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졸라의 ‘루공 마카르 총서‘의 기원작~~

루공가와 마카르가가
어떻게 연결되고 뻗어갈지 흥미롭고 기대된다.


여전히 묘석 위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던 청년은 달빛이 그의 가슴에서 다리까지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그는 보통 키에 살짝 다부진체격이었다. 지나치게 근육이 발달한 팔 끝, 노동자의 손은 노역으로 일찌감치 단련돼 탄탄함을 자랑했다. 끈 달린 커다란 구두를 신은 그의 발 역시 단단해 보였고 발끝은 네모났다. 관절과 손발, 둔중한 손놀림으로 미루어볼 때 그는 민중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고개를 뒤로 젖히는 모습과 생각에 잠긴 듯한눈빛과 그의 내면에서는 그의 몸을 숙이게 하는 육체노동의 가혹함에 대한은밀한 반항심이 엿보였다. 그는 분명 그가 속한 부류와 계층의 무게 깊은 곳에 숨겨진 지적 성향, 온몸 가득히 깃든 다감하고 세련된 정신을 지닌 이들 중하나였다. 그는 자신을 가두고 있는 두꺼운 껍질을 뚫고 나와 한껏 빛날 수 없음에 고통받았다. 따라서 강건한 듯한 외양에도 그는 소심하고 불안해 보였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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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살아야 할 삶에 대하여
고명환 지음 / 라곰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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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읽는 독서동아리에 참여하고 있어 기대하며 읽었지만, 고전 근처에도 못간 느낌이 든다. 이 책에서 중요하다고 말한 ‘직관’은 정작 찾아볼 수 없고, 무수한 자기 계발서를 답습한 개념만 있다. 사람들이 이 책만 읽고 역시나 고전은 읽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다. 그냥 바로 고전을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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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5-01-28 2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희선 2025-01-29 0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자 이름 보고 예전에 텔레비전 방송에서 본 사람이 맞나 했는데, 맞네요 어떤 책이든 자신이 읽어야 더 낫겠습니다 책을 읽고 싶게 하는 글도 있겠지만...

페넬로페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희선

페넬로페 2025-01-29 12:29   좋아요 0 | URL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서인지 요즘 TV에 많이 나오더라고요.
이 책을 읽은 다른 분들의 반응은 좋을 수도 있겠지요.
그저 저의 느낌입니다.

희선님께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요^^

cyrus 2025-01-29 10: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별점을 적게 준 페넬로페님의 리뷰는 오늘 처음 봅니다. ^^

페넬로페 2025-01-29 12:31   좋아요 0 | URL
책 읽고 감상문 하나 쓰기도 힘든데, 책을 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 알기에 되도록이면 별점을 잘 주는 편인데~~
이런 종류의 책은 어쩐지 마음에 안 듭니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 - 제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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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껴갈 수 없는 역사의 흐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할머니와 아버지 같은 어른의 모습.
그 속에서 불행할 수밖에 없는 동구에게 가늘지만,
길고 질기게 연결된 실처럼 ‘아름다움’이 이어지기를.
잣고, 공그르고, 매듭진 ‘아름다움’이
동구의 마음에 따뜻한 무늬로 펼쳐져 완성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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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22 1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1-22 1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1-25 2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넬로페 2025-01-26 21:43   좋아요 1 | URL
오늘 밤부터 눈이 많이 온다고 하네요. 약간 불편한 명절이 될 듯도 합니다.
서니데이님, 긴 명절 연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지내시길 바래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서재 프로필의 사진처럼 좋은 풍경에서 좋은 책 많이 읽고 싶어요~~
 














페르시아 전쟁 중인 BC 485년경 태어난 헤로도토스는 역사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그는 많은 곳을 여행하며 직접 체험하고 자료를 모아 역사를 집필했다. 중국 사마천의 방법과 비슷하다. ‘역사를 읽으며 든 기시감의 출처는 사마천의 사기였다. 헤로도토스는 헬라스(그리스연합)인과 비헬라스인이 전쟁을 하게 된 원인을 찾고, 그것이 망각되는 것을 막고자 역사를 집필했다고 서언에서 밝힌다.

 

헤로도토스는 이 책을 사건 중심의 역사적 사실만을 내용으로 한 것이 아닌 여담 형식으로 지리학적, 인종학적, 민속학적, 역사적 자료들을 다양하게 서술한다. 개별 민족과 나라의 특징에 대해서도 자세히 소개한다. 자주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언급하고 있고, 어떤 부분에서는 더 이상 서술할 수 없는 자신의 한계도 인정한다.

 

역사1권에서 3권은 페르시아가 점점 제국으로 발전해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대의 역사는 결국 침략과 전쟁으로 끊임없이 승리와 패배를 반복하는 과정이다. 페르시아는 뤼디아와 메디아를 정복하고, 아나톨리아 반도의 이오니아 지역의 여러 그리스 민족이 세운 폴리스를 속국으로 만든다. 그 뒤 지금의 이집트인 아이귑토스를 정벌한다. 퀴로스, 캄뷔세스, 다레이오스 왕으로 이어지는 통치의 특징과 그것과 관련된 여러 에피소드도 이 부분에 들어있다.

 

9권으로 구성된 이 책의 각 권은 9명의 무사 여신이 하나씩 배정되어 있다. 1권은 역사를 관장하는 클레이오, 2권은 피리 및 피리가 반주하는 서정시를 관장하는 에우테르페, 3권은 희극 및 목가를 관장하는 탈레이아에게 헌정된다. 고대 시인들이 희곡의 시작을 무사 여신에게 기원하는 형식을 비슷하게 사용한다이 구분은 헤로도토스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 알렉산드리아의 문헌학자인 사모트라케의 아리스타르코스에게서 비롯된 관행으로 보인다(p.6)

 

고전을 읽다보면 지금의 세태와 많이 달라 한 번씩 당황할 때가 있다. 그렇지만 아주 오래된 시대를 지금 시대와 그대로 비교하는 것은 부당한 것이라 보통은 감안하고 읽는다. 아무리 그래도 역사에서 표현된 여성관은 너무 어처구니가 없다. 그 시대 여성은 모두 창녀와 똑같은 존재였다. 헤로도토스가 언급한 여러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다.

 

[칸다올레스는 귀게스에게 자기 아내의 알몸을 보라고 한다.(p.30)

뤼디아 하층민의 딸들은 결혼할 때까지 창녀 노릇을 하여 지참금을 빌며, 남편을 스스로 선택한다. (p.84~85)]

시집갈 나이가 된 처녀들이 소집되어 전부 한곳에 모이면, 남자들이 그들을 둘러선다. 그러면 전령이 처녀들을 한 명씩 일으켜 세워 경매에 붙인다. 경매는 가장 예쁜 처녀부터 시작되는데, 그 처녀가 높은 값에 팔리면 그다음으로 예쁜 처녀를 경매에 붙이곤 했다. 부자들은 젊고 예쁜 여인을 사려고 서로 더 높은 값을 제시했다. 그러나 장가들기를 원하는 하층민은 미색은 따지지 않고, 못생긴 처녀를 아내로 얻고 돈까지 덤으로 받았다. 가장 잘생긴 처녀들을 다 팔고 나면 가장 못생긴 또는 불구인 처녀를 일으켜 세워 경매에 붙이되, 가장 돈은 적게 받고 그 처녀에게 장가들겠다는 남자에게 팔았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잘생긴 처녀들이 못생기고 불구인 처녀들을 시집보내는 셈이었다.(p.145)

왕은 자기 딸을 유곽으로 보내며 모든 남자에게 가리지 않고 몸을 맡기되, 교합하기 전에 반드시 그들이 평생 동안 저지른 짓 가운데 가장 영리하고 가장 사악한 짓을 말하게 하라고 명령했다.(p.231)]

 

가장 슬픈 내용은 이것이다. 어쩌면 아프로디테 여신은 창녀의 역할을 기본으로 수행해야 할 의무를 가진 그 당시 여성들의 상징이 아닐까 한다. 이 책에서 더 중요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도 많지만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여자라는 말의 아이덴티티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바뵐론인의 관습 가운데는 다음과 같은 것이 가장 수치스럽다. 이 나라에 사는 여자라면 누구나 일생에 한 번 아프로디테 신전에 가서 그곳에 앉아 있다가 낯선 남자와 교합해야 한다. 여자가 일단 그곳에 자리잡고 있으면, 낯선 남자 가운데 한 명이 그녀의 무릎에 은화 한 닢을 던진다. 여자는 자신에게 돈을 던진 첫 번째 남자를 따라가야 하며 절대로 거절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일단 교합하고 나면 여신에 대한 의무를 이행한 것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도 된다. 잘 생기고 키가 큰 여자들은 금세 돌아가지만, 못생긴 여자들은 의무를 다할 수 없어 오랫동안 기다려야 한다. 실제로 3,4년을 기다리는 여자도 더러 있다.

- p.146~147]

 

이 책을 읽기 전에 내가 과연 끝까지 잘 읽어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했다. 내용이 방대해 어려울 것이라고 미리 짐작했지만 1권에서 3권까지는 생각보다 쉽게 읽혔다. 구성과 배치가 지루하지 않았고, 헤로도토스의 뛰어난 필력으로 재미있는 부분도 많았다. 힘들지만 그동안 그리스 고전을 계속 읽어온 보람이 있었다.

 

어느 시대든, 어떤 국가에 대한 내용이든, 지금까지 전해져오는 위대한 고전을 읽다보면 매번 느껴지고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 이야기들이 지금의 현실에서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고 언제나 인간은 어리석다는 사실이다. 특히 3권 마지막 부분인 독재자인 캄뷔세스의 행태가 더욱 그렇다. 거기에 마침표를 찍는, 일갈하는 듯한 헤로도토스의 멘트에 소름이 돋는다.

 

역사의 세계관은 인간사는 덧없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에서 헤로도토스는 국가와 인간의 부침을 노래한다. 이 책을 계속 읽으면 과연 역사는 무엇일지, 거기에서 나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아직까지는 정확하게 잘 모르겠지만 무조건 어떤 지혜는 터득할 수 있을 것 같다.

 



 

 

 

 

 

 

 

 

 

 

 

 

발밑의 세계사페르시아 전쟁을 지정학적으로 접근하고 분석한다. 페르시아는 왜 동쪽이 아닌 서쪽으로 진출해 그리스와 충돌했는지를 지리를 통해 말해주고 있다. 막강한 힘을 가진 제국 페르시아는 주변의 국가와 이집트까지 정복하고 다시 세력을 확장시키려고 했다. 페르시아는 파르사에서 메소포타미아를 거쳐 아나톨리아반도의 사르디스까지 서쪽으로 뻗어나갔다. 페르시아의 동부는 자그로스 산맥, 힌두쿠시산맥, 카라코람 산맥이 자리 잡고 있어 험난했고, 용맹하고 무자비한 유목민족인 스키타이 족에 참패해 더 이상 동쪽으로는 진출할 수 없었다.

 

페르시아가 그리스 반도로 진출하기 전부터 에게해에 연한 발칸반도 남부와 이오니아(아나톨리아반도 서부 해안 지대)에 그리스 문명이 발달해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오니아인, 아이올리스인, 도리스인, 아카이아인 등 여러 세력으로 나뉘어있었고 정체성과 풍습, 정치, 경제 체제가 달랐다. 이오니아인의 아테네, 도리스인의 스파르타가 서로 경쟁하고 있었다.

 

BC 499년 이오니아에서 페르시아에 대한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고, 아테네가 도왔지만 페르시아군대에 의해 패하게 된다. 반란을 지원했던 아테네와 에레트리아는 페르시아의 보복이 두려웠고, 그로인해 그리스 본토의 폴리스들은 단합하기 시작한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는 그리스 원정을 하고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북부를 손에 넣는다.

 

페르시아의 침공으로 서로 자존심 대결을 벌이던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손을 잡고 그리스 연합군의 토대를 마련한다. BC 490년 다리우스 1세가 다시 그리스 원정을 도모함으로써 제1차 페르시아전쟁이 시작된다. 낙소스와 에레트리아를 신속하게 함락시키고 아티케 반도 서부의 아테네로 향하지만 험준한 산지로 둘러싸인 분지인 아테네에 쉽게 들어갈 수 없었다. 페르시아 장수인 아르타페르네스와 다티스는 마라톤 평원에 병력을 상륙시켜 주둔시킨다.

 

페르시아 정예부대가 아테네를 습격하기 위해 함선을 타고 마라톤평원을 빠져나가자 아테네의 장군 밀티아데스는 페르시아 군대를 각개 전투로 격파한다. 페르시아군은 마라톤평원의 습지로 밀리고 그곳에서 그들은 전멸한다. 알려진 대로, 마라톤전투 후 한 병사가 아테네로 쉬지 않고 달려가 승전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장렬하게 죽었다는 전설이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1차 페르시아전쟁에서 압도적인 전력 차에도 굴하지 않고 승리를 거둔 아테네를 보며, 전체 그리스 세계는 강력한 외부의 적을 상대로도 독립과 영광을 지켜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기원전 478년 에게해 일대에서 페르시아를 완전히 몰아내고자 아테네를 중심으로 결성된 델로스 동맹, 기원전 337년 아예 페르시아를 원정하고자 마케도니아가 주도한 코린토스 동맹이 등장하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이로써 진정한 그리스가 탄생했다.

- p.40]

 

BC 480년 다리우스 1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는 다시 그리스 원정에 나선다. 아테네의 테미스토클레스 장군은 대규모 함대 건설을 추진한다. 그는 그리스와 페르시아 사이에 에게해가 있다는 지리적 특징을 간과하지 않는다. 테미스토클레스는 다른 폴리스에 지원 요청을 하고 그리스 세계의 연합이란 뜻의 헬라스 동맹(p.42)’을 체결한다.

 

페르시아군은 승리하기 위해 테르모필레를 먼저 장악할 필요가 있었는데 그리스군은 그들을 막기 위해 테르모필레를 지키려고 한다. 1만 명 정도의 그리스군은 엄청난 수의 페르시아 군을 상대해야했다. 길이 워낙 좁은 지형이라 페르시아는 병력을 빨리 이동시키지 못했다. 크세르크세스는 우회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돌아가 그리스군의 배후를 치라고 명한다.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1세는 300명의 근위대를 이끌고 페르시아 군을 상대로 치열하게 싸운다. 하지만 그리스군은 수적으로 상대가 되지 않고 페르시아의 불사부대에 의해 그리스군은 패한다. 크세르크세스의 군대가 2만 명의 목숨을 잃었지만 그리스군 사망자는 2000명 정도였다. 테르모필레전투 역시 유명한 전설로 남아있다.

 

페르시아군은 계속 남하했고 BC 4809월 아테네가 함락되자, 테미스토클레스는 피란민들을 데리고 살라미스 섬으로 피신한다. 그는 함대를 배치하고 크세르크세스는 겨울이 오기 전에 전쟁을 끝내기 위해 그리스 함대를 섬멸하고자 한다. 결전이 다가오자 크세르크세스는 전장을 한눈에 보고자 아이갈레오스 산에 자리를 잡는다. 왕은 그곳에서 페르시아가 승리하는 순간을 직접 보고자 한 것이다.

 

그리스 함대의 계략으로 페르시아 함대는 비좁은 해협에서 불리한 전투를 해야 했다.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 함대는 패배했다. 크세르크세스는 그 광경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 뒤 마르도니우스가 그리스 원정을 했지만, 플라타이아전투에서 패한다.

 

[페르시아전쟁은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충돌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즉 페르시아로 상징되는 오리엔트 세계(동양)의 등장 앞에 지중해 세계(서양)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곧이어 문명의 주도권을 쥔 사건으로 평가할 만하다.

- p.53]


- p.37

 

*위의 내용은 발밑의 세계사23페이지에서 54페이지 중에서 발췌했습니다.

 

이 책은 세계적으로 중요한 역사적 흐름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해 놓았지만, 지리를 바탕으로 한 내용에 비해 지도가 많지 않다는 점이 약간 아쉽다.



 

 

 










현재 남아있는 고대 그리스 비극 33편중 신화가 아닌 역사를 소재로 한 유일한 작품인 아이스퀼로스의 페르시아인들(PERSAI)패배자의 시각으로 본 기원전 480년의 살라미스 해전의 의미(p.196)’를 주제로 한다. 다시 말해 이 희곡은 철저히 승자의 입장에서 쓰여진 극이다. 이 극의 작가인 아이스퀼로스(BC 456년 사망)는 페르시아전쟁 당시 생존해 있었던 사람이다. 시인은 마라톤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에 참전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생생하고 극적으로 글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페르시아의 도시인 수사의 궁전 앞에 있는 다레이오스의 무덤가에서 원로로 구성된 코로스는 먼저 다레이오스의 아들인 크세르크세스 왕이 전쟁에 출정하는 과정을 노래한다. 수많은 군사와 함선을 이끌고 떠났지만 운명과 신의 교묘한 기만에 벗어날 수 없다고 한다. 코로스는 걱정과 한탄을 쏟아낸다.

 

다레이오스의 아내이자 크세르크세스의 노모인 아톳사 역시 아들의 출정에 불안해한다. 불길한 꿈에서 불행한 미래를 예상한다. 소식을 가져 온 사자는 살라미스 해안에서 페르시아 군대가 전멸했다고 전한다. 여러 페르시아 장수들이 죽는 모습과 전투 장면을 상세히 설명하고 다행히 크세르크세스는 살아있다고 말해준다. 압도적 군사적 우위에도 그리스에 패배한 원인을 복수의 정령이나 악령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여긴다. 페르시아의 수치를 통탄한다.

 

아톳사는 죽은 남편에게 헌주를 바치며 그의 혼백을 불러낸다. 무덤에서 일어선 다레이오스는 페르시아군대의 패전 소식을 전해 듣고 아들의 어리석음을 책망하며 선조들이 이룬 제국의 위업을 아들이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비난한다. 지혜롭지 못했던 전략에 대해 지적한다. 이 모두가 교만과 불경한 마음가짐에 대한 응징이라고 한다.

 

[일단 교만의 꽃이 만발하면 미망(迷妄)의 이삭이 패고,

그것이 익으면 눈물겨운 수확이 시작되기 때문이오.

그대들은 이런 과오들과 이에 대한 벌을 보고

아테나이와 헬라스를 기억하고, 차후에는 누구도

자신의 현재 분복(分福)을 업신여기고 남의 것을 탐하다가

자신의 큰 복마저 엎지르지 않게 하시오.

제우스께서는 지나치게 오만불손한 마음의

응징자이자 준엄한 판관이기 때문이오.

p.232]

 

다레이오스의 혼백은 퇴장하고 코로스와 아톳사는 그들의 찬란했던 과거에 대해 회상한다. 소수의 호위병을 데리고 등장한 크세르크세스는 자신의 불운과 죽은 자를 뒤로 한 채 자신이 살아 돌아온 것을 괴로워한다. 그들 모두는 비탄과 곡성으로, 가슴을 치는 만가로 극은 끝맺어진다.

 

이 비극에서 아이스퀼로스는 페르시아가 패배한 원인을 분수를 모르는 오만을 나타내는 히브리스(hybris)(p.440)’를 바탕으로 둔다.

 

[히스리스 못지않게 이 작품의 앞부분에 나오는 아테(Ate) 역시 아이스퀼로스 비극에서 세계 해석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개념이다. 아테는 신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이 인간에게 내리는 운명이며,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처음에는 상냥하게 다가와 마음을 호린 다음 종국에는 파멸로 인도하는 미망이다. 그러므로 아테의 엄습을 받은 인간은 크세르크세스처럼 히브리스에 빠져 분수를 모르고 세계의 질서를 어지럽히다가 결국은 자신의 미망의 제물이 되고 만다.

- p.440~441]

 

그리스인을 관객으로 한 공연에서, 그들에게 공감과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시인 아이스퀼로스는 철저히 패배자의 입장만을 견지한 페르시아인의 회한과 애탄만을 보여준다. 마라톤전투에 같이 참여한 형의 죽음에 대한 개인적 감정이 읽힐 정도다.

 

이런 시인의 일방적 시선에 약간의 불편함을 느꼈지만, 한편으로 모든 것을 떠나 그가 최종적으로 말하고자 한 주제는 의미 있게 다가온다. 살아있는 동안 히브리스아테를 언제나, 매번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2025115>인 오늘처럼 강렬하게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헤로도토스의 역사314장은 신형철 작가가, 아니 발터 벤야민이 소환하지 않았다면 그냥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내용이다. 거의 10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에서 더 중요하고 임팩트 있는 구절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14장의 내용은 단순하다.

 

페르시아의 캄뷔세스가 멤피스성을 함락하고 아이귑토스(지금의 이집트)의 왕인 프삼메니토스를 모욕함으로써 정신력을 시험해 보고자 그의 딸인 공주에게 노예 옷을 입히고 물을 길어오는 것을 보게 한다. 목에 밧줄을 매고 입에 재갈이 물린 자신의 아들이 끌려가는 모습도 보여준다. 그런 광경에 다른 아이귑토스인들은 울고불고 했지만 프삼메니토스는 묵묵히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행렬이 모두 지나가고 왕의 술친구 중 한 명인 중늙은이가 재산을 모두 잃고 알거지가 되어 병사들에게 구걸하는 모습을 본 왕은 울음을 터트리고 괴로워하며 자신의 머리를 친다.(역사, p.278) 가족의 불행을 볼 때는 의연했던 왕이 친구의 불행에 격한 반응을 보인 모습을 의아하게 생각한 캄뷔세스는 왕에게 그 이유를 묻는다. 왕은 자신의 집안의 불행은 울고불고 하기에는 너무 큰 일 이고, 차라리 친구의 고통은 울어줄만하다는 대답을 한다.

 

캄뷔세스 만큼이나 이 사실을 이해 못한 발터 벤야민은 친구들과 토론을 한다. 여러 의견이 나왔고 벤야민 자신은 거대한 고통은 정체되어 있다가 이완의 순간에 터져 나오는 법이다. 이 시종을 본 순간이 바로 그 이완의 순간이었다.(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p.31)’라고 해석한다.

 

똑같은 책을 읽어도 사람마다 책에서 머무는 장소는 다르다. 이 내용에 대한 여러 사람의 해석이 모두 흥미로웠고 탁월했다. 슬픔뿐만 아니라 인간의 다양한 감정은 습관이나 관습대로만 발현되는 것이 아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엉뚱한 곳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그러기에 신형철의 말대로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어디 슬픔뿐이겠는가?

 

신형철 작가가 서술한 이 구절로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제야 시작했다

그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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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5-01-15 2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형철 평론가의 이 글 저도 잘 읽어서 페이퍼해두었지요 필력 뿐만 아니라 잘 정리한 실력에 감탄했었고요

페넬로페 2025-01-15 21:01   좋아요 1 | URL
이 책의 내용도 모두 좋았고 책을 통해 또 많이 배웠어요.
어쨌든 많이 읽어야 겠더라고요.
신형철 작가의 필력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필리아 2025-01-15 2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제 인내력 실험의 독서였어요. 화이팅이요, 페넬로페님~ :)

페넬로페 2025-01-15 21:02   좋아요 0 | URL
응원에 힘 입어 열심히 읽어 보겠습니다.
필리아님, 감사합니다^^

Falstaff 2025-01-15 2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헤로도토스의 결론.
˝역사는 이긴 자의 기억이 아니라, 기록한 자의 기억이다.˝
ㅎㅎㅎ 제 생각이 그렇다는 겁니다.

페넬로페 2025-01-15 21:04   좋아요 1 | URL
지극히 맞는 말씀입니다.
기록한 자의 역사를 읽으며 제 식으로 재해석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많이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그래도 열심히 읽겠습니다^^

희선 2025-01-16 04: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른 책에서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말해서 이 책을 보시게 됐군요 거기에서 본 게 마음에 많이 남았나 봅니다


희선

페넬로페 2025-01-16 08:40   좋아요 0 | URL
언젠가 읽고 싶었는데, 마침 동아리에서 읽게 되어 천천히 읽어가고 있습니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워낙 임팩트가 있었어요^^

전야제 2025-01-16 2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반드시 읽어야겠어요. 깜짝 놀랐네요ㅠㅠ
그 시대의 여성이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존재였는지 가늠은 했지만 이렇게 적나라하게 쓰여졌다니!
지금 철학 공부를 해야되서 철학책 부지런히 읽고 있었거든요.
플라톤은 기원전 428년 경에 태어났고, 헤로도토스가 기원전 485년에 태어나서 저술한 책이니, 플라톤의 시대에서도 분명 이런 문화가 이어졌을건데.
플라톤은 철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철학자라고 하고 이데아 어쩌구 저쩌구 찬양하면서 여성, 노예, 하층민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포용하는 사상을 만들어내진 못했으니
플라톤에 대한 반감마저 드는 기분입니다.
하지만 그래서 어쩌면 역사와 철학에 대한 공부가 모두에게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알아야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을 주장해야하는지도 알 수 있게 되니깐요.
무엇에 중점을 두고 읽어야하는지 페넬로페님께서 너무 잘 짚어주셔서, 나머지 소개해주신 책들도 언제고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페넬로페 2025-01-17 13:04   좋아요 1 | URL
전야제님, 철학 공부하고 계시다니 너무 대단하세요.
저는 철학이 정말 어렵더라고요.
내용도 잘 모르겠고, 헷갈리고요.

헤로도토스의 ‘역사‘에는 위의 인용문 말고도 좋고 감동적인 부분이 많은데, 이상하게 이번에는 그 당시 여성의 삶이 눈에 들어 왔어요.
저자도 약간 비판하는 태도를 보였어요. 지금의 잣대로 그때를 보면 안되겠지만,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온 여성의 역할이나 삶이 참 힘들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서니데이 2025-01-18 2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원전에 쓰여진 고서들이 지금도 번역이 되어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참 좋네요.
시간이 지나면 시대별로 달라지는 것들이 많은 만큼, 이전 사람들의 관습이나 문화가 지금과 다른 점을 이해하면서 읽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
페넬로페님, 잘 읽었습니다.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5-01-19 08:55   좋아요 1 | URL
네, 서니데이님말씀처럼 관습과 문화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면서 읽어야 하는데, 인간의 생각과 행동은 지금과 비슷한 게 많다는게 너무 놀라워요.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아요^^

레삭매냐 2025-01-20 0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로마-페르시아 7백년
대결을 다룬 책이 나온 것 같은데...

비슷한 결의 책을 역시나 읽다
말았네요 ㅠㅠ

오키덴트와 오리엔트의 첫 대결
을 기록한 ˝역사˝를 21세기에도
여전히 읽을 수 있다는 게 놀라
울 따름입니다.

저는 도전도 못할 것 같습니다.

페넬로페 2025-01-20 10:36   좋아요 1 | URL
페르시아 전쟁의 의미가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그래서 ‘역사‘가 그만큼 중요하게 평가 되는가 봐요.

저도 처음에는 레삭매냐님처럼 우려했는데 생각보다 읽기 쉽고 각 부족의 문화나 관습도 많이 들어 있어 재미있어요.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수업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다산초당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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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가 뭔가 이상하고 믿기지 않아 책의 처음부분으로 다시 돌아갔다. 여기 실려 있는 아홉 편의 글이 츠바이크가 생애 마지막 2년 동안 쓴 기록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작가 소개에는 분명 그렇게 적혀있었다.

 

알려진 대로 유대인인 슈테판 츠바이크는 나치를 피해 브라질까지 갔었지만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할 사람이 어떻게 이런 희망적이고도 따뜻한 내용의 글을 쓸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경쾌하기까지 하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이 특별한 사람을 세상 끝으로 내몬 집단적이고도 말이 안 되는 폭력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경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하늘을 나는 새에게도 하느님은 먹을 것을 주시니, 하물며 인간인 너는 내일 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구절이 있다. 미래를 걱정하다가도 이런 구절에 힘을 얻기도 하지만 사실 효력은 오래 가지 않는다. 츠바이크의 말마따나 세계의 어느 지역에 살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빵 한 조각, 맥주 한 잔, 잠잘 방 한 칸, 옷 한 벌을 얻으려면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돈은 절대 하늘에서 뚝딱 떨어지지 않는다.

 

걱정 없이 사는 기술에서 성경 구절대로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정말로 교과서적으로 신을 믿는 삶을 사는 안톤은 한국의 홍반장(영화 홍반장’,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의 주인공)같은 사람이다.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서 저런 사람은 가상의 세계에서나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츠바이크가 거주했던 작은 도시에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적절한 때에 나타나 생색내는 일 없이, 문제를 해결해주고 필요한 만큼만 대가를 받는 안톤은 정직하고 욕심 없는 사람이다. 가난하지만 하루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원하고 나머지는 다른 사람에게 준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걱정이 많았던 츠바이크는 안톤이라는 특별한 사람을 만나 세상을 대하는 지혜를 배운다. 그를 통해 자본주의적 속성만이 세상을 굴러가게 하지 않음을 확신한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산타 할아버지에게 강남에 있는 한강뷰의 아파트를 받고 싶다는 초등학생의 대답이 현실과 세태를 반영해 씁쓸하게 느껴지지만 그 학생을 무조건 비판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세상은 그것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톤을 통해 그 초등학생에게 말해주고 싶다.

 

 

1923년 독일-오스트리아 통화인플레이션(3년이나 계속되었다.)으로 물가는 엄청나게 올랐고, 돈의 가치는 형편없이 떨어졌다. 츠바이크는 1년간 작업한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고 인세를 받았지만 인플레이션으로 그 금액은 원고를 보낼 때 썼던 우편요금보다 가치가 적게 되었다. 전쟁을 치르고 그 후로 돈의 가치가 급격히 떨어져 분명 사람들이 살아가기 힘들었지만 오히려 삶의 연속성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의 태도는 강했다고 츠바이크는 말한다.

 

힘들지만 일상을 유지하려는 집중을 했고, 돈의 가치가 떨어질수록 삶의 오랜 가치가 더 중요해졌다고 했다. 29개월 동안 계속된 독일의 레닌그라드 봉쇄시기에 레닌그라드 시민들이 도서관에 모여 책을 열심히 읽었다고 했을 때, 인간의 위대함과 숭고함을 느꼈지만, 그것은 특수성속에서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츠바이크는 나에게 돈이란에서 그런 나의 생각을 전환시킬 수 있게 도와준다. ‘돈을 믿지 못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여전히 신뢰할 수 있는 것들의 진수를 깨닫는다는 말의 진심에 공감하게 되었다.

 

[그 후로 내가 돈을 무시했다고 말하면 거짓말일 터다. 돈이 줄 수 있는 즐거움과 자극을 나는 절대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모든 방문객에게 하듯이, 나는 돈에도 모든 문을 활짝 열어둔다. 하지만 돈은 방문객 그 이상은 아니다. 나는 돈의 주인이 아니고, 돈이 내 삶의 지배자가 되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날의 경험을 통해 나는 지울 수 없는 교훈을 배웠다. 우리의 진정한 안전은 가진 재산에 있지 않고, 우리가 누구고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달렸다.

- ‘나에게 돈이란’, 중에서]

 

 

루이 16세가 단두대에서 처형되는 날, 그곳(콩코르드 광장)에서 가까운 센강에서는 수많은 낚시꾼들이 보통 때와 같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군중의 환호와 왕의 목이 바구니 안으로 굴러들어가는 역사적 순간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물에 떠 있는 찌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 일화에 대해 츠바이크는 처음엔 믿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는 이 극적인 날에 낚시를 하고 있던 사람들을 경멸했다. 그 뒤 츠바이크 역시 파란만장한 역사적 흐름을 몸으로 체험하고서야 그들의 일상을 인정하고 이해하게 된다.

 

비극이 계속될수록, ‘역사적 사건이 벌어지는 현장에 있을수록 사람들은 그 자체를 잊으려고 애쓴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실에 대한 공포와 괴로움에 공감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닌, 평범한 삶에 대한 인간적 의지를 실현하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소망인 것이다. 고통과 참담함에 대해 너무 몰두하다 보면 인간은 피곤해지고 그것을 감당할 여력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난국의 시대에 일상에 충실한 사람을 너무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무너져가는 세계의 폐허를 계속 노려보는 대신 더 나은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라는 것이다.

 

202412, 대한민국에서 도저히 상상하지도 못한 엄청난 정치적 사건이 일어났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절대 사용되지 않을 허구의 단어라고 여긴 계엄이라는 말이 선포되었다. 몇 시간 만에 그것은 철회되었지만 충격적이었다. 그 말은 나라를 완전 두 쪽으로 나누었고, TV 뉴스를 여전히 장식하고 있으며 해결된 일은 아직까지 하나도 없다. 기함한 국민은 아직 안정되지 않은 채 일상을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다.

 

이 와중에 읽은 센강의 낚시꾼은 지금의 상황과 절묘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고 매일, 매시간 역사적 사실에 대해 주의를 기울일 수 없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츠바이크가 말한 이 내용은 많은 상징을 가지고 있고 의미가 깊다. 다만 일상을 중요하게 여기는 삶을 살기 위해 역사의 현장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폐허를 등지고는 새로운 것을 건설할 수 없다. 그것은 다음 세대에 더 많은 문제를 안겨주는 것이다. 피곤하고 지치더라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위해 집중해야 한다. 이 글의 제목처럼 어두울 때 보이는 것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거대한 침묵, 이 어두운 시절에, 하르트로트와 히틀러에서도 지금의 우리 상황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나치의 모든 죄악과 폭력에 의해 강요된 침묵, 자유의 억압, 굴욕, 소설의 이야기들이 현실에 적용되는 사례들을 언급한다. 츠바이크가 조국에 대해 실망하고 억지로 그곳을 떠났지만 자신의 모국어인 독일어와는 갈라설 수 없다는 사실에 숙연해진다.

 

[그러나 작가는 조국을 떠날 수는 있어도, 창작하고 생각하는 데 사용하는 언어와는 갈라설 수 없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 독일어로 나치의 자기 신격화에 맞서 줄곧 싸워왔고, 바로 이 독일어야말로 세계를 파괴하고 인간 존엄을 시궁창에 던져버리는 범죄적 망상에 맞서 싸우는 데 쓸 수 있는,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무기입니다.

- ‘이 어두운 시절에중에서]

 

 

이 책에서 나에게 가장 의미 있었던 내용은 필요한 건 오직 용기뿐이었다. 빈에서 츠바이크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모든 학생들이 신뢰하고 좋아했던 동급생이 있었다. 어느 날, 대형 금융회사 대표였던 친구의 아버지가 사기범으로 체포되었고, 2주 동안 친구는 학교에 오지 않는다. 3주째에 접어들어 그 친구는 학교에 왔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수업시간에 고개도 들지 않고 쉬는 시간에는 복도 끝으로 가서 창밖만 쳐다보고 있었다. 10대의 아직 어린 그들은 친구가 힘들고 외롭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선뜻 다가가 위로해 줄 수 있는 용기는 없었다. 방법을 몰랐던 것이고 누군가 대신 먼저 해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다음날부터 그 친구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그 뒤 빈을 떠나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어떤 종류든 힘든 일을 겪는 사람을 위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적절한 말을 찾기 어렵고 나의 위로가 그 사람에게 다시 상처가 될 수도 있어 주저하게 된다. 나이가 들어도 이 부분은 여전히 나를 힘들게 한다. 위로뿐만 아니라 사과도 마찬가지다. 타이밍을 맞추지 못해 별 것도 아닌 일에 좋은 사람을 잃는 경우도 많다. 츠바이크는 이 경험을 통해 쉽지 않지만 누군가를 돕고 싶은 첫 번째 충동에 주저 없이 순종하라고 말한다. 무조건 받아들일 것이다.

 


츠바이크가 로댕을 만나 그에게서 받은 영원한 교훈은 집중하고 몰입하는 것이야말로 어떤 일을 완수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었다. 평범하고 이미 아는 것임에도 새로웠다.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를 읽으며 다양한 감정이 들었고, 소설이 아닌 에세이가 줄 수 있는 직접적인 힘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가슴에 새기고 전환시켜 바로 실천해야 하는, 나에게 주는 화두도 있었다. 무엇보다 츠바이크의 글은 항상 한 가지로 귀결된다. 그가 글을 너무 잘 쓴다는 사실이다. 특히 이 책은 짧은 에세이를 수록한 것이라 더 그랬다. 그의 글 한 편 한 편이 완벽해서 내가 쓰는 이 책에 대한 감상문은 사족에 불과하다

츠바이크의 글은 그저 읽기만 하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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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야제 2025-01-13 2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께서 쓰신 이 글이 저에게는 ‘안톤‘같은 존재입니다.
더 잘하려고 애쓸수록 무너지는 기분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던 요즘이었어요.
봉쇄시기에서도 도서관에 모여 책을 읽었다는 레닌그라드 시민들의 이야기에 감동받았습니다.
일상을 유지하고 삶을 이어나가는 힘은 누구에게든 그렇듯이 말로는 쉽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것이니깐요.
하지만 말씀해주신 삶의 오랜 가치, 신뢰할 수 있는 것들의 진수를 깨닫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이 글을 읽으면서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돈, 재산, 권력 등등 언제든 세워지고 무너지는 것들 앞에서, 나 자신은 어떠한 사람인지 돌아보고 어떠한 가치를 지켜나갈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페넬로페 2025-01-14 09:44   좋아요 1 | URL
일상이 정말 소중한데 우리를 둘러 싼 것들에 의해 쉽게 무너지고, 집중력도 잃게 되는 것 같아요. 마음으로는 힘을 내자고 해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경우도 많고 실천하기도 어려워요.ㅠㅠ
에세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단숨에 읽었어요. 지금 세태를 반영하는 듯한 좋은 글들이 많았어요. 근데 책 내용이 짧아 조금 아쉬웠어요.
제 생각에는 전야제님께서 안톤같은 존재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요^^

희선 2025-01-14 0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군가를 위로할 말은 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어릴 때는 더 그러지 않을까 싶어요 무슨 말이든 별로 위로는 안 되고... 안 하는 게 나을지 뭔가 한마디라도 하는 게 좋을지... 밥은 잘 먹고 잘 자느냐고 하는 말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모르겠네요

어둡다고 안 보려고 하기보다 뭔가 보이는 걸 보려고 하는 게 좋겠습니다 이렇게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못할 것 같기도 하네요


희선

페넬로페 2025-01-14 09:49   좋아요 0 | URL
위로하는 말, 정말 쉽지 않죠. 상황에 따라 적절한 문장을 찾기도 힘들고요. 츠바이크가 말한 ‘첫 번째 충동에 주저 없이 순종‘하란 것이 의미있게 다가왔어요.

어두울 때, 분명 보이는 것이 있고, 그것을 보려고 해야 삶이 더 풍요로워지는 것은 진리인 것 같습니다.
희선님, 한 주가 시작되었어요.
건강하고 행복한 한 주, 보내시길 바래요^^

새파랑 2025-01-14 08: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츠바이크는 소설도 좋은데 에세이도 좋군요. 역시 글잘쓰는 사람~!!

저도 읽어보고 싶습니다~!!

페넬로페 2025-01-14 09:51   좋아요 1 | URL
역시 츠바이크는 글을 잘 쓰는 작가임을 확인했습니다. 이 글들이 짧은 에세이라 더 임팩트가 있더라고요.

새파랑님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시길요^^

그레이스 2025-01-14 2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가 마지막 인사하던 글귀 넘 인상적이었어요.

페넬로페 2025-01-15 21:07   좋아요 0 | URL
네, 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