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애인이 페이스북에 한대수와 같이 사진을 찍고 자랑질해놓은 걸 보았다. 아 물론 옛날 애인 사진 막 찾아보고 그러지 않음, 친구의 친구인지라 아직까지 온라인으로 보기는 보지만. 이게 더 구차한 변명처럼 들리겠는걸. 노상 한대수 틀어놓고 그의 침대 위에서 일이 끝나고 나면 같이 책 읽던 때도 엊그제 같은데 벌써 수십년 전이다. 수십년 전 일이라고 하니 무슨 70대 할머니 같구먼 느낌이. 동굴에서 사람들이 그 벽에 벽화를 그리며 서로 낄낄거렸던 일처럼 아주 옛날 같아 기억에서도 흐릿한.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있어, 라는 그의 말이 뭘 뜻하는지 어렴풋 알 것도 같다 싶다. 어제는 마치 아주 옛날 일인 것만 같아 그게 작년이지? 벌써 1년도 지났지? 라고 친구에게 말해놓고 보니 무슨 1년 전인가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건 불과 1년 동안이었고 2024년은 질곡의 시간 속에서 갑자기 여러 번개를 맞아 뜻하지 않게 한꺼풀씩 그 틈바구니 사이에서 나온 한 해로 기록되지 않을까 싶다. 12월이 다 되어 앗차차 너무 놀았구나 라고 반성도 하고는 있지만. 이건 언제나 알라딘 새해 다이어리를 받을 적마다 느끼는 거다. 앗차차 너무 놀았구나 어느덧 한 해의 마무리라니, 라는 심정으로. 하여 사람들이 제일 많이 새해 다짐을 세우는 건 12월이다. 피티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제일 등록을 많이 하는 시기는 바로 한 해의 끝, 12월. 12월부터 슬슬 모터를 가동하여 새해에는 진짜 새로운 몸으로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겠다 라고 회원님들은 이야기하심, 이라고. 한 셋트 끝내고난 후에 그럼 새로운 몸으로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는 퍼센트는 어느 정도? 물어보니 머리를 굴리더니 음 글쎄, 한 5프로? 라고 그래서 좋아, 이 몸이 그 5프로 안에 들어가도록 하지요, 했다. 어제 친구의 진지한 표정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듣는 동안 좋아하는 이들 얼굴의 표정에서 마음을 앗기는 때가 각기 다르구나 라는 걸 알았다. 이 사람에게는 이 표정, 저 사람에게는 저 표정, 그 사람에게는 그 표정. 저녁을 먹고난 후 같이 귤을 까먹는 동안 민이가 너와 나의 경계, 나보다 너를 생각하는 것과 너보다 나를 헤아리는 것, 그 경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축제 준비를 하는 동안 한 아이가 무단으로 결석해서 팀 플레이에 차질이 간 이야기를 하면서. 집단과 룰에 대한 강직함이 이 아이에게는 있구나, 그걸 아이를 키우는 동안 여러 번 느끼곤 했다. 십대 후반이 된 아이는 그 강직함을 확연하게 드러내곤 한다. 진이 같구나, 싶었다. 내 첫째동생 진이와 내 아이 민이의 그 꼬장꼬장함, 그 꼿꼿함, 그 강직함, 그런 것들이 겹쳐지면서 진이 같구나 아이에게도 이야기했다. 무단으로 결석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 있었겠지, 팀 플레이에 차질이 생긴 건 아쉬운 일이지만 그 친구에게도 뭔가 사정이 있었겠지, 했더니 딸아이는 코로나 걸려 아픈 거 아니고서는 당연히 나와야지, 축제인데. 라고 답했고 그 답을 들으면서 아이 얼굴을 살펴보았다. 그렇지, 내 동생도 어렸을 때 그렇게 답하곤 했지. 열이 40도가 아니면 당연히 학교 가야지, 뭐 그런 식의 대답. 월요일에 만나면 물어봐봐, 왜 결석했는지. 말하고 모든 게 확연할 수 없단다, 아가, 살다보면 그런 경우들을 더 많이 겪을 테고, 네 강직함이 언젠가 거대한 벽에 부딪힐 때가 있을 텐데 그때 너무 아파하고 무너지고 그러지 마, 아가, 하고 속으로만 말했다. 오전 내내 아이를 데리고 병원과 헤어샵을 다녀오고나면 늦은 점심을 먹을 테고 일정이 다 끝나 집에 돌아올 무렵이면 어둠이 세상을 덮을 시간이고 허둥지둥 또 버릴 것들이 뭐가 있는지 헤아려야 한다. 기나긴 하루가 될듯 혹은 스쳐지나가는 것처럼 휙 지나갈 테고. 한해 마무리를 하려면 아직 시간이 좀 남았는데 올해 알게 된 건 내가 몸을 쓰는 걸 엄청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 이 몸이 나로구나, 라는 걸 알게 해준 이들, 요가 선생님부터 시작해서. 죽기 전까지 이 몸의 틀어짐을 내내 지니고 가야한다고 여겼는데 최대한 균형을 맞추려고 나날이 애쓰는 동안 매일 1000kcal 소모한지 이제 3주째. 엄마와 진이가 매일 아프다는 이야기를 한다. 오늘은 여기가 아프고 오늘은 저기가 쑤시고. 다리 찢기를 다시 시작하면서부터 다리를 찢어봐, 두 팔을 늘리고 목도 왔다갔다 움직이고 너무 안 움직이는 거 아니야? 잔소리를 매일 해대고. 새로 운동 하나를 더 시작하면서부터 느낀 건 움직이지 못해 환장한 년 같구먼, 이다. 어쩌면 팩트일지도. 간만에 핀란드 있는 친구에게 전화 넣어야겠군. 생일이라는 걸 깜박할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