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삶을 동정하고 자신의 결핍을 채우려 들면 세상은 끔찍해진다. 


자신를 낳아 준 어머니가 폐비가 되어 사약을 받고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연산군은 그 일을 빌미로 사화를 일으키고 여자들을 잡아들이는 등 온갖 만행을 저지른다. 


 <옷소매 붉은 끝동>을 지은 강미강 작가의 책이다. 의녀와 세자의 이야기는 처음에는 신비로웠고 뒤로 갈수록 비극이 될 것임을 짐작했더랬다. 어쩌면 비극으로 끝났더라면 더 좋았을 이야기일까. 


폐비 신씨 또는 거창군부인 신씨는 연산군의 왕비이다. 정사든 야사든 신씨에 대한 평가는 비슷하다. 폐주와 달리 어질고 온화하다고 말이다. 연산군은 패악을 부리는 와중에도 신씨에게만은 화를 내지 않았다는데, <배롱나무처럼 붉은색>은 그런 폐비 신씨를 생각하며 썼다고 한다. 사연 있는 의녀 신비와 엄마를 잃은 세자는 운명처럼 서로를 만났고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 사이엔 수많은 벽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자신이 좋은 사람이고 자상한 남편이라 생각하는 왕은 세자의 어미에게 모질었다. 왕비가 권력욕이 없다면 왕에게 애정도 없어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궁은 권력에 눈 먼 자들로 가득했고 왕은 위선자였으며 왕비에겐 뒷배가 없었다. 


그런 왕에게 그나마 간언을 하는 이가 있었으니 앞으로 일어날 가슴 아픈 일들은 이미 시작되었다. 신비는 최선을 다했고 이 시대에 신분이 천한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았으나 바로 그 신분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적었다. 신분 제도를 두었다면 신분이 높은 자가 정치도 잘 하고 백성들의 삶을 두루 평안하게 해야 할 의무가 있건만, 그 권력을 자신의 한풀이에 쓰니 결국 피해는 애꿎은 사람들이 보고 만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끝이 행복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있는 역사적 인물이 대입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비극의 시작인 세자 무작금의 아비인 왕이 제일 싫었다. 그는 자신의 아내에게도, 자신의 아들에게도, 신비에게도 못할 짓을 했다. 그가 좀 더 큰 상처를 받든지 귀신에 더 시달린다든지 했더라면 좋았을텐데. 나쁜 놈 같으니라고.


 연산군을 다룬 이야기는 이 책이 좀 더 좋았다. 똑같이 할 수 있는 일이 적은 여자들이 보다 큰 일을 해내는 이야기. 아무것도 바꿀 수 없을 거라 여겨도 무엇이든 바꿀 수 있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일지라도 바위에 뭐라도 묻힐 수는 있으니까. 적어도 억울한 이가 억울하다 말하고 잘못된 일은 잘못됐다 말하기라도 했으니까. 


왕의 어미가 억울하게 죽었다 하여 아주 많은 사람들을 그렇게 억울하고 한 맺히게 만들어도 되는 걸까. 그러니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을 한풀이에 사용하면 세상은 너무나 억울해진다.


이슬은 자신 때문에 채홍사에게 잡혀 간 언니를 구하러 도성으로 향한다. 도성에서는 왕의 총애를 받는 자들이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났고 시체가 있던 자리엔 왕을 비방하는 글귀와 꽃이 있었다. 갑자사화에서도 살아남은 왕자 대현은 그 사건을 수사하고, 그러는 와중에 이슬을 만난다. 그들은 과연 무시무시한 왕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들에게 허락된 미래는 어떤 것일까.


권력을 가진 이 중에 마구잡이로 사람을 죽인 이가 또 있었다. 바로 사도세자였다. 그는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억압받았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였다. 자신을 곁에서 보필하는 궁녀들이 주된 대상이었다. 


이 책 역시 의녀가 주인공이다. 현 의녀는 어느 날 아무도 모르게 동궁으로 향했다. 세자빈은 몰래 궁을 빠져 나간 세자의 부재를 감추기 위해 의녀를 불렀다. 그리고 세자가 사라진 날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살인사건의 범인은 세자일까? 현 의녀와 어진은 범인을 찾으면서 서로를 마음에 품는다. 그들은 또한 어떻게 될까? 범인은 과연 세자가 맞을까?




임해군은 선조의 아들이며 광해군의 친형이고 미친놈이다. 공빈 김씨의 첫째 아들이지만 개차반이었고 백성들에 의해 왜군에게 넘겨진 왕자이기도 했다. 그는 왕의 아들이기에 사람을 죽여도 가벼운 처벌만을 받았다. 그는 여자 때문에 도승지 유희서를 살해했는데 선조는 도리어 이 사건을 수사한 포도대장을 하옥하고 고발인인 유희서의 아들을 유배 보내버린다. 


이 책에서 허균은 미식가이면서 탐정이다. 그는 파직 당해 유배를 가는 와중에도 맛있는 소고기를 찾았다. 이 책에는 나주곰탕, 효종갱, 승기악탕 등 여러 음식들이 나오는데, 이 음식들은 사건을 해결하는 데 빠져서는 안 될 요소가 되었다.


허균 옆에는 허준의 제자이지만 살아있는 사람을 치료하지 못하는 의원 재영이 함께 있다. 허균은 재영의 재능이 쓰일 곳을 찾았다. 둘은 셜록과 왓슨처럼 사건을 해결하는 데 몰두했다. 그리고 사건을 해결하는 데 있어 작은년을 빼놓을 수가 없는데 신분은 낮지만 음식을 잘 만들어 허균의 맘에 쏙 들었더랬다.    


그런데 임해군과 허균이 무슨 관계냐고? 시대를 알면 처음부터 알 수 있는 이야기다. 그리고 나는 2권을 기다린다. 그래서 허균은 광해군의 마음에 들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을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6-04-17 0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야기를 이야기로 읽어야 하는데 저는 전공이 또 역사다보니 이런 책 읽을 때마다 몰입이 안돼요. 엥 이건 아니잖아 이러면서.... 차라리 가상시대, 가상공간이 더 잘 잃힌달까? 그래서 전 무협지를 좋아하나 봅니다. ㅎㅎ

희선 2026-04-18 0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이 있다면 그걸 잘 쓰려고 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한 사람이 있기도 했네요 지금이라고 그런 사람이 아주 없지 않겠습니다 사람을 쉽게 죽이지는 못하겠지만...


희선
 
절창
구병모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것은 두 사람이 말하는 세 사람의 사랑 이야기이다. 


말 그대로 피가 나는 상처를 통해 그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아가씨와 이름에도 드러나듯 '오기'와 '오독'이 본질인 것만 같은 오언, 그리고 그런 그들을 읽어내야만 하는 독서 교사는 책이 끝날 때까지 서로의 사연을 풀어낸다.


어떻게 그런 능력을 가지게 됐는지는 알 수 없다. 아가씨는 수녀원이 운영하는 복지관에서 자랐고 어떻게든 무난하게 살고자 했으나 빈한한 자에게 시혜를 베푸는 행사에서 추행 사건으로 오언을 만났다. 불의한 일이 있었지만 처지가 그러하니 응당 받아야 할 사과가 해야 할 사과로 탈바꿈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가씨가 믿기 어려울 능력에 대해 말하자 오언은 믿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아가씨가 그 불한당을 직접 만나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아가씨는 극한의 상황에 처했을 때 오언이 줬던 명함을 꺼내들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서로를 마음에 담은 것은.


<파과>에서 조각은 자신의 온 생을 걸고 사랑했다.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보지 못한 사랑은 그저 칼이 되고 피가 되었을 뿐. 조각의 사랑은 어떤 말로 표현해도 그에게 사랑으로 닿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감정은 표현하는 순간 '오독'이 되어버리기도 하니까.


오언에게 감정은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끊임없이 읽어달라고, 온전히 자신을 내어줄테니 부디 읽어달라고 호소했을지도. 하지만 감정에 서투르고 폭력적인 일을 스스럼없이 저지르는 사람을 사랑하는 건 스스로에게 벌을 주는 것과 같았을 것이다.


아가씨는 그래도 자신에게 더없이 잘해주는 오언에게 마음을 열고 싶었더랬다. 자신을 구속하고 자신의 능력을 끔찍한 일에 이용한다 해도,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토록 물질적으로 풍요로웠던 적도 없었고 존중받는다 느꼈던 적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 사건은 둘을 갈라놓았다. 오언의 뜻대로 하게 되면 아가씨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로설 <메두사>가 떠올랐다. 유채는 류에게 말한다. '당신을 용서하는 게 아냐. 내가 나를 용서했어. 당신을 사랑하는 나를 용서했어.'라고. 아가씨는 끝내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했다.


끝내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한 오언이 즐겨 인용하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세익스피어였다. 오언은 어느 상황에서나 세익스피어의 대사를 즐겨 말했다. 하지만 정작 세익스피어가 그토록 아름답고 화려하게 풀어놓았던 사랑의 언어는 단 한 줄도 읊지 않았다. 오히려 독서 교사가 <자에는 자로>의 이사벨라가 빈센시오 공작이 애원하는 말에 무응답한 이야기를 하며 더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칼로 벨 수 있었던 방법에 대해 알려준다. 하지만 아가씨가 이미 온 힘을 다해 오언을 읽지 않겠다, 그 마음에 부응해주지 않겠다 외친 것만으로도 둘 모두에게 이미 크나큰 상처가 아니었을까.


독서 교사와 아가씨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나는 어디까지 읽어낸 것일까. 독서 교사는 '본질적인 오독을 전제하지 않고는 생각하기 어렵다'(15쪽)고 했다. 나는 내 마음대로 그들을 '로맨스'로 읽었다. 누군가는 범죄 스릴러로 읽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판타지로 읽을 것이다. 결국 사람은 자신이 가진 사고 범위 내에서 자신이 읽고 싶은 방향으로 이야기를 읽어낸다. 내가 아가씨처럼 그 사람의 상처에 손을 비집고 넣어 읽을 수 있더라도 그건 그 상황에서만 유효한 진실일 것이다. 사람의 생각은 찰나에 지구를 한 바퀴 돌고 자기합리화는 언제든 발동될 수 있으니까. 그러니 어쩌면 오언은 자신의 이름처럼 잘못 알았던 건지도 모른다. 사람은 서로의 눈을 보고 말을 해야 한다. 그 말이 상대에게 닿지 못한다 하더라도. 설사 무응답으로 돌아온다 하더라도. 


문득 오언은 두려웠던 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말을 뱉음으로 약점이 노출되어 소중한 이를 잃을지도 모르니까. 자라면서 겪었을 일들이 삶을 휘감는 건 아가씨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니니까. 이것도 나의 오독일까.


이렇게 오독할 거라면 왜 책을 읽는 것일까? 책을 읽으면 사람이 더 선해진다거나 고상해진다는 건 환상이다. 다만 우리는 독서 교사가 한 말처럼 '원인 따위 결국 알아내지 못하더라도 자기 자신만큼은 이상해지지 않겠다는 마음에 이르는 것이 읽는 사람의 일이야'(302쪽) 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고 어느 날, 내가 다시 이 책을 펼치면 그 때 나는 그들의 무엇을 읽게 될까. 그 때는 사랑이 아닌 다른 것을 보게 될까. 설사 여전히 사랑을 보게 된다하더라도 다른 것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은 내가 책을 읽는 훌륭한 이유가 될 것 같다.


덧붙여 세 사람의 사랑 이야기이지만 세 번째 사람의 사랑을 말 할 수 없어 몹시 안타깝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26-03-31 00: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같은 책도 읽는 시간에 따라 조금씩 느낌이 다를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좋아하는 부분도요.
꼬마요정님 편안한 하루 되세요.^^

꼬마요정 2026-03-31 00:34   좋아요 1 | URL
어릴 때 정말 감명 깊게 읽은 책도 어른이 되어 보면 다르고, 그냥 읽고 넘긴 책이 어느 날 너무 좋게 느껴질 때가 있는 걸 보면 정말 신기합니다. 그 또한 독서의 묘미인 듯 해요.^^

희선 2026-03-31 05: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로 말을 해도 잘못 알아듣기도 하는군요 마음을 읽는 건 정말 그 사람 마음을 온전히 읽는 걸지... 오해한다 해도 말을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기도 하네요 말이 잘못 나올 때도 있겠지만... 사람은 다 제대로 못 읽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알기 어렵겠지요 책을 보고 자신만은 이상해지지 않으려고 하면 좋을 듯합니다 그래야 할 텐데...


희선

꼬마요정 2026-03-31 11:10   좋아요 0 | URL
책을 읽고 이상해지지 않으려고 한다는 게 와닿았어요. 솔직히 책을 읽는 행위에 대해 우리 사회는 지나친 환상을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서로 말을 하면 할수록 오해가 쌓이는 경우가 있잖아요. 특히나 연인끼리 그러면 정말 난감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자기 자신도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지도요. 책이든 사람이든 참 어렵습니다.

2026-04-10 2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4-12 1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4-12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4-15 2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4-16 1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4-16 2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지막 방화 TURN 8
조영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 시절의 상처는 기억의 왜곡을 가져온다. 같은 일을 겪어도 누군가는 범인 잡는 사람이 되고, 누군가는 범인이 된다. 여러 사건들을 해결하면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타인의 상처까지 어루만져주는 이야기. 시즌2도 나오면 좋겠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6-03-08 2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읽다 보면 어린 시절의 상처가 한 사람의 일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그런데 그게 책만의 이야기는 아닌게 너무 잘 보여서 좀 힘들기도 합니다.

꼬마요정 2026-03-10 23:17   좋아요 0 | URL
그쵸ㅠㅠ 특히 어린 시절이라 더 안타깝죠. 그래도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함민은 잘 극복하니 걱정 말고 읽으셔도 됩니다^^

책읽는나무 2026-03-09 1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님 책도 여러방면으로 책이 엄청 많더군요? 저는 아직 한 권만 읽었더랬는데 관심가는 작가 중 한 분이에요.

꼬마요정 2026-03-10 23:23   좋아요 1 | URL
우리나라 추리소설도 많이 흥하면 좋겠습니다. 여전히 일본이나 미국, 영국 등 해외 작가가 쓴 소설들이 많잖아요. 우리나라 작가들도 힘을 내서 좋은 글을 많이 써주면 좋겠어요. 조영주 작가님처럼요.

2026-03-27 2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3-29 0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 유튜브 알고리즘에는 세 가지가 언제나 반복된다. 날씨, 괴담 그리고 카페 혹은 킷사텐 브이로그. 그리고 가끔 미니어처 요리 하시는 분이랑 뉴스 기사, 고양이 관련 영상이 올라오고 전시회 같은 것을 알려주는 영상도 올라온다.


처음에 킷사텐 재즈 영상을 보고 킷사텐이 뭐지 싶었다. 한자로 끽다점(喫茶店)이고 일본어로 킷사텐이라고 읽는다. 다점은 알겠는데 '끽'자를 몰라서 찾아봤더랬다. 우리에겐 일제강점기 때 쓰던 말이고 이제는 까페나 커피숍으로 대체된 말인 끽다점이 일본에선 계속 쓰인다는 점이 신기했다. 


 1920년대에 가벼운 식사나 음료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던 찻집인 킷사텐(喫茶店)이 등장하면서 준킷사는 '술이나 접객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순수한 킷사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최근에는 술을 제공하는 가게도 많아 '레트로한 분위기의 킷사텐'이라는 뜻으로 그 의미가 달라진 듯합니다.(4쪽)


이 책은 처음부터 나를 사로잡았는데, 내가 영상으로 보던 곳은 한 군데 뿐이었지만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예전에 읽었던 <카카듀> 생각이 나면서 그 시절 경성에 있던 카카듀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생각했다.


이 책에서 제일 맛있어 보이던 건 초콜릿 파르페와 나폴리탄이었다. 내가 어릴 때는 파르페 파는 곳이 많았는데 언젠가부터 파르페는 메뉴에서 사라졌고, 나폴리탄 괴담이란 말이 유행할 정도로 일본에선 흔한 메뉴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음식이라서 그런걸까.




괴담 하니까 또 생각나는 책이 있다. 바로 <커피 괴담>이다. 커피도 좋아하고 괴담도 좋아하는 나에게 이 책은 그냥 날아와 꽂혔다. 


이야기는 영적인 능력이 있는 듯한 다몬이 옛 친구인 오노에의 초대를 받아 교토의 오래된 카페로 가면서 시작한다. 그곳에서 다몬은 오노에와 미즈시마, 일 때문에 늦게 온 구로다를 만난다. 그들은 별 것 아닌 듯한 이야기부터 으스스한 이야기까지 두서없이 쏟아내고, 그 와중에 검사인 구로다는 사건을 해결하며 다몬은 이야기의 주인공들과 조우한다. 


이 책에서 가장 신기하고 흥미로운 점은 어쩌면 중년 남성 넷이 꾸준히 괴담 모임을 카페나 찻집에서 가진다는 점일라나. 레코드 회사의 프로듀서인 다몬, 작곡가 겸 스튜디오 뮤지션인 오노에, 외과의사인 미즈시마, 검사인 구로다. 이 네 사람은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비현실적인 이야기나 무서운 이야기를 나누며 커피나 술을 마시는 이 모임을 은근히 좋아한다. 아무리 바빠도 늦게라도 모임에 꼭 참석하는 구로다는 이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사건을 해결한다고 좋아하는데, 아무래도 사고의 전환을 가져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들이 말하는 괴담은 무섭거나 소름끼치거나 하지는 않지만 어딘가 으스스한 것들이다. 주변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아서 꺼림칙하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야기 중에 다몬의 우산 이야기는 독특했다. 그 우산엔 누가 깃들어 있을까? 우리 식으로 말하면 도깨비일라나?



그리고 <도쿄 킷사텐 도감> 외에도 파르페를 먹고 싶게 한 책이 있다. 어쩌면 뜬금 없을지도 모르지만, 파르페와 괴담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혼자 웃었다.


이케다가 고바야시 씨랑 이야기를 하다가 파르페를 먹고 싶다거나 주문해 달라고 하는 장면이 있다. '변태 오두막'과 '천국 병원' 부분에서 그러는데, 나도 모르게 외쳤다. "나도!!"


주변에 파르페 파는 곳을 검색했다. 생각보다 파는 곳이 없어 실망하던 차, 남편이 검색하더니  맛집이 있다는 거다. 그런데 따뜻한 봄이 이렇게나 빨리 오다니... 싶다가 저기압의 영향으로 계속되는 비와 흐린 날씨 때문에 추워져서 먹으러 가지를 못하고 있다. 


이상하게 이 책도 그렇고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도 그렇고 오디오북으로 들으면 너무 잠이 온다. 듣다가 졸다가 깜짝 놀라서 깨서 종이책을 뒤적인다. 유튜브 영상으로 보는 괴담은 잘 보고 잘 듣는데 오디오북은 왜 그런지 좀 의아하긴 하다.


책 표지에 나오는 '죽어, 죽어, 죽어'라는 외침을 보며 꼭 파르페를 먹으러 갈테야!!라고 다짐한다. 그렇다. 파르페 못 먹어 죽은 귀신이 내 주변을 맴도는 걸까. 


아무리 미운 사람이 있어도 너무 증오하지 말자. 증오란 감정은 타인을 향한 것만이 아니다. 자기 자신부터 갉아먹은 뒤 타인에게도 가는 것이라 결국 모두를 파국으로 몰아간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선 2026-02-28 2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온다 리쿠 책 커피 괴담 라디오 방송에서 이야기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못 들었지만, 낮에도 잠깐 들었습니다 재방송이어서... 조금 뒤에 또 나오겠습니다

이월 마지막 날이네요 꼬마요정 님 이월 마지막 날 밤,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꼬마요정 2026-03-02 22:56   좋아요 1 | URL
책이 재미있어서 좋았습니다. 조금 옛스럽기도 하지만 고즈넉하니 좋았네요.

희선 님 3월입니다. 봄비가 내려 춥긴 하지만 그래도 건조주의보와 안녕할 수 있는 단비네요. 큰 일교차에 감기 조심하시구요, 편안한 밤 보내세요^^

카스피 2026-03-01 1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본에 괴담 소설이 과거부터 많았던 이유는 일본 특유의 정령신앙과 원령신앙이 맞불린데다가 에도시대들어 사화가 안정되면서 서민들의 오락거리로 괴담 소설이 발전했다고 하더군요.근데 한국에선 괴담 소설이 발전하기 힘들었던 이유가 일본은 여러 사유로 사람들이 죽을 경우 이를 대부분 귀신이나 오니탓으로 돌렸지만 한국의 경우는 사람들이 죽은 경우가 호랑이 탓이 커서 괴담이 발달할 소지가 아예 원천 봉쇄 됬다고 들은 적이 있네요.

꼬마요정 2026-03-02 23:00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는 뭐만 하면 호랑이가 물어가고, 호패 제도가 잘 정비되어 있는데다 낯선 사람이 오면 바로 티가 나서 귀신이든 사람이든 숨을 곳이 없었다 하더군요. 게다가 온돌 때문에 귀신이 이불 밑에 숨어있기도 힘들었다는 우스개소리도 있는 거 보면 괴담이 발달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그래도 <설공찬전> 같은 게 남아 있으니 다행이지 않나요 ㅎㅎㅎ

카스피 2026-03-04 11:58   좋아요 1 | URL
설공찬전은 뒷부분이. 없어진게. 넘. 안타깝지요.

서곡 2026-03-06 2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파르페 좋아하는 일인 여기 추가요 ~~~ 딸기철이니 파는 것만 못하더라도 집에서 홈메이드 딸기파르페라도 만들어볼까나요

꼬마요정 2026-03-08 22:25   좋아요 1 | URL
오~ 딸기 파르페 맛있겠습니다!! ㅎㅎㅎ 요즘 또 추워져서 파르페는 먹지도 못하고 있어요. 조금만 더 따뜻해지면 먹으러 가야겠습니다. 옛날엔 파르페 파는 곳이 많았는데 이제는 진짜 별로 없습니다.ㅠㅠ
 
리듬 난바다
김멜라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군가는 현실 속에 허구를 끌어들이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다. 누군가는 자신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욕받이를 자처한다. 어떤 사랑은 뭇사람들에게 지탄 받는다. 어떤 범죄들 사이에 숨겨둬도 귀신 같이 찾아내 그것만을 물어뜯는다. 이 책은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의 치열한 사랑이야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