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에 관하여 수전 손택 더 텍스트
수전 손택 지음, 김하현 옮김 / 윌북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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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에서 성인이 된 남자는 규방 출입을 허락 받고 전족 한 성인 여성과 원하는 모든 것을 즐긴다.

남자들은 발에 입을 맞추거나 발가락 냄새를 맡으며 감각적인 흥분을 했던 경험을 친구들과 서로 교류했다.

-<채비록 제 4편>중에서


수 세기 동안 지속 되어 왔던 중국 여성들의 뼈를 깎는 신체적 고통이였던 '전족'은 1895년, 청일전쟁이후 밀려 들어온 선교사들과 서양인들이 야만적인 행위라며 '여성과 아동' 신체에 대한 엄청난 가해를 지적하면서 반 전족 운동이 시작 되었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중국의 마지막 왕조 청은 무너졌지만 혁명의 주역들인 쑨원, 장빙린(章炳麟), 쑹자오런(宋敎仁) 등 혁명파 인물 대부분이 여성의 인권과 권리는 장래의 문제라며 ‘보류’ 또는 ‘지연’시켜 버리며 여성의 삶을 왕조 시대에 맞춰 놓고 순종과 정절을 강조 했다.

혁명 이후에도 엄마들은 자신의 딸들의 발을 강제적으로 접어서 10센티 크기의 전족용 신발에 넣어 버렸다.


오래전 부터 중국 남성들은 여성의 작은 발이 주는 은밀한 즐거움과 성적 유희를 즐겼다.

상류층 남성들은 자신의 아내의 발 크기와 첩의 발 크기를 비교 하며 발이 더 작은 발을 가진 어린 여자를 찾아 다녔다.

전족이 성행한 명대에는 소설 『금병매』의 주인공 반금련과 서문경의 정사장면을 읽은 당대 중국 남성들은 반드시 전족을 한 여성을 아내나 첩으로 맞이 했다.

남성에게 여성의 전족은 여성미의 최고 표준이며 한족의표지시였고 조신함의 상징으로 뒤뚱거리는 모습은 남성을 흥분시켰다.

혁명이 시작되자 남성들은 변발에서 해방되어도 여성들을 전족에서 해방 시키지 말아 달라는 청원이 중국 전역에서 빗발쳤다.

3촌 크기(약 7센티)의 발은 어른 손바닥 크기 보다 작지만 수 많은 왕조가 무너지고 새로운 왕조가 들어 서도 중국 역사에서 여성들의 발 크기가 '3촌'에서 더 커졌던 적이 없었다.

1930년대 일본이 대륙을 본격적으로 침략하기 시작하자 남자들은 중국 대륙 여성들도 일본과 맞붙어야 한다며 반전족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공산당 주도하에 수많은 여성들이 대장정과 항일전쟁, 그리고 내전에 동원되어 활약하며 신중국 수립(1949)을 세우며 중화인민공화국을 탄생 시키는데 크게 일조 했지만 이들을 생활 현장의 생산 노동자로 떠밀어버렸다.

1950년대 말 대륙 전체에 불어 닥쳤던 '대약진운동'에서 현장 생산 노동자들이 였던 여성들은 강제 유산, 낙태를 당하거나 극도로 위험한 공장에 투입 되어 불구가 되거나 사망했다. 이러한 비극은 문화대혁명(1966~76)시기에도 이어져서 중국 여성들은 국가가 주도하는 ‘부녀정책’의 대리자로만 취급 받았다.

현재 중국 학계에서 ‘페미니즘’은 ‘부녀주의’ 또는 ‘여성주의’라는 용어로 사용 하고 있다.

중국 학계에서 서구 학계에서 사용하는 '페미니즘'이 아닌 '부녀주의', '여성주의'라는 용어를 사용 하는 이유는 공산주의에서 페미니즘은 곧 부르주아의 혁명을 의미하기 때문에 공산주의 사상에 반하기 떄문이다.

따라서 중국 학계에서는 '여성의 눈으로 보는 여성 해방 사상'이라는 다소 긴 의미가 내포된 용어를 사용 하며 여성 인권에 서구적인 법과 제도 그리고 인권 사상을 배제 시키고 있다.

중국은 '여성'이라는 단어 보다 '부녀'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공산당의 지도로 여성의 삶을 '자각 시킨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하고 초대 국가주석에 취임하면서 중국을 통치 하기 시작한 마오쩌둥은 남자와 여자는 각각 하늘의 절반을 지탱하고 있다(婦女能頂半邊天)”라며 사회 전역에 남녀 구분과 차별 철폐 운동을 실시 했지만 역사가 되어버린 전족이 또 다른 형태로 여성의 삶을 억압해 오고 있다.

20세기 등소평 집권 이후 줄곧 유지 되고 있는 중국의 대국화는 서양이 강요한 근대적 가치들을 대신해 유교적 인본주의를 보편적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

따라서 중국에서 여성의 인권은 서양에 의해 강요받은 인권이 아닌 중화 사상에 뿌리를 둔 인권 '부녀주의'사상에 근거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화인민 공화국 여성의 인권이 세계 인권의 기준에 맞출 수 없고 이들이 주장 하는 인권이 절대적이고 보편적 가치일 수는 없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왜 남자들이 여자에게 전족을 강요했는지, 엄마가 무슨 심정으로 딸에게 전족을 시켰는지를 살펴보면 오늘날의 하이힐 착용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전족 하는 이유 한 가지는 남자와 여자의 분명한 차이를 창조하기 위함이었다.전족 관습이 남자들에게 가져다주는 성적 흥분도 중요한 이유였다. 남자들은 여자가 전족하면 질이 좁아져 '처녀'와 성관계를 하는 듯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대의 서구 남자들은 하이힐 신은 여자의 종종걸음을 도발적이라고 받아들이며 만족감을 느끼는데, 전족도 유사한 만족감을 주었다. 레비에 따르면 "아장거리는 발걸음과 뒤뚱거리는 엉덩이는 눈요깃거리가 되었다." 레비는 전족한 아내를 둔 남자를 인터뷰했는데, 그 남자가 생각하는 전족 발걸음이 매력적인 이유는 오늘날 하이힐 걸음걸이에 대한 시각과 매우 비슷하다. ... 중국 남자들은 망가진 발을 갖고 놀고, 입을 맞추고, 쪽쪽 빨고, 입에 집어넣거나 페니스 주변에 갖다 대고, "발가락 사이에 수박씨와 아몬드를 끼워 먹고," 발 씻은 물을 마시는 데서 성적 쾌락을 얻었다. 로시에 의하면 전족으로 얻는 만족감 중에는 여자가 망가진 발에 생긴 '굳은살 벗겨내는' 장면을 지켜보는 것도 있었다. 이는 발 페티시를 가진 현대 남자가 하이힐 때문에 생긴 피해를 보며 즐거워하는 것과 흡사하다. 남자들이 전족을 강요한 또 다른 동기는 여자의 모든 자유와 독립성을 제한해 '정조'를 지키려 함이었다. 전족은 일종의 '정조대'처럼 작용했다.여자들은 전족이 초래하는 고통을 알면서도 딸의 발을 동여맬 수밖에 없었다. 결혼 외에는 생계를 유지할 수단이 없고, 발을 작게 하지 않으면 결혼할 남자를 찾을 수 없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발이 작으면 작을수록 좋은 아내감으로 여겨졌다. 성매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에는 어릴 때 가족에게 팔려 성매매 되는 용도로 길러지는 여자아이들도 존재했다. 당연히 이 아이들도 전족을 했고, 발이 작을수록 성매매 될 때 수요가 많고 높은 가격이 매겨졌다. 이렇게 결혼의 형태건 성매매의 형태건 남자들이 서로 간에 여자를 팔고 거래하는 한 전족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쉴라 제프리스의 <코르셋> 중에서


수천 년 동안 지속되어왔던 불평등한 사회 구조 속에 부와 지위로 나눠지는 계급에 따른 신분 차별과 특정 피부색은 노예가 되어야 마땅하다는 인식이 차츰 와해 되고 사라진 것은 150년이 채 되지 않다는 사실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반면에 여성들이 코르셋을 벗고 하이힐의 굽을 낮추고 브래지어를 벗고 피임을 할 권리를 주장하며 여성 해방 운동을 펼친 역사는 고작 150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건 가사 노동과 육아에 시달렸던 여성들의 삶이 신분제 계급과 노예를 부려 먹던 시대의 역사와 맞물려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강대국인 미국이나 1분에 한 번 꼴로 여성이 남자 가족과 친인척들에게 매를 맞는 인도와 이슬람 국가들이나 10분에 한 번 꼴로 가족 폭력에 시달리거나 데이트 폭력에 노출되어 살해를 당하는 여성 피해자들이 넘쳐 나는 한국에서 여성 해방을 지지하는 수준과 사회 인식은 2세기 전 노예 해방을 지지 했던 수준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수천 년 동안 노예를 부려 먹는 것이 당연시 되었던 것처럼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를 박탈하고 사회적 지위에서 차별을 가하며 육아와 가사 노동은 여성의 몫이라는 것이 아무 의심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졌듯이 현 시대에 여성에 대한 성차별이나 억압을 주장하면 해묵은 레퍼토리를 반복하고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자연의 이치와 본성의 차이로 여성과 남성의 차이는 자연스럽기 때문이다라는 절대 불변의 법칙이 도시화된 국가의 교육 받은 사람들이나 자신을 진보주의나 사회주의자로 여기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차이는 인정하지만 어쩔 수 없다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교육 현장에서나 가정에서 남성은 야망과 모험심 독립심, 합리성을 집중적으로 훈련 받고 학습하기 아주 좋은 환경에 노출 되어 있다.

반면에 여성들에게는 양보, 참을성, 친절함과 상냥함을 갖춘 여성스러운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부추기며 강요 당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차별과 억압에 맞서서 불굴의 의지로 남자의 능력을 넘어선 위대한 여성들도 많지만 기계를 능숙하게 다루거나 근육질에 신체적으로 용감한 모습이나 전쟁 터에서 맹 활약을 하며 전투에 직접 참가 하는 여성의 모습이 드라마, 영화, 광고에 등장한 것이 미디어 매체 역사상 3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여성의 활동을 제약했던건 여성의 특수한 생물학적 책임인 출산과 안전한 육아를 위해 실용적 방안에서 비롯 되었지만 문명의 발달과 국가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심리적이고 정치적이며 경제적이고 문화적인 목적과 수단으로 정교하게 편협한 관습과 사상을 단숨에 부숴 버리기 힘들게 고착화 시켜 왔다.

1972년 7월 느슨하게 마르크스주의를 지향하며 파리에서 스페인어로 편집해 발간하는 정치 문학계간지 <리브레> 편집자들이 다섯명의 여성들에게 보낸 질문에 응답한 수전 손택은 1년 후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정리 해서 1973년 <파르티잔 리뷰>에 '여성이라는 제 3세계'라는 장문의 글을 기고 했다.

당시 기고한 글에서 수전 손택은 여성 해방을 위한 모든 진지한 계획은 해방이 그저 평등(진보적 개념)의 문제가 아니라는 전제에서 시작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해방은 권력의 문제다. 남성 권력이 약화되지 않는다면 여성은 해방될 수 없다. 여성 해방은 남성이 독점한 권력을 여성에게 이양하는 방식으로 의식과 사회 구조를 바꾸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로써 권력 자체의 속성까지 변해야 하는데, 유사 이래 권력이 내내 성차별적으로 정의되었기 때문이다. 권력은 공격성과 신체적 강압을 선호하는 규범적이고 소위 선천적인 남성적 취향과 동일시되고 전쟁과 정부, 종교, 스포츠 상업의 영역에서 전원 남성으로 구성된 집단의 형식및 특권과 동일시 된다.

-수전 손택


수전 손택의 주장에 의하면 권력을 가진 자와 권력의 의미가 변하지 않는다면 그건 해방이 아닌 진압일 뿐 피상적인 변화는 기존 권위를 위협하는 분노를 매수 해서 불안정하고 지나치게 억압적인 규칙을 개선하는 것은 기존의 지배 형태를 재생성 하는 역할을 하게 만든다.

이에 더해 수전 손택은 남성의 지도와 지지, 승인을 받는데 익숙한 여성은 성별과 피부색을 가리지 말고 서로 대화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1970년대 수전 손택이 활발하게 페미니즘 운동을 펼쳤던 시대에는 흑인이 백인의 공공 장소에 자유롭게 드나든다거나 백인 전용 학교에 등교 하거나 특정 지역에 거주 할 수 없었다.

여성에 대한 차별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21세기 들어서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여성은 여전히 어떤 변화나 영향을 사회나 가정에 끼치게 될 경우 주변과 가족의 눈치를 봐야 하고 남성에게 어떤 영향이 미칠지 걱정을 하는 것도 남성이 아닌 여성이다.

역사적으로 계급 차별 철폐나 해방이 저항에 부딪치지 않았던 적이 없었듯이 어떤 지배 계급도 싸우지 않고 자신의 진정한 특권을 먼저 내려놓지 않았다.

애초에 국가를 지탱하는 사회 구조 자체가 남성의 절대적인 특권 위에 세워졌고 남성은 더 나은 사회와 가족을 위해서라는 조건을 내세워서 공정한 결정이라는 이유로 특권을 내려 놓은 적이 없었다.

그동안 남성들은 마지 못해 여성들에게 시민권을 부여 했고 교육의 기회를 열었고 전문직 훈련을 받을 수 있게 했다.

21세기 들어서 고도의 과학 기술 발전을 이룩한 세상에서 '성 해방'과 '성 차별'의 개념이 sns세상에서 점점 불명확하게 희석 되어 버렸다.

아름다움과 젊음이 돈과 상품으로 널리 소비 되었던 시대를 지나 손 안에 폰으로 볼 수 있는 영상과 숏폼에 점령 당한 세상에서 여성의 신체와 몸은 좋아요와 싫어요의 갯수로 극혐과 찬양의 두 가지 정서로 갈라져서 여성에 대한 미의 기준이 서바이벌 게임화 되었다.

이로 인해 10대 시절부터 sns를 사용한 청소년들은 쉽게 상처 받으며 미를 기준으로 하는 게임 때문에 자신의 타고난 외모에 대한 불만이 커진다.

스스로 굶주리거나 신체 불균형이 될 정도로 운동에 빠지거나 특정 약물을 복용하기도 하고 인플러언서들이 사용하는 화장 도구나 옷, 성형 시술을 따라 하는 식으로 중독성이 강한 게임에 빠져 버린다.

시대나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만국의 공통된 아름다움은 젊음이고 이상적인 젊음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거울 속의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사회적으로 젊음과 건강함이라는 아름다움이 유독 여성에 대한 외모에 적용 되어서 여성의 성격과 관심 본질에 까지 깊이 영향을 미쳤다.

이와 달리 남성의 외모를 향해 잘생겼다 같은 말이 널리 통용 되어서 남성에게 젊음과 건강함은 유능함이라는 인식이 깊게 배어 있다.

나이가 들어도 경륜에 따른 노련함이 표출되는 남성과 달리 여성은 태어나서 걷기 시작할 때 부터 손과 발, 두 상의 크기 얼굴 형, 가슴, 엉덩이, 눈의 크기 목의 길이 피부색의 밝기와 어두움 그리고 머리카락 숱과 길이에 따라 사회적인 잣대와 시선에 불안해 하고 조바심 치며 때로는 절망하며 자신의 신체 부위를 낱낱이 뜯어 보고 분석한다.

어떤 부위는 성형 시술로 고쳐서 사회적으로 칭송 받는 미의 기준에 들어 맞는다 해도 어떤 부위는 부적합 판정을 받게 될지 모른다는 착각에 빠질 경우 오로지 완벽한 아름다움만이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는 편향된 사고에 빠질 수 있다.

사회에서 아름다움의 특권을 행사 할 수 있는 곳은 도처에 널려 있어서 남성들은 사회적 지위가 높을 수록 아름다움이 대다수 여성이 추구하도록 권장 되는 유일한 형태의 권력이라고 부추기기도 한다.

남성도 선 크림을 바르고 양산을 쓰고 화장을 하고 하이힐을 신는 유니섹스 뉴노멀 시대라 해도 여성에게 화장과 몸치장은 사회적 의무여서 매력을 유지 하기 위해 노력 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아름다움을 유지 하는 여성에게는 유능함과 전문성, 권위를 갖게 만드는 이 불합리한 사회 구조 속에서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비난을 가하고 데이트 폭력을 당하고 스토커에게 살해 당해도 법적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치는 법의 잣대는 여전히 18세기 노예를 부려 먹던 시대에 머물러 있다.

자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개는 제 몸의 크기도 몰라서 작은 개가 큰 개를 향해 짖거나 공격할 때면 큰 개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개와 달리 고양이는 문이 열려진 공간을 유유히 빠져나가다가 꼬리 몇 센티 미터 정도만 문 안쪽으로 남겨 두고 주인을 향해 신호를 보낼 정도로 자신의 몸 길이를 정확하게 안다.

자신의 몸 보다 큰 동물을 만나면 온 몸의 털을 세우며 몸의 크기를 배로 불릴 수 있는 고양이는 자신의 신체 상태를 정확하게 인지 하고 있다.

한 쪽 다리로 귀를 긁거나 혀로 네 발을 핥으며 몸 단장을 하는 고양이는 주변의 반응에 민감해서 민첩하게 대처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양이가 아닌 개와 비슷하다.

자신의 몸 크기나 모양이 어떻게 변해 갈지 잘 알지 못해서 유명 모델이나 셀럽의 외모를 미의 기준으로 삼고 극단적인 노력과 시술을 강행하는 위험을 무릅쓰기도 한다.

각국의 문화마다 이상적인 기준을 가진 인간의 아름다움이 있고 나름대로의 차별과 억압이 존재 한다.

1970년대 여성 해방 운동과 페미니즘 운동의 횃불을 들었던 미국은 민주적인 정치제도를 갖춘 국가 이면서 대통령 선거 투표를 할 때면 남편의 성을 따라 쓰는 아내가 암묵적으로 남편이 지지하는 선거 정당에 투표하는 수동적인 경향이 여전히 존재 한다.

노골적으로 성과 인종을 차별하며 백인 우월주의를 내세우며 미국을 위대하게를 외치는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자 미디어 매체는 물론이고 광고에서도 여성에 대한 편협한 미의 기준을 우수한 신체 조건이라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미국의 의류 브랜드 아메리칸 이글(American Eagle)의 광고 캠페인에 푸른 눈 금발 머리에 여성 모델이 청바지를 입으며 "청바지는 부모로부터 물려받는다. 때때로 머리 색, 눈동자 색, 성격까지 결정한다"라는 내레이션을 하다 파란 눈이 클로즈업업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 여성 모델은 이렇게 말한다.


"내 청바지는 파란색이다(My jeans are blue)"


또 다른 광고에서는 'Great Genes'라는 문구 아래 'Genes'이라는 단어가 줄로 지워지는 대신 'jeans'라고 덧 씌워지는 장면이 등장했다.

현재 미국은 푸른 눈, 금발의 백인 여성을 지배하는 강한 근육질의 백인 남성이 성조기를 쥐고 흔들며 비 백인계나 소수자, 약자, 장애인들 그리고 영주권자들과 공부와 직장 때문에 단기 거주 하는 이들을 차별하거나 내쫓거나 체류 비용을 배로 내라고 요구 하고 있다.

인류는 인간이 된 순간부터 신체를 장식해왔다.

머리에 꽃을 꼽고, 몸에 문신을 하고 눈꺼풀을 검게 칠하고 얼굴에 분을 바르고 속옷을 입고 계절에 따른 옷과 장신구를 착용하고 신발을 신었다.

신분과 부의 규모에 따라 신체를 꾸미고 장식하는 것이 달라져 왔고 21세기의 아름다움은 여성과 남성 모두의 것이라 하지만 대부분의 시대에서 국가마다 공통된 게임의 규칙은 여성에게 이상적인 아름다움과 젊음의 영원성이였다.

자본 소비 사회에서 아름다움을 권력화 시켜서 남성의 손에 관리 되어 온 여성은 세상에 태어난 것과 동시에 세뇌 당한 아름다움은 여성을 가두는 족쇄이자 신화였다.

과학 기술과 의술이 발전 할 수록 아름다움이라는 개념과 인식도 빠르게 바뀌어 가듯 앞선 어머니와 할머니 그리고 그녀들의 어머니들 세대와 달리 인공 지능 시대에서 아름다움은 누구나 손쉽게 수정하고 보정할 수 있게 되었다.

남성들이 오랫동안 쐐기처럼 사회 규범에 박아 놓은 것을 준수 하며 안전과 특권을 보장 받고 있다는 착각을 하며 살았던 순수의 시대는 지나갔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 보다 지나간 과거에 대한 애착을 가질 필요가 없다.

여성은 남자와 자녀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한 야심을 품고 실천하는 모습을 스스로 부끄러워 해서는 안된다.

'나는 많은 여성과 남성이 우리 사회의 언어와 행동,

 어디에나 존재하는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지적하기를 바랍니다.'

-수전 손택(1933-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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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19 13: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족에서 수전 손택 그리고 오늘의 여성에 이르는 글이 너무 훌륭해서 숨 참아가며 읽었네요

책읽는나무 2025-08-19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족의 비애와 고통.ㅜ.ㅜ
리뷰를 읽고 나니 다시 바라봐지는 수전 손택의 책이군요.
 
하던 일을 멈추고 바닷속으로
조니 선 지음, 홍한결 옮김 / 비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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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과 연예인들이 개인 유툽이나 SNS에서 가장 많이 공개하는 것은 건강을 위해 즐겨 먹는 거나 챙겨 먹는 식습관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식습관일 수도 있지만 개개인의 인지도나 유명세에 따라 조회수가 급격하게 올라가서   화제 영상이 될 경우  대중의 관심을 끌어들이는 파급 효과 때문에 각종 PPL이 붙는다.

어떤 유명인이 광고 효과를 노리고 먹고 마시고 요리 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마다 그 영상을 보는 이들의 머릿 속에는 저렇게 먹으면 자신들의 모습이 지금 보다 좀 더 나아지거나 젊어지지 않을까라는 호기심이 생겨 난다.

미국 IT 사업가이자 백만 장자인  브라이언 존슨은  40세가 되던 해인 2013년 ‘브레인트리’라는 자신의 온라인 결제 플랫폼 회사를 8억달러(약 1조500억원)에 달하는 돈을 받고 이베이에 팔았다.  단숨에 돈방석에 앉은 브라이언은 자신의 신체 나이를  18세 청춘으로 되돌리겠다는 인생 목표를 세웠다.

일명 ‘회춘(回春)’ 프로젝트를 시작한  브라이언 존스의 하루 일과는 다음과 같다.

오전 6시에 일어나서  오전 11시까지  천천히 음식물을 2250칼로리(kcal)정도  섭취하고  4~5시간가량 '집중된 사고'를 위한 시간을 갖는다. 

그는 외출 할 때는 반드시 선크림을 바르고 햇볕을 차단하는 SUV용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를 착용한다.

 매일 100여알의 영양·보충제를 복용하고, 매주 3회 고강도 운동을 하는 브라이언 존스는 술은 전혀 마시지 않는다.

오후 8시 30분에는 반드시 취침을 하는 그에게 매달린 의사들은 총 30여명으로 이들에게  정기적으로 체지방 스캔과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받는다.

 브라이언 존스는 익명의 젊은 기부자에게 혈장을 수차례 수혈 받은 후  4년 젊어진 신체를 갖고 나서 자신의 열 일곱 살 짜리 친 아들의 피를 수혈 받는다.

17살 아들의 피를 1 리터 수혈 받은 브라이언은 피에서 분리한 혈장을 투여 받아서  46세 나이를 37세 육체로 되돌렸고   피부는 28세 구강 상태는 17살, 폐활량은 18세 수준 까지 되돌렸다.

브라이언이 매년 회춘 하기 위해 자신의 몸에 쏟아 부은 돈의 액수는  27억에 달한다.

돈을 쏟아 부은 만큼 젊어지고 있는 브라이언의 회춘 프로젝트를 실천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지구상에 몇 명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다.

늙은 세포를 젊게 되돌리는 생명공학 기술, 새로운 장기를 이식해 젊게 살아갈 수 있는 의료 기술은 물론이고 먹는 음식을 바꿔 젊음을 되찾아주겠다는 비즈니스가 가장 활발하게 발전 한 곳은 전 세계에서 부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미국이다.

하지만 우습게도 노인성 치매 같은 알츠하이머 발병률이 가장 높은 곳도 미국이고 사회 세대별, 인종별 그리고 거주 지역에 따른 빈부차이가 가장 큰 곳도 미국이다.

이에 대해 어느 유명 셰프가 전 세계적으로 즐겨 먹는 음식을 조리 해 먹는 걸로 비교 하기도 했다.

영국의 어느 유명 셰프가 해외 출장을 갈 때면 아침이나 브런치로 즐겨 먹던 스크램블을 먹다가 문득 국가 별로 각기 다른 조리 상태의 스크램블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가장 먼저 계란 2-3개, 버터, 소금 정도만 넣는 스크램블을 조리 할 때 영국식은 계란을 풀면서 버터를 첨가 하고 중불에서 달궈진 팬에 계란 물을 부으면서 빠른 속도로 조리 기구로 젓는 동안 약불로 조절하면서 완성한다.

프랑스 정통 스크램블 조리법은 과정이 좀 다르고 복잡한데 찬물을 냄비에 넣고 끓여 놓은 다음에 그 위에 스텐리스 볼에 계란을 넣고 조리용 거품기로 천천히 휘저으면서 소금을 넣고 생크림이나 우유를 첨가한다.

마지막 충분히 달궈진 팬에 계란물을 붓고 빠른 속도로 휘저어서 완성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계란 소비를 하고 있는 미국식 스크램블은 달궈진 팬에 버터를 넣고 계란을 그 위에 깨고 소금을 조금 넣고 조리기구로 휘 젓는다. 

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이나 일반 식당은 이런 조리법으로 완성하지 않겠지만 대다수 일반 미국 가정에서 만들어 먹는 스크램블은 영국이나 프랑스처럼  계란물을 만들지 않는다.

왼쪽 사진부터 영국식 계란 스크램블 가운데는 프랑스식 스크램블 마지막 오른쪽은 미국식 스크램블이다. 

계란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스크램블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조리 하는 방법이 다를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영국이나 프랑스 미국 스타일의 스크램블이 아닌  색다른 스크램블을 해 먹어 보겠다며 유명인들의 유툽이나 팔로잉 하는 이들의 흔적을 뒤져 보았다.

(C) JohnnySun

캐나다 캘거리 태생의 조니 선은  대학에서 공학과 건축학 그리고 도시 공학을 공부 했지만 일러스트와 시나리오를 쓰고 프로듀서를 하며 설치 예술을 하는 만능 재능인이다.

2017년 지구를 관찰 하러 온 외로운 외계인이 다양한 생명체를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그래픽 노블 <내가 외계인이면 다들 외계인>을 비롯해 다양한 이들의 에세이의 그림을 그려 주면서 대중적으로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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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들의 대본 작가로도 활동하는 그는 다양한 활동을 폭넓게 펼치기 때문에 제때 끼니를 챙겨 먹는 걸 종종 잊곤 해서 이동 중에 끼니를 때울 때가 많지만 어린 시절 중국계 부모가 항상 집에서 조리 해주었던 계란 요리가 그의 소울 푸드다.

조니 선이 부모님에게 배운 스크램블 조리법은 다음과 같다.

프라인팬을 화구에 올리고 약불로 가열한다.

살짝 달궈지면 식용유나 녹인 버터를 두른다

그동안 계란을 깨서 그릇에 넣고 잘 풀어준다.

살짝 달궈진 프라인팬에 붓고 천천히 계속 젓는다.

계란물을 계속 젓는다.

계란물을 계속 젓는다.

계란물을 쉬지 않고 계속 젓는다.

계속 젓는데 변화가 없다면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무슨 변화가 있을 것 같지 않다면 잘하고 있는 것이다.

백만장자나 억만장자 같은 부자들처럼 회춘 프로젝트에 쏟아 부을 돈이 없는 이들에게 완전 식품에 가까운 계란은 그야 말로 음식을 통해 회춘을 꿈꿔 볼 수 있는 훌륭한 식재료다.

세상에서 가장 손 쉽고 저렴한 방법으로 저속 노화 속도를 유지 하며 회춘을 꿈꾼다면 냉장고 문을 열고 계란 한 판을 꺼낸다.

노란 계란물에 온 정신을 집중하며 계란물을  계속 젓는다. 

휘젓고 있는 계란을 응시하며 한시도 멈추지 않고 젓는다.

멈추면 계란이 눌러 붙어 타버리니 무조건 계속 젓자!

돌고 도는 계란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동안 프라인 팬에 휘도는 계란을 젓고 있는 내 마음도 빙빙 돈다.

적절하게 끈적한 상태로 완성한 스크램블을 접시에 담는다.

 5분 정도면 완성되는 요리.

계란 스크램블을 입 속에 넣으면서 몸 안의 회춘 시계를 앞으로 돌리고 있다는 상상을 하며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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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11 2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아침에 계란 먹으라는거죠. 저는 스크램블도 귀찮아서 저녁에 미리 삶아놓은 계란입니다. 저는 브라이언 존슨이라는 사람처럼 살바에야 그냥 노화를 택하렵니다. 좀 엽기적이고 편집광같애여. ㅎㅎ

scott 2025-08-16 00:42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
조단위 부자가 아닌 바람돌이님과 저는 계란 한 판으로 회춘의 시계를 앞으로 ㅋㅋㅋ

돈이 넘 많아서 온 몸에 덕지 덕지 하고 있는 조단위 부자들이죠 ^^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 생각의힘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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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웰의 아내는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 병약한 오웰을 돌보는 엄마 정서적 결핍을 채워주는 아내 타자기로 원고를 정서하고 교정교열까지 해주는 비서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집을 청소하고 요리를 해주는 가사도우미 였을 뿐 오웰은 결혼 기간 내내 바람을 피우거나 강간에 가까운 범죄짓을 일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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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08 0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이 시절 유명인들 뒤에 희생당하는 여성들이 있었던 일은 너무 많은데 이건 많이 심하네요.

scott 2025-08-10 00:20   좋아요 1 | URL
오웰의 현재까지 이어진 명성은 80퍼센트 정도가 아내 아일린 덕분이였습니다.

희선 2025-08-08 05: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웰 아내 잘 모르는군요 다른 사람 아내라고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예전과 지금은 많이 다르죠 그래서 이젠 알려지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예전이 맞았다고 말할 수는 없군요


희선

2025-08-10 0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힐 2025-08-08 15: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뤼쉰의 아내 주안(朱安) 이 떠오르네요. 이들 대문호들은 왜 자신의 아내가 비극적 삶을 살게 내버려 두었을까요? 그녀들의 희생위에 쌓아올린 문학적 성취를 우리가 존경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작품과 인간은 별개로 봐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하게 되네요.
scott님, 더운날 건강 유의 하세요.

2025-08-10 0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자에 관하여 수전 손택 더 텍스트
수전 손택 지음, 김하현 옮김 / 윌북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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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를 불태우고 거리를 행진하고 촛불을 들고 동일 임금과 가정 폭력 가사 육아 임시 중절에 맞서 목소리를 높였던 1970년대 그리고 2025년 시간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해방 투쟁은 무엇이 달라졌을까? 이 책은 불완전한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이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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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은 시간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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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작가 클레어 키건은 자신이 가르치는 창작 워크숍에서 한 학생이 이야기 서사에서 드라마적인 구조가 없거나 극적인 긴장감 없이도 이야기가 성립 된 작품이 있다면 예를 들어서 설명 해달라는 질문을 받는다.

당시 클레어 키건은 학생의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휴식 시간에 자료를 찾아 사무실로 가는 동안 머릿 속에서 하나의 심상이 떠오른다.

사무실에서 빈 손으로 돌아 온 클레어 키건은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짓기 시작한다.


매일 직장 사무실로 출근한 남자는 퇴근 시간에 회사를 나와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집에서 키우고 있는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텔레비전 리모콘을 누르니 다이애나 비의 결혼식 다큐멘터리가 흘러 나왔다.

맨 처음 키건의 입에서 흘러 나온 이야기는 어떤 드라마적인 구조나 극적인 긴장감 없이 어느 한 남자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시작 되었다.

창작 수업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간 키건은 수업 중에 즉흥적으로 지어낸 이야기 속의 그 남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날 키건은 그 남자의 삶의 한 단면을 쓰기 시작했고 50페이지 분량의 이야기로 완성했다.

2023년 겨울 미국 문예지 뉴요커의 픽션 팟 캐스트 섹션에서 퓰리처 수상 작가이자 매년 뛰어난 창작 수업으로 학생들에게 최고의 교수상을 받고 있는 조지 손더스가 클레어 키건의 '너무 늦은 날에(So Late in the Day)' 작품이 '그해 최고의 단편'이라며 극찬을 했다.



'너무 늦은 날에(So Late in the Day/한국어판 너무 늦은 시간)' 라는 작품을 작가 클레어 키건이 직접 낭독 하는 목소리로 공개 되던 날부터 매일 아침 출퇴근 시간에 소리로만 듣다가 페이퍼백으로 구입해서 읽고 나서 충격을 받았다.

소리로 들었을 때 알지 못했던 인물들의 심리와 의도를 활자로 읽고 재차 앞 장으로 돌아가 곱씹어 보니 키건 특유의 간결하면서 건조한 문장에 내포된 인간의 섬뜻함이 느껴졌다.

클레어 키건이 학생의 질문에 즉흥적으로 쓰기 시작한 <너무 늦은 시간> 첫 문단은 이렇게 시작한다.

7월 29일 금요일에 더블린의 날씨는 예보와 같았다. 오전 내내 뻔뻔한 햇볕이 메리온 광장에 내리쬐면서 카헐이 지키고 있는 열린 창가의 책상에까지 들어왔다. 잘린 풀의 맛이 바람을 타고 들어왔고 이따금 후텁지근한 바람이 창틀의 담쟁이덩굴을 흔들었다.

-클레어 키건의 '너무 늦은 시간' 중에서


지극히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아일랜드 더블린의 공무원 카헐의 시선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한 때 결혼까지 약속 했던 약혼자 사빈에게 파혼 당한 상처로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 남자의 일상적인 모습만 보였다.

하지만 중반부를 지나서 카헐의 입에서 "씹년"이라는 여성 비하 욕이 튀어나와 다시 앞으로 돌아가 읽어 보니 카헐이라는 남자는 여성에 대한 혐오감이 무의식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작가 키건은 프랑스인 엄마와 영국 태생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사빈이라는 여성의 시점이 아닌 가부장적이고 남성우월주의에 사로잡힌 아버지에게 어린 시절부터 학습된 남자 카헐의 시점으로 남자들 스스로 지각하지 못했던 불편한 진실, 여성 혐오 대한 이야기를 과거와 현재 시간을 교차 시키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진행 시켜 나간다.

무의식적으로 대화 중에 여성을 암캐, 창녀,씹년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카헐은 갤러리에서 일하는 여자 친구 사빈이 좋아하는 페르메이르의 그림 속 여자들이 그저 게을러터진 여자라 생각한다.

그는 요리를 잘하는 여자 친구 사빈의 음식은 맛있게 먹으면서 매 끼니 차려진 음식 재료 값을 아까워 하고 설거짓 감이 많이 나온다는 이유로 잔소리를 늘어 놓는다.

우연히 지갑을 놓고 온 여자 친구를 대신해서 계산 한 것을 두고 두고 잊지 않는 카헐은 매번 자신이 음식 재료 값에 얼마를 지불했는지 생색을 낸다.

결혼 반지 사이즈를 조정할 때 지불해야 하는 돈이 아깝다며 여자 친구 사빈에게 자신이 돈을 찍어내는 기계냐고 화를 내는 순간 카헐은 어머니를 무시했던 자신의 아버지 모습을 떠올리며 그녀에게 사과 한다.

파혼을 당한 후 카헐은 대학 시절 주말에 집으로 돌아왔던 날 모처럼 모인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음식 준비를 했던 어머니가 맨 마지막으로 식사를 하려고 의자에 앉는 순간 동생과 의자를 빼서 어머니를 넘어뜨렸던 시절을 회상한다.

그는 그 때 집안 남자들과 함께 소리 내어 웃지 않았다면 지금과 전혀 다른 남자가 되지 않았을까 라며 후회를 한다.

작가 클레어 키건은 50페이지 분량 속에 카헐이 회사에서 청소부 여성 부터 버스에서 옆자리에 앉게 된 여성 그리고 우연히 광장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사비나라는 여성을 대하는 모습을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교차 시키며 아버지로부터 학습된 남성성이 성장하는 동안 어떻게 여성에 대한 혐오로 이어졌는지 뒤틀린 관계의 근원적인 문제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집요하게 파고 들어간다.

이야기 초반부 작가 키건은 '얽히고 설킨 인간의 싸움과 모든 것이 어떻게 끝날지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삶은 대체로 매끄럽게 흘러갔다.'라는 문장으로 이 짧은 이야기 전체의 구조를 단 한 문장 속에 내포 해서 드라마적인 요소 없이 극적인 긴장감 없이 완벽한 서사를 갖춘 이야기를 완성했다.

한국어판 제목은 <너무 늦은 시간>이라고 번역 되었지만 실제 이야기는 늦은 시간이 아닌 '너무 늦은 날에(So Late in the Day)'이라는 제목에 작가가 의도한 응축된 의미가 모두 담겨 있다.

카헐의 인생에 너무 늦지 않게 몇 번의 시간을 되돌릴 기회는 있었지만 너무 늦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도 그는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전혀 특이할 것 없는 일상을 살아가는 남자 카헐이 누군가 만나고 통화 하고 문자를 주고 받는 모습에 배어 있는 여성 혐오의 짙은 그림자를 작가 키건은 우리 일상 주변에 지나치는 모든 것에 응축된 의미를 담았다.

'너무 늦은 시간에' 작품 분량의 크기는 손바닥만 한 판형에 위 아래로 충분한 여백을 둔 페이지가 100페이지 조금 넘는다. 작정하고 읽는다면 1시간이 채 걸리지 않고 휘리릭 책장을 넘길 수 있지만 작가는 독자들에게 맨 앞 장으로 되돌아가서 읽게 만드는 마법을 부렸다.

2024년에 출간 된 너무 늦은 시간(So Late in the Day)’은 25년 전 출간한 데뷔작에 수록된 단편 ‘남극’(1999년 작), 단편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2007)을 비롯해 가장 최근 단편인 ‘너무 늦은 시간’(2022) 등이 실렸다.

2007년의 단편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은 에킬섬 하인리히 뵐 하우스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선정된 여성 작가에게 갑자기 찾아온 독문학과 교수라는 남성과 겪는 미묘한 갈등을 다룬 작품이다.

여성 작가가 정성스럽게 만든 케이크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운 독문학과 교수는 수많은 남성 작가를 제치고 선정 된 여성작가가 한가롭게 케이크나 만들며 주변 풍광이나 즐기는 한량이라며 무례하고 오만한 태도로 그녀를 힐난하며 가르치려 든다.

여성 작가는 처음 만난 여성에게 세상의 이치를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는 듯 무시하며 가르치려 드는 남자에게 복수 하기 위해 습작하고 있는 소설에서 고통스러운 죽음을 앞둔 주인공으로 그 남자를 선택하고, 소소한 복수를 단행한다.

1999년 발표작이자 이 책의 마지막 작품으로 수록된 <남극>은 첫 문장부터 충격을 예고하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던 여자는 집을 떠날 때마다 다른 남자와 자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다. 그래서 다음 주말에 그 답을 알아내기로 결심했다. 12월이었고, 또 한 해의 막이 닫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너무 나이가 들기 전에 하고 싶었다.

-남극 중에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던 한 여성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도시로 나가 술집에서 만난 낯선 남성과 하룻밤을 보내는 이야기를 다룬 <남극>은 평소 남편과 아이들 뒤치닥 거리만 했던 ‘여자’가 갖고 싶은 것이 없는지 물어봐 주고 필요한 것들을 사주고 직접 장을 봐서 요리 해주고 설거지를 해주고 씻겨주기까지 하는 남자에게 마음을 뺏긴다.

독자는 낯선 남자와 사랑을 나누는 동안 그 여성의 시선을 따라 영국의 유서 깊은 도시 구석 구석을 따라 가다 예상치 못한 끔찍한 일을 당하는 그 여자의 마지막 여정의 끝, 눈과 얼음의 땅에 도달하게 된다.

단편 <남극>의 마지막 문단에 작가는 독자들에게 섬뜻한 돌직구를 날린다.


어둑함 속에서 그녀의 입김이 보이고 머리를 덮는 냉기가 느껴졌다. 차갑고 느린 태양이 동쪽을 하얗게 물들이고 있다는 생각이 서서히 떠올랐다. 그녀의 상상이었을까, 아니면 창 유리 너머에 내리는 눈이었을까? 그녀는 침대 옆 탁자에 놓인 시계를 자꾸 바뀌는 빨간 숫자를 보았다. 고양이가 그녀를 보고 있었다. 눈이 사과 씨처럼 새까맸다. 그녀는 남극을 , 눈과 얼음과 죽은 탐험가들의 시체를 생각했다. 그런 다음 지옥을 그리고 영원을 생각했다.

-클레어 키건의 <남극> 중에서


키건이 쓴 세 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아일랜드 남성들이 여성을 혐오 하고 무시하고 가르치려 드는 모습이 아일랜드 전체 남성의 모습이라 단정 할 수 없지만 시간과 세대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의 심리 밑바닥에 깔려 있는 그 무엇을 작가가 단단하게 문장 마다 심어 놓았다.

120쪽 분량의 10년의 시간 차를 둔 단편 세 편이 실린 이 작품의 미국판 제목은 ‘여자와 남자들의 이야기(Stories of Women and Men)’이고 프랑스어판 제목은 ‘Misogyny(여성 혐오)’다.

미국판과 프랑스어 판 제목에 잘 드러나 있듯이 하나같이 잔잔해 보이는 일상에 숨겨진 폭력과 남성 우월주의, 여성 혐오가 담겨 있다.

서로 다른 시기와 시차를 갖고 있는 세 편의 작품에서 작가는 인간적 연민이나 따뜻한 손길은 철저히 배제한 채, 차가운 시선으로 남성 중심 사회의 억압 구조를 서늘하면서 건조한 문장으로 해부한다.

웬만해서 100페이지를 넘겨 쓰지 않는 작가 클레어 키건의 작품은 한 번 읽는 것으론 부족하다.

이 작가의 작품은 처음 읽을 때는 밋밋하면서 평이한 문장이지만 다시 한 번 문장을 곱씹으며 등장 인물이 나누는 대화와 그들의 심리와 사소한 행동을 따라 음미 하며 읽는 동안 앞서 등장한 인물에게 포착하지 못했던 또 다른 이면을 알게 된다.

작가 클레어 키건은 1999년부터 2022년까지 발표한 작품은 5권 뿐이다.

단편 소설집 《남극(Antarctica)》과 《푸른 들판을 걷다(Walk the Blue Fields)>>를 출간하자 마자 아일랜드에서 최고 권위의 문학상을 휩쓸었고 중편 분량의 장편 소설 《맡겨진 소녀(Foster)》는 미국 타임지에서 21세기 최고의 소설 50권에 선정 되었다.

영화로도 제작 된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2022년 오웰상 소설 부문에 수상하고 같은 해 부커상 최종 후보작에 가장 분량이 작은 작품으로 올랐다.

클레어 키건은 2023년 너무 늦은 시간(So Late in the Day) 원고를 완성한 이후 신간 소식이 없다.

그녀의 작품을 토대로 만든 영화들이 개봉 할 때마다 인터뷰에서 문예 담당 기자들은 새 작품에 대한 질문을 꾸준히 던지며 신간을 기다리고 있다.

영미 문학계에서 너무 많이 화자되고 있는 클레이 키건의 작품은 모든 작가들이 입을 모아 칭송하고 있다.

영국 가디언지는 25년 동안 발표한 다섯 권의 책을 쓴 클레어 키건을 가리켜 '탄광 속에 보석' 같은 작가라 칭송하고 미국 문학계는 그녀를 21세기 체홉이라 칭송한다.

작가들에게 극찬과 칭송을 받으며 세계적인 문학상을 휩쓴다 해도 내가 읽고 나서 감흥이 없다면 나에게 대단한 작가가 아니다.

하지만 첫번째, 두 번째 세번째 네번째 그리고 다섯번째 연달아 클레어 키건의 책을 읽으면서 조지 샌더스 작가가 21세기 체홉이라고 극찬한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절제되고 지적인 암시를 담담하면서 서늘한 공포로 차오르는 슬픔을 흘러 넘치지 않게 서서히 새어 나오게 사용하는 작가 클레어 키건은 오로지 세상에 자신의 언어로만 쓸 법한 문장으로, 저만이 해낼 수 있는 이야기를 써낸다.

형제 많은 집안에서 양육과 생계에 지친 부모에 의해 친척 집에 잠시 위탁 되어 처음으로 보살핌과 사랑을 느끼는 9살 소녀의 이야기부터 가부장, 종교, 이웃, 빈부, 남녀, 욕망, 소문, 평판, 술, 비겁함, 두려움 같은 인간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음습함'을 작가 키건은 응축된 문장에 담아 바로 옆에서 살아 숨쉬는 공기처럼 펼쳐 보인다.

단순하고 감각적인 어휘로 서정적이고 정교한 문장을 조각 하는 작가 키건의 언어는 소리 내어 읽어야 단 몇 문장 안에 얼마나 많은 진실과 진의가 숨어있는지 알게 된다.


“사람들은 입만 열면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쓸데없는 말을 한다. 자기의 말에 자기가 슬퍼한다. 왜 말을 멈추고 서로 안아주지 않을까? 여자가 울고 있다.”

-클레어 키건 단편 <굴복> 중에서


나는 단편 <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에 등장한 여자 작가의 모습이 작가 클레어 키건의 모습이라 상상하며 읽는다.


그녀는 책상 위의 종이 조각들을 보고 거기 적힌 메모를 읽은 뒤 한쪽으로 치웠다. 만년필 뚜껑이 빡빡 했지만 결국 열고서 공책을 펼쳤다.

그가 그녀의 케이크를 얼마나 게걸스럽게 먹었는지를 생각했다.그녀는 그 갈망과 싸우면서 고개를 숙이고 공책에 집중한 채 계속 써 내려갔다.


다섯 권의 키건의 책을 책꽂이에 나란히 꽂아두고 대 작가 체홉 작품을 읽으면서 스산하게 그려낸 아일랜드 그 시절의 그 사람들의 모습에서 내 삶의 흔적과 상처를 발견 하게 되는 것도 신기하고 새삼 작가의 역량이 대가에 버금가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간의 마음은 사소한 것에 상처를 받기도 하고 감동을 받기도 한다.

오늘 우연히 본 영상 속에 그 무엇에 끌려서 충동 구매를 하거나 먹어 본 적 없는 것을 먹거나 가본 적 없는 곳을 찾아 가기도 한다.

영상과 달리 내가 구사하는 언어로 적힌 글을 읽을 때 어느 순간 마음 안의 썰물과 밀물이 밀고 당기듯 파문의 파도를 일으키는 구절을 만날 때가 있다.

명료한 묘사보다 암시와 은유로 사람 사는 풍경을 그린 클레어 키건의 작품을 읽을 때면 그녀가 그린 인물들의 심상들이 내 마음의 파고를 따라 움직이며 마음 속에 꾹꾹 담아 놓았지만 쉽사리 말로 표현 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되살아난다.

반나절이 채 걸리지 않는 동안에 읽을 정도로 얇고 가벼운 클레어 키건의 책은 다 읽고 나면 다시 펼치게 만든다.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치는 세상에 도파민에 중독되어 웬만한 이야기에 대한 감동이나 감흥이 사라진 시대에 소설을 읽는 건 시간 낭비 일 뿐이라 생각 할 것이다.

만 오천원으로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고 극장에서 영화 한 편을 볼 수 있기에 페이지 분량에 비해 책 가격이 비싸서 외면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만 오천 원으로 120페이지 분량의 세 편의 단편을 읽고 나면 대단한 사건 하나 없는 며칠의 일상이 어쩌면 삶 전체를 바꾸는 소중한 무엇이 될 수도 있다.

옥토가 아닌 땅에도 씨를 뿌리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식물이 있듯이 클레어 키건이 지어낸 이야기에는 지극히 평탄해 보이는 삶에서 넘지 못할 것처럼 보이던 선이 깨어지고 피어나지 않을 듯 했던 꽃이 피어나는 기적의 순간이 찾아 온다.

그러니 더 늦지 않은 시간에 클레어 키건의 작품을 읽는 독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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