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의 이유 - 부와 권력이 집중되는 10가지 원리
노엄 촘스키 지음, 유강은 옮김 / 이데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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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유도되고 조성되어 유지되고 있는 것이라는 것이 촘스키님의 주장이다. 

근거도 제시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학문의 길에 대중 모두가 아닌 특권층이 편입되기 쉽도록 유지되고 있으며

미국회에 기업가들의 로비스트들이 해마다 20억달러 이상을

로비비용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대중이 국가나 대중 자신들의 문제에 등한히하도록 하기위해

말단적인 소비를 유도하는 광고에 매년 수억달러가 투입되고 있음을 근거로 들고 있다.

 

광고부문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기에 당연히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할 수 있지만

언급되는 전분야를 거시적으로 보자면

기업과 엘리트층이 다수의 계층 상승을 호의적으로 보지 않을 것임을

계층의 와해를 두고 보려하지 않을 것임을 믿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불평등이나 자본주의의 문제점, 민주주의의 위기 등을 다룬 저작들은 거의 대다수가

음모론적인 시선을 거둘 수 없도록 만드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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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04-13 1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촘스키의 다른 책을 가지고 있는데 완독하지 않은 것 같아요.
촘스키의 책은 새겨들을 만한 글이 많을 듯합니다.

이하라 2021-04-13 10:47   좋아요 0 | URL
저도 촘스키님 저작을 몇 권 정도 읽었는데 사회비판 미정부에 대한 비판에서는 가장 신랄한 것 같더라구요.
 
헤르메티카 Hermetica
헤르메스 호 트리스메기스토스 지음, 정은주 옮김 / 좋은글방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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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는 물론 서양 철학의 효시라고 할만한 시대의 서양철학의 근간을 담은 내용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본서에 관심이 있는 분들 중 다수는 철학서라기 보다는 마법서의 하나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선택하셨을 겁니다. 

 

하지만 마법 실용서로서의 기대는 크게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마법 이론에 대한 원론적인 철학을 담고 있는 책이다라는 감상을 주는 책입니다. 마법의 이론적 배경이 될 수도 있고 마법을 깊이 공부하는 이들에게 깨우침을 줄 수도 있지만 실제 마법체계를 가르치는 책은 아닙니다. 18권까지에서 제 15권이 실전되어 있는데 그 실전된 서에서 실용마법이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만을 줄 뿐입니다.

 

서양 철학으로서나 마음과 의식의 힘에 대한 이해를 확장시키는 데는 본서보다는 김영사에서 출간한 동명의 책을 권해드립니다. 그 책이나 이 책이나 [헤르메티카]라는 제목으로 전승된 철학서의 다른 텍스트를 번역한 것으로 순간적인 직관을 확장시키고 무언가 통찰을 크게 주는 듯한 번역서는 김영사에서 출간된 책입니다.

 

본서에 대한 내용이나 김영사 판 헤르메티카의 내용이나 술술 읽히는듯 하고 읽고나서 이게 뭔가 싶으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양자물리학, 홀로그램 이론, 신지학적 배경지식들을 다시 한번 공부하시고 읽으시면 이게 술술 구렁이 담넘어가듯 읽고 말 구절들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사실 마법을 애호하지 않거나 수행을 사랑하지 않는 분들이라면 그저 서양 철학의 내음이 조각조각 파편화되어 묻혀있는 책 정도라는 인상을 받을 듯 합니다. 다른 리뷰에서 이미 서양철학서라고 단정지으시는 리뷰를 본 적이 있거든요. 철학서라고만 판단한다면 굳이 이런 고액을 지불하고 이 책을 읽어볼만한 가치가 그리 크지는 않습니다. 물론 아무 가치 없다는 뜻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이 책의 진짜 가치를 새겨보려면, 마법과 수행의 여정 중에 하나하나 깨우침이 커가는 것 같을 때... 그제야 의미가 될 수 있을 거라 여겨집니다. 

 

동양 수행의 깊은 단계들은 은밀히 전승되기에 그 비의를 체득하려면 스승을 따르는 길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진짜 스승을 마주 하는 일은 어려운 시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동양 수행과 함께 [헤르메스 입문학]을 함께 수행하는 것이 스승이 없는 길에서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 여정에서 본서 [헤르메티카]는 제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 기대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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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메티카 Hermetica
헤르메스 호 트리스메기스토스 지음, 정은주 옮김 / 좋은글방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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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마법을 애호하지 않거나 수행을 사랑하지 않는 분들이라면 그저 서양 철학의 내음이 조각조각 파편화되어 묻혀있는 책 정도라는 인상을 받을 듯 합니다. 본서의 가치를 새겨보려면, 마법과 수행의 여정 중에 하나하나 깨우침이 커가는 것 같을 때... 그제야 의미가 될 수 있는 책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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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튜버 라이너의 철학 시사회 - 아이언맨과 아리스토텔레스를 함께 만나는 필름 속 인문학
라이너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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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리뷰를 쓰건 포스트를 올리건 긴 글은 아무도 읽지 않는다는 조언을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 어느 리뷰던 포스트던 읽을 때 너무 길다보면 지레 부담을 느끼고 몇 문장만에 스킵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관심을 갖자고 해도 길다보면 텍스트를 굵게 또는  으로 표시한 부분들을 훑어보고 마는 경우도 많다. 

 

어느 분의 직언처럼 포스트도 리뷰도 길면 대중들은 그저 스킵해 버리고 마는 경향이 대다수라는 것이 맞을 것이다. 다수의 사람들이 SNS 등에서의 배너처럼 그 잛디 짧은 단문에 익숙해져서 직관적인 짧은 글에 관심을 보이지 긴 문장은 관심을 갖지 않고 스킵한다면 나는 도대체 어떤 리뷰 어떤 글을 써야하는 걸까? 

 

예스24가 이주의 우수 리뷰를 선정하는 경향을 보면 최근에는 달라진 듯 하지만 그 이전까지는 독서에 비견할 정도의 장문의 리뷰를 선호하던데... 서평단 응모에 선정해준 마음에 응답하기 위해서라도 장문으로 써야 할까? 아니면 다수가 읽고 부담없이 즐길 직관적인 단문을 선호해야하는 걸까? 

 

그래, 장문은 내 대뇌가 부담스러워하니 직관적인 문장으로 승부하자. 그것도 막상 써보려고 하니 쉽지 않을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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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서평단 모집란에서 [니체가 주장한 초인의 모범은 조커였다? 매트릭스는 데카르트의 악마에서 태어났다? 마르크스는 설국열차의 혁명을 예언했다?] 단 이 문장들만으로 흥미를 느껴 서평단 응모를 하게 된 책이다.

영화는 물론 좋아하고 철학도 관심이 있지만 철학서들은 대체로 철학의 역사를 논하는데 치중해 사유의 꺼리를 깊이있게 되새기기에는 부족할 때가 많지 않은가?

영화 이야기로 철학을 가까이 한다면 공감과 사색이 교차하며 깊은 배움과 인상을 갖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나의 기대였다.

 

니체가 주장했다는 초인이 과연 어떻게 조커인 것인지, 매트릭스에서 어떻게 플라톤이 아니라 데카르트가 언급된 것인지, 마르크스가 예언했다는 설국 열차의 혁명은 왜 이 시대의 현실세계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것인지 이런 의문들에 대한 저자의 대답을 듣고 싶었다.

그리고 [어벤져스 인피니트 워, 블레이드 러너, 12인의 성난 사람들(feat. 리갈하이), 매트릭스, 기생충, 그래비티, 조커, 내부자들, 다크 나이트(feat. 소리도 없이), 설국열차, 그녀]라는 13편의 영화에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소크라테스, 데카르트, 헤겔, 쇼펜하우어, 니체, 마키아벨리, 융, 마르크스, 붓다]까지 11명의 철학자, 문학가, 정치사상가, 경제학자, 분석심리학자, 종교 창시자들을 매칭해서 만나며 (철학이 쉽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인간의 삶의 어느 대목에서도 철학적 사유가 없이는 진지한 선택을 하기 어려운 것이구나 하는 감상을 갖게되었다.

 

책을 펼쳐들기 전 부터 예상했던 것 처럼 영화라는 매체와 철학적 사유라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조합임을 되새길 수 있었다.영화와 함께 철학자들의 사유로 인도하는 저자 라이너님의 입담은 니체의 초인이라는 것이 이런 거였구나를 조커를 통해 엿볼 수 있고 배트맨과 납치된 소녀를 통해 융이 말하던 페르소나란 결국 자아의 한 부분을 담고 있고 우리가 연기해내야 하는 것이구나 하는 깨우침을 가져다 주었다. 

 

그녀를 통해서는 붓다의 공관과 무아를 들고나온 라이너님에게는 노장 철학을 논하실 것을 불교 가르침은 버거우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본서는 영화를 통해 철학과 철학적 사유에 한번 빠져보라고 유혹하고 있다. 나로서는 [12인의 성난 사람들과 리갈하이, 소리도 없이, 그녀]를 제외하면 모두 본 영화들인데 저자를 통해 영화를 좀더 깊이 있게 볼 수 있는 팁을 배운 듯해 좋았다. 철학을 깊이 알 수록 영화를 보는 눈이 더 깊어질듯 해 다른 철학서들도 더 공부하게 될 것 같다. 영화를 깊이 보고 싶은 사람, 영화를 통해 사유와 사색의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는 사람... 아니면 철학을 일상에서 영화에서 읽어내고 싶은 사람 모두에게 권해도 좋을 책이다.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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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1-03-23 0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하라님 리뷰를 읽으니 이 책 저도 읽어보고 싶어요. 전 긴 글이 좋아요^^

이하라 2021-03-23 01:05   좋아요 1 | URL
긴 리뷰를 좋아하시는군요. 저는 읽을 때도 그렇지만 쓸 때는 정말 부담스럽던데요^^;
영화를 글로 소개받는다는 면에서도 영화로 철학을 풀어내어 준다는 면에서도 한번 쯤 읽어봐도 좋을 책 같아요^^

물감 2021-03-23 07: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긴 리뷰를 스킵하지 않게 쓰기란 참 어렵죠... 글쟁이들의 평생숙제 아닐까요^^

이하라 2021-03-23 09:20   좋아요 1 | URL
네. 그래서 핵심만 짚은 짧은 글을 쓰자고 해도 그것도 쉽지 않더라고요. 스킵하지 않게 쓰는게 정말 숙제인듯 합니다.^^
 
휴먼카인드 - 감춰진 인간 본성에서 찾은 희망의 연대기
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 조현욱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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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는 이제까지 대중적 상식이 되어온 인간은 폭력적이며 이해타산적이고 이기적 본성에 압도되는 악한 존재라는 정의에 정면 반박하는 저작이다. 물론 그러한 주장을 전개하는 과정에 편향적으로 여겨지는 면도 없지는 않으나 이제까지 인간의 폭력성과 이해타산적인 면모, 이기적인 성향 등에 너무나도 치우친 주장들이 상식으로 대중화되어 왔기에 이런 인간의 선한 면모에 주목하는 저작이 신선하게도 다가왔다. 


다만 인간의 선함과 악함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데 그간의 악함에 주목하는 대중화된 상식들도 본서의 저자처럼 인간의 선함에만 주목하는 신선한 주장들도 너무 한쪽 면만 보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저작이다.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전기충격)실험과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 모두가 외면했다는 주택가 대로에서의 살인인 캐서린 제노비스의 죽음 또 깨진 유리창 이론까지 그간의 정설로 굳어져 전해온 상식이 되어버린 심리 실험들과 이론 그리고 사건에 대해 저자는 모두가 편향된 조작이 있었다거나 오보였다고 부정하고 있다. 더욱이 전쟁터에서 총격을 안한 군인들이 30%가 넘는다는 전 세계 군사기관들이 염려할만한 정보도 사례로 들고 있다. 


그러면서 이러한 그간의 인간의 악한 본성에 주목하던 상식들을 편향적인 오류로 단언하며 그 증거를 제시한다. 자연상태의 인간은 그리 악하지 않다는 그의 근거는 과거 러시아에서 여우를 브리딩 하여 가축인 개처럼 인간에게 친화적인 성향을 띠게 되는 과정을 연구한 결과를 인간에 대입하며 인간은 그 여우처럼 좀 더 자신이 속한 집단에 친절하고 배려하는 친화적인 존재로 진화해 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건 기본적인 그의 주장의 과학적인 결론의 하나이나 이 외에도 일반적인 상식을 깨는 근거라는 주장들을 세세히 들고 있다. 


하지만 그가 인간은 원시사회에서도 자신이 속한 집단에 친화적이기 위해 집단 내 소속 동료에게 해를 끼친 이기적인 존재들에게는 너나 할 것 없이 화살을 쏘아 고슴도치 같은 모습으로 죽게 만들었다고 말하는 역사적 사실도 달리 생각하면 인간의 폭력성이 달리 발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과연 저자의 말처럼 인간은 이타적이며 친절하고 배려하는 존재일까? 

그렇다면 역사로 남아있는 인간 잔인성과 야만적인 학살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중국의 진나라 시대 백기라는 장군은 포로 40만 명을 생매장했으며 루마니아 발라히아의 영주 블라드 3세 드라쿨레아가 보인 잔인성이나 중세시대 흑사병보다도 더욱 잔인했던 50만 명을 재판이라는 명분으로 학살한 마녀사냥의 사례 등은 이미 인간의 악한 본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20세기에만 보더라도 홀로코스트, 난징 대학살, 관동(간토) 대지진 당시의 조선인 학살, 일본 종군 위안부(라는 이름의 일본군의 여성 성노예 사건), 인간을 마루타라며 나무토막으로 보며 생체실험을 자행했던 일본군 731부대의 사례, 유고슬라비아 전쟁과 코소보 전쟁에서의 인종청소라 불리던 민족 대학살 등 인간의 사라지지 않은 야만성을 보여주는 사례들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21세기라고 다른가? 미얀마의 로힝야족 학살과 자하드를 외치는 이슬람 급진주의 테러단체들이 자행하던 학살과 참수 등은 한국인 피해자도 있기에 많은 국민들이 기억이 생생할 것이다. 


그에 대해서 저자는 무엇이라 할까? 저자는 분명 이런 반론이 나올 것을 예상했던지 인간이 정치적 집단과 같은 권위에 의해서 선한 본성이 왜곡될 때가 있다는 식으로 발언하고 있다.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과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을 부정했으나 그런 경향이 인간에게 있다는 것을 저자 자신도 인간의 예외적 경우로 상정하여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1,2차 세계대전 당시 적군과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군인들이 보여준 너무도 인간적인(?) 사례를 들기도 하지만 이미 위에서 예를 든 인간의 야만성을 보여준 사례들과 함께 보자면 어느 쪽이 더 예외적인 경우일까? 그리고 군사적인 충돌 같은 피치 못할 (군대에 징집되거나 전쟁으로 내몰려 적을 죽이지 않을 수 없도록 권력자가 명령해 벌어지는) 권력의 압제 속에서 야기되는 인간의 잔인성 외에는 인간의 이런 부정적 성향이 더는 없는 것일까? 


19세기 영국의 잭 더 리퍼, 20세기 미국의 테드 번디 같은 살인자들 등 해외에서도 셀 수도 없는 연쇄살인이 일어났으며 20세기 한국만 하더라도 인육을 먹었다는 지존파 사건, 정두영, 유영철, 강호순, 그리고 그렇게나 알려진 이춘재 등의 연쇄살인범들이 있다. 살인은 인간의 악한 본성에 대한 근거로 들기에는 유별난 예외의 경우이니 제외해야 한다고 한다면... 인간이 남의 나라 땅에서 일면식도 없는 외국인을 위해 죽어가는 그런 유별난 예외의 경우는 인간의 선함을 증거하는 사례로 들지 못해야 한다는 것인가? 어느 경우나 인간이 한 행동이다. 그리고 우리는 인간의 악함을 조우하는 순간에 일상적인 친절을 경험하는 순간 보다 더욱 강렬한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살인자들과 직면해 피해자가 되어 죽어가는 순간에 "어제 고기집에서 소스가 떨어졌는데 '그거 좀 주실래요'라는 단순한 말 한마디에 옆 테이블에 손님이 소스통을 건네줬어. 인간은 선한 존재야!" 이러고 죽을 희생자가 있을까? 인간의 선함을 확신하더라도 처참하게 유린 당하며 죽어가면서도 가해자를 동정하며 인간은 선하다고 할 이들이 몇이나 될까?


정, 이런 유별난 경우를 제외하자면 한국 스포츠계에 만연한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 군대 내 구타 등의 폭력 등은 어떡할 것인가? 몇 해전까지도 전투경찰들에게 자행되던 군 가혹행위가 문제시되었던 적이 있지 않은가? 이것 역시 집단 내에서의 예외적인 경우라는 말인가? 그럼 요즘 그토록 문제시되고 있는 학폭이나 왕따 같은 문제들은 어떤가? 이것이 집단 내의 권위에 의해 자행되는 것일까? 물론 소위 짱이라는 아이들이 주도하는 경우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을 집단에서의 권위에 의한 폭력으로 볼 수만은 없을 것이다. 인간에게는 선한 본성이 내재하고 있듯 악한 본성도 동시에 장착되어 있는 것이다.


게임처럼 해보고 싶었다며 초등학생 친동생을 침대 위에서 난자해서 죽인 중학생 형에 대한 21세기 초반 보았던 뉴스 기사가 난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고 있다. 그 아이는 만기 출소를 했더라도 진작에 출소했을 것이고 평범한 소시민들 사이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본서는 인간의 선함에 대해 이야기하며 인간의 그늘진 부분을 예외시 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인간이 악하다고 아니다 인간은 선하다. 이런 논리가 아니라 인간은 물론 악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선함도 내재해 있다. 이런 주장이었더라면 더욱 설득력 있지 않았을까 싶다. 


저자는 인간의 선함을 증명하고 인간의 집단 이기주의나 잔인성, 집단에서 누군가를 배격하고자 하는 심리를 완화하여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노르웨이의 감옥과 미국의 감옥의 운영 사례를 보여주며 예를 들고 있다. 자유롭고 평화롭고 편안한 감옥 생활을 하는 노르웨이의 감옥과 폭력과 규율만을 강조하는 미국의 감옥 생활을 비교하고 있는 것이다. 노르웨이의 감옥은 수감자 1인당 7000의 비용이 든다면 미국의 경우 수감자 1인당 5000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하지만 수감자들이 재범을 하고 다시 재수감되는 경우가 대다수인 미국에 비해 노르웨이는 재범율이 그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노르웨이는 미국보다 두 배 가까운 비용을 절감하고 있고 출소한 사람들이 취업을 해서 내는 세금까지 계산하면 사회적으로 절감되는 비용이 상당하다고 한다. 강압과 제도를 이용해 행사하는 폭력이 아니라 수감자가 자연스럽게 치유받을 수 있는 환경 속에서 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게 할 때 사회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변화하는 것이다.


또 넬슨 만델라와 인종차별 노선의 남아프리카 전직 장군의 만남을 예로 들며 저자는 접촉이 국면을 전환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원양 선박에서 인종 간의 접촉이 없는 운항을 했을 때와 인종 간의 접촉이 있는 상태 즉, 타 인종과 함께 운항을 했을 때의 인종차별 수치를 비교하며 그는 접촉이란 것이 차별에 대한 대안인 듯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이 견해에 대해 반은 수긍하지만 반은 공감할 수 없다. 


인종 백화점이라는 미국에서 해마다 헤아리기 쉽지 않을 만큼 일어나는 인종차별적 범죄와 혐오 범죄들을 보며 접촉만으로 해답일 수 있다는 것이냐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나름 이 책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편향적인 정의에 다른 대안을 내놓기 위해 선방하고 있다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그건 틀렸다 이것이 맞다가 아니라 그런 면과 함께 이런 면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되새겨야 하며 이런 면에 대한 상식도 대중화해야 할 것이다라는 주장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자신의 아이를 때려죽이는 부모도 있고 입양아에게 그러는 양부모도 있다. 자신의 손주로 속이고 자신이 낳은 딸을 2층에 다 놓고 1층에 살면서도 굶겨 죽이는 엄마도 있다. 반면에 안타깝게 어린 나이에 병으로 죽은 자기 아이가 눈에 밟혀 해외 봉사활동을 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이광기씨 같은 아버지도 있다. 사람은 그렇다. 악하기도 하고 선하기도 하다. 악한 사람도 있고 선한 사람도 있으며 한 개인을 봐도 악할 때도 선한 선택을 할 때도 누구에게나 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가 아니다.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 그것이 문제이다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둘 다 부정할 수 없다는 것 하나만 수긍해선 안된다는 것 그것을 먼저 인정해야 하지 않나 싶다. 


이 책은 이것이 정답이니 그저 수긍하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저자 자신도 사랑의 호르몬이라는 옥시토신도 자신이 속한 집단에게는 우호적으로 외부자에게는 배격하는 성향을 강화한다고 짚고 있으니 말이다. 또 인간이 자신과 닮은 사람에게 더욱 우호적이고 자신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이에게는 배격하고 공격적이 된다고 인정하고 있기도 하다. 


본서를 통해 정답은 이것이다라고 수긍하려고 선택하는 분들은 없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한 쪽으로 기울어진 인지적 오류를 바로잡아 보겠다고 선택하는 분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그러니 저자의 어투가 맞는 건지도 모른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나무는 반대쪽으로 기울여 바로잡아야 하니 말이다. 


그리고 잠시지만 본서가 말하는 이런 주장들이 상식이 되는 세상, 행위의 동인이 되고 신념의 내적 근거가 되는 세상을 꿈꿔 봤다. 지금의 세계보다는 정말 아름다울 것 같다. 그럼 AOA 민아나 에이프릴 현주 같은 왕따 피해자들도 없는 그런 세상이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지민이나 나은이, 진솔이가 왕따를 시키는 것이 아니라 친절한 미소를 민아와 현주에게 건넸을 테니... 세상의 많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상식으로 전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온다면 정말 지금보다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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