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열린책들 창립 30주년 기념 대표 작가 12인 세트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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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기이한 천재들의 이름과는 달리 장바티스트그르누이라는 그의 이름은 오늘날 잊혀져 버렸다. 물론 그것은 오만, 인간에 대한 혐오, 비도덕성 등 한마디로 사악함의 정도에 있어 그르누이가 그 악명 높은 인물들에 뒤떨어지기 때문은 아니다. 단지 그의 천재성과 명예욕이 발휘된 분야가 역사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 냄새라는 덧없는 영역이었기때문이다. - P9


물론 악취가 가장 심한 곳은 파리였다. 프랑스에서 가장 큰도시였기 때문이다. 파리 안에서도 특히 악취가 지옥의 냄새처럼 배어 있는 곳이 있었는데, 바로 페르 거리와 페론리 거리사이에 위치한 이노상 묘지였다. 8백 년 동안 시립병원과 주변의 교구에서 죽은 시체들이 이곳으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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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
야기사와 사토시 지음, 서혜영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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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여행 때 두 차례 진보초 고서점가를 다녀온 후, 언젠가 그 책방 거리를 누비면서 나날의 기억을 블로그에 연재하고 싶다는 버킷 리스트가 생겼다. 번역 수업 시간에 야기사와 사토시의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을 알게 되고 꼭 한번 읽어봐야지 했던 책이다. 두 편의 연작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과거 시점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대략의 줄거리는 이렇다. 히데아키와 1년 동안이나 사귀고 있던 다카코는 어느 날 그가 결혼한다는 말을 듣고 충격에 빠진다. 그런 마음을 내색하지도 못하고 끙끙 앓던 다카코는 돌연 회사를 그만두고 실의에 빠진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중 10년 동안 만난 적 없던 외삼촌의 연락을 받고 그가 운영하는 모리사키 서점에서 지내면서 서서히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나아가는 이야기다.

 


허리 아픈 외삼촌이 병원에 다녀올 동안 서점을 봐달라는 부탁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얼씨구나 좋다며 흔쾌히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책을 좋아하지도 않고 아직 실연의 아픔에서 헤어나지 못한 다카코가 곰팡내 나는 중고책 서점에서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궁금한 마음으로 몰입하며 읽었다. 아니나 다를까, ‘수면 괴물이라고 할 정도로 잠에 빠져사는 다카코를 보며 외삼촌은 걱정한다. 어느 날 아침 다녀올 곳이 있으니 같이 가자는 외삼촌의 말에 다카코는 시큰둥한다. 앞으로 몇 시간을 자든 일절 간섭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걸자 할 수 없이 따라나선다. 50년도 넘었다는 외삼촌의 단골 가게라는 카페 스보루는 다카코의 기분 좋게 하였고 오랜만에 가슴이 뛰었다. 스보루에 다녀오고 나서 다카코는 달라지기 시작한다. 반전처럼 그동안 왜 이렇게 살아왔는지 후회가 될 만큼 그곳을 좋아하게 된다. 데면데면하기 그지없던 외삼촌과의 관계도 좋아지고 숙맥이라고 여겼던 외삼촌이 다르게 보였다.

 


돌연 집을 나가 5년 동안이나 소식이 없던 외숙모 모모코, 잔소리꾼 같았던 단골손님 사부 씨, 카페 스보루 사람들과 친해지면서 점점 마음의 여유를 찾는다. 다카코의 인생 대반전을 기대했는데 약간 밋밋한 결말은 살짝 아쉬웠다.

 


그래도 참 따뜻한 소설이다. 다카코를 천사라고 여기며 응원해 주는 외삼촌을 보며 겉모습만 보고 판단했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뉘우친다. 자신을 그렇게 사랑해 주는 외삼촌의 마음을 이제야 알다니. 갑자기 떠났던 외숙모는 왜 돌아왔을까. 외삼촌은 모모코의 마음을 알아보려고 다카코에게 부탁을 하지만 모모코는 이미 알고 있다는 눈치다. 갑자기 여행을 가자는 모모코의 말을 거절하지 못한 채 따라나선 다카코는 지난날의 외숙모의 아픔을 알게 된다. 다카코가 쓰라린 실연을 겪은 후 모리사키 서점에서 지낸 날들은 다카코에게 큰 자양분이 되었다. 어쩌면 모리사키 서점은 사람들을 이어주고 품어주는 장소가 아니었을까. 외삼촌은 다카코에게 오랫동안 방황했던 경험을 들려주면서 모리사키 서점이야말로 신성한 곳이고 가장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장소라고 했다.

 


어디에 있든, 누구와 있든 자신의 마음에 거리끼는 게 없다면, 그곳이 바로 자신이 있을 장소야. 그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내 인생의 전반부가 지나갔어. 그리고 나는 이제 가장 마음에 드는 항구로 돌아와 거기에 닻을 내리기로 결정한 거야. 나에게 이곳은 신성한 곳이고 가장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장소야.”(79P)

 


다카코는 어느새 히데아키를 원망했던 마음을 내려놓으며 늘 적당히수동적으로 살았던 태도를 반성한다. 헌책들의 곰팡내가 떠도는 모리사키 서점 2층 작은 방이 그렇게 소중한 공간이 될 줄이야. 책을 좋아하고 진보초 책방 거리를 사랑하는 등장인물들이 엮어내는 따뜻한 이야기다.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곳, 자신이 좋아하는 소중한 공간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 아닐까. 모모코가 다카코에게 여행을 권유한 것도 그토록 사랑했던 이 공간으로 돌아오고 싶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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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라탄이즐라탄탄 2024-04-01 10: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p.79에 나오는 ‘자신의 마음에 거리끼는 게 없다면, 그곳이 바로 자신이 있을 장소‘라는 말이 굉장히 공감이 되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모나리자 2024-04-01 10: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쵸. 이 말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네요. 4월에도 좋은 시간 보내세요. ^^

즐라탄이즐라탄탄 2024-04-01 10:44   좋아요 1 | URL
예 감사합니다. 모나리자 님도 보람찬 4월 되시길 바랍니다!

모나리자 2024-04-01 11:1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나는……………, 이런 식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시간만 허비하고 있는데..."
외삼촌은 나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렇지 않아. 인생이란 가끔 멈춰 서보는 것도 중요해. 지금이러고 있는 건 인생이라는 긴 여행에서의 짧은 휴식 같은 거라고 생각해. 여기는 항구고 너라는 배는 잠시 닻을 내린 것 뿐이야. 그러니 잘 쉬고 나서 다시 출항하면 되지." - P50

우리는 그렇게 한바탕 그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까지 접점이 전혀 없는 것처럼 생각됐던 사람과 불현듯 한 가지일로 맺어지는 기쁨. 그건 설령 상대가 외삼촌 같은 사람이라할지라도, 아니, 외삼촌 같은 사람이니까 더욱 가슴 뛰는 일이었다. - P56


책을 통해 이런 멋진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그 전까지는전혀 알지 못했다. 왠지 지금까지의 인생을 손해 본 것 같은 기분조차 들었다. 나는 더 이상 게으르게 자고 또 자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잠 속으로 도망쳐 들어가는 대신 외삼촌과 가게를 번갈아 보면서 내 방에서든 카페에서든 책을 읽었다. - P57

고요하게 시간이 흐르는 작은 공간에 거처할 수 있게 된 것이 내 인생에서 무척 귀중한 기회라고 생각하게 됐다. 덕분에작가들에 대해서도 꽤 많이 알게 됐고 어느새 단골고객들하고도 친숙해졌다. - P58

나는 그때 결심했단다. 이제 나도 나 혼자만의 좁은 틀 안에박혀 사는 생활은 그만두자, 넓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많은 것을 배우자, 그래서 내가 있을 장소, 내가 거기에 있어도 좋다고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그런 장소를 찾자, 하고. 여행을 떠난것도, 책을 마구 읽어댄 것도 그때부터였어. 그러니까 요컨대다카코와의 만남은 나에게는 일종의 계시 같았다는 이야기야." - P77

어디에 있든, 누구와 있든 자신의 마음에 거리끼는 게 없다면 그곳이 바로 자신이 있을 장소야. 그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내 인생의 전반부가 지나갔어. 그리고 나는 이제 가장 마음에 드는 항구로돌아와 거기에 닻을 내리기로 결정한 거야. 나에게 이곳은 신성한 곳이고 가장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장소야" - P79

"누굴 사랑하는 걸 두려워하지 마.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을때 마음껏 좋아해야 해. 설령 거기서부터 슬픔이 생겨나더라도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사는 따위의 쓸쓸한 짓은 하면 안 돼.
나는 네가 이번 일로 더 이상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을까 봐 무척 걱정이야. 사랑하는 건 멋진 일이란다. 그걸부디 잊지 말아라. 누군가를 사랑한 추억은 마음속에서 결코사라지지 않아. 언제까지나 기억속에 남아서 마음을 따뜻하게데워준단다. 나처럼 나이를 먹으면 그걸 알 수 있어."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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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역을 해야 하느냐 아니면 의역을 해야 하느냐. 오래전부터 번역가들과 학자들 사이에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지만 아직도 결론이 안났습니다. 아니. 결론이 날 수 없는 문제이겠지요. 둘 다 일장일단이 있으니까요. 실제로 제 주변만 보아도 지역이 옳다고 생각하는 번역자가있는가 하면 의역이 맞다고 생각하는 번역자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번역자라면 직역을 할 것인가 의역을 할 것인가, 첫 문장을 옮길때부터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정답이 있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여러분 나름대로 번역의 기본 원칙은 정해야 한다는 것이죠.  - P16

거시적 기준도 있습니다. 거시적 기준은 한 나라의 번역 문화의 풍토같은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영국과 미국은 원문에 충실한 것보다는 자연스러운 영어로 번역하는 것을 중시하는 오랜 전통이 있습니다.
영국과 미국은 번역서를 읽는 독자가 이 책은 저자가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독자를 위해서 영어로 직접 썼구나.‘ 하고 착각을 할 만큼 번역문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게 매끄러운 영어로 번역할 것을 번역가에게 요구하는 풍토가 있습니다. 

마치 저자가 직접 쓴 것처럼 매끄럽게 번역을 해주어야 훌륭한 번역자로 평가받습니다. 공기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번역자라야 뛰어난 번역자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번역자의 이름조차 책에 밝히지 않는 번역서도 적지 않습니다. 영미권의 서평지는 대체로 번역서에 대해서 그 번역문이 원문에 얼마나충실한가는 따지지 않고 얼마나 세련되고 깔끔한 영문인가만을 따지는 경향이 강합니다. - P17

그런데 유럽에서는 가장 먼저중앙 집권 국가와 절대왕정의 틀을 갖추면서 강국으로 부상한 프랑스에서 차츰 자기 문화와 자기 말에 대한 자부심이 커지면서, 그리스어원문에 충실한 것보다는 아름답고 멋진 프랑스어로 번역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퍼집니다. 그래서 유명한 신구 논쟁"이라는 것이 벌어지지요. - P18

그리스어 원어에는 충실할지 몰라도 프랑스어로서는 자격 미달이라는 이유였지요. 선배들에게 비판을 가한 사람 중에는 원문 해독능력이 부족한 함량 미달인 번역자도 있었지만 시대 분위기는 젊은 세대에게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결과는 그리스어보다 프랑스어를 중요하게 여기는 후배 번역가들의 판정승으로 끝났습니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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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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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너무나도 가슴 뭉클해지는 소설을 읽었다. 소설을 읽는 묘미는 독자들을 놀라게 하고 감탄하게 하는 반전이 아닐까. 그런데 이 소설은 끝까지 반전을 보여주지 않고 주인공 스토너의 삶에 초점을 맞추어 그대로 조망한다. 마치 그에게 주어진 총체적인 삶의 과제를 얼마나 잘 수행하는지 구경이나 하자는 듯 작가는 아무런 미사여구도 보태지 않는다. 1월 중순에 읽기 시작했는데 우선순위 일에 밀려 멈추었다가 최근 다시 붙잡고 몰입하여 읽었다. 읽고 난 후에도 한참 동안 애잔한 여운이 남아 두 눈이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1965년에 쓴 이 작품은 50년이 지나서야 유럽 독자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단다. 아마도 그 시대는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뒤늦게 알려진 게 아닐까, 작가에게는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스토너는 농업학교에 가서 공부하면 좋겠다는 부모의 말씀에 따라 미주리 대학에 입학한다. 하지만 뜻밖에도 문학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영문학도의 길을 걷고 교수가 되어 40년 동안 가르치는 일을 한다. 놀랍지 않은가. 농업기술을 배워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우려고 처음으로 부모 곁을 떠났는데 아처 슬론 교수의 영문학 강의를 듣다가 스토너의 삶은 혁명적으로 변화된다. 슬론 교수는 세익스피어의 희곡과 소네트를 가르치는 중에 느닷없이 학생들에게 질문을 퍼붓는다. 그 질문을 스토너에게도 들이대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이 무렵부터 토양화학 등 농업 과목이 낯설게 보이기 시작하더니 결국 농과대 커리큘럼은 모두 빼버리고 철학과 고대역사 기초강의와 영문학 강의를 듣기 시작한다. 도서관의 서가를 누비며 신세계라도 발견한 듯 빠져들며, 그의 문학을 향한 관심은 점점 깊어만 간다.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참전하는 분위기 속에서 스토너는 아처 슬론 교수의 도움으로 강의를 시작하고 나중에는 종신교수가 되기에 이른다. 문리대 학장인 조시아 클레어몬트의 사촌뻘인 이디스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거기까지만 보면 탄탄대로를 걷는 듯 보였다.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설렜던 스토너는 결혼하자마자 곧 실패한 결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거기서 달아날 생각은 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 어머니의 집요한 교육관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고스란히 안고 성장한 이디스는 스토너가 가까이 오는 것 자체를 거부했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아이를 낳겠다는 결심을 한 것일까. 딸 그레이스를 낳았지만 이디스는 아프다며 늘 누워 지냈기에 육아도 살림도 스토너 몫이었다. 그레이스의 기저귀를 갈고 음식을 만들어 먹이면서 이디스에게 줄 수 없는 사랑을 딸에게 줄 수 있어서 감사하고 행복해했다. 멋대로 스토너의 서재를 뒤집어놓고 구석방으로 내몰렸어도 말 한마디 못 하고 순한 양처럼 참고 견디는 모습은 애처로웠다. 그레이스와 친하게 지내는 것을 시샘하며 떼어 놓는 등 약한 척 꾀병을 부리던 이디스는 본색을 드러내며 스토너를 괴롭힌다. 놀랄 법도 한데 스토너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그나마 누릴 수 있는 작은 일에 감사하며 체념한다. 인내의 달인이라고 해야 할까.

 



작가는 주인공 스토너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평생을 살았다는 점에서 그가 진짜 영웅이며, 그의 삶이 결코 슬프고 불행한 것은 아니라고 했단다. 역시 그 부분은 공감할 수 있다. 완벽한 삶은 없다고 했던가. 열변을 토해 가며 영문학을 가르치고 그를 시기하는 로맥스나 워커, 이디스 등 악의 무리에게 당하면서도 한마디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헤쳐가면서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그에게 학문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캐서린과 잘 되었다면 가난하고 불행한 그의 삶이 조금은 보상이 되었을 텐데. 어쩌면 그의 내성적인 성격과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려고 했기에 고독과 슬픔이 더욱 크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다가 병으로 몸져누워 지난날을 돌아보는 그의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웠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병든 몸으로 죽음에 맞닥뜨리게 되면 한없이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이제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없다는 걸 깨달은 스토너는 이디스를 부르려다 말고 자꾸만 자신에게 묻는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며 살아갈까. 훗날 언젠가 행복이 올 거라 믿으며 지금을 대충 살기도 하지 않나. 죽어가는 스토너의 독백은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지금 함께 하는 가족, 지인, 주변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친절한 말 한마디와 미소를 나눌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그리고 자신을 돌보는 일도 중요하다. 나중은 없다. 지금 있는 곳에서 할 수 있는 걸 하는 것이 후회를 줄이는 삶이 되지 않을까. 스토너의 인생을 들여다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기쁨 같은 것이 몰려왔다. 여름의 산들바람에 실려온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실패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런 것이 무슨 문제가 된다고. 이제는 그런 생각이 하잘것없어 보였다. 그의 인생과 비교하면 가치 없는 생각이었다.’(p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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