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내분실>을 읽었다. 도선생님 카라마조프를 끝내고, 마실 느낌으로 읽었다. 좋았다. 뇌의 시냅스 패턴을 고해상도로 스캔해 패턴을 시뮬레이션으로 구현하는 마인드 업로딩은 죽은 사람의 기억을 통해 그를 다시 만날 수 있게 하는 미래의 장례 프로그램이다. 엄마의 데이터가 관내분실되면서 엄마의 인생을 다시 돌아보게되는 과정을 담았다. 엄마는 언제부터 엄마였을까. 엄마는 언제부터 김은하가 아니라, ‘지민의 엄마로 불렸을까.


코로나 사태 이후, 아니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돈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3세계를 차지하기 위한 제1세계의 식민지 전쟁, 노예제도의 정당화, 근절되지 포르노 성착취물의 생산과 유통, 맥도날드 햄버거 세트가 그 정도의 가격으로 책정될 수 있는 이유, 갑작스레 요가복이 저렴해진 이유에는 모두 착취가 자리하고 있고, 착취의 결과로 누군가는 부자가 된다.


코로나로 인한 경제 불황도 마찬가지다. 코로나 경제 전망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건, 경제가 작동하지 않고(작동할 수 없고), 실업이 대규모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이런 비상 상황에서는, 누군가 빚을 질 수 밖에 없는데, 국가가 빚을 지지 않는다면, 그 몫은 개인에게 돌아갈 거라는 전망이었다. 나라 걱정하시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국가가 빚을 져야 할까. 아니면 국가 대신 내가 빚을 져야 할까. 나라의 돈을 어디에 어떻게 더 써야하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때가 왔다고, 드디어 왔다고 생각한다.



<관내분실>은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대상 작품이다. 최종 수상작이 선정될 때까지 이름, 성별, 직업 등 모든 정보는 비공개로 진행된다고 한다. 김초엽은 <관내분실>로 대상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가작을 수상했다. 1,000만원 고료.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장편 대상에게 1,000만원을 준다고 하면, 중단편 대상은 700만원. 김초엽은 가작도 한 편 당선됐으니 800만원. 800만원으로 한국 SF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에게 실낱 같은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작품을 계속 쓰고 싶은 동력을 마련해 줬다면, 그 돈은 큰 돈일까 작은 돈일까. 자꾸 돈 생각을 하게 된다. 한국의 독자들이 책을 많이 사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 하지 말고. 그냥 손 놓고 있지 말고. 좋은 책을 쓰는 좋은 작가들이 계속 나올 수 있도록 그 책을 누군가 사주는 건 어떨까. 많이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턱없이 부족한 도서관을 조금 더 지으면 어떨까. (비연님 집 앞 등등) 그렇게 또 돈 생각을 한다. 일단 나도 김초엽 책을 한 권 사고.

















『모니크 위티그의 스트레이트 마인드』를 읽는다. ‘우리는 하녀이자 매춘부이고 간호사이자 정신과 의사이다의 충격은혁명의 영점』에서 왔다.(45) 그만큼의, 혹은 그 이상의 충격을 던져 줄거라 예상되는 책. 저자가 말한다.



여성은 자신들이 남성에게 완전히 지배당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마침내 그 사실을 인정했을 때 여성들은 그 사실을 믿지 못한다.” 그리고 종종 그 날것의 잔인한 현실 앞에서 마지막 의지를 다해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서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고 있다고 믿는 것을 거부한다. (47)



7월의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대상 책이 얇아 같이읽을 다른 책을 골라보다가, 니라 유발-데이비스의 <젠더와 민족>을 읽기로 했다. 착한 마음으로 책을 구매하고, 책장에 2주 이상 꽂아 두고서야 알았다.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리뷰까지 썼더라는. 리뷰를 읽어보니 알겠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에 기억하지 못 한다. 아무튼 읽은 책은 읽은 책이어서, 7월의 같이 또 따로도서는 어제밤에 도착한 책들 중에서 고를 예정이다. 아, 『초보자를 위한 페미니즘』도 같이 살 것을.















왜 망설였나요. 왜 주저했나요. 왜 서성이나요. 68쪽 근처에서




근데 어제 오후 구매할때 까지만 해도 표지가 김초엽이었는데 아침에 검색해보니 호크니 리커버 에디션이다. 나는 이전 표지에 한 표. 우리집에 있는 책에 한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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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7-02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스트레이트 마인드 많이 읽으셨네요? 전 어제의 과음으로 오늘 책을 펼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같은 책을 읽는데 서로 다른 책을 떠올린다는게 신기해요. 단발머리님은 스트레이트 마인드 읽으면서 어제는 성의 변증법을 생각하셨고 오늘은 혁명의 영점을 가져오시네요. 저는 여자는 인질이다 생각했는데요. 크- 멋진 대화다.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를 원서로 읽으시는군요, 단발머리님? 우왕- 응원합니다!!
멋져요! >.<

단발머리 2020-07-02 08:2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레즈비언은 여성이 아니다. 이런 부분에서 정말 주목도가 상승할 수 밖에 없는 주장이지요. 생각보다는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저는 지금도 스트레이트 마인드 읽고 있답니다. 에헴!

제가 마야님 책을 원서로 읽는다는 건 아니구요. 단지 구매했을 뿐입니다. 구매할 수는 있잖아요^^
다락방님 응원은 너무 감사해서 제 주머니에 잘 넣어가지고요, 어렵고 힘들때마다 꺼내서는🤗

수연 2020-07-02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트레이트 마인드 읽다가 저는 백래시로 다시 돌아갔어요. 스트레이트 마인드 읽다가 보봐르 언니 이야기 나오니까 제2의 성도 다시 책상 앞에 펼쳐놓고_ 민에게 민아, 우리는 제1의 성인데 왜 제2의 성이 되어버린걸까? 이러고 우와 맞아, 우리가 제1의 성인 것이야!!! 또 민의 피드백 없이 나 혼자서 난리법석 피다가 다시 백래시로. 그냥 하하호호 재미있다, 근데 어떻게 창녀 언니가 예쁘고 밝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테크닉이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갑부의 마음에 들고 갑부의 비열한 마음까지 착하게 바꿔놓고 그럴 수 있을까. 그런걸까. 그냥 예쁘고 밝고 테크닉만 좋으면 그러면 다인건가? 그러면서 보았던 귀여운 여인 이야기 읽다가 아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영화들을 하하호호 웃으면서 보았다니 그랬다니..... 이런...... 마야 안젤루 번역본도 다 읽고 원서까지..... 멋지다, 그대!

hnine 2020-07-02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단발머리님 서재에 저도 읽은 책 등장했습니다 <관내분실>!
Maya Angelou의 저 책은 제 책꽂이에 꽂혀있는지 이십년 쯤, 아니 더 오래 되는 것 같은데 아직도 안읽었어요. 표지도 저와 다른, 아주 오래 전에 나온 책인데 글자가 너무 쪼만해서 읽을 엄두가 안난다는 핑계랍니다.

비연 2020-07-02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턱없이 부족한 도서관을 조금 더 지으면 어떨까. (비연님 집 앞 등등)..
이 대목에서 완전 감동. 도서관을 지어라 지어라!!!!!

그나저나 다들 <스트레이트 마인드> 시작하셨네요? 헐..
전 <캘리번과 마녀> 집중하고 중순부터 읽을 생각입니다. 흠!

마야 안젤루 원서 책, 저 책 저도 보관함에 두긴 했는데, 영어책은 사두고 안 본 게 많아서 으흠. 고민 중..
 
팩트풀니스 -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
한스 로슬링.올라 로슬링.안나 로슬링 뢴룬드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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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풀니스』는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라는 부제로스웨덴 의사 한스 로슬링과 며느리 안나 로슬링 뢴룬드아들 올라 로슬링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이 책은 세계에 관한 이야기고세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14)


 

저자들은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고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사실질문 13개를 제시하고독자로 하여금 13개 문항에 직접 답하도록 한다침팬지보다 못한 정답률을 근거로 일반인은 물론 언론인기업인과학자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세상을 어떻게 오해하고 있는지를 밝혀낸다.





 

세상을 오해하는 본능으로 저자들은 간극 본능부정 본능직선 본능공포 본능크기 본능일반화 본능운명 본능단일 관점 본능비난 본능다급함 본능을 제시한다.

 

 

1장은 10가지 극적인 본능 중 첫 번째인 간극 본능 이야기다우리에겐 모든 것을 서로 다른 두 집단나아가 상충하는 두 집단으로 나누고 둘 사이에 거대한 불평등의 틈을 상상하는 거부하기 힘든 본능이 있다. (38)

 


저자들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선진국과 개발도상국으로의 단순한 구분이 실제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다년간의 연구 개발로 완성한 물방울 도표를 통해 보여준다. 8번째 오해 본능은 단일 관점 본능이다세계를 단순화하고모든 문제는 단 하나의 원인이 있어 항상 그것만 반대하면 되고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단 하나라고 주장하려는 본능이 단일 관점 본능이다단일한 원인단일한 해결책.

 

 

한스 로슬링은 평생에 걸쳐 인도주의적 의료를 실천한 사람이다백인 중심서양 중심적인 사고에 사로잡혔던 순간을 기억하고 부끄러워하면서도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며 백인으로서의 한계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그의 나라 스웨덴에서 오해에 사로잡힌 학생들에게 충격적인 질문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앞선 우리는 누구이고뒤쳐진 그들은 누구인가동양이란 어디이고어디까지가 서양인가.

 


나는정확한 데이터에 근거해 세상을 판단하고 낙관적인 미래를 기대하는 스웨덴 백인 남자의 생각에 반대하지 않는다또한 그의 책을 다 읽은 지금에도그가 페미니즘에 반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저자는 <감사의 말>에 아들보다 며느리 이름을 먼저 쓸 줄 아는 사람이다.

 

다만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읽은 책들내가 썼던 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문제의 단순화를 경고하는 수많은 글을 읽었음에도어느 순간 나는 이 세상을 남자와 여자의 대결로 손쉽게 이해한 것은 아니었나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정확히는 남자들이 만든 세상과 그 속에 사는 여자들의 대결.

 


여성의 역사는 의도적으로 완벽하게 지워졌다나는 정확한 데이터를 제시하지는 못하겠다몇 명의 특별한 여성 지도자들을 제외하고 국회의원고위각료 중 여성의 비율은 극히 미미하다유력한 CEO 중에 여성의 숫자 역시 극소수이고독특하고 비중 있는 목소리를 가진 여성 언론인도 찾아보기 힘들다교수는 물론 강사 자리를 얻을 때도 여성은 불리하다대작을 제작할 수 있을 정도의 자금투자를 받을 수 있는 여성감독은 몇 명이나 되는가여자배우를 원톱으로 하는 시나리오가 투자를 받을 수 있는가. <냉장고를 부탁해>를 보라심지어 여자들의 영역이라고 여겨지는 요리에서도 그것이 푸드 토크쇼’ 형태의 예능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질 때자리에 앉는 사람들은, 셰프는전문가들은 모두 남자들이다전 세계에서평생 동안 요리하는 사람들은 할머니어머니아내모두 여자들인데 말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의 몸을 기준으로 분류된 타자다. … 문제는 성이 남성에게는 인생을 좌우하는 문제가 되지 않는데여성에게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이다()은 남성에게 별 의미가 없는데여성에게 몸은 자원이자 억압으로 인생의 주요 모순이 된다. (『낯선 시선』, 75)

 


여자이기 때문이다여성의 몸을 가졌기에출생에서부터 생명을 위협받고평생을 성폭력의 위협 속에 살아간다더 적은 급여에 만족해야 하고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착한 딸착한 며느리여야 한다직장에서 일하고 집으로 돌아와 일하는 이중노동에 시달려야 한다물론 그 사이에 아이를 돌봐야 한다여성은 남성이라는 집단 아래에 속한 하나의 계급이다하지만이와 동시에 성은 독립적 요인이 아니다무엇이 다르다는 사회적 규정은 계급인종연령성별 등 다양한 권력이 개입하고 관련을 맺으며 작동한다. (『양성평등에 반대한다』정희진, 32)

 

백인 여성은 비참한 처지의 흑인 여성보다 자신과 같은 계급에 속하는 백인 남성을 더 가깝게 느끼기 쉬우며백인여성 유력자와 약자 또한 식민지의 브라운 흑인 남성과 여성 약자에 대한 착취를 통해 이득을 공유한다(『가부장제와 자본주의』, 306).  ‘여성이라는 차이에 근거한 단 하나의 요인과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하는 여러 개의 요인이 공존하고 있다는 뜻이다.

 


내가 좋아하는 생각에 허점은 없는지 꾸준히 점검해보라내 전문성의 한계를 늘 의식하라내 생각과 맞지 않는 새로운 정보다른 분야의 새로운 정보에 호기심을 가져라그리고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하고만 이야기하거나내 생각과 일치하는 사례만 수집하기보다 내게 반박하는 사람이나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만나고나와 다른 그들의 생각을 오히려 세상을 이해하는 훌륭한 자원으로 생각하라. (267)


 

여성의 적은 여성이 아니다남성 또한 여성의 적이 아니다알고 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도 아니다냉철함을 잃지 말고그런 위험을 줄이기 위한 국제적 협력을 지지하자는 뜻이다다급함 본능과 모든 극적 본능을 억제하라세계를 과도하게 극적을 바라보고 상상 속에서 문제를 만들어 스트레스 받기보다 진짜 문제와 해결책에 좀 더 집중하자. (344)

 

 

글을 시작할 때는 글이 어디로 갈지 모른다가끔은 개요를 작성해놓고 글쓰기를 시작하고어쩔 때는 제목만 정하고 쓰기 시작한다글을 쓰다가 생각이 정리되는 경우도 있지만아닌 경우도 많다예상치 못했던 결론에 다다를 때도 많다이 책을 읽는 내내나의 페미니즘 사고에 대해 한 발자국 떨어져 바라보려고 했다여러 질문이 떠올랐고또 답을 찾아보려 했지만 결국에는 실패했다이 글은 그 실패의 증거다당신이 이 책 『팩트풀니스』를 읽고 내게 답해주었으면 좋겠다만약당신이 내가 하려고 했던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면복잡하게 엉켜버린 내 사고의 어떠함을 당신이 이해했다면 말이다잘 모르겠다이 책을 다 읽었는데도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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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위험한 과학책 - 지구인이라면 반드시 봐야 할 허를 찌르는 일상 속 과학 원리들
랜들 먼로 지음, 이강환 옮김 / 시공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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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였다. 3 30분이 될 테고, 그리고는 새벽 4. 포장이사 업체 분들이 8시에 오시기로 했으니 이제 겨우 5시간이 남았다. 5시간 안에 남은 짐을 정리할 수 있을까. 나는 울고 싶었다. 아니, 속으로는 울고 있었다. 어떻게 해? 자기야, 어떻게 해? 남편은 날 쳐다보지도 않고 아기자기한 소품이었으나 이제 자질구레하며 정체와 용도를 모르는 물건들을 종이봉투 안에 구겨 넣었다. 이사 가기로 한 집은 평수는 같았지만 구조가 달랐다. 포장이사이기는 해도 거실장에 방치된 짐들을 대강이라도 정리해야 새로 이사 갈 집에서 물건들을 찾을 수 있을 거였다. 귀중품은 미리 큰 가방에 넣어두었고, 속옷도 대략 정리해 캐리어 속에 넣었다. 아끼지 않는 책이 어디 있을까마는 그래도 특별히 아끼는 책들은 차에 미리 실어 두었다. 버릴 것은 버리고, 쓰지 않을 물건들도 버리고, 책을 팔고 주고 정리했는데, 이제 남은 시간은 5시간이고, 거실장 정리는 요원하다. 이대로, 지금 이대로 집을 옮길 수는 없을까.

 


이 재미있고 흥미로운 책은 나의 이러한 실존적 고민에 답해준다. 좀 더 빨리 이 책을 읽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물론 바로 적용하기 어려운 면이 있기는 하다. 내가 사는 곳은 서울의 아파트이고, 저자가 예로 든 집은 미국의 주택이다. 하지만 옮기는 집을 우리집이라 생각하고 과감히 이사를 감행해 본다. 짐을 싸지 않고 집을 그대로 옮기는 경우, 집의 하중을 받는 부분에 맞추어 기초에 구멍을 뚫고 I빔을 놓으면 된다고 한다. ‘허리케인 타이는 먼저 제거해야 한다. 허리케인 타이란 허리케인이나 토네이도가 집을 날릴 경우를 대비해 집을 기초에 매어 두는 역할을 한다.

 


그 다음은 집을 통째로 옮겨야 하는 일이 남았는데, 이 경우 나는 복잡한 길을 운전하기 보다는 집을 날려서 옮기는방법을 선호한다. 헬리콥터 여러 대를 이용하는 방법과 화물 비행기를 이용한 방법이 있고, 유달리 큰 짐들을 옮기도록 설계된 고래 모양의 특별 비행기도 이용할 수 있겠다. 하지만 집을 공중으로 올려 옆으로 움직이는 것이 전부라면 비행기 전체가 필요하지 않을 테니, 그런 경우 저자는 787 드림라이너의 엔진을 이용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엔진 두 개면 작은 집을 들어 올릴 수 있다는 뜻인데, 안정감을 위해 세 번째와 네 번째 엔진을 추가할 경우, 엔진이 연료를 가득 채우고 출발하여 떠 있는 시간은 이렇게 계산할 수 있겠다.  

 



 



계산 결과는 생각보다 암울해서 아무리 많은 엔진을 사용하더라도 집이 떠 있는 시간은 90분보다 짧다고 한다. 안타까운 지점이 아닐 수 없겠다.

 



좋은 책이란 어떤 책일까. 주제 분류에 따르면, 이 책은 과학>기초과학/교양과학에 속하는 책이다. 그런 종류의 책을 읽을 때 독자의 기대란 무엇일까. 독자는 소설을 선택할 때와는 다른 필요에 의해 과학 도서를 선택할 것이다. 새로운 정보, 정확히는 새로운 과학 정보에 대한 욕구가 가장 주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책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 재미를 포기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흔히 재미즐거움을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는데, ‘재미즐거움은 생각보다 우리 인간에게 중요한 그 무엇이다. 관심 또는 흥미를 가지고 접했던 정보와 지식이 훨씬 더 오랫동안 더 강력하게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경험이 이를 확인해준다. 나와 같은 과학 문외한은 알 수 없는 여러 과학 공식들과 일반인이라면 하기 어려운 정교한 계산 과정을 통해, 기발하고 놀라운 물음을 해결해 가는 과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훌륭한 서사로서 작동한다. 서사의 시작은 질문이다. 이를 테면 집을 통째로 날려서 옮길 수는 없을까?’와 같은 기발한 질문이 그 시작이고, 그 시작점에는 호기심과 재미가 사이 좋게 자리하고 있다.

  


이사는 잘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몇 개의 수납장을 새로이 창조해 냈고, 그리고 버리고 또 버렸다. 첫날 밤, 나는 저자의 제안 그대로 실행했는데, 이 책을 읽지 않았던 그 때에 어쩌면 이리도 기발한 생각을 해냈는지 나 스스로의 훌륭한 선택을 도대체 믿을 수가 없다. 이것이 인류의 지혜인가 싶기도 하고, 내가 인류 구성원 중의 하나라는 확신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 대충 바닥을 치우고 칫솔과 휴대폰 충전기를 담은 상자만 풀고, 나는 그렇게 잠들었다고 한다. 그림처럼, 쿨쿨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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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6-25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사진 보고 빵터졌네요 ㅋㅋㅋ 그리고 아주 굿 아이디어 입니다. 저도 이사갈 때 참고해야겠어요. 히힛

단발머리 2020-06-28 18:51   좋아요 0 | URL
네.... 사진 그대로 하시면 되겠어요. 어렵지도 않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쉽게 따라할 수 있습니다요!

수연 2020-06-25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사를 앞두고 아 이렇게 초간단으로 이사하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는데 싶어서 감탄하는중 :)

단발머리 2020-06-28 18:53   좋아요 0 | URL
제일 좋은 거는 집을 통째로 들어서 옮기는 건데요. 아, 하늘에 떠있을 수 있는 최장 시간이 90분이라 중간에 연료보충을 해야한다고 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쉽네요. 그 전에 짐을 줄이는게 좋은데.... 아ㅠㅠ

비연 2020-06-26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0-06-28 18:5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주 재미있는 책입니다.

psyche 2020-06-28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사하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단발머리님. 이사한 집에서 좋은 일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단발머리 2020-06-28 18:57   좋아요 0 | URL
네, 사실 이사는 3월 초순에 했는데요. 이 책 읽다보니 힘들었던 순간이 주마등처럼 ㅠㅠ 제 글만 보면 제가 짐 다 들고 이사한 줄 알겠어요. 이삿짐 해주시는 분들이 다 도와주셨는데도 이사가 큰 일이기는 하더라구요. 아직도 완전히 정리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저 위의 사진보다는 많이 정리했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해요, 프시케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2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8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희숙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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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는 말이야~의 완성형은 부모다. 선배는 잠깐이고, 직장 상사도 (요즈음은 근속연수가 예전처럼 길지 않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잠깐이다. 라떼는 말이야,의 완성형은 부모다.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고자 하는 마음은 성경에 쓰여있지 않다 하더라도 진리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고자 한다. 한편으로는 자식이 자신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렇게 삼종세트가 완성되는 것이다. 공부 열심히 해라, 공부는 때가 있는 법이야,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이야. 듣는 입장에서는 참 곤욕스러운 일일 테지만, 실제로 그 말을 하는 입장에서는 진심을 다한 말이다. 문제는 태도. 형식과 내용이 모두 중요하겠지만, 그것이 어떤 형식으로 이루어지는가에 따라 잔소리가 되기도 하고, 훈계가 되기도 하고, 최악의 경우 꾸지람이 되기도 한다. 진심은 종종 전해지지 못 하고, 서운한 말들만 기억에 남는다. 최선은, 말하지 않는 것. 진심이 담겨있다 할지라도 받아들인 만하지 않다면, 말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여성학자이며 이적의 어머니로 유명한 박혜란님의 조언을 되새긴다. 아이를 손님으로 대해라. 그렇다. 손님에게는 잔소리하지 않는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존재를 알았던 중학교 2학년 때로부터 어언 시간이참 많이도 흘렀다. 이렇게 야무지게 찰지고, 스펙터클하고, 영화로 옮겨도 손색없을 만한 완벽하고 훌륭하고 결정적으로 너무 재미있는 소설을, 여태 읽지 않았다는데 스스로에게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 이런 책을 읽고 나면 자꾸만 말하고 싶어지고, 자꾸만 권하고 싶어진다. 아가야, 딸아, 아들아. 이 책을 읽어 보렴. 보아라, 엄마가 이 책을, 세 권 모두, 개정판으로, 문학동네판으로, 근사한 번역으로 구입하지 않았더냐. 나는 몰라서 못 읽었다. 나는 없어서 못 읽었다(이건 뻥!). 아가야, 읽어보렴. 딸롱아. 아롱아.



디오니소스의 주연을 방불케 하는 떠들썩한 술판(308)에 경찰서장, 검사 그리고 예심판사가 들이닥친다. (140년 된 소설이니 스포일러 걱정 없이 써본다.) 무죄를 주장하는 미챠와 그를 의심하는 검사 간의 대화가 한참이나 이어지는데, 도스토예프스키를 저평가해서가 아니라, 140년 전에 이런 대화를 상상했다는 게 너무나 놀랍고 신기하다. 현대적,이라는 말의 정의를 누구의 것을 빌려 써야 할지 모르겠지만, 등장 인물간의 대화, 상황 묘사는 너무나 현대적이다.     



부패의 징후가 드러나기 시작하자마자, 고인의 방에 들어오는 수도사들의 표정만 봐도 그들이 왜 왔는지 대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그들은 들어와서 잠깐 서 있다가는, 밖에서 무리 지어 기다리는 다른 동료들에게 소문이 사실임을 한시바삐 확인해주기 위해 얼른 나가곤 했다. 기다리던 사람들 가운데는 슬픔에 젖어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도 있었으나, 다른 사람들은 악의에 찬 눈길 속에 노골적으로 번쩍이는 기쁨을 아예 감추려 들지도 않았다. (108)



그의 대단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은 조시마 장로의 죽음 이후의 풍경을 그려낸 부분이다. 질투는 인간이 가지는 가장 흔한 감정이다. 조시마 장로의 인격, 그의 위대함, 그리고 사랑을 아주 가까이에서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선한 노력을 폄훼하고자 하는 무리가 있었다. 장로의 죽음 이후 자연적인 현상이 발생하자, 그들은 위대한장로에게 어찌 초자연적인일이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자연적인시간보다 더 빨리 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났는가 의심을 품는다. 이를 종교적 언어를 이용해 그를 음해하는데 사용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 한다. 질투하며 존경했던 자의 몰락을 바라되 그가 죽은 이후에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치졸한 범인들의 행태가 너무나 생생하다. 가장 추한 인간의 내면. 가장 비겁하고 치졸한 모습들.




2권을 읽었고 이제 한 권이 남았다. 중학교 2학년 때 그 존재를 알았음에도 나는 이제야 도스토예프스키를 읽고 있는데, 마야 안젤루는 열 다섯에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었나 보다. 어제 읽은 그녀의 책에 도스토예프스키가 나온다. 다음 이야기는 다음 페이퍼에서.






그럼 가서 쟁취해라. 식당에서 비싼 음식을 주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음식값은 내가 주마. 비서들이 출근하기 전에 사무실로 가. 비서들이 출근하면 따라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아. 네가 읽는 그 두툼한 러시아 책 한 권 들고 가고.” 나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를 읽고 있었다. (72)

 








그가 말하더군요. "천국은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숨어 있고 지금 내 마음속에도 숨어 있으니, 내가 원하기만 하면 내일이라도 천국은 나에게 정말로 나타나 평생토록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 P50

인간이여, 동물들 앞에서 우쭐대지 말지어다. 그들은 죄 없는 창조물들이지만, 그대는 이 땅에 나타났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그 위대함과 더불어 대지를 부패시키고 거기에 자신의 썩은 자취를 남기고 가니 - 오오, 슬픈지고, 우리 거의 모두가 그러하도다! 특히 아이들을 사랑하라, 그들 또한 천사처럼 죄가 없으며, 우리를 감동시키고 우리 마음을 정화시키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일종의 지표로서 살고 있기 때문이니라.- P84

여기서 그대에게 구원의 길은 단 하나이니, 그대 자신을 사람들의 모든 죄에 대해 책임 있는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바로 그렇게 만들도록 하라.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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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6-23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마야 안젤루의 책에 저런 대목이 나오는군요. 보관함에 있던 것이 장바구니로 넘어가려 합니다..
전 도선생님을 무지하게 좋아하는데, 저 두꺼운 분량에 차마 재독하는 게 엄두가 안 나는 상황이나..
코로나 시국에 한번 시도해볼까 싶기도 해요 .ㅎㅎㅎ

단발머리 2020-06-25 11:37   좋아요 0 | URL
장바구니로 잘 넘어가셨지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마야 안젤루는 사랑입니다.
도선생님은 말 그대로 미리 결심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인데, 전 반강제 진행중이라 헉헉대면서 간신히 따라가고 있습니다.

moonnight 2020-06-23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ㅠㅠ 이제라도 읽어야 하는데 카.조.형ㅠㅠ;;;;;; 민음사와 열린책들 갖고 있는데 문학동네도 갖고 싶어요(읽기 전 모아놓기-_-) 올해 안에 꼭 읽기(시작이라도 하기;;)로 결심합니다^^

단발머리 2020-06-25 11:38   좋아요 0 | URL
전 열린책들 읽다가 도중 하차 기억으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번에 문학동네로 읽는데 새책이라 그럴까요?
가독성이 엄청 좋습니다. 추천드려요!

수연 2020-06-23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루고 미루었던 이 두껍디 두꺼운 책을 이번 기회에 실로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진심 고민중입니다.

단발머리 2020-06-25 11:40   좋아요 0 | URL
수연님은 또 현대소설도 신경쓰시느라... 또 에코페도 읽으셔야 하고. 많이 바쁘신줄 제가 잘 알지요^^

북극곰 2020-07-02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보니, 아, 갑자기 저도 까라마조프를 읽고 싶어져가지고,
(요즘 도서관이 문을 안 여니 언젠간 읽어려구 사준 책들에 손을 댑니다.)
집에 있는 건 열린책들에서 나온 건데...... 도중에 하차하셨다고요?..... ㅠ.ㅠ
어쩌지....
 



친구가 화상채팅을 하자고 했다. 나는 좀 부끄럽다며 그냥 통화를 하자고 했는데, 친구가 괜찮다며 화상으로 하자고 했다. 친구가 메일로 초대장을 보내줬고, 그렇게 친구가 만들어준 방으로 들어갔다. 나중에 둘이 통화한 사진을 찍어 친구가 보내줬는데, 친구는 정상으로 나왔고, 나는 너무 핸드폰에 가까이 다가간 관계로, 이마에서 코까지만 보이는…. 참 놀랍고도 신기한 모습으로 친구와 한참을 통화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친구들 만나기가 어렵다. 사실은 불가능에 가깝다. 교회 후배 집에 놀러가서 밥 먹고 차를 마셨고(3월 말), 친구와 만나 커피숍에 한 번 갔다. 그 때는 4월 말이었는데, 친구는 자발적자가격리 상태여서 코로나 이후 첫 외출이라 했다. 가족끼리 몇 번 외식을 하기는 했지만, 점점 더 조심하게 되어 꼭 필요한 일(엄마에게 다녀오거나 도서관에 안심 대출, 장보기)이 아니면 외출하지 않는다.



나는 예전부터 아이들 학교 모임, 이른바 엄마 모임에 나가지 않았고, 정기적으로 운동을 다니지 않아 운동하면서 만나는 사람도 없다. 규칙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은 일주일에 한 번 같이 구역예배를 드리는 구역식구들인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교회도 주일 낮예배 빼고는 모든 모임이 중지상태다.


이런 상황이니 언감생심 친구를 만난다는 건 모험에 가까운 일이다. 자신이 확진자가 되었는데도 동선을 정확하게 공개하지 않거나, 심지어 거짓말하는 사람들 때문에 방역 당국의 고심이 크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것은 명확하게 잘못된 일이어서, 성인이라면 이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지만, 확진자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무차별적인 공격이나 비난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만나는 사람도 고려해야 하니, 지금으로서는 만나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이럴 때 만약 알라딘 이웃이 없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알라딘을 몰랐다면, 알라딘 서재를 몰랐다면, 알라딘 이웃들을 몰랐다면, 지금 내 삶은 더 팍팍하고 우울하지 않았을까. 알라딘 이웃 중에는 오프라인에서 만나 얼굴을 아는 분들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얼굴은 커녕 본명도 모른 채 알라딘 아이디만 아는 분들이다. 알라딘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책을 사고 감상을 적고 일상을 이야기한다. 어느새 서로를 알아가고 자연스레 더 많이 알게 된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서 이제 알라딘은 내게 친구를 만날 수 없는현재의 암울한 상황에서 친구를 만날 수 있는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이다.


일전에, ‘창비 우롱 상자(오늘까지만 놀릴께요, 창비 sorry!)’ 사건 때에도 알라딘 이웃들과 서로의 택배 상자를 공개하고, 책 인증샷을 나누고, 심지어 이메일 내용까지 나누면서 우리는 같이 신나게 한 번 웃었다. ‘원하는 책을 두 권 알려주시면 다시 보내드리겠습니다라는 결말은 흐뭇하기는 하지만, 우리가 원했던 건 어쩌면 그게 아니었을 수도 있다.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이웃, 친구들.  















내가 도선생님과 외출하기 전, 츤데레 남성과 밀당하기 전, 『오리엔탈리즘을 읽고 있던 때였다. 말로만 듣던 에드워드 사이드의 대표작을 읽어 보리라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책은 내 예상과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이에 대한 감상을 적어 알라딘 서재에 올렸는데, 알라딘 이웃 한 분이 오리엔탈리즘과 관련된 기사를 보내주셨다. 아직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해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여서, 그에 대한 비판 기사는 어려울 건 말할 것도 없었고. 게다가 그 기사는 영어로 작성된 거였다. 쉽지 않은 글을, 이해되지 않은 채로 찬찬히 읽었다. 끝까지 다 읽지는 못 했다. 생각보다, 아니, 생각만큼 어려웠다. 영어로 된 신문 기사를 읽으며 내가 발견했던 건 오리엔탈리즘이 갖는 다른 의미가 아니었다. 내가 발견한 건, 내가 오리엔탈리즘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걸 알아채고’, 내게 도움이 될 만한 기사를 찾아 링크를 보내주는 그 마음이었다. 우리 집 식구들은 내가 읽는 책의 제목정도는 확인하지만, 딱 제목까지다. 친구들과 만나 책 이야기를 할 때도 있지만, 사실 길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읽는 책, 내가 꽂힌 주제에 대해 관심을 갖는, 관심을 가져 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은 여기, ‘알라딘뿐이다.  




   <'Orientalism,' Then and Now, NYR Daily, Adam Shats>



『여성 혐오가 어쨌다고?』의 임옥희님의 글이었다고 기억나는데, 사실 정확하지는 않다. ‘하나의 통일된 자아로 구성되었다는 믿음은 환상이다라는 의미의 문장이 있었다. 물론이다. 사회적 역할로서 뿐 아니라 자아 역시 여러 측면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 적어도 내 경우, 알라딘의 단발머리는 실제의 나보다 낫다. 알라딘의 단발머리는 실제의 나보다 더 착하고, 더 배려심 있고, 더 노력지향적이다. 실제의 는 알라딘의 단발머리보다 더 못됐고, 더 이기적이며, 더 게으르다. 에코 페미니즘의 관점에서는, 더 자연을 낭비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알라딘의 단발머리 역시 나의 일부임이 확실하다. 밥하고, 청소하고, 노래하고, 피아노 치는 내가 나의 일부인 것처럼.



코로나19가 얼른 진정되기를 바란다. 내 나라, 내 조국도 그러하기를 바라고. 가족과 친구와 친구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 다른 나라도 그러하길 바란다. 친구를 만날 수 없는 때에,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알라딘이 있어 다행이다. 어떤 뜨거운 날의 추억을 사진으로 꺼내본다. 올해의 더위가 모두 가기 전에 다시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으면. 오늘 밤에는 기도를 좀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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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9 2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19 2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psyche 2020-06-23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외국에 있다보니 더욱 소중한 공간이네요. 열심히 활동은 안하고 눈팅위주긴 하지만. 특히나 요즘같은 코로나 시대에 인터넷이 없었다면 어쩔 뻔 했나요!

사진을 보니 페미니즘 책과 맥주. 우와! 부러워요. 저도 함께 할 수 있는 날이 언젠가 오려나요 ㅜㅜ

단발머리 2020-06-25 11:49   좋아요 0 | URL
네, 요즘 같을 때는... 정말 알라딘 친구가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요. 눈팅하면서 주고받는 좋아요~ 속에 애정과 사랑은 싹틉니다. 멀리 있어도 마음은 가까이 있을 수 있다고.... 전 생각해요.
그리고 언젠가 좋은 날에 페미니즘 책과 맥주를 앞에 두고 이야기하는 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요ㅠㅠ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