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히 많은 다중우주도 이와 비슷하다. 무한히 많은 우주에 당신과 꼭 닮은 사람들이 존재하며, 이들은 단지 당신보다 머리칼이 한 가닥 많거나, 키가 0.5mm 크거나, 혹은 다른 직업(그들의 환경과 성장 과정이 당신과 다르기 때문에)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두 팔을 펄럭이며 날아갈 수 있는 당신의 분신은 어느 우주에도 없을 것이다.

인플레이션 팽창은 빛보다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빛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공간의 팽창은 물체가 공간을 ‘가로질러’ 이동하거나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이 아니기 때문에 광속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플레이션 다중우주들은 중간영역이 팽창함에 따라 꾸준히 멀어지고 있으며, 중간영역의 부피가 클수록 멀어지는 속도가 증가하여 빛보다 빠르게 멀어질 수도 있다. 제아무리 뛰어난 과학문명을 갖고 있다 해도, 이런 식으로 분리된 우주를 연결할 방법은 없다. 즉, 인플레이션 다중우주가 실제로 존재한다 해도 다른 우주를 방문하거나 통신을 교환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우주가 여러 개라는 아이디어는 인플레이션 이론의 전유물이 아니다. 양자역학의 가장 오래된 역설 중 하나인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살아 있는 고양이와 죽은 고양이가 공존하다가 관측이 실행되는 순간 각자의 세계로 갈라져 나간다는 평행우주의 개념을 낳았고, 20세기 말에 혜성처럼 등장한 끈 이론에 의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이 4차원이 아닌 10차원(또는 11차원)이며, 지극히 작은 영역에 여분차원(6, 또는 7차원)의 우주가 숨어 있다. 또한 우주 전체를 3차원의 막(3-브레인, 3-brane)으로 간주한 브레인세계 가설에 의하면 고차원 우주에는 동일한 브레인세계가 여러 개 존재할 수 있으며, 인플레이션 이론과 끈 이론을 결합하면 끈 이론의 여분차원들이 다양한 거품 우주를 양산한다. 이처럼 현대물리학과 우주론을 깊이 파고들다 보면 다중우주가 자연스럽게 도입된다.

사실상 모든 종교는 과거의 유한한 어느 시점에 신이 우리 우주를 창조하였고, 그 중심에 인간을 두었다고 가르친다. 다중우주는 이런 가르침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최선의 선택을 내리는 데는 오컴의 면도날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오컴의 면도날이란 몇 가지 가설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가장 간단한 가설의 손을 들어주는 원리다.

신앙주의를 위한 변론 중 최고의 고전은 윌리엄 제임스의 《믿음에 대한 의지The Willto Believe》이다. 제임스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만약 형이상학적인 믿음을 가지려는 강한 감정적 근거가 있다면, 그리고 그 믿음이 과학이나 논리적인 근거에 크게 반하지 않고 만족감을 충분히 제공한다면 이를 믿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상대방이 맥주를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와 같은 종류의 주제로, 논쟁할 수 없는 경우이므로 무신론자들을 분노하게 만든다. 내게는 전적으로 감정적인 문제다."

하지만 나는 절대선인 신을 믿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신은 전지전능하며 절대선인 것으로 정의되는데, 여기서 절대선이라는 말은 다시 생각해야 한다. 신은 절대선일 수 없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세상의 좋은 일뿐만 아니라 나쁜 일, 최악의 일도 신에게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무신론자들이 여기서 중요한 실수를 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신을 강력하지만 인간과 유사한 존재로 상상하고 있다. 즉 과학과 자연법칙에 지배되며, 시간과 공간, 원인과 결과, 논리, 비모순율lawofnon-contradiction등에 종속되는 존재로 여긴다. 하지만 이는 합리적인 신의 개념이 아니다. 초월적인 존재를 사실로 가정한다면 초월적 존재에 조금 못 미치는 존재를 가정해서는 안 된다. 이럴 경우 결국 자기모순에 빠지면서 신은 없다는 결론에 다다를 것이다.

나는 시간과 공간, 자연, 논리를 초월하는 신의 개념이 더 합당 하다고 생각한다. 무신론자는 내가 존재의 제약에서 신을 제외시켰다고 말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생각하는 신이기 때문이다. 신이 존재를 창조했다면 신은 존재의 제약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이것이 가장 포괄적이고 중요한 논리다.

순수한 회의주의에는 더 심각한 결점이 하나 있다. 극단적으로 갈 경우, 이 입장은 그 자체로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는 이런 예문이 나와 있다. "모든 회의주의에는 긍정적인 태도가 깃들어 있다. 회의주의적 논변에 인류의 모든 지식을 뒤집어엎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전적인 확신 같은 것 말이다." 회의주의 그 자체는 지식을 긍정하고 있다. 따라서 회의주의를 극단적으로 주장하면 회의주의 자체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이제 흄에 대한 마지막 비판을 보자. 이것은 설명은 간결할수록 더 타당하다는 ‘오컴의 면도칼’을 오용한 경우이다. 자연법칙에 부합하지 않는 어떤 사건이 있을 때, 가장 간결한 설명은 ‘신이 하셨다’는 설명이라고 신자들은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간결하다기보다는 순진한 생각이다. 인간사에 흥미를 보이는 전능한 초자연적 실체에 대한 믿음을 간결하게 설명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정말 죽은 사람이 살아날 수 있을까? ‘죽음’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임상적 사망이라는 용어는 과히 적절한 명칭은 아니다. 심장 박동과 호흡의 정지를 의미하는 임상적 사망은 그냥 ‘심장 박동 및 호흡 정지’로 부르는 게 더 적절하다. 심장 박동 정지 후 임상적으로 ‘사망한’ 환자도 15~20초 정도 더 의식이 남아 있을 수 있다. 임상적 사망으로 오진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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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지기 2022-07-07 2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켑틱 정기구독 할까말까 늘 고민인데
써주시는거 보니 구독쪽으로 마음이 가우네요 ㅎㅎ
매번 잘 읽고 갑니다

겨울호랑이 2022-07-07 23:08   좋아요 0 | URL
저도 <스켑틱>이 단순히 과학에 근거한 주장만을 전달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여러 관점에서 사안을 보려 노력한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낍니다. 등대지기님 좋은 시간 되세요! 감사합니다 ^^:)
 

BAE의 대부 바실 자하로프 Basil Zaharoff는 그리스의 원수라고 할 수 있는 터키 해군에 잠수함을 파는 것이 애국적이지 못하며 다소 부도덕한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그에게는 이러한 고민을 이겨내는 힘이 있었다. 언론에 군사적 프로파간다를 퍼뜨리고뇌물로 주요 인사를 매수하는 자하로프의 대표적 수법은 무기거래에 몸담은 초창기에 시작된 것이다(p51)... 자하로프는 경쟁사들보다 두 배나 비싼 가격에 무기를 판매했고, 구매를 결정하는 정치인들에게는 뇌물을 세 배 더 주었다. 그는 무기를 더 많이팔기 위해 언제나 기꺼이 분쟁을 조장했다. - P52

반다르가 말했듯 대처 총리는 사우디의 무기판매 요청을 매우 잘 수용해주었다. 미국은 사우디에 무기를 판매하는 것을 꺼렸고, 프랑스는 이란산 석유 수입을 늘리며자충수를 두었다. 하지만 이러한 요인들 외에 영국에서 무기를 수입한다는 사우디의결정에 영향을 가장 근본적인 요인은 바로 돈이었다. 역사상 가장 부정한 무기거래로남을 이 거래로 반다르와 대처 총리의 아들을 비롯해 거래에 연루된 수많은 사람들은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 P119

역사상 가장 유명한 스웨덴인이라 할 수 있는 알프레드 노벨은 "어마어마한 대량 살상력으로 전쟁을 영원히 불가능하게 만들 물질 혹은 기계를 발명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러한 모순된 생각은 그의 생애와 가치관에도 반영되었다. 그는 시적인 이상주의자이자 반전주의자인 동시에 폭발물에 집착하는 무자비한 자본가였다. 외로운 사투 끝에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했으며, 그 이후에는 스웨덴 총기제조업체 보포스Bofords를 설립하고 노벨상을 만들었다. 알프레드 노벨의 모순은 세계 평화를 주창하면서도 매우 독창적인 무기를 제조하고 수출하는 스웨덴 및 노벨평화상을 둘러싼논란과 함께 그의 사후에도 계속 언급되고 있다. - P338

많은 논란을 일으킨 칼라일그룹 또한 부시 가문과 사우드 가문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다. 1987년 설립 당시 칼라일그룹은 사모펀드 투자분야에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제시했는데, 그 그룹은 처음부터 각국 정부의 회전문 메커니즘을 이용하는 것을 설립목표로 삼았다. 칼라일그룹은 미군, 대기업, 큰 영향력을 가진 정치 세력이 한 회사에모두 모여 탄생한 군산정복합체의 전형적인 예다. 칼라일그룹은 정부활동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기업들을 투자 대상으로 삼았다. 정부로부터 계약을 수주하기 때문에 법규 개정에 크게 영향을 받거나, 칼라일그룹과 관계된 정치권 거물들을 통해 세계 곳곳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업들이 타깃이 되었다. 정치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미리 파악하거나 이를 바꿀 수 있었던 칼라일그룹은 ‘인맥 자본주의‘에 통달한 세계최대의 사모펀드 회사가 되었다.  - P421

2011년 브라운대학교의 경제학자 및 사회과학자 20인은 추가비용을 감안할 때2011년까지 실제 총 재정지출은 보수적으로 추정해서 3조 2,000억달러에 달한다는사실을 확인했다. 이 수치는 2051년까지 의무 적용되는 제대군인 돌봄정책 비용 등을 합한 것이다. 브라운대 연구팀은 2020년까지 전체 전쟁 비용이 4조 달러에 달하거나 이를 초과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 수치에는 여전히 기회비용이나 전쟁으로 인해 발생하는 장기적 간접비용은 제외되어 있다. 그러한 비용중 하나는 미국의 국체증가다. 스티글리츠와 빌름즈는 세계적 경기침체의 심각성과 미국의 대처능력 부족의 원인을 직간접적으로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 P607

진정한 피해자들은 땀 흘려 번 돈을 무기거래의 낭비, 부패, 남용에 빼앗기는 각국의 납세자들이며, 예멘  사나에서 멕시코  시우다드후아레스까지, 알바니아  게르데츠에서팔레스타인 가자지구까지, 소말리아 모가디슈에서 스리랑카 몰라티부까지, 미얀마양곤에서 팔레스타인 라말라까지, 콩고민주공화국 키부에서 아프가니스탄 카불에 이르기까지 죽음의 상인들과 함께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분쟁, 사회경제적 쇠퇴, 궁핍으로 고통받는 이들이다. - P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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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사이드는 더이상 ‘침묵의 범죄’가 아니다. 남반구 국가의 숲과 산, 강과 바다, 광산 등 곳곳에서 지뢰가 터지듯 점점 요란스럽게 퍼져가는 에코사이드는 오히려 노골적 범죄에 가깝다. 토착민 축출은 물론, 아마존에서 지난 십수년간 살해된 활동가들이 300명이 넘는다는 사실도 놀랍다(138면). 남반구의 환경운동은 목숨을 거는 일이며, 적의 총구 앞에 노출된 전쟁터의 병사가 되는 일이다. 생태학살 돈벌이에 나선 초국적 포식자들이 방해가 되면 무엇이든 제거 대상으로 겨냥하는 것이 에코사이드의 참혹한 정체다.

1944년 법학자 라파엘 렘킨(Raphael Lemkin)이 만든 신조어 ‘제노사이드’ 역시 초기에는 집단학살, 홀로코스트 등에 초점을 두어 인간의 생물학적 죽음을 의미했지만, 근래에는 문화·환경의 파괴 등 어떤 집단의 통합적 정체성이 해체되는 ‘사회적 죽음’으로 확장되어 쓰인다. 세계 제노사이드 연구자들은 2021년 ‘기후비상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선언’을 통해 "에코사이드와 제노사이드가 얽히면서 인간과 지구행성에 가하는 복합적 폭력을 직시"(118면)하라고 강조했다. ‘생태학살’과 ‘집단학살’의 명백한 인과성에 대한 주장은 기후·환경운동의 논리와 실천에 의미있는 영향을 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두 학살의 연계야말로 이 책이 담은 가장 독보적인 통찰이기도 하다.

이 책의 핵심 주장은 산수화에는 화가 및 그림 주문자의 특정한 의도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산수화에는 이러한 의도와 관련된 당시의 문화적 코드가 내재되어 있다. 따라서 각각의 역사적 시기마다 그려진 산수화는 제작 당시에 정치·문화 권력을 쥔 인물들에 의해 산수가 어떻게 인식되고 평가되었으며 재해석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생생한 기록이다. 당시의 문화적 코드가 반영된 산수화는 사람들의 산수 인식을 변화시키는 적극적인 역할을 하였다. 즉 산수화가 세계를 다시 만든 것이다.

1960년대 세계문학계에 급부상한 ‘라틴아메리카 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까르뻰띠에르는 중남미문학의 미학을 ‘경이로운 현실’과 ‘바로크’로 규정지으며 이를 자신의 작품 속에 구현해 중남미소설의 토대를 이뤘다. 그의 대표작 『잃어버린 발자취』(Los pasos perdidos, 1953)가 올해 출간된 것은 작품과 작가의 문학사적 위치를 고려할 때 뒤늦은 감이 있지만,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궁극적으로 도올은 수운의 사유를 온전히 드러냄으로써, 서양의 초월적 신관과 실체론적 사고를 전복시키고 새로운 사유, 새로운 길을 열어 보이려고 한다.

수운의 사유에는 항상 초월과 내재, 개체와 전체, 신비와 이성, 인격성과 자연성, 인과성과 초인과성, 아(我)와 무아(無我), 불연과 기연, 인성과 신성, 유위와 무위, 이 모든 대립적 관계가 생성적 관계로 혼융되어 있다. 또 서양의 주관과 객관의 설정이 사라진다. "주관은 나만의 주관일 수 없다. (…) 수억만 개의 주관이 저마다의 세계, 저마다의 시공간을 구성하고 있"(34면)다. 도올은 동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현재적 사고를 완벽히 전복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우리 언어의 궤도를 일탈하여 신생로를 개척해야 하는데, 이때 가장 유용한 문헌이 바로 「용담유사」라는 것이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그런 세대는 없다』에서 이른바 ‘386세대의 독식’과 그 때문에 ‘미래를 박탈당하는 청년세대’라는 구도를 생산해온 담론의 허구성을 드러낸다. 그에 따르면 세대 간의 체계적인 불평등이 있어 마치 386세대가 ‘양보’를 해야만 많은 사회적 병폐가 해소될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세대 선정주의’에 불과하다. 그 선정적인 허구성은 저자가 인용하는 조사결과로도 여실히 드러난다. 한국의 34세 이하 청년들 사이에서 386이나 586이라는 용어 자체를 잘 모른다고 대답한 사람이 44%인데, 그러면서도 ‘386세대가 한국사회의 기득권 세력이다’라는 문항에 80%가 동의했다고 한다(133면). 이는 확실히 자연스러운 현상은 아니다.

강간은 여성의 몸에서 벌이는 전쟁이다. 성은 그 어떤 물리적 화학적 무기보다 값싸고 효율적인 파괴 무기라고, 피해자와 조력자와 관찰자 모두가 잘라 말한다.

그에게 있어서 예술작품이라는 객체야말로 이러한 특징, 즉 본질을 파악하려는 우리의 노력으로는 결코 장악할 수도 닿을 수도 없는 잉여물의 특징을 두드러지게 보여주어야 한다. 강조컨대 평평한 존재론에 의하면 물, 공기, 새, 숲, 고양이, 인간 등은 지금 바로 여기에 있는 실재이지 외부의 지각에 의해 구성된 존재가 아니다. 이들은 서로에게서 공평하게 물러나 있고 서로 간에 포착할 수 없는 무언가를 은폐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의 자율성은 "자신이 맺은 관계들과는 별개의 실재를 갖춘 무언가"(139면)를 환기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본질을 명료하게 포착하고 진술하는 것과 예술은 거리가 멀다.

『예술과 객체』는 20세기 후반 철학의 주된 흐름을 대변해온 생성·사건 철학과 거리를 두고 포스트모던 예술 경향에서도 물러서며 존재(being)의 철학 쪽에 스스로를 위치시킨다. 예를 들어 그가 반형식주의 등 비평이론을 비판할 때 자연스레 떠오르는 풍경은 이런 것이다. 십수년 전 한국에서 후기식민자본주의의 살풍경을 담은 영화(「괴물」)가 천이백만 관객을 동원한 다음 해 노골적 신자유주의 정권이 들어섰을 때 영화평론가들은 그 심상치 않은 어긋남을 불길하게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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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나폴레옹이 놓친 것은 술탄이 영국과 러시아의 군사력과 해군력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술탄은 두 나라가 프랑스보다 자신들의 위협과 야심을 무력으로 뒷받침할 능력이 더 있다고 판단했다.
알렉산드르 황제는, 새로운 러시아-오스만 동맹에 대한 술탄 셀림 3세의 헌신이 3차 대불동맹전쟁의 승패에 달려 있음을 이해했다.

곧 대규모 전쟁으로 비화할 러시아-오스만 관계에서 커져가는 긴장은 유럽에서 나폴레옹 전쟁 동안 발생한 지정학적 재배열이라는 더 넓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3차 대불동맹전쟁 이후 프랑스는 중유럽을 지배하게 되었고 발칸 지역으로 접근할 수 있는 이전 베네치아 영토들을 획득했다. 프랑스 정부의 대리인들이 러시아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아 발칸의 다양한 지역들로 파견된 한편, 몰다비아와 왈라키아의 프랑스 영사관은 반러시아 공작의 중심지가 되었다.

메테르니히가 이 주제를 나폴레옹한테 꺼냈을 때 그는 배제되기는커녕 실은 오스트리아가 발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폴레옹은 발칸반도에서 러시아의 팽창을 시기하는 오스트리아를 이용해 그 지역에서 더 이상의 팽창을 막을 수 있길 바랐다.

1813~1815년 동안 유럽이 나폴레옹을 상대하느라 여념이 없는 사이에 오스만 중앙정부는 잠시 결정적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들은 계속되는 유럽의 갈등에 중립을 선언했고, 이탈리아로 원정을 감행하도록 러시아 전함이 해협을 통과할 수 있게 허락해달라는 영국의 제의를 거절했다. 술탄 마무드는 잠깐 열린 기회의 창을 이용해 반란을 일으킨 지방들에 자신의 권위를 재확인하고 방어적 개발주의라는, 궁극적으로는 근대화로 나아가는 프로그램을 위한 토대를 다졌다. 러시아와의 전쟁 종식으로 그는 세르비아로 군사적 자원을 전환할 수 있었다.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의 패배와 나폴레옹 전쟁의 종결은 세르비아인들에게 큰 힘을 실어줬으니 이제 러시아가 오스만튀르크에 맞서 세르비아를 자유롭게 지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술탄 마무드는 러시아의 간섭 가능성을 두려워하며 신중히 처신했다. 그는 세르비아에 제한적인 자치를 허용하고 밀로시 오브레노비치를 세르비아 군주로 인정했다. 정치적인 행보였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저도 모르게 오스만 제국의 정치적 해체를 향한 첫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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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경제학자들이 볼 때에는 시장가격과 독점가격이 따로 있다. 즉 독점영역과 "경쟁영역(secteur concurrentiel)"이라는 두 개의 층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부 사람들이 경쟁영역이라고 명명하는 것을 시장경제라고 부를 수는 없을까? 제일 상층에는 독점이 있고 그 아래에 중소기업들에게 맡겨진 경쟁이 있는 것이다. 이 구분은 아직 우리의 논의에서 널리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지만 점차 상층의 것을 가리켜 자본주의라 부르는 관례가 퍼져가고 있다. 자본주의는 갈수록 최상급이 되어간다. 다름 아닌 트러스트, 다국적 기업 등 상층의 영역이다. 소규모 제조업 작업장이나 독립적인 소기업들도 자본주의와 관련을 가지지 않는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2>, p865


 18세기만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광범위한 지상층(1층)의 영역이 존재하는데 최근의 경제학자들의 추산에 의하면 오늘날 가장 산업화된 국가에서도 이런 층이 전체 경제활동의 30-40퍼센트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와 같은 영역은 시장과 국가통제의 바깥에 놓여 있는 밀수, 재화와 서비스의 물물교환, "암거래 노동", 가구의 활동 등을 합친 것이다. "삼분할(tripartition)" 체제, 여러 층을 가진 경제라는 개념은 과거에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고 이야기했지만 이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타당한 모델이며 다양한 관찰의 틀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의 지상층을 고려하지 않은 통계는 불완전한 분석일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상층에서 하층까지 모두 아우르는 자본주의 "체제(systeme)"라고 하는 관점은 여러 면에서 수정되어야만 한다. 그와 반대로 자본주의와 그 아래층인 비(非)자본주의 사이에 생동하는 변증법이 작동한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2>, p867


 페르낭 브로델 (Fernand Braudel, 1902~1985)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Civilisation Materielle, Economie et Capitalisme>3권의 전체 결론은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는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경제규칙이 적용되는 다른 세계지만, 동시에 이 세상 경제계를 구성하는 3층 구조의 일부로서 이들을 바라봐야 한다는 전체 결론을 내리기 위해 저자는 어떤 길을 따라왔는가. 각 권의 리뷰를 통해 내용을 정리했지만, 전체적인 맥락 파악을 위해서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La Dynamique du Capitalism>라는 저자 직강보다 더 잘 요약하기는 힘들 것 같다.


 책의 1권의 목적은 심층의 물질생활을 탐색하는 것입니다. 책의 차례에 나와 있는 장들 자체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그러한 힘들을 열거한 것입니다. 즉 물질생활 전반을 만들어내고 밀고 가는 힘이자, 물질생활 너머의 상위 영역까지 포괄해 인간의 역사 전체를 밀고가는 힘이기도 합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18


 물질문명은 경제사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층(層)이다. 오랜 기간 동안 인류의 삶이 이뤄진 배경인 물질생활은 큰 변화없이 일정한 크기만큼의 팽창과 수축을 반복해왔다. 어느 분야에서 이루어진 작은 혁신은 인구과 생산성의 한계로 지속적인 발전으로 이어지기 힘들었기 때문인데, 오랜 물질 생활의 층에서 변화의 모습이 나타난 것은 인구의 증가, 경작방법의 혁신에 따른 농업생산성의 증가, 과학과 기술의 접목 등으로 브로델은 15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꾸준한 변화가 있었음을 말한다. 


 15세기, 특히 1450년부터 경제가 전반적으로 회복 추세를 보입니다. 이 시기에 농산물 가격은 정체되거나 내려가는 반면, '공산품' 가격은 올라가는 덕분에 도시가 농촌에 비해 빠른 속도로 성장합니다(p34)... 회복세에 돌입한 경제는 16세기에 들어서부터 여러 가지 이유로 복잡해집니다. 결론적으로 16세기의 활발한 상승세는 경제의 최상층인 상부구조가 번창한 덕분입니다. 또한 때마침 아메리카에서 귀금속이 유입된 데다가 엄청난 규모의 어음과 신용을 빠르게 회전시키는 어음 교환 및 재교환 시스템이 이 상부구조를 더욱 부풀렸습니다. 17세기로 들어서면 경제생활의 활력이 지중해에서 광활한 대서양으로 이동합니다. 또한, 경제 활동이 금융 거래에서 다시 상품 거래, 즉 기초적인 교환으로 대거 복귀함으로써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p36)... 18세기는 경제 전반이 가속적으로 팽창하던 세기였습니다. 시장의 교환도구들이 총동원되어 논리적으로 작동하게 됩니다(p37)... 이처럼 소비와 교환이 팽창하던 시기에 도시의 기초적 시장과 소매상점들이 예전 어느 때보다 활발해졌습니다. 마침내 영국의 역사 기록에서 사적 시장 private market이라고 부르는 것이 발달하게 됩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38


 내 생각에 인류의 삶은 절반 이상이 일상생활에 묻어서 굴러갑니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수없이 많은 행동이 뒤죽박죽 누적되고 무수히 되풀이되면서 우리시대까지 이어집니다. 이러한 습관적 행동은 우리가 삶을 영위하도록 도와주기도 하고 옥죄기도 하면서, 우리가 사는 내내 우리를 대신해 결정을 합니다. 이 같은 행동을 유도하는 유인과 충동, 그러한 행동의 전형과 방식, 또 그리 행동해야 할 책임을 살펴보면, 까마득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처럼 수백 년 전의 과거는 아주 오래된 것이지만 여전히 살아 움직이며 현재로 흘러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내가 '물질생활 vie materielle'이라는 편리한 용어로 파악하려고 했던 내용입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16


 18세기에 이르러서야 그동안 넘을 수 없었던 인구의 상한선을 넘게 됩니다. 그때부터 인구는 증가 추세의 정지나 반전 없이 끊임없이 늘어납니다. 18세기까지는 인구가 거의 근접할 수 없는 원 안에 갇혀 있는 양상이었습니다. 만약 인구가 늘어나 그 원둘레에 닿기라도 하면, 인구는 거의 즉각적으로 성장을 멈추고 다시 줄어듭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19


  설탕, 커피, 차 그리고 알코올 같은 식품들은 각각의 역사의 흐름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친 중요한 요인들입니다. 그중에서도 곡물은 예로부터 주된 먹을거리였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합니다. 밀, 쌀, 옥수수는 인류가 아주 오래 전에 선택한 곡물입니다. 이러한 곡물은 각 문명이 수 세기에 걸쳐 수없이 많은 실험을 통해서 선택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21


 기술의 역사는 인간이 일해온 역사와 맥을 같이 합니다. 인간이 하루하루 바깥세상에 맞서 자기자신과 싸우는 과정은 매우 더디게 진보합니다. 기술은 그 더딘 발걸음에 맞춰 진화합니다. 이러한 기술이야말로 가장 밑바탕을 이루는 활동이고, 본질적으로 보수적이며 천천히 변화합니다. 과학은 한발 늦게 기술을 따라가는 상부구조여서 기술과 조응하더라도 그 과정은 아주 느리게 진행됩니다. 옛날부터 온갖 기술과 과학의 모든 요소는 항상 섞이고 전 세계로 퍼지면서 끊임없이 확산되었습니다. 하지만 잘 확산되지 않는 것은 기술의 결합과 조합입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23


 

나는 1권의 마지막 두 장에서 화폐와 도시를 다뤘습니다. 이는 화폐와 도시가 까마득한 옛날부터 일상생활 깊숙이 자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아주 최근에 등장한 근대성의 뿌리 깊은 요소이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화폐와 도시는 수백 년에 걸쳐 가장 일상적인 생활의 뼈대를 이루게 된 구조물입니다. 도시와 화폐는 변화를 촉발하는 동력이면서 동시에 변화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러한 변화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24


 1권과 2권을 연결하는 매개는 '도시'와 '화폐'다. 농촌보다 앞선 도시의 생산성과 화폐로 대표되는 교환경제로부터 오랜 물질생활의 균형은 파괴되기 시작한다. 물질생활에서 사용가치만 가지던 재화는 시장을 통해 교환가치도 함께 부여받는데, 사용가치와는 달리 교환가치는 시간적, 공간적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유인이 있었다. 여기에 눈을 돌린 일부 상인들은 공적 영역에서 사적 영역으로 시장을 발전시켜 나간다.  베르너 좀바르트(Werner Sombart, 1863~1941)의 사치품과 전쟁무기, 카를로 M. 치폴라(Carlo M. Cipolla, 1922~2000) 의 대포, 범선, 시계가 여기에 해당하는 품목이 될 것이다. 이들을 효과적으로 다루는 관료, 상인들의 모습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도 이즈음이다.


수많은 거점을 통해서, 한쪽에 광활하게 퍼져 있는 생산활동과 다른 쪽에 역시 광활하게 퍼져 있는 소비활동을 연결하는 이른바 교환경제 economie d'echage가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교환경제는 분명 태곳적부터 이어져 왔겠지만, 생산 활동 전체를 소비 활동 전체와 결합하는 지점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교환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더라도 시장경제 economie de marche는 계속 발전합니다. 그러다가 생산을 조직하고 소비의 방향을 유도하고 통제하게 될 만큼 시장경제가 많은 읍 bourg(邑)과 도시를 연결해가게 됩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26


 시장으로부터 갖가지 유인과 활력, 혁신이 일어났고, 사람들의 주도적 행동과 다각적 인식이 생겼습니다. 또 시장을 통해서 경제 활동이 성장하기도 했고, 나아가 진보가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시장의 바깥에 머무는 것들은 모두 사용가치밖에 없습니다. 시장이라는 좁은 문의 경계를 건너는 것들은 전부 교환가치를 획득하게 됩니다. 이 교환 영역을 나는 경제생활 vie economique이라고 칭하여 물질생황 vie materielle과 대조하고자 했습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27



 시장과 초보적인 교환 행위자들 위에는 좀 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정기시 foire(定期市)와 거래소 Bourse가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정기시는 소규모 판매자와 중소 규모 상인들을 대상으로 열렸는데, 정기시 또한 거래소처럼 큰 규모로 거래하는 거상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조만간 도매상 negociant으로 불리게 되는 이 거상들은 소매 거래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게 됩니다. '교환의 세계 Les Jeux de l'echange'로 이름 지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제2권의 앞부분 장들에서는 시장경제의 다채로운 요소들을 기술합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29


 영국의 역사가들은 전통적 시장인 공적 시장과 병행하여 그들이 사적 시장이라고 명명한 시장이 15세기부터 점점 성장하는 현상을 지적합니다. 나는 이 시장을, 기존의 전통적 시장과 다른 차이점을 강조하기 위한 반反시장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새로 출현한 이 시장은 과도한 교란을 유발할 만큼 전통적 시장의 규칙에서 벗어나려고 부단히도 애쓰지 않았습니까?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64


 브로델은 이러한 자본주의적 독점의 형태가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이 바로 '원거리 무역'임을 강조한다. 원거리 무역이라는 경제적 해자(Economic moats)를 구축하고, 무역을 독점(monopoly)해서 한계비용 수준에서 책정되는 시장가격(P=MC)을 시장에 요구할 수 있는 강력한 권력. 결국 Price maker(setter)와 Price taker의 차이를 브로델은 발견한다. 이들의 투자행태는 워런 버핏(Warren Edward Buffett, 1930 ~ )과 피터 린치(Peter Lynch, 1944 ~ )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보면 무리가 있을까.


 요약하면, 세계의 다른 지역과 비교해볼 때 유럽 경제가 다른 곳보다 앞섰던 것은 거래소와 다양한 신용 형태 같은 우월한 장치와 제도 덕분인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교환 메커니즘과 기법 들 모두 유럽 이외의 지역 어디에나 있었습니다. 다만 지역마다 얼마나 발달했고 어느 정도로 활용됐는가는 많이 달랐습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45


 사실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는 같은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지만, 18세기까지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이 두 유형의 활동은 작은 부분에 불과했습니다. 그 무렵까지 인류가 영위하는 생활의 대부분은 여전히 거대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던 '물질생활' 속에 잠겨 있었습니다(p51)... 시장가격이 물질생활이라는 표면에 닿기는 하지만, 항상 뚫고 들어가는 것은 아니며 깊이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이 점을 두고 15세기에서 18세기까지의 흐름을 보면, 시장경제로 구성되는 활발한 생활공간이 지속적으로 확대됩니다. 이를 보여주고 또 입증해주는 지표는 세계를 가로지르는 연쇄적인 가격변동입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53


 자본주의적 과정은 원거리 무역에서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원거리 무역이란 말은 독일어 'Fernhandel'에서 비롯되었지만 이 최상층의 상거래 활동을 눈여겨본 것은 독일 역사가들만이 아닙니다. 원거리 무역은 원하는 대로 활동할 수 있는 자유 공간 그 자체였습니다. 통상적 감독을 막아주거나 적어도 우회할 수 있을 만큼 멀찌감치 떨어진 거리에서 활동했기 때문입니다(p66)... 높은 이익을 거두는 것은 거래하는 지역과 품목을 갈아타는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이처럼 두둑한 이익에서 상당한 규모의 자본이 축적됩니다. 특히 원거리 무역은 소수의 사람들만 참여했으니 자본 축적이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이런 사업에는 아무나 참여할 수가 없었습니다. 반면 지역 내 상거래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합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67


 결국, 자본가들은 그들이 축적한 자본의 크기 덕분에 자신의 특권적 지위를 유지하고, 시대의 굵직한 국제 사업을 장악할 수 있게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절에는 운송이 아주 느려서 큰 거래를 하려면 자본의 회전이 오래 지연되는 것을 감수해야 했기 때문입니다(p70)... 시장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전문화와 분업이 빠른 속도로 심화되고 상품 사회 전체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렇지만 꼭대기에 있는 상인 자본가들은 이러한 전문화와 분업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기능에 세분화되는 과정, 그렇게 진행된 근대화 과정은 애초부터 수직적 위계의 밑바닥에서만 나타났습니다. 수직적 위계의 꼭대기에는 전문화라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19세기까지 최상위 상인들은 어느 하나의 활동에 국한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71


 이제 요약을 좀 해보겠습니다. .그러니까 교환은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하나는, 낮은 곳에 자리하는 교환이고, 이러한 교환은 투명하기 때문에 경쟁의 힘이 항상 작용합니다. 다른 하나는, 높은 곳에 위치하는 교환이고 섬세하며 지배력을 행사합니다. 이 두 가지 활동은 지배하는 메커니즘도 다르고 행위자도 다릅니다. 여기서 자본주의가 자리하는 영역은 첫 번째 교환이 아니라, 두 번째 교환입니다(p74)... 자본주의의 밑바탕을 이루는 불평등한 힘의 관계는 사회생활의 모든 수준에서 생겨나고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해, 최초의 자본주의가 자기 모습을 펼치고 세력을 형성하며 우리 눈앞에 등장한 것은 사회의 최상층에서였습니다.... 실제로는 모든 것이 물질생황의 거대한 등판을 딛고 서 있습니다. 물질생활이 팽창하면 모든 것이 앞으로 나아갑니다. 시장경제는 물질생활을 희생시키면서 그 자신은 빨리 팽창하고 또 자신의 관계망을 확장합니다. 이렇게 시장경제가 팽창할 때 자본주의는 항상 이득을 봅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76


 마지막 3권에서 브로델은 경제계(economie-monde)라는 개념을 통해 자본주의의 속성을 보다 깊숙하게 드러낸다.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전편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책을 고르라면 단연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Maurice Wallerstein, 1930~2019)의 <근대세계체제 The Modern World-system>일 것이다. 경제적 헤게모니(Hegemony)를 통해 중심부-주변부의 관계를 살핀 월러스틴의 관점과 브로델의 관점은 경제권을 '중심부(core)- 주변부(periphery)'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경제권을 단극(單極)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다극(多極)으로 볼 것인가, 헤게모니의 이동을 이전 패권세력의 이동으로 파악하는가, 아니면 붕괴-생성으로 볼 것인가의 차이로 정리되지 않을까 여겨진다. 


 경제계는 지구의 어느 한 부분에 국한된 경제를 가리키는데, 그 자체로 하나의 완전한 경제 단위를 이루는 경제권을 말합니다. 경제계는 세 가지 특징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일정한 지리적 공간을 차지합니다. 둘째, 하나의 경제계에는 언제나 하나의 핵, 혹은 중심이 있습니다. 셋째, 모든 경제계는 계층적인 경제권으로 나뉩니다. 우선, 중심 주위로 '중심부 coeur'가 자리잡게 됩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97


 월러스틴과 나는 이러저러한 논점이나 한두 가지 일반적 명제에서 의견을 달리하지만 이 정도의 차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월러스틴은 16세기 들어서야 유럽 경제계가 구축되기 시작했고, 이것이 유일한 경제계였다고 봅니다. 이와 달리, 나의 생각은 유럽인들이 세계의 전체상을 인식하기 오래전부터 세계는 여러 개의 경제권들로 나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나는 이 경제권들이 그 중심의 구심력과 응집력을 어느 정도 갖춘 것들이어서 복수의 경제계로서 공존했다고 봅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98


 경제계는 하나의 핵, 즉 무게 중심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인 양 기존의 중심이 해체될 때마다 새로운 중심이 생깁니다. 하지만 이러한 중심의 해체와 재형성은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어서, 그만큼 더 중요합니다(p101)... 유럽에서 숙명의 시계는 다섯 번에 걸쳐 종을 울렸던 셈입니다. 그때마다 싸움과 충돌이 일어나고 심각한 경제적 위기가 발생하면서 중심이 이동했습니다. 대개 중심이 이동하기 전에 벌써 예전의 중심은 위협을 받게 되고, 몰아닥치는 경제적 악조건이 옛 중심을 무너뜨리고 새 중심의 출현을 확정하게 됩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102


 서유럽은 신대륙에 고대의 노예제를 이전했고, 자신의 경제적 필요 대문에 동유럽에서 재판 농노제 성립을 유도했습니다.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임마누엘 월러스틴의 주장에 무게가 실립니다. 자본주의는 세계의 불평등을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또한 자본주의가 발전하려면 국제 경제 차원의 공모가 필요하다고 임마누엘은 주장힙니다. 자본주의는 매우 드넓은 공간을 권위주의적으로 조직하는 과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만약 제한된 경제 공간에 갇혀 있었다면 자본주의가 그렇게 드세게 성장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다른 지역의 종속적 노동을 이용할 수 없었다면, 자본주의는 전혀 성장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109


 국민 경제 economie nationale는 물질생활의 필요와 혁신을 반영하여 국가가 정치적으로 만들어낸 통일되고 응집된 경제 공간입니다. 그래서 그 공간의 활동이 한꺼번에 동일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됩니다. 영국만이 일찌감치 이 위업을 달성하게 됩니다(p116)... 프랑스에 대한 영국의 승리는 매우 느리기는 했지만 일찌감치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부터 시작되었고, 1786넌 에덴 조약에서 크게 앞선 데 이어, 1815년 승리를 확정하게 됩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119


 생산이 급격하게 팽창함에 따른 갖가지 요구사항을 영국 경제의 모든 부문이 해결한 셈입니다. 막히는 병목도 없었고 고장 난 부분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서 결정적이었던 것은 국민 경제 전체가 아닐까요? 더욱이 영국의 면직물 혁명은 밑바닥의 일상생활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산업혁명이 촉발되고 나서 등장하는 산업 자본주의라는 것의 실체를 시장경제와 기초적 경제의 힘과 활력이 받쳐주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산업 자본주의는 그 밑에서 받쳐주는 경제의 활력이 없었다면 성장할 수도 없었고 자기 자리를 잡고 힘을 갖출 수 없었습니다.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이 영국의 산업혁명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129


 자본주의란 것은 본질적으로 가장 높은 곳의 경제 활동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적어도 그처럼 높은 곳에 올라서려는 경제 활동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같은 자본주의는 그 밑에 두터운 층 두 개 - 물질생활과 촘촘한 시장경제 - 를 겹으로 깔고 앉아, 높은 수익이 나는 영역에서 서식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자본주의를 최상층의 존재라고 보았습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131


 자본주의는 언제나 독점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상품과 자본은 늘 같이 돌아다녔고, 자본과 신용은 항상 외부 시장을 공략하고 통제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었습니다(p132)... 자본주의의 특징과 강점은 이 술수에서 저 술수로, 이러한 행태에서 저러한 행태로 변화하는 능력입니다. 또 변화하는 국면에 따라 수도 없이 새로운 방법을 강구하는 것도 자본주의의 특징이자 강점이고, 그러한 변화무쌍함의 와중에도 비교적 자본주의에 고유한 본질에 충실하고 유사한 상태를 유지하는 능력 또한 자본주의의 특징이자 강점입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p133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는 이 정도로 일단 마무리짓도록 하고, 자본주의와 관련된 다른 내용이 있을 때 추가적으로 다루도록 하자. 예를 들면, <어둠의 세계 The Shadow World>와 같은.


 공식적 무기산업과 어둠의 무기산업은 이들이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자주, 정기적으로 교류하며 교차한다. 이들의 상호의존은 매우 뿌리 깊으며, 사실상 어둠의 세계를 구성하는 두 날개에 해당한다. 공식적 무기산업이 런던증권거래소라면 비공식적 무기산업은 규모가 작고 규제가 약한 '대체거래소'라고 할 수있다. 또한 그레이마켓과 블랙마켓은 제품의 실질적 수명을 연장하고, 이를 통해 제품의 초기 가치를 높여주는 기능을 한다. 공식적 무기산업에서 취급되기에는 품질이 낮은 제품이나 불량품을 거래할 시장을 형성하기도 한다. 결정적으로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보았듯 이러한 시장에서는 대형 방산업체나 국가가 법적/정치적/외교적 이유로 무기를 판매할 수 없는 개인, 집단, 국가가 고객이 된다. 어둠의 세계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공식적 무기업체의 에이전트, 브로커, 중개인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어둠의 세계는 공식적 무기산업에 비해 작은 규모이지만, 어둠의 세계가 있기 때문에 공식적 무기산업에서 무기 가격이 높게 유지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또한 어둠의 세계가 분쟁을 부추기고, 확대하고, 장기화함에 따라 공식적 무기산업의 새로운 시장이 창출된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_ 앤드루 파인스타인, <어둠의 세계> , p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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