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여전히 세계적인 금융, 기술, 군사 강국이었지만, 그 국내 기반은 불완전했다. 코로나19가 고통스럽게 드러냈듯이, 미국의 보건 시스템은 망가지기 일보 직전이며, 미국의 사회안전망은 수천만 명의 사람들을 빈곤의 위험에 빠뜨렸다. 시진핑의 ‘중국몽中國夢’은 2020년을 거치면서도 온전히 살아남았지만, 미국의 ‘아메리칸 드림’은 그렇지 못했다. 2020년에 신자유주의가 겪은 전반적인 위기는 미국과 미국 정치 스펙트럼의 한 부분에 구체적이고 충격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신종 감염병 패러다임은 현대적 삶의 방식이 만들어내는 위협에 대한 심오한 진단이었다. 신종 감염병 패러다임의 타당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반反백신주의자들이 이끄는 단체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부수적인 요소일 뿐이다. 실제로 논란이 된 것은 신종 감염병에 대한 경고 그 자체가 아니라, 과연 우리에게 그 경고에 담긴 시사점을 받아들이고 끝까지 밀고 나갈 의지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만약 현대 경제·사회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질병 위험을 발생시키고 있다면, 대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경제는 관념이다. 진짜 관념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실제 사람과 사물, 현실의 생산과 재생산 네트워크를 집계한 통계와 일련의 생각과 개념을 결합한 관념에 불과하다. 일반적으로 GDP 같은 수치들은 총액은 적절히 잡아내지만, 혼란스러운 분리감을 만들어낸다. GDP 성장률과 다른 사회적 과제 사이의 ‘교환’이 의미 있는 일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바이러스는 경제라는 사회와 분리된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허상임을 드러낸다.

2월 7일은 중국 공산당의 권위가 가장 심각하게 도전받은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이날은 정부 대응이 전환점을 맞은 순간이기도 했다. 급증한 시위는 강경한 진압과 만났다. 검열은 과열 상태에 돌입했다. 소셜 미디어 게시물이 급속도로 삭제되었다. 감히 온라인에 비판 영상을 올린 우한의 기자들이 실종되었다. 쉬장룬 교수는 가택 연금되었고 바깥세상과 단절되었다. 중국 공산당의 안보 기관은 무시무시했으며, 진압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진압이 전염병 통제에서 거둔 성공과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워싱턴이나 런던에서 그러했듯이, 시진핑 주석의 정치적 위기 대처가 허술했다면, 시진핑 주석의 공고한 권력은 흔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중국은 소련처럼 붕괴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형세를 뒤집고 해외의 비판자들을 상대로 우위를 점했다. 이 질병과 처음 맞닥뜨린 국가인 중국에서는 위협이 급속도로 억제되었으며, 이 덕에 시진핑 정권은 마음껏 추가 조치를 할 수 있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통제 불능 상태였던 곳은 유럽과 미국, 라틴아메리카였다. 이 근본적인 차이가 2020년과 그 이후에 일어난 다른 모든 일의 틀을 잡았다

서방에서는 중국식의 가혹한 조치를 공산당의 일상적인 방식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중국의 현실을 잘못 본 것인 동시에 중국 중앙정부의 과감성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우한 봉쇄 조치는 최근 중국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2003년 사스에 노출된 베이징 주민 4000명이 격리 수용되었으며, 대학생 300명이 2주 동안 군부대에 억류되었다. 이런 조치는 그 자체로 주 혹은 나라 하나와 맞먹는 인구 1100만 명의 도시를 통째로 봉쇄하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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