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진심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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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로 뜨거운 것이 몰려와 눈물을 토해냈다. 코끝에서 매운 기운이 눈까지 올라가 자동으로 눈물이 톡 떨어진다. 건조해 보이는 간결한 문장이 따사롭고 정답다. 외로움을 절실히 느끼는 사람들을 그저 그윽하게 쓰다듬는 손길같은 문장에 마음이 놓인다. 앞부분을 읽다가 이렇게 메모해 두었는데 그 뒤에 읽은 "리사의 말투는 무심했지만, 내게는 한량없는 안도감을 주었다" 라는 문장이 딱 그 느낌을 말해준다. 


음식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음식 맛이나 조리과정을 묘사하는 소설들에 마음이 간다. 투닥투닥 요리하는 소리, 음식 냄새 등을 담은 장면들을 자주 묘사하는 김애란 소설도 그렇고. -그래서 음식을 먹는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 영화나 드라마는 뭔가 정이 안간다- 이 소설도 찾고자하는 기억이 자연스럽게 맛과 맞물려 나온다. 


기억을 더듬어 가다 만나게 된 사람들과 소통하는 장면에서 흐느껴 울다 베개가 젖었다. '이 소설, 참 좋다' 소리내 말해본다. 


소설을 읽다가 군데군데 생겨난 샘물처럼 눈안에 눈물이 퐁퐁 고였다. 혼자있는 방에서 "흐엉" 하고 소리내 울기도 하였다. 자꾸만 고이는 눈물 때문에 쉴새없이 눈꺼풀을 깜빡여야 했다. 아무래도 이 작가, 글에 마법 주문이라도 걸었나. 시도때도 없이 코끝이 시큰해진다. 이러다 코도 눈도 다 닳겠네.


내게도 연희씨처럼 나를 아껴준 이가 있다. 대학 때 우거지해장국집에서 겨우 한 달 아르바이트를 했는데(그 한 달 인연을 20년 동안 이어왔다.) 식당 주인이었던 분이 손님들에게 나를 딸이라 소개하며 정말로 친딸로 대해주셨다. 나도 그때는 기운이 넘쳐나던 시절이어서 식당 손님들에게 곰살맞게 굴었고 식당일이 익숙지 않아 서툴었지만 즐겁게 일했다. 아부지라고 부르며 친하게 지내던 단골 트럭기사님도 있었다. 


식당 메뉴나 가게 입구에 "연중무휴"(대학 선배는 식당에 올 때마다 GOD의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하던 노래를 한자어로 고친 게 생각난다고 웃어댔다) 같은 글씨를 쓰기도 했는데 대학을 졸업한 뒤에 찾아갔을 때도 여전히 낡고 바랜 종이에 내 글씨가 남아있었다. 볼품없는 내 글씨가 아까워서 떼지를 못하셨다는 거다. 


주인공이 34년 만에 잠깐 자기를 키워주신 할머니를 만나 할머니가 주인공 얼굴을 만지는 장면을 읽다가 목이 꽉 메어서 내 또다른 엄마, 꽉여사 생각에 바로 전화했다. 언제나 반가워하시고 연락될 때마다 고맙다고 하신다. 내가 더 고마운데. 표현에 서툰 무뚝뚝한 우리 엄마보다도 다정하고 살갑다. 피보다 더 진하고 더운 정을 느낀다.  


갑자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구상만 해보았던 소설이 떠오르고 갑자기, 재미난 작품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피어올랐다. 내 수준엔 딱 거기까지지만 그래도 그런 마음이 들게 한 것만으로도 좋은 작가가 쓴 좋은 작품임이 틀림없다. 한동안 마음에 닿는 소설이 없어서 소설 읽는 게 시들했는데 얼마 만에 만나는 괜찮은 소설인지. 


우리가 외로운 건 "잘했다" 소리를 듣고 싶은데 듣지 못해 그런 것이 아닐까. 날마다 남편을 쿡 찔러서 안아주테효~ 하며 반강제로 듣는 그말, 잘한 것도 없으면서 "잘했다, 잘했다", "장하다, 장하다" 누군가를 다독이며 그리 말해주면 이 땅에서 외로움이 조금은 사그라들지 않을까. '너를 기다렸다고, 내게로 잘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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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1-03-16 2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이 글 너무 좋아요! 이 소설도 읽고 싶지만, 아직 쓰지 않은 진아님의 소설이 더 읽고 싶어요.

samadhi(眞我) 2021-03-16 21:45   좋아요 1 | URL
수준이 안되지요. 게으르고요.ㅎㅎ 역사소설, 야구소설, 추리소설... 몇 가지만 정해두고 그냥 꿈만 잠깐 꾸었습니다.

붕붕툐툐 2021-03-16 2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장 읽고 싶은 책장에 찜해놓습니다. 사마디님 너무 행복하게 잘 사시는 거 같아 부럽습니당~😍👍😄🙆

samadhi(眞我) 2021-03-16 22:08   좋아요 1 | URL
붕붕툐툐님 자체가 즐거운 인생처럼 보이는데요.

붕붕툐툐 2021-03-17 21:53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다 가면입니다. 쓸데없이 사회성만 발달했네요~ㅋㅋ

samadhi(眞我) 2021-03-17 22:03   좋아요 1 | URL
그거 아무나 못하는 겁니다. 아직(?) 팔팔하다는 증거이기도 하고요. 사람들이 붕붕툐툐님 생기발랄함에 힘을 얻을 겁니다.

겨울호랑이 2021-03-17 00: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설을 잘 읽는 분들은 그만큼 상상력도 풍부하고 잘 공감하시는 분들이라 생각합니다. 그만큼 감수성이 발달한 분들이겠지요. 삶 속에서 소설을, 소설에서 삶을 발견하는 samadhi님의 모습이 페이퍼에 잘 담겨있어 좋네요^^:)

samadhi(眞我) 2021-03-17 00:12   좋아요 2 | URL
재밌어서 읽어요 ㅎㅎ 재미있는 소설을 읽고 싶어서 못견딜 때가 있어요. 요즘 그런 소설들을 쉽게 찾지 못했는데 이 소설 캬아~ 심봤다! 입니다. 이 소설은 내용도 좋지만 겨울호랑이님 말씀대로 감성으로 읽게 됩니다.
 
아무튼, 술 - 오늘의 술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늘 어제 마신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무튼 시리즈 20
김혼비 지음 / 제철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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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하면 구역질이지.

구토

술자리에서 술먹다 토한 얘기를 피자를 부쳐놨느니 비빔밥을 만들었느니 표현하곤 했다. 피자라면 조용히 구울텐데 그걸 굳이 "치이이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치는' 파전처럼 묘사한 것은 붉은 빛을 띤 화려한 내용물임을 말하고 싶어서겠지. 비빔밥을 만들려면 이를 꽉 물고 물만 버리고 건더기를 어쩌고...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솟아날 듯한 말들을 꼭 먹으면서 얘기하는 것이다. 그래야 술맛이 난다는 듯이. 내가 구토를 하는 경우엔 이미 필름이 끊겨서 처음 술을 마신 이후부터는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모자를 썼다면 모자부터 신발까지 토사물이 덕지덕지 붙어있고 끝도 없이 게워내는 나 때문에 화장실에 가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것도 내 기억이 아니라 술자리 일행이 말해줘서 알게 된 사실이다. 기억하지 못하는 나와 달리 구토한 뒤에야 비로소 진짜 술이 시작된다는 선배도 있었다.


그래도 집은 찾아가니까

참 신기한 것은 술먹고 아무리 꽐라(?)가 되어도 용케 집을 찾아간다. 집에 가는 버스를 그 흐리멍텅한 눈으로 잘도 인식해서 집에 가는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산동네 꼭대기였던 우리집까지 찾아갔는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넘어졌단다. 엄마 말씀으로는 "소 자빠지는" 소리가 들렸다는데. 집에서도 욕실을 토사물 범벅으로 만들어놔서 엄마가 온갖 쌍욕을 하시지만 이미 맨정신이 아니므로 들리지도 않는다. 


동아리 입회식 하나

깨어나보니 이 낯선 곳은 도대체 어드메인고. 알고 보니 선배 자취방이다. 자취 경력이 짱짱한 그 언니는 본지 며칠 되지도 않은, 어디서 굴러먹다 온 건지 모를 새파란 새내기에게 "속은 괜찮아?" 라고 웃으며 여유롭게 밥상까지 차려내온다. "어제 기억 안나?" 전~혀 안난다. 술을 주는 대로 다 받아마시고 술먹은 이들과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 학내 구석구석을 미친듯이 걸어다니고 노래하고 춤추고 그러다가 지구를 들이받고. 얼굴에 세로로 긴 상처가 나 있다. 놀래라. 술먹고 끊긴 기억을 늦게나마 떠올리기도 한다는데 몇 십 년이 지나도 내겐 없는 기억이다. 지금은 광대 부근에 남아있던 흉터마저 사라진지 오래다. 


동아리 입회식 둘

처음에 치른 입회식은 동기 없이 나혼자 치렀고 몇 달 뒤 드디어 동기가 둘이나 생겨서 한껏 들뜬 동아리 선배들이 성대하게(?) 우리 기수 입회식을 치러줬다. 그 유~명한 사랑주를 준비해서. 내가 학교다닐 무렵엔 전국에서 거의 사라진 병폐인데도 우리 동아리에만 여전히 그 몹쓸 사랑주가 남아있었다. 내 대에서 끝났지만. 한번도 씻은 적 없는 커다란 징에 막걸리, 맥주, 소주를 가득 찰 만큼 들이붓고 선배들이 돌아가면서 뭐 하나씩을 집어넣는다. 깔끔하게 얼굴만 씻는 사람은 양반이다. 담뱃재도 털어넣고 바깥 풀밭에서 풀도 떼어다 넣고 흙도 집어넣고 이 정도는 그저 고마울 뿐. 가래 농도가 짙고 점도가 유난히 끈적하기로 알아주는 선배가 가래침도 뱉어넣고-이쯤되면 고개 돌리는 분들 벌써 있겠지만 아직 멀었어요.- 발을 씻는 선배, 마실 때 번거롭지 않게 하마고 그 모든 건더기를 양말에 밀어넣고 짜주는 선배. 마지막은 선배 두어 명이 징을 들고 화장실에 들어가 조금 있다가 나온다. 진짜라구. 징을 얼굴에 대자마자 으악 지린내가 확 풍긴다. 진짜 이건. 하아~. 


지금이라면 죽어도 절대로 동아리고 뭐고 안 들어가고 말지 했을텐데 그땐 왜그리 바보같았는지 그래도 좋다고-좋을 리가 없지만- 하라는 대로 했다. 우리동기 셋이서 가운데에 서고 나머지 선배들은-다른 동아리 선배들까지 몰려와서- 빙 둘러 앉아 '사랑가'를 부르며 징 사발에 있는 술이 동날 때까지 마시고 토하고 마시고 토하고... 징을 실제로 뒤집어서 보면 알거다. 징이 얼마나 큰지를. 지금까지도 내 상태가 별로인 것을 보면 사랑주가 내 몸속 어딘가에 남아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도대체 어느시대 사람이길래 그런 걸 먹었냐고 하겠지만 그렇게 오랜 일 아니다. 우리 동아리가 좀 유난했다.


술 따를 때 나는 소리

작가가 쓴 이 소리에 대한 얘기를 읽기 전에 나도 떠올려서 메모해 두었는데 나처럼 술 따르는 소리를 좋아하는구나. 호리병에 가득 담긴 안동소주를 잔에 따를 때 나는 "꿀럭꿀럭",  "딸딸딸딸" 소리가 듣기 좋아 그 소리에 벌써 반은 취한다. 호리병 목이 조금 긴 편이어서 두 세 잔 따를 때까지도 그 소리가 난다. 그러면 잔을 놓고 가만히 고개를 기울이고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감상에 빠진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그저 좋다. 그 소리를 되새기고 향을 맡고 천천히 한 모금 마시고 헤벌쭉해진다. 중독성 강한 맑고 다정한 소리다. 이 소리가 맛있어서 자꾸만 술을 따르고 싶다. 45도 짜리 안동소주를 그렇게 따랐다가는 그냥 가는 수가 있어 각별히 절제해야 한다.


한 잔 더

술을 좋아하지 않는데도 남편은 바비킴 노래 '한 잔 더'를 좋아해 즐겨 들었다. 다 아는 노랫말인데도 들을 때마다 둘이서 키들대고 웃는다. 그 노래에서 묘사되는 술 마시는 장면들, 술꾼들 대화, 그리고 여러가지 술마시면 나는 소리들이 술을 부른다. "한 잔 더"가 화를 부르는데 그 유혹을 떨치지 못하는 순간 숙취라는 지옥을 맛보게 된다.   


골드스타 냉장고

이건 술 얘기가 아니지만 나도 이 냉장고를 떠올리면 가슴이 찌르르하다. 오래 전 2월 어느 날이 떠오른다. 중고로 7만원에 주고 산 냉장고가 기특해 가끔 쓰다듬으며 말도 걸고 예뻐했더랬다. 엘리베이터가 없던 3층 빌라에서 반지하로 이사하던 날, 이삿짐센터에 이사 맡길 비용도 없어서 남편과 남편 친구 둘이서 3층에서부터 1층까지 냉장고를 낑낑대며 지고 나르는데 눈물이 나는거야. 속상하고 이게 뭔 짓인가 싶고. 그나마 젊으니까 라고 자위하려 해도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고. 그깟 냉장고 그냥 굴려서 버려버리면 좋겠다고도 생각했고. 그렇게 힘들게 옮긴터라 냉장고 여기저기에 찍히고 긁힌 자국이 남았지만 그 뒤로도 제 몫을 너끈히 해주어서 늘 고마웠다. 하지만 가끔 이사하던 날이 떠올라 괜히 울컥하곤 했다. 그러다가 고장이 나서 양문형 냉장고로 바꿨는데 한동안 새 냉장고에 정을 못 붙였다.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 함께한 동지는 오래 기억에 남는 법이니. 


내가 겪은 술에 관한 얘기만 해도 숱한 일들이 넘쳐난다. 많이 취한 선배가 역 광장에 앉아서 "누가 불켰어? 불 꺼" 라고 했던 얘기에 깔깔댔는데. 오토바이 뒤에 탔던 술취한 선수가 오토바이 운전하는 선수 등짝에 그대로 토한 얘기, 자기 토사물을 모래밭에 열심히 묻었다던 사람, 술마시던 컵에 그대로 게웠다는 사람 등 누구에게나 조금은 웃기고 황당하고 잊히지 않는 술에 얽힌 얘기들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이 책도 그런 얘기들을 하나씩 풀어내고 있다. 첫 부분 김치 얘기에 목구멍을 깍깍 대며 웃었다. 작가가 몹시 유쾌한 사람이어서 각 장 마다 술 추억담을 재미나게 풀어낸다. 나와 비슷한 면도 있고. 술이 내는 소리에 집착(?)한다든가 하는. 


몇 가지 말이 조금 거슬렸다. 키링이라는 말에 좀 놀랐다. 열쇠고리 라고 하면 될 것을. 내가 적응을 못해서 그러는건지. 요즘 사람들은 열쇠고리를 키링이라고 하나? 그것도 이상하고 "여자 밖혼술러" 굳이 명사형으로 이름을 붙이고자 해서 쓴 말인 줄은 알겠는데 그냥 "밖에서 혼자 술마시는 여자" 라고 하면 될 것을 이렇게까지 불친절(?)하게 말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 싶다. 한국어는 다른 언어들과 달리 '풀어쓰는' 게 특징인데 요즘 자꾸 말을 줄여쓰는 추세이다 보니 정체 모를 말들이 즐비하다. 줄여쓰려는 시도는 좋지만 자연스럽고 알아들을 수 있게 쓰면 좋겠다. 같은 발음을 빗댄 몇 가지 언어유희는 괜찮았다. 


가볍고 유쾌하고 발랄해 술술-작가 바람대로- 읽힌다. 술을 좋아하지 않아도 깔깔깔 웃을 수 있다. 책을 읽다보면 술 마시지 않고는 못배길걸. 술 한 잔에 추억 하나 아니, 여러 개를 안주삼아 실컷 떠들어도 좋겠다. 진짜 술꾼들에게는 조금 성에 차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즐겁다면 그걸로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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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1-03-02 2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 이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했다가
진아님처럼 너무 감정이입을 하게 될까봐 참았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

술 이야기를 풀어놓으라고 하면 끝도 없이 떠들 수 있는 사람, 여기도 있어요.

저는 술 자체를 좋아하는 면도 있지만,
술을 함께 마시는 사람들을 참 좋아했던 것 같아요.
문득 그시절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함께 취했던 사람들은
지금 다 어디서 뭐하고 계시는지 궁금하네요.

samadhi(眞我) 2021-03-02 23:27   좋아요 1 | URL
네 저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하지만 술자리가 좋았죠. 그래서 마지막까지 술자리를 지키려고 기를 썼어요. 그럴 필요 없이 좀 더 흐트러져도 됐는데. 푸릇푸릇한 젊음 그 자체가 좋았지요. 의미도 없는 소리들을 그땐 참 진지하게 심각하게 떠들어대고. 우스꽝스러운 소리들이 그저 즐거웠어요.

2021-03-05 2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05 2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06 1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왜 과식하는가 - 무의식적으로 많이 먹게 하는 환경, 습관을 바꾸는 다이어트
브라이언 완싱크 지음, 강대은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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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코로나 핑계로 거의 외출하지 않고 안 움직이고 바닥이랑 친하게(딱 붙어서) 지내며 입이 심심해 뭐든 먹어댔더니 화악찐자가 되고 말았다. 인생 최대 몸무게를 찍고 공처럼 굴러다니는 둔한 몸이 돼서 숨쉬기도 버거워 찍어 둔 책이다. 자꾸 입이 심심해서 뭐든 입에 넣고 보는 내 입버릇에 대해 뭔가 시원한 해소책을 기대했다. 저자가 미국인이라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책에 나오는 예시가 서구식 식단이라 우리랑 잘 안 맞다. 우리 식단도 서구식으로 많이 변했지만 그래도 세계 채소 소비 1위국이라는 위엄을 가진 한국이잖은가. 채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도 여전히 채소는 먹는다. 채소를 잘 먹지 않는 집도 최소한 김치는 먹으니까.


고기밖에 몰랐던 내가 요즘엔 채소맛도 조금 알게 되고 즐기기까지 한다. 특히 샤브샤브는 일본음식 가운데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일본 음식을 많이 먹어본 것도 아니지만. 샤브샤브라는 요리는 특별한 조리법도 필요없으면서 몸에 좋은 음식을 먹는데 맛까지 좋다. 게다가 남으면 죽으로도 된장국으로도 국수로도 먹을 수 있어서 버릴 게 없다. 우리는 샤브샤브 만으로도 배가 터질 듯해서 남은 재료로 다음날 된장국 해서 먹는다. 물론 우리식 나물요리, 나물 잔뜩 넣어 먹는 비빔밥도 우렁이와 채소를 몇 가지 넣어 만든 우렁쌈장을 쌈에 싸서 먹는 것도 채소를 즐겁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지만. 한국 식단은 채소 요리가 기본이기도 해서 이 책에서 제시하는 식단과 많이 다르다.


영어제목은 Mindless eating 이다. 한 마디로 "무심코 먹기" 인 건데 역자가 [나는 왜 과식하는가] 라고 제목을 붙이는 바람에 나처럼 뭔가를 기대한 사람이 낚인(?) 거다. 한국어 제목도 틀린 건 아닌데 내 생각과는 달라서 책 전체 내용에 공감가지 않았다. 마케팅이 만드는 속임수에 속고 있다는 얘기는 좀 뻔해서 이미 아는 것들이 많다. 몇 가지 참신한 것들, 새롭게 생각해 볼 만한 것들은 있었지만 누구에게 권해줄 만한 책은 아니다. 


저자가 음식심리연구소를 열었다고 한다. 굉장히 흥미로운 주제다. 그런 게 있는 줄 알았다면(우리나라에도 있을까) 그 세계에 뛰어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막상 실험 준비과정은 꽤나 번거롭고 잡다한 일 투성이겠다. 저자가 조교들-요즘 유행하는 대학원생들 얘기처럼- 뼈를 갈아넣어(?) 실험결과를 도출하고 현장조사하고 연구주제를 발표하고 여차저차해서 이렇게 책을 낸 게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나라 교수들과 다르려나. 음식심리연구라, 꽤나 재미있을 것 같지만 섬세하고 복잡한 작업이어서 손 많이 가겠다.


한 끼에 100~200 칼로리만 줄이면 몸무게를 일 년에 4.5~9킬로 그램까지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자기도 모르는 새 서서히 체중이 줄어든다면 참 편하겠다. 다이어트가 늘 실패하는 까닭은 급하게 한 두 달 안에(아니면 더 빨리) 몸무게를 줄이려하기 때문이니까. 당장 작아진 옷에 몸을 맞추려고 마음만 급해서 굶다가 다시 요요가 와서 그 전보다 더 찌는 악순환 때문에 좌절하고. 그래서 저자가 "최고 다이어트는 자신이 다이어트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라고 결론내린다. 자연스럽게, 시나브로가 최고지. 이건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하다. 


책에 오탈자가 너무 많다. 황금가지 출판사가 그래도 꽤 괜찮은 곳이라 생각했는데 이 책만 유달리 그런 건지. 편집이 개판(?)이다. 재출간할 만한 책이 아니라서 그렇지만 행여 이 책이 재판되면 제발 오탈자 좀 신경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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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1-02-23 17: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 저녁에 샤브샤브 먹었는데! 저역시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이 채소 소비가 1위였군요. 하긴 마늘의 민족이니까 납득이 갑니다ㅎㅎ

samadhi(眞我) 2021-02-23 17:25   좋아요 1 | URL
그렇죠. 게다가 시간을 들여서 먹는 요리라서 더 좋더라구요. 우리 남편은 오래 걸린다고 주말에만 먹자고 하네요. ㅋㅋ

우리 토종 마늘이라는 코끼리 마늘을 사봤는데 우리가 아는 마늘 맛이 아니더라구요. 좀 싱겁고 씁쓸한게. 그래서 수육할 때만 노린내 제거용으로 씁니다.

기억의집 2021-02-23 2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전 어제 나베 먹었어요. 겨울이라 .. 샤브 스탈의 음식이 당기네요. 전 나이 들면서 노화가 다리로 오는지 다리가 안 좋아 잘 안 걷게 되니 더더더 살찐다는... 아까 밥도 두 그릇 먹고요. 전 군것질을 안 해서 밥을 많이 먹는 스탈인데.. 그래도 가득 담은 한 그릇 정도 먹는 정도였는데 이상하게 허기가 지네요. 요즘은...

samadhi(眞我) 2021-02-23 21:59   좋아요 0 | URL
군것질 안하시는 것만 해도 대단한걸요. 저도 군것질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단 걸 좋아하지 않고 과자류는 거의 못먹고- 맛밤이나 오징어같은 거 가끔 먹어요. 요거트는 거의 달고 살구요.

나베나 샤브샤브 같은 건 과식해도 탈이 안나서 참 좋더라구요. 그래서 양껏 배터져라 먹습니다. 그래서 그런 음식이 더 좋아요. ㅎㅎ
 
그대의 빼어난 예술이 덕을 가리었네 - 실학자 공재 윤두서 이야기
김영주 지음 / 열화당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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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윤두서를 드러내는 내용에 걸맞게 한국화를 표지로 만든 책이 운치있다. 책 표면이 코팅되지 않아 관리가 힘들 것 같다. 책에 뭐가 묻어 물티슈로 닦아냈더니 겉면이 금방 울었다. 


김홍도 [씨름도]를 좋아해 가끔씩 이 그림이 실린 책을 찾아 찬찬히 보며 흐뭇하게 웃는다. 김홍도가 그린 그림들은 마음을 온통 흔들어놓는다. 옛날옛적에...로 시작해 곶감을 보고 울음을 뚝 그친 아이 이야기같아 친근하고 꾸밈없어 자연스레 웃음이 나온다. 그 길을 김홍도 보다 윤두서가 먼저 걸었구나. 윤두서를 그저 강렬한 눈빛과 수염 한 올 한 올 살아있는 자화상을 그린 화가로만 알고 있었다. 


윤두서 인생 여정을 따라가니 그 자화상이 괜히 나온 게 아님을 알겠다. 실력을 갖추고도 정쟁에 신물을 느껴 정계에 입문하지 않고 이 땅에 사는 평범한 이들을 위해 뚜벅뚜벅 걸어나갔구나. 누구라도 뇌리에 박힐 형형한 눈빛을 보노라면 그이가 자기 삶을 철저히 살아왔음을 느낄 수 있다. 끊임없이 자아를 탐구해 온 사람이 뿜어내는 기운이 담긴 그 그림을 실물로 보고 싶다.


예술가는 일탈, 비도덕, 불행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행복한 예술가가 좋은 작품을 내는 일이 드무니까. 래퍼 김진표도 이혼 무렵에 "사랑 따위 part2" 라는 명곡을 내지 않았던가. 그 뒤에 재혼해서 행복하게 지내며(?) 낸 음반은 건더기가 빠진 맹숭맹숭한 국물 맛이 난다. 처절하게 내팽개쳐져 망가지고 서럽고, 지독하게 외로워야, 고통이 극에 이른 뒤에야 진짜 예술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예술가 개인에게는 불행이지만 그 예술을 향유하는 우리에게는 행운인 씁쓸한 현실. 불행과 죽음 냄새가 가득 밴 예술가는 그깟 도덕이나 규칙 따위 내던져버려도 되지 않을까. 일생을 걸 만큼 위대한 작품과 평범한 행복과 편안함을 바꾸는 건 그 사람 몫이니.


'드높은 덕이 예술을 가리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라고 잠깐 생각해 봤는데 예술이 덕을 가릴 수는 있어도 덕이 예술을 가리기는 힘들지 않나. 덕이 더 두드러진다면 그이가 가진 예술은 덜 재미나고 덜 파격이고 그저 무난할 것 같다. 덕이라는 틀에 갇힌 예술은 이미 예술로서 힘을 잃었다고 본다. 내 뒤틀린 예술관(?)이 그렇다는 얘기다.


제목이 참 예스러워 멋스럽다 하였더니 이 책 제목이 윤두서가 죽은 뒤 어릴 적부터 벗이었던 이서가 지어 올린 애사 가운데 한 구절이었구나. "그대의 절륜한 예능은 오히려 덕을 가리었고..."


지상에 내려와 제 할 일을 다한 윤두서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자화상을 그릴 무렵 이미 몸이 쇠약해져 돌아갈 때를 말해준 듯하다. 깨어있는 자가 보여준 마지막 몸부림에 우리는 전율한다. 


이영주,『책쾌』가 재미는 없었지만 문장이 단순하고 명쾌해서 소리내 읽기 좋아 다른 책도 읽고 싶어 집어든 책이다. 무척 재미난 소설은 아니지만 시도가 좋다. 작가가 이렇게 숨은(?) 인물들을 찾아내는 일을 계속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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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1-02-08 16: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amadhi님의 글 속에서 예술가의 ‘좋음‘뿐 아니라 ‘좋지 않음‘도 아름다움의 재료가 될 수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런 중에서 ‘진, 선, 미‘가 하나가 될 수 없음도 함께 보네요. 동시에 어려움을 예술로 승화시킨 자체가 공재 윤두서의 덕이 아닐까도 생각해 봅니다...^^:)

samadhi(眞我) 2021-02-08 16:50   좋아요 1 | URL
네 제 얘기는 고통을 승화시켜야 예술이 된다는 거지요. 고통에 침잠하는 것만으로도 작품이 된다고 생각하구요.

감은빛 2021-02-09 1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역시 예술가는 그런 존재였어요. 저도 진아님처럼 생각해서 젊은 시절에 그런 흉내를 좀 내본 것 같아요. 근데 정말 그렇게 살기는 너무 힘든 일이 아닌가 싶어요.

samadhi(眞我) 2021-02-09 13:08   좋아요 0 | URL
영혼을 팔아야죠. 행복을 버린 대가로 우리에게 예술이라는 즐거움을 ㅋㅋㅋ
 
떨림과 울림 - 물리학자 김상욱이 바라본 우주와 세계 그리고 우리
김상욱 지음 / 동아시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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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처럼 사랑처럼 우주는 그렇게 노래한다. 자연과학, 특히 나처럼 물리학에 문외한인 사람이 읽어도 어렵지 않게 잘 읽힌다. 처음에 물리학자가 쓴 글이어서 쫄았다가 우리 언니 말투처럼 친근해 술술 읽는다. 물론 못 알아듣는(?) 부분도 꽤 있다. 책에서 언급된 물리학이나 수학 용어 등을 찾아봐도 잘 모르겠지만 그런가보다, 아하 그렇구나(실제로 알아듣진 못하지만) 해가며 읽는다.

재미난 소설도 아닌데 손에서 책을 놓기가 싫어진다. 저자가 글을 쉽게 쓰려 애쓴 흔적이 또렷이 보여 고맙다. 과학 수학은 넘을 수 없는 단단한 벽으로 치부해 두고 늘 멀리해왔는데 이런 수업을 들었다면 전공을 바꿨을지도 모르겠다. 진동과 파동이라는 말 대신 떨림과 울림이라니. 과학이 아니라 시같고 소설같다. 모든 것이 우주. 라는 생각을 뒷받침해주는 책이다.

TV를 켜면 스포츠 채널만 골라봐서 이 책 저자가 알쓸신잡3에 나왔다는 것도 몰랐다. 언니도, 수학 전공하는 조카 녀석도 아는 사람이었네. 이 책 소개를 하니 책이라곤 들여다보지 않는 조카도 흥미를 보인다. 다 읽고 조카에게 넘겼다.

얼마 전에 양자역학을 쉽게 설명하는 유투브 영상을 재밌게 봤다며 남편이 양자역학에 대해 신나게 얘기해주었는데 그 동영상 주인공도 이 책 저자였단다. 요가를 하다보니 양자역학에 부쩍 관심이 생겼는데 인연인가 보다. 전작주의 작가로 찜했다.

저자가 가진 줏대가 무엇보다 마음에 든다.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과학이 특별한 이유라고 하니 과학에 경외감이 든다.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고 했던 천진한 장금이도 떠오른다.(대장금 드라마에서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안다고 하려면 물질 증거만을 가지고 정확히 설명하는 것이 과학 태도라는 말에 일본식 과장이 섞인 거라고 느꼈던 과학자와 형사가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일본드라마 설정이 그럴 수도 있겠다 수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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