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생애 말기를 고통스럽게 상상하는 것도 무리는아니다. 우리 대부분은 가까운 이들을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 유가족이기 때문이다. 변변한 임종실도  없고, 중환자실 입퇴원을 반복하게 만드는 한국의  생애 말기 의료 경험은 무엇보다 남은사람의 기억을 혼란과 두려움으로 채운다. 탄생이 그렇듯 죽음에도시간이 필요하다. 호스피스 병원은 "우리가 이렇게 죽어야 한다‘ 혹은 ‘이렇게도 죽을 수 있다‘는 모범답안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 P11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부동산 시장에서도 젊은주택 매입자들이 늘었다.  특히 이들이 동원한 주택담보대출 규모가 눈에 띈다.
<그림 3>은 연령대별 가계 주택담보대출 신규 취급액을 분기별로 분석한 결과다. 2020년 1분기부터 2021년 2분기까지만 40세 미만이 시중은행으로부터 빌린주택담보대출은 약 111조원이다. 전체신규 주택담보대출의 46.9%가 이들 청년층에서 발생했다. - P14

데이터를 통해 팬데믹 이후 자산시장을 살펴보면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다. 부동산시장에서 2030 세대는 확연한 존재감을 보인다. 주식시장에서는 젊은 신규투자자가 늘었다. 그리고 가상자산 시장은 사실상 2030 세대가 주도했다. - P14

이자연씨처럼 2030 세대가 자산시장에 뛰어든 2020~2021년에는 집단적인불안감이 팽배했다. 당시 사회를 가장극단적으로 묘사한 두 가지 신조어가 바로 ‘파이어(FIRE)족‘과 ‘포모(FOMO)‘다. 파이어족이란  경제적 독립(FinancialIndependence)과 조기 은퇴(Retire Early)를 추구하는 이들을 뜻한다. 이른 나이에 넉넉하게 돈을 벌어 빨리 노동에서  벗어나는 삶을  지향하겠다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투자가 필수적이다. 불과 수년 전유행했던 욜로(YOLO-오늘을 즐기는 삶)와는 대척되는 모습이다.
반면 포모는 흐름이나 유행을 놓치고 소외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유동성이 확대되고 자산 가격이 상승하는  동안 자신만 자산을 늘리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하는 말로 활용되었다. ‘벼락거지‘처럼 비슷한 신조어도 튀어나왔다. - P17

이런 큰 변화가 경제적 논리보다는 정치적 논리에  의해 진행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싶은 겁니다. 세계화 후퇴의 경제적 함의는 ‘비싸게 소비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세계화가 평등을 가져오지는 못했지만, 극단의 효율은 경험하게 해줬습니다. 기업은 가장 싸게 만들 수 있는 곳에공장을 지었고, 소비자들은 낮은 가격에소비할 수 있었습니다. 세계화의 퇴조와 경제적 비효율은 동전의  양면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경제 논리가 아닌 지정학의논리에 의해 진행 중인 글로벌 밸류체인재편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일 겁니다.
공급 측면의 교란이 구조적 인플레이션을 만들었다는 점을 앞에서 논의했는데요, 우리 시대의 공급발 인플레이션을 만들 가장 핵심적 동인은 ‘세계화의 후퇴‘에있다고 생각합니다.  - P42

당시만 해도 보수 성향의 존 로버츠대법원장이 스윙보터 역할을 하며 그런대로 균형을 잡았다. 2020년 9월 대선을 불과 두 달 앞두고 대표적 진보 판사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이 사망하자 트럼프는 곧바로 에이미 코니 배럿 판사를 지명했다. 상원을 장악한 공화당은지명 후 한 달 만에 그를 초고속으로 인준했다. 연방대법관의 구성이 보수 6, 진보 3으로 급격히 재편되는 순간이자 미국 사회의 급속한 보수화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때부터 임신중지권 폐지는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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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조작 음모론은 이 단순한 사실을 확대해석하여 모든 미디어가 기업이나 정부의 악행을 덮기 위해 조작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암시하는 것은 ‘미디어’ 전체를 누군가가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유대인이 할리우드를 조종하고 있다.’는 식의 소문이 되어 사라지지 않고 떠돈다

배후조종자 음모론의 문제는 이처럼 공들인 암살 책략들이 역사의 흐름을 조종하는 수단으로서는 비효과적이며 그 결과를 예측하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만약 프랭클린 D.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 대통령이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미리 알고 있었지만 미국이 세계 2차 대전에 참전할 명분을 얻기 위해 모른 척했다면, 왜 마지막 순간까지도 방어하지 않았을까?

그 학생이 관찰한 바가 옳다. 과음 문제는 (알코올 질환 연구에서 흔히 말하듯) 술 그 자체 때문만은 아니다. 술을 마시는 이유와도 관련이 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나 종일 쌓인 피로를 털어내려고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은 좀처럼 중독이 되지 않는다. 문제성 음주 습관은 불안이나 우울을 억누르거나 감추려고 술을 마실 때, 슬픔이나 걱정을 달래려고 혼자 마실 때, 구속에서 벗어날 구실을 술에서 찾을 때 생긴다.

수년간 술독에 빠져서 지속적으로 폭음을 해 온 사람들은 두뇌의 물리적 변화로 이미 알코올 중독 상태로 진행되었을 터라 적당하게 마시는 법을 배우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음주가는 ? 폭음을 부추기는 환경에서 몇 년을 보내는 대학생들을 포함하여 ? 틀림없이 술을 줄이고 조절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영원한 알코올 중독자임을 인정하고 음주 습관을 통제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책망하게 하는 AA 같은 프로그램을 제안한다면 문제가 해결되기보다는 가중될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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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여름. 코로나19가 재유행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이제 윤석열 정부에게 공은 넘어갔다. 이전 정부와 차이점을 그는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와 함께 서방세계에 밀어닥친 인플레이션 등 악재에 대해 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는 그의 발언을 생각해보면, 별다른 기대감이 들지 않지만.

한국은 단호한 조기 대응이 무엇을 가능하게 하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예시였다. 한국인들은 2015년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메르스 위기 당시의 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한국에 코로나 확진자가 단 4명밖에 없었던 1월 27일에 이미 공중보건 당국은 서울역의 어느 회의실에서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정부는 한국의 생명공학 회사에 치료제나 백신이 아닌 진단 검사 기기를 요구했다. 진단 검사 기기만 있으면, 코로나19 감염이 일어나자마자 추적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생명공학 기업의 우선순위는 진단 검사 기기의 절대적인 신뢰성이 아니라 속도였다. 2월 4일, 코젠Kogene의 진단 기기가 최초로 승인되었다. 두 번째 진단 기기는 2월 12일에 승인되었다. 진단에 실패할 염려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 진단 기기들은 대량 생산이 가능했다. 2월 중순 유행병이 진짜로 강타한 바로 그 순간에 한국이 이미 유행병을 추적할 수단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조기 대응의 의의를 잘 보여준다. 그것은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2월 7일부터 2월 말까지, 한국의 진단 능력은 하루당 3000건에서 2만 건으로 급증했다. 여름을 기준으로 볼 때, 이는 작은 숫자였다. 그러나 초기 단계에서 유행병에 대처하기에는 충분한 숫자였다.

정상성을 기꺼이 희생하는 것이야말로 정상성을 지키는 사실상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이토록 반직관적인 도약을 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즉각 대응한 한국이 예외 중의 예외였다. 다른 어떤 위기를 기준으로 판단해도, 세계 각국 정부들의 대응에서 부족함을 찾기란 어려웠다. 문제를 인식하고 근본적인 조치를 하는 데 불과 몇 주밖에 걸리지 않았다.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그만하면 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빠르게 움직이는 범유행 감염병을 다루기에는 처참하리만큼 느렸다.

무엇을 했어야만 했을까? 한국은 대량 검사와 격리로 확산 방지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 전략을 성공적으로 실행하려면 유행병을 초기 단계에 추적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과 유럽 국가 대부분에서 초기 단계는 이미 한참 전에 지나갔다. 이제 유럽과 미국에는 냉혹한 선택지만 남아 있었고, 그 선택지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냉혹해졌다. 만약 코로나바이러스가 억제된다면, 그것은 대규모 사회적 거리 두기와 일상생활의 완전한 중단을 수반할 것이다. 타임라인은 이제 하루 단위와 시간 단위로 집계되었다.

한국은 범유행으로 큰 피해를 본 지역에서 활동하는 소규모 기업에 세금 감면 혜택을 주었다. 부가가치세 납부액은 삭감되었다. 다른 세금들은 연기되었다.

연방준비제도의 놀랄 만한 통화 정책 완화는 통화 시장의 상황을 바꿔놓았다. 브라질과 멕시코, 한국 같은 선택받은 소수들만이 연방준비제도의 스와프 라인을 통해 달러에 접근할 수 있었다. 자산 상태가 훌륭한 G20 회원국으로서, 인도네시아가 이미 중국 인민은행, 일본은행과 체결한 스와프 라인을 보완하고자 연방준비제도에 스와프 라인을 신청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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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7-08 1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코로나 가을쯤 재유행할거라고 하더니 여름으로 앞당겨진 것 같습니다. 유럽도 다시 폭증이라고 하네요^^; 윤석열 정부 지지율 데드크로스인데 여당도 야당도 하는 일 없이 시간만 보내는 것 같아 우려감이 큽니다.

겨울호랑이 2022-07-08 11:39   좋아요 1 | URL
최근 코로나19 확진자 연령별 분포를 보면 70대 이상과 이하가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요양원 등 집단시설이 아닌 대외활동 여부와 밀접한 관련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네요. 여름휴가와 9월 추석까지 대규모 이동이 이어지는 점을 생각한다면, 확진자 수를 줄이는 것이 쉽지 않아보입니다. 그렇지만, 정은경 본부장을 공공안전 논리로 고발한 현 상황에서(물론 시민단체 고발입니다만) 적정한 통제를 할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한동안 선거도 없는 상황에서 각 당의 당권을 장악하려는 여야 당 내 갈등이 폭발하는 시점인 것도 참 안 좋은 상황입니다. 한동안 시험을 보지 않는 학생들이 평가에 구애받지 않고 방학 때 기초실력을 쌓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정치인들의 당 내 권력 투쟁을 비난할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개인적으로 이번 코로나 재유행은 이전 정부와 지금 정부의 직접적인 비교가 가능한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라 여겨집니다...
 

흔히 미국은 경제 분야에서 뛰어난 나라로 여겨진다. 이 나라의 일인당 소득이 높긴 하지만 일인당 건강 관리 비용도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노동 생산성도 아주 높지만 최근에는 노동 생산성의 증가가 노동자의 소득 증가와 일치하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결과적으로 1990년대 중반 이후 미국의 일인당 소득의 증가는 선진국과 비교할 때 그다지 높지 않았으며, 국부의 증가는 상위 계층에 집중된 것이었다. 그 결과 현재 미국의 소득 불평등은 최고조에 달한 상태다. 소득 불평등은 미국에서 극단적으로 낮게 나타나는 사회적 유동성, 깊게 뿌리내린 빈곤, 유신론자의 증가, 자유주의 정책의 강화와 관련이 있다.

미국의 비정상적으로 낮은 투표율은 아마도 사회 불평등을 조장하는 정치적 기능 장애의 신호로 볼 수 있다. 미국은 정부에 대한 신뢰도도 그다지 높지 않은 데다 부패지수마저도 계속 하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자유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일반적으로 소득 불평등도가 낮고 개인 자선 활동이 적으며 세금과 공적 사회비용 및 노조 결성률이 높을수록 사회경제적 수준이 높다. 결국 모든 요인은 강한 무신론적 성향 및 낮은 종교성과 관련이 있다. 이를 볼 때, 이 요인들이 어느 정도 인과적으로 연결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극단적인 사회주의는 부의 팽창보다는 재분배에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정부 기능이 너무 약하면 초상위 계층에 권력이 집중된다. 그들은 실질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대신 금융 조작 같은 편법을 써서 거의 모든 소득 증가분을 차지하게 되고 그 결과 경제는 수렁에 빠지게 된다.

불평등의 심화는 능력주의의 유지에 꼭 필요하며 번영과 발전을 이끄는 요소다. 그러나 최근에는 지나친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중산층 및 저소득층의 심신 건강에 직접적으로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과학적 연구 결과가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부분적으로 비참한 환경에 따른 정신적 스트레스에서 발생한다

모든 나라가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긴 하지만, 고도로 종교적이거나 고도로 자유주의가 발달한 나라 중 어떤 나라도 종교성이 약하면서 진보적인 경제 정책을 펼치는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과 유사한 수준의 사회경제적 성공을 이루지 못했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도 추정할 수 있다. 즉, 이 결과로부터 고도로 종교적이거나 고도로 자유주의적인 사회에는 사회경제적 성공을 거두기 위한 실질적 수단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마음 속에 구성된 실재에 대한 모형이 ‘원자적’ 실재에 부합하게 작동한다고 가정한다. 그는 유비적 언어를 사용하여 정신 모형을 실재에 은유하는 것인데, 즉 ‘원자적 사실’에 대한 마음 속 모형이 사실은 축소 모형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셈이다. 그의 주장은 대부분 단순한 믿음에 의존한다

아인슈타인이 질량을 에너지와, 중력을 가속도와,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간을 시간과 동일시함으로써 비유적으로 사고했다면, 이러한 유비들은 바로 그러한 유비, 즉 실제 세계의 현상에 적용될 수 있는 유비이다. 잘 알려진 대로, 아인슈타인은 빛의 속도가 우주의 유일한 상수라고 추측했지만, 이 추측은 오로지 그의 천재적인 머리에서 나왔을 뿐이다. 만약 아인슈타인이 소리의 속도가 우주의 유일한 상수라는 가정에서 출발했다 해도 그는 모든 요소가 동일한 기술적 이론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그것은 소리보다 느린 속도로 움직이는 모든 입자와 파동만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되었을 것이다. 그의 천재성은 인간이 알고 있던 가장 빠른 속도, 어쩌면 인간이 알아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에서 시작하여 인간이 접할 수 있는 모든 입자를 설명하는 이론을 만들어냈다는 점에 있다.

뉴턴 역학적 수준에서 이끌어낸 우리의 추진력 유비는 입자 수준에서 적용하기가 무리일 수 있다. 의식, 빅뱅, 그 밖의 특이성에 대해 우리가 혼란스러워 하는 이유는 모두 그것들을 이해하기 위한 적절한 유비가 우리의 경험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심령사진에 대한 믿음이 지속되었던 또 다른 이유는 심령론자들이 자신들은 함정에 빠진 것뿐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진에 찍힌 영혼들 일부가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판명이 나자 그 영혼들이 ‘살아 있는 영혼’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림이나 책, 잡지에서 복사된 것으로 드러난 영혼 사진에 대해서는 ‘이것이 바로 심령사진은 영혼의 초상화가 아니라 영혼에 의해 그려진 이미지라는 증거’라고 우겼다. 심령사진의 이중노출의 흔적이 문제되자 그것은 영혼들의 에너지가 기이한 방법으로 빛을 굴절시켰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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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세계 - 무기산업을 둘러싼 부패의 내막과 전쟁 기획자들
앤드루 파인스타인 지음, 조아영 외 옮김 / 오월의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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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기거래에 관여하는 기업과 개인은 '국가에 대한 전략적 기여'와 전혀 관계없는 범죄를 저질러도 좀처럼 법의 심판을 받지 않는다. 정치적 개입은 많은 경우 국가안보라는 명목으로 정당화되는데, 이로써 무기거래는 자기만의 어둠의 세계에서 이뤄진다. _ 앤드루 파인스타인, <어둠의 세계> , p726


 앤드루 파인스타인 (Andrew Feinstein, 1964 ~ )의 <어둠의 세계 The Shadow World>는 '안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군수산업과 무기교역의 어두운 면을 고발한 책이다. <어둠의 세계>에서 그려지는 무기산업은 말 그대로 '복마전 伏魔殿'이다. '자유'와 '평화'라는 인류 공통의 가치를 지킨다는 명복으로 큰 금액의 돈들이 '군사보안'이라는 이유로 별다른 감사를 받지 않고 오가는 교역구조, 전쟁이 자주 일어나지 않기에 일정 기간마다 재고청산(inventory liquidation)이 필요하지만, 일회성 소모품이기에 재활용이 어렵고 검증받기도 어려운 상품의 특성 등은 군수산업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었으며, 이러한 점은 권력을 가진 자들과 자본가들의 결탁이 다른 어느 산업보다 쉽게 그리고 강하게 이루어지게 만들었다.


 BAE의 대부 바실 자하로프 Basil Zaharoff는 그리스의 원수라고 할 수 있는 터키 해군에 잠수함을 파는 것이 애국적이지 못하며 다소 부도덕한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그에게는 이러한 고민을 이겨내는 힘이 있었다. 언론에 군사적 프로파간다를 퍼뜨리고 뇌물로 주요 인사를 매수하는 자하로프의 대표적 수법은 무기거래에 몸담은 초창기에 시작된 것이다(p51)... 자하로프는 경쟁사들보다 두 배나 비싼 가격에 무기를 판매했고, 구매를 결정하는 정치인들에게는 뇌물을 세 배 더 주었다. 그는 무기를 더 많이 팔기 위해 언제나 기꺼이 분쟁을 조장했다. _ 앤드루 파인스타인, <어둠의 세계> , p52


 무기는 전쟁에서만 사용되지 않는다. 핵(核)무기를 보유했다는 사실 하나가 이미 하나의 강력한 외교카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무기는 외교협상에서 유리한 자리를 보장해주는 역할도 함께 수행한다. 때문에, 국가는 자국의 안보를 위해 최첨단 무기를 확보해야 할 필요에 쫓기게 되며, 무기상들은 이 점을 놓치지 않는다. 야구에서 좌완 파이어볼러(Left-handed fireballer)는 지옥에서라도 데려온다고 하지만, 무기상들은 그야말로 다 팔아치운다. 자신의 조국까지도. 철저하게 이윤에 따라 움직이는 이들의 행태는 자본의 전형이다. 비용을 최소화를 위해 여러 수단을 사용하려는 이들이 뇌물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 점이 더 이상할 것이다. 때문에, 무기 거래는 항상 정치적 스캔들이라는 오명에서 자유롭지 않은 현실이 상세하게 본문에서 그려진다.


 무기산업은 정부로부터 독특한 대우를 받는다. 많은 기업이 국영기업으로 시작했으며, 일부는 아직도 그렇게 운영되고 있다. 민영화된 기업들도 여러 면에서 공공 부문에 속한 기업처럼 대우받는다. 이들이 국방부에 물리적 접근권을 갖고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도 매우 흔하다. 정부 관료들이나 장관들은 마치 민간 방산업체가 국영기업인 것처럼 이들의 열정적인 세일즈맨이 된다. 이는 방산업체들이 국가안보와 대외정책에 기여하는 동시에 국가경제에 상당한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무기업체들과 딜러들은 첩보 수집과 비밀작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각국 정부, 무기업체, 첩보기관, 로비업체 사이에서 지속적인 인사이동이 이뤄지면서 이러한 특별대우는 더욱 강화된다. 무기 구매국과 판매국에서 정당들에 제공되는 기부금과 자원도 마찬가지 역할을 한다. _ 앤드루 파인스타인, <어둠의 세계> , p725


 사람들은 사례금, 의심스러운 자금, 강탈금, 윤활유, 혹은 뇌물이라는 표현을 쓴다. 나는 이러한 자금이 '커미션'이라 생각하며, 제품 판매를 위한 필수 요소라 생각한다.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다.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방산업계에서 뇌물수수가 일반적 관행으로 여겨진 것은 맞지만, 그겋다고 그것이 도덕적이거나 올바른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_ 앤드루 파인스타인, <어둠의 세계> , p403


 최첨단 무기를 도입하기 위한 움직임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최신예 전투기를 도입하기 위해 석유판매대금을 달러로 받고, 저렴하게 석유를 판매하는 중동국가 사우디, 떨어지고 있는 대통령 지지율 방어를 위해 터무니 없는 방어 시스템을 구상하고, 실험결과까지 조작하는 록히드 마틴 등. <어둠의 세계>에서는 군수산업과 자본들이 만들어낸 구조가 오늘날 세계체제의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국제유가가 상승하는 가운데 1979년 카터 대통령의 재선 도전이 시작되었다. 카터를 돕기 위해 사우디는 다른 산유국보다 4~5달러 낮은 가격에 석유를 판매했고, 그로 인해 매일 3,000만~4,000만 달러의 손해를 보았다. 감사의 표시로 카터는 1979년 12월 초 반드리를 백악관에 초대해 중동 정치 및 미국과 사우디 간의 관계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_ 앤드루 파인스타인, <어둠의 세계> , p108


 레이건이 큰 관심을 쏟은 사업은 미사일 방어 프로그램이었다. 1983년 3월 레이건의 지지율은 폭락했고 국민의 57%가 레이건으로 인해 미국이 핵전쟁에 개입하게 될까 우려된다고 답했다. 그러자 레이건은 이른바 '스타워즈 Star Wars 구상'이라 알려진 연설을 통해 핵무기를 '완전히 무력화'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겠다고 약속했다. 록히드마틴은 전략방위구상 Strategic Defense Initiative이라고도 알려진 이 계획에 포함된 다양한 기술 중 하나를 담당했으며, 금전적 이익도 얻었다. 록히드마틴은 요격체에 우산살 형태로 펼쳐지는 탄두를 장착한 호밍오버레이실험 Homing overlay Experiment을 실시했다. 세 차례나 실패하며 전략방위구상의 미래를 위협하던 이 실험은 마침내 1984년 6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록히드마틴의 자랑으로 여겨지는 이 실험 결과는 조작되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_ 앤드루 파인스타인, <어둠의 세계> , p412


 이러한 세계체제 안에서 군수산업은 국가로부터 생존을 보장받고, 무기구입을 원하는 국가는 자신들이 원하는 최첨단 무기를 손에 넣게 된다. 그렇지만, 만약 이들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없는 국가는 어떻게 되는가? <어둠의 세계>에서 2002년 우리나라 FX사업(차기전투기사업)은 무기수입국의 처지를 잘 보여준다. 당시 F-15K와 라팔, 유로파이터, 수호이-35 등이 경합한 이 사업의 뒷면에는 '한미군사동맹'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과연, 한미군사동맹은 우리의 안전을 위한 혈맹 미국의 일방의 퍼주기일까. 

 

 특정 무기의 장점이 아니라 무기제조업체의 재정적 상황에 따라 계약을 배분하는 것은 군산복합체의 오랜 관행이다. 공장이 현대적인 무기를 즉시 생산할 수 있는 상태로 운영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국방부 및 국방부 주요 방산업체들은 서로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공생하는 관계가 되었다. _ 앤드루 파인스타인, <어둠의 세계> , p379


 반다르가 말했듯 대처 총리는 사우디의 무기판매 요청을 매우 잘 수용해주었다. 미국은 사우디에 무기를 판매하는 것을 꺼렸고, 프랑스는 이란산 석유 수입을 늘리며 자충수를 두었다. 하지만 이러한 요인들 외에 영국에서 무기를 수입한다는 사우디의 결정에 영향을 가장 근본적인 요인은 바로 돈이었다. 역사상 가장 부정한 무기거래로 남을 이 거래로 반다르와 대처 총리의 아들을 비롯해 거래에 연루된 수많은 사람들은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_ 앤드루 파인스타인, <어둠의 세계> , p119


 무기판매를 확정 짓기 위해 국방부와 백악관이 직접적인 압박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2002년 미국 정부는 한국에 프랑스 업체 대신 보잉과 45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하라고 요구했다. 한국 국방부에서 유출된 정보에 따르면 프랑스 업체의 기종은 모든 항목에서 보잉의 기종보다 우수했고, 가격도 3억 5,000만 달러 저렴했다. 그러나 폴 월포위츠 Paul Wolfowitz 국방부 부장관은 한국 측에 "만약 프랑스 업체를 선택할 경우 미국은 정치적 지지를 철회할 뿐만 아니라 군 차원에서 항공기 피아 식별에 사용되는 암호 체계나 해당 기종이 사용하는 미국제 공대공 미사일 제공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했다. 계약은 결국 보잉에 돌아갔다. _ 앤드루 파인스타인, <어둠의 세계> , p492


 무기수출국과 수입국 그리고 이들을 중개하는 무기상들. 어둠의 세계를 구성하는 3대 축으로 이들 사이에는 무기와 돈이 움직인다. 그들 사이에 오고가는 자금은 조세 회피처(Tax Haven)에서 페이퍼 컴퍼니 형태로 운영되고, 거래되는 무기는 언제나 추가되는 작은 옵션 사양으로 초기 금액보다 매우 큰 규모로 증액된다. 그리고,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인적 네트워크는 '국경없는의사회'가 아닌 '국경없는엘리트집단'을 형성하고 있음을 <어둠의 세계>는 잘 보여준다. 이들의 인맥은 아마 Ivy Castle을 통해 여러 겹으로 통해있겠지. <어둠의 세계>는 세계의 정치권력과 자본들이 어둠 뒤에 거래되는 자금과 무기를 통해 세계질서를 유지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들 모두가 게임의 승자들이다. 그리고, 패자들은 여기에 있지 않다.


 자금세탁 시스템의 중심에는 '포세이돈트레이딩 인베스트먼트'와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등록된 무명의 업체, '레드다이아몬드 트레이딩'이 있었다. 카리브해의 제도 버진 아일랜드는 60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2000년 기준으로 전 세계 페이퍼컴퍼니의 41%(약 82만 개)가 등록된 버진아일랜드는 '순결'과는 거리가 멀다. 에이전트와 사우디 왕족에게 지급되는 막대한 불법자금과 비자금을 감추기 위해, BAE가 버진 아일랜드에 여러 회사를 설립한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_ 앤드루 파인스타인, <어둠의 세계> , p159


 당시 공군은 전투기 339대를 620억 달러에 구매하고자 했다. 당초 750대를 250억 달러에 구매한다는 계획과 비교하면 총액은 두 배가 넘고 도입 대수는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은 애초에 록히드마틴이 실제로는 비용이 훨씬 많이 들어갈 줄 알면서도 입찰 서류에 낮은 가격을 적어 냈기 때문이다. 기업체들은 이러한 관행을 통해 일단 계약을 따낸 다음 나중에 가격을 올린다. 여기에 공군의 불필요한 '금칠'이 더해진다. 이미 개발 단계에 들어간 전투기에 대해 까다로운 성능 기준을 추가하는 것이다. _ 앤드루 파인스타인, <어둠의 세계> , p486


 많은 논란을 일으킨 칼라일그룹 또한 부시 가문과 사우드 가문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다. 1987년 설립 당시 칼라일그룹은 사모펀드 투자분야에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했는데, 그 그룹은 처음부터 각국 정부의 회전문 메커니즘을 이용하는 것을 설립 목표로 삼았다. 칼라일그룹은 미군, 대기업, 큰 영향력을 가진 정치 세력이 한 회사에 모두 모여 탄생한 군산정복합체의 전형적인 예다. 칼라일그룹은 정부활동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기업들을 투자 대상으로 삼았다. 정부로부터 계약을 수주하기 때문에 법규 개정에 크게 영향을 받거나, 칼라일그룹과 관계된 정치권 거물들을 통해 세계 곳곳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업들이 타깃이 되었다. 정치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미리 파악하거나 이를 바꿀 수 있었던 칼라일그룹은 '인맥 자본주의'에 통달한 세계 최대의 사모펀드 회사가 되었다. _ 앤드루 파인스타인, <어둠의 세계> , p421


 저자는 이러한 부패한 산업과 거래에 희생된 이들을 잊지 않는다. 이들은 게임의 패자이자 희생자다. 이러한 점은 저자가 만든 다큐멘터리 <어둠의 세계 shadow world>에 보다 잘 묘사되는데, 특히 1:07:22~1:08:18 사이 장면은 매우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무차별 살포된 지뢰, 불발탄들에게 위협받는 어린이들의 생명. 국가와 안보, 자유와 평화를 명분으로 벌이는 죽음의 거래가 합리화될 수 없음을 다큐멘터리를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진정한 피해자들은 땀 흠려 번 돈을 무기거래의 낭비, 부패, 남용에 빼앗기는 각국의 납세자들이며, 예멘 사나에서 멕시코 시우다드후아레스까지, 알바니아 게르데츠에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까지, 소말리아 모가디슈에서 스리랑카 몰라티부까지, 미얀마 양곤에서 팔레스타인 라말라까지, 콩고민주공화국 키부에서 아프가니스탄 카불에 이르기까지 죽음의 상인들과 함께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분쟁, 사회경제적 쇠퇴, 궁핍으로 고통받는 이들이다. _ 앤드루 파인스타인, <어둠의 세계> , p724


 앤드루 파인스타인의 <어둠의 세계>는 이처럼 막연하게 부패한 죽음의 산업으로 인식한 군수산업의 실체를 직접적으로 고발한다. 부국강병(富國强兵)이라는 쉽게 부정할 수 없는 명분으로 행해지는 합법적인 어둠의 세계. 달의 뒷면처럼 일반의 눈에 쉽게 띄지 않는 어둠의 세계는 생각보다 깊고 넓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공식적 무기산업과 어둠의 무기산업은 이들이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자주, 정기적으로 교류하며 교차한다. 이들의 상호의존은 매우 뿌리 깊으며, 사실상 어둠의 세계를 구성하는 두 날개에 해당한다. 공식적 무기산업이 런던증권거래소라면 비공식적 무기산업은 규모가 작고 규제가 약한 '대체거래소'라고 할 수있다. 또한 그레이마켓과 블랙마켓은 제품의 실질적 수명을 연장하고, 이를 통해 제품의 초기 가치를 높여주는 기능을 한다. 공식적 무기산업에서 취급되기에는 품질이 낮은 제품이나 불량품을 거래할 시장을 형성하기도 한다. 결정적으로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보았듯 이러한 시장에서는 대형 방산업체나 국가가 법적/정치적/외교적 이유로 무기를 판매할 수 없는 개인, 집단, 국가가 고객이 된다. 어둠의 세계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공식적 무기업체의 에이전트, 브로커, 중개인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어둠의 세계는 공식적 무기산업에 비해 작은 규모이지만, 어둠의 세계가 있기 때문에 공식적 무기산업에서 무기 가격이 높게 유지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또한 어둠의 세계가 분쟁을 부추기고, 확대하고, 장기화함에 따라 공식적 무기산업의 새로운 시장이 창출된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_ 앤드루 파인스타인, <어둠의 세계> , p727

콘트라 반군을 지원하기 위해 CIA와 협력하던 바로 그 시기, 게르하르트 메르틴스 Gerhard Mertins는 중국과의 관계 또한 발전시키고 있었다. 메렉스는 1972년 이미 중국 준국영 무기업체 중국북방공업과 인연을 맺고 서방 국가의 무기 및 정보 네트워크에 접근할 매우 유용한 기회를 제공했다. 당시 중국은 독일의 대형무기제조업체 라인메탈 Reinmetal의 120mm 구경 박격포를 탐내고 있었다. 메르틴스는 강한 화력과 정밀도로 잘 알려진 이 박격포의 설계도를 구해 중국북방공업에 넘겼다. 메르틴스의 윤리 관념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독일 정보기관이 비밀스러운 거래를 위해 길러내고 육성한 무기딜러 메르틴스가 불과 10년 뒤 공산국가인 중국을 지원하기 위해 조국 독일의 군사능력에 기꺼이 해를 입힌 것이다. - P86

석유 개발 이후 사우디에 만연한 부정부패는 주로 세 가지 방식으로 자행되었다. 가장 흔한 방식은 공급자가 에이전트에게 직접 뇌물을 주는 것이다. 두 번째는 무기와 석유를 맞교환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간단하면서도 신뢰성 높은 방식인, 모든 거래대금을 부풀려 청구하는 방법이 있다. - P146

연계무역 또는 절충교역은 공급업체가 거래로 인한 경제적 영향을 상쇄하기 위한 구매국의 산업에 투자하는 조건으로 거래하는 방식이다. 여러 사례 연구 및 논문에 따르면 절충교역은 경제적 궤변에 불과하다. 무기수입에 수십억 달러를 쓰는 정치인들에게는 그럴듯한 변명거리가 되지만 공급업체가 약속한 경제적 이득이 그대로 실현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특히 개도국의 경우 더더욱 그렇다. 또한 절충교역은 주요 결정권자들에게 뇌물 및 특혜를 전달하는 교묘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논란의 여지가 많기에 WTO는 무기거래를 제외한 다른 교역에서는 절충교역 항목을 계약업체 선정 기준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 P282

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 이후 전 세계 무기딜러들의 사업 방식은 크게 바뀌었다. 시장경제에 기반한 미국식 민주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는 가운데 탈냉전에 접어든 세계는 ‘역사의 종언‘과 함께 분쟁에 종언을 고하는 대신, 어느 때보다 복잡한 무력분쟁에 시달렸다. 불안정한 상태에서도 전 세계 많은 국가들이 하나의 국가로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양쪽 진영에 대한 소속감 덕이었다... 이러한 세계질서가 무너지면서 민족 간, 국가 내의 집단 간, 비국가 세력 간의 분쟁이 대규모로 발생했다. 한 국가 안에서 생겨난 서로 다른 집단들이 민족적 유토피아, 경제적 이익, 종교적 이상 실현 같은 다양한 명목으로 권력을 추구하거나 엄청난 혼란을 일으켰다. 이러한 세력들은 어둠의 세계에서 활동하는 소규모 무기딜러들에게 막대한 이익을 안겨줄 새로운 고객이 되었다. - P121

사건들과 예상치 못한 재판 결과를 보면 크고 작은 무기업체들과 무기딜러들, 에이전트들은 엄청난 규모의 부정부패 및 뇌물수수, 반인도 범죄, 심지어는 살인에 연루되고도 처벌을 피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안타까운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어둠의 세계에서 활동하며 국제법 체계의 틈새를 이용하고, 영향력 있는 정치인과 정보기관 뒤에 숨는다. 그러면서 독재자들과 무책임한 정권들을 지원해 분쟁과 대규모 인권침해를 심화시킨다. 그 결과 세계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더 위험한 곳이 되고, 타인의 불행을 통해 엄청난 부를 거머쥔 소수의 범죄자들과 그들을 보호해주는 세력에게 더 살기 좋은 곳이 되었다. - P273

미국은 단연 세계 최대의 무기 제조국이자 판매국, 구매국이다. 미국의 무기판매량은 세계 판매량의 약 40%를 차지하며, 2008년에는 61%로 최고치를 기룩했다. 2001년 이후 81% 증가한 미국의 군비 지출은 2011년 기준 전 세계 군비 지출의 43%를 차지한다. 따라서 유럽의 경우와 달리 미국 무기업체들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수출이 아니라 미 정부의 군비 지출이다. 관련 법규 강화로 무기수출 관련 비리는 줄어들었으나, 국내 시장의 중요성, 그리고 자신의 지역구에 일자리를 창출하고 2년에 한 번 치러지는 선거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의원들로 인해 미국 내의 군비 지출은 조직적으로 자행되는 합법적 뇌물수수의 온상이 되었다. - P375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직후 몇 년간 보인 조심스러운 태도에서 벗어나 대선후보 시절처럼 개혁의 대변자로 돌아보려면 과장된 안보위협에 기반한 수십억 달러의 예산, 근거 없는 경제적 주장, 고질적인 예산 낭비에 취해 있는 군산정복합체에 맞서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중요한 것은 국방예산 삭감뿐만 아니라 조달, 로비, 무기 성능 면에서 투명성을 대폭 강화하는 일이다. 분명한 것은 무기산업이 의회에 합법화된 뇌물을 퍼뜨림으로써 미국의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저해한다는 사실이다. 통치의 책임성과 투명성 확보를 가로막는 비밀주의가 이러한 문제를 가리고 있다. 오바마가 내세운 ‘정치개혁‘의 성패는 그가 무기산업과 무기거래에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 P536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의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했다. 미국 헌법 체계의 핵심이 개악되고 폐기되고 무시됐다. 권력은 행정부로 더욱 집중되었고, 군은 전반적으로 민영화됐음에도 낭비가 심해지고 효율성은 떨어졌다. 감독체계는 의도적으로 약화되거나 주변화됐다. 비밀 구금시설, 특별송환, ‘고문‘의 재정의 등은 국제법 체계를 무력화했고, 이로써 미국의 적들은 국제적으로 감시받지 않으며 대규모 인권침해가 일어나는 법적 사각지대로 내몰리게 됐다. 애국법을 통해 정부가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을 들춰볼 막대한 권한을 얻으면서 미국 내의 개인적 자유 역시 위협을 받았다.... 신보수주의 세력은 어떤 의미에서 옳았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세계와 중동을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화된 세계는 더욱 불안하고 위험하며 빈곤해졌다. - P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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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7-08 12: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제 ‘공포장사하는 언론‘이란 주제의 방송을 봤는데 연결되는 지점이 있네요. 미디어와 정치는 공포를 조장해 대중을 현혹하고
그로인해 무기산업은 음지에서
마음껏 막대한 수익을 쌓아올리니까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

겨울호랑이 2022-07-08 13:08   좋아요 2 | URL
시민들의 눈과 귀 역할을 하는 언론이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엉뚱한 판단이 정치적으로 내려져 필요한 곳에 영양소가 공급되지 않는 문제가 우리 공동체가 당면한 현실이라 생각됩니다. 허약한 하체가 비대한 상체를 지탱하는 역피라미드를 구성하는 요인은 이밖에도 많겠지만 하나하나 문제를 찾아가는 노력을 우리 모두가 해야겠지요... 미미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