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knows why people are different?

We are born with a certain nature, I think.

And then the world takes its swings at us. (39)

타고난 본성, 이게 어느 정도의 영향을 발휘하는지, 그건 예순이 지날 무렵, 정확히는 여든이 넘고 아흔이 넘어 아직까지 내 곁에 있는 이들을 바라볼 때, 행운이 작용할 때를 제외하고 불행이 닥쳤을 때 그들이 어떤 식으로 그 불행의 산고비와 파도를 넘어 현재에 다다르고 있는지 그 모습을 마주할 적마다. 일흔 다섯의 노년 여성들 다섯 명의 일상을 비교해볼 적마다 이때도 알게 된다. 타고난 본성의 영향력. 이걸 살아가면서 어떤 식으로 강화하는지 혹은 그에 맞춰 살아가는지. 아침 간단하게 먹고 에스프레소 마시면서 마주한 구절. 확 눈에 들어오길래. 자기검열 유난스럽다 할 정도로 안 되는 인간, 이라는 구남편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하는듯. 근데 이게 내게는 필요 없다는 걸 알았다. 17년 같이 살아온 세월이 헛된 건 아니지만 나를 가장 잘 알면서도 나를 가장 모르는 인간 중의 하나. 물론 나도 그에게 그런 사람 중의 하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앞으로 몇 번이나 그를 보게 될까 싶기는 하지만 감정의 찌꺼기가 전혀 남아있지 않은 걸 보면 앞으로 종종 보기도 할 거 같고. 다시 돌아가서, 타고난 본성대로 살아가고 그에 맞춰 적절한 반격을 가하면서 살아간다면 좋을 텐데. 언제나 나보다 더 앞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이야말로 내 스승은 스승이다 싶다. 아 저렇게 절대 살지 말아야 함, 이라고 몇몇 언니들을 보면서 또 여러 가지를 느꼈기에.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소설 보면 막장도 정말 이런 막장이 없다 싶은 드라마인데 그저 막장이기만 한 것은 아니야, 이 절제된 품격이라니. 의도치 않게 또 한 커플의 불륜 소식을 접했다. 웃긴 건 남자가 우리가 하는 건 폴리아모리야, 라고 주장한다는 점. 그냥 여기나 저기나 다 폴리아모리 투성이로군. 판단의 잣대로 재지 않고 소송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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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만추 OST가 흘러나왔다. 음악을 듣는 동안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탄생]이 막 개봉되고난 후 아르바이트를 하던 카페에서 영화 토크 행사가 열리던 때가 떠올랐다. 음악을 듣는 동안 두 남자가 떠올랐다. 영화 토크 행사가 끝나고난 후 얼마 되지 않아 한 남자의 고백을 받았고. 자, 어떻게 흘러갈지 한번 봅시다, 라고 인사동 카페에서 말했던 게 문득 떠올랐다. 그리고 얼마 전에 헤어진 구남친도. 나도 모르게 두 남자를 좌우로 놓고 어쩌면 이다지도 다른 인간들을 사랑할 수 있었을까, 싶어서 또 머리를 곰곰. 대차대조표를 작성하고 있는데 맞은편에 앉아 공부를 하던 아이가 말을 걸었다. 엄마, 나는 엄마의 미래의 애인이 이런 남자였으면 좋겠어, 라면서 말했다. 때마침 읽던 책에서는 프로이트 구절이 나왔다. 딸아이의 귀여운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런 남자를 못 만날 수도 있어, 라고 말했더니 엄마는 만날 거 같은데, 라고 해서 우리 공주님 소원이라면 힘 좀 써보죠, 대꾸했다. 달리기를 막 하고난 후라 허기가 져서 아이스초코와 쿠키를 주문했다. 세 시간이 흐르는 동안 옆 테이블에서 한 교수와 남학생 둘과 여학생 한 명이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틈새를 비집고 들려왔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라는 교수의 일장연설이 지루하게 이어지는 동안 귀 한쪽을 열어놓고 엿듣다가 귀를 닫고 다시 페이지 안으로 들어갔다. 에스프레소를 간단하게 내려 입가심을 하고 뜨거운 보리차 한 모금. 아이의 친구 엄마에게서 물어볼 것이 있다고 전화가 와서 이십여분 통화를 했다. 캘리포니아라, 마음 같아서는 나도 아이를 보내고 싶지만 불가. 스무살에 사랑했던 남자가 개같이 살아왔다는 걸 아니 개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걸 우연한 기회로 알았다. 가슴이 아팠다. 괴물이 되어버렸구나. 하지만 전혀 남남이 되어버린 입장인지라 상황을 안다고 해서 내가 할 것들은 없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 추이를 지켜볼뿐. 노을이 서서히 하늘을 덮을 무렵 귀가했다. 횡단보도를 지나갈 때 아이와 어깨춤을 추며 스텝을 밟았다. 잔인한 4월은 곧 지나간다. 봄이야, 엄마. 내 사랑이 말했다. 곧 정말 봄이 찾아올 것이다. 산수유가 온통 흐드러진 걸 보니. 달리기를 한다고 해서 너무 방만하게 먹는지 살이 도통 빠지지 않는다. 여름옷이 곧 잔뜩 배송될 터인데 어허, 난감한지고.

돌아오는 내내 리플레이해서 들은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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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5-04-07 2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추, 극장에서 봤어요. 저는….
현빈 땜에 갔다가 탕웨이한테 반했던 날이죠. 그날은… 😳

수이 2025-04-07 21:02   좋아요 0 | URL
탕웨이에게 항상 반하시는 분 후훕
 




원하지 않게 알고리즘으로 인해서 계속 미국 뉴스를 좀 듣다가, 연애를 하고 싶어도 연애를 하지 못하고 결혼을 하고 싶어도 결혼을 하지 못하는 미국 남성들이 어마무시하게 늘어날 거라는데 그로 인해서 사회적 혼란이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야기될 수 있다는 어느 미국 사회학자의 발언을 듣고. 아 그러한가, 상상도 하지 못할 그런 사회적 현상이 일어난다는 건가. 수요와 공급(이라고 표현하니 이상하긴 하지만)의 불균형.

다시 이 단락을 읽고 싶어서 아침에 쌀을 솥에 안치고 책장 안에 꽂혀져 있던 루시 바턴을 꺼내들었다.

This is me, and I will not go where I can't bear to go - to Amagash, Illinois - and I will not stay in a marriage when I don't want to, and I will grab myself and hurl onward through life, blind as a bat, but on I go! This is the ruthlessness, I think. (177-178)
















아미아 스리니바산의 책을 읽으면 루시가 한 말과 비슷한 문장이 나온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인생이라고 본다. 각자의 영역에서 무모함을 발휘할 수 있을 때, 진실로 박쥐처럼, 재고 따지는 뇌의 활동이 가속화될 때 역시 삶의 순간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것이 어떤 생의 조감도가 될 수 있겠지만 삶은 그 조감도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만일 삶이 내 조감도처럼 흘러갔더라면 지금쯤 나는 이곳이 아니라 딸아이와 함께 프랑스 파리 근교의 어느 도시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있어야 옳다. 아 아니지, 시차가 있으니 자고 있겠군. 이곳에서 내가 할 일을 찾기로. 날린 돈 수백은 아깝지만 그걸 아깝다고 계속 그것만 바라볼 수는 없으니까. 내가 있던 곳으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그 마음이 다른 길을 만든다면 그 다른 길로 가면 될 일이다. 내가 루시였어도 그러했을듯. 이 반지하에서는 언제 나갈 수 있을까. 빛과 어둠의 절반이 공존하는 곳에서 나중에 시간이 흐르고난 후 이때를 떠올리면 분명 내 뇌는 이 시간을 좋게 기억하게 되겠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게 될 것이다. 루시가 윌리엄과 함께 야구 경기를 보던 한때를 떠올리는 것처럼. 유재석 짤을 보는데 거기에서 뇌과학자가 한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일단 내 생존이 가장 먼저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뇌가 인간에게 알려주는 것들. 그러니 각자 내 생존과 내 실존을 위해서 헤아리게 되는 것들. 그런 빠른 셈법을 누가 탓할 수 있겠는가. 생존이 먼저이고 실존이 먼저인데 타인을 배려할 일은 아니다. 이게 거시적으로 봤을 때 가장 먼저 스스로의 생존과 실존을 갉아먹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건 셈법이 완벽하다 여길 때이고. 친구가 쓴 글을 오늘 아침 다시 읽으면서 '존재의 쓸모'에 대해서. 태도와 예의, 거기도 무시하기는 힘들겠다 싶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 때, 제일 빡치는 포인트가 커다랗게 동심원을 그리는 건 특유의 지랄맞음이지만. 다시 프랑스를 택하게 될 거 같지는 않다. 현재로서는. 하지만 또 모르는 일이고. 재빠른 포기의 미덕. 이게 또 장점인지라. 아이가 너무 갑갑해해서 잠깐 걷기로 했다. 병아리콩을 너무 많이 넣어서 이게 쌀밥인지 병아리콩밥인지를 모르겠군. 단백질에 미친 중년 여자처럼 보이는군. 청소기 돌리고 휘리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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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고받는 마음에 있어서 측량질을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건 물론 나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러하리라,고 보지만 다른 이들 마음을 내가 다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니 또 측량질이 가능한 마음 헤아리는 법이 있을 수도 있겠다. 휴버트 드레이퍼스와 숀 켈리를 펼쳤는데 마주한 문장들을 보고 그저 선택이었을 뿐이다. 손바닥을 마주하는 행위에 있어서. 한 사람이 손을 내밀면서 당신은 이 손을 마주잡을 수도 있지만 잡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건 당신의 선택입니다. 오롯이. 이런 경우에 한참 머리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건 대부분. 잡을래? 잡지 않을래? 선택하라고 했지만 그 케이스에 있어서 잡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더 크지 않았을까. 그 이후에 어떤 과정과 결과가 펼쳐질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봤자 내 뜻대로 온전하게 흘러가기란. 역시 이번 일을 겪으면서도. 강요한 적이 없지 않나. 다 각자의 선택으로 함께 하는 동안에는 함께 했고 더 이상 함께 하기 싫다 하면 그것으로 끝인 거고. 사랑이 아니라는 말을 하는데 하나는 그걸 사랑이라고 받아들이고 이건 대체 뭔가 싶으면서 미처 보지 못한 것들도 볼 수 있었다. 홀가분하다. 홀가분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음. 이라고 하면서도 홀가분하고 이게 각자의 선택이고 그렇다면 또 그렇게 나아가는 거지, 라고 생각하면서 비스켓을 깨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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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애니메이션 스토리
찰리 맥커시 지음, 이진경 옮김 / 상상의힘 / 2024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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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이 처음 서로를 만날 때, 삶이라는 여정을 함께 하는 모습을 단순한 스케치와 너무 심플하다 못해 쏘심플한 문장들로. 가볍게 원나잇 상대로 여겼는데 그 사람이 내게 서서히 집착하기 시작할 때, 그 어리둥절함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알 수 없어서 난감해했던 이십대 후반에 잠깐 만나다 헤어진 이비인후과 닥터가 떠올랐다. 내게 집이 되어달라고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사람이었기에 이 동화와 겹쳐 떠오른 것. 그 사람은 알코홀릭이 되었지만 인정사정없이 유명해져 떼돈을 벌면서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다. 아 이럴 줄 알았더라면 그 인간과 진득하게 연애를 할 것을. ELO를 온종일 들었다. The whale을 반복적으로 듣는 동안 갓 만들어진 상처 안에서 새롭게 살이 차올라 피고름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할 말이 없어서 그 말을 하지 않는 게 아니다. 솔직하게 모든 걸 다 말하고플 때는 언제나 24시간 내내. 혀에 독이 묻은 채찍을 사정없이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이라고 구남편은 말하곤 했다. 그러니까 잘못을 저지르지 말고 죄를 짓지 마, 라고 시니컬하게 대꾸했던가. 하지만 그러기로 작정한 건 이혼을 결심할 무렵부터였다. 사랑이라는 말은 심심하다. 사랑을 느끼게 만드는 이들에게조차 사랑이라는 말을 표현하기는 이상하다. 인간은 인간을 만난다. 원가족이 아닌 이상 다른 인간을 만나 지인이 되어 친구가 되기도 하고 지인으로 평생을 지내기도 하고 연인이 되기도 한다. 가족이 되기도 한다. 인간이 인간에게 감동을 주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내면과 내면으로만 소통을 하고 그 소통하는 시간 동안 자유로움과 기쁨을 느끼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인간은 인간에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겪고 그 당황스러움을 어떤 식으로 표현을 해야 하나 난감했다. 어려서 그러려니 하자, 했지만 속은 온통 뒤집어졌다. 사라져가려는 것들에 허탈함을 느끼는 것도 사치라는 것을 알았다. 내게 있는 이들에게 무심해지지 말자, 다시 다짐했다.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의 선택과 결정에 박수를 보냈다. 다가올 이들에게 마음을 닫는 일도 하지 말자. 친구가 마음이 아프다 했다. 떠나보내는 이의 마음도 아프다 했다. 차갑게 마음의 빗장이 닫히는데 무심하게 마냥 수긍할 수는 없어서 확고하게 말을 하고나니 좀 가벼워졌다. 설거지를 마치고 디카페인으로 커피를 내리고 천천히 마시면서 한 장씩 펼치며 읽고 그림을 보았다. 계시처럼 마음을 쓰다듬어주어 편히 잘 수 있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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