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Cognition>의 2012년 기사에서 설레스트 키드Celeste Kidd와 홀리 팔머리Holly Palmery, 리처드 애슬린Richard N. Aslin은 아이들의 성장 환경에 비추어 볼 때 두 번째 마시멜로를 가지고 돌아오겠다는 연구자의 약속에 의심을 품을 만한 사정이 있는 아이들은 마시멜로를 먹을 확률이 컸다고 밝혔다. 불안정한 환경에서 양육되는 아이들은 "이미 뱃속에 들어간 마시멜로 외에는 확실한 게 없는" 반면, 안정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두 번째 보상이 정말로 눈앞에 나타날 거라는 확신을 갖고 몇 분을 더 참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통계 자료에는 쉽게 납득할 수 있는 부분도 있는 반면 한번 의심해보아야 하는 부분도 있다. 그 연구가 특정한 패턴에 맞추려고 특정 데이터만 추출한다거나 맞지 않는 데이터는 조작하고 배제하는 것은 아닌지 항상 주의해서 살펴보아야 한다

다른 연구 결과가 시사하는 바에 따르면, 채식주의자들이 더 건강한 이유는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충분한 채소를 섭취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진화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 인간은 적응력이 매우 강하며 구석기 시대 이후로 계속 진화해왔다는 점이다. 처음에 우리 조상은 성인이 되면 더는 젖당을 소화시키지 못했다. 아기들은 모유를 소화할 수 있도록 락타아제를 만들 수 있지만, 성장함에 따라 락타아제를 생산해내는 능력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인구의 대부분이 평생 동안 락타아제라는 효소를 만들어낸다. 인류의 일부는 젖소에서 얻는 ‘우유’라는 새로운 영양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진화했다. 북유럽에서는 낙농업이 시작된 후에 락타아제 지속성lactase-persistence이 있는 유전자의 출현 비율이 총인구의 80% 이상으로 높아졌지만, 낙농업이 실행되지 않은 다른 지역에서는 그 비율이 거의 0%로 남아 있다

살을 빼는 데 특정 다이어트가 다른 다이어트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아니었다. 식단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동기 부여다. 감량한 체중을 유지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매일의 식단과 체중을 기록하고, 꾸준히 운동하며, 규칙적인 식생활(주말이나 특별한 경우에도 식습관을 바꾸지 않는다.)을 유지한다. 모든 다이어트는 본질적으로 열량을 더 적게 섭취하면서도 견딜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을 속이는 일이다. 효과가 더 좋은 속임수는 사람마다 다르다. 중요한 것은 포만감이다.

어떤 음식은 다른 음식보다 특정 영양소를 더 많이 함유하고 있다. 그러나 ‘슈퍼푸드superfood’라는 개념은 허황된 통념이다. 모든 영양소를 완벽하게 공급하는 음식이란 없다. 물론 스피룰리나m는 상당히 다양하고 풍부한 영영소를 함유하고 있으며, 시금치는 더욱더 그러하다. 슈퍼푸드 목록들은 서로 일치하지 않으며, 무려 200가지 음식을 포함하기도 한다. 그런 음식들이 모두 슈퍼푸드라면 거의 모든 음식이 슈퍼푸드일 테니 그 개념 자체가 무의미해질 것이다.

유전자 변형 식품의 폄하는 자연주의적 오류p, ‘과학문맹’, 그리고 이윤을 추구하는 거대기업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었다. 천체물리학자 닐 디그래스 타이슨Neil deGrasse Tyson은 최근 트위터에 이런 말을 남겼다. "유전자 변형 식품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거의 모든 식품이 인위 선택에 의해 유전자가 변형되어왔다는 점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물은 생명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지만, 너무 많으면 너무 적은 것만큼이나 해롭다. 사람은 물 중독으로 죽을 수도 있다. 운동선수에게 체액 보충은 중요한 일이지만, 수분 과잉으로 마라톤 선수들이 죽기도 했다. 탈수증dehydration에 대한 오해는 수두룩하다. 날마다 물을 8~10잔씩 마셔야 한다는 통념도 잘못 알려진 것이다.

마이클 폴란Michael Pollan에 따르면 그동안 나온 건강 식단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먹어라. 적당한 양만큼. 식물 위주로." 과일 및 채소 섭취량을 늘리고, 적색육과 가공식품 섭취량을 줄이고,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먹고, 열량을 제한하고, 체중을 조절하라.

요약하자면 영양에 대해 설명하는 일은 과학의 영역이지 직관의 영역이 아니다. 건강과 건강관리는 고려해야 할 요인이 많다. 나쁜 소식을 하나 전하자면 체중 감량은 매일의 에너지 소비를 늘리고 음식 섭취를 줄여야 하는, 여전히 힘든 과제라는 것이다. 하나의 영양소를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잘못된 태도다. 예전에도 지방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잘못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탄수화물 역시 같은 길을 걸을지도 모른다. 이에 반대하려면 입증 책임은 반대하는 그 저자들에게 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까지 충분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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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지기 2022-07-11 22: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시멜로 이야기가 충격적이네요... ㅎㅎㅎ

겨울호랑이 2022-07-11 22:20   좋아요 1 | URL
네, ^^:)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마시멜로의 교훈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저도 이번에 알았습니다. 데이터가 주어져도 데이터에 어떤 질서를 부여하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적인 금융, 기술, 군사 강국이었지만, 그 국내 기반은 불완전했다. 코로나19가 고통스럽게 드러냈듯이, 미국의 보건 시스템은 망가지기 일보 직전이며, 미국의 사회안전망은 수천만 명의 사람들을 빈곤의 위험에 빠뜨렸다. 시진핑의 ‘중국몽中國夢’은 2020년을 거치면서도 온전히 살아남았지만, 미국의 ‘아메리칸 드림’은 그렇지 못했다. 2020년에 신자유주의가 겪은 전반적인 위기는 미국과 미국 정치 스펙트럼의 한 부분에 구체적이고 충격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신종 감염병 패러다임은 현대적 삶의 방식이 만들어내는 위협에 대한 심오한 진단이었다. 신종 감염병 패러다임의 타당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반反백신주의자들이 이끄는 단체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부수적인 요소일 뿐이다. 실제로 논란이 된 것은 신종 감염병에 대한 경고 그 자체가 아니라, 과연 우리에게 그 경고에 담긴 시사점을 받아들이고 끝까지 밀고 나갈 의지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만약 현대 경제·사회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질병 위험을 발생시키고 있다면, 대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경제는 관념이다. 진짜 관념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실제 사람과 사물, 현실의 생산과 재생산 네트워크를 집계한 통계와 일련의 생각과 개념을 결합한 관념에 불과하다. 일반적으로 GDP 같은 수치들은 총액은 적절히 잡아내지만, 혼란스러운 분리감을 만들어낸다. GDP 성장률과 다른 사회적 과제 사이의 ‘교환’이 의미 있는 일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바이러스는 경제라는 사회와 분리된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허상임을 드러낸다.

2월 7일은 중국 공산당의 권위가 가장 심각하게 도전받은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이날은 정부 대응이 전환점을 맞은 순간이기도 했다. 급증한 시위는 강경한 진압과 만났다. 검열은 과열 상태에 돌입했다. 소셜 미디어 게시물이 급속도로 삭제되었다. 감히 온라인에 비판 영상을 올린 우한의 기자들이 실종되었다. 쉬장룬 교수는 가택 연금되었고 바깥세상과 단절되었다. 중국 공산당의 안보 기관은 무시무시했으며, 진압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진압이 전염병 통제에서 거둔 성공과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워싱턴이나 런던에서 그러했듯이, 시진핑 주석의 정치적 위기 대처가 허술했다면, 시진핑 주석의 공고한 권력은 흔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중국은 소련처럼 붕괴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형세를 뒤집고 해외의 비판자들을 상대로 우위를 점했다. 이 질병과 처음 맞닥뜨린 국가인 중국에서는 위협이 급속도로 억제되었으며, 이 덕에 시진핑 정권은 마음껏 추가 조치를 할 수 있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통제 불능 상태였던 곳은 유럽과 미국, 라틴아메리카였다. 이 근본적인 차이가 2020년과 그 이후에 일어난 다른 모든 일의 틀을 잡았다

서방에서는 중국식의 가혹한 조치를 공산당의 일상적인 방식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중국의 현실을 잘못 본 것인 동시에 중국 중앙정부의 과감성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우한 봉쇄 조치는 최근 중국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2003년 사스에 노출된 베이징 주민 4000명이 격리 수용되었으며, 대학생 300명이 2주 동안 군부대에 억류되었다. 이런 조치는 그 자체로 주 혹은 나라 하나와 맞먹는 인구 1100만 명의 도시를 통째로 봉쇄하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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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2년 7월호는 민영화 문제가 국내 이슈만은 아님을 알려준다.

기사에 담긴 세계적으로 제기되는 신자유주의 문제로부터 우리는 연대할 이들이 많다는 위안과 함께 세계적인 위협을 함께 느끼게 된다....

"투기성 자금은 BPI가 투자한 분야로만 흘러 들어갑니다. 위험부담이 크지 않으니까요.  다시 말해 BPI를  통해 투입된 공적 자금은 큰 위험부담을 떠안게  됩니다. 반면 수익은 주로 민간자본에 돌아갑니다.  수익률은 30% 내외입니다. 사실상 대규모 횡령 행위나 다름없습니다." 민간부문 지원은 BPI의 사명이기도  하다.  "사익을 추구하는 은행과 금융시장을 공권력으로 대체하는 것은 명백한 신자유주의입니다. 프랑스에서 지난 40년간 이어져 온 것처럼 말입니다."  - P42

2016년 이후 EU 집행위원회는 ‘민간‘을 중심으로 한해법을 널리 지지해왔다. 한 마디로, 트위터, 유튜브 등의 기업이 스스로 자신들의 허물을 처리하게끔 하는 것이다. 하지만 민간의 검열은 자의적이고 비민주적인 특징을 지닐 수밖에 없다. 대개는 디지털 사업자들이 관련 권한자라는 명목 하에, 유럽 시민의 기본권 준수와는 전혀 거리가 먼, 자체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표현의 자유를 감독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 P47

그러나 냉전 시기 북유럽 국가들이 다자간 안보협의체를 구축해 대외관계에 대한 공동의 이해관계 및 연대성을추구했던 것과, 오늘날 나토 가입을 신청한 것에는 차이가있다. 이번 결정은 사회를 군사화하고, 나아가 무력을 통해전쟁을 예방할 수 있을 거라는 새로운 신뢰 체계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토의 확대는 분쟁 당사국들이 합리적 판단을 내릴 거라는 막연한 전제를 토대로 억제 이론(특히 핵 억제력)에 근거를 두고 있다.
여기서 ‘공공의 이익‘이라는 개념은 자리를 잃고 말았다. 오로지 억제력을 통해 안정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만 남았다. 억제력이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는 대상이 우리를 두려워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던가. 궁극적으로는 ‘공포의 균형‘을 잡겠다는 것이다.  - P59

멕시코에서 이런 변화는 의미가 크다. 대부분의 부호 의들이 시장의 법칙이 아니라, 정부의 특혜를 따라 부를 축적해왔기 때문이다. 멕시코 역사 지구에 위치한 국립 궁전 대변인실에서 헤수스 라미레스 쿠에바스(Jesús RamirezCuevas) 대통령실 대변인은 "신자유주의의 특징은 국가 역할의 축소가 아니다. 국가가 대기업들에게 조종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11명의 멕시코 부호들 중 6명이 민영화된 국영기업들의 소유자 또는 주주다. 이들 기업은 1988~1994년 신자유주의 성향의 카를로스 살리나스 데고르타리 대통령의 6년 임기 동안 민영화됐다. - P63

보건과 교육, 고용 정책, 국토계획 등 다양한 공공서비스 문제도 많이 언급됐다(전체 말뭉치 중 14%). 많은 민원인들이 공공서비스에 접근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세롱에 사는 한 주민은 "우리 마을 같은 곳에서도 공공서비스를 충분하게 누릴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사람들은 공공서비스가 폐지되는 것만큼이나 공공서비스의 민영화를 걱정하고 있었다. 아방 마을 주민은  "공공서비스를 유지해달라. 민간에 공공서비스를 매각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특히 공항과 고속도로 관련 민원이 많았고, 실제로 보르도에 있는 병원 두 곳은 폐쇄가 예정돼 있다. 라바드에서 나온 고충민원에서도 지적했다시피 "불행히도 공공서비스가 항상 수익성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공서비스는 국가 연대에 속한 사항이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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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아베 내각의 행보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이 외교, 안보 정책 전환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주의를 끄는 것은 패전 이후 70년 만에 강대국 간 지정학 게임에 가담하려는 움직임이다. 지정학 게임의 요체는 대중 '억지' 전략으로, 한층 더 강력한 미일동맹을 구축하여 부상하는 중국, 특히 중국의 해양 진출을 억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른바 '미국/일본 대 중국' 구도의 안전보장 전략을 말한다. 아베 내각의 지정학 게임은 자민당 보수우파 세력의 국가관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그렇다면 어떠한 국가관을 말하는가. 아베 총리는 정권의 이념으로 '전후체제의 탈각'을 내걸었다. _ 서승원, <근현대 일본의 지정학적 상상력>, p302


 며칠 전 아베 신조(安倍 晋三, 1954~2022) 전 일본 총리의 총격 사망 사건이 너무도 갑작스러운 일이어서 충격적으로 느껴진다. 우리나라와 극한 대립각을 세우던 일본 총리,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 참배를 비롯한 여러 망언, 대한(對韓) 수출규제로 한일 무역전쟁을 일으킨 장본인. 그에 대한 우리 일반의 인식은 정치인들과는 달리 부정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역대 최장기 집권 총리임을 생각한다면, 그가 미친 영향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기에, 그의 사망을 맞아 아베가 총리로 재직하던 시기의 일본 정책을 돌아보는 페이퍼를 작성해본다. 


 중국 칭화대의 류장용(劉江永) 교수가 쓴 논문이 흥미롭다. 작금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의 중국 정책은 1세기 전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내각(1885.12~1901.6)의 그것과 판박이처럼 닮았다는 내용이다. 논리적 비약이 없지는 않지만 수긍이 가는 부분도 적지 않다. 사실 아베 총리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국가상(國家像)도 메이지 국가이다. _ 서승원, <근현대 일본의 지정학적 상상력>, p299


 서승원 교수는 <근현대 일본의 지정학적 상상력>에서 아베 내각의 정치적 특징을 외교 안보 전략에서 찾는다. 미국과 철저하게 한 편이 되어,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틀을 짜고, 이러한 구도에서 동북아에서 재무장을 실시하여 다시 메이지(明治)시대의 일본으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생각. 조슈 번(長州 藩)의 후예인 아베가 충분히 꿈꾸었을 목표다. 아베 내각의 주된 정책 방향은 '전후 체제 탈각'이다. 해군역사학자인 알프레드 마한(Alfred Thayer Mahan, 1840~1914)의 관점을 수용하여 현대 G2인 미국과 중국을 각각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에 위치시키고, 이들의 갈등을 이용하여 헌법9조를 고치고 재무장하고, 과거 일본제국의 영광을 찾겠다는 일본 극우의 발상을 '전후체제 탈각'의 내용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과거 일본이 저지른 죄악과 그에 대한 사과를 부정하는 행태는 이웃인 우리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하다. 


  자신의 집권을 위해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1941 ~ )이 일본 국민의 무의식에 자리했다고 평가한 헌법 9조를 의식의 세계로 끌어올려 파괴하려는 무리수도 주저하지 않았던 그의 생전을 생각하면, 우리의 분노를 누구보다도 원했던 것은 아베 자신이 아니었을까.


 헌법 9조는 자발적인 의자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외부로부터의 강요에 의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후 그것이 깊이 정착되었습니다... 헌법 9조는 일본인의 집단적 '초자아' 이자 '문화'입니다.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하는데, 문화가 바로 그와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세대의 차이를 넘어서 전해집니다. 그것은 의식적으로 전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식적으로 제거할 수도 없습니다.  _ 가라타니 고진, <헌법의 무의식> , p32


 도고 가즈히코(東鄕 和彦 2015)는 아베 총리가 내거는 전후체제 탈각을 대체로 안전보장, 역사인식, 그리고 국가의 재군축이라는 세 측면에서 파악한다. 첫째, 전후 일본에 계승되어 온 평화주의에 대한 반성과 비판에서 자국의 방위와 세계평화를 위해 군사력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둘째, 도쿄재판에 유래하는 자학적인 역사인식을 배제하고 위안부 문제나 난징사건과 관련하여 사실관계를 넘어서는 국제사회의 일방적 비판에 대해 분명하게 반론해야 한다는 견해이다. 셋째, '이해득실을 초월한 가치'의 경우는 전후 사회에 있어서의 자연과 전통/문화의 상실, 그리고 그 배경으로서 자신과 그 주변을 넘어선 사회전체, 공공(公共)을 중시하는 정신이 결여되어 왔다는 생각이다. _ 서승원, <근현대 일본의 지정학적 상상력>, p304


 일본에 해외에 파견할 군대가 있었다면 국지전이라고 일으켰겠지만, 평화헌법으로 인해 그럴 수 없었던 제약, 대신 외교적으로 이웃나라인 우리와 끊임없는 분쟁을 일으켰던 아베였기에, 그의 죽음에 대해 애통한 마음을 갖기 어렵다. 기껏해야 한 인간이 소멸해간다는 생물학적인 죽음에 동병상련의 마음 정도가 그의 죽음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애도의 한계라 여겨진다. 일본과 우리가 현재 경제전쟁 중임을 생각한다면, 적장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는 게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정유재란 때도 조선 장군들이 도요토미 히데요시 죽음에 조문을 표했던가. 오히려,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물러가는 적을 하나라도 잡으려 했던 전례를 생각해 본다면, 소위 정치인이라고 하는 이들의 행태는 솔직히 이해되질 않는다.


 아베 정권은 태생부터 한국 비판 세력이었다. 위안부 문제 등 한국의 역사 인식을 비판하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사람들이 일본의 극우파이자 아베 정권이다. 그 이유는 한국과 중국만이 일본 극우파들의 주장에 강한 반론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극우파로서는 그들의 정체성을 확립시키기 위해서는 강대국인 중국 한수 아래로 생각하는 한국을 세게 때리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렇게 한국을 때릴수록 극우파들은 일본 내에서 자신들에 대한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_호사카 유지, <아베, 그는 왜 한국을 무너뜨리려 하는가>, p216/382


  요약하자면 아베 내각의 지정학 게임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첫째, 일본의 미일동맹에 대한 경사가 유례가 없을 정도로 심화되었다. 이러한 미일동맹 제일주의는 역으로 전략적 선택의 폭을 좁히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으며, 또한 대중 억지력의 향상 보다는 동북아 안보딜레마를 심화시킬 개연성이 크다. 둘째, 아베 내각에 들어서면서 거의 모든 대외전략이 중국문제로 수렴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최근 혐중/반중 일색의 국내 여론과 중국에 대한 대항 의식은 과거 러시아에 대한 그것과 유사한 측면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셋째, 지정학 게임과 가치관 외교의 충돌이다. 정치체제결정론적 사고는 외교의 이념화, 관념화를 가져오며 냉철한 국익판단과 전략적 유연성을 필요롤 하는 지정학 게임과는 양립하기 힘들다. 넷째, 과거사를 매개로 한 정체성의 정치는 중국을 이질적 체제로 타자화하는 촉매제로 작용했다. 역사수정주의는 대외관계에서 새로운 외피가 필요했는데 이는 지리적으로는 해양국가, 정치체제로는 민주국가, 그리고 이념적으로는 보편적 가치였다. _ 서승원, <근현대 일본의 지정학적 상상력>, p357


 정치인 아베 신조는 죽었음에도, 최근 심각해지는 경제위기 상황 속에서 그의 경제 정책인 '아베노믹스'는 이후 우리나라에서 자주 언급되지 않을까하는 불안한 마음이 든다. 법인세 감세, 사회보장제도 개악, 민영화 추진, 노동 규제 완화 등으로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새정부정책의 주된 방향이 이미 실패로 입증된 아베노믹스와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극우 정치인 아베는 죽었지만, 그가 남긴 부채가 일본 뿐 아니라 남은 우리에게도 짐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대담한 금융 정책, 기동적 재정 정책, 민간 투자를 불러일으키는 성장 전략인 '세 개의 화살'로 장기간 계속된 엔고와 디플레이션 불황에서 탈출하여 고용과 소득의 확대를 도모한다'는 아베노믹스의 핵심 기조가 모두 언급되어 있다. _ 안베 유키오, <일본 경제 30년사>, p345/456


  왜 아베노믹스는 실패했을까. 확실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세 개의 화살'이 전부 과녁을 벗어나 일본 경제의 장기침체나 디플레이션의 원인에 닿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의 진짜 요인은 소비 증가 부진이었고, 그 배경에는 임금의 하락과 상승 부진이었다. 아무리 금융을 완화시켜도(첫 번째 화살), 그리고 다양한 형태로 기업이 이익을 보도록 배려해도(세 번째 화살) 임금이 늘지 않는 한 일본 경제의 '재생'은 없고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또한 공공투자의 확대(두 번째 화살)는 소비 부진에 의한 수요 부족을 보완한다는 점에서 '세 개의 화살' 중 비교적 목표에 근접한 화살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재원 문제도 있고 화살 수량에 제한이 있어 효과는 일시적인 것에 그치고 말았다. 둘째, 아베노믹스가 사람들의 삶의 향방에 너무 무관심했고, 임금을 올리는 등 보다 나은 삶을 만드는 정책이 필요했음에도 반대로 소비제 증세, 사회보장제도 개악 등 생활에 해를 입히는 정책을 계속해서 취한 것이다. _ 안베 유키오, <일본 경제 30년사>, p406/456


PS. <일본회의의 정체>에서는 일본 종교계와 결탁한 극우세력의 실상이 자세히 그려진다. 일본 신도가 정치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일본정가의 모습이 그렇게 낯설지 않은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그러길 바라본다...


 신도 종교의 중심적 존재라 할 수 있는 메이지 신궁. 그리고 전후 일본 우파운동에 큰 영향을 미친 다니구치 마사하루가 이끄는 거대신흥종교 '생장의 집'. 양대진영의 지도자들에게 우파계 종교인이 호소함으로써 두 진영의 두터운 지원을 받으며 발족한 '일본을 지키는 모임'. 이 구도는 지금도 여전히 명맥을 잇고 있다. 즉, 일본회의라는 존재의 배후에는 신사본청을 축으로 하는 신도 종교단체와 생장의 집의 그림자가 조직과 인맥에 드리웠고, 어쩌면 자금에도 짙게 드리워져 있을 것이다. _ 아오키 오사무, <일본회의의 정체>, p42/418


 일본회의와 그 핵심, 주변에 있는 '종교심'에 의해 움직이는 종교 우파의 정치사상은 확실히 그러한 위험성 - 전쟁 전으로의 회귀 - 을 내재한다. 자민족 중심주의, 천황 중심주의, 국민주권의 부정, 지나치기까지 한 국가 중시와 인권의 경시, 정교분리의 부정. 신사는 종교가 아니라는 이나다의 논리도 '국가의 제사'로 여겨지던 전쟁 전 국가신도의 논리와 매우 흡사하다.  _  아오키 오사무, <일본회의의 정체> , p384/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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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22-07-10 17:5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일본의 장기 불황을 엔저 정책으로 탈피하려던 아베노믹스가 실패하고 그로 인한 후유증이 심각해서 일본이 더이상 선진국이 아니게 될 것이라며 국가의 경제 정책 실패의 심각성을 일깨워 주는 책이 있더라구요. <일본이 선진국에서 탈락하는 날>입니다. 우리나라 경제도 걱정되구요.

겨울호랑이 2022-07-10 21:29   좋아요 4 | URL
네, 아베노믹스는 여러 면에서 동일한 실질가치를 달러로 환산한 명목가치로 눈속임한 정책이라는 비판이 예전부터 있었음에도 최근에야 비판이 주목받는 듯 합니다... 찾아보니 알려주신 책은 이번에 새로 출간된 책이군요. 오거서님 좋은 책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2022-07-10 2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7-10 2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란공 2022-07-10 23: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호사카 유지 교수를 처음 알게 되었네요. 앞으로 또 한일 관계에 어떤 변화와 변수가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겨울호랑이 2022-07-10 23:36   좋아요 4 | URL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일본계 한국인으로 일본과 관련한 정치현안 논의 시 섭외 1순위 전문가로 알고 있습니다. 공중파 방송과 오마이뉴스에서 깊이있는 논설을 하시는 분이라 참고하시면, 향후 변화의 방향을 가늠하시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페크pek0501 2022-07-12 17: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베 총리 사망한 사건에 꽤 놀랐습니다. 하루아침에 그럴 수가...

겨울호랑이 2022-07-12 18:36   좋아요 1 | URL
건강이 좋지 않아 총리 사임을 했다고 하지만, 갑작스럽게 세상을 뜰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습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 정치인의 죽음이 일본을 군군화의 길로 더 빨리 몰아갈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선회하게 할 지 전혀 종잡을 수가 없게 하네요. 여러 면에서 혼란스러운 국내외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