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소비자가격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머리맡에 있던 초코파이 상자를 품에 안은 일로 그날을 기억합니다이한 여덟 시간 만의 공복이었을까요 상자의 절취선을 뜯어올라가면 으드득 열두 개의 검은 달이 떴더랬습니다. - P102
해남으로 보내는 편지오랫동안 기별이 없는 당신을 생각하면 낮고 좁은 책꽂이에 꽂혀 있는 울음이 먼저 걸어나오더군요 - P105
눈을 감고눈을 감고 앓다보면오래전 살다 온 추운 집이이불 속에 함께 들어와떨고 있는 듯했습니다 - P82
어지러운 저녁들이제가 모르는 기척들을오래된 동네의 창마다새겨넣고 있었습니다 - P83
골목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본 골목은, 왼편 담벼락과 오른편 옹벽처럼 닫혀있다 막 올려다본 하늘이 골목처럼 어두워지고 있다 - P66
별의 평야군장(軍)을 메고 금학산을 넘다보면 평야를 걷고 싶고평야를 걷다보면 잠시 앉아 쉬고 싶고 앉아 쉬다보면 드러눕고 싶었다 철모를 베고 풀밭에 누우면 밤하늘이 반겼다그제야 우리 어머니 잘하는 짠지 무 같은 별들이, 울먹울먹오열종대로 콱 쏟아져내렸다 - P70
고분처럼 뚱뚱한 동네 엄마들이 깨어날 시간입니다 저는아직 제 방으로도 못 가고 천마총에도 못 가보았지만 이게꼭 거리의 문제만은 아니어서요 결국 무엇을 묻어둔다.는 것은 시차(時差)를 만드는 일이었고 시차는 그곳에 먼저가 있는 혼자가 스스로의 눈빛을 아프게 기다리는 일이었으니까요 - P73
우리는 매번 끝을 보고서야 서로의 편을 들어주었고 끝물과일들은 가난을 위로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입술부터 팔꿈치까지 과즙을 뚝뚝 흘리며 물복숭아를 먹는 당신. 나는 그 축농(蓄膿) 같은 장면을 넘기면서 우리가 같이 보낸절기들을 줄줄 외워보았다 - P49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도 했다‘라고 그 사람의 자서전에쓰고 나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문장을 내 일기장에 이어 적었다.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 P55
나는 혼잣말을 할 때면꼭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 P30
어제는 책을 읽다 끌어안고 같이 죽고 싶은 글귀를 발견했다 대화의 수준을 떨어뜨렸던 어느 오전 같은 사랑이 마룻바닥에 누워 있다 - P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