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빛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5
마이클 온다치 지음, 김지현 옮김 / 민음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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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는 자기 악보의 특정한 악절들 옆에 schwer(슈베어)라는 단어를 적어 넣었다. '어렵다'는 뜻이다. '무겁다'는 뜻이기도 하다. (44-45쪽)


'슈베어'와 '워라이트(warlight)'는 이 소설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듯 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너새니얼의 아버지는 싱가포르로 발령이 났다. 아직 십 대인 레이철과 너새니얼을 집에 두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싱가포르로 간다고 했다. 대신 보호자로 '나방'이 그들과 함께 하기로 했는데 부모님이 떠난 집에 '나방'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게 되었다.


'워라이트'는 전쟁 때 도시가 정전된 시간 동안 비상용 차량들을 안내하던 흐릿한 불빛을 의미한다.(105쪽 각주) 독일 폭격기가 영국 하늘에서 폭탄을 떨어트리는 동안 영국은 등화관제를 실시했다. 불빛은 공격 대상이었고 사람들은 불을 꺼야만 했다. 그리고 화약 등을 나르기 위해 밤길을 이용했던 요원들은 아주 희미한 불빛에 의지한 채 달려야 했다. 이는 너새니얼이 자신의 어머니인 로즈의 삶을 추적하는 것과도 비슷했으며 자신의 삶이나 자신의 삶에 영향을 주었던 나방, 화살, 올리브, 아서, 애그니스의 삶을 추적하는 것과 비슷했다.


어떤 것도 명확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하는 일, 어머니가 하는 일, 그들이 어디 있는지, 나방이나 화살이 무슨 일을 하는지 등등 말이다. 부모가 곁에 없는 동안 너새니얼은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아주 다양한 경험들을 했다. 그리고 애그니스를 만났다.


스파이를 다룬 소설들은 많다. MI6나 CIA, 모사드, KGB 등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뛰어난 능력으로 화려한 액션을 보여주는 이야기들 말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달랐다. 스파이의 삶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고, 안개에 쌓인 듯 모호했으며, 수많은 상처와 어쩔 수 없는 죄책감을 안고 있었다.


그가 온다면 잉글랜드 남자 같을 것이다...

내 죄는 여러 가지야. 


로즈는 돌아온 뒤 저 두 문장에 사로잡힌 것 같았다. 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야기만 하던 로즈. 이엉장이 막내 아들이나 체스 천재 이야기를 하던 로즈. 팔에 있던 흉터만이 어쩌면 진짜 그녀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녀 역시 워라이트에 의지한 채 걷고 있었다. 목표는 명확하지만 가는 길은 잘 보이지 않는다. 길을 잘 안다고 믿지만 어떤 상황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로즈는 레이철과 너새니얼을 구하려 했지만 길은 어긋나 버렸다.


너새니얼은 레이철과 달리 어머니를 미워하지 않았다. 어쩌면 고양이를 잊어버렸던 것처럼 자신을 상처주는 일들을 외면했던 걸지도 몰랐다. 나방과 화살과 올리브가 준 관심과 사랑이 그의 마음을 충족시켜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너새니엘 앞에 있는 '슈베어'들을 치워줬기 때문일지도. 이제 너새니얼은 그들의 발자취를 더듬는다. 그 흔적들을 따라가며 자신이 외면한 진실을 깨닫기도 하면서 말이다. 


어쩌면 인생이란 그런 것인지도. 희미한 불빛을 따라가며 선택하고 슈베어를 만나고 후회하고 다시 선택하고... 가지 못한 길은 늘 마음에 남고 '힘든 일'은 결국 지나가기 마련이고 흐릿한 빛 속에서 아름답던 것이 사실은 무거운 과거라는 사실을 깨닫고야 만다.

말러는 자기 악보의 특정한 악절들 옆에 schwer(슈베어)라는 단어를 적어 넣었다. ‘어렵다‘는 뜻이다. ‘무겁다‘는 뜻이기도 하다. - P44

그가 온다면 잉글랜드 남자 같을 것이다...
"누가 어머니를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만약 내가 알았다면 그렇게 물었을 것이다. "대체 무슨 끔찍한 짓을 하셨기에요?" 그러면 어머니는 이렇게 답했을 것 같다. "내 죄는 여러 가지야."라고.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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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04-13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파이로 사는 건 그렇게 쉬운 게 아닐 듯합니다 그런 사람한테 식구가 있다면 더... 어쩔 수 없이 그런 일을 해야 했던 걸지, 어떤 신념이 있어서 한 걸지... 자기 마음을 잘 모르고 하는 것도 있을 것 같습니다


희선
 

요즘 다들 챗 GPT로 지브리풍 그림 의뢰(?)한다고 난리라지만 저는 민화를 좋아해서 조선시대 민화풍으로 그림을 의뢰해 봤습니다. 아니 근데 왜 일본풍으로 그리는지... 일본 느낌이라고 지적하니까 맞다네요. 인정은 잘 합니다. 하지만 고쳐달라고 하면 건성입니다. 제가 돈을 주고 산 어플이 아니라서 그럴까나요... 


원본 사진은 하찮은데 민화는 뭔가 멋있지 않습니까. 무협소설에 나오는 고수 같아요. ㅋㅋ 

샤미 입니다.



딱 봐도 카프입니다. ㅋㅋㅋㅋㅋ 똥그란 눈하며 저 멋진 배하며 ㅋㅋㅋㅋ 



레이는 사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 입니다. 어디 신선들이 사는 곳에 있는 영물 같지 않나요?

근데 귀가 너무..... 이상해요 ㅋㅋㅋ



다미입니다. ㅋㅋ 다미보단 앞에 있는 생선 인형을 더 정성들여 그린 것 같아요. 사진에 생선 없는데... 아놔 ㅋㅋㅋ

눈 흰자위 부분을 공막이라고 한다네요. 원래 다미는 공막이 연한 파랑인데 챗지피티가 잘 못 잡더라구요. 고쳐달랬더니 아예 파랗게 색칠하고 다른 고양이 눈도 파랗게....하아...



모짜 너무 전투적으로 나왔어요 ㅋㅋㅋㅋ  근데 당근 줫는데 왜 오이가....???



왜 카프랑 모짜 얼굴이 같을까요... 거기다 아래에 있는 냥이는 발이 다섯 개... ㅋㅋ



역시 민화엔 갓이 등장해야죠!! 다미와 레이 갓 쓴 모습 너무 귀엽죠? ㅋㅋㅋ



자는 레이는... 꼬리가 두 개입니다. ㅋㅋㅋ 흰 종이에 조선 시대 민화풍으로 그려달랬더니 이렇게...... 술병은 왜 안 그렸을라나요 ㅋㅋ 요구사항이 많아서...??



마지막은 멋진 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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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4-12 15: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고양이가 넘 귀엽습니당^^

꼬마요정 2025-04-13 10:25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ㅎㅎㅎㅎ 고양이는 사랑입니다!!^^

잉크냄새 2025-04-12 17: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이 가장 비슷하네요. 첫번째도 괜찮고요...

꼬마요정 2025-04-13 10:30   좋아요 0 | URL
챗 지피티가 품종 고양이 정보를 많이 갖고 있는 건지, 한국 길고양이 정보가 없는 건지 샴과 길냥이 출신 고양이들의 그림이 너무 다릅니다. 그래도 너무 귀엽습니다^^

페크pek0501 2025-04-12 17: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갓을 쓰니 더 귀엽네요.^^

꼬마요정 2025-04-13 10:31   좋아요 1 | URL
역시 민화엔 갓이죠!! 에헴^^

서니데이 2025-04-12 18: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고양이도 예쁘고 그림도 재미있어요.
꼬마요정님 사진 잘 봤습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꼬마요정 2025-04-13 10:31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냥이들 이쁘죠? 저는 팔불출 집사입니다 ㅋㅋㅋ
서니데이 님도 즐겁고 행복한 일요일 보내세요^^

서곡 2025-04-13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멋진 냥가도입니다 ㅋㅋㅋㅋ 잘봤어요 일요일 오후 잘 보내세요!!!!

희선 2025-04-13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이 재미있네요 비슷한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는... 꼬리가 두 개면 괴물 고양이인데... 만화에서 죽은 다음 요괴 고양이로 다시 태어난 거 생각나기도 하네요 요괴와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곳 이야기예요 사람과 요괴가 식구나 이웃처럼 살아요


희선
 
강변의 조문객 쏜살 문고
메리 셸리 지음, 정지현 옮김 / 민음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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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홉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중에 <변신>은 고딕서가에서 출판한 책인 <공포, 집, 여성>에도 실린 이야기이다. <변신>은 돌아온 탕아를 연상하게 하는 인물과 <나귀 가죽>이나 <카사노바의 귀향> 같은 이야기가 떠오르게 하는 이야기였다. 탕아와 사악한 난장이의 계약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러나저러나 결국 가장 피해를 보는 건 약혼녀 줄리엣일텐데, 이런 18, 19세기 유럽 상황 너무 화가 났다. 


표제작인 <강변의 조문객>은 너무나 안타까웠다. 불이 나서 곧 가라앉을 배에서 클라리스는 어떤 선택을 해야 했을까. 사랑하는 아버지를 두고 구조배에 올라야 했을까. 한없이 쌓이는 슬픔을 감당하지 못한 그녀는 숲 속에서 외로이 살며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네빌은 그런 그녀에게 위안을 얻었고, 그녀가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고 싶었다. 누구의 간절함 때문일까. 서로의 소식은 결국 서로에게 닿았으니, 짧은 인연이나마 아름답게 갈무리 하기를. 조선시대 때 부모를 여읜 사대부가의 아들이 겹쳐졌는데, 조선시대가 '효'를 중시하였다면 이 이야기의 클라리스는 종교적 사랑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찬가지로 <유프라시아> 역시 안타까웠다. 영국인인 발렌시가 그리스에서 일어난 전쟁에 참가하기로 한 건 단순히 모험 정신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느 그리스 군대를 만나고 대장인 콘스탄틴을 만나 튀르크 군과 싸우면서 전투가 단순히 모험으로 치부될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더군다나 콘스탄틴이 튀르크 군에게 잃은 여동생인 유프라시아의 이야기는 너무 절망적이었다. 죽음 앞에서 듣는 이야기는 더 엄숙했으며 처절했다. 


<폴란드인의 사랑>은 보다 정치적인 음모가 가득한 이야기였다. 러시아에게 조국을 강탈당한 폴란드인 라디슬라스는 정치적 이유로 러시아 황녀인 대시코프 황녀를 만났고 황녀의 소개로 이달리에를 만났다. 이달리에는 우연히도 라디슬라스가 구해 준 마리에타의 언니였고, 마리에타를 괴롭히던 남자는 오빠인 조르조였다. 사랑에 빠진 라디슬라스와 이달리에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 내는 음모와 배신, 모략은 제법 흥미진진했다. 


<순례자들>은 회한에 가득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분노에 휩싸여 사랑하는 딸을 잃어버린 그는 뒤늦게 딸을 되찾으려 하지만 이미 딸의 소식은 들을 수 없게 된 터였다. 그리고 찾아 온 순례자들. 그들의 정체는 그 남자로 하여금 신을 찬양하도록 했다. 모든 은원이 다 해소된 아름다운 결말의 이면에는 참회와 용서가 있었다.


<순례자들>이 회환에 빠진 나이 든 남자의 이야기였다면, <꿈>은 원수 집안의 아들과 사랑에 빠진 어린 여자의 이야기이다. 프랑스의 앙리 4세가 종교전쟁(위그노 전쟁)을 끝내고 왕위에 올랐을 때, 콩스탕스 가문과 가스파르 가문은 원수가 되고 말았다.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결국 가문에는 콩스탕스와 가스파르만이 남았는데, 콩스탕스는 자신의 연인이 원수라는 사실에 절망하여 수녀가 되기를 원했다. 앙리 4세는 자신의 기사인 가스파르가 콩스탕스와 행복해지길 바랐으므로 그녀를 설득하려 했고, 가스파르 역시 절망에 빠진 그녀를 다시 속세로 데려오고자 했다. 그리고 '카타리나의 침상'이 모두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소녀> 역시 절망에 빠진 연인이 등장한다. 집안의 반대로 사랑을 잃게 된 헨리와 로지나가 어떻게 망망대해에서 배의 길잡이가 되는 탑의 불빛을 만들어냈는지 알려주는 이야기라고나 할까. 안타까운 사연이 있는 탑과 '보이지 않는 소녀'라는 이름이 붙은 그림으로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화자에 따르면 무조건 사실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악마의 눈>은 <순례자들>과 비슷한 이야기이다. 과거의 원한이 드미트리를 '악마의 눈'이라고 불릴만큼 잔혹하게 만들었다. 잃어버린 딸을 찾지 못한 채 과거의 원한을 곱씹으며 파괴를 일삼는 그에게도 형제 같은 친우가 있었으니 카투스티우스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 역시 성격이 좋지는 못했으나 결국 그를 딸에게로 이끌었으니 인연이란 참으로 신비롭다고 할밖에.


<불멸하는 필멸의 존재>는 정말 웃픈 이야기이다. 멍청한 조수가 연금술사 스승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불사의 약 절반을 삼켜버렸으니 말이다. 스승은 죽기 직전에 한 번 더 그 약을 만드는 데 성공하지만 끝내 먹지 못했다. 윈지는 그 약이 사랑의 영약인 줄만 알았더랬다. 그래서 사랑하는 버사와 영원할 거라 믿었건만 늙지 않는 육체는 그 사랑마저 빛바래게 했으니... 그래서 그는 불멸할까, 필멸할까.


모든 이야기에는 화자가 있고, 그 화자는 대부분 남자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 여자의 이야기이며 아주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중첩된다. <프랑켄슈타인>의 저자답게 으스스하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마저 감도는 이야기들도 많다. 종교적 전설이나 설화 등을 적절히 활용했으며 결말이 행복하다고 하여 그 앞에 일어난 슬프고 끔찍한 일들이 사라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참회하고 용서한 이에게는 그에 합당한 결말을 주었으니 만족할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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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상 식탁
설재인 지음 / 북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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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단 한 번도 미움받지 않거나 실수하지 않거나 하는 일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누군가에겐 선인이 될수도 있지만 악인이 될수도 있다. 이 이야기는 그런 생각이 깔린 채로 시작한다.


내향적이고 사회성이 부족하여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빈승은 어느 날 목소리를 듣게 된다. '미미'는 그에게 복권을 사게 하였는데 그 복권이 당첨 되어 빈승은 가게를 차리게 된다. 마치 꿈에서 조상님이 로또 번호를 불러줬다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기도 하고, 조현병이 복권도 당첨될 수 있게 하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어쩌면 진짜로 미지의 존재가 있는 걸지도 모르지 않나. 그런 존재가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는 것일지도. 


뱅상 식탁은 예약제로만 운영되는 폐쇄적인 레스토랑이다. 4개의 식탁이 있고, 각 식탁은 서로를 침범하지 않는다. 모든 식탁의 소리는 주방으로 흘러들어간다. 빈승은 손님들이 폐쇄적이라고 믿는 공간을 제공하고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녹음한다. 손님들은 자신의 휴대폰을 들고 들어갈 수 없어 식당 입구에서 빈승에게 폰을 맡겨야만 했다. 


그런 공간에서 사람들은 보통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각자의 사정이 있을 수 있겠지만, 보통은 여자 손님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연인끼리 데이트를 한다 해도 여자가 있고 불륜이라도 여자가 있고 친구끼리 온다면 여자친구들일 확률이 매우 높으니까. 남자들끼리 폐쇄된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찾는 경우는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나의 편견일지도 모르겠지만. 


빈승 역시 마찬가지 의문을 가졌고,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이라면 너무 편파적이고 지엽적인 환경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미미는 의뢰인이 이 실험을 원하다는 말로 이 실험을 강행했다. 과연 이 실험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일까.


책을 읽을수록 밀그램의 전기 고문 실험이 떠올랐다. 권위에 복종하는 그 실험은 방 안에 있는 사람이 문제를 틀렸을때 전기 고문 버튼을 누르게 한 것이었는데, 대부분의 피실험자들은 잘못된 행동임을 알면서도 전기 고문 버튼을 눌렀다. 조금 결은 다를 수 있지만 빈승은 자신을 과대평가해 준 미미가 시켰기에 비이성적인 행동임을 알면서도 그 일을 자행한다. 


각 식탁에 앉은 사람들의 위선이나 뻔뻔함이나 거짓 같은 추악함을 엿볼 수 있는 동시에 감정적으로 잠식당한 사람이 어떻게 조종당하는지도 볼 수 있었다. 결국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상황에 휩쓸리다가 희생될지도 모를 일이다.


결말이 아주 마음에 안 들었다. 하필 살아남아 제일 득의양양한 사람이 그 사람이라니. 책을 다 읽고 동생에게 이러이러한 사람이 승리하는 내용이라고 했더니 동생이 바로 "난 읽지 않겠어." 란다.


나와 동생들에겐 나름 발작 버튼이니까.


그들 중에 과연 죽어야 할만큼의 죄를 지은 사람은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당연한 결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로 찌른 사람의 죄의 형량이 죽음이라면 찌르도록 교묘히 유도한 사람의 형량은 얼마일까. 인간은 어디까지 가면을 쓰고 선한척 할 수 있을까. 얼마나 합리화를 하면 자신이 선량하고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걸까. 


다시금 나는 누구에게 악인일까란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악인은 몇 있는데 그들에게도 나는 악인일까, 아니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람에게 악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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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25-04-07 09: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새는 남자끼리만, 여자끼리만
패밀리레스토랑에 가는 분이
제법 있습니다.

처음부터 서로서로
그저 가까이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에
다른 성별을 안 끼운다고 말씀하더군요.

꼬마요정 2025-04-07 13:04   좋아요 0 | URL
오 요새는 남자끼리만 가기도 하는군요. 예전엔 남자끼리 영화도 같이 안 보고 레스토랑 같은 데 같이 안 가고 그랬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나 봅니다.

세상은 변하고 그 변화를 따라갈 수 있을지 고민입니다. 늘 귀기울여야겠어요^^
 

서기946년, 백두산이 폭발했다. 일명 천년 분화(the Milennium Eruption)라고도 불리는 이 화산분화는 대규모 화산분화이자 화산 폭발 지수(VEI)가 6 또는 7로 최근 5천 년동안 발생한 지구상의 화산 분화 가운데 네 번째로 강력한 분화라고 한다. 이 사건은 발해부흥운동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했고, 앞서 일어났던 엘드자 분화 때문에 기후 변화가 묻힌 것 같다고 했다.


한 때 백두산이 곧 폭발할 것이라고 했던 적이 있다. 지금은 일본이 난카이대지진 때문에 난리지만 당시엔 백두산이 정말 어마어마한 화산이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며칠 전에 문득 동생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946년 백두산 분화가 진짜 큰 화산 분화였다고 말하면서 백두산이 다시 분화하면 피해가 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동생들 왈

"됐어, 윤이 기각되면 어차피 다 죽어."

"맞아, 또 계엄할텐데 무서워서 살겠나."


그리고 오늘 마침내 드디어 봄이 왔다!!



기쁜 마음에 맥주를 땄다. 저 맥주가... 200ml 짜린데 저거 먹고 기분이 아주 좋다. 아무래도 나는 행복의 역치가 아주 낮은 듯 하다. 


올해 봄이 하도 안 오는 것 같아서 슬펐는데 결국 봄이 왔다. 북극 한파도 내려오고 꽃샘추위도 지나가면서 봄이 오고 꽃이 피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결국은 오고야 만다는 것을 알았다. 어차피 삶도 마찬가지일테고. 어렵게 얻은 봄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순리대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옥상 가는 걸 무척이나 좋아하는 샤미가 올 겨울 옥상 갈 때마다 이렇게 손수건 망토를 씌웠더랬다. 하찮은 녀석. ㅋㅋㅋㅋ 



봄이 오니 샤미는 위풍당당하니 옥상을 누빈다. 이 평화가 오래 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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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04-05 0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샤미가 옥상에 가는 걸 좋아하는군요 볕을 마음껏 쬘 수 있겠습니다 어제 낮에 어딘가에서 뉴스를 보니 옛날처럼 계엄을 해야 했다고 하는 사람이 있더군요 그거 보고 저런 말을 하다니, 했습니다 그런 사람도 마음이 돌아서는 그런 사람이 나타나면 좋을 텐데... 앞으로 한국 좀 나아지기를 바랍니다

꼬마요정 님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꼬마요정 2025-04-07 00:10   좋아요 1 | URL
샤미가 옥상을 참 좋아합니다. 근데 약았어요 ㅋㅋㅋ 한여름엔 그늘로만 다니거나 아예 안 나가고 복도만 뛰어다니구요, 비 오면 또 안 나가요. 한겨울엔 바람 많이 불고 추우면 또 복도만 뛰어다녀요 ㅎㅎㅎ 계엄은 안 되죠. 그런 말 하는 사람들의 권리조차 억압당할텐데 말입니다. 앞으로 한국이 더 좋은 사회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은빛 2025-04-05 07: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결국 봄이 왔네요. 축하할 일입니다. 다만, 앞으로 다가올 일이 더 걱정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이라는 정당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남들과는 다른 생각을 가졌다고 믿습니다. 앞이 캄캄하다고 느낍니다. 보수 정당인 민주당이 계속 진보인 것 처럼 거짓 태도를 취하면 앞으로 뭐가 달라질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꼬마요정 2025-04-07 00:12   좋아요 0 | URL
봄이 왔어요!! 일단 가장 중요하고 급한 일이 해결되었으니 축하해야죠!! 앞으로는 정치력을 발휘해서 사회를 통합할 수 있는 정치인이 정치를 하면 좋겠습니다. 확실히 요즘은 너무 분열이 심해서 조금의 양보도 타협도 하지 않으려 하니까요. 그런데 그런 정치인이 있을까요ㅠㅠ

stella.K 2025-04-05 1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하찮은 녀석이군요. ㅎㅎ

꼬마요정 2025-04-07 00:13   좋아요 0 | URL
진짜 하찮습니다. ㅋㅋㅋㅋ 너무 귀엽습니다!!!

다락방 2025-04-06 15: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 님, 건배입니다!

꼬마요정 2025-04-07 00:14   좋아요 0 | URL
건배!!! 만세예요!!!
당연한 걸 당연하게 여길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