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소 군도는 자기 혼자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전국적인 흐름에 맞추어 발전했다. 국내에 실업자가 많았을 때는, 구태여 죄수들의 노동력을 이용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체포 목적은 노동력 동원이 아니라, 방해자를 제거하는 데 있었다._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3>


  알렉산드르 솔제니친(Aleksandr Solzhenitsyn, 1918 ~ 2008)의 <수용소 군도 3>에서는 수용소의 성격 그리고 목적들이 표현된다. 작가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적군(독일군)의 포로 수용소로서 기능한 수용소 군도가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체제 반대 세력의 숙청 수단으로 활용되었음을 고발한다. 이와 함께, 비록 수용소의 성격은 바뀌었지만, 죄수들의 강제 노동이라는 기능은 바뀌지 않았음도 독자들은 확인한다.


 전쟁 중인 상태와 전쟁 후의 상태에서 부족한 것은 생산이다. 전시에는 군수물자가, 전후에는 생활용품과 사회기반시설(SOC)이 부족하다는 차이가 있지만, 국가 체제의 유지를 위해서는 안정되고 충분한 공급이 필요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 지배계급에게 수용소 군도의 수감은 반체제 인사 제거와 노동력 공급이라는 두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이었다.  반면, 이러한 사실은 수용소에 수감된 이들에게 사회로부터의 격리와 한계 상황으로 내몰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 강요된 노동 속에 그들은 열렬한 의식적 창조의 최고 형태 중 하나를 찾아냈다. 스딸린에게는 '어딘가' 죄수들에 의한 대규모의 건설이 필요하고, 확실하게 다량의 노동력과 인명(꿀라끄 박멸 결과 발생한 잉여 인간)을 삼켜야하고, 살인용 독가스와 효과는 같으면서도 비용은 더 싸야 했다... 수용소 내의 경쟁과 돌격 작업 운동은 <보상의 모든 체계>와 결부되어, 그 보상이 돌격 작업 운동을 '촉진'하지 않으면 안된다. 경쟁의 중요 기반은 이윤 원리에 있다._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3>


 모든 것은 생산 지수에 의존하게 된다. 식사도! 주거도! 의복도! 속옷과 목욕하는 날도! 기한 전의 석방도! 휴식도! 면회도! 예를 들면 돌격 작업반원의 배지를 주는 것은 -순수한 사회주의적 형태의 권장이라 하겠다.... 균형 잡힌 질서가 확립되고, 이윽고 죄수들 자신도 그것을 유일하게 적합한 것으로 생각할 정도로 익숙해졌다. 그리고 우리도 이 책에서 그런 식으로 기술할 생각이다. - '재교육' 보다는 오히려 '노동'에 중점을 둔 질서를._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3>


 국가는 이렇게까지 잔인해서는 안 된다. 국민을 이렇게 위선으로 몰아서는 안 된다. 죄수들은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한다. - 뚜흐따(속임수)와 암모날(폭약)이 없었더라면 운하도 건설되지 못했을 것이다 - 라고. 이 모든 것이 군도의 기반인 것이다._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3> 


 <수용소 군도>에서는 강제 수감된 이들의 처절한 생활과 한계 상황에 몰린 이들이 무너져 가는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극한 상황 속에서 정신은 붕괴되고, 자신의 연약한 몸 하나에 의지해 살아가는 죄수들의 모습은 독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들 죄수들을 동정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대신, 같은 아픔을 공감(共感)한다. 수용소를 국가 체제로 바꾸어 생각해보면 어떨까. 다소 지나친 감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수용소에 수감된 죄수들도 수용소를 원해서 간 것은 아니었고, 우리가 한 나라에서 태어난 것도 우리의 희망과는 무관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한 걸음 나가서 이들 사회 내의 질서를 본다면 이러한 생각은 더 굳어진다.


 수용소에서 이루어지는 육체적 가혹행위는 우리가 국가(또는 사회)에 반대되는 행위를 했을 때 행해지는 다른 징벌과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라도 분명 같은 의도로 이루어지는 행위가 아닐까. 또한,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사회, 가난과 배고픔으로 약자들을 억압하는 질서, 약자들을 분열시켜 지배층에 대항하지 못하게 하는 정치, 자본을 가진 이들의 예외 등은 수용소에서도 예외없이 적용되었다. 지금 우리 현재의 모습과 수용소의 모습이 이처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때, 과연 누가 누구를 동정할 수 있을까?


 수용소에서는 약자를 잘 때린다. 작업 할당계들이나 반장들뿐만 아니라 일부 죄수들도 자기가 아직 약하지 않다는 것을 자기 자신에게 납득시키기 위하여 약자를 괴롭힌다. 인간이 타인한테 잔혹한 짓을 하지 않고서는 자기의 힘을 믿을 수 없는 동물이라면 하는 수 없지 않겠는가?... '기아' 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은 수백년 전에 발견된 것이다! (그리하여 이 '기아'에 대해, 굶주린 자는 배부른 놈에 대해 반드시 반란을 일으킨다는 '진보적 이론' 전체가 성립된다.) 인간 자신이 의식적으로 죽으려고 결단하지 않는 한, 기아는 모든 한 사람 한 사람을 지배하고 있다._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3> 


 수용소 군도는 과거에 얻은 습성 중에서 단 한 가지만은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무뢰한과 파렴치범들을 고무시키는 일이었다. 파렴치범에게는 수용소에서 전보다 더 높은 '지도적인 지위'가 부여되었다... (스딸린의) 은사를 받은 것은 형사범이나 경범죄 죄수들이었다. 그들은 이미 수용소를 떠나고 있기 때문에 생산의 배가에 호응해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정치범들이었다._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3> 


 1백만 루블로 건강은 살 수 없겠지만, 자유는 살 수 있어, 권력도 살 수 있어. 인간도 살 수 있어. 그런 백만장자는 사회에 얼마든지 있어._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3> 


 <수용소 군도 3>을 통해 1940년대 소련의 강제 수용소를 읽지만, 동시에 2020년대 우리 사회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고, 공감하는 것. 수용소의 비극은 과거지만, 우리의 비극은 진행중이라는 점이 더 가슴아프게 다가온다. 어쩌면, <수용소 군도>는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 ~ 1950)의 <동물농장 Animal Farm>보다 더 직접적인 풍자 소설일지도 모르겠다. 차이가 있다면, <동물 농장>이 동물 농장을 통해 소련을 풍자했다면, <수용소 군도>는 소련을 통해 우리 사회를 풍자한 것이 아닐까를 생각해 보며, <수용소 군도 3>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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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1-29 10: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본주의 사회구조 자체도 나름의 착취구조를 가지고 있으니까 <권력>은 어떤 이데올로기에서든 약자를 핍박하고 착취하는것 같아요. 3권(저에겐 고비였어요;) 완독 수고하셨습니다.👍👍👍

겨울호랑이 2021-01-29 12:31   좋아요 2 | URL
<수용소 군도 3>에서 그려지는 수용소 내의 질서가 본질적으로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우리 삶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이러한 모습이 공산주의 체제 내의 수용소였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을 갖는다기 보다는, 미미님 말씀처럼 체제와 관계없는 사회의 근본적인 질서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러한 생각이 발전하면 인간 사회 발전에 대한 회의로 갈 수도 있지 않을까도 생각해 보네요... 제겐 작가가 써내려간 수용소의 의의가 전체 내용의 중간 부분에 배치되어 적절했다고 보여집니다. 아직 갈 길이 머네요. 미미님 감사합니다.^^:)

scott 2021-01-29 10: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백만 루블로 건강은 살 수 없겠지만, 자유는 살 수 있어, 권력도 살 수 있어. 인간도 살 수 있어. 그런 백만장자는 사회에 얼마든지 있어]밑줄 쫘악~👍👍👍

겨울호랑이 2021-01-29 12:34   좋아요 2 | URL
해당 구절과 관련해서, 저는 페르낭 브로델이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 말한,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의 구분이 떠올랐습니다. 공산주의, 자본주의 등의 체제와 관계없이 부족한 물건을 상대에게 주고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얻는 교환 경제의 모습은 인류가 오랜 사회 생활을 통해 이뤄온 삶의 모습이기에, 그 사이에서 생겨난 힘의 불균형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는 어렵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scott님 감사합니다.^^:)
 

 

 M이론은 이론이 아니다. 오늘날까지 많은 이론학자들이 M이론이 가질 수 있다고, 또는 가져야 한다고 여기는 구조를 어설프게 두드려 맞추고 있지만, 누구도 M이론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엄밀히 말해서 M이론은 고유의 11차원 초끈이론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추정'이다. 1999년 처음 세상에 나와 베스트셀러가 된 브라이언 그린의 <엘러건트 유니버스>같은 대중 과학서적은 웅변조로 M이론을 설명했다(p222)... 초끈 연구는 하나가 아닌 두 개의 거대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다. 바로 끈과 초대칭이다. 그리고 둘 중 어느 것도 경험적 근거가 없다. 두 아이디어는 자연이 이러할 것이라는 '추정'으로부터 유도된 것이며, 현재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점 입자 개념과 계층 문제 같은 구조가 지닌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나온 것이다.._ 짐 배겟, <퀀텀 스페이스>, p223


 짐 베것(Jim Baggott, 1957 ~ )의 <퀀텀 스페이스 Quantum Space: Loop Quantum Gravity and the Search for the Structure of Space, Time, and the Universe>는 고리양자중력 이론(Loop Quantum Gravity, LQG)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카를로 로벨리(Carlo Rovelli, 1956 ~ )와 리 스몰린(Lee Smolin, 1955 ~ )의 이론을 소개한 대중 교양서적 속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초끈이론' 그리고 'M이론'에 대한 비판이다.


 개인적으로는 미치오 카쿠(Michio Kaku, 1947 ~  ), 브라이언 그린(Brian Randolph Greene, 1963 ~  ), 리사 랜들(Lisa Randall, 1962 ~  ) 등 초끈이론에 해당하는 책들을 먼저 접했기에 이에 대한 비판에 더 관심이 간다. 사실, 초끈이론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에 서 있는 물리학자 중에는 2020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로저 펜로즈(Sir Roger Penrose, 1931 ~ )도 추가된다. 펜로즈는 그의 저서 <실체에 이르는 길 The Road to Reality>에서 초끈 이론을 비판하는데, 이들 초끈이론 비판론자들의 주된 내용은 다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초끈이론은 시공간(Space-Time)의 자유도를 고정적인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과 숨겨진 6차원의 다양체(칼라비 야우 다양체 Calabi-Yau manifold)의 값이 확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기억하자. 이것(초끈이론)은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설명하는 공간과 시간의 본질을 전부 끌어다가 양자장이론과 대단히 비슷한 구조로 풀어낸 이론이었다. 이 이론은 지저분하고 지루한 재규격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풀리는 방정식들을 내놓았고, 이 방정식의 풀이는 좌표계를 어떻게 선택하더라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다시 말해, 모든 종류의 배경 시공간에 독립적이다._ 짐 베것, <퀀텀 스페이스>, p220

 

 에드워드 위튼은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끈이론은 중력을 예견하는 놀라운 특성을 갖고 있다." 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 말도 했다. "중력이 끈이론을 통해 유도된다는 것은 이론물리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이다." 그러나 끈이론은 차원문제 이외에도 (적어도 지금까지는) "멱급수로 전개되는 건드림이론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한계를 갖는다(끈이론에서 실행되는 계산은 대부분 끈상수에 대한 멱급수로 표현된다.) 상대성이론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것이 끈이론의 심각한 한계이며, , 근본적인 원리에서 출발한 아인슈타인 일반상대성이론과 비슷한 수준의 이론이 결코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p604)...  끈이론은 중력을 서술하는 이론임을 자처하지만, 사실은 시공간 계량의 역학적 자유도를 적절하게 서술하지 못하고 있다. 시공간은 끈의 자유로운 이동을 허용하는 '고정된' 배경일 뿐이다. _로저 펜로즈, <실체에 이르는 길>, p605


 초끈 이론이 갖는 가장 큰 매력이 자연계의 네 가지 힘인 전자기력, 강한 핵력, 약한 핵력, 중력을 하나로 묶는 궁극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 ToE)에 가까이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양자물리학의 세계에 어울리지 않은 고정된 시공간의 가정은 고전 역학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인상을 준다. 또한, 궁극의 이론으로서 초끈 이론이 가진 매력이 단순히 수많은 가능성들의 나열에 그친다면, 배것이 지적한 바와 같이 다른 가능성 또한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이 지점에서 짐 베것과 로저 펜로즈, 카를로 로벨리의 비판은 공통점을 갖는다.


 초끈 이론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변종 초끈이론과 추가적인 공간 차원을 숨기는 칼라비-야우 공간의 개수가 마구잡이로 늘었지만 그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 기준을 알 수 없어서 이론의 고유성이 사라진 것이었다.(p220)... 초끈 이론학자들은 초끈이론이 만물의 이론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자 '유일한 기회'라고 확신했다. 이 분야에 속한 이들은 만물의 이론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중력의 양자이론으로 갈 수 있는 다른 길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았다._ 짐 베것, <퀀텀 스페이스>, p221


사실 끈이론학자들은 내(펜로즈)가 언급하지 않은 다른 문제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이론의 '유일성 uniqueness'에 관한 문제이다. 끈이론에 의하면 10차원 우주의 상당 부분은 컴팩트한 프랑크 스케일의 6차원 다양체 y안에 '돌돌 말려 있다.' 이 6차원 다양체의 정체는 무엇일까? 왜 우주는 하필 이런 곳에 말려 있는 것일까? 끈이론학자들은 여기에 초대칭과 적절한 차원, 리치 평평성을 비록한 물리학의 기본 조건을 몇 개 부과하면 유일한 답을 얻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동일한 가능성을 가진 답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_로저 펜로즈, <실체에 이르는 길>, p624


 초끈 이론의 핵심이 바로 '숨겨진 차원'이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초끈 이론가들에게 숨겨진 차원은 일종의 '본유 관념(本有觀念, innate idea)'가 아닌가 여겨진다. 숨겨진 여분의 차원에 대한 가정 없이는 10차원 이상의 세계를 말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들의 논쟁은 과거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간의 대립을 떠올리게도 한다.


 물리적 실체의 본성에 대해 양자이론이 말하는 불편한 사실 중 일부를 외면하려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해도, 일단 입자물리의 표준모형의 양자장이론이 말해주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정리해야 한다. 이 이론에서는 기본 물질 입자들과 힘 입자들이 힉스장과 어느 정도의 세기로 상호작용을 하는지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이 이론을 가지고 기본 원리에서 출발해 입자들의 질량을 계산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대신 실험으로 질량을 측정해 일일이 수작업으로 방정식에 대입해야 한다. 이와 비슷하게, 물질 입자들 사이에서 작용하는 힘의 상대적 세기도 알아낼 방법이 없다. 그저 측정할 수 있을 뿐이다._ 짐 베것, <퀀텀 스페이스>, p136 


[사진] Solvay Conference(출처 : Amazon.com)

 

 또한, <퀀텀 스페이스>안의 초끈이론과 이에 대한 비판을 읽으면서 1927년 제5차 솔베이 회의에서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 1901 ~ 1976) 의 불확정성 원리를 둘러싼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 ~ 1955)와 보어(Aage Niels Bohr, 1885 ~ 1962)의 논쟁을 보는 듯하여 자못 흥미롭게 느껴진다. 이들의 이론에 대해 어느 쪽이 더 치밀한 논리를 갖는가를 판단하기에는 아직 실력이 부족하지만, 일반 대중들을 향해 지지를 호소하는 그들의 논리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현대 물리학에 대한 논쟁은 치열하게 진행 중이기에 일반 독자로서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세계적인 석학들의 백가쟁명(百家爭鳴)의 모습을 통해 조금은 성장해간다는 것은 분명 독서가 주는 기쁨 중의 하나일 것이다...


 칼라비-야우 다양체와 우주의 모양에 대해서는 경문수학산책에서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어 여기에 소개한다. 또는 뉴턴코리아에서 발행하는 뉴턴 하이라이트 시리즈도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아 함께 올린다...











 ps. 빛의 속도(光速)을 우리는 절대 속도이고, 어떤 것도 빛보다 빠를 수 없다는 것이 물리학의 기본 가정이지만, 이것은 우리가 실험과학을 통해 얻게 되는 결과에 의존한 가정이 아닐까. 우리가 '보는 것(seeing)'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며, 보는 것은 눈으로 들어온 빛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빛의 속도가 절대 속도라는 가정은 우리 인식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빛의 속도는 아마도 생각의 속도와 같을 것이다...


 말 이전에 보는 행위가 있다. 아이들은 말을 배우기에 앞서 사물을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 그러나 보는 행위가 말에 앞선다는 것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보는 행위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결정해 준다.(p9)... 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또는 우리가 믿고 있는 것에 영향을 받는다._ 존 버거, <다른 방식으로 보기>,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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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21-01-25 19: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1차원 초끈이론이 반드시 존재해야… 10차원 우주… 6차원 다양체 … 이해불가… 합니다 ;;

겨울호랑이 2021-01-25 19:37   좋아요 2 | URL
저도 읽긴 합니다만... 수식을 따라가면서 이해하기는 일반 독자 수준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것 같아요. 기껏해야 물리학자들이 도출한 최종 공식 속의 변수들의 관계를 음미하고 의미를 생각하는 수준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인 것 같네요... ㅜㅜ

북다이제스터 2021-01-25 19: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존 버거의 글로 마무리가 넘 좋습니다.
본다는 경험을 넘어선 추측과 이론은, 예를 들어 선험적인 것은, 여전히 의구심이 많습니다.
경험도 믿을 건 못되지만 경험조차 없는 건 어찌 판단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

겨울호랑이 2021-01-25 20:34   좋아요 1 | URL
^^:) 감사합니다. 요즘 북다이제스터님의 독서 주제와 살짝 만나는 지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북다이제스터님의 글에서 흄에 대한 북다이제스터님의 애정을 발견한다면 제가 너무 나간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mini74 2021-01-25 2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관심있는 분야라 저희집에 있는 책들이 보이네요. 읽어보려 노력했지만 ㅠㅠ 전 까막눈인걸로 ㅎㅎ

겨울호랑이 2021-01-25 22:54   좋아요 1 | URL
^^:) 누구나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의 책을 좋아하고 그쪽으로 손이 가는 것 같아요. 저도 관심이 없는 분야의 책은 선뜻 손이 가질 않네요...

mini74 2021-01-26 00:22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님 포스팅 읽으니 또 도전해보고 싶은 맘이 생깁니다. 엘리건트 유니버스부터 한 번 읽어볼까 합니다 *^^*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어요 ~

겨울호랑이 2021-01-26 06:58   좋아요 1 | URL
mini74님 즐거운 독서 되세요! 감사합니다^^:)

단발머리 2021-01-26 07: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겨울호랑이님 포스팅을 읽는 것으로 갈음합니다. 어제 읽은 아주 얇은 책에서 만난 끈이론이 이렇게나 반갑네요.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해요^^

겨울호랑이 2021-01-26 10:21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감사합니다. 봄비같은 겨울비가 내리네요. 따뜻하고 평안한 하루 되세요!^^:)
 

 

 언론이 그 자체로서 이미 권력의 실체 가운데 중요한 부분이라는 점은 그 이후에도 한국 언론의 독특한 성격으로 규정된다._민주언론시민연합, <보도지침 1986 그리고 2016>, p31

 

  뉴스타파에서 제작한 <족벌, 두 신문 이야기>는 언론 권력의 두 핵심인 <동아일보 東亞日報>와 <조선일보 朝鮮日報>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영화는 1988년 5공 청산 청문회에 출석한 두 언론 사주(社主)들의 증언의 진실을 찾는 구성을 갖는데, 그 과정에서 이른바 '민족정간지'라 주장하는 이들의 허위가 낱낱이 벗겨진다. 일본언론보다 더 일왕을 추종한 두 언론들. 일왕 생일 때마다 일장기를 게재한 이들 신문의 경쟁적 행태를 보노라면 과연 1936년도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살을 했던 동아일보가 맞는지 의심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한결같이 일장기를 신문 1면에 올린 조선일보는 신뢰성은 없지만, 황국신민일보로서 일관성은 있다 하겠다...  이와 관련하여 다소 내용이 길지만, <친일인명사전>에 실린 두 신문 사주들의 친일 행적을 옮겨 본다.


김성수(金性洙, 1891 ~ 1955) 보성전문학교 교장, 동아일보 사장.


 1891년 10월 11일 전라북도 고창에서 태어났다. 호는 인촌(仁村)이다...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다. 1919년 10월 조선총독부로부터 경성방직 설립 인가를 받았고, 동아일보 설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1920년 7월부터 동아일보 사장으로 일했다... 1937년 7월에 일어난 중일전쟁의 의미를 널리 확산시키기 위해 마련된 경성방송국의 라디오 시국강좌를 7월 30일과 8월 2일 이틀동안 담당했다. 같은 해 8월 경성군사후원연맹에 국방헌금 1,000원을 헌납했다... 조선에서 징병제 실시가 결정되자 1943년 8월 5일자 <매일신보>에 "문약(文弱)의 고질(痼疾)을 버리고 상무기풍을 조장하라"는 징병격려문을 기고했다. 이 글에서 징병제 실시로 비로소 조선인이 명실상부한 황국신민이 되었다면서 지난 오백년 동안 문약했던 조선의 분위기를 일신할 기회를 얻었다고 주장했다... _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p426


 방응모(方應謨, 1884 ~ ?) 조광 발행인. 조선일보 사장.


 1884년 1월 3일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호는 춘해(春海)이며, 뒤에 계초(啓礎)로 고쳤다... 1922년 <동아일보> 정주분국을 인수한 뒤 지국으로 승격되자 정주지국장에 임명되었다... 금광개발에 뛰어들어 1924년 평안북도 삭주의 교동광업소를 인수하고 경영을 확대하여 굴지의 광산업자로 성장했다... 1932년 6월부터 <조선일보> 영업국장으로 활동하다가 1933년 3월 <조선일보>의 경영권을 인수하여 부사장에 취임했다. 같은 달 조선군사령부 애국부에 고사기관총(제16호) 구입비로 1,000원을 헌납했다. 같은 해 7월 조선일보 사장에 취임해 1940년 8월 폐간 때까지 재직했다... 1936년 <동아일보>와 <조선중앙일보>가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정간과 강제휴간을 당하자, 경쟁관계에 있던 <조선일보>는 전국적으로 발전자축회를 개최하는 등 이를 사세 확장의 기회로 이용했다... 1937년 2월 원산의 순회 강연에서는 "우리 조선일보는 다른 어떤 신문도 따라오지 못하는 확고한 신념에서 비국민적 행위를 단연 배격하여 종국까지 조선일보사가 이미 정해 놓은 방침에 한뜻으로 매진한다."는 망언을 서슴지 않아 참석자들에게 봉변을 당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증일전쟁 개전 직후인 1937년 7월 11일에 열린 <조선일보> 간부회의에서 주필 서춘이 '일본군, 중국군, 장개석 씨' 등으로 쓰던 용어를 '아군, 황군, 지나 장개석'으로 고치고 일본 국민의 입장에서 논설을 쓸 것을 주장했다. 방응모는 일장기말소사건으로 <동아일보>가 이미 몇 십만원의 손해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3.1운동 때처럼 신문이 민중을 지도할 수 없다면서 서춘의 입장을 지지했다. 이후 <조선일보> 지면은 '국민적 입장'으로 변했다는 조선총독부의 평가를 받았고, <조선일보> 안팎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편집방침은 바뀌지 않았다. <조선일보>의 지면 변화와 함께 방응모도 일제의 침략전쟁을 옹호하는 활동에 나섰다._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p173


  <족벌, 두 신문 이야기>에서는 1940년에 이루어진 강제 폐간 마저도 저항이 아닌 비즈니스 였음을 밝히고 있지만, 더 이상의 상세 내용 소개는 영화를 보는 이들의 즐거움을 빼앗는 것이기에 이만 줄인다. 해방 이후 슬그머니 복간한 두 신문들은 미군정(美軍政)하에서, 박정희(朴正熙, 1917 ~ 1979)의 군사정부 하에서 사실상 기관지 역할을 하면서 권력화되었다. 해방 전후 이들 신문들의 행적은 <보도 지침>에서 옮겨본다.


 제도 언론을 대표하는 <동아일보> 나 <조선일보>는 유난히 민족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다. 이것은 그러나 그들이 해방 전부터 줄곧 권력의 토양 한가운데 뿌리박고, 언론이기 때문에 언론이라는 수단을 통해 철저하게 자신을 위장해서 민중 위에 군림해 온 증거 이상의 것이 되지 못한다. 일제하 한국 언론은 일제의 이른바 문화통치의 소산으로 태어나 식민지 백성과 침략자 사이를 제도적으로나 사실상으로나 완충시키고 일본식 식민통치 방식의 일부로 기능하면서 자기를 유지해왔다. 해방 후 그들은 미군의 '우호 점령'이라는 우호적 상황 아래서 사실상 유일한 토착 실질 권력으로 인정받아 그 물적, 인적 영향력을 십분 활용하여 이니셔티브를 잡았다. 언론이 좌익세력과 민족세력을 배제하는 한편,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승만을 끌어들여 그들의 반민족적 본질을 다시 은폐하고, 그들이 만든 체제 안에서 <동아일보>를 주축으로 그 왼편에 자리 잡은 것이다. _민주언론시민연합, <보도지침 1986 그리고 2016>, p31


 언론 매체와 언론인. 두 족벌 언론들은 1971년 언론자유수호운동(言論自由守護運動)을 통해 참다운 언론의 역할을 수행하려는 언론인들에게 해직으로 응답하는 대신, 그들이 벌인 투쟁의 명예는 자신들이 가져가며 다수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언론이라고 자부해왔음도 우리는 영화에서 지켜보게 된다. 정의와 진리 대신 비즈니스를 추구하는 이들이 1980년대 군사정권의 보도지침을 충실하게 따랐던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태는 계속 진행형이다. 


 재직 당시 본인(신홍범)은 기자로서의 직업적 사명을 충실하게 해내기 위해 양심에 따라 훌륭한 신문을 만들어 보려고 노력하던 평범한 기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 평범한 기자들은 그 후 수많은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 언론에 대한 권력의 압력과 탄압에 맞부딪히게 된 것이다. 기관원들이 거의 상주하다시피 신문사에 출입하면서 언론을 통제하는가 하면 보도기사와 관련하여 기자들과 신문사의 간부들이 연행되는 일이 잦아지게 되었다. 숨 막힐 것만 같은 억압적인 공포 분위기가 신문사의 편집국을 지배하게 되었다.(p421)... 국민 앞에 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자책 속에서 드디어 기자들은 언론자유운동을 벌이게 되었고 그러고는 마침내 무참하게 대량해직되었다. 이같이 언론자유를 외치는 기자들을 언론기업주라는 사람이 언론 현장으로부터 내몰았던 것이다. 그들은 그 피 묻은 손으로 권력과 손을 잡고 1975년 3월 이후부터 이 땅에 제도언론을 만들어 내게 되었던 것이다._민주언론시민연합, <보도지침 1986 그리고 2016>, p422 


  <족벌, 두 신문 이야기> 속에서 여러 생각을 해본다. 이른바 정론지라고 하는 언론사들의 부끄러운 민낯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닌 역사의 문제라는 사실, 그리고 창간 100주년을 앞두고 있는 두 신문사들의 오랜 역사 동안 우리가 알지 못한 진정한 언론인들의 숨은 노력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진실 속에서 짙은 배신감과 희망 또한 발견한다. 이 땅에 썩은 언론 매체는 분명 있지만, 또한 진정한 언론인들도 있다는 사실. 기업으로서 언론 매체와 진실을 좇는 언론인을 우리는 구분해야 하지 않을까를 또한 생각한다. 그 어느 때보다 언론개혁의 목소리가 높은 지금 <족벌, 두 신문 이야기>는 우리에게 분명 많은 것을 말해주는 영화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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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1-25 09: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느 분석기사를 보니,
일등 신문이라고 떠드는 신문사 매출
의 70%가 광고매출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언론은 철저하게 기업이 주
는 단물, 광고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업의 뜻대로 움직이는 기관지라고
해도 무방할 듯 합니다. 자고로 물주
에게 저항하는 언론은 없었으니 말이죠.

겨울호랑이 2021-01-25 19:29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족벌, 두 신문 이야기>에서도 그들의 기사형 광고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낚시형 광고를 통해 기업의 상품에는 신뢰성을 부여하고 대가로 돈을 받아 챙기는 그들의 관행을 지켜보노라면, 얼마전 유튜버들의 뒷광고 논란은 오히려 귀여운 수준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레삭매냐님 말씀처럼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의 공공재에 관한 문제는 분명 우리가 깊이 고민할 문제라 여겨집니다. ^^:)

samadhi(眞我) 2021-02-08 15: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는 민족정론지가 ˝굿모닝 충청˝으로 바뀌었지요. ㅋㅋ

겨울호랑이 2021-02-08 16:06   좋아요 0 | URL
보편적인 상식과 객관적인 진실을 전하는 언론 매체를 자본주의 사회에서 찾기란 참 힘든 것 같습니다. 자본이 없으면 기반이 약해서 오래 뿌리내리지 못하고, 생존을 위해 자본을 따라가면 변질되는 것을 보면서 자본주의 세계에서 바르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긴 합니다만....

samadhi(眞我) 2021-02-08 16:10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도 자본에 굴하기 쉬운데 하물며 큰 권력(?)은 오죽할까요. 그 돈 없으면 망하는 단체, 조직들이 돈 앞에 권력 앞에 당당하기란 쉽지 않겠지만. 숱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책임은 어쩌려는지. 갈수록 이게 아닌데 하고 생각이 드는 현상들이 일어나고 우린 그걸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마는 듯합니다.

겨울호랑이 2021-02-08 16:16   좋아요 1 | URL
어쩌면 어렸을 때 배워왔던 것처럼 큰 사람이 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사는 작은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어렵고 행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대가 바뀐 것인지, 개인의 가치가 바뀐 것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samadhi(眞我) 2021-02-08 16:19   좋아요 1 | URL
맞아요. 저도 요즘 들어 아무것도 되지 말자. 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러고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구요. 그냥 삶을 살아가며 한없이 열린 상태로 깨어나자고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는 우주를 알 수 있을까? 이 모든 은하, 태양계, 수많은 세계, 위성, 혜성, 존재, 그들의 꿈 등등.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것과 존재할 모든 것을 알 수 있을까? 칼 세이건은 <브로카의 뇌>에서 우리가 소금 한 알이라도 제대로 알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 위대한 탐사를 이제 막 시작했다. 생물학자들이 인간 유전체를 지도화하는데 성공한 것처럼, 신경 과학자들은 그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개인마다 고유한 무언가를 지도화하는 작업에 나섰다. 그것은 바로 한 사람의 모든 기억, 생각, 두려움, 꿈으로 이뤄진 고유한 배선도인 커넥톰(connectome)이다. 만약 우리가 그 복잡한 것을 이해 낸다면, 그후에는 서로를 어떻게 대하게 될까?... 생각과 꿈의 커넥톰으로 하나로 연결된 코스모스. 그것이 창발성의 궁극적인 실현일까? _ 앤 드루얀, <코스모스 : 가능한 세계들>, p205


 앤 드루얀(Ann Druyan, 1949 ~ )의 <코스모스 : 가능한 세계들 COSMOS: Possible Worlds>과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 1934 ~ 1996)의 <코스모스 Cosmos>와 차이점과 공통점을 갖는다면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전작 <코스모스>에서는 칼 세이건이 자신의 전공인 천문학으로부터 시작해서 그 관심을 점차 지구로 옮겨오면서 우리의 삶을 살펴본다면, <코스모스 : 가능한 세계들>의 저자 앤 드루얀은 일반적인 삶의 모습으로부터 우주, 우리의 미래로 시선을 옮겨간다는 점을 짚고 십다. 

 

 매크로 코스모스(Macro Cosmos)와 마이크로 코스모스(Micro Cosmos). 두 작품의 출발점은 각각 다르지만, 두 책 모두 결국은 핵전쟁을 우려하고, 인류에 의한 환경 파괴를 걱정하는 결론에 이른다. 우리 인류에 대한 사랑과 미래에 대한 조언을 건넌다는 점에서 두 책의 주제는 같다고 할 것이다. 이 지점에서 두 책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직관적으로 표현했다(물론, 작가는 그런 생각이 없었겠지만)고 생각되는 한 그림을 떠올리게 된다.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da Urbino, 1483 ~ 1520)가 <아테네 학당>에서 손의 위치를 통해 서로 다른 지향점을 표현한 플라톤(Platon, BC 428 ~ BC 348)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 ~ 322). 이들의 관심과 방식은 차이가 있었지만, 결국 지혜(sophia)를 향한 지향점은 같았다는 점을 이에 비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어렵지 않게 우주와 우리 삶을 연결해 주는 두 작품은 좋은 대중 교양서라 생각된다. 


[그림]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da Urbino, 1483 ~ 1520)의 <The School of Athens>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The_School_of_Ath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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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man 2021-01-22 09:0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 두 책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었는데 덕분에 명료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ㅋㅋ

겨울호랑이 2021-01-22 10:01   좋아요 2 | URL
김민우님께 도움이 되어 저 역시 좋네요. 즐거운 독서 되세요!^^:)

초딩 2021-01-22 09:1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두 코스모스를 아테네학당의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으로 비유하신건 정말 멋진 것 같아요! :-)
요즘은 과학책을 보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의심했는데
영자의 세계를 다루는 이론 물리학을 보면 또 회귀하는 것 같아요. 철학으로 ㅎㅎㅎ

겨울호랑이 2021-01-22 10:06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초딩님. 말씀처럼 각론이 아닌 거대 담론에서 고전이 미치는 영향력은 현재에도 유효함을 느낍니다.^^:)

페넬로페 2021-01-22 09:2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두 코스모스를 명료하게 설명해주셔서 잘 이해했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1-01-22 10:07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페넬로페님 좋은 하루 되세요!^^:)

잘잘라 2021-01-22 09:3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런 설명 들으니까 관심이 가요. (표지만 다른, 같은 책인 줄 알았던 1인..😂)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님!😍😍😍

겨울호랑이 2021-01-22 10:13   좋아요 2 | URL
잘잘라님 즐거운 독서 되세요! 감사합니다^^:)

scott 2021-01-22 10: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매크로 코스모스(Macro Cosmos)와 마이크로 코스모스(Micro Cosmos)차이점을 겨울 호랑이님 페이퍼를 통해 알게 된 1人어렵지 않게 우주와 서재 이웃님들과 연결시켜 주시는 겨울호랑이님 짱!

겨울호랑이 2021-01-22 10:29   좋아요 3 | URL
에고 아닙니다... 크게 봐서 두 책이 주로 향하는 시선이 그렇게 느껴졌다는 제 주관적인 생각이라 자칫 오해를 가져다 드린 것은 아닌가 싶네요... ㅜㅜ 이웃분들께서 그저 책에 흥미를 가져주시고, ‘겨울호랑이처럼 생각하는 녀석도 있구나‘ 정도로 생각해 주시면 적당한 것 같아요. scott님 감사합니다^^:)
 

 

 인도의 면공업은 영국에 새로운 기술을 전수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후 영국의 공업을 진흥시키기 위해서 강제적으로 인도의 탈공업화 전략을 통해서 그 발전이 억제되었다. 제국주의 팽창 이전에 인도의 면공업은 영국 면공업에 대한 주요 경쟁 관계에 놓여 있었으나 이후 인도의 면공업 종사 노동자는 그 이후 유럽에 대한 값싼 식품과 원재료의 공급자로 전락하고 만다._김영철, <자본, 제국, 이데올로기> <산업혁명기의 기술혁신과 대외무역과의 관련성에 관한 연구>, p123 


스벤 베케트(Sven Beckert)의 <면화의 제국 Empire of cotton>을 관통하는 주제는 자본주의(capitalism)다. 북반구와 남반구 30도 이내 지역에서 널리 재배되던 면화. <면화의 제국>은 중국과 인도의 면직물에게 밀렸던 유럽의 면직물 산업이 어떻게 경쟁국들을 따돌렸는가를 잘 설명한다. 많은 경우 19세기 유럽 제국주의 침략을 제국주의, 종교, 과학기술, 자본주의의 결합이라고 설명하는데, <면화의 제국>에서는 이들 중 제국주의, 과학기술, 자본주의가 어떻게 제도를 변화시켰는가를 잘 보여준다.

 

 전쟁자본주의는 세계를 '내부'와 '외부'로 가를 수 있는 부유하고 강력한 유럽인들의 역량에 의지했다. '내부'는 모국의 법과 제도와 관습을 포괄했고, 국가가 부과한 질서의 지배를 받았다. 반대로 '외부'를 특징지은 것은 제국의 지배, 방대한 지역의 수탈, 원주민 학살, 자원 약탈, 노예화, 그리고 멀리 떨어진 국가의 효율적인 감시를 벗어난 민간 자본가들의 방대한 토지 지배였다._스벤 베커트, <면화의 제국>, p85

 스벤 베커트는 <면화의 제국>에서 유럽의 자본주의를 크게 2종류로 나눈다. 전쟁자본주의와 산업자본주의가 그것으로, 다른 세계에 비해 여러 면에서 부족했던 유럽인들은 무기를 활용한 침략과 식민지 건설을 시작한다. 이렇게 시작된 전쟁자본주의로부터 축적된 이윤을 바탕으로 산업자본주의로의 이행(移行). 이것이 스벤 베커트가 바라본 진화된 자본주의의 모습이다.


 [사진] Florida's Culture of Slavery(출처 : https://floridahumanities.org/floridas-culture-of-slavery/)


 유럽인들은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업에 착수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냈고, 생산에 뛰어든 뒤로는 철저히 노예제에 의지해 부를 창출했다. 제국주의적 팽창과 수탈, 노예제라는 세 동인이 새로운 전 지구적 경제질서를 조성하는데, 그리고 궁극적으로 자본주의가 등장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가 되었다. 세 동인들은 이 새로운 세계의 한 가지 또 다른 요소와 결합했다. 바로 국가였다._스벤 베커트, <면화의 제국>, p84


 여전히 규모도 작고 기술적으로도 뒤처진 유럽 면산업의 기반을 잡아준 것은 바로 제국의 팽창, 노예제, 토지 약탈로 요약되는 전쟁자본주의였다. 전쟁자본주의 덕분에 유럽의 면산업은 역동적인 시장을 얻었고, 기술력과 필수 원료에 접근할 수 있었다. 또한 전쟁자본주의는 자본 형성에도 중요한 추진 장치가 되었다.(p104)... 마지막으로, 전쟁자본주의는 보험, 금융, 운송처럼 영국 면산업의 등장에 매우 중요했던 부문뿐 아니라 국채, 화폐, 국방 같은 공적 제도들까지 부양했다._스벤 베커트, <면화의 제국>, p105


 그렇다면, 전쟁 자본주의 체제에서 영국이 승자가 될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일까. 스벤 베커트는 인류 최초의 그리고 최대의 글로벌 상품인 면화 네트워크를 장악할 수 있는 강한 해군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초기 인도 면직물과의 경쟁에서 열위(劣位)에 있을 때는 보호무역 조치로, 산업혁명 이후 산업 경쟁력을 갖춘 이후에는 자유무역주의를 밀어 붙이며 영국은 룰 메이커(rule maker)로서 패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전 지구적 수준에서 보면 영국 노동자들이 생산한 면직물의 양은 극미했고, 영국의 농부들은 아예 면화를 생산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영국이 생산을 개조하고 면화로 촉발된 산업혁명의 진원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영국 상인들이 이런 글로벌 네트워크를 장악했던 덕분이다. 산업자본주의는 확실히 혁명적이긴 하지만 앞선 몇 세기를 통틀어 가장 혁신적이었다고 할 수 있는 전쟁 자본주의의 산물이었다._스벤 베커트, <면화의 제국>, p117


 초기에 영국의 면제조업자와 상인은 자국산 직물과 인도산 직물을 아프리카로 수출하는 데에 주력했다. 해외 시장에 대한 이런 의존성은 1750년 이후에 뚜렷해졌다. 특히 아프리카와 아메리카가 가장 중요한 시장이어서, 18세기 중반이면 영국 직물 수출의 94%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로 향했다._스벤 베커트, <면화의 제국>, p103


 이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영국 제국주의 = 간접통치 방식 = 인도주의적인 지배방식'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그보다는 오늘날 문화제국주의의 전단계 모습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통치방식을 선호했을 뿐이라는 것이 영국제국주의의 본모습이 아닐까 생각된다.


 갤러허(J.Gallagher)와 로빈슨(R.Robinson)은 직접지배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도에 걸쳐있는 간접지배도 제국주의로 규정하며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정부는 특히 간접지배를 선호했다고 강조하였다. 이러한 약식 제국주의(informal imperialism)는 실상 통치비용을 들이지 않는 값싸고 효율적인 지배를 의미한다. 무역을 통한 간접지배를 선호하는 자유무역 제국주의는 영국의 절대적인 공업력 우세와 강력한 해군력이라는 물질적 토대 위에서 생겨나고 유지될 수 있음을 기억해 두어야 한다._서정훈, <자본, 제국, 이데올로기> <빅토리아 후기(1870~1903)의 대외팽창 성격>, p205


 19세기 영국의 자유무역주의는 그 주창자들이 내세우는 만큼 실제로 공평한 무역관계를 수반하지 않는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발달 정도가 다른 산업 사이의 "자유 경쟁"에서 영국 산업이 이익을 우선적으로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도가 실제로 수입관세를 점차로 낮추다가 1880년대부터 사실상의 자유무역제를 실시하게 된 것은, 직물업자를 위시한 영국의 자유무역주의자들의 거센 압력 때문이었다._이태숙, <자본, 제국, 이데올로기> <토머스 B, 머콜리와 인도>, p274 

 전쟁 자본주의와 산업 자본주의는 여러 면에서 달랐다. 전쟁 자본주의가 노예제에 기반한 생산구조였다면, 산업 자본주의는 임금(賃金)에 기반한 생산구조였다. 전자가 노동의 양(量)적 착취에 기반했다면, 후자는 노동의 질(質)적 착취에 기반한다. 산업혁명을 통한 기계(자본재)의 공급 확대는 생산량의 증대를 가져왔으나, 동시에 더 많은 노동력의 투입이 요구되었다.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 ~ 1883)의 <자본론 Das Kapital>의 절대적 잉여가치, 상대적 잉여가치의 개념 이해는 이와 연관시켜 보면 좋을 것이라 여겨진다. 동시에, <자본론1>에서 언급된 여성, 아동들에 대한 노동 착취는 산업 자본주의 이행기의 실상을 상세하게 고발하기에 함께 읽으면 이해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다시 돌아와서,


 방적과 직포와 채탄 분야의 개량들은 대체로 노동을 절약하는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것들은 이전까지 다수의 노동자가 이루어 낸 성과를 소수의 노동자가 성취할 수 있게 했고, 예전에는 성인 남녀에게 적합했던 작업을 아동들도 수행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그렇게 했음에도 생산량은 대폭 늘어나 성인 노동자 대부분의 수입은 증가했다._T. S. 애슈턴, <산업혁명>, p184

 분명 산업혁명은 주로 노동력 절감 기술에 관련된 것이었다. 예컨대 우리는 방적 부문에서 생산성이 수백 배나 향상된 것을 목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력을 절감하는 이런 기계들을 가동하기 위해서는 역시 노동력이 필요했다._스벤 베커트, <면화의 제국>, p288


 제조업자들은 이 모든 기계를 가동시키고 공장을 가로질러 면화를 이동시키기 위해 수백 명의 노동자를 고용했는데, 그들 대부분이 아동과 여성이었다. 모든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공장에 들어온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가 임금을 받고 일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는 산업자본주의가 이룬 또 다른 중요한 제도적 혁신이었다._스벤 베커트, <면화의 제국>, p128


 임금을 주어 엄청난 수의 노동자들을 동원하고 그들의 작업을 감시하며 그들이 기술과 열정을 쏟게 하는 동안 새로운 딜레마가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공장을 벗어난 노동자들의 가정과 거주 지역에서 고용주의 권한은 훨씬 더 멀어졌다. 노동자들을 모집하고 규율을 시행하기가 어려웠던 이유는 노동조건이 끔찍했기 때문이다._스벤 베커트, <면화의 제국>, p307


 <면화의 제국>에서는 이처럼 전쟁 자본주의에서 산업 자본주의로의 이행을 통해 유럽 사회가 어떻게 패권을 장악했는가를 설명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전쟁 자본주의가 산업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시기에 신생국 미국에서 벌어진 전쟁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바로 미국 남북 전쟁(American Civil War, 1861 ~ 1865)이다.


 미국이 급부상하며 시장을 지배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원면 생산에 투입되는 세 가지 필수 요소, 즉 노동과 토지, 신용의 공급이 유연했다.(p378)... 면화가 중심이 된 미국 남부의 독특한 정치경제가 이제 막 싹튼 북부의 자유노동과 자국의 산업화를 추구하는 정치경제와 충돌했을 때, 미국의 노예제는 그 체제를 통해 이룬 번영을 스스로 위협하기 시작했다... 전 지구적 관점에서 보면 1861년 4월 남부연합과 북부연방 사이에 발발한 전쟁은 미국 영토의 통합과 그 '특유한 제도'의 미래를 둘러싼 투쟁이었을 뿐 아니라, 세계 전역에서 노예노동으로 지탱되고 있던 글로벌 자본주의를 둘러싼 투쟁이었다._스벤 베커트, <면화의 제국>, p381


[사진] American Civil War(출처 : https://www.history.com/topics/american-civil-war/american-civil-war-history)


 우리에게 링컨(Abraham Lincoln, 1809 ~ 1865)과 노예제 폐지, 톰 아저씨의 오두막으로 유명한 남북전쟁이지만, 그 실상은 남부의 전쟁자본주의와 북부의 산업 자본주의간의 패권 전쟁이자, 글로벌 자본 간의 격돌이었다. 링컨은 해리엇 비처 스토우(Harriet Beecher Stowe,1811 ~ 1896)에게 남북전쟁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라고 말했다지만, 결국 노예제 폐지는 명분에 불과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뿐이다.


 미국 남부에서 면화 재배가 확대되고 영국의 소비자들, 최종적으로는 유럽 대륙의 소비자들이 미국 남부의 면화 공급에 점점 의지하게 되면서 미국 남부와 유럽 사이의 제도적 연결이 점점 더 심화되었다... 이 모든 네트워크의 중심에는 미국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면화의 흐름과 그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자본의 흐름이 있었다._스벤 베커트, <면화의 제국>, p193


 같은 시기에 읽은 <면화의 제국>, <자본, 제국, 이데올로기>, <산업혁명>등을 종합한다면, 19세기에 만들어진 팍스 브리타니카(Pax Britannica)란 면화로 대표되는 열등한 상품 경쟁력을 만회하기 위해 총칼로 식민지를 만들어 상품공급지와 소비지로 만들어 막대한 이윤을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전쟁 자본주의에서 산업 자본주의로 이행하며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경제력 우위 수준에 따라 보호주의와 자유주의를 번갈아 사용하고, 대량 생산을 통해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과학 기술이 활용되며, 필요에 따라 이데올로기로서 '인권', '자유' 등의 개념이 남발되는 것을 이들의 책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를 비춰볼 때, 과연 오늘날 서구의 부(富)의 기원이 무엇인지, 그들이 동양에 대해 갖는 편견의 근거는 무엇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역사는 순환하는 것이어서, 그들이 그토록 경멸하던 중국, 인도의 발전을 이제는 경계하는 지경에 이른 것을 보면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을 절로 떠올리게 된다...


 잉글랜드를 구출한 것은 지배자들이 아니라, 자신만의 협소한 목적을 추구한 것이 분명하지만 새로운 생산 도구와 새로운 산업 경영 방법을 창안할 만한 지혜와 자질도 갖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오늘날 인도와 중국의 평원에는 질병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남녀들이 낮에는 함께 일하고 밤에는 따로 잠자는 가축들보다 외견상 거의 나을 게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 같은 아시아의 생활수준과 기계화되지 않은 그런 공포는 산업혁명을 거치지 않고 인구수만 늘리고 있는 사람들의 운명인 것이다._T. S. 애슈턴, <산업혁명>,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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