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격변 AI 시대, 데이터로 사고하고 데이터로 리드하라 - 한 권으로 간추린 확률, 통계, 데이터과학, 머신러닝, AI 특강
알렉스 거트맨.조던 골드마이어 지음, 최재원.장진욱 옮김 / 책만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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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분석에 대한 저작들은 무척이나 넘쳐나지만 대개 전문적인 대목을 비전공 일반 대중이 쉽게 이해하도록 쓴 책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데이터 분석 책을 읽어보지 않고도 이런 일반화의 오류 같은 단언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여타 책들의 소개글에 필치만이 아니라 담고 있는 전문 내용에 제한이 없어 보여 그렇다. 극한의 전문성을 띤 내용들로 보이는 항목들도 즐비하다. 초보자와 입문자가 전공서를 읽지 않고도 데이터 분석의 대략을 이해하게 하는 수준의 저작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이 정도면 도전해 볼 수 있겠지 하는 기대감을 주는 책들은 쉽게 찾기 어렵다.

 

본서는 통계학자이자 머신러닝 전문가인 저자와 데이터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작가이기도 한 저자들이 합심해 데이터 리드(미국에서는 데이터 헤드라고 불리는 데이터 분석 역량을 갖춘 인재를 한국인 역자가 임의로 한국에서 통용되는 어휘인 데이터 리드로 의역했다)의 필요성을 알리고 어느 수준으로 데이터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자 하는 목적에서 집필한 책이다. 역자마저도 데이터 분석가와 반도체 패키징 분석가로 본서를 읽고 이런 저작을 써보고 싶었는데 먼저 쓴 사람이 있다는 아쉬움을 느끼며 번역했다고 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본서를 권하고 칭찬하고 있는데 그 중 가장 인상적인 키워드는 쉽다와 데이터 문해력, 데이터 이해력이었다. 역자도 이 책은 남다르게 쉬운 서술이라고 평하고 있는데 쉽게 읽히는 반면에 함축적인 내용들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저자들은 데이터로 다가오는 일상의 문제들이 많다고 평하고 있지만) 데이터와 친근하지 않은 나와 같은 사람들과는 다르게 업무와 일상에서 데이터와 자주 만나는 분들이라면 서술과 데이터에 대한 이해도의 면에서 남다르다는 본서가 끌리지 않을까도 싶다.

 

본서에서는 데이터에 대한 정의를 부호화된 정보로 간단하게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이든 수치화한다고 데이터의 역할과 기능을 하는 것은 아니다. 정량화의 오류라고 하여 아무 숫자나 모아서는 데이터라고 주장하는 오류를 들어 설명하는데 데이터는 무작위적인 숫자나 부호의 나열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파악하기로는 데이터는 목적을 가지고 기준 또는 원칙에 따라 부호화된 정보라고 생각되었다.

 

저자는 데이터 리드라면 (데이터를 대하며) 꼭 물어야 할 질문으로 5가지를 이렇게 제시했다.

 

1 이 문제는 왜 중요한가?

2 이 문제는 누구에게 영향을 미치는가?

3 적절한 데이터가 없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4 프로젝트는 언제 종료되는가?

5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1, 2, 4는 데이터란 필요와 역할과 기능에 따라 존재한다는 걸 그리고 3, 5는 전문가라도 최상의 유효한 데이터만을 추출하고 제시할 수 없음을 논의하며 데이터 리드는 이런 사안도 고려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4장 데이터와 논쟁하라]에서는 데이터의 근원을 확인하자누가 데이터를 수집했는지’, ‘데이터는 어떤 방식으로 수집됐나를 파악하라고 말하고 있으며, “데이터에 대표성은 있는가라는 항목에서는 표본추출에 편향이 있었는가’, ‘이상값(범주에서 크게 벗어난 값)을 어떻게 처리했는가를 고려하라고 말하고 있다. “확인하지 않은 데이터는 무엇인가에서는 어떤 방법으로 결측값(데이터에 포함되지 않고 삭제된 값)을 처리했는가’, ‘측정하려는 개념을 측정할 수 있는 데이터인가를 확인하라고 말하고 있다.

 

본서는 전문적인 내용도 물론 전하지만 데이터 리터러시의 필요성과 데이터를 대하는 태도 그리고 이해만큼이나 활용할 관점의 틀 같은 것도 제안하고 있다. 본서가 남다르게 다가오는 이유는 분명 이공계열의 전공자들이 인문학적 사례와 사고들을 구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8 주택담보부대출 채권으로 인한 미국발 금융위기와 1986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 같은 사례를 예로 들며 데이터 리드의 사고방식을 갖추지 못했을 때 어떤 데이터 참사가 벌어지는지를 주지시키고 있기도 하다. ‘데이터는 여러분이 비판적 사고를 갖출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학습을 이어가며 자신의 행보를 책임져야 한다.’는 조언을 남기기도 하는데 데이터만이 아니라 삶과 배움에 대한 태도를 이르는 것 같다. 올바른 질문을 하고, 데이터와 논쟁하며 불편한 대화도 감수해야 한다는 저자의 마지막 말은 더 명백히 하나의 길을 가다 보면 분명 삶에 대한 교훈을 얻게 된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본서에서 전문적인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서술하기도 했지만 수식에서 울렁증을 느끼신다면 아주 약간은 스킵할 구간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읽어볼 만한 첫 데이터 관련 책이고 권할 만한 데이터 관련 책이 아닐까 싶다.

 


책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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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봐야 할 사후 세계 설명서 - 세계 5대 종교가 말하는 죽음 이후의 삶
하시즈메 다이사부로 지음, 주성원 옮김 / 불광출판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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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가 세계 5대 종교가 말하는 죽음 이후의 삶이라 기대치가 높았던 책이다. 새로이 알게 되거나 깊이 생각하게 되는 대목이 의외로 거의 없는 책이라는 감상이다. 이제는 시대가 영상 매체나 활자 매체들을 통해 다양한 국가의 문화나 종교에 대해 쉽게 알아갈 수 있는 시대이다 보니 본서의 저자가 언급하는 정도의 깊이로는 쉽게 접근 가능하지 않나 싶다.

 

저자는 77가지 명제로 각 종교의 신과 죽음과 죽음의 세계에 관련한 사유를 전개하는데 다른 매체를 통해 접해본 누구나가 한 번쯤은 떠올리거나 곱씹어 봤을 수위의 깊이만을 논하고 있다. 유대교에서 부활을 믿지 않는다거나 불교의 종파마다 붓다와 중생 그리고 죽음에 대한 연결고리와 해석이 다르다던가 일본의 국학과 신도에서의 죽음 관념을 일본인들이 타 종교와는 다르다고 여기는 걸 알았다는 정도가 새로울 뿐이었다.

 

일신교에서의 창조와 부활과 죽음에 대해서는 신의 의지를 중시하고 우주를 파괴한다 해도 신의 주권으로 인식한다는 정도도 신본주의인 일신교를 아는 누구나가 당연히 주지하는 사실일 텐데 그런 면을 활자로 재인식한다는 정도가 차이가 아닌가 싶다.

 

유교에서는 천자가 천제를 주관하고 자손이 조상에게 제례를 올리지만, 신앙적이고 종교적이라기보다는 정치를 무엇보다 가장 중시하는 경향과 공자께서 괴이한 것, 초인적인 것,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 이상한 현상 등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라셨다는 내용을 근거로 죽음에 대해 중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조상은 자손을 통해 죽지 않고 살아간다는 유교의 내용도 전하고 있는데 유교와 도교와 무속이 어우러진 각국에서는 유교에서는 죽음을 중시하지 않는다는 정의가 이상하게 다가올 듯싶다.

 

도교에서는 일신교나 힌두교, 불교와는 달리 죽은 자들의 나라를 인정했다고 하는데 나로서는 기독교의 천국에 대한 이야기가 상식으로 남아있어 저자의 말이 그리 수긍되지는 않았다. 불교의 불국토도 달리 보면 또 지옥도 결국에는 죽은 자들의 나라가 아니겠나 싶기만 했다. 하지만 본서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으나 티벳 사자의 서를 떠올리면 사유(죽음)와 생유(탄생, 환생) 사이의 중유(죽고 나서 태어나기까지 잠시의 기간 그리고 그 기간 머무르는 차원)에서 머무르는 기간이 잠시일 뿐이라 티벳 불교에서는 죽은 자들의 나라라는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황천이라는 개념이 그리 오래지 않았던데 고사기, 일본서기, 만엽집 등에서 죽은 이들의 나라에 가는 신의 이야기가 등장한다고 하며 자신의 아내인 여신의 죽음으로 죽음의 세계를 가보게 된 그 신의 일화 등을 통해 일본에서는 신도 죽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일본에서는 노리나가라는 사람이 국학을 열었는데 여기서는 사람이 죽으면 황천으로 간다고 받아들인다고 한다. 하지만 국학을 계승한 히라타 아쓰타네라는 사람은 히라타 신도를 열게 되는데 그에 의하면 죽은 자들은 영령이 되어 국가를 수호한다고 받아들인다고 한다. 그래서 야스쿠니 신사에서 에도시대부터 근대와 현대를 거치며 전장에서 죽은 인물들은 합사(신이 깃드는 도구인 요리시로에 함께 모시는 것)하여 안치한다고 한다.

 

이를테면 유교와 도교적인 특징이 융합된 형태의 관점이기도 한데 일본이 아니더라도 기존의 토속 신앙이 외래 신앙과 융화되는 경우는 어디나 있지 않나 싶다. 일본에 유교가 유입되며 충과 효에 대한 관점이 재정립되었고 에도 막부 시기 각 막부의 구성원이 각 영지에서 군주와 신하 관계이면서 혈족이기도 한 특성상 충과 효는 같다는 忠孝一如(충효일여)의 관점이 일본에서는 깊어졌는데 이것이 확대되며 천황에게 더욱더 충성하는 제도적 변화가 정립되어 굳건해졌다고 한다. 쇼군의 시대에서 덴노의 시대로 이양하는데 외래문화인 유교가 막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전까지는 천황은 신적인 존재라는 상징성을 가질 뿐 그리 극단적인 충성의 대상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덴노를 아라히토가미(現人神)라 하여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 신으로 인식하는 기류가 근현대까지 이어져 온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본서에서는 죽음과 신에 대한 관념, 종말 심판설, 부활, 내세관, 윤회관 등을 두루 다루고 있지만, 책의 분량을 고려하면 충분히 예측 가능하듯 다소 간략하고 깊은 층으로 내려가지는 않고 있다.

 

저자는 죽음이 두렵고 불안한 이들에게 한 가지 종교에 깊이 들어서면 다른 종교에 대한 의문들도 해소될 수 있다는 식의 말씀을 하기도 하지만 한 종교에 천착하면서도 동시에 타종교에 대한 궁금증과 의문도 파고들 수 있을 것이다. 한 종교를 신앙하기 위한 신앙이 아니라 존재적인 의문에서 시작되는 신앙이라면 다른 종파와 다른 종교에 대한 의문과 관심도 충족시킬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두루 읽고 두루 파고드는 집요함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저자의 77명제는 그런 의문과 관심을 갖는 이들이 자신의 배움과 깨우침을 정리하는 방식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주기도 할 것 같다. 짧은 이야기를 담은 책도 한뼘 만큼의 성장에는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읽어봐도 좋을 책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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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패턴의 비밀 - 기만적인 온라인 설계는 어떻게 우리의 선택을 조종하는가
해리 브리그널 지음, 심태은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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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서비스 수혜자의 자율성과 정보에 바탕을 둔 선택이나 의사 결정을 할 능력을 왜곡 또는 저해하는 체계가 다크패턴 또는 기만적 패턴이다. 이런 기만 또는 유도 행위는 그리고 자율성, 의사 결정권, 선택권을 저해하는 행위는 금지되어야 하며 이들에 대한 숙지가 필요하기에 집필된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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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의 기술 - 무의미한 소음과 자극에 맞서는 강력한 도구
이윤규 지음 / 더퀘스트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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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도 기술의 문제임을 깨우쳐 주는 책이다. 열정이나 노력이 아닌 하나의 시스템으로 몰입하도록 도와준다. 결론만 보자면 단순한 테크닉 같겠지만 결론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기능적인 면과 원리의 방향에서 세심하게 숙지시켜 준다. 저자는 정말 뇌력도 필력도 대단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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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발 급살병과 대시국 의통군
이훈오 지음 / 지식과감성#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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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미래 예측 분야를 좋아하다 보니 덩달아 동서양과 한국 고유의 예언을 좋아하게 되고 다양한 예언이 담긴 경전류와 방송 등을 즐기게 되었는데 그러다 이 책의 출간 소식을 알게 되어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은 증산도 계열 종파인 태을도에서 출간한 책으로 처음엔 증산도에서 출간한 책인 줄 알았다가 읽고 보니 태을도의 도서였다. 증산도는 본향이 대전이라는데 태을도는 교단은 서울에 있고 기원은 전라도 고부라고 한다. 하지만 기원을 따지자면 고인이신 증산 강일순 선생이 시원일 테니 증산도 계열 종파 전체가 기원은 전라도 지역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본서의 내용은 그들의 경전에서의 강일순 선생 말씀과 행동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어 강일순 선생의 생몰 연대라도 언급해야 할 것 같다. 1871111일에서 190989일을 살다가신 분으로 이 시기의 한반도 역사가 외세와 서학과 동학이 어우러진 혼세이다 보니 자신(증산 강일순)이 하나님이 인간으로 화하여 세상에 나온 것이라는 등의 허황된 주장의 어불성설인 논리도 통용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본서의 내용을 압축 요약하자면, 한반도는 우주의 기운이 서리는 지구의 혈자리로 이곳에서 인류의 원과 한과 바람이 어우러져 펼쳐지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사용된 어휘는 다를 수 있지만 의미를 옮겨 담았다) 그래서 한반도에서 그들이 상제라 칭하는 하나님이신 강일순님이 태어나신 것이며 인류의 다음 세기가 펼쳐지는 여정인 군사적 질병적 재난들이 펼쳐지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이곳 한반도 군산에서 급살병이라는 것이 서북으로 퍼져 올라가서는 49일간 전국을 휘젓고 전 세계로도 펼쳐져 3년을 간다고 하며 그 이전에 북한의 침공으로 남북간의 전쟁이 일지만, 그것도 급살병의 확산으로 중단된다고 한다. 이 한반도의 전쟁은 세계의 향방을 가르는 전쟁이 되는데 이로 인하여 세계가 일통 일가를 이룬다고 한다. 아마도 세계단일국가화될 거라는 미래상을 예언하고 계신 것 같다. 이 모두를 증상도에서는 해원(원한이 해소되는)의 여정으로 보는데 태을도에서는 인간의 독기와 살기가 불러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증산도 계열 종파들에서는 모두 이런 시대를 고대한 모양이다. 본서에서도 언급되었지만 강일순 선생께서 생존해 계실 당시에도 그날이 왜 빨리 오지 않느냐고 재촉하는 신도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근래의 팬데믹 시기를 거치면서야 이 종파들의 신앙이 밀물처럼 활성화되고 있는 듯하다. 증산도의 [이것이 개벽이다] 같은 책들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유행하기도 해서 중학시절에도 재미나게 읽었고 몇 년 전에도 신간으로 재독하기도 했다. 증산도 계열에서는 본인들의 교리 그러니까 강일순님의 예언에 기존 동서양의 예언들을 보강해서 예언들을 종합해 미래를 예측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는 [이것이 개벽이다] 시리즈와 [개벽 실제 상황]이라는 증산도 도서들이 훨씬 재미나게 서술되고 편집된 책들이다.

 

본서에서도 탄허 스님의 월출산 영봉에 물이 차고 그 수면에 달이 비치고 나면 30년 후에 여성지도자가 한반도에 등장하고 그로부터 삼사년 후에 남북이 통일된다는 예언을 언급하기도 하는데 본서의 저자께서는 그걸 3~4년 후로 보고 자기 종파가 남북을 통일한 종파라고 주장하는데 그건 너무 억지 해석이다. 동양에서는 삼사년이라고 한문으로 기록했다고 하면 이는 3~4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12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이팔 청춘은 16세를 이야기하는 것이고 한단고기인가 삼국유사인가에서 웅녀가 환웅님께 참사람이 되기를 청하고 참사람이 되는 수행 기간으로 받은 기간이 삼칠일인데 이 또한 3~7일이 아니라 전통적인 해석대로 21일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탄허 스님께서 말씀하신 여성지도자가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할 때 그녀의 취임 연도인 2013년에서 탄핵 연도인 2017년에 12년을 대입하면 2025년에서 2029년 사이 남북이 통일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모든 예언은 맞을 때도 틀릴 때도 있을 수 있다는 걸 감안할 때 이 시기까지 판단은 보류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어쨋건 증산 강일순 선생과 탄허 스님의 에언을 동시에 보면 2025년에서 2029년 사이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며, 이 전쟁은 세계의 향방을 가르는 전쟁으로 비화되는데 한반도 내에서는 군산에서 대감염병이 서울 경기지역까지 전파되는 과정에서 전세계로 확산되고 한반도 내에서는 49일로 팬데믹이 완화되지만 그즈음 한반도 내에서의 전쟁은 중단된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 즈음부터 시작되어 세계단일 정부나 보다 강력한 권한을 가진 세계기구의 출범이나 기존 UN의 권한 강화가 있을 거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나로서는 예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퍼즐을 맞추듯 결합하며 재미를 느끼는 편이지만 이 시대답게 비판적 사고를 통해 재해석 해보도록 하겠다. 우선 한반도가 과연 우주의 기운이 서리는 풍수적인 대우주의 길지라는 해석이 논리적으로 말이 되는가를 보자. 만약 한반도의 풍수가 그런 고차원적인 길지였다면 중국이 유사 이래 한반도 내 국가들과 사신을 서로 왕래하면서 한반도의 풍수를 파악하지 못했을리 없다. 일본이 한반도의 풍수가 일본 풍수에 안 좋은 영향을 준다고 판단하자 한반도 각지의 명지에다 대못을 박아 넣은 사례들을 보더라도, 풍수를 신봉했던 동아시아 전체에서 왕중왕인 중국이, 우주 최고의 명당이 한반도였다면 한반도를 침공해 중국 역대 정권들의 수도로 삼았던가 우주의 기운이 한반도로 흘러가지 않도록 여러 방법들을 간구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역사의 흐름을 볼 때 한반도가 전 지구적이고 우주적인 차원의 명당이라는 논리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강일순 선생이 하나님이라니 예수가 구약이라는 유대인들의 성경에서는 근거도 찾아볼 수 없는 하나님의 독생자로 탈바꿈된 것과 하등의 차이가 없는 뻘소리가 아닌가 싶다. 예수는 자신이 죄인들을 위해서 왔다고 했는지 모르겠다. 다만 구약에서도 아담과 하와의 지혜의 열매를 먹은 죄를 원죄라며 그 죄가 인류 전체에게 계승되기에 그걸 대신 속죄하기 위해 예수가 처형당했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는 유대인들은 신봉하지 않는 주장이다. 유대인들은 아담과 하와의 죄가 계승된다고 믿지조차 않았다. 구약에서는 사람이 죄짓지 않고 사는 날이 없기에 죄인이라고 말했으며 유대인들에게 죄란 그렇게 과녁에서 빗나가는 것과 같이 잠시 노선을 벗어나는 걸 이야기했을 뿐이다. 그런 것을 예수의 제자들은 죄인의 개념을 극대화해 예수를 신격화하는 데 이용했다.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를 신격화하기 위해 독생자 개념을 창조했고 다윗의 자손 중에 베들레햄에서 태어나는 이가 메시아가 된다는 유대인들 경전의 전승을 예수에게 덧쓰우려 예수와는 관련도 없는 예수의 양아버지의 계보를 다윗과 연결 지었다. 그게 억지인 것은 복음서들마다 예수 양아버지의 다윗 족보가 현격하게 차이가 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또한 나사렛에서 출생한 예수를 메시아가 베들레햄에서 출생한다는 전승에 억지로 꿰어맞추려 예수 출생지를 베들레헴으로 조작했다는 것도 예수의 사촌 동생인 요한의 요한 복음서에서는 예수가 베들레햄 출생으로 그려지지 않았다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성모 마리아의 자매인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 출생지를 잘 알겠나 전혀 남인 복음서 작성자들이 예수의 출생지를 더 잘 알았겠나는 이미 답이 나온 의문이지 않은가 말이다. 예수는 자신이 독생자라고 한 적이 없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으며 다른 모든 자신의 제자들에게도 너희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했다. 독생자이자 하나님과 동격이라고 자신을 호도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만약 예수가 그랬다면 그는 그냥 MAST(신의 광인)일 뿐이다. 미친놈이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하나님의 독생자도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으로 화현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이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도 그냥 MAST일 뿐이다.

 

강일순님이 하나님이라면 전지, 전능, 불멸, 편재해야 할 일인데 자신이 인간들을 죽이고자 대감염병과 대전쟁의 시대를 기획하고는 다시 그를 막겠다며 천지공사를 한다? 그게 전지하고 전능한 존재가 하는 행동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이라면 애초에 완벽한 계획을 세웠어야 한다. 또 그걸 수정하는 과정이 제한된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강일순 선생이 인류가 겪을 대재난의 수위를 낮추려 행한 과정을 천지공사라고 하는데 인류가 겪을 일을 축소했다고 주장하나 그것은 그의 주장일 뿐 증명할 수 없으며 증명된다고 해도 전능한 하나님이라면 무효로 만들면 되지 축소하는 정도 밖에 못하는 건 또 뭔가? 그리고 그는 죽었다. 불멸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속성 중 무엇 하나도 없었는데 하나님이라는 논리가 말이 되는가?

 

그리고 그는 인간이 대감염병을 겪는 이유와 전쟁을 겪는 이유를 인간의 독기와 살기 때문이며 이 모든 과정은 해원의 과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일견 맥락 지으며 스토리로서 원인과 조건과 결과를 찾기 좋아하는 인간들이 혹할 만한 논리다. 모든 것이 무작위라거나 우연일 뿐이라고 하는 말보다는 대중이 혹하고 솔깃한 해석이기는 하다. 하지만 대감염병도 대전란도 결국에는 치밀한 기획으로 이뤄진다는 것이 사실에 더 가깝다. 5나도 하얀 신발도 몇몇 초극부층이 후원하던 중국의 실험실에서 발원하였거나 그들이 투자한 제약사들에서 하얀신발이 출시되었고 투자한 초극부층들은 팬데믹 시기 동안 천문학적인 부를 창출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AI와 로봇 기술이 대대적으로 실용화될 시점을 앞둔 초대량의 실업자들이 쏟아져나와 초극부층들의 세금으로 전세계 시민들 대다수를 복지 부담으로 부양해야 할 미래를 생각할 때 상당히 시기 적절한 팬데믹이었다. 대전쟁(세계대전)과 반복되는 팬데믹은 초극부층의 복지 부담을 절대적으로 감소시키며 새로운 사회구조와 경제체제를 불러오는 효율적인 방식이라는 말이다. 이런 효율을 그럴 힘을 가진 이들이 시행하지 않으리라고 기대하는 것도 비합리적인 기대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대전란과 대감염병은 인간의 독기와 살기나 쌓인 원한이 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냉철한 이성과 살벌한 판단력이 불러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독기과 살기가 불러오는 것이 아니냐 쌓인 원한이 그런 인물들을 키워내 인재를 야기하는 것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건 아전인수적인 해석이다. 강일순님은 이 상황을 인간들의 기획이나 계획의 실현으로 말하지 않았다. 그는 사태의 표면만 비전으로 볼 수 있었거나 기존의 예언들을 기반으로 예측했을 뿐 현상의 이면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예수는 성전에서 환전상을 공격했는데 나로서는 그가 환전상을 공격한 것을 성스러운 곳에서 이윤 추구만을 하는 인간의 탐욕 때문에 화가 난 것이 아니라 그때로서는 먼 미래인 현재의 세계상을 비전으로 보고 금융가들을 주축으로 한 초극부층이 세계인들 다수를 죽이는 것을 예지하고는 그것이 화가 나 그들의 기원이랄 수 있는 환전상을 공격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게 아니라면 자신의 신도 숫자가 더 많다고 소수인 환전상과 그 경호원들을 짓밟으려 한 깡패 양아치일 뿐인 존재가 예수였단 말인데 나로서는 그리 보지 않는다.

 

그리고 본서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이야기인데 군 시절에 본 증산도 서적에서 강일순님이 미래에 벌어지는 판을 역변시키는 존재를 상씨름꾼이라며 그 판 밖에서 판의 흐름을 좌우해 버리는 상씨름꾼을 자신이 보낸 사람이라고 하고 있다. 나는 그가 상씨름꾼이라고 말한 그 인물이 메시아라고 생각한다. 예수는 그를 보혜사라고 칭했는데 어떤 호칭이었든 대환란의 시대에 대환란을 뒤바꾸는 존재가 예견된 것이 사실이라면 그런 존재가 바로 메시아가 아니겠는가? 그보다 먼저 온 존재들이 그 미래를 보고 그를 자신이 보냈다거나 그는 자신의 일을 대신하는 보혜사라고 칭하는 것은 그들의 망상이 불러온 해석이지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앞서와서 문제를 예견하는 자는 예견자일 뿐이지 문제를 진짜 해결하는 사람이 진짜 문제해결자인 것은 당연한 이치라 본다. 지가 독생자라는 사람도 지가 하나님이라는 사람도 문제의 시기에 오지 않았고 예견만 했을 뿐이지 않은가? 기출문제에 아마도 고난이도의 문제가 등장할 것이다라고 예측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문제를 풀어내는 사람이 문제해결자인 것이 당연한 일이다.

 

문제를 예견만 하는 건 누구라도 할 수 있다. 기존의 예언을 혼합하고 예측되는 미래상까지 더해 예언을 해 보라면 나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예언 정보 마니아와 미래 예측 정보 마니아라면 누구라도 이전 예언자들 못지않게 그럴듯한 예언을 할 수 있다. 예수든 강일순이든 먼저 와서 미리 말한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해당 시대에 살며 해당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 진짜 문제해결자이고 메시아일 것이다.

 

본서에 대한 감상은 재미 삼아 볼 만은 한데 [이것은 개벽이다] 시리즈처럼 재미나지도 않고 분량도 조금 아쉽다는 것이다. [이것이 개벽이다]가 너무 월등한 클라스인 것이 사실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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