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베개 - 장준하의 항일대장정
장준하 지음 / 돌베개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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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 28장 10 ~ 15절에 나오는 야곱의 "돌베개" 이야기는 내가 결혼 일주일 만에 남기고 떠난 내 아내에게 일군 日軍 탈출의 경우 그 암호로 약속하였던 말이다. 마침내 나는 그 암호를 사용하였다. "앞이 보이지 않는 대륙에 발을 옮기며 내가 벨 "돌베개"를 찾는다고 하였다... 그 후 나는 "돌베개"를 베고 중원 6천 리를 걸으며 잠을 잤고 지새웠고 꿈을 꾸기도 하였다. 나의 중원 땅 2년은 바로 나의 "돌베개"였다. 아니, 그것이 나의 축복 받는 "돌베개"여야 한다고 생각했다.(p7)' 


 <돌베개>는 독립운동가, 정치인, 종교인, 언론인, 사회운동가였던 장준하(張俊河, 1918~ 1975) 선생의 삶 중에서 1944 ~1945년간의 일을 다룬 기록이다. 이 시기를 통해 일본군의 징용을 피해 광복군에 합류한 후 시안(西安)에서 OSS 훈련을 받으며 국내 진공 작전을 기다리다 광복(光復)을 맞이할 때까지 삶의 여정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야곱은 브에르 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가다가, 어떤 곳에 이르러 해가 지자 거기에서 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는 그곳의 돌 하나를 가져다 머리에 베고 그곳에 누워 자다가, 꿈을 꾸었다.(창세 28 : 10 ~ 12)'


 <창세기>에서 야곱은 그의 형 에사우의 축복을 가로채고 어머니 라헬의 고향 하란으로 자신의 외삼촌을 찾아 떠나게 된다. 하란으로 가는 도중 베텔이라는 곳에서 지친 야곱은 잠시 잠을 청하고 꿈을 꾼다.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이었던 저자는 그러한 야곱의 모습 속에서 자신을 느끼지 않았을까.


 '내가 이 광야에서 벨 베개는 돌베개임을, 벌써 일군을 탈출하기 전 마지막 편지로 아내에게 말하였고 또 각오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제부터 내가 베어야 할 나의 돌베개는 어느 지점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가. 나의 고행은 어디서부터 정작 시작되어 어디까지 가야할 것인가.(p91)'



[지도] <돌베개>에서 저자의 주요 경로


 항일 대장정(抗日 大長征)이라는 말에 어울리게 쉬저우(徐州)에서 충칭(重慶)으로, 다시 시안(西安)으로 2년 동안 이어지는 그의 여정 속에서 '못난 조상이 또다시 되지 말아야 한다', '돌베개'라는 말이 주문(呪文)처럼 이어지고 있다. 지쳐 쓰러질 듯한 상황속에서 저자를 버티게 한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우리는 글 속에서 느낄 수 있다.


  '나의 희생으로 우리의 다음 대는 또다시 이런 고생에 시달리지 않게 할 수 있다면, 나는 나의 대를 남기는 것보다 훨씬 보람된 나의 일생을 가졌다고 자부할 수 있으리라.(p226)'


  '내가 자원한 것은 국내 공작이었다. 국내 공작의 목표는 결국 나의 죽음이다. 내가 나의 죽음을 지불하면 내 능력껏 그 대가가 조국을 위해서 결제될 것이다. 나의 각오는 한 장의 정수표다... 한반도에 대한 연합군의 공략은 일본의 본토 사수의 결의를 꺾자는 데 있는 것이다. 이 공략을 돕기 위해 경무기로 무장된 우리가 잠수함이나 낙하산으로 투입되어 우선은 첩보활동, 다음 단계로 정보 송신, 그리고 최종으로 유격대 조직 및 군사시설 파괴공작을 수행하도록 미리 결정되어 있었던 것이다.(p289)'


 그렇지만, <돌베개> 속에 저자의 애국심(愛國心)만 표현된 것은 아니다. 저자는 힘든 중에도 자신의 주변을 살피며 당시 주변 정세를 예리하게 판단해간다. 또한 힘든 장정의 상황에서도 <삼국지연의 三國志演義>의 주인공 제갈량(諸葛亮, 181 ~ 234)의 사당을 찾아가기도 하고, 애국가(愛國歌)를 부르면서 통곡하는 저자의 모습이 표현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속에서 저자의 사람됨과 당대의 시대상을 읽을 수 있다. 


  '후방도 아닌 전방지대에 사단장이라는 지휘관은 수십 명의 처첩을 거느리고 다니고, 박격포를 메고 가야 할 그 어깨엔 그 대신 지휘관의 처첩들의 가마가 올라앉는가 하면, 정규군의 모습이 아닌 이 미련한 중국국. 일군에게 밀리면서 또 홍군과 맞붙어 싸우며 떠다니는 유랑의 군대. 그런가 하면 일군은 점과 선만을 차지하고 타협도 해가면서 대륙을 들쑤셔놓는 그 약삭빠른 허세의 군대다. 이들의 사이에서 어부지리를 얻는 공산군만이 진실로 공간과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p176)'


 '장제스군에게 막대한 양의 미제 신식무기가 공급되었어도 이 신무기를 사용할 줄 모르는 정도의 한심한 병정들이었다. 그들의 무식은 신무기 활용을 해득하지 못했고, 분해, 결합과 같은 손질에서 병기 파괴 손실이 더 컸으며, 이들의 정신 상태에서는 중공군으로 넘겨주고 돈을 받는 일이 항다반사였다.(p211)'


  힘든 여정을 거쳐 충칭의 임정에 도착하지만, 분열된 임시정부의 모습 속에서 그는 깊은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저자의 좌절감 역시 <돌베개> 속에서 가감없이 표현되고 있다.


  '6천 리의 대륙횡단 끝에 찾아온 충칭도 채 석 달이 못되어 다시 떠나버리게 되었다. 충칭에 더 머무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자신에 대한 자학과 모욕같이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순수했던 기대와 불같던 정열과 끓던 정의감은 안개처럼 차차 꺼져버리고 오히려 실망과 허탈감으로 우리가 괴로워해야 했던, 그 짧지 않은 석달을 묻어두고 새로운 결심을 했다.... 슬픔이란 아주 간단한 철학이요, 순진한 감정이었다. 심해의 풍랑 속에서 찾아온 등대불이 꺼져버린 그 순간의 실망이라고나 할까. 일군을 탈출해 찾아와 몸 바칠 곳을 찾아 헤매다가 시안에서 시작되는 한미 합동작전을 위한 훈련을 받기 위해 떠나는 우리 일행 30여 명은... 감정 없는 슬픔을 가숨에 담고 새로운 투쟁을 찾아가는 혁명의 철학을 새겨야 했다.(p276)'


  광복을 위해 투쟁했지만, 청년 장준하가 준비했던 광복은 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투쟁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평가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돌베개>는 존경받는 정치인, 사회운동가로서 장준하 선생의 사상(思想)적 기반을 확인할 수 있는 의미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돌베개>를 이웃분에게 선물받았기에 더욱 그 의미가 크게 다가온다. <돌베개>를 선물해 주신 이웃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의 꿈'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청년 '장준하의 꿈'을 함께 짐작해보며 이번 리뷰를 마친다.


  '그가 보니 땅에 층계가 세워져 있고 그 꼭대기는 하늘에 닿았는데, 하느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나는 네가 누워있는 이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겠다. 네 후손은 땅의 먼지처럼 많아지고, 너는 서쪽과 동쪽 또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주고,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창세 28 : 12 ~ 16)'


PS. 원래 이번 리뷰는 두 명의 군인을 비교해서 작성하려고 했습니다. '일본군->광복군'으로 자신의 이력을 만든 장준하 선생과 '만주군->일본군'으로 변신해 간 다른 인물인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를 비교해 보려 했습니다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먼저 리뷰를 올립니다. 나중에 여건이 되면 '두 군인(軍人)의 길'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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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7 11: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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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7 11: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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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1 00: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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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1 00: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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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1 00: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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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당평전 2 (양장)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학고재신서 32
유홍준 지음 / 학고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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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당평전2>에서는 제주도 유배시절 중반기부터 1856년 김정희가 사망할 때까지의 시기를 다루고 있다.  <완당평전2>의 주제는 '추사체(秋史體)'다. 우리가 '추사체'라고 부르는 그의 독특한 서체(書體)와 그 성립 시기에 대한 내용으로 시작하여 '추사'가 죽기 3일전 작성했다고 하는 '봉은사 판전'에 이르기까지 책 전반에서 다룬다.



[그림1] 김정희, <학위유종> (출처 : http://blog.daum.net/naondal/10867040)


'완당의 글씨가 괴(怪)하다는 말을 듣는 이유를 이 글씨에서 남김없이 알아볼 수 있다... "학문은 유학을 으뜸으로 삼는다"는 뜻의 <학위유종>은 고급 냉금지에 고급 먹으로 쓴 회심의 일필이다. 그 괴이함은 가히 극치를 이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씨는 획법(劃法)과 자법(字法)에서 나무랄 것이 아무것도 없다.'(p571)


인생 초반기에 중국 학자들과 교류하면서 직접 원본(原本)을 봤던 김정희였다. 그런 그였기에 자부심이 매우 컸고, 다른 이들과 함께 작품에 대해 논쟁이 벌어질 때면 매번  '내가 직접 원본을 보니까 말이지~'하는 말로 다른 의견을 눌렀다고 한다. (<완당평전1>참조) 오늘날 해외 유학파 학자들이 자신의 의견에 권위를 부여할 때 사용하는 말과 같이 그의 말은 그에게 승리와 함께 많은 적(適)을 안겨다 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도 유배'는 그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성립시기에 대한 논의와는 별도로 '추사체'는 이러한 자기 성찰의 결과물이라고 저자는 해석한다. 


추사 김정희는 제주도 유배 이후 잠시 여유로운 시절을 갖지만(강상(江上)시절), 다시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를 가게 된다. 1년 남짓의 시기 동안이지만, 이 시기에 추사는 진흥왕 순수비 중 '황초령비'를 원위치 시키는 등의 여러 활동을 이어간다. 저자는 이 시기의 김정희를 서술하면서 그가 원래 강한 민족의식과 북방의식이 있었다고 서술한다.


'완당은 청나라 학자들과의 깊은 교유 때문에 국제적 감각의 지식인, 심지어는 사대주의적 분위기에 젖어 있던 지식인으로 흔히 인식되고 있다. 나 또한 한동안 그렇게 생각해왔지만, 실제로 그는 민족적 자부심이 대단히 강하고 우리 민족의 대륙적 기상과 북방적 기질을 사뭇 동경해온 분이었다.'(p638)


이 글을 읽으면 저자는 김정희가 처음부터 강한 민족을 가지고 잇었던 것처럼 인식함을 알 수 있다. 내가 추사 김정희에 대해 깊이 있게 연구하지는 않았기에 직접적으로 반론하기는 어렵지만,  김정희의 글씨가 '제주도 유배' 이후 기름기를 뺀 독창적인 '추사체'로 발전한 것처럼, 김정희가 원래 강한 민족의식을 가졌다기보다 그의 민족의식 역시 당시 외지(外地)였던 함경도 북청에서 강하게 발현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유홍준 교수가 김정희의 민족 의식과 관련하여 제시한 시(詩)가 북청 유배 시절에 지어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도 유배'와 '북청 유배'는 글씨로는 청나라의 영향을 많이 받은 '완당(阮堂)'에서 독창적인 세체를 가진'추사(秋史)'로 나가는 계기가, 사상적으로는 '소중화(小中華)사상'에서 벗어나 '조선(朝鮮)'을 강하게 인식하게 계기가 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림2] 봉은사 판전 (출처 : 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


' 봉은사 경판전을 위해 쓴 완당의 이 현판은 결국 그의 절필이 되었다. 이 판전을 쓴 지 완당은 3일 뒤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p761)


<완당 평전>1,2를 읽고 난 뒤 김정희의 일생을 통해 마치 '연어의 회귀'를 생각하게 된다.


더 큰 세상을 동경하고 큰 세상에서 함께 하기를 꿈꿨던 김정희. 그가 후세에 이름을 남긴 것은 완원, 옹방강 등 당대 국제적인 학자들과의 교류보다 그에게는 쓰라렸던 유배 생활을 통해 얻은 '추사체' 였다. 고난을 이겨내고 얻어낸 추사체와 김정희의 일생을 살펴보면서, 민물고기로 태어나 대양(大洋)에서 일생을 지낸 후 자신의 산란지로 찾아들어 죽음을 맞이하는 '연어의 인생'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죽음의 여행을 통해서 얻어낸 것이 연어에게는 '새 생명'이라면, 김정희에게는 '추사체'가 아니었을까.




[그림2] 연어의 회귀( 출처 : SBS뉴스) 


<완당평전>을 통해 우리는 조선 말을 살아갔던 국제적인 석학(碩學)의 모습과 함께 우리 삶에 고난(苦難)이 반드시 쓴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하늘이 장차 사람에게 큰 임무를 내리려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 그 뼈마디가 부러질 듯한 고통을 주며, 그의 몸을 굶주리게 하고, 그를 궁핍보다 더한 공핍의 상태로 만들며, 어떤 일을 행함에 있어 그가 하고자 하는 바를 뜻대로 되지 않도록 어지럽히시니,이것은 그의 마음을 움직여 타고난 작고 못난 성정을 인내로 담금질하게 함으로써 그가 수행할 수 없던 하늘의 사명을 능히 감당하도록 그 역량을 키워주려 함이다.


孟子曰,

天將降大任於是人也인댄

必先苦其心志하며 勞其筋骨하며

餓其體膚하며 空乏其身하야

行拂亂其所爲하나니

所以動心忍性하야

曾益其所不能이니라。



ps. <완당평전3>은 에서는 김정희의 편지와 전시회 출품작 등을 수록하여 앞서 평전 1,2와는 또 다른 성격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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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8 08: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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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8 09: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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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당평전 1 (양장) - 일세를 풍미하는 완당바람, 학고재신서 31
유홍준 지음 / 학고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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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완당(阮堂)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 1786 ~ 1856)의 또 다른 호(號)다. 이 중에서 '완(阮)'은 청(淸)나라 완원(阮元 ; 1764 ~ 1849)으로부터 받은 호이며, 중년기까지 '완당'이라는 호를 '추사'보다 더 즐겨 사용할 정도로 그들과 많은 교류를 쌓았다. 그는 당대 청나라 문인들과 많은 교류를 통해 국제적인 감각을 갖춘 지식인이었고, <완당평전1>에서는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나 해외 유학파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었으며, 갑작스럽게 몰락한 완당(阮堂)의 모습이 그려진다.

 

<완당평전1>에서는 김정희의 생애 중 출생(1786)에서 제주도 유배 초기인 1844년까지의 시기를 다루고 있다. 김정희는 경주 김씨의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貞純王后 1745~1805)가 12촌 대고모이며, 증조할아버지 김한신(金漢藎 ; 1720 ~ 1758)이 영조의 둘째딸인 화순옹주(和順翁主)와 결혼할 정도로 명문가였기에 남부럽지 않게 공부할 여건을 갖출 수 있었다. 이러한 집안 배경으로 그는 1809년 마침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임명된 아버지 김노경(金魯敬)를 따라 연경으로 가게 된다. 약 2개월동안 연경(燕京)에서 머물면서 그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완원, 옹방강(翁方綱 ; 1733 ~ 1818)과 같은 당대 문인들을 알게 되면서 쌓은 네트워크(network)는 그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 주었지만, 지나친 자부심은 동시에 많은 적(敵)도 함께 만들게 되었다.

 

<완당평전1> 중반부에서는 이처럼 기고만장한 김정희의 모습이 그려진다. 저자인 유홍준 교수는 김정희의 실력을 높이 평가하며, 김정희의 자부심은 실력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변명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책을 읽는 동안 끊임없이 중국을 동경하는 '소중화사상(小中華思想)'에 물든 김정희의 모습이 불편함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는 특히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 ; 1705 ~ 1777)의 글을 비판하였는데, 그 이유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북비남첩론에 입각하여 북파를 지향하는 완당으로서는 남파에 뿌리를 둔 원교를 비판할 수밖에 없었으며, 원교의 시각이 조선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해, 국제적 시각에서 글씨를 논하고 예술을 펼치고 있던 완당이 보기에 못마땅했던 것이다.(p324)'

 

당대 강대국이었던 청(淸)나라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안목을 높였기에, 우리나라에서 발전한 문화를 얕보는 그의 사대(事大)사상은 지금도 우리사회에 그대로 이어지는 것 같아 편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저자는 <완당평전1>에서는 대둔사 '대웅보전' 현판을 쓴 원교 이광사의 글과 '무량수각' 현판을 쓴 완당 김정희 글을 비교하면서 독자들에게 김정희를 평가할 기회를 제공한다.

 


[그림] 대둔사 <대웅보전> 현판 (출처 : http://blog.daum.net/seokkim21/84)

 

대둔사 <대웅보전> 현판 : 원교 이광사가 신지도에 유배되어 있을 때 써준 그의 대표적인 현판 글씨로 유려한 필획의 멋과 힘있는 운필이 동시에 느껴진다. 그러나 완당은 글씨에 속기가 있다고 생각하여 초의에게 떼어내게 했다. (p338)

 

 

[그림] 대둔사 <무량수각> 현판 (출처 : http://blog.daum.net/seokkim21/84)

 

대둔사 <무량수각> 현판 : 대둔사 대웅보전 오른쪽에 있는 선방 건물로, 이 현판은 완당이 제주도로 유배가면서 써 준것이다. 예서체에 멋을 한껏 넣었는데 획이 대단히 기름지고 윤기가 난다. (p339)

 

글을 잘 볼 줄 모르지만, 이 두 글은 서로 다른 멋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석가탑과 다보탑처럼 서로 다른 미(美)를 갖춘 두 글에 대해 쉽게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김정희는 자신은 당대 선진국인 청나라에서도 인정받았기에 당대 최고라는 자부심을 스스로 가지고 있었고 이는 극단적인 '원교' 비판으로 이어졌다. <완당평전1>에서는 이러한 김정희의 모습을 글과 그림을 통해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기회를 통해 지금도 우리 사회에 팽배한 '문화사대주의(文化事大主義)'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김정희의 모습이 바뀌게 되는 계기가 바로 '제주도 유배'시기였다.

<완당평전1>에서는 제주도 유배 초기 김정희가 겪은 어려움을 마지막으로 그리고 있다. 그가 이 어려움을 통해서 무엇을 느꼈는지가 잘 나타난 그림이 유명한 <세한도(歲寒圖) ; 1844)>다.

 

[그림] 세한도( 출처 : http://blog.daum.net/yjm88/17954437)

 

<세한도>는 제주도 유배중에도 지속적으로 책을 보내주었던 제자 이상적에게 고마움과 자신의 뜻을 담아 보낸 그림이다. 이 그림과 함께 '날이 차가워 다른 나무들이 시든 뒤에야 비로소 소나무(松柏)가 여전히 푸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자신의 뜻을 담아 이상적에게 보냈다.'(p395)

 

<세한도>에 담긴 글을 통해서 '제주도 유배'는 김정희에게 '서리가 내리는' 충격을 주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서리는 김정희가 청(淸)의 깊은 영향을 받은 인간 '완당(阮堂)'에서 독자적인 '추사(秋史)'로 변모하게 한 계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다산과 완당의 귀양살이를 비교하면서 다산은 귀양살이를 통해 현실을 발견했는데 완당은 그렇지 못하다고 말하고 한다. 그러나 완당은 귀양살이에서 자아를 재발견했다고 말할 수 있다. (p332)'

 


[그림] 추사체 (출처 : http://blog.daum.net/yjm88/17954437)

 

'추사체는 대단히 개성적인 글씨다. 일반적인 아름다움, 평범하고 교과서적인 미감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추사의 글씨에서 차라리 괴이함과 당혹감을 느끼는 것이 정상이다.' (p12)

 

<완당평전1>에서는 인간 김정희의 삶과 함께 시기별 글과 그림등을 폭넓게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인간 삶의 평면적인 모습이 아니라 예술가로서 시기별로 변모하는 작품 해설은 예술가로서 김정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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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1-14 19: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완당 평전》을 읽어보지 않지만, 별점 세 개를 주고 싶습니다. 김정희 평전을 유 교수가 최초로 썼다는 점, 그리고 방대한 분량을 정리한 노력을 높히 평가받아야 하지만, 문제점은 책의 오류가 많습니다. 김정희가 그린 것인지 확실치 않은 그림을 김정희 작품으로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평전의 오류를 지적한 분이 박철상 씨입니다.

유 교수가 세 권짜리 평전을 절판시켰고, 한 권으로 정리한 개정판을 펴냈습니다.

유 교수가 개정판을 사모님께 보여드렸답니다. 사모님의 한줄평(?)이 압권입니다.

˝이렇게 줄일 거면 왜 세 권짜리로 펴냈수?˝

*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1432611

정보의 양이 많다고 해서 그 책이 잘 썼다거나 내용이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1-14 20:1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주말을 맞아 본가에 머물면서「완당평전」1,2권이 있어 읽고있습니다. ㅋ 어쩐지 절판서적이 되었더군요.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cyrus님 새로운 사실을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yureka01 2017-01-15 0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700년대와 1800년대 초기에 많은 학자들이 유럽을 갔었더라면 또 어땠을까요..ㅎㅎㅎㅎ

겨울호랑이 2017-01-15 07:26   좋아요 0 | URL
^^: 어려운 가정입니다만 만일 그럴 수 있었다면, 일본보다 앞서 서구화를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드네요.. ^^:
 
대한민국과 결혼한 박근혜
묘심화 지음 / 찬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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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탤런트 김수미씨의빙의 치료로 유명했던 묘심화 스님.

우리나라 여성지도자로 박근혜를 지지한 내용이 담긴 책이다. 별내용은 없지만 책을 읽고 스님께 여쭙고 싶은 질문이 떠오른다.

박근혜라는 인물을 만났을 때 별다른 느낌은 못 받으셨는지에 대한 질문을.

만일 별다른 느낌 못 받으셨으면 빙의에 대한 스님의 주장을 신뢰할 수 없다는 답을, 만일 아셨지만 그럼에도 이런 책을 내셨다고 하신다면 존경받는 종교인은 그래서는 안된다는 답을 드리고 싶다.

시절이 어수선하니 요즘 내 눈에는 영양가없는 책만 들어오는 것 같다. (그나저나 이렇게 박근혜 관련 서적을 읽다보니 북플에서 ‘박근혜 1번째 마니아‘가 될 것 같아 다소 걱정이 된다...)

ps. 이 글은 묘심화 스님 개인 저서에 대한 평가이며, 결코 신심있는 불자분에 대한 글이 아니라는 사실을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미리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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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1-14 21: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1998년도인가요..대구 달성군에서 출마할때부터..상당히 않좋더니만,,결국 오늘날까지 왔더군요...네 낚인겁니다..

겨울호랑이 2016-11-14 21:28   좋아요 2 | URL
유레카님의 말씀을 듣고 돌이켜보면 우리나라의 진정한 위기는 1997년 IMF가 아니라, 같은 해 이루어진 박근혜의 정계진출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거서 2016-11-14 22: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이 있었군요. 거의 충성 맹세나 다름 없는 책이 아닐까 싶어요. ^^;

겨울호랑이 2016-11-15 04:04   좋아요 2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이런 이야기만 듣다보면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 착각할 거 같아요..

NamGiKim 2018-04-11 2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스님은 ㅂㅅㅁ 아닌가요? 때극기 집회 나가서 ˝박근혜 석방˝과 같은 소리를 외치고 있을지도 모르죠. 촛불혁명시기 매주 촛불집회 나가며 이런 땡중들과 개독들 볼때마다 진심으로 패주고 싶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4-11 22:49   좋아요 1 | URL
묘심화 스님의 최근 행보를 보면 다소 극우 성향이 보여집니다. 저 역시 극우 성향이 잘 이해되지 않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여러 생각을 가진 이들이 사는 곳이니 받아들여야하는 현실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아리랑 -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 같은 삶
님 웨일즈.김산 지음, 송영인 옮김 / 동녘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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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중국일기>와 얼마전 종영(2016년 6월)된 TV '차이나는 도올'에도 소개되어 최근 일반에도 어느 정도 알려진 <아리랑>은 일본 제국주의에 맞선 독립운동가 김산(본명 : 장지락)의 독립투쟁기이자 평전이다.


<아리랑>에 그려진 김산의 삶은 여러면에서 윌리엄 듀이커가 쓴 <호치민 평전>과 비교가 된다. 김산과 호치민 모두 제국주의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한 조국의 해방을 위해 투쟁한 독립운동가들이었고, 두 사람 모두 제국의 심장부에 들어가 유학 생활을 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투쟁노선으로 공산주의를 선택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두 사람을 연결해 주는 끈은 아마도 1927년 2월 결성된 '동방피압박민족연합'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조선, 중국, 인도, 타이완, 베트남이 연합하여 제국주의에 항쟁하는 연합체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알고 지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두 인물이 만나는 지점이 '동방피압박민족연합'이다.


이후, 두 독립운동가의 결말은 달랐다. 김산은 조국의 해방을 보지 못하고 중국 공산당에 의해 스파이로 몰려 처형되었으나, 호치민은 베트남 해방 후 프랑스와 미국을 차례로 격퇴하며, 독립국가의 주석의 자리에 까지 오르게 된다. 


그렇지만, 내게 실패한 혁명가와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혁명가의 일생이 주는 감동의 크기는 전자(前者)가 후자(後者)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아마도 그것은 '우리역사에 대한 몰입의 차이'과 '작품에 투영된 주인공 내면의 투영도'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일반적으로 대중에게 생소한 베트남 독립운동사보다는 우리 현대사가 더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여기에 <호치민 평전>은 저자인 윌리엄 듀이커가 객관적인 자료를 이용해서 '호치민'의 뒤를 쫓고 있지만, 미국인인 저자의 시점에서 그려지기 때문에 호치민의 심경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는 한계가 있다. 이에 반해, <아리랑>에서는 주로 주인공의 입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아리랑> 속에서 인간 '김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아리랑>은 쉽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페이지 수도 <호치민 평전>의 절반인 500페이지밖에 안되서 읽는 부담을 줄여준다.)


<아리랑>의 매력은 이러한 김산의 인간적인 모습이 작품에 반영되었다는 사실 외에 역사적 사실의 영향에 대해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지식인인 김산의 시각에서 그려진 역사적 사건은 우리가 잘 알지 못했거나 잘못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준다. 대표적인 사례로 2가지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1919년 3.1운동 : 소련에 대한 기대


'3.1운동의 본질은 1907년에 시작되어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점차 축척되어 온 민족운동의 표출이었다. 이 운동의 가장 커다란 추진력은 반일저항운동의 활동적인 중심부를 이루고 있는, 국경 너머 만주에서의 조선민족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망명한 구한말 병사와 사관들에 의해 지도되었다.' (p100)


민족자결주의의 이상속에서 평화적으로 시도된 3.1운동은 재판할 경우 무죄가 될 것을 우려한 일본경찰에 의해 학살되는 참상으로 끝나게 되었다. 처음 '영국' 등 문명대국의 이성적 가치에 기대를 걸었던 조선 지식인들은 이러한 현실에 절망하고, 투쟁의 협력자로  새로 성립된 '소련(소비에트 연방)'에 기대를 걸게 되었다. 그리고, 독립운동가 중에 공산주의자가 많아지게 된 원인이 되었다.


2. 1923년 관동 대지진 : 꾾어진 일본 프롤레타리아와의 연대


'1923년 사건은 큰 방향을 불러일으켰다. 몇몇 일본의 중요한 정치가는 그 배반적인 학살 후에 극동의 어느 민족도 더는 일본이 보이는 거짓 '우호'에 속지 않을 것을 깨달았고, 자기들이 한 짓거리에 당황했다... 이 때문에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사상을 열심히 선전하기 시작했으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 구호를 열광적으로 들먹이고 있는 것이다... 민족주의 운동이 급진화되었고 소극적인 대일 우호 감정까지도 깨끗이 씻겨버렸다.'(p118)


1920년 초반까지만 해도, '일본 내 일본인'들을 '조선 내 일본인'들과는 달리 계급투쟁의 동료로 생각하던 분위기는 관동 대지진 후 이루어진 '조선인 학살'로 냉각되어 '조-중 항일투쟁'의 분위기가 강해지게 되었다.


이러한 거대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인간 '김산'이 어떻게 투쟁했고, 절망했는지가 그려져 있다. 그의 삶을 지배한 사상은 마지막 '25장 패배하더라도 좌절하지 않는 자만이'속에 잘 나타나 있다.

(밑줄 긋기)


전체적으로 <아리랑>에는 혁명가로서의 김산의 모습이 강하게 그려지지만, 그가 스스로 절망하여 자살을 시도하려고 할 때 그의 독립운동가로서의 모습이 잘 나타난다.


'나는 아름답고 맑은 조국의 강들을 떠올렸다. 그곳이라면 즐거이 뛰어들텐데...... 나는 바야흐로 죽음을 앞두고 조국, 그대를 -그대의 아름다운 강과 사랑스런 푸른 산을- 떠올려 보았다. 그대의 자식은 나약하지만 삼천리 강산은 강하다. 우리가 모두 이국땅에서 죽더라도 삼천리 강산만은 살아남으리라... 그대를 위하여, 인류의 자유를 위하여 싸우느라고 내 몸은 망가져버렸다. .. 심지어는 혼마저도 죽어버렸다.'(p393)


인간이 죽음 앞에 직면했을 때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고 한다.

김산은 죽음의 순간 속에서 조국을 그리워했다. 위의 말 속에서 그의 마음과 삶의 목표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목숨을 바쳐 독립을 위해 싸워간 독립운동가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아리랑>을 읽고 난 후 '일제 시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우리 민족에게 닥친 역사적 암흑기 속에서 얼마나 많은 선조들이 후손들에게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겠다고 자신의 목숨을 버렸던가. 역사의 암흑기에서  고귀한 희생이 빛났던 찬란한 슬픔의 시기가 일제 시대는 아니었을까. 마치 깊은 새벽 밤 속에 빛나는 별들처럼. 그리고, 그들의 빛나는 정신은 어둠이 너무도 깊었기 때문에 더 빛난다는 역설적인 상황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 내 전 생애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나는 단 하나에 대해서만- 나 자신에 대하여- 승리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계속 전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 데는 이 하나의 작은 승리만으로도 충분하다.`(p464)

`중요한 것은 단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민중과의 계급관계를 유지하는 것. 왜냐하면 민중의 의지는 역사의 의지이기 때문이다.`(p465)

`우월한 권력에 대항하여 개인적으로 싸우는 것은 쓸데없는 비극에 지나지 않는다. 힘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대등한 힘을 조직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그 힘을 동원할 수 없다면 행동을 늦추어야 한다.`(p466)

`도덕적 용기야말로 혁명 윤리의 정수인 것이다. 자기 견해 표현의 자유를 행사를 박탈하려는 자들에게 굴복할 때, 혁명가는 자기의 임무에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p467)

`다년간의 마음의 고통과 눈물을 통하여 "오류"가 필수적이며 따라서 선이라는 것을 배웠다. 오류는 인간 발전의 통합적인 일부분이며, 사회변화 과정의 통합적인 일부분인 것이다.`(p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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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6-08-29 1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차이나는도올에서 매력쩌는 김산과 님웨일스와의 만남을 생생하게 묘사하던데 심쿵했습니다.ㅎ 님웨일스의 남편이 애드거스노우란 사실도 배웠구요. 아리랑을 탈고하며 말한 대목이 기억에 남네요
˝현대는 사람들의 정신이 시험받고 있는 시대다. 우리는 백년을 단 하룻만에 파악해야 하고 역사는 뇌세포의 진동보다 빠르게 흘러간다. 혼란과 공포로 현기증이 일때면 나는 이따금씩 연안의 그 옹색한 방안에서 꾸밈없이 조용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던 김산을 생각한다. 그는 환상도 없었지만 냉소주의자도 아니었다. 그는 패배주의라는 질병을 이겨낸 지식인이었다˝ 늘 노려보고만(?) 있던 책이라 호랭이님의 리뷰가 반가웠어요^^;

겨울호랑이 2016-08-29 11:43   좋아요 1 | URL
^^: `차이나는 도올`에서 김산을 매우 멋있게 묘사했지요. 저도 기억이 나네요. 그런 느낌을 가지고, <아리랑>을 읽으면 그의 멋이 이런 아픔속에서 피었났다는 사실을 더 잘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북프리쿠키님께서는 인상적으로 김산과 님웨일스의 만남을 기억하시네요. 특히, 북프리쿠키님께는 더 의미있는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붉은눈 2016-08-29 1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산과 호치민을 이렇게 비교하며 읽을 수도 있겠군요. 역사의 연결점과 고리들은 실로 그 확장성이 방대한 것 같아요. 겨울호랑이님 리뷰를 읽다보니 <호치민 평전>에 이은 숙제가 하나 더 생긴 것 같네요. 자살에 앞선 그의 생각 속에서 지금 저는 너무 무심히 쓰고 있는 `조국`과 `국가`의 어감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네요.

겨울호랑이 2016-08-30 23:07   좋아요 1 | URL
^^: 네. 저는 실패한 혁명가 VS 성공한 혁명가 측면에서 생각해 봤습니다.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체 게바라`와 `마오쩌뚱`도 어떤 도식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됩니다. 붉은눈님의 글을 읽다보니, 저도 과제를 하나 더 받았네요.^^: 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맛있는 점심 하시고, 좋은 하루 되세요. 붉은눈님!

cyrus 2016-08-29 1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별밤 사진을 보면서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이 생각났습니다.

겨울호랑이 2016-08-29 13:15   좋아요 0 | URL
네, 윤동주 시인도 암흑기를 살던 분이시지요... 그분에게 `별`은 어떤 의미였을지 궁금해지네요..^^: cyrus님 감사합니다.

Grace 2016-08-30 1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은의 만인보를 보는 중인데,
<김성숙>이란 제목의 시에
장지락, 김산, 님웨일즈, 아리랑 등등이 나옵니다.
잘 모르는 부분이라 무심히 읽고 지나쳤는데,
겨울호랑이님의 위의 글을 읽어보니 <김성숙>이란 시가
확연히 이해 되네요.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16-08-30 22:12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는 고은님의 <김성숙>이라는 시를 Grace님 덕분에 알게 되었어요. 꼭 읽어보려 합니다. 감사합니다^^

수이 2016-10-02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랑하는 김산_ 이렇게 마주하니 새삼 가슴 뛰는걸요.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님 :)

겨울호랑이 2016-10-02 10:5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야나님^^: 야나님께 칭찬을 들으니 저도 가슴이 뜁니다^^: 야나님, 행복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