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 홈 : 가족 희비극 (페이퍼백) 움직씨 만화방 2
앨리슨 벡델 지음, 이현 옮김 / 움직씨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학적이고 예술적이며 학문적인 가족이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개인의 정체성은 음울하기도, 폭력적이기도 하다. 솔직하게 털어놓는 앨리슨가의 서사는 펀홈 장례식장의 사연처럼 다채롭다. 조이스 소설 ‘율리시스‘의 스티븐과 블룸의 관계로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아버지와 딸이 멋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술관에 가서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 그림을 낱낱이 분석한 평론가의 글엔 별로 집중하지 못한다. 어렵기도 하고 재미도 없다. 굳이 그런 것까지 알 필요성을 못 느낀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만, 그 앎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그저 여러 화가의 그림 앞에 서서 열심히 볼 뿐이다. 그림을 보는 그 자체만으로도 좋다. 눈이 열리고 감정과 생각이 교차되고 움직여진다. 작품마다 들어있는 개성과 창의성에 작가의 천재적인 면이 보이지만, 그 이면의 좌절과 성실에 더 감동받는다.

 

그림 안에는 화가의 의도와 작법이 있지만, 그 속에 작가 자신도 있는 것 같아 작가의 삶도 궁금하다. 그래서 미술관에 가기 전에 조금이라도 사람자체에 대해 알기를 원한다. 마로니에북스의 베이직 아트 시리즈는 그런 면에서 도움이 많이 된다. 연대기적으로 화가의 인생을 서술했고, 그림의 전반적인 특징과 시기에 따른 변화에 대해서도 잘 설명해놓았다. 책의 분량이 많지 않지만 그 속에 개괄적 내용이 들어있어 한 작가를 이해하는데 좋고, 길지 않아 오히려 효율적으로 읽을 수 있다.

 

폴 세잔(1839~1906)은 오직 그림만을 위해 살았고, 그것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 거의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했고, 사람들에 의한 좋은 평가도 비교적 늦게 받았지만 자신의 신념을 고집스럽게 지켜나간 예술가다. 은행가로 성공한 부르주아 아버지를 둔 세잔은 법학과에 입학했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 때문에 파리로 간다. 세잔은 오랫동안 아버지로부터 생활비를 받았고,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아 안정적으로 그림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그는 파리에 있는 유명한 그림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에 두 번이나 낙방했고, 살롱전에서도 많은 비판을 받았다.

 

세잔은 자신이 일드 프랑스(파리와 파리근교)와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고향인 엑상 프로방스로 돌아가 작업한다. 세잔은 잠시 인상주의의 기법을 사용했지만, 순간적으로 빛에 의해 변화되는 것보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자연에 더 관심을 갖는다. ‘인상주의 그림이 지나치게 일시적이며 순간적이라(p.45)’고 느낀다. 세잔은 변하지 않는 자연 내부의 영원한 것을 묘사하기를 원했다. ‘영속성과 안정성(p.68)’ 으로 집중한다.

 

엑상 프로방스 인근의 1011m 높이의 생트 빅투아르 산은 거대한 석회암 산등성이로 이루어져 있다. 세잔은 이 산을 배경으로 한 그림을 거의 80여점 남겼다. 세잔은 색채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빛을 표현하기 위해 푸른색을 많이 사용했다.

 

나는 사과 한 개로 파리를 놀라게 하고 싶다는 세잔의 포부는 그의 정물화에서 분명하게 이루었다. 이차원의 특성을 기본으로 신중하고 느리게 작업했다. 작업실 안의 모든 사물을 그림의 대상으로 삼았고 한 작품을 몇 달 또는 몇 년간 그리기도 했다. 말년의 세잔은 수욕도를 많이 그렸다. 고전주의 화가에 대한 존경으로 자연과 인간의 어우러짐을 큰 캔버스에 그리고자 하는 소망이 있었다.

 

[나는 캔버스의 모든 요소를 동시에 나의 통제하에 둔다. 사물이 흐트러지기 시작하면 그것을 다시 모으기 위해 나는 내 본능과 신념을 동원한다.예술은 자연을 영속적으로 묶어두어야 한다. 모든 구성 요소와 변화의 모습까지도 고정시켜야 한다. 자연을 우리의 상상력을 통해 영원하게 만드는 것이 예술이다. -p.67]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의 그림은 그저 보고만 있어도 기쁨과 위안을 준다. 그 어떤 사람이라도 한번쯤은 웃고 행복할 수 있다. 한순간 포착된 삶의 환희와 붉은 빛 낭만을 르누아르만큼 잘 표현한 사람이 있을까? 설사 이것이 그의 한계를 나타내는 것일지라도 그의 그림을 보고 마음이 따뜻해지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생계가 어려워도 르누아르는 걱정이나 비관적인 감정을 나타내는 그림보다 밝은 색의 그림을 그렸다.

 

세잔과 달리 가난한 중산계급인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난 르누아르는 가난과 싸우며 그림을 그려야만 했다. 도자기 공장에서 도제로 일하며 회화와 드로잉에 재능을 보인 그는 13세에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화공이 되었다. 돈을 모은 르누아르는 21세에 파리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했다. 샤를 글레르의 개인 화실에도 다니며 그림을 배웠다. 그곳에서 클로드 모네, 알프레드 시슬레, 프레데리크 바지유를 만났다.

 

르누아르와 모네는 야외로 나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자연의 인상은 그들을 사로잡았으며 나중에 인상주의라는 이름을 얻는다. 르누아르는 파리의 중산계급 사람들의 일상을 주로 그렸다. 로코코 거장들의 작품과 현대 프랑스 시각예술 전통에 뿌리를 둔 다양한 소재의 그의 그림은 당시 프랑스인의 일상과 여가를 잘 나타내주었다.

 

1883년경 르누아르는 인상주의 양식을 버리기 시작한다. 2,3년 정도 불모의 시기를 거친 그는 더 이상 파리의 일상을 그리지 않는다. 르누아르는 친구 세잔처럼 사물의 형태를 견고하고 명확하게 묘사하려(p.62)’했다. 그 후 부드러운 양식으로 다시 복귀한다. 그는 예술에 대한 관점을 끊임없이 변화시킨다. 르누아르의 색채는 훨씬 더 화려하고 강렬해졌다. 눈부신 색채와 경쾌한 붓놀림으로 넓은 곡선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는 선천적으로 선량하고 소박한 사람이었으며, 그림을 통해 순수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펼쳐 보여주었다. 따라서 감각적인 아름다움보다 견고하고 이성적인 토대에서 세상을 보려는 사람들과는 어울릴 수가 없었다.르누아르는 혁명적이기를 원치 않았다. 언제나 새롭고 항구적인 미를 표현하고자 했던 그는 진실의 한 부분을 보고 그대로 그렸을 뿐이다. 그는 결코 거짓을 말하지 않았으며, 자신만의 시각에 치우쳐 실제의 비례를 왜곡하지도 않았다. 그의 예술은 사람들에게 모욕을 주거나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았다. 그는 인간과 빛, 영원한 자연을 사랑했다. 실존적 두려움과 중산계급의 불안과 절망이 커져갈 때, 르누아르는 행복하고 조화로운 삶의 가능성을 그림으로 끊임없이 보여주었다.

-p.91]


-오베르 인근에서 그림을 그리는 폴 세잔, 1847년경, 사진, 헤이그 시립 미술관(p2)

-작업실의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1912, 사진, AFG 베를린, 뒤표지

(사진에서도 르누아르의 손가락은 많이 변형되어 있다.)

 

세잔과 르누아르의 말년은 병마와 싸우는 시기였다. 세잔은 당뇨병과 우울증을 앓고 있어 예민해져 친구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 르누아르는 심한 류머티스 관절염을 앓고 있었다. 뼈가 변형되었고 몸무게가 47kg밖에 나가지 않았다. 르누아르의 손은 심하게 비틀려 휘어져 손과 붓을 묶어 그림을 그려야만 했다. 누군가와 얘기할 때 통증이 밀려오면 통증이 사라질 때까지 얘기를 멈추어야 할 정도로 그는 고통스러웠다.

 

그런 힘듦에도 세잔과 르누아르는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르누아르는 그 시기에 조각을 그리기 시작했고 세잔은 생트 빅투아르 산을 그리기 위해 매일 그곳에 올랐다. 1906년 가을, 세잔을 큰 폭풍이 왔음에도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몇 시간동안 비에 젖은 몸이 쇠약해졌지만, 다음날 그림을 그리기 위해 정원으로 나가서 다시 악화되어 폐렴으로 사망했다.



 

 

 









엑상프로방스의 부르봉 학교에서 만난 세잔, 에밀 졸라, 장 바티스트 바유는 단짝 친구들이었다. 이 세 친구는 주변 지역을 여행하며 사냥을 했고, 수영을 즐겼다. 그들은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를 읽고 빅토르 위고와 알프레드 드 뮈세를 좋아했다. 그들은 시작(時作)을 했고, 세잔은 라틴어로 시를 쓰기도 했다. 세잔을 파리로 불러들인 사람은 친구인 에밀 졸라였다. 세잔이 평론가와 대중에게 비판받던 시기에도 에밀 졸라는 그를 옹호했다.

 

루공 마카르 총서를 쓰던 졸라는 성공해 세잔보다 훨씬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두 사람의 우정은 이미 예전 같지가 않았다. 18863, 에밀 졸라의 소설 작품출간은 두 사람이 완전 결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클로드 랑티에는 누가 봐도 세잔을 모델로 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책을 보내준 친구에게 세잔은 형식적인 편지를 보내고 관계를 끊는다. 세잔은 졸라의 장례식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세잔이 에밀 졸라가 이 소설에서 표현하고자 한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거나, 내용을 지나치게 왜곡하고 예민하게 받아들인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들의 우정은 되돌릴 수 없었다. 편지의 내용에서 세잔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친애하는 에밀에게.

작품을 막 받았네. 친히 한 권을 보내주다니 정말 친절하군. 루공 마카르총서의 저자 분께 추억의 증표로 감사하다고 전해주게나. 또한 과거를 생각해서 그에게 그의 손을 꼭 붙잡아봐도 좋은지 여쭤봐 주게나.

과거 속에 살고 있는 당신의 폴 세잔. -p.62]



한가람 미술관의 오랑주리/오르세 미술관 특별전 <세잔 르누아르>는 파리의 오랑주리와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세잔과 르누아르 작품의 일부를 가져와 전시하는 기획전이다. 몇 년 전에 열렸던 <오르세 미술관>전에 비해 작품의 수가 그리 많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 전시가 세잔과 르누아르의 작품을 서로 교차하며 보여주어 두 예술가의 세계를 비교할 수 있어 좋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의 사진 찍기가 전혀 허용되지 않았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과 오랑주리 미술관에서는 사진 찍기가 허용되는데 왜 한국에서 그것을 금지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작품 보호 차원에서라면 오르세와 오랑주리에서도 금지되어야 하는데 그곳에서는 분명 허용된다. 관람객이 많으므로 빠른 회전율을 원한 주최측의 꼼수가 아닌지 의심되기도 했다. 작품을 감상하면서 사진을 찍지 않으니 좋은 점은 있었다. 작품 자체에 완전 집중할 수 있었다. 사진에 담을 수 없고, 내가 파리에 다시 갈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을 것 같아 그림 앞에 오래 서 있기도 하고, 그림을 보고 다시 되돌아오기도 하면서 내 눈에 최대한 그림을 많이 담으려고 했다.


-수프 그릇이 있는 정물

-푸른색 꽃병

-밀집 장식 꽃병, 설탕 그릇과 사과(사진출처; 전시회홈페이지제공)

-폴 세잔


-튤립 꽃다발

-꽃병에 꽂힌 꽃

-복숭아가 있는 정물(사진출처;전시회홈페이지제공)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세잔과 르누아르의 그림은 나름 다 좋았다. 그런데 정물화에서만큼은 세잔이 완벽하게 승리한 것 같았다. 작품 자체를 놓고 볼 때 르누아르의 꽃을 그린 정물도 좋았지만, 세잔의 작품과 비교해서 보니 왜 세잔의 정물화가 그렇게나 유명한지 알 것 같았다.


-르누아르, '피아노 치는 소녀들', '피아노를 치는 이본과 크리스틴'-오랑주리 미술관


-르누아르, '피아노 치는 소녀들', -오르세 미술관



댓글(6) 먼댓글(0) 좋아요(4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5-10-29 1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시 작품 수는 그리 많지는 않군요..🧐

페넬로페 2025-10-29 09:05   좋아요 1 | URL
네, 제 느낌상 그랬던 것 같습니다.
세잔의 생트빅투아르산 그림이나 르누아르의 대형화를 보고 싶었는데, 그 부분에서 많이 아쉬웠어요^^

yamoo 2025-10-29 1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술 평론가 글은 원래 집중해서 읽을 수가 없습니다. 미술 평론가 중에서도 자기가 무슨말을 쓰고 있는지 모르는 평론가가 다수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 평론 따위 읽는 건 작품 감상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에 해롭습니다..^^

어쨌든 세잔은 사과로 전 세계 미술인들과 평론가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건 변함이 없고 그의 형태와 구성에 대한 집착은 추상미술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죠. 많은 작가 중에서 세잔만큼 높은 재평가를 받는 이는 없는 듯합니다...르누아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평론가들과 화가들의 추종을 받고 있죠..^^

페넬로페 2025-10-29 12:24   좋아요 0 | URL
세잔을 소개한 유튜브에 이런 글이 있더라고요.
˝모든 근대가 세잔에 모여 현대가 탄생했다˝
세잔의 정물화를 보면서 그 말에 공감했습니다.
세잔의 정물화도 좋았고
르누아르의 오렌지빛 인물화도 멋졌어요.
오랑주리미술관과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호시우행 2025-10-29 14: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르누아르 화폭엔 대부분 여성들이 주인공이죠. 전시회 그임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페넬로페 2025-10-29 14:57   좋아요 0 | URL
르누아르 그림 속 여성들은 넘 아름다워요. 그 속에 화양연화가 있는 것 같아요.
 













소설 액스(AX)를 원작으로 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No Other Choice)’가 개봉된다는 소식을 듣고 영화를 보기 전에 이 책을 먼저 읽었다. 박찬욱 감독이 왜 이 소설의 영화화를 필생의 프로젝트로 열망했고 17년 만에 기어코 스크린에 올려야만 했는지 궁금했다.

 

1997년에 출간된 이 소설은 소재와 내용의 전개가 굉장히 특이하면서 쇼킹한 면이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상상만 하고 실행하지 못하는 것을 주인공 버크 데보레는 치밀하게 설계해,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긴다.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가 없는사회적 현상과 구조적 모순 때문에 자신도 어쩔 수가 없이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어쩔 수가 없다는 책에 여러 번 나오는 문장이다.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액스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와 상관없이 일단 그 자체로 봐야한다. 이 책은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작품이다. 여기에서 도덕적이고 인간적인 면은 중요하지 않다. 작가는 이것들을 과감히 배제한 채, 오직 한가지만을 명백히 말하고 있다. 전 세계를 움직이는 조직적이고 악랄한 경제적 흐름에 한 순간 희생되는 개인과 그 가족들 각자가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여기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저 작가가 의도한 것만을 볼 필요가 있다.

 

23년간 중간관리자로 한 제지회사에서 계속 근무해온 버크 데보레는 정리해고를 당한다.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인 그는 2년 동안 구직활동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재취업을 못하고 있다. 한창 아이들에게 들어갈 돈이 필요하고 집 대출금도 남아있는 상태다. 아내는 두 군데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한다. 최대한 긴축재정을 했지만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다. ‘돈이 바닥났다.(p.33)’ 그는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다시 직장을 얻을 수 없다고 판단한다. 자신과 비슷하거나 자신보다 훨씬 능력이 뛰어난 구직자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버크 데보레는 우체국 사서함의 주소를 빌려 주로 제지업을 다루는 잡지에 구인 광고를 낸다. 전해 축전지 제지 기계로 가동되는 가상의 제지공장의 새 생산 라인을 맡아 관리해줄 특수 용지 전문가를 찾는다는, 한마디로 가짜 내용으로 조작된 것이었다. 그 주소로 200명이 넘는 사람이 이력서를 보내왔고, 그는 자신과 비슷한 경력의 경쟁자를 추려 그들을 제거할 계획을 세우고 거침없이 실행한다. 그들과 자신이 원하는 삶은 비슷했고, 냉혹한 자본주의는 모두에게 필요할 것을 다주지 않는다. 누군가는 포기하거나 아님 둘 다 싸워 끝장을 봐야만 한다.

 

그에게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아버지가 독일군에게 빼앗아 온, 50년 동안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던 총 루거가 있었다. 버크는 자신이 지원할 직종에 취업할 가능성이 있는 경쟁자를 찾아가 루거를 쏴 죽여 버린다. 그는 이력서를 제출한 경쟁자 4명을 죽인다. 일이 꼬여 릭스를 죽일 때 그의 아내도 죽인다. 마지막으로 버크가 취업을 원하는 회사의, 그 직책에 딱 버티고 있는 장애물인 업튼 팰런을 죽이고 그는 그 자리에 재취업하는데 성공한다. 6명을 죽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은 셈이다.

 

운 좋게 버크 데보레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자신이 계획한 일을 착착 진행해 성공한다. 그 사이 아내의 외도도 정리되고, 상담을 통해 아내와의 관계도 개선된다. 말썽피웠던 사춘기 아들의 사고도 말끔하게 해결해줬다. 돈이 만사형통이었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이 실직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야기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실직당한 이유가 자본주의 원리와 사회의 구조적 모순 때문이라고 여긴다. 그러므로 자신과 그의 가족이 중산층의 삶을 누리며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이다.

 

버크의 회사는 적자가 아닌 상당히 좋은 영업실적을 올리고 있었음에도 직원의 4분의 1을 한꺼번에 해고시켰다. 해고는 거의 모든 산업에서 광범위하게, 일률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언제나 실직자가 구직자보다 많은 것이 문제다. 사람을 기계로 대처하고 필요 없어진 그 제품 라인을 다른 회사에 매각해 막대한 수익을 남긴다. 끊임없이 개발되는 신기술은 새로운 인력을 필요로 하고 쓸모없어진 직원은 해고당한다. ‘변화에 뒤처지면 끝장이지만(P.26)’ 그것을 좇아가기는 쉽지 않다. 버크는 종이라는 복잡한 주제의 전문가였지만, ‘종이라는 더 복잡한 주제가 난데없이 들어오며 수 십 년간 일해 온 회사에서 순식간에 도끼질당해야 했다. 투자 수익에만 관심이 있는 주주와 회사의 흑자를 위해 임원들은 수천 명의 직원을 해고하고 자신의 자리를 보장받는다. 해고자 개인의 삶은 안중에도 없다.

 

오래 전 TV에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독일의 한 가공육 공장을 취재한 것이었다. 공장 노동자들은 모든 생산라인 중 각 한 곳에만 배치된다. 먼저 소가 줄지어 들어오면 한 노동자는 소의 머리에 전기 충격기를 들이댄다. 기절한 소는 거꾸로 매달려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어떤 노동자는 소의 배를 가른다. 내장을 쏟아낸 소는 또 움직여 가죽이 벗겨진다. 다른 노동자가 작두를 쥐고 소의 앞발을 자른다.....이렇게 노동자는 생산 라인의 한 곳에서 하루 종일 한 가지 일만 반복적으로 한다. 점심시간에는 자신이 살생한 그곳에서 도시락으로 싸온 샌드위치를 먹는다. 아마 지금은 그마저도 거의 대부분 기계로 대체되었을 것이다. 한 가지 일만을 반복적으로 한 노동자가 해고되었을 때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작가 웨스트레이크는 이 책에서 거대하게 조직된 자본주의의 논리와 그에 따른 냉혹한 현실을 고발한다.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해고된 사람이 다시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히려 이 잔혹한 사회가 한 사람을 총으로 무장시킨 채 밖으로 내몰고 있으며, 그는 총질을 하면 할수록 더 편하게 잘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다 그렇게 변한다.

 

[나는 킬러가 아니다. 살인자가 아니다. 그랬던 적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무정하고, 냉혹하고, 영혼이 없는 킬러. 그건 내가 아니다. 지금 내가 벌이고 다니는 짓은 사건의 논리에 의해 강요된 것일 뿐이다. 주주들의 논리, 임원들의 논리, 시장의 논리, 노동력의 원리, 밀레니엄의 논리, 그리고 나 자신의 논리. 대안을 알려주면 살인을 멈출 수도 있다. 지금 내가 벌이는 짓은 끔찍하고, 까다롭고, 섬뜩하다. 하지만 내가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

-p.162]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박찬욱의 영화답게 미장센과 대사 특유의 유머와 디테일이 살아있었다. 배우들의 연기도 뛰어났다. 소설의 진지한 블랙코미디를 가볍게 비틀었지만 거기에 소설보다 더 끔찍한 비극이 들어있어 좋았다. 다만 사회적이고 거시적인 것을 배제한 채 영화를 가족 판타지로 축소시킨 것이 아쉬웠다.

 

실업자가 되면 본인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도 힘들다. 똑같은 처지지만 만수(이병헌)와 범모(이성민)의 대처는 다르다. 만수는 총을 쏴서라도 가족을 지키려 하지만 범모는 무기력하게 살아간다. 누가 더 맞다, 누가 더 잘한다는 있을 수 없다. 만수의 행동이 그 어떤 이유라도 정당화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두 사람의 차이나는 행동으로 만수의 아내인 미리(손예진)는 그의 동조자가 되고 범모의 아내 아라(염혜란)는 적이 된다. 아라는 범모의 태도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그녀는 남편에게 실직당한게 문제가 아니라 실직에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문제야라고 말한다.

 

어느 누가 실직에 대처하지 않겠는가? 대처해도 잘 안 되니 문제가 된다. 실망하고, 자포자기하고.끝내는 어쩔수가없이극단적 행동을 하게 된다. 소설에서 버크는 어떻게 해서든 내가 벌인 짓들에 대한 대가는 치러야 할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은 절대 자살을 하지 못한다.(p.114)고 했다. 만수와 소설과 다르게 그의 살인을 알게 된 미리역시 대가를 치를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불안과 상처를 안고 살아갈 것이다.

 

내가 느낀 이 영화의 압권은 마지막 장면이다. 재취업한 만수는 거대한 기계실의 관리를 맡고 있다. 그는 그저 그 기계들이 잘 돌아가는지 체크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기계가 다 알아서 종이를 생산해준다. 만수는 귀에 귀마개(기계가 돌아가며 내는 소리가 엄청나다)를 하고 손에 패드를 들고 기계 사이를 걷는다. 그의 얼굴엔 안도의 미소가 있다. 하지만 그 미소가 영원하지는 않을 거라고 암시한다. 총질로 가까스로 거기에 갔지만, 멀지 않아 그의 길은 또다시 험난해질 것 같다. 지독한 박찬욱 표 블랙코미디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amoo 2025-10-23 17: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엑스를 오래 전 읽었는데, 그리 재밌지 않았다는 기억만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원작이 엑스였군요~
저는 박찬욱 감독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관심이 없었는데...엑스가 원작이었다니..ㅎㅎ

페넬로페 2025-10-23 21:41   좋아요 1 | URL
네, 그리 재밌지는 않은데 스토리 전개가 특이했어요.
저는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을 좋아하는데,
<어쩔수가없다>도 무난했다고 생각합니다^^

새파랑 2025-10-24 08: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는 페넬로페님은 책쟁이가 맞습니다~!
박찬욱 감독님도 책쟁이인거 같아요. 이런 책을 어떻게 아셨는지 ㅋ

페넬로페 2025-10-24 10:29   좋아요 1 | URL
박찬욱감독님이 독서를 엄청 많이 한다고 들었어요.
책에서 소재를 많이 찾을 것 같아요. 오래전에 이 책을 읽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독서괭 2025-10-26 09: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영화 제목은 많이 들었는데 이런 내용이었군요?! 놀랍습니다. 원작 읽고 보면 더 많은 게 보일 것 같은 영화로군요.

페넬로페 2025-10-26 16:37   좋아요 1 | URL
저도 영화가 상영된다는 소식을 듣고 이 책을 알게 되었어요.
책과 영화 내용은 비슷한데
각각 나름의 개성이 있더라고요^^
 
동양화가 처음인 당신에게 - 제대로 알고 즐기는 옛 그림 감상법
이장훈 지음 / 미술문화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소개 그대로 ‘동양화가 어렵거나 낯선 이들을 위해 기초 지식부터 감상법까지 한 권으로 끝내는 동양화 감상 입문서’로 좋은 책이다. 결코 가볍지 않아 동양화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 독자에게 권하고 싶다. 동양화에 대한 여러 다양한 것들이 들어있는 개념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특성 없는 남자 1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5
로베르트 무질 지음, 박종대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함께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20세기 모더니즘 소설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 세 소설은 ‘20세기 소설의 삼위일체라고도 일컬어진다. 무질은 토마스 만, 프란츠 카프카와 함께 20세기 초 독일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1999년 르 몽드가 선정한 세기의 도서 100권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 소설의 어떤 점이 그렇게 대단한 건지 궁금했다. 그리고 율리시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었기 때문에 그 다음엔 당연히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를 읽어야했다.

 

프루스트와 조이스에 비해 나에게 생소했던 작가인 무질의 이 소설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마음을 다잡아 시작했지만 읽기 어려움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책장을 넘기기 어려운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일단 작가가 쓴 문장의 장황함이 큰 역할을 했다. 무질의 장황함은 프루스트, 발자크,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의 장황함과는 많이 달랐다.

 

무질의 문장에는 동시에 상대적인 것이 같이 들어있어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작가가 말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 한 번에 알 수 없어 모호하고 맥락을 이해하고 연결시키기 어렵다. 간결한 문장을 선호하는 작가 헤밍웨이였다면 50페이지에 족했을 내용을 무질은 500페이지가 넘는 문장으로 늘어뜨린다. 하나의 사건과 주목해야 할 간단한 에피소드도 무질은 여러 페이지에 걸쳐 그것을 설명한다. 비유를 들고, 여러 단어로 부연 설명하며 거기에 성찰과 사유를 들이밀며 독자를 고통에 빠뜨린다. 이 소설의 번역자는 원문이 워낙 어렵고 독특해 그대로 살리기보다 어떻게든 독자가 읽을 수는 있게끔 번역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 소설 읽기는 무척 난해하다. 다음 문장을 읽으면 그 전의 글은 휘발되어 버릴 정도다.

 

로베르트 무질은 군사중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대학원에서는 철학을 전공하고 그 뒤 문학으로 진로를 바꾸어 작가가 되었다. 이러한 무질의 이력은 특성 없는 남자의 주인공 울리히와 소설의 내용에 많이 반영되어 있다. 작가가 지나온 길과 비슷하게 이 소설에는 과학적인 요소와 철학적인 것이 섞여 있으며 그것을 문학으로 나타내고자 하는 작가의 치열한 20년간의 고민이 담겨있다. 무질은 사유 소설(사건은 별로 없고 성찰과 사유가 주를 이루는 소설-3, p.602)의 형식으로 인간과 세계를 실험과 추상화 작업으로 서술한다.

 

 

이 소설은 19138,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어느 아름다운 여름날로 시작된다. 1차 세계대전 전 해이다. 여기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카카니엔이라고 불린다. 오스트리아 황국인 ’kaiserlich und kὂnigich’의 약자인 k.u.k를 의미한다. 공적으로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었지만, 사람들은 그냥 오스트리아로 말했기 때문이다. 제국의 수도이자 황궁이 자리 잡은 빈이 공간적 배경이다. 오랫동안 명성을 누렸던 왕가인 합스부르크가가 거의 몰락 직전에 있는 상태다. 자본주의와 과학의 발달, 진보는 어느 누구도 꺾을 수 없을 정도로 대세로 자리 잡았다.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의 패배로 오스트리아는 독일에 밀리고, 점점 독일의 영향이 제국에 스며들고 있었다. 다민족 국가의 한계로 여러 민족의 반발에 직면했고, 결국 이것은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다.

 

 

스위스 아르가우 주의 합스부르크 성에서 출발한 합스부르크 가문은 전략적인 결혼과 영리한 외교술을 통해 세력을 넓혀갔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오스트리아 공작령을 획득하여 점차 주변 영토를 통합해 나중에 거대한 다민족 제국을 건설했다. 14세기에 프리드리히 3세와 레오폴트 3세 집권 시기 빈이 중요한 문화 중심지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알브레히트 2세 시대에 신성로마제국 황제 자리와 보헤미아와 헝가리의 왕위도 계승하게 되어 중부유럽 지배자로 부상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다. 그의 통치시기에 빈은 화려한 문화예술이 꽃피운 시기였다. 그는 새벽부터 밤까지 국정에 매진하는 성실한 군주였으며, 이러한 그의 근면성은 제국 관료제의 모범이 되었다. 프란츠 요제프 시대의 오스트리아는 산업혁명의 물결을 타고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었다. 그의 통치기는 제국의 마지막 황금기였지만, 동시에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 시기이기도 했다.

 

프란츠 요제프 1세의 개인적 삶은 불행했다. 부인 엘리자베트가 무정부주의자의 암살로 목숨을 잃었고, 외아들 루돌프는 마이어링 사건(유부남인 루돌프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비관해 일으킨 동반자살 사건)으로 젊은 나이에 죽었다. 후계자로 지목된 조카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사라예보에서 암살되었다.

 

오스트리아 제국이 이탈리아 통일전쟁과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연이어 패배하면서 제국 내 여러 민족의 반발이 일어났다. 오스트리아는 헝가리와 오랜 협상 끝에 아우스글라이히 협약을 체결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국가체제를 탄생시켰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11개의 주요민족이 공존했다.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는 두 개의 독립된 정치체제로 재편성되어 각자 독자적인 의회와 행정부를 가지게 되었다. 헝가리의 자율성은 제국 내 다른 소수민족들의 불만을 키우는 결과를 가져왔다. 크로아티아, 슬로바키아, 루마니아계 주민들이 강한 반발을 했다. 이중제국 체재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산업화로 체코의 민족의식도 급속히 성장하였다. 보헤미아와 모라비아에서는 독일계와 체코계 주민들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20세기 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표면적으로는 강대국이었지만 내부적으로는 다양한 민족들 간의 갈등이 끊임없이 표출되는 상태였다. 이들 다양한 민족은 각자의 정체성과 자치권을 요구했다. 프란츠 요제프 1세는 다양한 정책을 시도했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제국의 균열은 심해져 갔다. 독일, 프랑스, 영국, 러시아 등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유럽은 전쟁의 기운이 감돌았다.

 

이러한 시점에서 제국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를 방문했다. 페르디난트는 제국의 개혁을 주장하는 온건파 인물이었는데, 이는 제국 내 보수파와 헝가리 귀족의 반발에 부딪혔고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다. 보스니아 청년단체 젊은 보스니아의 회원이었던 가브릴로 프린치프는 사라예보를 방문한 황태자 부부를 저격했고, 이 사건은 제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었다.

 

제국은 세르비아에 강경한 태도를 보였고,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다. 러시아의 세르비아 지원, 독일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지원, 프랑스의 러시아 지원이라는 동맹 체제가 연쇄적으로 작동하면서, 순식간에 유럽 전체의 전쟁이 되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제국의 경제는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제국의 내부는 붕괴되기 시작했다. 전쟁 후반기에 각 민족들은 독립을 위해 움직였고, 제국이 전쟁에 패배하면서 완전한 해체되었고, 여러 개의 독립국가들이 들어섰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역사에 대한 내용은 다음의 책에서 발췌했습니다.

전자책 인간의 역사와 문명-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중부유럽 지배,

이진호, 루미너리북스, 20251

 

 

이러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1913년 전후의 상황은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 꼭 먼저 알아야 할 내용이다. 이 소설 1권의 핵심적 내용은 1918년 독일이 빌헬름 2세 황제의 치세 30주년을 기념해 큰 행사를 여는 것에 대해, 공교롭게도 같은 해에 있는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즉위 70주년을 맞아 오스트리아에서도 성대하고도 뜻깊게 기념하자는 것이다. ‘삼십 주년에 불과한 독일 즉위식과 비교해서 축복과 비통함의 역사가 함께한 황제의 칠십 주년의 장대한 무개를 부각해야(p.131)’한다는 것이다.

 

황제의 즉위 칠십 주년을 계기로 다시 한 번 위대한 오스트리아의 영광을 되찾고자하는 애국운동준비위원회가 결성되고 거기에 주인공 울리히가 참여하는 것이 이 소설의 큰 축을 이룬다. 애국대운동’, 다른 말로 독일과 관련되어 평행운동이라고도 불리는 이 거대한 사업에 울리히와 함께 여러 인물이 얽힌다.

 

특성 없는 남자에서 특성은 무엇일까? 왜 울리히는 스스로 자신을 특성 없는 남자라고 선언하는가? 얼마 전 외국에서 돌아온, 지금은 수학자인 특성 없는 남자인 울리히는 32세이다. 그는 출세 지향적이고 조화로운 공존과 일반적 원칙에 따르는 인간(p.21)’69세의 자신의 아버지와는 다른 사람이다. 특성 없는 남자는 반골적이며, 남들과 생각이 다르고 남들의 이상을 경멸한다. 몽상가이기도 하고, 허무적이며 허영기도 조금 가지고 있다.

 

울리히는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외부에서 주어진 특화된 특성을 거부한다. 보통의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현실감각이라면 울리히는 가능성감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능성감각 현실과 똑같이 존재할 수도 있는 것을 생각해내고,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 것보다 더 중히 여기는 능력이다(p.22) 무척 섬세한 그물망 즉 안개, 몽환, 가정법의 그물망 속에서 살아가고 현실을 기피하는 대신 과제이자 창작영역으로 다루는 의도적 유토피아주의 같은 것이다.

 

[특성을 가진다는 것은 그것의 실재로 인한 모종의 기쁨을 전제로 하기에,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조차 현실감각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를 특성 없는 남자라고 여기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p.25]

 

울리히의 어릴 적 친구인 발터는 특성 없는 남자인 울리히를 아무것도 아닌, 별 것도 아닌, 현대가 만들어 낸 인간 유형이며, 그만의 고유한 내용이 없는 사람이라고 정의 내린다. 울리히는 모든 것에 뛰어나지만, 그것들 개개의 특성을 지니는 것을 거부한다. 하지만 울리히가 오늘날 모든 현상에 담긴 해체된 본질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인 것을 알기에 발터는 울리히를 질투한다.

 

이 소설을 이끄는 또 하나의 인물은 매춘부를 잔인하게 살인한 서른 네 살의 목수 모스부르거이다. 울리히는 겉으로 드러나고,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모스부르거의 재판을 비판하며 모스부르거의 본질을 들여다보기를 원한다. 이 사건에 존재하는 양면의 모습들을 보고자 한다.

 

특성 없는 남자1부는 특성 없는 남자 울리히와 그의 사상, 시간적, 공간적 소설의 배경이 되는 것을 서술했고, 2부에서는 구체적인 사건이 진행되고 여러 다른 인물이 등장한다. 하지만 사건보다는 계속되는 작가 무질의 사유가 주된 내용이다. 무질의 사유는 독특하고 깊이 있으며, 모든 문장에 들어있는 비유 또한 뛰어나다. 다만 문장 하나하나에 집중하다 보면 전체적 맥락과 흐름을 이해하고 따라가기 힘들다. 나무만 보고 숲을 잘 보지 못하는 것 같다. 별다른 사건도 없어 리뷰 쓰기가 무척 어렵다. 아직 1000페이지 넘게 남아있는 무질의 문장이 두렵지만, 이왕 시작했으니 끝장을 봐야겠다.

 

[‘내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울리히는 씁쓰레하게 생각했다. ‘혹시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용감한 인간이 아닐까? 내면의 자유를 위해 외부 법칙을 거의 인정하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인간이 아닐까? 하지만 이런 내적 자유의 본질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 있지 않을까? 그것은 곧 모든 인간적 상황에서 자신이 왜 그 상황에 묶일 필요가 없는지는 알지만, 정작 무엇에 묶이고 싶은지는 모르는 것이 아닐까? 그를 사로잡은 이 독특하고 작은 감정의 물결이 다시 해체되는 불행한 순간에는 그도 자기 자신에게 모든 사물에서 두 측면을 발견하는 능력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지 모른다. 그 능력은 거의 모든 동시대인들의 두드러진 특징이자, 울리히 세대의 속성을 형성하거나 그 세대의 운명이기도 한 도덕적 양가감정이다. -p.410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4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시우행 2025-10-15 0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이팅 기대합니다. 전 이 책 읽기를 포기했기에.

페넬로페 2025-10-15 07:48   좋아요 0 | URL
네, 꼭, 완독해 보겠습니다.

yamoo 2025-10-15 10: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이 책을 읽으셨네요...읽다가 지루해서 덮었는데...지루하고 재미없으면 덮게되던데, 율리시스도 그렇고...언젠가 한 번 더 도전해 보고 그때도 못읽겠으면 팔아버려야 겠으요~~ㅎㅎ

페넬로페 2025-10-15 11:49   좋아요 1 | URL
일단은 ‘그냥 천천히 읽어보자‘를 목표로 두고 있습니다. 꼭 도전 성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잠자냥 2025-10-15 1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아....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읽기 어렵군요.
넘 지루할 거 같아서;;; 저도 아직 도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요. 페넬로페 님은 파이팅입니다!

페넬로페 2025-10-15 11:50   좋아요 0 | URL
어렵고 지루합니다.ㅠㅠ
잠자냥님,
저랑 같이 읽으시고
꼭 무질을 주인공으로 한 장편소설 써 주시면 좋겠습니다.

stella.K 2025-10-15 11: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존경합니다! 저는 다음 생에...ㅎㅎ

페넬로페 2025-10-15 11:51   좋아요 2 | URL
네, 굳이 안 읽으셔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ㅎㅎ
이 책 말고도 좋은 책이 너무 많습니다.

서곡 2025-10-15 1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끌리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아닙니다ㅋㅋㅋ 모쪼록 완독 성공 기원합니다

페넬로페 2025-10-15 19:42   좋아요 1 | URL
읽기 정말 힘들어요.
그저 완독만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꼭 해 내겠습니다.
응원 감사드려요.

coolcat329 2025-10-16 08: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페넬로페님! 👍 부럽고 멋지세요~

페넬로페 2025-10-16 09:0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꼭 완독해 보겠습니다^^

책읽는나무 2025-10-16 12: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렇게 어려운 책인 줄 모르고 사다놓기만 했어요. 와 읽을 엄두를 못내겠군요.ㅋㅋ
이렇게 리뷰를 쓰시는 페넬로페 님. 저도 존경스럽습니다. 완독 꼭 부탁드립니다.^^

페넬로페 2025-10-16 15:23   좋아요 1 | URL
어려운데 무질 작가가 글은 정말 잘 쓰는 것 같아요.
책나무님!
저랑 같이 읽읍시다^^

책읽는나무 2025-10-16 23:03   좋아요 1 | URL
저는 1,2권만 사다놓았어요.^^
요즘 sf소설에 빠져 있어서 장르가 다른 무질의 소설 세계에 진입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네요. 당장은 아녀도 한 번 생각은 해보겠습니다.
어려운 책이라 미리 후덜덜이네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