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대한 발랄한 이야기를 쓴 에세이 책이다. 역시나 술 이야기는 술의 비책을 적은 글이 아니더라도, 술에 얽힌 에피소드가 재미있게 담았다. 술을 자주 마시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이런저런 술에 관한 이야기 정도는 다들 가지고 있다마는, 문제는 그런 술에 대한 경험을 술책처럼 공유하려 했다는 것이 핵심 포인트이다. 자주 술자리를 만들어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술을 자주 접하는 거야 시내 저녁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흔히 만나는 모습이다. 때론 하루의 회포를 풀거나 쌓인 감정의 골짜기의 계곡을 오르내리는 모습은 우리의 익숙한 일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저자의 술에 대한 경험론에 담긴 술과 삶의 의미를 적절하게 풀어내는 이야기의 묘사가 흥미롭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칸트의 순수이성비판(다시 한번 읽고자 책을 폈는데 잠부터 온다.)처럼 알듯 모를듯한 애매하고 모호하게 보이는 글은 전혀 없다. 역시 술 이야기는 진지와 코믹이 적절하게 배합비율을 따르듯 가볍게 읽었다.

 

술, 즉 알코올은 기본적으로 독이다. 이미 알코올은 발암물질이라고 밝혀졌다. 많이 마시면 반드시 독성의 효과가 나타난다. 어쩌다가 인간이 술을 발견하고 술을 만들려고 했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으나, 알코올의 증상을 좋아했다. 마취제나 최음제나 흥분제로도 쓰였다. 독이라는 것은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약으로도 쓰였기 때문이다. 세상에 인간이 만든 모든 물질은 약이자 독이라는 이중성인 형태를 가진다. 완전한 독은 있지만 완벽한 약은 없다. 독도 쓰임이 있고 약도 쓰임이 제각각 가진, 일종의 합목적성을 동시에 띈다. 알코올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오늘도 인간 사바세계는 술 때문에 벌어지는 희로애락 오욕 칠정의 바다 한가운데를 허우적거리며 생과 사를 넘나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적당한 취기가 오르면 평소 말수가 없던 사람도 대화에서 무수한 말을 내뱉는다. 술이 말의 생산력이야 비슷한데, 의외로 혼술을 하다 보면 취기로 인한 건지 취기 때문인 건지 음주 글을 쓰곤 한다. 물론 음주운전은 절대 금물이지만, 음주 글을 쓰다 보면 말이 많아지듯이 글도 많아진다. 다음날 술을 깨고 진한 숙취로 컨디션이 다운되어 깨보니 전날에 취한 채 내뱉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음주 글은 기록으로 남는다. 웃기는 글에서부터 이상한 너무 터무니없는 말들의 잔치처럼 문자들이 난무한다. 난잡하고 조잡한 글들이 너무 많다. 그런 글처럼 말도 비슷하지 않을까. 그래서 알콜이 얼마나 사람을 흥분하게 만드는 것인지, 감정을 증폭시키는 것인지, 때론 과도하게 웃음으로, 때론 심각한 울음으로 표현되는 일종의 착각의 증폭제와도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술 먹고 꽐라된 사람을 업고 허우적이며 걸어 본 적이 있는가? 나도 몇 번있다. 반대로 내가 꽐라되어서 고주망태로 업힌 적은 단!~한 번도 없다. 자고로 술에 자기제어력이 없는 사람은 술을 입에 대지는 말아야 한다. 제어력이 작동할 수 없는 사람의 취기이라면 거의 십중팔구는 주사파가 될지도 모른다. 나는 개인적으로 주사파 가족이 몇몇 있어서 어릴 때부터 주사파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다. 주사파는 일단 한 대 쥐어 터져도 잘~ 모른다. 내가 왜 터저있지를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 정도의 주사파는 상대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너무 주사파는 어느 누구라도 피곤하게 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의 주사파에게서 받은 상처는 내가 나이 먹을 만큼 먹어도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나의 심연에 도사리는 쪽팔림과 부끄러움으로 남아 있는 이유이다. 부끄럽게도 [***]이라고 불렀던 인간이 주사파 중 하나였고 [***]도 마찬가지였다. 거의 알코올 중독자로 매일 술이었고 취한 상태의 행폐는 지긋지긋하고 너무너무 오랫동안 지쳤다. 어떻게 가족 중 하나가 알콜 중독이면, 슬픔과 괴로움과 고통을 만들고 증오를 만들고 악의를 만들어 내는지 당사자는 전혀 고쳐지지가 않았다. 고주망태로 취한 상태의 모습에서 화가 나고 짜증을 돋우다가 깨고 나서 미안하다는 그 말을 들었을 때 치밀어 오르는 허탈감과 울분. 그리고 화남 허탈 울분의 반복되는 횟수가 증가할수록 쌓여가는 인간의 환멸과 증오, 그리고 모종의 깊어가는 우울증. 자고로 우리 인생을 법구경을 그렇게 설명하였다. 만나고 싶은 자는 못 만나고 만나고 싶지 않은 자는 항상 만난다는 인연의 고통까지. 술은 어쩌면 여기서 악연의 충동질이었던 셈이다. 역시나 당사자 또한 정상적이지는 못했다. 인생에 멀정하게 취하지 않는 상태에서 성공도 어려운 마당에, 취한 상태로 인생을 잘 살았을 경우가 희박하듯이, 당사자들은 이미 추락하고 외면당하고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술을 감당하지 못한 것도 역시 자신의 인생은 떳떳하게 감당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젠 그 주사파로 해방되었지만 여전히 알코올에 절은 그들에게서 받은 트라우마는 내 평생에 떨칠 수 없는 오점이 되고야 말았으니까 말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술이 취하느냐, 알콜에 오염되었냐 이 차이는 아닐까 한다.

 

그런 점에서 주사파의 상처와 트라우마에 찌들은 내면의 상태로 이 책을 만났을 때 모종의 기쁨이랄까 술의 미학이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술의 음미하는 감각의 쭈뼛하게 서는 감수성의 깊이를 알게 해준다. 술의 상황의 맛에 따른 그 미묘한 차이를 느낌으로 감각의 감수성으로 느껴 가는 저자의 술에 대한 자기 감성이 참 일반적이지만 글로써 표현됨의 정서를 느끼며 술 한잔하고 싶게 만드는 글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에 만난 주사파들과는 그 수준과 격을 달리하는 품격의 술에 대한 에피소드가 신선하기까지 한다.

 

얼마 전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훗날에 한적하고 고적한 시골 산중으로 내려가면 꼭 만들어 보고 싶은 게 술이다. 특히 한 겨울철에 불을 지핀 따뜻한 아랫목에서 뽀글뽀글 거리며 올라오는 효모의 섭생으로 끓어오르는 기포로 익어가는 술맛을 맛보고 싶다. 천천히 익어가며 화학공장에서 일률적으로 제조한 형편없는 맛이 아니라 시골 땅에서 나는 향신료 맛나는 효소를 넣고 내가 만든 술맛을 맛보고 깊어가는 겨울밤의 밤새 울어 대는 그 소리에 젖어 보는 것도 한 인생 마감하는 기념적 술은 아닐까 한다. 그리고 펜을 들고 서서히 오르는 술기운에 무슨 글이라도 바람같이 쓴다면 무슨 글을 써야 할지는 술이 결정할지도 모르는 일일 것이다. 더구나 지인이라도 찾아오는 날이면 근사하지만 소박한 밥상에 올려낸 직접 만든 술맛의 평가도 받아 보고 싶다. 아이야 동동주 내어 와라라고 할만한 아이는 없어도 눈을 해치고 마당에 심어 놓은 독에 차갑게 쿨링 된 청주 몇 잔에 긴긴 겨울밤은 잠들지도 못할 것만 같다. 하기야 환경이 만들어 내는 술맛은 장소에 따라 다르고 누구냐에 따라 다른 결정을 하겠지. 그래 그런 날을 기리는 의미에서 오늘도 소주나 한잔 당기도록 하자.

 

(개인적인 치부를 들어내는 거 같아서 무척 망설이는 글일지라도 글은 솔직해야 한다는 신념이 나의 부끄럼까지 더 태워지니 또 우울해지려고 한다. 이해 좀 해주시리라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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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5 14: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16 0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얄라알라북사랑 2019-11-15 14: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꽐라˝라는 말을 평생 처음 봐서 더 흥미진진, 읽었습니다. ^^

yureka01 2019-11-16 09:36   좋아요 0 | URL
주사파 중에서도 특히 길바닥이 안방이 되어 누워 버린 걸 꽐라라고 보시면 됩니다.~

빵굽는건축가 2019-11-15 14: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의외로 혼술을 하다 보면 취기로 인한 건지 취기 때문인 건지 음주 글을 쓰곤 한다.는 고백에 마음이 한표 가네요. 저는 집에서 누룩으로 막걸리 바로직전의 쉰다리를 만들어 먹어요. 아주 쉽고 그래요 샘은 담번에 막걸리 담아 드세요. 시골이 아니어도 될 정도로 가볍게 할 수 있으실거에요.

yureka01 2019-11-16 09:38   좋아요 0 | URL
창의력 높은 작가들이 음주글에서는 명문장이 나오거든요..환각이 예술의 매게도 하니까요..
언제 도전 한번 해보겠습니다.막걸리..만들어 봐야겠습니다..

겨울호랑이 2019-11-15 2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몸에 술이 맞지 않아 안 마시고 있습니다만, 술을 적절하게 즐기시는 분들 보면 많이 부럽습니다^^:)

yureka01 2019-11-16 09:39   좋아요 1 | URL
아예 전혀 못하시나 봐요..아고..이걸 수양적 체질이라고도 합니다..
술 전혀 입에 못대는 체질도 타고 나거든요.
알콜 알러지 반응은 술 먹음 바로 증상이 나타나거든요..

초록별 2019-11-15 2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싯적엔 주신이었는데~~^^

yureka01 2019-11-16 09:40   좋아요 0 | URL
아 주당은 넘어 주신이셨다니 오!~^^..

초록별 2019-11-16 09: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선생님처럼 술을 전혀 못 마시는 친구가 한명있어요~~^^ 술은 참 좋은데~~ㅎㅎㅎ

yureka01 2019-11-16 20:14   좋아요 0 | URL
독처럼 마시느냐 약처럼 마시느냐...이 차이겠지요..
술은 장소에 따라, 누구와 마시느냐에 따라 차이도 크더군요...
특히 책 좋아하고..사진 좋아하는 분과 마시는 술은 약이더군요..

강옥 2019-11-16 16: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술술 넘어간다고 술이라면서요? ㅎㅎ
친정 아버지가 애주가셨지요. 도에 넘칠 정도로 ㅎ
길바닥에서 주무시기도 했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길바닥에 누운 아버지를 보고 피해 달아났던 아픈 기억이 있네요

오늘 오후엔 가까운 도서관에 가서 몇 시간 보내고 왔네요
문학사상 11월호, 보보담 가을호, 펜문학... 서너시간 금방 가버렸네요

yureka01 2019-11-16 20:16   좋아요 0 | URL
아고 지우당님 부친께서 애주가 셨다니요...
아무래도 술에 대한 영향을 많이 받으셨지 싶습니다...

책 읽으면요..시간 순삭이더라구요,.~~~~
개인적으로..심심하다는 사람 이해가 안되더군요.
책보면 시간 금방이거든요..
 

10년전쯤에 찍었던 사진들입니다.

그간 사진 참 많이도 찍었더군요.

지나간 시간이 정말 빠르네요.

천천히 감상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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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0 1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10 1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9-11-10 2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사진 잘 봤습니다. ^^:) 저 순간을 잡기 위해서 유레카님께서 흘리신 땀이 느껴집니다.

yureka01 2019-11-11 08:47   좋아요 1 | URL
넝마같은 카메라인듯해요..돌아다니지 않으면 사진을 못찍으니까요..많이 다녔습니다..

강옥 2019-11-11 1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햐~~~
이런 서비스를 ㅎㅎㅎ
처녀시절 입사한 회사에 사보가 생겨서 멋모르고 니콘 필카를 잡았지요
행사사진, 인터뷰사진, 인증샷.... 되는대로 찍다보니 카메라가 익숙해졌고 -
어제 누군가 그러더라구요. 제 사진이 너무 틀에 박혀있다고.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더니, 처음 사진이 지금까지 굳어버린 게 아닌가 싶네요 ㅎ

yureka01 2019-11-11 15:05   좋아요 0 | URL
사진에 틀이 어디있겠습니까요..자기만의 틀이 중요하잖아요..^^..
지금도 글쓰고 사진 올라오는 사진에 감성은 살아 있는걸요..
저도 늘 잘 보고 있습니다..~~~

페크(pek0501) 2019-11-13 1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서비스 정신을 좋아합니다. 덕분에 제 눈이 호강하고 갑니다.

yureka01 2019-11-13 20:57   좋아요 0 | URL
수능한파라고 시험치는날은 왜 추워질까요..ㅎㅎㅎ
늘 건강하시고요..^^..
 
청춘의 독서 (Gift Edition) (유시민 친필 인쇄 문구가 담긴 청춘의 노트 포함)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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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은 저마다의 청춘이 이미 지나갔거나 지나고 있거나 지나갈 예정이다. 흔히, 흘러간 유행가 가사처럼 "청춘은 봄"이라고 노래 부르는 그 청춘. 젊음의 순간. 푸픈 봄이라서 청춘이라 은유했던가 싶다. 그런데 지금의 청춘은 과연 봄처럼 푸르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간혹 꼰대들이 하는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자신의 청춘에 비해 요즘의 청춘을 비교하며, 자신의 청춘이 지금의 청춘보다 한결 더 힘들었고 어려웠으며 고난의 과정을 뚫고 오늘날의 토대가 되었음을 자랑하는 것도 한때의 "나 때가 말하는 그 청춘"일 것이다. 나도 50을 넘어가는 나이지만, 그 어떤 청춘을 대하면서 한사코, 절대, 무조건적으로 입 밖으로 내지 않는 게 있다면, "나 때는 말이야, 어쩌고저쩌고~"를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한다. 반대로 나보다 선배급인 사람에게서 "나 때는 말이야"라고 떠들면 다신 뵙고 싶어지지 않는다. 그 어떤 청춘이든 그 시대가 안고 있는 각자마다의 고유한 현실적 시대상의 십자가는 다 있기 마련이다. 그게 저마다의 차이에 있어서 경중을 논해서 "나 때는 말이야. 요즘 젊은 것들 어쩌고"하는 것만큼 못나 보이는 것도 없다. 그래서 그때의 청춘으로 지금의 결과는 어떤가 되물어야 할 시기이지, 한때의 청춘을 비참에 떨어뜨리거나 자랑삼아 "나 때는 말이야"라고 주장할 일은 아니라는 거다.

 

간혹 그런 상상을 한다. 오래된 빛 바랜 낡은 서류 상자에서 나오는 각종 문서들, 혹은 아버지가 남긴 것 같은 그런 상자에서 나오는 각종 증명서나 임명장, 혹은 발령장이나 졸업한 학교에서 받은 상장이나, 다니던 회사에서 수령은 월급 명세서 봉투, 은행의 거래 기록과 일상을 기록한 일기장 등등등. 혹은 어디 무슨 학교 입학 허가서라든가 기사 자격증 등 무슨 시험을 치고받은 합격증. 아니면 어느 기능사 1급, 2급 자격증이나 좀 더 나아가 무슨 면허증. 아니면 국가고시 응시 원서, 수험표. 그래 다들 그렇게 청춘을 준비했던 모든 이력과 경력들이 모인 그 상자가, 바로 그 사람의 과거의 "한때 내가 말이야"를 대신 말해준다. 사람의 입은 때로는 진실보다 가공적 허풍이나 비약이 늘 숨어 있는 것에 능하다. 따라서 그런 각종 증명서와 협격증이나 응시원서나 연구 성과물인 학위증이나 혹은 무슨 과정의 논문이나 저서. 낡은 사진 첩에서 만나는 과거의 행위들이 객관적으로 나 때를 더 증명하는 사실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문서를 생산하고 글을 지어내고 자격의 증명이 있음을 문서화 시켜낸다. 고작 주민등록증 하나만으로 "나 때는 말이야"를 증명하려면 얼마나 많은 구라를 쳐야 할지는 자신만이 알 것이 뻔하지 않을까 한다. 무슨 운전기능사를 딸려고 경력을 쌓고 기능을 익혀 어디서 합격증으로 받았던 그 과정을 이야기하는 편에 오히려 훨씬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도 서류가 말해주는 객관적인 사실이다. 타자가 증명했음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무슨 증명서이기 때문이다. 소주 한 잔만 걸치면 울분에 차서 "한때 내가 말이야"로 시작하는 왕년의 자신의 레퍼토리는 어찌 그리 수준이 형편없는 것인지에 대한 자기변명이거나 혹은 자기 자랑의 오지랖은 늘 비슷하다. 그래서 요즘 젊은 친구들이 꼰대스러움에 대한 반응은 "지겹다~(좀! 그만해)"로 강조되는 결과적인 이유의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하다못해 저작물이나 증명서를 대신해서 사진이라도 몇 장 보여주시라. 그러면 "지겹다가 오히려 흥미롭다"로 바뀐다. 열사의 사막에 도로를 내고 댐을 지으면서 중장비 앞에서 근사한 포즈로 "V"자를 그렸을 아버지는 얼마나 고생하셨을까라는 반응하는 건 감동이 직결 스위치처럼 나오는 것도 다 이와 같은 이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 시절에 읽었던 인상 깊은 책은 어떠했을까? 역시 기록으로 독후감을 남기듯 글을 쓴 리뷰가 바로 독서의 증명서일 것이다.

 

"그래서 그 때 청춘에 가장 인상 깊었던 지침이 되는 책이라도 한 권 권해 주세요? "나 때는 말이야. 이 책 정도 안 읽으면 청춘이 아니었어."라며 그 시대의 청춘 필독서는 무엇이었는지를, 시대의 지성과 지식을 이야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 다!~. 그래서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가 그 시대의 젊은이들의 고민이 담긴 책을 보게 되는 이유도 된다. 무슨 책을 인상 깊게 읽었고 그렇게 다가온 생각들을 글로 풀어낸 책이다. 어쩌면 이 책은 저자 유시민이 한때 젊은 시절의 고뇌를 모은 책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증명서처럼 쓴 글이다. "한때 내가 이 책을 읽었는데 말이야" 시작하다 보면 그 청춘의 시기에 겪은 삶이 증명서와 같이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은 당연하다. 아무것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 한때 내가 말이야"로 시작하는 꼰대와는 상당히 차이가 나는 현학의 추구와 고민에 대한 시대상의 충돌이 그래서 더 납득이 가고도 남는다. 지금의 삶은 과거에 살았던 삶의 결과적 책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사유의 증명서와도 같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이 책은 각 챕터마다 언급한 책(아래에 적어 두겠다. 참조 바람)의 리뷰의 성격을 포함하였다. 저자 유시민의 개인적 감상문 내지 독후감으로서, 감상의 논지와 견해를 피력한 책이기도 하다. 보통은 책을 읽기만 하고 리뷰를 쓰지 않는 것도 많았으나 다행히 알라딘 온라인 서재 블로그는 책을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다양한 책에 대한 리뷰나 페이퍼 글을 생산하고 있는 온라인 공간이기에 읽은 후기에 적합하고, 읽은 책으로 사유하고 문장으로 나타냄으로써 개인적인 생각을 통해 피력한다는 점에서 청춘의 독서라는 책의 성격과 크게 다르지 않는다. 그간 책을 읽고서 쓴다는 점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내가 책을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온라인 공간에서 글을 쓴다는 것에 방점을 찍는 의미가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책의 읽기와 쓰기도 나름의 자기 증명 방식중 하나라는 것임을 알아차리게 되었다는 의미가 제일 크다.

 

일반적인 수준으로 웬만큼 책을 읽었으나, 나는 유시민 저자가 다루고 언급한 책을 거의 읽은 적이 없다. 사실 다 읽기도 벅차기도 하다. 특별히 읽을 계기도 없었거니와 책을 읽을 동기나 책을 읽을만한 영향력을 받은 적도 거의 없다. 유시민은 부친이 학교 선생님이었던 탓에 책을 자주 접했고 책에 대한 그런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나는 주변에 책의 동기나 욕구를 자극할 만한 영향력은 거의 없었다. 책을 읽고 리뷰를 쓰게 된 동기나 혹은 영향은 없이 대부분 자발적이었다. 마치 내가 사진을 찍고 사진에 대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로 자발적이었다. 분명 어디엔가 내재된 그 어떤 것이 책과 사진을 좋아하게 될 줄은 나도 나를 모른다. 하여간 이런저런 이유를 따지지 않고 자신의 존재적 증명처럼 사진을 찍었고 책을 가까이하는 원인에 대한 것을 생각하게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친절하게도, 내가 직접 읽지는 않았지만 저자의 생각과 감상으로 내가 읽은 듯하게 핵심을 짚어내고 요약하여 축약시켜 책의 속을 설명해준다는 점이 이 책이 가진 큰 장점이다. 단점은 읽지 않아도 읽은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는 점이다. 굳이 다 읽을 필요는 없다. 하고자 하는 맥락을 설명하고 저자의 핵심 생각을 알아 가는 것도 다 읽지 않고도 가능하다는 것이 무엇보다 시간 절약에는 장점이기도 하다. 언제 그 책을 다 읽겠나. 시간도 빠듯하게 사는 처지에서는 유시민의 책은 그래서 더 유익하게 다가온다. 게다가 나는 어떤 책이든 문장에서 나타나는 분위기를 매우 중시하는 편이라서 유시민의 문장체는 아주 편안하게 읽힌다. 싫어하는 책이라면 대부분 번역서들이다. 번역서는 외국어를 우리나라 글로 번역한 책인데 나는 번역서의 문장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읽기에 너무 불편하고 잘 읽히지도 않는다. 아마도 외국어의 문장은 우리나라 국어 문장하고는 언어의 본질적인 차이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번역체의 문장이 나오기는 할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번역서라도 유시민 스타일의 번역서라면 얼마든지 읽어낼 수 있을 텐데 많은 번역서들이 원문에 충실한 번역을 하려다 보니 문장이 이상하게 읽히지 않아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기야 국내에서 나오는 책조차 다 못 읽을 판에 외국서적의 번역서까지 읽기란 참 난감하다. 차라리 요약본이나 해설본으로 설명한 유시민의 리뷰 성격의 책이 나에겐 더 잘 맞는다는 느낌이 강하게 일어난다.

 

청춘시절에 읽은 책들은 그 사람의 관념의 뼈대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젊은 시절에 읽은 책의 영향으로 한 평생을 살아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흔히 청춘시절에 유행하며 들었던 노래나 음악이 평생토록 즐기는 그 사람의 시간적 스펙트럼을 이루는 경우와 비슷하다. 책은 그래서 위대한 저작물인 까닭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평생에 걸친 사고의 방향을 결정하는 원인이자 동기가 되기도 한다. 과연 나는 청춘 시절에 무슨 책을 읽었던가 한번쯤 글을 쓰며 반추해보고 그런 생각으로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는지 되물어도 좋은 계기가 되는 책이기도 하다.

 

-참고. 청춘의 독서에서 다루었던 리뷰 책 리스트.

 

1.표토르 토스트옙스키, 죄와벌

2. 리영희, 전환시대의 논리

3.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당 선언

4. 토머스 멜서스, 인구론

5. 알렉산드르 푸시킨, 대위의 딸

6. 맹자, 맹자

7. 최인훈, 광장

8. 사마천, 사기

9.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10. 찰스 다윈, 종의 기원

11. 소스타인 베블런, 유한계급론

12, 핸지 조지, 진보와 빈곤

13. 하인리히 뵐, 카타리나 블롬의 잃어비린 명예

14. E.H. 카, 역사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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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굽는건축가 2019-11-09 12: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 시대가 안고 있는 각자마다의 고유한 현실적 시대상의 십자가는 다 있기 마련이다. 라는 샘의 글에 공감이 가요. 꼰대가 되지 않으려는 글 ㅋㅋ

yureka01 2019-11-09 17:22   좋아요 1 | URL
나이든 살들은 청춘을 지나봐서 알거든요..
젊은 어린 후배들은 아직 지나보지 못했거든요..
결국 나이든 사람들이 젊은이를 이해해야 하니까요..
지나보지도 못한 젊은이보고 경험도 없었는데 이해하라고 요구하기가 어렵지요..
네 꼰대되지 않도록 항상 각성으로 ~^^.

북프리쿠키 2019-11-09 13: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진정한 충고마저 귀담아듣지 않으려는 모습이 진정한 꼰대 아닐까합니다.
청춘의 독서 재미있게 읽었고 유레카님의 글 잘 읽고 갑니다^^

yureka01 2019-11-09 17:23   좋아요 0 | URL
저도 책에 대한 리뷰라는 개념으로 재미나고 유익하게 읽었습니다...
나이들면 석고처럼 굳어가는 관념을 유연하게 만들기 위한 사유가 꼭 필요하지요..^^.

stella.K 2019-11-09 15: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게 좀 아쉬워요. 젊은 사람과 나이든 사람이 함께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우리도 젊었을 때 기성 세대들 꼰대아고 안 좋아 했잖아요.
그런데 막상 나이들고 보니 나이든 사람과만 어울려야 하고 그마저도 쉽지 않으니.
아무래도 젊었을 때 꼰대들을 너무 싫어해 벌 받는가 봅니다.ㅠㅠㅋㅋ

yureka01 2019-11-09 17:25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스스로가 꼰대가 되어가지 않으려고 얼리 아탑터처럼 새로운 것에
더 더가가려고 하는 이유겠지요..
아마 정보의 습득이나 시대적 민감도는 젊은 친구들이 훨씬 앞서거든요..
이젠 과거의 시대와 현재 또는 미래의 시대의 변화에서
공유될 수 있는게 점점 줄어드니까요..^^.뭐든 새로 나온건 해보고 찾아봐야하거든요..그럼요,

반유행열반인 2019-11-09 15: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제 그런 소리들을 곧이 곧대로 안 듣고 “라떼는 말이야~” 하고 비꼬는 젊은이들이 있어서 재미있는 시대 같아요.

yureka01 2019-11-09 17:26   좋아요 1 | URL
고구마 라떼가 맛나는데말이죠 ㅎㅎㅎㅎ^^.

2019-11-10 1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10 1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강옥 2019-11-11 09: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청춘의 필독서, 라는 부제를 붙여주고 싶은데
과연 요즘 젊은이들이 저런 책을 제대로 읽어낼까 하는 의문이 드네요
인생관이 형성될 시기에 저런 책들을 읽으면 올곧은 인격을 갖추게 되겠죠.
저는 청춘시절 ‘법구경‘ ‘노자‘ 같은 책을 멋도 모르고 읽어서 그런지
어린 나이에도 늙은이같은 생각을 많이 했던것 같아요.
‘끓지도 않고 넘친다‘는 속담이 있지요. 어설픈 독서로 제가 끓지도 않고 넘쳤던 것 같아요 ㅎㅎ

‘너는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다‘라는 말이 문득 생각나네요
세대차이는 쉽게 뚸어넘을 수 없는 관념의 벽 같아요.
아들이 그러더군요.
엄마, 나는 엄마와 다른 세상을 살고 있어요. 엄마 식대로 생각하지 마세요.....

yureka01 2019-11-11 15:0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요즘은 젊은 친구들이 책 볼 시간을 낼 틈없이,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 큰 고민이거든요..
사실 책이란 것도 ....시간적인 여유가 되어서 읽는 것이 좋거든요..
막막한 미래에 수험서나 자격증등등 고도의 스펙이 필요하니 교양서적 볼 생각하기도 어렵거든요..

집에 딸아이도 아빠가 사주는 책조차 읽기 어려워 하더군요.
게다가 새로운거 알아가는 것도 벅찬데 이미 지난거 읽기는 더더욱 어렵지 싶습니다...

그럼요..우리 세대의 교양과 지금 젊은 친구들의 교양은 차이가 날 뿐이죠.
틀린건 아니니까요..

딸아이도 올해 학기 마감하고 공시준비하겠다고 하니...수험책 볼 시간에 다른 책은 기대하기 어렵지 싶습니다.
 

 

 

 

* * *

한창 시험 보느라 바쁜 딸아이에게

이별 일기라는 책에 대한 글을 알려 주고 나니,

딸아이는 그 댓구로 <<무화과 숲, 황인찬>>의 시를 추천했다.

 

필사해서 블로그에 걸겠다고 약속하고 실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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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31 2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01 09: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01 0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01 0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강옥 2019-11-02 1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따님과 소통이 되시니 다행입니다
울 아들은 불통 내지는 무통이에요 ㅠ.ㅠ
˝나는 엄마랑 다른 세계에 살고 있어요.˝라고 공공연히 말하는.....

yureka01 2019-11-02 11:35   좋아요 0 | URL
각자의 시간을 살고 있는 거라서요..
저도 통화는 되는데 소통은 다르더라구요.
아무래도 살아가는 저마다의 시간과 환경이 다르니까요..
맞아요.각자의 세계는 같을 수가 없으니 말이죠..^^..
 
작별 일기 - 삶의 끝에 선 엄마를 기록하다
최현숙 지음 / 후마니타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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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이 만들어진다. 이게 작별이다. 인생에는 많은 만남에서 예외 없이 이별을 거친다. 만남에서 이별까지 이 절차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우리 인생 자체가 만남에서 이별의 과정으로 이어지는 단번의 타임라인이다. 작별 일기라니 시작부터 먹먹하고 한편으로 홀가분할 것만 같은 이중적인 감정이 뒤섞인다. 이 책은 작가의 모친과의 이별 과정을 표현한 감정의 내밀한 서사이다. 누구나 다 이별을 하지만 아무나 이별의 글은 쓰지 않는다. 어떻게 이별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지, 어떻게 기록으로 개인의 모친과 이별에 따른 상념의 서정을 공유할 것인지, 이런 기록으로써 우리는 공감하고 교감하며 장차 자신의 이별과 타자와의 작별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보여준다.

나의 모친이 요양병원에 입원한지 햇수로 몇 년째인지 이젠 오래되다 보니 기억도 가물가물할 지경이다. 이별이 확정적이지만 이별을 준비하는 과정은 나에게 있어서 너무 길었고 아직도 진행형이다. 앞으로도 언제까지인지 알 수도 없다. 당장 오늘 내일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몇년 더 지나야 할지는 모친의 천명에 달려 있다. 준비 없는 이별도 슬픈 감정을 생산한다. 반대로 이별의 준비가 너무 길어도 지친다. 치매의 고통은 이별의 준비를 너무 길게 끈다. 병원에 한 번 다녀가면 화약이 터져 일시에 산화하는 것같이 진이 일시에 빠져나가 탈진 느낌이 매번 들었다. 인간적인 고뇌가 없을 수가 없다. 서너 해 정도였더라면 적당한 이별의 준비기간이었다고는 하나 너무 빨리도 허탈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너무 길다. 이제는 가족들이 모두가 지쳐간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을 실감하기도 한다. 나도 진이 빠지고 빠지다가 이제는 무감각해질 정도로 더 이상 이별의 격정이 남아 있을까라는 의문도 든다. 치매는 이렇게 무서운 고통을 만드는 작별의 기록이 책으로 나오니 이왕 하는 김에 가족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는 것도 현재의 당사자가 안고 있는 고민들의 공유라 생각하게 된다.

 

치매란 그런 거다. 관계의 철저한 단절. 심지어 자신과 세계의 무기력한 단절이다. 뇌세포는 점점 죽어가며 인지력조차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는데 몸은 의식만 제거된 상태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흡사 로봇이 명령 프로그램 프롬프트를 점진적으로 잃어버린 채 쓰러져 있는 상태와 같은 몸뚱어리가 된 거나 비슷하다. 최소한의 본능은 살아 있으니 생리적인 현상은 유지하나 무의식으로 흡사 깊은 잠을 자듯이 모든 감각이 차단되어 버린다. 느낄수 없음의 상태. 본능적 상태를 말한다. 그런 치매 병으로 사람은 서서히 시간의 고갈을 경험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지켜보고 있으니 가슴만 답답할 뿐이다. 흡사, 부팅 프로그램은 남아 있으되, 응용프로그램이 하나 둘 지워져 버려 폐기된 채 우두커니 한자리만 차지하는 낡은 컴퓨터와 같다.

 

모친이 어느 해 한 여름에 탈진 상태로 병원에 입원하고 나서 의식에 낌새가 이상함을 느껴 뇌 사진을 찍었고, 중병으로 확정되었던 그때부터 마음은 항상 스탠바이 상태였다. 스탠바이 상태는 늘 조마조마한 긴장감을 유발했다. 안정을 하고 싶은 충동이 강렬할수록 조마조마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긴장도가 높아감으로써 따라오는 심리적인 피로감도 등달아 후발 주자로 따라 붓듯이 기생한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고 조바심은 서서히 사라졌다. 이젠 언제 떠나더라도 더 이상은 조바심을 낼 것도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떠나 보일 마음의 자세는 갖춰진 셈이다. 모친은 중증 치매로 병원 입원했고 첫해와 둘째 해가 제일 힘들어했다. 그러나 이후로는 귀도 닫아 버렸고 눈도 감아 더 이상 뜨지도 않고 의식도 사라져 버렸다. 식물과 같은 상태가 되었다. 하루 종일 병상에 누워 간헐적인 고통 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말에도 정상적인 대꾸가 없었다. 대화도 전혀 할 수 없는,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늘어진 육신만 마주하고 있는 상태였다. 의식의 임계점은 이미 저 멀리 넘어가버렸다.

 

어느덧 또래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모두 부모 세대를 보내야 할 나이가 되었다. 모친이 병원에 입원한 이후로 장례식장으로 문상을 다녀온 것도 전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몇 번인지 횟수가 잦았다. 이렇게 저렇게 알고 업무차 관계하는 관계자들까지 합치면 얼마나 될지 헤아릴 것도 없이, 죽음이 어쩌면 우리의 일상이 될 나이라는 거다. 이렇게 죽음은 자신에겐 단 한번 거치는 특별한 통과 과정의 의례이지만 타자의 죽음은 누구에게나 지켜보는 일상이라는 것.

 

이런 일상적인 죽음에 대해서 제일 서럽게 통곡한 적이 있었다. 모친의 여동생, 즉 이모님의 별세였다. 언니는 병원에서 누운지 몇 해이고, 하나 있는 여동생은 긴 치매로 감금당하다시피 갇힌 채로 몇 해를 지났고 그렇게 이모님은 별세했는데 언니는 여전히 병원에 누워 아픔의 짧은 탄성의 단발성 소리만 내지르니 어찌 가슴이 먹먹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싶었다. 서로의 의식이 없으니 만난들 무슨 소용도 없는, 무감각의 두 자매의 기막힌 비극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모님의 아들, 나에겐 이종사촌 형님은 나를 보고 같은 심정이라는 걸 대번에 느끼고도 남았다. "고생이 많지?" 이 한마디로 다음의 아무런 말이 없이 그저 손만 잡고 울먹일 뿐이었다. 그간의 관계의 조바심과 피로감은 극에 달했을 것이고 회한이 없을 수가 없었을 것이고 간병으로 모시는 하나하나의 과정을 떠올리고도 남았다. 그렇게 무언가 억울한 거 같기도 하는 그런 존재론적인 서러움이 복받쳐서 장례식장에서 실컷 울었다. 동생을 떠나보내는 것조차 알지를 못하는 인지력이 차츰차츰 사라져 가는 병이 무서운 증상을 동반했다.

 

의학적으로 육체의 사망진단서를 받아 들고서 나서야 우리들은 흔히 "운명하셨습니다"라거나, "돌아가셨습니다"라고 한다. 운명하셨다는 것은 단 한번의 과정. 즉, 운명을 피할 수 없었으며 그게 모든 이들의 가진 운명의 절대성이다. 또한 돌아가셨다는 것도, 반드시 내가 없었던 상태로 환원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탄생은 실로 우연적이고 죽음은 절대적인 필연이다. 삶이란 운명이 우연에서 필연으로, 그리고 다시 필연에서 우연의 상태로 회귀를 의미하며, 내가 "태어나기 이전의 나라는 객체의 무의미"에서 태어나서 살아가면서 스스로가 만들어 낸 필연의 유의미에서 다시 무의미의 우연으로 가는 것이다. 그런데 치매는 의학적으로 정신의 사망진단서나 마찬가지이다. 몸은 살아 있으되, 마음은 벌써 죽어 버린 운명.

 

치매 노인의 방치는 간단하나, 병이 길수록 간병도 길고 심리적 슬픔과 어쩔 도리가 없다는 지쳐감과 체념의 영향이 환자를 포기하게 만들어진다. 더욱이 경제적인 문제까지 연결된다. 오늘날 노인 인구가 급속도로 늘어갈수록 요양병원 혹은 노인전문 요양소가 늘어나는 수요가 발생하며 이게 다 돈을 들여야 하는 비용의 문제로 이어진다. 이른바 실버케어 산업이며 죽음이라는 현상에 대한 영리적 장사이다. 나 또한 구체적으로 계산해보지는 않았다. 자칫 그런 모친의 간병 비용을 계산하는 것이 심리적으로도 위축되는 알게 모르게 받는 일종의 불경스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어머니 아픈데 어떻게 돈 계산부터 하냐라고도 한다. 그러나, 그런 간병 비용을 부담하는 압박감 또한 엄연한 현실이기도 하다. 자본적 세계에서 태어나는 것도, 성장하는 것도, 죽는 거도 다 돈이 들어간다는 건 누구나 닥친 현실적 문제이기도 하다. 사회보장적 측면의 복지 비용의 투자는 투자로서의 경제성의 가치가 없다. 허나 사람이 살아가는 윤리성이 따르는 필수이기도 하다. 이별의 준비는 심리적인 준비도 아울러야 하는 등의 경제적인 준비 또한 무시할 수가 없다. 누가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내 나이 또래의 세대가 부모를 봉양하고 모시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에게 투자해도 어떤 기대도 할 수 없는 마지막 세대라는 말을 틀리지 않았음을 느껴 가는 중이다. 나의 세대에 부모는 자신의 노후에 대해 크게 걱정도 하지 않았을 것인지도 모른다. 윗 세대의 노인들이 대부분 자식에게 위탁하고 노년을 보냈던 것에 비추어 자신도 당연히 그러리라 생각했으나, 나의 세대는 자식에게 더 이상의 기대는 하지 않게 되었다. 자식으로써의 의무와 부모로서의 권리를 내려놓아야 할 첫 번째 세대가 된 거다. 인생의 재무적 대차대조표를 짜보면 늘 적자 상태를 자신의 땀으로써 커버해야만 하는 울증의 세대가 되었다는 점이다.

 

준비된 상태, 대비되어 있는 상태가 결국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방식과 방법론의 문제로 귀결한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어떻게 살다 떠날 것인지에 대한 동격이며 여기서 삶의 자기 성찰을 요구한다. 물질적인 준비도 물론이고 아울러 심리적인 대비 또한 반드시 포함해야 할 삶의 목표이기도 하다. 내 나이 또래 친구들 대부분이 은퇴 시기가 다가옴을 점치고 은퇴 후의 삶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오래전부터 준비된 구체적인 계획서를 조금씩 체계적으로 조립되어 있지 못하다면 자신의 삶을 무방비로 방치할 때 찾아오는 준비 없는 이별에 대해, 그때 가서야 알아차리면 늦는다. 늦어서 후회스럽지 말아야 함은 곧 계획서의 작성과 스케줄의 이행, 혹은 스케줄의 오류나 형편에 따른 피드백일 것이다. 은퇴시기에는 꾸준히 수립한 계획을 실천할 단계이지 계획서를 작성할 단계는 지났다는 말과도 같다. 이마저도 안되면 임기응변으로 되는 대로 살다 무계획으로 인한 준비 없음에 대한 후회를 늘어놓게 된다는 것. 불행은 어떤 상황과 선택의 교집합에서 나오는 아주 고역스러운 현상이다. 다만 어떤 상황에 대처하는 선택은 오로지 자신의 결정에 달려 있기도 하다. 지나온 삶의 상황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선택은 그래서 남은 사람들이 반드시 심사와 숙고를 거쳐서 나와야 할 인생의 변곡점일 수도 있다는 거다.

 

세상 한 번 오는데 이유 없이 올 수 없듯이 죽음 또한 이유 없는 죽음도 없다고 한다. 자신의 죽음에 대해, 타자의 죽음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해석하는 길을 찾는 것이 오늘날 살 고 있는 사람들의 각자 저마다의 삶을 대하는 자기 임무가 아닐까 한다. 좀 더 근사하게 살았으므로 더 이상 회한이나 미련 없는 상태를 만들어 생을 완성해 가는 것도 앞으로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과정의 숙명이 되었으면 한다.

 

작가는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치밀하게 표현했다. 자칫 가족들의 내밀한 부분까지 들어내므로 우리들 모두가 장차 부모를 보내야 할 사람으로서, 혹은 내가 죽어가야 할 문제에 대해서 각자가 저마다의 생의 과정을 복기해보는 계기가 되고자 하는 책의 의도를 충분히 감지하는 민감성을 높인다. 인생의 끝자락에 관한 과정은 누구도 예외 없이 거쳐야 하는 필연적인 부분이다. 그렇다면 누구나 이 책을 통하여 각자가 주어진 상황에 따른 교감과 공감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 되는 당위성을 피력한다. 삶이란 그런 거다. 출생과 생존 그리고 끝의 마지막 날숨까지의 삶이란 과정을 타자의 관점에서 담담하고 묵묵히 기록한 점에서 삶을 경건함으로 지켜 성찰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다들 살아가느라 고맙다는 마지막 유언 같은 말 한마디에 결국 나는 또 눈물을 찔끔거렸다. 과연 나 또한 나의 마지막을 딸아이에게 어떻게 보여야 할지 내 삶의 의지가 작동하는 한 계속 고민해야 할 과제를 이 책을 통해 답을 도출해야 할 의무를 부여받았다. 이 책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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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4 04: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24 0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24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24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빵굽는건축가 2019-10-24 04: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삶을 경건함으로 지켜 성찰할 이유라는 후기가 맘에 옵니다. ^^

yureka01 2019-10-24 08:48   좋아요 2 | URL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 눈앞의 작은 이익때문에 삶을 망치는 경우가 많이 안타깝죠..
그렇게 산다고 얼마나 살것도 아닌데 말이죠..

하나꼬 2019-10-24 04:5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의 저자인 최현숙이에요. 알라딘이 주최하는 <작별일기> 북토크 관련 상황을 알아보려고 검색하다가 선생님의 세세한 후기를 읽게 되었네요. 제 글에 대한 말씀도 말씀이지만, 선생님의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는 읽기만 하는 저로서도 마음이 막막해지는 느낌이에요. 저야 그럭저럭 많이 힘들지 않게 보내드린 건데, 선생님의 마음과 몸의 고생이 깊이 느껴지네요. 비슷한 상황의 독자들을 위해 책에도 썼지만, 하는 데 까지만 하자는 마음으로,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마음으로, 자책이나 우울에 빠지지 않으셨으면 해요. 다만 선생님도 말씀하신대로, 부모의 죽음과정을 겪으며 우리들의 죽음은 어떻게 맞을 지, 하여 어떻게 살지에 대한 지혜를 얻자는 마음이네요... 혹 시간이 되시면, 북토크에서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힘 내시고요!!^^

yureka01 2019-10-25 17:03   좋아요 1 | URL
아 저자분의 댓글은 흔한게 아니네요..이렇게 찾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네. 이미 마음 준비는 한지 몇해가 흘렀습니다.
네 힘냅시다..^..
알라딘 북토크는 아무래도 제가 지방이다 보니 시간 내는 문제, 스케쥴을 잘 모르겠어요..
여하튼 고맙습니다.

겨울호랑이 2019-10-24 05: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삶이란 여태까지 만났던 과정이고, 자신의 몸과의 이별이 끝나야 인생이 마무리되기에 누구나 이별을 겪겠지요. 그럼에도, 사랑하는 가족과의 이별의 순간이 길어져 타인이 되면서 헤어지는 것은 견딜 수 없이 힘들 것이라 추측해 봅니다...

yureka01 2019-10-24 08:51   좋아요 2 | URL
물론입니다..자신과의 이별도..타자와의 이별도..그 과정을 거쳐야 하니까요....

2019-10-24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24 16: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freyja-고마워영화 2019-10-26 2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레카님 오랜만에 들러서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제 엄마도 80에 들어서니 생각을 달리 하게 되어요.
많이 늙으셨으니.
좋은계절 누리시길...

2019-10-27 2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강옥 2019-10-28 1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훈의 소설 ‘화장‘이 생각나네요.
화장은 소설이지만 이 책은 펙트네요.
목숨이란 게 참 허망하고도 끈질깁니다.
누구의 선택도 잘못도 인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을 완성한다고 하는데..... 삶의 완성이 죽음이겠죠?
누추한 육신을 남기고 가야 한다는 게 너무 싫어요. 소리없이 흔적없이 사라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yureka01 2019-10-28 23:13   좋아요 0 | URL
지우당님 사진을 찍으시니 사진의 시간이란 게 결국은 시간의 죽음이자 생성....
이 시간 속에 우리의 존재가 있으니까요..
어떻게 잘 죽어갈 것인가는 다른 말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것의 동일성이겠지요.

한 세상 잘 살았다 미련없이 갈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ㅋ

stella.K 2019-11-09 16: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않아도 어머님이 어떠신가 궁금했는데 이제야 이 글을 읽네요.
제가 무심했네요.ㅠ
치매 부모 간병이 쉽지 않은데 꿋꿋하게 잘하고 계시네요.
가족이 없는 것 보다 있는 것이 훨씬 좋긴한데 나이들수록 가족에게 짐이 될까 봐
그게 걱정이고, 저의 엄니도 아직 건강하긴 하지만 그 건강을 언제나 장담할 수 없으니
삶은 살면 살수록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감사하며 안도하며 사는 것 밖엔...

yureka01 2019-11-09 17:29   좋아요 1 | URL
네 차도는 없고..점점 갈수록 하강곡선이죠..
아마 상승은 어렵죠...이게 자신이ㅡ 노년이 될수도 있거든요..
모쪼록 지금을 사는 분들은 꼭 자신의 노년을 그려 봤으면 합니다.
그래야 남은 가족들을 못살게 굴지 않도록 해야 하니까요.
부모 세대분들은 그런 대비가 전혀 없었기도 하거든요..
이젠 달라져야할 시기가 온듯해요..

자신의 상황 판단이 흐려지기 전까지는 꼭...자신이 결정 내려야 할 거같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