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불평등기원론>은 루소가 살고 있던 18세기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인간의 불평등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다. 이때 루소가 서술하는 역사는 몽테스키외의 <로마의 흥망성쇠 원인론>처럼 실제 역사를 서술한 것이 아니라, 불평등이 생겨나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사회가 출현하게 된 경위에 대한 “가설적이고 조건적인 추론”을 제시하는 추론적 역사(conjecture history)이다. 즉, 역사적 탐구의 형식을 띠더라도 루소의 논의는 불평등의 진정한 기원을 역사적으로 증명하기보다는 불평등의 본성을 해명하는 데 더 집중한 작업이다.
루소는 두 가지 불평등을 구분한다. 첫 번째는 “나이, 건강, 체력, 정신 혹은 마음의 능력”으로 인해 생기는 자연적 불평등이다(41). 루소는 자연이 만든 불평등은 문제 삼지 않는다. 진정한 문제는 “사회적(moral)” 혹은 “정치적” 불평등이다(42). 이 두 번째 불평등은 자연적 원인이 아닌 “합의...동의...허용”(루소는 강도가 높은 순으로 나열하고 있다) 같은 사회적 요인에 의해 생겨났다. 합의, 동의, 허용을 만드는 것이 “특권”이고, 이 특권은 다시 부, 존경, 권력을 통해 만들어진다.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별 차이도 없었고, 불평등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사회가 형성되고 문명화가 이루어지면서 인간들 사이에 불평등이 생겨났다. 그래서 루소는 이 책에서 자신의 작업을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세상만사가 변화해나가면서 폭력이 권력으로 이어져 자연이 법을 따르게 된 순간이 언제인지 지적하고, 수많은 경이로운 이들이 어떻게 물고 물렸기에 강자가 약자에게 봉사하기로 결심하고, 인민은 실질적인 행복을 버리고 상상 속의 안녕을 얻기로 결심할 수 있게 되었는지 설명하는 것이다.”(42-43)
이를 설명하기 위해 루소는 제1부에서 불평등이 시작되기 이전, 자연상태에 놓인 자유로운 인간의 모습을 묘사하고, 제2부에서는 인간이 본래의 조건을 상실하고 사회를 이루게 되면서 시작된 타락의 역사를 서술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루소가 말하는 이 ‘역사’란 실제로는 단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현재의 불평등을 설명하기 위해 가설적으로 설정된 사고실험의 장이다. 마찬가지로 제1부에서 묘사되는 ‘야만인’의 형상 역시 현존하는 인간의 상황을 대조하기 위해 창조된 개념적 가상이다. 루소의 야만인은 인위적이라 느껴질 만큼 현대인과 철저히 대조된다. 그는 어떤 기후나 계절에도 견딜 수 있을 만큼 강인한 육체를 지녔으며, 병에 걸리는 일도 없다. 그는 본질적으로 홀로 살아가며 무리를 이루거나 타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교육을 받지도, 남을 가르치지도 않으며, 정교한 예술이나 사상을 발전시키는 일에도 무관심했지만, 그는 본질적으로 선했다. 타인과의 교류가 거의 없으므로 그의 언어는 지극히 기초적인 수준에 머문다. 성생활은 개인의 취향에 따른 선택이 아니라 단순한 본능의 충족에 그치며, 따라서 가족이나 결혼이라는 제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루소는 자연상태의 인간을 자유롭고 고립된 개인으로 그린다. 17세기 이후 전개된 자연법학과 도덕철학의 전통 속에서 본다면, 루소는 인간의 자연적 사회성을 부정한 토머스 홉스의 계보에 위치한다. 실제로 루소는 제1부에서 “자연법에 관해 현대인들이 내린 모든 정의에는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지적한 점에서 홉스를 일정 부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81). 루소는 인간에게 자연적으로 사회를 형성할 능력이 없다는 홉스의 전제에는 동의했으나, 자연상태의 인간이 끊임없는 전쟁상태 속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다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리바이어던이라는 절대적 주권체에게 복종하는 계약을 체결한다는 홉스의 결론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홉스는 인간이 오로지 욕구에 기반하여 움직인다고 생각했기에 인간의 욕구를 압도할 수 있는 강력한 권력을 상정했지만, 루소는 이러한 홉스의 사상을 반박하고자 인간에게는 “연민”이라는 자연적 감정이 있다고 주장했다. “자연상태에서 연민은 법이자, 풍속이자, 미덕의 역할을 한다.”(87) 연민은 푸펜도르프가 주장하는 바와 같은 사회성을 대체하면서도 홉스의 자연상태론의 결론도 피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연민은 일시적으로 작용할 뿐, 인간이 사회를 이루게 할 만큼 강력한 힘을 지니지는 않았다.
1부에서 야만인에 대한 논의를 통해 루소는 불평등의 원인을 다음과 같다고 결론짓는다. “사실 인간들을 구분해주는 차이들 가운데, 그것이 고작해야 습관의 결과이고 사회에서 받아들인 다양한 종류의 생활방식에 기인한 것일 뿐인데, 그 여러 차이가 자연적인 것이라고 간주되고 있다는 점을 알기란 쉬운 일이다.”(94)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자연적이라고 간주하는 불평등은 사실 사회적 관습과 생활방식의 산물이다.
이제 루소는 2부에서는 자연상태를 벗어난 인간이 맞이하게 된 사회적 불평등의 기원과 전개를 살펴본다. 지성사가 이슈트반 혼트에 따르면 초기 계몽 논자들의 사치 논쟁에서 사치는 불평등과 소유권의 부산물로서 인식되는 경향이 있었다. <인간불평등기원론>은 이러한 사치 논쟁의 맥락에서 읽을 필요가 있다. 특히 1부에서 2부로 넘어가면서 자연적 불평등이 사회적 불평등으로 전환되는 핵심 고리로 소유권을 지적했다는 사실에서 루소가 - 주석을 제외하고 본문에서는 사치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 사치 논쟁을 자신의 논의에 흡수하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루소는 사치가 “자신의 안락과 타인들의 존경을 탐욕스럽게 얻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필연적이지만, 국가를 망치는 가장 최악의 것으로 규탄한다(180, 저자주 9). <인간불평등기원론>은 직접적으로 사치의 기원을 설명하는 텍스트가 아니기 때문에 사치를 본문에서 거론하지 않았지만, 루소는 프랑수아 페늘롱으로부터 이어진 반 사치 전통에 속한다.
불평등의 “시작은 법과 소유권의 마련이요, 두 번째는 행정관의 직의 설립이요, 세 번째는 합법적인 권력의 자의적인 권력으로의 변화”이다(143). 소유권이 정부 형성 이전에 먼저 생겨나(이는 로크도 지적한 부분) 불평등을 고착화하는 기제로 자리 잡은 이 역사는, 루소가 재구성하는 정부의 추론적 역사와 평행한다. 루소에 따르면, 자연상태의 야만인은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타인과 협력하게 되었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 그와 같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 때”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103-6). 인간들이 모여 살고 관계가 확장되면서 가족이 공동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남녀의 신체적 차이는 가정 내 서로 다른 성역할로 고정되었다. 여러 가족이 이웃하여 결속하면서 개별 국가가 세워졌다.
“사람들 사이에 사회가 시작되고 관계가 세워지면서 사람들이 애초에 가진 체질과는 다른 특질들이 필요하게 되었고, 도덕이 인간의 행동에 들어서기 시작했다.”(114) 한 공간에 모여 살게 된 인간은 “부, 귀족 신분이나 지위, 권력, 개인적 자질”(146) 등을 기준으로 서로를 비교하기 시작했고, 이중 무엇 하나라도 우월하면 마땅히 존중을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더 우월한 사회적 지위를 보장해야 한다는 이상한 ‘도덕’이 시작되었다. 자신의 우월함을 대중적으로 확인받고자 하는 명예욕과 동시에 인간은 더 많은 부를 차지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공세적으로 토지를 경작하기 시작했다. 로크의 소유권론은 노동과 점유를 구분하지 않는 데 반해, 루소는 소유권의 기원에서 최초의 노동을 통한 소유와 점유를 구분한다. 노동을 통해 토지의 산물에 대해 권리를 갖게 되고, 오랜 시간 관습적으로 그 땅을 점유하면 소유권이 성립된다고 본다. 이러한 소유권은 자연법과는 다른 법원(法源), 즉 관습을 통해서 형성된 권리이다(119).
루소에 따르면 소유는 사회적 관습을 통해 권리로 고착화되었다. “야금술과 농업”(115)과 같은 기술의 진보는 신체적으로 강건한 자와 도구를 능숙하게 다루는 이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기울어졌고, 자연적 불평등이 소유의 차이를 만들어 사회적 불평등으로 이행하게 되었다(<에밀>이나 <신엘로이즈>에서 루소는 농업을 예찬하는 듯하지만, 농업에 대한 루소의 태도가 간단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법과 사회는 “소유와 불평등의 법을 영원히 고정해버렸고...그것을 확정된 권리로” 만들었다(127). 이제 부자가 빈자를 예속하고 지배하게 되었으며, 가난한 인민은 자신들의 예속이 당연한 상황이라고 기만당한다. 정부는 그러한 과정을 통해 생겨났다. 불평등 위에서 생겨난 정부에서, 처음에는 선출직인 행정관은 세습화되며, 여기서 강자에 의한 약자 지배가 허용되었다.
최초의 사회적 불평등에서 부자와 빈자의 격차가 발생하고, 이후에 강자와 약자의 상태가 발생했다면, 정치상의 불평등이 극단적으로 흐르게 된 결과가 군주제이다. 전제정에서는 단 한 명의 지배자와 신민 사이에 주인-노예 상태가 성립된다. 주인의 의지에 대한 복종 외에는 그 어떤 법률이나 정념도 사라져버린 이러한 사회는 두 번째 자연상태로, 그 최종 귀결은 혁명에 의한 정부의 완전한 해체(루소는 분명하게 이를 지지하지 않았다)이거나 합법적 제도의 등장(이것이 <사회계약론>의 주제일 것이다)이다. 군주제에 대한 루소의 설명은, 군주제 사회에서는 불평등과 사치가 필요악으로서 있어야 한다는 몽테스키외의 주장과 대조된다. 루소가 보기에 사치와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군주정은 파국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자연 상태로의 회귀가 불평등에 대한 최종 해결책일까? 그렇지 않다. 애시당초 루소 자신이 그러한 해법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정념으로 인해 최초의 단순성을 영원히 잃었던 나와 같은 사람들은 이제 더는 풀과 도토리를 주식으로 살아갈 수 없고, 법 없이 수장들 없이 살아갈 수 없다.”(184, 저자주 9) 역설적이게도 1부에서 길게 전개되었던 자연상태의 야만인은 우리가 회복해야 할 이상향이 아니었다. 그것은 근대인이 현재 어떠한 조건에 처해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치였다. 루소는 근대의 상업사회라는 현실을 비관적이지만 진지하게 응시했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했다. 루소는 특권적 지위를 독점하는 소수(혹은 일인)에 의해 사회가 운영되는 상황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에, 사회 운영 원리를 전혀 다르게 만들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합법적 제도의 등장’을 이렇게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회계약론>이 불평등이 아닌 다른 원리(공공의 이익)로 운영되는 사회를 구상하는 텍스트라면, <에밀>은 사회상태에서도 부패하지 않는 인간형을 구상하는 책이다.


cf. 루소의 사상을 비교할 수 있는 텍스트들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은, 인간이 사회에 들어가면 타인의 의견에 휘둘리는 나약한 존재가 된다는 루소의 비판에 대한 응답이다. 혼트의 <상업사회의 정치사상>이 루소와 스미스의 입장을 쟁점별로 상세하게 해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