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정신 없었다. 단골 카페에서 책 읽고 있는데 사장님이 책 읽는 모습 예쁘다고 사진 찍어 보여주셨는데 뽀글머리 아줌마가 안경을 콧잔등에 걸치고 노안으로 책을 읽고 있더라. 그래서 아악 내적 비명을 지르고 아이에게 보여주었더니 영락 없는 아지매네, 라고 해서 그날로 후다다다닥 단골 미용실 오랜만에 예약을 해서 그러니까 6개월 만에 후딱 머리 폈다. 정확히 8년 젊어졌군, 이라는 아이의 칭찬에 헤헷거리고 앞머리 말고 숙제 하러 후다다닥. 보름만 바쁘면 좀 한가해질듯. 한나 아렌트를 읽다가 그러니까 악인에게는 정말로 내적인 마음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구나 라는 걸 느낌. 한나 언니는 다른 식으로 표현했지만. 사건의 개요만 대충 알고 있어서 정확한 건 재판일에 직접 가서 방청을 해봐야 알듯. 참 신기하네 싶은 지점들이 있는데 그건 시간이 좀 더 흘러봐야 알듯 싶고 궁금한 건 인간의 심리니까 그쪽으로 포인트를 맞춰도 될듯. 환멸 같은 건 없다. 그런 게 애초 생길 수가 없을 정도로 기대감이 없었기에 그러한 거 아니었을까 싶다. 알고 싶지 않은 일을 알게 되어 씁쓸하네. 씁쓸한 건 씁쓸한 거고 열심히 놀고 있다. 요가를 세 시간씩 하고 맥주를 매일 마시고 있다. 뭔가 또 돼지가 되어가고 있지만 언니도 작업 끝나면 바로 여름 시작. 우리의 갱년기를 아름답게 채색할 필요 없이 아주 적나라하게_ 둘이 만나면 수다 다섯 시간은 기본_ 몸보신을 하면서 시원한 스파클링와인을 마시기로 했다. 갱년기라서 아무리 조금 먹어도 뱃살이 불룩불룩해지고 있다. 같이 요가하는 필라테스 강사 말에 따르면 온몸이 근육이 되려면 온종일 삼시세끼 말고 다섯끼 먹고 잠자는 시간이랑 샤워하는 시간 빼고 운동만 해야 한다고 해서 이번 생은 포기하기로.




요가 세 시간씩 하고 매일 맥주 마시는 우리



퇴근길 신난 내 친구!



빠마한 언니 인증샷!




30년 만에 매직스트레이트해서 신난 나!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6-04-22 2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4-23 07: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6-04-23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가를 세 시간에서…
읽다가 기립박수 칩니다! 👏👏👏
맥주를 매일… 에는 형광펜! ㅋㅋㅋㅋㅋ
 




30대 때 혼자 인도를 여행할 때 남자들이 따라다니며 '결혼했냐' '아이는 있냐' 같은 질문을 해댔다. '없다'고 답하자 곧바로 '그건 죄'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신을 거스른 죄'라는 뜻 같았다. 아이를 낳지 않는 여자는 하늘을 거스른 죄인으로 내세에서도 성불하지 못한다는 뜻일 것이다. 인도에는 대리모 사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있는데, 그들은 신의 뜻을 따르고 있는 셈일까?

또 하나, 아이 없는 여자가 종종 받는 비난은 '아이를 낳지 않는 여자는 이기주의자'라는 것이다. 아이를 낳지 않은 나는 아이를 낳은 여자들이 신기해서 "왜 낳았어?"라고 묻고 다닌 적이 있다. 그중 한번은 이렇게 질문을 해보았다.

"아이를 낳는 이기심과 낳지 않는 이기심 중 어느 쪽이 더 이기적이라고 생각해?"

"그야 당연히 낳는 쪽이지."

이 말에 친구들은 박장대소했다. 총명한 여성이었다.

아이는 여자에게 살아야 할 이유를 준다. 게다가 대체불가능한 절대적 신뢰를 보낸다. 고지마 게이코 씨가 엄마가 된 경험에 대해 '자신이 아이를 받아들이는 것보다 아이가 자신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여 준다는 사실에 숙연해졌다'고 쓴 적이 있는데, 그 말이 맞을 것이다. 나는 그 '절대'를 피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일본 사회는 모성을 이렇게 치켜세우면서도, 엄마가 된 여자에게 패널티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OECD 국가 중에서도 '육아를 즐길 수 없다'고 답한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불행한 엄마 밑에서 성장하는 건 아이에게도 불행한 일이라 단언할 수 있다. 일본의 엄마들이 행복해지면 엄마가 되고 싶은 여성도 늘어날까? (173-174)
















[느리게 마이너노트로] 완독. 마음 가서 다시 읽고 싶은 페이지를 펼쳐서 읽다가 문득. 절대적인 신뢰를 주고받는 관계에 있어서. 아이를 낳는 이기심과 낳지 않는 이기심 중 낳는 이기심이 압도적이다 그 말에도 동조. 분신. 아무것도 모르던 철모르던 십대가 되기도 전에 아래 여동생과 소꿉놀이를 했을 때 엄마딸 놀이를 했을 때 기억도. 정확하게는 나를 닮은 자식보다는 나의 분신에 대한 상상놀이를 하면서 시간을 자주 보냈던 걸 떠올리자면. 역시 아이를 낳는 쪽의 이기심이 압도적. 극강의 자기애에서 발현되었다고 봐야 할까. 아이를 낳아 아이를 키우면서 오히려 보살핌을 받는 쪽은 이쪽이다. 아이가 제마음대로 혀를 놀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의사소통이 원활해지면서부터. 아이와 가능하면 모든 것들을 나누려고 하고 그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놀라운데, 라는 주변의 반응을 보면 오히려 놀라운 건 이쪽인데 그냥 무덤덤한 척 한다. 여러 조건이 맞아떨어졌다면 하나 더, 아니 둘 더 이런 식으로 다섯까지 낳았을 지도 모른다. 육아에는 젬병이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복작거리며 살 수도 있었을 거 같다. 라고 생각하지만 오늘 아침 산책을 하면서 아들 다섯을 올망졸망 달고 다니는 엄마아빠를 보고는 기함을 할 뻔도 했다. 엄마의 자연유산과 유산을 통들어 그 아이들이 다 태어났더라면 나는 동생이 셋이 아니라 여섯이었다. 며칠 전 엄마와 빙수를 먹으면서 이왕 낳는 거 그냥 다 낳지 그랬어, 라고 했더니 갑자기 동생들 욕심은! 있는 애들이나 잘 챙겨. 라고 한소리 듣고 엄마 말씀이 진리. 사랑하는 내 동생들, 로 생각을 고쳐 먹었다. 참으로 모순적인 존재로군. 더 이상 임신과 출산은 무리인 몸으로 주변에서 여러 이들과 이야기를 할 적마다 하나 더 낳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이라고 말하는 내 주둥이를 보면서 아니 미쳤나, 왜 이러지, 라는 말풍선도 동시에. 아이는 갖고 싶지만 책임지기는 두려워, 라는 어떤 대답을 들으면서 아 그런가, 그럴 수도. 책임을 진다, 그 마음.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느낀 점 두 가지. 내가 이토록 미천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일 줄이야, 라는 자기비판을 모멸감 속에서 미친듯 해댔고_ 이건 아이와 의사소통을 나누기 전에 주로_ 내가 이토록 대단한 존재일 줄이야, 라는 극강의 자기애에 쪄들어 온몸 자체가 하트 형태로 이글거릴 때도. 모성애로 따지자면 자기 엄마 못지않게 만렙이군, 이게 니 바탕이야, 라는 말도 얼마 전에 듣긴 들었다. 그런 것도 사주에 나타나나, 으흠. 욕망의 결과 사주팔자의 흐름이 비슷하게 흘러간다면 그건 자연스러운 건가. 결혼을 하건 하지 않건 아이를 낳건 낳지 않건 가능하면 욕망의 흐름대로 가는 편이 제일 자연스럽긴 하다. 그게 아닐 경우 아 이건 아닌 거 같은데, 라면서 시간을 하염없이 잡아먹을 수 있으니까. 생각을 깊이 해도 비교적 삶의 성찰이 뛰어나다는 이들의 조언을 아무리 귀가 닳도록 들어봤자 그 길이 내 길이 아니라면 방법은 없다. 그러니까 각자의 길이 존재하는 거겠지. 삶의 패러다임이 달라진 건 아이를 갖기 전과 갖고난 후. 방금 전에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런데 엄마, 만일에 내가 엄마가 딱 꿈꾸는 그런 이상형의 딸이 아니라 무진장 말 안 듣고 엄마 말에 사사건건 토 달고 말썽 엄청 부리는 딸이었더라면 인생의 패러다임이 달라졌다 어쨌다 이런 식의 말을 못했을 지도 몰라, 라고 했다. 음 정확한데. 애니웨이 또 인생의 패러다임이 달라진 건 이혼을 하기 전과 하고난 후. 우리 엄마는 울타리가 있고 없고의 차이라고 옛날 여성답게 표현했다. 그것도 옳은 말씀. 울타리 안에서 살아갈지 울타리 밖에서 살아갈지를 결정하는 건 본인의 몫이고. 그 이후 달라지는 흐름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직 진행중이니 그건 뭐다, 라고 확연히 정의내릴 수는 없지만.









이쯤이라면 아마도 그때쯤일 거다. 직접 뵌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니까. 이제까지 만난 이들 중에 안광만으로 아찔했던 이는 선생님이 유일했다. 직접 눈을 마주하면서도 이햐, 놀라운데, 라고 감탄했다. 일본어를 할 줄 몰라 안타까웠던 건 그때가 유일하다. 한국에 관련된 글 중 '한국이야말로 신자유주의 시대에 가장 적합한 디스토피아아 돼 있을지도 모르겠다'라는 문장. 고개를 끄덕거리면서도 디스토피아에 삶이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겠군, 부끄럽게도, 라는 생각도 더불어. 노인이 될 준비를 하는 건 아니지만 나이듦은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아무래도 읽고 있는 자료의 팔할이 모두 시니어와 연관이 있는지라 이 책에서도 유독 관심이 가는 글 역시 후반부. 오랜만에 할배들 사이에서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앉아 신문을 펼쳤더니 돌봄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재이지만 머지 않아 더 끔찍할 결과가 예상되는지라 정부에서도 이래저래 대책을 내놓는다고는 하지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다, 라는 기사를 읽으면서 으흠 한숨을 짧게 내쉬고 머리를 재빨리 굴린다. 정은문고에서 읽고픈 책이 출간되어 메모해놓았다. 지하철에서 옛 애인과 많이 닮은 사람을 만나 흠칫 놀랐다. 노안이 된 눈으로 안경을 콧잔등에 걸치고 저 녀석이 그때 내가 사랑했던 그 녀석인가, 하고 바라보았으나 다행스럽게도 아니었다. 20년이 채 되지 않아 한국도 할배와 할매들 천국이 될 것이다. 20년 후라면 나 역시 할매가 되어있을 테고. 갱년기 증상이 요즘 들어 가열차다. 몇 년 지나면 감쪽같이 다 사라질 테니까 그닥 걱정은 하지 않지만. 2년 전에 선생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인생에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 터라 전혀 관심을 지니고 있지 않았네. 죄스럽군. 죄스러운 마음에 할 수 있는 건 기껏 글을 찾아 읽는 것뿐. 맞아, 사촌오빠가 쉰일곱인데 지난 번 조카 결혼식에서 아니 그새 왜 할배가 되어버렸어? 당황스러워하니 너는 안 늙을 줄 알지? 좀만 기다려, 금방이다, 눈 깜짝할 새, 라고 했다. 그렇다면 눈 깜.짝.할.새 할 일을 후다다닥 해야겠구먼. 곤란하게도 인간으로 태어났습니다. 욕망이 드글거리는. 다 이루지 못할 걸 앎에도 불구하고 미련한 중생은 역시 곤란하군, 중얼거리면서 버킷리스트를 작성합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26-04-23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가 드는 이 과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 같아요, 저는요.
오늘 지하철에서 내려 걸어가다가 오른쪽 전신 거울 보고 깜놀했어요. 저게 나야? ㅋㅋㅋㅋㅋㅋㅋ 진짜로요. 나도 나를 못 알아봄.
잘 늙어봅시다. 찬찬히, 천천히~~~
 
느리게 마이너노트로
우에노 지즈코 지음, 은혜 옮김 / 후마니타스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안에서 가장 좋은 것‘만을 이끌어내는 상황들이 겹치고 겹쳐져 그 수가 차곡차곡 쌓이면 운명애 따위는 믿지 않게 된다. 그것이 자기긍정이고 주체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된다. 울타리의 바운더리가 어디인지를 결정하는 건 결국 스스로. 더불어 좋은 배움과 즐거운 만남들. 우에노의 명쾌한 철학.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26-04-16 2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배움과 즐거운 만남.... 을 적어두어야겠어요. 저도 우에노가 참 좋더라구요.

수이 2026-04-23 08:00   좋아요 0 | URL
좋은 배움을 줄 수 있는 이들과 만날 때 즐겁고 헤헤 웃을 수 있는 이들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더라구요. 악연을 질질 끌고 마음고생할 필요가 없었음을 또 이렇게 뒤늦게 깨닫고!! 돌봄 빌려 왔는데 얼마나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저도 우에노 요즘 들어 쑥쑥 읽히는.

바람돌이 2026-04-17 0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수이님 글을 보면 저도 우에노 이분을 만나야겠다 생각이 막 들어요. ^^

수이 2026-04-23 08:00   좋아요 0 | URL
만나시면 이야기해주세요! 언니의 우에노는 어떨지 궁금합니다!
 
느낌을 팝니다 - 사회학자의 오롯한 일인 생활법
우에노 지즈코 지음, 나일등 옮김 / 마음산책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내가 아는 한 고령자 커뮤니티에서는 자기소개를 할 때 과거의 직업이나 경력 같은 것은 이야기하지 않고 또 묻지도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다. 모든 이가 이미 현역에서 물러난 사람들이다. "바깥세상에서는 어떤 분이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곳에서는 모두가 이름 없는 사람이다.

자기소개 대신 현재 열중하는 취미에 관해 이야기한다. "유화를 그리고 있어요." "아마추어 오페라 서클에 가입한 후로는 일 년에 한 번 있는 공연 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어요," "도예를 하고 싶어서 이곳에 왔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과 친해지면 더 이상 취미나 특기 같은 것은 신경 쓰지 않게 된다.

"우에노 씨 그건 말이죠, 구실을 만들기 위한 취미이기 때문이에요.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가 아니에요."라고 가르쳐준 고령 친구가 있다. 그 말이 내 안에서 깊게 울렸다.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누구인가가 중요한 것이다. 그것도 직함이나 지위로는 잴 수 없는 그 사람의 모습, 행동, 말투, 움직이는 방식...... 결국 그 사람의 풍채가 그 사람에 대한 가장 중요한 정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은 그러한 풍채가 훌륭한 사람인 것이고, 다시 만나 사람을 함께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 역시 그런 좋은 느낌을 주는 이들이다.

타인을 볼 때...... 우리는 그 사람이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를 기준으로 '무엇무엇을 한 누구누구'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나 자신도 종종 '무엇무엇을 한 우에노 씨' 같은 눈길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이 사귀는 것은 그의 과거가 아니라 현재 그리고 그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그의 인품이다. 아무리 뛰어난 업적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함께 있는 사람을 배려할 줄 모르는 이와는 식탁을 같이하고 싶지 않다. 과거의 지위나 실적이 현재 이곳에서의 무례함과 오만함을 면죄하지 않는다.

그의 풍채를 통해 그 사람이 과거에 헤쳐온 전쟁과 수많은 고뇌를 추측해본다. 자세히 묻지는 않지만, 이러하고 저러한 일이 있은 결과로 그 사람의 '지금'이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느낀다. 그리고 문득, 그때 당시에 만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감개가 스친다. 경험과 시간으로 단련된, 닳고 닳은 가죽 수첩의 표지처럼 둔한 광택을 띤 채로 그 사람이 내 눈앞에 있다. 나는 다만 그것을 마음껏 향유하기만 하면 된다.

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일인가! (217-218)






한 박사님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외국인이지만 한국에서 오랜 생활을 해서 한국어를 아주 잘 하는. 아무래도 일이 일이니만큼 그 역시 한국의 대학에 업을 두고 있는 입장이지만 제일 싫은 건 역시 개저씨들. 이라고 해서 까닭을 물었다. 다 설명충들이야. 같이 모여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이들은 빵 터졌다. 뜬금포로 스승은 왜 그렇게 좋아하는 거야? 물어보니 여든이 가까워오는 이들 중에 그렇게 오래 입을 다물고 가만히 귀기울여 듣는 이는 처음이었어. 아니다, 여든이라는 나이와 무관하게 나이라는 제한선을 없애고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그토록 잘 들어주는 이는 처음이었어, 라는 말에 또 다들 침묵하면서 고개를 끄덕끄덕. 함께 하는 동안에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고 배려하지 못한다는 문장에 밑줄. 다시 보고 싶다, 다시 함께 만나 커피를 마시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고 싶다, 다시 만나 눈을 맞추고 싶다, 다시 만나 그 목소리를 듣고 싶다, 이런 마음이 들게 하는 이들은 세상에 그다지 많지 않다. 이런 시간들이 서로에 대한 이해와 오해와 더불어 쌓이고 쌓여 친분이 다져지고 관계가 형성된다.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과는 함께 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언제 어디에서나 만나는 그 누구일지라도. 경계를 정해 딱딱하고 차갑게 대하는 것도 별로지만 지나치게 살갑게 다가와 혀에 꿀을 바르고 당장 집어삼킬듯이 구는 인위적인 다정함도 구역질을 일으키게 만든다. 사는 일은 쉽지 않고 사람을 사귀는 일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책 속으로만 파고드는 것도 별로인 건 마찬가지. 책이 아무리 흥미롭고 좋다 해도 사람이 줄 수 있는 걸 책이 줄 수는 없다. 까다롭군. 며칠 전 술자리에서 곧 환갑을 맞이하는 언니가 이제 모든 게 끝나버린 것만 같아, 몸도 마음도, 곧 정년인데, 라는 말을 해서 다들 아니야, 아니야, 이제 시작이야, 라면서 응원을 하며 그녀의 다음 행보를 듣고싶어 했다. 언니는 부끄러워하면서 이런 걸 하고 싶고 저런 걸 계획하고 있고 또 이런 걸 하려고 해, 라고 주저하며 이야기를 하다가 신나서 말을 이어갔다. 우에노를 읽는 동안 주변의 많은 이들이 떠올랐다. 더불어 소소한 이야기들도 기억에 남는 건 꼭 남기도록 하자, 이 마음도. 무례하지 않은 인간이 되도록 하자. 다른 이들에게도, 그리고 이 지구에게도.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도.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6-04-15 1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드는 생각 중에 나이가 들수록 어려운게 ‘타인에게 무례하지 않기‘라는 생각을 좀 많이 하게 됩니다. 젋을 때는 농담으로 넘어가 지거나 좀 튀지만 귀엽네라거나 이런 식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것들이 모두 나이가 들면 무례함이 될수 있더라구요. 항상 조심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만나지만 나는 너가 아니니 상대가 저의 말에 어떻게 느끼는지는 사실 알 수 없는거잖아요. 이래서 나이가 들면 사람을 새로 만나는게 쉽지 않구나하기도 합니다.

수이 2026-04-15 20:30   좋아요 1 | URL
음 우에노 지즈코 언니의 말씀은 좀 다른 방향으로 다가왔어요. 흥미로운 사람들은 정말 많고 다정하고 예의 바른 이들도 많아 새롭게 친구를 사귀는 일은 언제나 즐겁기만 하다_라는 주장. 나이가 들면 그만큼 세상 보는 눈도 드넓어지고 깊이도 생기고 그래서. 의도치 않게 무례하게 구는 경우는 여러 가지로 생기는 거 같아요.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하지만 그 의도가 무관하게 무례함이 느껴지는 경우라면 거리를 두는 게 옳다고 여겨요. 인간은 완벽하지 않으니까요. 언니 말씀을 듣고 보니 생각나는 에피소드 하나. 진실한 친구, 참된 우정이라고 여기면서 오랜 시간 알고 지낸 남자사람친구가 있었어요. 이혼을 하고난 후 외국에 있는 남자친구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느 날인가 아 기다리는 일은 정말 지루하고 비참해, 라고 투덜거렸어요. 그랬더니 그 친구가 나랑 연애 하자, 그 남자 오기 전에, 그리고 너만 좋다면 난 무관하니 걔랑도 연애하고 나랑도 하자, 라고 하더군요. 그때 느낀 수치와 모욕감이 핏줄을 타고 끓어올랐어요. 그리고 조용히 그 친구에게 나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인간이 아니다, 하고 조용히 절연했어요. 무례하구나, 참으로. 라는 생각과 더불어 우리의 20년 넘는 우정이 이런 식으로 파탄이 난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었어요. 시간이 얼추 흐르고보니 자유롭게 사랑을 하고 싶었나 보다, 라고 넘겼지만 무례한 인간, 이라는 생각은 변함없어요. 저도 인간인 지라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무례하게 군 경우도 잦았을 거 같아서 반성하면서 좀 예의를 지키며 사람들과 친해지도록 하자 그런 다짐을 했습니다!

잉크냄새 2026-04-15 2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국 남성들이 은퇴 후 무너지는 건 명함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문화 심리학자의 말이 떠오르네요.

수이 2026-04-15 20:36   좋아요 1 | URL
다른 문화가 새롭게 생기지 않을까요? 그들이 위기 의식을 느낀다면 또 다른 방향으로 생산적인 길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요. 명함 없이 서로가 서로를 마주할 때 동등한 입장에서 주고받을 것들이 있다면요. 계급장 떼고 함께 할 것들이 많아지면 또 다른 교류의 장이 생기지 않을까 합니다.

책읽는나무 2026-04-16 07: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엇을 하는 사람이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인 내가 중요하다!
오늘의 깨달음이군요.
저는 어떤 일을 하지 않고 있는 것에(돈을 버는 일?) 약간의 죄책감? 그런 게 좀 있어요. 주변사람들의 반응이 늘 그래왔어서 어느순간 나를 소개할 때 좀 부끄러워하면서 전업주부라고 말하곤 하죠. 이게 참 잘못된 생각인 줄 알면서도 왠지 나의 무능력함을 드러내는 듯한 생각도 들거든요. 근데 또 나 또한 타인을 대할 때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 사람인지가 궁금해하고 있으니….참🙄🥹
암튼 그래서인지 우에노 지즈코의 말들이 많이 와닿네요.^^
무례함에 대한 정의를 떠올리면서 어제 밖에 나가 나눈 대화 중 불쑥 내뱉었던 나의 말에 상대방의 놀란 눈을 바라보며 내가 실수했군! 하고 돌아왔었는데 그건 실수가 아니라 무례함이었구나! 깨달았네요.
이렇게 또 하나의 깨달음을 알려주시니 경지에 이르고 계신 게 맞아요.ㅋㅋㅋ

수이 2026-04-16 07:24   좋아요 1 | URL
이게 참 애매한 거 같긴 해요. 아예 모르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예의를 갖춰 서로를 대하잖아요. 그런데 서로 알아갈수록 실수나 무례를 저지를 확률이 높아지고. 하지만 그런 걸 하나하나 따지다가는 하고싶은 말은 하나도 못할 것도 같고 사는 건 역시 쉽지 않군 깨닫습니다. 언니가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으시는 거에 대해서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그 활동의 가치를 경제적인 걸로 환산해야 한다는 실비아 언니 이야기는 진실로 옳구나 여겨요. 전혀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경제적으로 환산하자면 언니는 억대 연봉을 받으셔야 합니다. 우에노 언니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아무리 억대 연봉을 받고 수십억을 벌어도 계급장(잉크냄새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명함)을 떼고난 후에는 모두 동등한 인간들이니까 경제적인 건 그냥 부수적인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왔다갔다 합니다. 계급장이 있건 없건 경제적인 능력이 뛰어나건 낮건 무관하게 있는 그대로 서로에게 예의 바르게 대하는 건 필요한 일. 오늘은 무례를 좀 덜 범하면서 살아가면 좋겠지만;;; 늦잠 자서 이제 밥 먹어요. 오늘도 좋은 날! :)

단발머리 2026-04-16 2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전의 일들, 과거의 직업, 경력을 모두 떼어놓고 이야기할 때, 높고 귀하고(?) 화려했던 일을 했던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이 당황스러울 것 같네요. 그러니깐 그런 계급장을 모두 떼고 이야기하자 했을 때, 명찰이나 감투나 이런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느끼는 ‘당연함‘이 그들에게는 황당함이 될 수도.... 그런 생각이 들어요.
무례하지 않으면서 다정한 사람이 되는 게 좋을 거 같긴 해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거리가 중요하긴 하죠. 그래도 가끔 금을 밟으면서 해주는 조언이 사랑을 담고 있다면 그것도 나름 괜찮기는 한데.... 그걸 판단할 사람은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니깐요.
사람의 일이란.... 참 어려운 일이 맞네요.

수이 2026-04-23 08:04   좋아요 0 | URL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런 감투 그러니까 계급장이 그들에게는 전부일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런데 그 전부를 순식간에 날려버릴 수 있는 수치스러운 일을 왜 양심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걸까? 그 생각을 잠깐씩 하곤 합니다. 저 역시 그 좋은 명찰이나 감투에 대한 욕망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걸 빌미로 악을 자행하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면 차라리 없는 편이 나을 거 같아요. 무례하지 않으면서 다정한 태도를 어리석게 보면서 마구 비웃은 까닭도 알 수 있겠고. 아침입니다. 태양 앞에서 떳떳한 인간이 되기란 역시 쉬운 일은 아닌건가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출근 잘 해요!
 







1943년에 태어난 엘케와 1948년에 태어난 우에노의 글을 번갈아 읽는 동안 얼음이 들어간 커피를 마시고 싶어 갈등하다가 뜨거운 물을 끓여 커피알갱이를 녹여 검은색 물로 만든 후 희가 만들어준 마들렌을 입 속에 넣어보았다. 너무 맛있다. 산책을 하는 동안 희가 한 이야기를 더듬고 있다. 아사나를 행하는 동안 아무래도 아상을 벗어던지고 수행을 하는 입장이니까 욕망도 버려야 하고 자연스럽게 여성화되지 않을까, 라는 말이 마음에 걸리나 보다. 그녀가 말한 여성화와 억압에 대해서. 아사나를 행하는 동안 나는 철저하게 한 마리 짐승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인간이 되려고 무진장 애를 쓰는 한 마리 짐승이로구나 하는 마음. 물론 이건 내 집중력이 얕디 얕아서 더 그러한 걸 수도 있겠지만. 이번 여름에는 좀 더 많은 것들을 알아가겠구나. 어깨 가동성이 서서히 넓어지고 있다. 욕심을 내서 무리를 해서 조금 더 가볍게 뒤로 보내고 싶지만 그 전에 멈춘다. 무조건 호흡이 먼저다. 호흡이 거칠어지면 거기에서 한 호흡만 더 가보고 고통이 느껴져서 숨을 쉬지 못하겠으면 오늘은 딱 거기까지야, 라는 스승의 말을 몸 안에 문신처럼 새겨놓는다. 경계를 명확하게 가로지르지 않아도 되는구나, 이 사실을 우에노 언니 에세이를 읽는 동안 확연히 깨닫게 된다. 역시 이 정도로 싸돌아다니는 건 좋은 일이로구나, 경계 없이. 라고나 할까. 봄이라서 그런지 '억누를 수 없는 생명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살아라 5월은 푸르른 바람의 색깔 - 준로 - P119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26-04-14 22: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아~~ 우에노 책을 이렇게 주르르.... 우에노 읽기, 이렇게 이름 붙여도 될 거 같아요.
저는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를 찜콩합니다.

수이 2026-04-15 09:19   좋아요 0 | URL
언니의 에세이는 또 에세이대로 즐겁고 잼나서 시간이 휙휙 지나가더군요. 저는 이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로 ^_________^;;;;

단발머리 2026-04-15 09:24   좋아요 0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