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며칠 괜찮다가 꼭 삼 일씩 앓는 것은 내가 이번 생의 장례를 미리 지내는 일이라 생각했다 어렵게 잠이 들면 꿈의 길섶마다 열꽃이 피었다 나는 자면서도 누가 보고 싶은 듯이 눈가를 자주 비볐다 - P25

힘껏 땀을 흘리고 깨어나면 외출에서 돌아온 미인이 옆에잠들어 있었다 새벽 즈음 나의 유언을 받아 적기라도 한듯 피곤에 반쯤 묻힌 미인의 얼굴에는, 언제나 햇빛이 먼저와 들고 나는 그 볕을 만지는 게 그렇게 좋았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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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소민아 2025-12-28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도 유명해서 지나치기 힘든 시집이죠~이번 생의 장례를 미리 지내는 일...시인 아니면 이런 문장이 가능할 지 싶어요~
 




올해 다섯 번째 서재의 달인/북플 마니아에 선정되었다.

택배가 도착했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고 얼른 나가 보았다.

큰 상자와 작은 상자 두 개가 왔는데

작은 상자는 왜 이렇게 가벼운 거야.

깃털이라도 들어 있는 건가 했다.

큰 상자에는 탁상용 달력과 다이어리 한 권

작은 상자에는 인사말 카드와 뽁뽁이 한 장이었다.



어라? 다이어리가 왜 한 권만 들어 있지?

서재의 달인/북플 마니아에 선정되면 두 개가 왔었는데

궁금해서 고객센터에 연락해 보니

달력 하나에 다이어리 한 권이 맞단다.

네에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아무튼 두 권을 받다가 한 권이 와서 왠지 마음이 허전했다.

뭐 사정이 있겠지. 주는대로 받아야지.

사실 이것도 고맙지.



별건 아니지만 블로그에서 반짝이는 앰블럼을 보면 기분이 좋다.

1년이 벌써 지났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책을 읽으며 그럭저럭 잘 지냈구나 하는 안도감에 마음이 뿌듯해진다.



사실 최근 3년 동안은 블로그 활동 초기에 비하면 책을 많이 읽지 못했다.

나도 가족 중 한 사람도 건강 문제가 생겨서

휴식 시간을 많이 가졌고 그러다 보니 느슨해지고 게을러지기도 했다.

한 달 1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시간은 잡을 수 없으니 흐르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할 수밖에.

새해엔 좀더 분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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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5-12-24 17: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달인 마니아, 축하드립니다 모나리자님!

모나리자 2025-12-25 11:2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차트랑님.^^
메리크리스마스 되세요.^^

그레이스 2025-12-24 1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들 그러시군요

모나리자 2025-12-25 11:29   좋아요 0 | URL
네 그런가 봅니다.
작은 상자는 안 보내도 되었을 텐데요.

희선 2025-12-24 2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나리자 님 축하합니다 이번엔 두 개가 아니어서 아쉬웠겠습니다 인사말 카드 하나만 따로 보내다니... 거기에 두 개가 다 쓰여 있군요 이번부터는 두 개여도 하나만 보내주려나 보내요

앞으로 건강 잘 챙기고 모나리자 님이 만나고 싶은 책 즐겁게 만나시기 바랍니다 내일은 성탄절이네요 성탄절 마음 따듯하게 보내세요


희선

모나리자 2025-12-25 11:38   좋아요 1 | URL
네 살짝 아쉬웠습니다. 처음엔 빠뜨린 건가 했는데...
인사말 카드를 넣지 않아서 작은 상자에 따로 넣었다는군요.
혼선이 있었나 봅니다. 굳이 작은 상자를 보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그래서 더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ㅠㅠ
이번 기점으로 이제 하나만 보내겠지요.

오늘보다 내일이 더 춥다고 합니다. 건강에 유의하시고 남은 12월도
편안한 시간 보내세요. 희선님.^^

서니데이 2025-12-24 2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나리자님도 오늘 알라딘 선물 받으셨군요. 저랑 같은 디자인의 다이어리네요.
올해는 참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아요.
올해의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좋은밤되세요.^^

모나리자 2025-12-25 11:40   좋아요 1 | URL
네 크리스마스 이브에 도착해서 더욱 선물을 받은 의미가 있었습니다.
정말 올 한 해 빨리 지나갔지요. 감사해요. 서니데이님.^^
즐거운 성탄절 보내세요.^^
 
글쓰기는 스타일이다 - 책읽기에서 글쓰기까지 나를 발견하는 시간
장석주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10주년 개정증보판이 나온 걸 알았는데 내가 읽은 건 10년 전 출간본이다. 우리 지역 도서관에 단 한 권 있는 책을 빌렸기 때문이다. 스스로 문장 노동자라 칭하는 시인, 비평가, 북멘토로 알려진 장석주의 40년 작법 노하우를 담고 있다. 오래전 장석주의 태양은 아침에 뜨는 별이다를 감명 깊게 읽은 적이 있다. 그가 가장 흠모하는 열다섯 인물의 고독하고 찬란한 삶을 조명하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일부 작가와 문체를 함께 다루는 글로 소개하고 있어서 유익했다. 작가의 엄청난 독서 내공에 압도되었다. 이미 10대부터 독서가였고 열세 살 때 처음으로 시를 썼고 열다섯 살 때 첫 소설을 완성했단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왕성하게 글을 쓰고 있으니 장석주의 인생은 문학의 역사 그 자체라고 생각되었다. 읽는 동안 심장이 뛰고 설렜으며 글쓰기에 대한 열정이 마구마구 솟아났다. 이 설렘과 열정이 오래 계속되길 바라면서 리뷰를 시작할까 한다.

 



본문에서 다루는 내용은 밀실 글쓰기를 위한 책읽기 입구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 미로 글쓰기에서 마주치는 문제들 출구 작가의 길 광장 글쓰기 스타일 이렇게 다섯 개의 장으로 되어있다. 책읽기로 시작하여 글쓰기로 이어지는 작가가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소제목도 작가의 삶과 절묘하게 닮았다.

 



첫 장 밀실 글쓰기를 위한 책읽기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책 한 권을 펼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던 작가의 독서 경험을 말한다. 책과 함께 충만한 시간을 보내며 모르는 사이에 운명을 바꿀 수 있었다고. 대개 작가들은 작가가 되겠다는 의식이 생기기 전부터 책읽기를 좋아했으며 많은 책을 섭렵했기 때문에 작가가 된 거라는 말도 한다. 장석주는 한 월간지에 실린 바슐라르의 초의 불꽃을 접하고 날카로운 통찰과 문장의 아름다움에 심장이 얼어붙는 듯했다고 한다. 그 바슐라르의 꿈꿀 권리는 자신의 비평의 스승이라고 했다. 이렇게 대단한 독서 내공을 가졌음에도 한때 글 쓰는 것을 포기하려 했다는 작가의 말에 묘한 위안을 느꼈다.

 



입구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에서는 작가라는 존재의 불확실성이나 재능과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작가의 길에서 불확실성이란 무엇일까. 아마도 허기진 삶과 지독한 어려움과 외로움이 아닐까 한다. 그 대표적인 작가로 지금은 널리 사랑받고 있는 미국의 소설가 폴 오스터의 에피소드를 얘기한다.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풍족한 어린 시절을 보낸 폴 오스터는 먹고 자는 일을 스스로 감당해야 했는데 그가 맞이한 현실은 참담했다.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의 그는 손대는 일마다 실패하고 결혼은 이혼으로 끝났고 글쓰기도 진척이 없었고 돈 문제에 짓눌렸다. 글 쓰는 것 말고는 어떤 일도 자기한테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평생 동안 멀고도 험한 길을 걸어갈 각오를 해야 한다고 했다. 예비작가들은 자신에게 재능이 있는지 창의성이 있는지 고민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고민한다고 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저 묵묵히 쓰는 것, 많이 쓰고 살아남는 것, 바로 그것이 재능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얼마나 큰 응원의 말씀인가.

 



그렇다면 글쓰기에서 마주치는 문제들은 무엇일까. 미로에서는 실제로 글쓰기 과정에서 필요한 명사, 동사, 부사, 형용사, 의성어, 의태어, 물음표 등을 글쓰기 연장통이라고 칭하며 스티븐 킹의 글쓰기 조언을 언급하고 있다. 꾸미지 말고 쉽게 쓸 것, 문장을 어렵게 쓰거나 꼬아서도 안 되며 어렴풋하게 써서도 안 되고 투명하게 드러내야 한다고. 그리고 수동태야말로 가장 나약하고 우회적인 수사법이니 그것을 피하라고 경고한다. 누구는 처음부터 잘 썼을까. 위대한 작가들도 처음에 쓴 글은 쓰레기라고 했다. 글을 쓰겠다고 결심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졸작이라도 쓸 수 있는 용기일 것이다.

 



드디어 출구 작가의 길에 들어왔다. 여기서는 좋은 문장을 소개하면서 문체에 대해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그 유명한 책에 미친 바보를 자처했던 이덕무 등 여러 작가의 글을 예시로 들고 있다. 책을 사랑하는 마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대단했다. 문체란 무엇일까. 모든 글에는 필적이 남듯이 작가의 글에는 문체라는 내면의 필적이 남는다고 했다. 문체란 자기만의 어조, 자기만의 리듬, 자기만의 스타일이 드러나는 문장의 특색을 말한다. 글을 쓰는 이의 존재 증명이자 그 사람이 살아서 뭔가를 했다는 물증이라고 했다. 또 문체는 선택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피의 불가피한 기질, 삶의 현존을 반영한다고 했다. 자신만의 문체를 갖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좋은 작가들의 작품들을 열심히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니까 책 읽기는 글쓰기의 가장 기본적인 것이며 자신만의 문체를 갖기 위해서도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말이다. 나아가 좋은 문체는 사유와 감각을 명료하게 드러내는 정확한 문장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가용 언어의 범주를 넓히기 위해 사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조언한다. 또 한가지 작가로 데뷔할 수 있는 등용문 신춘문예의 흥미로운 역사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마지막으로 광장 글쓰기 스타일에서는 소설가 김연수, 어니스트 헤밍웨이, 김훈, 무라카미 하루키, 허먼 멜빌, 피천득, J.D. 샐린저, 다치바나 다카시, 최인호, 박경리, 알베르 카뮈, 헤르만 헤세의 글을 소개하면서 각 작가의 글쓰기 스타일을 자세하게 살펴본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스타일이란 글을 쓴 사람의 살아온 방식이나 성격, 감성과 취향 등이 반영된 문체가 어우러진 각자의 고유한 색채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작가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한다는 것은 오랜 독서와 글쓰기 내공, 사유와 상상력, 지식과 경험이 축적되어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본문에서 인용된 수많은 책은 부록에 정리되어 있다. 미천한 나의 독서력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고 읽고 싶은 책을 적어두기도 했다. 누군가는 작가라는 직업이 쓰는 것만 빼면 괜찮은 직업이라고 했다는데 그만큼 규칙적으로 계속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말해주는 얘기일 것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한 사람으로서 반성도 했고 위안과 큰 응원을 받았다.

 



마음에 새기고 싶은 문장

 


무언가를 쓴다는 것은 현실의 지옥을 벗어나 빛 속을 뚫고 나가는 일과도 같다. 삶에의 의욕과 글쓰기에의 욕망은 하나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일이다. 하루라도 아무것도 쓰지 않고 흘려보내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나태요, 추악한 직무 유기이다. 그러니 날마다 써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잘 쓰든 못 쓰든, 몇 줄의 문장, 하다못해 단어 몇 개라도 쓰는 일을 멈춰서는 안 된다. 그게 작가로서 사는 법이다.‘(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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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슐라르에따르면, 예술가란 빈둥거리다가 벼락같이 영감이 올 때만 일에몰두하는 사람이 아니다. 예술가란 하루도 쉬지 않고 "인내와 열광의 불가사의한 피륙을 빈틈없이 직조해내는 사람이다. 예술가는(혹은 작가는) 날마다 제 일을 하는 사람인 것이다! 날마다 짜는 불가사의한 피륙이란 다름 아닌 그의 창조적 운명이다.  - P33

"음식과 인식은 동일한 것이며 음식과 말은 각각 들어오고 나가는 지점, 즉 이 두 가지 기능을 하는 공동의 신체기관인 입과 이196두 가지를 표현하고 뒤섞는 도구인 혀에서 만난다. 즉 부엌이음식을 만드는 곳이라면, 서재는 영혼을 위한 요리를 만드는 곳이다.  - P49

글을 쓰는 일은 개인적인 작업이다. 글을 남과 어울려 쓸 수는없지 않은가. 미국의 농부이자 작가인 웬델 베리(Wendell Berry,
1934)가 쓴 「시인이 되는 법이라는 시의 첫 행은 "앉을 자리를만들어라."이고, 두 번째 행은 "앉아라. 침묵하라."이다. 이 내용은 시인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된다.  - P50

작가의 재능이란 다름 아닌 글쓰기의 고통을 견뎌내는 것, 고통 속에서도 쓰기에 대한 열정이 고갈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살아남기 위해 쓰고, 쓰고, 또 쓴다. 사자의 심장을 갖고 도전하고, 도전하고, 다시 도전한다. - P64

글을 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세상을 ‘순진한 눈으로 바라보는 게 중요하다. 사람과 사물, 자연을 낯설고 눈부신 것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아무리 익숙한 것이라 할지라도 마치 세상에리 태어나 그것을 처음 본 것처럼 말이다.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요화1,
소들을 익숙한 것으로 바라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 P69

쓴다는 것은 제 안의무엇인가를 밖으로 내보내는 행위이다. 한 몸으로 존재했던 것들이 쓰는 순간 분리가 이루어진다. 제 몸에서 나온 똥, 그것이바로 글이다. 글쓰기는 ‘배설‘이라는 넓은 환유 속에서 설득력을얻는다. - P79

한 권의 책은 메마른 고독을 견디고, 공허와 불확실함에 맞서싸워서 얻은 전리품이다. 떠들썩한 축제 따위는 잊어라. 은둔하고, 칩거하라. 고독과 마주하라. 그래야만 쓸 수 있다. 작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수도자와 같은 금욕 상태를 유지하면서 자신을 채찍질해 사막을 건너야 한다.
- P88

무언가를 쓴다는 것은 현실의 지옥을 벗어나 빛 속을 뚫고 나가는 일과도 같다. 삶에의 의욕과 글쓰기에의 욕망은 하나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일이다. 하루라도 아무것도 쓰지 않고 흘려보내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나태요.
추악한 직무유기이다. 그러니 날마다 써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잘 쓰든 못 쓰든, 몇 줄의 문장, 하다못해 단어 몇 개라도 쓰는일을 멈춰서는 안된다. 그게 작가로서 사는 법이다. - P111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을 쓸 때 머리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 생각을 바로 잡아준다. 머리가 아니라 몸을 쓰라고!
글쓰기는 몸을 써서 하는 육체노동이다! 그 노동으로 비루한 문장들을 빚어내는 것이다.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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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겨울 2022 소설 보다
김채원.성혜령.현호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2월
평점 :
절판



겨울이 성큼 다가오고 있는 요즘 이 계절에 어울리는 소설을 읽었다. 블로그 친구 희선 님으로부터 받은 책 선물인데 벌써 3년이 다 되어 가서 올해 안에 읽어야지 다짐하고 읽기 시작했다. 작고 얇은 책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 소설 보다시리즈는 문학과지성사가 분기마다 이 계절의 소설을 선정, 홈페이지에 그 결과를 공개하고 이를 계절마다 엮어 출간하는 단행본 프로젝트라고 한다. 각 작품 뒤에는 작가와의 인터뷰 내용이 실려있다.

 



<빛 가운데 걷기>(김채원)는 어린아이와 함께 사는 노인 이야기다. 아이의 할아버지인 노인은 주기율표를 외우고 수업 노트를 복기한다. 예전에 교사였던 듯하다. 그 정도의 지식인이라면 아이와 친밀한 대화도 할 수 있고 공부도 봐 줄 수 있을 텐데. 아이는 긴 문장으로 말하는 것을 어려워해서 언어 치료를 받고 있다. 노인은 아이의 엄마였던 딸이 죽은 것에 대해 괴로워한다. 아니 괴로워하기보다는 죽은 게 싫다. 자세한 얘기는 없지만 아마 자살한 것 같다. 딸이 힘들어했을 때 좀 더 마음을 써서 도와주지 못한 것을 자책하기도 한다. 온갖 상념들은 마음속에서 계속 맴돌기만 한다. 햇빛을 받으면 몰라보게 건강해진다고 했던 옆집 남자의 말을 떠올리며 걷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혹시나 자신이 언젠가 죽게 되면 아이 혼자 남겨지는 걸 상상하면서 걱정하기도 한다. 노인의 마음은 아주 복잡하고 불안해 보인다. 무얼 해야 하는데 깜빡 잊어버리고 몸은 예전 같지 않고 누구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사람도 없다. 어쨌든 살아 있고 또 남은 삶을 이어가야 하니까 감내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슬프고 아픈 기억, 복잡한 마음은 어떻게 누그러뜨릴 수 있을까. 햇빛을 받으며 자주 걸을 것. 그러면 조금씩 견딜만한 나날도 오지 않을까.

 



<버섯 농장>(성혜령)은 고등학교 동창 기진과 진화의 이야기다. 진화는 10년째 인터넷 쇼핑몰에 다니고 있는데, 금수저인 나이 어린 사장을 저주하고 욕하면서도 그만두지 못한다. 기진은 그런 진화의 푸념이나 불평을 늘 참고 들어주었다. 기진의 부모님은 교통사고로 모두 돌아가셨지만 남겨진 재산이 있어서 직장을 열심히 구하지도 않았고 밖에 잘 나가지 않았다. 어느 날 진화가 기진에게 전화를 걸어와 휴대폰 개통 사기를 당해서 빚 독촉을 받고 있다는 사정을 털어놓으며 요양 병원에 같이 가달라고 한다. 기진이는 진화의 부탁이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들어준다.

 


 

기진과 함께 요양 병원으로 찾아가 만난 사람은 휴대폰 개통 사기를 친 남자의 아버지였는데 자신의 어머니를 간병하고 있다면서 아들과 연락도 안 된다. 나는 어머니 병원에 모시기 위해 집까지 판 사람이다. 자신은 아들에게 효도를 받지 못한다. 내가 자식에게 줄 때는 지났다면서 하소연을 하고는 가버린다. 피해자인 진화는 기가 막힐 노릇이다. 기진과 진화는 그 남자 차를 타고 나오는 것을 보고 뒤쫓아 간다. 참외를 먹으며 대화가 원만하게 이루어지는 듯했고, 기진이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니 남자는 죽어있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진화는 그 남자를 땅에 묻어야 한다고 말한다. 기진은 겁이 나면서도 진화를 돕는다. 어쩌다 보니 사기를 당하는 흔한 이야기인 듯한데 갑자기 사람이 죽었다는 게 뜬금없게도 느껴졌다. 그리고 왜 기진은 옳지 않은 일을 하면서도 진화가 하자는 대로 행동했을까. 서로의 부모님에 대한 혐오의 감정을 공유한 적이 있어서였을까. 아니면 어디에 매이지 않고 사는 자신과 달리 버둥거리며 살아가는 진화에게 빚 갚는 심정으로 그랬을까. 버섯 농장에서 일어난 이 이야기는 흔하게 발생하는 끔찍한 죽음의 사건도 우발적인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연필 샌드위치>(현호정)는 작가가 꾼 꿈 이야기를 모티브로 썼다고 한다. 그러니까 꿈 받아쓰기를 한 셈이다. 왠지 멋지게 느껴졌다. 꿈에 나온 규칙은 식빵 두 장 사이에 연필을 끼워서 샌드위치를 만든다. 양상추와 마요네즈 소스, 토마토 등을 자유롭게 활용해도 좋다는 조건이었다. 보통의 상식으로 생각하자면 말도 안 되는 얘기다. 하지만 꿈이고 소설이니까 상상력을 불어넣을 수는 있겠지. 꿈속의 공간 복돼지 문구점에서 연필 샌드위치를 먹어야 하는 고통은 문구점 아주머니의 감시를 받으며 이어진다. 거기서 빠져나오고 싶다고 몸부림치지만 빠져나올 구원의 손길은 없다. 꿈에서도 꿈과 현실 사이를 느끼며 이야기를 쓰는데 집중하는 모습이다. 화자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거식증 이야기까지 상기한다. 건강했던 할머니가 갑자기 입원을 하게 되고 그때부터 식사를 거부한다. 엄마는 할머니를 돌보기 위해 밥을 많이 먹었지만 할머니의 병세는 악화되었고 건강해지는 쪽은 엄마 쪽이었다. 내가 엄마를 위해 밥을 열심히 먹었던 때처럼 몸이 건강해지지는 않고 오히려 말라만 갔다. 모녀간에 서로 영적인 탯줄로 이어져 있다는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무엇보다도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환타지 소설을 떠올리게 한다.

 



희선 님은 이 책을 얇은 책이고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되기도 해서 본다고 했다. 나에게도 마음에 드는 소설이 한 편이라도 있기를 바란다면서. 그에 대한 대답을 한다면 첫 번째 단편 <빛 가운데 걷기>라고 말하고 싶다. 제목은 멋진데 내용과 좀 동떨어진 건 아닌가 생각하다가 거듭해서 읽어 보니 어울리는 제목이라고 생각되었다. 엄마를 잃은 아이, 딸을 잃은 노인이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불안하고 복잡하지만 살아가야만 하는 삶, 그 노인에게 일어난 불행한 일을 스스로 이해(인정)하고 그러려면 시간과 풍경이 필요하고 그래서 주인공을 걷게 한다는 작가의 말이 너무나 따뜻하게 다가와서다. 전혀 몰랐던 소설 보다시리즈와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되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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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12-12 19: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얇아도 바로 읽지 않기도 하는 책이군요 소설이 세편이어서 부담은 덜 되지만... 어떤 때는 괜찮기도 하고 어떤 때는 뭐가 뭔지 모르기도 하네요 겨울엔 햇빛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면 좋을 텐데, 햇빛이 덜 받아서 기분이 안 좋아지기도 하겠습니다 사람은 어떻든 살아 가기도 하네요


희선

모나리자 2025-12-12 20:10   좋아요 1 | URL
네, 오래 묵혀 두었다 읽게 되었네요. 덕분에 잘 읽었어요. 희선님.^^
이 시리즈가 꾸준히 나오고 있더군요. 삶의 모습은 다양하지만 닮은 점이
많다는 걸 느꼈습니다.

주말에 눈이 많이 온다네요. 감기조심하시고 따뜻하게 잘 지내세요. 희서님.^^

yamoo 2025-12-13 09: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한국 소설 읽지 않은지 10년이 넘은 듯합니다. 전경린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읽지 못하고 있죠. 그도 그럴 것이 세계문학 읽을 작품이 너무 많아요..^^;;

모나리자 2025-12-14 21:36   좋아요 0 | URL
아, 그러시군요. 맞아요. 읽을 책은 차고 넘치지요.
읽는 속도가 따라 가지 못하지요. 언젠가 또 한국문학 읽으실 날 오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