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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22일부터 투비컨티뉴드에 글을 쓰기 시작해서 구독자들에게 가장 반응이 좋았던 시리즈들 중에서 최상위권에 올라가 있는 것들 부터 멤버십 구독 서비스를 설정 해 두었습니다.

-영원한 현역 작가이자 번역가 그리고 여전히 달리는 1949년 생 무라카미 하루키에 관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https://tobe.aladin.co.kr/m/100

2023년 투비컨티뉴드 플랫폼 서비스가 시작 되었던 날 부터 쓰기 시작해서 2026년 8월 26일까지 총 53개의 글이 발행 되어서 하루키의 작품과 에세이,인터뷰, 한국에서 번역 출간 된 적 없는 잡다하면서 흥미로운 하루키의 목소리를 AI의 도움을 받지 않고 제가 직접 번역해서 올리고 있습니다.

-현재 왕성하게 활동 하고 있는 일본 인기 작가들의 창작과 인생 이야기 

https://tobe.aladin.co.kr/m/101

투병 중에도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 글을 쓴 추리 소설계의 거장 히가시노 게이고의 창작에 관한 인터뷰부터 미야베 미유키, 기시 유스케, 미나토 가나에, 유미리, 요네자와 호노부 작가의 창작 비결과 인생 여정의 이야기를 일본에 기재되었던 다양한 문예 잡지를 전부 수집해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을 발췌 번역한 시리즈를 발행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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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별로 구독자 100명부터 300명 정도(꿈의 숫자)설정하고  구독료 액수 숫자 표기를 할 때 제 글의 가치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양한 콘텐츠와 막강한 회원수로  구독 서비스에 성공한  네이버 프레미엄 콘텐츠와 밀리의 서재 그리고 출판계의 강자인 브런치 스토리 북 그리고 현재 투비컨티뉴드 측에서 직접 선별하고 추천하는 메인 인기 작가들의 글과  비교 할 수 없지만 매일 긴 글을 읽고 꾸준하게 응원해주는 구독자들이 투비컨티뉴드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 만으로  무명 작가에게 엄청난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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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가공선 손안의 클래식 3
고바야시 다키지 지음, 전설 옮김 / 잇북(Itbook)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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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대 미국 닷컴 버블이 붕괴 된 후 2002년까지  금융호황을 누렸던 일본은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큰 타격을 받는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위기로 엔화 강세가 지속 되자  해외 에너지·원자재 가격의 상승으로 일본의 무역수지가 악화되면서, 수출주도형 일본 경제가 침몰하기 시작 했다.

일본 대 기업들은 유동성 자산을 유지 하기 위해 예비 취업자들 고용을 취소 해 버렸고 파견 근로자들을 대량 해고 하면서 수 많은 노동자들과 취업자들이 하루 아침에 실업자가 되었다.

고용 환경이 가장 취약한 계층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나자 대기업들은 대규모 감원 칼을 빼 들었다.

1941년 이래로 단 한 번도 불황을 겪어 본 적 없었던 도요타 자동차와 소니가 만 명 이상의 근로자들을 해고 하자 정부의 눈치를 보던 소규모 기업들이 해고 도미노 현상이 일기 시작했다.

2008년 한 해 동안 정규직과 비 정규직 노동자들이 6만 명 이상 해고가 되는 동안 공공장소와 학교, 병원, 놀이 시설 등지에서 묻지마 칼부림과 살인 사건으로 일본 국민의 불안감이 최고조로 달했다.

2008년에 일본에서 화학과 물리학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되어 세계적 이슈가 되었지만  일본 각지의 서점에서 분 단위로 팔려나간 책은 노벨상 수상자들에 대한 책이 아닌 80년 전에 출간 된 소설 작품이였다.


붉은 배 (腹)를 널찍하니 내밀고 떠 있는 기선과, 한창 짐을 싣고 있는지 바닷속에서 한쪽 소매를 잡아당기기라도 하는 양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져 있는 배, 누렇고 굵은 굴뚝, 커다란 방울 같은 붉은 부표, 빈대처럼 배와 배 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작은 증기선, 으스스하게 떠도는 검은 연기, 빵 부스러기와 썩은 과일 따위가 떠 있어 무슨 특별한 직물처럼 보이는 파도…… 연기는 바람을 타고 파도와 스칠 듯 나부끼며 후텁지근한 석탄 냄새를 풍겼다. 드르륵드르륵하는 윈치 소리가 때때로 파도를 타고 바로 발밑에서 울려왔다.

이 게 가공선 핫꼬오마루 바로 앞에서, 칠이 벗겨진 범선이 이물의 소코뚜레 같은 곳으로부터 닻줄을 내리고 있었다. 갑판에서는 마도로스파이프를 문 외국인 두 사람이 기계로 된 인형인 양, 같은 곳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러시아 배 같았다. 일본의 ‘게 가공선’을 감시하는 배가 틀림없을 것이다.

“우린 이미 한푼도 없어. 제기랄.”

어부는 그렇게 말하며 다가오더니 옆 어부의 손을 잡아다가 자신의 허리께로 가져갔다. 작업복 아래 코르덴 바지 호주머니에 대고 눌렀다. 뭔가 작은 상자 같았다.

그 사람은 말없이 어부를 바라보았다.

“히히히……” 하고 웃고는 “화투야” 하고 말했다.

갑판에서 ‘장군’ 같은 차림을 한 선장이 어슬렁거리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내뱉은 연기는 코끝에 닿자마자 수직으로 꺾여 흩날렸다. 나무밑창을 덧댄 짚신을 신고 음식물 양동이를 든 선원이 바쁘게 바깥쪽 선실을 들락날락했다. —준비가 다 끝났으니 이제 나가기만 하면 된다.

잡부들이 있는 배 밑바닥 방의 해치를 위에서 들여다보면 어두침침한 널판에서 잡부들이 둥우리에서 얼굴만 삐죽삐죽 내미는 새들처럼 부산스레 움직이는 게 보였다. 모두 열네댓살 소년들이었다.

“너는 어디야?”

“××마을.” 모두 같았다. 하꼬다떼 빈민굴의 아이들이었다. 그런 아이들은 거기에만 이미 한 떼거리였다.

“저쪽 널판은?”

“남부.”

“거기는?”

“아끼따.”

그들은 서로 마주 보는 널판이었다.

“아끼따 어디?”

고름 같은 콧물을 매달고 눈꺼풀이 뒤집힌 듯이 빨갛게 짓무른 아이가,

“키따아끼따여” 했다.

“농사꾼이야?”

“그려.”

퀴퀴한 것이 과일이라도 썩은 것처럼 시큼한 냄새가 났다. 절인 장아찌를 몇십 통이나 재어놓은 방이 바로 옆이라서 ‘똥’ 냄새 같은 것도 섞여 있었다.

“인자는 아부지가 안고 자줄겨.” —어부가 히죽히죽 웃었다.

어두컴컴한 구석 쪽에서 작업복 윗도리에 잠방이를 입고 보자기를 삼각형으로 쓴 날품팔이 같아 보이는 아이 엄마가 사과를 깎아서 널판에 엎드려 있는 아이에게 먹이고 있었다. 아이가 먹는 것을 보면서 자신은 둘둘 말려 있는 껍질을 먹고 있었다. 뭔가 중얼거리며 아이 옆에 있는 작은 보따리를 몇번이나 풀었다가 다시 쌌다가 했다. 그런 사람이 일고여덟이나 있었다. 배웅해주러 온 사람 없이 홀로 내지 內地2에서 온 아이들은 가끔씩 그쪽을 훔쳐보곤 했다.

-고바야시 다키지의 <게 가공선> 중에서

고바야시 다키지의 < 게 가공선>은 1929년 일본이 대동아 전선에서 아시아 국가를 잔혹하게 착취하며 전쟁의 화마 속으로 수 많은 인명들을 밀어 넣었을 때  전일본무산자예술연맹의 기관지였던 잡지 <센키(戦旗)>에 5월부터 6월까지 연재 된 소설이다.

1929년은 세계 대 공황으로 인해 수입선이 차단되어 식량과 물자 조달의 경로가 막혀 버리자 일본의 해운업계는  소비에트령 캄차카 영해를 침범해 게를 잡고 배 위에서 가공해 통조림으로 만들었다.

이 시기에 게를 잡는데 동원된 이들은 조선과 타이완에서 강제로 일본군에 의해 잡혀 온 남자들로 10대 부터 40대까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러 가는지 모른 채 일본군에게 끌려가서 게 가공선에서  혹사당하고 학대당했다.

또렷한 개성이 드러나는 주인공이 없는 고바야시 다키지의 <게 가공선>에는 악덕한 감독관 아사가와가 게 가공선에서 임금을 거의 주지 않고 노동자들을 죽음에 이를 정도로 혹사 시킨다.

가혹한 노동으로 노동자들이 죽기 시작하자 오로지 먹고 살기 위해 겨우 생명 부지를 했던 노동자들이 서로 연대 해서 투쟁하기 시작한다.

1929년 이 작품이 일본 사회에 출간 되자 마자 고용인에게 저임금에 착취 당했던 노동자들이 교과서처럼 읽기 시작하고  노동 연맹단체에서는 성경책 처럼 이 책의 내용을 투쟁 현장에서 인용하자 일본 정부는 암암리에 작가를 납치할 계획을 세운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작가는 지하로 숨어 버렸지만 동료의 밀고로 1933년 경찰에 체포되어 취조 당하던 중에 모진 고문으로 숨을 거둔다.

“어이, 지옥으로 가는 거야!” 


ⓒ 시라카바문학관 다키지 라이브러리 고바야시 다키지의 시체를 둘러싸고 앉은 동지들

2008년 5월에서 7월까지 50만부를 돌파한 <게 가공선>의 독자층은 10대 부터 40대들로 기업들의 대규모 구조 조정이 시작되었던 시기와 맞물리고 동시에 묻지마 살인마들이 도심 곳곳에서 출몰 했다.

출판 대국 일본에서 단 몇 달 만에 오래전에 출간된 작품이 몇 십만부를 판매했던 적이 없었다.

<게 가공선>의 판매 열기가 활활 타오르자 일본 언론에서 '격차사회', '노동빈곤층(working poor)', '취업빙하기 세대'라는 신조어를 쏟아 냈다.

하지만 정작 일본 사회에서는 무고한 어린이나 여성을 대상으로 한 잔혹한 범죄가 잇따라 일어나면서 온 나라가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범죄 현장에서 붙잡힌 범죄자들의 입에서 모두 입을 맞춘 듯 거의 비슷한 자백이 쏟아져 나왔다.

“이유 없이 누군가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인근 마트에서 부엌칼을 구입했다. 처음엔 초등학교 수위를 죽이려고 따라갔는데, 그 사람과 눈이 마주쳐서 포기하고 근처를 지나던 여교사 뒤를 쫓아 갔다. 강하게 저항 하며 소리를 쳐서 도망치는 여자 아이를 발견했다. 우발적으로 칼을 휘둘렀다."

2008년 부터 일본에서 발생한 묻지마 범죄의 가해자들은 주변의 평범한 이웃들이거나 학교 교사. 학원 강사들이였다.

어린 시절 이지메와 가족 불화, 학교 폭력 그리고 고용 노동 시장의 불안이 가중 되자 이에 따른 분노와 울분이 나와 전혀 무관한 이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헤치는 사건으로 이어졌다.

무차별 살상 범죄를 일본에서는 도리마(通り魔·거리의 악마) 범죄라 부른다.

일본은 1980년대 부터 발생하기 시작한 도리마 범죄 사건에 대한  통계를 내고   백서를  통해 이 범죄를 새롭게 정의 한다.

도리마 범죄는 가장 먼저 사람이 많은 공공장소에서 범행이 일어나고 범행 동기가 모호하다.

 피해자와 어떤 연관이 없는  불특정인이고  흉기를 사용 해서 위해를 가한다.

한국의 묻지마 범죄는 2000년 부터 시작 되었지만 정신 병력과 초범이라는 이유로 심신미약 판정을 받아 10년이 채 안되는 형벌이 내려 졌다. 2004년  연쇄 살인을 저지른  유영철 살인마를 계기로 이런 유형의 범죄에 대해서 '묻지마 범죄'라 명명했다.

우울증 병력을 가진 교사에 의해 대전의 한 초등학교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

조현병 증세로  평소에도 칼을 품고 학교에 출근 했던 여 교사는 병가 휴직서를 냈지만 20일만에 복직했고 잘 지냈느냐는 동료 교사 말에 팔을 꺾고 헤드락을 하며 위협을 가했다.

동료 교사들이   교육청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교육청에서는  학교 측이 알아서 하라고 지시만 했고 학교측은 그 교사에게 담임 자리 대신 돌봄 업무를 주었다.

아이를 살해한 여교사는 범행 후 아이를 애타게 찾아 헤매는 가족을 한 차례 맞닥뜨렸지만 아이 행방을 모른다고 거짓말을 하고 선 범행 장소에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출입문을 잠구었다.

그리고 자해를 가해서 병실에 입원 한 상태에서 경찰에게 이렇게 진술했다. 

“돌봄 교실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마치고 갈 때 어떤 아이든 상관없었다. 같이 죽을 생각으로 맨 마지막에 가는 아이에게 책을 준다고 시청각실로 들어오게 해 살해했다” 

범죄자의 얼굴과 신상은 공개 되지 않았고 교사 단체들과 교육청은 애도만 할 뿐 현황 조사를 하겠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교사 신규 채용 시 신체검사에서 정신질환 검사 결과를 제출하는 절차가 없는 교육 제도 아래서 학교 교육 현장에서는 정신질환자를 거를 시스템도 없다.

질병휴직은 청원휴직으로, 휴직 사유가 소멸하면 30일 이내 즉시 복직하게 돼 있고 매번 심의 위원회를 열어 다툰다면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말 같지 않은 변명을 읊어 대고 있다.

범죄자의 신상 조차 제대로 공개 하지 않고 범죄자 인권을 우대 하고 있는 한국 형벌 제도에서   흉기 휴대 처벌 조항조차도  미비하다. 

현재 경범죄처벌법 3조 2항에 이렇게 규정 되어 있다.

 ‘칼·쇠몽둥이·쇠톱 등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끼치거나 집이나 그 밖의 건조물에 침입하는 데에 사용될 수 있는 연장이나 기구를 정당한 이유 없이 숨겨서 지니고 다니는 사람은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科料)의 형으로 처벌한다’

이와 달리 한국 보다 더 끔찍한 사회 범죄를 먼저 경험한 일본은 범죄 유형을 세분화 시켜 놓고 총포도검법을 개정해서 2009년부터 칼날 길이가 5.5cm 이상인 나이프 등의 양날형 검 소지를 금지하고  차량 침입 방지 매뉴얼까지 만들었다.

대규모 행사가 열릴 때는 행사장 주위에 차벽을 쌓도록 했고 칼을 소지 한 자들은 어린이와 유아들이 집단으로 모여 있는 장소에 출입 할 수 없다.

  대검찰청에서  2006년 발간한 <범죄분석>이라는 통계집에 따르면 1997년 부터 2007년 까지  무고한 시민을 대상으로 우발적ㆍ현실불만 살인사건이 매년 10퍼센트씩 상승해서  약 십 년 동안 발생한 묻지마 살인 사건이 전체 범죄에서 50퍼센트를 차지 했다.

이 시기에 검거되어 형벌을 받은 살인마 998명 중에서 20년 이상 형기를 채운 범좌자들은 열 명이 채 안된다.

대부분 술에 만취해서 기억이 나지 않음/ 조현병을 앓았음/정신병력으로 사회 생활을 하지 못함 이라는 이유로 감형을 받아 현재 우리 주변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현재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여러  경제적 사회적 이유 등으로 불만을 품고 그 불만을 자신과 무관한  ‘불특정인’에게 터트리며 범죄를 통해  자신의 억울함이나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소중한 생명을  잃은 피해자의 얼굴은 공개 되고  가해자에게 얼굴과 신상 공개 여부를 친절하게 묻는 대한민국의 법과 정의는 세계 최빈국과 동등한 지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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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로 책을 읽다 보면 중복되는 성이 거의 없다.

신문에 등장하는 전국적인 인물들의 성들도 제각각이다.

일본에서는  똑같은 이름은 많아도 같은 성을 찾기란 드물다.

현재 일본 열도의 총 인구 수는 1억 2천 명으로 성씨는 30만개 정도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의 성씨는 현재 호적에 등록된 성은  300여개 정도 뿐인데 일본은 성性씨 한 명당 400여명 정도가 같은 성일 뿐이여서 학교나 사회 생활에서 이름보다 성씨로 사람을 구별한다.

일본은 헤이안 시대인 3-4세기 경까지 오로지 권력을 갖고 있는 특권층들만 성씨를 가질 수 있었다.

이후 각 번을 통치 하는 영주들에게 종속된 사무라이들이 성을 갖기 시작하면서 무사계급까지만 성씨를 사용하고 대를 물려서 부와 재산을 지켜 나갔다.

1875년 메이지 시대 일본 정부는 새 호적법을 개정하면서 일본 전국민들에게 성씨를 가져야 한다는 통보를 한다.

갑작스러운 정부의 령을 받은 일본 국민들 중 권력층에 속하지 않은 대다수 일반인들이 자신들이 현재 살고 있는 지역과 지명, 마을의 이름을 성씨로 등록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일본에서 가장 흔한 성씨들은  1.佐藤사토 2 . 鈴木스즈키 3.    高橋다카하시 4.  田中다나카

이 성씨들의 한자어를 살펴 보면 모래, 나무, 다리 ,밭 같이 삶의 터전에서 유래한 성씨들이 대부분이다.

너무 많은 인구가 한꺼번에 갑작스럽게 성씨를 만들다 보니 상-중-하로 짓거나 ‘하야시(林)’, ‘모리(森)’ ‘하라(原)’ 같이 한 단어 한자어를 성씨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위에 언급한 성씨들이 일본내에 많은 인구층을 형성하고 있다 해도  일본 인구에서 21퍼센트 정도 차지 할 뿐이다. 

일본 아사히 신문에 '선택적 부부 별성(別姓) 제도'를 선택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사설이 실렸다.

메이지 시대 전 국민에게 성씨를 등록하는 절차와 함께 여성은 결혼을 하면 남자의 성씨로 개명하는 호적법을 유지했던 일본 정부는  쇼와시대가 끝나는 1989년 부부동성제를 적용했다.

법률상으로는 남편의 부인 중 한 쪽의 성씨를 선택해도 되지만,일본의 고착화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95%는 여성이 남편 성으로 개명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대한 차별과 불이익은 상당하다. 이혼을 하거나 재혼을 할 경우 자녀들의 성이 하루 아침에 바뀌어 버려서 급우들 사이에 차별과 이지메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특히  여성은  자신의 호적에 여러 번 줄을 긋고 복잡한 절차를 밟아서 전 남편의 성을 바꾸고 자신의 성씨를 되찾거나 새로 재혼한 남편의 성으로 바꾸기 위해  각종 공공기관에 등록된 공인 인증서에 기재된 성씨를 전부 수정해서  면허증, 보험증, 은행계좌, 여권 등을 갱신해야 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일본 정치인 중 최초로 재직 중 육아 휴직을 한 고이즈미 신지로가 지난 총리 선거 가두 유세 연설 당시 선택적 부부 별성(別姓) 제도를 도입해서 결혼 후 여성이 남성의 성(姓)을 따르는 일본 전통에 맞서자며 일본에 고착 된 여성 성씨 선택권의 불씨를 터트렸다.

  고이즈미 신지로는 자신이 총리 자리에 올라서면 1년 안에 이 정책을 실현 하겠다며 공약 실행 의지를 강력하게 드러냈었지만 당시  자민당 지지 종교단체와 전통문화단체들이 맹렬히 반대하며  반고이즈미 세력결집의 명분이 되어서 극우 세력들이 똘똘 뭉치며 빌미를 던져 주어 선거에 패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부계 사회지만 버블 경제 시기를 지나 잃어버린 30년의 경제 불황 속에 가족이라는 의미 퇴색 되어서   쇼와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와 영화에서나 찾아 볼 수 있을 정도로 1인 가구 인구가 절정에 달할 정도로 <나혼자>도 먹고 살기 힘든 사회다.

보수와 극우의 지지로 먹고사는 정치인들은 <쇼와 시대의 가부장적인 가정>의 모습을 일본 사회의 가장 이상적인 삶의 양상이라 주장하며 두터운 노년층 세대의 표로 정치 생명을 이어 가고 있다.

일본은 선택적 부부 별성제도   법안 제출에 실패 한지 어느덧 28년의 시간이  지났다.

일본은 지진과 자연 재해를 제외 하고는 정치로 일본 전 열도를 뒤 흔들지 못한다.

일본인들 대다수는 정치인들의 이름도 잘 모르고 어떤 정책을 펼치고 있는지에도 관심이 없다.

일본 국민은 정치나 이념이 아닌 일상의 소소한 삶을 중요하게 여기며 일상의 주된 화제와 논의의 중심은 [먹고 보고  즐기는]  '나'의 생활에 맞춰져 있다.

일본은 텔레비전이나 각종 미디어 그리고 여러 잡지의 첫 시작과 첫 장마다 공통된 단어들이 등장한다.

귀여워 !가와이( 可愛い  かわいい )   맛있어 !오이시(おいしい)

 일본 극우 세력의 힘을 받아 총리에 당선된 다카이치 사나에가 법률상 성은 남편을 따르더라도 일상에서는 결혼 전 성을 사용하도록 허용하자는 법안을 추진 하다며 여론을 살피고 있지만  1898년 메이지 시대 민법 개정 당시 부부 동성제를 채택해 130년 가까이 유지하고 있는 일본 사회가 쉽게 허용 하지 않고 있다. 

1996년, 법제 심의회가 선택적 부부 별성 제도의 도입을 제안했으나, 자민당에서 "가족의 일체감이 상실된다"라고 반대론이 일어나 법안 제출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1990년대 중반 부터 촉발된 선택적 부부 별성제도는 일본에서 총선의 시기마다 튀어나온 문제였고 지난 반세기 동안 일본 여성들은  '성씨는 여성이 바꾸는 것이다'라는 주장을 펼치며 집단 소송을 헌법 재판에 제기 해왔다.

한편 일본 대법원 대법정은 과거 2회에 걸쳐 선택적 부부 별성 제도에 대해 합헌으로 판결을 내렸지만, '국회에서 논의되고 판단되어야 할 사안'이라고  지적 하며 2021년에 내려진  판결의 보충 의견에서  향후 '위헌으로 평가될 가능성도 있다'라고까지만  언급하며 이 모든 논란을 정치계로 넘겨 버렸다.

사회와 의식의 변화에 부단히 주의하며 대응하도록 국회에 요청했다.  

현재 일본의 여론은 선택적 부부별성제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59% 반대는 24%로 

일본 국민 10명 중 6명은 결혼 후에도 부부가 결혼 전 성을 그대로 쓸 수 있는 '선택적 부부별성(別姓) 제도'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명에 대한 거부감은 혼인 기피로도 직결되었고 급기야  같은 성씨(姓氏)를 가진 이들만 연결해 주는 이른바 ‘동성혼(同姓婚) 중매 서비스’까지 등장해서 같은 성씨끼리 결혼하는 동성혼이 젊은 층 사이에서 유행이 되고 있다.

만일 일본 극우층과 보수층의 반발로 선택적 부부별성제가 도입되지 않는 다면 일본은 30년 안에 열도 전체 국민이 대 여섯 개 성씨로 통일 되는 국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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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9-10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일반 평민들은 성이 없었다고 하는데 일본이 메이지 유시을 맞이하여 성을 자기 맘대로 지어 30만개나 되었다면 한국은 오히려 당시 유명 문벌 가문의 성씨를 채택하는 경우가 많아서 성씨가 대략 300개(물론 같은 성이라도 본은 틀린경우가 많음) 정도로 한정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더 극단적인 것은 베트남인데 ‘응우옌(Nguyễn·阮·완)‘ 씨가 베트남 전체 인구의 약 38~40%를 차지하는 압도적인 1위 성씨라고 하네요,
 
와인즈버그 사람들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28
셔우드 앤더슨 지음, 김욱동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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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깨어 누운 채 창밖의 나무를 보고 싶어 했던 어느 작가는 새로 이사 온 집의 창문의 높이가 너무 높아서 침대에서 누웠을 때 나무가 보이지 않자 쉽사리 잠을 청하지 못한다.

불안감에 사로잡힌 작가는 침대에 누웠을 때 밖을 내다 볼 수 있도록 창문의 높이에 맞추기 위해 목수를 부른다.

작가가 목수에게 저 높은 천장 가까이에 붙어 있는 창문의 높이에 맞게 침대를 수리 해 달라고 요구하자 전쟁 참전 군인 출신이였던 목수는 작가의 방 주변을 둘러 보던 중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시가 꽁초를  피워 대며 늦장을 부리기 시작한다.

목수는 침대를 수선해 달라는 작가에게  자신은 한때 교도소에 수감되었던 죄수로 수감 중에 형제를 잃었다며 눈물을 글썽이자 작가는 침대 수선을 잊어 버리고 목수의 이야기를 들어 준다.

예순을 훌쩍 넘은 작가는 자신 처럼 흰 콧수염이 자란 동년배 목수의 굴곡진 인생 이야기를 들어준다.

작가의 집에 다시 방문한 목수는 그가 원하는 높이에 맞게 침대를 고쳐 주지만 노쇠한 허리와 무릎 통증을 앓고 있었던 작가는 천장 가까이에 붙은 창문의 위치와 맞게 높아진 침대 위로 올라가기 위해 의자를 겹쳐 놓고 겨우 기어 올라갔다.

마침내 침대에 누워서 창밖 세상을 볼 수 있게 된 작가는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다가 언젠가는 갑작스럽게 침대 위에서 죽음을 맞이 하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가는 침대에서 보이는 세상을 보는 동안 한 때 뛰어난 외모로 숱한 여자들과 달콤한 사랑을 나눴던 기억을 떠올리며 행복한 감정에 잠시 취해 보지만 아침마다 힘겹게 침대에서 내려가는 자신의 노쇠한 육신이라는 슬픈 현실을 깨달아간다.

침대에서 작가는 꿈이 아닌 꿈을 꾸었다. 조금씩 졸리기 시작했지만 그는 여전히 의식이 있었고 그런 그의 눈앞에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작가는 자신 안에 있던 형용할 수 없는 젊은 뭔가가 자신의 눈앞에서 사람들의 긴 행렬을 몰아대고 있는 것이라고 상상했다.

-셔우드 앤더슨의  <괴상한 사람들에 관한 책> 중에서 


침대에서 창밖 세상을 보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념과 추억에 젖어 있던 작가는 침대에서 내려와 하얀 백지와 마주하며 자신의 삶에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이 품고 있었던 수백 가지의 진실들을 열거하기 시작한다.

순결이라는 진실, 열정이라는 진실, 부와 가난, 절약과 낭비, 부주의함과 방종이라는 진실까지 이렇게  수만 가지의 진실들 모두  아름다워 보였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며 그것이 진실이라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최첨단  디지털 신 기술로 가짜가 진짜로 둔감해도 진짜인지 모르는 무시무시한 세상이다.

누구나 쉽게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가짜를 진짜처럼 조작 할 수 있는 시대에 오랜 세월 동안 신뢰와 사실 보도를 유지 했던 언론 마저 가짜와 진짜가 뒤섞여 있다.

진실과 거짓이 모호해지는 탈 진실 시대는 21세기 AI시대에만 존재 한 것이 아니라 이미 수 세기 전부터 인류의 삶에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이 불투명했었다.

2600여년 전 인도의 부처님은 북 인도에서 교세를 확장하며 대중의 지지를 넓혀 가던 중 진실을 기만한 거짓에 호되게 당했던 적이 있다.

신도들이 부처에게만 공양을 올리자 그의 제자인 브라만과 사문들이 거리에서 걸식을 하고 보시를 받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브라만과 사문은  어느 여신도의 배를 거짓으로 부풀려서 부처의 설법을 듣는 자리에 들여 보낸다.

여인이 부처의 아이를 뱄다는 거짓은 금세 탈로 나자 브라만과 사문은 화를 당할 것이 두려워서 그 여인을 죽이고 시신을 부처가 설법 했던 사원에 묻어버린다. 자신들의 범죄 행각을 지우기 위해 헛소문을 내기 시작하고 그 헛소문은 부처가 어느 여인과 불륜을 저지르고 그걸 감추기 위해 그 여자를 죽였다는 끔찍한 소문을 내기 시작한다.

거짓 소문은 점점 커져서 이웃 마을까지 퍼지고 브라만과 사문에게 살해 지시를 받고 돈을 챙긴 일꾼들이 서로 싸움을 하다가 사원에 시신이 묻혀 있다는 진실을 발설 해 버린다.

거짓으로 이득을 취해서 세력을 확장해서 궁극적으로 민심을 이용하고 사회를 뒤흔드는 검은 손들의 활동으로 인류는 숱한 위기에 빠졌고 그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큰 화를 입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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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9-09 17: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한국 사회를 보면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며 그것이 진실이라 믿고 있는 사람이 정말 넘쳐나고 있는것 같아요.
 

미국을 기준으로 세계 여러 나라의 빅맥 값을 비교한 빅맥지수(Big Mac Index)는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1986년 처음 만들어서 매년 1월과 7월에 발표되어왔다.

지금까지 빅맥지수는 각 나라의 물가 수준과 화폐 가치를 평가하는 경제 지표로 자리 잡으면서 스타벅스 커피값을 비교하는 '라테 지수', 이케아 가구 제품 가격을 비교하는 '이케아 지수' 등과 같이 전 세계 다양한 도시에 수 천개의 매장을 운영하는 글로벌 기업의 대표 상품들의 가격 책정 변동에 따라 나라별 체감 물가 지수를 한눈에 파악 할 수 있게 되었다.

일명 커피 공화국으로 불리는 한국에서는 맥도날드 매장 보다 모퉁이만 돌아가면 간판이 보이는 스타벅스 지수에 더 민감하다. 

 고물가 시대에 커피 중독자들은 가성비가 좋은 커피를 마시게 되니 스타벅스 가격 변동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물가가 급등할 때 면 가성비 반찬으로 식탁을 지키던 김 가격이 치솟아서 즐겨 사 먹던 김밥이 가격이 두 배로 급등하거나 조미김 한통에 김이 10장에서 8장으로 줄어 들게 되면  이보다 더 속상할 수가 없다.

기후 이상으로 바다 온도가 상승해서 발생하는 적조현상으로 인해 김 생산에 차질이 생겼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지만 한국의 김은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 잡아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싹 쓸어가는 대표적인 상품이고 K푸드 열풍에 냉동 김밥 수출양이 대폭 늘어나서 수출로 물량이 빠져나가게 되어  국내 소비자들에게 공급할 김이 부족하게 된 것이다.

한국에 이어 전 세계 두 번째로 김 생산량이 많은 일본은  그동안 반 세기 넘게 전 세계 김 수출의 60퍼센트를 장악했던 시절도 있었다.

일본은 7세기 무렵 부터  미역보다 얇은 바다말을 얇게 펼쳐 말려 먹었다. 이 바다말이 지역을 대표하는 명물이 되었던 것은 도쿠가와 가문이 에도에 입성하고 나서 부터였다.

도쿠가와 가문은 안정된 식재료를 수급하기 위해 에도성 앞에 어장을 조성했다.

 그 시절에 생겨난 어장은 가니스기, 혼시바. 시나가와로 점차 이 어장이 번성하면서 주변에 상권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어장과 상권이 번성하기 시작하자 시나가와가 주변 포구를 총괄 하는 중심 어장이 되어서 본격적으로 김 양식을 재배 했다.

17세기 에도에 시나가와에서 생산한 김은 색은 붉고 형태는 닭 벼슬처럼 작고 비린내가 난다 해서 노리(海苔) 불렀다. 김을 가공하기 시작한 것은 뜻밖에도 사찰에 종이를 대량 공급했던 아사쿠사 제조자로 당시 아사쿠사는 헌 종이를 수거 해서 재생종이를 생산했던 수공업체였다. 종이를 가공했던 수공업자가 미역보다 가는 김을 종이처럼 건조 시키는 방법을 고안했다.

바다에서 수거한 바다말을 담수에 섞어 대나무 판지에 얇게 펴서 바람에 건조 시키고 나서 숫불에 살짝 구우니 비린 냄새가 사라졌고 태운 종이처럼 입 속에서 바삭거리다 스르르 녹아 내리자 일본인들은 밥을 얹어 먹기 시작했다.

이렇게 가공한 김을 조미한 간장에 찍어 먹으면서 에도 시대 일본인들은 바다 채소라 불렀다.

 일본이 김을 종이처럼 얇게 가공 하기 훨씬 전부터 한국은 13세기 말인 신라 시대 부터 바다에서 김을 건져서 건조 시켜 먹었다. 삼국 시대 때 김은 혼인을 앞둔 왕의 폐백 품목 중 하나 였고  조선 시대는 임금의 수라상에 올라가는 검은 바다풀이였다.

이 검은 바다풀이 김이라 불리게 된 건  조선시대 인조 임금이 자신의 수라상에 오른 검은 바다풀을 맛있게 먹고 무슨 음식인지 묻자 한 신하가 음식 이름은 모르고 전남 광양에 사는 김여익이란 자가 만든 음식이라 답했다. 이후 조선 왕실에서는 김여익이 만든 바다풀이라 해서 그의 성을 따 ‘김(金)’이라 부르게 했다. 

현재 한국인들이 가장 즐겨 먹는 김밥의 기원은 일본 마키스시(巻き寿司)의 일종인 '노리마키(海苔巻き)'에서 왔다. 

에도 사람들은  식초와 설탕을 섞어 넣은 밥에 김을 싸서 먹기 시작했고 각종 속재료를 넣고 대나무발로 말아 원통형으로 만든 '후토마키(太巻き)'는 메이지 시대 들어서면서 부터 만들어 먹었다. 메이지 시대때 '후토마키(太巻き)'의 속재료는 생선회 였다.

1930년 일제 강점기 때 한반도에 들어 온 일본식 김밥은 한국인 입맛에 맞게 변형 되어서 당근과 계란, 우엉, 햄, 깻잎 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대체됐다.

일본은 쇼와 시대에 들어서면서 부터 노리마키의 기본이 되는 식초와 설탕으로 밥에 초절임을 하는 방식이 사라졌고 현재 일본 식당에서 파는 김밥은  미원과 소금, 참기름을 넣고 속재료도 한국 처럼 다양하지 않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김과  즐겨 먹는 김밥이 어느 나라에서 먼저 유래 되었는지 따지기도 전에 한국의 김밥은  일본의 라면 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스럽게 한국의 식재료와 뛰어난 조리 기술로  다채롭게 발전 시켜 나간 음식이다.

햄버가 한 개 먹은 포만감 보다  김밥 몇 줄을 먹은 포만감은 세계 물가 지수 지표로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김밥은  한국인에게 무척 특별한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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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비 2026-09-07 0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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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9-07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밥이야 서민들이 먹는 간단한 한끼 식사란 이미지가 있어서 그렇지 사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 인건비와 식자재비가 오르는 지금 가격이 안 오를래야 안 오를 수가 없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물가를 판단할 적에 혼자만의 와퍼 지수란 것을 사용합니다.버거킹을 자주 이용하는데 몇년전까지만 해도 버거킹 와퍼 세일시 1개에 3천원 이었는제 지금은 3.900원선이고 와퍼주니어도 기본 1+1할적에 약 3,00원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5.900원으로 올라것 정말 물가가 많이 올랐다고 뼈속깊이 느끼는 중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