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교회 식당에서 H 집사님을 만났다. H 집사님은 내가 구역장일 때, 우리 구역원이었는데 나는 집사님을, 집사님은 나를 좋아하는, 그렇고 그런 사이다. 카톡 프로필에 그 집 막둥이 사진과 읽고 있는 책 사진이 자주 올라오는데, 그날은 그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에도 독서 모임, 잘하고 계시죠?" 집사님은 그렇다고 했다. 6명이 같이 하는 모임인데, 한 달에 2번 모임을 갖고, 그 달의 리더가 책을 선정하고 발제하고, 모임을 진행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했다. 너무 재미있겠어요! 했더니 진짜 그렇다고 하신다.
그래서, 이번 달 책은 뭐예요? 물었더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고 하시는 거다. 아, 그 책 좋죠~라고 답하는데, 조금 거시기하다. 그러니깐 "요즘에 무슨 책을 읽어요."라고 말했는데, 대답이 "아, 그 책 좋죠!"라고 답하는 건, 뭐랄까 거만한 느낌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그렇다고 해서, 읽은 책을 안 읽었다 할 수는 없는 일이고. 쿤데라, 저도 좋아해요. 저는 그 책도 좋지만, 『농담』도 되게 좋았거든요. 이건 더 아니지 않을까. 그래서, 별수 없이 "아, 그 책 좋죠~"라고 얌전하게 답했다.
본인은 편독하는 편인데, 이 모임에 나가면서 여러 종류의 책, 이를테면 시집도 읽게 되면서 책 읽는 범위가 넓어졌다고 이야기하셨다. 『당근밭 걷기』요? 최근에 그분의 프로필에서 봤던 시집을 이야기했더니 맞다고 그러셨다. 그러면서, 전에 구역장님이 선물해 주셨던 책도 다시 꺼내서 살펴보게 되고요,라고 말씀하시는데... 아... 제가요? (내가 책 사드렸구나). 그랬어요? 하는데 당최 무슨 책을 선물해 드렸는지 기억이 전혀 안 나는 거다. 아~~ (무슨 책이었을까) 나는 그분께 무슨 책을 선물해 드렸을까.
최근에 자주 선물하는 책은 이 책이다. 아직 내 책은 안 샀다. 나는 어차피 살 테니까, 내껀 좀 더 미루고, 선물할 기회가 생기면 무조건 이 책으로 한다.
그전에 자주 선물했던 책은 이 책. 이 책은 100권 판매(?)하는게 내 목표인데, 아직도 많이 멀었다. 많이, 많이 멀었다.
새로 출근하게 된 학교의 도서관은 최근에 리모델링이 되어서 깨끗하고 단정하고 말끔하다. 입구 쪽에 교사와 학부모용 책을 돌아보는데, 아...
어떤 책이 좋은 책일까. 어떤 책을 보고 나는 감동하는 걸까. 내가 아는 책이 좋은 책이다. 다시 말해, 내가 '아는' 책이 좋은 책이다. 내가 좋은 책을 찾아 읽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내가 고른 책을, 내가 이미 읽은 그 책을 '좋은' 책이라고 평가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이고, 중립적이라는 편견 속에 살고 있지만,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익숙한 것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과거에 내가 선택했던 그것은 현재에는 내가 선호하는 그 무엇이다.
이름과 직책을 등록하고 처음 대출한 책은 『한낮의 우울』이다. 『통증 연대기』와 더불어 나의 '고통' 카테고리에 저장된 책인데, 찬찬히 공들여 읽었던 책이다. 잠깐 절판되었다가 현재는 개정판이 나왔다. 매우 두껍고 흥미롭고 '말 그대로' 지적인 자극으로 충만한 책이다. 아, 사서쌤~ 『한낮의 우울』을, 초등학교 도서실에 배치하시는 분.
어제는 나만의 그녀, 페란테 피버의 <페란테 시리즈>를 발견했고, 오른쪽에 한국 소설가들의 신작도 확인했다. 다시 한번 밀려드는 감동의 물결. 어려운 책, 심오한 책, 위대한 책, 훌륭한 책들은 내게 멀리, 아주 멀리 있다. 나는 그중의 일부를 내 것으로, 영원히 내 것으로 삼을 수 없다는 걸 안다. 조바심을, 위대한 책들에 대한 조바심을 오랜 시간을 들여 찬찬히, 나는 내려놓았다. 가닿을 수 없는 어떤 곳에 가지 않겠다는 것인데, 왜냐하면 내가 거기에 갈 수 없다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추천을 받고, 리뷰를 읽고, 책의 내용에 흥미가 생겨 책을 대출하고, 책을 구입하고, 그리고 시간을 들여 책을 읽어가는 이 모든 과정들은 나의 취향, 나의 선호를 반영한다. 그 책들이야말로 내가 알고자 하는 세상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내가 닿을 수 있는 세계의 경계 같은 것이다. 더 넓고 싶고, 더 깊고 싶지만, 그게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걸, 나는 안다. 나는, 내가 닿을 수 있는 곳까지 간다. 내 손이 닿는데까지 손을 뻗는다. 제자리에서 2미터 점프는 불가능하니까.
대학교 때 학교 도서관에서 근로 장학생으로 일했다. 학교 밖의 아르바이트보다 시급이 높았고, 공강 시간을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좋았다. 3층 간행물실에서 일했는데, 학회지에서 나온 논문집 정리와 서가 정리를 했다. 책을 많이 읽지 않았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사서에 대해 약간의 환상과 부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양쪽에 책이 가득한 북트럭을 세워두고 하루 종일 컴퓨터만 쳐다보며 책 정보를 등록하시던 사서 선생님들의 옆모습을 오랜 시간 보았더니, 사서에 대한 마음이 조금 흐릿해지기는 했다.
이 학교의 사서쌤은 좀 더 여유가 있으신듯하다. 처음 대출하는 날, 시간이 없어 빨리 대출해야 해서 이전에 알고 있던 책들을 골라 대출하게 됐는데, 『신기한 독』과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어떤 책의 바코드를 스캔하시다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시는 거다. "아, 이 책 진짜 재미있는 책인데... 이 책도..."
이번 주에도 아이들 책 9권과 내 책 1권을 대출했다. 다음에 사서쌤을 만나면 이야기를 좀 더 나누어봐야겠다. 나의 심미안을 알아보시는 분. 선생님! 저도 선생님의 컬렉션이 너무 마음에 들어요. 그러니까, 말이에요. 아니, 어떻게.... 이런 책을 알고 계셨던 거예요? 제가 지난주에 빌린 책, 이 책 『죽음은 직선이 아니다』 말이에요. 어디에서 책 정보를 얻으세요? 혹시.... 혹시 알라디너 아니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