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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리커버)
대런 애쓰모글루 외 지음, 최완규 옮김, 장경덕 감수 / 시공사 / 2012년 9월
평점 :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거창한 제목이 나의 심장을 고동치게했다. 더욱이 KDI '거시경재' 연수에서 한 연구원분이 강력하게 일독을 추천하였기에 빠른시일 내에 읽어보고 싶었다. 경제학 연구원에게 많은 깨달음을 준 책이라하니, 각종 수치가 난무하는 어려운 경제학 책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에는 경제 수치는 찾아보기 힘들다. 세계사를 서술하며 풍부한 사례들 깊이있게 제시하며 성공하는 국가와 실패하는 국가의 차이를 서술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한국의 역사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식민지 근대화론과 박정희의 경제개발을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해야할지 이 책의 통찰을 빌리고 싶었다.
성공한 국가의 비결은 무엇일까?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A. 로빈슨은 "포용적인 경제제도는 명예혁명이 가져다준 포용적 정치제도의 기반위에 마련된 것이다."(302쪽)라고 단언한다. 정치적 발전 즉, 포용적 정치제도가 선행되어야 포용적 경제제도가 안착한다. 이것이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탄생할 수 있게 했다.
한국사를 가르치며 조선 후기 경제, 사회, 문화, 사상면에서 근대화의 싹이 트고 있었지만, 정치가 발목을 잡았다고 가르쳤다. 세도정치 60년 동안 조선 사회는 근대화의 기초체력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이렇게 수업을 하면서도 조선후기에 조선은 이미 쇄락해가고 있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주장을 떠올리며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다른 부분은 모두 발전했는데, 정치부분이 말목을 잡았다는 설명이 깨림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A. 로빈슨의 주장은 나의 설명이 맞았음을 뒷받침해주었다.
포용적 경제제도는 포용적 정치제도를 낳고 창조적 파괴를 이끌어 내면서 성공하는 국가가 탄생한다. 조선 후기 세도정치는 우리가 근대화를 할 수 있는 기초체력을 형성할 기회를 없애버렸다. 흥선 대원군이 내정개혁을 했으나, 시기를 놓친 개혁이었다. 조선은 일본과 청나라의 간섭속에서 패망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정치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한다. 우리의 소중한 민주주의를 지켜야하는 이유는 우리경제, 더 나아가서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이다.
반면, "착취적 정치제도는 착취적 경제제도로 이어져 다수를 희생시키면서 소수의 배만 불려준다."(48쪽) 아프리카의 수많은 나라들이 실패의 늪을 헤매고 있는 것은 식민지배를 거치면서 착취적 정치제도와 착취적 경제제도가 새로운 옷을 입고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수많은 나라들에 "식민통치의 뼈대는 식민지 시절 초기보다 1960년대에 훨씬 더 복잡하고 해로운 제도적 유산을 남겼다."(174쪽) "산업혁명이 아프리카에 확산되지 못한 것도 착취적인 정치경제제도가 끈질기게 유지되고 재생산되는 기나긴 악순환을 경험했기 때문이다."(175쪽)
식민지 모국은 떠났지만, 새롭게 지배층을 형성한 엘리트들은 식민지의 착취적 통치제도를 없애지 않고 나라를 통치했다. 주인만 바뀌었을뿐, 착취적 통치제도는 변화하지 않고 아프리카를 괴롭혔다. 아프리카인이 열등해서라기보다는 식민지배의 착취적 통치제도라는 유산이 아프리카를 고통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런데, 우리는 같은 식민지배를 받았으나, 38선을 경계로 남한과 북한은 극명한 대비를 보이고 있다. 식민지시기 일제에 의해서 형성된 권위주의적 통치제제가 남쪽에서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냈다. 그리고 후진국에서 선진국에 들어서는 기적을 성취해냈다.
한국의 경제성장을 말할때, 박정희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박정희와 대비되는 정권이 콩고의 지배층이다. 콩고의 정체제도는 뿌리까지 철저히 절대주의적이었다. 지배 엘리트들은 국민의 생활을 향상시키는데는 관심이 없었다. 산업발전을 꾀하기 보다는 그들의 부를 확대시키기 위해서 국민들을 수탈했다. 박정희 정권과 콩고 지배층의 차이는 유능과 무능의 차이가 아니다. 경제개발의 의지가 있었는냐, 없었느냐의 차이이다. 자신과 소수 권력층만의 배를 불리는데만 혈안이 된 정권이었느냐, 국가 경제 발전이라는 대의를 수행하는 능력과 의지가 있었느냐의 차이였다. 콩고의 지배층에 비한다면, 박정희 정권은 무책임한 정권은 아니었다.
수탈적이고 착취적인 정치체제는 수탈적이고 착취적인 경제체제를 만들어 내어 국가의 실패로 이어진다.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A. 로빈슨의 설명에 따른다면 박정희 정권은 실패해야했다. 그런데, 박정희 정권은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이에 대해서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A. 로빈슨이 권위주의 정권인 소련의 스탈린 정권의 경제성장을 서술한 부분을 참고해볼만하다. "소련의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 권력을 사용해 효율성이 대단히 떨어지던 농업에서 공업으로 자원의 재분배가 가능했기 때문이다."(141쪽)라고 설명한다. 권위주의 정권에서도 경제는 발전할 수 있다.
스탈린과 마찬가지로 박정희도 농업에서 공업으로 자원 재분배를 강력한 권력으로 추진했다. 강력한 박정희식의 경제개발 정책은 수많은 노동자의 희생과 국민의 자유를 억압한 댓가를 치루며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소련과 다른점이 있다면, 소련은 권위주의 정권의 경제개발이 한계점에 도달했음에도 포용적 정치제도로 변화하지 못했기에 국가의 실패로 이어졌지만, 한국은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통해서 포용적 정치제도로의 변화를 이어갔고, 이것은 포용적 경제제도로 이어져 한국의 경제 성장을 지속시켰다. 이러한 설명은 한국의 민주화 운동이 없었다면 박정희 정권이 제2차 석유파동을 극복하지 못하고 무너졌던 그 시점에 한국은 주저앉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민주화 운동을 지속했으며, 결국 6월 민주항쟁으로 포용적 정치제도로 성큰 다가갔다. 1987년 외환위기 이후에 박정희 향수에 취해 있던 노인세대들이 박정희를 그리워하며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탄생시켰지만, 박정희 시대의 놀라운 경제 성장을 재현하지는 못했다. 한국은 더 이상 권위주의적 경제성장을 이룰수 있는 후진국이 아니었다.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A. 로빈슨은 경제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강조한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책은 경제학 서적이기 보다는 역사학책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수많은 역사적 사례를 제시하며 포용적 제도가 국가의 성공과 실패의 핵심 비결이라 강조한다. 그러나, 역사의 우연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 우연은 역사학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 역사의 구성원의 능력과 열망에 의해서 상당부분 좌우될 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식민지배를 당한 보츠와나는 성공한 국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역사에서 인간의 능력과 결정의 중요성을 새삼 느낀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에는 소수 엘리트들만을 위한 착취적 정치제도와 착취적 경제제도는 없는지 생각해본다.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이 요란히 울려퍼지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