쓸 줄 모르는 사람에겐 무의미한 존재이듯 생산성 도구는 ‘자신이 하는 작업’의 생산성 증대에 도움이 될 때 의미가 있다.

사실 도구를 잘 쓰려면 도구와 관련된 지식과 기술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 도구 인지 빠르게 파악하고 습득해서 사용 할 줄 알아야 한다.

지금 인류는, 일부 과제에서 첨단 기술이 우리가 이해 가능한 수준을 넘어서는 결과를 이미 내놓고 있는 네 번째 시대에 살고 있다. AI가 아직 완전히 통달하지 못한 튜링 테스트의 여러 측면에서도 갈수록 가속화되는 진전이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 내가 2029년으로 예상한, 튜링 테스트 통과가 일어나는 바로 그 순간에 우리는 다섯 번째 시대에 진입할 것이다. 2030년대에 완성될 한 가지 핵심 능력은 우리 신피질의 위쪽 영역을 클라우드에 연결하는 것으로, 그렇게 되면 우리의 사고가 직접적으로 크게 확장될 것이다. 이제 AI는 경쟁자라기보다는 우리 자신의 확장된 일부가 될 것이다.

-레이 커즈와일의 <마침내 특이점이 시작된다> 중에서

AI빅뱅 시대를 맞이하면서 사회 곳곳에 인간이 했던 일자리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일상적으로 하는 업무부터 전문 분야까지 생성형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무한대로 뻗어가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 시대에 전문가의 위상은 어떻게 될까? 앞으로 전문가가 할 일은 무엇일까?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라는 창작 분야에도 생성형 인공지능은 빠르게 학습 진화 하면서 다양한 창작물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창작물과 생성형 인공지능의 창작물은 그 과정이 다르다.

지난 과거  시대에 도자기를 굽던 도공들은 단 하나의 완전한 결과물을 완성하기 전까지 수십 개, 수백 개, 수천 개를 깨는 시간 동안 도자기 굽는 기술을 여러 해에 걸쳐 연마하며 온 몸으로 그 기술을 흡수 시켜왔다.

반면  인공지능은 생성 속도가 인간보다   빠르지만 가령 1,000개의 작품을 내놓는다 해도 단 한 번의 평가도 거치지 않는다. 

 인공지능이 과연 창작이라는 걸  하고 있는 걸까?

인공지능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한 일이 좋은지 나쁜지 아름다운지 평가하지 못한다.

 창작의 진정한 의미는 평가에 있듯이 결국 인공지능이 생성한 결과물에 대해 최종 평가하는  작업은 인간의 몫이다. 

현재 영화와 광고 그리고 인간 고유의 창작 영역이라 생각했던 소설 분야까지 생성형 인공지능 도구를 쓰는  창작자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단 몇 줄 만으로 인공지능이 이미지나 영상을  생성 할 수 있다 해도 창작 작업의 시작 부터 끝까지 영상 콘텐츠 주제를 선정하고 시간에 맞춰 시퀀스를 나눠서 스크립트를 작성하고 기획해서 프롬프트를 짜서 영상을 생성하는 모든 과정에 참여하는 것도 인간이고 그 결과물이 생성 되었을 때 다양한 각도로 편집을 해서 결과물을 내놓는 것도 인간이다.

 빠른 속도로 학습 능력을 키우며 광범위한 알고리즘 프로그래밍으로 방대하게 학습하는 인공지능이라는  도구를 능숙하게 사용 할 수 있다면 창작의 세계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져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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