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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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출한 신인을 만났다.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두 편의 단편을 읽고서는 그녀의 다른 작품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생겼다. 그녀의 세계가 궁금했다. SF라는 장르는 미래를, 다가오지 않은 현실을, 과학기술을, 인류의 진보를 그리고 있지만, 김초엽의 SF에서는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그녀가 그리는 미래에는 여전히 인간 본연의 고뇌와 삶의 문제들이 뒤섞여 있었다. 정체성을 찾기 위한 방황, 인간성과 외계성의 분리, 시간이 흘러도 결국 마음을 향하게 하는 가족애, 스스로의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외부의 물질로부터 감정을 느끼려하는 성향, 증오하던 엄마에 대한 이해, 이모의 족적을 쫓아가며 깨닫게 되는 해방과 허무함. 확장된 작가의 상상력을 이용하여 도달한 곳에서도 결국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종종 맞닥뜨리는 본질적인 의문과 고민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소피.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어쩌면 일상의 균열을 맞닥뜨린 사람들만이 세계의 진실을 뒤쫓게 되는 걸까? 나에게는 분명한 균열이었던 그 울고 있던 남자와의 만남 이후로, 나는 한 가지 충격적인 생각에 사로잡혔어.
우리는 행복하지만, 이 행복의 근원을 모른다는 것. - 19

릴리는 자신의 삶을 증오했지만, 자신의 존재를 증오하지는 못했다. - 47

지구로 내려간 우리는 그 다른 존재들을 만나고, 많은 이들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거야. 그리고 우리는 곧 알게 되겠지. 바로 그 사랑하는 존재가 맞서는 세계를. 그 세계가 얼마나 많은 고통과 비탄으로 차 있는지를. 사랑하는 이들이 억압받는 진실을.
올리브는 사랑이 그 사람과 함께 세계에 맞서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야. - 52

인간을 비인간동물과 구분하는 명백한 특질들이 사실은 인간 밖에서 온 것들이라면.
“우리가 인간성이라고 믿어왔던 것이 실은 외계성이었군요.” - 129

“나는 내가 깨어 있는 만큼만 살아 있었다네.” - 174

“자네에게는 흘러가는 시간이 붙잡지 못해 아쉬운 기회비용이겠지만, 나 같은 늙은이에게는 아니라네.” - 177

“예전에는 헤어진다는 것이 이런 의미가 아니었어. 적어도 그때는 같은 하늘 아래 있었지. 같은 행성 위에서, 같은 대기를 공유했단 말일세. 하지만 지금은 심지어 같은 우주조차 아니야. 내 사연을 아는 사람들은 내게 수십 년 동안 찾아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네. 그래도 당신들은 같은 우주 안에 있는 것이라고. 그 사실을 위안 삼으라고.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 181

의미는 맥락 속에서 부여된다. 하지만 때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담긴 눈물이 아니라 단지 눈물 그 자체가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 215

연결을 끊어도 데이터는 어디선가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삶은 단절된 이후에도 여전히 삶일까. - 257

어떤 사람의 실패는 그가 속한 집단 전부의 실패가 되는데, 어떤 사람의 실패는 그렇지 않다. -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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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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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의 경우, 여러 단편 중 대표주자를 책 제목으로 내세우는 것이 보통이다. 책의 제목이 된 단편은 그 얼굴의 역할을 하지만, 몸통까지 되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 독자들에게 알려진 수상작은 다른 수상집 등에 묶여 다른 제목으로 이미 알려져 있기 때문에(예를 들면, 이 책에 수록된 <한정희와 나>는 2017년 제17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한 작가의 (수상작을 포함한) 단편집을 별도로 출간하는 경우 출판사의 입장에서는 다른 단편을 얼굴로 내세울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제목인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보다 다른 단편들이 더 좋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책의 백미는 맨 뒷편에 있는 <이기호의 말>이다. 나는 여타의 다른 소설에서 이와 같이 솔직하고 감동적인 자아성찰을 읽어본 적이 없다.


작가는 종종 소설 속에 자신을 등장시켜, 소설과 현실의 구분을 모호하게 한다. 소설가이자 대학교수인 '나(이기호)'를 등장시키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실제 작가의 생각과 말투와 행동도 그럴 것이라 여겨진다. 아직 이기호 작가의 글을 많이 읽어본 편이 아니라 '소설은 소설일 뿐'이라며 독자들을 혼동시키려 하는 것인지, 소설이라고는 해도 결국 '내' 이야기임을 밝히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의 소설이 중고나라에서 떨이로 팔려나가는 것에 모욕을 느껴 직접 판매자를 만나려고 했던 소설가(<최미진은 어디로>), 용산참사 때 현장에 가지 못한 크레인 기사를 인터뷰 하는 소설가(<나정만씨의 살짝 아래로 굽은 붐>), 떼인 돈을 찾기 위해 그 주소지 앞에서 피켓시위를 하는 남자를 설득시켜야 하는 주민이자 소설가(<권순찬과 착한 사람들)>, 본의 아니게 중학생 조카를 잠시 맡게 된 남편이자 소설가(<한정희와 나>) 등에서 작가는 화자이면서 등장인물로 교차되어 나타난다. 독자는 이 이야기들을 그저 즐겁게 읽어나가면 될 뿐, 실제 일어난 일인지, 그럴듯한 허구인지, 현실과 허구를 반반씩 섞어놓은 것인지를 굳이 밝힐 필요는 없다.   


이 단편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감정을 고르라면, 나는 '염치'를 택하겠다. 염치는 부끄러움이 무엇인지를 안다는 것이다. 자신이 손수 싸인한 책이 헐값에 판매되는 것에 모욕을 느낀 소설가에게 "아저씨는 우리 미진이도 잘 모르잖아요... 모르면서 그냥 좋은 인연이라고 쓴 거잖아요... 그건 그냥 쓴 게 맞잖아요... 씨팔, 아무것도 모르면서... 내가 왜 책을 파는지... 내가 당신이 쓴 글씨를 얼마나 오랬동안 바라봤는지... 우리 미진이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아무것도 모르잖아요(30-31쪽)"라고 말하는 판매자, 인터뷰 말미에 "거 용산에서 일어난 그거 말이에요... 지금 형씨가 그걸 쓰겠다고 이러는 거 아니에요... 그거 때문에 우리가 그 난리를 쳤고... 한데요... 그걸 쓰려고 하는 사람이... 하필 왜 나를 찾아왔어요?(66쪽)"라고 말하는 크레인 기사, "오빠가 어떻게 저한테 삼 년 만에 찾아와서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는 거죠?(232쪽)"라고 말하는 윤희, 그리고 "너 정말 나쁜 아이구나. 어린 게 염치도 없이...(270쪽)"라고 한정희를 꾸짖는 나. 이들은 모두 상대방의 태도에 대하여 부끄러움을, 염치를 상기시킨다. 현상만을 보고 느끼지 않아도 될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작가는 그 불편함을 느끼고야마는 스스로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이 책에서 작가가 등장인물로 개입되지 않은 두 편의 연작 <나를 협오하게 될 박창수에게>와 <오래전 김숙희는>에서는 다른 남자와의 관계를 남편에게 밝혔지만 이렇다 할 반응도 대응도 없이 현실을 유지하려는 남편의 태도에 오히려 모멸감을 느끼는 김숙희가 등장한다. 작가는 우리가 '염치'를 말해야 할 상대방이, 스스로 자괴감을 느껴 남편을 살해한 김숙희인지, 수면유도제를 통해 그녀를 잠재우면서 계속 꾸역꾸역 현실을 유지하려는 남편인지, 그녀와 내연관계에 있었으면서도 사실은 그녀를 혐오했다고 주장하며 정작 이유 없는 돈을 받은 정재민이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지난달 중순 무렵, 외장 하드를 사려고 우연히 중고나라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누군가 내 책을, 그러니까 이 년 전에 나온 내 장편 소설을, 염가 판매하고 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귈 때는 별로 사랑하지도 않았던 사람이 막상 이별을 통보하자 목놓아 울게 되는... 그렇게 슬퍼하면서 비로소 스스로 사랑을 완성하는... 그때 당시 나는 바로 그 ‘목놓아 울고’ 있는 상태가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그렇게 계속 어떤 열기 같은 것을 느끼고, 멈추지 못했겠지... 바로 그 순간만큼은 내가, 내 소설이, 괜찮아 보였을 테니까. 돌아서면 인정하고 말아야 할 테니까... - 20

때때로 나는 생각한다.
모욕을 당할까봐 모욕을 먼저 느끼며 모욕을 되돌려주는 삶에 대해서.
나는 그게 좀 서글프고, 부끄럽다. - 33

이해할 수 없겠지만, 이해받고 싶지도 않고, 이해를 믿지도 않으며, 이해와 싸우고 싶지도 않다. 그것들을 위해 이 글을 이렇게 길게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 120, 121

때때로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볼 때가 많았다. 만약 그날, 내가 남자의 승합차에 타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많은 것들이 달라졌을까? 남자가 차에 타라고 보채도 모르는 척 계속 걷기만 했다면 내 남편의 운명도 많이 달라졌을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렇다, 달라졌을 것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스스로 답변했다.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실처럼 길게 이어져 내 인생의 많은 것들이 거기에 줄줄 달려간 것이라고, 그렇게 믿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다. 어쩌면 선이 하나 더 있었는지 모른다고, 그것은 각기 다른 실이었는지 모른다고, 생각해볼 때가 더 많다. 우리는 저마다 각기 다른 여러 개의 선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하나의 선으로만 보려는 것은 그 사람 자체를 보려는 것이 아닌, 그 사람을 보고 있는 자기 스스로를 보려는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의심을 하게 될 때가 더 많아졌다. - 131, 132

나는 이제 그가 벌을 받든 말든 별 관심이 없다. 그가 안쓰럽다거나, 그에게 미안한 마음 또한 들지 않는다. 각자의 죄가 있고, 각자의 벌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뭉뚱그려 바라보면 모든 것이 다 평평해질 뿐이다. 죄는 그때 반복되는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반복하고 싶지 않다. 미움도 슬픔도 사랑도 증오도 삶도. 그게 전부다. - 145, 146

그러니까 사실 나는 지금 이 진술서를 쓰면서도 그것이 궁금하다.
왜 어떤 사람은 살인자가 되고, 또 어떤 사람은 정상이 되는 것인지.
왜 어떤 사람은 수치를 느끼고, 또 어떤 사람은 염치를 생각하는지.
나는 지금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 - 167

그러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아내도 나도 그게 정확히 어떤 의미의 일인지 잘 몰랐던 것이 맞았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도 그랬다. 한 사람을 한 사람으로 맞이한다는 것이 어떤 뜻인지, 어떤 시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잘 몰랐던 것이 맞았다. 그건 아이들을 아무리 많이 키우고 있다고 해도 저절로 알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세상에 예상 가능한 아이란 없는 법이니까... - 251

어느 땐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고통이란 오직 그것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어쩐지 내가 쓴 모든 것이 다 거짓말 같았다. 누군가의 고통을 이해해서 쓰는 것이 아닌, 누군가의 고통을 바라보면서 쓰는 글. 나는 그런 글들을 여러 편 써왔다. - 265

내겐 환대, 라는 단어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어느 책을 읽다가 ‘절대적 환대’라는 구절에서 멈춰 섰는데, 머리로는 그 말이 충분히 이해되었지만, 마음 저편에선 정말 그게 가능한가, 가능한 일을 말하는가, 계속 묻고 또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신원을 묻지 않고, 보답을 요구하지 않고, 복수를 생각하지 않는 환대라는 것이 정말 가능한가, 정말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 일이 가능한 것인가, 그렇다면 죄와 사람은 어떻게 분리될 수 있는가, 우리의 내면은 늘 불안한 절망과 갈등 같은 것들이 함께 모여 있는 법인데, 자기 자신조차 낯설게 다가올 때가 많은데, 어떻게 그 상태에서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 나는 그게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나 자신이 다 거짓말 같은데... - 265, 266

한 인물에게 고유한 이름과 사연을 부여한다는 것은, 그를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익숙한 범주 내로 동일화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동일자로 환원되지 않는 자, 곧 절대적 타자만이 고유할 수 있다. 왜냐하면 고유한 자는 말의 의미 그대로 지상의 누구와도 ‘같지 않은’자이고, 누구와도 ‘차이 나는’ 삶을 살았던(사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유명사의 윤리는 타자를 항상 ‘나와 다른 자’ ‘짐작 불가능한 자’로 정의할 수밖에 없게 한다. 바로 그 짐작 불가능성을 유지한 채로, 타자를 나에게 이해된 바가 아닌 그 자신의 이름에 따라 호명하고, ‘차이 속에서’ 관계 맺는 것이 고유명사의 윤리다. (김형중의 해설, 다시, ‘환대’에 대하여) - 279

소설 속 화자와 실제 작가는 분리해서 바라봐야 한다고, 그걸 구분해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마추어라고, 우리는 배웠다네. 하지만 실제론 그러지 않는다는 것을 자네도, 나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아마추어든 숙련된 독자든, 은근슬쩍 그 벽 너머를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지. 작가 또한 일부러 그 벽에 숭숭 구멍을 뚫어 살짝살짝 보여주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못 본 척, 서로 속고 속이고 눈감아주고 작품 볼 줄 안다, 상찬을 늘어놓는 거라네. 그것이 소설을 읽는 우리의 윤리적인 태도라네. 나는 그 태도가 싫었다네. 소설이, 작가가 뭐 대단한 거라고... 나는 ‘작품’이라는 말도 싫어했다네. 그 ‘ㅁ’자 받침으로 끝맺는 단어 속에 어쩐지, 무언가를 구분 짓고자 하는 이상한 태도가 엿보였기 때문이라네. 그래서 나는 아예 그 태도를 무너뜨리려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네. (이기호의 말) - 309

자네, 윤리를 책으로, 소설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나?
책으로, 소설로, 함께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내가 보기엔 그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네.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것이 우리가 소설이나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유일한 진실이라네.
이 말을 하려고 여기까지 왔다네.
진실이 눈앞에 도착했을 때, 자네는 얼마나 뻔하지 않게 행동할 수 있는가?
나는 아직 멀었다네. (이기호의 말) - 313,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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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만나요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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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한아뿐>을 읽고 정세랑 작가가 궁금해 이 책을 읽었다. 장편에 비해 단편은, 작가가 각 단편에 흩어버린 생각들을 하나하나 주우며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책의 처음에 있던 <웨딩드레스 44>나 책의 말미에 있는 <이혼 세일> 등은 결혼과 이혼에 대한 작가의 관점을 보여준다. 웨딩드레스가 다양한 사람들의 손을 거쳐가면서 그들의 사연을 소개하거나, 이혼을 결심한 후 친구들을 불러 집안의 가재도구들을 싼 값에 판매하는 이야기를 통해 결혼이라는 형식 뒤에 숨어 있는 여성들의 사연과 결혼이라는 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지금 시대의 여성들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인지를 은근한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본다.


한편, 누군가의 습격을 당해 사망한 여성이 뱀파이어가 된다는 설정의 <영원히 77 사이즈>, 잘린 귓바퀴 끝이 계속 과자로 재생된다는 설정의<해피 쿠키 이어>, 선배들의 비급서를 얻어 소환한 남편이 사람들의 절망적 감정을 빨이들이며 산다는, 이 소설집의 제목이기도 한 <옥상에서 만나요>에서는 비현실적인 판타지와 같은 요소를 끌어낸다. 아마도 <지구에서 한아뿐>과 이러한 소설들이 같은 집합에 속하지 않았나 싶다. 


기대한 것처럼 다양하고, 기발한 상상을 접할 수 있었지만, 그 저변에는 이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 외국인, 비주류 등 소외된 이들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엿보인다. 그렇기에 작가는 현상이 아닌 그 현상이 발생한 이유에 대한 설명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이 책의 마지막 작품인 <이마와 모래>에서의 대식국 사람들과 소식국 사람들 사이의 오해가 빗어내는 이야기들은, 이 모든 현실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계속적으로 소통을 시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 드레스는 2013년 7월, 캐나다데이 세일 기간에 밴쿠버의 작은 창고에서 픽업되어 한국으로 수입되었다.

여자는 고전문학 전공자였는데, 고전문학 속 영웅들이 대다수 고아인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고아들만이 진정으로 용감해질 수 있다고 말이다. - 15

“가장 행복한 순간에도 기본적으로 잔잔하게 굴욕적이야. 내 시간, 내 에너지, 내 결정을 아무도 존중해주지 않아. 인생의 소유권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넘어간 기분이야.” - 18

친척도 친구도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래서 이민을 가는 걸까? 눈을 뜨면 모르는 사람들로만 가득한 도시였으면 했다. - 25

여자의 친척이 성당에서 하는 예비부부 수업을 추천했고, 곧이어 남자의 친척이 절에서 하는 수업을 추천했다. 종교가 없는 여자는 당황스러웠다.
“네? 결혼을 절대 안하실 분들이 결혼에 대해 하는 말을 들으러 가라고요?” - 26

“내 말은 그런 시간들이 계속, 평생에 걸쳐 쌓인다는 거야. 쌓이다 보면 큰 차이가 나는 거고. 생각해보면 이상하지 않아? 당신 할아버지 제사잖아? 난 만난 적도 없는 분이야. 왜 효도를 하청 주는데?” - 30

물이 새는 다리미가 인생에 대한 은유처럼 느껴졌다. 눈물 방지 테스트를 통과한 인생입니다, 그런 스티커가 붙어 있어도 끝내는 울게 된다. - 35

어딜 가도 보이는 부분만 달콤할 거라고 생각해. (...) 아, 휴지기를 모르는구나. 반죽을 잘 식히지 않으면 구멍이 나. 처음 일하기 시작했을 때 구멍을 몇 개나 냈는지 몰라. 단계마다 15분씩 냉장고에서 식히지 않으면 축축 늘어져서 백퍼센트 구멍이 나버려. 적당히 차가운 곳으로 도망쳐 잠시 숨을 고르는 것, 거기서 얻는 것들은 분명히 있어. - 64

“솔직히 역사는 그 순간을 살았던 그 사람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해. 그러니 전근대사는 무기로 쓰면 안되고, 근현대사에 있어선 더 철저하게 책임을 져야겠지. 민족주의자 말고 각자 나라에서 좋은 시민들이 되면 지금과는 다를 거야.” - 83

하지만 따지고 보면 백 퍼센트 도피 아닌 결혼이 어딨겠어? 여자들에겐 언제나 도망치고 싶은 대상이 있는걸. - 105

너라면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모든 사랑 이야기는 사실 절망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 116

“되게 바보 같은데, 사랑받는 기분이다? 클라이언트들한테 좋은 반응을 얻거나 무서운 윗사람한테 칭찬을 들으면, 프로답지 않게 갑자기 눈물이 글썽 고여. 나는 사랑도 꽤 받고 컸는데 왜 하필 그런 순간들에서 충족감을 느낄까? 미쳤나봐. 고장났나봐.” - 128, 129

“회사는 악독하지만, 어떨 때는 갑옷이기도 하잖아. 조직 밖의 사람들은 아무런 보호장비도 없이 혼자 세상이랑 싸운다고.” - 130

그런 사람이라 좋아했으니까,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주기로 마음먹는다. 상당한 의지력이 필요하다. - 203

“그냥, 결혼이 부동산으로 유지되는 거란 생각을 했어. 도무지 감당이 안되는 금액의 집을 사고, 같이 갚으면서 유지되었을 뿐인게 아닐까. 그래서 한동안 동산만 가지고 살아보고 싶어서.” -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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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 관내분실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 + 마지막 로그 + 라디오 장례식 + 독립의 오단계
김초엽 외 지음 / 허블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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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라는 장르가 현재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과학기술에 관한 지식을 열거하거나 우리 밖의 외계에 관한 상상력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편견을 깨준 작품이다. SF도 결국 문학이고, 문학에는 인간의 생과 사에 대한 사유가 깃들기 마련이므로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SF란 결국 다가올 미래의 우리들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과도한 설정이나 명확하지 않은 문장들로 흡입력을 방해하는 작품들도 몇몇 있었고, 흔히 접하는 암울한 미래상이나 안드로이드, 인공지능과 관련된 소재들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6편의 작품을 읽으면서 김초엽의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단연 독보적 작품이라는 생각을 했다. 임신 후 되돌아보는 부모에 대한 이해, 불가항력적으로 저 먼 우주로 떨어진 가족에 대한 감정을 SF라는 장르를 통해 이렇게 풀어낼 수도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관내분실인 것 같습니다.˝

상처 입히고, 다시 사과하고, 또 상처를 주고, 다음 날에는 없었던 일처럼 행동하는 그 모든 것이 다 지긋지긋했다. 사랑한다는 말은 면죄부를 주지 않는다. - 33

“나는 내가 깨어 있는 만큼만 살아 있었다네.” - 90

“동결은 대가 없는 불멸이나 영생이 아니야.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눈을 뜨는 순간이 있어야 하고, 그때마다 나는 내가 살아보지도 못한 수명을 지불하는 기분이 들지.” - 94

“예전에는 헤어진다는 것이 이런 의미가 아니었어. 적어도 그때는 같은 하늘 아래 있었지. 같은 행성 위에서, 같은 대기를 공유했단 말일세. 하지만 지금은 심지어 같은 우주조차 아니야. 내 사연을 아는 사람들은 내게 수십 년 동안 찾아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네. 그래도 당신들은 같은 우주 안에 있는 것이라고. 그 사실을 위안 삼으라고.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 95, 96

기운을 내기 위한 에너지바, 미세먼지를 피하기 위한 마스크, 지각하지 않기 위한 무인자동차 카풀... 목적과 용도가 분명하다 못해 절박한 것들로만 이뤄진 이 일상에, 꾸역꾸역만큼 어울리는 부사가 또 있을까. - 147

동면에 들어간 늙은 곰처럼 사회적 활동을 최소화하면서 사이버 공간 방문도 줄여나갔다. 단조롭던 일상은 고즈넉함을 넘어 적막해졌다. 스마트 기기에 몰두한 모두가 오직 네트 안에서 ‘소통’하고 있었다. 고삐 풀린 광기에 휩싸인 세상이라지만 네트 밖에서는 그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네트 밖에는 세상이 없었다. - 148

살아야겠다는 욕구라는 게, 죽겠다는 결심보다 쉽고 당연해야 하잖아요. 노을이, 하늘이 예쁘네요, 함께 볼까요, 누군가 매일 같은 시간에 권해주기만 해도 살아지는 게 하루하루니까. - 154

숫자와 그래프들이 내 인생을 정의하고 분석하는 장관이 끝없이 이어졌다. 그 어떤 지옥도 매끈한 숫자와 반짝이는 그래프를 거치면 어디든 웬만해 보이겠다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특별히 남루한 인생도 유난히 대단한 존재도 없었다. - 156

중학교 때였을까, 빛이 별을 떠나 우리의 눈에 도착하기까지 몇백, 몇천, 몇만 년. 어떤 별은 그사이 소멸했을지도 모르기에 모든 빛이 떠나온 곳의 현재 존재를 증명하진 않는다는 걸 배웠을 때 밤하늘은 슬픔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더 나이를 먹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지금은 같은 우주에 존재하지 않는 별의 존재를 이렇게 멀리 있는 내가 알아볼 수 있다니, 그게 바로 기적이었다. 그리고 이젠 그 밤하늘에 무한한 가능성이 가득했다. 의식을 가진 존재를 지구 밖에서 발견한 적 없다지만, 어쩌면 저 숱한 별 중 하나는 지금쯤 새로운 의식을 탄생시키려는 여정을 시작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 164,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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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경 지음 / 들녘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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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남아 있는 생애가 숫자로 보인다는 설정은 <데스노트>에서 라이토가 자신의 남은 생애 절반을 주며 바꿀지를 고민했던 능력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설정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펼쳐보인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있으면 좋을 것 같은 특별한 능력이 실상은 자신의 삶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을 삶과 죽음에 대한 사건을 통해 작가는 보여준다. <작가의 말>에서 언급했듯이, 이러한 작업의 동기가 모친의 죽음에 대해 아무런 징후도 몰랐던 스스로가 괴로워 무언가를 알고 있는 인물을 창조했지만, 막상 글을 쓰면서 그 앎이라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이었다는 깨달음이 진솔하게 다가온다. 특별한 무언가를 꿈꾸지말고 불가항력을 즐겨야 겠다. 내일을 모르고 살아야 오늘을 더 진실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덧 

1. 제목의 '빽넘버'는 본문에서는 '백넘버'로 표기되어 있다. 제목에서만 된소리로 강조한 의도를 모르겠다.

2. 차례에 보면 각 10개의 장마다 1. 9, 2. 21, 3. 27, 4. 43, 5. 59... 등의 숫자가 있다. 처음에는 이 숫자들이 백넘버와 관련된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서 본문의 내용과 숫자를 유심히 살폈는데... 그냥 쪽수였다. 

3. 본문의 1/3을 주인공인 원영이 어떻게 그 능력을 갖게 되는지 설명에 할애하는데, 뒷부분의 전개 분량에 비해 앞의 내용이 너무 많아 아쉬웠다.

주택가의 원룸촌은 길 찾기가 어렵다.

사실 ‘대체로’는 퍽 무책임한 단어다. 무엇을 주장하고 싶은 사람들은 그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몇몇이 제기할지도 모르는 반론을 슬쩍 비켜가기 위해서 ‘대체로’라는 표현을 쓴다. ‘내가 언제 다 그렇다고 했어?’라는 뜻이지만 속으로는 ‘글쎄, 다 그렇다니까. 아니라면 네가 별종인 거지.’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 10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인생에서 단 하나 확실한 것은 죽음뿐이다. 생명은 유한하고 사람들은 하루하루 죽어간다. 모두들 그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잘도 모르는 체하면서 살고 있다. 어째서일까 그때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죽음이고 가장 불확실한 것은 죽는 때이다. 그런데 나는 바로 그때를 알고 있다. 나에게는 모든 것이 확실하다. - 22

사실은 ‘어째서?’가 가장 어이없는 물음이다. 어째서라니. 세상에 뚜렷한 이유가 있는 일이 몇 가지나 될까? 사람들은 대부분의 인간사가 원인과 결과가 있는 일이라고 믿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게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생각인지 알게 될 것이다. - 25

살면서 겪는 중요하고 결정적인 일들에는 대부분 이유가 없다. 그냥 그렇게 되는 것이다. 나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어째서 그렇게 되었는지 수천 번 수만 번 생각하고 돌이켜보았지만 이유는 전혀 알 수 없다. 다만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는지는 기억할 수 있다. - 25

나는 내가 갑자기 모두의 걱정거리가 된 것이 싫었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더할 나위 없이 불쌍한 처지가 된 것이 싫었다. 혈연 간의 사랑과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는 착취가 싫었다. 그 관계에서 감정이 소모될 것이 싫었다. 다행히 우리에겐 돈과 서비스의 맞교환이라는 산뜻한 대안이 있다. - 72, 73

알고 싶지 않은 것을 안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다른 사람과 내가 아주 많이 다르다는 것은 저주에 가까운 일이다. - 84

망설이는 건 망설일 만하니까 망설이는 것이다. 다음부터는 할까 말까 망설여지는 일은 안 하는 쪽으로 결정하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 112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삶의 길이가 아니라 삶의 질이다. 소식하고 단식하는 일은 내가 살고 있는 오늘, 내 몸이 더 가볍고 경쾌하기를 바라서이지 하루 더 살기 위해서가 아니다. - 127

확률은 확률에 불과하다. 개인에게는 확률이란 이진법의 세계다. 내가 해당하느냐 아니냐, O냐 X냐 둘 중 하나뿐이다. 번개에 맞을 확률이 0.0001퍼센트여도 내가 번개에 맞았다면 그것은 의미없는 숫자가. 확률은 집단을 대상으로 했을 때만 유용하다. 개별 존재의 입장에서 보면 확률은 아무 의미도 없다. 안전벨트를 안 맸어도 음주운전을 했어도 졸음운전을 했어도 12차선 도로 위에 드러누워 있었어도 살면 사는 것이고 죽으면 죽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래도 나는 안전벨트를 맨다. 확률에 기댄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믿을 수 있는 것이 없어서다. 확률에 기대지 않는다면 남는 건 부적뿐이니까. - 152

미래가 가진 권력이란 대단해서 지금의 모든 것이 자신에게 복무하도록 만든다. 이다음을 위해 지금 가지고 있는 시간, 돈 에너지를 몽땅 바치도록 만든다. 지금 가질 수 있는 행복까지 유보하도록 만든다. - 188, 189

모든 것은 시스템이 결정한다. 시스템은 시스템 자체를 위해 존재한다. 시스템은 유지가 유일한 목적이다. - 220

나는 교훈을 얻었다. 삶에 유일한 축복이 있다면 그것은 무지다. 그날을 알지 못하는 것. 보지 못하는 것. 그리하여 선택할 수도 없는 것. 나의 백넘버를 알게 되는 순간, 나는 또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죽음을 알면서도 그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갈 용기 따윈 없기 때문에 나는 아마도 몇 번이고 누군가를 죽일 것이다. 죽을 때까지 나는 무엇이 나를 그 길로 이끄는지 두려워하며, 의심하며, 불안해하며 살 것이다.
내 백넘버를 볼 수 없다는 것이 유일한 나의 구원이다. 나는 모르고 살 것이다. 그래서 우연히 그리고 갑자기 불가항력적으로 죽을 것이다. 불가항력이 주는 자유를 맘껏 누릴 것이다. - 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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