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소 포비아 - 러시아 혐오의 국제정치와 서구의 위선
기 메탕 지음, 김창진.강성희 옮김 / 가을의아침 / 2022년 1월
평점 :
품절


1. 들어가며

 

러시아.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영토를 가진 나라다. 동쪽 끝과 서쪽 끝의 시간 차가 11시간이나 차이가 나는 나라며,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필자는 러시아를 두 번이나 여행했다. 한번은 군대에 입대하기 전인 2016년에 했고, 다른 한 번은 202512월 말과 올해 1월 초였다. 2026년 새해를 수도 모스크바에서 맞이했다. 필자가 러시아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된 것은 10대 시절 제2차 세계대전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면서부터도 있지만, 대학시절 마르크스와 레닌의 저작을 읽으면서 본격적으로 러시아의 역사를 공부하게 됐다. 그러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졌고, 이 전쟁은 필자가 러시아에 대해 다시 보게 되는 기회를 제공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필자는 한국과 서구 언론이 러시아에 대해 어떻게 악마화하는지를 제대로 알게 됐다. 러우전쟁 6개월 전 아프가니스탄에서 명분 없는 침략전쟁을 하던 미국이 정작 전쟁에서 패배한 지 6개월 만에 러시아에 맞서 제재를 하는 기이하고 황당무계한 상황은 필자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무엇보다 미국이 20세기에 저지른 수많은 전쟁들 속에서 미국이 얼마나 많이 전쟁에 개입하여 인명피해를 초래했는지를 필자는 잘 알고 있기에, 그런 미국이 러시아를 제재할 권리가 있는지가 의심이 됐다. 안타깝게도 한국 사람들은 미국이 주장하는 반러 내러티브를 비판 없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나 또한 그랬던 것 같다. 10대 시절 좋아하는 게임을 통해 반러 내러티브에 큰 문제의식을 못 느꼈던 게 아닌가 싶다. 이런 생각을 나중에서야 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좋은 책 하나를 읽게 됐다. 바로 기 메탕의 저서 루소포비아 러시아 혐오의 국제정치와 서구의 위선이다.

 

우선 필자가 즐기던 게임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2. 루소포비아와 FPS 게임 Call of Duty

 

우리 지도자라는 작자들이 우리를 서방에 팔아넘겼다. 우리의 문화...우리의 경제...우리의 명예를 파괴했다. 우리의 피가 우리의 땅에 흘렀다. 내 피가...저들의 손에. 저들은 침략자다. 모든 미군과 영국군은 당장 러시아를 떠나라. 그렇지 않으면 대가를 치를 것이다.”

 

러시아는 유럽 전체를 정복하게 될 것이다. 설령 그게 잿더미 위에 서게 될 수밖에 없는 일이라 해도 말이다. 나는 발사 코드를 원한다. 대통령.”

 

위의 대사는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FPS 게임인 콜오브듀티 모던워페어 시리즈(Call of Duty: Modern Warfare Series)에서 악역이 한 대사다. 첫 번째 대사는 2007년에 나온 모던워페어 1의 최종 보스인 이므란 자카예프(Imran Zakhaev)가 한 대사고, 두 번째 대사는 모던워페어 3의 최종 보스인 블라디미르 마카로프(Vladimir Makarov)가 한 대사다. 대사를 보면 알겠지만, 최종 보스들의 국적은 두말할 것도 없이 러시아다. 게임 상에서 묘사된 러시아는 미국과 영국을 싫어하는 존재고, 또 유럽 전체를 피로 물들여서라도 정복하려고 시도하는 주체다. 세계적인 게임회사인 인피니티 워드(Infinity Ward)가 만든 이 게임은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 장의 누적 판매량을 자랑했다.

 

이처럼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린 게임이지만, 게임 속에는 서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러시아에 대한 편견이 거리낌 없이 들어가 있다. 게임 상에서 항상 주인공은 영국의 SAS 특수부대이거나 미정규군 아니면 레인저 대대나 델타포스와 같은 미군 특수부대다. 이들이 상대하는 적은 당연히 침략적이고 호전적인 러시아군이며, 러시아군은 자국 내에서도 주민들을 함부로 학살하고 괴롭힌다. 그리고 전쟁광적인 지도자인 이므란 자카예프를 지지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심지어 2009년 작인 모던워페어 2의 경우, 앞서 언급한 블라디미르 마카로프가 모스크바 공항에서 미국인으로 위장한 뒤 미국제 무기로 민간인 학살 테러를 벌여, 러시아가 미국에게 선전포고하고 미국 동부 지역을 침략하도록 만드는 장본인으로 그려진다. 게임에서 주인공이 있는 레인저 대대의 목표는 러시아가 침공하여 점령한 워싱턴을 해방하는 것이다. 게임상에서 워싱턴을 러시아군으로부터 해방하고 나서 나오는 대사는 미국과 서방이 러시아에 대해 얼마나 적대적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해당 대사를 보자.

 

레인저 병사: 우리는 언제 모스크바로 쳐들어갑니까?

 

던 상병: 당장은 아니겠지만, 우리가 도착하면 거길 불태워버릴 거다.”

 

이처럼 게임 상에서 묘사되는 러시아는 서방이 타도해야 할 매우 나쁜 존재다. 여담이지만, 사실 2007년과 2009년 그리고 2011년에 나온 모던워페어 시리즈는 필자가 10대와 20대 시절 정말 열심히 즐겼던 FPS 게임이었다. 필자 또한 어린 시절 이 게임의 캠페인 시리즈를 수도 없이 플레이했고,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멀티플레이도 신물이 나도록 했다. 캠페인 시리즈의 난이도는 플레이어가 쉬움, 보통, 어려움 그리고 가장 고난이도인 베테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필자는 20대 초반에 해당 시리즈들을 전부 베테랑 난이도로 클리어했다. 그 당시 콜오브듀티를 즐기던 필자는 게임을 하며 이런 루소포비아적인 논리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콜오브듀티 모던워페어 시리즈 뿐만 아니라, 2010년 미소냉전을 다룬 FPS 게임인 콜오브듀티 블랙옵스(Call of Duty Black Ops) 또한, 여지없이 러시아의 전신인 소련에 대해 지극히 악마화된 프레임으로 해석한다. 게임 상에서 소련 측 최종 보스인 니키타 드라고비치(Nikita Dragovich)에 대해 레즈노프(Reznov)라는 주인공 알렉스 메이슨(Alex Mason)이 만든 환영 속 존재는 다음과 같은 대사를 한다.

 

드라고비치는 서방 세계에 대한 공격을 계획하고 있어. 그를 반드시 막아야 해! 메이슨.”

 

콜오브듀티 모던워페어 시리즈와 블랙옵스는 미국에서 만든 게임이다. 사람들은 이 게임을 아무런 생각 없이 즐긴다. 물론 필자 또한 이 게임들을 수도 없이 즐겼다. 그러나 나중에 공부하면서 이와 같은 게임에 들어간 내용들이 러시아에 대한 서구의 편협하고 왜곡으로 점철된 내러티브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처럼 러시아에 대해 루소포비아(Russophobia)적 시각에서 매체를 만들어 내고, 또 편견을 조장하는 존재는 누구일까? 바로 서구 사회다. 서구 사회는 오랜 시간 동안 러시아에 대해 편견의 눈으로 바라보았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이와 같이 서구의 뿌리 깊은 러시아에 대한 혐오와 편견 그리고 위선을 분석한 책이 바로 메탕(Guy Mettan)의 저서 루소포비아 러시아 혐오의 국제정치와 서구의 위선이다. 게임에 대한 얘기가 길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책의 주제인 루소포비아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3.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루소포비아 그리고 한국

 

2022224일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정부가 특수군사작전을 개시하며 전쟁이 시작됐다. 물론 전면전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보게 되는 지점들이 분명 있다. 그러나 이 전쟁의 본질은 단순히 2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것에 있지 않았다. 미국과 서방 사회는 2013년 푸틴과 친한 우크라이나의 빅토르 야누코비치(Victor Yanukovych)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유로마이단(Euromaidan) 시위를 조장했고, 결과적으로 야누코비치 정권을 전복하고 포로셴코(Poroshenko)가 중심이 된 친서방 정권을 만들었다. 러시아 정부는 이 과정에서 대다수 주민이 러시아 정체성을 가진 크림 반도를 주민투표를 통해 합병했다. 포로셴코 정권은 정체성이 러시아계인 동부 우크라이나에서 자국 주민을 대상으로 한 전쟁을 개시했고, 이것이 바로 돈바스 내전(Donbass Civil War)이었다.

 

유로마이단 시위 당시 미국은 우크라이나 네오나치 극우세력들을 지원했고, 돈바스 내전 시기에도 네오나치 집단을 정규군대로 양성했다. 이게 바로 우크라이나 네오나치 군대인 아조프 대대(Azov Battalion)의 시작이었고, 이들의 전신은 우크라이나 오데사에서 방화사건을 일으켜, 민간인 50명을 산 채로 불태워 죽이는 민간인 학살 만행을 저질렀다. 이들의 학살은 동부에서 8년간 지속되었고, 무려 15,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포로셴코 이후 집권한 젤렌스키(Zelensky) 또한, 돈바스에서의 이런 잔혹한 전쟁을 진행했고,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지속적으로 러시아와 약속한 민스크 협정을 위반하며 돈바스에 여러 차례 포격을 날렸다. 이해영 교수가 집필한 우크라이나전쟁과 신세계질서에 따르면, “2022216일부터 돈바스에 대한 우크라이나군의 포격이 시작됐다. 216509회의 정전 위반과 316회의 폭발음이 있었다. 217일부터 22일까지의 기록을 보면, 17일에는 870회의 정전 위반, 654회 폭발음, 181,566회 정전 위반, 1,413회 폭발음, 19~203,231회 정전 위반, 2,026회 폭발음, 211,927회 정전 위반, 1,481회 폭발음, 221,710회 정전 위반, 1,420회 폭발음이 기록됐다.” 이와 같은 통계는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도발했다는 근거 중 하나다. 이와 관련된 내용들은 이해영 교수의 저서를 참고하면 좋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자, 서방 사회는 러시아에 대한 비난의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 러시아가 침공한 날 당일부터 한국과 미국 그리고 서유럽의 언론에서는 러시아의 폭력성과 공포성을 자극하는 기사들을 도배되기 시작했다. 시작 2~3일도 안 되어 러시아와 푸틴을 비난하고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시위들이 열렸다. 한국에서도 열렸다. 한국에서는 정의당·녹색당·노동당과 같은 진보 계열 단체들이 시위를 주도했다. 페미니스트 운동 단체, 전쟁없는 세상과 같은 평화주의 단체, 심지어 한국의 독립운동을 기억하는 흥사단과 같은 단체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동물권 운동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논리는 매우 단순했다. 러시아는 침략자니까 나쁘고, 침략당한 우크라이나는 피해자라는 것이다. , 이 사건이 왜 일어났고, 왜 이런 극단적 상황으로 이어졌으며, 자신들이 응원하는 우크라이나의 문제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보지 않으려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런 점에서 기 메탕의 저서를 옮긴이가 옮긴이의 말에 쓴 다음과 같은 내용은 매우 공감된다.

 

한국에서 러시아는 과장 과소평가되고, 왜곡된 이미지를 가진 나라의 하나다. 러시아를 여전히 '소련'과 동일시하는 기성세대가 다수이다. 냉전 체제 하에서 한국전쟁의 경험과 남북분단체제의 지속, 그리고 지속적인 반공 교육의 효과일 것이다. 압도적으로 서구 담론의 영향을 받는 언론인과 지식인, 정치인, 외교관의 대다수는 러시아가 주요한 국제정치 행위자가 아니거나 국제정세의 안정을 해치는 나라로 여긴다. 예컨대, 영미권과 서유럽에서 나오는 프로파간다성 정보가 의심 없이 진실로 여겨지고 러시아에서 나오는 사실 발표가 오히려 프로파간다로 치부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서구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자주 그런 상황이 지속되어 왔는가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한국이 여전히 유아적인 세계 인식, 국가이익 개념에 대한 무지라고 할 정도로 편견의 장벽에 갇힌 나라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모스크바에 대한 서울의 태도이다. 서구가 조장한 러시아 혐오증에 자신도 모르게 오랫동안 중독된 상태로 지내온 탓일 것이다. 이런 중독증은 이른바 보수우익 인사들만이 아니라 진보를 자처하는 자유주의자들의 경우에도 심하게 나타난다. 여기에는 역사적으로 한반도에서 현상유지 정책을 선호하고 여전히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적극적으로 알리는데 소극성을 보이는 러시아 당국의 태도 또한 한몫하고 있다.”

 

기 메탕, 김창진ㆍ강성희 옮김, 루소포비아 - 러시아 혐오의 국제정치와 서구의 위선, 가을의아침, 2022, 12~13.

 

옮긴이의 말처럼 한국 사회는 진보와 보수 할 것 없이 러시아에 대해 이런 편견에 빠져 있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러시아에 대해, 그리고 서구가 퍼뜨린 러시아에 대한 왜곡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사회적 영향으로 한국 사회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구의 반러시아 프로파간다가 손쉽게 먹히는 풍토가 더욱 강화됐다. 박근혜 탄핵 정국을 통해 등장한 한국의 문재인 정권은 집권 말기, 서방을 따라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동참했고, 이후 탄생한 윤석열 정권은 아예 대놓고 폴란드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K-9 자주포와 같은 무기들을 제공했다. 그리고 그 무기들은 우크라이나 군대가 러시아군을 죽이는 데 이용되었다. 만약 윤석열이 비상계엄으로 탄핵되지 않았다면, 북한의 우크라이나 파병을 빌미로 한국의 군대를 우크라이나에 파병하려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었다면, 남북한은 아마도 우크라이나에서 대리 전쟁을 치렀을 것이다. ‘월드리딩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박상후의 말처럼, “2024년 윤석열 탄핵안 가결로 인해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파병하지 않게 된 것은 천운이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한국의 진보들 또한, 러시아에 대한 편견이 강하다. 지난 2025년 진보단체 전쟁없는 세상에서 번역한 스웨덴 비폭력 평화운동가 마이켄 율 쇠렌센의 저서 전쟁 없는 세상 - 비폭력의 의미를 묻는 당신에게의 초반부를 보면, 한국의 진보들에게도 반러시아적 내러티브가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쇠렌센은 비폭력 저항을 위한 준비는 러시아의 전면적인 침공이 있기 전인 2014년 러시아가 돈바스와 크림반도를 점령했을 때부터 시작되었어야 합니다.”라고 말하는데, 이 부분은 소위 진보라 불리는 일부 인사들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얼마나 본질적인 부분을 못 보는지를 보여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기 메탕의 저작을 인용하겠다.

 

우선 러시아가 돈바스를 그 당시 점령했는가를 보자면 다음과 같이 대답할 수 있다.

 

도대체 어째서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 주민들이 서부 우크라이나인들처럼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부정해야 하는가? 더군다나, '마이단 파'가 권력을 장악하고서 그들의 언어와 그들 자신의 생존이 위협받는 사태가 발생했는데도 말이다.”

 

기 메탕, 김창진ㆍ강성희 옮김, 루소포비아 - 러시아 혐오의 국제정치와 서구의 위선, 가을의아침, 2022, 44.

 

, 그 당시 돈바스는 돈바스 사람들이 우크라이나 마이단에 맞서 저항한 것이었다. 이어서 기 메탕은 서구 사회가 크림 반도 합병에 대해 어떻게 왜곡하는지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서구는 마이단 시위 참가자들에 대한 우크라이나 나치 우익분자들의 저격, 221일 합의 위반, 222일 쿠데타, 52일 오데사에서 발생한 유혈 폭력, 우크라이나 동부 주민들의 모국어 및 문화에 대한 권리 침해, 세바스토폴 해군기지를 우크라이나 정부가 나토에 제공하겠다는 약속, 우크라이나를 지나는 러시아 가스관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이 가스를 절도한 사건, 말레이시아 항공기의 격추 주체가 전혀 밝혀지지 않은 상황, 제네바 협약을 위반하고 돈바스 민간인 지역을 폭격한 사건, 친미 우크라이나 정권에 대한 미국의 대규모 군사지원과 같은 일들이 모두 실제 일어나지 않은 허구이며, 러시아의 선동인 것처럼 군다. 이러한 조작 기술을 쓰는 목적은 바로 러시아가 이 모든 행위를 시작했다고 세계가 믿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사실 그들이 원하지도 않고, 예견할 수도 없었던 사건에 대해 반응했을 뿐인데 말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서구 평론가들과 지도자들은 우크라이나 위기가 우크라이나의 러시아어 사용 지역에서 러시아의 공식 사용을 금지한 키예프 임시 정부의 명령에 의해 야기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크림과 돈바스가 결국 이 명령 때문에 돌아선 것이 아닌가? 이런 상황이 러시아 혐오주의자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들이 우크라이나 위기가 시작된 진짜 이유로 거슬러 올라가 설명하게 되면 결국 우크라이나로부터 크림반도와 동부 지역 분리가 정당화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여론조작의 기술자들이 정성들여 잘 만들어놓은 우크라이나 사태 이론이 카드로 만든 집처럼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이렇게 사실 왜곡을 감행하지 않는다면, 전통적인 러시아 팽창주의와 소비에트 제국을 복원하려는 푸틴의 꿈이 문제의 근원이지 서방의 지원을 받는 우크라이나의 정책 때문에 위기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해명을 어떻게 대중에게 각인시킬 수 있겠는가? 바로 이런 방법으로 서구 언론은 끊임없이 역사를 다시 썼고, 서방 정부를 가득 채우고 우크라이나의 새 정부에게 조언을 해주는 홍보 전문가들 덕분에 20143월 이전, 즉 크림 반도 주민들의 자치에 관한 총주민 투표 이전에 발생한 사건에 관해 언급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서구 언론이 20142월 이전 사건들에 대해서 말하게 되면, 모든 것이 다 러시아 잘못이고, 크림에서 실시된 주민투표가 불법적이었다고 서구의 여론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되면 야누코비치가 주도한 쿠데타가 위헌이고, 프랑스ㆍ독일ㆍ폴란드 외교장관이 공동서명한 221일 자 합의는 그저 넝마조각이었을 뿐이며, 우크라이나 선거 자체는 군사쿠데타로 세워진 불법적 정부에 의한 국제법 위반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어떤 대령이 거리 시위대의 지원을 받아 권력을 잡는다면, 그는 신속하게 병영으로 돌려보내질 것이다. 하지만 서구의 중대한 이해관계가 걸린 우크라이나에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기 메탕, 김창진ㆍ강성희 옮김, 루소포비아 - 러시아 혐오의 국제정치와 서구의 위선, 가을의아침, 2022, 56~58.

 

거기다 실제로 크림반도 주민들은 러시아로의 편입을 원했다. 2014316일에 러시아에 의해 실시된 크림반도의 주민투표에 대해 기 메탕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고상한 언론은 "크림의 자치에 대한 주민투표는 우크라이나 헌법과 국제법에 위배되고", 따라서 불법이라고 선언한 백악관의 견해에 기꺼이 동의했다. 크림 주민 95%가 러시아 연방의 일원이 되는 것을 찬성했다는 사실에는 서구의 그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우리 기자들이 자신의 직업적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려면 이 주민투표가 1991112일에 우크라이나 당국이 정당하게 합법적으로 조직한 이전의 투표 결과를 확인해 주었을 뿐이라는 것을 언급했어야 했다. 그때 크림 주민 81.37%가 주민투표에 참여했고, 투표 참여자의 94.3%가 독립적인 크림공화국의 복구 및 고르바초프가 제안한 새로운 연방조약에 대한 서명을 지지했다.”

 

기 메탕, 김창진ㆍ강성희 옮김, 루소포비아 - 러시아 혐오의 국제정치와 서구의 위선, 가을의아침, 2022, 110.

 

필자는 이와 같은 기 메탕의 분석에 상당 부분 동의한다. 따라서 앞서 얘기한 쇠렌센의 분석은 이런 사실관계를 알면 나올 수 없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언론들과 한국의 반러시아적 감정을 가진 이들은 이런 사실을 보지 않으려 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필자는 20248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영토 쿠르스크를 침공했음에도 여기에 대해 지적하는 이른바 신좌파 계열 진보운동이 한국에서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 상당히 모순적으로 느껴졌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보여주는 문제점들은 한국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4. 프랑스-영국-독일-미국의 루소포비아와 역사

 

기 메탕의 책은 본서가 2016년에 나왔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는 2016년 이전까지의 내용만 다루고 있다. 그 점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기대하고 본 사람이라면, 아쉬울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이 책의 장점은 우크라이나 사태 분석과 더불어 다른 곳에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책에서 다루는 루소포비아의 역사적 측면이다.

 

저자는 루소포비아의 역사적 기원을 추적하기 위해 프랑스, 영국, 독일, 미국의 루소포비아를 분석했다. 우선 프랑스의 루소포비아부터 이야기해보자. 18세기 당시 러시아를 편견 없이 본 일본 선장 다이코쿠야 코다유의 이야기는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른 분석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기 메탕에 따르면, 코다유는 배가 좌초되어 승객들과 함께 알류산 열도의 섬 한 곳에 상륙했고, 거기서 러시아 사람을 만나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의 여행을 하게 됐다. 예카테리나 2세도 만났다고 한다. 코다유는 일본으로 돌아갈 것을 허락받기 전까지 페테르부르크에서 여러 달 동안 살았으며, 러시아어까지 배웠다고 한다. 코다유는 기록을 남겼는데, 기 메탕의 표현을 빌려 얘기하자면 거기에는 프랑스인들이 부정적으로 인식했던 관습과 행정 제도, 자연, 왕궁, 인민, 정치 생활, 매음굴, 음식, 술 등에 대해 그 어떤 판단이나 선입견 없이, 분명하게, 절대적으로 진실하게, 조금의 편견도 없이 구체적으로 묘사가 들어가 있었다. 같은 시기 프랑스인이 계속해서 상기시켰던 참을 수 없는 전제주의와 끔찍한 농노제, 중세의 고문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 부분을 보더라도 결국 기록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영국의 루소포비아도 흥미롭다. 저자에 따르면, 영국에서의 루소포비아는 19세기 초반이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영국과 러시아는 19세기 초 반불동맹 국가였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황제가 대륙 봉쇄령으로 영국의 해상 무역로를 봉쇄한 사실은 세계사를 조금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여기에 맞서 러시아는 영국과의 무역을 지속했고, 나폴레옹은 1812년 러시아를 침공했다. 비록 러시아는 모스크바까지 프랑스군에게 점령당했지만, 이후 동장군을 이용해 반불 연합군과 함께 진격하여 수도 파리까지 진격하여 나폴레옹을 축출했다. 그 당시 분명히 영국과 러시아는 동맹이었다. , 영국과 러시아는 함께 나폴레옹을 몰락시켰다.

 

그러나 영국은 빈체제 설립 25년이 안되어 러시아에 대해 적대적인 국가로 대응했다. 특히 1840년대 오스만 제국 문제와 이후 크림전쟁 등에서 러시아에 대한 영국의 루소포비아는 극에 달했다. 생각해보면, 1904년 러일전쟁에서도 영국은 10년 뒤 동맹이 될 러시아를 적대했다. 그 당시 영국은 일본을 지원하며, 러일전쟁에서 러시아의 주력함대인 발틱 함대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지 못하게 막았다. 결국 그렇게 해서 지구 반바퀴를 돌아 일본 해역에 간 발틱 함대는 대마도 인근 해역에서 일본 군함들에게 참패하게 됐다. 아무튼 영국의 루소포비아는 19세기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났고, 20세기와 21세기를 걸쳐 200년이 넘게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봐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러시아가 새로운 영토를 장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가장 놀라운 것은 1815년이나 1945년 모두 러시아가 일방적으로 새로운 영토를 장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쟁 전리품과 영향권의 할당 문제가 1815년에는 비엔나 회의에서, 1943-45년에는 테헤란, 얄타, 포츠담에서 오랫동안 논의되었다. 두 경우 다 러시아는 협상에 참여한 모든 당사국들이 서명한 협약의 조건을 세밀하게 준수했다. 2세기 전과 반세기 전에 발생했던 반러시아 정서의 강화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수많은 가설 가운데 공산주의자의 파괴적 활동과 러시아의 고유한 성질인 팽창주의를 통제할 필요성, 러시아 전제주의와 전체주의로부터 민주주의를 보호할 필요성, 그리고 기타 다른 이유들을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설명이라기보다는 변명에 가깝다. 그러므로 글리슨의 견해와는 달리 영국과 미국의 루소포비아는 주로 이들 두 나라의 제국주의적 야망과 세계 지배를 향한 불굴의 의지에 기인한다고 가정해야 한다. 이 나라들은 새로운 영토를 갈구하는 과거의 해양 강국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두 나라는 그들의 의지를 다른 민족에게 강요하려 해왔고, 지금까지도 강요하고 있다. 그들은 B-52 폭격기 또는 무인 항공기의 총포라는 외교를 이용한 군사 작전, 자유 무역을 도입하는 경제적 조치, ‘소프트파워자원을 동원하는 문화적 행보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기 메탕, 김창진ㆍ강성희 옮김, 루소포비아 - 러시아 혐오의 국제정치와 서구의 위선, 가을의아침, 2022, 280~281.

 

이 지점에서 필자는 도입부에서 언급한 콜 오브 듀티가 다시 떠올랐다. 게임 속 러시아는 현대 서구 대중문화가 소비하는 전형적인 악역 이미지다. 그런데 기 메탕의 분석을 읽고 나면, 이런 이미지가 단순한 창작적 설정이 아니라 훨씬 오래된 역사적 인식의 연장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저자는 러시아에 대해 제국주의로 분석하는 것 또한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그 비판적 분석의 핵심골자는 영국 제국주의자들이 1815~1900년까지 자신들의 소설과 논문에서 러시아 팽창주의와 싸우고 있는 동안 대영제국의 영토는 영국 자체의 20배를 초과한 반면, 그렇게 비난을 받았던 러시아는 베사라비아, 캅카스, 튀르게스탄, 만주를 이용해 국경을 둥글게 만들어 자신의 영토를 겨우 25% 늘렸을 뿐이라는 것이다. , 러시아와 서방의 영토 확장 속도의 격차는 1100이었다. 영국이 현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러시아 제국주의라고 비난하는 것은 이 시기의 역사를 놓고만 보자면, 그들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전혀 없음을 보여준다. 참고로 영국은 벵골만 대기근 300만 명을 포함하여, 1930~40년대 인도인 수천만 명을 굶겨 죽인 역사도 있다.

 

독일의 루소포비아 또한, 여러 역사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특히 독일의 루소포비아는 19세기 말에 나타났다. 특히나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루소포비아가 보다 강화됐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1차 세계대전을 통해 보다 형성된 루소포비아는 역설적이게도 독일이 패망한 이후 사라지지 않았다. 1920년대 독일에서 등장한 극우 민족주의 운동 즉 파시즘은 이를 강화했다. 나치당의 히틀러는 1924년에 출판된 자서전 나의 투쟁에서 이른바 레벤스라움이라는 논리를 만들어 냈다. 이것은 독일 민족이 러시아를 정복하여 게르만족의 생활공간을 확장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논리의 근간에는 영토확장과 더불어 인종주의와 반유대주의 그리고 반볼셰비즘이 탑재되어 있었다.

 

루소포비아의 인종적 측면이 극단화된 것이 바로 독일이었다. 1941년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을 때 그런 극단성이 실제 역사에서 나타났다. 히틀러의 홀로코스트 희생자 대다수가 소련계 유대인이었다는 점을 우리는 여기서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사실 1945년 나치의 절멸 수용소인 아우슈비츠를 해방한 군대는 소련의 붉은 군대였다. 그러나 2015년 아우슈비츠 해방 70주년에서 정말 말이 안 되는 역사 왜곡과 모욕이 폴란드에서 벌어졌다.

 

폴란드는 파시즘에 대한 승리에서 러시아의 역할을 과소평가하기 위해 역사를 다시 쓰려는 욕망이 너무나 강해서 2015127일 아우슈비츠 해방 70주년 기념 행사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초대할 생각조차 하지 않을 정도였다. 게다가 폴란드 외무장관 그제고즈 쉐티나는 파렴치하게도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우크라이나 군대에 의해 해방되었다고 주장했다. 이 행사에 참석한 유럽 국가 지도자 중 누구도 폴란드 지도부의 이러한 수정주의적 습격에 항의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기 메탕, 김창진ㆍ강성희 옮김, 루소포비아 - 러시아 혐오의 국제정치와 서구의 위선, 가을의아침, 2022, 321.

 

미국 또한 루소포비아가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미국의 루소포비아 역사는 1945년에서야 시작됐다. 그것은 냉전 기간 내내 자라나서 1950년대의 거친 매카시즘, 그리고 1980년대에 아주 잘 고안된 전체주의와의 투쟁이라는 테제로 점진적으로 변화했다. 21세기에는 반푸틴 논쟁에 맞춰 부활하게 됐다. 특히 미국의 경우,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과 동맹이었던 관계가 냉전 시기 급격히 적대 관계로 전환된 과정은 영국 사례와 상당히 유사하다고 본다. , 과거에는 협력했던 러시아가 새로운 국제질서 속에서 다시 위협으로 재정의되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책의 저자가 미국의 루소포비아를 잘 분석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선 책에서 한 가지 놓치는 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1917년 레닌이 일으킨 러시아 혁명이 성공하자, 미국 내에서는 이른바 적색공포가 확산됐다. 그리고 미국 내에서 확산된 적색공포는 1918년 미국이 러시아를 침공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1918~1921년까지 미국은 러시아 영토에서 백군을 지원하며, 볼셰비키의 군대와 전쟁을 치렀다. 이 부분에 대해 소련은 충분히 침략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적잖은 미국인들이 제1차 세계대전을 기억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110년 전 러시아를 침공한 사실은 기억하지 않는다. 여기서 가정을 해보자면, 만약 러시아가 미국의 영토를 침범한 사례가 있었다면, 과연 미국인들이 그리 무관심했을까? 필자는 1962년 소련이 쿠바 인근에 핵미사일을 배치한 것과 1941년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한 것, 그리고 20019.11테러가 일어난 것을 일반 미국인들이 역사에서 기억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이 러시아 영토에서 침략전쟁 그것도 부당한 황제 복권을 위해 전쟁을 치렀다는 사실은 잘 기억하지 않으려 한다. 그 점에서도 미국식 중심 사고가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을 해본다. 책이 이 부분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다소 아쉬웠다. 사실 미국은 자신들이 당한 20019.11 테러를 기억하지만, 정작 1973년 칠레에서 자신들이 주도한 9.11 테러는 전혀 기억하지 않고 있다. 이런 점에서 역사를 보는 시각도 매우 중요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5. 결론: 이 책은 러시아와 러시아에 대한 서구의 편견을 알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

 

지금까지 게임 콜오브듀티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서구 사회의 루소포비아 역사를 통해, 루소포비아와 책에 대해 설명했다. 콜오브듀티 자체는 책에 나오지 않은 내용이지만, 루소포비아를 설명하는 데 있어 좋은 소재가 아닌가 싶다. 이번에 책을 읽으며, 콜오브듀티를 수도 없이 플레이하며 보게 된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은 반러시아 내러티브씬이 지속적으로 생각이 났다. 적잖은 서구 사람들과 한국 사람들이 러시아를 인식하고 소비하는 이미지가 바로 그 게임이라는 생각이 책을 읽으며 들었다. 그리고 그런 루소포비아는 단순히 자본주의적 소비 매체를 넘어, 기나긴 세월을 통해 축적되었다.

 

특히나,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그런 이미지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얘기하지만, 정작 서구 사회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러시아의 전신인 소련을 자극하고자 벌인 행위들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사실 이 부분에서 미국과 서구 사회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해서도 얘기할 필요가 있다. 저자 기 메탕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다루며, 유로마이단의 본질을 제대로 보여줬다.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네오나치들이 서구의 지원을 받은 것과 마이단 시위에서 학살을 일으킨 사실 등은 이 책에 비교적 잘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미국과 서구의 이런 지원은 냉전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부분에 대해선 역사학자 구자정의 논문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간략히 말해, 미국은 냉전 초기 소련을 전복하고 사보타주하기 위해, 스테판 반데라와 같은 우크라이나 나치들을 이용하여 대소공작을 벌였다. 대소공작을 1950년대까지 벌이다 중단했다. 중단한 이유 중 하나가 소련이 서유럽을 침공하려는 조짐을 전혀 포착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은 우리가 냉전에서 소련과 러시아를 얼마나 미국의 프레임으로 이해하고 있었는지를 상기시켜 준다. 서구 사회는 이런 사실을 외면한 채, 콜오브듀티와 같은 프레임으로 러시아를 재해석해 왔다. , 역사왜곡을 저지른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이제 4년째로 접어들었다. 어찌 보면 독소전쟁보다도 더 길게 진행된 전쟁이다. 전쟁은 우크라이나의 패배로 끝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서유럽과 미국은 전쟁을 중단하려 하지 않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공화당의 트럼프보다 민주당 쪽이 오히려 이 전쟁을 계속 이끌어 나가려 한다. 미국과 서유럽이 왜 패배한 전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 이 부분에 대한 질문은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 부분에 있어서 확실하게 큰 요소 하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루소포비아적 정서가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영화 플래툰‘JFK’로 유명한 올리버 스톤은 작년 초 터커 칼슨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다음은 러시아가 폴란드를 침공할 것이다.”라는 말을 카말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가 했다고 비판했다. 스톤에 따르면 이것은 가장 멍청하기 짝이 없는 무지한 발언이다. 여전히 루소포비아는 서구 사회 전체를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이런 루소포비아의 기원과 본질 그리고 위선과 문제점을 알고 싶다면, 필자는 기 메탕의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책의 일독을 권하며, 긴 서평을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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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폴란드사
김용덕 지음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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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폴란드사 서평: 간략하게 읽어보는 폴란드 역사

폴란드(Poland). 아마 한국인들 중에 폴란드라는 나라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할 것이다. 필자가 폴란드라는 나라를 알게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 보다 세계사 만화책과 다큐멘터리를 접하면서였다. 아마 중1때였을 것이다. 독일의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는 내용을 접하면서 폴란드라는 나라의 이름을 기억하게 됐다.

10대 시절 내가 기억하는 폴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에게 가장 먼저 침공당해 먹혔던 나라였다. 아마 그 시절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수용소의 상징인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Auschwitz-Birkenau)가 폴란드에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것 같다.

폴란드에 대해 사실상 제대로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러다 1940년 카틴 대학살에 대해 대학생 때 알게 됐고, 전역 이후 복학한 다음 폴란드 자유노조에 대해 알게됐다. 2019년 홍콩 시위 당시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는 홍콩 시위를 강력히 지지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 홍콩 시위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내는 페친들도 볼 수 있었다. 해당 입장을 보니 폴란드 자유노조의 반혁명과 무엇이 다르냐는 글을 보게 됐다. 그때 처음 자유노조를 알게됐다.

이후 코로나 초기 미국의 영화 감독인 올리버 스톤과 역사학자 피터 커즈닉이 쓴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The Untold History of the United States)‘를 완독했고, 그 책에서 폴란드 자유노조가 CIA에게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한, 비슷한 시기 폴란드가 제2차 세계대전사를 반공주의적 시각에서 왜곡한다는 것도 알게 됐으며, 거기에 대한 반론 글을 운동권 단체에 기고한 적도 있었다.

필자가 폴란드를 직접가본 것은 2024년이었다. 바르샤바와 크라쿠프에 3일간 있었고, 거기서 바르샤바 봉기 박물관과 인민 생활 박물관, 아우슈비츠 수용소, 자유노조 박물관을 들렸다. 또한, 폴란드인들이 그리도 존경하는 유제프 피우수트스키의 동상과 관련 전광판과 팜플렛도 볼 수 있었다. 폴란드를 방문한 이후에도 사실 폴란드에 대해 제대로 공부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됐다.

필자가 이번에 읽은 책은 제목과 같이 폴란드사 책이다. 저자는 외대 폴란드어과 명예교수고 폴란드에서 역사학을 전공했으며 석박사를 거기서 취득했다. 일단 전공자가 자기 전공분야를 쓴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대중 눈높이에 맞춰 폴란드사 책을 집필했다. 설명체여서 이해하기 어렵지 않으며, 솔직히 중학생 정도만 되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폴란드 고대 역사부터 2016년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그러다 보니 현재 폴란드 지도자인 안제이 두다가 마지막에 언급되며, 세계최초로 쌍둥이 형제가 같이 대통령과 총리를 했던 카친스키 이야기도 나온다. 당연한 얘기지만, 저자부터가 폴란드의 역사학적 접근법에 익숙한 사람이고, 또 책에서 밝혔듯이 철저히 폴란드 역사 교과서적 시각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예를 들어, 소위 스탈린주의자라 비난받는 볼레스와프 비에루트에 대해 스탈린의 하수인으로 표현 하는 것과 바르샤바의 상징인 문화과학궁전을 소련 지배의 상징이라 비난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또 1944년 바르샤바 봉기를 이오시프 스탈린이 의도적으로 방치하여, 봉기군을 나치에게 학살당하도록 의도했다는 서술이나, 폴란드 자유노조를 미국의 레이건 정부가 적극지지한 것과 얘들을 돕기 위해 경제제재를 가한 것을 칭찬하는 서술은 필자의 정신을 흐리게 만드는 수준이었다.

폴란드의 반소련ㆍ반공적 종족주의는 보면 볼수록 소름이 끼치는 수준이라 할만하다. 파시즘에 긍정적이었던 유제프 피우수트스키도 이 책에서 심각한 수준으로 미화가 된다. 솔직히 필자는 폴란드인의 역사 인식이 불편하게 느껴진다. 1919~1921년에 벌어진 소비에트-폴란드 전쟁에 대해서도 철저히 반소비에트적 서술로 이어져 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폴란드 인민민주주의 정권 하에서 이루어진 경제성장과 성과는 얘기가 사실상 전무하다. 심지어 브로니스와프 고무우카 집권기는 경제성장의 시대를 맞이했다고 딱 한줄만 언급된다.

사회주의 시절의 폴란드는 분명 경제성장을 했다. 이는 바르샤바에 있는 인민 생활 박물관에 가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필자는 2년 전 직접 가보았기에 해당 박물관에서 제시한 자료를 가지고 있다. 사실 고무우카도 반스탈린 길을 걸었던 유고슬라비아의 요시프 브로즈 티토 못지않게 수정주의적 행보를 보였던 인물이었지만, 이 책에서 기대하는 건 당연히 무리다.

한 가지 이 책에서 보충하면 좋았을 점은 우크라이나 극우 민족주의자들의 학살 이야기다. 책에서도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이 폴란드인을 학살했다고 짧게 언급되긴 하지만, 이 부분은 볼린 대학살의 사례와 학살의 규모 그리고 학살의 설계자인 스테판 반데라ㆍ미콜라 레베드ㆍ로만 슈케비치 등을 언급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폴란드인들이 우크라이나와의 관계에 있어 매우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게 바로 이 부분의 역사다. 만약 개정판이 또 나온다면, 이 부분은 반드시 다뤄져야 한다.

다소 비판적인 얘기를 늘어놓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읽을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중학교 2~3학년도 읽을 수 있는 수준에서 쓴 역사책이며, 폴란드 역사를 입문하기에 가장 적절한 책이기 때문이다. 물론 철저히 폴란드의 시각인 것을 감안해야 된다. 책을 읽으며 새로 알게된 사실들도 제법 있다.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의외로 폴란드계 인물들이 미국 독립전쟁에 참여하여 건국의 아버지들에게 인정받은 인물들이 있었다는걸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그리고 폴란드가 프랑스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오히려 프랑스 보다 더 좋아하는지도 알게 됐다. 흥미롭게도 폴란드의 바르샤바 공국은 나폴레옹 전쟁에서 철저히 프랑스편을 들었다.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에도 동참했으며, 나폴레옹이 참패한 1813년 라이프치히 전투에서도 폴란드군이 반불 연합군에 맞서 싸웠다. 물론 폴란드의 경우 러시아를 매우 싫어했고, 프랑스가 상대적으로 자신들의 독립을 보장해준 부분이 있어서 그랬다. 폴란드가 프랑스 보다 나폴레옹을 미화한다는 것을 2년 전에 알았지만, 그 사례를 보다 살펴보니 흥미롭다.

폴란드 고대사와 중세사 그리고 근대사까지의 내용은 말 그대로 축약된 통사니 그럭저럭 읽혔다. 제2차 세계대전 내용은 솔직히 반공주의적 서술이지만, 폴란드 망명정부의 군대 이야기는 하나의 이야기로서 재밌었다. 특히 망명정부 군대, 그러니까 소련의 통수를 치고 서방진영으로 넘어온 브와디스와프 안데르스는 병력 12만 명을 데리고 소련을 넘어 이란과 이라크 등 중동지역을 거쳐 북아프리카 전선에 서방 연합군으로 합류했다. 그 과정에서 이란을 들려 자유 폴란드군 부대에 곰 한 마리를 기르게 됐는데, 이 곰의 이름이 바로 보이텍이다.

보이텍 관련 이야기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도 다룬 적이 있다. 보이텍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군대에서 병사들과 함께 동고동락했고, 전선에 투입되어 물자를 나르기도 했다. 병사들과의 사이가 매우 좋았고, 병사들을 잘 따뤘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보이텍은 군대가 해체되면서 영국의 한 동물원에서 살게됐고, 1963년에 거기서 생을 마감했다.

폴란드 망명정부에 대해 얘기하겠다. 폴란드 망명정부는 1939년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 이후 영국 런던으로 망명하게 된 조직이다. 아마 한국인들에게는 수능 국어 문제로 나오던 김광균의 시 ‘추일서정‘ 구절을 기억할 것이다. 사실 이들은 소련이 독소불가침 조약에 따라 폴란드 동부를 접수한 것과 기존의 반공성향 때문에 소련을 매우 미워했다. 기본 속성부터가 반공ㆍ친서방이었다. 1939년 패배한 이후 런던으로 망명한 이들은 영국 내에서 군대를 양성했다. 프랑스의 샤를 드골의 자유 프랑스군이 영국에 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1941년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하자, 소련은 이들과도 협력관계를 만들기 위해 소련 내에서 폴란드인들이 군대를 만들게 했고, 브와디스와프 안데르스가 이 군대를 이끌게 됐다. 안데르스는 그 군대를 가지고 소련을 탈출하여 서방에 합류했고, 그 군대 중 한 부대가 앞서 얘기한 새끼 곰 보이텍을 이란에서 만나게 되어 키우게 된 것이다. 보이텍은 보급중대에서 활약했고, 1943년 이탈리아 전선, 특히 몬테카시노 전투에 참전했다. 아무튼 보이텍은 전쟁 이흔 동물원에 있으면서도 영국에 남은 폴란드 망명정부 참전용사들과 자주 만났으며, 참전용사들이 오히려 울타리를 넘어가 보이텍과 함께 있는 경우가 제법 많았다고 한다.

이번에 처음으로 폴란드 역사에 대해 훑어볼 수 있었다. 솔직히 이 책이 폴란드인의 시각에서 쓰인 거라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재밌게는 읽었다. 재작년에 출판된 동독관련 역사책 <장벽너머>처럼, 폴란드 사회주의 시절을 잘 알 수 있는 책이 나오면 좋겠다. 애초에 김용덕 명예교수의 책에서 다루지 않은 부분에 궁금증이 있다. 사실 카트야 호이어가 서방적 시각이 있음에도 동독 사회주의 시절을 비교적 잘 다뤘다. 따라서 폴란드 사회주의 시기의 역사도 충분히 서방의 역사학자가 그런 식으로 분석해볼 수 있다 생각한다. 이 부분에 대한 기대를 걸며 서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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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전쟁이라는 신화 -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전쟁의 추악한 진실 질문의 책 12
자크 파월 지음, 윤태준 옮김 / 오월의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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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에 관한 미국의 신화를 낱낱이 파헤친 역사 연구

“유럽 진공에 참여하는 연합군 전우 어러분! 여러분들은 수 개월 간 준비해 왔던 위대한 십자군 원정의 목전에 와 있습니다. 전세계가 여러분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자유를 사랑하는 전세계의 시민들이 여러분과 함께할 것입니다. 여러 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우리 연합군 전우들은 독일의 전쟁 기계가 부서지는 걸 볼 것입니다. 그리고 유럽의 수많은 사람들을 억압해 왔던 나치 체제를 무너뜨리고 자유 세계를 수호할 것입니다. (중략....) 대세는 바뀌었습니다! 전세계의 자유시민들이 우리와 함께 승리를 위해 힘차게 전진할 것입니다! 저는 어러분들의 용기, 의무에 대한 헌신, 전투 기술에 대하여 무한한 자부심을 느낍니다. 이제 우리는 승리만을 남겨 놓고 있을 뿐입니다! 행운을 빕니다! 여러분들이 걸어야 할 위대하고 영광스런 고난 앞에 하느님의 무궁한 영광이 깃들기를 염원합니다.”

해당 연설은 1944년 6월 6일 영미 연합군이 이른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개시하기 전 연합군 총 사령관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Eisenhower)가 한 연설이다. 해당 연설은 2001년 HBO에서 만든 드라마이자, 미군 제101 공수사단 이지중대(Easy Company)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 밴드 오브 브라더스(Band of Brothers) 1화 마지막 장면에서 인용되는 연설이다. 또한, 2005년 인피니트 워드(Infinity Ward) 회사에서 만든 FPS 게임 콜오브듀티 2(Call of Duty 2) 미군 캠페인에서도 영상을 통해 인용된다. 해당 드라마와 게임은 미국에서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들에서 아이젠하워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관련 연설이 인용된다는 것은 현재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을 어떻게 인식하는 지를 명확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해당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게임을 플레이 하다보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매체에서 주장하는 미국의 관점에 쉽게 빠져들기까지 한다. 10대 시절 나 또한 두 작품 외에 미국서 만든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게임을 통해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관을 쉽게 흡수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기존의 통념과 정반대되는 학술적 역사 연구가 있다. 즉, 미국의 주류 및 사회적 시각과는 전혀 반대되는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분석을 한 책이 있다는 것이다. 그 책이 바로 캐나다의 역사학자 자크 파월(Jacques R. Pauwels)의 저작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 –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전쟁의 추악한 진실(The Myth of the Good War - America in the Second World War)』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수많은 헐리우드 영화들은 주로 영미 연합군 그중에서 미군이 저 간악한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에 맞서 어떻게 세계를 파시즘으로부터 구하고,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며 더 나은 세계를 만들고자 했는지를 보여주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물론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은 파시즘 체제인 독일과 일본이 일으킨 전쟁인 것은 너무나도 명확한 사실이다. 1937년에 시작된 중일전쟁과 1939년에 시작된 독일의 폴란드 침공은 제2차 세계대전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아마도 가장 중요한 사건일 것이다. 여기서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 전쟁의 시작점은 1937년 중일전쟁이나 1939년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이지만, 실질적으로 미국이 전쟁에 본격적으로 참전한 것은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기습 공격이 있고 난 다음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미국은 과연 무엇을 했을까?

파월의 책은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전부터 그리고 참전한 이후와 전쟁 승리 이후 미국이 한 행위에 대해 철저히 분석하고 비판한다. 책을 읽다보면, 과연 현재까지도 미국과 서방 세계가 내세우고 있는 소위 “나치 독일의 억압에 맞서 미국이 세계의 자유민주주의와 평화를 수호했다.”는 주장이 너무나도 허구적으로 느껴진다. 해당 저서에서 파월이 주장하는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영화 감독 올리버 스톤(Oliver Stone)과 역사학자 피터 커즈닉(Peter Kuznick)이 공동으로 쓴 저서이자 다큐멘터리 시리즈인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The Untold History of the United States)』를 완독했다. 1,000페이지 이상의 분량이나 되는 두 권의 책이라 읽는 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미국의 이면을 너무나도 잘 알 수 있던 책이었다. 다큐멘터리 시리즈는 절반 정도 시청했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 1권에서 나는 나치 독일이 미국의 기업들과 어떻게 거래했는지를 알게 됐고, 그 내용은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번에 읽은 역사학자 자크 파월의 저서는 그것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1939년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고, 1940년 덴마크와 노르웨이,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를 점령하는 데 동원된 전쟁기계들이 사실상 미국 기업들이 준 도움 때문에 가능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더 나아가 1941년 6월 22일 히틀러의 소련 침공에도 미국 기업들이 준 도움이 제법 있었다고 한다. 파월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독일은 1930년대에 군대를 실어 나를 트럭과 함께 탱크와 항공기를 엄청나게 만들어냈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양의 석유와 고무를 수입하여 비축했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이 석유의 상당량을 미국 회사들로부터 구입했으며, 그들 중 일부는 친절하게도 석탄으로 합성연료를 만드는 비법을 전해주기도 했다. 독일 육군과 공군은 1939년과 1940년 이 설비 덕분에 수천 대의 항공기와 탱크를 동원하여 폴란드, 네덜란드, 벨기에, 그리고 프랑스의 방어수단을 단 몇 주 만에 제압할 수 있었다. 번개처럼 빠른 전쟁(blitzkriege)에는 번개처럼 빠른 승리(blitzsiege)가 뒤따랐다.”(자크 파월, 윤태준 옮김,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 –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전쟁의 추악한 진실』, 오월의봄, 2017, 86쪽.)

사실 전쟁을 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자원은 석유다. 즉, 석유가 있어야 탱크와 항공기 그리고 트럭을 이용할 수 있다. 군인을 동원하는 데 있어 식량이 매우 중요하듯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차량과 탱크 그리고 항공기는 석유가 필요하다. 즉, 그런 석유들을 1930년대부터 1940년대 초까지 미국 회사들이 나치 독일에게 제공했고, 그런 제공은 당연히 나치 독일의 전쟁 수행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얘기다. 솔직히 이런 얘기는 매체에서 민주주의 수호자로 알려진 미국의 모습과는 완전히 상충되는 역사다. 파월은 이와 같은 미국의 기업들이 사실 나치와 적대적인 관계로 돌아서는 것을 반대했다는 구체적인 근거를 책에서 밝힌다. 미국의 기업이 나치를 적대하지를 싫어한 이유 중 가장 결정적인 것은 결국 자본(Capital)이었다.

자본주의가 탐욕과 무절제한 생산 그리고 생산수단을 일방적으로 소유한 개인이 폭리를 취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자본가들의 탐욕 현상은 소위 도덕과 윤리라는 것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제2차 세계대전 전후로 미국의 자본가들에게도 존재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전혀 모르고 살고 있거나, 관심을 가지기 매우 어렵다. 그 이유는 학교나 사회에서 이런 사실을 전혀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책에서 언급된 다음과 같은 내용은 절대다수가 전혀 모르는 사실이라 할 수 있다.

“독일과 미국의 인종 계층 관념의 유사성을 보여주는 여론조사를 통해서 드러났듯이, 1930년대에는 수많은 미국인들이 나치의 인종주의에 반대하지 않았다. 히틀러으 반유대주의와 그의 파시스트 동지들도 미국에서 큰 문제가 되지 못했다. 1920~1930년대에는 반유대주의가 독일뿐만 아니라 미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에서 상당히 유행했다. 그들 자신도 반유대주의자였기 때문에, 많은 미국인들이 나치의 반유대주의 조치들을 지지하지는 않더라도 그것에 관대했다. 기업가와 은행가들을 비롯한 미국의 권력층도 이런 일반적인 규칙의 예외는 되지 못한다. 일례로 유대인은 대개 상류계급이 애용하는 회원제 클럽과 고급 호텔에 출입이 금지되었다. 기업인 헨리 포드(Henry Ford)는 히틀러를 경애하고 재정적으로 지원했으며, 1920년대 초 <국제 유대인(The International Jew)>이라는 반유대주의 책을 출판해 히틀러에게 영감을 준 미국에서 가장 악명 높은 반유대주의자였다. 둘은 서로를 존경했다. 총통은 집무실에 포드의 초상화를 걸어놓고 그를 반유대주의라는 영감의 근원으로 인정했으며, 1938년에는 나치 독일이 외국인에게 줄 수 있는 최고훈장을 수여했다. 포드 또한 괴링의 친구이자 유명한 비행사인 찰스 린든버그가 미국 전역에서 활발하게 진행하던 친나치 선전 캠페인에 자금을 지원했다.”(자크 파월, 윤태준 옮김,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 –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전쟁의 추악한 진실』, 오월의봄, 2017, 48~49쪽.)

계속해서 파월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일반적으로 말해서, 미국의 사업가와 은행가들이 대체로 나치즘이나 파시즘이나 반유대주의를 비난하지 않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반대로 그들은 바로 그 반유대주의 때문에 파시스트, 특히 히틀러에게 공감했다.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그런 사람들이 이끌던 미국은 히틀러의 반유대주의를 이유로 유럽 십자군 계획에 착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자크 파월, 윤태준 옮김,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 –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전쟁의 추악한 진실』, 오월의봄, 2017, 50쪽.)

따라서 미국의 자본가들과 엘리트들은 나치즘의 폭력성에 대해 전혀 비판적인 의식이 없었고, 그들과의 거래를 통해 엄청난 이익을 봤으며, 전쟁에 참전하기 전까지도 이들과 적대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미국의 이 지배층들은 히틀러가 반공주의적이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크게 해가 될 소련 볼셰비즘에 맞서는 데 도움이 된다 생각했고, 히틀러의 반공주의적인 면모에 안정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런 역사에 익숙치 않은 몇몇 사람들은 현재 내가 쓴 서평이 매우 낮설게 느껴지겠으나, 지금 언급한 내용들은 전부다 파월의 책에 나온 내용들이다.

책에 나온 이런 이야기들은 현재 소위 미국 지배층들이 강요하는 역사만 아는 사람들이 전혀 모르는 역사다. 나 또한 이 책에 나온 내용을 전혀 모르던 것은 아니지만, 자세히 알게 되니 신선한 충격을 적잖게 받았다. 저자 파월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미국이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면 그 어떤 이들과도 손을 잡을 수 있었고, 그 어떠한 인권유린도 용인할 수 있었으며, 실제로 20세기 역사에서 라틴아메리카의 피노체트(칠레)나 비델라(아르헨티나) 그리고 소모사(니카라과)와 같은 유사 파시스트 독재자들을 지원했다고 강조한다. 즉, 미국이 이런 악랄한 독재자들을 지원한 것은 자신들의 자본주의적 이윤관계에 전혀 해가되지 않기 때문이며, 이득이 되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결국 문제는 자본주의라는 것을 저자는 강력히 얘기하고 있으며, 그 자본주의가 전쟁과 폭력 그리고 파괴를 초래한다는 것이 저자의 강조점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해당 저작에서 내가 정말 놀란 부분은 저자가 소위 소련과 스탈린에 대한 서구의 시각에 상당히 도전하는 지점이다. 해당 저작은 1939년에 체결된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 즉 독소 불가침 조약이 나치 독일과 소련의 군사동맹이 전혀 아님을 역설한다. 그리고 스탈린이 독소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게 된 역사적 배경에는 서방이 소련에게 보인 적대적인 태도가 존재한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바로 파월이 서방이 주장하는 스탈린 독재자론에 대해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파월은 소련의 스탈린이 무자비한 측면이 없던 지도자는 아니었으나, 소위 독재자 프레임이 서구에 의해 악용되고 이용되었으며 실제로는 억울하게 프레임화된 측면이 있음을 역설한다. 그리고 그 당시 소련이 사회주의 국가로서 공공의 영역에서 이득을 취했기에, 미국과 서방의 자본가들이 소련에게 적대적으로 대하였다는게 파월의 입장이다. 캐나다 역사학자가 이 정도로까지 스탈린과 소련에 대해 분석한 것이 놀라웠다. 당연한 얘기지만,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많은 희생을 치르며, 파시즘을 무찌르는 데 가장 큰 공로가 있는 주체는 바로 소련과 스탈린임을 분명히 언급한다. 파월의 입장 중 가장 놀라웠던 부분은 서구 역사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언급함에 있어 폴란드에 대해 무조건 동정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마켓가든 작전이 실패하면서 유럽의 전쟁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대륙의 상당 부분이 여전히 해방을 기다리고 있었고, 나치 독일도 아직 정복되지 않은 채였다. 그러는 동안 소비에트가 폴란드 전체를 해방시킬 것이 분명했고, 그런 전망은 많은 폴란드인들, 특히 보수적이고 강력하며 반소비에트적인 런던의 폴란드 망명정부를 걱정에 빠지게 했다. 게다가 이 정부 구성원들은 충실한 민주주의자들이 아니라, 전쟁 전 히틀러와 공모하여 뭔헨조약 때 체코슬로바키아 일부를 가져간 선례를 따랐던 독재적인 폴란드 정권을 대표한다는 것이 당연한 사실로 여겨지고 있었다.”(자크 파월, 윤태준 옮김,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 –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전쟁의 추악한 진실』, 오월의봄, 2017, 182쪽.)

이런 지점들은 사실 서방 역사학자들이 쓴 제2차 세계대전 관련 서적에서 찾아보기 힘든 내용들이다. 그 외에도 파월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2년 전에 감행된 영국·캐나다 연합군의 디에프 상륙작전에 대해 기존의 시각과는 전혀 다르게 분석한 것도 흥미로웠다. 파월에 따르면, 디에프를 상륙한 것이 노르망디 예행연습이 아닌 제2전선을 열어달라는 스탈린의 강력한 요청과 이에 따른 영국 대중들의 강력한 지지의사를 의식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 결과는 대패였지만 말이다. 또한, 1943년 무솔리니 축출 이후 이탈리아 전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이탈리아 빨치산과 파리 해방에 기여한 프랑스 레지스탕스 등이 좌파적인 성향 때문에 서방 연합군에게 어떻게 배척받았는지를 책은 설명한다. 마찬가지로 1941년부터 나치에 맞서던 ELAS라 불리던 그리스 빨치산이 서방에게 어떻게 배척받았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즉, 미국과 영국은 이탈리아나 프랑스 그리고 그리스에서 소위 나치에 격렬히 저항하던 좌파 게릴라보다는 지배층들을 선호했다는 얘기다. 그게 자신들의 패권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영미 연합군은 과거 무솔리니 정권에 있다가 무솔리니 축출 이후 집권한 피에트로 바돌리오 정권을 승인했고, 그리스에서는 나치에 협력했던 왕당파 세력을 지지했으며, 프랑스에서도 좌파운동을 하던 국내 레지스탕스가 아닌 반공주의 성향이 강하며 친서방적인 샤를 드골의 집권을 승인했다. 이탈리아의 바돌리오는 과거 무솔리니 정권의 에티오피아 침공 당시 항공기 동원을 통한 무차별 폭격과 독가스 살포 등 전쟁범죄를 저지른 인물이었고, 그리스 왕당파 세력은 앞서 언급했듯이 나치 협력자들이며, 프랑스의 드골 정권은 사실 프랑스 국내에서의 투쟁에 힘을 쓴 인물이 아니었다. 그리스와 이탈리아 그리고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반파시즘 운동에 앞장섰던 공산당들이 대중적인 지지를 받았었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시작되는 과정 속에서 미국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공산당이 집권하지 못하도록 막았고, 그리스에서는 소위 내전에 개입하여 친나치 우익 세력을 도와 10~15만 명의 그리스인을 죽였다.

즉, 이와 같은 미국의 행보가 제2차 세계대전 과정에서도 있었다는 것이 파월의 주장이며, 소위 미국이 자유민주주의를 사랑하여 여러 나라들에 그 사상을 전파했다는 것이 허구적이라는 것이 파월이 하는 얘기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부터 미국은 소련에 대해 적대적인 정책을 취했다. 실제로 미국 지도부에 있던 이들은 소련에 맞설 생각을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했었다. 사실 이들의 경우 원래부터 소련을 싫어했던 이들이었고, 미국이 전쟁에 참전하기 이전에 소련을 비난하던 이들이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실제로 이들이 나치 독일이 항복하든 항복하지 않든 간에 소련에 맞서 이들과 협력할 생각을 분명히 했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미군 명장으로 알려진 조지 패튼(George Patton)의 경우 나치 독일에 있든 잔당들과 협력하여 소련에 맞서 싸워야 한다 주장했다. 그게 1945년의 일이다. 심지어 패튼은 아예 우리 미군이 독일과 협력하여 모스크바까지 진격하자는 말도 안되는 주장도 했었다. 실제로 미국 CIA의 전신인 OSS는 그런 가능성을 염두해 두었다. 독일의 역사학자 위르겐 브룬의 얘기를 들어보자.

“사회적으로 말해서, 미국 산업계의 최고 경영자들, 월스트리트 증권 중개인과 변호사, 과학자, 군 고위층, 정치가, 그리고 소위 방위 전문가들의 혼합체였다. OSS는 명백히 미국 지배계급을 대표했다. OSS 요원들은 여전히 독일의 국가사회주의를 물리치는 일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그들은 이미 소련을 하나의 국가로서 제거해버리거나, 적어도 종전 후 유럽에서 그 영향력을 최소화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자크 파월, 윤태준 옮김,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 –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전쟁의 추악한 진실』, 오월의봄, 2017, 238쪽.)

여기서 위르겐 브룬이 주장한 계획에는 나치와의 협력도 있었다. 실제로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에 맞서 이 나치주의자들을 이용했다. 소위 페이퍼클립 작전(Operation Paperclip)이라 불리는 나치 과학자들 미국 이주 계획은 성공적으로 실행되어, 나치 과학자들이 미국 과학기술 발전에 큰 도움을 주었고 그 덕분에 미국은 1969년 달에 사람을 보낼 수 있었다. 가장 유명한 과학자 베르너 폰 브라운(Wernher von Braun)이 나치 무장 친위대 장교 출신으로 전쟁 시기 수천 명을 노예노동으로 사망하게 한 장본인인 것은 감출 수 없는 사실이다. 비록 자크 파월의 책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지만,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있던 OUN의 스테판 반데라(Stepan Bandera)와 UPA의 미콜라 레베드(Mikolka Lebed)와 같은 나치 학살자들을 소련에 맞선다는 명분으로 정치 공작에 이용했다. 특히나 스테판 반데라나 미콜라 레베드는 나치 홀로코스트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전쟁범죄자들이었음에도 미국은 이들을 지원했다. 특히나 1943년 볼린 대학살의 경우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너무나도 잔혹한 학살이었고(해당 학살은 여성과 노인 그리고 갓난아기를 의도적으로 타겟으로 삼아 학살하는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한, 말 그대로 악마와 사탄도 충격받을 전쟁범죄였다.), 최소 10만 명의 폴란드인을 학살당했지만, 학살을 자행한 레베드는 미국의 보호아래 잘 살다가 죽었다. 심지어 레베드의 경우 미국에서 매년 현재 돈으로 9,000만 원에 가까운 지원금을 받았으며, 1990년대 편히 뉴욕에서 생을 마감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에도 전쟁을 계속했다. 그리고 그 전쟁은 바로 냉전이었고, 냉전에서 소련을 악마화하고 적대적 정책을 취함으로써 자본가들이 많은 이득을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냉전에 대해 소련의 책임을 묻지만, 많은 역사 연구가 보여주듯이 그 책임은 미국에게 있었다. 파월의 말대로 스탈린은 전후에도 미국이나 영국에게 적대적인 정책을 취하지 않으려 했다. 소위 소련이 동유럽에서 자신들의 전리품을 막 챙겨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권을 세우려 한 것도 사실은 미국이 자극해서 일어난 일이었고, 미국은 이것을 마치 소련과 스탈린이 전 세계 공산화를 통해 자신들을 위협하려 한다는 프레임을 만들어 선전으로 잘 이용해먹었다. 그 이후에도 미국은 전쟁을 만들어 냈고, 전쟁의 동력은 결국 미국 스스로가 키워낸 자본주의였다. 그 자본주의가 파시즘적 인사들에 대해 호의를 보였고, 도덕적인 측면도 어기게 만들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된 이후 미국은 여전히 적을 만들어 내고 있다.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 이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중국, 북한, 베네수엘라 등등. 미국은 해당 나라들에 인권이라는 가치를 내세워 이들을 적대한다. 그리고 소련 해체 이후 등장한 러시아 연방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적대적인 정책을 취해왔다. 결국 현재 세계는 다시 한번 신냉전에 들어가게 됐다. 이것은 결국 저자의 말대로 제2차 세계대전이 만들어낸 미국의 유산일 수도 있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로 장식한다.

“테러와의 전쟁은 최근 리비아, 시리아, 그리고 이라크 같은 나라들에세 불타올랐고, 이제 그것은 러시아와의 새로운 냉전으로 대체되고 있다. 미국의 파워엘리트가 모든 것을 좌우한다면 이란, 북한 그리고 심지어 중국까지도 언젠가는 새로운 좋은 전쟁의 상대가 될 것이다. 그런 전쟁을 막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분명히 가능하다. 부시와 블레어는 우리 미디어 대다수의 열성적인 지지를 얻고도 이라크와의 전쟁을 팔아먹기가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미국에게 전쟁을 그만두도록 계속해서 강요한다면 진실의 순간이 미국 경제에 도래할 것이다. 미국의 자본주의는 평화가 발발해도 살아남을 수 있는가? 끝없이 포위당했던 나라 소비에트의 사회주의는 살아남지 못했다. 미국의 자본주의는 포위되지 않고도, 적이 없이도, 위협받지 않아도, 그것이 좋은 전쟁이건 아니건 간에 전쟁을 하지 못해도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자크 파월, 윤태준 옮김,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 –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전쟁의 추악한 진실』, 오월의봄, 2017, 378~379쪽.)

현재 세계는 미국이 유도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지속되고 있다. 미국이 일으킨 전쟁은 항상 제2차 세계대전처럼 좋은 전쟁으로 포장하려는 미국의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그 전쟁의 이면을 보면 미국의 추악한 면모가 드러난다. 정말 훌륭한 책이다. 많은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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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bsb2063 2025-12-31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목록들 보고 경악하고 갑니다. 그렇게 미국이랑 자본주의가 싫으면 제발 직접 북한 가서 사세요. 미제 자본주의와 기술의 혜택은 잔뜩 누리며 살고 계시면서 왜..
 
폭력의 시대
에릭 홉스봄 지음, 이원기 옮김, 김동택 해제 / 민음사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폭력의 시대 서평: 폭력의 시대 21세기를 앞으로 어떻게 봐야할 것인가?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성향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사실 나는 그의 이름을 2020년에 처음 알았다. 정확히는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됐다. 그 당시 내가 좋아하던 역사학자는 하워드 진이었는데, 물론 지금도 그를 존경하지만 홉스봄이라는 인물은 영국 공산당 당적을 포기하지 않고 역사학의 길을 갔다는 점이 여러모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 홉스봄의 책을 딱 두권의 책을 읽었다. 한권은 그의 대표 저작인 <극단의 시대>고 다른 한권은 <혁명가>라는 책이었다. 그리고 올해 그의 또 다른 저서 <폭력의 시대>는 1990년대부터 2004년까지 그가 한 강연 내용과 소논문 그리고 기고한 기사를 바탕으로 구성됐다. 따라서 해당 책은 말 그대로 21세기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이 나오던 2000년대 초중반은 소위 미국의 세기로서 9.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미국의 침략전쟁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9.11 테러로 3,000명의 미국인이 그날 뉴욕에서 사망하자, 미국은 크나큰 분노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 분노를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해소하고자 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멈추지 않았다. 2년 뒤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이라크를 침공하여 명분없는 전쟁을 시작했다.

네오콘으로 불리는 소위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미국식 자유주의 이념이 타국에 전파되야 한다 믿었고 그것이 가능하며 실제로 그 나라에 민주주의를 가져다 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사실이 아니었고, 홉스봄의 말대로 매우 위험한 생각이며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당장 미국이 침략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민주주의가 실현되었는지를 보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홉스봄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전 지구적으로 많은 문제들이 산재해있음을 주장한다. 예를 들어 인구의 도시집중화 현상으로 인한 농촌 인력 감소가 그러하다. 이는 한국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얘기다. 한국은 과거 농업인구가 많았으나, 현재는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인구 비율 매우 극소수다. 이는 과거 농업 국가였던 동남아시아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는 중이다. 누군가는 농업에 종사해야 하기에 이런 현상은 분명 국가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대책을 강구해야한다.

질병에 대한 얘기나 컴퓨터 기술에 대한 얘기도 흥미롭다. 우선 질병 문제부터 얘기하겠다. 홉스봄이 이 글을 쓰던 당시는 소위 사스(SARS)가 유행하던 시기다. 나 또한 초등학생 시절 해당 질병이 뉴스에서 나와 자주 언급되고 국가적으로 대비했던 과거가 생각이 났다. 사스라는 질병이 의미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단기간에 이동이 가능한 시대에는 전 세계적으로 질병이 퍼지는 속도가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2020년 COVID-19만 보더라도 이것은 우리의 일상과도 연관이 있기에 매우 와닿는 설명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 세계 인구 수억 명이 감염됐고, 700만이 사망했다. 이 중 120만 명은 미국인이다. 아마도 미국은 자신들 역사 250년 동안 전쟁에서 전사한 전사자 수치보다 코로나로 죽은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 세계적 전파 속도는 인간의 예측을 훨씬 뛰어넘었고, 지속된 기간도 그러했다. 격리ㆍ확진ㆍ치료ㆍ마스크ㆍ백신 등 전 세계인 모두가 대략 3년간 지쳤던 걸 생각해보니, 홉스봄의 강연은 은근 소름까지 돋는다.

컴퓨터 기술도 그러하다. 과거에는 인간의 영역이었던 것이 점차 컴퓨터의 영역으로 변화하는 중이다. 복잡한 수학적 계산은 요즘 컴퓨터가 다한다. 과거에는 사람이 하던 계산이었다. 거기다 챗 GPT의 등장과 AI 기술의 발전은 무섭기까지 하다. 물론 해당 기술도 사람이 만들기에 결국 만드는 이의 주관이 들어가게 되는 오류는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과거에 비해 글을 쓰는 이들에게 훨씬 편리하게 자료와 정보를 제공하게 되었고 그 기술의 혜택과 수혜를 인류가 보고 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비록 홉스봄이 코로나나 AI의 발전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기에 해당 저서는 다소 한계가 있을지는 몰라도, 홉스봄이 기술의 발전 및 여러분야의 문제점들에 관심을 가졌다는 걸 이번에 다시 깨달았다.

홉스봄의 분석에 따르면, 20세기는 가장 끔찍한 전쟁과 파괴가 있으면서 동시에 경제 및 물질적 발전과 기술적 발전이 있던 시대였다. 말 그대로 극단의 시대라 할 수 있다. 1,000만 명 이상의 생명을 뺏어간 제1차 세계대전과 7,000만 명이 희생된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 같이 한 나라에서만 벌어졌는데 수백만 명이 사망하게 되는 수많은 전쟁들. 어찌보면 20세기는 전쟁의 연속이었다.

그에 반해 21세기는 이런 극단적인 전쟁이 줄어들었으나, 전쟁 자체가 사라진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폭력과 파괴는 여전히 지속되고 전쟁의 양상도 달라지며 기술도 발전하고 있다. 2022년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리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이 드론 투입을 보게 됐다. 물론 여전히 탱크와 장갑차 같은 재래식 지상전력이 투입되고 또 전투에서 중요하게 사용된다는 것도 보여주고 있다.

특히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전투 양상의 극단적인 불균형을 21세기에도 여전히 보여주고 있다. 이스라엘은 최신식 무장력으로 팔레스타인에서 인종청소를 벌이는 중이지만, 정작 팔레스타인의 저항조직 하마스를 소탕하는 데 철저히 실패하고 있다. 이렇게 보자면 21세기에도 폭력적인 전쟁은 지속되고 있고, 소위 평화는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해당 저작에서 홉스봄이 흥미롭게 언급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소위 침공이라는 것이 반드시 나쁘기만 한걸까? 물론 한 나라가 한 나라를 침공한다는 것은 비판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여기서 홉스봄은 폴포트의 킬링필드를 종결시킨 베트남의 캄푸치아 침공과 우간다 이디 아민 정권을 무너뜨린 탄자니아의 우간다 침공을 예로 든다. 홉스봄은 캄푸치아와 우간다의 경우 내정 불간섭 원칙을 크게 손상하지 않고 단기적인 개입으로 즉각적인 효과를 얻었고, 어느 정도 지속적인 개선 효과도 얻었으며 제국주의의 암시도 없었고 더 넓은 세계 정치에 개입하지도 않았다고 역설한다. 이와 같은 사실을 보았을 때, 전쟁의 성격이 어떠한 것이냐를 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글쓴이는 비폭력 평화주의자가 아니다. 물론 해당 가치가 가지는 아름다움과 의의는 잘 안다. 그러나 모든 문제가 비폭력으로서 해결될 수 있다 생각하지도 않고, 자칫하면 제3세계 약소민족의 해방투쟁을 폭력이라는 단어로 비난하며 서구 제국주의식 논리에 쉽게 빠질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전 세계적 비폭력주의자들이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표면적인 양비론을 보이다가도, 사실상 러시아만 집중적으로 비난하며 우크라이나의 심각한 신나치즘 문제에 흐린 눈을 하는 이중성을 너무나도 잘 안다.

따라서 글쓴이는 홉스봄이 주장한 전쟁과 개입에 대해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니어도, 적어도 극단적인 비폭력주의 보다는 훨씬 현실적인 분석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얘기가 나온 김에 북한 문제도 언급하고자 한다. 현재 북한이 개발한 핵무기는 분명 대량인명살상무기다. 물론 끊임없는 군사경쟁은 평화를 가져올 수 없는 것도 분명 사실적인 부분이 있고 일리가 있다. 그러나 미국이라는 존재가 있는 상황에서 미국과 대적하는 북한이 핵무장 없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는 이 부분에서 북한의 핵무장이 역으로 한반도의 전면전 가능성을 낮췄다고 본다. 핵 없는 나라를 미국이 어떻게 했는지를 현실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홉스봄의 분석 중 가장 흥미로운 분석은 바로 게릴라전과 반게릴라전 그리고 테러에 대한 분석이다. 홉스봄은 게릴라전을 전개하는 쪽이 학살과 테러를 벌인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페루의 마오주의 단체인 ‘빛나는 길‘의 경우 소위 농민과 노동자 그리고 성노동자와 일반 시민으로 의심되는 민간인을 적잖게 학살한 혐의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단체의 지도자 아비마엘 구스만의 경우 해당 건으로 페루에서 재판받고 감옥살이를 하던 중 몇년 전 옥사했다. 그러나 홉스봄에 따르면. 이들의 학살과 테러가 소위 해당 게릴라를 토벌하던 페루의 정부군 토벌대 보다 심했던 것도 아니다.

실제로 수많은 역사를 보면 이와 같은 홉스봄의 문제의식은 사실임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엘살바도르도 파라분도마르티민족해방전선이 테러를 벌였지만, UN 조사에 따르면 내전 기간 학살의 최소 85%는 정부군이 저질렀고, 5%는 파라분도마르티민족해방전선이 저질렀다. 하다못해 1948년 여순학살만 보더라도 학살의 95%는 이승만과 미국이 보낸 우익 토벌대가 했고, 5%만 봉기한 병력이 했다.

홉스봄은 테러를 분석하며, 테러의 위험률을 일부러 과장하는 서구 언론을 비판한다. 이것은 그 당시 진행되던 9.11 및 중동전쟁과 연관이 있다. 사실 테러로 희생되는 사람 보다 미국이 일으킨 전쟁으로 미군에 의해 희생된 사람이 훨씬 더 많다. 당장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만 보더라도 침공 3개월도 안되 아프간인 사망자가 9.11 테러 총 사망자 보다 더 많이 발생했다. 즉, 테러의 공포를 이용해 자신의 전쟁 행위를 합리화하는 미국의 문제를 홉스봄은 해당 저서에서 날카롭게 비판한 것이다.

21세기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우리가 어떻게 준비해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여전히 전쟁은 지속되고 있고 폭력은 끝나지 않았다. 그렇다 해서 모든게 다 비폭력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이 상황에 우리가 길러야 할 것은 국제정세와 현 상황을 파악하는 냉철한 의식이다. 전반적으로 매우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물론 좀 동의안되는 내용도 있었으나, 홉스봄의 분석은 여러모로 와닿았다.

홉스봄이 해당 저서에서 이른바 미국의 색깔혁명에 대해 분석하지 않은 것은 다소 아쉽다. 그래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독서였다. 21세기를 어떻게 준비하고 분석할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여전히 숙제를 남기고 더 많은 생각지점을 남길 것이라 글쓴이는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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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40 2025-11-18 04: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프로필에 20대 청년이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혹시 이제 30대 되신 거 맞으시면 정정 부탁드려도 될까요? ^^

NamGiKim 2025-11-18 08:11   좋아요 0 | URL
생일 지나고 바꿀 예정입니다.^-^

NamGiKim 2026-01-24 19:19   좋아요 0 | URL
변경했습니다.
 
아주 짧은 소련사 - 러시아혁명부터 페레스트로이카까지, 순식간에 사라진 사회주의 실험의 역사적 현장
실라 피츠패트릭 지음, 안종희 옮김, 허승철 감수 / 롤러코스터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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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짧은 소련사 서평: 소련 역사를 개괄적으로 알 수 있는 책

내가 소련사 역사학사 쉴라피츠패트릭을 처음 알게 된 건 아마 코로나 초기였던 2020년이었다. 쉴라피츠패트릭의 책 <러시아 혁명 1917-1938>은 스탈린의 대숙청도 러시아 혁명의 일부라는 관점을 유지했는데, 세간에 알려진 대숙청이 단순히 이오시프 스탈린 개인의 권력욕에 의한 것이 아닌, 소련 대중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 속에서 계급투쟁 과정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는 점이 돋보인 책이었다.

물론 해당 저작은 분명히 스탈린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상당하지만, 서구의 기존 내러티브와는 분명한 차이점을 보였다는 점에서 나름 신선했다. 사실 소련사 연구는 여러 역사연구가 그렇듯, 전통주의와 수정주의 연구가 있다. 예를 들어 전통주의적 연구는 소련의 스탈린의 학살을 매우 강조했다면, 수정주의 연구는 소위 서구 사회에 알려진 스탈린의 학살이 매우 과장되었음을 지적하며, 역사의 또 다른 측면에 접근했다.

수정주의 연구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스탈린의 대숙청을 깊이 연구한 아치 게티라는 인물이 있다. 게티의 저작 <대숙청의 기원(Origin of the Great Purges)>은 스탈린의 대숙청에서 민중들이 부패한 관료들을 고발한 사례나, 고발당할 수밖에 없던 군 인사의 숙청, 그리고 대숙청 시기 처형된 숫자가 서구에 의해 어떻게 과장되었는지를 밝혔다.

이와 같은 수정주의 연구들을 통해 우리는 소련 역사에 대해 보다 객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됐다. 그 수정주의 연구를 한 인물 중에는 호주 출신의 역사학자 쉴라피츠패트릭도 있다. 그녀 또한 스탈린의 대숙청을 ˝아래로부터의 혁명˝이라는 관점에서 연구했다. 또한, 서구 사회에 깊게 잡힌 내러티브인 ˝히틀러와 스탈린의 공통된 전체주의론˝을 비판적으로 접근하며 양자의 차이성에 주목했다.

따라서 이 책은 소련사 전문가가 쓴 간략한 개론서라 볼 수도 있다. 책은 1917년 러시아 혁명부터 1991년 소련의 붕괴까지를 다룬다. 내 입장에서는 소련사 관련 책들을 여러 권 읽었기에 다시 한번 복습한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스탈린 시기에 대한 쉴라의 분석은 동의 안 되는 지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쉴라는 현재 우크라이나 정부에서 주장하는 홀로도모르 제노사이드론에 비판적이다. 비록 이 저작에서 깊이 언급되지는 않지만, 해당 부분에 대한 그녀의 입장은 ˝강압적인 집산화가 기근의 원인이 되었지만, 이오시프 스탈린이 의도적으로 우크라이나인을 학살한 것은 아니다.˝이다. 또한, 책 후반부의 소련 붕괴 이후 관련 내용에서 ˝우크라이나 정부가 홀로도모르 신화의 역사적 재해석을 시도˝했다는 표현이 그녀의 입장을 보여준다.

스탈린 시기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내용은 그 중요성에 비해 뭔가 짧게 다뤄지는 느낌이었지만, 가볍게 읽기는 좋았다. 그리고 냉전 초기 소련과 이스라엘 관련 문제에 대해 언급한 것도 의미가 있다. 소련이 단순히 친이스라엘이 아니라는 것을 쉴라의 책이 보여줬기에 나는 그 의의가 좀 있다고 보는 편이다.

물론 나는 쉴라의 주장에 다 동의하는 건 아니다. 쉴라는 스탈린 시기 집산화를 실패로 간주하고, 이후 흐루쇼프와 브레즈네프 시기 농업 발전이 신속히 이루어졌음을 강조한다. 물론 흐루쇼프와 브레즈네프 시기 소련의 농업 생산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며, 식량 소비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한 것도 사실이다. 1960년 기준으로 소련 인민들은 매일같이 고기식단을 즐길 수 있었는데, 스탈린 시기 최소 1주일에 한번 육류를 섭취할 수 있던 것과는 삶의 질이 달라졌다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집산화의 경우 분명 우크라이나나 카자흐스탄 그리고 남부 러시아에서 안타까운 대참사가 벌어진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단순히 집산화를 실패로만 보기에는 과거 혁명 이전 제정 러시아의 삶을 가만하자면, 단순히 실패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집산화가 단순히 강제적이지만은 않았다는 것은 린 바이올라의 연구에서도 알 수 있다. 린 바이올라에 따르면,

˝비록 중앙에서 시작하고 승인되었지만, 집산화는 상당할 정도로, 농촌의 지역과 지구에 있는 지방 당과 정부 기관의 자유롭고 진취적 기획에 의하여 특별한 정책이 되었다. 집산화와 집단 농장은 스탈린과 중앙 당국에 의해서라기보다 훈련되지도 않았고 권한도 없는 농촌의 관리들과, 자활에 맡겨진 집단 농장의 지도자들의 실험에 의해서, 후진적인 농촌의 현실에 의해서 형성되었다.˝

이와 같은 점을 고려했을 때, 나는 스탈린 시절 집산화가 실패했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분명한 사실은 집산화가 농촌의 삶을 바꿨고, 열악함이 있었음에도 과거 혁명 이전보다 더 나아졌다는 것이다. 또한, 해당 저작에서도 강조하는 흐루쇼프와 브레즈네프 시기의 안정적이고 풍족한 삶은 사실 그 토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후재건의 영향력이다. 따라서 나는 이런 점을 절대 간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쉴라피츠패트릭의 말대로 소련사회는 분명 고르바초프 이전까지 안정적이고 발전적이며 비교적 풍족한 삶을 살았다. 노동자들의 평균 월급은 브레즈네프 시절 300루블 정도였고, 고등교육을 받은 이는 평균 500루블 이상을 받았으며, 서구가 생각하는 노멘클라투라와 일반 인민의 생활 수준이 자본주의 국가처럼 그리 큰 것도 아니었다. 또한, 의료ㆍ교육ㆍ주거가 무상으로 제공됐고, 소비재 생산도 안정적이어서 사는데 부족함이 없었으며 그 가격도 매우 저렴했다. 구매력 지수로만 보면 자본주의 국가보다 훨씬 낫다. 물론 자본주의 국가의 대량생산을 따라가지는 못했지만, 생산수단이 국유화된 사회에서 이룬 업적으로서 내놓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소련의 사회주의 체제는 고르바초프가 집권한 지 6년 만에 무너졌다. 쉴라 또한 강조한 것과 같이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는 매우 어려웠다. 남성의 평균 수명이 짧아졌고 자살률이 급증했다. 러시아의 여성들은 돈을 벌기 위해 러시아나 유럽에서 몸을 팔았고, 이 과정에서 기회주의적인 사람들이 떼돈을 벌어 현재의 올리히가르히가 됐다. 빈부격차와 부정부패가 소련 시대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급증한 것이다. 이것이 보리스 옐친 시대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어떻게 보자면, 러시아에서 푸틴의 등장은 쉴라의 말대로 이런 혼란의 시대가 종식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물론 푸틴은 장기집권을 했고, 과거 소련을 부활시키는 행위를 하지는 않았다. 쉴라가 지적하듯이, 미국과 서구는 소련이 붕괴되었음에도 러시아를 적대했다. 고르바초프와 아버지 부시는 NATO가 더 이상 전진하지 않을 것이라는 조약을 맺었지만, 소련 해체 이후 NATO는 지금까지 꾸준히 동진해 왔다. 그리고 그것은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얘기한 것과 같이 러우전쟁 발발의 원인이 되었다.

이렇게 보자면 서구는 소련과 러시아를 너무 모르는 것 같다. 결국 그런 무지가 소련 해체 30년 뒤 서방과 러시아의 전쟁으로 이어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오랜만에 소련사를 개괄적으로 훑어보게 됐다. 솔직히 책 자체는 재밌었다. 개인적으로 일부 동의 안 되는 관점이나 반론할 부분도 있었지만, 소련의 역사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 분명히 도움이 되는 책이라 생각한다.

해당 저서의 원서는 2022년에 나왔다. 인류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 소련을 세운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지 108년이 지났다. 그 당시 레닌을 비롯한 볼셰비키 사회주의 혁명가들은 더 나은 사회를 원했고, 비록 문제점이 있었음에도 실제로 과거 보다 더 나은 사회를 건설했다. 그러다 1991년 사회주의 국가 소련이 붕괴됐고, 다시 자본주의 국가로 복귀했다.

비록 현재 러시아는 자본주의 국가지만, 아직도 소련 시절 사회주의 유산이 완벽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금도 수많은 러시아인들은 대조국 전쟁 시기 그러니까 히틀러 파시스트 침략에 맞서 소련이 승리를 거둔 역사를 여전히 기리고 있다. 그리고 그런 역사와 정신은 2022년 러우전쟁에서도 연결점이 분명히 있다.

한국 언론은 전혀 보도하지 않았지만, 러우전에 참전한 러시아 병사들 중에는 소련 깃발을 걸고 나선 이들이 있었고, 레닌과 스탈린의 초상화를 붙이고 전투에 임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 제1야당인 러시아 연방 공산당은 우크라이나 공산당ㆍ돈바스 공산당과 더불어 푸틴이 주장한 특수군사작전을 적극 지지했다. 소련의 역사를 알지 못한다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부분은 단순히 러시아 침략자라는 논리로 접근했을 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따라서 소련의 역사와 연결해서 봐야 이해할 수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책은 소련사 개론서다. 소련은 분명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부정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긍정적으로 볼만한 요소들도 많이 있었다. 문제는 전자만이 너무 한국인들에게 각인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러시아 사람들 중에는 소련 시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도 많이 있다. 그 점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한다. 따라서 이 책을 읽고 왜 현재의 러시아 사람들이 소련을 잊을 수 없는지를 알았으면 좋겠다. 소련에 대해 알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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