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간이 내 얼굴과 몸을 재편하고 형체를 변화시키는 것을 본다. 젊고 여리던 선이 거칠어지고 늙는다. 젊고거칠던 선이 여려지고 늙는다. 나는 시간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소멸시키는 것을 본다.  - P96

시간은 풍요롭다. 차고 넘친다. 싱글 침대에 깔린 킹사이즈이불 같아서 한 움큼 가득 움켜쥘 수 있다. 그러다가도 메마른 땅에서 긁어모으듯 부족해서 그걸로는 아무것도 만들 수 없고 할 수 없다. 시간은 어둠이다. 내 삶은 그안에서 형체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시간은 내가 올가미밧줄로 잡아야 하는 말이다. 나 역시 말이고, 시간에 의해 묶여 있다.
- P96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삶이 아니라 시간이다. 소진되는 것도 삶이아니라 시간이다. 시간은 저기 우리가 볼 수 있는 곳으로죽음을 밀어낸 다음 유한한 보호막을 자처해 자신을 우리 - P101

에게 내어준다. 시간은 두려움과 절망이 움트는 땅이다.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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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디킨슨 시 선집 을유세계문학전집 126
에밀리 디킨슨 지음, 조애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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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트먼과 더불어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불린다는 유명한 시인임에도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처음 만났다. 버지니아 울프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 시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양장본 겉표지의 하늘거리는 커튼이 드리워진 창가의 작은 공간이 왠지 마음에 든다. 그 공간에서 에밀리 디킨슨은 밤을 새워가며 시를 썼을까. 이 시집에 수록된 시에는 제목이 없다. 창작 연도 순서로 번호를 붙였다고 한다. 보통 존슨 넘버(Johnson Number)라고 한다는데 독자가 읽을 때 적당한 제목도 지어보고 상상하며 읽는 재미가 있다. 위대한 이 여성 시인의 시를 잘 모르지만, 재미와 강한 인상을 주었던 몇 편의 시를 내가 느낀 그대로 해석해 보려 한다.

 



36 눈송이

 

춤추는 눈송이를

실내화를 신고 도시로 뛰어내리는 눈송이를 세다가,

그 반란자들을 표현하려고

연필을 집어 들었네.

눈송이는 점점 더 신이 나 춤을 추었고

내가 점잖은 척하길 포기하자,

한때 품위를 지키던 내 열 발가락이

지그*를 추려고 늘어섰네!(p18)

*지그:(jig) 4분의 3박자의 빠르고 경쾌한 춤.

 


어렸을 때 보았던 눈 오던 날의 풍경이 바로 소환되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날 마루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끝도 없이 쏟아지던 눈. 하나도 같은 크기의 눈송이가 아니었다. 크고 작은 하얀 솜털 같은 구름 같은 눈이 하염없이 쏟아지는 모습은 너무나 경이로웠다. 이리 튀고 저리 튀고 마치 춤추듯이 내리던 눈.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눈을 반란자로 표현했나. 화자의 상상력이 미소를 머금게 한다. 이런 광경을 보며 가만히 앉아 그림이나 그리고 있을 수 없었겠지. 신나게 춤추는 듯 보이는 눈을 보며 춤이라도 추지 않고는 못 배기는 상황이다. 잠깐이나마 동심의 세계로 초대해 준 시였다.

 



269

언제 고난이 - 끝날지 정해 주세요-

그래야 사람들이 견딜 수 있어요!

얼마나 피를 흘려야 하는지 정해 주세요!

생명의 주홍 핏방울을 얼마나 많이 흘려야 하는지-

수학을 다루듯이

영혼을 다루어 주세요!

 

얼마나 많은 시대를 견뎌야 하는지- 알려 주세요-

그래야-불만 없이-고통을 견딜 거예요-

해가 질 시간을 시시각각 표시하는-

노동자처럼- 고통스러워도- 노래를 부를 거예요!(p58)

 


인간은 누구나 크고 작은 고통을 겪으며 살아간다. 개인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에 고난의 크기와 수용하는 태도는 각자 다를 것이다. 가족과 지인들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가벼운 고통도 있겠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걷는 듯 힘든 시간을 겪기도 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세상에서 내 고통이 제일 크다는 것. 이럴 때 그 고통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있다면 덜 힘들 것이다. 노동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는 노동자가 하는 일이 힘들어도 시간이 정해져 있기에 견딜 수 있다. 정확한 학문인 수학처럼 영혼을 다루어 달라고 말한다. 시인은 이 시를 왜 쓰게 되었을까. 자신의 고난을 이기려고 썼을까. 아니면 고통받는 이웃을 지켜보다가 이 시를 썼을까. 어느 편이든 인간애가 느껴진다. 노골적으로 고난이 끝나는 시간을 정해 달라고 할 만큼 간절한 마음을 담았다.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이 시를 읽기만 해도 고통이 저절로 가뿐해질 것 같은 시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그저 배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통받는 다른 이웃과 나누려고 궁리한 끝에 이런 시가 탄생하지 않았을까. 시인의 통찰력과 위트에 감탄하게 된다.

 


 

327

눈이 멀기 전에는

나도 눈이 있는

다른 사람들처럼 보고 싶었다-

다른 식으로는 보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오늘-

하늘을 볼 수 있다는 말을 듣는다면

내 몸이 너무 작아, 심장이

터져 버릴 것이다-

 

초원을- 볼 수 있고-

산들을 볼 수 있고-

모든 숲들을- 무한한 별들을-

정오에 내 유한한 눈으로

보듯이 볼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면-

 

내려오는 새의 동작을-

석양으로 물든 호박색 길을-

내가- 원할 때 볼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면-

그 말의 충격으로 죽을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무모하게

태양을 바라보지만-

나는 영혼만 유리창에 두는 편이-

더 안전할 것 같다-(p81~82)

 



눈이 멀기 전에는 무엇이든 볼 수 있었다. 가족의 얼굴, 집안의 물건들,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와 꽃들 하늘과 구름도. 그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떤 일로 눈이 안 보이게 되었나 보다. 당연히 보여야 할 것들이 아무것도 안 보인다. 다른 사람들처럼 다른 식으로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냥 건성으로 보고 지나치는 게 아니라 따뜻한 시선으로 보면서 말도 건넬 수 있겠다. 사물을 관찰하며 어떤 영감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 경지는 꿈도 꿀 수 없는 지금 볼 수 있다는말을 듣기만 해도 심장이 터져버릴 만큼 행복할 것 같다. 그만큼 간절하다. 뭔가를 잃은 후에야 우리는 그것을 절실하게 그리워한다. 그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내가 가진 것을 떠올려 보자. 생각해 보면 얼마나 감사한 일이 많은지.

 

 


421

완전히 드러나지 않는

얼굴에 매력이 넘친다-

숙녀는 그 매력이 사라질까 봐

감히 베일을 들추지 못한다-

 

망사 사이로 자세히 살핀 후-

베일을 들까 하다- 포기한다-

직접 보면- 베일 쓴 모습에

만족했던- 욕망이 사라질까 봐-(p102)

 



베일을 쓴 여인의 모습은 그 자체로 신비롭다. 감추고 싶은 비밀이 드러날까 봐 또는 수줍은 마음에 베일을 들까 말까 망설이는 것일까. 마치 거절 받을까 봐 겁나서 청혼을 주저하는 연인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요즘처럼 무례가 넘치는 시대에는 오히려 그리운 장면이다. 사람을 대할 때 한 번이라도 상대방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지녔으면 좋겠다. 베일을 쓴 숙녀가 조금 망설이고 주저하듯이 한 박자 느리게 하면 불협화음도 줄어들 것 같다.

 



677

살아 있는 것은- 힘이다-

존재- 자체가-

더 유능해지지 않아도-

충분히- 전지전능하다-

 

살아 있고- 의지만 있으면 된다!

우리가- 유한한 존재이더라도-

창조주인- 신만큼-

유능하다!(p169)

 


아무리 큰 고통의 시간을 지나는 중이라 해도 언젠가는 다 지나간다. 절망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아도 결국은 끝난다. 위대한 선지자들은 항상 노래했다. 살아 있음은 축복이라고. 아무리 초라한 인생이라도 죽은 사람보다는 산 자가 낫다. 유능해지지 않더라도 살아 있다는 그 자체로 승리자다. 살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또 새로운 길이 펼쳐질 것이다. 유한한 인생이라는 걸 명심하고 주어진 삶을 힘껏 살아볼 일이다.

 

 


 

1263

책은 어떤 군함보다

우리를 먼 나라로 데려가고

질주하는 시 한 쪽은-

가장 가난한 사람도

돈 걱정 없이 이 마차를 탈 수 있다-

인간의 영혼을 태우는 마차 삯은 얼마나 싼지.(p218)

 


책을 예찬하는 문장을 만나면 늘 반갑고 설렌다. 책으로 세상 구석구석을 여행할 수 있고 좋아하는 저자와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한 사람의 영혼을 온전히 갈아 넣은 책 한 권으로 우리는 많은 지혜를 배운다. 리베카 솔닛이 도서관은 세상으로부터 벗어난 성지이며 세상을 통치하는 지휘소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한 권의 책이라도 아니 한 줄의 문장이라도 더 읽으려고 애써야겠다.

 

 


 

1659

명성은 곧 치울 접시에 담긴

잘 상하는 음식

손님에게 한 번만 내놓지

두 번은 내놓지 않을 음식.

 

남은 부스러기를 까마귀가 살펴보더니

비웃듯 깍깍거리며

그 음식을 지나쳐

농부의 음식 쪽으로 간다-

사람들은 그 음식을 먹고 죽는다.(p236)

 


1763

명성은 벌이다

노래하고-

침을 쏘고-

, 날개도 가지고 있다.(p247)

 



명성에 대한 두 편의 시다. 누구나 명성을 얻기를 바란다. 성공하고 자신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 명성이 언제나 정직하게 성취한 것일까. 누군가를 착취하고 괴롭혀서 얻은 명성도 있을 것이다. 그런 명성은 주변 사람을 아프게 하는 독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벌은 같은 곳에만 머물지 않듯이 이꽃 저꽃으로 날아다닌다. 명성도 마찬가지다. 혼신의 노력으로 쌓은 명성이라도 그 사람의 품행이 방정하지 못하면 세상이 그를 끌어 내린다. 명성을 곧 치울 접시에 담긴 잘 상하는 음식이나 날아다니는 에 비유한 시인의 통찰력이 번뜩인다.

 



19세기 영미문학의 대표적 시인 가운데 하나인 에밀리 디킨슨은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시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깊숙이 파헤친 작가라는 평을 받는다. 사후 처음 90년 동안 알려진 그녀에 대한 대중적인 이미지는 수줍음이 많고 집 밖을 나가지 않는 여성이었다. 하지만 디킨슨을 연구한 여러 비평가들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택한 재능 있는 시인으로 평가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시 선집을 읽고 나니 전통시와 다른 독특한 리듬과 구두법이 가미된 독창적인 시라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인간의 내면 감정에 대한 시가 많아서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시도 많았는데 자주 소리 내어 읽어보고 음미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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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6-08-29 18: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 휘트먼요.
저의 초기 인터넷 활동명이 ‘대로의 노래‘였지 뭡니까.

에밀리 디킨슨은 직접 구운 빵을 바구니에 담아서는
동네 아이들에게 부탁해 건너 마을 친구에게 전해주곤 했다던데
사실 여부는 장담을 못드립니다.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도 그렇게 전해주었다더군요.
이 역시 전해들은 말이고, 사실 여부는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왠지 그녀라면 충분히 그랬을 것만 같습니다.

시인이자 철학자라고 늘 생각했지요.
오랫만에 반가운 에밀리 디킨슨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모나리자 2026-09-01 12:38   좋아요 1 | URL
네에.. 휘트먼에 대해서도 조예가 깊으시군요. 차트랑님.^^
저는 아직 읽어야 할 작가 무궁무진하네요.
에밀리 디킨슨에 대한 일화도 잘 알고 계시군요. 디킨슨은 참 다정한 시인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를 통해서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고요.

어느새 9월이 왔네요. 정말 시간은 얼마나 빠른지요.ㅎ
게으르게 지내다 보니 시간이 정말 유수와 같다는 걸 느끼곤 합니다.
한결 시원해져서 살맛 나는 요즘이네요. 9월에도 편안하고 건강한 시간
보내시길 바랄게요. 함께 화이팅입니다. 차트랑님.^^
 
니체의 초월자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철 편역 / 히읏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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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의 타성이 고개를 내밀 때마다 니체의 책을 펼친다. 니체의 말은 화려하거나 요란하지 않다. 이미 알고 있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평범한 진리 같은 것이어서 무한 공감하며 읽어나가다 보면 긍정의 마음이 차올라 알 수 없는 의욕이 되살아난다. 인생을 살아가는 일은 쉬운 것 같으면서도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인간관계는 점점 냉정해지고 비교와 경쟁이 만연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은 하루하루를 견뎌내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나아가는 듯하다. 그래서 위대한 철학자 니체의 말은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니체는 서두에서 인간은 완성된 존재가 아니고 스스로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 한계를 넘어 자신을 다시 빚어내야 하는 존재라고 말했다. 그것이 자기 극복이며 그 과정을 거쳐 도달하는 인간상이 바로 초월자(Übermensch)’라고 했다. 초월자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자기 안의 두려움과 타성, 편안하고 익숙한 것을 뛰어넘는 모든 인간을 뜻한다는 얘기다. 우리 보통 사람도 노력 여하에 따라 초월자가 될 수 있다는 말에 왠지 위로와 힘을 얻는다. 본문 내용은 1장 인간, 너무나 인간적인 존재 2장 내면의 길을 걷는 자 3장 초월자의 길(Übermensch의 탄생) 4Amor Fati-고통까지 사랑하라 네 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 실려있는 내용이 모두 좋았지만 특히 강렬한 인상을 준 몇 가지 문장을 되새겨 보려 한다.

 



승리는 재능의 것이 아니다. 재능은 빠르게 빛날 수 있으나 오래 타오르지 못한다. 승리는 인내의 것이다. 고통을 견디고 시간을 견디고 불안을 견디는 자만이 결실을 본다. 인내 없는 결실은 없다. 버티는 자는 쓰러지지 않는다. 버티는 자는 끝내 도착한다. 버티는 자는 결국 이긴다. 인내는 삶의 가장 큰 무기다.’(p23)

 



흔히 재능이 있어야 승리한다고 믿는다. 눈부신 성공을 거둔 이들을 보면 그들이 처음부터 부자였거나 재능이 뛰어났기에 그런 성공을 거두었겠지 생각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런 사람은 거의 없다. 고통과 불안함 속에서도 꾸준하게 실천하고 인내하는 시간을 견뎠기 때문에 얻은 결과물이다. 차근차근 노력해서 얻으려 하기보다는 더 빨리 성공하고 싶다는 조급함이 성공의 길을 가로막는지도 모른다. 성공이란 자신의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에 달려 있지 않을까. 오늘 하루를 어떤 루틴으로 살아야 하는지 되돌아보게 하는 문장이었다.

 



삶은 직선이 아니다. 우회와 지연, 반복과 모순으로 가득하다. 한쪽에서는 만족을 얻지만 다른 쪽에서는 좌절을 맛본다. 같은 사건 속에서도 기쁨과 슬픔이 뒤섞이고, 욕망과 환멸이 교차한다. 그 모순된 경험과 깊은 시련이야말로 우리가 성장하는 토대다. 단순히 기쁨만 얻고 적당한 고통만 얻었다면 성숙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나를 흔들 만큼의 큰 고통이 찾아와야 내가 바뀐다.’(p72)

 



이 문장처럼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면 절대 탄탄대로만의 삶은 아니었다. 구부러진 길도 걸었고 어두운 터널을 걷는 것 같은 시절도 있었다. 물론 행복한 날이 더 많지 않았을까. 엄청난 시련이라고 할 정도의 일은 아직 경험하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할까. 그때그때 맞이한 일을 어떻게든 해결하며 살다 보니 오늘에 이르렀다. 인생이란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이라고 했던가. 시련과 고통을 불행이라고만 생각하지 않고 그저 내 삶에 한 번쯤 맞이해야만 하는 손님으로 여기고 대응해나간다면 힘든 순간도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해야 할 일은 피할 수 없고 도망칠 수 없다. 결국 어떻게든 해내야만 한다. 피할수록 육체의 병으로 오든, 관계의 파탄으로 오든, 내면의 공허로 오든 결국 그 무게는 반드시 되돌려 받는다. 그 무엇이 되었든 도망치지 말라. 피하지도 말라. 삶이 맡긴 무게를 그대로 들어 올려라. 운명을 피하면 벌을 받듯 책임을 버리면 고통을 짊어지게 된다. 삶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게으름이다.’(p105)

 



내 삶에서 가장 시간적으로 여유로운 시절을 보내고 있다. 직장생활을 하며 바쁘게 살 때는 시간이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고 하루 종일 책만 읽고 공부만 하며 살면 얼마나 좋을까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정작 그럴 수 있는 환경이 되었는데 이렇게 게으르게 살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나태하게 보내고 있으니 정말 아이러니다. 건강에 문제가 생겨 쉬엄쉬엄하자며 휴식 모드를 취하고 안주하다 보니 어느새 게으름의 타성에 젖어 살고 있었다. 이제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분명히 짧을 텐데 아직도 게으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 문장을 만나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을 가장 많이 할 수 있는 시기에 무의미하게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니. 훗날 후회 하나라도 줄이려면 내게 주어진 황금 같은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겠다.

 



자신이 된다는 것은 정직해지는 일이다. 세상의 기대에 맞추지 않고 자기 존재의 진실에 맞추는 것이다. 자신이 된다는 것은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매일 새로 자신을 발견하는 행위에 가깝다. (중략) 그 누구의 삶도 아닌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살 때가 되지 않았는가. 세상이 옳다고 말하는 길이 너의 길이 아닐 수 있다. 타인의 평가, 세상의 기대, 살아온 환경, 이 모든 것을 제외한다면 지금 네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너를 살아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p212)

 



니체의 철학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남의 눈치를 보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정체성과 자기 주도성을 가지고 당당하게 나아가는 삶이야말로 바로 초월자의 삶이다. ‘자신이 된다는 것은 정직해지는 일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완성된 상태는 아니며 매일 새로 자신을 발견하는 행위에 가깝다고 했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마주하며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일은 얼마나 짜릿한 기쁨일까. 그런 시간은 자신에게 가장 정직한 시간일 것이다. 이런 일은 게으름 속에 빠져 있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계속 배워야 한다고 했다. 늦었다고 투덜댈 일도 아니다.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 나를 가장 살아있게 하는 일을 상기하면서 다시금 힘을 내야겠다. 지금까지 게으르게 지낸 시간은 내 건강을 위해 썼다고 치부하면 된다. 이런 핑계를 대서라도 다시 시작할 계기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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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자주 죽음이 코앞까지 닥치는 삶은 어떤 것일까? 그 애는 번번이 그걸 비껴갔다.
하지만 딱 한 번 잡히고 말았다. 죽음은 그것만으로 모든 걸 가져간다. - P18

인생이란 게 참 경이롭지 않니. 내내 그 안에 난폭한죽음을 품고 있다는 게. 그 박테리아는 네가 죽어서 나타난 게 아니라 줄곧 몸속에 있으면서 언제나 너를 먹고 싶 - P29

어 했어. 또 세포들은 네 부패를 도울 효소를 늘 자기 안에 갖고 있었어. 생존하려는 네 열정이 그 모든 걸 막은거야. 네 안에서 그렇게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걸 알았니? 한 번이라도 눈치챈 적 있어?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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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6-08-15 1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아직 한 번도 눈치챈 적이 없었는데,
이제서야 그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게되었습니다.
갑자기
박테리아가 상당히 친근하게 느껴지는군요.

그간 북풀에서 모나리자님의 글을 제게 통보해주질 않았습니다.
모나리자님의 구독자인데도 말이지요.
(오늘은 모나리자님의 게시 글에 관한 북풀의 통보가
제게 도달했습니다.)

또한 100자 평은 서재에 노출이 되지않아
이렇게 좋은 인용문들을 그간 미처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박테리아로 돌아가서,
그들이 왠지 친구처럼 느껴지는군요.
전혀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말입니다.

때로 누군가가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을 해준 후에야
비로소 깨닫는 것들이 하나 둘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됩니다.

절대로 조상님 자랑하면 안된다는 것도
요번 광복절이 되어서야 깨달았거든요!!
(두리번~ 모나리자님, 쉿~! 조용....)



모나리자 2026-08-15 22:10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 인용문장 속에 죽음에 대한 저자의 통찰에 무척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평소에 별 생각없이 살다가 이런 문장을 만나면 정신이 번쩍 듭니다. 삶 속에 죽음이 있고 서로 내포하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어요.

아마도 제가 한 동안 글을 안 올려서 그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네.. 뭐든지 너무 자랑하면 탈이 나기도 하는 것 같아요.ㅎㅎ
적당히 자랑해야겠지요.
편안한 밤 되세요. 차트랑님.^^
 

살아 있는 것은-힘이다-
존재 자체가
더 유능해지지 않아도 --
충분히 전지전능하다--

살아 있고 의지만 있으면 된다!
우리가 유한한 존재이더라도 -
창조주인 - 신만큼 -
유능하다!
- - P169

시간이 지나면 -찬양하기도 - 경멸하기도 하지만-
무덤을 열면 - 가장 제대로 된 모습이 보인다.
죽음은 - 절정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재평가한다
그래서 과거에 못 본 것을
똑똑히 구별하고-
예전에 보았던 것을
대부분 - 보지 않는다- - P194

책은 어떤 군함보다
우리를 먼 나라로 데려가고
질주하는 시 한 쪽은-
어떤 준마보다 빨리 달린다-
가장 가난한 사람도
돈걱정 없이 이 마차를 탈 수 있다-
인간의 영혼을 태우는
마차 삯은 얼마나 싼지. - P218

명성은 곧 치울 접시에 담긴
잘상하는 음식
손님에게 한 번만 내놓지
두 번은 내놓지 않을 음식. - P236

명성은 벌이다
노래하고-
침을 쏘고-
아, 날개도 가지고 있다.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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