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고 - 대항해 시대와 우연의 역사 츠바이크 선집 (이화북스) 4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육혜원 옮김 / 이화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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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시절에 내가 받은 주입식 교육은 거의 모든 것을 달달 외우기만 하면 좋은 성적을 받게 해주는 시스템이었다. 암기가 정석이기에 영어 숙제는 16절지 연습장 앞뒤로 빽빽하게 검정색 볼펜으로 영어단어를 쓰면서 외운 흔적을 제출하는 것이었다. 볼펜 두 자루를 쥐고, 동시에 같은 단어가 두 번 써지는 효과를 보며 숙제시간을 절약하는 친구도 있었다.

 

어떤 역사 수업엔 그 날 날짜와 똑같은 번호를 가진 학생이 지목되어 그것을 시작으로 옆으로, 뒤로, 때로는 사선으로 줄줄이 한 명씩 일어나 전 시간에 배운 내용에 대한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을 해야만 했다. 정답을 말하면 앉을 수 있었고, 대답하지 못하면 그대로 서 있어야 했다. 선생님이 준비한 모든 질문이 끝나고 서 있는 학생은 선생님이 힘차게 내리찍는 압력으로 등짝을 한 대씩 맞아야 했다. 역사수업이 시작되기 전에는 공포가 엄습했지만 그 덕분에 의무적으로 복습을 열심히 할 계기가 되어 주었다.

 

암기위주의 학습이나 주입식 교육의 폐해가 언급되지만,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세상에 대한 상식이나 지식은 거의 그 시절의 암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 그것이 마냥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지금도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을 만날 때마다 그 시절에 배운 것이 삶의 밑거름이 되어준다고 말하곤 한다.

 

그 시절의 내가 가졌던 싱싱한 뇌는 지금과 다르게 움직임이 활발해 암기는 별로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때 각인된 암기의 결과로 콜럼버스의 1492년과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1592년의 임진왜란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워낙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라 14921592를 연결해 외웠었다. 콜럼버스가 인도라고 생각한 그곳은 세상 사람들이 네 번째로 인식한 대륙이었고, ‘아메리고 베스푸치라는 사람의 이름을 따 아메리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 이름도 당연히 역사 시간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콜럼버스가 발견한 신대륙은 어떻게 콜럼버스가 아닌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름을 따 아메리카라고 명명되었을까? 슈테판 츠바이크의 아메리고를 읽기 전에는 한 번도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아메리카 대륙이 콜럼버스보다 베스푸치와 더 많은 연관이 있어서일 것이라고 단정해버렸던 것 같다.

 

특정한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이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를 거쳐 가면, 그 모든 것은 흥미롭게 변한다. 군더더기 없이 정돈된 문장으로 츠바이크는 독자를 역사의 현장으로 끌어들인다. 이 책에서 츠바이크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작가의 지성과 탁월한 문장으로 여러 역사적 사실을 넘나들며 아메리고 베스푸치에 관한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방대하지만 짧게 압축된 츠바이크의 서술은 아메리고 베스푸치라는 한 특정한 인물에서 시작해 그러므로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한다.

 

중세의 어둠에서 깨어나 각성하기 시작한 1300년 정도부터 사람들은 바깥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서 돌아오고, ‘바스코 다 가마가 희망봉을 돌아 유럽에서 인도까지의 직항로를 발견한다. ‘콜럼버스는 산타마리아호를 타고 바스코 다 가마가 갔던 길과는 다른, 반대방향인 대서양을 횡단해 과나하니 섬에 상륙한다. 콜럼버스가 발견한 곳은 지금의 아메리카 대륙이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발견한 대륙이 인도라고 믿었다. 그 후로 거의 10년 동안 엄청나게 많은 새로운 장소가 발견되어 그야말로 대항해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p.51, 아메리고 베스푸치, 자크 라이히, 미국 의회 도서관 소장

-p.101, 아메리고 베스푸치 조각상,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아메리고 베스푸치>1451년 피렌체에서 출생했다. 초기 르네상스 인문주의 교육과 과학적 지식을 조금 배우고 메디치 가문이 운영하는 은행에서 상인으로 일했다. 그는 스페인으로 파견되었고, 선박회사에서 일했지만 회사가 없어지는 바람에 가난하게 살아야 했다. 다른 회사에서 말단 직원으로 20년 정도 일했던 베스푸치는 1499, ‘알론소 데 오헤다폰세카 추기경의 명령으로 원정대를 꾸렸을 때 항해에 참가한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다른 항해사에 비해 지식이 많았던 베스푸치는 천문학자의 자격으로 탐험에 동행했을 수도 있었다. 그 후 브라질 지역으로 가는 오헤다의 원정에도 참여한다. 베스푸치는 항해사 또는 지도제작자로서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원정에서 베스푸치는 원하던 재산도, 명예도 얻지 못했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그곳이 인도가 아닌 문두스 노부스즉 '신대륙'이란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었다. 콜럼버스도 하지 못한 대단한 업적이었다.

 

베스푸치는 항해에서 돌아올 때마다 메디치가의 로렌초에게 항해에서 본 것을 쓴 편지를 보냈다. 로렌초에게 보낸 세 번째 편지가 라틴어로 번역되어 신세계라는 제목의 팸플릿으로 제작되어 유럽 전역으로 퍼지게 되었다. 이 편지 형식의 보고서가 유명해진 것은 신세계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그들이 발견한 대륙이 인도가 아니라 새로운 곳이었고 또한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긴 적도를 넘어선 항해로 이루어졌기에 더 대단한 것이었다.

 

그 뒤 베스푸치의 편지는 인쇄업자와 출판업자들에 의해 심하게 부풀어지고 비약된 내용의 책으로 출판되어 자신도 모르게 베스푸치는 신대륙을 발견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한 술 더 떠 발트제뮐러라는 사람은 신대륙을 그 땅을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따 아메리카라고 부르자고 제안한다. 이때부터 그 땅은 영원히 아메리카라고 불리게 되었다.

 

[오늘날 지구의 세 부분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는 이미 완전히 탐구되었고,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네 번째 대륙을 발견하였다. 유럽과 아시아도 여자 이름이기 때문에 내가 보기에 이 부분을 총명한 사람 아메리고가 발견한 아메리고의 땅, 아메리카라고 부른다고 해서 반대할 이유는 없다. -p.89]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잘못한 것은 사실 별로 없다. 그저 사람들이 가짜뉴스를 믿듯 그렇게 믿어버린 것이다. 그 후 400년 동안 이 사실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으며 베스푸치는 중상모략가, 위조자, 사기꾼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놀라운 사실은 콜럼버스와 베스푸치가 개인적 친분이 있었다는 것이다. 논란의 대상이 된 그들은 죽기 전, 정작 아무런 명예도 주목도 받지 못했다.

 

츠바이크는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름을 따 신대륙이 아메리카라고 명명된 사실을 우연과 오류, 오해, 착오에 의해 유발된 것이라고 한다. 작은 진실하나에 수많은 곁가지가 붙은 셈이다. 역사는 보통 이런 것이 아닐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 모두가 진실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우연과 오류는 역사 현장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단어일 수 있다.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아메리카를 발견하지 않았고, 최초로 그 대륙에 발을 디딘 사람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가 사용한 문두스 노부스라는 단어, 신세계라는 표현만으로도 대단한 역사적 업적을 남겼다. 하지만 이 신세계는 파괴와 약탈, 죽음, 고통의 다른 말과도 같다. 바스코 다 가마와 콜럼버스는 많은 원주민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약탈했으며 그것은 사악한 식민지 시대의 시작이었다. 대항해시대로 시작된 그들의 경쟁적 모험은 세계를 쪼개고 양분하는 계기가 되었고, 지금의 글로벌 금융지배의 원천이 되었다. 역사는 언제나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변하며, 그것에는 언제나 여러 개의 의미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카는 자신의 세례명을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 그 이름은 올곧고 용감한 한 남자의 이름이다. 그는 오십이 넘은 나이에도 세 차례에 걸쳐 조그마한 배를 타고, 아직 탐험되지 않은 대양을 건너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그 역시 시대의 모험과 위험 속에 기꺼이 목숨을 걸었던 수백 명의 이름 없는 선원들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어쩌면 민주주의 국가에 잘 어울리는 이름은 왕이나 정복자의 이름이 아니라 이름없이 용감했던, 그런 평범한 사람의 이름일지도 모른다. 이는 서인도라든가 뉴잉글랜드, 뉴스페인 또는 성스러운 십자가의 나라 같은 이름보다 분명히 더 공정한 명명일 것이다.

-p.186]


-p.44, 아메리카에 도착한 콜럼버스, 테오도르 드 브리, 15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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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12 1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츠바이크의 필력은 정말 역사적 사건을 생생하게 되살리죠. 저도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그나저나 수업시간마다 등짝 스매싱을 날리는 역사 선생님이라니 그 참... 그 시절에나 가능했던 이야기겠지요. ㅎㅎ 지금은 없어진 풍경이라 다행입니다. ㅎㅎ

페넬로페 2025-08-12 18:03   좋아요 1 | URL
네, 일단 츠바이크는 흥미를 유발시키는데 읽을수록 이 사람이 아는 것이 많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그 시절에 등짝 스매싱은 그나마 가벼운 것이었어요.
생각하면 참 파란만장했는데, 그래도 즐겁게 학교 다닌 것 같아요. 친구들이 다들 좋았어요. 왕따도 거의 없었고요.

건수하 2025-08-12 2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쩌다 아메리카가 되었는지,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누군지 궁금했는데 글을 읽으니 무척 관심이 갑니다. 주요(?) 인물이 아닌 사람이 대단한 발견을 했고 이름을 대륙에 남기게 되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에요.

츠바이크가 결국 남미에서 세상을 떠났잖아요.. 그가 어느 시기에 이 작품을 썼는지도 궁금해지네요.

페넬로페 2025-08-12 21:51   좋아요 0 | URL
저도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름만 알고 있었는데 이런 큰 사연과 반전이 있는지 몰랐어요.
츠바이크가 베스푸치의 입장이 되어 그를 복권시켜 준 것 같은 느낌도 들었어요.
이 책에서 해설자 후기가 없어 언제 이 글을 썼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츠바이크와 신세계도 인연이 깊은 것 같습니다^^

새파랑 2025-08-13 1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콜럼버스 때문에 콜럼비아라는 나라명이 생긴걸까요? ㅋ 누가 먼저 신대륙을 발견했냐 보다 누가 먼저 신대륙을 인식했냐가 중요했던거 같습니다. 역시 글 잘쓰는 츠바이크~!!

바람돌이 2025-08-13 13:56   좋아요 1 | URL
맞아요. 볼리바르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운동을 주도하면서 콜롬부스의 이름을 따서 대콜롬비아공화국을 만들어요. 이후 대콜롬비아가 분열하면서 지금의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등 6개국으로 분열하고요. 중남미 지역의 독립운동을 주도한게 전부 현지 출신 백인인 크리오요들이니 자신들의 정체성을 콜롬부스에서 찾은듯해요.

새파랑 2025-08-13 14:11   좋아요 1 | URL
아하 그렇군요~!! 아메리고 콜롬부스 모두 아메리카 대륙에 끼친 영향력이 엄청난거 같습니다~!!

페넬로페 2025-08-13 14:18   좋아요 1 | URL
바람돌이님!
설명 감사합니다.
대 콜롬비아공화국이 6개국으로 분열된 거군요.
콜롬비아 나라이름도 결국은 백인 세력이 주도한 거군요^^
콜럼버스가 발견하기 전에도 이미 있던 곳이잖아요^^ㅠㅠ

페넬로페 2025-08-13 14:19   좋아요 1 | URL
네 정말 츠바이크는 이런 종류의 글을 잘 쓰는 것 같아요^^

바람돌이 2025-08-13 14:35   좋아요 1 | URL
콜롬부스가 이 땅을 발견한 이후 백인들의 학살과 천연두같은 전염병 전파에 의해 원주민의 90%가 죽어갔으니 백인들은 이 땅을 온전히 자신들의 땅이라고 생각한거겠죠
 
브뤼셀의 한 가족 제안들 29
샹탈 아케르만 저자, 이혜인 역자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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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탈 아케르만(1955-2015)은 벨기에 출신의 영화감독으로 47년간 40편 이상의 작품을 남겼고, 자전적 소설 두 편이 있다. 작가는 2015년 파리에서 자살했다. 브뤼셀의 한 가족은 작가의 아버지인 야콥 아케르만이 병으로 사망하고, 2년 후 48세인 샹탈(장녀)이 출간한 자전적 소설이다.

 

아마도 이 책이 한국에서 출간되지 않았다면 난 샹탈 아케르만이라는 작가에 대해 끝까지 몰랐을 수도 있었다. 사실 이 작가의 가족에 대해 몰라도 살아가는데 전혀 상관없다. 그럼에도 책 뒤편의 인터뷰, 옮긴이의 글, 작가의 연보를 빼면 65페이지에 불과한 이 소설에 묘하게 빠져들 수 있었던 건 가족이라는 주제가 우리에게 언제나 기시감과 울림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은 마침표가 별로 없이 긴 문장으로 서술되어 있다. 두 장 정도 큰 딸인 샹탈이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엄마를 소개한다. 남편(샹탈의 아버지)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녀(엄마인 나탈리아 아케르만)는 넓은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고 곧 두 번째 수술을 앞두고 있다. 금요일마다 브뤼셀에 사는 친척 모임(유대인)에 가서 뼛속까지 온기를 느낀다.’ 멀리 멕시코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는 둘째딸보다 메닐몽탕(파리)에 사는 싱글인 큰 딸에게 자신의 간병을 조심스레 부탁할 예정이다.

 

곧 그녀는 1인칭 화자가 되어 현재와 과거의 삶에 대해 두서없는 말을 쏟아낸다. 의식의 흐름 같은 이 서술에 명백하거나 확실한 것은 없다. 남편, , 친척들에 대한 그녀의 생각은 모두 양가적이다. 상반된 생각이 동시에 있다. 그것은 당연하다. ‘가족이란 존재는 한없이 가까우면서도 지극히 대하기 어려운 족속들이기도 하다. 그들 나름의, 각자의 삶이 있기 때문에 의지하면서도 자제해야하고, 알고 있는데도 모른 척 해야 한다. ‘순전히 나를 위한 것이었다면(p.39) 안경을 바꿀 필요가 없었을 것이지만, 가족들이 흉해 보인다고 하니 바꾸고, 딸들이 구부정하거나 움츠리고 있는 걸 싫어하기에 애써 어깨를 펴는 것이다.

 

가족에 대한 걱정이 끝이 없기에 그녀는 어떨 때 그냥 생각하지 않으려고도 한다. 한 번 상념에 빠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생각의 나락에 빠지기 때문이다. 특히 홀로코스트를 겪은 유대인인 그들은 말하지 않아도 그 속에 담겨있는 엄청난 트라우마 적 감정들이 있다. 홀로코스트를 겪지 않은 유대인의 후손들은 매번 그것을 헤아려야하기에 또한 힘들 수 있다.

 

이런 역사적 서사 말고도 집집마다 각자의 불행은 차고 넘친다. 누군가 아프고, 정신병이 있는 가족을 돌보느라 지치고, 돈이 부족하고, 뇌졸중이 오고, 치매에 걸리고, 그리고 죽는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은 나탈리아가 남편인 야콥을 회상하고 그의 병수발을 드는 내용이다. 어려운 시기를 함께 지나오고, 힘들게 남편의 병간호를 하지만 나탈리아는 한 번도 야콥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다. 읽으면서 계속 나는 이것을 느꼈다. 사랑, 그리고 숭고하다는 것은 지키려는 자의 인내와 그것으로 인해 저절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인 것이다.

 

샹탈 아케르만은 타자로부터 생각하라는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가르침을 일상에서 자발적으로 실천하고 살았다고(p.77)’한다. 타자로부터란 말처럼 브뤼셀의 한 가족이란 타자들로 우리는 가족에 대해 되돌아보고, 질문하고 상태를 점검할 수 있다. 확실하지 않고 모호한 이 빠진 문장의 나열이 계속될지라도 가족이란 존재는 우리를 뼛속까지 따뜻하게해주는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물론 아니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어쨌든 나는 거기에서 비롯된 존재인 건 확실하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사랑의 전반적 문제가 다른 사람을 위한 건가, 스스로를 위한 건가?’ 중 어느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한다. 사랑이라는 것은 이 둘 중 어느 하나에 무게가 더 실릴 수는 있겠지만 완전히 분리될 수는 없다. 물론 두개가 균형을 이룬다면 좋겠지만 쉽지 않다

어휴, 우리 앞에 놓인 삶의 숙제는 매번 이렇게 힘들다.

 

[그러면 나는 오늘은 그이가 음식을 다 남기지 않고 조금이라도 먹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는데 정말이지 그이가 접시에 음식을 그대로 남기는 건 견딜 수 없었다. 그이는 접시 한편에 음식을 다 밀어 두고는 결국 아무것도 안 먹곤 했다. 이걸 난 정말 견딜 수 없었고, 그이에게 안 먹으면 어떻게 나을 건데, 힘이 있어야지 하고 말했고, 그러면 그이는 먹어 보려고 조금 애를 쓰긴 했지만 못 먹었다. 그러면 나도 먹지 않고 전부 다 버리곤 했다. 남겨 둘 필요가 없었다. 그러면 그이는 식탁에서 일어났는데, 내가 그이를 조금 부축해 줘야 했고 그이는 오른 다리를 끌며 안락의자까지 갔다. 가끔은 가던 중간에 멈춰 서서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바라보고 한쪽으로 비뚤어진 입과 입술을 보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p.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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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2025-08-08 04: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딸의 입장으로 들여다보니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엄마를 위로하는 딸의 마음이 느껴져요. 딸 눈에는 너무나도 잘 보이잖아요. 엄마가 품고 있을 감정이요. (물론, 잘 안다는 이유로 감정을 끄집어내는 걸 엄마는 싫어할 때도 있지만요.) 제가 느낀 감정이 이 책의 내용과 맞는 것인지도 모르고 떠들었네요. :) 읽어봐야 알겠죠? 아, 힘든 마음으로 읽을 것 같아요.

페넬로페 2025-08-08 09:47   좋아요 2 | URL
저는 거의 대부분 엄마의 입장에서 읽었던 것 같아요. 다가올 늙음과 거기에 따라오는 물리적 현상들이 맘에 와 닿았어요.
이 책 읽으시면 세상 어디서든 가죡들의 상황은 비슷하다는 걸 느끼실 수 있을거예요. 거기에 각자 나름 다가오는 포인트가 다를 수 있고요.

가족에 대한 사랑이 가득 차 있어 힘들게 읽히지는 않을 것 같아요. 담담하게 세상을 받아들이는 화자의 태도가 좋았어요^^

희선 2025-08-08 06: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샹탈 아케르만이라는 이름 처음 알았습니다 다른 나라 영화 감독 이름 아는 사람 얼마 되지도 않는군요 샹탈 아케르만 부모님 이야기인 듯도 하네요 부모님이라 해도 조금 떨어져서 보는... 나탈리아가 야콥을 언제나 사랑했다는 걸 잘 보기도 했군요


희선

페넬로페 2025-08-08 09:49   좋아요 0 | URL
네, 아케르만 감독의 영화를 본 적이 앖어 더 그런 것 같아요. 자식이 보는 부모의 모습들은 확실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서로 생각해주는 모습들은 다 똑같은 것 같아요^^

바람돌이 2025-08-08 1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랑과 돌봄, 가족 말은 이토록 간단하지만 결코 공존이 쉽지않은거 같아요. 거기에 경제적 어려움이 끼면 더더욱 어려워지는.... 인간 사이의 관계는 늘 어렵네요

페넬로페 2025-08-08 12:55   좋아요 1 | URL
정말 그런 것 같아요.
가족들과의 관계가 쉽지 않은데, 아무래도 부모 입장이 자식들을 더 많이 배려하는 것 같아요. 세상 모든 부모의 마음이 비슷하다는 걸 절실히 느꼈어요^^

책읽는나무 2025-08-10 1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엄마가 직접 간병을 요구해 왔을 때 샹탈의 복잡 미묘한 감정이 어땠을까? 싶네요.
특히 남편의 간병을 거친 후였다면…
가족 관계라는 건 참 알 수 없는 관계인지라 간병과 돌봄이 참 어려운 일인 것은 분명하나 그 일을 통해 가족간의 유대감과 사랑을 재확인하게 되는 순간들도 참 많아요. 그래서 훗날의 이별이 슬플지언정 그 때의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기억하여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약이 되지 않나. 란 생각이 들곤 합니다.
질병과 고통의 순간을 가족들과 나누는 시간은 정말 어려운 시간들. 순간 순간 들게 되는 양가적 감정들…어떻게 현명하게 해석하고 행동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단 생각이 드네요.
이 책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로군요.^^

페넬로페 2025-08-10 11:40   좋아요 1 | URL
세상 모든 부모가 그렇듯 이 책의 엄마 역시 자식에게 매번 조심스러워해요. 자신의 간병도 그렇게 부탁할 것이고, 아마 큰 딸은 바쁘지만 와 줄 것 같아요. 이 책의 문장도 그렇고 서술 방식도 그냥 보통 사람이 얘기하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마음에 와 닿더라고요. 저와 남편의 미래의 삶이 이 책에서 예상되어 그런 것도 같고, 딸아이에게 최대한 부담을 주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를 항상 생각해서도요.
맞아요. 순간순간 드는 가족에 대한 감정들이 결코 쉽지 않고, 그 누구보다 신중하게 대처해야 하니 남보다 더 어려운 관계같아요.
 

그러나 다음과 같은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어른이라도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릴 것이다. 아메리카는 왜하필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는가? 베스푸치가 아메리카를 발견했기 때문인가? 그러나 베스푸치는 결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사실이 없다.  - P10

혹시 그가 사실상 최초로 대륙 연안에 놓인 섬들이 아닌•본토를 밟았기 때문인가? 그러나 그것도 이유가 되지 않는다. 이 대륙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것은 콜럼버스ChristopherColumbus와 세바스찬 캐벗Sebastian Cabot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혹시 그가 사람들에게 자신이 그 대륙에 처음으로 도착했다고 거짓 주장을 했기 때문인가? 그러나 베스푸치는 법정에 찾아가서 그런 법적 권리를 주장한 사실이 전혀 없다. 아니면 그가 학자이자 지도 제작자로서의명예를 걸고 이 대륙에 자신의 이름을 붙일 것을 제안했기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그는 그러한 말을 한 적이 한 번도없으며, 아마도 평생 동안 이 대륙에 자신의 이름이 붙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던 것 같다. - P11

내가 이 글을 읽은 독자에게 유일하게 바라는 것은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완벽한 지리학적 지식을 모두 잊고, 아메리카의 모양과 형태, 심지어 아메리카의 존재를 일단 완전히 지워버려 달라는 것이다. 그 세기의 어둠을, 그 불확실성을 상상 속에 그려볼 수 있는 사람만이 종래까지 무한한 것으로만 알았던 세계로부터 미지의 대륙의 첫 윤곽이뚜렷이 떠오르기 시작할 때 사람들이 맛보았을 놀라움과열광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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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내리는 비로 습한 기운이 강해 얼음을 첨가해 시원하게 마셔 보았다. 콜드브루 특유의 강한 향에 헤이즐럿향이 겨우 섞인듯해 맛이 조화롭지 못하다. 기네스에 하이네캔을 섞어 마시는 느낌이다. 남은 커피는 뜨겁게 마셔봐야겠다. 어쨌든 더운 여름이라 브루캔이 간편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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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5-07-19 19: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기네스에 하이네켄! 저도 한 번 둘을 섞어 마셔봐야겠습니다!

페넬로페 2025-07-19 20:15   좋아요 1 | URL
이 커피보다 더 맛있습니다
ㅎㅎ

서곡 2025-07-19 2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유 섞어 마셔보시길요 ㅋㅋ 토요일밤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페넬로페 2025-07-19 21:42   좋아요 1 | URL
네, 그럴께요.
비가 끊임없이 내리네요ㅠㅠ
주말 잘 보내시길요^^

페넬로페 2025-07-20 09:24   좋아요 1 | URL
우유에 넣어 마시니 휠씬 좋네요.
향이 조화로워집니다.
감사합니다^^

서곡 2025-07-20 13:57   좋아요 1 | URL
아 다행입니다 ㅎㅎ 사실 저도 알라딘 제품은 아니지만 최근 캔커피를 여러 개 샀거든요 더우니 다 귀찮은데 캔커피가 간편한 장점이 있네요 저는 아주 찬 건 안 좋아해서 실온보관 캔커피에 냉우유 넣으니 온도도 적당하고 괜찮더라고요 일요일 좋은 시간 되시길요!

서니데이 2025-08-02 23:25   좋아요 2 | URL
두분의 댓글을 읽다보니 저도 갑자기 우유 넣은 커피가 생각납니다. 냉장고에 우유와 커피가 있으니 내일은 한번 해봐야겠어요.
더운 날씨입니다. 시원한 주말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5-08-03 09:01   좋아요 2 | URL
제가 라떼를 좋아하는데 커피에 우유를 넣어 먹다 보니 카페에서 마시는 우유거품으로 된 라떼보다 훨씬 깔끔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2025-08-02 2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8-03 0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폭풍의 언덕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1
에밀리 브론테 지음, 황유원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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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전문을 읽지 않아도, 아니 아예 책을 펼친 적이 없어도 내용을 안다고 여겨지는 소설 중, 대표적인 것이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일 것이다. 작가 브론테 자매의 이력이 특별해 소설을 떠나 이미 그들의 삶이 우리에게 흥미를 제공한다. 여러 번 영화로 제작되어 이 소설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기회도 많았다. 그런 이유로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비극적 사랑과 복수로 요약되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이 소설이 읽지 않아도 읽은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제야(드디어) 폭풍의 언덕을 읽었다. 이 소설의 원제가 워더링 하이츠(WURTHERING HEIGHTS)라는 것도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되었다. ‘워더링은 영국 요크셔 지방의 방언으로 폭풍이 휘몰아치면 높은 언덕에 자리한 위치상 그대로 노출되고 마는 속성을 나타낸다. ‘워더링 하이츠는 나중에 히스클리프의 소유가 되는 언쇼가()의 집의 이름이다. ‘폭풍의 언덕이란 제목은 일본어로 번역된 책을 중역하는 과정에서 가져왔는데, 내 개인적 생각으로는 그 제목이 그렇게 잘못된 것은 아닌 것 같다.

 

이 소설은 좁은 면에서 보면 언쇼가의 워더링 하이츠와 린턴가의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가 이름으로만 인식되는 것이 아닌, 문화와 사회적인 면에서 서로 대척되는 관계로 전개된다. 언쇼가는 많은 토지를 소유한 자영농이지만, 린턴가는 소작만 주는 젠트리 계층으로 그 당시 점점 부각되는 중간계급인 부르주아의 속성도 갖추었다. 하지만 주인공인 캐서린과 히스클리프가 요크셔 지방의 거칠고 변화무쌍한 황야에서 서로 닮은꼴로 자유를 추구해야 살아있음을 느끼는 존재론적 관점으로 접근할 때, ‘폭풍의 언덕이란 제목은 그리 낯설지 않다.

 

폭풍의 언덕은 히스클리프 소유의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를 임대해 낯선 고장에 들어온 록우드와 그 집의 가정부인 넬리 딘이 서술하는 액자 식 구성의 소설이다. 주로 넬리 딘에 의해 서술되는 이 소설의 내용은 1771년부터 1802, 거의 30년에 걸친 언쇼가와 린턴가, 그 사이에서 막강한 힘을 휘두르는 히스클리프와의 얽히고설킨 애증의 이야기다. 서술자 넬리 딘은 인정 많고 의리 있으면서도 객관적 성향을 가진 인물이다. 사건의 양상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미래에 대한 예측을 하며 위기에 잘 대처한다. 때때로 신랄하게 잘못된 점을 인식시켜 주는, 극의 흐름에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다만 빅토리아 시대의 관습이나 고정관념을 넘어서지 못하기에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광적인 사랑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세상의 소란으로부터 완벽히 동떨어진 곳을 찾아 요크셔 지방의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를 임대한 록우드는 주인 히스클리프를 만나고 그와 약간의 동질성을 느낀다. 그는 바람이 차갑고 소낙눈이 내릴 때, 다시 워더링 하이츠를 방문한다. 히스클리프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냉대에 집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험악한 날씨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옛 캐서린의 방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그곳에서 록우드는 캐서린의 유령을 보고 그 다음 날 바로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로 줄행랑을 친다. 감기가 걸려 심하게 앓게 된 록우드는 넬리에게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에 대한 얘기를 해달라고 요청한다.

 

1771, 워더링 하이츠의 주인인 언쇼씨가 리버풀에 갔다가 태생에 대해 어떤 정보도 알 수 없는 아이를 데려와 자신의 죽은 아들의 이름인 히스클리프라 부르며 친자식처럼 대한다. 히스클리프는 캐서린 언쇼와는 영혼의 단짝이 되어 서로 사랑하게 되지만, 힌들리 언쇼는 그를 싫어하고 구박한다. 언쇼씨가 죽자 힌들리는 히스클리프를 하인으로 내몰고, 아내 프랜시스와의 사이에서 헤어턴 언쇼를 얻는다. 린턴가의 장남인 에드거 린턴은 캐서린을 사랑하게 되고 그녀에게 청혼한다. 신분의 차이를 인식한 캐서린은 자신과 히스클리프 두 사람의 장래를 위해 에드거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히스클리프는 에드거 린턴을 연적으로 증오한다.


[내가 이 세상에서 느낀 가장 큰 고통은 히스클리프가 느낀 고통이었고나는 그 고통 하나하나를 처음부터 지켜보고 느껴왔어내가 살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건 바로 히스클리프야만일 다른 모든 게 사라지고 그 애만 남는다면 나는 계속 존재하겠지만다른 모든 게 남고 그 애가 소멸한다면 온 세상은 완전히 낯선 곳으로 변해버릴 거야나는 이 세상에 속한 것처럼 보이지 않을 거야.넬리내가 곧 히스클리프야히스클리프는 언제나항상 내 마음속에 있어내가 늘 나 자신에게 기쁨은 아닌 것처럼 기쁨으로서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으로서그러니 우리가 떨어진다는 말은 하지 마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게다가.

-p.142~143]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의 이 말은 듣지 못하고, 린턴과 결혼하겠다는 말만 듣는다. 그는 떠났고, 캐서린은 3년 후인 17833월에 에드거 린턴과 결혼한다. 그해 9월에 돌아온 히스클리프는 언쇼가와 린턴가에 대한 복수를 시작한다. 두 집안의 재산을 서서히 빼앗고, 에드거의 동생 이저벨라와 사랑 없는 결혼을 해 아들 린턴 히스클리프를 낳는다. 캐서린, 에드거, 이저벨라가 차례로 죽고, 캐서린의 딸 캐시 린턴은 히스클리프의 강압과 폭력에 의해 그의 아들 린턴과 결혼한다. 몸이 약한 린턴은 곧 죽고 히스클리프가 모든 것을 차지하지만, 그는 복수에 대한 전의를 상실하고 캐서린의 유령과 만나 식음을 거부하고 죽는다. 1803년 고종사촌간인 캐시 린턴과 헤어턴 언쇼는 결혼하기로 한다.


[“형편없는 결말이야안 그래?” 그가 방금 목격한 장면을 한동안 곱씹더니 이렇게 말했어요. “지독히도 애를 썼건만 이렇게 우스꽝스럽게 끝나버리고 말다니두 집안을 무너뜨리려고 지렛대와 곡괭이를 준비해놓고헤라클레스처럼 일할 힘을 기르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했는데정작 만반의 준비가 끝나고 모든 걸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때가 되니 어느 한 집 지붕에서 슬레이트 한 장 들어내고 싶은 마음조차 사라져버렸어나의 옛 적들은 아직 나를 이기지 못했고지금이야말로 그들의 후손들에게 복수해줄 때야나는 그럴 수 있고누구도 나를 방해하지 못해그런데 그런다고 무슨 소용이 있지나는 때리고 싶지 않아굳이 손을 들어 올릴 필요도 못 느끼겠어이렇게 말하니 마치 그동안 내가 관대함이라는 미덕이나 드러내려고 애써온 것처럼 들리는군전혀 그렇지 않아나는 저들의 파멸을 즐길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고헛되이 남을 파멸시키기에는 너무 게을러져버렸어-p544]

 

복수심에 불타올라 그 당시의 법을 악용해 야비하고도 비열하게 두 집안을 망가뜨리고, 모든 것을 차지하는 히스클리프는 결국 마지막에 모든 것의 의미를 잃어버린다. 자신의 뜻대로 성취되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인 캐서린이 존재하지 않는 한, 그의 삶은 빈껍데기와 같은 것이었다. 히스클리프는 실재하지 않는 캐서린 대신 자신의 머리로 만든 캐서린의 유령이라도 붙잡아 삶의 궁극을 이루려하지만, 그것은 죽음으로 마감되고 만다. 그 죽음으로 다른 사람들은 행복을 되찾는다. 히스클리프의 죽음을 슬퍼한 유일한 사람이 헤어턴 언쇼라는 사실도 아이러니하다. 이 소설이 지극히 비극적인 이유는 진정한 사랑과 관용이 없는 삶은 허무만이 남겨진다는 서늘한 교훈이 히스클리프를 통해 보여 지기 때문이다.

 

폭풍의 언덕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거친 황야의 히스를 닮아서인지 돌같이 강하고 자주 광기에 사로잡힌다. 특히 캐서린과 히스클리프는 황야의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아가야 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구속이나 정해진 삶의 강요는 죽음과도 같다. 하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운명은 빅토리아 시대의 관습을 뛰어넘지 못한다. 그로 인한 정신적 착란은 몸의 균열을 가져오고 병으로 연결되어 건강한 삶을 살아내지 못한다. 심하게 비틀린 상처받은 마음들은 폭력적으로 변해 계속적인 불행으로 연결된다. 이 인물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고, 한 번씩 정나미가 떨어지지만, 소설을 읽는 목적이 그들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기에, 그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면서 읽느라 약간 힘이 들기도 했다.

 

브론테 자매가 활동한 빅토리아 시대는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허용된 시기가 아니었다. 그런 시대에 샬롯 브론테는 제인 에어를 에밀리 브론테는 뒤틀린 사랑과 성정을 광적으로 표현한 워더링 하이츠를 탄생시켰다. 아일랜드 출신의 가난한 성직자의 딸인 그들은 요크셔 지방에 은둔했으며,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다른 집의 가정교사로 가는 것으로 열악한 인생을 살아야했다. 특히 에밀리 브론테는 샬롯보다 더 은둔하며 전혀 경험하지 못한, 상상 속에서 소설의 인물과 드라마를 창조했으며 이 소설 한 편만을 남겨두고 요절했다.

 

이 소설의 중간정도까지는 예상한 대로였는데, 그 이후로 에드거 린턴이 죽고 그의 딸인 캐시 린턴이 히스클리프에 의해 불행해질 때, 눈물이 났다. 소설의 결말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작가라면 모두 떠나고 히스클리프가 캐서린이란 유령을 붙잡고 오랫동안 고통을 느끼며 외롭게 살게 했을 것이다. 언쇼 씨가 히스클리프를 워더링 하이츠로 데려오지 않았다면 캐서린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캐서린의 본질은 폭풍의 언덕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그 어떤 것이라도 그녀의 자유와 광기를 구속하고 제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히스클리프가 존재하지 않는 캐서린의 삶이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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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5-07-17 16: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식 결말이라면 이 작품이 이리 징글징글하지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어릴 때 읽었는데 어른이 된 후 제대로 정독 완독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끔 들지만 기 빨릴 것 같아 손이 잘 안 가더라고요

페넬로페 2025-07-17 20:14   좋아요 1 | URL
‘폭풍의 언덕‘을 읽으니 이 소설이 엄청 많은 막장 드라마 버전으로
변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위대한 개츠비도 생각났어요.
근데 생각보다는 잘 읽히더라고요.
오늘 이 소설로 독서토론 했는데
다양한 의견들이 나와 재미 있었어요^^

그레이스 2025-07-19 17: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에 관심있게 생각하는 것이 있어서 그런지 히스클리프의 힘에 영향을 받는 주변인들에 더욱 시선을 두게 되네요

페넬로페 2025-07-19 19:11   좋아요 1 | URL
네,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이 한 권의 책으로 생각할 것이 많아 별 다섯개를 주었어요. 확실히 고전은 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