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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 갱 올스타전
나나 크와메 아제-브레냐 지음, 석혜미 옮김 / 황금가지 / 2025년 4월
평점 :
이 책이 <1984>와 <시녀 이야기>의 뒤를 이을 거라는 광고를 봤다. 내가 둘 다 좋아하는 책이어서 혹해서 샀는데... 나는 그 유명한 신문이나 작가들만큼의 식견이 없어서인가.
왜 자꾸 광고에 현혹되는지 모르겠다. 다른 물건들은 광고를 봐도 와 하고 그 순간만 지나면 잊어버리건만 책은 왜 뇌리에 남아서 사게 되는 건지... 아시는 분 계시려나.
이 책은 미래의 어느 날, 범죄자의 인권이 박살난 우주적 상황을 이야기 한다. 마치 고대 로마에서 검투사 노예들이 죽을 때까지 결투를 벌인 것처럼 범죄자들이 '형사 범죄 처벌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에 자발적, 비자발적으로 참가하여 죽을 때까지 혹은 사면될 때까지 싸운다. 현재 미국 교정 시설은 민영화 되어 수용 인원을 초과하는 범죄자들을 받기도 했으며, 코로나 시국에는 교도소에 자리가 없어 범죄자들을 가석방하는 경우도 있었다. 당연히 이윤을 내기 위해 범죄자들의 인권은 무시되었고, 위생 상태 역시 엉망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이런 상황을 고발하기 위해 이 책에서는 말도 안 되는 '형사 범죄 처벌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을 내놓는다. 범죄자들은 인플루언스라는 고통을 극대화 하는 무기로 인해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고, 인플루언스의 위험성을 말한 연구원 역시 감옥으로 가게 된다.
민영화된 교정 시설이 갖춘 이윤 창출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수감자들을 착취하게 된다. 이윤을 내기 위해 인권 침해는 물론이고 위생 환경 역시 열악할 수밖에 없다. 범죄자들을 수감하여 격리와 교정을 담당한 교정 시설이 원래 목적을 상실했고, 이윤 극대화는 '데스 매치'를 통해 대중들을 유혹한다.
범죄자라면 그들의 인권은 무시되어도 좋을까? 그들이 가진 성적 취향이나 윤리적 가치 역시 무시되어도 좋을까? 만약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는 사람이 그런 일을 당한다면 당연히 분노하겠지만, 살인이나 강간 같은 극악무도한 죄를 짓고 들어 온 사람에게까지 너그러워질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살인이라도 자신을 강간하려는 사람에게 대항하다가 그 사람이 죽은 경우, 이 사람은 극악무도한 범죄자일까?
현재 미국에서는 흑인이 백인보다 높은 비율로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수감된 흑인들이 억울한 경우인가는 다른 문제인 것 같다. 이는 범죄를 저지른 백인이 인종 문제로 잡히지 않은 것이 더 문제라는 뜻은 아닐까.
그래서인지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을 때까지 주인공인 서워에게, 연인인 스택스에게 이입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작가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주인공에게 서사를 부여하고 감정을 이입하기 마련인데, 이 책은 그러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줬다.
그런데 이런 결투를 대중들이 좋아한다고? 그렇다면 고어 영화가 대박을 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잔인한 상황을 그대로 내보내는 스너프 같은 것들이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을 고문하고 살해하는 것이 법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그릇되기 때문인데, 어쩌다가 인간은 또다시 살육을 즐기게 된 것일까.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광경에 열광하고 많이 죽일수록 팬이 늘어간다는 점이 너무나 끔찍했다. 이들에게 동조하고 열광하는 사람들 역시 방조 내지는 살인 교사의 죄를 물어야 마땅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