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의 꿈>은 셰익스피어 초기 희극에 속하는 작품이다. 진실한 사랑을 외치며 사랑의 도피를 떠나는 허미아와 라이센더. 그리고 허미아를 짝사랑하는 드미트리우스. 그러나 이 드미트리우스는 이전에 헬레나에게도 뜨거운 사랑을 고백했던 남자. 그러나 그들의 진실한 사랑이란 요정의 왕 오베론의 수하 퍽이 실수로 '사랑꽃'을 사용한 것만으로 뒤집어진다. 끝에 가면, 네 남녀가 모두 제 짝을 찾아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썩 개운한 맛은 느껴지지 않는다. 극을 마무리하는 오베론의 축복보다
"사랑은 저급하고 천하며 볼품없는 것들을 가치 있는 형체로 바꿔 놓을 수 있어. 사랑은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는 거야 그래서 날개 달린 큐핏을 장님으로 그려 놨지. 게다가 사랑 신의 마음은 판단력도 전혀 없어, 날개 있고 눈 없으니 무턱대고 서두르지." 라는 헬레나의 냉소적인 한마디가 더 가슴에 남는다. 희극이라 우스꽝스러운 묘사가 나오고, 극도 무거운 분위기는 아니지만, 다루는 주제는 희극 치고는 꽤 무겁다.
번역에 대해서 한마디. 역자 최종철은 운문 번역을 시도하는데, 내가 느끼기에는 오히려 글이 뚝뚝 끊어져 별로 말맛이 안 산다. <맥베스>는 그나마 괜찮았는데, <한여름 밤의 꿈>은 그런 경향이 더 강한 것 같더라. 아마 민음사 버전 셰익스피어 번역을 내가 수집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수업 교재로 읽은 책이다. 저자는 역사사회학을 전공했는데, 그동안은 조선 말기에서 식민지기로의 이행은 너무 결과론적으로 해석했다며, "역사의 조건들에서 시작하여 그 조건들이 가져올 수 있었던 다양한 역사적 가능성을 검토"하는 전망적 접근을 통해 이 시기를 봐야한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이 시기에는 자발적 근대의 시도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동학농민전쟁을 이끌어간 농민은 오랜 예속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회질서를 구축하려 했고, 새로운 정치적 지배계급으로 등장한 개화파는 근대적 국가체제를 수립하려 했으며, 유학에 기반을 둔 보수 관료와 유학자들은 유학을 새롭게 재구성하면서 이에 근거한 국가질서의 재정비를 시도했다. 경제적 지배계급이었던 지주들은 개항과 함께 시작된 곡물의 수출을 통해 시장경제를 이용한 새로운 부의 축적 기회를 가졌다. 이러한 기회는 조선이 식민의 길이 아닌 다른 경로로 갈 수 있었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10~11)."
즉, 식민지 이외의 다른 가능성이 있었고, 기회들이 있었지만 여러 사회 내적인 원인/외적인 원인에 의해 좌절되었다는 것이다. 여러 실험이 시도되었으나, 결국은 실패했다. 실패의 원인은 다양했으나, 책에 따르면 가장 큰 이유는 재정 건전성의 확보 실패였다. 조세 부정을 막고 조세 수취를 효율적으로 개선하지 못하여 개혁의 역량이 있어도 이를 위한 재정이 부족했던 것이다. 개혁의 시도들이 가로막히고, 식민지로 가게 된 역사는 읽는 이로 하여금 진한 아쉬움과 허탈감을 느끼게 한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최초로 문명과 야만의 주제를 다룬 문학 작품이다. 엔키두는 야만을 상징한다. 그는 원래 짐승과 친구처럼 노닐던 존재였다. 그러나 샴하트와 7일을 동침하여 야수성을 벗고, 우루크로 가게 된다. 그곳은 "매일같이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곳이고, 수금과 북이 끊임없이 연주되는 곳"이다. 그곳에서의 삶이야말로 "사람이 사는 법"이다. 그는 우루크로 가서 "빵"과 "맥주"를 마시고 노래를 부른다. 그러고 나자 "'사람'으로 변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우루크는 당대 발전된 도시 문명을 구가하던 도시였다. 길가메시의 최고 업적으로 소개되는 것도 훔바바를 물리친 것 같은 영웅적 행위가 아니라 우루크라는 도시를 세운 것이다.
"성벽에 올라, 우루크로 들어가서, 거닐어보라, 진정, 그곳을 거닐어보라. 토대를 살펴보고 석공술을 눈여겨보라. 가마로 구워낸 벽돌이 아니던가? 정말 훌륭하지 않은가? 일곱 현인들이 그 기초를 세웠노라."
이러한 도시 문명에서 탄생하여 '도시 문명'을 찬양하는 작품이 직접적으로 다루는 주제가 '문명과 야만'이라는 것은 어딘가 의미심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