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일본 지바현에 1시간 동안 115mm의 쏟아진 전례 없는 폭우로 10명이 숨지고, 1,500여 채의 주택이 침수 된 지 나흘 뒤 경남 거제에 시간당 124.5mm의 극한 호우가 내렸다.

거제에 하루 동안  내린 비의 양은 654mm로 산을 붕괴 시켰고 아파트를 균열 시킬 만큼의 무시 무시한 양이 쏟아 졌다.

그동안  한반도 지형 특성상  여름 동안 비가 많이 내리고 태풍이 오는 것은 자연의 순리였지만  통상적인 소나기, 장맛비와는 다른 ‘이상기후’ 현상의 규모가 점점 더 커졌고 예측 불가 할 수준을 넘어 섰다.

지구 과학 시간에 배운 바에 의하면  해수면 온도가 증가하면, 비구름의 재료인 수증기가 늘고 한 번 쏟아질 때 강우량도 증가하기 때문에 매년 기록적인 고온으로 인해  공기가 머금을 수 있는 수증기량이 배로 증가 해서 단 시간 만에 1년 치 비가 한 번에 쏟아지고 있는 현상이 빈번해졌다. 

따라서 앞으로 닥쳐올  '극한 기상' 현상은 언제든 더 자주 일어날 수 있고  인류는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수준의  기후 재난 시대를 맞이 하게 된 것이다.

기후 재난 시대를 맞이 하게 된 지금 문득 우리는 누구일까?

 이 세계에서 우리는 어떤 생을 살아야 할까 ?라는  질문을 해본다.

최승자의 첫 시집 『이 시대의 사랑』(1981)을 펼치면 첫 번째로 등장하는 시 <일찍이 나는>의 첫 문장은 

'일찍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라고 시작해서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로 끝을 맺는다.

내가 나를 바라 보는 일은 하루 중에 거울을 볼 때와 타인의 비춰진 모습을 통해서 일 것이다.

거울 속에 비친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거울에 반사된 '한 사람'일 뿐이다.

누군가 내 이름을 호명 하거나 지명 할 때야 비로소 타인을 통해 '나'를 인식하게 된다.

그건 마치 녹음 된 자신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이상하게 들리는 것과 같은 느낌일 것이다.

어쩌면 이 광활한 우주 속에서 '나'라는 존재는 일찌감치 아무것도 아닌 존재일지 모른다.

일찍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 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 먹고

아무데서나 하염 없이 죽어가면서

일찍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너를 모른다 나는 너를 모른다.

너 당신 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최승자 '일찍이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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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살고 있는  애나는 사랑했던 남편 션이 10년 전 조깅을 하던 중 갑작스럽게 사망한 이후 10년의 세월 동안 슬픔을 잊기 위해 일에 매달렸다.

그녀는 모두가 선망하는 멋진 커리어에 지적인 외모로 숱한 남자들을 사로잡고 대단한 부를 가진 새로운 사랑 조셉과 결혼을 앞두고 있다.

애나는 어머니 생일 날 애인 조셉을 자연스럽게 소개 시켜 주기 위해 가족들을 초대해 파티를 열던 날 한 소년이 그녀의 집에 들어 온다.

어머니 생일 축하 파티가 한창 일 때 애나는 소년을 조용한 곳으로 데리고 가서 여기 누구와 함께 왔는지, 아니면 우연히 오게 되었는지 묻자, 소년은 자신은 10년전에 조깅을 하다 죽은 당신의 남편 션이 환생한 몸으로 조셉과 결혼을 하지 말라는 말을 하기 위해 찾아 왔다는 충격적인 말을 한다.

소년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애나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애인 조셉은 소년을 다른 곳으로 데려가 이곳에 어떻게 왔는지 묻자, 소년은 이 건물  윗층에 아버지가 계신다는 모호한 대답을 한다.

애인 조셉은 애나에게  소년의 아버지가 윗층에 살고 있다며 관리실을 통해 아들이  이 집에 있으니 데려가라는 말을 한다.

잠시 후, 아버지가 애나의 집에 찾아와서 사과를 하며 아들에게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말라며 애나에게 사과 하라고 말하자  고집을 피우던 아들이 갑자기 쓰러진다.


애나는 소년이 남편 션의 환생이라는 걸 믿지 않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시시각각 남편과의 추억이 떠오르는 망상에 시달리던 중 소년이 전화로 10년 전 남편 션이 조깅을 하다 쓰러진 곳에 가보라는 말을 하고 끊어 버린다.

그 곳에 가보니 소년이 있었다.

동생 애나가 혼란스러워 하자 언니 로라는 남편 밥에게 소년을 집으로 초대해서 진짜 션이 환생 한 것인지 테스트를 해보자는 제의를 한다.

애나의 언니 집에 간 소년은 션이 아니라면 대답 할 수 없는 질문에 모두 다 대답하고 이 대화를 녹음 한 것을 들은 애나는 마침내 소년이 남편 션이 환생 했다고 믿게 된다.

애나는 소년과 점점 가까워지고 함께 영화를 보고 쇼핑을 하고 그리고 집으로 데리고 와서  목욕을 하며 서로 묘한 감정을 주고 받는다.

애나가 소년에게 집착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애인 조셉은 소년이 발로 의자를 툭툭 차는 순간 폭발해서 느닷없이 소년의 엉덩이를 때리고 이에 놀란 소년이 집을 뛰쳐 나가자 애나가 뒤쫓아가서 소년의 입에 입을 맞춘다.

애나는 10살이 된 소년에게 함께 도망쳐서 성인이 된 후에 결혼하자는 말을 한다.

'결혼'이라는 말에 갑자기 돌변한 소년은 애나에게 자신은 션이 아니라고 소리치고 사라져 버린다.
다음날 소년의 집에 션의  친형의 아내 클라라가 찾아와 소년에게 자신이 션이 진짜 사랑했던 여자 였다며  그 증거로 편지 뭉치가 묻혀 있는 곳을 알려준다.

그 편지 뭉치는 션이 아내 애나에게 받았던 연애 편지들로 그는 모두 열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형수인 클라라에게  준 것이였다.

형수 클라라는 자신과 내연 관계였던 션이 애나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것에 강한 질투심을 갖고 있었고 그녀의 삶을 망쳐 버리고 싶어서 션의 불륜상대가 자신임을 밝히고  조셉과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걸 저주 했다.

소년은 션이 모아둔 애나의 연애편지를 가져가 버리고 더 이상 그녀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넌 그때 죽지 않거나 좀 더 일찍 왔어야 했어.지금의 넌 션이 아니야

10년 전 애나의 남편 션은 눈으로 뒤덮인 공원 길을 달리고 있었다.

유명 대학 병원에 소속된 의과 대학 교수 였던 션은 갑작스런 심장 마비를 일으켜서 쓰려졌고 10년 ㅜ  그는 진짜로 소년으로 환생 한 것이였을까?

소년은 형수 클라라의 지시를 받고 애나에게 복수 하기 위해 환생한 션으로 연기를 했던 것일까?

애나의 형부 밥은 션이 살아 있었던 당시에 병원 원장이였지만 션이 죽고 나서 일반 의사로  전락하고 생전에 션이 살던 집에 눌러 살 정도로 생활이 쪼그라들었다.

그렇다면 애나의 형부 밥이 뛰어난 능력을 가졌던 명의인 션을 고의적으로 살해 했던 것일까?

 남편이 죽고 나서 사회적으로 성공했지만 명성과 부를 갖고 있는 약혼자 조셉에게 굴욕적일 정도로 무릎을 꿇은 자세로 애나는 그에게 오랫동안 구애를 해왔다.

어머니는 자신의 생일 날 딸 애나의 미래를 위해서 부유한 조셉과의 결혼을 반대 하지 않지만 죽은 사위 션이 환생 했다고 말하는 소년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소년의 존재를 서서히 잊어버린 애나가  애인 조셉과 결혼식을 올리던 날 소년에게 편지 한 통을 받는다.

편지에 애나의 안부를 물은 소년은 현재 자신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며 다음 생에 만나자는 말을 남긴다.

애나의 남편 션은 영화 첫 시작에 오른쪽 신발 끈이 풀려 있는 상태에서 달리기 시작한다.

10년 후 애나가 남편 션이 환생 했다고 주장하는 소년이 다니는 학교에 갔을 때 소년의 오른쪽 신발 끈이 풀려 있었다.

소년은 형수와의 불륜관계를 맺었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애나의 행복을 빌어 주었던 것일까?

마지막 애나에게 보낸 편지 끝에 소년은 이런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당신의 션(sean)으로 부터


애나는 소년이 남편 션으로 환생한 것이 아니라고 현실을 부정하지만 남편 션을 처음 만났던 바닷가에서 결혼식을 올리며 혼란한 심정을 정리 하지 못한다.

결국 조셉은 애나를 진정 시켜주고 다독이며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걸 확인 시켜준다.

영화 <탄생>은 남편을 잃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여자와 환생 했다고 주장하는 어느 소년 그리고 이들과 연결된 가족들과의 복잡한 관계로 얽혀 있는 이야기 속에 부와 권력, 사랑과 결혼, 그리고 불륜과 거짓말이 뒤 엉킨 인간의 다면적이고 다층적인 모습을 펼쳐 보인다.


  한 인간의 <탄생 Birth>은  이전의 삶에서 이어진 또 다른 환생일까?

결국 살아가고 사랑하는 동안 진정한 <사랑> 보다 <돈>의 크기에 의해 행복도 불행도 좌우되는 것이 현실이다.


돈은 모든 불평등을 평등하게 만든다.

 - 도스토예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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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4년  스코틀랜드에서 온 23세의 한 남자가 깊은 절망감에 사로잡힌 채 런던 시내를 배회 하며 지나쳤던 한 건물에 신경질환 전문 치료소 라는 간판을 발견한다.

숙소로 돌아간 남자는 자신이 19살부터 원인을 모르는 우울증에 시달려 왔는데 점점 증세가 심해져서 학업 마저 중도 포기 하게 되었다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홀로 남은 어머니와 함께 고향 스코틀랜드를 떠나 교외 지역의 어느 상인 밑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편지를 쓴다.

그는 이 편지를  신경 질환 전문 치료소로 보내고 전전 긍긍하며 답신을 기다린다.

'이 병의 증세가 사라질 때까지 저는 북극에서 남극까지 전 세계를 돌아 다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데이비드 흄 

이 편지를 쓴 청년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이며 역사가인  데이비드 흄(1711-1776)이다.

데이비드 흄은  18세기 애덤 스미스와 함께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선구자로 역사에 이름을 새기기 전 청년 시절 극심한 우울증과 무기력증으로 큰 고통을 받고 있었다.


청년 데이비드 흄은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 같은 우울증을 떨쳐 버리기 위해 오전 부터 늦은 저녁까지 말을 타고 벌판 위를 달렸다.

우울증과 신경쇠약으로 인해 대학에서 법학 공부도 중도 포기 했고 책 조차 읽지 못했다.

정신을 하나로 모으지 못해서 허공에 물체를 매달아 놓고 온 힘을 다해 주먹질을 했고 해상 무역 상사 점원으로 취직해서  마차에 물건을 가득 싣고 각 지역마다 퍼져 있는 상점에 물건을 배달하는 일에도 매달려 보았다.

편지를 보낸 후 청년 데이비드 흄은 자신을 고용한 해운 상사 고용주가 서류상 실수를 했다며 해고 통보를 받게 되어 신경 질환 치료소 앞으로 보내는 편지에 서명도 날짜 적지 못한 채 급히 숙소에서 떠날 채비를 해야만 했다.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청년 데이비드는 가족과 친지들이 보내 준 생활비를 들고 프랑스로 건너가 철학자 데카르트가 다녔던 예수회 학교 소속의 수도원에서 은둔 생활을 시작한다.

그가 머무는 루아르 계곡물이 흐르는 수도원  숙소 창 밖 너머  드넓은 정원이 펼쳐 져 있었다.

청년 데이비드 흄은 평온한 대 자연 속에서 4년 동안 머물며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를 집필했다.

자연은 당신의 정열을 학문 하는 데 쏟아 부으라고 한다. 그러나 당신의 학문을 인간적인 것, 그리고 행동으로 사회로 직접 연결될 수 있는 것이 되게끔 하라고 충고한다. 나는 난해 한 사고와 지나치게 파고드는 탐색들을 금지하고 호되게 꾸짖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것들이 당신을 구슬픈 침울함 속으로, 그리고 끝도 없는 불확실성으로 끌고 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의 거짓 된 발견물들이 세상에 전해질 때 당신이 부딪치게 될 가혹한 평판 때문이다. 철학자가 되어라. 그러나 당신의 모든 철학 한가운데에서 계속 한 인간으로 존재하라.

-데이비드 흄 

'죽음과 빈곤, 수치와 고통을 비롯한 삶의 모든 시련'에 관한 고민으로 가득 차 있었던 청년 데이비드 흄은 유럽의 인구 반을 쓸어 버린 페스트와 전쟁, 가난, 질병으로 고통 받았던 참혹했던 현실, 시대의 고통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라 믿었다.

18세기 계몽주의 사상을 뒤 흔들었던 이 책을 집필했을 때 데이비드 흄의 나이는 26세로 유럽 평균 남자의 수명이 45세이던 시대였다.

데이비드 흄이 좌절의 청춘을 보냈던 그 시대는 오십세를 넘겨서 까지 사회적 활동을 하는 이들에게 행운아라 불렀다.

 인생의 분기점에 다다랐을 때 청년 데이비드 흄은 '자아'가 무엇인지 '개인의 정체성'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스스로 자문했다.

그가 탐구 했던 '자아'는 언젠가 사라져서 한 인간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결국엔 아무것도 없는 無의 상태가 된다며 서양의 이성을 떠받치고 있었던 3개의 기둥인 인과관계-정체성-영혼은 한 낮의 허구 일 뿐이라는 견해를 제시 했다.

자신의 철학 사상이 세상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두려워하며 사회에 가장 중추적인 지식인들인 형이상학자, 논리학자, 수학자, 과학자, 신학자들의 증오의 대상이 될지 근심했던 26살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의 존재는 어떤 원인으로부터 유래하는가?

-나는 어떤 조건으로 돌아갈 것인가?

인간의 삶이 반 세기를 넘기기 힘들었던 시대를 살았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 고민 하고 탐구 했던 위의 세가지 질문은 2026년 현시대를 향한 질문이기도 하다.

조선 시대 부터 한국 사회에서 교육은 신분 상승의 사다리였다.

부모의 등골이 휘어지도록 교육 지원을 받아 졸업장을 쥐고 사회로 나온 흙수저 출신들이 금융 대출 빚을 갚는 동안 부자는 자식에게 부를 대물림 해주고 가난은 가난의 대물림이 되어서  아무리 일해도 내집 마련의 희망은 이번 생에 영영 이루지 못할 좌절의 꿈이 되어 버렸다.

기업의 일자리는 점점 AI기기들이 차지 하게 될 것이고 정규 교육을 마치고서도  사회에서 제 역할을 못하는 수준에 이르게 될 미래 세상에 우리 인간은   21세기 인류의 유산이 남긴 조산아들이 될 것이다.

'눈 먼 자연, 생기를 깨우는 어떤 거대한 원칙에 따라서 잉태되어, 

분별력이나 부모의 보살핌도 없이, 자연의 허벅지에서 쏟아져 나오는, 불구의 조산아들'

-데이비드 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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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다양한 생태계와 기후 상태를 연구 하고 그 지역에 생존하고 있는 생태계의 습성과 진화 상태를 관찰 하기 가장 좋은 지형은 러시아 극동에 위치한 캄차카 반도다.

 일본 홋카이도 쪽으로 흐르는 쿠릴 열도의 출발지인 캄차카반도는 태평양과 오호츠크해에서  미국 알래스카까지 이어지는 알류산 열도와  인접해 있어서 북극의 툰드라 기후와 남쪽의 습한  기후로 인해  불과 얼음이 공존하는 독특한  환경으로 전 세계 과학자들과 인류학자들이 연구를 위해 몰려 가는 곳이다.

17세기말에 러시아인들이 도착하기 이전까지  캄챠카 반도에는 곰과 순록 그리고 연어를 사냥하며 기후 변화에 맞춰 이동하는며 살았던 이텔멘족, 코랴크족 원주민들이 드문 드문 살고 있었던 곳이였지만 19세기 러시아와 일본 열강들의 침략으로 백 러시아인들과 일본인  홋카이도의 아이누족들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2차 대전 발발 당시 러시아가 캄차카 반도를 점령 하면서 핵원료 생산과 핵실험 장소가 되면서 대 자연은 오염 되었고 반도 땅에서 다양한 민족들과 공존 하며 살았던 원주민들은 극소수만 살아 남게 되었다.

 소련 체제아래서 방출된 엄청난 방사능이 캄차카 반도의 자연과 생활 터전을 오염 시켜서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이들은 전 세계에서 백혈병과 각종 암, 기관지염 같은  질병의 발병률이 높은 곳이 되었다.

 소련 연방이 해체되고 나서  서구인들은 이 지역에 탐사와 탐험, 관광과 연구 목적으로 방문 하면서 무분별하게 들어 오는 서구 문명과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생태계가 파괴 되었고 토착 원주민들과 토종 동식물들이 빠른 속도로 멸종하기 시작했다.

한반도 보다 약간 넓은 크기의 캄차카 반도는 1년 중 활동 하기 좋은 온화한 기후가 단 3개월 뿐이고 이 시기에 현지인들은  연어와 곰 사냥  그리고 외지인들을 위한 관광 안내와 숙박으로 생계를 유지 하고 있다.

수도 주변 지역은 광물 자원이나 핵실험으로 마구잡이로 개발 되어서 생태계가 파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구 생태계의 다양한 기후와 멸종 직전의 동물들을 볼 수 있고 특이한 지형이 많아서 외지인들이 끊임없이 이 곳으로 몰려 가고 있다.

 불꽃이 치솟는 활화산 부터 얼음 덩어리들이 둥둥 떠다니는 바이칼 호수와 바다 깊숙한 심해까지 전부 외지인들이 훑고 지나가서 생활 터전을 빼앗긴 곰과 순록들이 인간들이 거주 하는 지역까지 내려와 먹이를 찾아 다니거나 습격을 하는 일이 자주 발생 하고 있다.

파리 사회과학 고등연구원에서 인류학을 전공한  프랑스 태생의  나스타샤 마르탱은 알래스카 지역의 원주민인 그위친인들과 함께 생활하며 이들의 습성과 문화를 탐구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알래스카 북부와 캐나다의 유콘 지역에 걸쳐 살고 있는 애서바스칸 인디언의 11개 지파 중 한 종족인 그위친족(Gwich'in)은 침략자 러시아와 미국에 대항하며  북극야생보호구역의 석유 자원 개발에 반대했던  유일한 부족이였다.

하지만 수 세기 전에 러시아 극동의 캄차카 반도로 이주한 그위친족은 러시아와 일본에게 오랜 시간에 걸쳐 잔혹하게 학살 당해서 극소수만 살아남아서 무자비한 자원 개발이나 동식물 사냥을 막는데 대항하지 못했다.

2015년 그위친족의 이동 경로와 습성과 문화를 연구 하는 젊은 인류 학자 나스타샤 마르탱은 시베리아 북동부로 이주해서 그곳 원주민과 혼혈 된 에벤인을 대상으로 인류학 연구를 진행 하기 위해 캄차카 화산 지대 근처에 연구 기지에 터를 잡는다.

2015년 8월  인류학자 마르탱은 에벤인 족의 한 가정에 거주 하던 중 활화산 움직임이 시작되던 날 연구 진척을 확인하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숲 속으로 들어 간다.

몇 날 몇 일 동안 산을 오르며 강과 불화산을 만나는 위기가 도사리는 숲 속 한 가운데서 동료들이 잠시 다른 지역을 탐사 하러 갔던 날 곰 한 마리가 인류학자 마르탱이 거주 하고 있던 공간을 습격하는 사건이 발생 한다.

단 몇 분 만에 곰의 날카로운 이빨은 그녀의 얼굴 반의 뼈와 살을 무너뜨렸고 턱의 반쪽도 부숴버렸다.

마르탱은 치료를 받는 중에 극심한 통증으로 발 버둥치며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릴 때마다 상처 부위에 눈물이 파고 들어 고통에 몸부림을 쳤다.

마르탱은 무사히 러시아에서 응급 치료를 받고 프랑스로 돌아가 후속 재활 치료를 받는 동안 러시아 의료진 치료를 불신한 프랑스 의사들이 강행한 재수술에서 병원성 세균에 감염되어 혼수상태에 빠진다.

눈 깜짝 할 사이에 곰이 이빨을 드러내며 그녀를 공격 했던 절체절명의 위기의 시간을 지나 병원에 긴급 우송 되어 곰에게 습격 당한 부위를 수술하고 회복되는 시기에 마르탱은 곰과 마주 했던 끔찍한 순간을 떠올리며 기록하기 시작한다.

그날 늦은 밤, 문장들이 종이 위를 가로지른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명백한 것들, 내 마음속 깊이 충격을 준 것들을 쓴다. 나에겐 두 권의 현장 노트가 있다. 하나는 주간용으로 세세한 묘사와 대화 혹은 말의 녹취가 어수선한 형태로 한가득 적혀 있다.

집으로 돌아가 체계를 부여 하기 전까지는 상세한 정보의 축적을 정리해서 그것을 토대로 균형적이고 알기 쉬우며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있는 무엇인가로 만들기 전까지는 대부분 몹시 난해 하다.

다른 한 권은 야간용이다. 여기 적힌 내용은 불완전하고 파편적이고 들쭉 날쭉 하다. 나는 그것을 검은 노트라고 부른다.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정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간 노트와 야간 노트는 나를 갉아 먹는 이중성의 표현이자, 내 의지와 무관하게 내가 가지고 있는 객관성과 주관성의 상징이다.

-나스타샤 마르탱의 <야수를 믿다.>

마르탱은 인류학자로서 관찰하고 목격하고 경험한 것까지 모두 연구 자료의 토대로 활용하려는 의지 만으로 노트에 그 날의 사건을 떠올리기 시작하지만 곰에게 무자비하게 습격 당한 육신의 통증으로 정상적인 사고조차 힘든 지경에 이르게 된다

캄차카 반도 땅에서는 오래 전 부터 곰과 혼혈 종족들이 서로 경계 하며 공존 하는 삶을 살아갔지만 침입자인 외부인들의 약탈과 파괴로 소멸과 멸종의 시간대로 들어섰다.

 죽음의 순간에서 다시 회생한 인류학자 마르탱은 자신의  목숨을 위태롭게 할 정도로  곰에게 큰 습격을 받고도 이 사건을 공격이라는 단어를 사용 하지 않고  과거의 시간과 현실의 시간의 경계가 파열 되어 균열을 일으킨 것이라 스스로 정의 한다.

나는 내가 곰과 함께 무엇을 찾는지 알고 있었나? 내가 기다리던 자가 누군지, 꿈에서 본 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나? 

내가 사방으로 그의 흔적을 밟은 이유와 언젠가 그와 눈을 마주치기를 은근히 바란 이유를 알고 있었나? 

자연의 생태계와 그 안에 살고 있는 종족을 탐구했던 인류학자 마르탱은 회복 되는 동안 그날의  습격으로  부숴지고 함몰된 현재 자신의 몸 안에서 가족에게 받았던 정신적 상처의 트라우마와 조우하게 된다.

유년기 시절에 겪었던 아버지의 죽음, 홀로 고군분투하며 자신을 양육 했던 엄마, 가난과 차별에서 벗어나 엄마를 위해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위해 고군분투하며 인류학 연구에 매진 했던 마르탱은 마음 한 구석에 도사 리고 있던 우울증을 끄집어 내어 자신의 육신이 파괴된 캄차카 반도 땅에 다시 찾아 간다.

곰에게 습격 당하기 전 마르탱은   캄차카 반도 땅의 동과 서, 겨울과 봄 그리고 새벽부터 밤까지 탐험하면서 오로지 자신의 논문에 채워야 하는 탐구 대상 목록을 찾아다니는데 급급했었다.

하지만 반쪽 얼굴이 함몰 되고 다리를 절뚝 거리는 육신으로 다시 찾은 캄차카 반도에서 마르탱은 처음으로 어느 방향에서나 빛이 나는 밤 하늘의 별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나는 태곳적 만남을 따라 끝까지 갔지만 다시 돌아왔고 여전히 살아있다.

이종교배가 일어났지만 나는 여전히 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나를 닮은 무엇인가에 애니미즘 가면의 특징을 더한 채로 나의 안과 밖은 뒤집혔다.

인간 애니미즘의 근본은 가면의 변형된 얼굴이다. 반절은 사람, 반절은 바다표범, 반절은 사람, 반절은 독수리, 반절은 사람, 반절은 늑대, 반절은 여자 반절은 곰, 얼굴의 이면, 짐승들의 인간적인 실체, 그것이 봐서는 안 됐을 자의 눈 속에서 곰이 보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눈 속에서 내 곰이 본 것이다.

-나스타샤 마르탱

인간은 캄차카 반도의 땅 속 깊이 매몰된 광물을 캐고 화산재를 퍼 날라서 핵 개발을 하고 강과 바다의 밑바닥까지 훑으며 기후의 변화를 연구 하고 자생하는 동식물을 마구 잡이로 채집하고 사냥 하는 사이 곰의 개체수는 빠른 속도로 줄어 들었고 부화 한 곳으로 되돌아와 생을 마감하는 연어들은 방사능으로 오염 되어 인간에게 먹히지 않아도 곧 죽을 운명이 되었다.

숲 속의 사냥꾼은 먹잇감의 냄새를 풍기며 짐승의 가죽을 뒤집어 쓰고 사냥감을 유인 할 수 있어도 지구의 회전 방향을 뜻대로 바꿀 수 없듯이 세상은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데로 변화되거나 바뀌었던 적이 없었다.

자연에서 가장 초라하고 빈약했던 인간은 동굴과 숲을 벗어나 쾌적한 삶을 살 수 있는 도시 생태계를 건설 했지만 남쪽에 살던 기러기가 먹이를 찾아 생명을 부화 시키기 위해 북극 하늘로 날아 오는 걸 막지 못하지만 연어는 생을 마감하기 위해 강을 거슬러 올라 갈 수 있고 곰은 자신의 영역에 들어 온 침입자들을 공격 할 수 있는 본능을 갖추고 있다.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읽고  세상의 변화를 분석하고 통제 할 수 시대가 되었다 해도 현재 지구 곳곳은 붕괴되고 무너지고 있다.

눈부신 과학 기술로 문명의 진보를 이룩해 온 인류는 여전히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고 기술 발명이 인류의 모든 생명을 구할 수 있으리라 믿고 있는 사이에 빙하는 녹아 내리고 있고 땅바닥은 갈라져서 불기둥이 치솟고 있다.

홍수와 쓰나미, 지진과 산불로 철새들은 떼 죽음을 당하고 있고 연어는 돌아 오지 못하고 오염된 토양에서 태어난 가축들은 인간에 의해 살처분 당하고 있다.

지구 상의  악당들이 앞으로 몇 년을 더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최고의 의료 기술과 치료로 생존 시간을 끌어 올린다 해도 100년을 넘어 설 수 없을 것이고 인간의 삶은 자연을 거슬러서 영원 불멸한 삶을 살 수 없다.


과거를 반복에서부터 조금이라도 해방하는 것, 이것은 이상한 과업이다. 과거의 존재가 아니라 과거의 결속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하는 것, 이것은 오묘하고도 가련한 과업이다. 지나간 일, 일어난 일, 일어나고 있는 일의 연결고리를 푸는 일은 단순하지만 힘든 과업이다.

-파스칼 키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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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츠키우라는 시골동네에 여관 '마니'를 운영하며 이곳에 투숙하는 손님들을 위해  매일 빵을  굽는 남편 미즈시마와 그의 옆에서 항상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커피 내리는 아내 리에가 살고 있다.


이들 부부가 운영하는 여관의 이름이 '마니'인 것은 아내  리에가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던 동화책인 '달과 마니'에 나오는 등장인물로 동화책 속  마니는 자전거를 타고 달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태워주는 일을 하는 소년이다. 

어느 날 달은 소년 마니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한다.

 "마니, 태양을 없애줘. 같이 있으면 너무 눈이 부셔." 

소년 마니는 달의  부탁을 거절하며 이렇게 말한다.

"태양을 없애면 네가 사라져 버려. 그리고 네가 없으면 밤에 사람들은 길을 잃고 말 거야. 중요한 건 네가 빛을 받아서 너는 또 누군가를 비추는 거야."

어린 시절 리에는 동화책 속의 달과 마니를 어른이 되어서도 찾고 싶어 했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했다.

그러던 중 아내의 어린 시절의 소원을 들어 주겠다는 남편 미즈시마가 홋카이도의 시골 마을인   츠키우라로 가자고 제안하고 이곳 에서 '마니'라는 여관을 운영하며 아내를 위한 달과 마니를 찾기 위해 매일 투숙객들에게 행복으로 만든 빵과 커피를 제공하고 있다.

두 부부가 운영하는 '마니'에는 다양한 부류의 손님들이 찾아 오기 시작한다.

멋진 남자에게 바람 맞아 도쿄에서 이곳 홋카이도까지 여행 온 손님,기필코 홋카이도를 벗어나 대도시로 가겠다는 손님, 자신을 버리고 도망가버린 엄마 대신 아버지와 살게 된 딸 그리고 마지막 생을 남겨둔 투병중의 아내와 그녀의 남편들이 빵집 '마니'를 찾아 온다.


두 남녀는 생일 빵을 서로 나눠 먹고, 아버지와 서먹했던 딸은 호박 스튜와 빵을 나눠 먹고, 투병 중의 아내와 온 남편은 전에는 입에도 대지 않았던 빵을 마지막 생을 남겨 둔 아내와 함께 나눠 먹는다.


영화 <해피 해피 브레드>의 '마니'를 찾아 온 손님들은 서로를 아껴주고 보듬어주는 진짜 '마니'를 찾고  카페 '마니'의 주인인 아내 리에와 남편 미즈시마는 서로에게 달과 마니가 되어준다. 

영화 속에 다양한 빵들이 줄줄이 나오는 데 가장 자주 나오는 빵은 프랑스 호밀 빵인 깜빠뉴다.

 깜빠뉴(Pain de campagne)의 사전적 의미는 '빵을 나눠 먹는 사람들' 또는  '동료'  '가족'을 의미한다.

큼지막한 크기의 깜빠뉴를 서로 나눠 먹는 동안 서로를 챙겨주며 빵을 함께 먹는 시간 동안은 아주 행복한 미소를 보인다.

영화 속에 나오는 크기의 깜빠뉴를 한국 빵집에서 사 먹는다면 얼마 정도 할까?

프랑스 파리 현지에서 영화 속 깜빠뉴 보다 조금 더 큰 1킬로 짜리는 8유로 정도 나간다. 

여기에 기타 다양한 속 재료들(뮤즐리나, 무화과, 견과류등)이 들어가면 작은 크기별로 대략 3유로 정도 받는다.

프랑스인들에게 빵은 주식이기 때문에 가장 즐겨 먹는 빵인 ( 밀가루, 게랑드 소금으로 만든) 기본 빵류 가격이 빵집마다 거의 비슷하다.

한국은 마켓**에서 오백 그램 짜리 무화과 깜빠뉴가 팔 천 구백원 정도다.

한국에서 가장 큰 프랜차이 점에서 깜빠뉴를 구입 한 적이 없어서 정확한 가격은 모르지만 전 세계에서 한국 빵 가격이 가장 비싸다.

2026년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산하 경제분석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의  2026년 세계생활비(World wide cost of Living 2018) 보고서에 의하면  조사 대상국가  133개 도시 가운데  서울의 빵 1kg 평균 가격은 15.59달러(약 1만7천600원)로 전 세계에서 물가가 비싼 10곳 중에서도 가장 빵 값이 비싸다. 2위를 차지한  뉴욕은 1㎏당 8.33달러(약 9천400원)에 불과한데 거의 두 배 나 차이가 난다.

깜빠뉴 빵은 유럽인들이 즐겨 먹는 빵이지만  현재 한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빵은 ‘소금빵’이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연한 갈색으로 구워진 빵을  한 입 베어 물면 가장 먼저  표면에 뿌려진 짭짤한 소금 알갱이가  혀 끝에 닿고 빵 가운데 뚫린 구멍에서는 고소한 버터 향이 훅 올라온다. 

짭짤한 소금과 고소한 버터 맛으로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 잡은 소금 빵이 만들어진 곳은 일본 에히메현(愛媛県) 야와타하마시(八幡浜)에 있는 작은 빵집 ‘팡 메종’이다.

 ‘팡 메종’ 주인 히라타 미토시(平田巳登志)씨는 무덥고 습한 여름철에 팔리지 않는 빵 때문에 고민하다 2003년 어느 날 아들에게 “프랑스에서 소금 뿌린 빵이 유행 중”이라는 말을 듣고 ‘소금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팡 메종’ 주인은 겉이 딱딱하고 속은 부드러운 유럽식 빵이 아닌 버터가 주 재료인 롤빵에  20% 버터량을 더 넣고  빵 위에  암염을 뿌려 빵을 굽는 도중 발생하는 습기에도 녹지 않도록 했다.

동네 빵집의 주 고객층을 겨냥하고 만든 소금빵은 처음부터 잘 팔리지 않았다. 

소비자들이 소금 빵 가격이 일반 롤빵 보다 10엔(100원) 정도 비싸다는 이유로 외면 할 때 빵집 인근  어시장 상인들 사이에서 맛있다는 입소문이 나기 시작 했다.

이른 새벽 어시장에서 고된 육체 노동을 하고 나서 커피와 소금 빵을 먹었던 어시장 상인들이  ‘팡 메종’의 소금 빵을 쓸어 담으면서  소금빵은 일본 전 열도를 휩쓸며  “하루 6000개'씩 팔리고 있다.

소금 빵을 세계로 전파한 건 일본이지만 소금 빵의 원조는 북유럽이다.

겨울이 긴 북유럽에서는 절임류 식품들이 발달 되어 있어서 음식의 기본 간이 새다.

버터를 듬뿍 넣은 롤빵에 굵은 소금을 겉 표면에 뿌려낸 빵은 태양의 길이가 짧아서 부족한 영양소를 채워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북유럽인들은 소금 맛이 강한 빵을 즐겨 먹는다.

북유럽인들에게 빵은 주식이지만 국가별로 가격을 따져 보면 스웨덴을 제외 하고 한국 보다 빵 가격이 비싸다.스워덴은 커다란 호밀빵이 (3.01달러) 정도 인 반면에 덴마크(3.43달러)와 노르웨이(3.41달러) 정도이고 북극과 가까운 핀란드는 4달러에 달한다.

현재 일본에서  개인 빵집에서 판매 하고 있는 소금빵 가격은 1개에 77엔(770원)이고 도쿄  대형 프랜차이점에서 판매 하고 있는 가격은 1개당 110엔(약 990원)에 판매되고 있다.

한국에서 소금 빵 인기는 코로나 해제 이후 여행객이  급증하고 부터다.

일본에서 천 원  안팎의 가격에 사 먹을 수 있는 소금 빵은 크기와 질감 맛도 거의 비슷한데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프랜차이즈에선 개당 2000원에서 2천 5백원 대, 개인이 운영하는 유명 빵집의 경우 5000원을 내야 사 먹을 수 있다.

10년 전에도 서울의 빵 가격은 전 세계 1위(8.16달러)를 기록했고 현재 한국의 빵값 상승률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가파르게 상승 하고 있다.

유명 빵집으로 소문난 곳에 가보면 손 바닥 크기 보다 작은 빵들이 3800원을 넘고 여기에 각종 재료가 들어가면 7000원을 넘어간다.

가족들과 함께 먹을 빵을 한 바구니에 담으면 오만원 가까이 나온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는 한국 빵들 이번에 가격을 인하 한다는 방침을 발표 했지만 가장 잘 나가는 빵들인 소보로 빵, 단팥 빵, 크림 빵 등 가격을 개 당 100원~200원도 내려갔을 뿐이다.

제빵업체들은 밀가루와 설탕 등 원자재 값과 인건비 상승으로 빵값 인상을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항변하고 있지만 최근 원자재 값의 안정화 및 작년 전체 물가 상승에 비해 몇 배나 더 가파른 '빵플레이션' 현상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소금 빵에 들어가는 재료와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길게 자른 버터 덩어리를 발효 시킨 반죽으로 감싸고, 표면에 소금을 뿌려 굽는다. 

 빵의 질감, 버터와 소금의 균형에 따라 소금 빵의 맛이 미세하게 달라질 뿐이다.

현재 한국에서 소금 빵 인기는 오픈런을 할 정도로 매장에 내놓자 마자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옥수수 크림, 흑임자 크림, 우유 크림, 트러플 초콜릿 까지 넣은 소금 빵으로 진화 될 수록 한국의 빵값은 한 끼 식사 가격과 맞먹을 정도로 치솟고 있다.

한국의 물가는 원가 100원이 오르면 현장에선 1000원씩 올라가고 있다.

주식인 기본 식재료들이 전부 올라가서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서민들의 허리가 휘고 있지만  정작 국민의 혈세로 살고 있는 이들은 물가 상승  원인 파악과 대책 마련을 하지 않고  악착 같이 국민의 유리 지갑만 탈탈 털어낼 궁리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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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8-16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빵은 디저트개념의 빵들이라 주식개념의 유럽빵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긴 그렇지만 같은 디저트빵계열인 일본과 비교해서도 빵값이 비싼것은 사실이지요.흔히 한국의 윈자자비,임대료,인건비등이 비싸다고 변명하는데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라 이해가 좀 안가지요.결론은 두대기업 빵집이 가격을 올리면 동네빵집도 따라기는 구조라 그런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