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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야구 - 화가 난다는 건, 사랑하고 있다는 뜻이다 ㅣ 아무튼 시리즈 79
김영글 지음 / 위고 / 2025년 11월
평점 :
어릴 때 가끔 일요일에 아빠는 야구를 보셨다. 아니, 야구를 틀어놓고 주무셨다. 하지만 내가 티비 채널을 바꿀라치면 안 잔다고, 보고 있다고 하셨더랬다. 아빠는 대구 사람이라 삼성을 응원하셨고, 야구를 안 즐기는 엄마는 부산 사람이라 괜히 롯데 편을 드셨다. 그러던 어느 날, 롯데가 결승까지 갔고 아빠는 롯데를 응원하셨다. 나랑 동생은 야구를 잘 모르지만 그날 아빠, 엄마와 함께 롯데를 응원했다. 1992년이었다.
자라서 어른이 될 때까지 그날 이후 야구를 본 기억이 없다. 야구를 잘 몰라서 안 보기도 했고, 볼 시간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내가 중, 고등학교 때에는 농구가 대세였다. 농구 규칙은 알아도 야구 규칙은 몰랐는데, 지금 남편을 만나고 알게 됐다. 축구와 야구를 좋아하던 구남친이자 현남편은 야구를 할 때면 귀에 이어폰을 꽂고 다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왜 이 남자를 만났지? 싶다. 데이트 할 때에도 야구를 듣고 있고, 데이트 안 할 때는 야구를 보고 있고 뭐 그랬더랬다. 게다가 EPL도 즐겨 봐서 새벽에 일어나서 축구 보고 이런 일들도 있었다.
아무튼 나는 그때 야구 규칙을 알았다. 그냥 보다보니 알게 됐다. 그리고 야구를 좋아하게 됐다. 제리 로이스터가 롯데 감독으로 있던 시절이었다. 나는 그 시절에 열정 넘치던 롯데 야구를 기억한다. 나도, 남자친구도, 동생들도,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 모두 가을 야구로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당시에 정독실 선후배들과 함께 야구장에 갔는데, 선배네가 횟집을 운영하셔서 회를 잔뜩 싸왔고, 우리는 학교에서 유명한 닭집에서 통닭을 사갔다. 비록 그날 경기는 졌지만 우리는 맛있게 먹었고 즐거웠다. 야구는 져도 즐겁고 이겨도 즐거운 스포츠라고나 할까.
또 한 날은 서울에서 친구가 내려왔다. 롯데 팬인 그녀와 나는 비가 오는데도 둘이서 비옷을 뒤집어쓰고 야구장에서 열심히 응원했다. 그날도 롯데는 졌지만 아직까지 내가 본 야구 중 손에 꼽을만큼 재미있었다.
스포츠 하면 징크스 혹은 미신도 빼 놓을 수가 없는데, 이 책에 나오는 한화의 연승 행진 때문에 두꺼운 후드티를 벗지 못한 감독님 이야기가 웃겼다. 그래도 감독님은 우승에 대한 것이었지만 내 막내동생은 좀 슬픈 생각을 했더랬다. 자기 친구들도 다 그렇다는데 롯데가 92년 이후 우승이 없는 건 그들이 태어나서인가 싶다고. 내가 보면 진다의 엄청난 확장 버전인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하면 슬프지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한다. 여전히 롯데를 응원하는 동생은 야구 시즌에는 욕을 달고 산다. 그럼에도 야구를 놓지 못하고 계속 본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그런 게 아닐까. 승부의 짜릿함도 좋지만 승부와 관계없이 그 상황 자체를 좋아하는 것. 그렇기에 김영글 작가는 자본주의가 주는 화려한 야구도, 스포트라이트가 없는 순수한 여자 야구도 다 좋아하는 것이리라. 그리하여 결국 걸어서 야구를 볼 수 있는 곳에 살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져보고 말이다.
작년 7월까지 롯데는 분명 가을 야구를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생각보다 너무 잘해서 놀라기도 하고 두근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8월부터 시작된 연패는 이번 경기는 이기겠지란 기대를 열 번은 더 짓밟고서 끝났다. 한 두번 지는 거야 당연할 수도 있는 거지만 12연패는 상상도 못했었다. 그럼에도 야구를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벌써 2월도 중반을 넘어가려 한다. 곧 3월이 올테고 프로야구 시즌이 시작될테지. 올해 야구팀들은 어떤 경기를 보여줄까. 그리고 어느 팀의 드라마가 우승을 할 것인지 자못 기대가 크다.
그런데도 야구팬은 매일 경기를 본다. 못하면 못한다고 화를 내고, 잘하면 이렇게 잘할 수 있으면서 어제는 왜 못했냐고 화를 낸다. 그렇게 감독이나 선수를 한껏 원망하다가도, 하룻밤 자고 나면 다시 성심을 다해 응원한다. 이 분노는 어디에도 쓸 데가 없다. 내가 화를 낸다고 선수가 갑자기 잘할 리 없고, 그렇다고 야구를 끊을 것도 아니다. - P57
그럼에도 팬은 경기를 꺼버리지 않는다. 한번 마음을 준 이상, 손바닥 뒤집듯 팀을 바꾸지도 않는다. 절망을 끝까지 지켜보며, 다시 뜰 내일의 태양을 기다린다. 다만, 화를 내면서 말이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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