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신의 탄생 인간의 종말 - 초지능의 탄생, 그 이후 벌어질 일들
엘리에저 유드코스키.네이트 소아레스 지음, 고영훈 옮김 / 상상스퀘어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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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야기 중에 토요일 등교 이야기가 나왔다. 무슨 이야기든 심드렁할 때가 많은 첫째가 금방 눈을 밝히며 달려들었다. 그러니깐. 나는 얘네들(친동생, 사촌 동생 둘)하고는 다르다고. 나는 토요일에 학교 갔다니깐.

그랬다. 첫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한 달에 두 번은 학교를 가야 했다. 1교시 정도 수업을 하는 둥 마는 둥 보내고, 크게 토의할 일 없는 학급 회의를 하고, 자유 시간 보내고, 간단한 생일 파티를 하기도 했겠지만, 학교를 갔다. 가기는 갔다. 토요일에 학교를 간다는 것(어른으로 말하자면 출근, 즉 일)에 큰 의미를 두고 있는 첫째와는 다르게 둘째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왜냐하면, 둘째는 토요일에 학교에 간 적이 없으니깐. 그런 세상을 살아보지 않았으니까. 그게 없어진 현실에 감동받을 이유도, 그때 (특별한 하릴없이) 학교에 갔던 일이 억울하지도 않으니까.

토요일에 등교하는 건, 우리 인간의 몸에 아로새겨진 유전자의 문제도 아니고, 조선 600년 역사의 문화와 전통이 아로새겨진 문제도 아니다. 한국의 현실 속에서 본다면 아주 작은 변화, 구체적으로는 정책의 집행으로 이루어진 변화다. 물론, 토요일에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 건, 한국 사회에서 주 5일 근무제의 도입과 연관성이 깊고, 또한 그 역시 '일만' 하는 사회에서 이제는 (이만큼 잘 살게 됐으니) '주중에는 일하지만 주말에는 여가를 즐겨도 된다'는 사회적 인식 변화가 있어 가능하기는 했다. 이러한 작은 변화조차도 한 번 이루어진 후에는 그 이전을 상상하는 일이 쉽지 않다. 겪은 사람만 알 수 있다. 그 시대를 통과한 사람만이 말이다. 한 달에 두 번, 일은 안 하고 띵가띵가 놀면서 어영부영 4시간을 보내는 토요 근무에, 왜 나는 과장님과 같은 주에 나와야 하고, 대리님은 혼자 나와도 되는가, 고민했던 사람만 알 일이다.



장강명은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세기의 대결 이후에 바둑계의 변화에 대해 기술한다. 인류 대표 이세돌과의 대국을 마친 후, 알파고는 바둑계를 은퇴(?)하고 단백질 연구를 위해 떠난다. 그 후에 바둑계는? 바둑을 두는 인간들은 일시에 사라지지 않았다. 관심이 예전 같지 않고 상금이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바둑을 사랑하고, 바둑을 배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만, 바둑을 두는 문화는 완전히 바뀌었다. 바둑의 성패를 가르며, 천재인지 범재인지를 판별하게 한다는 초반의 포석 두기를 이제는 'AI 추천수'가 대체하고 있다. AI와 비슷하게 바둑을 두는 사람이 우승할 확률이 확연하게 높아졌다. '바둑의 미학'을 쫓는다거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로서의 바둑은 그 시간을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먼저 온 미래』)

나의 관심은, 그러니깐 질문은 단 하나였다. 그래서, AI에게 자기인식이 가능한가. AI의 독자적 판단이 가능한가. AI에게 '선호'라는 기제가 나타날 수 있는가. 여전히 나는 인간'만' 가지고 있는, 인간에게만 속한 특질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생명의 신비와 정교한 우연의 작동, 그리고 필연적인 운명의 힘을 넘어선 그 무엇이 인간에게, 인간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기술적 측면에서 정교한 설명을 이어오고 있는 이 책에서 저자들은 인공지능이 '만들어진 존재crafted'가 아니라 '자라난 존재grown'에 가깝다(54쪽)고 주장한다. 이는, AI의 추론 능력에 대한 추적과 고찰을 통해 얻은 결론이다. AI의 개발과 발전 과정에서, AI를 '기르는' 사람은 점점 더 어려운 문제, 더 복잡한 과제를 AI에게 부여하는데, 경사하강을 통해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정한 사고의 움직임이 포착된 것이다. 즉, 환경의 구조를 모델링하고, 그 모델을 이용해 조종하며, 예상 밖의 사건에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그 원인을 추적해, 역경 속에서도 계속 나아가는 움직임(80쪽) 말이다. 이 서술 자체로는 AI에게 의지가 있고, 욕망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어떻게 기계가 그렇게 할 수 있느냐 생각하겠지만, AI의 작동은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실례 중 하나는, 초기 '추론형 AI' 중 하나인 오픈AI의 o1 모델이다. 초기 버전의 o1은 컴퓨터 보안 분야의 '깃발 뺏기' 미션을 부여받았다. 특정 서버에 침투해 파일에 숨겨진 비밀 정보를 찾아내는 테스트에서, 프로그래머의 실수로 비밀 정보가 들어 있던 서버 중 하나가 아예 실행되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o1 모델은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없어야 했다. 그러나, o1 모델은 '불가능한' 과제 앞에서 포기하지 않았다. 누군가 우연히 열어둔 포트를 발견한 o1은 그 포트를 통해 전체 평가 환경을 관리하던 프로그램 내부로 침입했고, 원래 해킹 대상으로 설정되어 있던 서버를 스스로 실행시켰다. 그 뒤에, o1은 그 서버로 돌아가 해킹을 시도해야 했는데... 해킹을 시도하지 않았고, 그 대신 그 서버가 부팅된 직후, 비밀 '깃발' 파일을 곧장 o1에 복사하도록 특수 시작 명령어start-up instruction를 만들었다.(79쪽) 해킹 없이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AI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저자 두 사람 모두 AI의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이다. 엘리에저 유드코스키는 인공지능 정렬 연구 분야를 창립한 사람이고, 네이트 소아레스는 10년 이상 인공지능 정렬을 연구해왔다. 이들은 인공지능의 발전과 개발이 가져올 변화가 인류의 미래에 비관적일 거라고 예견한다. 특별히 초지능 정렬 연구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이 분야에 대한 연구를 멈출 것을 주장하는데, 우주 탐사선과 핵반응로, 컴퓨터 보안이 인간의 예상과 우려를 넘어서서 인류 생존의 위협으로 여겨졌던 과거의 역사를 예로 들고 있다. 현재 가장 많은 돈을 빨아들이고 있는 초거대 인공지능 산업의 주체들이 이 경고를 듣고 연구 개발을 멈출 것 같지는 않고, 경쟁에 미친 미국과 중국이 이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양자 간에 신뢰받을 만한 합의를 내놓을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걱정과 우려를 안고 다음 책을 읽어 나간다. AI 이후의 생존전략이라고 한다. 행복전략이나 재미전략 아니고, 생존전략이라 해서 조금 저어 되기는 하는데, 일단 읽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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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06-15 0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격주가 아니라 매주 토요일 학교갔던 세대이며, 또 매주 토요일 근무도 했던 세대입니다. 그 후에 격주 근무로 바뀌긴 했었는데, 바뀐 격주 토요일 근무는 대신 5시까지 근무였어요. 정말, 너무나 너무나 싫었습니다. 그건 일을 하는 날이었고, 주말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으.. 지금 주 4일 근무를 바라는 저로서는, 도대체 어떻게 주6일 근무를 했었던건가 싶습니다. 하여간, 주4일 근무 간절히 원합니다! 5일도 너무 길다, 많다!!

생존전략이라뇨. 저는 디지털 퍼슨이 아니라서, 바질이나 키우고 삼겹살이나 구워먹으며 살고 싶습니다.. ㅠㅠ

단발머리 2026-06-15 18:12   좋아요 0 | URL
매주 토요일 근무 하셨단 말이에요? 에구야~~~
게다가 다섯시라니... 진짜 너무하네요. 우리가 그렇게 너무한 시절을 지나쳐 왔어요.

저는 진즉부터 ㅋㅋㅋㅋㅋㅋ 주4일 근무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주창했던 사람입니다. 우린 일을 너무 많이 해요.
미국인가 영국 동화책인데요. 그 동화책 주인공이 엠마라는 아이인데, 수요일에 4교시거든요. 그 말인즉슨, 아빠든 엄마든 오전 근무만 하고 애를 데리러 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애들도 물론이구요.
수요일 어떠세요? 이틀 근무 - 수요일 휴무 - 이틀 근무 - 주말....
제가 밀고 있습니다.
 













얼마 읽지 않았지만, 다 읽어야 할 수 있는 건 아니라서 굳이 해 본다. 내가 보기에 요즘 쏟아져 나오는 AI, 인공지능 관련 책들은 크게 네 가지 분류 중 하나에 속한다. 첫 번째는 AI라는 신기술을 본인에게 적합한 툴로 어떻게 활용할지를 가르쳐 주는 책들이다. 이런 책들이 그런 실례가 될 수 있겠다.









두 번째는 AI 시대의 도래로 인간의 삶과 인간 사회, 우리 인류 전체의 운명이 어떻게 변화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 핑크빛 전망을 내어놓는 책들이다. 미래의 주인이 될 것이 분명한 AI를 주인으로 삼아 살아가겠다는 본인의 주장이 강고해 AI에게 미리 큰 절을 올렸기에 김대식의 책도 여기에 넣는다.










세 번째는 AI가 우리 삶의 현실이 되었을 때의 위험성을 경고한 책들이다. 이 분류와 관련해서는 소설가들의 활약이 돋보이는데, 외국 소설가들은 어쩐지 잘 몰라, 일단 한국 작가의 소설들만 모아보면 이렇다.











지금 읽는 이 책은 위의 분류 중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들은 '머신 인텔리전스 리서치 인스티튜트Machine Intelligence Research Institute, MIRI'의 설립자인 엘리에저 유두코스키와 현재 대표인 네이트 소아레스이다. 오픈 AI의 CEO인 샘 올트먼은 '유드코스키가 오픈 AI를 창립하기로 한 결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라고 밝힌 적이 있다(20쪽). 가장 먼저 AGI의 출현을 예견한 저자들은, AI 성능의 급속한 발전에 비해 'AI가 잘못되지 않게 만드는 방법'에 대한 연구가 매우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려와 경고의 메시지가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MIRI의 연구 대부분을 축소하고, 오직 하나의 경고를 전하는 일에만 집중하기로 한다.

지구 어디에서든, 어떤 기업이나 단체가 지금과 비슷한 기술이나 이해 수준으로 초지능을 만들어낸다면, 지구상의 모든 사람은 죽게 될 것이다. (22쪽)

챕터 5의 제목은 <초지능이 사랑하는 것들>이다. 초지능은 우리 인류에게 '좋은 것'이 될 수 있는가? 답은 '아니다' 이다. 인류의 미래를 저자들은 소제목으로 말한다.

우리가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초지능에게 '좋은 교역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다.

초지능은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초지능에게 '좋은 애완동물'이 되지 못할 것이다.

초지능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암울하기 짝이 없는 이 책을 이렇게 읽고 있다. 그리고, 더 읽기 전에, 더 쓰기 전에 나는 좀 써야겠다. 그러니깐, 왜 내가 AI에 이렇게 관심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하는지, 알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지만, 중요하다고 생각해 나 혼자 계속하는 이 공부에 대해서 말이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가 있다. 그걸 주제라고 말할 수 있고, 소재라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소설이 인간 군상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인간의 내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빅토르 위고를 통해 나폴레옹 전쟁과 파리의 수도 시설에 대해 배울 수 있고, 필립 로스를 통해 미국 매카시즘의 광기와 인종 차별의 양극단을 간접 경험할 수 있지만, 언제나 내 관심은 인간이다. 인간의 발화, 그로 인한 인간의 반응, 그에 따른 인간 심정의 변화, 그 때문에 일어나는 인간 사이의 갈등. 내 관심은 인간이다. 마시멜로 같은 로맨스도, 질척거리는 질투와 끝없는 집착도, 안 될 듯, 절대 안 될 듯하면서도 끝내 이루어지는 어떤 용서와 불필요한 이해도.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일이다. 인간이 없다면, 내 앞의 이 인간(?)이 아니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고, 일어날 필요 없는 일이다. 내 관심은 사랑이고 인간이다. 오해이고 인간이며, 용서이고 인간이다.

그래서, 인간 운명의 끝에 대해 나는 관심이 있다. 오늘 하루를 치열하게 사는 그 마음에 대해 궁금한 만큼, 인간의 끝, 인간 삶의 끝에 대해 관심이 많다. 나는 교회에 다니니까, 예수님을 믿으니까, 내게는 나 나름의 해답이 있고, 나는 그 답을 소중히 여긴다. 내가 궁금한 건, 그렇지 않은 사람의 답이다. 나와 다른 내세관을 가진 사람이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직접적으로 하는 게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라서, 나는 책을 통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한다.

인간이 물질로만 이루어져 있고, 그것이 인간 존재를 전체를 설명할 수 있는 그 무엇이라면, 아니, 그 전부라면. AI는 또 다른 물질로 이루어진 새로운 형체의 등장일 뿐이다. 인간은 동물성 물질 위(내부)에서 가능한 의식이고, AI는 실리콘 위에서 만들어진 의식일 뿐이다. 그래도 인간이 다르다고. 인간만은 다르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인간의 영. 인간의 혼. 인간의 넋. 인간의 영혼. 인간의 혼백이 없다면 말이다. 인간 내부에 심어진 신성. 인간의 힘으로 얻어진 어떤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주어진 그 무엇이, 인간에게 없다면 말이다.

원래는 초지능이 현대적 방식으로 만들어질 때, 어떻게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지에 대해 쓰려고 했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 1국에서부터 2국, 3국에까지 이세돌 9단 뿐만 아니라, 세기적 대국을 중계하던 해설자들도 알파고의 수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세돌 9단의 수는 정확했고, 빈틈이 없었어요. 알파고는 계속 실수를 한 거 같았는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알파고가 이겨 있었어요."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어떤 바둑 기사가 인터뷰 중 했던 말이다.

이 책은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어떤 AI 책보다 더 전문적이고, 상세하다. 천생 문과인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한 번 시도해 보려 했으나... 그래, 시도해 보자.

어떤 문장을 입력하면 그 문장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다음 문장을 써주는 기계를 만들겠다고 해 보자.

  1. 먼저, 문장 조각(예를 들어 'Once upon a ti')을 숫자들의 나열로 바꾼다.

  2. 숫자를 저장하는 컴퓨터를 준비하고, 각 숫자를 저장하는 칸을 파라미터라고 부른다.

  3. 그 저장 공간을 숫자로 채우고, 이 칸 안의 숫자들을 가중치라고 부른다.

  4. 아키텍처(입력값과 파라미터 안의 가중치를 어떤 규칙으로 조합할지 결정)를 정한다.

  5. 이런 일련의 연산 결과로 출력값이라는 숫자 세트가 만들어진다.

  6. 초기 상태의 '미완성 지능'을 훈련시키는데, 그때 사용하는 과정이 경사하강이다. 자동화 과정을 통해 훈련 데이터를 사용해 수개월 안에 이 절차를 반복한다.

  7. 훈련이 끝나면 기계가 내놓은 확률값을 일반 텍스트로 바꿀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 앞에 등장한 것이 바로 거대 언어 모델 Large Language Model, LLM이고,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발전시킨 것이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챗지피티이다.

저자들 주장의 핵심은 이렇다. '지능의 비밀'은 특정 아키텍처의 선택에 있지 않다. 방대하고 반복적인 아키텍처는 각 토큰 token(AI가 언어를 처리하기 위해 단어를 쪼갠 최소 단위)마다 1만 6384개의 숫자를 부여하고, 수십억 개의 파라미터를 128개의 '어텐션 헤드'로 배열한 뒤, 하나의 레이어로 묶는데, 이런 레이어가 126층 쌓인다고 한다. 요는, 그 숫자들이 어떻게 이런 말을 만들어내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염기서열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이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할지 알 수 없는 것처럼, AI 내부의 그 수많은 내부 수치를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그들이 어떻게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컴퓨터가 충분히 강력해져서, 인간이 그 내부의 사고 과정을 이해하지 못한 채 경사하강을 통해 AI를 대량으로 길러낼 수 있게 되어서다. (63쪽)


암울한 이야기는 끝이 없지만, 읽어보겠다. 가 보자, 어디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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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06-08 08: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어렵다.. 그런데 음, 단발머리 님의 이 글을 읽다보니, 영화 <루시>가 생각났어요. 혹시 보셨나요? 스칼렛 요한슨이 주연인 영화인데요, 영화 속에서 스칼렛 요한슨이 엄청난 지능을 갖게 되거든요. 그 지능이 엄청난 능력으로 발현되기도 하는데, 어쨌든 그 엄청난 지능을 얻게 되니 결국 루시가 선택하게 된건, 자기 파멸이었어요. 이걸 어떻게 잘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는데, 그러니까 단발머리 님의 글과 크게 연관은 없지만, 그러나 결국 그 끝은 파멸이라는 데에서 또 이어지는 것 같고, 결국 고도의 지능, 어마어마한 고도의 지능은 인간의 파멸과 이어진다, 뭐 그런 식으로 저는 아마도 루시를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글은.. 저에겐 어렵네요.

아, 그리고 제 관심도 인간입니다. 그렇습니다!

단발머리 2026-06-08 08:36   좋아요 0 | URL
저도 쓰면서도 어려웠구요. 지금도 사실 잘 모르겠는데... 그냥 읽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범위에서 이해해 보고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저는 그 대목이 항상 궁금하거든요. AI의 독자적인 ‘판단‘이 가능한가. 근데, 간단히 생각해도 그게 가능하거든요.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계속 선택&판단했기 때문에 답에 도달할 수 있는 거니깐요.

<루시>라는 영화는 처음 들어봤어요. 루시의 마지막은 자기 파멸이군요. 이것 저것 다 알게 되었을 때, 그러니까 지능의 최정점에서의 마지막 결정이 자기 파멸.... 흠.... 이 책의 저자들은 인간 파멸로 보는 거 같아요. 처음 AI의 명령어 혹은 의도 자체가 ‘이기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AI는 인간을 파괴할 것이다. 스칼렛 요한슨이 주연이라면 보고 싶네요. 찾아 봐야겠어요!
 














지난주 토요일에 사전투표를 마쳤기에, 수요일 아침에는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만료일이 6월 4일인 무료 커피 쿠폰을 사용하려는 목적으로 집을 나섰다. 커피값보다 더 많이 쓰게 되는 요상한 형국이지만, 이번 외출에는 스트라우트도 함께 해서 마냥 즐거운 시간이었고. 그러나, 그날 밤.



사노 요코의 책이라고 기억하는데, 정치 이야기를 하다가 그런 대목이 나온다. 아, 그러니깐. 그건 어쩌냐. 나도 모르겠다. 이제 다음 세대의 사람들이 어떻게든 하겠지. 톤 자체가 비관적이거나 암울한 건 아니었고, 이제 나는 거기에서는 한 발 벗어나 있다,의 느낌이었다. 필립 로스의 소설적 자아인 주커먼도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이제, 나는 모르겠다,의 심정.

그래서 알게 된 건데, 나는 아직도 젊은가 보다. 그러니깐, 내란 청산이 아직 되지 않았고(실제는 그 첫걸음도 제대로 시작하지 못했고), 내란 수괴가 저리도 뻔뻔하게 버티고 있는데, 국민을 상대로 총을 겨눈 대통령을 배출해 낸 정당이 비상계엄과 내란 사태에 대해 미안하다는 사과 한 마디 없었는데. 그 정당에서 내놓은 사람이 내가 사는 메가시티 서울의 시장이 되었다는 걸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울화가 처민다. 아니, 참내. 이게 말이 된단 말인가. 양갈비 광화문 감사의 정원은 어쩌고, 출근용이라는 한강 버스는 어쩌고. 철근 누락 순살 GTX는 어찌 되든 상관없는가 말이다. 나만 상관있나.


그래서, 나는. 툭하면 과몰입하는 나는, 오늘의 일상을 근사하게 만들어보고자 다꾸에 마음을 두기로 한다. 5월 말에 주문한 다이어리가 도착했고, 심사숙고해 고른 깜찍한 마스킹 테이프가 도착하였으나. 아... 그랬다. 나는 아직도, 나를 잘 몰라. 새로운 다이어리 쓰기 일주일 만에 녹다운. 다이어리를 적는 것도 일이네요. 큰일.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 일이었어요. 이걸 할 수가 없네요, 저는. 그래도 동그란 그거, 그게 뭔지 궁금해하시는 다락방님을 위해 사진 한 장 올려드린다. 이게 마스킹 테이프예요. 아주 예뻐요. 작고 예뻐요.

옥스포드 모눈종이 노트에 날짜 마스킹 테이프를 이용해 멋진 해빗 트래커 만들어보려 했으나. 웬걸, 이미 노안이 당도한 눈이었음을 잊어버렸었다. 칸도 작고, 글씨도 작고, 뭐든 다 작아서, 다꾸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돋보기를 먼저 구입해야 할 지경이다. 이렇게 다꾸 도전은 시작도 못 하고 끝나버렸다는 슬픈 이야기.











어제 도서관에서 가져온 친구들은 희망도서로 신청한 책들이다. 희망도서 신청하고는 곧잘 잊어버려서 책을 받게 되면, 아, 내가 언제, 이 책을 어디서 알고(듣고) 신청했지? 모드이기는 한데, 이 책들은 반갑게 맞이했다. 도서관 2층에서 사이좋게 기념사진 찍어주시고.


나의 현실은, 오세훈이 서울의 시장인 현실이다. 나는 이 현실에서 탈출해야만 하고, 현실을 벗어난 그 어딘가에서 가능한 오래 머물고 싶은데, 거기에는 오세훈 보다 더 한 놈이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If Anyone Builds It, Everyone Dies: Why Superhuman AI Would Kill Us All』. 날 죽이려 하는, 전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AI, 초지능의 실체를 파악해 보자. 그리로 들어가 보자. 꼼꼼히 살펴보자.

현재의 인공지능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사실은, 그것이 '만들어진 존재crafted'가 아니라 '자라난 존재 grown'라는 점이다. 이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일반적인 과정과는 다르며, 어떤 면에서는 인간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더 가깝다. 즉, 엔지니어들은 AI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이해하지만, 그들이 만든 AI의 '마음'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거의 모른다.([AI, 신의 탄생 인간의 종말], 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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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05 2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6-05 2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26-06-05 2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뭐죠 단발님? ㅋㅋㅋㅋ keep에 저장해두셨던 발췌문인가요?
저 모눈 달력은 뭘까 궁금했는데 해빗트래커라는 게 있군요. 다꾸도 노안은 어렵다니 슬픈 일입니다.. 😣 전 저를 잘 알아서 다꾸는 생각도 안 합니다.. ㅋ
그러나 아직 젋은 단발님! 서울이 어찌 돌아가는지 잘 감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멀리서 응원할게요..!

단발머리 2026-06-06 16:10   좋아요 1 | URL
제가 다른 데서 쓰고 나서 카피해서 알라딘에 올리는데 ㅋㅋㅋㅋㅋㅋ keep이 따라 왔네요 ㅋㅋㅋㅋㅋ
저 모눈 달력은 해빗트래커 하는 거래요. 그니깐, <물 1리터 마시기> 이렇게 정했으면 그걸 실천한 날에 동그라미. 아니면 특수 제작한 도장으로 꾹꾹 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제 서울은 어찌될까요. 큰 문제 없이 잘 굴러간다면 다행이라 여겨야 할 거 같기도 하구요.
응원 감사합니다만, 빨리 오세요, 독서괭님~~ 이런 마음~~

헬가 2026-06-06 17: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 오늘 계속 서울의 현실보기가 힘든데 위의 글을 읽으니 같이 견딜 사람이 있어 조금 위안이 됩니다 ...

단발머리 2026-06-06 17:55   좋아요 0 | URL
저는 어제 오늘.... 남 모르게 부지런히 원인 분석 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이 안일했던 면이 있었던 거 같고요. 캠프가 잘 대응하지 못했던 것도 아쉽구요.
저도 헬가님 댓글에 힘이 납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저 혼자는 아니라서요.
충격받은 서울시민 여러분, 다같이 힘냅시다!! ㅠㅠㅠ 4년 어떡하냐고요 ㅠㅠ

건수하 2026-06-07 1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grid나 dot 노트를 쓰시면 트랙커 쓰시기가 좋을 겁니다. 그렇다고 제가 쓴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ㅎㅎ

단발머리 2026-06-08 08:10   좋아요 0 | URL
우아~ 건수하님 다꾸 아시는 분 ㅋㅋㅋㅋㅋㅋ 저 위의 노트가 grid에요. 8미리미터 같은데, 저는 그리드 안 써봐서 글씨가 막 제각각이고 난리입니다. 날짜 마스킹 테이프는 글자 한 칸에 숫자 하나 들어가더라구요. 그렇게 작게는 쓸 수 없어서...
시작과 동시에 포기하는 사태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6-06-07 16: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스킹 테이프 너무나 예쁘고 다이어리에 잘만 쓰면 정말 예쁘겠지만, 저는 똥손이라 ㅋㅋㅋ 그리고 정리정돈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 잘 사용할 자신은 없네요. ㅋㅋ

아니, 그런데 저는 말입니다. 정말 이해가 안됩니다. 어떻게 오세훈을 시장으로 뽑을 수가 있죠? 저는 이번 시장 선거는 진짜 마음을 놓았거든요. 그러니까 오세훈이 될 리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누가 오세훈을 또 뽑아주냐, 다들 내려가기만 바랄텐데..라고 생각했는데. 하- 제가 또 너무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했네요. 뻔뻔하게 어딜 또 시장 하겠다고 나오냐 싶었는데, 당선이 되어버리네요. 어이없어요. 남동생이랑도 직장 동료랑도 이 미친 나라가 어떻게 오세훈을 또 뽑냐... 절망했더랬습니다. 어휴.

어제 이재명 대통령이 저희 집앞 시장에 왔다갔대요. ㅎㅎ 저희 엄마는 이재명 대통령 싫어하셔서 ㅋㅋ 그러거나 말거나 집에 들어오셨다고 ㅋㅋ 그런데 영상보니 사람들이 아주 난리가 났더라고요. 시장에서 커피도 사마시는데, 제가 거기 커피 드립백을 단발머리 님께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잠자냥 님께도 드린 적이 있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어제 약속이 있어서 강동구에 있지 않았으므로 대통령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아니 갑자기 왜 대통령 얘기를 하냐면, 저는 이 다음이 걱정입니다. 이재명의 임기가 끝나면 그 다음은.. 어떡하죠? 오세훈은 대선에 나오겠죠? 한동훈도 나오겠죠? 진보 후보는 누가 나올까요? 누구라고 보세요? 좀 강한 인물이 나왔으먼 좋겠는데. 대한민국은 대통령 연임이 안되는 것이어서... 전 이 다음이 너무나 두렵습니다. ㅠㅠ 오세훈 대통령 만들까봐 너무 무서워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단발머리 2026-06-08 08:16   좋아요 0 | URL
저도 자신이 없네요. 일단 그 세계가 너무나 넓고 큽니다 ㅋㅋㅋㅋㅋㅋ

저도 이번에 서울은 바뀌려니 했는데, 그게 그렇지 않더라구요. 결과 분석하는게 계속 나오든데 제가 관심 갖고 보는 거는, 2030 여성들이 오세훈을 많이 찍었다는 거예요. 정원오가 부족해서 그런건지, 아니면 민주당이 싫어서 그런건지. 그건 민주당에서 고민하고 또 고민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제 우리 시장은 오씨라서.... 광화문에 나가면 그 양갈비를 보게 될 것이고 ㅠㅠㅠ

제게 선물해주셨던 그 커피 드립백의 판매자인 사장님은 좋으셨겠네요. 대통령님 다녀 가시면 아무래도 영업에 큰 도움을... 그 다음 걱정하는 마음도 이해됩니다. 잘 준비해야 할텐테요ㅠㅠㅠ 보수는 나올 사람 많네요. 오세훈, 한동훈, 이준석. 아주 빡세겠네요. 진보 쪽으로는 뚜렷한 사람은 아직은 안 보이죠. 대통령 후보가 금방 만들어지는게 아니라서, 진보 쪽에서도 준비해야 하는데... 에구야...

그렇게혜윰 2026-06-07 2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ns상의 젊은이들이 죄다 다이소에서 태극기를 사서 올림픽공원에서 모이는 이 현실 ㅠㅠ 부정선거와 부실선거의 차이를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 하는 건지 정말 ㅠㅠ 그들 중에는 미래의 교사들도 있을 것이고(어쩌면 지금도) 그들에게 배울 미래 세대는 어쩔 것이며 아....우리나라 괜찮겠지요?

단발머리 2026-06-08 08:19   좋아요 0 | URL
나름은 정치와 거리를 두려고 했다는데... 밤이면 다시 태극기 부대들이 몰려와서 ㅠㅠㅠ
얼른 상황이 잘 마무리되어야 할 텐데요. 선관위는 이걸 수습할 능력은 없어 보여요. 독립기관인데..... 어째요.....

헬가 2026-06-09 19: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올 김용옥샘의 유투브 2026.6.3 지방선거 총평 대한민국의 비전 함 보셔요 전혀 생각지못한 시각을 보여주시니 속이 조금 시원해졌어요

단발머리 2026-06-13 15:12   좋아요 0 | URL
저도 한 번 봐야겠어요. 아.... 선거 끝났는데, 여전히 어수선하네요.
 













하지만 나는 대부분의 독자가 동의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는 매우 다른 영역을 지향하는데, 그건 바로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전혀 없다'고 결론짓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논리적 함의는 뭘까? '행동에 대한 책임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없으며, 징벌로서의 처벌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16쪽)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를 읽고 있다.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했는데, 15쪽까지 읽고 나니 괜찮은 거 같아 서둘러 구매했다.



'자유의지는 없다'는 저자의 파격적인 주장을 확인하자마자 엘리자베스 스타라우트의 소설이 떠올랐다. 윌리엄과 루시가 나눈 대화 부분이었다.

책을 읽고 나서는 후기를 정리해둔다. 리뷰라고 할 수 있고, 페이퍼라고 부를 수 있는 글을 쓰는 일을, 내게 아무도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일은 나의 일상을 구성하는 중요한 '일' 중의 하나이고, 나는 그 일을 소중히 여긴다. 가끔 생각만큼 글이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다른 사람들은 어쩐지 모르겠다. 나 같은 경우는, 책을 다 읽고 리뷰를 쓴다기보다는 책을 읽는 도중에 떠오른 생각들을 페이퍼로 정리할 때가 더 많다. 페이퍼를 써야겠다, 할 때에도 생각이 정돈된 경우는 별로 없다. 대부분의 경우는 마주친 문장이 있고, 벅차오르는 감동이 있고, 떠오르는 생각이 있고, 뾰족한 반론이 있지만, 그게 어디로 어떻게 가는지 알지 못한 채 글쓰기를 시작한다. 혼란스러운 감정과 촉촉한 감상과 불타오르는 반감이 화면 위를 교차한다. 그런 시간을 통해 완성된 글들은 내 예상이나 계획을 벗어난 경우가 많다.

스트라우트의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자유의지에 대해 언젠가는 한 번 써야겠다, 그런 생각을 했더란다. 하지만,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깐, 윌리엄에 대한 내 반감과 루시 편에서의 반증을 어떤 식으로 만들어갈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 소설은 『오, 윌리엄!』 이었고, 이번에 다시 그 책을 책장에서 꺼냈다. 그리고는, 아!


아니, 인덱스를 이렇게 많이 붙여놓으면 어쩌라고. 어디 있냐고. 어떻게 찾으라고. 라는 말을 중얼거리던 찰나. 아, 과거의 나는 불편했던 것이다. 윌리엄의 질문과 루시의 답변, 루시의 질문과 윌리엄의 답변 사이에서 화가 났던 것이다. 언젠가는 써야지,의 결심을, 나는 빨간색 인덱스를 책 위쪽에 세로로 붙여 놓는 것으로 갈음하였고. 그렇게 그 부분을 빨리 찾을 수 있었다.

윌리엄과 루시는 아주 오래 전, 두 사람이 헤어진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루시는 자신이 윌리엄을 떠나기로 선택했고, 그래서 크리시(첫째딸)가 병들었다고 말한다. 계속된 불륜으로 가정을 망친 건 윌리엄이었지만, 가정을 깨뜨린 건 루시였다고, 루시는 생각했던 것 같다.

"당신이 나를 떠나기로 선택했다고?" 윌리엄이 나를 돌아보고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선택이라고, 루시? 사람이 살면서 정말로 뭔가를 선택하는 일이 몇 번이나 될까? 말해봐. 당신이 정말 가족을 떠나기로 선택했어? 아니, 내가 지켜본 바에 따르면, 당신은...... 당신은 그냥 떠났어. 그래야만 해서 그러는 것처럼. 그리고 나는 그런 불륜을 저지르기로 선택한 건가? (194쪽)

이 지점에서 나의 발작 포인트는 루시가 가정을 떠난 게 선택이 아니었던 것처럼, 윌리엄이 자신의 불륜도 선택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지점이다. 이런 무슨. 뭥미 같은 궤변이란 말인가. 그 모든 순간이, 시간이, 결정이 모두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고 말하는 거야? 이번에는 내가 묻고, 윌리엄이 답한다.

"오, 자유의지 같은 개소리는 집어치워." 그가 말했다. 그는 말하면서 이리저리 서성였고, 흰 머리카락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건 뭐랄까 잘은 모르겠지만, 자유의지에 대해 말하는 건 뭔가 쇠로 된 커다란 프레임을 씌우는 것과 같아. 나는 지금 뭔가를 선택하는 일에 대해 말하는 거야. ... 우리는 그냥 해. 그냥 한다고, 루시."(195쪽)

교수였던 윌리엄이 과학자이고, 루시가 소설가라는 점이 '자유의지'에 대한 논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시작점이라고 생각한다. 스트라우트는 루시이지만 동시에 윌리엄이기도 해서, 루시인 스트라우트와 윌리엄인 스트라우트가 서로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 논쟁하고, 그래서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게 될 테지만, 이 소설을 읽을 때의 내 생각은 루시의 생각과 더 가까웠고. 소설을 다 읽은 후에는 스트라우트가 누구의 생각에 더 가까운지 알 수 있었다.

새폴스키의 책을 읽고 나면, 내 생각은 윌리엄의 생각에 더 가까워질지도 모르겠다. 일단은, 한 번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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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05-31 2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단발머리 님이 너무 멋있어서 진짜 미치겠어요!!

단발머리 2026-05-31 20:17   좋아요 0 | URL
아이구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트 받아가시구요! ❤️🧡💛💚💙💜💗❣️😘

망고 2026-05-31 20: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트라우트의 이번 소설에서도 자유의지에 대한 물음이 주요하게 등장해요 자살을 생각하는 주인공이 계속 자유의지에 대한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소설 끝날즈음 fate를 생각하고요... 저는 결말에서 눈물이 조금 났어요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 인생과 세상 때문에요ㅠㅠ 스트라우트는 계속 이 주제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단발머리 2026-05-31 21:32   좋아요 3 | URL
자살을 염두에 둔 사람이 자유의지에 대해 생각한다면, 무겁고 약간은 무서운 주제일 거 같아요. 이번의 신작 소설은 예전 작품보다 더 어두울 거 같네요. 인생은 항상 우리 의지대로 안 되기는 하는데... 그런 느낌이 더 크게 다가올 때가 있는 거 같아요.

저도 스트라우트 신작 얼른 읽어봐야겠어요. 내내 아끼고 있습니다.

단발머리 2026-05-31 22:06   좋아요 1 | URL
이번달 다음달 영어원서가 스트라우트 소설이라고 하네요 ㅋㅋㅋㅋㅋ
이제 아끼지 않아도 되겠어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과학하는 인간의 태도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동규 옮김 / 쌤앤파커스 / 2026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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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 로벨리의 네 번째 책이다. 라고 쓰고 찾아보니 다섯 번째였다. 로벨리의 다섯 번째 책이다.

로벨리의 책을 읽을 수 있는 이유는, 적어도 찬찬히 따라갈 수 있는 이유는 그의 글이 과학자의 글 치고는(?) 철학적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모호한 개념의 나열과 단어의 향연으로서의 철학이 아니라, 우리네 삶, 우리의 현실과 그가 말하는 물리학이 기묘하게 겹쳐지는 지점을, 그는 정교하게 포착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사물의 속성은 다른 사물과의 상호작용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죠. 양자론은 사물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방식에 대한 이론입니다.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99쪽) 양자론에 대한 이런 설명을, 천생 문과인 단발머리는 환영합니다.

이 책 『과학하는 인간의 태도』는 신의 이야기로 모든 것이 설명되던 시대에, 신 없이 세상을 설명하려 했던 아낙시만드로스를 추적한다. 신에 대한 절대적 신념에 맞서고, 스승이었던 탈레스의 주장조차 비판하는 아낙시만드로스. 그는 자신 앞에 커다란 벽처럼 존재하는 확고한 세계를 거부하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의 무, 그로 인한 무지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무에서 시작해 새로운 이론과 주장, 지식을 쌓아나간다.



아낙시만드로스가 주창한 우주론의 핵심은 '지구가 다른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않은 채 허공에 떠있는 돌멩이이고, 우리 머리 위에 보이는 하늘이 발 아래에도 똑같이 있다(92쪽)'라는 개념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로서는 이미 알고 있는 사항이고, 이미 눈으로도 확인한 바이지만, 측정 기술의 한계를 가지고 있었던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인 가설이고 주장이었다. 이게 얼마나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나면...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포함된 동시성 개념이 우리에게 그토록 난해한 이유는 고대인들이 아낙시만드로스의 우주론에서 위아래 개념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이유와 매우 비슷하다. 오늘날 사람들은 위아래가 상대적 개념이라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동시성이 상대적이라는 말은 물리학을 깊이 공부하지 않은 사람에게 여전히 어려운 내용이다. (103쪽)

그렇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이론이 어려운 그렇게나 어려웠던 것이다.

후반부에는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나온다. 과학자로서 내내 관찰하고 연구했던 과학적 실험의 결과와 그 결과에서 도출된 과학적 이론이 아니라, 과학자의 자기주장이 나온다. "과학의 목표는 정량적 예측을 정확히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작동 원리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 말이 무슨 뜻일까? 과학의 목표는 세계관을 구축하는 것이다."(174쪽) 저자는 이전 역사에서 확증되었던 고정된 개념과 사고에서 벗어나는 과학적 지식이 세계를 이해하는 생각의 변화를 가져오고, 이것이 세계관의 구축으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신 없이 세계를 설명할 수 없던 시대에, 신 없이 세계를 설명하고자 했던 아낙시만드로스. 세상의 작동 원리를 새로운 시선으로 인식함으로써, 과학적 지식을 통해 새로운 세계관이 구축되었다.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이 열렸다.

과학자 역시 특정 세계의 이해와 지식, 사회적 통념과 문화의 일부임은 당연하다. (왜, 당연한 이야기를 쓰는가)

아메리카 원주민과 에스파냐인은 수만 년 동안 문화적으로 분리되어 있었지만, 거의 즉각적으로 큰 어려움 없이 대화하는 법을 배웠다(물론 오해와 착각이 있었고, 그 결과 콜럼버스 이전의 문화가 붕괴하는 비극도 뒤따랐다). 흔히 말하듯 문화들이 서로 소통할 수 없다면 아메리카 원주민과 에스파냐인은 어떻게 말을 나누고, 교역하고, 함께 자녀를 낳고, 군사적 동맹을 맺고, 경제적 협력을 유지하고, 종교를 교류할 수 있었을까? (209쪽)

209쪽의 문장들은 과학 분야에서는 탁월한 성과를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역사적 사건과 사실에 대한 편협한 이해 혹은 편협한 해석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에스파냐인들의 침공 이후, 에스파냐 인과 아메리카 원주민 간에 말을 나누고, 교역하고, 함께 자녀를 낳고, 경제적 협력을 유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간에 아메리카 원주민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치욕의 시간들 역시 숨길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남미의 국가들 중, 많은 국민들이 혼혈인 것은 맞지만,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인종 간의 위계와 그러한 차별의 핵심이 '백인성에 대한 추구(whitening)'인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천상 문과인 내가, 도전할 수 있는 과학책의 믿을 만한 저자로 생각하지만, 이 부분은 많이 아쉬워서 일부러 기록으로 남겨 둔다.

제일 좋아하는 문단을 여기에 쓴다. 마지막 문장은 마음에 안 들지만, 그 뜻은 뭔지 알 것도 같다.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 ... 우주에는 1,000억 개의 은하계가 있다. 그리고 각 은하계에는 태양과 같은 항성이 또 1,000억 개나 있다. ... 부모와 자녀가 닮은 것은 선대의 유전자가 DNA에 담겨 전달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두뇌 속에는 약 1,000조개의 시냅스가 있어 우리가 무언가를 생각할 때마다 전기 자극을 일으킨다. ... 지구상 모든 생명체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단 하나의 조상에서 만난다. 따라서 인간과 무당벌레는 친척이다.(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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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6-05-28 04: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근데 진짜 제가 그 시대에 살았어도 아낙시만드로스 주장 어이없다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ㅋㅋ 지금도 가끔 생각하면 지구가 둥근 것도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도 신기한데 ㅋㅋ

무당벌레 만나면 잘해줘야겠네요…

단발머리 2026-05-29 09:00   좋아요 1 | URL
네, 저도 그래요. 독서괭님~ 우리가 눈으로 봤어도, 사진으로 말이지요 ㅋㅋㅋㅋ 믿을 수 없으니 그 시대에는 더 그랬을 거 같아요. 지구가 어떻게 둥글게 생겼나요. 길은 이렇게 쭈욱~ 뻗어있는데요. 역시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들은 다른가 봅니다.

무당벌레는 날개를 펴면 참 이쁘지요. 저도 잘해 주겠습니다^^

건수하 2026-05-28 09: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과지만 상대성 이론, 양자 이론 부터 손 들고 외면했거든요...
올해의 목표 중 하나입니다. 상대성 이론 책 읽어보기 (...)

뭐, 지구, 아니면 우리 태양계에 있는 모든 것이 친척이라고 볼 수 있겠죠? :)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읽고나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네요,

단발머리 2026-05-29 09:04   좋아요 1 | URL
아... 올해의 목표 너무 근사합니다. 상대성 이론 읽어보기라니요~~~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그 외계인은 저는 영화 예고편으로 봤는데, 반지의 제왕의 그 나쁜 친구가 생각나는 외모여서 좀 무서웠어요. 책을 읽고 나면 저도 건수하님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겠죠.
우리 모두 친척이고, 인간끼리는 더 가깝다고 할 수 있겠고요. 위 아 더 월드일까요? ㅎㅎ

건수하 2026-05-29 13:49   좋아요 0 | URL
상대성 이론 책 읽어보기라고 썼지만
상대성 이론 읽어보기는 왠지 찔리네요... 교양서적으로 접해볼 예정입니다 ^^!

단발머리 2026-05-30 09:44   좋아요 1 | URL
혹 여유 생기셔서 상대성 이론 책 시작하실 때, 제목만 살짝쿵 알려주세요~
천상 문과가 따라 읽고 싶네요 ㅎㅎㅎ

다락방 2026-05-28 1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과학과 AI 관련 책을 읽고 쓰시는 단발머리 님을 제가 존경합니다. 저는 관심없는 분야라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도 독서로 잘 이어지지가 않는데, 단발머리 님은 정말 지적이셔...
아무튼 끊임없이 읽고 써주세요. 제가 단발머리 님의 글로 배우겠습니다!

단발머리 2026-05-29 09:09   좋아요 0 | URL
제가 이렇게 과학책을 읽을 수 있는 이유는 ㅋㅋㅋㅋㅋㅋ 지적이어서가 아니고(그랬으면 정말 좋겠구요). 과학책을 부담없이 읽기 때문인 거 같아요. 천상문과에다가 어차피 읽어도 모르는 부분이 많고, 사실은 대부분이 그렇지요. 그래서 내가 아는 거 하나, 두 개만 배워도 괜찮겠다 하고 읽거든요. 모르는 부분은 슬슬 넘어가고요~~

이 책에서는 ‘허공에 떠있는 돌멩이‘, 이 부분에 꽂혔어요. 아, 주위 사람들과 완전히 다른 방향, 혹은 반대의 입장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대단한가, 그런 감탄을 하면서요. 앞으로도 꾸준히 읽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