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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 없는 남자 1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5
로베르트 무질 지음, 박종대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3월
평점 :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함께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는 20세기 모더니즘 소설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 세 소설은 ‘20세기 소설의 삼위일체’라고도 일컬어진다. 무질은 토마스 만, 프란츠 카프카와 함께 20세기 초 독일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1999년 르 몽드가 선정한 세기의 도서 100권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 소설의 어떤 점이 그렇게 대단한 건지 궁금했다. 그리고 ‘율리시스’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었기 때문에 그 다음엔 당연히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를 읽어야했다.
프루스트와 조이스에 비해 나에게 생소했던 작가인 무질의 이 소설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마음을 다잡아 시작했지만 읽기 어려움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책장을 넘기기 어려운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일단 작가가 쓴 문장의 장황함이 큰 역할을 했다. 무질의 장황함은 프루스트, 발자크,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의 장황함과는 많이 달랐다.
무질의 문장에는 동시에 상대적인 것이 같이 들어있어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작가가 말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 한 번에 알 수 없어 모호하고 맥락을 이해하고 연결시키기 어렵다. 간결한 문장을 선호하는 작가 헤밍웨이였다면 50페이지에 족했을 내용을 무질은 500페이지가 넘는 문장으로 늘어뜨린다. 하나의 사건과 주목해야 할 간단한 에피소드도 무질은 여러 페이지에 걸쳐 그것을 설명한다. 비유를 들고, 여러 단어로 부연 설명하며 거기에 성찰과 사유를 들이밀며 독자를 고통에 빠뜨린다. 이 소설의 번역자는 원문이 워낙 어렵고 독특해 그대로 살리기보다 어떻게든 독자가 읽을 수는 있게끔 번역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 소설 읽기는 무척 난해하다. 다음 문장을 읽으면 그 전의 글은 휘발되어 버릴 정도다.
로베르트 무질은 군사중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대학원에서는 철학을 전공하고 그 뒤 문학으로 진로를 바꾸어 작가가 되었다. 이러한 무질의 이력은 ‘특성 없는 남자’의 주인공 울리히와 소설의 내용에 많이 반영되어 있다. 작가가 지나온 길과 비슷하게 이 소설에는 과학적인 요소와 철학적인 것이 섞여 있으며 그것을 문학으로 나타내고자 하는 작가의 치열한 20년간의 고민이 담겨있다. 무질은 사유 소설(사건은 별로 없고 성찰과 사유가 주를 이루는 소설-제 3권, p.602)의 형식으로 인간과 세계를 실험과 추상화 작업으로 서술한다.
이 소설은 1913년 8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어느 아름다운 여름날로 시작된다. 제1차 세계대전 전 해이다. 여기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카카니엔‘ 이라고 불린다. 오스트리아 황국인 ’kaiserlich und kὂnigich’의 약자인 k.u.k를 의미한다. 공적으로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었지만, 사람들은 그냥 오스트리아로 말했기 때문이다. 제국의 수도이자 황궁이 자리 잡은 빈이 공간적 배경이다. 오랫동안 명성을 누렸던 왕가인 합스부르크가가 거의 몰락 직전에 있는 상태다. 자본주의와 과학의 발달, 진보는 어느 누구도 꺾을 수 없을 정도로 대세로 자리 잡았다.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의 패배로 오스트리아는 독일에 밀리고, 점점 독일의 영향이 제국에 스며들고 있었다. 다민족 국가의 한계로 여러 민족의 반발에 직면했고, 결국 이것은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다.
스위스 아르가우 주의 합스부르크 성에서 출발한 합스부르크 가문은 전략적인 결혼과 영리한 외교술을 통해 세력을 넓혀갔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오스트리아 공작령을 획득하여 점차 주변 영토를 통합해 나중에 거대한 다민족 제국을 건설했다. 14세기에 프리드리히 3세와 레오폴트 3세 집권 시기 빈이 중요한 문화 중심지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알브레히트 2세 시대에 신성로마제국 황제 자리와 보헤미아와 헝가리의 왕위도 계승하게 되어 중부유럽 지배자로 부상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다. 그의 통치시기에 빈은 화려한 문화예술이 꽃피운 시기였다. 그는 새벽부터 밤까지 국정에 매진하는 성실한 군주였으며, 이러한 그의 근면성은 제국 관료제의 모범이 되었다. 프란츠 요제프 시대의 오스트리아는 산업혁명의 물결을 타고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었다. 그의 통치기는 제국의 마지막 황금기였지만, 동시에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 시기이기도 했다.
프란츠 요제프 1세의 개인적 삶은 불행했다. 부인 엘리자베트가 무정부주의자의 암살로 목숨을 잃었고, 외아들 루돌프는 마이어링 사건(유부남인 루돌프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비관해 일으킨 동반자살 사건)으로 젊은 나이에 죽었다. 후계자로 지목된 조카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사라예보에서 암살되었다.
오스트리아 제국이 이탈리아 통일전쟁과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연이어 패배하면서 제국 내 여러 민족의 반발이 일어났다. 오스트리아는 헝가리와 오랜 협상 끝에 아우스글라이히 협약을 체결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국가체제를 탄생시켰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11개의 주요민족이 공존했다.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는 두 개의 독립된 정치체제로 재편성되어 각자 독자적인 의회와 행정부를 가지게 되었다. 헝가리의 자율성은 제국 내 다른 소수민족들의 불만을 키우는 결과를 가져왔다. 크로아티아, 슬로바키아, 루마니아계 주민들이 강한 반발을 했다. 이중제국 체재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산업화로 체코의 민족의식도 급속히 성장하였다. 보헤미아와 모라비아에서는 독일계와 체코계 주민들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20세기 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표면적으로는 강대국이었지만 내부적으로는 다양한 민족들 간의 갈등이 끊임없이 표출되는 상태였다. 이들 다양한 민족은 각자의 정체성과 자치권을 요구했다. 프란츠 요제프 1세는 다양한 정책을 시도했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제국의 균열은 심해져 갔다. 독일, 프랑스, 영국, 러시아 등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유럽은 전쟁의 기운이 감돌았다.
이러한 시점에서 제국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를 방문했다. 페르디난트는 제국의 개혁을 주장하는 온건파 인물이었는데, 이는 제국 내 보수파와 헝가리 귀족의 반발에 부딪혔고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다. 보스니아 청년단체 ‘젊은 보스니아’의 회원이었던 가브릴로 프린치프는 사라예보를 방문한 황태자 부부를 저격했고, 이 사건은 제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었다.
제국은 세르비아에 강경한 태도를 보였고,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다. 러시아의 세르비아 지원, 독일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지원, 프랑스의 러시아 지원이라는 동맹 체제가 연쇄적으로 작동하면서, 순식간에 유럽 전체의 전쟁이 되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제국의 경제는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제국의 내부는 붕괴되기 시작했다. 전쟁 후반기에 각 민족들은 독립을 위해 움직였고, 제국이 전쟁에 패배하면서 완전한 해체되었고, 여러 개의 독립국가들이 들어섰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역사에 대한 내용은 다음의 책에서 발췌했습니다.
전자책 『인간의 역사와 문명-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중부유럽 지배』,
이진호, 루미너리북스, 2025년 1월
이러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1913년 전후의 상황은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 꼭 먼저 알아야 할 내용이다. 이 소설 1권의 핵심적 내용은 1918년 독일이 빌헬름 2세 황제의 치세 30주년을 기념해 큰 행사를 여는 것에 대해, 공교롭게도 같은 해에 있는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즉위 70주년을 맞아 오스트리아에서도 성대하고도 뜻깊게 기념하자는 것이다. ‘삼십 주년에 불과한 독일 즉위식과 비교해서 축복과 비통함의 역사가 함께한 황제의 칠십 주년의 장대한 무개를 부각해야(p.131)’한다는 것이다.
황제의 즉위 칠십 주년을 계기로 다시 한 번 위대한 오스트리아의 영광을 되찾고자하는 ‘애국운동준비위원회’가 결성되고 거기에 주인공 울리히가 참여하는 것이 이 소설의 큰 축을 이룬다. 이 ‘애국대운동’, 다른 말로 독일과 관련되어 ‘평행운동’이라고도 불리는 이 거대한 사업에 울리히와 함께 여러 인물이 얽힌다.
‘특성 없는 남자’에서 특성은 무엇일까? 왜 울리히는 스스로 자신을 ‘특성 없는 남자’라고 선언하는가? 얼마 전 외국에서 돌아온, 지금은 수학자인 특성 없는 남자인 울리히는 32세이다. 그는 출세 지향적이고 ‘조화로운 공존과 일반적 원칙에 따르는 인간(p.21)’인 69세의 자신의 아버지와는 다른 사람이다. 특성 없는 남자는 반골적이며, 남들과 생각이 다르고 남들의 이상을 경멸한다. 몽상가이기도 하고, 허무적이며 허영기도 조금 가지고 있다.
울리히는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외부에서 주어진 특화된 특성을 거부한다. 보통의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현실감각이라면 울리히는 ‘가능성감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능성감각’은 ‘현실과 똑같이 존재할 수도 있는 것을 생각해내고,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 것보다 더 중히 여기는 능력’이다(p.22) 무척 섬세한 그물망 즉 안개, 몽환, 가정법의 그물망 속에서 살아가고 현실을 기피하는 대신 과제이자 창작영역으로 다루는 의도적 유토피아주의 같은 것이다.
[특성을 가진다는 것은 그것의 실재로 인한 모종의 기쁨을 전제로 하기에,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조차 현실감각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를 특성 없는 남자라고 여기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p.25]
울리히의 어릴 적 친구인 발터는 특성 없는 남자인 울리히를 ‘아무것도 아닌, 별 것도 아닌, 현대가 만들어 낸 인간 유형이며, 그만의 고유한 내용이 없는 사람’이라고 정의 내린다. 울리히는 모든 것에 뛰어나지만, 그것들 개개의 특성을 지니는 것을 거부한다. 하지만 울리히가 오늘날 모든 현상에 담긴 해체된 본질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인 것을 알기에 발터는 울리히를 질투한다.
이 소설을 이끄는 또 하나의 인물은 매춘부를 잔인하게 살인한 서른 네 살의 목수 ‘모스부르거’이다. 울리히는 겉으로 드러나고,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모스부르거의 재판을 비판하며 모스부르거의 본질을 들여다보기를 원한다. 이 사건에 존재하는 양면의 모습들을 보고자 한다.
『특성 없는 남자』 1부는 특성 없는 남자 울리히와 그의 사상, 시간적, 공간적 소설의 배경이 되는 것을 서술했고, 2부에서는 구체적인 사건이 진행되고 여러 다른 인물이 등장한다. 하지만 사건보다는 계속되는 작가 무질의 ‘사유’가 주된 내용이다. 무질의 사유는 독특하고 깊이 있으며, 모든 문장에 들어있는 비유 또한 뛰어나다. 다만 문장 하나하나에 집중하다 보면 전체적 맥락과 흐름을 이해하고 따라가기 힘들다. 나무만 보고 숲을 잘 보지 못하는 것 같다. 별다른 사건도 없어 리뷰 쓰기가 무척 어렵다. 아직 1000페이지 넘게 남아있는 무질의 문장이 두렵지만, 이왕 시작했으니 끝장을 봐야겠다.
[‘내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울리히는 씁쓰레하게 생각했다. ‘혹시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용감한 인간이 아닐까? 내면의 자유를 위해 외부 법칙을 거의 인정하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인간이 아닐까? 하지만 이런 내적 자유의 본질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 있지 않을까? 그것은 곧 모든 인간적 상황에서 자신이 왜 그 상황에 묶일 필요가 없는지는 알지만, 정작 무엇에 묶이고 싶은지는 모르는 것이 아닐까? 그를 사로잡은 이 독특하고 작은 감정의 물결이 다시 해체되는 불행한 순간에는 그도 자기 자신에게 모든 사물에서 두 측면을 발견하는 능력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지 모른다. 그 능력은 거의 모든 동시대인들의 두드러진 특징이자, 울리히 세대의 속성을 형성하거나 그 세대의 운명이기도 한 도덕적 양가감정이다. -p.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