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으로 읽는 한국 현대사
김호기.박태균 지음 / / 2019년 4월
평점 :


  한국만큼 쟁점이 많은 나라도 없을 것이다. 좌우익의 극한 대립속에서 근대화와 민주화를 압축적으로 수행한 대한민국은 그 내부에 갈등과 대립이 많을 수밖에 없다. '논쟁으로 읽는 한국현대사'의 40꼭지가 한국현대사의 모든 쟁점을 살핀 것은 아니다. 사회학을 전공한 김호기와 역사를 전공한 박태균의 조합으로 한국사회의 정치사적 쟁점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 문화를 아우르는 쟁점을 두루 살폈다. 

  다양한 쟁점을 살펴볼 수 있었다는 것은 우리 사회를 폭넓게 조망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점에서 책읽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양날의 검이었다. 다양한 주제를 살펴볼 수는 있었지만, 깊이있는 성찰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 깊이있는 성찰을 하려면 해당 주제의 책들을 읽던가, '논쟁으로 읽는 한국현대사'라는 책이 태백산맥 정도의 권수와 분량으로 늘어나야할 것이다. 해당 분야를 전공할 사람이 아니라면 그렇게 두꺼운 책 읽기에 도전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라면 머리를 식힐겸 꺼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한국 현대사의 쟁점을 쉽게 정리하면서 새롭게 읽을 책과 관심가는 분야를 찾기에 좋은 책이다.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정독해볼 것을 추천한다. 300쪽 분량의 얇은 책이지만 절대 내용은 얇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k-트럼프의 등장" 어느 외국 기자는 그의 등장을 이렇게 표현했다. k로 시작하는 다양한 우리 문화 상품에 한껏 국뽕이 차오르지만 그를 "k-트럼프"라고 표현한 것을 직면하고는 씁쓸함이 밀려왔다. 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가 당선되는 날, 나는 박근혜가 당선되었을 때보다 더 심하게 좌절했다. 앞으로 5년을 어떻게 보내야하는가? 심각한 우울감에 TV뉴스를 보지 않았다. 박근혜 때보다 충격은 너무컸다. 한번은 모르고 그럴수 있다. 그러나 2번은 어리석은 것이다. 난 국민이 현명하다고 믿지 않는다. 박근혜를 뽑은 노인들을 보며, 인생의 지혜를 가진 노인분이라는 편견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깨달았다. 그를 뽑은 국민을 보면서 실수를 통해서도 배우지 못하는 어리석은 존재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땅의 민주화 운동을 하고 시대를 바꾸기 위해서 정치에도 뛰어들었던 유시민은 어떠한 만감이 교차할까? "매불쑈", "다스베이다"에 출현하여 쏟아내는 그의 정치 평론은 때로는 너무도 통쾌했고, 때로는 너무도 탁월했다. 그리고 둘다일 경우가 더 많았다. 그의 비꼬는 형식의 논평은 그에 대한 분노를 삭이며 최대한 냉정을 되찾으려는 몸부림으로 보였다. 그러한 몸부림은 이책의 곳곳에서 느껴졌다. 

  "극단적 무능", "독재자 행태", "학습능력 결여", "비굴한 사대주의", "권력 사유화"라는 그가 인기 없는 이유에 격한 공감이 갔다. 이러한 자가 대한민국의 최고 통치권좌가 되었다는 사실이 지금도 믿겨지지 않다. 아니 그러한 자를 대통령으로 뽑은 국민의 어리석음이 이해되지 않는다. 집값이 더 오르길 바라며 그를 뽑은 사람, 집값이 올라서 심판하기 위해서 그를 뽑은 사람, 검찰총장이고 서울대를 나왔으니 잘할 것 같아서 뽑았다는 사람, 그냥 예전대로 뽑던대로 뽑았다는 노인들.... 그들의 어리석은 선택 후에 한국 경제 지표의 추락으로, 한반도 전쟁 위기로 이어졌다. 최고 통치권자는 위기를 예방하고 조정하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러한 능력도, 의지도 가지고 있는가?

  그를 탄생시키는데 한국 언론의 역할이 컸다. 박근혜의 진면목을 목도했을때, 언론이 박근혜에 대한 마사지를 얼마나 잘 해주었으면 국민이 박근혜의 정신상태를 알지 못했는지 한탄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보수권력 앞에서는 작아지는 한국의 언론은 박근혜의 탄생을 도왔다. 그리고 그의 탄생도 도왔다. 진보 후보에 대해서는 메서운 언론의 칼날을 들이대는데 왜? 보수 후보에 대해서는 그 언론의 칼날을 휘두르지 못할까? 유시민은 한국 언론이 기득권의 일부가 되었다고 단언한다. 그렇다. 그들도 하루하루를 고달프게 사는 회사원일 뿐이다. 그들에게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서, 사회 정의를 위해서, 이땅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정론을 펼것을 기대한 우리가 죄인이다. 사주의 눈치를 보며, 권력의 눈치를 보며 그들도 하루를 숨가쁘게 살 뿐이었다. 

  그래도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 전통언론이 기득권의 일부가 되었다면, 김어준과 "뉴스타파"로 대표되는 유튜브 기반의 언론인들이 진실의 파수꾼역할을 하고 있다. 기성언론은 김어준과 뉴스타파를 유튜버라고 부를뿐 언론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이 희망이다. 

 트럼프의 당선을 놀라는 언론 기사를 보았다. 트럼프의 당선을 이변이라고 말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보면서, 당신들은 미국 주류언론의 기사를 통역했을 뿐, 진정한 분석을 할 줄몰랐고 하지도 않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미국 주류 언론은 헤리스를 당선시키기 위해서 헤리스에게 유리한 여론조사문항을 만들었다. 고졸이하의 노동자들을 여론조사에 포함시킬 방법을 강구하지 않았다. 그러니 헤리스와 트럼프가 박빙이라는 어리석은 결과가 나올 수밖에..... 미국은 친민주당 언론이, 한국은 친 보수언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들에게 유튜브를 기반으로한 진정한 언론인들은 반기를 들고 있다. 나는 그들을 응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십에 읽는 주역 - 팔자, 운세, 인생을 바꾸는 3,000년의 지혜 오십에 읽는 동양 고전
강기진 지음 / 유노북스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역은 점을 치는 책이다. 그런데, 그 책이 유교의 경정이되었다. 주역점을 치는 책이 괴력난신을 말하지 말라고한 공자가 가죽끈이 세번 떨어질 정도로 애독하던 책이라니 아이러니했다. 단순히 점치는 책이라면 공자가 이렇게 좋아할리가 없다. 그래서 언젠가는 주역을 읽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주역이 어려운 책이라는 공포(?) 때문에 쉽게 도전하지 못했다. 그래서 '오십에 읽는 주역'을 먼저 읽기로 했다. 

  저자 강기진은 어려운 주역을 쉽게 설명하려 노력했다. 한자 하나 하나를 갑골문에서 부터 시작하여 그 뜻을 깊이 있게 설명해주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유튜버들의 말을 인용하여 우리가 쉽게 주역을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중에서 박막례 할머니의 말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은 이 세상에 있을 수가 없는 거이여. 왜 남한테 장단을 맞추려고 하나. 북치고 장구 치고 니하고 싶은 대로 치다 보면 그 장단에 맞추고 싶은 사람들이 와서 춤추는 거여."(164쪽)


  불교에서 강조하는 주인으로 살라는 말을 박막례 할머니는 70 평생의 긴 내공으로 쉽게 설명하고 있다. 언제나 주인으로 살 수 있기를 바라며 남에게 휘둘리지 않으려 노력하는 나에게는 너무도 가슴에 와닿는 말이다. 주변에서 말하는 명예와 승진을 부추겨도 이에 휩쓸리지 않는 거목이 되고 싶었다. 박막례 할머니의 말씀은 거목이 되고 싶어하는 나의 마음에 촉촉한 단비를 내려 주었다. 

  강기진은 '붕'과 '우'의 차이를 갑골문을 들어 설명한다. 우는 서로 손을 잡은 상태를 뜻한다. 소꿉친구들이 이에 속하는 반면, '붕'은 같다는 뜻으로 동류라는 뜻이다. 같은 도를 추구하며 가은 길을 걸어가는 도반을 붕이라 한다. 

  그런데, 나는 우를 사귀려했다. 그것이 진정 사심없는 사귐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삶의 의미를 생각해야하는 우리는 붕을 사귀어야하지 않을까? 같은 뜻을 같고 같은 길을 걸어가는 붕을 사귀어야한다.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기 보다는 이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려 고민하는 붕을 사귈 때이다. 

  책을 덮었다. 두꺼운 주역을 얇은 책으로 이해하려했다. 물론, 이 책한권 읽었다고 주역의 심오한 뜻을 다 이해했다고 믿지 않는다. 공자가 인생의 여로에 주역을 읽으며 그 심오한 뜻을 이해하려하였듯이, 나도 언젠가는 주역을 읽으며 인생을 이해하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한민국의 시민들이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받았다고 경축하고 있을 때, 서울 중구에 있는 스웨덴 대사관 앞에서는 한무리의 노인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그들이든 현수막에는 "대한민국 역사 왜곡 작가 노벨상, 대한민국 적화 부역 스웨덴 한림원 규탄한다"라고 씌여있었다. 친일 반공에 뿌리를 둔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4.3과 5.18을 공산주의자에 의해서 벌어진 사건이라 폄하한다. 그 사진을 보며 저 늙은 보수꾼들은 한강작가의 책에 담긴 어떠한 내용이 무서워 저리도 몸부림치는지 궁금했다. 때마침 큰딸이 '소년이 온다'를 읽고 나에게 책을 넘겨 주었다. 200여 쪽의 얇은 책을 펼쳤다. 

  

  책을 펼쳤을 때, 가장 낯선 것은 2인칭 시점의 서술이었다. 도청에서 군인들의 총에 희생된 시민들의 시신을 관리하는 주인공 동허를 '너'라고 작가는 불렀다. 낯설었다. 중학교에서 1인칭 시점과 인칭 시점의 소설에 대해서 배웠지만, 2인칭 시점에 관해서는 배운 기억이 없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2인칭 시점은 강한 흡입력을 갖는다고 한다. 독자가 주인공을 자신이라고 감정이입하며 읽기에 흡입력이 강하다는 장점이 있단다. 그러나, 낯선 2인칭 시점에 나는 당황했고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 없었다. 얇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어 내려가는 속도는 상당히 느렸다.

  2장 검은 숨에서는 시점이 갑자기 1인칭 시점으로 바뀌었다. 군인 트력에 실린 시민들의 시체는 군부대에서 태워지고 있었다. 순간 주인공 동호가 죽었고, 동호의 영혼이 화자로 나왔다고 생각했다. 영혼은 '나'이고 동호의 육체는 '너'로 작가가 설정한 것인가? 순간 나의 착각임을 깨달았다. 몸이 타들어가는 영혼은 동호가 그토록 기다리던 그의 친구였다. 작가는 특유의 시적 언어로 타들어가는 시신과 이를 바라보는 영혼을 잔잔하게 묘사했다.

 3장에 들어서자 시점은 3인칭 시점으로 바뀌었다. 익숙한 시점이라 읽는 속도가 빨라졌다. 게다가 이책의 구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5.18 민주화운동 시기 도청에 남았던 동호라는 15살 소년을 주인공으로, 그를 둘러싼 인물들이 각장의 주인공이 되어 자신이 겪은 5.18을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 5.18의 주인공은 동호 한사람일 수 없었다. 그 때 그 현장에 있었던 모두가 5.18 민주화 운동의 주인공이었다. 그렇기에 각장마다 주인공이 달랐다. 그에 따라 시점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작가 한강의 탁월한 구성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3장은 이책의 하일라이트였다. 3장은 살아남은자의 슬픔을 말하고 있다. 3장의 화자는 5.18 당시 도청에서 벗어나 병원에서 밤을 세웠다. 그리고 그녀는 살아남았다. 그러나, 5월의 학살자가 권력을 장악하고 깊은 암흑의 시대를 살아가며 그녀는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겪어야만했다. 이러한 그녀의 심정을 연극을 통해서 말하고 있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루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99쪽)

  "당신이 죽은 뒤 장례를 치루지 못해,

   당신을 보았던 내 눈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내 귀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숨을 들이마신 허파가 사원이 되었습니다."(100쪽)

  "봄에 피는 꽃들, 버드나무들, 빗방울과 눈송이들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날마다 찾아오는 아침, 날마다 찾아노는 저녁들이 사원이 되었습니다."(101쪽)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꽃들이."(102~103쪽)


  이후 4장부터 6장까지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겪는 자들이었다. 그 고통을 참아내지 못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 우리가 장례식을 치르는 것은 고인에 대한 애도를 통해서 그들을 편히 보내고 남은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의례이다. 5월 광주의 희생자와 그 가족들, 그 지인들은 고인을 애도할 수 있는 장례식을 치르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5월이 슬플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리라...


  저자 한강은 에필로그 '눈 덮인 램프'에서 자신이 '소년이 온다'를 쓰게된 동기와 그 과정을 적었다. 여린 감성의 한강은 5.18관련 자료를 읽으며 악몽에 휩싸인다. 저자 스스로 여러번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심리학에서 '전이'라는 것이 있다. 상대방의 고통을 옆에서 보거나 듣다보면 그의 고통을 상담자도 그 고통을 함께 느낀다. 5.18의 기록을 읽으며 그녀는 그 때의 고통에 전이되었다. '소년이 온다'라는 책을 읽은 많은 독자도 그 고통이 전이되었다고 토로한다. 그 고통을 함께 느낄때, 우리 모두는 5.18의 장례식을 치룰 수 있다. 그럴때 살아남은자의 고통을 겪는 이들도 인생의 장례식을 마칠 수 있다. 스웨덴 대사관에서 어리석은 시위를 하는 이들도 함께 이 책을 읽고 5.18의 장례식에 함께하길 바란다. 우리 모두의 슬픔은 모두가 애도해야하기 때문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국 비밀문서로 읽는 한국 현대사 1945~1950 - 우리가 몰랐던 해방·미군정·정부 수립·한국전쟁의 기록
김택곤 지음 / 맥스미디어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 현대사를 연구하기 위해서 미국 국립 문서고에 가야만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독재자들은 자신의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역사학자들은 역사는 한세대가 지나야 역사로 연구할 수 있다며 당대의 역사를 연구하지도 기록하지도 않았다. 결국, 우리의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서, 우리를 바로알기 위해서 남의 나라 문서고를 뒤져야만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굴곡진 역사 속에서 한조각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서 역사학자들은 남의 나라 문서고를 뒤진다. 이책은 저널리스트 김택곤이 역사학자들이 해야할 작업을 대신했다. 우리에게 우리현대사의 조각난 진실을 찾아 책으로 묶어 냈다. 김택곤은 새로운 진실의 조각을 우리에게 던지며 생각의 파도를 일으켰다. 


  1. 하지 사령관을 어떻게 평가해야할까?

역사학자들은 하지를 군사적인 능력은 있을지 모르지만, 정치적인 능력은 없는 존재라 평가한다. 타지역에 보내진 장군들은 해당지역에 해박한 이해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능력까지 가졌다. 그러나, 하지는 그러하지 못했다. 그는 친일파와 지주가 많이 있는 한민당인사들이 요직을 장악하도록 했다. 친일파를 등용하고 이승만에게 거액의 정치자금을 제공하며 그들이 정권을 잡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 

  재미있는 것은 하지는 자신이 대통령으로 밀었던 이승만을 비판하는 편지를 썼다는 것이다. 1948년 1월 허스트그룹 신문회장인 윌리엄 R. 허스트에게 하지는 장문의 편지를 썼다. 물론, 하지는 그 편지를 보내지는 않았다. 편지를 보낼 용기도 없었는지도 모른다. 

  암튼, 허스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승만은 아집이 세고 돈을 사랑하며 친일파와 밀착해 있다고 실날하게 비판한다. "그에게 완전 독립 국가로서의 한국에 대한 고려는 없었습니다."(302쪽)라는 말과 함께 이승만은 '신콤플렉스에 사로잡혀있다고까지 표현한다.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밀었던 그가, 왜? 갑자기 태도가 돌변했을까? 이승만이 하지를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했다. 하지는 이승만에게 제대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이다. 그제서야 하지는 이승만의 실체를 깨달았다. 하지 그가 친일파를 등용하고 그들에게 권력을 쥐어주지 않았던가? 이승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돌고 물신 양면으로 노력한 것도 그가 아닌가? 순진한 군인 하지는 노련한 이승만의 실체를 진정 몰랐단 말인가? 

  이렇게 무능한 하지를 저자 김택곤은 "한국인을 이해하고 도우려했던 우리의 친구였지 않았을까?"(455쪽)라고 평가한다. 미군범죄를 단속하려했고, 한국인을 무시하거나 인종차별하지 말것을 미군에게 당부했던 그의 모습만 본다면 그의 마음이 악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뉴욕 타임스>, <시카고 트리뷴> 기사에 10명의 미국 흑인 병사가한국 여성을 석유 저장고에 가둬 놓고 밤마다 성폭행했다는 기사가 게재되었다. 소녀가 탈출해서 이 사건을 오빠에게 알렸기에 이사건에 세상에 알려졌다. 물론 미군은 한국인 여성들을 창녀로서 자발적으로 군부대에 왔다고 조사결과를 발표했다.(410쪽) 전형적인 축소 수사의 냄새가 난다. 이렇게 미군에 의한 범죄가 사회문제였던 당시에 한국인을 존중하고, 미군범죄를 단속하려했던 하지의 노력은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의 치명적 단점은 정치적으로 무능했다는 것이다. 프로이센 군사 격언에 가장 나쁜 지휘관을 무능하면서 부지런한 자라고 했다. 그러한자는 반드시 제거해야한다는 당부도 프로이센 군사 격언은 잊지 않는다. 열심히 친일파를 등용하고 이승만을 물신양면으로 등용했던 그는 부지런하면서도 무능한 지휘관이었다. 그리고 그는 한반도의 운명을 뒤틀리게 만들었다. 


2. 지청천 장군을 어떻게 평가해야할까?

  항일무장투쟁사에 큰 족적을 남긴 독립운동가이다. 보장된 미래를 버리고 군용지도와 작전교범을 가지고 일본군을 탈출해서 신흥무관학교에 간 그는 독립군을 양성한다. 1930년대 만주에서 한국독립군을 이끌었으며, 1940년에는 한국 광복군을 창설해 총사령관이 되었다. 그의 삶이 우리 항일 무장 투쟁사의 역사였다. 사선을 넘나들며 조국 광복을 위해서 일생을 바쳤던 그에 대한 평가가 상반된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지 않는다. 그것도 동일한 인물이 그를 상반되게 평가하고 있다. 

  OSS 이글팀의 실무책임자 싸전트 대위는 지청천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광복후 지청천에 대해서 정반대의 평가를 내리고 있다. 왜일까? 싸전트 대위가 변한 것일까? 아니면 지청천 장군이 변한 것일까?

  그들이 변한 것이 아니라, 시대가 변한 것이었다. 독립운동가 지청천은 광복후 극우파로서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대동청년단을 만들어 극우 활동을 하기 시작했으며, 이승만을 지지하며 분단을 지지 혹은 방관했다. 저자 김택곤의 글을 읽으며 탄식이 절로 나왔다. 내가 존경했던 인물의 안타까운 이면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님을 떠나보는 듯한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고포스 일병이 하지에게 보낸 편지가 있다. 고포스 일병은 한국의 운명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했다. 


"한국인 스스로 그들의 정부를 구성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한다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미국-소련 양국 군대가 동시에 철수하면 남북간 내전이 틀림없이 발발할 것입니다."(414쪽)


  일개 일병조차도 한반도의 내전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 분단은 곧 내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백범 김구가 목숨을 걸고 38선을 넘어 북한에 가서 남북협상을 한 것 아닌가? 분단을 막고, 동족 상잔의 비극을 막기 위해서 백범이 인생의 마지막 모험을 한 것이다. 그런데, 백범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지청천 장군을 어찌 분단을 막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았던가!

  철기 이범석 장군도 항일 무장 투쟁에 큰 족적을 남긴 분이시다. 청산리 대첩의 영웅이며, 한국 광복군 제2지대를 이끌었던 영웅이다. 그러나 그도 광복후에는 이승만을 지지하며 극우파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청천과 이범석은 공산주의자 박상실에게 항일 영웅 김좌진 장군이 안타깝게 암살된 것을 지켜보며 공산주의자에 대한 증오가 불타올랐을 것이다. 그리고 광복 후, 그들에게 가장 큰 적은 공산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탁월한 군인이지만, 현명한 정치가이지는 못했다. 어디 티없는 옥구슬이 있으랴? 옥구슬의 티마져도 우리가 보듬고 끌어안아야만하지 않을까?


3. 연합국의 지위를 얻기 위한 임시정부의 처절한 투쟁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연합국의 지위를 얻지 못한 것이 매우 안타깝다. 한편으로는 보다 치열하게 노력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가? 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때가 많다. 그러나, 저자 김택곤이 소개한 임시정부의 처절한 투쟁을 읽으며 그분들도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첫째, 무모한 이글 프로잭트를 추진했다. 김택곤은 "김구 주석의 마음에는 또 다른 수십명의 윤봉길 의사들이 있었을지 모른다."(101쪽)라고 표현했다. 무슨 뜻일까? 윤봉길 의사는 훙커우 공원에 입장권도 없이 갔다. 윤봉길 의사의 기지로 기념식장에 입장했고, 의거에 성공하고는 저세상으로 갓다. 국내 진공작전 즉, 이글 프로잭트도 이와같았다. 국내에 국내 정진군에 호응할 세력이 없는 상태에서, 구체적인 작전계획도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젊은이들을 무리하게 국내로 보낸다는 것은 죽음의 제단에 그들을 바치는 것이었다. 그렇게해서라도 값진 피를 흘려 연합국의 지위를 얻으려했다. 심지어 광복 직전에는 광복군의 지휘권을 미군에게 넘기는 것을 제안하기도했다. 그렇게해서라도 연합국의 지위를 얻으려했다. 

  둘째, 1945년 8월 18일 국내 진공작전을 추진했다. 광복군 선발대는 미군 C-47 수송기로 미군과 함께 여의도비행장에 착륙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항복 예비 접수' 명목으로 진입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군의 저항으로 중국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셋째, 김구 주석이 트루먼 대통령에게 전문을 보냈다. 김구 주석은 도너반 장군에게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임시정부를 승인할 것을 건의했으며, 루즈벨트 대통령이 죽자, 트루먼 대통령에게 임시정부 승인 전문요구 전문을 보냈다. 도너반 장군이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건의한 임시정부 승인 요구를 읽으면 감동과 깊은 상념이 든다.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승인하고 그들의 지원을 받게 되면 일본과의대결에서 달성하게 되는 효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1919년 한국혁명(3·1운동)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곳곳에 있는 한국인들의 헌신적인 지원을 받으며 한국 국내외에서 대일 파괴 활동과 게릴라전 등 갖가지 대일항전을 벌여왔습니다. 때문에 세계의 다른 어느국가들과 달리 대한민국임시정부라는 조직은 혁명과 파괴 활동에 대한 경험과 기술을 갖추고 있습니다."(도너반장군의 루즈벨트에게 건의한 임정승인 요구) - P107

 

  만약, 루즈벨트 대통령이 3년만 더 살았다면 한반도의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아니, 루즈벨트 대통령이 살았을때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승인했다면 우리의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일을 꾀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일을 이루는 것은 하늘에 달렸단 말인가!


  책은 두껍지만 관련 사진과 큰 활자를 고려한다면 두껍다고 겁낼 필요가 없는 책이다. 술술 잘읽히고 새로운 사실을 안다는 점에서 큰 재미를 주는 책이다. 책을 덮고서 나의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 것은 프롤로그에 일본계 미국인이 남긴 위안부 보고서였다. 


"위안부는 창녀 이거나 혹은 병사들의 편의를 위해 일본군에 부속되어 부대를 졸졸 따르는 존재일뿐 그 이상은 아닙니다. 위안부라는 단어는 일본인 특유의 것입니다." 37쪽

"낯선 사람 앞에서는 조용하고 얌전하지만 실은 여자만의 제주를 부릴줄 압니다."37쪽


  알렉스 요리치라는 일본계 미국인의 심문 기록은 그도 일본인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탄식을 자아낸다. 일본을 위한 변명과 조선인에 대한 멸시가 진하게 묻어난다. 미군의 기록이 제3자의 객관적 기록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에 남겨진 수많은 기록은 미국인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해서 남겨진 하나의 기록이다. 그 프리즘을 통해서 우리 역사의 다른면을 바라볼 수있다. 진실의 퍼즐을 맞추며 새로운 감동과 깊은 안타까움이 밀려오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