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어떤 쪽이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미국 임금노동자의 몸은 더 피로해질 것이고, 더 고통 받을 것이며, 일상적으로 숨 쉬면서 일하기가 더 어려울 것이고, 그들은 소득수준이 더 높은 노동자의 평균수명보다 더 일찍 죽음에 이를 것이다. 소득수준이 더 높은 노동자 역시 뚱뚱해지고 있지만 그 추세는 더 느리게 진행되고, 그들은 운동을 할 기회도 상대적으로 더 많다. 서비스 직종에서 경제적 성공에 필요한 부르주아적 외모 규범을 좀 더 성공적으로 이용하는 노동계급 및 하위 프롤레타리아 계급 백인 여성을 제외하면, 과체중이거나 비만인 이들 빈곤층은 일자리를 찾거나 유지하기도 더 어렵고, 그러는 사이에 건강을 유지하기도 더 어렵고, 그로 인해 발병하는 질환에 대한 건강보험 비용을 지불하기도 더 어렵다. 그들은 점점 더 앉아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어날 텐데, 앉아서 일하는 종류의 서비스 직종이 점점 더 수동적이 되기 때문이 아니고, 더 불규칙하게 더 많은 일자리에서 일해야 하기 때문만도 아니다. 텔레비전 때문만도 아니고, 안전하고 쾌적하게 산책을 할 만한 공공장소가 점점 줄어들기 때문만도 아니다. 움직이기가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그들은 이전 그 어느 시대보다도 더 명백하게, 고통스럽게, 압도적으로, 장기와 신체가 쇠약해지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스트레스와 동반 질병에 시달리는 그들이 부모나 조부모 세대보다 더 젊은 나이에 사망하리라는 것이 통계상으로도 분명해졌다. 어느 아프리카계 미국인 논객이 실제적인 미국의 4대 식품군(설탕, 지방, 소금, 카페인)에 대한 가족생활과 문화의 유혹이 계속된다고 묘사한 바 있듯이,우리는 이 병적 상태, 즉 죽음이 한 가지 삶의 방식으로 체화된 것이라 할 수 있는 이 상태가 더딘 죽음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좋은 삶으로서 미국의 노동자 대다수에게 남겨진 것은 바로 이 더딘 죽임이다. (211-212, 강조는 인용자)

세지윅이 제시한 회복적 비평은 1970년대 문학 이론에서 진리 형식을 해체하는 실천에 반대하며 나온 것으로, 욕망에 대한 미완의 사유와 욕망에 대해 아마도 아직까지 사유되지 못한 사유를 지속하려 한다. 이런 사유를 지속하지 않는다면 이런 사유는 관례의 존중이나 이성애를 규범으로 삼는 문화가 으르렁거리는 아우성에 격파되고 말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글을 쓰는 그 누구든 글쓰기의 과업은 욕망의 편력을 추적하는 것,욕망에 감추어지거나 억압된 절대적 진리나 절대적 해악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욕망의 다양한 애착심을 섹슈얼리티로서, 체험된 삶으로서, 가장 중요하게는 상처와 쾌락을 혼동하는 미완의 역사로서 정교하게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227, 강조는 인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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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 작가들의 ‘수난사‘를 돌이켜보노라면, 1930-40년대 식민지 시절의 부유한 엘리트 집안에서 성장한 전혜린의 성장세계와, 또 1950-60년대 전후 혼란의 시기를 거치며 급격한 보수화 성향을 한국 사회에서 ‘괴짜‘ 취급을 당했던 전혜린의 정신세계를 한꺼번에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전혜린은 제1기 여류 문인과 제2기 여류 문인이 겪은 호기심과 조롱과 모욕적인 숭배를 모두 경험한 인물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특히 한국에 돌아온 전혜린이 급작스레 자신의 평범함과 초라함을 과장스럽게 자문하게 되었던 과정에는 재능에 대한 불안뿐 아니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표현을 빌자면 ˝불란서 시집을 읽는 고운 손˝과 (당시 남성 문인들이 전혜린을 묘사할 때 가장 많이 썼던 단어인) ˝괴짜˝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당시의 상황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녀는 ‘슈바빙의 자유로운 개인의 위치‘에서 ‘1960년대 한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현실‘로 급작스럽게 내동댕이쳐진 것이다. 1961년 1월 7일 자 일기에는 그 불안한 심경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동무를 만났다. 몹시 마르고 빈상해져서 기이할 지경이었다. 눈은 더 나빠진 모양. (......) ‘독신 직업여성‘이라는 한 개의 문제를 안전에 본 감이 있었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직업이란 생활의 쾌적은커녕 필요한 것(das Notwendige)도 해결해줄 수 없을 지경이니 더욱 기가 막힌다. 그렇다고 결혼이 언제나 누구에게나 최선의 바람직한 상태(bester und wenschenswerter Zustand)일 수도 또 없는 것이고......

1960년대를 전후한 한국 여성의 일반적인 상황은 당시 매진 사태를 기록했던 여성 교양지 [여원]을 통해서도 대략 짐작할 수 있다. 1955년 10월에 창간한 [여원]은 ˝가족의 구성원으로서의 여성, 즉 아내와 어머니를 포괄하는 ‘주부‘로서의 ‘여성‘을 훈육하기 위한 잡지˝이자 ˝여성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여성과 관련된 사회적 영역이나 문화는 현실적으로 어떠한 것인지, 여성들은 어디에서 공부를 하는지 등, 여성들이 새롭게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방식 전반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출처˝이기도 했다. 현모양처에 대한 남성 중심적 발언이 주조를 이뤘지만, 간간히 자유연애라든가 (당시로선 매우 드물었던) 전문직 여성들에 관한 기사가 실릴 때에는 당사자들의 솔직한 고백이 활자화되면서 ‘결혼과 직장을 병행하기 힘들다.‘, ‘결혼은 여성 개인의 삶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급진적 발언들이 불균질하게 튀어나왔다. 이곳에 글을 자주 실었던 전혜린 역시 [여원]의 그 같은 글들을 보면서 자신의 삶을 반추했으리라 여겨진다.
(196-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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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여행 간만에 간 내 동생 진이네 비행기 연착으로 아주 제대로 고생하고 있는듯. 무탈하게 잘 놀고 오기를.

엄마가 울었다. 엄마가 우는 동안 나는 이제 더 이상 울지 않는다. 어릴 때 맨날 엄마가 울면 동생들이랑 같이 엄마 앞에서 울었다. 마치 짐승들처럼. 엄마 뺨이 금세 새파랗게 멍드는 걸 보고 아빠한테 처음으로 굵은 머리로 이 개새끼야 라고 소리내어 말했던 기억도 난다. 아파서 울고 못 먹어서 우는 엄마를 앞에 두고도 이제는 울지 않는다. 괜찮아, 잠깐만 고생하면 괜찮아, 등을 쓸어주었다. 불쌍한 노친네 모시고 가서 병원에서 수액 맞는 동안 친구들이랑 수다. 아픈 엄마 이야기를 했더니 엑스가 말했다. 신체적으로 병원에서 뭔 이상이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면 심리적인 문제야. 어머님이 지금 많이 힘드셔서 육체적으로 거부하는 거야. 어머님은 못 드시는 거라고 하지만. 그거 말곤 없어. 어머님이 못 드신다고 해서 너까지 안 먹고 그러지 마. 곁에서 잘 케어하려면. 조금씩 뭘 자꾸 드시게 해, 억지로라도. 아마 사랑받고 싶으신 거 아닐까. 그 말을 오래 생각. 아빠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면서 같이 창밖 노을을 바라볼 때,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 너무 아파, 하고 중얼거리던 아빠 목소리도 더불어.

집착하지 않고 서로의 세상을 드넓혀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생각을 했다. 나는 집착하지 않을 거야_ 당신에게, 이런 말은 하나의 집착이 된다. 그러니까 집착으로서의 허울이 완성되어가는 거다. 그러니 함부로 그런 마음을 말로 소리내어 말하면 안된다는 사실을 지난 여름, 가을, 겨울, 올해 봄 내내 깨달았다.

먹는 것보다 잠 20분 더 자는 게 좋은 내 아가는 토스트 하나 우겨넣고 보리차 꿀꺽꿀꺽 마시고 냅다 달려갔다. 빗길에 넘어지면 안돼! 뛰지 마! 소리 지르고 등교시킴. 등교시키자마자 등교 시간을 한 시간 늦추겠다는 학교 문자가 날아와서 당황스러웠다. 하하.

번뇌가 적으면 적을수록 사는 게 심플해진다는 걸 알았다. 사주를 보면 항상 쉬이 기쁨을 느끼는 아이 같은 존재라고 나오는데 별자리에서도 역시 그렇게 나왔다. 거울을 보고 씩 웃어보고 씩 웃어보고 하지만 아직도 덜 풀려서 근육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아 어색하기만 하다. 이제는 아프지 않다. 으흠 3년 후에는 한 5년 정도 지속되는 약이 나오면 좋겠구나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음. 켁. 번뇌가 적어진다고 해서 웃음이 많아지는 건 아니야,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래도 번뇌는 최소화하고 웃음은 더 많이, 그런 뻔한 말을 서로.

아가는 친구가 빌려준 최진영 소설을 읽고 또 미친듯 울었다. 아 이제 좀 책에 빠져드는건가 했는데 금세 친구들과 게임을 하며 하하호호 하는 거 보고 아 아직 때가 아니군 알았다. 책에 빠져들면 바로 다른 책을 집어들게 된다. 글쎄, 내 경우는 그랬는데 우리 아가는 또 다를 수 있지.

아침에 스트레칭 한판 제대로 하고 딱 일주일만 버티고 요가에 미친 년이 되겠다 하고 또 끄적거린다. 겁내지 마, 하고. 나와 비슷한 인간들이 살기도 하는구나 알았다. 그러니까 거짓 없이 진실하고 솔직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 지킬 건 지키면서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살아가는 거 자체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이들. 환대받고 환대하는 그 기쁨.

엄마 잠깐 들여다보고 학원 갔다가 오면 또 새앙쥐 꼴이겠다. 어제 옷 너무 가볍게 입고 나가서 에어컨 바람 직빵으로 맞으면서 책 한 시간 읽었더니 잘 무렵에는 목이 찢어질 거 같았다. 잘 때 추웠는데 자는 동안에 또 땀범벅되어서 새벽에 홀딱 벗고 잤다. 카페마다 다 미친듯 틀어댄다. 이거 너무 전력 소모 아닙니까, 솔직히;;;; 가을 자켓 가방에 쑤셔넣어갖고 나가야지. 감기 다 낫자마자 또 감기라니 아이구야. 비루하구나 중년의 체력이여. 아 맞다 이틀 전에 커피 테이크아웃하는데 멋진 바리스타 청년이 윙크해줬다. 윙크하는데 어우야 심장 두근거릴뻔, 차은우가 윙크하면 여자들이 모조리 다 으아아아아악 소리를 지르는 그걸 좀 알 것도 같더라. 물론 차은우는 내 스타일이 아니지만. 미친듯이 땀 흘리고 싶다. 온몸의 근육이 고통을 호소할 정도로. 이모들 연락 왔다. 오늘은 이모들이 케어할 테니까 아무 걱정 말고 일 보라고. 단호박 하나 쪄먹고 나갈 수 있는 여유가 생김. 이따 집에 오면서 잠깐 엄마한테 얼굴 보여주고 와야지.

방학 스케줄도 빡빡해서 너무 여름방학 짧아서 제대로 놀기도 힘들듯. 자라에서 본 예쁜 미니원피스 있어서 민이랑 그거 번갈아 입을까 생각중. 참아야 하나;;; 참아야겠지. 참는다. 이러고 자라 가서 입어서 딱 맞으면 살 거면서 하나마나 한 소리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역사를 만드는 일, 그 과정들에 대해서. 드디어 헤겔로 나아갈 수 있을듯. 조바심을 내지 않으면 돼. 그냥 자연스럽게 묵묵히. 그럼 나아가고 있을 거야, 라는 뻔한 말에 응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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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우리는 잔인한 낙관의 개념적 요소들에 주목하면서 낙관이 정동적으로 곤혹스러운 이중 구속, 즉 딜레마로 모습을 드러낼 때 잔인하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여기서 이중 구속이란 만족을 제공하는 동시에 만족을 가로막는 환상에 구속되고, 환상이 대변하는 낙관의 약속 그 자체에 또 구속되는 것을 말한다. 잔인함은 가혹하게 상실을 경험할 때의 그 ˝가혹함˝에 있다. 그것은 세상의 어려움과 맺었던 유대 관계의 포기라는 복합적인 위협을 전달해 주는, 분위기의 어떤 변화나 박자 같은 형태를 띠는 정동의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 남는 일은, 정동적 애착심의 행위를 역사적, 문화적, 정치적 장 안에서 어떻게 형식적으로 위치시킬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따져 보는 일이다. 그래서 너무나 압도적이면서도 지속적인 부정을 생산하는 대상, 장면, 삶의 여러 양태에 얽히고설킨 애착의 과정을 밝힐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리얼리즘을 설명하려면 정동을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대상/장면은 리얼리즘의 장르에 속할 수 있다 - 일화, 기이한 소리, 꿈, 반려 동물, 쿠키 등 모든 것이 그러하다. 중요한 것은 대상/장면에 세계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을 투자하는 관계가 존재하는지 여부이다. 적어도 알튀세르 이후로 이데올로기론은 비평 이론이 정동의 리얼리즘을 설명하기 위해 의존해 온 영역이었다. 즉, 사람들이 적어도 처음엔 거의 의식적으로 동의한 적이 없는 삶의 양태에 애착심을 가지게 된 것이 어떻게 그들의 욕망을 매개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영역이었다. 그런 삶의 양태가 실제로 잘 살기에 위협이 되건 혹은 세계 속에서 견딜 수 있게 하는 일견 중립적이고 믿을 만한 틀을 제공하건 혹은 둘 다건 간에, 그것은 여전히 이데올로기적인 관계이다. 우리는 세계 속에 주체로서 자리를 잡으며, 그래서 그 관계는 우리가 세상만사를 이해하는 구조를 결정하는 조건으로 우리 안에 존재한다. 우리의 인식론적 자기 애착은 규범성을 판별하는 능력과 전적으로 분리 불가능하고, 그것들(우리의 인식론적 자기 애착과 규범성 판별 능력)의 관계가 세계의 현재 진행성과 인간으로 존재하는 우리 역량에 대한 신뢰를 가늠하게 하는 상식적 척도가 된다. 눈에 보이는 세계와 우리가 형성하는 호혜성의 느낌, 사람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느낌, 행위의 연속적인 장면으로서의 우리 정체성에 대한 느낌이, 삶을 어떻게 살아 낼지에 대해 오장육부에서 나오는 우리의 직관을 형성한다. (101-102, 강조는 글쓴이)
  • 잔인한 낙관로런 벌랜트 지음, 박미선.윤조원 옮김후마니타스 2024-06-17장바구니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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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 : 알려진 혹은 비밀스러운
라데크 말리 지음, 레나타 푸치코바 그림, 김성환 옮김, 편영수 감수 / 소전서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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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그러니까 인간의 마음을. 새를 필요로 하는 새장, 그것이 바로 나란 존재_ 란 말을 한 카프카의 마음을. 말이 전부다, 아가, 하고 오늘 내 혀로 내 아이를 푹 찌른 걸 자책하는 아침, 벌레가 되어서도 사랑받고자 애쓰려 하는 아이들의 우화 속 굽어진 어깨들을 응시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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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07-11 1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민이 가장 사랑하는 카프카.
내가 여지껏 못 읽은 카프카.

수이 2024-07-11 17:53   좋아요 1 | URL
배고파서 흰우유 꿀꺽꿀꺽 마시며 민이는 카프카가 왜 그렇게 좋은건가 하고 민이 엄마 땀 뻘뻘 흘리며 댓글 답니다. 더운 건 싫은데 에어컨은 더 싫어서 에어컨도 못 틀고...... 퇴근하셨으니 2부 시작이군요, 오늘 글 좋더라. 가서 꽈악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