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이란의 역사 - 신비한 천일야화의 탄생지 생각하는 힘 : 세계사컬렉션 6
최승아 지음 / 살림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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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중에 아랍에 대한 책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이란의 역사에 대한 책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설령 이란에 대한 책을 구해서 읽는다하더라도, 특정 인물이나, 현대 이란에 대한 서술만 자세히 설명할뿐이다. 페르시아 제국에서부터 현대 이란의 역사를 쉬우면서도 체계 적으로 서술해 주는 책을 찾았다. '페르시아 이란의 역사'를 꺼내들면서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때는 내가 그토록 원하던 책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쉬우면서도 엘람왕국에서 부터, 메디나를 거쳐서 페르시아제국에서부터 현대 이란의 역사를 쉽게 쉬우면서도 체계적으로 서술해주었다. 그동안 단편적으로 알았던 이란의 역사가 하나의 씨줄과 날줄로 연결되었다. 저자 최승아의 쉬운 설명에 더하여 좋은 사진자료와 친절한 지도가 곁들여져 독자의 이해를 더욱 쉽게해주었다. 

  유대인들이 2천년 동안 나라없는 민족으로 세계를 유랑했음을 아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이란인들도 800여년 동안 타국의 지배를 받으며 민족성을 지켰다. 보통 800년 이라면 타민족에 동화되어 민족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는 시간이다. 그러나 이란인들은 민족성을 잃지않았다. 페르시아 문화의 자부심을 가지고 그 기나을 버티었다. 아니, 아라비아인들과 튀르크인들이 세운 나라의 행정을 도맡아하면서, 페르시아문화를 그들에게 전해주었다. 그리고 다시 페르시아는 부활하였다. 

 그 이란이 이슬람 공화국을 만들어 이슬람세계의 주도권을 장악하려한다. 이스라엘,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쟁쟁한 나라들이 이란의 용트림을 두려워하고 있다. 이란은 그들을 어떠한 역사를 써나아갈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800년을 인내한 민족이다. 현재의 고통도 그들은 인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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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 인생수업 : 석가모니가 세상에 남긴 삶의 지혜 인생수업
석가모니 지음, 김지민 엮음 / 하이스트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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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가모니 인생수업'이라는 제목에 마음이 끌리어 서가에서 책을 펼쳤다. 석가모니의 주옥같은 말들을 읽어가며 마음을 다스려보자. 

  

1. 싯다르타여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싯다르타의 말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다. 수행자들에게 한 말이 일반 대중에게 적합하게 적용되기 힘들고, 시간과 공간이 다르기에 그때의 말을 맹목적으로 추종해서도 안된다. 싯다르타의 말들 중에서 동의할 수 없는 몇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나의 결점을 알려주고 꾸짖어 주는 이를 만나거든 보물지도와 같이 대하라."(30쪽) 전혀 동의할 수 없다. 타인의 결점을 누가 꾸짖을 수 있는가? 단지 그가 성인이라면 깨달을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기회를 줄 뿐이다. 타인을 꾸짖는행동 자체가 꼰데나 할 수 있는 행동이다. 혹은 소시오패스가 마음 약한자를 가스라이팅하기 위한 행동일뿐이다. 

  타인 꾸짖음을 보물단지로 여기기 보다는 광활한 대지에 깊게 뿌리박은 나무처럼 자신의 확고한 주관을 가지고 그의 꾸짖음을 들어야한다. 그의 꾸짖음이 나를 길들이기 위한 가스라이팅인지, 자신의 한소연인지, 진심어린 충고인지를 판별해야한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보물지도를 가장한 독배를 마쉴뿐이다. 

  둘째, "우리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의 결과물이다. 마음이 모든 것이다."(48쪽) 언듯 들으면 너무도 아름다운 말이다. 이렇게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물적 토대가 만들어 놓은 결과물일 수도 있다. 종교적 관념론에 빠지느냐, 마르크스의 유물론에 빠지느냐는 본인의 자유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생각할까? 마음과 물적 토대의 역동 속에서 나는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내 마음이 내가 생각하는 세상을 만들려고 하기도하지만, 나를 둘러싼 조건들이 나를 만들어 가기도한다. 마음과 물적토대의 역동 속에서 나는 대지에 굳게 뿌리 박은 거대한 나무처럼 나의 삶을 살아가려한다. 그것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2. 석가모니여 당신의 말씀이 옳습니다.

  석가모니의 주옥같은 말들이 감탄을 한다. 그중에서 너무도 아름다운 몇가지를 함께 살펴보자. 

  첫째, "견고한 바위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이 현명한 자는 칭찬과 비난에 흔들리지 않는다."(45쪽) 그렇다, 타인의 한마디에 놀라지 않는 바위과 같은 사람이 되자. 그 누구가 나의 눈과 나의 귀를 현혹시킨다하더라도, 굳건하게 대지를 지키는 바위처럼 살아보자꾸나!

  둘째,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74쪽) 인간은 과거로 되돌아가고 싶어한다. 지금은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며 과거에 이러했다면 나는 나았을 것이다. 혹은 어린시절에 머물고 싶어하는 갈만을 갖기도한다. 과거에 집착하며 퇴행적 모습을 보이기보다는 과감히 나무가 꽃을 버리고, 강물이 강을 버리듯이 과거를 버려, 열매를 맺고 바다에 이르자. 과거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참다운 나를 발견할 수 있는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셋째, "타인의 삶과 비교하지 말라. 해와 달은 서로 비교하는 법이 없다. 그들은 단지 그들의 시간대에서 빛나고 있을 뿐이다."(127쪽) 우리는 선진국과 비교하며 발전을 이루었다. 비교하지 말라는 사람들은 타인 혹은 타국과 비교하지 않고 어찌 발전이 있을 수 있느냐며 반박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타인의 뒤를 쫓는 개발도상국이아니다. 이제는 우리가 타국의 모범이 되어야한다. 개인도 마찬가지이다. 타인의 삶을 모방하기 보다는 자신의 진짜삶을 모색해야한다. 해와 달이 자신의 시간대에서 빛나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시간대에서 빛나자.,


  석가모니의 좋은 글들을 가려뽑아서, 저자 김지민의 사색을 덧붙였다. 그가 덧붙인 사색보다는 석가모니의 글을 직접 음미하는 것이 더 좋은 책이다. 언젠가는 석가모니의 진리가 담긴 불경을 읽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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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전영애.박광자 옮김 / 청미래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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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아테레지아의 막네딸, 마리 앙투아네트!! 그녀는 유죄일까? 무죄일까? '빵이 없으면 케익을 먹으라고해요'라는 말을 했다는 잘못된 정보로 유명한 그녀이다. 혁명파들에게 그녀는 죽어야만하는 여성이다. 적국인 오스트리아의 여성이며, 구시대의 유물인 왕권에 너무도 가까이 있었기에 그녀는 추악한 여성이여야만했고, 민중의 이름으로 국민의 면도날인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져야만했다. 그녀에 대한 측은함이 밀려왔다. 그래서, 믿고 읽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를 펼쳤다. 


  14살! 요즘으로 말하면 중학생 나이에 정략결혼에 따라서 프랑스로 시집가야만했다. 익숙하지 않은 프랑스말을 배우며 낯선 사람들과 성적으로 무능한 남편에 기대어 철부지 마리앙투아네트의 프랑스살이가 시작되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필력은 '침실의 비밀'편에서도 빛났다. 루이 16세의 성적 무능이 왕권과 그와 왕비에게 미쳤을 정시적 정치적 영향을 뛰어난 문학적 표현으로 묘사했다. 이 책이 쓰여진 1932년 즈음은 심리학이 그리 발전하지 않았던 시절인데도 심리학적 이해를 바탕으로한 탁월한 묘사가 감탄스러울 따름이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대단한 다독가였으며, 섬세한 관찰자였을 것이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로 시집온 것 자체가 그녀의 불행의 씨앗이었다. 루이 14세 시절부터 잦은 전쟁과 베르사유궁전으로 대표되는 웅장한 건축물은 서민들의 등골을 휘게 만들었다. 그뿐인가? 미국독립혁명에 프랑스가 참전하면서 프랑스의 재정은 더욱 악화되어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리 앙투아네트는 '로코코의 여왕'으로 고통받는 민중의 삶을 외면한채 화려한 궁전 생활을 만끼하고 있었다. 그리고 슈테판 츠바이크는 그러한 그녀를 비판하고 있다. 

  슈테판 츠바이크에게 반론을 제기하고 싶다. 그것이 그녀의 책임인가! 앙시앙 레짐이 그녀의 책임인가! 당시 유럽에서 마리아테레지아를 비롯하여 여성 정치가가 국제 정세를 주도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의 정치를 주도할 수 있었겠는가? 왕은 분명히 그녀의 남편 루이 16세이다. 우유부단하여 여러차례 혁명군을 잠제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그는 기회를 놓쳤다. 그뿐인가? 그는 지금 무엇이 문제인지 몰랐으며, 자신의 어리석은 우유부단함이 그의 가족에게 어떠한 비참한 결과를 가져올지도 몰랐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마리 앙투아네트를 비판하기 이전에 루이 16세를 먼저 비판해야하지 않을까?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부르붕 왕조의 몰락의 책임을 묻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냉혹한 비판에 반감을 갖던 나는 '로코코의 여왕'편을 읽으며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가졌던 연민이 점차 옅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사치와 향략, 안일에 바져있었다. 그녀의 어머니인 마리아테레지아의 훈계도 듣지 않았다. 이제는 프랑스의 왕비로서, 한가정의 어머니로서 철이 들어야만하는 나이이고 위치이다. 그녀는 너무도 철이 없는 여성이었다. 

  학자들은 그녀의 사치는 과장된 것이며, 다른 왕비들의 평균치보다 그녀의 사치는 높지 않다고 말한다. 프랑스 재정문제의 근본원인은 그녀가 제공한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무죄일까? 프랑스의 재정은 파국에 이르렀고, 앙시앙 제짐 속에서 민중은 혁명을 갈망하고 있었다. 사회는 변화하고 있었다. 변화하는 사회에 과거와 같은 대응을 한다면 그 처럼 어리석은 자는 없다. 시대가 변하면 과거와 다른 새로운 대응을 해야한다. 그녀가 프랑스 재정 파탄의 근본원인 제공자가 아니라고한다고, 그녀가 왕이 아니라고 한다고, 그녀가 과거 왕비보다 많은 사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고 면죄부가 발부되는 것은 아니다. 

  부르붕 왕조라는 배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선장인 루이 16세는 폭풍우가 밀려오는데도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사냥이나 다니고, 자물쇠를 따는 취미에 몰두했다. 어찌나 무능했던지, 혁명이 일어나던 날의 일기에도 '아무일도 없었음'이라는 한심한 기록을 남겼다. 그렇다면, 묻겠다. 당신이 루이 16세라는 선장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선장이 아니니, 그의 무능을 탓해야지, 나는 나의 분수에 맞게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아야하는가? 비상 상황에는 비상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폭풍우의 한가운데로 가기 전에 무능한 선장에게서 키를 빼앗아야했다. 그리고 배를 안전하게 운행해야한다. 폭풍우를 피하지 못했다면, 폭풍우에 맞서며 이를 헤쳐나갈 길을 모색해야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러하지 못했다. 심지어는 그녀의 고향인 오스트리아 빈으로 도망가는 극박한 상황 속에서도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무능한 남편 루이16세에게 현명한 조언을 하지도 못했다. 그것이 그녀가 무죄가 아닌 이유이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오빠 오스트리아의 요제프 황제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요제프 황제의 검소함과 민중친화적인 모습을 슈테판 츠바이크는 냉소적으로 뵤사하고 있으나, 사치와 향략에 쩔어 있는 마리 앙투아네트와 비교한다면 너무도 훌륭한 황제이다. '위선은 악마가 보이는 선에대한 최대한의 경의'라는 말이 있다. 위선 조차도 없다면 그 사회는 너무도 야만적인 사회이다. 요제프 황제의 검소함과 민중친화적인 모습이 위선이라할지라도 최소한의 위선마져 잃어버린 프랑스의 부르붕왕조는 너무도 야만적이다. 요제프 황제가 동생에게 '민중이 혁명'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부르붕왕조 사람들은 깨닫지 못했다. 

  혁명은 루이 16세를 먼저 단두대에 보냈다. 그리고 마리 앙투아네트를 단두대로 보내기로 결심했다. 문제가 있었다. 바로, 그녀의 목을 단두대의 이슬로 만들 증거가 없었다. 그녀가 오스트리아 군대가 프랑스로 진군하길 바라면서 쓴 편지가 지금은 오스트리아 문서고에 있지만, 당시 혁명정부에는 그러한 증거가 단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다. 그녀가 그녀의 아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갖았다는 죄목을 뒤집어 씌웠다. 근친상간이라는 죄목은 혁명정부의 추악한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일대 사건이다. 

  프랑스 대혁명은 우리 인류 역사에 커다른 의미를 가지는 사건이다. 인류에게 자유 평등 우애라는 보편의 이념을 확산시킨 고귀한 혁명이다. 그렇다면, 혁명의 승리를 위해서, 구시대 유물을 없애기 위해서 혁명은 어디까지 폭력과 야만을 허용할 수 있을까?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른 폭력은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야만을 야만적인 방법으로 다스릴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간의 숙명이다. 악마는 천사에게 비겁한 방법으로 싸움을 건다. 천사는 정정당당한 방법으로 악마와의 싸움에서 이기려한다면 천사의 패배는 너무도 명약관화하다. 그렇다면, 선의 승리를 위해서 천사는 악마에게 얼마만큰의 속임수를 쓰는 것이 허락될까?

  마리 앙투아네트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녀의 시신은 다른 시신들과 함께 매장되었다. 루이 18세가 그녀의 시신을 찾도록 명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수많은 혁명의 희생자들 속에서 잠들었을 것이다. 

  단두대의 칼날이 그녀를 향해 돌진했을 찰나!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합스부르크가의 가훈은 "제3자로 하여금 싸우게 하라. 그래도 다행스런 오스트리아여, 그대는 혼인하라"이다. 그녀가 합부르크가의 가훈을 찢어 버리고, '공주님 저와 결혼해요'라는 말을 건넸던, 어린 모차르트와 결혼했다면 그녀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합스부르크가의 가훈을 찢어버린 용기도 없었다. 무능하고 우유부단한 남편을 대신해서 프랑스를 통치할 지혜도 없었고, 결단력도 없었다. 그녀가 유죄라면, 용기도, 지혜도, 결단력도 없이 변화하는 시대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죄목은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죄목이 아니길 바란다.


  괴테는 마리 아웉아네트와 루이 16세의 죄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한 국왕을 빗자루로 쓸 듯이

   그렇게 쓸어버렸단 말인가?

   국왕들이 아직도 있다면

   의연하게 서 있을 텐데."


  무능은 죄인가? 죄이다. 능력이 되지 않으면서도 만민이 우러르는 자리를 차지하고 배를 수렁속으로 빠뜨렸다면, 무능은 죄이다. 그자리에 있을 능력이 없다면, 스스로 그 자리에서 내려왔어야만했다. 무능한 남편을 둔 것은 유죄일까? 유죄이다. 무능한 남편을 현명하게 이끌지 못했다면, 무능한 남편이 현명하게 권좌에서 내려오도록 안내하지 못했다면, 유죄이다. 혁명이라는 폭풍우는 '나는 그 자리에 없었어요. 그러한 힘이 나에게는 없었엉요.'라는 변명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러한 단호함은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 민이 주인된 국가에 사는 우리도 주인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시대의 폭풍우는 우리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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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 분석가가 알려 주는 가짜 뉴스의 모든 것 - 가짜 뉴스의 역사부터 해법까지, 거짓에 속지 않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
신디 L. 오티스 지음, 박중서 옮김 / 원더박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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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부지법에 일베 매국 폭력자들로 보이는 청년들이 난입했다. 그들은 '국민 저항권이다.'라고 외치며 살기어린 눈빛으로 법원에 폭력을 휘둘렀다. 그들은 윤석열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가 좌파판사라고 주장한다. 같은 한반도에 살고 있지만, 같은 시간대를 살고 있지만 그들은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살고 있다. 너무나도 우리와 다른 관념을 가진 그들은 어쩌다가 그리 되었을까?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 전직 CIA 분석가 신디 L. 오티스가 쓴 '가짜 뉴스의 모든 것'을 집어 들었다. 


  가짜뉴스가 횡횡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부지법에 난입한 폭도를 비롯해서 태극기 집회에서 울려포지는 부정선거라는 프레임은 극우 집단의 가짜 뉴스에서 시작되었다. 너무나도 허무 맹랑한 그 주장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를 저자 신디 L. 오티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짜 뉴스는 단지 우리가 듣고 싶어하는 바로 그 내용을 말해줌으로써 우리의 시각을 더 굳히려고 노력할 뿐이다." -62쪽


  확증편향이 작동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말해주는 자에게 슈퍼쳇을 쏜다. 전00 강사 처럼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해줌으로써 이익을 얻는 사람이 출현한다.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진실보다는 그들이 원하는 말을 해준다. 꾀 짭짤한 수입이 되는 것이다. 

  슬픈 사실은 이러한 가짜 뉴스가 최근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신디 L. 오티스는 이집트의 람세스2세가 벌인 카디스 전투에서 부터 시작하여 최근의 미국 대선에 이르기 까지 유명한 가짜뉴스를 정리했다. 그 중에서 미국 독리혁명의 영웅인 제퍼슨이 '내셔널 가제트'로 자신에게 유리하고, 경쟁자에게 비난 기사를 쏟아냈다는 사실은 가장 충격적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극우들의 가짜뉴스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제퍼슨이 살았을 때는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도구가 신문지였다면 이제는 유튜브를 비롯한 쇼셜미디어로 바뀌었을 뿐이다. 인간은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를 퍼뜨려 이익을 얻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설마 그것이 가짜일지라도 해주는 사람을 위해서 대중은 지갑을 연다. 

  신문지에서 쇼셜미디어로 가짜뉴스의 도구가 바뀌자 속도도 빨라졌고, 그 악영향도 강화되었다. 멕시코 아카틀란에서 아동밀매 메시지가 소셜미디어로 퍼지자 그 동네에 등장한 낯선 남성 2명이 아동밀매범으로 몰려 군중에 의해서 휘발유에 타죽는 비극이 발생했다. 


  "아동 밀매에 관한 원래 메시지는 친구와 이웃사이에서 확산되었다. (중략) 자기가 신뢰하는 누군가를 통해서 그 메시지를 접했기 때문에, 진심으로 그 내용을 진실이라고 믿었다." -176쪽


  무고한 남성을 대낯에 휘발유를 부어 태워죽이는 만행을 저지르는 모습은 일부 극우 교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매우 과격한 말을 떠올리게한다. 서부지법 폭도들의 살기어린 눈빛도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의 말을 진리요, 신의 뜻이라는 믿음에서 시작되었으리라. 


  그렇다면 가짜뉴스에 대한 대응책은 없을까? 저자 신디 L. 오티스는 나 자신도 편향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소위 미디어 리터러시를 기르라고 조언한다.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는 지혜를 쌓고, 여론조사와 가짜 통계를 구분하는 능력을 길러야한다. 너무 성급하게 기사를 믿기 보다는 출처를 따지고, 타뉴스를 검색해보는 노력을 해야한다. 그러한 노력을 해야만이 우리는 가짜뉴스의 희생양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정보에 대한 신중함과 비판적 사고력이 없다면 우리도 서부지법 폭도처럼 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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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rian 2025-05-14 2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잘읽었어요. 공감이 수십명이 됩니다 이러니 가짜뉴스가 횡행하는 나라이지요. 일단 박제해 봅니다
 
이덕일의 고금통의 2 - 내일을 살아갈 통찰
이덕일 지음 / 김영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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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일의 책은 짧은 글 보다는 좀 호흡이 긴 글이 제격인듯하다. 이덕일이 쓴 짧은 글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보니, 이덕일 특유의 소설과 같은 몰입감 높은 글 읽는 듯한 쾌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한호흡에 읽을 수 있는 분량의 글이라서 화장실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약속장소에서 짬짬히 읽기에 좋은 책이다. 

 '이덕일의 고금통의1'에 이어서, '이덕일의 고금통의2'를 읽었다. '이덕일의 고금통의2'를 읽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임진왜란 시기 일본에 끌려갔던 포로들의 귀환문제였다. 조선은 회답겸 쇄환사를 보내 조선인 포로의 귀환을 모색했다.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는 포로들의 애틋함이 느껴지도록 이 문제를 설명했다. 그러나, 모든 조선인 포로들이 돌아오기를 바랫던 것은 아니었다. 


  "왜경에 도착한 이후에는 와서 뵙는 자가 연달아 있었으나 돌아가기를 원하는 자는 매우 적었다."

  "사대부출신은 귀국을 원했지만 일반 양인은 달랐다. 조선의 천인이던 도공들이 일본에서는 장인으로 인정받았으니 굳이 귀국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215쪽


  조선인 포로들은 일본에서 노예생활을 하며 고향을 그리워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유교적 사농공상의 직업의식을 갖고 있는 조선사회에서 살기 보다는 도공을 우대하는 일본에서 사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는 못했다. 한나라 원제때 흉노 선우에게 시집가야했던 왕소군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눈물로 세월을 보냈을 것이라 생각하는 중국인과 같은 격이었다. 몽골인 학자는 여성의 권리가 없다시피한 한나라의 궁녀생활보다는 흉노 선우의 부인인 연지로서 자신의 권리와 의견을 내세울 수 있는 삶을 왕소군은 더 좋아했을 것이라 주장한다. 그렇다.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은데로 세상을 보고 해석한다. 그러한 확증편향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한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442쪽에 소주의 기원을 '예기'와 '사기'에서 부터 소개하고 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학계의 연구 결과는 몽골군이 이라크 지역의 아락주를 고려에 전파한 것으로 결론내렸다. 이 부분은 저자 이덕일 수정하거나 보완해주길 바란다. 

 이책까지 더해서 이덕일의 책을 30권 읽었다. 이덕일의 책중에서 그의 탁월한 글재주를 마음껏 음미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을 찾아볼 계획이다. 음~~ 이덕일이 쓰고 있는 조선왕조 실록이 그러한 책이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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