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아베 내각의 행보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이 외교, 안보 정책 전환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주의를 끄는 것은 패전 이후 70년 만에 강대국 간 지정학 게임에 가담하려는 움직임이다. 지정학 게임의 요체는 대중 '억지' 전략으로, 한층 더 강력한 미일동맹을 구축하여 부상하는 중국, 특히 중국의 해양 진출을 억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른바 '미국/일본 대 중국' 구도의 안전보장 전략을 말한다. 아베 내각의 지정학 게임은 자민당 보수우파 세력의 국가관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그렇다면 어떠한 국가관을 말하는가. 아베 총리는 정권의 이념으로 '전후체제의 탈각'을 내걸었다. _ 서승원, <근현대 일본의 지정학적 상상력>, p302
며칠 전 아베 신조(安倍 晋三, 1954~2022) 전 일본 총리의 총격 사망 사건이 너무도 갑작스러운 일이어서 충격적으로 느껴진다. 우리나라와 극한 대립각을 세우던 일본 총리,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 참배를 비롯한 여러 망언, 대한(對韓) 수출규제로 한일 무역전쟁을 일으킨 장본인. 그에 대한 우리 일반의 인식은 정치인들과는 달리 부정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역대 최장기 집권 총리임을 생각한다면, 그가 미친 영향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기에, 그의 사망을 맞아 아베가 총리로 재직하던 시기의 일본 정책을 돌아보는 페이퍼를 작성해본다.
중국 칭화대의 류장용(劉江永) 교수가 쓴 논문이 흥미롭다. 작금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의 중국 정책은 1세기 전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내각(1885.12~1901.6)의 그것과 판박이처럼 닮았다는 내용이다. 논리적 비약이 없지는 않지만 수긍이 가는 부분도 적지 않다. 사실 아베 총리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국가상(國家像)도 메이지 국가이다. _ 서승원, <근현대 일본의 지정학적 상상력>, p299
서승원 교수는 <근현대 일본의 지정학적 상상력>에서 아베 내각의 정치적 특징을 외교 안보 전략에서 찾는다. 미국과 철저하게 한 편이 되어,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틀을 짜고, 이러한 구도에서 동북아에서 재무장을 실시하여 다시 메이지(明治)시대의 일본으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생각. 조슈 번(長州 藩)의 후예인 아베가 충분히 꿈꾸었을 목표다. 아베 내각의 주된 정책 방향은 '전후 체제 탈각'이다. 해군역사학자인 알프레드 마한(Alfred Thayer Mahan, 1840~1914)의 관점을 수용하여 현대 G2인 미국과 중국을 각각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에 위치시키고, 이들의 갈등을 이용하여 헌법9조를 고치고 재무장하고, 과거 일본제국의 영광을 찾겠다는 일본 극우의 발상을 '전후체제 탈각'의 내용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과거 일본이 저지른 죄악과 그에 대한 사과를 부정하는 행태는 이웃인 우리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하다.
자신의 집권을 위해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1941 ~ )이 일본 국민의 무의식에 자리했다고 평가한 헌법 9조를 의식의 세계로 끌어올려 파괴하려는 무리수도 주저하지 않았던 그의 생전을 생각하면, 우리의 분노를 누구보다도 원했던 것은 아베 자신이 아니었을까.
헌법 9조는 자발적인 의자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외부로부터의 강요에 의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후 그것이 깊이 정착되었습니다... 헌법 9조는 일본인의 집단적 '초자아' 이자 '문화'입니다.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하는데, 문화가 바로 그와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세대의 차이를 넘어서 전해집니다. 그것은 의식적으로 전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식적으로 제거할 수도 없습니다. _ 가라타니 고진, <헌법의 무의식> , p32
도고 가즈히코(東鄕 和彦 2015)는 아베 총리가 내거는 전후체제 탈각을 대체로 안전보장, 역사인식, 그리고 국가의 재군축이라는 세 측면에서 파악한다. 첫째, 전후 일본에 계승되어 온 평화주의에 대한 반성과 비판에서 자국의 방위와 세계평화를 위해 군사력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둘째, 도쿄재판에 유래하는 자학적인 역사인식을 배제하고 위안부 문제나 난징사건과 관련하여 사실관계를 넘어서는 국제사회의 일방적 비판에 대해 분명하게 반론해야 한다는 견해이다. 셋째, '이해득실을 초월한 가치'의 경우는 전후 사회에 있어서의 자연과 전통/문화의 상실, 그리고 그 배경으로서 자신과 그 주변을 넘어선 사회전체, 공공(公共)을 중시하는 정신이 결여되어 왔다는 생각이다. _ 서승원, <근현대 일본의 지정학적 상상력>, p304
일본에 해외에 파견할 군대가 있었다면 국지전이라고 일으켰겠지만, 평화헌법으로 인해 그럴 수 없었던 제약, 대신 외교적으로 이웃나라인 우리와 끊임없는 분쟁을 일으켰던 아베였기에, 그의 죽음에 대해 애통한 마음을 갖기 어렵다. 기껏해야 한 인간이 소멸해간다는 생물학적인 죽음에 동병상련의 마음 정도가 그의 죽음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애도의 한계라 여겨진다. 일본과 우리가 현재 경제전쟁 중임을 생각한다면, 적장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는 게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정유재란 때도 조선 장군들이 도요토미 히데요시 죽음에 조문을 표했던가. 오히려,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물러가는 적을 하나라도 잡으려 했던 전례를 생각해 본다면, 소위 정치인이라고 하는 이들의 행태는 솔직히 이해되질 않는다.
아베 정권은 태생부터 한국 비판 세력이었다. 위안부 문제 등 한국의 역사 인식을 비판하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사람들이 일본의 극우파이자 아베 정권이다. 그 이유는 한국과 중국만이 일본 극우파들의 주장에 강한 반론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극우파로서는 그들의 정체성을 확립시키기 위해서는 강대국인 중국 한수 아래로 생각하는 한국을 세게 때리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렇게 한국을 때릴수록 극우파들은 일본 내에서 자신들에 대한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_호사카 유지, <아베, 그는 왜 한국을 무너뜨리려 하는가>, p216/382
요약하자면 아베 내각의 지정학 게임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첫째, 일본의 미일동맹에 대한 경사가 유례가 없을 정도로 심화되었다. 이러한 미일동맹 제일주의는 역으로 전략적 선택의 폭을 좁히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으며, 또한 대중 억지력의 향상 보다는 동북아 안보딜레마를 심화시킬 개연성이 크다. 둘째, 아베 내각에 들어서면서 거의 모든 대외전략이 중국문제로 수렴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최근 혐중/반중 일색의 국내 여론과 중국에 대한 대항 의식은 과거 러시아에 대한 그것과 유사한 측면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셋째, 지정학 게임과 가치관 외교의 충돌이다. 정치체제결정론적 사고는 외교의 이념화, 관념화를 가져오며 냉철한 국익판단과 전략적 유연성을 필요롤 하는 지정학 게임과는 양립하기 힘들다. 넷째, 과거사를 매개로 한 정체성의 정치는 중국을 이질적 체제로 타자화하는 촉매제로 작용했다. 역사수정주의는 대외관계에서 새로운 외피가 필요했는데 이는 지리적으로는 해양국가, 정치체제로는 민주국가, 그리고 이념적으로는 보편적 가치였다. _ 서승원, <근현대 일본의 지정학적 상상력>, p357
정치인 아베 신조는 죽었음에도, 최근 심각해지는 경제위기 상황 속에서 그의 경제 정책인 '아베노믹스'는 이후 우리나라에서 자주 언급되지 않을까하는 불안한 마음이 든다. 법인세 감세, 사회보장제도 개악, 민영화 추진, 노동 규제 완화 등으로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새정부정책의 주된 방향이 이미 실패로 입증된 아베노믹스와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극우 정치인 아베는 죽었지만, 그가 남긴 부채가 일본 뿐 아니라 남은 우리에게도 짐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대담한 금융 정책, 기동적 재정 정책, 민간 투자를 불러일으키는 성장 전략인 '세 개의 화살'로 장기간 계속된 엔고와 디플레이션 불황에서 탈출하여 고용과 소득의 확대를 도모한다'는 아베노믹스의 핵심 기조가 모두 언급되어 있다. _ 안베 유키오, <일본 경제 30년사>, p345/456
왜 아베노믹스는 실패했을까. 확실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세 개의 화살'이 전부 과녁을 벗어나 일본 경제의 장기침체나 디플레이션의 원인에 닿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의 진짜 요인은 소비 증가 부진이었고, 그 배경에는 임금의 하락과 상승 부진이었다. 아무리 금융을 완화시켜도(첫 번째 화살), 그리고 다양한 형태로 기업이 이익을 보도록 배려해도(세 번째 화살) 임금이 늘지 않는 한 일본 경제의 '재생'은 없고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또한 공공투자의 확대(두 번째 화살)는 소비 부진에 의한 수요 부족을 보완한다는 점에서 '세 개의 화살' 중 비교적 목표에 근접한 화살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재원 문제도 있고 화살 수량에 제한이 있어 효과는 일시적인 것에 그치고 말았다. 둘째, 아베노믹스가 사람들의 삶의 향방에 너무 무관심했고, 임금을 올리는 등 보다 나은 삶을 만드는 정책이 필요했음에도 반대로 소비제 증세, 사회보장제도 개악 등 생활에 해를 입히는 정책을 계속해서 취한 것이다. _ 안베 유키오, <일본 경제 30년사>, p406/456
PS. <일본회의의 정체>에서는 일본 종교계와 결탁한 극우세력의 실상이 자세히 그려진다. 일본 신도가 정치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일본정가의 모습이 그렇게 낯설지 않은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그러길 바라본다...
신도 종교의 중심적 존재라 할 수 있는 메이지 신궁. 그리고 전후 일본 우파운동에 큰 영향을 미친 다니구치 마사하루가 이끄는 거대신흥종교 '생장의 집'. 양대진영의 지도자들에게 우파계 종교인이 호소함으로써 두 진영의 두터운 지원을 받으며 발족한 '일본을 지키는 모임'. 이 구도는 지금도 여전히 명맥을 잇고 있다. 즉, 일본회의라는 존재의 배후에는 신사본청을 축으로 하는 신도 종교단체와 생장의 집의 그림자가 조직과 인맥에 드리웠고, 어쩌면 자금에도 짙게 드리워져 있을 것이다. _ 아오키 오사무, <일본회의의 정체>, p42/418
일본회의와 그 핵심, 주변에 있는 '종교심'에 의해 움직이는 종교 우파의 정치사상은 확실히 그러한 위험성 - 전쟁 전으로의 회귀 - 을 내재한다. 자민족 중심주의, 천황 중심주의, 국민주권의 부정, 지나치기까지 한 국가 중시와 인권의 경시, 정교분리의 부정. 신사는 종교가 아니라는 이나다의 논리도 '국가의 제사'로 여겨지던 전쟁 전 국가신도의 논리와 매우 흡사하다. _ 아오키 오사무, <일본회의의 정체> , p384/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