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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침묵시키기- 권력과 역사의 생산
미셸-롤프 트루요 지음, 김명혜 옮김 / 그린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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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새장에 갇힌 멜랑콜리- 멕시코인의 정체성과 탈바꿈
로제르 바르트라 지음, 김창민 옮김 / 그린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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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 신좌파- 좌파의 새로운 도전과 비전
다니엘 차베스 외 지음, 김세건 외 옮김 / 그린비 / 2018년 6월
29,000원 → 27,550원(5%할인) / 마일리지 870원(3%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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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라티노의 역사
후안 곤살레스 지음, 최해성 외 옮김 / 그린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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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법인세는 한국의 소득세, 부가가치세에 이어 3대 세목에 해당합니다. 국세 중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기준 24.6%에 이릅니다. 한국은 세수에서 법인세 의존도가 다른 나라보다 높습니다. 국세 중 법인세수 비중은  코로나19가 닥친 2020년 19.4%로 떨어졌다가,  코로나19 이후 대기업들이 기대 밖 실적을 내며지난해 20.5%까지 다시 올라섰습니다. 최근의 ‘초과세수‘를  견인하는  세목 중 하나도 바로 법인세입니다.  지난해 걷힌 게70조4000억원인데 올해는 벌써 100조원을 돌파해 세수의 4분의 1 수준을 회복하리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 P13

그런 그도 이번 법인세 인하에는 회의적입니다.
"법인세를 낮춰 투자나 고용을 유도하는효과는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나타나기 어렵고 효과가 있어도  미미한 편이다. 특히 지금 같은 경기침체기에,  인플레이션 국면이고 금리도 오르는 상황에서  투자나 고용이 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반면 적극적 재정정책의 역할은 강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당장 전기료를 올린다고 하잖나. 이럴 때 취약계층에 대한 바우처 등 여러 지원이 들어가야 하는데, 이런타이밍에서 법인세 인하는 자칫 세수만감소시켜 재정 여력을 위축시킬 수 있다. 과거에도 법인세를 인하한 적이 있는데,
그때 경험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 우 교수가 말한 ‘과거‘란 이명박 정부때를 말합니다. - P14

과세표준 5000억원 초과 구간의 평균실효세율이 1000억~5000억원 구간의 실효세율보다 낮은 역전 현상이 다시 관찰되기는 한다. 그러나 2017년에 법인세 최고세율을 기존 22%에서 지금의 25%로올렸고, 대기업 공제·감면도 많이 축소된결과, 예전보다는 법인세 실효세율이OECD 중상위권으로 올라왔다. 일부 감면제도를 정비하고 최저한세율을 최고세율에 맞춰 적절히 올릴 필요는 있지만, 핵심은 소득세와 부가가치세 (소비세)다.
한국은 소득세 최고세율은 낮지 않은데각종 공제 때문에 실효세율이 낮다. 부가가치세도 효과적으로 쓰기만 한다면 불평등 축소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지금은 경기침체와 물가 상승으로 당장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앞으로 토론해야 할 문제다. - P15

법무부가 검찰과 함께 공동전선을 구축하는 형태라면, 행안부는 경찰을 통제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자문위가 6월21일 발표한 ‘경찰의 민주적 관리·운영과효율성 제고를 위한 권고안‘을 보면, 행안부 내 경찰 관리를 위한 별도 조직이 만들어진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별도 조직, ‘경찰지원조직 (가칭 경찰국)‘은 통제의 컨트롤타워  구실을 한다. - P18

국민 여론은 ‘아직은‘ 교육 편이다.
KEDI는 매년 교육여론조사에서 학생수 감소와 교육재정 규모에 대한 국민 의견을 묻는다. ‘학생 수 감소 비율에 따라교육재정도 축소해야 한다‘에 동의하는의견은 해마다 12% 안팎에 머물렀다. (당분간은) 현재정 수준을 유지하거나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최근 조사까지 내내 80%를 넘었다. 단, 조건부다. 문장 앞뒤에 달린  조건을 읽어야 한다.  ‘교육 여건을 선진국 수준으로 개선할 때까지‘ ‘교육 서비스 질을 높이는 데 사용한다면‘... 그 조건의 성립여부에 유·초·중등교육재정의 앞날이 달려 있다. - P25

주택임대차보호법개정연대의 박동수 대표는 생각이 좀 다르다. 2019년 출범한 이 단체는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 등 현행 임대차 3법의 핵심 조항을 지지해왔다. 윤석열 정부가 임대차3 법 폐지·축소를 공언하자 이 단체는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임대차 3법은 전세가 상승률을 잡는 데 공헌하고 있으며, 폐지할 게 아니라 임차인 보호를 위한 추가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동수 대표는 임대차 3 법 이후 생겨난 문제가, 이 법 자체의 폐해라고 보지않는다. 그는 "임대차 3법과 병행할 공적조치가 불충분했다"라고 주장한다. 공공공급을 더 늘렸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택지의 경우 공공임대주택 비율을 늘리고, 소득분위에 따라 차등적으로 임대료를 받을 수 있게 하자‘고 제안했다. - P27

무엇보다 정규직·비정규직을 가리지않고 조선업계 노동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선박의 품질‘이다. "조선은 기술집약적인 산업이에요. 조선소에서 기술자 한 명을 키우려면 최소 3년이 걸려요. 최종 조립 단계인 ‘탑재‘ 공정에서 일할 사람은 5년 동안 배워도 부족해요. 그런데 금방금방 빠져나가고 대체되는 외국인 노동자로 이 산업을 굴리겠다는 건품질을 포기하겠다는 얘기죠. 실제로 선박 품질이 엄청 나빠졌거든요. 외국인 노동자만으로는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는걸 원청에서도 알고 있는데... 답도 없이사태를 키우는 거 같아요." - P33

이번 호에서는 국민의 부담을 줄여주고자 하는 선한 의도를 가진 보장성 확대정책이 어떻게 실패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보는 경증질환 치료를 저렴하게 하는 정책은 필요성이 낮지만 선거 기간 표심에 영향을줍니다. 반면 소수의 사람이 혜택을 보지만 목돈이 드는 중증질환 치료비를 줄여주는 정책은 꼭 필요하지만 득표에 별 도움이 되지 않죠. 그 탓에 건강보험이 가장 아픈 사람을 충분히 보호하는 역할을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한계를 넘어설 수 있도록, 정책 입안자와 국민들의 분별력 있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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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팔가르 해전은 60척의 전열함이 교전한 19세기 역사상 최대 해전 가운데 하나였다. 10월 21일 아침 일찍 적을 발견한 넬슨은 기함 빅토리호에서, 총 인원 1만 7천 명, 포 2148문을 탑재한 27척의 전열함과 4척의 프리깃함, 2척의 부속 선박에 전투 준비를 하라고 신호를 보냈다. 33척의 전열함과 5척의 프리깃함으로 이루어진 프랑스-에스파냐 연합 함대는 총 3만 명의 장교와 병사들, 2632문의 포를 싣고 있어서 규모가 더 컸지만 훈련과 사기 측면에서 영국 함대와 상대가 될 수 없었다. _ 알렉산더 미카베리즈, <나폴레옹 세계사>, p258/1210


 9시 30분경 결정적 순간에 안개가 걷히고 "아우스터리츠의 태양"이 전장을 비추자 나폴레옹은 니콜라 술트 원수에게 프라첸 고지를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프랑스군의 공격은 동맹군의 허를 찔렀고 그들의 군대를 둘로 쪼개어 병사들 사이에 혼란이 퍼져나갔다. 프랑스군의 공격은 무너지고있던 동맹군의 좌측을 강하게 밀어붙였고 프랑스 포병대는 얼음이 깨지도록 얼어붙은 웅덩이들에 포탄을 발사해 후퇴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따. 저녁 6시에 이르자 전투는 대체로 끝이 났다. 아우스터리츠는 나폴레옹 군사 전략의 걸작이었다. _ 알렉산더 미카베리즈, <나폴레옹 세계사>, p279/1210


  군인이자 황제인 나폴레옹(Napoleon Bonaparte, 1769 ~ 1821)의 삶에서 트라팔가르 해전과 아우스터리츠 전투가 있었던 1805년의 전황은 프랑스 제국의 한계와 위력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넬슨(Horatio Nelson, 1758~1805)이 이끄는 영국 해군에게 봉쇄당한 해군과 유럽 대륙을 석권한 대육군. 나폴레옹이 이끄는 전투의 대부분이 유럽에 집중되기에(비록, 이집트 원정이라는 예외도 있지만), 나폴레옹과 관련한 역사책들은 나폴레옹 전쟁에 대한 분석을 유럽사에 한정한다. 이러한 분석이 코르시카 섬에서 태어나 프랑스 혁명이라는 시대의 흐름을 타고난 걸출한 인물이 숙적 영국에 의해 번번히 막히다가, 운명처럼 러시아 원정의 혹독한 추위에 무너지고, 엘바 섬 유배 이후 극적인 탈출을 통해 부활을 꿈꾸다가 다시 워털루에서 꺾이고 말았다는 '영웅 서사'에는 적합할지 모르겠지만, 세계사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또 하나의 '봉쇄령'에 불과함을 알렉산더 미카베리즈 (Alexander Mikaberidze)의  <나폴레옹 세계사 The Napoleonic Wars>은 알려준다.


 러시아 원정은 나폴레옹 제국에 참사에 가까운 결과를 가져왔다. 제국은 전에도 시험에 들었지만 이전의 어느 실패도 러시아에서 당한 패배의 규모에는 근접하지 않았다. 대육군은 전멸하다시피 했다. 침공에는 궁극적으로 60만 명가량이 투입되었지만 12월에 네만강을 다시 건넌 병사는 10만이 채 못 됐다. 50만 명의 병력 손실 가운데, 아마도 무려 10만명 정도는 이탈병일 것이고 12만 명 이상이 포로로 잡혔다. 나머지는 질병이나 전투에서 입은 부상으로, 또는 혹독한 환경에 노출되어 죽었다. 그만큼 파국적인 것은 군사 장비의 손실이었다. 나폴레옹은 약 1300문의 대포 가운데 920문을 잃었고, 기병은 사실상 일소되었다. 훈련된 말 대략 20만 마리가 러시아 벌판에 쓰러져 있었다. 포병과 기병 어느 쪽도 향후의 전역 동안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다. _ 알렉산더 미카베리즈, <나폴레옹 세계사>, p714/1210


 마치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1812 ~ 1870)의 <두 도시 이야기 A Tale of Two Cities>의 두 도시처럼 서로 다른 영국과 프랑스의 극한 대립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남을 확인할 수 있다. 30년 전쟁을 통해 강대한 이웃을 두지 않으려는 프랑스의 정책이 독일을 오랜 기간 제후국들로 분열시켰다면, 영국은 더 큰 스케일로 통일유럽제국을 경계한다. 유럽사 속에서 세력 균형의 조정자로 처신해 온 영국은 신생 프랑스 공화국과 이어 등장한 프랑스 제국의 도전에 대해 강대한 해군력을 사용하여 효과적으로 팽창을 제한한다. 


  나폴레옹 전쟁을 혁명적 투쟁들의 지속으로만 인식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18세기 전쟁의 맥락속에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18세기 전쟁의 맥락속에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1803년과 1815년 사이 유럽 열강은 거듭하여 전통적인 국가 목표를 추구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주요 상수가 있었다. 하나는 새로운 국제 질서를 창출하고, 그리하여 헤게모니적 권력을 수립하려는 프랑스의 결연한 의지였다(p11)... 영국은 전 유럽적인 제국을 건설하려는 프랑스 황제의 시도를 억지하고자 하는 폭넓은 동맹의 한가운데 있었다. 동맹 하나가 깨지기 무섭게, 런던은 급속히 확대되는 무역 네트워크와 산업 성장에서 나오는 이유 덕분에 재정적으로 뒷받침되는 새로운 동맹을 결성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영국과 프랑스 간의 대결은 사실상 제국 건설과정에서 벌어진 두 사회 간의 투쟁이었다. _ 알렉산더 미카베리즈, <나폴레옹 세계사>, p12/1210


 비록 프랑스가 7년 전쟁(Seven Years' War, 1756~1763)을 통해 북아메리카와 인도에서 상당한 해외식민지를 상실하긴 했지만, 여전히 서인도제도와 동인도 지역에서 세력은 잔존한 상태였고, 프랑스의 해군력 또한 트라팔가르 이후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었기에 세계 각지에서 이들 세력간의 충돌이 일어나게 된다. 


 <나폴레옹 세계사>에서는 이집트 원정, 생도맹그(아이티) 혁명, 루이지애나 매입 등의 사건이 세계사적으로 미친 영향에 대해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인도로 진출하려던 프랑스 원정군의 이집트 침입은 오스만 투르크에게 타격을 주고, 결과적으로 전통적인 프랑스 우방이었던 오스만 투르크를 대불동맹에 가담시키는 부작용을 낳게 된다. 이와 함께 쇠약해진 오스만 투르크는 이집트와 발칸반도에서 영향력을 상실하게 되고, 이러한 틈을 러시아는 적극 활용하여 남쪽으로의 진출을 가속화하여 이란 지역에가지 이르게 된다. 이 시기 러시아의 남진 움직임은 19세기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으로 이어진다.



이집트 원정은 학문과 문화 영역에서 항구적인 유산 - 이집트학이라는 학문 분야를 수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 을 남겼지만 본질적으로는 군사적/정치적 실패였다. 원정은 레반트에서 프랑스의 전통적인 정책들을 정면으로 위배하며, 영국 식민 권력을 강타하는 대신 프랑스의 전통적 맹방(오스만 제국)이 숙적 러시아와 영국과 손을 잡게 몰아갔다. 정치적으로는 총재 정부의 공격적인 외교정책을 대대적으로 부각시킴으로써 1798년 후반기에 2차 대불동맹이 결성되도록 촉진했다. 그것은 공화주의 이상들을 식민주의와 영토 확장과 결합하려는 기획의 실패를 의미했다. _ 알렉산더 미카베리즈, <나폴레옹 세계사>, p117/1210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의 패배와 나폴레옹 전쟁의 종결은 세르비아인들에게 큰 힘을 실어줬으니 이제 러시아가 오스만튀르크에 맞서 세르비아를 자유롭게 지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술탄 마무드는 러시아의 간섭 가능성을 두려워하며 신중히 처신했다. 그는 세르비아에 제한적인 자치를 허용하고 밀로시 오브레노비치를 세르비아 군주로 인정했다. 정치적인 행보였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저도 모르게 오스만 제국의 정치적 해체를 향한 첫발을 내디뎠다. _ 알렉산더 미카베리즈, <나폴레옹 세계사>, p568/1210


 나폴레옹 전쟁은 과거 제국의 영화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유럽 열강의 장기판의 졸이 된 이란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영국과 프랑스 양측에 배신을 당한 이란은 러시아의 손에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전쟁은 카자르 국가의 비효율성을 만천하에 드러냈고 이란의 주도적 일부 인사들은 군사 개혁의 필요성을 확신했다. 여기에 나폴레옹 전쟁이 이란에 남긴 가장 항구적인 유산이 있다. _ 알렉산더 미카베리즈, <나폴레옹 세계사>, p600/1210


 이와 함께, 에스파냐로부터 할양받은 막대한 영토인 루이지애나 지방은 북쪽 영국의 캐나다와 신생국 미국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었다. 이러한 위협이 결정적이게 된 것은 신생국 생도맹그(아이티) 의 독립이었다. 결과적으로 루이지애나의 매각은 미국의 힘을 2배로 키워주었으며, 향후 미국이 2개 대양에 이르는 거대국가로 만드는데 결정적 계기가 된다. 


 생도맹그 원정의 실패는 프랑스에 즉각적인 결과를 야기했는데, 프랑스는 이제 가장 수익성 좋은 식민지와 카리브 해역의 상업 중추를 상실한 셈이었다. 더욱이 생도맹그 대참사는 대서양에서 프랑스 식민 제국 건설이라는 보나파르트의 웅대한 비전을 산산조각 냈다. 영국과의 새로운 전쟁이 거의 불가피한 상황에서 프랑스 정부는 새로 수복한 루이지애나 영토를 보호할 수 있을지 걱정이 컸다. _ 알렉산더 미카베리즈, <나폴레옹 세계사>, p191/1210


 미국에게 루이지애나 매입은 "역사적 중요성에서 독립선언과 연방 헌법 채택에 다음가는" 획기적인 순간이었다. 미국의 크기는 두 배로 늘어났고 미시시피강 전역과 멕시코만 연안의 많은 부분을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 루이지애나 영토는 새로운 15개 주의 일부나 전부를 구성하게 된다. 매입은 미국인들이 그 지역에서 외세의 영향력을 제한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었고, 북아메리카의 인구 구성을 급격하게 변화시키는 팽창패턴을 작동시켰다. 루이지애나 매입지의 경계가 매우 모호했기 때문에 명백한 운명 - 미국은 그 방대하고 광활한 공간을 소유하고 정착할 권리와 의무를 갖고 있다는 발상 - 은 거의 불가피했다. _ 알렉산더 미카베리즈, <나폴레옹 세계사>, p174/1210


 전시대 아메리카 대륙에 거대한 제국을 세웠던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은 이 시기에 완전히 쇠락하여, 본국은 프랑스의 지배를, 라틴 아메리카 지역은 독립하면서 중상주의 제국시대는 종결된다. 그렇지만, 아이티 독립 이후 수많은 독립혁명의 움직임과 영국의 침략을 물리쳤음에도 불구하고, 먼로주의를 표방한 미국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게 된 것이 라틴 아메리카의 비극이다. 앵글로 아메리카에 의한 라틴 아메리카의 종속적 지배의 역사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이로써 라틴아메리카 식민지 독립운동의 서막이 올랐고, 리오데라플라타 부왕령의 탄생과 함께 1776년에 성립된 현 제도적 상태가 깨졌다. 기존의 식민 행정구조(부왕, 아우디엔시아 audiencia '왕립심문원', 식민지 최고 사법기관)는 새로운 정치 현실들에, 무엇보다 정치적으로 능동적인 무장한 평민 집단의 등장에 적응하기 위해 씨름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벌어진 사건들은 나폴레옹 전쟁에서 영국이 겪은 가장 큰 실패 가운데 일부였다. _ 알렉산더 미카베리즈, <나폴레옹 세계사>, p610/1210


 미영전쟁은 그러므로 무승부로 끝났지만 항구적인 유산을 남겼다. 미국 쪽에 전쟁은 제임스 매디슨 행정부가 내세우는 것과 달리 전혀 압도적인 승리가 아니었다. 미국의 전쟁 목표 가운데 거의 어느 것도 달성되지 않았고 최종 조약은 미국 시민의 강제 징모와 영국의 해상 관행을 비롯해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들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쟁은 미국의 정치를 재편했다. 연방파의 붕괴에 기여하고 전쟁의 여파로  새로운 국가적 목적의식과 미국인들 사이에서 일치단결을 반영한 이른바 호감의 시대 Era of Good Feelings를 열었다. 이 분쟁은 또한 미국의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고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치열하게 논의될 경제적/재정적 개혁의 필요성을 조명했다. 전쟁에서 미국의 명명백백한 성공 한 가지는 강력한 군사력이자 미국 국가 안보의 근간으로서 미국 해군의 부상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전쟁은 북아메리카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를 보장하고 최초의 탈식민 열강으로서 미국의 부상을 촉진하며, 1775년에 시작되었던 것을 완수했다. _ 알렉산더 미카베리즈, <나폴레옹 세계사>, p777/1210


 세계 전역에서 이루어진 거의 모든 식민전쟁에서 프랑스는 철저하게 파괴된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이 시기 동안 이집트, 이란,동남아시아, 아프리카에서부터 인도로 넘어오려는 프랑스의 시도를 좌절시켰기에 가능했다. 인도라는 배후지를 지키는 영국의 해군력은 결국 대륙봉쇄를 뚫고, 나폴레옹의 제국을 예정된 몰락의 길로 이끌었다.


 인도는 19세기 당대인들에 의해 영제국의 "왕관 한가운데 보석"으로 묘사되어왔다. 광대한 아대륙은 결코 바닥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천연자원의 원천이자 영국 상품을 위한 어마어마한 시장이며 영국의 가장 소중한 속령이었다. 인도와의 통상과 그부터 나오는 막대한 이익은 영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인도에서 이전된 세수는 나중에 영국의 경제력을 뒷받침하고 영국의 군사력, 특히 가장 유명한 영국 해군을 지탱하는 공장을 비롯해 다른 경제활동에 재투자되었고, 덕분에 영국 해군은 전지구에 걸쳐 자국의 이해관계를 성공적으로 수호했다. 인도가 없었다면 십중팔구 영제국도 없었을 것이다. _ 알렉산더 미카베리즈, <나폴레옹 세계사>, p629/1210


 니얼 퍼거슨(Niall Ferguson)의 <현금의 지배 Money and Power in the Modern World, 1700~2000>에는 워털루 전쟁에서 영국 국채에 돈을 걸어 막대한 이득을 취하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모습이 나오지만, 당시 전후 사정을 본다면 극적인 서술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돈을 빌려주는 채권자 그룹에서 채무자의 상황을 모를 리 없었다면, 승패는 미셸 네의 무모한 근위대 기병돌격 명령이 내리기 이전에 이미 결정적이지 않았을까. 아니, 나폴레옹 전쟁 이전에 영국을 향해 선전포고를 하는 순간 이미 게임은 끝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프랑스의 전쟁은 징세(다소 느리고 뒤엉킨 과정)에 내재한 문제들과, 가장 부유한 계층이 대체로 납세에서 면제되는 특권 체제 때문에 부분적으로만 세금으로 충당되었다. 사실 프랑스의 식민지 야심을 지탱하는 돈은 세계 금융에서 나왔다. 18세기 내내 프랑스는 외국 채권자들로부터 막대한 돈을 빌릴 수 있는 국제 자본시장에 갈수록 의존하게 되었다. _ 알렉산더 미카베리즈, <나폴레옹 세계사>, p28/1210


<나폴레옹 세계사>를 통해 나폴레옹과 그의 빛나는 전술적 승리 이면에 숨겨진 전략적 패배와 세계역사의 씨앗들을 발견하게 된다. 자유, 평등, 우애(Liberte, Egalite, Fraternite)라는 혁명의 이념들로 일어섰고, 이러한 사상들로 세계각국의 민중들로부터 환영받으며 이룩한 거대한 성공. 이러한 성공을 담보로 유럽대륙을 하나의 제국으로 묶으려던 시도가 역설적으로, 혁명으로 자각된 민족의식으로 패배하게 된 과정과 혁명에서 이루어진 과정이 오히려 빈 체제에서 반혁명 보수체제를 더 공고하게 하는 아이러니를 <나폴레옹 세계사>를 통해 확인하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나폴레옹은 시대에 뒤처지기도 하고 앞서기도 했다. 그는 마지막 계몽 전제군주이자 근대 국가의 선지자였다. 유럽에게는 나폴레옹 정권이 근대 세계에 대한 신선한 관점이자 그 자원과 국고를 고갈시키는 권력의 행위를 의미했다. 한 독일 역사학자의 평가는 유럽 다른 지역들에도 적용될 수 있을 텐데, "독일 민족의 역사와 그들의 삶과 경험에 대한 그의 영향력은 근대 독일 국가의 최초 토대가 놓이고 있던 시기에 압도적이었다. 한 국민의 운명이란 그 국민의 정치이며, 그 정치들이란 나폴레옹의 정치, 즉 전쟁과 정복의 정치, 착취와 억압의 정치, 제국주의와 개혁의 정치였다." _ 알렉산더 미카베리즈, <나폴레옹 세계사>, p374/1210


 프랑스의 제국적 노력은 이탈리아와 네덜란드, 독일 국가들에서 민족의식의 기운을 일깨웠고, 프랑스의 점령은 교육 받은 엘리트층과 궁극적으로는 서민들로부터 애국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프로이센에서는 민족 정서가 꿈틀대고 있었고 이곳의 저명한 독일 작가와 철학자들은 나폴레옹에게 등을 돌리고 민족주의 선전과 자유에 대한 새로운 의식을 일깨우는 데 위대한 재능을 바쳤다. 앞서 겪은 군사적 패배들과 그에 따른 깊은 낭패감과 굴욕감은 독일 계몽사상의 성격 자체를 변화시키는 데 일조해, 이전의 세계시민주의와 합리주의 요소를 희생시켜가며 독일 계몽주의에 낭만적이고 민족주의적인 특색을 가미했다. _ 알렉산더 미카베리즈, <나폴레옹 세계사>, p698/1210


 결과적으로, 나폴레옹의 전쟁은 월러스틴(Immanuel Maurice Wallerstein, 1930 ~ 2019)에 의하면 핵심부의 헤게모니(hegemony)에 대한 주변부 도전의 패배, 이어지는 '중도적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제공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홉스봄(Eric Hobsbawm, CH, 1917 ~ 2012)에 의하면, '혁명의 시대' 중 시민혁명의 이데올로기와 산업혁명의 구조가 결합되어 이후 '자본의 시대'로 이어지는 연결점이 될 것이다. 브로델( Fernand Braudel, 1902 ~ 1985) 에 따르면, 오랜 장기지속적 과정을 통해 영국 우위로 이미 결정적인 사안이 될 것이겠지. 


 이처럼 <나폴레옹 세계사>는 단순한 정복전쟁이 아닌 세계사의 한 결정적 사건(epoch)으로 나폴레옹 전쟁을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다소 두껍지만 읽을만한 책이라 생각한다. 페이퍼에 언급된 다른 책들과 함께라면 더 좋을 것이라 여겨진다. 아직 리뷰를 쓰지 못한 책들은 조만간 올리는 것으로 하고 나폴레옹 전쟁을 요약하면서 페이퍼를 갈무리하자...


 같은 시기에 인도에서는 영국의 제국 세력이 공고해졌으니 이 같은 사태 전개에 힘입어 19세기에 영국은 지구적인 패권국가로 등장할 수 있었다. 이 제국 건설 과정은 인력과 자원의 막대한 투입을 요구했다.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에서 반도전쟁으로 죽은 영국인보다 더 많은 영국인이 서인도제도와 동인도제도에서 산발적으로 전개된 전역 기간 동안 죽었다. 영국의 팽창만이 이 시기에 지구적 관련성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19세기 초에 러시아는 핀란드와 폴란드 ,북동 태평양에서 식민지적 계획을 추구했던 한편, 오스만 제국과 이란을 희생시켜 발칸반도와 캅카스 지역에서 팽창을 도모했다. 대서양 세계 한군데에서만 나폴레옹 전쟁은 이미 자리 잡은 세 유럽 제국과 신생 공화국 미국이 저마다 영토를 보전하고, 경쟁국을 희생시켜 자국 영토를 확대하려고 작정하면서 활발하게 경쟁하는 모습을 목도했다. 미국은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 영토를 구입하면서 국토가 두 배 이상 늘어났고, 1812년 전쟁으로 영국에 도전했다. 카리브해에서 프랑스 혁명은 대서양 연안에서 일어난 노예 반란 가운데 가장 중대한 반란이 아이티 혁명을 불러왔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1808년 나폴레옹의 에스파냐 점령이 독립운동을 자극해 에스파냐 식민 제국을 종식시키고, 그 지역에 새로운 정치적 현실을 창출했다. 이슬람 세계에서도 중대한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었으니, 오스만 제국과 이란에서 발생한 정치적/경제적/사회적 격변은 "동방문제 Eastern Question"이라는 고민거리의 토대를 놓았다. 이집트에서는 1798년과 1807년 영국과 프랑스의 침공으로 메메트 알리가 부상하고 19세기 나머지 기간 동안 중동문제를 규정지을 강력한 이집트 국가가 궁극적으로 출현했다. _ 알렉산더 미카베리즈, <나폴레옹 세계사>, p14/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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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2-07-17 23: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나폴레옹의 존재가 세계사적 사건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고 이해되기도 합니다. 정말 많은 사건들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네요^^;; 나폴레옹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너무 일을 크게 벌였네요. ㅋ 정성들여 써주신 글에 언급하신 책들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22-07-17 23:51   좋아요 3 | URL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나폴레옹 전쟁의 의미를 이정도로 깊이있게 다룰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독서를 통해 사건뿐 아니라 그 영향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페이퍼에 있는 도서는 제가 아는 정도지만 초란공님께서는 또다른 연결점을 찾으시리라 생각해봅니다. 감사합니다 ^^:)

페크pek0501 2022-07-18 13: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튜브에 들어가서 공부하기 위해 철학이나 역사 분야의 영상을 보는데요, 오늘은 어느 쪽을 볼까 고민한답니다.
그런데 겨울호랑이 님의 서재에 오면, 으음... 역시 역사 쪽을 봐야 돼,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

겨울호랑이 2022-07-18 13:14   좋아요 1 | URL
페크님의 선택에 제 글이 작은 도움이 되었네요.^^:) 저도 철학과 역사 중 하나를 고르라면, 아무래도 역사 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ㅋㅋ 페크님 오늘도 건강하게 하루 보내세요!
 

폰 오스텐이 말에게 무의식적으로 신호를 보냈다는 단순한 해석만으로 모든 정황을 설명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가장 단순한 이론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을 우리는 최절약원리 또는 최소 놀람의 원칙Principle of Least Astonishment(POLA)이라 부른다.

누구나 ‘텍사스의 명사수Texas sharpshootersb’처럼 행동할 때가 있다. 곳간 벽에 총을 쏘아 구멍을 여러 개 낸 다음 그 구멍들을 중심으로 원을 그려 과녁을 만들면 총알이 모두 과녁의 중심에 명중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가쿠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만일 인류의 미래를 결정할 수도 있는 의식을 가진 로봇이 출현다면 이에 인간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스스로를 보존하도록 프로그램된 인공지능은 자신의 전기 플러그를 뽑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서슴지 않을 것이다. 로봇은 미래를 예측하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국엔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검토해보고 인류를 전복시킬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언어는 추상적 사고를 가능하게 했고, 사회를 계획하고 조직하는 능력을 인간에게 부여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새로운 능력을 갖춘 인류는 함께 힘을 합쳐 사냥에 나설 수 있었고, 생존해서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전달할 확률을 높일 수 있었다. 지능과 표현 능력이 강화되자 부족의 통제권을 획득하기 위해 파벌이 형성되면서 정치가 등장했다. 이 같은 발전의 핵심은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었다. 가쿠는 인간의 심리학과 관련해서 ‘의식의 시공간 이론space-time theory of consciousness’을 제시했다.

미셸은 유전의 영향도 있다고 말하면서도 ‘뜨거운 충동 시스템hot system’은 제어하고 ‘차가운 억제 시스템cool system’을 활성화하도록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을 의도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아동과 성인의 자제력을 후천적으로 키워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뇌에 뜨거운 시스템과 차가운 시스템이 있다는 비유는 뇌가 서로 다른 상황을 다루기 위해 진화해온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중력과 원심력 때문에 두 개의 껍질로 분리된 세계가 만들어진다는 주장은 난센스였다. 토성의 고리는 지구 공동설과는 관련이 없었다. 토성의 고리는 그저 달처럼 토성 주위의 궤도를 도는 것뿐이다. 이와 달리 지구의 자전은 중력에 맞설 만큼 속도가 빠르지 않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 발밑에서 지구가 돌고 있어도 우리가 지구 표면에 흔들림 없이 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지구 안쪽 세계의 사람들이 편안하게 걸을 수 있을 만큼 빠르게 자전한다면 지구 바깥쪽 세계에 있는 우리들은 저 멀리 우주로 튕겨져 나갈 것이다. 또 이 상황에서는 아래로 잡아당기는 중력 때문에 지구 속 세계 주민들은 ‘불안정한 상태’일 수밖에 없다. 지구 속 주민들은 껍질에서 떨어져 지구의 중심을 향해 낙하할 것이다. 지구의 껍질 자체도 스스로의 무게 때문에 붕괴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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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들었을 때, 하느님, 롤랑은 얼마나 괴로웠던가!
롤랑은 말에 박차를 가해 전속력으로 돌진해서는 온 힘을 다해 상대에게 창을 꽂는다.
방패를 부수고, 갑옷을 찢고,
가슴에 창날을 박아 뼈를 부수고
등뼈를 통째로 몸통에서 분리해버리니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간다.
창날을 박아 넣으며 몸을 뒤흔들어놓고

"프랑스 기사들이여! 나쁜 생각을 해서는 아니 되오!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하건대, 도망하지 마시오.
누구도 그대들을 조롱하는 노래를 지어 부르게 해서는 아니 되오!
차라리 싸우다 죽는 편이 훨씬 나은 일이오.
우리는 곧 최후를 맞게 될 것이오.
오늘 이후 우리는 살아 있지 못하겠지만
그대들에게 한 가지만은 보장할 수 있소.
거룩한 천국의 문이 그대들에게 활짝 열려 있다는 점이오.
그대들은 죄 없는 아기들과 함께 천국에서 살게 될 것이오."

왜냐하면 분별력을 갖춘 용맹은
어리석은 짓이 아니기 때문일세.
무모함보다는 신중함이 나은 법이네.
프랑스인들은 자네의 경솔함 때문에 죽었네.
우리는 이제 샤를 황제를 섬길 수 없을 걸세.
내 말을 믿었더라면 폐하께서 돌아오셨을 테고,
우리는 이 전투에서 승리했을 걸세.
마르실 왕도 사로잡혔거나 죽임을 당했겠지.
롤랑, 자네의 용맹이 우리에겐 불행이었네!!

롤랑 경은 힘겹고 고통스럽게
사력을 다해 상아 나팔을 분다.
입에서는 선혈이 뿜어져 나오고
머리의 관자놀이가 터진다.
상아 나팔 소리는 멀리까지 퍼져
고갯길을 지나는 샤를 왕의 귀에 들린다.
넴 공도 그 소리를 듣고, 프랑스 기사들도 귀 기울인다.
왕이 말한다. "롤랑의 상아 나팔 소리가 들리노라!
전투를 벌이지 않는다면 롤랑은 절대로 상아 나팔을 불지 않을 것이니라."

올리비에가 말한다.
"이제 자네가 말하는 소리가 들리네.
나는 자네를 보지 못하네. 주님께서는 자네를 보시기를!
내가 자네를 치다니! 용서해주게!"
롤랑이 대답한다.
"아닐세, 나는 조금도 다치지 않았네.
여기 하느님 앞에서 자네를 용서하네."
이 말을 하고는 서로 정중히 고개를 숙인다.

롤랑은 자신이 태어난 나라의 방식대로 그를 애도한다.
"아, 고귀한 대주교님, 훌륭한 집안의 기사시여,
오늘 저는 당신을 위해 영광스러운 하느님의 보살핌을 구합니다!
결코 누구도 대주교님처럼 기꺼이 하느님을 섬기지 못했습니다.
신앙을 지키고 사람들을 신앙으로 이끄는 데에 있어
사도들 이래로 대주교님과 같은 성직자는 없었습니다.
대주교님의 영혼에 부족한 것이 없기를!
천국의 문이 활짝 열려 대주교님의 영혼을 맞아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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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지기 2022-07-15 2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설마 그 롤랑의 노래인가 하고 들어왔는데 정말 그 롤랑의 노래네요ㅋㅋ
진짜 분야 다양하게 읽으셔서 존경스럽습니다 ^_^ b

겨울호랑이 2022-07-15 23:30   좋아요 1 | URL
에고 아닙니다. 한 분야만 진득하게 파질 못해서, 여러 분야의 책을 얇게 넓게 깔아놓고 독서를 하는 것이 제게 맞아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롤랑의 노래>는 이전에 궁리 출판사에서 출판된 것을 읽었었는데, 이번 번역본은 더 현장감이 넘치는 것 같아요. 영화 <라스트 듀얼>을 떠올리게 하는 현장감과 종교전쟁의 한 면을 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등대지기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