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크리스틴 델피의 노동에 대한 가설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0-서문, 9)

 

1) 가부장제는 현대 산업사회에서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 체계다.

2) 이 체계는 경제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다.

3) 이 기반은 가정 내 생산이라는 생산 양식이다.

 


가부장제는 경제적 기반, 즉 가정 내 생산이라는 생산 양식을 통해 여성을 종속시킨다. 물리적 폭력과 종교, 이념, 문화라는 정치적, 사회적 기제뿐 아니라, ‘경제적인 체계를 활용해 여성 종속을 강화하고 유지한다.

 


가장 역사가 길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가정 내 생산 활동을 무급노동으로 간주하고, 그 노동의 수행을 여성의 본성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특히, 육아와 양육을 여성 고유의 특성과 합치, 고정시킴으로써, 가정 내 생산 활동과 가사 노동, 돌봄 노동을 여성의 일혹은 여성만의 일로 만든 것이 주효했다.

 


사회를 사유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요소인 마르크스적 개념 가운데 저자가 주목한 개념은 계급이다. (0-서문, 69)

 


계급 개념은 나아가 사회적 지배를 설명의 핵심에 놓는다. 우리는 사회적 지배의 동기(경제적 착취)에 관해 논의하거나, 근본적인 도식을 바꿀 필요 없이 이러한 동기에 반대하거나 이를 바꿀 수 있다. 이것은 이분법적 개념이며 따라서 한계는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계급 개념이 광범위하고, 위계적이고, 마찬가지로 이분법적인 분류에, 특히 (여성/남성, 성인/아동, 백인/비백인 등)과 같이 주어진 사회의 내부에 위치한 계층화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볼 수 있다(「계층화 연구 속의 여성 참조). (0-서문, 69)

 


, 저자는 여성 억압의 주된 요인으로 자본주의하에서 계량화되지 않고 있는 가정 내 부불노동을 지목한 것과 동시에 여성이 하나의 계급으로 존재함을 주장하였다.

 



 













여성들은 집 밖에서 임금 노동을 하든 하지 않든, 계속해서 집에서 "무보수로" 가사 노동을 도맡아 했다. 왜 가사노동이 자본주의 사회는 물론이고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여성의 일로 간주되는지 오직 경제적인 견지로만 설명할 수 없었던 수많은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들은 단순히 모든 여성은 똑같이 여성이라는 계급, 즉 제1 (남자라는 성을 섬기기 위해 존재하는 제2 (여자라는) 성에 속하기 때문에 모든 사회에서 가사 노동이 여성에게 할당된다고 결론지었다. (<페미니즘 교차하는 관점들>, 151)

 


여성에 대한 억압이 자본주의뿐만 아니라 성 계급에 따른 차별 때문이라는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들(사회주의 페미니스트, 유물론적 페미니스트)의 주장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공조를 밝히는 데 있어서 설득력 있는 이론을 다수 제공했다. 여성은 단일한 집단이 아니다. 따라서 여성에 대한 억압을 하나의 요소로만 분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느 나라에서는 인종과 성별이, 어떤 환경에서는 계급과 성별이 여성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동시에 작동하기 때문이다. 크리스틴 델피의 문장으로 읽으면 이렇다.

 


















프랑스에서 25세 이상 여성의 10퍼센트 미만만이 독신이라는 점에서 미루어 보면, 모든 여성이 일생의 어떤 시점에는 결혼할 확률이 매우 높고, 따라서 모든 여성이 특정한 생산 관계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 생산 관계에 확실하게 영향을 받는 집단으로서 여성들은 하나의 계급을 구성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이 계급에 속하도록 운명 지어진 범주로서 보자면 여성들은 하나의 카스트를 이룬다. 결혼 관계에 깃든 노동 전유와 착취는 모든 여성이 경험하는 공통의 억압이다. (1-주적, 54)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합동 작전이 가장 극명한 장소는 가정이다. 가정 내 여성의 노동은 역사 이래로 지금까지 무급 노동으로 간주되었는데, 가부장제의 원칙에 따라 재산을 상속받지 못하는 차남이나 막내의 경우 가정으로부터 독립 혹은 독립에 대한 의지를 표명함으로써 임금을 보존 받는 경우가 있는 데 반해, 여성의 노동은 여전히 무급 노동으로 남아있다. 여성의 무급 노동이 급여로 전환되는 건, 여성이 그 노동을 가정이 아닌 다른 곳에서 수행했을 때다. 그런 경우, 가정 이외의 장소에서 생산활동을 담당한 여성에게는 약간의 경제적 독립이 주어지지만, 가정 내 육아를 비롯한 기타 가사 노동은 여전히 여성의 몫으로 남아있다. 여성을 기다리는 건, 이중, 삼중의 노동이다. (1-주적, 43)

 


 

여성의 지위, 특히 가족 내 여성의 위치가, 구체적으로 아이가 있는 기혼 여성의 위치가 노예/하인과 다름없음을, 읽고 확인하는 일이 가히 유쾌하지는 않다. 실비아 페데리치의 문장을 처음 만났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현실에 대한 자각은 여전히 뼈아프고 한결같이 곤란하다.

 

계산되지 않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인정받지 못하는 일들, 내가 해야만 하는 일들에, 나는 태업으로 임했다. 버지니아 울프의 글이 도움이 되었다. 용기를 주었다.



 










안타깝도다펜을 들려고 시도했던


여성은 주제넘은 종으로 여겨지고,


그 과오는 결코 속죄될 수 없다네.


그들은 말하지우리가 성과 그 역할을 잘못 알고 있다고.


자녀 양육유행의상사교,


이것이 우리가 선망해야 할 소양이라고.


글을 읽고 쓰고생각하거나 질문하는 일은


시간 낭비일 뿐이며우리의 미를 가리고,


꽃다운 우리를 정복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반면 노예처럼 집안 살림을 돌보는 무미건조한 일에는


우리가 가진 최고의 능력을 써야 한다고. (<자기만의 방>, 109-110)

 


내가 쓸 수 있는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으니까, 내 에너지를 내가 쓰고 싶은 곳에 집중해서 쓰려고 했다. 아이들은 낮에는 엄마가 뭐하고, 자기들이 돌아오는 시간에 청소기를 돌리는지 묻지 않았다. 궁금할 시간이 없었다. 자기들도 노느라 바빴으니까. 하지만, 이것조차 한가한 말이라는 걸, 나도 안다. 아내폭력의 가해자들이 피해자 폭행의 이유로 꼽는 첫 번째 이유가 집안일을 잘 못해서이다. 집안일을 대충이라도 아니, 흉내라도 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우주가 끝날 때까지 집안일은 끝나지 않는다. 집안일을 등한시하고, 반찬을 사다 먹고, 집청소를 대충 해도 모른 체하는 남자랑 살았기 때문에, 나의 태업은 가능했다. 그건 자랑할 일이 아니다. 박완서 선생님의 말씀처럼, 그냥, 그때, 그 순간에 내가 운이 좋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읽는다. 이성애의 작동과 결혼제도의 합작으로 탄생한 4인 핵가족의 아내이자 엄마인, 내가 읽는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스위트홈 찬가를 제법 크게 불렀던, 내가 읽는다. 다시 일하게 되어, 늦은 출근과 이른 퇴근에도 집에 오면 1시간을 바닥에 붙어있다가 간신히 일어나 빨래 돌리고 청소기 돌리는, 내가 읽는다. 손쉬운 비판이나 감정 상하게 하는 편 가르기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내 삶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 속에 감춰진 억압과 모순을 밝혀내기 위해서 읽는다. ‘페미니즘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기혼 여성들에게 가장 쉬운 말로, 가장 유연한 단어로 페미니즘을 설명하고 싶어서 읽는다.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읽는다. 내가 그렇게 소중히 여겼던 사랑 속에 후회와 원망이 전부였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서 읽는다. 내 딸을 위해서 읽는다. 더 좋은 세상을 위해서, 내가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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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자 2024-04-12 21: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멋진 후기 감사합니다 단발머리님!

단발머리 2024-04-12 22:49   좋아요 1 | URL
읽어주시고 귀한 댓글 달아주셔서 제가 더 감사하죠. 감사합니다, 달자님!!

미미 2024-04-12 2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자기만의 방>읽었는데 저 문장 신선하게 느껴져요ㅋㅋㅋㅋ
여전히 읽는 이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단발머리님의 글! 이 시간에 잠이 확 깹니다^^

단발머리 2024-04-13 14:36   좋아요 1 | URL
네네 ㅋㅋㅋㅋ 저도 읽을 때마다 항상 새로운… 바야흐로 울프를 다시 읽을 시간이 돌아왔나봐요.
잠이 확 깨셨다가 편안한 밤 되셨는지요~
여유롭고 즐거운 주말 되시길요^^
 


 

푸바오가 갔다. 푸바오를 낳아준 아이바오와 아빠 러바오, 자식처럼 푸바오를 돌봐준 사육사님들을 두고 갔다. 푸바오의 원래 소유권자인 중국으로 돌아갔다. 판다 마케팅이 이처럼 거대한 산업인지 나는 몰랐다. 우리나라가 유난한 게 아니라, 전 세계 판다 사랑이 유난한 거 같다.

 




푸바오가 떠나는 날에는 비가 내렸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가운데, 푸바오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푸바오가 타게 될 특수차량 앞을 서성였다. 유튜브를 열었더니 그날 푸바오가 떠나는 장면을 생중계하는 방송이 6개였다. 내 화면에서는 그랬다. 가히 전 국민적 관심사였다. 푸바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고, 푸바오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있고, 푸바오를 모르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날 그곳에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넘어 슬픔과 억울함을 가진 사람들이 가득했다. 화면 밖으로 새어 나오는 울음소리가 그랬다. 나는 그 소리가 조금 불편했는데, 나처럼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터였다.

 



가려진 채로 푸바오가 나오고, 그리고 푸바오를 태운 케이지가 특수 차량에 실렸다. 중국까지 푸바오와 동행하는 강바오(강사육사님의 애칭)가 차량 앞쪽에 승차하고, 그리고 그 찰나. 송바오(송사육사님의 애칭), 우산도 쓰고 있지 않던 송바오가 몸을 돌려 차량에 기대어 한 손으로 차량 면을 쓰다듬다가 두어 번 가볍게 두드렸다. 송바오에게는 이 자리가 푸바오와의 마지막 순간이고, 그렇게 송바오는 푸바오와 이별을 한다. 감정이 요동친 건 그 순간이었다. 푸바오의 차량을 쓰다듬는 송바오를 본 그 2-3, 마음이 널을 뛰고,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맺혔다.


 



우리 집에서는 내가 푸바오를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고, 푸바오 동영상을 제일 많이 본 사람이지만, 사실 나는 푸바오를 안 지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 푸바오와 아이바오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힘들었던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푸바오가 큰 힘이 되어 주었다고 사람들이 말했을 때,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날, 푸바오가 탄 차량을 송바오가 쓰다듬을 때, 내 마음이 움직였던 건 송바오의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를 내가 알았기 때문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다. 내내 사랑으로 키웠던 자식을 멀리 보내는 마음. 다시는 보지 못할지도 모르는 애인과 영영 헤어지는 마음. 내 마음을 주었던 애인에게 이제 더는 내 마음을 줄 수 없다는 걸 알아차릴 때의 마음.

 


아이바오는 그날 푸바오가 떠나는 걸 알지 못한다. 독립 훈련의 힘든 시간을 보낸 후, 이제 아이바오와 푸바오는 떨어져 생활한다. 둘 다 그 생활에 익숙해졌다. 아이바오는 푸바오의 쌍둥이 동생들을 돌보느라 적잖이 피곤하고, 푸바오는 푸바오대로 새로운 판생을 이어나가게 될 것이다. 나는 아이바오에게 이입하지 않는다. 아이바오는 모를 것이다. 아이바오는 푸바오를 낳았고 키워주고 사랑해 주었지만, 이제 푸바오를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바오는 푸바오와의 영영한 이별을 알지 못한다. 내가 이입하는 건, 송바오이고, 그의 마음이고, 그의 사랑이다. 왜냐하면 나는 송바오의 그런 마음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내 마음속, 강신주의 문장처럼 말이다.

 

















내가 어떤 사람을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닐 수 있습니다. 다만 어려운 문제는 타자로 하여금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하도록 강제할 수는 없다는 데 있습니다그에게는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할 수도 혹은 그러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가 있기 때문이지요사랑에서 중요한 점은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타자도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자명한 사실에 있습니다. (『망각과 자유), 21)

 



사랑할 때 나는 내 마음이 그에게 가 닿기를 바랐다. 그를 원하는 내 마음이 그에게 닿기를 바랐다. 내가 원하는 건 그것인가. 그게 전부인가. 아니다. 내가 원하는 건, 내 마음이 그에게 닿고, 그가 같은 마음으로 내게 응답해 주는 것이다. 그도 나를 사랑해 주는 것이다. 그도, 내가 그를 아끼는 그 마음으로, 나를 아껴 주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변한다. 사랑의 맹세는 시간의 흐름 속에 퇴색해지고, 열정은 권태로 쉽게 변색되어 버린다.

 


내가 그를 더 사랑했던 게 무슨 소용인가. 나는, 내 사랑을 거두어들였다. 그가 나를 더 사랑했던 게 무슨 소용인가. 그는 더 이상 내 마음을 받아줄 수 없다. 그렇다면, 그 사랑이 끝난다면 그건 아무 의미가 없는 걸까. 오직 완성된 사랑만이, 해피엔딩만이 중요한 걸까.

 

 


열 번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봐도, 결국 중요한 건, 내 마음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내 마음을 알지 못한 채 그가 떠나도, 그를 사랑하는 내 마음은 내게 그대로 남아있으니 말이다. 본인 스스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아직도(!) 이성애 이야기를 쓰는 작가라고 했던 임경선은 정희진쌤의 오디오 매거진에서 말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게 아니고요.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거죠. 서로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각자, 상대를 사랑하는 거죠.”

 


송바오의 마음이 푸바오에게 가 닿을까. 어쩌면 잠깐 푸바오는 송바오를, 강바오를, 아이바오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내 앞에서 없어져 버린, 내 앞에서 사라진 그 사람들을/엄마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푸바오는 푸바오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영영한 이별 앞에서 자신의 삶을 새롭게, 귀엽게 꾸려 나갈 것이다.

 

 


남은 건, 그를 사랑하는 내 마음이다. 가질 수 없었던, 혹은 영영히 내 것이 될 수 없는 마음에 대한 아쉬움이 내게 남는다. 그리움이 남는다. 내가 가진 건 이것뿐이다. 그를 사랑했던 내 마음.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여전히 내게 남아있는 그것, 오직 그것뿐이다. 내 마음, 그를 사랑했던 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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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4-04-12 13: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리 애기.... 아... 전 사실 어느 시점부터 에버랜드랑 사육사한테 정이 좀 떨어졌어요. 애기가 대나무 서리 좀 했다고 3주를 외출을 안시키질 않나, 애기 가기 전에 검역해야 하는 거 애기 태어날 때부터 알고 있었으면서 검역 공간을 따로 만들어두지 않고 빛도 안 들어오는 실내에 한 달을 가둬놓질 않나. 사육사들이 푸바오를 아끼지 않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사육사도 에버랜드에서 월급받는 직원이구나, 동물을 전시용이라고 생각하는구나 싶은 장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애기들 밥 먹고 있는데 잡아서 관람객들 쪽으로 돌리는 행위, 자고 있는데 자꾸 들어서 잘 보이는 데로 옮기고 사진 찍고 그러는 거. 에버랜드 지침이겠지만 이런 거 보고 나니까 그냥 애기가 우리랑 멀어지더라도 좀 넓은 공간에서 편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근황 보니까 그래도 밥도 잘 먹고 표정이 괜찮더라고요. 판다중에서도 푸바오는 워낙 다정하고 똑똑하고 순한 애기라 잘 지낼 수 있을 거 같아요. 한국은 잊고 행복하게 지내거라 아가!!

단발머리 2024-04-12 13:37   좋아요 2 | URL
세상에.... 대나무 서리 좀 했다고 3주 외출을 안 시키다니요. 그건 진짜 화나네요. 그리고 검역 공간도요...... 사육사님들도 푸바오 아끼고 사랑하셨겠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일의 범위 안에 있겠지요. 관람객들 눈치 볼 수 밖에 없을 테구요. 모두 다 돈이었다 ㅠㅠㅠ
저도 푸바오 간다고 해서 처음에는 아쉽기도 했는데 거기가 환경이 좋다고, 그리고 넓다고 소개하더라구요.
은오님 바램대로 울 애기 넓은 공간에서 편하게 잘 살아갈 거 같아요. 아직도 푸바오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뜨겁고, 그래서 중국에서도 신경쓰는 거 같더라구요.
한국은 잊는다면 좀 서운하지만.... 행복한 판생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푸바오, 잘 먹고, 잘 놀고, 행복해!

공쟝쟝 2024-04-12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좋은 글에........ 마지막 짤 때문에 웃겨서... (모에화 심하다) ㅠㅠㅠㅠ 단발님 나는 감동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만.... 글과 내용을 합치면... 푸바오는 모른다 아닙니까? 쟈닌해... 쟈닌하다....!! -짝사랑 전문가 올림-
 

















사전투표는 토요일 오후에 했다. 아침부터 나가자 나가자 실랑이를 하다가, 늦게 준비하는 1인과 토요일에도 학교에 간 1인의 동선을 고려해 투표 후 노상에서 치킨을 먹기로 했다. 벚꽃잎이 흩날리는 거리를 뛰어갔다. 이번 투표를 앞두고 큰애랑 여러 번 싸워서 아예 투표를 안 한다고 할까 봐 걱정했는데 투표소에 들어갈 때는 다정하게 들어섰다. 기표를 하고 나와서 기다리는데 큰애가 나오지를 않는 거다. 왜 이렇게 늦었냐고 했더니, 호호 불고 세로로 반 접고 또 반으로 접느라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엄마 같은 (거대 정당 찍는) 사람들은 몰라.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이 한 표, 한 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요? 내 한 표도 소중하단다, 아가야.

 

 



반유대주의가 유대인 절멸로까지 이어지는 그 지난한 순간에 대한 연구와 고찰이 이어진다. 내가 꼽은 문장은 여기다.

 


인종주의자들의 유대인 증오는 신이 선택한 민족, 신의 섭리로 성공을 보장받은 민족이 자신들이 아니라 유대인일지도 모른다는 미신적 우려에서 나왔다. 거기에는 결국 모든 외양에도 불구하고 세계 역사에서 마지막 승자로 등장할 것이라는,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보증을 받았다고 그들이 두려워하는 민족에 대한 의지박약한 분노가 있었던 것이다. (451쪽)

 


역사라기보다는 신화로 여겨지는 이스라엘 민족의 이집트 대탈출 때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벌어진다. 훈련 받은 군인 집단이 아니라, 어린아이부터 시작해 노인에 이르는 가족 공동체, 유목 민족이라 부르기에도 세가 부족한 이스라엘 부족의 대이동이 펼쳐질 때,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공포로 흔들렸다. 그들, 이스라엘인들은 특별하다는 믿음, 그들의 신은 특별하다는 믿음이 선주민이었던 가나안 여러 부족들의 마음을 온통 지배했다. 이스라엘이 계속 승리한 것은 아니지만, 이스라엘의 승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스라엘은 그렇게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자기 계발서가 반복해서 말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 모토가 할 수 있다일 수 밖에 없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할 수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지만, 성공 가능성은 당연히 할 수 있다쪽이 우세하다. 상황의 변화는 태도에 달려있고, 태도는 마음에, 마음은 생각에 달려있다. 이스라엘은 항상 할 수 있다쪽이었고, 자신들이 선민, 선택받은 특별한 민족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요는, 이스라엘인들만, 유대인들만 그렇게 믿은 것이 아니라, 유대인의 말을 반복해서 들었던 인종주의자들도 유대인의 말을 믿었다는 거다. 그 말을 믿게 된, 진심으로 믿게 된 인종주의자들의 의심과 분노는 유대인 증오라는 결과로 산출되었다.

 



 


공산 전체주의 비판하는 세력의 몰락을 기대하며 <전체주의의 기원>을 읽는다. 자랑하기 참 좋은데 <전체주의의 기원>은 너무 두꺼워서 외출 때에는 다른 한나를 모시고 다닌다. 한나 풍년. 한나 대잔치다.

 



깝치는 마음 1도 없이 겸손하게, 저녁에는 치킨을 먹기로 했다. 파티 분위기 절대 아니다. 1년 만의 건강검진에서 평생 처음으로 빈혈판정이 나왔기에 그렇다. 단백질 보충이 필요하단다. 한나 풍년. 치킨 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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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4-10 15: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삼겹살 먹을 겁니다. 혹시 따님이 저랑 같은 정당을 찍은 건 아닐지.. 생각합니다. 흠흠..

단발머리 2024-04-10 15:26   좋아요 1 | URL
저희집 딸롱이가 다락방님과 같은 정당을 찍었을 거라고, 전 생각합니다. 일단 저랑은 다릅니다. 흠흠...
저도 냉동실에 삼겹살 있기는 한데.... 🤗

서곡 2024-04-10 16: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흠 저는 닭강정 사왔습니다 ㅋㅋㅋ 사진 속 말차파이(?)도 맛있어보이는군요!!

단발머리 2024-04-10 16:45   좋아요 1 | URL
하.... 닭강정도 매우 좋은 선택입니다. 말차파이 정말 맛있었어요. 딱딱하지 않지만 꾸덕한 느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시지요? 포크에 힘을 주고 퐉!! 세워야 합니다 ㅋㅋㅋㅋㅋ 아, 또 먹고 싶네요!

페넬로페 2024-04-10 16: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원한 아이스커피와 케잌, 맛있겠어요.
거기다 책까지요.

제가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유대인 또는 이스라엘이 자신들이 선민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어요?
구약 성서의 내용과 달라 궁금해졌어요~~

단발머리 2024-04-10 16:55   좋아요 3 | URL
페넬로페님~~ 제가 명확하게 표현을 못 했나 봐요.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선민임을 굳게 믿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항상 ‘할 수 있다’ 쪽이었고, 자신들이 선민, 선택받은 특별한 민족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요는, 이스라엘이, 유대인들이 그렇게 믿었다는 게 아니다. 유대인의 말을 반복해서 들었던 인종주의자들이 유대인의 그 말을 믿었다는 거다. 그 말을 믿게 된, 진심으로 믿게 된 인종주의자들의 의심과 분노는 유대인 증오라는 결과로 산출되었다.


위의 저의 문장을 이렇게 바꾸어 볼게요.

이스라엘은 항상 ‘할 수 있다’ 쪽이었고, 자신들이 선민, 선택받은 특별한 민족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요는, 이스라엘인들만, 유대인들만 그렇게 믿은 것이 아니라, 유대인의 말을 반복해서 들었던 인종주의자들도 유대인의 말을 믿었다는 거다. 그 말을 믿게 된, 진심으로 믿게 된 인종주의자들의 의심과 분노는 유대인 증오라는 결과로 산출되었다.


요렇게 바꾸어 보았습니다. 선민이라는 유대인의 주장을 다른 민족에 속한 사람들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점을 강조하다 보니, 의미가 명확하지 않았네요. 위의 문장도 이렇게 바꾸어 놓을게요.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ㅋㅋㅋㅋㅋㅋ

페넬로페 2024-04-10 17:02   좋아요 3 | URL
네, 이해했어요.
감사합니다.

저는 유대인들이 너무 확고하게 자신들이 ‘선민‘이라는 것을 믿었고, 받아들였고, 강조했다고 생각해요.
그 믿음에서 오는 후폭풍이 다양했고 억울했고 고통스러웠던 거죠.
제가 절대 인종차별주의자를 이해하고 옹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한 번씩 유대인의 선민 의식이 조금 불편하더라고요^^

따님과 데이트 잘 하시고
휴일 오후 잘 보내시기 바래요
저도 방금 투표하고 왔어요^^

단발머리 2024-04-10 17:30   좋아요 2 | URL
네, 페넬로페님~~

무슨 말씀인지 알 거 같아요. 유대인들의 선민의식은 워낙 유난하고 유별나지요. 그런 정서가 없었다면 영토 없이 2000년을 떠돌던 소수 민족은 진작에 공중분해 되었을 거 같고요. 이스라엘의 선민의식은 그 탄생, 즉 아브라함이 여호와라는 신을 만나던 그 순간부터 시작된 거라 민족의 핵심 정서로 자리했던 거 같아요. 하지만, 나만 특별하다는 그 생각은 타인에 대한 무시와 모멸로 쉽게 이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가자 지구의 비극도 따로 떼어서 말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구요.

마음 준비하면서 개표방송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30분 정도 남았네요. 편안한 휴일 저녁 되시기를 바래요!

서곡 2024-04-10 18: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표방송 보고 계시죠? ㅎㅎㅎ 저는 유투브 이채널저채널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닭강정은 벌써 다먹 ㄷㄷㄷ 라지로 사올것을 어흑

단발머리 2024-04-10 19:04   좋아요 1 | URL
네, 저희집도 노트북 다 나왔습니다ㅋㅋㅋㅋㅋㅋ저희는 치킨이랑 떡볶이 시켜가지고 아직 먹을 게 쪼금 남았습니다. M으로 시키셨군요.
아까비……

서곡 2024-04-10 19: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포테토칩 꺼내고 한 캔 더 땄습니다 ㅋㅋㅋ

단발머리 2024-04-10 23:12   좋아요 1 | URL
벌써 꺼내시면 어째욬ㅋㅋㅋㅋ 경합 지역 많아서 한 시 넘어서까지 보셔야할텐데욬ㅋㅋㅋ 저희집 의석수 맞히기 내기 했거든요. 아무래도 제가 맞힌거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서곡 2024-04-10 1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대단하십니다 ㅎㅎㅎ 실방 댓글 보는 재미도 쏠쏠 ㅋㅋㅋ

단발머리 2024-04-10 19:33   좋아요 1 | URL
결과를 맞혀서 기쁘고 내기에 이겨서 기쁘고ㅋㅋㅋㅋㅋ 즐거운 밤입니닼ㅋㅋ서곡님도 편안한 밤 되시길요! 🤗
 




 












겁 없이 덤볐다가 모르는 이야기 한참 읽었다. 나는 레비 스트로스의 현장 연구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했는데, 예술과 오브제, 회화와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부제를 다시 보니 <원시와 현대 예술에 관한 인터뷰>. , 원시와 현대 예술에 관한 이야기구나. 깝친 나를 또 반성한다. 나는 왜 나대는가. 나는 왜 까부는가. 부제에 뻔히 쓰여 있는 것을. 그것도 안 보고 왜 이 책을 읽겠다 덤볐단 말인가. 내가 읽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런 이야기였다. 57쪽과 77.

 


문명화의 가장 큰 문제는 격차를 유지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 격차는 노예제, 이어 농노제,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양산과 함께 생겼다는 것을 앞에서 언급했습니다. (57)

 


어떤 사회적 현상에 문자 출현이 늘 그리고 도처에서 발생했다는 것에는 우리가 의견의 일치를 보았지요. 나는 문자 표기와 동시에 일어나는 사회 현실이 바로 카스트 혹은 계급 체제와 부합하는 분열 · 분리의 출현이라고 봅니다. 이미 말했지만 문자는 그것의 초기에 인간이 다른 인간을 노예화하는 수단이었어요. 물건을 사유화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77)

 


계급화를 설명할 때, 잉여 물자의 축적으로 인한 계급의 발생이 아니라, 문자의 출현으로 인간이 인간을 노예화하는 것이 가능해졌다고 보는 이런 해석이, 이런 문장이 내게는 두껍게 진하게 읽혔다. 관련된 책을 읽어보고 싶은데, <슬픈 열대>는 너무 두껍고, 이렇게 두 권을 골라봤다.

 
















주된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다.

 


게다가 다른 모든 종류의 오브제로 이행이 가능하지요. 저도 당신 생각에 동의합니다. 두 운동이 있는 거예요. 자연에서 문화로의 열망, 즉 오브제에서 기호로, 언어로의 열망이 있어요. 그리고 두 번째 운동은, 언어학적 표현을 쓰면 오브제에 감춰진 속성을 발견하고 알아보는 것으로, 인간 정신의 구조와 그 기능 양식과 공통성을 갖는 게 이 속성이지요. (154)

 

대부분 이런 이야기다. 자연 예술과 문화 예술, 추상화, 인상주의 그리고 오브제. 언어에 대한 부분에 관심이 있어서 주의해서 읽었는데도 전혀 쉽지 않았다. 사실은, 많이 어려웠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알라딘 이웃님이 오디오 매거진의 <조용한 생활>을 선물해 주셨다. 운전할 때, 다림질할 때, 혼자 산책할 때, 얼마나 야무지게 잘 듣고 있는지 모르겠다. 생각만 해도 좋은 친구는 이렇게 항상 함께하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글/오디오를 읽거나 들을 때, 그 배합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이를테면, 나는 정희진 선생님과 김혜리 작가 편이 별로 좋지 않았고, 차라리 정희진 선생님과 임경선 작가 편이 더 좋았는데, 김혜리 작가와 홍기빈 작가 편은 아주 재미있게 들었다. 이런 종류의 글 중에 기억에 남는 건 필립 로스와 프레모 레비의 인터뷰였다. <왜 쓰는가>는 필립 로스의 글을 모은 거였는데, 그 파트에서는 질문자가 로스이고 답하는 사람이 레비였다. 이 세상 최강의 까칠함을 선보이며 그렇게나 질문자를 괴롭히던 로스가 레비 앞에서는 얼마나 온순한 사람이던지. 적잖이 웃었지만 두 사람이 서로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지, 배려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한글책으로는 예전에 읽은 강신주-지승호의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이 기억에 남는다. 강신주의 책을 모두 읽었을 뿐만 아니라 그 책의 핵심적인 부분을 정확하게 짚어낸 지승호의 잘 준비된 질문이 강신주의 예리함과 만났을 때, 말 그대로 좋은 책이 탄생하는 장면이 이렇구나 싶었다.

 



이 책의 질문자 샤르보니에는 내 말은 그게 아니고, 니 말은 그게 아니다를 시전하시는지, 뒷부분에서는 약간 피로감이 느껴졌다. 이 책이 잘 읽히지 않고, 불필요한 긴장감이 느껴진다면, 그 잘못은 샤르보니에게 있다. 전적으로.


 

<말 시리즈>의 전체 랭킹으로 봤을 때 이 책은 약간 뒤로 밀릴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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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4-04-09 2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슬픈 열대]는 대학 시절 문화인류학 수업 때 읽었는데, 지금은 정말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네요.

어떤 사람들이 만나면 시너지 효과가 생기기도 하겠지만, 어떤 경우에는 역효과가 생기기도 하지요. 그래서 잘 맞는 사람을 찾는 거이 중요할 것 같아요.

단발머리 2024-04-10 15:19   좋아요 0 | URL
대학 시절 문화인류학 수업 듣고 그러셨단 말이에요? @@ 너무 근사한대요. 그 때, 저는 어디서 무얼하고 있었단 말입니까.

감은빛님 말씀처럼 자신에게 잘 맞는 사람을 찾는게 중요하다고 저도 생각해요. 그리고 가끔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게 더 먼저 필요할 거 같기도 하고요.

잠자냥 2024-04-11 09: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질문자가 싸움 거는 거 같아서 피로감 느껴졌다는 말씀에 104% 공감합니다. ㅋㅋㅋㅋ 어제 엠비씨 개표방송의 김진인가 뭔가 그 사람 같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4-04-11 19:04   좋아요 0 | URL
104% 공감 감사해요. 잠자냥님의 3별을 완벽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질문자를 미워하는 것만큼 예술에 대한 저의 이해 부족을 확인하는 소중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엠비씨 개표방송 그 분은 ㅋㅋㅋㅋㅋㅋ 카하하하하
 

















식구들이랑 같이 있으면 책을 읽지 못한다. 방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읽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읽기 싫은 것일 수도 있겠다. 다림질을 끝내니 밤 11. 딱 한쪽만 읽을까.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펼친다.

 


자연은 다양성 그 자체로 있는데, 인간은 다양성을 다양성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분류하고 통합하여 파악한다. 상징화한다. 약호화하는 것이다. 눈앞에 펼쳐진 다양한 실체들을 '자유 연상 조합association libre'으로 지각하고 그 안에 있는 내재적 상동성을 포착하고 여과하여 자신 안에 강렬하게 수용하는 동안 스스로 매혹된다. 강렬한 시선/바라보기 regard또는 관찰/주시 observation는 사랑하고 욕망하는 대상에 대한 육식이 이미 진행되고 있음을 폭로하는 과잉 행동이다. 이미 예감되었다.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를 왜 뒤돌아보았는가? (9)

 



강렬한 시선, 바라보기, 관찰과 주시.

 















희대의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 <Twilight>에서 이런 장면이 있다. 새로 전학 온 벨라에게 관심 있는 마이크는 미스테리한 컬렌 집안의 에드워드가 벨라에게 눈독을 들이는 걸 눈치챈다. 끼리끼리 커플인 컬렌 집안의 유일한 싱글. 여자애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최강 미모 에드워드가 벨라를 쳐다본다.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는데, 그때 마이크가 이런 말을 한다.

 

”에드워드 걔, 기분 나빠. (벨라) 쳐다볼 때 먹는 거 보는 것처럼 쳐다본단 말이야.

 


이건 은유적일 뿐만 아니라 사실적이다. 마이크의 감은 옳다. 뱀파이어인 에드워드에게 인간 벨라는 ‘먹을’ 음식에 불과하다. 하지만 에드워드가 벨라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는데, 의식을 가진 존재의 ‘생각’을 읽는 초능력을 가진 에드워드에게 벨라의 생각이 ‘읽히지’ 않기 때문이다. 에드워드는 벨라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벨라는 에드워드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눈맞춤. 뚫어져라 그를 쳐다보는 것. 그를 내 눈에 넣을 듯 쳐다보는 것. 혹은 그를 그렇게 내 눈 속에 넣어버리는 것.

 


강신주는 우정과 사랑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정과 사랑은 함께 있을 때 기쁨을 준다. 함께할 때 행복하다. 차이는 헤어져 있을 때 확실해진다. 우정은 떨어져 있는 시간에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만나면 즐겁지만 헤어져 있어도 괜찮다. 사랑은 다르다. 사랑은 만날 때 행복하고, 헤어져 있을 때 힘들다. 떨어져 있는 순간을 견뎌내지 못한다. 만나지 못할 때 괴롭다. 보지 못할 때 참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연인이 연인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절절한 고백은 ‘사랑해!’나 ‘좋아해!’가 아니라, ‘보고 싶어!’라고 생각한다. 보고 싶어. 너를 보고 싶어. 너를 내 눈에 넣고 싶어. 너를, 너를 내 눈동자에 가두어 놓고 싶어.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걸을 때 나는 자주 뒤에 선다. 뒤에 서서 걸어가는 가족을, 친구를, 내 소중한 사람을 바라본다. 모두 집으로 돌아간 어느 날 늦은 오후, 한 쪽 다리를 삐끗해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그 애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그 오후가 반복된다. 내가 뒤에 있음을, 내가 그를 보고 있음을 그는 알 수 없을 테지만. 나는 뒤에 서서 그를 본다. 내게서 멀어져 가는 그를 본다. 내 시야에서 그가 사라질 때까지 본다. 나는 눈맞춤을 바라지 않는다. 영원히. 영원히 그는, 그에 대한 내 사랑을 모를 것이다. 나는 뒤에 있으니까. 나는 주시한다. 바라본다. 그를 내 눈에 넣는다.

 

 


두 쪽 읽고 너무 말이 많았다. <레비스트로스의 말>을 좀 더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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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8 05: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4-10 15: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4-04-08 1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흐음...
강신주의 말을 읽어보니, 저는 사랑을 한 적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지금 드네요. 만약 강신주의 말대로라면, 저는 사랑을 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연인도 만났을 때 기쁘지만 헤어지고나서 별로 불편하지 않았거든요. 어쩌면 이게 제가 스스로를 연애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될 것 같네요. 크-

아무튼 에드워드와 벨라를 제가 참 좋아했었습니다. 지금 에드워드는 애아빠가 되었고 벨라는 성소수자의 대표가 되었지요. 크-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단발머리 2024-04-10 15:23   좋아요 0 | URL
저도 강신주의 저 말 듣고/읽고 다락방님과 똑같은 생각을 했더랍니다. 사랑이라는 건, 같이 있지 못할 때 괴롭다고 하는 거에요.
아, 괴롭다. 보지 못 해, 괴롭다? 오래오래 기억에 남더라구요. 강신주의 정의니까, 좀 다를 수도 있겠지만요.

에드워드와 벨라는 요즘 아주 잘 지내더라구요. 각자 ㅋㅋㅋㅋㅋㅋ에드워드가 차은우를 만났어요. 어디 패션쇼던가 그런 자리에서요. 차은우가 더 예뻐요. 더 멋지고 ㅋㅋㅋㅋㅋㅋㅋ 세월의 무상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