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그람시 살림지식총서 179
김현우 지음 / 살림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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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람시를 처음 접하는 이들은 그람시가 쓴 글을 읽는 게 제일 좋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람시라는 사람에 대해 대략적으로라도 알고 싶어한다면 이 얇은 책이 크나큰 도움을 줄듯 하다. 아침부터 그람시, 여름부터 그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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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1-06-20 17: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옥중수고 풀버전을 읽으려고 이탈리아어를 공부해볼까 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영문판도 편역이라고 하더라구요.

syo 2021-06-20 17:53   좋아요 1 | URL
안했지만.

수연 2021-06-20 18:22   좋아요 1 | URL
저보고 하라는 소리 아니죠 🤭
 

하지만 가비노의 인생은 전환기를 맞게 된다. 스물한 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의 강요로 군에 입대해서 기술을 배우게 되는데, 사르디니아 사투리밖에 할 줄 모르는 그에게 한 동료가 표준어와 라틴어, 그리스어를 가르쳐주게 되면서 지식에 대한 가비노의 열정과 재능이 피어나게 된 것이다. 고향에 돌아온 그는 이미 과거의 가비노가 아니었고 아버지와의 권력관계도 예전과 같을 수 없었다. 가비노는 양치기를 거부하고 집을 떠나며 절규한다. "아버지는 내 주인이 아니에요. 이제 나는 내 삶을 살 거예요!" 이탈리아 본토로 간 그는 사르디니아 방언연구로 언어학자가 되고 자신의 삶을 담담히 돌아보게 된다.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와 가비노는 비슷한 점이많다. 우선 사르디니아에서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고 자랐다는 점이 그러하고, 이탈리아의 계급적이고 지역적인 배경에서 비롯하는 사회 분할과 억압을 경험하였던 것이나 언어학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빠드레 빠드로네」의 가비노는 그람시가 걸어갈 수도 있었던 또 하나의 인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람시에게는 가비노가 누릴 수 없었던 가족의 따뜻한 사랑과 보살핌이 있었다.- P4

안토니오 그람시는 1891년 1월 22일 이탈리아의 큰 섬 사르디니아의 알레스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이탈리아에 속해 있긴 해도 사르디니아는 긴 장화처럼 생긴 이탈리아 반도에서장화의 발꿈치만치 서쪽으로 떨어져있는, 변방 중에서도 변방의 섬이다.
당시 사르디니아는 가난에 찌든 소작농 사회였지만 그람시의 집안은 비교적 여유 있는 알바니아인의 후손이었다. 알바니아계에는 가족의 성(姓)인 ‘그람시’라는 이름이 많다고 한다.
그람시의 할아버지는 부르봉 왕가의 헌병대 대령이었는데, 이탈리아 통일운동과정에서 나폴리 왕국이 무너지고 이탈리아왕국으로 편입될 때까지도 이 계급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람시의 아버지는 나폴리 출신으로 변호사가 되려는 꿈을포기하고 시골의 공무원으로 일했지만 지방에서는 흔한 말로 배운 축에 속했고, 여기에서 만난 그람시의 어머니 역시 보카치오를 읽을 정도로 당시로는 보기 드물게 지적 소양을 지닌 여성이었다.- P5

그람시는 "역사적인 발전은 두 번째의 계기, 즉 정치적인세력관계라는 매개를 통해 첫 번째의 계기와 세 번째 계기 사이를 왕복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여기서 그가 특히관심을 기울인 것은 바로 두 번째의 계기, 즉 정치의 매개라는 계기였다.
대중의 의식, 즉 감성과 지식의 측면에서도 정치가 수행하는 역할을 비슷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람시는 "스스로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인간 모두는 나름대로 철학자이다" 라는 유명한 언급을 남겼다. 그런데 대중이 가지고 있는 맹목적이고 단편적인, 때로는 모순적인 의식의 요소들, 즉 ‘상식(commonsense)‘은 그들의 집단적인 의지를 행동화시킬 수 있는 비판적이고 체계적인 자각으로 변혁되어야만 한다. 하나의 세계관은 고립된 개인들 속에서 자연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집단의지가 형성되려면 그 출발점 및 확산의 계기가 있어야 하며, 이것이 정치의 매개인 것이다. 이는 토리노 운동의 생생한 경험을 반추함으로써 얻어진결론이었다.- P53

『옥중수고』에 실려 있는 [미국주의와 포드주의]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논문이다. 이 글의 전제는 혁명적인 노동계급 운동이 전 세계에서 후퇴와 패배의 국면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이처럼 대립하는 혁명적인 세력이 부재하게 되면 ‘수동적인혁명’ 만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결론 못지않게 이 글이 중요한 이유는 상황의 유동성과 모순의 복합성을 그람시가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람시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발전이낳을 모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던졌다.
그람시는 포드 자동차회사에서 노동자들에게 지급한 고임금이 어떠한 사회적인 의미를 지니는지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고임금 정책이 노동계급의 내부분화를 촉진시킬 가능성이있다고 보았다. 즉, 기업은 평균노동시간이 동일한 조건에서 생산성을 증가시키기 위해 새로운 유형의 숙련 그리고 노동력의 양과 사용방식의 변화를 강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포드사의 고임금은 그람시의 표현대로 하면 "기업이 노동자들에게서 차별성을 요구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 인식에서 그람시는 포드주의가 자본주의적인 생산방식의 합리화를 꾀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포드주의는 노동자 계급의식의 약화를 가져올 수있다고 지적한다.- P71

특히 ‘문화연구의 대명사’로 알려진 영국 버밍엄대학 현대문화연구소(CCCS)는 이 대목에서 특기할 만하다. 현대문화연구소는 톰슨, 윌리엄즈, 호가트로 대표되는 1950년대의 영국신좌파 흐름에서 출발했는데, 문학적인 색채를 짙게 드리우면서 넓은 의미에서 정서구조(structure of feeling)와 관련된 연구에 집중했던 초기와 달리 1960년대 후반 이후에는 알튀세르주의의 아이디어를 상당 부분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영국문화연구 1세대들과 기본적으로 연속선상에 놓여 있기에 구조주의적인 설명에 완전히 함몰되지는 않았던 이들이 1970년대 중반 이후에는 문화주의와 구조주의를 매개할 수 있는 인물로 그람시에 주목했다.
스튜어트 홀의 지적 궤적 역시 노동계급의 능동적인 문화생산에 주목하는 문화주의 및 의미작용과, 이데올로기에 대한구조주의적인 문제틀의 비판적 수용, 그리고 양자를 헤게모니와 국면 분석 등에 관한 그람시 이론을 통하여 종합하려는 시도로 축약될 수 있다. 홀은 이러한 틀에 기초하여 미디어, 하위문화, 포스트모더니즘, 정체성 및 대처리즘에 대한 국면분석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한 연구를 개척했다.
그람시 사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또 하나의 사례로 인종종족민족 문제에 관한 독창적 작업을 행한 에드워드 사이드를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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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1-06-20 11: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뭐람시? 그람시!?

수연 2021-06-20 12:21   좋아요 3 | URL
아재 개그인거야? -_-;;;;;;;;;;;;;;;;;;;

syo 2021-06-20 17:54   좋아요 2 | URL
왜그래.... 🥺

공쟝쟝 2021-06-20 18:00   좋아요 1 | URL
전 그람시만 보면 이 드립을 치게되…… 쿨럭 ㅋㅋㅋ 미안 그람시 ㅋㅋㅋ 뭐람시?

수연 2021-06-20 19:34   좋아요 2 | URL
쟝쟝님 그람시 안 좋아해? 그람시 좋아. 그람시 내 사랑. 그런데 잘 안 읽었더라구요. 금정연 내 사랑 이러고 한 권만 읽은 꼴이야 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1-06-20 19:40   좋아요 2 | URL
이 언닌 역시 프랑스 남자(푸코)보단 이딸리아 남자(그람시)인건가 ㅋㅋㅋㅋ 저는… 역시 미국남자(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 으응?) ㅋㅋㅋ 생각좀해보자…

수연 2021-06-20 19:42   좋아요 2 | URL
다양하게 접하고 정하자 🥰
 
물속에 쓴 이름들 - 마키아벨리에서 그람시까지, 손호철의 이탈리아 사상 기행
손호철 지음 / 이매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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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했던 방향과 달리 손호철의 이탈리아 짧은 여행 기록, 의미 있는 사상가들의 행로를 따라 가는 여정은 꽤 보람있어 보인다. 그람시 관련해서 집중도 있게 읽고 나머지는 한가할 때 후에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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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년이 지난 1929년. 피렌체에서 700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도시투리Turi에 자리한 교도소 독방에 채 150센티미터도 되지 않는 키 작은 사내가 앉아 있었다. 등까지 굽어 초라한 몰골이지만 날카로운눈매는 범상치 않아 보였다. 사내는 추위 때문에 곱은 손을 호호 불며 펜에 잉크를 묻혔다. 철창 밖에는 검은 셔츠를 입은 파시스트 대원들이 행진하고 있었다. 비좁은 감방을 울리는 군홧발 소리 속에서글을 쓰려니 로마에 있는 의사당에서 공산당 당수이자 의원 신분으로 베니토 무솔리니를 강하게 비판하는 연설을 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파시즘의 광기에 휩싸인 이탈리아판 ‘긴급 조치에 맞서다가 이곳에 끌려올 때까지 숨막힌 몇 달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뭔가 곰곰이생각하던 사내는 힘찬 필체로 쓰기 시작했다. II Moderno Principe.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현대의 군주론I Moderno Principe)을 쓴 정치인이자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람시는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구좌파)에 맞선 ‘신좌파의 효시다. 블라디미르 일리치레닌Vladimir lich Lenin 은 소련과 동유럽, 제3세계에 큰 영향을 줬지만,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한 뒤 더욱 주목받은 그람시는 유러코뮤니즘등 서유럽 진보 사상에 커다란 흔적을 남겼다. 그람시를 낯설어 하는보수적 이론가는 물론 보통 사람들조차 자기도 모르게 일상에서 그- P6

람시의 이론과 용어를 쓰고 있을 정도다. 바로 ‘시민사회와 ‘헤게모니다. 그람시는 이 잊힌 개념들을 복원하고 새로운 의미를 더해 현대화한 장본인이다.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John Kenneth Galbraith 는 우리가 자기도 모르게 카를 마르크스의 이론을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모두 마르크스주의자다." 마찬가지로 이런 말을 할 수도 있겠다. "우리는 모두 그람시주의자다.
이탈리아 하면 우리는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을 먼저 떠올린다. 많은 사람이 이탈리아로 관광 여행과 예술 기행을 떠난다. 그렇지만 이탈리아는 마키아벨리와 그람시라는 정치사상가를 낳은 ‘사상의 나라‘이기도 하다. 고문과 유배에 시달린 마키아벨리와 10년 넘는 수감 생활을 견뎌낸 그람시는 왕정 복구와 파시즘이라는 반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살다 간 ‘시대의 반항아‘다. 둘 다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꿨고, 불멸의 대작을 남겼다.- P7

페르티니는 사회당에서 활동한 거물 정치인으로, 국회의장을 거쳐 7대 대통령을 지냈다. 그람시와 페르티니 두 사람의 우정은 지금도 미담으로 전해지고 있다.
반파시즘 투쟁을 벌이다가 구속돼 1931년 투리 교도소에 갇힌 페르티니는 어느 날 운동장에서 마주친 그람시에게 말을 걸었다. "그람시 선생이시죠. 저는 페르티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당신들이 사회 반역자라고 부르는 사회주의자입니다." 공산당은 전쟁과 제국주의를 지지한 유럽의 사회당들을 사회 파시즘이나 사회 반역자라고비판하고 있었다. 그람시는 나지막이 대답했다. "잊어버리세요. 그런 모욕은 수치입니다. 저는 그런 평가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의 우정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1년 뒤 페르티니는 질병을 치료하러 병원으로 이송됐고, 몇 년 뒤 그람시는 세상을 떠났다. 1년만에 끝난 인연이지만 두 사람의 우정은 영원했다. 페르티니는 투리교도소에서 처음 만난 그람시를 당통의 아름다운 머리를 한 피그미라고 회상했다. 프랑스 혁명의 지도자 조르주 당통을 닮은 그람시의 헤어스타일과 작은 키를 조합한 말이었다. 1990년에 세상을 떠난 폐르티니는 생전에 존경하는 그람시를 이렇게 평가했다. "내가 만난 가장 강력한 정치적 두뇌이자,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사람 중 가장 위대한 문화인이다."- P39

투리 교도소에 갇혀 지내며 너무 고생한 탓에 그람시는 건강이 나빠졌다. 40대 초반에 이빨이 모두 빠지고 소화까지 잘 안 됐다. 그런데도 독일어와 러시아어를 배우려 학구열을 불태웠고, 나중에는 영어와 스페인어도 공부하기 시작했다. 자유로운 몸으로 살고 있는 나는 누구도 꺾지 못한 그람시의 의지를 생각하면서 방금 걸어온 길하고 다른 길을 따라 마을 중심가로 향했다.- P41

광장에 세워놓은 사진을 보니 에트나 산은 성당 왼쪽 호텔 뒤에 자리잡고 있었다. 산은 보이지 않고 구름만 가득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바다로 떨어지지 말라고 설치한 난간에 기대어 활처럼 휜 해안선과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한참바라봤다.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다. 서울은 말할 것도 없고, 그람시도, 마키아벨리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타오르미나를 배경으로 한 단편 소설에서 헤밍웨이는 ‘모든 것이 색깔이고 너무 아름다워 쳐다보는 것만으로 상처를 입는다‘고 이야기했다. 나도 상처를 입었다. 헤밍웨이가 한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P83

언어학과에서 공부한 그람시는 뛰어난 학문적 자질을 보여줬다.
마테오 바르톨리 교수는 그람시를 매우 총애해서 이 ‘시골뜨기 제자’가 훌륭한 학자가 되리라고 굳게 믿었다. 그람시가 나중에 이렇게 회고할 정도였다.

인생에서 가장 유감스러운 기억의 하나가 좋은 스승인 토리노 대학교의 마테오 바르톨리 교수님을 크게 낙담시킨 일이다. 교수님은 내가 신문법론자들을 철저하게 퇴치할 천사가 될 수 있다고믿고 계셨다.


대학은 그람시에게 많은 것을 줬다. 투리 교도소에 갇힌 뒤 쓴 옥중 편지에서 그람시는 토리노 대학교에 다니면서 ‘언어학적인 엄격한 훈련 습관과 방법론적 엄밀성’을 배웠다고 썼다.-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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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력 - 젊은 만화가 테마단편집
AJS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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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사춘기가 시작되면서부터 왜 살아야 하나_를 버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계속 물었다. 열다섯에 사춘기 시작이었으니 마흔다섯인 오늘까지 30년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매일 묻고 살아왔다고 할 수도 있겠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준다면 좋은 책이고 좋은 작품이라고 여긴다. 강경옥 만화를 읽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그 질문도 시작되었던 거 같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주변인들과 이 사회와 대한민국과 지구와 전우주를 통틀어. 어쨌거나 다 읽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다시 한번 물었다. 딸아이 역시 이마에 내천자를 팍 그리고 오, 오, 오 하며 읽었다. 읽다가 잠시 낮잠을 잔다 하고 책으로 귀를 막았다. 이러면 여름 소리가 더 잘 들리는 것도 같고 이 책이 나를 보호해주는 것도 같고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바나나 구워갖고 와보니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세상 근심, 걱정거리가 너를 짓눌러 짜부를 시켜버리려고 할 때는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그렇게 낮잠을 자거라 딸아. 고통도 찰나, 기쁨도 찰나란다. 하고 입을 맞춰주고 아가 사진을 찍었다. 프라이버시가 있으니 얼굴은 가리고 올려본다. 하고 허락 받으려고 하니 안돼! 올리지마! 얼굴 가려도 내 친구들이랑 우리 선생님은 다 알아! 해서 결국 사진은 못 올리고...... 제목이 여자력인데 음 뭔가 제목 때문인지 어째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구석이 있긴 하다. 여자력 안에 강경옥 언니 만화도 들어갔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언니의 단편집을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잠들기 전에 다시 한번 이 질문을 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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