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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당평전 2 (양장)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학고재신서 32
유홍준 지음 / 학고재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완당평전2>에서는 제주도 유배시절 중반기부터 1856년 김정희가 사망할 때까지의 시기를 다루고 있다. <완당평전2>의 주제는 '추사체(秋史體)'다. 우리가 '추사체'라고 부르는 그의 독특한 서체(書體)와 그 성립 시기에 대한 내용으로 시작하여 '추사'가 죽기 3일전 작성했다고 하는 '봉은사 판전'에 이르기까지 책 전반에서 다룬다.
[그림1] 김정희, <학위유종> (출처 : http://blog.daum.net/naondal/10867040)
'완당의 글씨가 괴(怪)하다는 말을 듣는 이유를 이 글씨에서 남김없이 알아볼 수 있다... "학문은 유학을 으뜸으로 삼는다"는 뜻의 <학위유종>은 고급 냉금지에 고급 먹으로 쓴 회심의 일필이다. 그 괴이함은 가히 극치를 이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씨는 획법(劃法)과 자법(字法)에서 나무랄 것이 아무것도 없다.'(p571)
인생 초반기에 중국 학자들과 교류하면서 직접 원본(原本)을 봤던 김정희였다. 그런 그였기에 자부심이 매우 컸고, 다른 이들과 함께 작품에 대해 논쟁이 벌어질 때면 매번 '내가 직접 원본을 보니까 말이지~'하는 말로 다른 의견을 눌렀다고 한다. (<완당평전1>참조) 오늘날 해외 유학파 학자들이 자신의 의견에 권위를 부여할 때 사용하는 말과 같이 그의 말은 그에게 승리와 함께 많은 적(適)을 안겨다 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도 유배'는 그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성립시기에 대한 논의와는 별도로 '추사체'는 이러한 자기 성찰의 결과물이라고 저자는 해석한다.
추사 김정희는 제주도 유배 이후 잠시 여유로운 시절을 갖지만(강상(江上)시절), 다시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를 가게 된다. 1년 남짓의 시기 동안이지만, 이 시기에 추사는 진흥왕 순수비 중 '황초령비'를 원위치 시키는 등의 여러 활동을 이어간다. 저자는 이 시기의 김정희를 서술하면서 그가 원래 강한 민족의식과 북방의식이 있었다고 서술한다.
'완당은 청나라 학자들과의 깊은 교유 때문에 국제적 감각의 지식인, 심지어는 사대주의적 분위기에 젖어 있던 지식인으로 흔히 인식되고 있다. 나 또한 한동안 그렇게 생각해왔지만, 실제로 그는 민족적 자부심이 대단히 강하고 우리 민족의 대륙적 기상과 북방적 기질을 사뭇 동경해온 분이었다.'(p638)
이 글을 읽으면 저자는 김정희가 처음부터 강한 민족을 가지고 잇었던 것처럼 인식함을 알 수 있다. 내가 추사 김정희에 대해 깊이 있게 연구하지는 않았기에 직접적으로 반론하기는 어렵지만, 김정희의 글씨가 '제주도 유배' 이후 기름기를 뺀 독창적인 '추사체'로 발전한 것처럼, 김정희가 원래 강한 민족의식을 가졌다기보다 그의 민족의식 역시 당시 외지(外地)였던 함경도 북청에서 강하게 발현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유홍준 교수가 김정희의 민족 의식과 관련하여 제시한 시(詩)가 북청 유배 시절에 지어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도 유배'와 '북청 유배'는 글씨로는 청나라의 영향을 많이 받은 '완당(阮堂)'에서 독창적인 세체를 가진'추사(秋史)'로 나가는 계기가, 사상적으로는 '소중화(小中華)사상'에서 벗어나 '조선(朝鮮)'을 강하게 인식하게 계기가 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림2] 봉은사 판전 (출처 : 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
' 봉은사 경판전을 위해 쓴 완당의 이 현판은 결국 그의 절필이 되었다. 이 판전을 쓴 지 완당은 3일 뒤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p761)
<완당 평전>1,2를 읽고 난 뒤 김정희의 일생을 통해 마치 '연어의 회귀'를 생각하게 된다.
더 큰 세상을 동경하고 큰 세상에서 함께 하기를 꿈꿨던 김정희. 그가 후세에 이름을 남긴 것은 완원, 옹방강 등 당대 국제적인 학자들과의 교류보다 그에게는 쓰라렸던 유배 생활을 통해 얻은 '추사체' 였다. 고난을 이겨내고 얻어낸 추사체와 김정희의 일생을 살펴보면서, 민물고기로 태어나 대양(大洋)에서 일생을 지낸 후 자신의 산란지로 찾아들어 죽음을 맞이하는 '연어의 인생'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죽음의 여행을 통해서 얻어낸 것이 연어에게는 '새 생명'이라면, 김정희에게는 '추사체'가 아니었을까.
[그림2] 연어의 회귀( 출처 : SBS뉴스)
<완당평전>을 통해 우리는 조선 말을 살아갔던 국제적인 석학(碩學)의 모습과 함께 우리 삶에 고난(苦難)이 반드시 쓴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하늘이 장차 사람에게 큰 임무를 내리려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 그 뼈마디가 부러질 듯한 고통을 주며, 그의 몸을 굶주리게 하고, 그를 궁핍보다 더한 공핍의 상태로 만들며, 어떤 일을 행함에 있어 그가 하고자 하는 바를 뜻대로 되지 않도록 어지럽히시니,이것은 그의 마음을 움직여 타고난 작고 못난 성정을 인내로 담금질하게 함으로써 그가 수행할 수 없던 하늘의 사명을 능히 감당하도록 그 역량을 키워주려 함이다.
孟子曰,
天將降大任於是人也인댄
必先苦其心志하며 勞其筋骨하며
餓其體膚하며 空乏其身하야
行拂亂其所爲하나니
所以動心忍性하야
曾益其所不能이니라。
ps. <완당평전3>은 에서는 김정희의 편지와 전시회 출품작 등을 수록하여 앞서 평전 1,2와는 또 다른 성격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