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도, 마감일도 없이 살다 보니 책 읽는 패턴이 "충동 따르기"형으로 바뀌어 간다. 예정에 없던 책을 손에 쥐면, 그냥 읽어버리기가 부지기수. [죽음은 직선이 아니다]는 400페이지가 훌쩍 넘어가는 두꺼운 에세이다. 반납일이 많이 지나서 도서관에 고이 보내드리려고 모시고 나왔다. 하지만 앞 몇 페이지를 읽는 순간 저자 김범석의 필력에 반해서 4시간을 꼬박 읽었었다. 아. 이런 충동성은 자제해야 하는데, 책 앞에서는 특히 안 되네.

  


"서울대학교 의예과 96학번"임으로 미루어, 김범석 교수는 50세 일 듯하다. 열일곱 살에 아버지를 폐암으로 여의고 가정이 풍지박살나고 사람들에게 배반 당하는 쓴 경험을 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책상 의자의 방석이 너덜너덜해질"(13) 때까지 공부하여 의대에 들어갔으니 얼마나 정신력이 강한 사람인지 가히 짐작이 간다.

내가 [죽음은 직선이 아니다]를 손에서 못 놓은 이유, 읽자마자 다만 몇 줄이라도 기록하려는 이유는 사실 이 책의 키워드- #암, #진화 #죽음 #삶 #자아 #피아 #self와non-self-보다도 저자의 학문하는 자세 때문이다. 김범석 교수는 학문, 특히 암 연구를 위해 만들어진 분처럼 느껴질 정도로 소명의식, 암을 골자로 발산형으로 뻗어가는 철학적 사유를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아버지를 잃고 삶의 고통을 처절하게 겪던 고등학교 2학년 소년은 "아버지의 목숨을 앗아간 '암'이라는 병에 대해 알아야만 했다." (13) 처음에는 '암'이라는 실체 모를 적을 향한 증오심으로 공부했으나 공부가 깊어갈수록 그는 '암'이라는 비정상 세포(들)보다는 정상세포, 죽음보다는 삶, 적보다는 나를 성찰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암은 변절된 나(암세포)를 죽이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병이다. 나를 죽여야 내가 사는데, 나를 죽이지 못해서 내가 죽는다.

[죽음은 직선이 아니다] 146쪽

의 인식에 이른다. 이는 단순히 시적 낭만이 아니라 이십여 년 환자를 돌보며 생사生死 과정을 관찰하고 치열하게 연구한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인식이다. 김범석은


암세포도 처음부터 암세포는 아니었고, 범죄자도 처음부터 범죄자가 아니었다. (257)

내가 이해하건 이해하지 않건 고정불변의 나는 처음부터 없다. 내가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살아 있지만 끊임없이 죽어가고 있다... 내 몸은 고정된 실체라기보다 모래성과 같은 존재다. 바닷가에서 조금씩 무너지는 모래성을 조금씩 다시 쌓듯이 내 몸도 없어지고 생기기를 반복하며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317)

[죽음은 직선이 아니다]


라며 "직선이 아닌 죽음"을 이야기한다.

나는 그가 본과 1학년 때, 크리스마스에 또래 스무 살들은 혜화동 대학로에서 연인의 허리를 감싸안고 데이트를 할 때, 창경궁 위로 내려앉는 석양을 보면서 의학논문을 읽고 연구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크리스마스이브에 혼자 실험실을 지키고 있자니 왠지 궁상맞게 느껴졌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붉게 물든 창경궁을 바라보며 그렇게 혼자 실험을 했다... 그날 읽던 논문에서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태아는 암과 같은 생존 전략을 이용한다

이 한 문장은 나를 온전히 사로잡았다... 온몸에 전율이 찾아왔다... 그때, 확신했다. 아, 나는 평생 암을 연구할 팔자인가 보다.

[죽음은 직선이 아니다] 225쪽


전문의료인으로서 학자로서 더 크게 성장한 후에도 김범석의 지적욕구와 소명의식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이름 없는 수많은 연구자가 한 편씩 논문을 내며 자기 어깨를 다음 사람에게 빌려주었고, 그 어깨를 딛고 다음 사람은 또다시 자신의 어깨를 내어"(101) 준 학문공동체에서 그는 더 가열하게 연구했다. 세계의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모인 학회 건물 남자 화장실을 상상하게 했던 다음 페이지에서 나는 빙긋 웃었다.

논문에서만 보던 이름들이 내 앞에 걸어 다니고 나에게 말을 걸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하고 기뻤다. 심지어 화장실에서 거장들과 나란히 오줌을 누었다. 오줌을 누며 거장들을 힐끗 보면 생각했다. 저 사람들이 했으면 우리라고 못 할 것도 없지. 우리도 한번 해봐야지.

[죽음은 직선이 아니다] 105쪽

나는 단순히 생의학의 시선에서 "암" 그 자체를 분석하는 데 집중하는 게 아니라, 암에서 출발하여 "자아와 비자아, 삶과 죽음, 내몸과 세계"의 경계를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김범석에게 놀랐다. 그리고 이 분이 계속 좋은 글과 말로 자신의 깨달음에 사람들을 동참시켰으면 좋겠다.


김범석 교수에게 배우던 서울대 의예과 학생이 어찌보면 매우 무례한 말을 교수에게 했다. "교수님은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힘드셨던 경험이 있어서 환자들과 가족의 입장을 누구보다도 잘 헤아릴 수 있어서 좋으시겠어요."(239) 부모님 모두 의사에게다 강남에서 유복하게 자라 불행한 자의 처지를 공감하기 어렵다는 그 학생의 말에 독자로서 나는 다소 불쾌해졌지만, 직접 그 말을 들은 김범석 교수는 오히려 대인배 마음으로 대응한다.

나의 어려웠던 환경과 내가 겪은 고단함이 30년 뒤 누군가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뒤집어 보면 좋은 환경은 나쁜 환경이고, 나쁜 환경은 좋은 환경이다.

[죽음은 직선이 아니다] 240쪽

참 좋은 의사, 참 열린 어른이다. 앞으로도 김범석 교수가 좋은 글을 많이 써주시기를 다시금 (독자로서) 부탁드리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한때 그림책을 얼마나 좋아했던가? 얼마나 많이 위안 받고 배웠던가? 그러나 시나브로 그림책과 멀어지던 차에 "2024 볼로냐 라가치상 대상"이라는 홍보문구를 보고 바로 데려왔다.

페루 작가 '이사 와타나베Issa Watanabe'의 『킨츠기』!

처음엔 책 제목이 사람 - 그림책 속에서는 날아가 버린 새로 상징된 가족원(저자의 딸)- 이름이라고 짐작했다. 왜냐하면 저자가 "사랑하는 딸 마에Mae에게"라고 그림책을 헌정했고, 주요 캐릭터인 토끼와 새가 부모자식 관계처럼 상상되었으므로.




토끼 한 마리가 찻잔 두 개를 들고 식탁으로 이동한다. 양복바지와 양장용 구두 차림으로 미루어 '아버지'로 상상된다. 테이블, 토끼 맞은편에는 빨간 새가 자리한다. 하지만 새는 어디선가 부름을 받은 듯 뒤를 돌아보더니 홀연히 날아가 버린다. 그 순간, 토끼가 새와 함께 가꿔나가려 했던 일상의 자잘한 재미거리가 와르르 무너진다. 조각난다. 말 그대로 절망, 무력감, 슬픔과 그리움이 뒤엉킨 카이오스 상태이다.

토끼는 떠나버린 새를 찾아 다른(무채색, 생기 없음, 어두움, 초월, 망자, 영혼) 세계를 헤매고 다닌다. 하지만 새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온다. 망연자실했던 아버지는 자세를 바로 잡아 앉더니 깨진 조각들을 주워 수리하고 정렬한다. 조각들을 이어 붙인다. 다시 희망의 나무를 키워내려는 심정으로.




비록 글자는 없지만, 이 그림책 [킨츠기]가 매일 식탁에서 마주 보는 가까운 존재, 즉 가족을 상징하는 인물이 갑작스럽게 사라짐(죽음)을 소재 삼았다는 것은 눈치 없는 독자라도 금새 알 수 있다. 이 아름다운 일러스트레이션을 나는 차마 자세히 보기 어렵다. 상실의 고통과 다 포기하고 싶은 좌절감을 상상하게 될까, 토끼에게 감정이입하게 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책장을 빠르게 넘긴다. 그러나 마지막 장을 덮자마자 다시 맨 앞으로 돌아간다. 두 번 연거푸 [킨츠기]를 본 후, 궁금해져서 제목을 검색하다 그제야 알게 된다. '킨츠기'는 사람 이름이 아니고 저자의 딸 이름이 더더욱 아님을. 킨츠키kintsugi는 일본의 전통도예수리기법이다.

Mishima ware hakeme-type tea bowl with kintsugi gold lacquer, 16th century


작가 이사 와타나베는 싱글 맘으로서 본인이 색연필로 한 땀 한 땀 수놓듯 그리는 그림책은 모두 딸, 마에Mae를 위한 선물이라고 한다.

"사랑하는 딸 마에에게"

[킨츠기] 첫 페이지에서 옮김.

https://www.redcariboushop.com/blogs/news/interview-with-issa-watanabe-the-art-of-storytelling-through-images-and-silences


Q: Has your experience as a mother influenced your work in any way?엄마가 된 경험이 당신의 작업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A: Being a mom influences every aspect of your life. Your perspective on things changes. (...)

I want Mae to read what I make and enjoy it... I dedicate everything to her.. 엄마가 된다는 것은 인생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쳐요.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죠. (…) 저는 메이가 제가 만든 책을 읽고 즐기기를 바라요. 그래서 제 모든 작업을 딸에게 바칩니다.


인터뷰를 읽고 작가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작품을 쓰나 알고 나니, [킨츠기]에서 처음 느꼈던 고통과 절망의 압박감이 조금 가벼워진다. '결국 작가가 진정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절망, 파괴 혹은 붕괴, 깨어짐 보다는 접합, 회복, 치유, 희망이었구나' 싶어서 마음이 포근해진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소개해본다. 이런 아름다운 그림책을 보고 자라는 페루 꼬마공주님 Mae의 행복을 멀리 한국에서 빌어본다.

 

5월 30일 한가로움으로 어슬렁 거리다가 찍은 사진들이다. 그림책 [킨츠기]의 메시지와 잘 어울리는 듯하여 나란히 올린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5-05-31 2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형물인듯요
넘 예뻐요!
아!
죽음과 킨츠기를 연결시켜 생각하면, 희망적인 메세지일까요?
일본의 죽음에 대한 전통적 사상이 배경이 되는가요?

얄라알라 2025-06-01 16:23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그레이스님 너무나 반가우세요. 조형물 - 사슴 말씀하시나요? 정말 예쁘죠?

저도 사실, 킨츠기를 이 그림책 덕분에 처음 들어봤는데 바로 부토가 떠올랐어요. 일본만의 고유하고, 쉽게 해석할 수 없는 예술영역(?)들이 있나봐요. 저도 더 알고 싶네요^^

hnine 2025-05-31 17: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급기야 킨즈키라는 제목의 그림책까지 나왔군요.
작년에 박물관대학 강의 들으며 저도 처음 알게 되었어요. 일본 사람들의 매우 특이한 취향이라면서 어떤 모양으로 깨졌고, 어떻게 그 틈을 메워 넣는냐에 따라 그 도자기의 가격이 천차만별로 매겨진다더군요. youtube 채널에 들어가서 kintsugi 라고 검색해보면 그 인기도를 짐작할 수 있을거라면서요.
더구나 이 그림책의 저자가 일본사람도 아니고 페루 사람이군요.

그레이스 2025-05-31 20:15   좋아요 1 | URL
유튜브 보고 왔어요.
흥미롭네요. 재미있어요.
집에 접시를 깨뜨려보고 싶은 욕구가 마구 생기는 !^^

얄라알라 2025-06-01 16:24   좋아요 0 | URL
와. 박물관대학이 정말 전문분야 강의를 열어주었나봐요. 틈을 매우는 질료(?)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거군요. 저도 처음에는 당연히 일본 사람인줄 알았다가 구글 검색해보니 부드럽고 인자한 엄마 미소 한 가득 품은 엿어분이시더라고요

얄라알라 2025-06-01 16:24   좋아요 1 | URL
ㅋㅋㅋ그레이스님 참으시어야 합니다 ㅎㅎ
 


O 헨리. 애드가 알렌 포.기 드 모파상. 안톤 체호프. 알퐁스 도데. 프란츠 카프카.

초중등 시절 단편에 푹 빠졌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단편소설을 간식이나 야식이 아니라 주식으로 읽고 큰 줄 알았죠.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 보니, 단편의 세계를 아예 접하지 못한 어린이는 물론 어른도 많아서 놀랐습니다.

단편작가 목록을 꽤 오래 업데이트 못했는데, 기쁩니다. 드디어 멋진 작가를 만났으니까요. 레이먼드 카버 Raymond Carver(1938-1988). 책덕후님들 사이에서 입소문 열기가 후끈했던 [대성당 Cathedral]을 직접 읽으 전율을 느꼈습니다. 제가 달달한 환타 맛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담백밍밍 현실세계에 끌리는구나를 깨달았고요.

다소 무뚝뚝해 보이는 레이먼드 카버는 19살에 결혼합니다. 그해, 두 살 더 어린 아내 메리앤 버크(Maryann Burk)사이에서 첫 딸을 낳았습니다. 이 년 후, 둘째 아들이 태어났으니, 또래들은 한창 청춘과 대학생활을 즐길 스물 한 살에 두 아이의 아빠이자 가장이 된 셈이지요. 카버는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수위, 배달부, 병원 청소부 등으로 일하면서 짬짬이 글을 썼다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글 쓸 시간 부족, 블루컬러로서의 경험이 그가 매력적 단편을 창조하게 된 토양을 제공해주었죠.


My circumstances of unrelieved responsibility and permanent distraction necessitated the short story form.

Raymond Carver, Fires: Essays, Poems, Stories


레이먼드 카버는 알코올 중독(을 이겨낸) 작가로도 유명합니다. 취기가 머리 위까지 뜨끈하게 올라올 때 글 쓰고 싶은 충동을 느껴봤습니다만, 행동에 옮긴 적은 드물어요. 하지만 레이먼드 카버는 오랜 기간 알코올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글을 쓰고 다듬었군요. 그 과정에서 작가가 느꼈을 감정을 상상할 길이 없어 질투가 납니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어떤 상황에서도 글 쓰는 사람이야말로 작가입니다. 온갖 핑계 대며 글을 안 쓰는 사람은 고개 들기 어려워집니다.


고작 [대성당] 한 권을 읽고 레이먼드 카버를 아는 척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가 대상을 미화하지 않고 본질을 냉소적일 정도로 투명하게 보는 작가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소설가 김연수가 쓴 역자 후기를 보니, 레이먼드 카버는 '더티 리얼리즘 Dirty Realism' '미니멀리스트 스타일'에 속한다 하네요. 예를 들면 이런 문장들이요.

We didn’t say anything for a time. He was leaning forward with his head turned at me, his right ear aimed in the direction of the set. Very disconcerting.

[Cathedral]

단편집 [대성당]의 표제작은 맨 뒤에 배치되어 있어서 덕분에 다른 작품으로 레이먼드 카버 맛보기를 할 수 있었는데요. 저는 특히 "칸막이 객실"이 인상깊었습니다. 다른 작품이 허세와 거품을 걷어낸 현실밀착형 스토리라면 이 작품은 캐릭터의 무의식까지 내려가 '인셉션'해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주인공은 연을 끊고 살았던 아들을 만나러 기차에 몸을 실을 아버지입니다. 아들에게 주려고 고가의 시계도 사서 챙겼지만, 사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아이(아들)을 여전히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는 마이어스의 청춘을 집어삼켜버렸고, 그가 연애해서 결혼한 젊은 여인을 신경과민의 알코올중독자로 바꿔놓고는 번갈아가며 병도 주고 약도 줬다.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자신이 싫어하는 누군가를 만나려고 이 먼 길을 나섰단 말인가.

[칸막이 객실]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누군가가 시계를 훔쳐 갔습니다. 그 사건을 통해 그는 내면 깊숙한 거부감을 깨달았습니다. 남자는 아들과 재회하고 싶지 않은 속마음을 인정하고 역에서 내리지 않았는데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남자를 태운 기차는 국경을 넘어버렸거든요. 황망한 심정이 되었을 남자는 아들과 화해하고 과거를 재정립할 기회를 영영 놓친 걸까요? 아니면, 화해와 소통을 향한 강박적 책임감에서 벗어나 새로운 여정을 경험하게 걸까요? [칸막이 객실]은 상징적이고 매우 매혹적인 작품이어서 Carl Jung을 참고해가며 다시 읽어봐야 겠습니다.




표제작 [대성당]은 '(대상을) 이름으로 고정하기'가 얼마나 폭력인지, 풍성하게 펼쳐질 경험 세계를 얼마나 제한해 버리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해석했습니다. 제 평소 관심과 닿아 있는지라 무척 재밌었습니다.

작품 속 화자인 '나'는 아내에게 친구가 찾아옵니다. 아내가 목소리로 10년 이상 교류해 온 '남사친'. 상대는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그를 그저 '맹인 a blind man'이라 부를 뿐입니다. 심지어 맹인에게 어울리는 검은 선글라스니 안내견을 곁들여 상상하며, 실제 아내 친구를 만났을 때 (맹인의) 턱수염이 자신의 상상을 배신하자 황당해 합니다. '맹인'이라는 범주어에 상대를 가둬버렸던 '나'는, 그에게 알량한 우월주의, 선민의식까지 보입니다. 뻔히 상대가 기차밖 풍경을 볼 수 없는 걸 알면서도 '왼쪽 창가에 앉았는지 오른쪽 창가에 앉았는지'를 물어보는 등 말입니다.

대신에 나는 뭔가 다른 이야기, 허드슨강의 풍경을 바라보며 기차를 타는 일 따위의 가벼운 얘깃거리를 꺼내볼까 했다. 뉴욕으로 갈 때는 기차 오른쪽에, 뉴욕에서 돌아올 때는 기차 왼쪽에 앉아야만 한다는 그런 이야기들.

“기차 여행은 어떻게, 좋았습니까?” 내가 말했다. “그런데 어느 쪽에 앉으셨나요?”

“뭐가 궁금한 거야, 어느 쪽이라니!"아내가 말했다. “어느 쪽이든 무슨 상관이야?” 그녀가 말했다 (pp.294-295)



하지만, 음식과 마리화나를 나누며 맹인에게 서서히 경계심이 풀린 '나'는 비로서 상대를 '맹인'이 아닌 '로버트'로 보게 되는 경험을 합니다. 시각 우월주의의 삶을 살던 그가 다른 감각으로도 세상을 풍성하게 인식할 수 있음을 깨닫고 경이로워하는 결말이 매혹적입니다.

“Close your eyes now,” the blind man said to me. I did it. I closed them just like he said. “Are they closed?” he said. “Don’t fudge.” “They’re closed,” I said. “Keep them that way,” he said. He said, “Don’t stop now. Draw.”

(...)

“Well?” he said. “Are you looking?” My eyes were still closed. I was in my house. I knew that. But I didn’t feel like I was inside anything. “It’s really something,” I said.

"Cathedral"

눈 뜨고도 상대를 못 보는,

대화를 나누는데도 상대와 소통하지 못하는

이름을 부르는 데도, 그 이름의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는

그런 우리 모습을 "대성당"이 보여주는 듯 하여, 많이 배웠습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양이라디오 2025-05-30 15: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키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분이라 <대성당>을 읽었었는데 제겐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 후로 카버의 다른 단편집도 읽어봤지만 역시 어렵더군요. 제가 미묘함을 잘 캐치못하는 거 같아요. 나중에 다시 읽어보고 싶네요.

얄라알라 2025-05-31 14:14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고양이라디오님, 그렇다면 레이먼드 카버가 작가들의 작가인 셈인가요?^^ 저는 이제 고작 한 권만 읽어서요. 문장이 짧은데 또 매력이 넘치더라고요^^

2025-05-31 14: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6-02 1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등학생 때에도 나는 연휴를 좋아했다. [아라비안 나이트]나 [삼국지]를 방해 받지 않고 읽을 수 있으니까.

람 잘 안 바뀐다. 이번 연휴에도 나는 책탑 쌓았다.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두 권을 읽었다. 사회인류학자 토머스 힐란드 에릭슨의 [인생의 의미]와 스테판 츠바이크의 에세이 모음집,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였다. 두 저자 모두 유럽인이자 PhD라는 점 외에, 공명하는 인간관을 보인다. 바로 "사람끼리의 온기와 신뢰"를 인간 삶의 핵심으 보는 관점이었다. 에릭슨은 21세기에 기술이 발전할지언정 인간은 정서적 결핍과 불신에 시달릴 것으로 예견했다. 츠바이크도 마찬가지이다.




칠전 일이다. 길을 걷는데, 가로수 가지치기를 위해 시에서 파견된 분들이 작업 중이셨다. 그 중 한 분이 전기톱을 든 채로, 산책로로 이동하셨다. 순간 나는 몸이 뻣뻣해질만큼 놀랐다. 아마 바로 그 며칠 전에, '미아동 마트 흉기 난동 살인 사건'이 연상되어서일지 모르겠다. 여느 마트 방문객으로 보였던 범인 태연자약하게 마트에 진열된 칼의 포장을 뜯고 범죄를 저지르는 장면은, 반복되는 뉴스 보도를 통해 내 머릿속에서 영화속 한 장면처럼 각인되었다. 그런 비인간적 사건들이 누적되면서, 사람이 사람을 믿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간다.

물론 내게는 전기톱을 들고 이동하시는 분을 모욕하려는 의도가 없다. 토머스 힐란드 에릭슨이나 슈테판 츠바이크가 암시했던 "신뢰 상실한 시대" 떠올라 글을 남긴다. 세상이 어찌나 각박해져가는지, 소임을 다하려 애쓰시는 분을 보고도 경계이 올라온다. 그 마음이 부끄럽지만, 어쩌면 불신은 이렇게 바이러스처럼 번져나가는 게 아닐까.

아무리 낙관하고 싶어도 인간간 신뢰도와 교감이 현상유지나 되면 다행인 시대다. 이런 시대에,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는 귀한 교훈을 건넨다. 미공개 에세이 9편을 수록한 이 책에서 가장 울림을 크게 준 글은 "걱정 없이 사는 기술"이었다. 어려운 용어로 이야기하자면 '도덕경제' 실현 가능성에 대한 사유 될 것 같다.

이 에세이에 등장하는 '안톤'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동네에 실제 살았던 무소유의 인물이다. 그는 마땅한 거처도, 직업도 없이 살아가는 가난한 청년이었지만 동네 사람들과 선의의 순환고리로 만들어다. 돈이 매개되지 않더라도 서로 돕고 베풀며 살아갈 가능성을 보여주는 예시이. '미아동 흉기 난동 살인사건'에서 보이는 끔찍한 비인간성과 대조된다.


정말 기이한 일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살기 위해서는 누구나에게 돈이 필요하고, 돈이 없으면 일을 해서 벌어야 한다고 믿어 왔다...그런데 구겨진 바지를 입은 그 작고 마른 청년은 어떻게 이 법칙을 어길 수 있을까?

(...)

나는 곧 깨달았다. 면도도 잘 안 하고 후줄근해 보이는 이 말라깽이 청년은 자신을 위해 철저히 반자본주의적인 새로운 시스템을 발명했다. 그는 사람들의 인성을 믿었다. 그는 은행에 적금을 넣는 것보다 이 작은 도시의 거의 모든 사람의 마음에 도덕적 의무라는 유동자산을 저축하기를 더 좋아했다.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15-16쪽


그 외, 이 에세이집에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넉넉한 마음과 날카로운 지혜를 담겨 있다. 특히 각 글마다 곁들여진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낭만적 회화는, 독자에게 덤의 선물이 된다. 천천히 음미하는 독서할 여유가 있는 분들에게도 권한다.

Landscape with rainbow

Caspar David Friedrich (1810)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카스피 2025-05-06 10: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연휴라곤 하지만 책을 두권이나 읽으셨다니 대난하셔요^^

cyrus 2025-05-06 13: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쉬는 날에 책을 쉬지 않고 계속 읽을 수 있어서 좋긴 한데, 시간이 엄청 빨리 지나가네요...🥲

transient-guest 2025-05-07 00: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가해지만 책을 많이 읽겠다고 다짐하지만 사실 적당히 바쁠때 책이 더 잘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ㅎㅎㅎ

고양이라디오 2025-05-07 17:13   좋아요 2 | URL
맞아요ㅠㅋㅋ 이번 연휴에 책 많이 읽어야지 했는데... 또르륵.

고양이라디오 2025-05-07 17: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얄라님 하루에 2권이나 읽으셨다니 대단합니다ㅎ 츠바이크 에세이 읽어보고 싶네요.
 

장안의 화제(?), 여기저기서 뜨겁게 추천하는 책을 인류학자가 썼다기에 반가웠습니다. "암 선고 받고 삶을 통찰," "유명인 *** 추천" 등의 홍보문구를 보았지만, 정작 [인생의 의미] 저자를 확인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다 이 책을 실물로 만나 책 날개를 열자마자, '아....!' 낮은 탄식이 절로 나왔습니다. '이 분이셨구나! 토마스 힐란드 에릭슨!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는 2019, 2020년쯤 [과열 overheating]을 반복해 읽으며 대규모 인터네셔널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한 사회인류학자, 토마스 힐란드 에릭슨 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건강한 중년으로 보였던 그가 2024년 췌장암으로 세상을 뜨셨다니, 갑자기 마음이 휑해집니다.




[과열 overheating]에서 성장과 효율을 추구하는 지구촌의 흐름을 제어장치 없는 거대트럭에 비유하며 전지구화globalization의 명과 암을 논의했던 토마스 힐란드 에릭슨은 양적, 질적 연구 양자를 탁월하게 수행하는 사회인류학자였습니다. 빈틈 없이 냉철한 프로페셔널로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2025년 읽은 [인생의 의미]를 통해 엿본 이 분의 세계는 다른 느낌을 주었습니다. '자연친화적이고 느림의 미학'을 아는 노르웨이 사람 특유의 여유, 프로그레시브 록을 비롯 음악과 반려동물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따뜻한 심장, 평생 인간을 연구해온 분답게 동서고금의 인생철학을 꿰뚫은 혜안으로 가득했습니다.

2025년 5월 5일, 원래 하려던 일을 미뤘을 정도로 [인생의 의미]를 읽는 경험은 특별했습니다. 이분은 2022년, 즉 60세에 이렇게 깊이 있는 에세이로 세상에 큰 울림을 주셨습니다. 학자로서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얼마나 자기성찰에 충실하고 겸손하면 이런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걸까? 과연, 60즈음에 이렇게 지혜로 충만한 이야깃거리를 갖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토마스 힐란드 에릭센 [인생의 의미] 인용

제가 [인생의 의미]를 읽으며 중요하게 생각한 점을 몇 가지 압축해 봅니다.

독특한 글쓰기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고, 작은 욕심이 생겼는데요. 비슷한 글을 흉내내보고 싶다는 욕심입니다. [인생의 의미]도, 큰 틀에서 예시가 되어줍니다. 저자가 아버지이자, 바이킹의 후예인 노르웨이 사람, 자전거, 산책, 음악, 애호가이자 인류학자로서의 삶을 평생 공부하며 경험한 세계와 엮어서 펴낸 글입니다. 장르를 특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혜도, 지식도 이 한 권에 듬뿍 담겨 있습니다.

균형적 시각

인류학자로서 토마스 힐란드 에릭슨은 숱하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고, 많은 장소를 다녀봤고 다양한 경험을 해왔습니다. 책을 통해 '인공위성적 조망'이 가능한 그의 균형 잡힌 시야가 드러납니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아서, 그의 해석에 신뢰가 갑니다. 예를 들어 그는 '가난의 낭만화,' '결핍의 낭만화' '동물과보호' 를 경계하면서도 이 화두에 관한 뚜렷한 소신도 드러냅니다.

동물이 일반적으로 사람들로부터 충분히 존중받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반대로 과도하게 관심을 받는 것도 문제가 있다. 돌고래같이 몸집이 작은 고래목 동물이나 범고래가 숨구멍이 얼어서 문제가 될 때면 전 세계 미디어가 북극의 드라마에 집중되기 동물환경운동가들은 정부나 불특정한 다수에게 도움을 달라고 목청을 높인다. 지중해에서 난민 수십 명이 익사해도 짧은 뉴스로 보도되는 게 전부인 사실과 비교하면 매우 아이러니하다. (50)

그 시인에게 물리적 바다는 중요치 않았다. 그것은 은유의 원천이자 상상의 도화선이다. 그는 수평선 너머 존재하는 욕망과 결핍, 갈망을 끌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 비판의 목소리가 있을 수 있다. 다른 누군가가 결핍을 서정적으로 찬양했다면 나는 이의를 제기했을 것이다. 전 세계 인구의 상당수가 생명에 위협을 받을 정도로 심각한 물질적 결핍 속에서 살고 있다. (95-96)

물론 가난을 낭만화하거나 청바지와 아이폰 소비를 꾸짖을 생각은 전혀 없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원주민을 자기 경멸의 인질로 삼으려는 시도도 탐탁지 않다. (112)

광폭, 심연의 사유

내게 치졸한 편견이 있다. 사회적으로 뚜렷한 성취를 이룬 소위 성공한 사람에게는 상대적으로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부족할 것이라는 편견. 토마스 힐란드 에릭슨은 그 편견을 깨뜨려주었다. 물론, 그가 췌장암 진단을 받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2년이라는 느린 시간을 보낸 것이 인생관에 영향을 미쳤는지 모르지만....

[인생의 의미]는 비단 노르웨이 국민뿐 아니라 그 어떤 문화적 배경과 국적을 지닌 독자가 읽어도 매 페이지 멈춰 서서 문장을 곱씹어야 할 만큼 지혜가 가득한 책이다.

핵심 메시지

두세 번 다시 읽고 난 후 조심스레 할 수 있는 말이겠지만, [인생의 의미]를 한 번 읽은 독자로서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다음과 같다. 저자 토마스 힐란드 에릭슨은 1) 그 무엇보다 사람이 사람과 사는 세상을 소중하게 여기고 2) 위기나 결핍을 어두움이 아니라 저항과 변화의 기폭제로 본다. 3) 겸손한 인격자이다. 이 책에서 내가 유난히 좋아한 문장을 따로 옮겨본다.

부유한 사람들은 큰 위기가 있어야만 잠에서 깨어날 수 있다. 나는 나만의 아늑한 작은 어항에서 헤엄치던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심각한 암 진단을 받았다. 암은 나를 2년 넘게 죽음의 대기실에 내던졌다...나는 (저승을 일곱 바퀴 돌아 흐르는) 스틱스 강의 진흙투성이 기슭에서 오래 머무르며 뭔가를 배웠다. (109)

광채가 나는 사람은 내면과 외면이 서로 잘 통하고 숨기는 것이 없는 특징을 갖는다. (265)

작은 세상은 큰 세상을 투영하고 큰 세상에 말을 걸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작은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바보가 된다. 공동의 일에는 관심이 없으며, 자신이 일부인 더 큰 이야기를 알지 못한 채 평생을 자신의 작은 정원만 가꾸며 사는 사람들 말이다. (30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