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풍경 4 파리의 풍경 4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지음, 송기형 외 옮김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도원은 심판을 받았다. 지나친 호기심, 편협함과 위선, 수사(修士)연한 어리석음, 수녀연한 정숙한 티가 그곳을 지배한다. 옛 미신의 이 개탄할 만한 유물이 철학이 빛을 전파하는 도시 가운데 존재한다. 그러나 이 신성한 감옥의 담장은 그 희생자들을 모든 지배적인 이념으로부터 분리시킨다. 판편에 가장 묵시적인 복종이, 다른 한편에 편협한 명령권이 존재한다. 이에 덧붙여 대다수의 절망, 일부의 평온한 체념, 더 영적인 이들의 정신적인 우둔화가 나타난다. 여기서 의무란 관행일 뿐이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4>, p64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Louis-Sebastien Mercier, 1740 ~ 1814)의 <파리의 풍경 4 Tableau de Paris>에서 주제를 찾는다면, '제1계급 이야기'로 정할 수 있을 것 같다. '프랑스 대혁명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우리는 습관적으로 '앙시앵 레짐의 모순이 한계점에 이르렀기 때문' 이라 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앙시앵 레짐의 모순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구체제의 모순으로 구체적으로는 제1계급인 성직자와 제2계급인 귀족들의 부패'라고 답하지 않을까. 그리고, 대부분 우리는 이를 “Qu’ils mangent de la brioche!”, 영어로 "Let them eat cake"로 번역되는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d'Autriche, 1755~1793)의 말로 상징화해서 기억하고 있다. 


 실제로는 마리 앙투아네트는 이런 말을 하지 않았고, 모든 사람이 이렇게기억한다는 단정은 아니다. 다만, 속(俗)의 지배계급의 학정은 우리에게도 쉽게 다가오지만, 성(聖)의 지배계급인 성직자 계층의 부정에 대해 쉽게 공감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남북국 시대의 신라말 또는 고려시대 말을 살았다면, 성직자 계층의 부패에 대해서 쉽게 이해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부분도 다시 생각해보니 오늘날 대형교회처럼 꼭 그런것만은 아닐듯 싶다). 서두가 길었지만, <파리의 풍경 4>는 가톨릭 국가에서 제1계급의 권력과 이에 대한 비판이 소개된다.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우리는 가톨릭(catholic)과 라틴어가 갖는 의미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살필 필요가 있다. 


 가톨릭 국가에서 축제일은 1년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사반세기 전에 이에 대한 비판이 있은 후로 그것은 13~14일이 줄었다. 5일 연휴가 여러 번 있으며, 3일의 연휴도 꽤 자주 있다. 그러고도 일요일에는 모든 것을 내던져야 한다. 미신이 공격받고 있지만, 절반밖에 개선이 되질 않았다. 축일이란 교회가 선술집에 가라고 신호를 주는 셈이며, 그날 온통 술꾼들이 거기서 일주일의 벌이를 다 써버리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가게가 문을 닫지 않는 날을 '평일(jours ouvrables)'이라고 부른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4>, p78


 천년제국 로마제국 말기 기독교가 공인된 후 육(肉)의 제국은 붕괴했지만, 영(靈)의 제국은 다음 천년의 유럽을 지배한다. 종교개혁 이후에도 가톨릭 국가에서 성(聖)은 속(俗)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소비(C)는 미덕이라는 말그대로 '고전케인즈주의'의 경제를 실천하는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 이에 반발한 개신교는 이러한 축제에 비판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신교도 국가에서의 경제발전 양태는 사뭇 달라지게 되는데, 이로부터 막스 베버(Maximilian Carl Emil Weber, 1864~1920)가 자본주의 정신의 기원을 찾는 것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가톨릭 세계의 시민이 된다는 것은 세례를 통해 이루어진다. 대부분 모태신앙( 母胎信仰)으로 이어져왔기에, 별다른 의심없이 세계의 일원이 되고 어울려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성직자와 신자들은 교회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의 연결은 주일 미사(Missa)를 통해 강화되는데, 미사전례는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의해 각국 언어로 미사전례가 허용되기 전까지 라틴어로만 진행되었다. 사제에게도, 신자들에게도 라틴어는 큰 부담이었지만, 덕분에 '감시받지 않은 권력'은 일단 손에 넣기만 하면 독점적 이익을 보장해주는 수단이 되었다.


 세례는 매우 중요한 의식이다. 그것은 한 개인의 존재, 지위, 운명을 결정하는 호적을 탄생시킨다. 그의 생애의 모든 상황에서 이 세계증명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소한 전치(轉置), 사소한 실수도 심대한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이같은 증명서에 실수를 교정하려면 많은 절차가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에 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4>, p39


 신부는 촛불을 들고 의자 위로 올라간다. 그는 필사본 더미 속에서 필요한 것을 고르고, 거의 값을 깎지 않고 수단 속에 그 경건한 원고 뭉치를 숨겨 황급히 가져와, 방 안에 틀어박혀 좌우에 널린 문장들을 베끼고 훔친 글귀들로 '표적 작품'을 만드는데, 어느 누구도 그에 대해 항의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그의 설교와 찬사를 신부는 버젓이 교회 설교단에 판매한다. 그리하여 큰 수집장을 가진 양피지 제조인에게 그가 준 20에퀴는 100배의 이익을 낳는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4>, p151


 귀족사회가 혈연이라는 붉은 피로 연결되었다면, 성직자 사회는 라틴어를 매개로 푸른 피로 연결되었다. 라틴어를 통한 정보의 배타적 독점(獨占). 수도원이라는 깊은 은둔 안에서 라틴어제국은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문제점을 드러냈고,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독일어 성경 번역은 이러한 독점을 깬 파격적인 혁명이었음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이에 대해서도 우리는 대개 '종교개혁=면죄부판매 반대'라는 공식에 익숙해 있지만, 사실 역사는 이면의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움직인다. K-POP의 아이돌 스타 이면에 기획사가 있듯이. 


 모든 것이 라틴어로 되어 있다. 이것이 이 터무니없는 관습을 보급하는 이유인가? 현학자여, 가까이 오라. 그대에게 심지어 공공기념물에까지 국어의 사용을 금지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내게 말하라....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4> , p32


 이것이 깊은 은둔이 하는 일이다. 여기서 모든 열정은 부패한다. 오만은 여기서 훨씬 더 무자비한 성격을 갖춘다. 이 고독한 벽 속에서 중간은 없다. 바로 여기서 영혼은 절멸하든지, 아니면 가장 높은 정도의 사악함으로 상승한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4>, p69


 성숙기에 접어들어 마음속에 가장 강렬한 불꽃이 튀는 시기에, 칩거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 신학생들이 의지할 것이라고는 오로지 신학적인 문제들밖에 없다. 금서 몇 권이 들어오면 유명한 신학적 명제들의 토대가 흔들리고, 신학생들은 그들을 적시고 있는 진리들에 대해 더 이상 확신을 갖지 못한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4>, p127


 그런 면에서 프랑스 대혁명 이전 몰리에르(Jean-Baptiste Poquelin, 1622~1673), 라신(Jean Baptiste Racine, 1639~1699), 코르네유((Pierre Corneille 1606~1684)에 의한 프랑스극(劇)의 발전이 미친 영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자신의 생각을 담을 수 있는 도구가 생긴다는 것, 이들 작품을 통해 민중들은 시대를 읽을 수 있었고, 시대정신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라틴어의 독점권 소멸은 속(俗)에서 절대권력이 붕괴하는 전조라 할 수 있겠다.


 작가가 불안과 경계심, 전율 속에서 자신의 작품이 공연되는 것을 볼 때, 그의 마음속에서는 그 작품을 판단하는 무서운 군중과의 대화가 이루어진다. 영감을 일으키는 이 순간으로 인해 그에게는 독특한 착상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작가는 그 착상들을 외부로 알리지 않는다. 그것은 작가의 비밀이기 때문이다. 국가를 다스리는 당사자 역시 마음속으로 성찰을 하며 여러 차례 은밀히 미소 짓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어떤 종류이건간에 인간의 무리를 지배하면 그 무리를 비웃고 싶어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의지와는 상관없는 움직임이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4>, p132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동시에 프랑스 대혁명의 부르주아 혁명으로서 한계 또한 발견하게 된다. 노예정신을 가진 이들에게 권력을 주는 것이 과연 타당할 것인가. '자유, 평둥, 형제애'의 프랑스 대혁명 3대 이념에서 '형제애'는 앞의 두 이념에 따라 규정된다. '누가 나의 형제인가? 자유를 함께 누릴 수 있는 힘을 가진 이들인가, 아니면 모든 사람인가'. 로베스피에르(Augustin Bon Joseph de Robespierre, 1763~1789)와 몽테뉴파(La Montagne)의 몰락과 함께 대혁명의 한계는 규정지어졌고, 언어의 이중 견해를 이겨내기 위한 혁명이 아직도 진행 중임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혁명의 한계는 교회의 부패에는 비판적이었음에도, 무신론을 거부하는 대중들의 관용으로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기서 니체의 <도덕의 계보>로 눈이 가지만,  헤겔의 <정신현상학>이 다시 번역된 김에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다시 정리하는 것이 순서일 듯하다. 자꾸 예정없는 옆길로 빠지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기한에 쫓기지 않는 독서가 갖는 장점이라 생각하며 일정에 추가하자...


 '이중 견해 - 개방적인 측면은 민중을 위한 것이고, 비의(秘義)적 측면은 교양인과 학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견해 - '의 목표는 학문의 명성, 그리고 학문에 힘쓰는 사람들의 명성을 보존하기 위한 책략이 아니라, 노예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진실에 손을 대는 것을 막기 위한 사려 깊은 대비였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4>, p143


 무신론은 인간 정신의 모든 잔악함의 총합이다. 오만, 광신, 무지, 뻔뻔함이 그 안에 포함된다. 그것은 세상의 찬란한 정경을 사막으로 만드는, 정신착란과 매우 유사한 파괴적인 광기이다(p194)... 융통성없는 무신론자는 위험한 존재이다. 가장 계몽된 사람이라도 평범한 백성들처럼 생각해야 한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4>, p195


 글의 마지막은 18세기 프랑스의 풍경 중 재밌는 부분을 옮기는 것으로 대신한다. 예나 지금이나 고급 세단이나 스포츠카에 열광하는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 듯하다. 그런 면에서 '사치'는 앙시앵레짐으로 볼 수 없는 인간본성의 일부로 봐야할까...


 마차는 출세의 험난한 길에 들어선 모든 사람이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이다. 행운이 따르는 첫걸음에 그는 자신이 직접 모는 이륜마차를 구비한다. 두 번째 단계로 사륜마차 쿠페가 온다. 세 번째 단계는 신사용 사륜마차이다. 마지막이 숙녀용 사륜마차이다. 재산이 늘어나게 되면 아들이 자신의 '이륜마차'를 갖는다. 집사가 자신의 '이륜마차'를 갖는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4>, p376

신문들은 엄격하게 등급이 매겨져 있다. 보조금을 받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지루하고 형편없는 신문이 된다 해도 신문의 특권은 유지된다. 그런데 다른 데 관심을 쏟는 것은 허락하면서 각각의 신문에 제작 능력을 키울 자유는 왜 남겨주지 않는 것인가? 2~3년이 지나면 좋은 신문들은 승리를 구가하고, 나쁜 신문들은 망각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적어도 동일한 금액의 돈은 다시 찾을 것이고, 잉크, 종이 및 활자의 거래는 3배나 더 빨라질 것이다. 굶주림을 호소하는 인쇄업자, 가제본업자, 제본업자, 행상인 등의 라틴어 제국은 이러한 것들로써 먹고 살게 될 것이다. - P291

신문은 가장 거짓말을 많이 하고 가장 뻔뻔스러운 소문의 나팔수들이다... 기자들의 말을 반박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작품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때문이다. 가장 악의적인 비평가들을 쓰러뜨리는 데에도 약간의 시간만 지나면 된다. 훌륭한 상대이든 형편없는 상대이든, 경멸이 담긴 침묵이야말로 그 상대에 대한 가장 확실한 무기이다. - P323

오늘날 계몽철학의 횃불을 끄려 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등대는 불이 밝혀졌고 유럽을 지배하고 있다. 절대 권력의 바람이 그 불꽃을 굽히려 하지만, 그저 그 불길을 일으키고 더 강렬하고 찬란한 광채를 부여할 수 있을 뿐이다. 한 사람의 목소리를 억누르면, 이미 준비하고 있는 20명의 다른 목소리들이 더 크게 인간의 권리를 요구할 것이다. 국가 통치자들로서는 공정하고 온건해지는 것 외에 더 이상 달리 취할 방도가 없다. 인간은 자신들의 권리들을 알았다. 거짓이 지배하는 시기는 지나갔다. - P346

진리는 국민의 중심부로부터 나온다. 사지(四枝)가 정신의 뜻에 따르듯이, 진리는 국민의 의지에 따른다. 머리가 둔하거나 확신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피신처인 모호함, 애매한 암흑의 상태는 전혀 없다. 편파적인 외침, 과장, 매문(賣文)과 풍자적인 글들이 때로는 진실을 흐리게 하지만, 진실 역시 의견대립의 결과일 뿐이다. 진실은 짙은 구름 같은 것들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성은 그 절정에서 하층민 작가들을 침묵하게 만든다. 또 한편으로는 국민정신이 일관성을 갖고, 변화를 읽고 예측하게 되는 모습을 갖는다. 그러한 것이 정치에서는 성공의 담보가 된다. - P38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로존의 모든 관심은 전 세계적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노동력을 창출하고 공동의 재정 규율과 기준을 확립하는 데 쏠려 있었지만 글로벌 금융에 의해 야기된 불안정한 위협의 분위기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유럽중앙은행의 기본 취지는 다양한 보호수단을 제공하는 것이었으며 그 안에서 논의되는 내용들은 최소한의 투명성 요구만 충족시켜주면 공개적인 감시나 조사도 면제받을 수 있었다. 이 중앙은행이 단순히 재정정책의 수단처럼 움직이는 것을 막기 위해 새롭게 발행하는 정부 채권을 거래하는 일은 금지되었다. 물가 안정과 고용 극대화라는 두 위임 책무(dual mandate)
를 부여받은 연준과는 다르게 유럽중앙은행은 오직 물가 안정만을 목표로 삼았다.

사실 유로존 위기의 배경에는 엄청나게 늘어난 채무가 있었지만 그 채무는 민간 부문의 채무였지 공공 부문의 채무는 아니었다. 유로존은 북대서양을 중심으로 한 경제에서 유럽 은행들이 대단히 적극적으로 기여한 시장 주도의 신용창조 과정과 똑같은 상황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 것이다.

나중에야 나온 이야기지만 유럽중앙은행은 아일랜드와 스페인의 지나친 경제호황을 진정시키기 위해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그리고 유로존 전체에서 금리를 하나로 고정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더 어려워진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사실상 유럽중앙은행은 금리를 낮게 설정함으로써 주변 국가들의 경제 호황을 억제하기보다는 독일 경제 부양의 필요성을 더 우선시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정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었다.

유럽의 야망은 완전 고용을 최우선시하는 "사회적 시장경제"의 완성으로 정의될 수 있으며 거기에 "사회적 배제와 차별"에 대항해 싸우는 만큼이나 "사회정의"와 "세대간 연대"를 추구하며 동시에 "경쟁력 높은" 사회가 될 것을 약속하고 있었다.

NATO와 유럽연합이 동쪽으로 그 세력을 확대하고 눈앞의 위기를 우선 진정시키며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고 지정학적 지도를 영구히 다시 그리기로 결정한 배경에는 바로 이런 사정들이 있었다. 유럽연합과 NATO의 세력이 두 배 이상 확장되었던 건 서로 협력한 결과가 아니었으며 미국과 독일, 프랑스 정부의 개입 못지않게 동유럽이 자초한 부분도 상당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산책 외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73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김완구 옮김 / 책세상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생명은 야생과 일치한다. 가장 활동적인 것은 가장 야생적인 것이다. 아직 인간에게 정복되지 않았지만 그 존재는 인간을 기운 나게 만든다. 끊임없이 서둘러 나아갔고 결코 노동을 그치지 않았던 사람, 즉 빠르게 성장했고 생명을 끝없이 요구했던 사람은 항상 자신이 새로운 지역이나 야생 자연 속에서 생명의 원료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는 원시 산림수의 포복성 줄기 위를 타고 넘을 것이다. 나에게 희망과 미래는 잔디밭이나 경작된 벌판, 즉 시내와 도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손상되지 않고 흔들리는 습지에 있다. _ 헨리 데이비드 소로, <산책> , p34/172

헨리 데이비드 소로 (Henry David Thoreau, 1817 ~ 1862)는 <산책 walking>에서 야생(wild)과 생명(life)을 말한다. 가공되지 않고 날 것 그대로의 원재료에서 그는 새로움을 발견하고, 대체할 수 없는 가치를 부여한다. 소로는 말로만 그치지 않고, 생활에서 이러한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소로는 기꺼이 콩코드 월든 호수에서의 삶을 선택한다. 이 시기에 탄생한 <월든>이 불후의 명저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자연을 사랑하고 가까이 하고자 했던 그의 사상과 삶이 접점을 가졌기 때문이고, ‘야생=생명‘을 말하는 그의 주장은 설득력있는 울림으로 퍼져나간다.

이렇게 모든 자연적인 산물들에는 그것들의 최고 가치를 나타내는 휘발성의 공기 같은 무형의 성질이 있다. 그런데 이것은 속되게 될 수도 없으며 사거나 팔 수도 없다. 이제까지 어떤 인간도 어떤 과일의 완벽한 맛을 향유하지 못했다. _ 헨리 데이비드 소로, <야생사과> , p86/172

<산책>은 <월든>과 마찬가지로 자연에 대한 예찬이 담긴 짧은 에세이다. 그렇지만, 이 짧은 에세이 안에서 <월든>을 읽을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소로의 자연관(自然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는 과연 자연을 사랑했을까? 그리고 그에게 자연은 어떤 의미일까?

그렇다면 인생의 사과, 세계의 사과를 맛있게 먹으며 즐기기 위해서는 얼마나 건강한 야외의 식욕을 가져야 하는가?... 이와 같이 들판에 어울리는 사유가 있고 집에 어울리는 사유가 있다. 나는 야생 사과처럼 산책가를 위한 양식이 되는 나의 사유를 가지고 싶다. 그런데 그것을 집에서 맛본다면 맛이 있으리라고 보장하지 못할 것이다. _ 헨리 데이비드 소로, <야생사과> , p106/172

소로는 다른 에세이 <야생사과>에서는 사과의 맛을 즐기기 위해 야외의 식욕을 가질 필요가 있음을 말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맛있는 자신만의 사유를 갖고 싶어 자연에 있고 싶다는 말도 덧붙인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그가 말하는 ‘자연‘의 소중함은 자신에게 신선함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결국 자신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의 도구에 불과하는 것이 아닐까.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4원인설의 방식으로 해석하자면, 자신과 인간을 목적인(目的因)로 하는 새로움을 주는 작용인(作用因)으로서의 자연을 그는 사랑한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해 우리의 이해력도 우리의 평원처럼 광범위해지고 포괄적이게 될 것이고, 우리의 지성도 우리의 천둥과 번개 그리고 우리의 강이나 산, 숲과 같이 전반에 걸쳐 더욱 대규모가 될 것이며 우리의 마음도 폭과 깊이 그리고 웅대함에 있어서 우리의 내해와 대등하게 될 것이다. 아마 여행자들에게는 우리의 얼굴에 있는, 마음을 기쁘게 하고 차분하게 하는 어떤 것, 하지만 그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그 어떤 것이 보이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세계가 어떤 목적을 향해 나아가겠으며 아메리카는 어떤 이유로 발견되었겠는가? _ 헨리 데이비드 소로, <산책> , p30/172

만약 그렇다면, 소로가 사랑한 자연은 낭만주의적인 숭고미(崇高美)의 대상을 넘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날 것‘이 주는 경이와 위대함이 자신과 인류의 사상과 영감이 원천이 되는 한 자연은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어린왕자>에서 사막여우가 말한 사랑 - 서로를 길들이는 것-과 소로의 자연사랑은 분명 결이 다를 것이다. 소로에게 자연은 길들여지지 않았을 때 오히려 가치를 갖는 것일테니까. 서로 길들이며 닮아가면서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받는 영감은 한계생산체감의 법칙(Law of Diminishing Marginal Returns)에 따라 감소할 것이기에 최적의 상태는 인간(문명)과 자연이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가 아닐까. 마치 DMZ의 남북 4km의 길이에 보존된 자연을 수색대원이 간간이 수색, 매복하면서 느끼는 원시의 힘을 소로는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역사를 실현하고 예술과 문학 작품을 연구하기 위해 인류의 발자국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동쪽으로 간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진취적인 기상과 모험심을 가지고 미래로 발을 들여놓듯이 서쪽으로 간다. 대서양은 우리가 그 통로 위에서 구세계Old World14)와 그 제도를 잊을 기회가 있었던 레테의 강이다. 만일 우리가 이번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지옥의 강Styx가에 도착하기 전에 아마도 인류에게 남겨진 기회가 한 번 더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세 배나 더 넓은 태평양이라는 레테의 강에 있다. _ 헨리 데이비드 소로, <산책> , p26/172

과거 서부 개척시기 북미원주민(인디언)들을 보호구역으로 몰아넣고 결국 그들의 공동체를 파멸로 이끌었던 역사에서 보듯 이러한 격리 상태가 파멸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이렇게 해석된 소로의 자연관은 위험하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물론, 소로가 자연파괴를 원했다는 것도 아니고, 이런 생각도 소로의 사상 전반을 통해 다시 검증할 필요가 있음은 물론이다. 이미 소로 전문가들은 더 많은 자료를 가지고 그의 사상을 정리했을 것이지만, 아직 공부가 미진한 관계로 여기에 미치지 못했다. 이에 대한 부분은 개인적인 숙제로 남겨놓고 <산책 외>에 대한 리뷰를 갈무리한다...

우리가 자랑했던 소위 지식이라는 것의 대부분이 우리에게서 실제적인 무지의 장점을 빼앗아 가는, 그저 우리가 어떤 것을 안다는 자부심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소위 지식이란 종종 우리의 적극적인 무지이고, 무지란 소극적인 지식이다. _ 헨리 데이비드 소로, <산책> , p46/172

야생 사과에 대한 나의 경험에서 볼 때, 나는 문명인이 거부하는 많은 종류의 음식을 미개인이 선호하는 이유가 있을 수 있음을 이해한다. 미개인은 야외에서 사는 인간의 미각을 가지고 있다. 야생 과일을 음미하는 것은 미개의 또는 야생적인 미각을 가지는 것이다. _ 헨리 데이비드 소로, <야생사과> , p104/172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22-11-09 15: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2-11-09 20:49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날이 조금은 풀린 것 같아요. 저녁시간 따뜻하게 보내세요! ^^:)

이하라 2022-11-09 15: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평화롭고 여유로운 시간 되세요.^^

겨울호랑이 2022-11-09 20:50   좋아요 1 | URL
이하라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저녁시간 보내세요! ^^:)

모나리자 2022-11-09 15: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겨울호랑이님~^^

겨울호랑이 2022-11-09 20:50   좋아요 1 | URL
모나리자님 감사합니다. 평안한 밤 되세요! ^^:)

거리의화가 2022-11-09 16: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이달의상 축하드려요*^^*
소로의 자연관에 대해서 깊게 고민해본 적이 없는데 덕분에 저도 체크해갑니다.

겨울호랑이 2022-11-09 20:52   좋아요 1 | URL
거리의화가님 감사합니다. <월든>과 <시민의 불복종>에 담긴 소로 사상이 짧은 글 안에 담겨 있는 좋은 독서시간이었습니다. 평안한 밤 보내세요! ^^:)

thkang1001 2022-11-09 18: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한 주 되시길 바랍니다.

겨울호랑이 2022-11-09 21:00   좋아요 0 | URL
thkang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저녁, 풍요로운 한 주 되세요! ^^:)

마루☆ 2022-11-09 2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에 뽑히셨네요.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겨울호랑이님의 감동이 고스란히 담긴 글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22-11-09 22:49   좋아요 1 | URL
마루님 감사합니다. 평안한 밤 보내세요! ^^:)

강나루 2022-11-10 04: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이달의 당선작 서정을 축하드려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2-11-10 07:45   좋아요 1 | URL
강나루님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그는 그저 믿을 뿐이었다. 이 세상에서 최선의 행복은 툰더텐트론크 남작으로 태어나는 것이고, 제2의 행복은 퀴네공드 양으로 태어나는 것이며, 제3의 행복은 그녀를 매일 볼 수 있는 것이고, 제4의 행복은 지방에서 가장 훌륭한, 따라서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철학자인 팡글로스 선생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퀴네공드는 과학적 호기심이 많았기 때문에 숨죽이고 실험을 지켜보았다. 여러 번 반복된 실험을 관찰한 덕택에 그녀는 박사의 충족 이유(充足 理由)와 원인과 결과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녀는 매우 동요되었다. 그녀 자신도 팡글로스처럼 학자가 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다. 그녀 자신은 캉디드의 충족 이유가 될 수 있고, 캉디드 또한 그녀의 충족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팡글로스는 형이상학적, 신학적 우주론을 강의하였다. 그는 다음 같은 사실을 멋지게 증명해 보였다. 즉 원인 없는 결과란 없으며, 우리의 세계는 가능한 모든 세계 중에서 최선의 세계며, 남작 각하의 성은 이 세계의 성 중에서 가장 멋진 성이며, 남작 부인은 가장 좋은 남작 부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던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은 쉽게 증명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목적을 가지고 있고, 그 목적이란 가장 좋은 목적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일례로 코는 안경을 얹기 위해 만들어졌고, 그래서 우리는 안경을 씁니다. 다리는 양말을 신기 위해 만들어졌고, 그래서 우리는 양말을 신습니다. 돌은 원래 성을 짓는 석재로 쓰이기 위해 생성되었습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지요. 모든 것은 최선의 결과를 향한 필연적 과정으로 얽혀 있습니다. 저는 필연적으로 퀴네공드 양의 집에서 쫓겨나야 했고, 몽둥이찜질을 당해야 했으며, 또 돈을 벌 때까지 구걸을 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필연입니다.」

이 말에 팡글로스는 한결 더 공손하게 대답했다.
「각하, 외람된 말씀이오나 인간의 타락과 저주는 최선의 세계에 필연적으로 들어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자 포리가 말했다.
「그럼 선생은 자유 의지를 믿지 않으시는 겁니까?」 「외람된 말씀이오나 자유 의지는 절대적 필연과 일치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자유로운 것은 그것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의지란…….」

팡글로스가 여기까지 얘기하였을 때 포리는 〈포르토〉인지 〈오포르토〉인지 하는 포도주를 따르고 있는 호위무사에게 고갯짓을 하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역수지 흑자와 1994~1998년에 발생한 경제위기가 반복되는 것을 스스로 막아내겠다는 의지 때문에 이런 신흥시장국가들은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바로 정리해 사용할 수 있는 준비 자산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여기에 가장 적합한 자산이 미국 재무부가 발행하는 장단기 채권이었다.

신흥시장국가들의 투자자는 먼저 미국 재무부 채권을 사들였고 그다음에는 GSE에서 발행한 기관 채권을 사들였다. 그러자 다른 기관 투자가들은 그 밖의 다른 대안을 찾기도 했는데,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간 것이 바로 금융공학이었다. 예컨대 연금기금과 생명보험사, 그리고 수익 좋은 기업들이 쌓아놓은 막대한 액수의 현금을 관리하는 전문 관리자나 개인 갑부들이 안전자산을 찾고 있을 때 나타난 AAA등급의 증권은 파생상품의 합성 방법을 알고 있는 미국의 모기지 기관들이 만들어낸 상품이었다.

2000년대 초반 일어났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호황이 금융위기로까지 이어진 것은 증권화와 관련해서 내세운 논리와는 다르게 수천억 개에 달하는 민간 발행 MBS가 금융시스템 밖으로 퍼져나가지 않고 모기지 상품 판매자와 모기지 상품을 증권으로 만들었던 금융기관의 대차대조표에 그대로 쌓여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컨트리와이드와 같은 신흥 모기지 업체들에 예금자들이 없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실제로 충분한 예치금을 확보하지 못한 리먼브라더스는 결국 다른 곳에 모인 현금을 빌려다가 자금을 조달했으며 다른 신규 사업자들도 같은 방식으로 했다. 이것이 금융위기의 핵심에 자리하던 진짜로 치명적인 작동 구조였다. 화폐시장에 모였던 현금이 대차대조표에 다량의 MBS를 보유할 수 있는 자금으로 융통되었던 것이다.

이런 일종의 먹이사슬을 통해 전달되는 내용은 간단했다. 모기지 채무는 더욱 늘어갈 것이며, 상품의 질이 떨어질수록 수익은 올라간다는 것이다. 이른바 독립 사건 확률의 마법(the magic of independent probabilities)에 따라, 분할과 통합 과정을 되풀이하는 대출상품의 품질이 떨어질수록 효과는 더 극적이었다.

태평양을 사이에 둔 아시아와 미국의 경우 돈은 한 방향으로만 흘러갔고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있는 금융시스템 안에서는 자금이 양방향으로 흘러 미국으로 유입되기도 또 유출되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시장 중심의 은행 업무 모델의 논리다.

바젤 II도 이론적으로는 8퍼센트의 자기자본비율 유지를 요구했지만 일단 거대 은행들은 자체적인 위험가중치 모형을 적용한다면 그 어느 때보다도 큰 규모의 대차대조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바젤 I이 적용될 경우 모기지 자산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평가되었으며 필요 자본 계산을 위한 위험가중치는 오직 50퍼센트가 적용되었다. 바젤 II는 부동산 호황을 가라앉히기 위해 이런 규제들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기지 자산의 "자본가중치(capital weight)"를 35퍼센트로 줄여서 고수익의 MBS 보유를 훨씬 더 매력적인 사업으로 만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