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시대
에릭 홉스봄 지음, 이원기 옮김, 김동택 해제 / 민음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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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폭력의 시대 서평: 폭력의 시대 21세기를 앞으로 어떻게 봐야할 것인가?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성향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사실 나는 그의 이름을 2020년에 처음 알았다. 정확히는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됐다. 그 당시 내가 좋아하던 역사학자는 하워드 진이었는데, 물론 지금도 그를 존경하지만 홉스봄이라는 인물은 영국 공산당 당적을 포기하지 않고 역사학의 길을 갔다는 점이 여러모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 홉스봄의 책을 딱 두권의 책을 읽었다. 한권은 그의 대표 저작인 <극단의 시대>고 다른 한권은 <혁명가>라는 책이었다. 그리고 올해 그의 또 다른 저서 <폭력의 시대>는 1990년대부터 2004년까지 그가 한 강연 내용과 소논문 그리고 기고한 기사를 바탕으로 구성됐다. 따라서 해당 책은 말 그대로 21세기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이 나오던 2000년대 초중반은 소위 미국의 세기로서 9.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미국의 침략전쟁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9.11 테러로 3,000명의 미국인이 그날 뉴욕에서 사망하자, 미국은 크나큰 분노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 분노를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해소하고자 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멈추지 않았다. 2년 뒤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이라크를 침공하여 명분없는 전쟁을 시작했다.

네오콘으로 불리는 소위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미국식 자유주의 이념이 타국에 전파되야 한다 믿었고 그것이 가능하며 실제로 그 나라에 민주주의를 가져다 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사실이 아니었고, 홉스봄의 말대로 매우 위험한 생각이며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당장 미국이 침략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민주주의가 실현되었는지를 보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홉스봄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전 지구적으로 많은 문제들이 산재해있음을 주장한다. 예를 들어 인구의 도시집중화 현상으로 인한 농촌 인력 감소가 그러하다. 이는 한국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얘기다. 한국은 과거 농업인구가 많았으나, 현재는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인구 비율 매우 극소수다. 이는 과거 농업 국가였던 동남아시아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는 중이다. 누군가는 농업에 종사해야 하기에 이런 현상은 분명 국가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대책을 강구해야한다.

질병에 대한 얘기나 컴퓨터 기술에 대한 얘기도 흥미롭다. 우선 질병 문제부터 얘기하겠다. 홉스봄이 이 글을 쓰던 당시는 소위 사스(SARS)가 유행하던 시기다. 나 또한 초등학생 시절 해당 질병이 뉴스에서 나와 자주 언급되고 국가적으로 대비했던 과거가 생각이 났다. 사스라는 질병이 의미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단기간에 이동이 가능한 시대에는 전 세계적으로 질병이 퍼지는 속도가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2020년 COVID-19만 보더라도 이것은 우리의 일상과도 연관이 있기에 매우 와닿는 설명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 세계 인구 수억 명이 감염됐고, 700만이 사망했다. 이 중 120만 명은 미국인이다. 아마도 미국은 자신들 역사 250년 동안 전쟁에서 전사한 전사자 수치보다 코로나로 죽은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 세계적 전파 속도는 인간의 예측을 훨씬 뛰어넘었고, 지속된 기간도 그러했다. 격리ㆍ확진ㆍ치료ㆍ마스크ㆍ백신 등 전 세계인 모두가 대략 3년간 지쳤던 걸 생각해보니, 홉스봄의 강연은 은근 소름까지 돋는다.

컴퓨터 기술도 그러하다. 과거에는 인간의 영역이었던 것이 점차 컴퓨터의 영역으로 변화하는 중이다. 복잡한 수학적 계산은 요즘 컴퓨터가 다한다. 과거에는 사람이 하던 계산이었다. 거기다 챗 GPT의 등장과 AI 기술의 발전은 무섭기까지 하다. 물론 해당 기술도 사람이 만들기에 결국 만드는 이의 주관이 들어가게 되는 오류는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과거에 비해 글을 쓰는 이들에게 훨씬 편리하게 자료와 정보를 제공하게 되었고 그 기술의 혜택과 수혜를 인류가 보고 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비록 홉스봄이 코로나나 AI의 발전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기에 해당 저서는 다소 한계가 있을지는 몰라도, 홉스봄이 기술의 발전 및 여러분야의 문제점들에 관심을 가졌다는 걸 이번에 다시 깨달았다.

홉스봄의 분석에 따르면, 20세기는 가장 끔찍한 전쟁과 파괴가 있으면서 동시에 경제 및 물질적 발전과 기술적 발전이 있던 시대였다. 말 그대로 극단의 시대라 할 수 있다. 1,000만 명 이상의 생명을 뺏어간 제1차 세계대전과 7,000만 명이 희생된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 같이 한 나라에서만 벌어졌는데 수백만 명이 사망하게 되는 수많은 전쟁들. 어찌보면 20세기는 전쟁의 연속이었다.

그에 반해 21세기는 이런 극단적인 전쟁이 줄어들었으나, 전쟁 자체가 사라진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폭력과 파괴는 여전히 지속되고 전쟁의 양상도 달라지며 기술도 발전하고 있다. 2022년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리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이 드론 투입을 보게 됐다. 물론 여전히 탱크와 장갑차 같은 재래식 지상전력이 투입되고 또 전투에서 중요하게 사용된다는 것도 보여주고 있다.

특히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전투 양상의 극단적인 불균형을 21세기에도 여전히 보여주고 있다. 이스라엘은 최신식 무장력으로 팔레스타인에서 인종청소를 벌이는 중이지만, 정작 팔레스타인의 저항조직 하마스를 소탕하는 데 철저히 실패하고 있다. 이렇게 보자면 21세기에도 폭력적인 전쟁은 지속되고 있고, 소위 평화는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해당 저작에서 홉스봄이 흥미롭게 언급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소위 침공이라는 것이 반드시 나쁘기만 한걸까? 물론 한 나라가 한 나라를 침공한다는 것은 비판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여기서 홉스봄은 폴포트의 킬링필드를 종결시킨 베트남의 캄푸치아 침공과 우간다 이디 아민 정권을 무너뜨린 탄자니아의 우간다 침공을 예로 든다. 홉스봄은 캄푸치아와 우간다의 경우 내정 불간섭 원칙을 크게 손상하지 않고 단기적인 개입으로 즉각적인 효과를 얻었고, 어느 정도 지속적인 개선 효과도 얻었으며 제국주의의 암시도 없었고 더 넓은 세계 정치에 개입하지도 않았다고 역설한다. 이와 같은 사실을 보았을 때, 전쟁의 성격이 어떠한 것이냐를 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글쓴이는 비폭력 평화주의자가 아니다. 물론 해당 가치가 가지는 아름다움과 의의는 잘 안다. 그러나 모든 문제가 비폭력으로서 해결될 수 있다 생각하지도 않고, 자칫하면 제3세계 약소민족의 해방투쟁을 폭력이라는 단어로 비난하며 서구 제국주의식 논리에 쉽게 빠질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전 세계적 비폭력주의자들이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표면적인 양비론을 보이다가도, 사실상 러시아만 집중적으로 비난하며 우크라이나의 심각한 신나치즘 문제에 흐린 눈을 하는 이중성을 너무나도 잘 안다.

따라서 글쓴이는 홉스봄이 주장한 전쟁과 개입에 대해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니어도, 적어도 극단적인 비폭력주의 보다는 훨씬 현실적인 분석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얘기가 나온 김에 북한 문제도 언급하고자 한다. 현재 북한이 개발한 핵무기는 분명 대량인명살상무기다. 물론 끊임없는 군사경쟁은 평화를 가져올 수 없는 것도 분명 사실적인 부분이 있고 일리가 있다. 그러나 미국이라는 존재가 있는 상황에서 미국과 대적하는 북한이 핵무장 없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는 이 부분에서 북한의 핵무장이 역으로 한반도의 전면전 가능성을 낮췄다고 본다. 핵 없는 나라를 미국이 어떻게 했는지를 현실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홉스봄의 분석 중 가장 흥미로운 분석은 바로 게릴라전과 반게릴라전 그리고 테러에 대한 분석이다. 홉스봄은 게릴라전을 전개하는 쪽이 학살과 테러를 벌인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페루의 마오주의 단체인 ‘빛나는 길‘의 경우 소위 농민과 노동자 그리고 성노동자와 일반 시민으로 의심되는 민간인을 적잖게 학살한 혐의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단체의 지도자 아비마엘 구스만의 경우 해당 건으로 페루에서 재판받고 감옥살이를 하던 중 몇년 전 옥사했다. 그러나 홉스봄에 따르면. 이들의 학살과 테러가 소위 해당 게릴라를 토벌하던 페루의 정부군 토벌대 보다 심했던 것도 아니다.

실제로 수많은 역사를 보면 이와 같은 홉스봄의 문제의식은 사실임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엘살바도르도 파라분도마르티민족해방전선이 테러를 벌였지만, UN 조사에 따르면 내전 기간 학살의 최소 85%는 정부군이 저질렀고, 5%는 파라분도마르티민족해방전선이 저질렀다. 하다못해 1948년 여순학살만 보더라도 학살의 95%는 이승만과 미국이 보낸 우익 토벌대가 했고, 5%만 봉기한 병력이 했다.

홉스봄은 테러를 분석하며, 테러의 위험률을 일부러 과장하는 서구 언론을 비판한다. 이것은 그 당시 진행되던 9.11 및 중동전쟁과 연관이 있다. 사실 테러로 희생되는 사람 보다 미국이 일으킨 전쟁으로 미군에 의해 희생된 사람이 훨씬 더 많다. 당장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만 보더라도 침공 3개월도 안되 아프간인 사망자가 9.11 테러 총 사망자 보다 더 많이 발생했다. 즉, 테러의 공포를 이용해 자신의 전쟁 행위를 합리화하는 미국의 문제를 홉스봄은 해당 저서에서 날카롭게 비판한 것이다.

21세기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우리가 어떻게 준비해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여전히 전쟁은 지속되고 있고 폭력은 끝나지 않았다. 그렇다 해서 모든게 다 비폭력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이 상황에 우리가 길러야 할 것은 국제정세와 현 상황을 파악하는 냉철한 의식이다. 전반적으로 매우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물론 좀 동의안되는 내용도 있었으나, 홉스봄의 분석은 여러모로 와닿았다.

홉스봄이 해당 저서에서 이른바 미국의 색깔혁명에 대해 분석하지 않은 것은 다소 아쉽다. 그래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독서였다. 21세기를 어떻게 준비하고 분석할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여전히 숙제를 남기고 더 많은 생각지점을 남길 것이라 글쓴이는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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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짧은 소련사 - 러시아혁명부터 페레스트로이카까지, 순식간에 사라진 사회주의 실험의 역사적 현장
실라 피츠패트릭 지음, 안종희 옮김, 허승철 감수 / 롤러코스터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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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짧은 소련사 서평: 소련 역사를 개괄적으로 알 수 있는 책

내가 소련사 역사학사 쉴라피츠패트릭을 처음 알게 된 건 아마 코로나 초기였던 2020년이었다. 쉴라피츠패트릭의 책 <러시아 혁명 1917-1938>은 스탈린의 대숙청도 러시아 혁명의 일부라는 관점을 유지했는데, 세간에 알려진 대숙청이 단순히 이오시프 스탈린 개인의 권력욕에 의한 것이 아닌, 소련 대중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 속에서 계급투쟁 과정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는 점이 돋보인 책이었다.

물론 해당 저작은 분명히 스탈린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상당하지만, 서구의 기존 내러티브와는 분명한 차이점을 보였다는 점에서 나름 신선했다. 사실 소련사 연구는 여러 역사연구가 그렇듯, 전통주의와 수정주의 연구가 있다. 예를 들어 전통주의적 연구는 소련의 스탈린의 학살을 매우 강조했다면, 수정주의 연구는 소위 서구 사회에 알려진 스탈린의 학살이 매우 과장되었음을 지적하며, 역사의 또 다른 측면에 접근했다.

수정주의 연구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스탈린의 대숙청을 깊이 연구한 아치 게티라는 인물이 있다. 게티의 저작 <대숙청의 기원(Origin of the Great Purges)>은 스탈린의 대숙청에서 민중들이 부패한 관료들을 고발한 사례나, 고발당할 수밖에 없던 군 인사의 숙청, 그리고 대숙청 시기 처형된 숫자가 서구에 의해 어떻게 과장되었는지를 밝혔다.

이와 같은 수정주의 연구들을 통해 우리는 소련 역사에 대해 보다 객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됐다. 그 수정주의 연구를 한 인물 중에는 호주 출신의 역사학자 쉴라피츠패트릭도 있다. 그녀 또한 스탈린의 대숙청을 ˝아래로부터의 혁명˝이라는 관점에서 연구했다. 또한, 서구 사회에 깊게 잡힌 내러티브인 ˝히틀러와 스탈린의 공통된 전체주의론˝을 비판적으로 접근하며 양자의 차이성에 주목했다.

따라서 이 책은 소련사 전문가가 쓴 간략한 개론서라 볼 수도 있다. 책은 1917년 러시아 혁명부터 1991년 소련의 붕괴까지를 다룬다. 내 입장에서는 소련사 관련 책들을 여러 권 읽었기에 다시 한번 복습한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스탈린 시기에 대한 쉴라의 분석은 동의 안 되는 지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쉴라는 현재 우크라이나 정부에서 주장하는 홀로도모르 제노사이드론에 비판적이다. 비록 이 저작에서 깊이 언급되지는 않지만, 해당 부분에 대한 그녀의 입장은 ˝강압적인 집산화가 기근의 원인이 되었지만, 이오시프 스탈린이 의도적으로 우크라이나인을 학살한 것은 아니다.˝이다. 또한, 책 후반부의 소련 붕괴 이후 관련 내용에서 ˝우크라이나 정부가 홀로도모르 신화의 역사적 재해석을 시도˝했다는 표현이 그녀의 입장을 보여준다.

스탈린 시기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내용은 그 중요성에 비해 뭔가 짧게 다뤄지는 느낌이었지만, 가볍게 읽기는 좋았다. 그리고 냉전 초기 소련과 이스라엘 관련 문제에 대해 언급한 것도 의미가 있다. 소련이 단순히 친이스라엘이 아니라는 것을 쉴라의 책이 보여줬기에 나는 그 의의가 좀 있다고 보는 편이다.

물론 나는 쉴라의 주장에 다 동의하는 건 아니다. 쉴라는 스탈린 시기 집산화를 실패로 간주하고, 이후 흐루쇼프와 브레즈네프 시기 농업 발전이 신속히 이루어졌음을 강조한다. 물론 흐루쇼프와 브레즈네프 시기 소련의 농업 생산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며, 식량 소비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한 것도 사실이다. 1960년 기준으로 소련 인민들은 매일같이 고기식단을 즐길 수 있었는데, 스탈린 시기 최소 1주일에 한번 육류를 섭취할 수 있던 것과는 삶의 질이 달라졌다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집산화의 경우 분명 우크라이나나 카자흐스탄 그리고 남부 러시아에서 안타까운 대참사가 벌어진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단순히 집산화를 실패로만 보기에는 과거 혁명 이전 제정 러시아의 삶을 가만하자면, 단순히 실패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집산화가 단순히 강제적이지만은 않았다는 것은 린 바이올라의 연구에서도 알 수 있다. 린 바이올라에 따르면,

˝비록 중앙에서 시작하고 승인되었지만, 집산화는 상당할 정도로, 농촌의 지역과 지구에 있는 지방 당과 정부 기관의 자유롭고 진취적 기획에 의하여 특별한 정책이 되었다. 집산화와 집단 농장은 스탈린과 중앙 당국에 의해서라기보다 훈련되지도 않았고 권한도 없는 농촌의 관리들과, 자활에 맡겨진 집단 농장의 지도자들의 실험에 의해서, 후진적인 농촌의 현실에 의해서 형성되었다.˝

이와 같은 점을 고려했을 때, 나는 스탈린 시절 집산화가 실패했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분명한 사실은 집산화가 농촌의 삶을 바꿨고, 열악함이 있었음에도 과거 혁명 이전보다 더 나아졌다는 것이다. 또한, 해당 저작에서도 강조하는 흐루쇼프와 브레즈네프 시기의 안정적이고 풍족한 삶은 사실 그 토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후재건의 영향력이다. 따라서 나는 이런 점을 절대 간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쉴라피츠패트릭의 말대로 소련사회는 분명 고르바초프 이전까지 안정적이고 발전적이며 비교적 풍족한 삶을 살았다. 노동자들의 평균 월급은 브레즈네프 시절 300루블 정도였고, 고등교육을 받은 이는 평균 500루블 이상을 받았으며, 서구가 생각하는 노멘클라투라와 일반 인민의 생활 수준이 자본주의 국가처럼 그리 큰 것도 아니었다. 또한, 의료ㆍ교육ㆍ주거가 무상으로 제공됐고, 소비재 생산도 안정적이어서 사는데 부족함이 없었으며 그 가격도 매우 저렴했다. 구매력 지수로만 보면 자본주의 국가보다 훨씬 낫다. 물론 자본주의 국가의 대량생산을 따라가지는 못했지만, 생산수단이 국유화된 사회에서 이룬 업적으로서 내놓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소련의 사회주의 체제는 고르바초프가 집권한 지 6년 만에 무너졌다. 쉴라 또한 강조한 것과 같이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는 매우 어려웠다. 남성의 평균 수명이 짧아졌고 자살률이 급증했다. 러시아의 여성들은 돈을 벌기 위해 러시아나 유럽에서 몸을 팔았고, 이 과정에서 기회주의적인 사람들이 떼돈을 벌어 현재의 올리히가르히가 됐다. 빈부격차와 부정부패가 소련 시대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급증한 것이다. 이것이 보리스 옐친 시대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어떻게 보자면, 러시아에서 푸틴의 등장은 쉴라의 말대로 이런 혼란의 시대가 종식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물론 푸틴은 장기집권을 했고, 과거 소련을 부활시키는 행위를 하지는 않았다. 쉴라가 지적하듯이, 미국과 서구는 소련이 붕괴되었음에도 러시아를 적대했다. 고르바초프와 아버지 부시는 NATO가 더 이상 전진하지 않을 것이라는 조약을 맺었지만, 소련 해체 이후 NATO는 지금까지 꾸준히 동진해 왔다. 그리고 그것은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얘기한 것과 같이 러우전쟁 발발의 원인이 되었다.

이렇게 보자면 서구는 소련과 러시아를 너무 모르는 것 같다. 결국 그런 무지가 소련 해체 30년 뒤 서방과 러시아의 전쟁으로 이어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오랜만에 소련사를 개괄적으로 훑어보게 됐다. 솔직히 책 자체는 재밌었다. 개인적으로 일부 동의 안 되는 관점이나 반론할 부분도 있었지만, 소련의 역사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 분명히 도움이 되는 책이라 생각한다.

해당 저서의 원서는 2022년에 나왔다. 인류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 소련을 세운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지 108년이 지났다. 그 당시 레닌을 비롯한 볼셰비키 사회주의 혁명가들은 더 나은 사회를 원했고, 비록 문제점이 있었음에도 실제로 과거 보다 더 나은 사회를 건설했다. 그러다 1991년 사회주의 국가 소련이 붕괴됐고, 다시 자본주의 국가로 복귀했다.

비록 현재 러시아는 자본주의 국가지만, 아직도 소련 시절 사회주의 유산이 완벽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금도 수많은 러시아인들은 대조국 전쟁 시기 그러니까 히틀러 파시스트 침략에 맞서 소련이 승리를 거둔 역사를 여전히 기리고 있다. 그리고 그런 역사와 정신은 2022년 러우전쟁에서도 연결점이 분명히 있다.

한국 언론은 전혀 보도하지 않았지만, 러우전에 참전한 러시아 병사들 중에는 소련 깃발을 걸고 나선 이들이 있었고, 레닌과 스탈린의 초상화를 붙이고 전투에 임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 제1야당인 러시아 연방 공산당은 우크라이나 공산당ㆍ돈바스 공산당과 더불어 푸틴이 주장한 특수군사작전을 적극 지지했다. 소련의 역사를 알지 못한다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부분은 단순히 러시아 침략자라는 논리로 접근했을 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따라서 소련의 역사와 연결해서 봐야 이해할 수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책은 소련사 개론서다. 소련은 분명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부정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긍정적으로 볼만한 요소들도 많이 있었다. 문제는 전자만이 너무 한국인들에게 각인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러시아 사람들 중에는 소련 시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도 많이 있다. 그 점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한다. 따라서 이 책을 읽고 왜 현재의 러시아 사람들이 소련을 잊을 수 없는지를 알았으면 좋겠다. 소련에 대해 알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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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점령 4년사 - 친일파는 어떻게 기득권이 되었나
송광성 지음 / 나무이야기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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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 이후 남북 분단 정부가 수립되고 그 분단 정부가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이어진 사실을 모르는 한국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한반도의 분단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고, 그 분단의 책임에 누가 가장 결정적으로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설사 알더라도 반공주의의 여파로 이를 쉬쉬하는 측면이 있다. 1980년대 한국에서는 광주를 학살한 전두환 정권에 맞서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1980년 광주를 무자비하게 진압한 신군부와 이를 지원한 미국에 대해 알게 된 수많은 청년 지식인들이 80년대 내내 대학가에서 반미시위를 전개했었다.

 

1980년대 학생운동 과정에서 반미 성향의 학생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준 책이 있었다. 그 책은 바로 미국의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가 쓴 <한국전쟁의 기원(Origin of the Korean War)>이다. 사실 미국의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는 한국의 극우들의 믿음과는 달리 친북주의자도 아니고 사회주의자도 아니었다. 그저 미국 대외정책에 대해 매우 비판적으로 분석한 학자였을 뿐이다. 글쓴이가 커밍스의 책을 처음으로 읽은 것은 군복무 말기인 2018년이었다. 그 당시 글쓴이는 대체복무로 소방서에서 근무했고, 2017년에 번역된 커밍스의 저작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을 읽었다. 그전에도 여러 한국 근현대사 서적들을 군복무 내내 탐독했지만, 커밍스의 저작은 너무나도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무엇보다 커밍스가 분석한 남한과 북한 지도부의 성격과 한국전쟁에 대한 해석은 7년 전 글쓴이에게 소위 한국전쟁을 보는 또 다른 시각을 제시해 주었다.

 

보통 한국전쟁을 생각하면 1950625일 북한의 김일성 정권이 소련의 스탈린의 지령과 허가를 받고 기습 남침을 감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커밍스는 이와 같은 내러티브에 전면적으로 도전했고, 그런 서사가 왜 무의미한지를 너무나도 설득력 있는 근거를 바탕으로 반박했다. 글쓴이는 바로 이런 점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군복무 전후로 글쓴이는 미국의 대외정책과 제국주의적 개입을 다룬 서적들을 여러 권 읽었다. 이를 통해,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얼마나 많은 나라들에 개입하여 학살과 인권을 유린했는지를 알게 됐다. 여러 진보성향의 학자들의 분석을 종합해보면서, 글쓴이는 해방 이후 미군정에 대해서도 제국주의적인 지배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가나의 국부로 평가받는 콰메 은크루마(Kwame Nkrumah)는 저서 <신식민주의제국주의의 마지막 단계(Neo-ColonialismThe Last Stage of Imperialism)에서 신식민주의의 본질은 거기에 종속되어 있는 국가가 이론상으로 독립적이며 국제상의 주권국으로서의 모든 외적 장식물들을 지니고 있지만, 실상은 그 경제 체제, 따라서 그 정치적인 정책은 외부의 지시를 받고 있다.”라며 냉전 시기 서구 제국주의에 대해 강력히 비판했다. 이와 같은 은크루마의 논리로 보자면, 미국의 한반도 강점은 분명히 이런 측면이 강력히 남아 있었다. 해방 이후 한반도 이남에 세워진 미군정은 시작부터 점령군임을 표방했고, 과거 일제 친일 관료들을 그대로 등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것이 결구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연결이 되었다는 것은 매우 비극적인 일이었다.

 

무엇보다 미군정의 문제점은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 제국주의에 충성하던 친일 경찰들을 그대로 등용했다는 사실이다. 정말로 미군정은 일제 식민 경찰에 근무했던 조선인을 대부분 재임명했다. 미군정 정보 전문가 존 콜드웰은 미국은 일본 경찰 제도가 유지되도록 내버려두었다. 경찰 고위 간부는 대부분 일본이 훈련한 사람들이라서, 그들은 식민지 인민을 위한 정의와 인간적 대우에 대해 오직 일본식 방식과 일본식 생각만 알고 있다.”라고 했다. 실제로 자료를 확인해보면, 최소 80~85%의 미군정 치하 경찰들이 친일 경찰들이었다. 그 당시 대중들이 가장 증오하던 친일파가 바로 친일 경찰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해보자면, 미군정은 매우 반민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미군정의 한반도 이남 정책은 냉전 시기 미국이 친미 반공독재 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사용된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

 

이와 같은 문제점들이 해방 이후 미군 점령기간 동안 무수히 일어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이런 역사적 진실들을 항상 외면하고 있다. 오히려 미군정의 정책들을 공산주의에 맞서기 위한 방법이었다며 미화하는 세력들이 너무나도 막강하게 살아있다. 이와 같은 극우 반공 사상을 가진 이들이 죽지않고 시퍼렇게 살아있다는 것은 지난 202412.3 계엄사태를 통해 다시 한번 증명됐다. 지난 2024년 윤석열 정권이 한국 사회를 망치고 있을 당시, 너무나도 좋은 책 한권이 출판됐다. 바로 송광성 선생의 저서 <미군 점령 4년사 친일파는 어떻게 기득권이 되었나>. 글쓴이는 이 책을 읽으며 과거 커밍스의 책을 읽으며 느낀 지적 자극을 다시한번 느꼈고, 너무나도 감명깊게 읽었다.

 

글쓴이는 이 책의 존재를 올해 초에 알게 됐다. 부끄럽게도 이 책이 이미 1990년대 초에 출판된 책이라는 것을 지금껏 모르고 살아왔다. 무엇보다 이 책이 1980년대 후반 해당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이라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거기다 미국 UCLA 대학의 박사학위 논문이다. 글쓴이가 눈여겨 본 것은 해당 저작의 연구 방법론이다. 해당 연구는 해방 이후 미군정 하에서 벌어지는 민족모순과 더불어 계급모순도 함께 분석했다. 그런 점에서 본 저작은 마르크스주의적 분석도 함께 연결하면서 민족주의적 시각과 같이 본 셈이며, 그 당시 기존의 연구와는 차별성을 보인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한 접근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해방 이후 미군정은 단순히 민족적 모순만 부각시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미군정이 친일 및 반동적인 우익 인사들에게 생산 및 공장 경영을 맡겨 도시 노동자들과 어떻게 갈등하게 되었는지를 분석했고, 오히려 자주적인 노동자들이 미국이 내세운 인사들 보다 더 잘 공장 생산을 잘하고 관리했음을 입증한다. 이 부분에 대해선 해당 저작의 내용을 보자.

 

노동자자주관리운동의 몇 가지 예는 노동자가 생존을 위해 어떻게 투쟁했는지를 보여준다. 일본인이 소유한 서울 영등포에 있던 조선피혁 공장에서는 해방 전에 1,300명의 조선인 노동자가 군수품을 생산했다. 19458월에 일본이 항복한 후, 그 공장 사무직 노동자 10명과 육체노동자 25명이 자주관리위원회를 조직하고, 일본인에게서 소유권을 양도받았다. 자주관리위우너회는 108일에 공장을 다시 움직여 물품 생산을 재개했다. 하루 8시간 노동과 주말 휴일, 건강보험, 소비조합 등 개선된 노동환경 아래에서 노동자는 낡은 기계를 수리해 신발 생산을 100%, 가죽 생산을 200% 증가시켰다. 그러나 1946410일 미군정은 노동자들이 선출한 위원회 위원장 박인덕을 해고하고 체포했다. 그리고 조균훈을 새로운 경영자로 임명했다. 조균훈은 노동자위원회를 폐지하고, 비효율적이고 비민주적 경영으로 노동생산성을 67%나 하락시켰다. 노동자는 새로운 경영자에 맞서 파업을 일으켰다.”

 

송광성, 미군 점령 4년사 - 친일파는 어떻게 기득권이 되었나, 나무이야기, 2024, 216.

 

이와 같은 계급적 의제에 대한 문제의식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본다. 왜나하면, 이와 같은 사실을 우리가 현대사를 보는 데 있어서 쉽게 무시하기 때문이다. 미군정은 여러 부분에서 한반도 이남을 매우 가혹하고 잔혹하게 통치했다. 앞서 언급한 계급모순의 사례는 아래의 예시를 통해 다시한번 확인이 가능하다.

 

경성철도 노조의 행동은 철도 고용인 30%를 해고하고 월급제에서 일급제로 바꾸라는 91일자 군정법령 제55호에 대응한 것이다. 미군정 당국은 노조의 요구 조건을 무시했고, 운수국장 코넬슨은 "인도인은 굶고 있는데, 조선 사람은 강냉이라도 먹을 수 있으니 행복하지 않은가"라는 폭언을 퍼부었다.”

 

송광성, 미군 점령 4년사 - 친일파는 어떻게 기득권이 되었나, 나무이야기, 2024, 262.

 

이와 같은 분석을 통해, 송광성 선생은 미군정을 실시한 미군이 남조선을 점령한 정복자였음을 분명히 한다. 미군정은 일본과 미국 정복자를 다함께 반대한 혁명적 조선 민족주의자를 잔혹하게 탄압했고, 일본인 공장을 자주적으로 관리하던 노동자를 몰아내고 친일 분자를 관리자로 삼았으며, 이런 미군정의 행동으로 노동자들의 강한 반대를 불러일으켰다. 그 결과가 대구 10.1 항쟁이었다. 1946년 대구 10.1 항쟁이 일어나자 미군정은 매우 잔혹하게 진압했다. 서구의 많은 이들이 1989년 중국 공산당이 천안문 항쟁을 잔혹하게 진압했다고 규탄하지만, 정작 서구 세력이 더 무자비하게 봉기 진압에 나선 것에 대해선 외면한다. 대구 10.1 항쟁에서 최소 1,000명에서 수천 명의 조선인이 목숨을 잃었는데, 이 사태의 책임은 전적으로 미군정에게 있었다. 저자 송광성은 미군의 봉기 진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경찰은 미군이 깜짝 놀랄 정도의 잔인한 폭력으로 시위 군중에게 보복했다. 미군정 역사는 "혼란한 틈에 경찰의 극단적인 잔학 행위가 발생했다."고 시인했다. 미군 전술부대의 잔악 행위도 국립경찰의 잔혹성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1031일 전라남도 목포에서는 전술부대가 시위 군중 사이로 트럭을 몰고 지나가 많은 사람이 다쳤다. 미군정은 10월 민중항쟁이 공산주의 선동가 때문에 일어났다고 간단히 설명했다.”

 

송광성, 미군 점령 4년사 - 친일파는 어떻게 기득권이 되었나, 나무이야기, 2024, 281.

 

이와 같은 미군정의 진압은 1948년 제주 4.3과 여순에서도 나타났다. 4.3이나 여순은 계급모순과 더불어 민족모순이 매우 부각 되었고, 여기서도 미군은 무차별 민간인 학살을 동반한 진압에 나섰다. 19489월부터 19495월까지 2개월 동안, 미군정은 유격대뿐만 아니라 유격대에 동조하는 제주 도민까지 폭력으로 진압했다. 미군정의 진압으로 500~2,000명의 유격대가 죽은 것에 비해, 민간인 사망자는 최소 3만에서 최대 7~8만이었다는 사실은 미군정이 유격대와 싸운 것이 아니고 제주 도민을 대량 학살했음을 의미했다. 여순에서도 그렇게 수천 명(최근 추산치는 1만 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했다. 미군정이 1948년 제주와 여순을 잔혹하게 진압하고 학살한 데에는 자신들의 반공보루인 이승만 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저자는 이승만 정권이 미국의 괴뢰였음을 다음과 같이 분명히 하고 있다.

 

친미 집단을 양성하면서 조선인 민족주의자를 분쇄하느라고 3년이란 세월을 보내고 나서, 미국 군인들은 조선 민중의 강력한 저항에도 남조선에 이승만 정권이라는 반공보루를 구축했다이승만 정권은 미군정을 이어받았고 미군정의 정부 기구, 관리, 법률, 심지어 빚까지 떠맡았다. 이승만 정권은 형식상으로만 민주적이고 독립적이었으나, 사실상 독재정권이고 미국에 깊이 종속되고 있었다. 형식적으로 독립된 한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미군사력은 한국에서 철수하지 않았고,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군사 문제에 간섭했다. 미군사력은 1948년 여순에서 민중항쟁이 일어나 전라도 지방으로 확산했을 때, 이승만 정권의 몰락을 막았다. 미군은 남한 전역에 걸친 광범한 '좌익소탕', 특히 한국 군대에서의 좌익 숙청을 끝마친 후에야 비로소 한국에서 철수했는 데, 그때도 미군사고문단을 잔류시켰다. 이와 같은 역사는 1948년 대한민국이 수립됨으로써 한국이 미국에서 진정으로 독립되었다는 신화를 반박한다. 결국 미점령군과 조선 인민의 관계는 제국주의 국가와 그 식민지 국가 간의 관계에 지나지 않았다. 미점령군은 인공을 파괴했고, 일제의 식민 통치 구조와 인맥을 지속시켰으며, 다시 대한민국으로 이월시킴으로써 미국에 깊숙이 종속하게 했다. 그리하여 남조선은 일본 속박에서는 벗어났지만, 미국 신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송광성, 미군 점령 4년사 - 친일파는 어떻게 기득권이 되었나, 나무이야기, 2024, 205~206.

 

또한, 한국의 극우들이 그리도 칭송하는 이승만의 단독정부 수립이 사실은 반민중적이었음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유엔임시위원단은 전국 규모의 선거를 감시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결국 유엔위원단은 남쪽만의 단독 선거 가능성을 토의했다. 조선에서 개진된 의견 중 이승만 진영과 한민당, 미군정 당국만이 남쪽의 단독 분리 선거를 지지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공산주의자와 사회민주주의자, 김구와 같은 보수주의 지도자를 포함한 조선 민족주의자들은 남쪽 단독 선거를 반대하고 나섰다. 남쪽 내에서만도 상당수가 단독 분리 선거를 반대했다.”

 

송광성, 미군 점령 4년사 - 친일파는 어떻게 기득권이 되었나, 나무이야기, 2024, 345.

 

송광성 선생의 책은 미군 점령이 말 그대로 신식민주의적인 지배체제였다고 주장한다. 글쓴이 또한 이런 시각이 틀렸다고만 보지는 않는다. 분명히 미군정 체제는 태생부터 반민중성을 내재하고 있었고, 미군정의 친일 경찰 등용과 대구와 제주 그리고 여순에서의 민중항쟁 진압이 이를 입증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 미국에서 나온 논문인데도, 여전히 사회 분석 틀은 유용한 점이 많다. 이와 같은 분석을 바탕으로 한국과 남베트남 그리고 한국과 그리스 등의 여러사례를 비교 분석해보는 것도 의미가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해당 저서는 1980년대 후반에 나온 저자의 학위 논문이기에 이후 한국 사학계와 사회학계가 축적한 연구를 반영하지 못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연구를 계승 발전한 총괄적인 연구서가 필요하다.

 

좀 있으면(202563)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아마도 63일이 지나면 정권이 교체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내란 세력들은 멀쩡히 살아 있다. 해방 이후 미군정이 설립되고, 이승만 정권이 탄생하면서 우리는 친일 청산에 완벽히 실패했다. 그 여파는 현재까지도 윤석열과 같은 내란 세력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내란 세력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친일 세력이 형성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아야 한다. 앞으로의 미래에는 우리 민중들이 저 윤석열 내란 세력을 청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의 역사부터 올바르게 알아야 한다. 따라서 80년 전의 우리 현대사를 공부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송광성 선생의 책은 수많은 사람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라고 글쓴이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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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내전 - 혁명 그 이후 1917-1921
앤터니 비버 지음, 이혜진 옮김 / 눌와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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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적백내전 관련 통사가 한국에 번역된 것에 대해 깊이 감사한다. 전투 위주의 서술도 분명 군사적 측면의 분석은 분명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친서구적인 시각이 많다. 뭐 첫 술에는 배가 부를 수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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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와 변혁의 길
전국노동자정치협회 지음 / 어깨걸고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202544일 오전 1122분 드디어 헌법재판소의 만장일치 의견에 따라 내란수괴 윤석열이 파면됐다. 2024123일 느닷없이 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의 행동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나는 다음날부터 202544일까지 반윤투쟁에 열심히 참가했다. 44일 그날 오전 나는 임금노동자로서 야근을 했음에도 퇴근하자마자 그 현장으로 달려갔다. 헌재 앞에 있는 바리케이트까지 가서 나는 대중들과 함께 윤석열 파면!’을 외첬다. 그리고 헌법재판관 문형준이 판결문을 읽어나가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 그가 윤석열에게 파면을 선고한다!’고 말했을 때, 나는 그 자리에서 사람들과 함께 기뻐 날뛰었다. 너무나도 기쁘고 행복했으며, 감동의 눈물까지 나왔다. 그 현장에서 느낀 감동은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다. 앞으로 한국은 대선을 치를 것이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것이다. 현실정치 측면에서 보았을 때, 윤석열의 반대세력인 이재명과 더불어민주당이 이번 대선을 통해 집권할 것이다. 물론 나는 현재 이것이 한국 민중이 바라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 다시 한 번의 정권교체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2016년 박근혜 탄핵정국 때, 정권 교체 이후 어떻게 사회가 흘러갔는지 명백히 기억하고 있다. 2016년 박근혜 탄핵 정국 시기 나는 20대 초반이었고, 소방서에서 공익으로 군복무를 했다. 그리고 전역 하기 전 문재인 정부를 경험했다. 문재인 정권 5년을 기억하고 있다. 5년 동안 나는 적잖은 실망을 느꼈다. 사실 그래서 2022년 대선 때, 윤석열을 찍지도 않았지만 이재명을 찍지도 않았다.

 

문재인 정권 시기 나는 민주당이 어떠한 실망을 남겼는지 생생히 기억한다. 문재인 정권은 국가보안법을 전혀 철폐하지 않았고, 말로는 남북평화를 얘기하면서 실제로는 한미군사연합훈련을 하고 미국제 무기를 사들였다. 그리고 2021LG 청소노동자 투쟁 때 비록 청소노동자들의 복직을 이루어주었지만, 집권 내내 노동문제는 끊임없이 일어났다. 문재인 정부는 말로는 노동존중을 외쳤지만, 실제로는 재벌과 자본가 편을 들었다. 박근혜 정권 시기 문재인과 민주당은 사드를 빼겠다고 소성리 시민들에게 약속했다. 그러나 그런 약속은 전적으로 지켜지지 않았다. 문재인 집권 시기 나는 소성리에 가서 사드를 막는 투쟁을 한 적이 있고 경찰과 충돌했었다.

 

문재인과 민주당이 보여준 위선적 모습을 너무나도 잘 기억하고 있다. 사실 이런 모순은 노무현도 보였던 문제다. 사실 맑스-레닌주의적 시각에서 보자면, 더불어민주당은 말 그대로 부르주아 정당일 뿐이다. 한국의 극우들이 말도 안되는 논리로 종북좌파 취급해서 그렇지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조만간 이재명 정부가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과거 이재명 후보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모습을 보였다. 예를 들어 역사 문제에 있어서 해방 후 미군이 소련군과 달리 점령군으로 들어온 적이 있다.”라는 사실은 인정하는 모습을 2020년대 초에 보인 적이 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얘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윤석열 탄핵정국에서 이재명과 이재명을 지지하는 유명인사들이 보인 모습은 분명히 2016년과 2017년 당시 문재인 정부에서의 잘못된 점을 걱정하게 만들고 있다. 사실 그래서 나는 민주당과 이재명에 대해 큰 기대같은 것은 없다. 민주당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 어느정도 예상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재명 정부 하에서 그 나름의 대중 복지를 일부분 챙겨줄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아무것도 없는 윤석열 보다야 훨씬 나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재명 정부가 진보적인 정권을 실현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여전히 진보들에게는 성취해 나가야할 과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이렇게 정치와 세계정세에 관심이 많을 때, 나는 편의점에서 알바 노동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읽은 소책자 한권이 있다. 그것이 바로 전국노동자정치협회에서 펴낸 <한국사회와 변혁의 길>이다.

 

이 책은 COVID-19가 한참이던 2020년에 나왔다. 공식 출간 등록일은 2020518일이다. , 5.18 광주민중항쟁 40주년에 노정협에서 출간한 책이다. 이 책은 말 그대로 “21세기 한국사회의 성격과 임무에 대해 분석했다. 사실 이 책을 몇 년 전 훌터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하나하나 꼼꼼이 읽으며 완독을 하니, 짧은 소책자임에도 불구하고 공부가 많이 됐다. 특히나, 한국인들이 가진 물질주의에 대한 맹신을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에서 비판하고 분석한 것이 가장 와닿았다. 보통 1991년 소련의 해체에 따른 사회주의의 붕괴를 사람들이 자주 입에 담고는 한다. 그와 동시에, “경제적으로 성공한 한국과 경제적으로 실패한 북한을 자주 언급 및 운운한다. 예를 들어, 소위 브루스 커밍스의 대작 <한국전쟁의 기원>을 반박했다는 연세대의 정치학자 박명림의 저서를 사례로 보자. 박명림은 1990년대 한국전쟁을 다룬 저서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에서 냉전의 해체와 북한의 빈곤의 증명하듯이라는 다소 반공주의적인 표현을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사용했다.

 

, 일반인들 뿐만 아니라 한국의 학자들마저도 이와 같은 시각을 적잖게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와 같은 관점의 기저에는 자본주의 국가는 그래도 부를 창출했지만, 사회주의는 가난을 초래했다.”는 신념화된 관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니까 한국의 고도의 발전이 어떠한 모순을 가지고 있고, 현재 한국 사회가 경제 및 정치적으로 얼마나 타국에 종속되어 있는지를 전혀 보지 않거나 알면서도 외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모순들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지난번 나는 독일 좌파 출신의 정치인 자라 바겐크네히트의 저서 <풍요의 조건>을 읽었다. 비록 해당 저작이 다소 개량 좌파적인 측면이 있긴 했지만, 자본주의에 대한 경제학적 측면의 비판은 상당히 와닿았다. 예를 들어 바겐크네히트는 현재 자본주의에서 벌어지는 절대다수의 빈곤과 해결되지 않는 빈민들의 생계 문제를 자본주의 국가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고 말한다. 이러한 비판을 변증법적으로 대입해서 한국의 자본주의자들과 자본주의 옹호론적 학자들을 논하자면, 실제로 이들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바겐크네히트의 표현처럼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인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소책자가 이런 모순들을 잘 폭로했다는 점에서 전적으로 공감이 됐다. 무엇보다 한국의 발전상에 젖어들어 자본주의의 모순을 망각하고 극우로 변절한 이들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한 점이 가장 공감이 됐다. 그리고 오히려 한국 사회가 저발전이 아닌 고도의 발전으로 모순이 극대화된 점을 폭로한 것도 많이 공감이 됐다. 여기서 가장 주목해야할 점은 한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음에도 사실상 미국에 의해 지배받는 신식민주의국가독점자본주의라고 분석한 점이다. 이 부분은 한국이 미국에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있음을 논리적으로 밝히는 지점이다. 노무현 시절 진보진영에게 강력한 반대에 직면했던 한미 FTA 체결 이후 한국 주요 기업과 은행에 대한 외국인 지분율이 어떻게 되었는지 한번 해당 저작에 나오는 내용을 보도록 하자.

 

미국이 주도하는 IMF1989년 워싱턴에서 남미국가들에게 강요했던 10가지 신자유주의 정책,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를 한국에 그대로 강요했다. 워싱턴 컨센서스는 미국 정부가 자기 영향 아래 있는 IMF, 세계은행 등 국제 금융기관을 동원하여 만든 개방 강요 정책으로 그 주요 내용은 정부 공공 예산 삭감, 공공 산업 민영화, 주식과 외환 등 자본시장 완전 개방, 관세 인하로 무역 개방, 비정규직 확대로 노동시장 유연화, 정부 규제 축소, 재산권 보호 강화 등이다. 이는 미국이 자기 이익을 위해 이른바 각종 자유화라는 명목으로 외국자본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정책을 제3세계 국가들에게 강요한 것에 불과하다. IMF와 구조조정 정책을 받아들인 80년대 남미, 90년대 아시아의 많은국가들은 경제주권을 미국 월가 자본에게 빼앗긴 채 수탈당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한국 경제도 IMF의 구조조정 결과 그나마 남아있던 자본시장까지 완전 개방되면서 순식간에 외국자본에 잠식되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IMF 외환위기 직전인 19961,9113,000만 달러였던 국내 외국자본은 20129,4515,000만 달러로 5배 가량 무섭게 확대되었다. 그중 외국인이 보유한 주식은 25, 직접투자는 5.72, 채권은 4.9배나 늘었다. 구조조정 결과 많은 공기업이 민영화되는 동시에 외국자본에 팔려나갔고, 기아, 대우, 한보 등 굴지의 재벌이 사라졌다. 국내 은행들의 상당수가 외국계 은행으로 탈바꿈한 것도 이때다. 한국경제의 과실을 수탈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관철된 순간이었다.(중략....) 외국인 직접투자의 분포도 위와 같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1997년부터 2012년까지 외국인 직접투자는 제조업중 반도체 등 전기전자에 33.56%, 석유화학에 17.21%, 자동차, 차량부품 등 운송용 기계에 14.87% 순으로 분포되어 있다.”(한국사회와 변혁의 길, 18~19.)

 

내가 경제 부분에 대해 사실 아는 바가 거의 없지만, 분명한건 미국이 라틴 아메리카 등에서 자본시장을 제국주의적으로 잠식하는 방법과 유사하게 한국에서도 한미 FTA로 상당히 잠식당했다는 사실 정도는 해당 글을 통해 알 수 있다. , 한국의 물질적 발전과 경제성장이라는 부분에 경도된 자본주의자들은 한국이 경제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이런 모순들에 대해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또 옹호한다. 항상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뒤쳐진 북한을 언급하면서 말이다. , 그런 사고방식이 1990년대 소련 해체 이후 청산주의에 빠지고 운동을 포기한 이들이 가졌던 사고방식이다. 일본의 식민지배를 산업화라며 옹호하고 있는 이영훈도 과거 민중경제적 시각을 가진 진보학자 박현채를 비난하면서 진보적 사고를 포기하고 우경투항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이런 부분에 대한 비판 또한 해당 소책자가 잘 다루고 있다. 비슷하게 전향한 운동권 민경우가 2020년 조선일보에 실은 내용도 비판한다. 여기서는 소책자에 나오는 또 다른 내용도 인용하겠다.

 

민경우는 한국 재벌을 매판자본으로 봤던 비과학적 현실인식이 한국 재벌의 성장과 생산력의 발전이라는 구체적 현실 앞에 무너져 내리면서 진보적 이념 자체를 전면 부정한 경우다. 그런데 매판자본으로 봤던 삼성전자가 소니 등을 다 합친 일본 전자업체 보다 매출액이 더 크고, 세상에는 스마트폰과 드론, 인공지능이 개발되어있었지만, 그러는 사이에, 제목에서 나와 있는것처럼, 민경우는 간첩혐의로 두 차례 수감되기까지 했다.한국 자본이 국제적인 거대 자본으로 성장하고, 최첨단의 생산력이 발전하는 이면에는 통일운동과 민주화 운동을 해왔던 활동가를 두 차례나 간첩 조작으로 구속시키는 시대착오적이고 역사를 후퇴시키는 파쇼적 탄압이 자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대착오적이고 역사를 후퇴시키는 탄압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박근혜 시절 프락치 정치공작으로 구속됐던 진보정당의 국회의원은 여전히 촛불혁명 정부라 자처하는 권력 하에서도 석방되지 못한 채 7년째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아직도 간첩조작을 일삼고 있으며 심지어 천인공노할 프락치 공작까지 자행하고 있다. 분단 현실 하에서 여전히 한국사회는 북에 대한 적대감과 혐오, 편견과 무지, 왜곡이 만연해 있다. 맹목적인 반북반공주의는 바로 지배계급이 조장한 것이다. 한국사회의 재편작업은 이러한 분단질서와 파쇼적 억압기구와 악법, 반공 이데올로기를 극복해야 가능하다. 그러나 민경우는 재벌의 발전상만 일면적으로 보았지, 그 발전 이면에서 자행되는 노동자들에 대한 극한적인 착취와 억압,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시대착오적 현실은 눈감아 버렸다. 극우 파쇼 언론 조선일보 지면은 이러한 탁락한 변절자들을 위한 마지막 고백의 장이 되버렸다. 동유럽 사회주의와 쏘련 사회주의 해체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는 했지만, 인민노련(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은 이러한 경로를 밟지 않고 신식민지 독점자본주의를 자처하면서도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개량의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변혁의 전망을 포기했다. 이처럼 한 쪽에서는 한국에서 독점자본의 발전을 인정하되 정상적인 독점 강화와 발전 보다는 낮은 생산력의 기형성을 강조함으로써 자본주의 발전의 뒤틀려진 현실을 발견하여 모순을 찾으려 했다면, 다른 쪽에서는 지속적 발전 가능성 속에서 자본주의 변혁의 가능성을 상실하고 자본주의에 투항했다. 그런데 둘 다 자본주의 발전 그 자체에서 모순의 심화를 보지 않으려 한다.”(같은 책, 45~46.)

 

그 외에도 현재 노정협이 가진 정치·경제·사회적 분석의 틀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사회적 성격을 어떻게 분석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은 좌파 내에서도 논쟁거리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해당 소책자에 나온 내용과 입장이 같다. 또한, 이 책의 특징이라고 하자면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경험 그러니까 소련의 경험을 비하하지 않는다는 점에도 있다. 또한, 북한에 대해서도 현재 우리 사회가 가진 다른 시각에서 봐야 함을 역설한다. , 이런 부분들을 바로 잡아주고 있다. 해당 소책자는 소련의 붕괴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원칙에서 벗어나서 생긴 결과가 아닌 1956년 흐루쇼프가 소련을 수정주의화 하면서 자본주의에서 나오는 관료주의 및 부정부패의 문제를 초래했음을 과학적으로 분석했다. 사실 한국의 우파들과 리버럴 뿐만 아니라 좌파들 또한 소위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부터 시작한 수정주의의 문제점을 너무나도 잘 모른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한 문제의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소련과 현실 사회주의 국가에 대해 올바르게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역사 문제에 대한 분석도 이 책에서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는 지점이다. 비록 소책자다 보니 축약적으로 설명되어 있지만, 한국 역사가 노동자와 대중을 학살한 역사고, 이후 반공주의라는 극단적 이데올로기 하에서 성장하며 노동계급을 탄압한 반동적 권력이었음을 폭로한다. , 한국의 리버럴과 우파 그리고 적잖은 좌파들은 이와 같은 의식이 많이 결여되어 있다. 다소 자화자찬적이지만, 나는 그렇지 않기에 어찌보면 2015년 사회운동을 시작한 이래 이후 좌파화와 의식화를 거치며 마르크스-레닌주의적 좌파를 자처할 수 있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정리하자면 해당 서적은 말 그대로 현재 존재하는 전국노동자정치협회가 가진 입장을 확인할 수 있는 소책자다. 사실 전국노동자정치협회는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이다. 나와 노정협의 인연에 대해 얘기하겠다. 내가 실질적으로 전국노동자정치협회와 접촉하게 된 것은 2019년이었다. 그 당시 시작한 마르크스-레닌주의 원전 학습을 시작으로 해당 조직에 가입하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물론 함께하는 조직 내에서의 갈등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 해왔다. 노정협에 가입한 지 한 5년 정도 되었으니, 내 인생의 1/6을 함께 한 조직이라 해도 얘기할 수 있겠다. 이곳에 몸을 담은지도 벌써 6년이 됐다. 해당 조직과 함께 하며, 현 정세를 분석하는 방법을 많이 배웠다. 이와 더불어 맑스나 레닌 등의 원전 학습도 상당히 오래했다. 지금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나에게 정말 고마운 조직이라 할 수 있다.

 

얘기를 다시 현 시국으로 돌리겠다. 윤석열이 파면됨에 따라 더불어 민주당이 집권할 것으로 보인다. 다음 정권은 분명 진보적이지 않은 정권일게 분명하다. 물론 윤석열 보다야 훨씬 낫겠지만, 여전히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좌파는 무엇을 해야할까? 이 해답을 찾기 위해서 그리고 한국 사회의 진정한 모순과 문제점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읽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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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루스 2025-04-28 2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외국자본은 미국 자본으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닌 걸요... 하여튼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