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전쟁이라는 신화 -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전쟁의 추악한 진실 질문의 책 12
자크 파월 지음, 윤태준 옮김 / 오월의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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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에 관한 미국의 신화를 낱낱이 파헤친 역사 연구

“유럽 진공에 참여하는 연합군 전우 어러분! 여러분들은 수 개월 간 준비해 왔던 위대한 십자군 원정의 목전에 와 있습니다. 전세계가 여러분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자유를 사랑하는 전세계의 시민들이 여러분과 함께할 것입니다. 여러 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우리 연합군 전우들은 독일의 전쟁 기계가 부서지는 걸 볼 것입니다. 그리고 유럽의 수많은 사람들을 억압해 왔던 나치 체제를 무너뜨리고 자유 세계를 수호할 것입니다. (중략....) 대세는 바뀌었습니다! 전세계의 자유시민들이 우리와 함께 승리를 위해 힘차게 전진할 것입니다! 저는 어러분들의 용기, 의무에 대한 헌신, 전투 기술에 대하여 무한한 자부심을 느낍니다. 이제 우리는 승리만을 남겨 놓고 있을 뿐입니다! 행운을 빕니다! 여러분들이 걸어야 할 위대하고 영광스런 고난 앞에 하느님의 무궁한 영광이 깃들기를 염원합니다.”

해당 연설은 1944년 6월 6일 영미 연합군이 이른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개시하기 전 연합군 총 사령관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Eisenhower)가 한 연설이다. 해당 연설은 2001년 HBO에서 만든 드라마이자, 미군 제101 공수사단 이지중대(Easy Company)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 밴드 오브 브라더스(Band of Brothers) 1화 마지막 장면에서 인용되는 연설이다. 또한, 2005년 인피니트 워드(Infinity Ward) 회사에서 만든 FPS 게임 콜오브듀티 2(Call of Duty 2) 미군 캠페인에서도 영상을 통해 인용된다. 해당 드라마와 게임은 미국에서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들에서 아이젠하워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관련 연설이 인용된다는 것은 현재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을 어떻게 인식하는 지를 명확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해당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게임을 플레이 하다보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매체에서 주장하는 미국의 관점에 쉽게 빠져들기까지 한다. 10대 시절 나 또한 두 작품 외에 미국서 만든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게임을 통해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관을 쉽게 흡수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기존의 통념과 정반대되는 학술적 역사 연구가 있다. 즉, 미국의 주류 및 사회적 시각과는 전혀 반대되는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분석을 한 책이 있다는 것이다. 그 책이 바로 캐나다의 역사학자 자크 파월(Jacques R. Pauwels)의 저작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 –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전쟁의 추악한 진실(The Myth of the Good War - America in the Second World War)』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수많은 헐리우드 영화들은 주로 영미 연합군 그중에서 미군이 저 간악한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에 맞서 어떻게 세계를 파시즘으로부터 구하고,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며 더 나은 세계를 만들고자 했는지를 보여주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물론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은 파시즘 체제인 독일과 일본이 일으킨 전쟁인 것은 너무나도 명확한 사실이다. 1937년에 시작된 중일전쟁과 1939년에 시작된 독일의 폴란드 침공은 제2차 세계대전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아마도 가장 중요한 사건일 것이다. 여기서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 전쟁의 시작점은 1937년 중일전쟁이나 1939년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이지만, 실질적으로 미국이 전쟁에 본격적으로 참전한 것은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기습 공격이 있고 난 다음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미국은 과연 무엇을 했을까?

파월의 책은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전부터 그리고 참전한 이후와 전쟁 승리 이후 미국이 한 행위에 대해 철저히 분석하고 비판한다. 책을 읽다보면, 과연 현재까지도 미국과 서방 세계가 내세우고 있는 소위 “나치 독일의 억압에 맞서 미국이 세계의 자유민주주의와 평화를 수호했다.”는 주장이 너무나도 허구적으로 느껴진다. 해당 저서에서 파월이 주장하는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영화 감독 올리버 스톤(Oliver Stone)과 역사학자 피터 커즈닉(Peter Kuznick)이 공동으로 쓴 저서이자 다큐멘터리 시리즈인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The Untold History of the United States)』를 완독했다. 1,000페이지 이상의 분량이나 되는 두 권의 책이라 읽는 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미국의 이면을 너무나도 잘 알 수 있던 책이었다. 다큐멘터리 시리즈는 절반 정도 시청했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 1권에서 나는 나치 독일이 미국의 기업들과 어떻게 거래했는지를 알게 됐고, 그 내용은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번에 읽은 역사학자 자크 파월의 저서는 그것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1939년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고, 1940년 덴마크와 노르웨이,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를 점령하는 데 동원된 전쟁기계들이 사실상 미국 기업들이 준 도움 때문에 가능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더 나아가 1941년 6월 22일 히틀러의 소련 침공에도 미국 기업들이 준 도움이 제법 있었다고 한다. 파월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독일은 1930년대에 군대를 실어 나를 트럭과 함께 탱크와 항공기를 엄청나게 만들어냈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양의 석유와 고무를 수입하여 비축했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이 석유의 상당량을 미국 회사들로부터 구입했으며, 그들 중 일부는 친절하게도 석탄으로 합성연료를 만드는 비법을 전해주기도 했다. 독일 육군과 공군은 1939년과 1940년 이 설비 덕분에 수천 대의 항공기와 탱크를 동원하여 폴란드, 네덜란드, 벨기에, 그리고 프랑스의 방어수단을 단 몇 주 만에 제압할 수 있었다. 번개처럼 빠른 전쟁(blitzkriege)에는 번개처럼 빠른 승리(blitzsiege)가 뒤따랐다.”(자크 파월, 윤태준 옮김,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 –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전쟁의 추악한 진실』, 오월의봄, 2017, 86쪽.)

사실 전쟁을 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자원은 석유다. 즉, 석유가 있어야 탱크와 항공기 그리고 트럭을 이용할 수 있다. 군인을 동원하는 데 있어 식량이 매우 중요하듯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차량과 탱크 그리고 항공기는 석유가 필요하다. 즉, 그런 석유들을 1930년대부터 1940년대 초까지 미국 회사들이 나치 독일에게 제공했고, 그런 제공은 당연히 나치 독일의 전쟁 수행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얘기다. 솔직히 이런 얘기는 매체에서 민주주의 수호자로 알려진 미국의 모습과는 완전히 상충되는 역사다. 파월은 이와 같은 미국의 기업들이 사실 나치와 적대적인 관계로 돌아서는 것을 반대했다는 구체적인 근거를 책에서 밝힌다. 미국의 기업이 나치를 적대하지를 싫어한 이유 중 가장 결정적인 것은 결국 자본(Capital)이었다.

자본주의가 탐욕과 무절제한 생산 그리고 생산수단을 일방적으로 소유한 개인이 폭리를 취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자본가들의 탐욕 현상은 소위 도덕과 윤리라는 것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제2차 세계대전 전후로 미국의 자본가들에게도 존재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전혀 모르고 살고 있거나, 관심을 가지기 매우 어렵다. 그 이유는 학교나 사회에서 이런 사실을 전혀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책에서 언급된 다음과 같은 내용은 절대다수가 전혀 모르는 사실이라 할 수 있다.

“독일과 미국의 인종 계층 관념의 유사성을 보여주는 여론조사를 통해서 드러났듯이, 1930년대에는 수많은 미국인들이 나치의 인종주의에 반대하지 않았다. 히틀러으 반유대주의와 그의 파시스트 동지들도 미국에서 큰 문제가 되지 못했다. 1920~1930년대에는 반유대주의가 독일뿐만 아니라 미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에서 상당히 유행했다. 그들 자신도 반유대주의자였기 때문에, 많은 미국인들이 나치의 반유대주의 조치들을 지지하지는 않더라도 그것에 관대했다. 기업가와 은행가들을 비롯한 미국의 권력층도 이런 일반적인 규칙의 예외는 되지 못한다. 일례로 유대인은 대개 상류계급이 애용하는 회원제 클럽과 고급 호텔에 출입이 금지되었다. 기업인 헨리 포드(Henry Ford)는 히틀러를 경애하고 재정적으로 지원했으며, 1920년대 초 <국제 유대인(The International Jew)>이라는 반유대주의 책을 출판해 히틀러에게 영감을 준 미국에서 가장 악명 높은 반유대주의자였다. 둘은 서로를 존경했다. 총통은 집무실에 포드의 초상화를 걸어놓고 그를 반유대주의라는 영감의 근원으로 인정했으며, 1938년에는 나치 독일이 외국인에게 줄 수 있는 최고훈장을 수여했다. 포드 또한 괴링의 친구이자 유명한 비행사인 찰스 린든버그가 미국 전역에서 활발하게 진행하던 친나치 선전 캠페인에 자금을 지원했다.”(자크 파월, 윤태준 옮김,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 –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전쟁의 추악한 진실』, 오월의봄, 2017, 48~49쪽.)

계속해서 파월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일반적으로 말해서, 미국의 사업가와 은행가들이 대체로 나치즘이나 파시즘이나 반유대주의를 비난하지 않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반대로 그들은 바로 그 반유대주의 때문에 파시스트, 특히 히틀러에게 공감했다.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그런 사람들이 이끌던 미국은 히틀러의 반유대주의를 이유로 유럽 십자군 계획에 착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자크 파월, 윤태준 옮김,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 –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전쟁의 추악한 진실』, 오월의봄, 2017, 50쪽.)

따라서 미국의 자본가들과 엘리트들은 나치즘의 폭력성에 대해 전혀 비판적인 의식이 없었고, 그들과의 거래를 통해 엄청난 이익을 봤으며, 전쟁에 참전하기 전까지도 이들과 적대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미국의 이 지배층들은 히틀러가 반공주의적이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크게 해가 될 소련 볼셰비즘에 맞서는 데 도움이 된다 생각했고, 히틀러의 반공주의적인 면모에 안정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런 역사에 익숙치 않은 몇몇 사람들은 현재 내가 쓴 서평이 매우 낮설게 느껴지겠으나, 지금 언급한 내용들은 전부다 파월의 책에 나온 내용들이다.

책에 나온 이런 이야기들은 현재 소위 미국 지배층들이 강요하는 역사만 아는 사람들이 전혀 모르는 역사다. 나 또한 이 책에 나온 내용을 전혀 모르던 것은 아니지만, 자세히 알게 되니 신선한 충격을 적잖게 받았다. 저자 파월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미국이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면 그 어떤 이들과도 손을 잡을 수 있었고, 그 어떠한 인권유린도 용인할 수 있었으며, 실제로 20세기 역사에서 라틴아메리카의 피노체트(칠레)나 비델라(아르헨티나) 그리고 소모사(니카라과)와 같은 유사 파시스트 독재자들을 지원했다고 강조한다. 즉, 미국이 이런 악랄한 독재자들을 지원한 것은 자신들의 자본주의적 이윤관계에 전혀 해가되지 않기 때문이며, 이득이 되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결국 문제는 자본주의라는 것을 저자는 강력히 얘기하고 있으며, 그 자본주의가 전쟁과 폭력 그리고 파괴를 초래한다는 것이 저자의 강조점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해당 저작에서 내가 정말 놀란 부분은 저자가 소위 소련과 스탈린에 대한 서구의 시각에 상당히 도전하는 지점이다. 해당 저작은 1939년에 체결된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 즉 독소 불가침 조약이 나치 독일과 소련의 군사동맹이 전혀 아님을 역설한다. 그리고 스탈린이 독소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게 된 역사적 배경에는 서방이 소련에게 보인 적대적인 태도가 존재한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바로 파월이 서방이 주장하는 스탈린 독재자론에 대해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파월은 소련의 스탈린이 무자비한 측면이 없던 지도자는 아니었으나, 소위 독재자 프레임이 서구에 의해 악용되고 이용되었으며 실제로는 억울하게 프레임화된 측면이 있음을 역설한다. 그리고 그 당시 소련이 사회주의 국가로서 공공의 영역에서 이득을 취했기에, 미국과 서방의 자본가들이 소련에게 적대적으로 대하였다는게 파월의 입장이다. 캐나다 역사학자가 이 정도로까지 스탈린과 소련에 대해 분석한 것이 놀라웠다. 당연한 얘기지만,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많은 희생을 치르며, 파시즘을 무찌르는 데 가장 큰 공로가 있는 주체는 바로 소련과 스탈린임을 분명히 언급한다. 파월의 입장 중 가장 놀라웠던 부분은 서구 역사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언급함에 있어 폴란드에 대해 무조건 동정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마켓가든 작전이 실패하면서 유럽의 전쟁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대륙의 상당 부분이 여전히 해방을 기다리고 있었고, 나치 독일도 아직 정복되지 않은 채였다. 그러는 동안 소비에트가 폴란드 전체를 해방시킬 것이 분명했고, 그런 전망은 많은 폴란드인들, 특히 보수적이고 강력하며 반소비에트적인 런던의 폴란드 망명정부를 걱정에 빠지게 했다. 게다가 이 정부 구성원들은 충실한 민주주의자들이 아니라, 전쟁 전 히틀러와 공모하여 뭔헨조약 때 체코슬로바키아 일부를 가져간 선례를 따랐던 독재적인 폴란드 정권을 대표한다는 것이 당연한 사실로 여겨지고 있었다.”(자크 파월, 윤태준 옮김,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 –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전쟁의 추악한 진실』, 오월의봄, 2017, 182쪽.)

이런 지점들은 사실 서방 역사학자들이 쓴 제2차 세계대전 관련 서적에서 찾아보기 힘든 내용들이다. 그 외에도 파월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2년 전에 감행된 영국·캐나다 연합군의 디에프 상륙작전에 대해 기존의 시각과는 전혀 다르게 분석한 것도 흥미로웠다. 파월에 따르면, 디에프를 상륙한 것이 노르망디 예행연습이 아닌 제2전선을 열어달라는 스탈린의 강력한 요청과 이에 따른 영국 대중들의 강력한 지지의사를 의식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 결과는 대패였지만 말이다. 또한, 1943년 무솔리니 축출 이후 이탈리아 전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이탈리아 빨치산과 파리 해방에 기여한 프랑스 레지스탕스 등이 좌파적인 성향 때문에 서방 연합군에게 어떻게 배척받았는지를 책은 설명한다. 마찬가지로 1941년부터 나치에 맞서던 ELAS라 불리던 그리스 빨치산이 서방에게 어떻게 배척받았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즉, 미국과 영국은 이탈리아나 프랑스 그리고 그리스에서 소위 나치에 격렬히 저항하던 좌파 게릴라보다는 지배층들을 선호했다는 얘기다. 그게 자신들의 패권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영미 연합군은 과거 무솔리니 정권에 있다가 무솔리니 축출 이후 집권한 피에트로 바돌리오 정권을 승인했고, 그리스에서는 나치에 협력했던 왕당파 세력을 지지했으며, 프랑스에서도 좌파운동을 하던 국내 레지스탕스가 아닌 반공주의 성향이 강하며 친서방적인 샤를 드골의 집권을 승인했다. 이탈리아의 바돌리오는 과거 무솔리니 정권의 에티오피아 침공 당시 항공기 동원을 통한 무차별 폭격과 독가스 살포 등 전쟁범죄를 저지른 인물이었고, 그리스 왕당파 세력은 앞서 언급했듯이 나치 협력자들이며, 프랑스의 드골 정권은 사실 프랑스 국내에서의 투쟁에 힘을 쓴 인물이 아니었다. 그리스와 이탈리아 그리고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반파시즘 운동에 앞장섰던 공산당들이 대중적인 지지를 받았었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시작되는 과정 속에서 미국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공산당이 집권하지 못하도록 막았고, 그리스에서는 소위 내전에 개입하여 친나치 우익 세력을 도와 10~15만 명의 그리스인을 죽였다.

즉, 이와 같은 미국의 행보가 제2차 세계대전 과정에서도 있었다는 것이 파월의 주장이며, 소위 미국이 자유민주주의를 사랑하여 여러 나라들에 그 사상을 전파했다는 것이 허구적이라는 것이 파월이 하는 얘기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부터 미국은 소련에 대해 적대적인 정책을 취했다. 실제로 미국 지도부에 있던 이들은 소련에 맞설 생각을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했었다. 사실 이들의 경우 원래부터 소련을 싫어했던 이들이었고, 미국이 전쟁에 참전하기 이전에 소련을 비난하던 이들이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실제로 이들이 나치 독일이 항복하든 항복하지 않든 간에 소련에 맞서 이들과 협력할 생각을 분명히 했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미군 명장으로 알려진 조지 패튼(George Patton)의 경우 나치 독일에 있든 잔당들과 협력하여 소련에 맞서 싸워야 한다 주장했다. 그게 1945년의 일이다. 심지어 패튼은 아예 우리 미군이 독일과 협력하여 모스크바까지 진격하자는 말도 안되는 주장도 했었다. 실제로 미국 CIA의 전신인 OSS는 그런 가능성을 염두해 두었다. 독일의 역사학자 위르겐 브룬의 얘기를 들어보자.

“사회적으로 말해서, 미국 산업계의 최고 경영자들, 월스트리트 증권 중개인과 변호사, 과학자, 군 고위층, 정치가, 그리고 소위 방위 전문가들의 혼합체였다. OSS는 명백히 미국 지배계급을 대표했다. OSS 요원들은 여전히 독일의 국가사회주의를 물리치는 일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그들은 이미 소련을 하나의 국가로서 제거해버리거나, 적어도 종전 후 유럽에서 그 영향력을 최소화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자크 파월, 윤태준 옮김,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 –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전쟁의 추악한 진실』, 오월의봄, 2017, 238쪽.)

여기서 위르겐 브룬이 주장한 계획에는 나치와의 협력도 있었다. 실제로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에 맞서 이 나치주의자들을 이용했다. 소위 페이퍼클립 작전(Operation Paperclip)이라 불리는 나치 과학자들 미국 이주 계획은 성공적으로 실행되어, 나치 과학자들이 미국 과학기술 발전에 큰 도움을 주었고 그 덕분에 미국은 1969년 달에 사람을 보낼 수 있었다. 가장 유명한 과학자 베르너 폰 브라운(Wernher von Braun)이 나치 무장 친위대 장교 출신으로 전쟁 시기 수천 명을 노예노동으로 사망하게 한 장본인인 것은 감출 수 없는 사실이다. 비록 자크 파월의 책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지만,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있던 OUN의 스테판 반데라(Stepan Bandera)와 UPA의 미콜라 레베드(Mikolka Lebed)와 같은 나치 학살자들을 소련에 맞선다는 명분으로 정치 공작에 이용했다. 특히나 스테판 반데라나 미콜라 레베드는 나치 홀로코스트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전쟁범죄자들이었음에도 미국은 이들을 지원했다. 특히나 1943년 볼린 대학살의 경우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너무나도 잔혹한 학살이었고(해당 학살은 여성과 노인 그리고 갓난아기를 의도적으로 타겟으로 삼아 학살하는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한, 말 그대로 악마와 사탄도 충격받을 전쟁범죄였다.), 최소 10만 명의 폴란드인을 학살당했지만, 학살을 자행한 레베드는 미국의 보호아래 잘 살다가 죽었다. 심지어 레베드의 경우 미국에서 매년 현재 돈으로 9,000만 원에 가까운 지원금을 받았으며, 1990년대 편히 뉴욕에서 생을 마감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에도 전쟁을 계속했다. 그리고 그 전쟁은 바로 냉전이었고, 냉전에서 소련을 악마화하고 적대적 정책을 취함으로써 자본가들이 많은 이득을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냉전에 대해 소련의 책임을 묻지만, 많은 역사 연구가 보여주듯이 그 책임은 미국에게 있었다. 파월의 말대로 스탈린은 전후에도 미국이나 영국에게 적대적인 정책을 취하지 않으려 했다. 소위 소련이 동유럽에서 자신들의 전리품을 막 챙겨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권을 세우려 한 것도 사실은 미국이 자극해서 일어난 일이었고, 미국은 이것을 마치 소련과 스탈린이 전 세계 공산화를 통해 자신들을 위협하려 한다는 프레임을 만들어 선전으로 잘 이용해먹었다. 그 이후에도 미국은 전쟁을 만들어 냈고, 전쟁의 동력은 결국 미국 스스로가 키워낸 자본주의였다. 그 자본주의가 파시즘적 인사들에 대해 호의를 보였고, 도덕적인 측면도 어기게 만들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된 이후 미국은 여전히 적을 만들어 내고 있다.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 이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중국, 북한, 베네수엘라 등등. 미국은 해당 나라들에 인권이라는 가치를 내세워 이들을 적대한다. 그리고 소련 해체 이후 등장한 러시아 연방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적대적인 정책을 취해왔다. 결국 현재 세계는 다시 한번 신냉전에 들어가게 됐다. 이것은 결국 저자의 말대로 제2차 세계대전이 만들어낸 미국의 유산일 수도 있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로 장식한다.

“테러와의 전쟁은 최근 리비아, 시리아, 그리고 이라크 같은 나라들에세 불타올랐고, 이제 그것은 러시아와의 새로운 냉전으로 대체되고 있다. 미국의 파워엘리트가 모든 것을 좌우한다면 이란, 북한 그리고 심지어 중국까지도 언젠가는 새로운 좋은 전쟁의 상대가 될 것이다. 그런 전쟁을 막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분명히 가능하다. 부시와 블레어는 우리 미디어 대다수의 열성적인 지지를 얻고도 이라크와의 전쟁을 팔아먹기가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미국에게 전쟁을 그만두도록 계속해서 강요한다면 진실의 순간이 미국 경제에 도래할 것이다. 미국의 자본주의는 평화가 발발해도 살아남을 수 있는가? 끝없이 포위당했던 나라 소비에트의 사회주의는 살아남지 못했다. 미국의 자본주의는 포위되지 않고도, 적이 없이도, 위협받지 않아도, 그것이 좋은 전쟁이건 아니건 간에 전쟁을 하지 못해도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자크 파월, 윤태준 옮김,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 –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전쟁의 추악한 진실』, 오월의봄, 2017, 378~379쪽.)

현재 세계는 미국이 유도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지속되고 있다. 미국이 일으킨 전쟁은 항상 제2차 세계대전처럼 좋은 전쟁으로 포장하려는 미국의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그 전쟁의 이면을 보면 미국의 추악한 면모가 드러난다. 정말 훌륭한 책이다. 많은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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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시대
에릭 홉스봄 지음, 이원기 옮김, 김동택 해제 / 민음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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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폭력의 시대 서평: 폭력의 시대 21세기를 앞으로 어떻게 봐야할 것인가?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성향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사실 나는 그의 이름을 2020년에 처음 알았다. 정확히는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됐다. 그 당시 내가 좋아하던 역사학자는 하워드 진이었는데, 물론 지금도 그를 존경하지만 홉스봄이라는 인물은 영국 공산당 당적을 포기하지 않고 역사학의 길을 갔다는 점이 여러모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 홉스봄의 책을 딱 두권의 책을 읽었다. 한권은 그의 대표 저작인 <극단의 시대>고 다른 한권은 <혁명가>라는 책이었다. 그리고 올해 그의 또 다른 저서 <폭력의 시대>는 1990년대부터 2004년까지 그가 한 강연 내용과 소논문 그리고 기고한 기사를 바탕으로 구성됐다. 따라서 해당 책은 말 그대로 21세기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이 나오던 2000년대 초중반은 소위 미국의 세기로서 9.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미국의 침략전쟁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9.11 테러로 3,000명의 미국인이 그날 뉴욕에서 사망하자, 미국은 크나큰 분노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 분노를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해소하고자 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멈추지 않았다. 2년 뒤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이라크를 침공하여 명분없는 전쟁을 시작했다.

네오콘으로 불리는 소위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미국식 자유주의 이념이 타국에 전파되야 한다 믿었고 그것이 가능하며 실제로 그 나라에 민주주의를 가져다 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사실이 아니었고, 홉스봄의 말대로 매우 위험한 생각이며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당장 미국이 침략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민주주의가 실현되었는지를 보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홉스봄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전 지구적으로 많은 문제들이 산재해있음을 주장한다. 예를 들어 인구의 도시집중화 현상으로 인한 농촌 인력 감소가 그러하다. 이는 한국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얘기다. 한국은 과거 농업인구가 많았으나, 현재는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인구 비율 매우 극소수다. 이는 과거 농업 국가였던 동남아시아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는 중이다. 누군가는 농업에 종사해야 하기에 이런 현상은 분명 국가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대책을 강구해야한다.

질병에 대한 얘기나 컴퓨터 기술에 대한 얘기도 흥미롭다. 우선 질병 문제부터 얘기하겠다. 홉스봄이 이 글을 쓰던 당시는 소위 사스(SARS)가 유행하던 시기다. 나 또한 초등학생 시절 해당 질병이 뉴스에서 나와 자주 언급되고 국가적으로 대비했던 과거가 생각이 났다. 사스라는 질병이 의미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단기간에 이동이 가능한 시대에는 전 세계적으로 질병이 퍼지는 속도가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2020년 COVID-19만 보더라도 이것은 우리의 일상과도 연관이 있기에 매우 와닿는 설명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 세계 인구 수억 명이 감염됐고, 700만이 사망했다. 이 중 120만 명은 미국인이다. 아마도 미국은 자신들 역사 250년 동안 전쟁에서 전사한 전사자 수치보다 코로나로 죽은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 세계적 전파 속도는 인간의 예측을 훨씬 뛰어넘었고, 지속된 기간도 그러했다. 격리ㆍ확진ㆍ치료ㆍ마스크ㆍ백신 등 전 세계인 모두가 대략 3년간 지쳤던 걸 생각해보니, 홉스봄의 강연은 은근 소름까지 돋는다.

컴퓨터 기술도 그러하다. 과거에는 인간의 영역이었던 것이 점차 컴퓨터의 영역으로 변화하는 중이다. 복잡한 수학적 계산은 요즘 컴퓨터가 다한다. 과거에는 사람이 하던 계산이었다. 거기다 챗 GPT의 등장과 AI 기술의 발전은 무섭기까지 하다. 물론 해당 기술도 사람이 만들기에 결국 만드는 이의 주관이 들어가게 되는 오류는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과거에 비해 글을 쓰는 이들에게 훨씬 편리하게 자료와 정보를 제공하게 되었고 그 기술의 혜택과 수혜를 인류가 보고 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비록 홉스봄이 코로나나 AI의 발전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기에 해당 저서는 다소 한계가 있을지는 몰라도, 홉스봄이 기술의 발전 및 여러분야의 문제점들에 관심을 가졌다는 걸 이번에 다시 깨달았다.

홉스봄의 분석에 따르면, 20세기는 가장 끔찍한 전쟁과 파괴가 있으면서 동시에 경제 및 물질적 발전과 기술적 발전이 있던 시대였다. 말 그대로 극단의 시대라 할 수 있다. 1,000만 명 이상의 생명을 뺏어간 제1차 세계대전과 7,000만 명이 희생된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 같이 한 나라에서만 벌어졌는데 수백만 명이 사망하게 되는 수많은 전쟁들. 어찌보면 20세기는 전쟁의 연속이었다.

그에 반해 21세기는 이런 극단적인 전쟁이 줄어들었으나, 전쟁 자체가 사라진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폭력과 파괴는 여전히 지속되고 전쟁의 양상도 달라지며 기술도 발전하고 있다. 2022년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리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이 드론 투입을 보게 됐다. 물론 여전히 탱크와 장갑차 같은 재래식 지상전력이 투입되고 또 전투에서 중요하게 사용된다는 것도 보여주고 있다.

특히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전투 양상의 극단적인 불균형을 21세기에도 여전히 보여주고 있다. 이스라엘은 최신식 무장력으로 팔레스타인에서 인종청소를 벌이는 중이지만, 정작 팔레스타인의 저항조직 하마스를 소탕하는 데 철저히 실패하고 있다. 이렇게 보자면 21세기에도 폭력적인 전쟁은 지속되고 있고, 소위 평화는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해당 저작에서 홉스봄이 흥미롭게 언급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소위 침공이라는 것이 반드시 나쁘기만 한걸까? 물론 한 나라가 한 나라를 침공한다는 것은 비판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여기서 홉스봄은 폴포트의 킬링필드를 종결시킨 베트남의 캄푸치아 침공과 우간다 이디 아민 정권을 무너뜨린 탄자니아의 우간다 침공을 예로 든다. 홉스봄은 캄푸치아와 우간다의 경우 내정 불간섭 원칙을 크게 손상하지 않고 단기적인 개입으로 즉각적인 효과를 얻었고, 어느 정도 지속적인 개선 효과도 얻었으며 제국주의의 암시도 없었고 더 넓은 세계 정치에 개입하지도 않았다고 역설한다. 이와 같은 사실을 보았을 때, 전쟁의 성격이 어떠한 것이냐를 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글쓴이는 비폭력 평화주의자가 아니다. 물론 해당 가치가 가지는 아름다움과 의의는 잘 안다. 그러나 모든 문제가 비폭력으로서 해결될 수 있다 생각하지도 않고, 자칫하면 제3세계 약소민족의 해방투쟁을 폭력이라는 단어로 비난하며 서구 제국주의식 논리에 쉽게 빠질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전 세계적 비폭력주의자들이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표면적인 양비론을 보이다가도, 사실상 러시아만 집중적으로 비난하며 우크라이나의 심각한 신나치즘 문제에 흐린 눈을 하는 이중성을 너무나도 잘 안다.

따라서 글쓴이는 홉스봄이 주장한 전쟁과 개입에 대해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니어도, 적어도 극단적인 비폭력주의 보다는 훨씬 현실적인 분석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얘기가 나온 김에 북한 문제도 언급하고자 한다. 현재 북한이 개발한 핵무기는 분명 대량인명살상무기다. 물론 끊임없는 군사경쟁은 평화를 가져올 수 없는 것도 분명 사실적인 부분이 있고 일리가 있다. 그러나 미국이라는 존재가 있는 상황에서 미국과 대적하는 북한이 핵무장 없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는 이 부분에서 북한의 핵무장이 역으로 한반도의 전면전 가능성을 낮췄다고 본다. 핵 없는 나라를 미국이 어떻게 했는지를 현실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홉스봄의 분석 중 가장 흥미로운 분석은 바로 게릴라전과 반게릴라전 그리고 테러에 대한 분석이다. 홉스봄은 게릴라전을 전개하는 쪽이 학살과 테러를 벌인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페루의 마오주의 단체인 ‘빛나는 길‘의 경우 소위 농민과 노동자 그리고 성노동자와 일반 시민으로 의심되는 민간인을 적잖게 학살한 혐의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단체의 지도자 아비마엘 구스만의 경우 해당 건으로 페루에서 재판받고 감옥살이를 하던 중 몇년 전 옥사했다. 그러나 홉스봄에 따르면. 이들의 학살과 테러가 소위 해당 게릴라를 토벌하던 페루의 정부군 토벌대 보다 심했던 것도 아니다.

실제로 수많은 역사를 보면 이와 같은 홉스봄의 문제의식은 사실임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엘살바도르도 파라분도마르티민족해방전선이 테러를 벌였지만, UN 조사에 따르면 내전 기간 학살의 최소 85%는 정부군이 저질렀고, 5%는 파라분도마르티민족해방전선이 저질렀다. 하다못해 1948년 여순학살만 보더라도 학살의 95%는 이승만과 미국이 보낸 우익 토벌대가 했고, 5%만 봉기한 병력이 했다.

홉스봄은 테러를 분석하며, 테러의 위험률을 일부러 과장하는 서구 언론을 비판한다. 이것은 그 당시 진행되던 9.11 및 중동전쟁과 연관이 있다. 사실 테러로 희생되는 사람 보다 미국이 일으킨 전쟁으로 미군에 의해 희생된 사람이 훨씬 더 많다. 당장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만 보더라도 침공 3개월도 안되 아프간인 사망자가 9.11 테러 총 사망자 보다 더 많이 발생했다. 즉, 테러의 공포를 이용해 자신의 전쟁 행위를 합리화하는 미국의 문제를 홉스봄은 해당 저서에서 날카롭게 비판한 것이다.

21세기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우리가 어떻게 준비해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여전히 전쟁은 지속되고 있고 폭력은 끝나지 않았다. 그렇다 해서 모든게 다 비폭력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이 상황에 우리가 길러야 할 것은 국제정세와 현 상황을 파악하는 냉철한 의식이다. 전반적으로 매우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물론 좀 동의안되는 내용도 있었으나, 홉스봄의 분석은 여러모로 와닿았다.

홉스봄이 해당 저서에서 이른바 미국의 색깔혁명에 대해 분석하지 않은 것은 다소 아쉽다. 그래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독서였다. 21세기를 어떻게 준비하고 분석할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여전히 숙제를 남기고 더 많은 생각지점을 남길 것이라 글쓴이는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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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40 2025-11-18 04: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프로필에 20대 청년이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혹시 이제 30대 되신 거 맞으시면 정정 부탁드려도 될까요? ^^

NamGiKim 2025-11-18 08:11   좋아요 0 | URL
생일 지나고 바꿀 예정입니다.^-^
 
아주 짧은 소련사 - 러시아혁명부터 페레스트로이카까지, 순식간에 사라진 사회주의 실험의 역사적 현장
실라 피츠패트릭 지음, 안종희 옮김, 허승철 감수 / 롤러코스터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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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짧은 소련사 서평: 소련 역사를 개괄적으로 알 수 있는 책

내가 소련사 역사학사 쉴라피츠패트릭을 처음 알게 된 건 아마 코로나 초기였던 2020년이었다. 쉴라피츠패트릭의 책 <러시아 혁명 1917-1938>은 스탈린의 대숙청도 러시아 혁명의 일부라는 관점을 유지했는데, 세간에 알려진 대숙청이 단순히 이오시프 스탈린 개인의 권력욕에 의한 것이 아닌, 소련 대중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 속에서 계급투쟁 과정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는 점이 돋보인 책이었다.

물론 해당 저작은 분명히 스탈린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상당하지만, 서구의 기존 내러티브와는 분명한 차이점을 보였다는 점에서 나름 신선했다. 사실 소련사 연구는 여러 역사연구가 그렇듯, 전통주의와 수정주의 연구가 있다. 예를 들어 전통주의적 연구는 소련의 스탈린의 학살을 매우 강조했다면, 수정주의 연구는 소위 서구 사회에 알려진 스탈린의 학살이 매우 과장되었음을 지적하며, 역사의 또 다른 측면에 접근했다.

수정주의 연구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스탈린의 대숙청을 깊이 연구한 아치 게티라는 인물이 있다. 게티의 저작 <대숙청의 기원(Origin of the Great Purges)>은 스탈린의 대숙청에서 민중들이 부패한 관료들을 고발한 사례나, 고발당할 수밖에 없던 군 인사의 숙청, 그리고 대숙청 시기 처형된 숫자가 서구에 의해 어떻게 과장되었는지를 밝혔다.

이와 같은 수정주의 연구들을 통해 우리는 소련 역사에 대해 보다 객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됐다. 그 수정주의 연구를 한 인물 중에는 호주 출신의 역사학자 쉴라피츠패트릭도 있다. 그녀 또한 스탈린의 대숙청을 ˝아래로부터의 혁명˝이라는 관점에서 연구했다. 또한, 서구 사회에 깊게 잡힌 내러티브인 ˝히틀러와 스탈린의 공통된 전체주의론˝을 비판적으로 접근하며 양자의 차이성에 주목했다.

따라서 이 책은 소련사 전문가가 쓴 간략한 개론서라 볼 수도 있다. 책은 1917년 러시아 혁명부터 1991년 소련의 붕괴까지를 다룬다. 내 입장에서는 소련사 관련 책들을 여러 권 읽었기에 다시 한번 복습한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스탈린 시기에 대한 쉴라의 분석은 동의 안 되는 지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쉴라는 현재 우크라이나 정부에서 주장하는 홀로도모르 제노사이드론에 비판적이다. 비록 이 저작에서 깊이 언급되지는 않지만, 해당 부분에 대한 그녀의 입장은 ˝강압적인 집산화가 기근의 원인이 되었지만, 이오시프 스탈린이 의도적으로 우크라이나인을 학살한 것은 아니다.˝이다. 또한, 책 후반부의 소련 붕괴 이후 관련 내용에서 ˝우크라이나 정부가 홀로도모르 신화의 역사적 재해석을 시도˝했다는 표현이 그녀의 입장을 보여준다.

스탈린 시기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내용은 그 중요성에 비해 뭔가 짧게 다뤄지는 느낌이었지만, 가볍게 읽기는 좋았다. 그리고 냉전 초기 소련과 이스라엘 관련 문제에 대해 언급한 것도 의미가 있다. 소련이 단순히 친이스라엘이 아니라는 것을 쉴라의 책이 보여줬기에 나는 그 의의가 좀 있다고 보는 편이다.

물론 나는 쉴라의 주장에 다 동의하는 건 아니다. 쉴라는 스탈린 시기 집산화를 실패로 간주하고, 이후 흐루쇼프와 브레즈네프 시기 농업 발전이 신속히 이루어졌음을 강조한다. 물론 흐루쇼프와 브레즈네프 시기 소련의 농업 생산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며, 식량 소비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한 것도 사실이다. 1960년 기준으로 소련 인민들은 매일같이 고기식단을 즐길 수 있었는데, 스탈린 시기 최소 1주일에 한번 육류를 섭취할 수 있던 것과는 삶의 질이 달라졌다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집산화의 경우 분명 우크라이나나 카자흐스탄 그리고 남부 러시아에서 안타까운 대참사가 벌어진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단순히 집산화를 실패로만 보기에는 과거 혁명 이전 제정 러시아의 삶을 가만하자면, 단순히 실패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집산화가 단순히 강제적이지만은 않았다는 것은 린 바이올라의 연구에서도 알 수 있다. 린 바이올라에 따르면,

˝비록 중앙에서 시작하고 승인되었지만, 집산화는 상당할 정도로, 농촌의 지역과 지구에 있는 지방 당과 정부 기관의 자유롭고 진취적 기획에 의하여 특별한 정책이 되었다. 집산화와 집단 농장은 스탈린과 중앙 당국에 의해서라기보다 훈련되지도 않았고 권한도 없는 농촌의 관리들과, 자활에 맡겨진 집단 농장의 지도자들의 실험에 의해서, 후진적인 농촌의 현실에 의해서 형성되었다.˝

이와 같은 점을 고려했을 때, 나는 스탈린 시절 집산화가 실패했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분명한 사실은 집산화가 농촌의 삶을 바꿨고, 열악함이 있었음에도 과거 혁명 이전보다 더 나아졌다는 것이다. 또한, 해당 저작에서도 강조하는 흐루쇼프와 브레즈네프 시기의 안정적이고 풍족한 삶은 사실 그 토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후재건의 영향력이다. 따라서 나는 이런 점을 절대 간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쉴라피츠패트릭의 말대로 소련사회는 분명 고르바초프 이전까지 안정적이고 발전적이며 비교적 풍족한 삶을 살았다. 노동자들의 평균 월급은 브레즈네프 시절 300루블 정도였고, 고등교육을 받은 이는 평균 500루블 이상을 받았으며, 서구가 생각하는 노멘클라투라와 일반 인민의 생활 수준이 자본주의 국가처럼 그리 큰 것도 아니었다. 또한, 의료ㆍ교육ㆍ주거가 무상으로 제공됐고, 소비재 생산도 안정적이어서 사는데 부족함이 없었으며 그 가격도 매우 저렴했다. 구매력 지수로만 보면 자본주의 국가보다 훨씬 낫다. 물론 자본주의 국가의 대량생산을 따라가지는 못했지만, 생산수단이 국유화된 사회에서 이룬 업적으로서 내놓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소련의 사회주의 체제는 고르바초프가 집권한 지 6년 만에 무너졌다. 쉴라 또한 강조한 것과 같이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는 매우 어려웠다. 남성의 평균 수명이 짧아졌고 자살률이 급증했다. 러시아의 여성들은 돈을 벌기 위해 러시아나 유럽에서 몸을 팔았고, 이 과정에서 기회주의적인 사람들이 떼돈을 벌어 현재의 올리히가르히가 됐다. 빈부격차와 부정부패가 소련 시대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급증한 것이다. 이것이 보리스 옐친 시대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어떻게 보자면, 러시아에서 푸틴의 등장은 쉴라의 말대로 이런 혼란의 시대가 종식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물론 푸틴은 장기집권을 했고, 과거 소련을 부활시키는 행위를 하지는 않았다. 쉴라가 지적하듯이, 미국과 서구는 소련이 붕괴되었음에도 러시아를 적대했다. 고르바초프와 아버지 부시는 NATO가 더 이상 전진하지 않을 것이라는 조약을 맺었지만, 소련 해체 이후 NATO는 지금까지 꾸준히 동진해 왔다. 그리고 그것은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얘기한 것과 같이 러우전쟁 발발의 원인이 되었다.

이렇게 보자면 서구는 소련과 러시아를 너무 모르는 것 같다. 결국 그런 무지가 소련 해체 30년 뒤 서방과 러시아의 전쟁으로 이어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오랜만에 소련사를 개괄적으로 훑어보게 됐다. 솔직히 책 자체는 재밌었다. 개인적으로 일부 동의 안 되는 관점이나 반론할 부분도 있었지만, 소련의 역사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 분명히 도움이 되는 책이라 생각한다.

해당 저서의 원서는 2022년에 나왔다. 인류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 소련을 세운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지 108년이 지났다. 그 당시 레닌을 비롯한 볼셰비키 사회주의 혁명가들은 더 나은 사회를 원했고, 비록 문제점이 있었음에도 실제로 과거 보다 더 나은 사회를 건설했다. 그러다 1991년 사회주의 국가 소련이 붕괴됐고, 다시 자본주의 국가로 복귀했다.

비록 현재 러시아는 자본주의 국가지만, 아직도 소련 시절 사회주의 유산이 완벽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금도 수많은 러시아인들은 대조국 전쟁 시기 그러니까 히틀러 파시스트 침략에 맞서 소련이 승리를 거둔 역사를 여전히 기리고 있다. 그리고 그런 역사와 정신은 2022년 러우전쟁에서도 연결점이 분명히 있다.

한국 언론은 전혀 보도하지 않았지만, 러우전에 참전한 러시아 병사들 중에는 소련 깃발을 걸고 나선 이들이 있었고, 레닌과 스탈린의 초상화를 붙이고 전투에 임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 제1야당인 러시아 연방 공산당은 우크라이나 공산당ㆍ돈바스 공산당과 더불어 푸틴이 주장한 특수군사작전을 적극 지지했다. 소련의 역사를 알지 못한다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부분은 단순히 러시아 침략자라는 논리로 접근했을 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따라서 소련의 역사와 연결해서 봐야 이해할 수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책은 소련사 개론서다. 소련은 분명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부정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긍정적으로 볼만한 요소들도 많이 있었다. 문제는 전자만이 너무 한국인들에게 각인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러시아 사람들 중에는 소련 시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도 많이 있다. 그 점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한다. 따라서 이 책을 읽고 왜 현재의 러시아 사람들이 소련을 잊을 수 없는지를 알았으면 좋겠다. 소련에 대해 알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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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점령 4년사 - 친일파는 어떻게 기득권이 되었나
송광성 지음 / 나무이야기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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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 이후 남북 분단 정부가 수립되고 그 분단 정부가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이어진 사실을 모르는 한국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한반도의 분단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고, 그 분단의 책임에 누가 가장 결정적으로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설사 알더라도 반공주의의 여파로 이를 쉬쉬하는 측면이 있다. 1980년대 한국에서는 광주를 학살한 전두환 정권에 맞서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1980년 광주를 무자비하게 진압한 신군부와 이를 지원한 미국에 대해 알게 된 수많은 청년 지식인들이 80년대 내내 대학가에서 반미시위를 전개했었다.

 

1980년대 학생운동 과정에서 반미 성향의 학생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준 책이 있었다. 그 책은 바로 미국의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가 쓴 <한국전쟁의 기원(Origin of the Korean War)>이다. 사실 미국의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는 한국의 극우들의 믿음과는 달리 친북주의자도 아니고 사회주의자도 아니었다. 그저 미국 대외정책에 대해 매우 비판적으로 분석한 학자였을 뿐이다. 글쓴이가 커밍스의 책을 처음으로 읽은 것은 군복무 말기인 2018년이었다. 그 당시 글쓴이는 대체복무로 소방서에서 근무했고, 2017년에 번역된 커밍스의 저작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을 읽었다. 그전에도 여러 한국 근현대사 서적들을 군복무 내내 탐독했지만, 커밍스의 저작은 너무나도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무엇보다 커밍스가 분석한 남한과 북한 지도부의 성격과 한국전쟁에 대한 해석은 7년 전 글쓴이에게 소위 한국전쟁을 보는 또 다른 시각을 제시해 주었다.

 

보통 한국전쟁을 생각하면 1950625일 북한의 김일성 정권이 소련의 스탈린의 지령과 허가를 받고 기습 남침을 감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커밍스는 이와 같은 내러티브에 전면적으로 도전했고, 그런 서사가 왜 무의미한지를 너무나도 설득력 있는 근거를 바탕으로 반박했다. 글쓴이는 바로 이런 점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군복무 전후로 글쓴이는 미국의 대외정책과 제국주의적 개입을 다룬 서적들을 여러 권 읽었다. 이를 통해,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얼마나 많은 나라들에 개입하여 학살과 인권을 유린했는지를 알게 됐다. 여러 진보성향의 학자들의 분석을 종합해보면서, 글쓴이는 해방 이후 미군정에 대해서도 제국주의적인 지배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가나의 국부로 평가받는 콰메 은크루마(Kwame Nkrumah)는 저서 <신식민주의제국주의의 마지막 단계(Neo-ColonialismThe Last Stage of Imperialism)에서 신식민주의의 본질은 거기에 종속되어 있는 국가가 이론상으로 독립적이며 국제상의 주권국으로서의 모든 외적 장식물들을 지니고 있지만, 실상은 그 경제 체제, 따라서 그 정치적인 정책은 외부의 지시를 받고 있다.”라며 냉전 시기 서구 제국주의에 대해 강력히 비판했다. 이와 같은 은크루마의 논리로 보자면, 미국의 한반도 강점은 분명히 이런 측면이 강력히 남아 있었다. 해방 이후 한반도 이남에 세워진 미군정은 시작부터 점령군임을 표방했고, 과거 일제 친일 관료들을 그대로 등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것이 결구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연결이 되었다는 것은 매우 비극적인 일이었다.

 

무엇보다 미군정의 문제점은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 제국주의에 충성하던 친일 경찰들을 그대로 등용했다는 사실이다. 정말로 미군정은 일제 식민 경찰에 근무했던 조선인을 대부분 재임명했다. 미군정 정보 전문가 존 콜드웰은 미국은 일본 경찰 제도가 유지되도록 내버려두었다. 경찰 고위 간부는 대부분 일본이 훈련한 사람들이라서, 그들은 식민지 인민을 위한 정의와 인간적 대우에 대해 오직 일본식 방식과 일본식 생각만 알고 있다.”라고 했다. 실제로 자료를 확인해보면, 최소 80~85%의 미군정 치하 경찰들이 친일 경찰들이었다. 그 당시 대중들이 가장 증오하던 친일파가 바로 친일 경찰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해보자면, 미군정은 매우 반민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미군정의 한반도 이남 정책은 냉전 시기 미국이 친미 반공독재 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사용된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

 

이와 같은 문제점들이 해방 이후 미군 점령기간 동안 무수히 일어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이런 역사적 진실들을 항상 외면하고 있다. 오히려 미군정의 정책들을 공산주의에 맞서기 위한 방법이었다며 미화하는 세력들이 너무나도 막강하게 살아있다. 이와 같은 극우 반공 사상을 가진 이들이 죽지않고 시퍼렇게 살아있다는 것은 지난 202412.3 계엄사태를 통해 다시 한번 증명됐다. 지난 2024년 윤석열 정권이 한국 사회를 망치고 있을 당시, 너무나도 좋은 책 한권이 출판됐다. 바로 송광성 선생의 저서 <미군 점령 4년사 친일파는 어떻게 기득권이 되었나>. 글쓴이는 이 책을 읽으며 과거 커밍스의 책을 읽으며 느낀 지적 자극을 다시한번 느꼈고, 너무나도 감명깊게 읽었다.

 

글쓴이는 이 책의 존재를 올해 초에 알게 됐다. 부끄럽게도 이 책이 이미 1990년대 초에 출판된 책이라는 것을 지금껏 모르고 살아왔다. 무엇보다 이 책이 1980년대 후반 해당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이라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거기다 미국 UCLA 대학의 박사학위 논문이다. 글쓴이가 눈여겨 본 것은 해당 저작의 연구 방법론이다. 해당 연구는 해방 이후 미군정 하에서 벌어지는 민족모순과 더불어 계급모순도 함께 분석했다. 그런 점에서 본 저작은 마르크스주의적 분석도 함께 연결하면서 민족주의적 시각과 같이 본 셈이며, 그 당시 기존의 연구와는 차별성을 보인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한 접근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해방 이후 미군정은 단순히 민족적 모순만 부각시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미군정이 친일 및 반동적인 우익 인사들에게 생산 및 공장 경영을 맡겨 도시 노동자들과 어떻게 갈등하게 되었는지를 분석했고, 오히려 자주적인 노동자들이 미국이 내세운 인사들 보다 더 잘 공장 생산을 잘하고 관리했음을 입증한다. 이 부분에 대해선 해당 저작의 내용을 보자.

 

노동자자주관리운동의 몇 가지 예는 노동자가 생존을 위해 어떻게 투쟁했는지를 보여준다. 일본인이 소유한 서울 영등포에 있던 조선피혁 공장에서는 해방 전에 1,300명의 조선인 노동자가 군수품을 생산했다. 19458월에 일본이 항복한 후, 그 공장 사무직 노동자 10명과 육체노동자 25명이 자주관리위원회를 조직하고, 일본인에게서 소유권을 양도받았다. 자주관리위우너회는 108일에 공장을 다시 움직여 물품 생산을 재개했다. 하루 8시간 노동과 주말 휴일, 건강보험, 소비조합 등 개선된 노동환경 아래에서 노동자는 낡은 기계를 수리해 신발 생산을 100%, 가죽 생산을 200% 증가시켰다. 그러나 1946410일 미군정은 노동자들이 선출한 위원회 위원장 박인덕을 해고하고 체포했다. 그리고 조균훈을 새로운 경영자로 임명했다. 조균훈은 노동자위원회를 폐지하고, 비효율적이고 비민주적 경영으로 노동생산성을 67%나 하락시켰다. 노동자는 새로운 경영자에 맞서 파업을 일으켰다.”

 

송광성, 미군 점령 4년사 - 친일파는 어떻게 기득권이 되었나, 나무이야기, 2024, 216.

 

이와 같은 계급적 의제에 대한 문제의식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본다. 왜나하면, 이와 같은 사실을 우리가 현대사를 보는 데 있어서 쉽게 무시하기 때문이다. 미군정은 여러 부분에서 한반도 이남을 매우 가혹하고 잔혹하게 통치했다. 앞서 언급한 계급모순의 사례는 아래의 예시를 통해 다시한번 확인이 가능하다.

 

경성철도 노조의 행동은 철도 고용인 30%를 해고하고 월급제에서 일급제로 바꾸라는 91일자 군정법령 제55호에 대응한 것이다. 미군정 당국은 노조의 요구 조건을 무시했고, 운수국장 코넬슨은 "인도인은 굶고 있는데, 조선 사람은 강냉이라도 먹을 수 있으니 행복하지 않은가"라는 폭언을 퍼부었다.”

 

송광성, 미군 점령 4년사 - 친일파는 어떻게 기득권이 되었나, 나무이야기, 2024, 262.

 

이와 같은 분석을 통해, 송광성 선생은 미군정을 실시한 미군이 남조선을 점령한 정복자였음을 분명히 한다. 미군정은 일본과 미국 정복자를 다함께 반대한 혁명적 조선 민족주의자를 잔혹하게 탄압했고, 일본인 공장을 자주적으로 관리하던 노동자를 몰아내고 친일 분자를 관리자로 삼았으며, 이런 미군정의 행동으로 노동자들의 강한 반대를 불러일으켰다. 그 결과가 대구 10.1 항쟁이었다. 1946년 대구 10.1 항쟁이 일어나자 미군정은 매우 잔혹하게 진압했다. 서구의 많은 이들이 1989년 중국 공산당이 천안문 항쟁을 잔혹하게 진압했다고 규탄하지만, 정작 서구 세력이 더 무자비하게 봉기 진압에 나선 것에 대해선 외면한다. 대구 10.1 항쟁에서 최소 1,000명에서 수천 명의 조선인이 목숨을 잃었는데, 이 사태의 책임은 전적으로 미군정에게 있었다. 저자 송광성은 미군의 봉기 진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경찰은 미군이 깜짝 놀랄 정도의 잔인한 폭력으로 시위 군중에게 보복했다. 미군정 역사는 "혼란한 틈에 경찰의 극단적인 잔학 행위가 발생했다."고 시인했다. 미군 전술부대의 잔악 행위도 국립경찰의 잔혹성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1031일 전라남도 목포에서는 전술부대가 시위 군중 사이로 트럭을 몰고 지나가 많은 사람이 다쳤다. 미군정은 10월 민중항쟁이 공산주의 선동가 때문에 일어났다고 간단히 설명했다.”

 

송광성, 미군 점령 4년사 - 친일파는 어떻게 기득권이 되었나, 나무이야기, 2024, 281.

 

이와 같은 미군정의 진압은 1948년 제주 4.3과 여순에서도 나타났다. 4.3이나 여순은 계급모순과 더불어 민족모순이 매우 부각 되었고, 여기서도 미군은 무차별 민간인 학살을 동반한 진압에 나섰다. 19489월부터 19495월까지 2개월 동안, 미군정은 유격대뿐만 아니라 유격대에 동조하는 제주 도민까지 폭력으로 진압했다. 미군정의 진압으로 500~2,000명의 유격대가 죽은 것에 비해, 민간인 사망자는 최소 3만에서 최대 7~8만이었다는 사실은 미군정이 유격대와 싸운 것이 아니고 제주 도민을 대량 학살했음을 의미했다. 여순에서도 그렇게 수천 명(최근 추산치는 1만 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했다. 미군정이 1948년 제주와 여순을 잔혹하게 진압하고 학살한 데에는 자신들의 반공보루인 이승만 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저자는 이승만 정권이 미국의 괴뢰였음을 다음과 같이 분명히 하고 있다.

 

친미 집단을 양성하면서 조선인 민족주의자를 분쇄하느라고 3년이란 세월을 보내고 나서, 미국 군인들은 조선 민중의 강력한 저항에도 남조선에 이승만 정권이라는 반공보루를 구축했다이승만 정권은 미군정을 이어받았고 미군정의 정부 기구, 관리, 법률, 심지어 빚까지 떠맡았다. 이승만 정권은 형식상으로만 민주적이고 독립적이었으나, 사실상 독재정권이고 미국에 깊이 종속되고 있었다. 형식적으로 독립된 한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미군사력은 한국에서 철수하지 않았고,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군사 문제에 간섭했다. 미군사력은 1948년 여순에서 민중항쟁이 일어나 전라도 지방으로 확산했을 때, 이승만 정권의 몰락을 막았다. 미군은 남한 전역에 걸친 광범한 '좌익소탕', 특히 한국 군대에서의 좌익 숙청을 끝마친 후에야 비로소 한국에서 철수했는 데, 그때도 미군사고문단을 잔류시켰다. 이와 같은 역사는 1948년 대한민국이 수립됨으로써 한국이 미국에서 진정으로 독립되었다는 신화를 반박한다. 결국 미점령군과 조선 인민의 관계는 제국주의 국가와 그 식민지 국가 간의 관계에 지나지 않았다. 미점령군은 인공을 파괴했고, 일제의 식민 통치 구조와 인맥을 지속시켰으며, 다시 대한민국으로 이월시킴으로써 미국에 깊숙이 종속하게 했다. 그리하여 남조선은 일본 속박에서는 벗어났지만, 미국 신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송광성, 미군 점령 4년사 - 친일파는 어떻게 기득권이 되었나, 나무이야기, 2024, 205~206.

 

또한, 한국의 극우들이 그리도 칭송하는 이승만의 단독정부 수립이 사실은 반민중적이었음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유엔임시위원단은 전국 규모의 선거를 감시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결국 유엔위원단은 남쪽만의 단독 선거 가능성을 토의했다. 조선에서 개진된 의견 중 이승만 진영과 한민당, 미군정 당국만이 남쪽의 단독 분리 선거를 지지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공산주의자와 사회민주주의자, 김구와 같은 보수주의 지도자를 포함한 조선 민족주의자들은 남쪽 단독 선거를 반대하고 나섰다. 남쪽 내에서만도 상당수가 단독 분리 선거를 반대했다.”

 

송광성, 미군 점령 4년사 - 친일파는 어떻게 기득권이 되었나, 나무이야기, 2024, 345.

 

송광성 선생의 책은 미군 점령이 말 그대로 신식민주의적인 지배체제였다고 주장한다. 글쓴이 또한 이런 시각이 틀렸다고만 보지는 않는다. 분명히 미군정 체제는 태생부터 반민중성을 내재하고 있었고, 미군정의 친일 경찰 등용과 대구와 제주 그리고 여순에서의 민중항쟁 진압이 이를 입증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 미국에서 나온 논문인데도, 여전히 사회 분석 틀은 유용한 점이 많다. 이와 같은 분석을 바탕으로 한국과 남베트남 그리고 한국과 그리스 등의 여러사례를 비교 분석해보는 것도 의미가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해당 저서는 1980년대 후반에 나온 저자의 학위 논문이기에 이후 한국 사학계와 사회학계가 축적한 연구를 반영하지 못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연구를 계승 발전한 총괄적인 연구서가 필요하다.

 

좀 있으면(202563)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아마도 63일이 지나면 정권이 교체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내란 세력들은 멀쩡히 살아 있다. 해방 이후 미군정이 설립되고, 이승만 정권이 탄생하면서 우리는 친일 청산에 완벽히 실패했다. 그 여파는 현재까지도 윤석열과 같은 내란 세력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내란 세력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친일 세력이 형성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아야 한다. 앞으로의 미래에는 우리 민중들이 저 윤석열 내란 세력을 청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의 역사부터 올바르게 알아야 한다. 따라서 80년 전의 우리 현대사를 공부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송광성 선생의 책은 수많은 사람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라고 글쓴이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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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내전 - 혁명 그 이후 1917-1921
앤터니 비버 지음, 이혜진 옮김 / 눌와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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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적백내전 관련 통사가 한국에 번역된 것에 대해 깊이 감사한다. 전투 위주의 서술도 분명 군사적 측면의 분석은 분명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친서구적인 시각이 많다. 뭐 첫 술에는 배가 부를 수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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