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만춘 - 일본 고전영화 할인전 [초특가판]
오즈 야스지로 감독, 아오키 호히 외 출연 / 오아시스 (OASIS)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티비를 틀었다가 우연히 영화‘접속’이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예전에 봤던 영화라 생각이 잘 안나서 뭐더라... 하는 사이에 빠져들어서 끝까지 시청을 해버렸다.
그리고,
’맞어, 이런 영화가 있었지‘
.
문득, 요즘 영화가 점점 보기 싫어진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본인이 어쩔 수 없는 20세기 소녀여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요즘 영화는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사람들이 정신없이 시간을 소비하기를 바라는 그런 강력한 영화들만 나와서,
마치, ’숨은 쉬게 해줄테니 보고 있어라‘
하는 느낌.
숨이 가쁘게 시간을 소비했는데,
끝나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를 않는다.
오랫만에 이런 느낌을 더 받고 싶은 기분에
tv에서 예전 영화를 뒤졌다.
그러다 찾은 영화가 ‘만춘’ 이다.
어릴적에는 한국 영화가 정말 싫었다.
편집이 미숙해서 대화간에 시간이 뻘하게 끊어져 비어보이는 장면,
스토리를 빌미로 시청자에게 도덕관념을 설교하는 캐릭터,
이런 것들을 볼 때마다 몸에 두드러기가 나는 것 같았다.
근데, 그런 것들을 아주 세련된 기교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간만에 느끼게 해준 영화가 바로 이 작품.
명작이고 자시고 억지로 봐야하는 것들은 그냥 뭣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주의인데,
이 1949년작의 영화는 시종일관 세심하게 내 마음을 잡아서 영상으로 이끌었다.
대화가 없어도 비지않고,
도리를 얘기할 때는 상황에 매우 적절하게.
옛날 일본 영화를 볼 때면 조건 반사와도 같이, 만들어진 시기와 그 시기에 우리나라의 사정을 언제나 꼭 생각해보는데, 그 덕에 가장 밑바닥에는 양가적인 감정이 깔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패전 4년후에 이런 지적인 중산층의 평안한 모습이라니... 우리나라는 일본 경제를 최초로 최고로 최후로 부흥 시켜줄 내전 직전이었지.)
하지만 이 영화는 내용 이외의 감정에서 벗어나
아버지와 딸의 관계와 그 당시 여성의 사회상에 대하여 여러가지 보편적이지만 지극히 오롯한 감상을 갖게 해주었다.
그냥...
보고 있으니까 호흡이 편안해져서 좋았다.
일상을 그리지만 지나치게 이쁜척하지 않고, 지나치게 평안한 척도 하지 않는, 아니 지나치게 평범한 척도 하지 않는.
여배우가 이쁜척하는 것도 눈에 거슬리지 않았고, 남배우가 이에 니코틴이 시커멓게 끼인 것도 괜찮아보였다.
나름 충격적인 대목이었다면,
-아빠도 이제 56세라 이제 저물어간다... 라는 남자배우의 말에 좀 띵 하는 정도였다랄까. (그 아버지의 구부정한 몸가짐은 마치 요즘 60후반 정도의 노인 같은 태도였기에 좀 충격)
27살 먹은 당시로는 과년한 딸이 아빠랑 이대로 평안하게 살고 싶다고 떼를 쓰니, 그런 딸을 달래듯 얘기한다.
행복하기 위해서 결혼을 하는 건 아니라고,
살면서 노력해서 행복을 찾는 거라고.
그리고 넌 꼭 그렇게 될 거라고.
될 거라고.
될 거라고.
...
조금 부끄러운 얘기이지만
난 이 얘기를 결혼해서 남편에게서 들었다.
내가 저 딸내미처럼 이기적으로 떼를 쓰고 있을 때,
계속 되는 사랑은 서로가 꾸준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라고 얘기해줘서 놀라고 미안해졌던 기억이 났다.
세상을 좁게만 바라보고 실의에 잠겨 있을 때, 시의 적절하게 내려지는 충고들은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잠깐의 외로움과 고독을 참지 못해서 불안해하다 못 해, 쓰레기장에 영혼을 갖다 받치는 우리들의,
어디에 숨 쉴만한 빈 공간이 남아 있을까나.
보통의 호흡을 그리워하는 것은 이미 알고 있기에 그리운 것인데,
보통의 호흡을 알지 못하는 (어린)사람들은 어떻게 그리워하지?
숨을 쉬는 것은 본능이니 삶의 어느 순간에는 결국 찾게 되는 것일까.
이런 영화들도 다시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여러모로 밭은 것처럼 느껴지는 독립영화 같은 것들 말고 좀 더 풍부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