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역사 - History of Writing History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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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시민! 그를 처음 만난 것은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통해서 였다.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에 친구가 두권의 책을 빌려주었다. 하나같이 재미있고 많은 진실을 알려준 책이었다. 그 중한권이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였다. 역사의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유시민은 재미있게 풀어 놓았다. 그 책을 유시민이 지명수배를 피해 도망다니면서 쓴 책이란 사실을 성인이 되어서야 알았다. 그리고 그의 책을 '국가란 무엇인가'를 거쳐, '역사의 역사'를 통해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나도 성장했지만, 유시민의 글쓰기도 많이 변화했다. 그의 역사 글쓰기는 어떻게 변했을까?

 

 

1. 유시민님, 맞는 표현인가요?

  전문역사가가 아닌, 유시민의 책을 역사를 전공하고 역사를 가르치는 일을 하는 나로서는 쉽게 읽을 수 만은 없다. 하나하나 과연 유시민의 말이 옳은지를 눈독들이며 읽었다. 직업병이었다. 나를 불편하게 만든 몇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만리장성 바로 너머 요동지역'이라는 표현이 과연 옳을까? 문제의 문장을 살펴보자.

 

  "신채호는 한걸음 더 나아가 고대 우리민족의 생활 터전이 압록강이나 대동강 이남이 아니라 만리장성 바로 너머 요동 지역이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유시민은 주어를 '우리민족의 생활 터전이'로 본다면, '만리장성 바로 너머'는 요동 지역이 아니라, 북경이어야한다.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만이, '만리장성 바로 너머'는 '요동지역', 혹은 요서지역이 될 수 있다. 유시민의 실수었을까? 아니면, 공간개념이 확실하지 않아서 생긴 오류일까?

  둘째, 백남운은 '민족주의 사학자'일까? 사회경제사학자일까? 유시민은 '제6장 민족주의 역사학의 고단한 역정, 박은식, 신채호, 백남운'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백남운은 사회경제사학자이다.  이들 사회경제사학자들은 민족주의 사학자들을 실증성이 약하다며 비판한 자들이다. 그런데 유시민은 이들을 한데 묶었다. 그 이유가 이해되지 않는다. 백남운이 사회경제사학자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사회경제사학자 백남운을 민족주의 사학자로 묶은 이유를 서술했어야했다. 그것이 독자들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특히, 이 책을 읽을 중고등학생은 유시민의 책을 그대로 믿고 시험에 오답을 고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셋째, '선사시대'를 '선사시대'로 부르는 것은 합당한 표현일까? 유시민의 주장을 살펴보자.

 

  "인지혁명으로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볼 경우 선사시대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 농업혁명 전에도 역사가 있었다. 유적과 문헌 사료가 없고 그 때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과학적 방법을 몰라서 파악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 문장을 읽으면, 유시민은 '선사시대'를 역사가 없는 시대로 이해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선사시대'란 역사 이전의 시대란 뜻이다. 즉, 역사시대는 문헌기록이 남아있는 시대를 뜻한다. 역사란 기본적으로 문헌기록을 토대로 과거를 연구한다. 고고학적 자료는 부차적인 자료일 뿐이다. 그러하기에 선사시대는 역사 이전의 시대로 이 분야를 연구하는 학문분야는 고고학이다. 따라서 '선사시대'라는 표현은 '역사 없는 시대'라는 뜻이 아니라, 역사적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시대라는 뜻이다. 유시민이 선사시대를 '역사 아닌 시대'로 잘못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자의 실수일까?

 

2. 유시민님, 동의하지 않습니다.

  유시민의 날카로운 정치 평론과 시사분석에 감탄하며 동의했던 시절이 있다. 그를 지지했고, 그가 정계를 떠난다고 발표했을 때, 그를 알아주지 않는 국민들이 못내 아쉬웠다. 그러나, 그가 쓴 역사책들에 나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 정치와 시사를 바라보는 그의 해안에는 감탄하지만, 역사에 대한 그의 견해는 한숨이 나온다.

  첫째, '무함마드가 문맹이어서 신의 말씀을 적지 못하고 암송했다는 말은 믿기 어렵다.'?? 유시민의 글을 다시 살펴보자.

 

  "요즘 말로 하면 오랫동안 '무역회사'에 근무한 '젊고 똑똑한 사장님의 남편'이 글을 몰랐을 리 있겠는가."

 

  위인 중에서는 문맹인 자들이 꾀 있다. 칭기즈칸도 문맹이었다. 그러나 글을 몰랐음에도 현명한자들의 말에 귀기울이며, 지혜를 얻었다. 이를 통해서 제국을 경영했다. 잉카문명의 경우 귀푸라는 채색 매듭을 사용하여 정보를 기록했지만, 문자는 없었다. 문자가 없이도 제국이 경영된 사례는 역사에서 흔하게 살펴볼 수 있다. 인도의 경우, 문자 기록이 많지 않다. 인도인들은 암송을 통해서 지혜와 지식을 전수했다. 불교 경전이 정리된 것도 중국과 인도를 오고간 승려들에 의해서 중국땅에서 한자로 번역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무하마드가 문맹이었다는 사실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생각한다. 오히려 글을 알아야 회사를 경영할 수 있다는 유시민의 생각이 '암송의 위력'을 이해못한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우리 할머니들은 글을 알지 못하지만, 집안의 대소사를 기억하고 처리했다.

  둘째, '(14세기 까지) 이슬람 문명과 중국 문명은 만나지 않았다.'? 맞는 말일까? 일찍이 한나라 무제 시기에 장건에 의해서 비단길이 열렸다. 이 때부터 로마와 중국은 교류를했다. 이러한 교류에 사막의 대상들이 활약했다. 동서가 교류하는데 서아시아 지역의 상인들의 역할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622년 이슬람 공동체가 탄생한 이후, 이슬람 세력은 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세력을 팽창해나갔다. 618년 건국된 당나라에도 이슬람 상인들이 들어와 활약했다. 몽골제국의 수도 카라코롬에도 이슬람인들이 드나들었다. 14세기 까지 이슬람 문명과 중국문명이 만나지 않았다는 헌팅턴의 주장을 유시민은 어이없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 그리고 그의 주장에 말려들었다. 역사적 사실을 과역 그러한지 비판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자신의 이론에 사실을 왜곡해서 끼워 맞추는 비역사 전공자들의 한계를 유시민은 답습했다.

  셋째, 문명은 충돌하는 것인가? 교류하는 것인가? 유시민은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을 높이 평가한다. 그의 책을 이 책의 여기저기에서 인용하면서 그를 세계적 역사학자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역사학자도 아닌자를 세계적 역사학자의 반열에 올려 놓을 정도로 그는 대단한 인물일까? 나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토인비는) 자신이 만든 가설 또는 이론을 어떤 국제정치학자가 냉전 붕괴 이후 세계 질서의 재편 과정을 해석하고 제3차 세계대전을 예방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데 쓰게 되리라고 예상했을가?"

 

  문명은 충돌할 것이라는 헌팅턴의 주장을 많은 역사학자들이 비판했다. 정수일 교수는 '실크로드학', '동서문화교류사'를 연구하면서, 문명은 교류하는 것이며,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것이 자신이 역사를 연구하는 소명이라 말했다. 에이미 추아는 '제국의 미래'라는 책을 통해서 제국이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이질 문화를 배척하기 보다는 나와 다른 문화를 포용했기 때문이라 밝히고 있다. 문명은 교류해야하며, 교류의 역사이다. 충돌은 갈헐적으로 일어났던 사건일 뿐이다. 그 충돌을 막기 위해서는 문명이 교류한 역사를 밝히고, 그 문명의 교류를 확대해야한다. 유시민이 이점을 통찰하길 바란다.

 

 

  오랜만에 유시민의 책을 읽었다. 유시민의 책은 쉽게만 읽히는 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는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알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을 이땅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바쳤던 그가, 우리에게 많은 책들을 선물하고 있다. 그 선물이 계속되길 바란다. 물론, 역사분야의 책들이 나온다면, 나는 유시민의 책을 비판적인 관점에서 볼 수 밖에 없다. 이점을 유시민도 이해하리라 믿는다.

 

ps. 유시민이 10번 읽었다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쉽게 풀어 쓰는 것도 좋으이라 본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청소년을 위해서 풀어쓰는 것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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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5 06: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15 0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비종 2018-12-15 07: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고등학교 다닐 때, 역사를 가장 못했고 여전히 난해한 분야입니다. 전공하신 분께는 디테일한 오류들이 눈에 띄는가 보네요. 잘 읽었습니다.^^

daram 2018-12-15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입니다 유시민은 원래 제목처럼 삐딱한 인간이죠. 세치혀로 세상을 외곡하고 어찌해 보려 하는.. 지식인의 입장에서 보면 유시민은 선동가의 냄새가 짙습니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지 가벼워 졌고 사회에 대한 인사이트가 없어져 버린 어찌보면 문맹사회와 다를 바 없습니다

강나루 2018-12-15 10:56   좋아요 2 | URL
제 글을 오독하셨습니다
유시민은 지식소매상으로 지식을 쉽게 일반인에게 전달하려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전공자가 아니다보니 글에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세상을 외곡하고 선동하는 사람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평가입니다
그의 삶을 토대로 볼때 그는 세상을 바로 잡으려했던 가슴 띄거운 사람이었습니다
 
영초언니
서명숙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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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안도현 시인의 시를 기억하는가? '영초언니'라는 책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암흑과 같은 유신시대를 살아간 불꽃 같은 청춘들의 드라마이다. 처음 팟캐스트 '북티셰'에서 낭독해준 '영초 언니'의 서문은 나의 가슴을 아리게했다. 최순실이 '여기는 더이상 민주주의 특검이 아닙니다'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자, 서명숙은 여성학생운동의 신화라 할 수 있는 천영초를 떠올린다. 지금은 교통사고로 지능이 1~3살 정도로 낮아진 자신의 멘토를 떠올리며, 이 책을 집필해야한다는 의무감을 갖았다고 한다. 한동안 '영초언니'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읽고 싶은 책이 많았기에 언젠가는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으나, 읽지 못하고 있었다.  2018년 겨울이 다가온다. 이 겨울이 가기전에 불꽃 같은 삶을 살아온 그들의 기억을 읽기로 결심했다.

 

1. 가장 극단적 좌파는 극단적 우파가 될 수 있다.

  저자 서명숙은 제주도에서 태어나 제주도에서 자라고 제주도에서 올래길을 만들었다. 그녀가 어린 시절을 추억하면서 가장 안타까워하는 것이 있다.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독재정권의 헌신적인 지지자라는 사실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제주도는 4.3 사건이 발생한 섬이다. 그런데도 제주도는 선거에서 집권여당이 압승하고, 3선 개헌 유신헌법국민투표에서 100%에 가까운 압도적 찬성을 했다. 서명숙은 이를 무척이나 가슴 아프게 통탄한다. 제주도가 보수적 섬인 이유를 서명숙은,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변방에 있기 때문이라는 1차적 한계를 지적한다. 그러나 이것은 결정적 요인이 되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4.3사건의 후폭풍 때문이었다. 서명숙이 인정했듯이, 4.3사건으로 제주도의 수많은 사람들이 학상당했다. 제주도에서는 아직도 4.3의 아픔이 제대로 치유되지 않고 있다. 여당을 찍지 않으면 언제 공산당으로 몰려 일가족이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은 제주도를 보수의 섬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사례는 대구, 경북지역에서도 나타난다. 일제강점기 제주도는 '조선의 모스크바'라고 불렸다.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을 수도없이 배출했다. 박정희의 형 박상희도 공산주의자였고, 박정희도 남로당원이지 않았던가? 그러나, 대구폭동 혹은 대구항쟁으로 불리는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면서 대구, 경북지역은 탄압을 받게된다. 박정희가 쿠데타로 집권하고 나서, 대구, 경북지역에 수많은 공안사건이 만들어진다. 일가족이 공산주의자로 몰려서 죽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은 보수를 찍어야 산다는 믿음을 갖게된다. 최순실 사태를 겪으면서도 보수의 아성을 스스로 붕괴시키지 않은 그들을 보면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보수가 되어야한다는 처절한 몸부림을 보는듯했다. 이들이 스스로의 알을 깨고 진실의 세상에 나올 수 있을지. 나온다면 그 때가 언제인지 .......

 

2. 지옥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

  당신이 지옥에 있다면, 천국에 있는 가족에게 지옥의 모습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어떤 사람은 있는 그대로 지옥의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모습을 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국에 있는 가족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기에 지옥도 살만한 곳이라 말할 것이다.

   '영초 언니'를 읽으며,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강의', '담론'이 떠올랐다. 신영복 선생의 책에서 소개된 감옥소는 인간을 새롭게 태어나게하는 '대학교'였다. 신영복 선생은 감옥에서 인간관계와 삶의 진리를 깨달았다. 감옥에도 애잔한 인간미가 있어보였다. 그러나, '영초언니'에서 묘사한 감옥은 모순과 불합리가 쌓인 지옥의 모습이었다. 가장 그녀를 분노케하는 것은 감옥안에서도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돈많은 '범털'들은 간수에게 뒷돈을 주며, 따뜻한 물을 여유롭게 사용하고, 각종 편의를 제공받는다. 그러나 돈없는 '개털'들은 그 안에서도 차별을 받아야했다.

  신영복 선생은 감옥살이의 고단함은 여름보다 겨울이 낫다했다. 겨울에는 서로의 온기를 느끼려 서로를 끌어당기지만, 여름은 서로의 열기를 피하려 서로를 증오하는 마음을 갖기 때문이란다. 신영복 선생은 감옥 생활의 비극을 보면서 인간 관계와 삶의 철학을 깨우쳤다. 그러나 '영초언니'에서는 신영복 선생의 심오한 삶의 통찰이 보이지 않았다. 단지, 사회적 모순의 희장자로 돈없고 빽없어서 감옥에 온 불쌍한 소년들에 대한 애틋한 시선과 그 안에서 알게된 소중한 인연들에 대한 이야기가 서술되어 있다. 같은 생활을 하더라도 그릇에 따라서 바라보고 깨닫는 깊이가 다른다.

 

3. 우리안의 아이히만

  한나 아렌트를 나는 좋아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녀의 탁월한 안목은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그녀의 대표작 '예수살렘의 아이히만'을 감동 깊게 읽은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데, 서명숙은 한국의 아이히만을 만나게 된다. 영초언니를 만나며 담배만 배운 것이 아니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갖고 용기를 얻었다. 결국 영초언니와 함께 경찰에 잡혀 고문을 받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아이히만의 모습은 너무도 충격적이다. 서명숙을 전기고문한다며 협박했던 형사가 사실은 소문난 효자에 장기간 투병중인 부인을 정성껏 돌보는 아들이자 남편이었다. 아이히만은 독일에만 있지 않았다. 생각하지 않는자! 위에서 선생님이, 자신의 상관이 시키는 일을 열심히만 하는자는 악마가 될 수있는 자질을 갖고 있는자들이다. 우리주변의 모범생들이 사실은 악마가 될수있는 자들임을 서명숙의 책을 통해서 다시한번 확인한다.
  생각하자! 자신의 삶에 주인이 되자! 학교의 교칙에 이의를 제기하고, 사회의 잘못된 일들에 대해서 잘못되었다고 과감하게 'NO'를 외치자! 'NO'를 할 수 없는자들은 불의에 맞서 '안된다'라고 외칠 수 없다.

 

4. 아! 영초언니!!

  감옥에 갔다와서도 '더욱 가열차게 끝까지 싸우겠다.'던 영초언니는 서서히 무너져 내려간다. 결혼을 했으나, 남편은 가정경제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결국 생활전선에서 그녀는 다단계회사에 발을 담그고, 민주화운동을 했던 친구들 까지 끌어들인다. 공부는 잘하지만,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자녀를 위해서 캐나다행을 선택하고, 남편과 이혼한다. 캐나다에서 행복하게 살던 그녀가 교통사고로 1~3살의 지능을 가진 영초가 되어버렸다.

  서명숙의 멘토는 무너져 버렸다. 그녀와 함께 이땅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투쟁했던, 이해찬, 유시민 등은 사회의 촉망받는 인사가 되었지만, 천영초 그녀는 세상의 나락으로 떨어져 내려갔다. 독재자의 잔당들이 떵떵 거리며 잘살고 있는 오늘! 왜? 불의에 맞서 자신의 청춘을 불태운 그녀가 이리도 불행한 삶을 살아야할까? 기독교 신자인 천영초 그녀에게 신은 존재할까? 아니, 신을 원망할 수없다. 신은 존재한다고 증명할 수 없기에.... 이땅의 천영초가 흘린 피와 땀의 댓가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이들에게 진빚을 갚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원망해야할 것이다.

 

  이땅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자신의 청춘을 불꽃 같이 살다가, 연탄재가 되어 뒹구는 수많은 천영초들이 있다. 그녀들을, 그들을 함부로 비난하지 말자! 너희는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온적이 있더냐? 불타는 뜨거운 가슴이 없다면, 이땅의 천영초들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그녀에게 진 빚을 이책을 주변인들에게 권하면서 갚으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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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 한국 200만 부 돌파, 37개국에서 출간된 세계적 베스트셀러
마이클 샌델 지음, 김명철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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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란 무엇인가' 얼마나 거창한 주제인가! 솔직히 이 책이 베스트 셀러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삐딱한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잘팔리는 이유는 저자가 하버드대 교수라는점과 논술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 안성맞춤의 책이라는 점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 이책을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생각과는 달리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많은 생각할 꺼리를 제공하는 값진 책으로 입소문이 났다. 수많은 딜레마 속에서 주제를 관통하는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어떠한 선택을하며, 왜? 그러한 선택을 하였는지를 논리적으로 말하도록하는 책이다. 마치 유대인 들이 예쉬바라는 그들의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하브루타와 같은 책이다. 드디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책장에서 뽑아들었다. 과연 '정의란 무엇인가'는 나에게 어떠한 지적 충격을 줄까?

 

1. 이제는 고민해야할 문제, 징병제인가 지원군인가?

  지금은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진 김두관이라는 정치인이 '모병제'로 전환할 것을 대통령 공약으로 들고나온 적이 있다. 김두관을 지지하지는 않았으나, 이제는 모병제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다.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도 못했고, 김두관은 예비경선에서 탈락했다.

  마이클 샌델이 '징병제'와 '지원군' 중에서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이지를 우리에게 물었다. 질문은 징집과 고용중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라는 일차원 수준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병사를 어떻게 충당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에서, 징병제가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까지 고려하는 4차원적 논의로 이어진다. 자원군을 시행한 결과 사회적 약자들만 군대에 간다. 부유층은 전쟁에 둔감해진다.자신들의 자녀들이 전쟁에 희생될 이유가 사라지고, 국가는 아니, 군산복합체는 자유롭게 세계의 전쟁터에 자국군을 보낸다.

  로마 용병에 의해서 망한 로마제국을 떠올려도 알 수 있듯이, 징병제를 실시할 경우 군인들의 충성심이 용병들보다는 높기에 국가를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징병제를 실시해야한다고 단순히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무기가 고도화되면서 전문적 군인이 필요해지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젊은이들을 2년여 동안 군대에서 창의력을 잃고 획일적 군사문화를 배우게하는 것은 부적합한 행위라고 생각했다. 프랑스의 외인부대 병력의 1/4이 라틴아메리카인이다. 프랑스의 전투력이 징병제를 실시하는 나라 군인보다 못하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지원군' 혹은 '모병제'는 국가가 국민의 반감을 덜 받으면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도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한다.  "시민의 의무를 팔릴 물건으로 전락시키는 행위는 자유의 가치를 옹호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깎아내린다"라는 장 자크 루소의 말을 떠올리며, 과연 '지원군' 제도가 옳은 제도인지 스스로에게 되묻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더욱 고차원으로 상승한다. 4차 산업혁명시대가 도래하면서 우리는 새로운 질문을 받게된다. 로봇이 전쟁에 도입되기 시작했다. 살인 기계를 만들려고 했다고 세계의 로봇과학자들이 카이스트에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던 일이있다. 물론, 이는 단순한 오해로 끝났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로봇이 인간을 사냥할 수도 있다는 공포심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로봇이 아니더라도 전투복을 입으면 힘이 터미네이터처럼 강해지고, 삽시간에 적을 초투하시킬 수 있는 가공할 무기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시대의 흐름은 전쟁도 기계가 보다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시대로 옮겨가고 있다. '징병제'나 '지원병'이냐는 논란 자체가 필요없는 시대가 도래할 수도 있다. 나의 생각이 여기에까지 이르자, 인간이 전쟁을 상정해서 서로를 죽이는 비극을 만들어 낸다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 닥칠 것이라는 예감이들었다. 그리고 서로를 죽이려 살인 로봇을 만들기 시작한다면, 이는 아마게돈의 시작일 것이다.

 

2. 공리주의자? 그들은 악마인가?

  중학교 도덕교과서에서 '벤담'이라는 사람의 이름과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그의 명언을 처음 접했다. 최대다수가 최대한으로 행복하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사회인가? 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그러나, '공리주의'라는 말은 정확한 번역어가 아니었다. 마이클 샌델은  1970년대에 미국에서 잘팔린 핀토라는 소형차 이야기를 한다. 뒤에서 이 차를 들이 받으면 연료통이 폭발한 위험이 있다. 회사는 사람 한사람의 값을 정해서 죽는 사람에게 들어갈 값과 리콜하는 비용중에서, 사람값을 치뤄주는 것이 값싸다는 결론을 내린다. 여기에는 공리주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다. 공리주의는 역설적이게도 모두가 행복하기 보다는 모두를 효용성이라는 단어를 동원해서 불행하게 만드는 논리였다. 더욱이, 벤담은 죽어서도, 시신을 방부처리하여 국제 벤담학회 창설 모임에 참석하기도 했다. 죽어서도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에 기여하고 싶었을 것이다. 끔찍한 극단적 공리주의자의 모습을 한 벤담을 보면서 공리주의에 대한 혐오감이 증폭 되었다.

  그러나, 같은 칼이라하더라도 강도가 사용하면 사람을 살해할 수 있는 도구이지만, 어머니가 사용하면 맛있는 요리를 해주는 사랑스런 도구가 된다. 같은 공리주의를 극단적으로 사용한 예가 이 책에 소개되어 있다. 빌게이츠의 100만 달러를 형편이 어려운 100명에게 1만 달러씩 나눠준다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다는 주장이 소개되어있다. 같은 이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수구들의 논리가 될 수도 있고, 급진 개혁주의자의 사상적 무기가될 수도 있다.

  그럼, 같은 사상을 어떻게 사용해야할까? 순간, 나의 머릿속에는 '사상의 노예가 되기보다는 사상의 지배자가 되자!'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특정 이론과 주의에 매몰되어 이론의 노예가 되어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 주변에 사이비 종교에 노예가 된 것도 한예이다. 말은 타기 위해서 존재한다. 그런데, 말을 위해서 사람이 존재한다면, 말에 의해서 부림을 당한다면, 그 삶은 존재가치가 사라진다. 주인이되자! 나의 삶에 주인이되자! 특정 이론과 사상의 노예가 되기 보다는, 그 사상의 주인이되어 사상의 등에 올라타자!!

 

3. 롤스의 주장에는 따뜻한 인간의 피가 흐르는가?

  마이클 샌델의 논리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공리주의에는 따뜻한 인간의 피가 흐르지 않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벤담 뿐만 아니라, 밀턴 프리드먼의 주장은 공리주의 보다 더 냉혹해 보인다. 그는 우리가 불공평을 수정하려 노력해서는 안되며, 불공평과 더불어 사는 법을 터득하고 그 결과 생겨나는 이익을 즐겨야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밀턴 프리드먼의 주장은 자본주의 사회의 냉혹함을 드러낸다. 약자를 도와서는 안된다는 그의 주장은, 주장의 논리성과는 상관없이 나를 몸서리치게 만들었다. 인간의 얼굴을 하지 못한 공산주의가 전체주의 괴물이 되어 한세기를 불행하게 만들었다. 인간의 얼굴을 하지 않은 신자유주의는 또 다른 괴물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이에 반해서 롤스의 '정의론'은 따뜻한 이상사회를 향한 안내서로 보인다. 극단적 양극화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 '정의론'을 참고해야하지 않을까? 특히 "우연히 주어진 선천적이거나 사회적인 환경을 자신을 위해 이용하려면 그 행위가 반드시 공동의 이익에 도움이 되어야한다."라는 주장은 되새겨봐야한다.

  그러나, 롤스의 주장에도 문제점이 있다. 우선, 롤스는 무지의 장막 뒤에서 원칙을 정할 때 사람들이 자신은 소수에 속할 것라고 믿기에 공리주의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 가정했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을 바라보면 롤스의 주장이 틀렸다고 단정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양반의 후손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조선시대 전기 양반은 많아야 2~3%였다. 사극을 보더라도 자신을 왕족과 양반에 감정이입하지, 노비에 감정이입하지는 않는다. 드라마를 보더라도, 자신을 재벌2세나 신데렐라에 감정이입하지, 갑질당하는 소시민에 감정이입하지 않는다. 한국의 일반인들은 대중매체에 현혹되어 자신이 노비의 후손일수도 있으며, 현실은 짓밟히고 있는 소시민이라는 사실을 외면한다.

  롤스의 주장 중에서 두번째 의문점은 개인의 노력도 그에게 주어진 환경의 결과라는 주장이다. 같은 환경인데도 나태하고 게으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이룬 성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이마져도 롤스는 인정하려하지 않는다. 롤스의 주장을 따라가다보면, 인간은 환경에 따라서 수동적으로 만들어지는 존재라는 자괴감이 든다.

 

4. 진정 정의로운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야하는가?

  책을 중반정도 읽다보면, 마이클 샌델이 '롤스'를 너무도 좋아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마이클 샌델은 '롤스'의 한계점을 지적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야기를 한다.

 

"최고 공익과 영광은 시민의 미덕이 가장 뛰어나고 무엇이 공동선인지를 가장 잘 파악하는 사람에게 돌아가야한다."(아리스토텔레스)

"공정하게 행동해야 공정한 사람이 되고, 절제된 행동을 해야 절제하는 사람이 되고, 용감한 행동을 해야 용감한 사람이 된다.(아리스토텔레스)"

 

 이시대의 '공동선'을 제대로 파악하는자가 리더가 되야한다. 과거 우리는 시대의 잘못된 '공동선'을 강요당하는 불행한 시대를 살았다. 이제 참된 '공동선'을 추구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 그 변화가 우리의 삶을 엄청나게 변화시켰다.

  이제 새로운 정권을 얻은 집권당은 '공정'하고 '절제'하고 '용감'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러한 행동을 해야한다. 말로만 적폐를 청산한다고 말하기 보다는 이제 그 성과를 내 놓아야한다. 민주주의는 최악을 피하는 제도라고 유시민이 말했다. 최선을 추구하기 보다는 최악을 피하는 제도이기에 답답함을 느끼기도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는 끊임없이 공정하게 행동해야하고, 절제된 행동으로 용감하게 시대의 문제에 직면해야한다.

 

5. 유발 하라리를 떠올리다.

  칸트에 대한 롤스의 소개글을 읽어 내려가는 도중 흥미로은 부분과 마주쳤다.

 

"과학자들이 우리에게 자유의지는 없다고 결론 내린다면?"

"답: 의지의 자유는 과학이 그것을 옳다거나 그르다고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는지 없는지 말할 수 없다는 주장을 과연 과학자들에게 물어보았을까? 요즘 발전하는 뇌과학자들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회의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유발 하라리의 '호모데우스'라는 책을 비롯해서, 최신 뇌과학책들을 살펴보면, '로봇쥐'가 소개되어있다. 살아있는 쥐의 뇌에 전기 자극을 주어, 쥐를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이동하도록 로봇처럼 조정할 수 있는 쥐를 과학자들이 만들어냈다. 그 쥐는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과학자가 보낸 전기자극이 뇌에 영향을 미쳐 쥐를 움직이게했을 뿐이다. 인간은 뇌의 신호가 있고 나서 하고 싶은 욕구를 얻게된다. 그렇다면, '자유의지'를 말했던 칸트의 철학은 삽시간에 붕괴되어야하지 않을까? 이것이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유발 하라리를 떠올리게한 첫사례이다.

  그럼, 두번째 사례는 무엇일까? 롤스가 소개한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의 글을 읽을 때이다.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가?라는 물음에 답하려면 그전에 나는 어떤 이야기의 일부인가?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유발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사피엔스가 자신보다 강력한 네안데르탈인을 비롯한 호모 에렉투스를 박멸하면서 지구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인지혁명'덕분이라 말한다. 이 '인지혁명'은 거짓말을 믿도록하는 능력을 갖도록했다. 민족이라는 개념을 비롯해서 국가, 회사라는 개념은 상상의 개념이다. 우리는 이러한 개념에 이야기를 부여한다. 민족이라는 개념은 신화를 비롯한 이야기에 의해서 힘을 키워간다. 우리는 하나의 민족 혹은 종족이라는 개념은 자신들보다 힘이 강한 네안데르탈인과 싸워서 승리하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철학자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가 말하고 있다. 인간은 어떤 이야기의 일부이다. '나는 과거를 안고 태어나는데, 개인주의자처럼 나를 과거와 분리하려는 시도는 내가 맺은 현재의 관계를 변형하려는 시도'이다. 서로 떨어져있는 듯한 고리들이 사실은 서로 연결되어 있듯이, 역사와 철학이 서로 별개의 학문분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사실은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마이클 샌델의 강의도 함께 들었다. 강의와 책은 비슷하면서도 많은 부분이 달랐다. 책에서는 간략하게 다룬, 로크를 강의에서는 한시간 동안 설명했다. 마이클 샌델이 말했듯이 그의 책은 그의 강의와 달랐다. 책을 읽고 강의를 듣다가 책읽기 속도를 강의가 따라오지 못했다. 동영상을 시청하는 것보다 책읽기를 더욱 수월하게 여기다니... 나 자신에게서 놀랐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에게도 큰일들이 발생했다. 그리고 이책의 쟁점을 이용해서 나의 사적인 일들을 고민했다. 쉽게 일들이 해결되었을까? 그렇지 않다. 우리 현실의 일들은 냉철한 이성으로는 풀리지 않았다. 인간관계에는 감정이라는 긴 강이 흐른다. 그 강을 무시하면 타인에게로 건너가지 못한다. 이제 마이클 샌델의 강의를 '감정'이라는 강이 흐르는 우리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지를 고민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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譯註 老子道德經注 - 노자도덕경주
왕필 지음, 김시천 옮김 / 전통문화연구회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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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자'라는 이름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서양에 '스피노자'가 있다면, 동양에는 '노자'가 있으며, 현대에는 '박노자'가 있다. 한결같이 시대의 반항아로 살아가며, 남들과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한다. 이들 노자의 사상을 이해하는 것은 참으로 힘들다. 그중에서 동양의 '노자'는 가장 이해하기 힘들다. 그것은 노자를 만날 수 있는 '도덕경'이라는 책이 천의 얼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도덕경'해설서 중에서 김시천 교수의 '역주 노자도덕경주'를 골랐다. 팟캐스트 '학자들의 수다'에서 보여준 김시천 교수의 실력을 믿어 보기로 했다. 자, 노자를 통해서 또 다른 우리의 모습을 만나러 길을 떠나자.

 

1. 노자! 교육을 말하다.

  고전은 시대가 변해도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는 책이다. '도덕경'은 2천 여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견디며 오늘날에도 많은 혜안을 주고 있다. 물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듯이, 도덕경이라는 거울은 우리의 교육에 어떤 통찰을 주고 있을까?

  많은 학생들이 선행학습을 한다. 예습과 선행학습은 엄연히 다르다. 예습은 다음날 배울 것을 간단히 살펴보는 공부라면, 선행학습은 1년전에 혹은 6개월전에 한과목을 미리 배우는 것이다. 선행학습에 대해서 노자는 어떻게 생각할까? 

 

"전식자 지화이우지시(前識者 道之華而愚之始 )"

미리 안다는 것은 도의 허황된 꽃이요 어리석음의 시작이다.

 

  미리안다는 것! 선행학습은 학생들에게 허황된 꽃이며, 어리석음을 불러 일으키는 시작이다. 이미 모든 것을 알기에 수업에 참여할 흥미를 떨어뜨린다. 수업시간에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잠을 자는 경우가 있다. 이미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했는데, 이미 다아는 것인데, 왜? 또 공부를해야하느냐며 잠을 청하기도 한다. 교과서 진도를 빨리 나가면 실력도 타인보다 앞서 간다는 착각 속에서 살고 있는 학부모와 학생들이 많다. 그러나 노자는 말한다. 선행학습은 겉모습만 화려한 꽃이며, 참다운 공부의 질을 떨어뜨리는 어리석음이라고....

  노자가 한국에 온다면 한국 어머니에게 해줄말은 무엇일까? 자녀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우리이의 어머니에게 아마도 이러한 말을 했을 것이다.

 

 "생이불유 위이불시 장시부재 시이현덕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

   낳으면서 가지지 않고, 하되 의지하지 않으며, 자라게 하되 다스리지 않으니 이것을 일컬어 '신묘한 덕'이라 한다.

 

  과거 우리 부모들은 자녀를 노후연금으로 생각했다. 자녀를 자신과 동일시하고 자녀를 위해서 희생을 하면 노후에 자녀가 자신에게 효도하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아집은 집착과 소유욕으로 이어진다. 자녀를 자신의 '아바타'로 생각하고 자녀가 자신의 꿈을 대신 이뤄주길 바란다. 자녀의 꿈보다는, 자녀의 행복보다는 타인에게 자랑할 수 있는 직업과 학력을 가진 자신의 아바타가 되어주길 바란다. 내가 낳았으니, 자녀는 나의 소유라는 이기적인 생각은 자녀에게는 그 무엇보다 강력한 폭력이다. 노자는 말한다. 한국의 학부모여! 자식을 낳았으되, 소유하려하지말라! 자녀를 길렀으되 자녀에게 의지하려하지 말라, 자녀의 올바른 성장을 바란다면 자녀가 하고 싶은 일을 부모가정하지 말고 자녀가 결정하게하라! 이러한 양육방법을 오묘한 덕이라한다. 진로문제로 자신의 집에 불을 질러 아버지를 죽였다는 기사가 우리를 놀라게했던 적이 있다. 자녀를 소유하고 의지하고 다스리려한다면, 자녀가 부모의 노예가 되던지, 부모가 자녀의 희생물이 될 수도있다.

  노자가 우리 학교를 방문해서, 보통의 교장들의 모습을 본다면 어떠한 말을 해줄까? 초빙교장, 응모교장들이 자신의 치적을 쌓기 위해서 각종 사업을 벌이는 모습을 보면서 노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민지난치 이기상지유위 시이난치(民之難治, 以其上之有爲, 是以難治)"

  백성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윗사람들이 무언가 하는 게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스리기 어려운 것이다.

 

  대전의 어느 학교에서 교육청에 민원이 들어왔다. 교장이 자신의 치적을 쌓기 위해서 연구학교를 신청했다. 그런데, 교사의 찬성율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재투표를 했고, 그래도 찬성율이 저조하자, 교무부장이 이를 조작했단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그 학교만의 일이 아니다. 내가 보아왔던 많은 학교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찬성율이 나오면 재투표를 했고, 투표를 하기 전에는 "선생님들은 아무일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승진을 하셔야하는 주변의 선생님을 위해서 부디 찬성표를 던져주세요"라는 멘트를 넣는다. 정에 약한 한국사회에서 승진에 목을 메며 일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찬성표를 던진다. 그리고 그결과는 비참하다. 보여주기 위한 행정이 시작된다. 학생과 상담하며 알찬 수업준비를 하기 위해서 쏟아야할 시간을 보여주기 위한 행정에 소비해야한다. 가득이나 바쁜 학교생활이 더욱 바빠지고, 그 스트래스는 자연스럽게 학교 구성원들 모두에게 퍼지게된다. 서로 이해하고 넘어갈 일도, 신경질적으로 대하며 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서로 이해하며 몸이 아파서 병가를 쓴 선생님의 교실에 누가 들어갈 것인지를 두고 신경질을 부린다. 나도 힘들고 시간이 부족하기에 남을 돌볼 여유가 없다. 이러한 우리의 학교 현장을 보며 노자는 말한다. "교사와 학생이 힘들어하고 그들을 조화롭게 만들지 못하는 것은 교장과 교감이라는 관리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일을 만들기 때문이다. 교육의 핵심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들을 만들기 때문에 다스리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노담 선생님(노자) 힘든 학교생활은 어떻게 해나가야하나요"라고 내가 묻는다면, 노자는 어찌 답할까?

 

 " 이성인상민, 필이언지하, 선민, 필이신후지(是以聖人欲上民, 必以言下之, 欲先民, 必以身後之)"

  이 때문에 성인은 백성 위에 있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그 말을 낮추고, 백성 앞에 서고자 할 때는 반드시 그 몸을 뒤로 물린다.

 "자현자불명 자시자불창(自見者不明 自是者不彰) 자벌자무공 자긍자 불장(自伐者無功 自矜者 不長)"

  스스로 드러내는 자는 밝지 않고, 스스로 옳다고 하는 자는 드러나지 않고, 스스로 뽐내는 자는 공이 없고, 스스로 자랑하는 자는 오래가지 못한다.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하며 큰소리를 치는 사람은 별로 무섭지 않다. 가장 무서운 사람은 녹음기를 들고와서 자신이 필요한 질문을 차근차근하면서 논리적으로 사건을 따져들어가는 사람이다. 그는 당장의 화풀이 보다는 법적으로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자신의 화를 감추고 얼굴에는 미소를 띈다. 가장 무서운 관리자는 폭력적, 강압적으로 교사와 학생을 짓누르는자가 아니다. 자신을 낮추며 그들을 앞세우고 자신을 뒤로 물리는 자이다. 폭력적 관리자는 민원을 제기하고 법적으로 그를 상대하면 된다. 그러나 자신을 낮추는 관리자는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기에 함부로 대할 수 없다. 내가 경험했던 000 교감이 있다. 겉보기에도 유약해보이고 겸손했다. 선생님이 타주는 커피를 받아들고도 다른 선생님들은 커피를 마셨냐며 자신의 커피를 주려하였다. 큰일을 결정할 때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지만, 일단 결정이 되면 그 어떤 반발에도 굴하지 않는다. 자기 것을 취하지 않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먼저 베풀었기에 주변의 사람들이 자신을 먼저 챙겨주었고, 결과적으로 자신이 가장 많은 것을 얻었다고 그는 자주 말한다. 노자는 말한다. 사회생활을 현명하게 하고자한다면, 아랫사람들 대할 때 자신의 말과 행동을 낮추라, 그들을 이끌고 가고 싶다면 그들 뒤에서라! 가기 싫어하는 소를 억지로 앞에서 끌고 가기 보다는 그 소와 친구가 되어 뒤에서 소를 몰고가라! 자신의 공을 자랑하지 말고, 스스로 뽐내지 말고, 스스로 자랑하지 말자! 그러면 남이 먼저 나를 알아줄 것이다.

  노자가 우리의 교실에 들어와서 변화하고자하는 교사에게 어떠한 조언을 해줄까?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해야하는 학생들을 어떻게 기를 것인가? 그들에게 어떠한 수업을 해야할까?

 

  "대백약욕 광덕부족 건덕투 질진약투(大白若辱 廣德若不足 建德若偸 質眞若渝)"

   매우 흰 것은 마치 욕된 듯하고, 넓은 덕은 마치 부족한 듯하고, 확고 부동한 덕은 야박한 것 같고, 질박한 참됨은 마치 더러운 듯하다.

 

  1타 강사들이 학원가를 휩쓸고 있다. 최태성, 설민석을 비롯한 많은 스타강사를 보면서, 나도 저들처럼 수업을 하려했다. 나름 강의식 수업에는 일가를 이루었다. 그런데, 나의 확고 부동한 강의식 수업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대결에서 이세돌이 승리했다. 더 이상 암기를 많이 시키는 수업은 새로운 인재를 키워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깨달았다. 변화해야한다. 변화해야한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 우리 교육이 변화해야한다고 외치고 있다. 그러나 막상 변화하고 있지 못하다. 새로운 시대를 대비할 수 있는 교육을 하기 위해서 우리 교사에게 노자는 무어라 말해줄까? 매우 흰 것은 마치 욕된 듯하다. 넓은 덕은 마치 부족한 듯하다. 확고 부동한 덕은 야박한 것 같다. 질박한 참됨은 마치 더러운 듯하다. 좋은 수업은 서툰듯하다. 교사가 모든 것을 학생에게 알려주는 수업은 완벽한 수업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헛된 수업일 뿐이다. 참된 앎을 전해주고 싶다면, 마치 서툰듯, 비어 있는듯 수업을 해야한다. 교사는 가만이 있지만, 학생들은 바삐 움직이며 배움을 터득해간다. 학생이 스스로 친구들을 가르치고 배워간다. 교실에서 교사는 마치 한가히 노는 백조인 듯 하다. 요즘, 강조하는 학생 중심 수업을 실행하라.

  학생들에게 성적문제, 이성문제 등등 수많은 고민거리가 있지만,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가장 큰 고민거리는 자신의 진로문제이다. 자신의 꿈을 찾지 못해서 고민하는 학생, 자신의 성적으로는 자신이 가고 싶은 학과에 진학할 수 없기에 꿈을 바꾸어야할지 고민학는 학생들이 많다. 노자가 진로를 고민하는 우리 학생들에게 다가가 무엇이라 말할까?

 

  "천하난사, 필작어이 천하대사 필작어세 이성인, 불위대, 고능성기대 (天下難事, 必作於易, 天下大事, 必作於細,  是以聖人 終不爲大 故能成其大)"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일에서 시작되고 천하의 큰일은 반드시 작은 일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성인은 끝내 큰일을 행하지 않으니 그 때문에 그 위대함을 이룰 수 있다.

 

  거대한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지만, 현실은 너무도 초라하다. 태산앞에 자신의 위치는 너무도 낮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무모한 도전을 할 것인가? 큰꿈을 가지라 했기에 무조건 큰 꿈을 갖고 있을 것인가를 고민한다. 이들 학생들에게 노자는 조언한다.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일에서 시작된다. 천하의 큰일은 반드시 작은 일에서 시작된다. 태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작은 발걸음을 내딛는 것에서 부터 시작한다. 함부로 태산을 한걸음에 오르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성인은 끝내 큰일을 행하지 않으니 그 때문에 태산을 오르는 위대함을 이룰 수 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이 지금 내딛어야하는 작은 걸음을 시작하자. 자신의 꿈을 아직 찾지 못했다면, 자신의 꿈을 찾기 위해서 서점을 찾아가는 작은 일부터 시작하자. 천하의 어려운 일도, 천하의 큰일도 작고 세세한 것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2. 노자! 한국사회를 말하다.

  노자선생이 대한민국에 온다면 우리에게 어떠한 말들을 해줄까? 노자를 초대해서 그의 말을 들어보자. 뒤엉킨 실타래처럼 풀리지 않는 우리 현실을 노자의 눈을 통해서 바라보자.

  노회찬이 갔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가고 싶어하지만, 너무도 두려운 존재 삼성을 상대로 굴하지 않았으며, 503호 공주님과 맞짱을 뜨며 약자의 편에서서, 노동자의 편에서서 일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그렇게 강한 사람이 드루킹 사건에서 불거진 선거자금 문제에 너무도 힘없이 자신의 목숨을 끊었다. 노자는 이렇게 말한다.

 

  "强行者有志(강행자유지) 不失其所者久(불실기소자구) 死而不亡者壽(사이불망자수)"

  힘써 행하는 사람은 뜻이 있으며, 제자리를 잃지 않는 사람은 오래가고, 죽어서도 잊히지 않는 사람은 오래 산다.

 

  노회찬은 명문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유신에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외쳤다. 여러 책들을 읽으며 진리를 얻고자했다. 한국의 명문대학을 나오고서도 노동자로 살아가기 위해서 용접을 배웠다. 자신의 삶을 힘써행하는 그의 모습에는 뜻이 있었으며, 노동자를 위한 삶을 버리지 않은 그는 서민을 위한 정치인으로 오래 우리 곁에 있었다. 그러나, 그리도 강해보이는 그가, 자신의 티끌 같은 오점을 용서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허공속에 내던졌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서있었던 사람도 그를 위해서 눈물을 흘렸다. 그의 삶은 노무현의 삶과 오버랩된다. 약자를 위해서, 약자를 위한 정의를 만들기 위해서 시대와 정면대결했던 그들의 삶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 그들은 죽었지만, 그들은 우리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있다. 그래서 노자는 말한다. '죽어서도 잊히지 않는 사람은 오래 산다.' 노회찬은 우리 가슴속의 밀알이 되어 영원히 우리곁에 살아갈 것이다.

 

  "부유병, 시이불(聖人不病, 以其病病, 是以不病) 성인, 이기병, 시이불병(聖人不病, 以其病病, 是以不病)"

  대저 오로지 병을 병으로 여기는 까닭에 병이 되지 않는 것이다. 성인이 병폐가 없는 것은 그 병을 병으로 여기는 까닭에 병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땅의 진보세력은 자신의 허물을 용납하지 않는다. 아니, 그를 지켜보는 우리들이 그것을 강요한 측면도 강하다. 몇백억을 집어삼키고서도 뻔뻔하게 잘도살아가는 사람이, 노무현이 자살했을 때 '사람이 마음이 약해서..'라고 말하며 혀를 찼단다. 그들에게는 돈 얼마 받아먹은 것이 전혀 허물이 되지 않는가 보다. 결국 그들의 허물이 쌓여서 적폐가 되었다. 이 땅의 진보세력들은 자신의 병폐를 병으로 여긴다. 병폐를 병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는 더 이상 진보세력이 아니다. 여기에서 진보세력의 딜레마가 시작된다. 진보세력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병폐를 병폐로 여기고 이를 용납하지 않아야한다. 그러기에 진보세력에게는 가장 강력한 도덕적 완결성을 요구한다. 이로인해서 진보세력의 거두들이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다. 병폐가 적폐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도덕적 완결성을 요구할 것인가? 아니면, 어느 정도의 도덕적 흠을 용납해야할까? 이 풀기 어려운 딜레마 속에서도 나는 믿는다. 이 땅의 진보세력이 언제까지나 약자의 편에서서 모두를 위한 사회를 만들려 노력하리라는 사실을.... 도덕경 20장은 고 노회찬의 마음을 노래하는 것 같다.

 

"荒兮 其未央哉. 衆人熙熙 如享太牢 如春登臺 황혜 기미앙재. 중인희희 여향태뢰 여춘등대 

我獨泊兮 其未兆 如嬰兒之未孩 儽儽兮 若無所歸 衆人皆有餘 而我獨若遺 아독박혜 기미조 여영아지미해 래래혜 약무소귀 중인개유여 이아독약유 

我愚人之心也哉 沌沌兮 俗人昭昭 我獨昏昏 俗人察察 我獨悶悶 아우인지심야재 돈돈혜 속인소소 아독혼혼 속인찰찰 아독민민 

澹兮 其若海 飂兮 若無止 衆人皆有以 而我獨頑似鄙 담혜 기약해 요혜 약무지 중인개유이 이아독완사비 

我獨異於人 而貴食母 아독이어인 이귀식모"

 

황량한 모습이 텅 빈 곳에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는 듯하다.

뭇사람들이 희희낙락하며 큰 소를 잡아 잔치를 벌이는 것 같고, 봄날 누각에 오르는 것 같다.

나 홀로 담박하여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은 모습이 아직 웃을 줄 모르는 갓난아기 같으며,

몹시 지친 모습이 돌아갈 곳이 없는 것 같네

뭇사람은 모두 남음이 있는데 나홀로 잃어벌니 듯하니

나는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이로구나.

혼돈스럽다.

세간의 사람들은 똑똑한데 나홀로 흐리멍덩하고

세상 사람들은 자롣 살피는데, 나홀로 어리석도다.

담담하여 바다 같고, 고고하여 그칠 줄을 모르는 듯하네,

뭇사람들은 모두 쓸모가 있는데, 나홀로 완고하고 비루하다.

나홀로 다른 사람과 다르고자 하여 만물을 먹이는 어미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지난 이명박근혜 정권을 살면서 가장 두려웠던 것이 우리 사회가 전체주의로 회귀하는 일이었다. 이명박근혜 정권에 대해서 비판하려하면 좌빨로 바라보는 노년세대들의 모습을 보면서, 정치 이야기를 싫어하는 주변인들을 바라보며, 우리사회에 우경화를 걱정했다. 노자는 이명박근혜 정권을 보면서 이러한 말을 했을 것이다.

 

  "天下  皆知美之爲美  斯惡已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천하  개지미지위미  사오이  개지선지위선  사불선이)

   故  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形  高下相傾  音聲相和  前後相隨(고  유무상생  난이상성  장단상형  고하상경  음성상화  전후상수)"

  천하가 모두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여길 줄 아는데 이것은 추한 것이다. 천하가 모두 선한 것을 선하다고 여길 줄 아는데 이것은 선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있음과 없음은 서로 낳고 쉬움과 어려움은 서로 이루어주고, 긺과 짧음은 서로 비교되고, 높음과 낮음은 서로 기울며, 음악소리와 노랫소리는 서로 어울리고, 앞과 뒤는 서로 따른다.

 

  모두가 좋아하고 절대다수가 사랑하는 사회에서는 히틀러가 총통이 될 수 있는 사회이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기 않기에, 아름다움만이 존재해야한다는 믿음이 지배하기에, 나와 다른 유대인과 아름답지 않은 장애자들을 죽였다. 노자는 모두가 Yes할때 No를 외칠 수 있는 용기를 우리에게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Yes할때, No를 외치기는 너무도 힘들다. 폭력으로 No를 외치지 못하게 만들기도하고, 사회 분위기가 No를 금기시하기도한다. 획일적인 아름다움이 지배하는 사회는 더 이상 아름답지 않다. 세상을 아름답게하기 위해서라도 추함과 아름다움은 조화를 이뤄야한다. 2000년전 노자는 서양보다 먼저 똘래랑스를 알고 있었다.

  취직이 잘되지 않고, 그래서 연애와 결혼을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중에는 비트코인에 빠져서 대학 등록금을 날린 대학생들도 있다. 이들에게 노자는 어떠한 말을 할까?

 

  " 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不見可欲  使民心不亂(부귀난득지화  사민불위도  불견가욕  사민심불란)"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말아 백성들이 도둑이 되지 않게 하라. 욕심낼 만한 것을 보이지 말아 백성들의 마음이 어지러워지지 않게 하라.

 

  일확천금을 얻으려 대학등록금을 날린 젊은이들은 정부를 탓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 보다는 이를 정권탓으로 돌린다. 그렇게하면 일시적 위안은 느낄 수 있다. 마치 자신의 누명을 인정하고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아Q'처럼....위정자라면,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않도록 하여, 땀흘려 일하기 보다는 한탕으로 부자가 되려하지 않게 해야한다. 투기성 비트코인을 보다 일찍 규제하여, 투명하고 안전하게 만들고, 비트코인의 위험성을 젊은이들에게 알려야했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새로운 창조적인 도전을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한다.

  요즘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코에 플라스틱 빨대가 박힌 바닷거북을 보면서 인간의 편리함이 자연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만드는지를 알았다. 그래서 노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천하만물어유 유생어무 )"

  천하의 만물은 유에서 생겨나고 유는 무에서 생겨난다.

 

  천하의 모든 것들은 있음에서 생겨나는데 있음이 시작되는 곳에서는 없음을 근본으로 삼는다. 석유라는 유에서 플라스틱이라는 있음이 생겨났다. 그렇다면 마땅히 플라스틱은 없음으로 돌아가야한다. 그래야만 천하만물이 순환하며 자연이 조화를 이룰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플라스틱은 없음으로 돌아가지 않거나, 돌아가는 시간이 너무도 길다. 있음을 위해서 없음으로 돌아가야한다는 자연의 이치를 인간이 만든 플라스특은 거스르고 있다. 반면 질그릇은 진흙이라는 있음에서 탄생했으나, 다시 없음으로 돌아간다. 있음을 위해서라도 없으로 돌려보내야한다. 없음으로 돌아가지 않는 있음은 만들어서는 안된다. 비단 플라스틱만이 아니다. 핵발전소를 비롯한 수많은 있음들은 없음으로 돌아가지 않아 자연을 위협시키고 있다. 있음은 없음을 근본으로 삼아야한다는 노자의 말에 인간이여 귀를 기울여 조시오....

 

3. 노자! 정치를 말하다.

  노자라는 책이 제왕학의 교재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노자와 법가가 결합하여 '황로학'이 성립한다. '황로학'은 중국 한나라 시기에 경제때에 중국 황제들에 의해서 번성했다. 어떤이는 도덕경을 병법서라고 말한다. 도덕경에는 병법에서나 볼법한 글귀들이 많이 있다. 노자가 말하는 정치학을 만나보자.

 

 

  "重爲輕根 靜爲躁君(중위경근 정위조군)"

 

  "奈何萬乘之主 而以身輕天下(내하만승지주 이이신경천하)

   輕則失本 躁則失君(경즉실본 조즉실군)"

  무거움은 가벼움의 근본이 되고, 고요함은 조급함의 군주가 된다.

  전차 만대를 부리는 주인이면서 어찌 그 몸을 천하에 가볍게 처신하겠는가. 가볍게 처신하면 근본을 잃게 되고 조급히 굴면 군주의 지위를 잃게 된다.

 

  진정 정치를 하는자는 신중하고 냉철해야한다 한비자 '망정'편을 보는 듯하다. 군주가 신중하지 않고 가볍게 처신을 한다면, 근본을 잃게 되고 심지어는 군주의 지위를 잃게 될 수도 있다. 항상 신중하게 자신의 권위를 사용해야한다. 그 권위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군주를 4등급으로 분류할 수 있다. 도덕경 17장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太上 下知有之 其次 親而譽之 其次 畏之 其次 侮之(태상 부지유지 기차 친이예지 기차 외지 기차 모지)"

  대인이 윗자리에 앉아 다스릴 때에는 아래 백성들이 그가 있다는 것만 알 뿐이며, 그 다음 사람은 그를 친하게 여기고 기리게 하며, 그 다음 사람은 그를 두려워하게 하며, 그 다음 사람은 그를 모멸한다.

 

  이를 역사와 관련지어 설명해보자. 군주가 윗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만을 알 정도 정치를 잘하는 단계(下知有之)에는 중국 전설상의 임금인 요임금과 순임금을 들 수 있다. 그다음 그를 친하게 여기고 예찬하는 단계(親而譽之)는 우리나라 세종과 정조 대왕을 예로 들수 있다. 임금을 두려워하 단계(畏之)는 연산군을 들 수 있다. 인조반정 전의 신하들은 연산군이 두려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불만이 가득찼고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왕의 주변을 떠나거나 반정군의 편에 들어섰다. 마지막으로 임금을 모멸하는 단계(侮之)는 인조를 들 수 있다. 두번씩이나 수도를 버리고 도망간 무능한 왕이다. 자신의 못남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아들을 독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는 칭찬을 받기 보다는 두려운 존재가 되어야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자는 두렵고 멸시받는 군주를 최하등급으로 두고, 무위의 통치자와 유능함으로 다스림으로써 사랑받는 통치자를 가장 윗자리에 두었다. 503호의 국정농단을 겪으면서 한국의 대통령들은 두렵우면서도 경멸을 받는 존재인지, 사랑받는 존재인지를 생각해본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이란 "전쟁은 나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적에게 굴복을 강요하는 폭력 행위다."라고 말했다. 전쟁은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한 정치의 연장선이다. 그렇다면, 노자가 말하는 전쟁론을 살펴보자.

 

  "不以兵强天下 其事好還 師之所處 荊棘生焉(불이병강천하  기사호환 사지소처 형극생언)"

  군사로 천하에 강자 노릇하지 않으니, 그런일을 되돌리기를 좋아한다. 군대가 머물던 자리에는 가시덤불만 돋아닌다.

 

  전쟁을 모르는 자들이 전쟁을 쉽게 생각한다는 말이 있다. 과거 이명박 정권에서 NSC가 열렸는데, 군필자가 국방부장관 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유명하다. 전쟁을 모를 수록, 군을 모를 수록 전쟁을 쉽게 말한다. 손자병법에도 가장 좋은 방법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이라했으며, 전쟁은 신중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런점에서 노자는 정쟁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전쟁이 임할때는 당연히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善爲士者不武 善戰者不怒 善勝敵者不與 善用人者爲之下(선위사자불무 선전자불노 선승적자불여 선용인자위지하)"

  장수 노릇을 잘하는 자는 무용을 뽐내지 않고 싸움을 잘하는 자는 분노하지 않고 적을 잘 이기는 자는 함께 다투지 않고, 남을 잘 부리는 자는 자신을 낮춘다.

 

  싸움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평정심을 잃지 않는 것이다. 전쟁은 국가의 존망이 걸린 중요한일이다. 평정심을 잃지 않고 신중을 기해야만이 패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가장 잘 싸우는자는 분노하지 않고 적과 함께 다투지 않는다. 외교로, 경제를 무기로 적을 제압하며, 최후의 수단으로 전쟁을 사용한다. 트럼프가 오바마처럼 싸드를 비롯한 무기로 중국을 압박하기 보다는 경제로서 압박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노자가 생각하는 국제질서는 무엇일까? 그가 생각하는 대국은 어떠한 면모를 가지고 있어야할까? 도덕경 61장에는 노자가 생각하는 국제질서의 단초가 있다.

 

  "大國者下流 天下之交 天下之牝 牝常以靜勝牡 以靜爲下(대국자하류 천하지교 천하지빈 빈상이정승모 이정위하)

  故大國以下小國 則取小國 小國以下大國 則取大國(고대국이하소국 즉취소국 소국이하대국 즉취대국)

  故或下以取 或下而取 大國不過欲兼畜人(고혹하이취 혹하이취 대국불과욕겸축인)

  小國不過欲入事人 夫兩者各得所欲 大者宜爲下(소국불과욕입사인  부양자각득소욕 대자의위하)"

  큰 나라는 강과 바다처럼 아래쪽에 처하니 천하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요. 천하 사람들이 돌아오는 암컷이다. 암컷은 늘 고요함으로 수컷을 이기고 고요함으로 아래가 된다. 그러므로 큰 나라로서 작은 나라 아래에 처하면 작은 나라를 취하고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 아래에 처하면 큰 나라에게 취해지니 그러므로 어던 경우는 아래에 처하여 취하고 어떤 경우는 아래에 처하여 취해지는데 큰 나라는 다른 사람들을 다 거느리기를 바랄 뿐이고, 작은 나라는 다른 사람밑에 들어가 섬기기를 바랄 뿐이다. 큰 나라와 작은 나라 둘이 각자 바라는 것을 얻을 수 있다면 큰 나라는 마땅히 아래에 처해야한다.

 

  도덕경 61장은 '조공 책봉'이라는 동아시아 외교 질서를 상정해 놓은 듯하다. 주나라의 봉건제도가 무너져 내려가던 시기에 살았던 노자의 머릿속에는 큰나라가 작은 나라를 불러 회맹을 맺고 작은 나라들이 이에 순종하는 속에서 이루어지는 평화를 현실적인 대안으로 생각한듯하다. '조공 책봉'이라는 동아시아 외교 질서가 무너진 지금, 중국이 걸어야할 바람직한 외교질서는 무엇일까? 바로 도덕경 61장에 있다. 큰 나라는 강과 바다처럼 낮은 곳에 임하여 천하의 모든 것들이 모여들 수 있도록 아량을 베풀어야한다. 대국굴기를 하려는 중국은 야심차게 일대일로를 추진하고 있다. 차이나머니를 앞세워 주변국들에게 각종 투자를 하는듯하지만, 그 과실은 중국이 가져가고 주변국들은 중국의 경제치투에 신음하고 있다. '도광양회'하면서 미국의 발톱을 피해가던 중국이 이제는 대국굴기를 외치며 세계로 폭주하고 있다. 중국은 노자의 말에 귀기울여야한다. 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낮추고 천하 사람들이 모여들 수 있도록 그들을 품어야한다. 지금의 폭주하는 중국의 모습은 약소국에게는 모멸의 시선을 받고,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이라는 경제적, 군사적 견제를 불러 일어킨다.

 

4. 역주 노자도덕경주를 말하다.

  김시천은 노자를 전공한 학자이다. 그의 '도덕경'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가 번역한 '역주 노자도덕경주'에 대해서 몇마디 할말이 있다.

  첫째, 김시천은 지나치게 바그너의 학설을 따른다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외국 학자들의 '도덕경' 관련 서적을 많이 본 김시천은 외국 학자들의 학설을 많이 받아들였다. 외국학자들의 주장이 나름의 타당성이 있어 받아들인 것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외국학자들 중에서 특히 바그너의 주장을 많이 따르고 있는 점은 약간 불편한 느낌을 준다. 도덕경 23장 " 德者 同於德(덕자 동어덕)"이라는 문장은 하상공본과 왕필본 도덕경에 모두 실려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바그너가 왕필 주문에 있는 내용을 근거로 '덕'을 '득'으로 고쳐서 '者 同於得(득자 동어득)"으로 수정하였다. 왕필본과 하상공본에 똑같은 내용이 전해지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수정한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행동이다.

   둘째, 주문을 근거로 본문을 고친 것도 이해할 수 없다. 도덕경 34장 "萬物歸焉而不爲主(만물귀언이불위주) 可名爲大 (가명위대)"를  "萬物歸之而不於主(만물귀지이불어주) 可名爲大 (가명위대)"로 수정한 것이 대표적이 예이다. 저본의 '언'을 주문의 '귀지'에 근거하여 '지'로 수정했다. 이번에도 바그너의 주장을 따른예이다. '위'를 '어'로 수정하 것은 앞의 문장과 짝을 이루기 위해서 수정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김시천의 해석에 대한 불만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왕필의 해석에도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도덕경 57장에 "民多利器 國家滋昏(민다리기 국가자혼, 백성에게 이로운 기물이 많으면 국가는 더욱 혼란해진다.)"를 왕필주에는 "백성이 강하면 국가는 약해진다."라고 적어 놓았다. 백성이 강해지면 국가가 약해진다는 말은 현대사회에는 어울리지 않는 설명이며, 노자를 바르게 해설한 것도 아니라고 판단된다. 백성이 이로운 것만 추구하면 국가가 혼란해진다.라는 뜻으로 해설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일 것이다. 백성이 자신의 이로운 것만을 추구하다가 국가에 해를 끼친사례는 비트코인 사태를 들 수 있다. 단기적 이익을 쫓다가 개인은 물론, 국가와 사회에도 해독을 끼쳤으니 말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서 내 나름의 해석도 해보았다. 도덕경 27장에 "常善救物 故無棄物

(상선구물 고무기물, 늘 만물을 잘 구하는 가닭에 버려지는 물건이 없으니)"라는 문장을, 항상 물건을 잘 구하기에 그래서 버려지는 물건이 없다. 즉, 한번 물건을 살 때, 제대로 된 물건을 장만했기에 벌빌 물것이 없다. 로 해석했다. 어떤가? 괜찬은가??

 

 

  노자를 읽으면서 20여년전 도올 김용옥 선생이 TV에 나와 했던 강의가 새록새록 기억난다. 그의 강의를 들으며 도덕경이 이렇게 재미있고 쉬울 수 있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만약, 그때 '도덕경'을 사서 원문을 공부하며 강의를 들었다면 얼마나 많은 깨달음을 얻었을까? 아쉬움이 밀려온다. 그러나, 그때는 너무도 고민이 많았다. 대학을 다니며, 앞으로 먹고살 걱정을 해야했다. 사랑을 생각하며 가슴아파하기도 했다. 이제 다시한번 만나게된 '도덕경'은 그 시간 동안 성숙한 나에게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주고 있다. 먼 훗날, 도덕경을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무르익은 내가 도덕경의 감동을 더욱 진하게 느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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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로 읽는 교양 세계사 - 경제를 중심으로 역사, 문학, 시사, 인물을 아우른 통합 교양서
오형규 지음 / 글담출판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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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를 중심으로 역사, 문학, 시사, 인물을 아우른 통합 교양서"라는 표지 글이 인상적이 책이다. 그러나 여러가지를 음식을 한상에 차리려니 음식은 많으나 막상 먹을 것은 별로 없었다. 이 책에 걸었던 나의 기대감은 너무도 무참히 무너져 내렸다. 내가 실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다면, 이책에서는 아무것도 건질 것이 없었던 것일까?

 

1. 비역사 전공자의 한계

  경제사를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고, 오형규 작가의 전공인 국문학에 대한 소양을 담기 위해서 세계적 문호들의 소설들을 곁들여 소개하고 있다. 가장 강한 것이 그의 전공인 문학분야와 경제학 분야이다. 그런데, 역사에 대한 저자의 이해는 실망스럽다 못해 절망적이다. 특히 오리엔탈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한 저자의 역사인식은 우려스러울 정도였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첫째, 이슬람 인들은 '한손에 칼, 한손에 쿠란'을 들고 지하드에 참여했기에 단기간에 넓은 영토를 넓힐 수 있었을까? 정답은 '아니다.'이다. 이슬람인들은 '쿠란'에 나와 있듯이 관용을 베풀었다. 만약 서구에서 만들어낸 이미지대로 무자비한 폭력과 살육을 저질렀다면, 강한 반발심을 유발시켰을 것이다. 단기간에 제국을 건설했던 아시리아가 그리도 빨리 멸망했던 이유는 무자비한 폭력적 지배 때문이다. 이슬람이 무자비하게 피지배민족을 압박했다면, 이슬람 제국은 쉽게 무너졌을 것이다. 이슬람인들은 이슬람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지즈야'라는 세금을 내도록 했으며, 지즈야의 액수도 낮은 수준이었다.

  둘째, 이슬람제국이 기독교도의 성지 순례를 금지했기에 십자군 전쟁이 발생했을까? 정답은 '아니오'이다. 이슬람인들은 이교도들을 박해하지 않았다. 교화 우르반느 2세가 십자군전쟁에 동참할 것을 독려하면서 만들어낸 가짜뉴스이다. 살라딘이 영국의 사자심왕 리처드와 협의한 내용도 기독교 성지 순례를 허용한다는 내용이다. 이슬람은 그 이전부터 성지순례자를 박해하지 않았기에 사실상 살라딘에게 유리한 합의내용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유럽 중심의 역사관이 얼마나 유럽 우월주의에 입각한 가짜뉴스를 남발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중국의 관리들은 '네가 네죄를 알렸다.'식의 원님재판으로 백성을 착취했을까? 원나라의 '무원록'과 명나라의 '대명률'을 떠올린다면, 같은 시기 유럽에 비해서 얼마나 사법체계가 체계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중국은 중앙집권적 나라를 2천년이 넘도록 유지했다. 중앙의 힘이 지방에 까지 미치기 위해서는 전국을 통일적으로 다시릴 사법체계가 필수적이다. 그래서 춘추전국시대부터 법가 사상이 발전했으며, 한나라 시기에는 율령이 정비된다. 이렇게 발전하는 사법체계를 무시하는 저자의 태도는 분노를 끓어오리게한다.

  넷째, 페스트가 몽골교역망을 따라 퍼져 유럽은 물론, 중국과 중앙아시아, 이슬람권에도 상당한 피해를 주었을까? 타 역사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주장이라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유럽보다는 그 영향력이 낮았을 것으로 판단된다. 중세 유럽인들은 비누를 알지 못했다. 자신의 더러운 냄새를 숨기기 위해서 향수가 발달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쉽게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상하수도도 발달하지 못했고, 거리의 오물을 피하기 위해서 남성도 하이힐을 신었다. 이러한 비위생적인 사회였기에 유럽이 가공할 페스트의 참극을 겪어야했다. 그러나, 여타지역은 유럽보다는 위생적이었기에 피해의 강도가 낮았을 것이다.

  다섯째, 정화의 업적이 계승되었다면 근대 역사는 완전히 바뀌었을까? 이 질문의 저변에는 역사는 서양사와 같이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 중세 봉건사회로, 다시 근대 자본주의 사회로 발전한다는 단선적 발전론이 자리잡고 있다. 서양과 동양의 관점이 달랐으며, 세계의 역사는 유럽처럼 발전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발전의 과정을 밟고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히려, 유럽의 사례가 특수한 세례이다. 유럽의 발전 단계를 근거로 타 지역의 역사를 단순히 꿰어 맞추는 역사인식은 매우 위험하다. 정화의 항해도 마찬가지이다. 콜럼버스가 경제적 목적을 위해서 신항로 개척을 했다면, 정화는 조공체제를 확대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에서 항해를 시작했다. 목적부터 달랐기에 결과가 같기는 힘들다. 또한 지속적 발전을 위해서는 가치를 창출하고 이익을 창출해야만한다. 정화가 조공체계에 천하를 포함시키기 위해서 항해를 하는한, 정화의 항해는 새로운 이익을 창출하지못하며, 경제적인 부담속에서 정화가 죽은 이후, 그 항해는 다시 이뤄지지 않았다.

  비전공자가 역사책을 쓰려면, 역사에 대한 해박한 공부가 선행되어야한다. 이미 낡은 이론이 되어버린 사실들을 새로운 그릇에 담으려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된다.

 

2. 경제적 관점으로 본 새로운 사실들

  그렇다면, 이 책은 쓸모없는 쓰레기 더미에 불과할까? 그렇지 않다. 모래속에서 진주를 발견하듯이 이책에서도 나의 눈을 틔워준 보석들이 알알이 박혀있었다.

  첫째, 대륙봉쇄령은 아무런 성과 없이 나폴레옹의 몰락을 가속화시켰을까? 놀랍게도 나의 상식은 무너졌다. '산업혁명이 뒤쳐졌던 유럽대륙에 기대치 않은 이득을 주었다.' 한예로 자국 면직물 산업을 육성해서 영국 면직물에 대항할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 단순히 실패한 정책으로 치부했던 정책이 의외의 효과를 거두었다는 사실은 신선했다. 일반 역사학의 관점에서 벗어나서 경제사의 관점에서 바라보니, '대륙봉쇄령'이 새롭게 보였다.

  둘째, 중상주의 정책은 절대왕정권을 강화시키는 성공한 정책이었다? 중상주의 정책을 교과서에서는 절대왕정을 뒷받침하는 경제정책으로서 성공한 정책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책에는 구성의 오류를 들어 중상주의 정책의 실패를 말하고 있다. 각국이 중상주의 정책을 실시하게 된다. 그러면 보호무역으로 인해서 교역을 위축시키고 이것은 경기침체로 이어진다. 프랑스의 경우 농산물 수출길이 막히면서 농민의 피해는 높아졌다. 중농주의가 이러한 중상주의에 대한 발발로 출발했다니, 정말 신선한 충격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경제사적 관점에서 보았기에 볼 수 있었던 사실들이다. 노란색의 안경으로는 황금을 구분해내기가 어려운 법이다.

 

3. 인공지능의 시대! 새로운 해안을 얻다.

  이책의 명문장은 서문에 있다.

 

  "석기시대는 돌이 부족해서 끝난게 아니고, 마차를 이어 붙인다고 기차가 되는 게 아니며, 기계를 부순다고 일자리가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이 문장은 지루했던 이 책을 끝까지 읽도록 힘을 불어 넣어준 문장이다. 새로운 혁신이 새로운 사회를 만든다는 이 문장의 의미는 , 4차 산업혁명의 시대! AI를 두려워하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이다. 시대의 변혁을 거부한다고 그 변화를 막을 수 없다. 새로운 혁신을 거부하기 보다는 그 혁신을 기회삼아 새로운 창조를 해야 우리는 생존할 수 있다. 이 책에는 그러한 거부의 사례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그것은 적기조례이다. 영국이 증기 자동차를 먼저 만들었으나, 증기 자동차는 도심에서 시속 2마일(3.2km), 교외 4마일(6.4km)이라는 속도 규제를 받았다. 운행시에는 60야드(55m) 앞에서 조수가 깃발을 들고 마부에게 자동차가 온다는 사실을 알려야했다. '적기조례'는 영국의 자동차 산업 발전을 막았다. 그사이 미국과 독일 프랑스는 영국의 자동차 기술을 발전 시켰다. 1896년 우리나라에서 아관파천이 있었던 해에, 적기조례는 폐지되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영국은 자동차 산업에서 미아가 되어버렸다.

  요즘, 카카오 택시 문제로 세상이 시끄럽다. 영국의 '적기조례'를 예로들며, 카카오 택시도입을 방해하는 세력을 '시대 착오자'라고 비난해야할까? 카카오 택시가 들어오면 택시기사의 생존권이 위협당하니 이를 규제해야할까? 시대 변혁을 막을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받아들여야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희생을 최소화시켜야한다. 그렇지 않고 어정쩡한 태도를 취한다면, 영국의 '적기조례'와 '러다이트운동'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할 것이다.

 

  일반이들에게 쉬운 수준의 책이다. 일반인을 위한 교양서라기 보다는 중학생과 고등학생들이 읽는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힐 수 있는 책이다. 물론, 서구 중심의 역사관은 반드시 수정되어야한다. 그렇지 않다면, 미래세대에게 서구에 대한 열등감과 서구 우월주의를 세뇌시키는 결과를 낳을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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