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환상 3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88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송기정 옮김 / 민음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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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에서 뤼시앵은 빈털터리가 되었고, 3권에서야 비로소 앙굴렘으로 돌아온다. 뤼시앵은 파리에서 다비드의 서명을 위조하여 3천 프랑의 어음을 발행했는데, 이는 다비드를 커다란 위험에 빠트린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돈' 보다는 '어음'을 주로 사용했다고 한다. 종이돈 즉 지폐는 불신의 대상이었고, 주로 경제활동은 어음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어음이란 기간이 도래하여 돈이 되든, 누군가 할인해서 돈으로 바꿔주든 해야 되기에, 처음 뤼시앵이 자신의 소설 '샤를 9세의 궁수'를 팔아 손에 쥐게 된 5천 프랑의 어음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뤼시앵은 이 어음을 현금화 하기 위해 어음할인업자를 찾아다니지만 결국 카뮈조를 찾아가게 된다. 상인인 카뮈조는 그 어음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고, 상사와 관련된 어음으로 바꾸어 돈을 지급한다. 이 어음은 결국 뤼시앵을 감옥으로 보내려 했고, 코랄리는 이를 무마하기 위해 다시 카뮈조의 정부가 된 듯한 분위기를 보인다.


뤼시앵은 이와는 별개로 돈이 부족해지자 다비드의 서명을 위조하여 각각 1, 2, 3개월 만기의 1천 프랑짜리 어음을 3장 발행한다. 다비드에게는 그저 편지 한 장 보냈을 뿐. 그리고 이 어음은 다비드를 감옥으로 보냈다. 이 고단한 발명가는 아버지에게 눈탱이 맞고, 처남에게 호구 잡힌 채 이상 세계를 그리고 있었다. 그는 종이 제조법 발명에 몰두해 있었는데, 그가 생각한 방향은 맞았으나 그에겐 조력자도 돈도 없었다. 그리하여 그 제조법을 노리던 쿠앵테 형제는 이 어음을 미끼로 종이 제조법의 이익을 가로채고자 한다. 그 와중에 한때 같은 학교에서 동문수학했던 소송대리인 프티 클로의 야심까지 얹어져 다비드는 한층 더 위험에 처하게 된다.


발자크는 이 소송을 아주 자세하고 설명하는데, 이 부분을 읽다보면 찰스 디킨스의 <황폐한 집>이 떠오른다. 영국과 프랑스는 나라는 다르지만 소송에 휘말리면 본 소송에 걸린 금액보다 소송 비용이 더 나와 영국의 <황폐한 집>에서의 잔다이스 상속 소송은 끝나버렸다. 이곳 프랑스인 <잃어버린 환상>에서 역시 원래 채무액인 3천 프랑은 소송 비용 등이 더해져 5천 프랑이 넘게 되고, 약간의 재산이나마 지키기 위해 아내인 에브와 재산분리 소송을 한 덕에 그 비용이 더해지고, 아버지 세샤르 역시 소송에 참가하여 총 부채가 1만 프랑이 넘어버린다.


예나 지금이나 법에 무심한 발명가가 교활한 상인과 법률인을 만나면 특허도 잃고 재산도 잃게 되는 건 진리인가 보다. 쿠앵테 형제는 다비드에게 어음 상환을 요청하고, 프티 클로는 기한 연장을 위해 모든 서류에 이의를 제기한다. 하지만 이는 곧 소송 비용을 계속 발생시켜 다비드를 파산시키고자 하는 음모였다. 그 결과가 1만 프랑이 넘는 부채인 것이다. 발자크는 자신이 채무자가 되어 파산하게 된 과정을 이야기 곳곳에 풀어놓았다. 뤼시앵의 파산과 다비드의 소송은 모두 발자크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들이다. 발자크는 자신이 인수한 문예지를 청산하면서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고, <골짜기의 백합> 저작권 때문에 긴 소송전에 휘말렸다. 거기다 발자크의 작품을 단행본으로 출간하던 베르데 출판사가 파산하여 채무자의 고통은 더 가중되었다. 뤼시앵과 다비드가 맞닥뜨린 고통은 다름아닌 발자크의 고통인 셈이었다.


현실에도 어음은 종종 문제를 일으킨다. 의료기기 업자들은 병원에 의료기기를 납품하고 어음을 받는데, 기간이 1년 짜리도 많아서 현금화 하려면 할인을 크게 할 수밖에 없다. 물론 안 그런 병원도 많겠지만, 내가 아는 어느 의료기기 상인은 병원이 하도 돈을 안 줘서 결국 파산했다. 그게 벌써 5년도 더 지난 일이긴 하지만. 요즘은 상황이 더 나아졌을까나.


소송대리인 프티 클로는 마지막엔 다비드에게 나쁜 일들 중에 그나마 좋은 일을 해줬다. 유명한 충고도 해줬더랬다.


 "자! 나쁜 타협이 좋은 소송보다 낫다네......"(307쪽)


다비드는 뤼시앵과는 달리 잃어버린 것에, 가지지 못한 것에 큰 미련을 두지 않았다. 그는 평온함을 사랑했고, 가족과 함께 하기를 원했다. 그리하여 그는 가족과 함께 미래를 꿈 꿀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나는 <안나 카레니나>의 레빈이 떠올랐다. 키티와 함께 신념대로 사는 레빈과 다비드는 닮았다 느꼈다. 이 고뇌하는 발명가는 현명한 아내인 에브와 함께 평온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제발 그러기를!!


뤼시앵은 환상을 잃어버렸고, 다비드는 삶을 되찾았다.


악마에게 영혼을 판 것 같은 뤼시앵은 에브와 다비드에게 돈을 남기고 떠났다. 이제 이야기는 <사교계의 영광과 비참>으로 넘어간다. 나는 그 전에 <고리오 영감>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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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환상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87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송기정 옮김 / 민음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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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에서 뤼시앵은 샤틀레의 계략으로 바르주통 부인과 함께 앙굴렘을 떠나 파리로 향한다. 정치 쪽으로 닳을대로 닳은 샤틀레는 이제 바르주통 부인을 손에 넣기 위해 두 사람을 이간질 하는데, 굳이 이간질을 하지 않아도 파리라는 곳은 서로가 서로를 촌스럽고 얼간이로 보이게 하는 마력을 가진 곳이었더랬다. 지방에서 온 그들은 때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었고, 촌스러운 몸짓을 했으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둘은 서로에게 실망했고 곧 화려하고 눈부신 다른 이들에게 눈을 돌렸다. 어쩌면 사랑이 변한 게 아니라 애초에 환상을 사랑했던 것 아니었을까.


배신이든 변심이든 어쨌든 다시 멋쟁이가 된 뤼시앵은 잘생긴 얼굴과 타고난 재치로 데스파르 부인을 사로잡았으나 샤틀레가 퍼트린 소문 때문에 파리의 사교계에서 쫓겨난다. 칙령이 없는 한 어머니 쪽 성을 따르지 못하게 된 뤼시앵은 뤼방프레가 아닌 약제사 샤르동의 아들이 되어 데스파르 부인과 바르주통 부인이 속한 곳에서 추방당했다. 가족이 마련해 준 돈을 헛되이 낭비한 뤼시앵은 한동안 자숙하며 시인의 이상을 펼치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타락하고 만다.


책을 계속 읽다보면 이토록 허영에 가득 찬 한 인간에게 이렇게나 많은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어준다는 게 놀라웠다. 잘 생겨서 그런가? 다비드도 그렇지만 파리에서 만난 다르테즈 역시 너무나 좋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다르테즈가 속한 세나클 회원들 역시 말이다. 어떻게 그런 사람들을 곁에 두고도 뤼시앵은 루스토를 따라갈 수 있었을까. 결국 그는 발자크가 클로드 비뇽의 입으로 말했던 "사상의 매음굴"인 언론의 길로 들어선다. 


당시 왕정 복고기 언론은 과격 왕당파 신문, 자유주의파 신문, 정부 여당지로 나뉘어 있었다고 한다. 구독료가 비싸서 구독자는 한정되어 있었는데 총 6만 5천 명 중에 5만 명이 자유주의 신문 구독자였다고 한다. 그러니 정부는 언론을 탄압했지만 신문의 영향력과 권력은 커졌고 언론은 결국 왕정복고 체제를 무너뜨렸다. 언론이 타락했다지만 무용하지는 않은 것이다. 


모든 것이 돈으로 해결되는 곳에서 신성한 비평이나 정치적 신념,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돈이 원하는 대로 기사를 작성했고 돈이 부르는 대로 기사를 받아적었다. 그리고 기이한 복수심에 사로잡힌 뤼시앵은 날카로운 펜으로 바르주통 부인과 샤틀레를 모욕했고, 카뮈조의 정부인 코랄리는 그를 나락으로 이끈다. 뤼시앵은 분명 추악해보이는 그곳의 화려함과 자신의 펜이 주는 권력에 취해 돈을 물 쓰듯 쓰고 심지어 도박에까지 손을 대며 빚을 늘려갔다.


세나클 회원들은 그의 재능을 알았기에 그의 허영에 안타까워했다. 정말 뤼시앵에게는 성실하고 선한 친구들이 많았다. 인간의 훌륭한 본성을 믿고 실천하는 이들 말이다. 하지만 뤼시앵은 인내하고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알려주는 친구들보다는 자신을 추켜세우고 화려한 곳에 데려다주고 짜릿한 한 방을 가르쳐주는 사람들을 더 좋아했다. 이토록 허영에 가득 찬 인간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한심하고 어이없었다.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배신이 난무하는 곳에서 뤼시앵은 상대에게 상처 받을 때마다, 어음이 거절당할 때마다, 돈이 떨어질 때마다 눈물로 참회하고 후회하고 난리 부르스를 춘다. 나는 그럴 때마다 한숨이 나오고 욕을 한 바가지 퍼부어 주고 싶은 걸 참는다. 뤼시앵은 끝까지 불행할 테니까. 이토록 만족을 모르고 허영을 쫓는 이가 만족하며 행복해할 수 있을까?


  천장의 등이 꺼졌다. 이제 극장 안에는 좌석 안내원들만 남아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작은 의자들을 치우고 박스석의 문을 닫았다. 한 자루의 양초가 꺼지듯 순식간에 꺼진 무대 앞 조명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났다. 막이 걷어 올려졌다. 천장에서 램프가 내려왔다. 소방수들이 잡역부들과 함께 순찰을 돌았다. 무대 위의 요정극, 예쁜 여자들로 가득했던 박스석, 눈부신 조명과 무대 장식과 새로운 의상의 화려한 마술, 그 뒤에 남은 것은 냉기와 공포와 어둠과 공허함이었다.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다. (247쪽)


하나의 무대가 서기까지 많은 노력이 있었을 테고, 그 결과 무대는 절정을 맞이했을 테고, 무대가 끝난 뒤 텅 빈 극장은 적막하여 공허하기도 하지만 제 할 일을 마친 충만함도 있을 테다. 뤼시앵은 앞, 뒤는 보지 못하고 오로지 화려한 돌출의 구간만을 진짜로 느끼는 지도 모른다. 그는 더 큰 자극을 원하지만 그럴 능력은 없다. 메타인지가 안 되는 그는 모든 것에 행복회로를 돌린다. 그러다 실제로 불행이 눈 앞에 닥치면 울면서 참회한다. 그리고 주변에 민폐를 끼치는데, 그러다가 또 누군가를 만나 도움을 받는다.


아니, 왜 뤼시앵에게 자꾸 도움을 주는 거지? 잘 생겨서? 이 복장 터지는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는 건 도대체 왜인지 모르겠지만 마침 주말이어서 <잃어버린 환상 2>를 하루만에 다 읽었더랬다. 세 권 중 2권은 약간 피카레스크 같은 느낌도 들고 다 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뤼시앵은 다비드의 서명을 위조해서 돈을 마련하고, 도박을 해서 돈을 날리고 다시 누군가에게 돈을 얻어서 앙굴렘으로 향한다. 



바르주통 부인을 따라 파리로 간 지 18개월 정도 흐른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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킵스 1 - 어느 순박한 영혼의 이야기 울림 3
허버트 조지 웰스 지음, 마이너스 옮김 / 해밀누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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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환상>이 매운맛이라면, <킵스> 1권은 순한맛이다. 


뉴 롬니의 작은 마을에서 장난감 가게를 하던 삼촌, 숙모와 살던 킵스는 삼촌의 가게에서 도제 생활을 했다. 동네에서 친구처럼 지내던 시드 포닉의 여동생인 앤에게 반한 킵스는 아주 순한 소년답게 마음을 키워나갔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킵스는 키스를 하고 싶었더랬다. 하지만 그는 포스크톤의 상점으로 가야했다. 더 큰 가게에서 새로운 도제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뉴 롬니와는 다른 큰 가게의 시스템에 적응해야 했던 킵스는 그곳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소년은 청년이 되어갔고, 풋사랑은 서서히 옅어져갔다. 떠나올 때 증표로 받은 반쪽짜리 6펜스 동전은 빛을 바랬을까.


킵스는 포크스톤의 상점에 적응하면서 사회에도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벼운 연애놀음도 하게 되고 술도 마시게 되었다. 하지만 어떤 것을 하더라도 편안하지 않았다. 돌파구로 찾은 그림 수업은 그에게 뜻밖의 만남을 가져다주었는데, 킵스는 그림 선생인 헬렌을 마음에 품게 된다.


그러던 와중, 킵스는 부모의 실마리를 찾아 유산을 상속받게 된다. 소설 전체에서 손에 꼽힐만큼 극적인 장면이어야 할 것 같지만, 이야기는 그냥 아주 원래 그렇게 정해져있기라도 한 마냥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어떻게 생각하면 기적 같은 일이지만 과연 킵스의 인생에서 그 일이 기적일까. 훌륭한 조력자가 없을 때 나타난 커다란 부는 한 사람의 인생을 어디로 끌고 갈까.


다시 헬렌을 만난 킵스는 이제 부자가 되었다. 둘은 아마 결혼하겠지. 이제 킵스는 어떻게 될까. 2권은 매운맛으로 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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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환상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86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송기정 옮김 / 민음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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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든 과거 혁명 이후 프랑스 사회든 사람 사는 데는 다 비슷비슷한 것 같다. 여기 두 사람이 있다. 뤼시앵과 다비드. 뤼시앵이란 남자는 재치가 번뜩이는 천재적인 머리를 가졌지만 그 머리는 이성적이지 못하고, 불타는 시인의 가슴을 가졌지만 그 불은 허영심을 태워버리진 못했다. 다비드는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원하는 바를 만들 능력은 있지만, 사업을 운영할 능력은 없었다. 하지만 이용당할 지언정 남을 속이거나 분수에 넘치는 부를 원하지 않는 성실하고 착한 남자였다.


1권은 이 두 사람을 둘러싼 환경을 설명하고, 이들이 곧 맞이하게 될 운명을 예고한다. 구도시 앙굴렘에서 다비드의 아버지 세샤르 영감은 글을 읽고 쓸 줄은 모르지만 인쇄소를 물려받는다. 대혁명 이후 인쇄소 주인이 사망하자 혁명 정부는 인쇄소가 필요했기에 면허를 남발한 것이다. 세샤르 영감은 사업 수완이 좋았고 시대가 그를 도왔다. 그리고 이 수전노 같은 영감은 아들이 자신보다 잘났다는 이유로 혹은 뭐 자기만의 어떤 이유로 아들인 다비드를 등쳐 먹으려고 한다. 


뤼시앵의 아버지 샤르동은 군의관 출신 약제사로 단두대에서 처형당하기 직전 뤼방프레 가문의 아가씨를 구출해 도망친다. 그들은 결혼했고 뤼시앵과 에브를 낳았다. 귀족이었으나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뤼방프레 아가씨는 이제 약제사의 아내가 되어 온갖 잡일을 한다. 


앙굴렘에 나타난 바르주통 부인은 뤼시앵을 흔든다. 그녀는 자신에게 어울리도록 뤼시앵이 모계의 성을 따르라고 부추겼다. 잘생긴 얼굴에 매력적인 언사를 구사하는 뤼시앵은 바르주통 부인에게 매료되고, 그들은 순식간에 질시의 대상이 되어 이상한 스캔들에 휘말려 앙굴렘을 떠나 파리로 향한다.


일단 여기까지가 1권의 이야기이다. 역시 사람이 사는 이야기는 막장이 대세인 걸까. 그 시대나 지금 이 시대나 여러 인간 군상들이 있지만 우쭈쭈해주면 좋다고 잘난 척하다가 패가망신하고 주변인들까지 구렁텅이로 몰고 가는 사람은 꼭 있다. 그렇게 뤼시앵은 여러 번 후회하고 울면서 참회하다가 바로 다시 도박 하러 가는 종류의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런 그를 뒷바라지하는 참한 가족들이 있기 마련이고.


복장 터지는 것 같아도 어쩜 그렇게 그 인간의 행태를 잘 따라가는지 감탄했다. 그리고 망할 것 같으면서도 불사조처럼 살아나는 그를 보며 신기했다. 예나 지금이나 잘생기면 아주 아주 유리한 법이다. 


이쯤되면 조금은 다른 의미지만 떠오르는 인물들이 있었다. 안나 카레니나와 레빈이 그들이다. 뤼시앵과 다비드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마음이 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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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6-30 1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론 기존의 기득권세력이 몰락하는 혁명의 시대에는 어김없이 인간의 본성이 적나라하게 들어가는 막장극이 펼쳐지는것 같더군요.

꼬마요정 2026-06-30 14:54   좋아요 0 | URL
그럴 때 아무래도 더 인간의 본성이 더 비극적으로 펼쳐질 것 같습니다. 여튼 막장이라 그런가 내용이 예상이 가지만 재미있게 읽었어요. 3권짜리인데 진짜 술술 넘어갑니다. ㅎㅎㅎ
 
태풍의 계절 암실문고
페르난다 멜초르 지음, 엄지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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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북중미 월드컵이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멕시코에서 1차전을 치렀고 이겼다. 방송에 나오는 과달라하라는 떠들썩하면서 흥겨워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비바 멕시코' 문구가 쓰인 멕시코 전통 모자를 쓴 사람들도 bts 문구가 적힌 옷을 입은 사람들도 연신 웃으면서 각자의 응원을 했다.


저렇게 화려하고 환한 모습도 멕시코의 한 부분일테다. 그리고 이 책이 그리고 있는 세상 역시 멕시코의 일부분이다. 어쩌면 많은 부분일지도 모르겠지만.


이야기는 강에서 부패한 시체가 떠오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이들은 강에서 시체를 발견하는데, 그 시체는 눈알도 파 먹혔으면서 '웃는 얼굴'이었다고. 작가의 고향 베라크루즈는 빈곤과 폭력이 만연한 곳이었나보다. 극도의 가난은 사람들에게서 '인간다움'을 빼앗았다. 폭력과 강간이 난무하고 방치된 아이들은 그 모습을 고스란히 재현해낸다. 


베라크루즈 해안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마을 라 마토사에는 엄청난 땅을 가진 마놀로 콘데가 있었고, 마녀라 불린 존재가 있었다. 외로웠던 마놀로 씨가 데려 온 매춘부였던 그녀는 멕시코 사람들이 잊어가던 옛것들을 잘 알았다. 잊혀진 약초들을 재배하고 채취하여 약물을 만들어 가난한 마을 사람들을 도와주기도 했고, 주술 행위 같은 것들도 했더랬다. 사람이란 존재는 이상한 심리를 가졌기에 기이하게도 도움을 준 이를 마녀라고 불렀다. 그들은 전통과 유일신 사이에서 헤맸고 두려움과 죄책감 사이에서 희생양을 찾았다. 마놀로 씨가 심근경색으로 죽자 마을 사람들은 마녀가 저주로 죽였다고 속닥거렸고, 마녀를 내쫓으려던 마놀로 씨의 아들들은 트럭 사고로 죽었다. 그리고 마녀는 은둔했다.


마녀에게는 새끼 마녀라고 불리는 아이가 있었는데, 이름조차 없었다. 책을 읽는 내내 이 아이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했다. 이름으로 불렸다면 아마 정체성이 드러났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아이는 이름이 없었다. 그저 마녀 혹은 새끼 마녀일 뿐이었고, 마녀를 추모하는 존재이자 라 모마토사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그곳의 민중이었다.


8개의 장은 여러 인물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었다. 한 인물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이 사람의 이야기가 맞는 것 같고 저 사람이 잘못한 것 같았지만 결국은 모두가 빈곤과 결핍 속에서 치열하게 살고자 했던 피해자인 것만 같았다. 거대한 허리케인으로 인해 산사태가 일어나고 마녀는 죽었다. 마녀가 죽고 새끼 마녀는 까만 베일, 까만 스타킹, 까만 블라우스, 까만 치마를 쓰고 신고 입고 마을에 등장한다. 그리고 마녀의 죽음은 온갖 추측과 말도 안 되는 소문들을 '사실'로 만들었다. 주술로 사람을 죽이고 저주로 누군가의 이성을 날리고 악마를 보내 뱃속의 아이를 해친다는 미신은 모두 사실인 양 새끼 마녀가 떠안았다. 그리고 마녀의 집에는 엄청난 돈 혹은 보석이 있다고.


이 곳에는 여자고 남자고 할 것 없이 성(性)과 폭력이 없으면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없는 듯 했다. 정유회사에는 인맥이 있는 사람만이 갈 수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사는지 암담했다. 아이들은 계속 태어나고 일하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고 그들은 모두 교육이라고는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아들 혹은 손자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할머니가 있어 재산을 탕진하고, 의붓딸을 성적으로 사랑한 남편이 있고, 편애에 질려 엄마를 떠난 딸들이 있고, 오입질하는 아내와 남편들이 있었다. 그리고 무슨 일만 있으면 마녀를 찾았다. 그렇다고 마녀가 모든 걸 해결해주거나 주술을 부리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런 마녀가 아니니까. 애초에 그런 마녀는 없으니까.


노르마의 이야기가 무척 애잔했는데, 그 아이가 말하는 <일요일 일곱>이라는 개념이 특이했다. <두 명의 곱사등이 이야기>라는 책이 나오는데, 그 이야기는 마치 우리나라 전래동화 <혹부리 영감>이랑 비슷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나라 혹부리 영감은 욕심 부리다가 혹 하나를 더 붙이는데, 이 곱사등이는 잘못된 말을 해서 혹이 더 붙었다는 점이었다. 마녀들의 연회에서 '목요일과 금요일과 토요일, 여섯!'을 외친 곱사등이는 혹을 떼고 부자가 되었지만 샘이 많던 곱사등이는 '일요일, 일곱!'을 외쳐 혹도 붙이고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일요일 일곱은 그 문화권이 아닌 내게는 무척이나 생소했는데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불편한 장면들도 많고 이야기 자체도 힘들지만 놓을 수가 없었다. 뒤로 갈수록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했고 누구에게도 이입할 수가 없었다. 다만, 노르마 그 아이만은 애달펐다. 비열하게 웃던 금발 청년과 죽은 이의 영혼이 빛을 찾아가도록 인도하는 노인의 대비가 아팠다. 공권력이 지켜주기는 커녕 같이 짓밟았던 저 사람들은 죽어서는 빛을 찾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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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6-06-16 2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멕시코 작가가 쓴 소설인가 봅니다 멕시코 작가 소설 못 본 것 같기도 하네요 멕시코뿐 아니라 못 본 나라 소설 많을 듯합니다 멕시코 잘 모르지만, 누군가는 살기 좋고 누군가는 그렇지 않겠네요 남미는 거의 마약 카르텔, 그런 게 생각나기도 합니다 그래도 거기에도 사람이 살겠지요 누군가를 마녀로 여기는 건 어디에서나 일어나는 건가 싶기도 합니다 좋을 때는 괜찮아도 안 좋으면 마녀 때문이다 하고... 책 제목인 태풍의 계절이 거기엔 따로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희선

꼬마요정 2026-06-29 00:48   좋아요 0 | URL
저도 멕시코 작가 책은 거의 본 적이 없답니다. 말씀처럼 못 본 나라 작가들 소설이 훨씬 많겠지요. 저도 멕시코 하면 영화<코코> 보다는 마약 카르텔이 먼저 떠오르더라구요. 예전에 열심히 보던 csi 마이애미도 생각나구요.

이 책의 마녀는 우리가 통념으로 알던 마녀와는 조금 다르더라구요. 읽는 내내 불편하지만 그래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그들이 죽어서는 평안하길 바란다고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