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면공업은 영국에 새로운 기술을 전수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후 영국의 공업을 진흥시키기 위해서 강제적으로 인도의 탈공업화 전략을 통해서 그 발전이 억제되었다. 제국주의 팽창 이전에 인도의 면공업은 영국 면공업에 대한 주요 경쟁 관계에 놓여 있었으나 이후 인도의 면공업 종사 노동자는 그 이후 유럽에 대한 값싼 식품과 원재료의 공급자로 전락하고 만다._김영철, <자본, 제국, 이데올로기> <산업혁명기의 기술혁신과 대외무역과의 관련성에 관한 연구>, p123 


스벤 베케트(Sven Beckert)의 <면화의 제국 Empire of cotton>을 관통하는 주제는 자본주의(capitalism)다. 북반구와 남반구 30도 이내 지역에서 널리 재배되던 면화. <면화의 제국>은 중국과 인도의 면직물에게 밀렸던 유럽의 면직물 산업이 어떻게 경쟁국들을 따돌렸는가를 잘 설명한다. 많은 경우 19세기 유럽 제국주의 침략을 제국주의, 종교, 과학기술, 자본주의의 결합이라고 설명하는데, <면화의 제국>에서는 이들 중 제국주의, 과학기술, 자본주의가 어떻게 제도를 변화시켰는가를 잘 보여준다.

 

 전쟁자본주의는 세계를 '내부'와 '외부'로 가를 수 있는 부유하고 강력한 유럽인들의 역량에 의지했다. '내부'는 모국의 법과 제도와 관습을 포괄했고, 국가가 부과한 질서의 지배를 받았다. 반대로 '외부'를 특징지은 것은 제국의 지배, 방대한 지역의 수탈, 원주민 학살, 자원 약탈, 노예화, 그리고 멀리 떨어진 국가의 효율적인 감시를 벗어난 민간 자본가들의 방대한 토지 지배였다._스벤 베커트, <면화의 제국>, p85

 스벤 베커트는 <면화의 제국>에서 유럽의 자본주의를 크게 2종류로 나눈다. 전쟁자본주의와 산업자본주의가 그것으로, 다른 세계에 비해 여러 면에서 부족했던 유럽인들은 무기를 활용한 침략과 식민지 건설을 시작한다. 이렇게 시작된 전쟁자본주의로부터 축적된 이윤을 바탕으로 산업자본주의로의 이행(移行). 이것이 스벤 베커트가 바라본 진화된 자본주의의 모습이다.


 [사진] Florida's Culture of Slavery(출처 : https://floridahumanities.org/floridas-culture-of-slavery/)


 유럽인들은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업에 착수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냈고, 생산에 뛰어든 뒤로는 철저히 노예제에 의지해 부를 창출했다. 제국주의적 팽창과 수탈, 노예제라는 세 동인이 새로운 전 지구적 경제질서를 조성하는데, 그리고 궁극적으로 자본주의가 등장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가 되었다. 세 동인들은 이 새로운 세계의 한 가지 또 다른 요소와 결합했다. 바로 국가였다._스벤 베커트, <면화의 제국>, p84


 여전히 규모도 작고 기술적으로도 뒤처진 유럽 면산업의 기반을 잡아준 것은 바로 제국의 팽창, 노예제, 토지 약탈로 요약되는 전쟁자본주의였다. 전쟁자본주의 덕분에 유럽의 면산업은 역동적인 시장을 얻었고, 기술력과 필수 원료에 접근할 수 있었다. 또한 전쟁자본주의는 자본 형성에도 중요한 추진 장치가 되었다.(p104)... 마지막으로, 전쟁자본주의는 보험, 금융, 운송처럼 영국 면산업의 등장에 매우 중요했던 부문뿐 아니라 국채, 화폐, 국방 같은 공적 제도들까지 부양했다._스벤 베커트, <면화의 제국>, p105


 그렇다면, 전쟁 자본주의 체제에서 영국이 승자가 될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일까. 스벤 베커트는 인류 최초의 그리고 최대의 글로벌 상품인 면화 네트워크를 장악할 수 있는 강한 해군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초기 인도 면직물과의 경쟁에서 열위(劣位)에 있을 때는 보호무역 조치로, 산업혁명 이후 산업 경쟁력을 갖춘 이후에는 자유무역주의를 밀어 붙이며 영국은 룰 메이커(rule maker)로서 패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전 지구적 수준에서 보면 영국 노동자들이 생산한 면직물의 양은 극미했고, 영국의 농부들은 아예 면화를 생산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영국이 생산을 개조하고 면화로 촉발된 산업혁명의 진원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영국 상인들이 이런 글로벌 네트워크를 장악했던 덕분이다. 산업자본주의는 확실히 혁명적이긴 하지만 앞선 몇 세기를 통틀어 가장 혁신적이었다고 할 수 있는 전쟁 자본주의의 산물이었다._스벤 베커트, <면화의 제국>, p117


 초기에 영국의 면제조업자와 상인은 자국산 직물과 인도산 직물을 아프리카로 수출하는 데에 주력했다. 해외 시장에 대한 이런 의존성은 1750년 이후에 뚜렷해졌다. 특히 아프리카와 아메리카가 가장 중요한 시장이어서, 18세기 중반이면 영국 직물 수출의 94%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로 향했다._스벤 베커트, <면화의 제국>, p103


 이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영국 제국주의 = 간접통치 방식 = 인도주의적인 지배방식'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그보다는 오늘날 문화제국주의의 전단계 모습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통치방식을 선호했을 뿐이라는 것이 영국제국주의의 본모습이 아닐까 생각된다.


 갤러허(J.Gallagher)와 로빈슨(R.Robinson)은 직접지배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도에 걸쳐있는 간접지배도 제국주의로 규정하며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정부는 특히 간접지배를 선호했다고 강조하였다. 이러한 약식 제국주의(informal imperialism)는 실상 통치비용을 들이지 않는 값싸고 효율적인 지배를 의미한다. 무역을 통한 간접지배를 선호하는 자유무역 제국주의는 영국의 절대적인 공업력 우세와 강력한 해군력이라는 물질적 토대 위에서 생겨나고 유지될 수 있음을 기억해 두어야 한다._서정훈, <자본, 제국, 이데올로기> <빅토리아 후기(1870~1903)의 대외팽창 성격>, p205


 19세기 영국의 자유무역주의는 그 주창자들이 내세우는 만큼 실제로 공평한 무역관계를 수반하지 않는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발달 정도가 다른 산업 사이의 "자유 경쟁"에서 영국 산업이 이익을 우선적으로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도가 실제로 수입관세를 점차로 낮추다가 1880년대부터 사실상의 자유무역제를 실시하게 된 것은, 직물업자를 위시한 영국의 자유무역주의자들의 거센 압력 때문이었다._이태숙, <자본, 제국, 이데올로기> <토머스 B, 머콜리와 인도>, p274 

 전쟁 자본주의와 산업 자본주의는 여러 면에서 달랐다. 전쟁 자본주의가 노예제에 기반한 생산구조였다면, 산업 자본주의는 임금(賃金)에 기반한 생산구조였다. 전자가 노동의 양(量)적 착취에 기반했다면, 후자는 노동의 질(質)적 착취에 기반한다. 산업혁명을 통한 기계(자본재)의 공급 확대는 생산량의 증대를 가져왔으나, 동시에 더 많은 노동력의 투입이 요구되었다.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 ~ 1883)의 <자본론 Das Kapital>의 절대적 잉여가치, 상대적 잉여가치의 개념 이해는 이와 연관시켜 보면 좋을 것이라 여겨진다. 동시에, <자본론1>에서 언급된 여성, 아동들에 대한 노동 착취는 산업 자본주의 이행기의 실상을 상세하게 고발하기에 함께 읽으면 이해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다시 돌아와서,


 방적과 직포와 채탄 분야의 개량들은 대체로 노동을 절약하는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것들은 이전까지 다수의 노동자가 이루어 낸 성과를 소수의 노동자가 성취할 수 있게 했고, 예전에는 성인 남녀에게 적합했던 작업을 아동들도 수행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그렇게 했음에도 생산량은 대폭 늘어나 성인 노동자 대부분의 수입은 증가했다._T. S. 애슈턴, <산업혁명>, p184

 분명 산업혁명은 주로 노동력 절감 기술에 관련된 것이었다. 예컨대 우리는 방적 부문에서 생산성이 수백 배나 향상된 것을 목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력을 절감하는 이런 기계들을 가동하기 위해서는 역시 노동력이 필요했다._스벤 베커트, <면화의 제국>, p288


 제조업자들은 이 모든 기계를 가동시키고 공장을 가로질러 면화를 이동시키기 위해 수백 명의 노동자를 고용했는데, 그들 대부분이 아동과 여성이었다. 모든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공장에 들어온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가 임금을 받고 일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는 산업자본주의가 이룬 또 다른 중요한 제도적 혁신이었다._스벤 베커트, <면화의 제국>, p128


 임금을 주어 엄청난 수의 노동자들을 동원하고 그들의 작업을 감시하며 그들이 기술과 열정을 쏟게 하는 동안 새로운 딜레마가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공장을 벗어난 노동자들의 가정과 거주 지역에서 고용주의 권한은 훨씬 더 멀어졌다. 노동자들을 모집하고 규율을 시행하기가 어려웠던 이유는 노동조건이 끔찍했기 때문이다._스벤 베커트, <면화의 제국>, p307


 <면화의 제국>에서는 이처럼 전쟁 자본주의에서 산업 자본주의로의 이행을 통해 유럽 사회가 어떻게 패권을 장악했는가를 설명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전쟁 자본주의가 산업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시기에 신생국 미국에서 벌어진 전쟁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바로 미국 남북 전쟁(American Civil War, 1861 ~ 1865)이다.


 미국이 급부상하며 시장을 지배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원면 생산에 투입되는 세 가지 필수 요소, 즉 노동과 토지, 신용의 공급이 유연했다.(p378)... 면화가 중심이 된 미국 남부의 독특한 정치경제가 이제 막 싹튼 북부의 자유노동과 자국의 산업화를 추구하는 정치경제와 충돌했을 때, 미국의 노예제는 그 체제를 통해 이룬 번영을 스스로 위협하기 시작했다... 전 지구적 관점에서 보면 1861년 4월 남부연합과 북부연방 사이에 발발한 전쟁은 미국 영토의 통합과 그 '특유한 제도'의 미래를 둘러싼 투쟁이었을 뿐 아니라, 세계 전역에서 노예노동으로 지탱되고 있던 글로벌 자본주의를 둘러싼 투쟁이었다._스벤 베커트, <면화의 제국>, p381


[사진] American Civil War(출처 : https://www.history.com/topics/american-civil-war/american-civil-war-history)


 우리에게 링컨(Abraham Lincoln, 1809 ~ 1865)과 노예제 폐지, 톰 아저씨의 오두막으로 유명한 남북전쟁이지만, 그 실상은 남부의 전쟁자본주의와 북부의 산업 자본주의간의 패권 전쟁이자, 글로벌 자본 간의 격돌이었다. 링컨은 해리엇 비처 스토우(Harriet Beecher Stowe,1811 ~ 1896)에게 남북전쟁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라고 말했다지만, 결국 노예제 폐지는 명분에 불과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뿐이다.


 미국 남부에서 면화 재배가 확대되고 영국의 소비자들, 최종적으로는 유럽 대륙의 소비자들이 미국 남부의 면화 공급에 점점 의지하게 되면서 미국 남부와 유럽 사이의 제도적 연결이 점점 더 심화되었다... 이 모든 네트워크의 중심에는 미국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면화의 흐름과 그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자본의 흐름이 있었다._스벤 베커트, <면화의 제국>, p193


 같은 시기에 읽은 <면화의 제국>, <자본, 제국, 이데올로기>, <산업혁명>등을 종합한다면, 19세기에 만들어진 팍스 브리타니카(Pax Britannica)란 면화로 대표되는 열등한 상품 경쟁력을 만회하기 위해 총칼로 식민지를 만들어 상품공급지와 소비지로 만들어 막대한 이윤을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전쟁 자본주의에서 산업 자본주의로 이행하며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경제력 우위 수준에 따라 보호주의와 자유주의를 번갈아 사용하고, 대량 생산을 통해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과학 기술이 활용되며, 필요에 따라 이데올로기로서 '인권', '자유' 등의 개념이 남발되는 것을 이들의 책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를 비춰볼 때, 과연 오늘날 서구의 부(富)의 기원이 무엇인지, 그들이 동양에 대해 갖는 편견의 근거는 무엇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역사는 순환하는 것이어서, 그들이 그토록 경멸하던 중국, 인도의 발전을 이제는 경계하는 지경에 이른 것을 보면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을 절로 떠올리게 된다...


 잉글랜드를 구출한 것은 지배자들이 아니라, 자신만의 협소한 목적을 추구한 것이 분명하지만 새로운 생산 도구와 새로운 산업 경영 방법을 창안할 만한 지혜와 자질도 갖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오늘날 인도와 중국의 평원에는 질병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남녀들이 낮에는 함께 일하고 밤에는 따로 잠자는 가축들보다 외견상 거의 나을 게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 같은 아시아의 생활수준과 기계화되지 않은 그런 공포는 산업혁명을 거치지 않고 인구수만 늘리고 있는 사람들의 운명인 것이다._T. S. 애슈턴, <산업혁명>,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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