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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테일혁명 2030- 구글, 이케아, 월마트 등 글로벌 브랜드 전략에 참여한 세계적 리테일 전문가가 말하는
더그 스티븐스 지음, 김영정 옮김 / 교보문고(단행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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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혁명 2030
크리스 스키너 지음, 이미숙 옮김 / 교보문고(단행본)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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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혁명 2030
사이먼 B. 버락 지음, 엄성수 옮김 / 교보문고(단행본)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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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주거혁명 2030- 주거의 의미가 변화되고 확장되는 미래
박영숙.숀 함슨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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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폴레옹 전쟁은 19세기에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전쟁은 군주제, 귀족제, 노예제 같은 제도들의 정당성과 전통적 생활방식을 뒤흔들었다. 또한 해소되지 않은 여러 쟁정들을 남겼다. 그러므로 후속 세대는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중앙집권화와 근대화, 공화주의와 군주정주의, 산업화와 급진주의의 유산들을 두고 씨름했다. 세인트헬레나섬에 유배된 나폴레옹은 정치적 전설이 자라나게 했고, 전설은 재빨리 그에 맞서 싸웠던 사람들의 후손들에 의해 기려지고 이상화된 자애로운 황제에 대한 강력한 신화로 진화했다(p843)... 이는 대분기의 시작이었고, 이 전환의 엄청난 의미는 19세기가 흐를수록 더 분명해진다. _알렉산더 미카베리즈, <나폴레옹 세계사> , p844/1210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가 급등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 인플레이션 우려로 인한 금융 위기, 인플레이션 방지를 위한 금리 인상으로 인한 부동산 위기가 진행 중이다. 마침 이 주제들과 관련하여 '혁명 2030' 시리즈를 꺼내들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 물음에 적절한 답을 주지는 못했다. 가깝게는 2030년, 길게는 2050년까지 우리 삶을 바꿀 미래전망서인 관계로 눈 앞의 위기가 아닌 낙관적인 미래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전기자동차는 인터넷 연결, 모바일, 정보기술 플랫폼이다. 테슬라 Tesla의 모델 S는 무선으로 운영 시스템을 업데이트하거나 해치할 수 있다. 테슬라 모델 S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컴퓨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전기자동차는 정보기술의 산물이며, 정보기술의 다른 산물들과 마찬가지로 무어의 법칙이 적용된다(p39)... 대형화, 중앙집권화, 하향식, 공급자 중심의 에너지산업 역시 막다른 길에 몰려 있으며 모듈 방식, 분산화, 상향식, 개방형, 지식 기반, 소비자 중심의 에너지산업으로 대체되고 있다. 에너지산업의 붕괴는 자동차산업의 붕괴와 결부되어 도미노효과를 불러올 것이다. 화물운송, 공공 운수, 렌터카, 주차, 보험 등 많은 부문의 산업이 붕괴할 것이다. 도시계획과 토지이용계획 역시 급변하고 그 파장은 놀라운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_ 토니 세바, <에너지 혁명 2030> , p41


 환경오염 물질을 많이 배출하는 내연기관 대신 그 자체로 전자제품인 전기차(자율주행차 포함)는 관련 소재 산업부터 보험 등 금융산업에 이르기까지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 기존 화력, 원자력 중심의 대규모 설치 산업으로서의 에너지 산업은 소형화, 친환경 산업으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에너지 혁명 2030>) 또한, 향후 금융거래에서는 현금을 사용하지 않고 가치를 거래하게 되면서, 기존 화폐를 대신하는 지불수단과 방식이 도입될 것이며, (금융 혁명 2030>) 소유 중심의 주거가 아닌 공유 공간으로서 스마트 기술에 의해 우리의 삶이 보다 쾌적하게 바뀌는 변화(<주거 혁명 2030>)가 예상된다. 이러한 변화의 공통된 바탕은 과학에 의한 기술혁신이 전제된다. 

 

 가상화폐는 기계에서 기계로 가치를 거래하는 원리라고 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기계 내부에 있는 칩의 형태를 띤다. 우리는 웹 3.0으로 이동하면서 거래 방식도 M2M으로 이동했다. 이 새로운 가치 체계에서는 모든 기계 혹은 상거래가 가능한 대상이 칩을 보유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소유한 이 칩은 거래에서 주인으로 지정되며 우리의 신원을 파악하는 구조의 일부가 된다... 가상화폐 체인은 가치를 거래할 뿐만 아니라 신분과 소유권도 관리한다. 이런 방식으로 당신은 인터넷으로 즉시 그리고 눈에 띄지 않게 공상과학에나 나올 법한 가치 교환을 해낼 수 있다. _ 크리스 스키너, <금융 혁명 2030> , p41


 '혁명 2030' 시리즈는 낙관적인 미래를 전망한다. 아직 2030년이 되려면 여러 해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이 <특이점이 온다 The Singularity is Near: When Humans Transcend Biology>에서 전망한 인간을 초월한 기술이 가져올 미래는 근심과 걱정이 자리할 공간은 없어보인다. 반면, 이러한 점때문에 현재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에 비유되는 위기상황에서 책에 그려진 내용이 실감나게 다가오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가까운 미래 대신 장기추세를 전망한 책 내용으로 현 위기의 주요 주제와 제목만 같은 미래전망서들. 현재의 분위기 상 이러한 미래를 그려보는 것은 쉽지 않지만, 또 이러 전망을 무조건 틀렸다고 볼 수만도 없는 것이, 실제로 책에 다루어진 과학기술 중 상당부분은 이미 상용화된 것도 있고, 개발 중인 프로젝트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혁명 2030' 시리즈의 전망은 장기적인 추세(trend)를 파악한다는 측면에서 유용하지만, 전면적인 변화가 이루어지는 시기는 조금 더 늦춰야 하지 않을까 여겨진다. 혁명은 기술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050년, 주택은 소유가 아닌 공유가 일반적인 풍경이 될 것이다. 또한 움직이는 벽을 설치하는 등 공간을 재배치함으로써 소비를 줄이고 집은 더욱 작아질 것이다. 집을 포함해 가전제품들은 모두 하나의 신경망으로 연결되어 상호 소통하는 IoT 기술이 적용될 것이며, 가전 가운데 오작동을 하거나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면 네트워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p186)... '그린' 개념은 '스마트' 개념을 포함하게 되어 디지털 도시, 상품과 기술이 합쳐질 것이다. 2050년의 인프라는 도시와 도시가 가진 중요한 인프라 시스템의 탄력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변할 것이다. 도시들은 국경을 초월해 더욱 강력한 힘을 갖게 된다. _ 박영숙, 숀 함슨, <주거 혁명 2030> , p243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혁신이 이루어질 수 있겠지만, 과연 우리 인간이, 사회가 그 변화를 감당할 여력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전기차 보급이 확산된다고 하지만, 전기차가 주력이 되는 상황이 왔을 때, 기존 자동차 산업 종사자와 기업의 반발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신재생 에너지 사업 육성과 관련하여 탈(脫)원전과 관련한 사회적 갈등은 넘어가더라도, 자율주행자동차 도입에 따른 손실 보장 기준 마련 등 법 제도 정비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또한, 새로운 가치측정 및 교환 수단이 등장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가치측정이 기존 화폐인 달러에 연계된다면 이는 다른 하나의 파생상품의 등장에 불과하지 않을까? 새로운 주택 등장과 스마트 시티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기존 부동산 시장 가격 결정 기준이 교육과 교통임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기술의 변화가 현재 부동산 시장에 과연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등등의 물음을 던져보게 된다.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기까지 과정을 생각해본다면, 전망만큼 빠른 속도로 변화는 이루어지기 힘들지 않을까.


 

 버크는 다음과 같이 썼다. "인간 지성의 자랑인 법률학(science de jurisprudence)은 ... 시간이 흐르면서 전수되는 이성이다. 그것은 근본적인 정의의 원리와 극히 다양한 인간의 이익을 결합한다... 이러한 것이 바로 버크 교의의 기본적인 특징이다. 모든 인간 제도의 토대가 되어야 하는 것은 역사이며, 시간의 흐름 속에 나타나는 느린 변화만이 지속될 수 있다. 버크에 따르면 추상적인 철학적 원리에 기반을 둔 모든 개혁 시도는 곧 실패할 수밖에 없다. 어떤 원리도 풍속이 될 수 없으며, 오랜 전통에 근거하지 않은 법은 민중에게 진정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시행될 수도 없다. 이들 연설에서 버크는 결코 이성에 호소하지 않았으며 언제나 역사를 논거로 이용했다. _ 자크 고드쇼, <반혁명> , p90


  '혁명 2030' 시리즈를 읽으며 혁명(革命 revolution)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기존의 가치와 절연한 전혀 새로운 시대를 가져온 것에 비유되는 변화도 결국은 기존 방식의 또다른 변주가 아닐까. 전혀 새로운 가치로 등장한 것들도 보다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반(反)혁명의 과정 속에서 우리의 삶 속에 녹아들였을 때 비로소 그 가치가 실현되기에 처음에 등장한 혁신만으로 세상을 온전히 바꾸기는 쉽지 안음을 생각하게 된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촉발된 혁명의 이념이 나폴레옹 전쟁을 통해 유럽과 세계 전역으로 뻗어나간 듯 보였으나, 결국은 많은 문제를 과제로 남겼듯이, 과학혁명으로 촉발된 변화도 그 과제가 풀리지 전까지 많은 혼란이 있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혁명 2030에서 그려지는 낙관적인 유토피아(Utopia)는 아쉽게도 그리 금방 오지 않을 듯하다. 다른 한편으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디스토피아(Dystopia) 또한 그렇게 쉽게 오지 않을 수 있겠다는 점은 그런 아쉬움을 충분히 위로할만한 희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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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8-10 21: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2-08-10 22:14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

꼬마요정 2022-08-11 08: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겨울호랑이 2022-08-11 09:11   좋아요 2 | URL
꼬마요정님 감사합니다. 시원한 하루 보내세요! ^^:)

얄라알라 2022-08-11 10: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당선작들 제목 보다가, 누구 작품일까? 호기심과 함께 클릭했는데 겨울호랑이님!!! 축하드립니다

겨울호랑이 2022-08-11 12:31   좋아요 2 | URL
제목 작명이 좋았습니다 ㅋㅋ 얄라얄라님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그레이스 2022-08-11 12: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

겨울호랑이 2022-08-11 12:31   좋아요 3 | URL
그레이스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

mini74 2022-08-12 07: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 보고 나폴레옹 세계사 관심이 생겼어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축하드려요 호랑이님 *^^*

겨울호랑이 2022-08-12 08:01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을 통해 나폴레옹 전쟁을 단순히 개인의 야심을 충족하기 위한 전쟁이 아닌, 세계사적인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미니님 좋은 독서 시간 되세요, 감사합니다!^^:)

thkang1001 2022-08-12 07: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2-08-12 08:01   좋아요 0 | URL
thkang님 감사합니다. 모처럼 맑은 날, 건강한 하루 되세요! ^^:)
 

암스트롱은 고대 또는 근대적 형태의 폭력은 그 근원을 종교 그 자체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인간과 국가에 내재된 본성"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신명기에 나타나는 제노포비아Zenophobiaa적 신학사상은 유대왕국이 정치적으로 붕괴에 직면했을 때 나타났"고, 무슬림의 지하드Jih?db나 타크피르takfir(배교자 혹은 불신자를 규정하는 절차)의 부활은 "주로 서구 제국주의(기독교와 결탁한)가 초래한 정치적 긴장상태와 팔레스타인 문제"때문이라는 것이다.

엘러는 모든 종교가 ‘본질적’으로 폭력 성향을 갖는다는 주장을 부인한다. 그러나 그는 일신교의 선과 악을 명확히 구분하는 이분법적 성향이 "돌이킬 수 없이 적대적"이며 "투쟁과 폭력의 가능성이 상존하는" 두 영역을 만들어냄으로써, "세계의 기본 구조에 분쟁의 씨앗을 심었을" 뿐 아니라, "타 종교에 대한 박해는 필수불가결하고 중요한 행동이라고 여기도록 하는 맹렬한 신념을 추종자들의 마음속에 새긴다."라고 주장한다.

성소聖所와 신의 영감을 받았거나 그와 유사한 권위를 부여받은 성서聖書가 애벌로스가 언급한 첫째와 둘째 희소자원에 해당한다. 이것들이 희소자원인 이유는 이것에 접근하거나 이것을 통제하고 해석하는 자격이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지기 때문이다. 특권 의식과 구원이 나머지 희소자원인데 이것들은 종교적 전통에 따라 특별한 경우 외에는 개인에게 부여되지 않는다. 네 가지 자원은 분명 서로 관련되어 있는 한편, 여러 측면에서 상호독립적이다.

진화적 관점에서 볼 때 일신교는 대단히 효율적으로 내집단과 외집단의 구별을 만들어냈으며, 또한 그것을 강화하고 정당성을 부여해왔다. 아브라함 종교는 모든 동정심을 없애고("너희의 눈이 그들을 동정하지 말 것이며", 신명기 7:16) 모든 형태의 폭력을 허용한다("그들의 머리와 손가락을 잘라 버리라", 수라 8:12). 1차 십자군전쟁은 이런 유혈폭력의 좋은 보기이다.

수컷 동물들 (특히 유인원과 원숭이) 에게서 나타나는 가장 끔찍한 진화적 전략은 영아살해다. 오직 수컷만이 그런 행동을 저지르며, 특히 다른 수컷을 권좌에서 밀어낸 후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영아살해의 번식적 이득은 명백하다. 경쟁자 수컷의 자손을 살해함으로써 살해자(그리고 그의 수컷 자손)는 미래에 암컷을 두고 경쟁할 필요가 없어진다. 또한 이렇게 자식을 잃은 암컷은 즉시 발정기에 들어가 살해자에게 추가적인 번식의 기회를 제공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비폭력이 폭력보다 목적 달성이란 측면에서 더 뛰어난 이유는 무엇인가? "민중의 힘"이라고 체노베스는 말한다. 그러면 얼마나 많은 민중이 저항에 참여해야 하는가? 그녀의 데이터에 따르면 "일단 전인구의 3.5%가 능동적이고 지속적으로 참여한 저항운동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으며, 많은 경우 그보다 작은 참여율로도 성공했다." 또한 "실제로 3.5%의 문턱을 넘어선 모든 투쟁은 비폭력적인 것이었다. 순전히 비폭력 수단에 의지한 투쟁의 규모는 평균적으로 폭력적 투쟁의 네 배였다. 그리고 성별, 연령, 인종, 정치세력, 사회계층, 그리고 생활 영역권에서의 대표성도 훨씬 높았다."

테러리스트는 자신보다 강한 적들로 하여금 그 칼날을 스스로에게 향하도록 하는 전술을 쓴다. 그리고 그런 전술이 미국에서 효과를 보고 있다. 그 결과로 우리는 사법제도와 법 집행의 왜곡, 프라이버시의 침해,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선용할 수 있는 에너지와 자원의 낭비 등을 자초했다. 미국에 진정한 위협은 테러리즘이 아니라 공포의 문화다.

의식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수록 자아의 실재에 대한 믿음은 약해진다. 그러므로 자아의 환영에 현혹되지 않고 의식의 실체를 직접 경험한다면 우리는 어느 정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그 결과로 우리는 편협한 시각을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압박감을 극복할 수 있으며, 보편적인 사랑을 비롯해 명상이 약속하는 모든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피케티는 조세와 재정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손’의 마법이 아니라 경제정책이라고 주장한다. 피케티에 따르면 불평등을 초래하는 근본 원인은 정치적 상황이다.

피케티는 지난 100여 년의 역사를 살펴보면 소득불평등은 노동과 자본 영역 모두에 널리 퍼져 있지만 자본 투자 영역에서 훨씬 심각하게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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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정치가들은 제국이란 ‘무력’으로 얻어내고 유지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동일한 수단에 의해 더 우세한 열강에게 넘어갈 것이라고 믿었다. 나폴레옹의 태도가 영국의 태도와 조금이라도 다른 게 있는가?

나폴레옹이 러시아에서 패배했다는 소식은 세력 균형을 극적으로 변화시키고 프랑스의 헤게모니를 무너뜨릴 기회를 알리면서 유럽 전역에 충격파를 몰고 왔다. 1812년 12월 러시아 협상가들과 프로이센 장군 요한 폰 요르크 사이에 체결된 타우로겐 협약은 나폴레옹 전쟁의 새로운 국면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아마도 최종 조약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참패를 당한 프랑스에 대해 동맹 세력이 놀랄 만큼 관대했다는 점일 것이다. 중요한 양보로서 그들은 최종 조약이 공식 비준되기도 전에 프랑스 영토에서 군대를 철수하기로 합의했다. 더 나아가 프랑스 군대의 향후 규모에 아무런 제한을 부과하지 않았고, 프랑스가 내야 할 배상금을 산정하거나 프랑스 군대가 점령지와 정복지에서 뜯어낸 막대한 액수를 보상하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놀랍게도 나폴레옹이 정복전쟁 동안 탈취한 막대한 양의 예술품을 반환하라는 요구도 없었다.

메테르니히는 유럽 사회들이 일종의 균형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 균형이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의 정복전쟁들로 깨졌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유럽에 다시 안정을 가져오려면 "정당한" 통치자들이 왕위에 복귀해야 하며 나폴레옹이 초래한 변화들의 전부는 아니라 해도 일부는 되돌릴 필요가 있었다. 정치적 평형 상태는 또한 서부에서 프랑스를 억제하고 동부에서 러시아의 지배를 방지함으로써 유럽에서 오스트리아의 입지를 수호하려는 메테르니히의 목표에 핵심적 성격을 부여했다.

정당성 원칙의 옹호자로 스스로를 내세움으로써 탈레랑은 실질적으로 프랑스를 패전국에서 러시아의 침략적 행위를 억지하고자 하는 누구에게나 소중한 파트너로 탈바꿈시켰다. 이는 당연히 영국과 오스트리아에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나폴레옹 전쟁은 19세기에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전쟁은 군주제, 귀족제, 노예제 같은 제도들의 정당성과 전통적 생활방식을 뒤흔들었다. 또한 해소되지 않은 여러 쟁점들을 남겼다. 그러므로 후속 세대는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중앙집권화와 근대화, 공화주의와 군주정주의, 산업화와 급진주의의 유산들을 두고 씨름했다. 세인트헬레나섬에 유배된 나폴레옹은 정치적 전설이 자라나게 했고, 전설은 재빨리 그에 맞서 싸웠던 사람들의 후손들에 의해 기려지고 이상화된 자애로운 황제에 대한 강력한 신화로 진화했다.

나폴레옹 전쟁은 무엇보다도 유럽 내 갈등이었지만, 유럽과 나머지 세계와의 관계를 형성했다. 이 무력 분쟁은 유럽 국가들이 개혁과 근대화라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과하도록 강요하고 촉진했으며, 그 과정에서 세계 여러 지역들 간 세력 균형을 변화시켰다. 유럽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유럽은 중국과 이슬람 세계의 더 선진적이고 세련된 문명들에 뒤처져 있었다. 하지만 나폴레옹 전쟁이 막을 내릴 때쯤 군사적 문제, 산업 발달, 기술력 측면에서 나머지 세계에 대한 유럽의 우위는 확연했다. 이는 대분기의 시작이었고, 이 전환의 엄청난 의미는 19세기가 흐를수록 더 분명해진다.

빈 회의에서 도출된 나폴레옹 전쟁 이후 평화 정착은 네 가지 원칙을 토대로 했다. 첫째, 유럽 열강은 어느 한 나라가 유럽을 지배하는 상황을 막고 평화 유지에 협력적인 접근법을 장려함으로써 정치적·군사적 세력들 간의 국제적 평형 상태를 유지하고자 했다.

두 번째는 정당성의 원칙으로서, 이 원칙은 합법적인 군주정들을 복귀시키고 그리하여 대륙에서 전통적인 제도들의 보전을 외견상으로는 꾀했다. 프랑스 혁명 기간 동안 그리고 나폴레옹 치하에서 많은 군사적 승리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귀족계급이 주관하는 군주제 국가들의 구질서는 살아남았고 궁극적으로 전쟁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자유주의의 주요 관념들─개인의 자유, 법 앞에서의 평등, 자유방임 경제─은 1815년에 결코 패배한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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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동인도회사는 인도아대륙이 농업 위주의 자급자족 경제로는 급성장하는 영국 자본주의 시스템과 경쟁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활용했다. 조각조각 난 인도 토후국들은 영국이 동원할 수 있는 자원에 상대가 되지 않았고, 그 덕분에 동인도회사는 무시하지 못할 군사력을 유지하고 손실을 메우고, 유럽식으로 훈련받은 인도 세포이 병사들로 이루어진 군대에 갈수록 더 의존할 수 있었다. 그러한 군사력은 전장에서 충분히 통했고, 더 중요하게는 유럽 정규군보다 비용이 덜 들었다. 그 결과 회사의 지배 영역을 확장하는 비용은 줄곧 비교적 낮게 유지되었다.

동인도회사 총독으로 웰링턴 공작의 형 리처드 웰즐리가 임명된 것은 영국이 인도 지배를 확대하게 되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5장에서 살펴본 대로 웰즐리는 유럽 대부분 나라의 발목을 잡은 혁명의 혼란을 면밀히 주시했고, 바로 지금이 인도에서 영국의 입지를 단단히 다질 순간이라고 확신했다. 그렇게 입지를 다지고 나면 인도의 방대한 자원들은 영국의 이해관계를 전 세계적으로 증진하는 데 일조할 것이다. 웰즐리는 프랑스 세력에 대한 공포를 자신의 제국주의적 구상에 대한 구실이자 영국의 팽창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이용했다. 그가 인도 토후국들을 취급하는 방식에서 종속 동맹 시스템에 대한 영국의 태도 변화가 확연히 감지되었다

중국의 관점에서 마카오 사건은 아닌 게 아니라 만만찮은 적수에 맞선 중요한 승리였지만 이러한 결론은 나폴레옹 전쟁 동안 영국의 개입이라는 더 폭넓은 국제적 맥락을 간과한 것이다. 육군은 유럽에 투입되어 있고 해군은 전 대양에 흩어져 있는 상황에서 영국은 또 다른 분쟁에 휘말릴 생각이 없었고, 그것이 핵심적인 세입원과 엮인 경우라면 더욱 그랬다. 마카오 사건은 자국 영토가 침해된다면 중국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영국이 가늠해볼 기회가 되었고, 청나라 조정이 그런 일을 일체 용납하지 않으리란 점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이해가 향후 영국의 대중국 정책을 형성했다.

모리셔스 함락은 인도양에서 프랑스의 마지막 전초기지를 제거했다. 영국은 마지막 남은 프랑스의 프리깃함들을 압수했을 뿐 아니라 인도양 전역에 걸친 추후의 활동을 위한 핵심 기지도 손에 넣었다. 〔프랑스식 지명 모리스에서〕 모리셔스로 재명명된 섬은 1968년까지 영제국 소속으로 남았다. 마스카렌제도의 함락 소식은 그랑포르에서 프랑스의 승리에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나폴레옹이 프랑수아 로크베르 후위제독에게 소규모 전대를 이끌고 인도양으로 출항하라고 재가한 뒤에야 도착했다.100 로크베르는 1811년 2월에 마스카렌제도에 도착했다가 그곳이 영국인들의 수중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영국 해군 전대가 곧 그들을 추격해 1811년 5월 20일에 타마타브(마다가스카르에 있는 교역소) 근처에서 한 척을 제외하고 모두 사로잡았다. 타마타브 전투는 인도양에서 벌어진 프랑스 해군의 최종 교전이었고 영국 상선들에 대한 프랑스의 위협을 거의 다 종식시켰다.

결국 그들은 미국이 북아메리카의 에스파냐 영토를 획득하는 미래가 차악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나폴레옹이 신생 공화국을 위협할 식민 제국을 건설하는 끔찍한 그림을 그려 보이며 미국을 영국과의 동맹에 끌어들이고자 했다. 1803년 애딩턴 총리는 미국인들에게 영국 정부는 루이지애나가 "프랑스의 수중에 들어가는 것을 막는 차원"20에서 미국 영토에 추가되는 것을 반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므로 루이지애나 매입 소식을 들었을 때 영국 외무장관은 미국 쪽 상대방[미국 국무부]에게 "폐하(조지 3세)께서 이 소식을 기쁘게 받아들였다"라고 알렸다. 물론 여기에 표명된 감정은 진심과 거리가 멀었다

루이지애나 매입의 여파로, 에스파냐 영토에 대한 미국의 욕망은 더욱 커졌다. 미국 정부는 영국이 플로리다를 탐낸다고 의심했는데, 나폴레옹 전쟁 시기를 한참 지나서까지도 지속될 의혹이었다. 더 목전의 목표는 영국의 해상력을 활용해 프랑스의 식민지 염원을 좌절시키는 것이었다.

프랑스의 제국적 권력은 이탈리아와 네덜란드, 독일 국가들에서 민족의식의 기운을 일깨웠고, 프랑스의 점령은 교육 받은 엘리트층과 궁극적으로는 서민들로부터 애국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프로이센에서는 민족 정서가 꿈틀대고 있었고 이곳의 저명한 독일 작가와 철학자들은 나폴레옹에게 등을 돌리고 민족주의 선전과 자유에 대한 새로운 의식을 일깨우는 데 위대한 재능을 바쳤다. 앞서 겪은 군사적 패배들과 그에 따른 깊은 낭패감과 굴욕감은 독일 계몽사상의 성격 자체를 변화시키는 데 일조해, 이전의 세계시민주의와 합리주의 요소를 희생시켜가며 독일 계몽주의에 낭만적이고 민족주의적인 특색을 가미했다

러시아 원정은 나폴레옹 제국에 참사에 가까운 결과를 가져왔다. 제국은 전에도 시험에 들었지만 이전의 어느 실패도 러시아에서 당한 패배의 규모에는 근접하지 않았다. 대육군은 전멸하다시피 했다. 침공에는 궁극적으로 60만 명가량이 투입되었지만─주력 침공군은 45만 명이었고 나중에 약 15만 명의 증원군이 더 불려왔다─12월에 네만강을 다시 건넌 병사는 10만이 채 못 됐다. 50만 명의 병력 손실 가운데, 아마도 무려 10만 명 정도는 이탈병일 것이고 12만 명 이상이 포로로 잡혔다.52 나머지는 질병이나 전투에서 입은 부상으로, 또는 혹독한 환경에 노출되어 죽었다. 그만큼 파국적인 것은 군사 장비의 손실이었다. 나폴레옹은 약 1300문의 대포 가운데 920문을 잃었고, 기병은 사실상 일소되었다. 훈련된 말 대략 20만 마리가 러시아 벌판에 쓰러져 있었다. 포병과 기병 어느 쪽도 향후의 전역 동안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다.

대육군은 전력의 거의 절반을 전쟁의 첫 8주 사이에 수비대 배치와 질병, 탈영, 사상자로 인해 상실했다. 또 이번 원정군에는 이전의 전역들에서 볼 수 있었던 수준 높은 규율이나 전폭적인 헌신이 없었다. 7~8개국에서 온 병사들이 원정군을 구성했고, 따라서 그들은 패배의 부침 앞에서 단결력과 규율을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나폴레옹은 병참에 철저하게 대비했지만, 그의 보급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영국은 나폴레옹에 맞서 전 세계에 걸쳐 무력 분쟁에 얽혀 있고, "그중에서도 나라의 이해관계가 (…) 더 직접적으로 걸려 있는 지역에서 싸움을 한층 더 열심히 수행하는 데" 자원이 투입되어야 했다. 리버풀의 편지는 캐나다가 스스로 건사해야 하며, 캐나다에서 영국의 전략은 순전히 미국에 영토를 뺏기지 않는 수세적인 전략이어야 함을 분명히 했다. 심지어 영국군이 나중에 멕시코만 연안지역과 체서피크만에 공세를 감행했을 때에도 이 군사작전들의 전반적인 목적은 캐나다 전선의 압력을 덜어주는 것이었다. 반대편 미국의 전쟁 목표는 선원의 강제 징모와 해상에서 중립국의 권리 쟁점을 놓고 영국의 양보를 얻어내는 것뿐 아니라 쇼니족의 테쿰세와 텐스크와타와가 수립한 대연맹 같은 친영파 원주민 부족과 캐나다를 상대로 한 영토 팽창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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