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제라는 걸출한 인물이 없었다면 네르친스크 조약의 ‘선진성’을 설명하기 곤란하다. 1689년에 대륙에서 체결된 대등한 조약은 5년 전에 바다로 향하는 네 곳의 해관을 열어 주었던 강희제의 자신감 및 유연성과 연결되어 있다.

"서양인의 목적은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중국을 변화시키고, 중국이 서양의 가치를 공유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1716년(강희 55년)에 강희제가 해양 방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오랜 세월 뒤에 중국은 해외의 서양 국가들로 인해 곤혹스러워질지도 모른다. 이는 짐이 예견하는 말이다."라고 했던 직감적인 예언은 놀랍도록 정확한 것이었다.

동시에 옹정제의 강력한 포교 금지령은 중국과 가톨릭 사이에서 발생한 전례(典禮) 논쟁(Chinese Rites Controversy)의 직접적인 결과였다.

물론 내부적으로는 ‘적응주의(accommodation)’ 선교 방침을 취하며 북경 조정과 밀착했던 예수회와 그들의 전략에 반발했던 스페인계 탁발 수도회(프란치스코회, 도미니코회, 아우구스티노회) 사이의 노선 갈등도 무시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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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풍경 3 파리의 풍경 3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지음, 송기형 외 옮김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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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악덕은 바보같은 짓에서 나온다"는 말이 옛말인 줄 알았는데, 오늘날에도 결코 틀리지 않다. 우리는 인류의 역사에서 매 순간 이처럼 슬픈 사실을 읽는다. 가엾은 인간 정신이여, 아직도 계몽의 빛이 필요하구나! 그대는 매순간 가장 비천한 미신에 빠질 가능성을 안고 있다. 마법, 마술, 점성술을 받아들인 그대, 그대는 정치적 잘못까지 저질렀다. 그 추악한 잘못을 저지른 그대 눈뜬 장님이여, 그를 슬퍼하노라.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3> , p72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Louis-Sebastien Mercier, 1740 ~ 1814)의 <파리의 풍경 3 Tableau de Paris> 또한 이전 권들과 같이 파리의 풍경과 이를 바라보는 저자의 날카로운 해석과 비판이 잘 드러나지만, 이번 <파리의 풍경 3>은 앙시앵 레짐의 모순을 넘어선 저자의 대안, 계몽주의적인 시각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질세계는 모든 것이 기가 막힐 정도로 연결되어 있어서, 나뭇잎은 하나의 조직이고 원자에는 특성이 있으며 곤충은 먼지가 되어도 경이롭다. 정신세계 역시 무시무시한 혼돈과는 거리가 멀다. 하늘을 우러러보면 우리의 생각은 고양되고 대담해진다. 신이 손을 내밀어 내려주는 그 많은 기적 앞에서 환희와 감탄으로 타오르는 우리의 영혼을 믿어야 한다. 그것은 조물주와 인간의 행동에 대해 책임질 것을 요구한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3> , p379


 메르시에는 과학 아카데미를 보며 메르시에는 과학(科學, science)의 뜻에 대해 말한다. 과학을 통해 인간은 물질세계의 원리와 자연법칙을 파악할 수 있었고, 그 결과로 야만의 시대를 벗어나 새로운 빛의 시대(계몽시대)로 들어설 수 있었다. 메르시에는 과학으로 밝혀진 인간 이성(理性)의 빛이 고대 시대 야만의 어둠마저 밝혔기에, 고전시대에 대한 향수마저도 단호히 거부한다. 대신, 자연과학과 인문과학 그리고 예술을 통합하는 노력을 기울일 것을 요구한다.


 인간에게 과학이 없다면 짐승보다 나을 바가 없으리라. 광물학이 없으면 양식의 기술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의 인간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이리저리 이동하면서 인육을 꼬챙이에 꿰어 굽거나 냄비에 넣고 삶아 먹는 사람과 똑같은 짓을 하면서 살 것이다. 정의, 감사, 자비는 쟁기, 낫도끼, 낫을 만들 철을 발견한 덕에 생겼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3> , p121


 감성이 있는 영혼의 비약이 없이는 우주는 춥고 죽었으며 불모이다. 인간이 사고를 전개하여 자연에 혼을 불어넣음으로써 자연을 만든 노동자와 그 작품 사이의 관계를 확립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기원을 당당하게 여겨야 한다. 세상은 진정으로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인간의 사고는 항성들의 빛이 미치는 한계를 뛰어넘으며, 빛보다 활동영역이 더 넓다. 인간의 사고는 창조된 모든 것이 다다를 수 있는 곳까지 도달한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3> , p381


 다만,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통합은 개인차원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유(自由)에 대한 깊은 신뢰를 갖고 있는 계몽군주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계몽군주가 통치하는 국가에서 포괄적 지원을 통해 인간 이성이 최대한 역량을 발휘하고 신(神)이 인간을 위해 만들어낸 자연(自然)의 숨겨진 법칙을 발견하고, 이러한 노력이  더이상 팽창할 수 없는 영역까지의 확대될 때까지 지속되기를 메르시에는 강렬하게 요구한다.


 오직 자유주의를 믿는 군주만이 학문과 예술을 밀접하게 연결하여 상응하게 만들 수 있다. 개인이 제아무리 재산과 지식이 많고 공을 들인다 할지라도, 모든 자료를 모으거나 모든 실험 결과를 종합하거나 수많은 정신을 녹여 단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이용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3> , p123


 모든 관념은 저장고로 들어가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운동하고 발효하여 새로운 발견을 준비한다. 그리고 국민의 모든 지식은 개인의 지식이 서로 보태고 도와줄 때야 비로소 빛난다. 그 지식은 기초를 세우고 뒤섞여 그렇게 해서 모든 제국과 시대를 구별해 주는 빛을 만든다. 그러므로 모든 학문과 예술을 연결하는 일이 불가능한 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이해력의 한계를 설정하거나, 인생이 짧다고 생각하지 말하야 한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3> , p122


 계몽주의자로서 메르시에는 인간 이성에 대한 강한 신뢰를 보인다. 메르시에는 신이 인간을 위해 창조한 자연을 잘 이용하고, 신의 뜻에 가까이 가기 위해 애써야 한다고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앙시앵 레짐(ancient Regime)의 굴레에 있는 프랑스는 자신이 갖추고 있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음을 저자는 비판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메르시에는 비록 프랑스 혁명기를 살았던 인물이지만 민주정(民主政)보다는 패도(覇道)에 반대하는 계몽군주정(啓蒙君主政)을 이상으로 삼았던 인물이 아니었을까. 비록 자신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예언했다고 했지만, 자신에게는 프랑스 대혁명이 패도에 대한 절대자의 심판으로 비춰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파리의 풍경 3>에 실린 새롭게 탄생하는 왕자에게 당부의 말을 전하는 철학자 알레토필의 글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숨쉬는 자는 모두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장 근본적인 법칙이며, 인간의 규약보다 앞서 존재했던 법칙이기 때문이다. 만일 백성의 대다수가 가난하다면 왕관은 치욕스러운 것이 되며, 이름은 불명예스러워져 친구들조차 기억하려 들지 않게 된다. 산업은 결코 필요의 산물이 아니다. 사람은 가난 때문에 쓰러지거나 무력해지거나 희망을 잃고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사회를 황폐하게 만드는 사람은 모두 재산에 목마르기보다 극단적인 결핍 상태에서 그 지경으로 내몰렸다. 왕자여, 이러한 잘못을 최소로 줄이고 싶은가? 생활필수품을 늘려주고, 각자 생업에 매달리도록 하고, 자기 일을 남에게 팔거나 떠맡기지 않게 하라. 그 결과 부자들에게도 이익이 생긴다. 왜냐하면 부자가 모든 것을 탐욕스러운 손으로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 하면, 가난한 사람은 막다른 길로 내몰려 부자의 손아귀에 든 것을 강제로 빼앗으려 들기 때문이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3> , p143


ps. 18세기 철학자가 오늘날 워렌 버핏과 빌 게이츠가 대대적인 자선사업을 하는 이유와 낙수효과의 유무에 대해 명쾌하게 정리해주고 있는 것을 보면서, 고전이 지혜의 보고(寶庫)인 것인지, 인류가 역사 속의 기출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고 같은 실수를 계속하고 있는 둘 중 어느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둘 다 일수도 있겠지만. 밑줄긋기 내용은 리뷰와는 별개로 오늘날 우리에도 참 유용한 글이라 옮겨본다.


 고대를 찬양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찬양할 의식이란 없다. 이들은 자기 시대를 찬양하기는커녕 오히려 슬퍼한다. 이들은 테렌티우스나 플라톤의 평판에 대해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다. 오로지 찬양거리만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결점을 찾기 바쁘다(p125)... 이들은 야만의 시대보다 빛의 시대에 더욱 치명적인 잘못을 없애려고 무척 노력한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3> , p126



고관대작은 사람들과 끊임없이 대화한다. 단지 가끔 특정인에게 눈길을 보내느라고 말을 끊었을 뿐이다. 이렇게 반 시간 정도 대화한다. 그동안 그는 한 바퀴 돌았고, 마지막으로 자기 서재 쪽을 본다. 이것은 연극이 끝났다는 신호이다. 그를 에워싼 사람들은 공손히 길을 터준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문 앞자리를 차지하는 알 만큼 꾀바르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고관대작은 구석에 있는 사람에게 좀 더 다정한 말로써 마지막으로 말을 건넨다. 이로써 그가 거기 온 모든 이에게 골고루 호의를 베푼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그것은 진정한 구경거리이다. - P31

독점은 또 다른 독점을 낳는다. 그리고 그것은 확실히 막대한 이익을 보장한다. 튀르고는 독점체제를 없앤다고 하였지만, 뿌리까지 자르지 못했다. 그래서 그가 공직에서 물러나자 곧바로 그것이 다시 생겨났다(p93)... 정치에서 선은 악의 소산이다. 그 어떤 것도 정확히 적용되는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 윤리주의자의 성찰은 나날의 정치와 경험으로 언제나 혼란을 겪는다...더 무거운 세금이 있다. 그것은 부자가 가난한 사람에게 부과하는 세금이다. - P94

파리 시민은 항상 속으면서도 이튿날 또 속으리라. 그는 남이 건네주는 그릇된 정보에 속으려고 태어난 사람인가보다. 그는 매번 똑같이 그릇된 정보를 주어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가 확실하다고 믿는 사실은 모두 며칠 뒤면 불명확해지지만, 그는 그 점도 깨닫지 못한다. 그가 믿는 진실이란 사실상 약간의 진실을 교묘한 거짓의 현란한 색으로 칠해서 아주 생소한 차원으로 제시한 것일뿐임에도, 그는 알아차리지 못한다. - P224

높으신 분들에 대한 이런 복수(벽보)는 이제는 그들에게 위협이 되지 못한다. 그들은 아무런 오점도 남기지 않고 평온하게 경력을 마칠 것이다. 그들이 죽은 다음에야 역사가 과오를 밝혀낼 것이다. 그들은 생존 시에는 진실을 방종의 산물이라고 치부하고 무시해 버린다. 그러나 감추어진 진실은 반드시 드러나게 마련이다(p321)... 풍자가 가슴 속에 갇혀서 부글부글 끓고 신랄해지는 것보다는, 조각상의 입을 통해 표출되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말로 불만을 충분히 토로하면 민심이 가라앉아 봉기가 일어나지 않는 법이다. - P323

대중은 존재한다. 하지만 이 대중은 이해하기도 전에 심판을 내리려고 설치는 대중이 아니다. 모든 견해들이 서로 부딪힌 다음에는 진실을 대변하는 어떤 결론이 내려지는데, 이것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 P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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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클리의 위와 같은 진술은 ADHD의 과학적 측면과 철학적 측면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바클리는 ADHD가 질병으로 취급되지만 과학적 근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과감히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리탈린을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그는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과학이 언젠가 약의 효용을 밝힐 수 있으리라 주장한다.

그동안 ADHD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그다지 진전을 이루지 못했지만 제약회사의 마케팅 부서는 매우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들은 아동의 약물 복용 결정을 다음 세 가지 잘못된 믿음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1) 진단이 곧 질병이다. (2) ADHD는 환경이 아닌 생물학적 요인에 기인한다. (3) 질병은 약으로 치료할 수 있다.

성실한 의사라면 이러한 울분을 듣고 진정으로 가족을 돕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분별력을 갖춘 의사는 다음의 사실을 잘 안다. (1) 부모는 수년 동안 이러한 딜레마를 겪어왔고 (2) 리탈린은 반창고처럼 단기적인 조치에 불과하며 (3) 장기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가족상담사를 추천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만 (4) 관리의료제도 하에서는 약 처방이 쉽고 저렴하며 (5) 이 병원에서 처방받지 못하면 부모는 결국 다른 곳에서 처방받을 것이다.

슈퍼푸드라는 개념에는 오류가 있다. 이 과일들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먹는 음식의 원료에는 없는 특별한 영양소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 과일들에 특정 영양소가 고농도로 들어 있다는 사실에 큰 의미가 없다. 같은 성분을 낮은 농도로 가지고 있는 다른 식품을 조금 더 먹으면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은 종교는 영원하고 절대적인 진리를 주장하는 반면, "과학은 항상 잠정적이다."라고 썼다. 하지만 같은 책 뒷부분에서 러셀은 "과학을 제외하면 진리에 이르는 방법은 있을 수 없다."라고 쓰기도 했다. 이런 언명들은 과학자들이 가장 기초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는 인상을 주며 일반 대중을 큰 혼란에 빠지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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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제는 북경의 물자 대동맥인 대운하에 대한 통제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었고, 대운하에 결정적인 위험 요인으로 작용했던 황하에 대한 치수와 대운하에 대한 시찰을 겸한 남순을 반복적으로 거행한 것이다.

강희제가 삼번을 폐지하려고 하자 오삼계 등은 반란을 일으켰고, 여기에 대만의 정씨(鄭氏) 세력도 합세하면서 청조는 입관 이래 최대의 위기에 직면했다. 삼번의 난과 함께 극성에 달했던 정씨 해상 세력의 반청 운동은 청에 대한 복수설치(復?雪恥)와 명조 회복(‘복명(復明)’)을 바라는 조선인의 기대감을 한껏 고무시켰다.

그 와중에 천계령의 여파로 일본과 중국 사이에 조선의 중개무역이 활성화되었는데, 일본이 비단 등의 중국 제품을 수입할 때 바닷길을 이용하지 못하자 조선을 통한 중개무역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건륭제가 염려했던 것은 서양인들이 내지인들과 결탁하는 문제였다. 마카오는 이전부터 예수회 선교사들의 내지 진입로이자 유럽 선박의 정착지였기에 중국인과 유럽인들 사이의 관계 형성이 용이했다.

18세기로 접어든 강희제의 치세 후반기부터 동남 연해 지역에는 지역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외래인들과 접촉하는 일이 증가했고, 이것이 지속적으로 북경의 조정을 민감하게 자극하여 결국 일구통상이라는 폐쇄적인 국면으로 전환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

이는 예수회 선교사들이 보유한 측량술을 비롯한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해 가능해진 측면도 있으나, 뒤에 가려진 정치적인 동기도 간과할 수 없다. 여기서 ‘정치’란 바로 새로 확장된 변강(邊疆)에 대한 통치자의 통치 의지였고, ‘과학’이란 이를 뒷받침해 주는 예수회 선교사들의 기술적 지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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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자면 정신의학 분야에서는 대부분의 정신질환이 정상적인 인간의 경험과 연속성을 가지며, 질환들 사이에 중첩되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합의가 점차 이뤄지고 있다. 정신질환은 유전자와 환경, 인간과 사회가 복잡하게 상호작용한 산물이다.

질병의 개념은 모호할 수 있지만 형태학적으로 관찰 가능한 극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과정으로 이해할 때 역사적으로나 사회학적으로 가장 큰 타당성을 가진다. 암, 흑사병, 그리고 다양한 경화증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슬픔, 불안, 과도한 음주 또는 일부러 이틀 동안 음식을 입에도 대지 않는 행위를 꼭 병으로 볼 필요는 없다. 감정은 진공 상태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감정은 세상에 대한 판단이며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세상과 교류하는 방식이다. 이는 그런 감정들이 불편하지 않다거나 특정 행동이 불편한 감정을 일으키므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미를 함축하지는 않는다.

좋든 싫든 의학과 정신의학 연구의 대부분은 제약회사로부터 지원을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정신의학이 세상을 보는 관점과 치료 대상을 선택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준다. 1960년대에는 대부분의 대규모 임상실험은 미국 국립정신보건원NIMH: National Institute of Mental Health의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이제 연구의 70퍼센트가 기업이 주도하는 약물 치료 연구다.

과학자는 특정 치료법의 효능을 평가할 때 기대효과를 제거하도록 훈련받는다. 과학자는 대조군 연구에서 특정 치료의 결과가 위약 집단보다 유의미하게 높을 경우에만 해당 치료가 우울증에 효과가 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우울증 치료의 진실은 어떤 치료법이든 간에 기대감과 믿음이 치료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이다.

비판적 사상가인 제임스는 자신의 비관주의가 자신을 파괴할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를 통해 제임스는 ‘믿음’에 대해 상당히 실용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다. 그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믿을 수 있는 권리가 우리에게 없다고 주장했지만(예를 들어 2+2=5라고 믿을 수는 없다), 우리가 믿음을 선택할 수 있는 경험의 영역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제임스는 "사실에 기반을 둔 믿음은 사실을 창조할 수 있다."라는 점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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