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반도체 지정학 - 21세기 지정학 리스크 속 어떻게 반도체 초강국이 될 것인가
오타 야스히코 지음, 임재덕 옮김, 강유종 감수 / 성안당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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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정권의 목적은 미국에 부족한 제조 분야다. 자체 공급망을 구축하면 외국으로부터 반도체 산업을 지킬 수도, 외국을 공격할 수도 있게 된다. 대만의 TSMC를 불러들이는 작전은 반도체 체인을 미국 내에서 완결하기 위해서다. _ 오타 야스히코, <2030 반도체 지정학> , p52/462

<2030 반도체 지정학>의 요점을 역자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첨단) 세상은 반도체로 돌아가고, 반도체를 지배하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한다. 이를 위해 각국은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여기에 하나를 추가하자면 '이를 위한 일본의 전략 제언'이 책의 전체 내용이라 생각된다.

저자는 본문에서 반도체를 둘러싼 세계경제전쟁의 현실에서 일본 반도체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1980년대 이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점차 힘을 잃어가는 일본이 살아님기 위해서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반도체 설계와 제작을 중심으로 경쟁력을 살리자는 방향제시와 함께 파운드리 업체인 TSMC의 일본 공장 유치 실패에 대한 아쉬움이 책 전반에 짙게 배어 나온다.

공급망을 시장에 자율적으로 맡긴 채 국가안전을 지킬 수는 없다. TSMC와 하이실리콘 무역에서 미국이 배운 교훈이다. 반도체가 전략물자라면 정부는 그 소재를 알고 거래에 개입해야 한다. 일본은 가치관을 같이하는 미국과 연계해 소중한 기술을 지켜야 한다. 그렇다고 체인 관리를 통째로 미국에 맡기면 일본의 입지는 오히려 약해져버린다. 비록 동맹국이라도 비장의 카드를 모두 내주는 것은 좋은 전략이라고 할 수 없다. _ 오타 야스히코, <2030 반도체 지정학> , p421/462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일본의 생존전략이 주된 내용인 이 책에서 한국에 관한 이야기는 매우 적다. 그나마 비교적 자세히 언급된 내용이 일본의 한국에 대한 전략물자 수출 금지 조치였는데, 이 글을 통해 사건을 바라보는 일본의 인식을 알 수 있게 된다. 이제는 고인이 된 아베의 조치에서 일본 반도체의 저력에 대해 쉽게 동의하기 힘들다. 그보다는 글로벌 공급망이 굳건하게 구축된 현 상황에서 개별 기업들은 정치적인 선동과 구호가 아니라 자신의 실리에 따라 움직인다는 '정경분리'의 현실을 재확인한 것이 보다 사실에 가까운 것은 아닐런지.

삼성전자와 TSMC의 투자 유치를 통해 미국 내 반도체 공급망을 확보한 미국과 차세대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자 중인 중국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길을 가야할 것인가... 이에 대한 내용은 다른 책에서 확인해야 할 듯 싶다...

아베 정권의 대한 수출 규제에서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 하나는 일본이 자랑하는 반도체 소재에 전략물자로서의 파괴적인 위력이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전문 업체가 외국 경제를 죽일 수 있다. 그런 숨은 공격 수단이 일본의 손아귀에 있음을 전 세계가 깨달았다. 미국 군사력의 우산 아래 있을 뿐 아니라 일본에는 독자적인 '무기'도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세계 각국이 '필요하다면 일본은 무기를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인식을 가진 것이다. 일본은 그런 인식을 주는 나라였다. 한번 두려움을 맛보면 경험은 트라우마가 된다. 장차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는 국면이 찾아오면 각국의 머릿속을 불화수소나 레지스트의 그림자가 스쳐갈 것이다. _ 오타 야스히코, <2030 반도체 지정학> , p120/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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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10-11 17: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미국이 반도체 설계만 자국에서
하고 나머지는 외주를 방식을 채택했었
는데,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더 이상 지
켜만 볼 수가 없어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게 아닌가 싶네요.

반도체 설계+생산 공정을 자국으로
돌리려는 미국의 자국 이기주의가 과연
어떤 결말을 가져오게 될지 자못 궁금
해집니다.

겨울호랑이 2022-10-11 20:14   좋아요 1 | URL
네 그렇습니다. 사실, 많은 부분에 있어 미국은 제조를 외주에 맡기고, 디자인 등 핵심역량과 본사를 두고 세계각지에 진출해왔었는데 최근에는 다시 미국으로 철수하는 흐름으로 바뀌는 듯 합니다. 이렇게 미국의 영향력은 갈수록 축소되고 있는데 반해, 석유를 기반으로 한 달러패권은 그대로 유지하려는 상반된 힘의 작용이 세계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계속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요약하자면 과학은 열린 마음으로 잠정적이거나 사실적 지식에 대한 새로운 증거와 정보를 끊임없이 추구한다. 그러나 과학이 ‘잠정적’ 본성을 가진다고 해서, 과학자들이 과학이 밝혀낸 세계의 많은 사실을 신뢰하지 않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종종 닫힌 마음으로 창조론 공동체를 무시한다. 그 이유는 창조론자들이 진화론을 지지하는 수많은 증거를 무시하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젊은 지구창조론자들은 많은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는 진화를 열린 마음으로 검증하려 들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지구가 대체로 둥글고, DNA가 생명의 유전물질이며, 얼음이 액체인 물보다 밀도가 낮다는 점을 확신하는 합리적인 사고와 다르다. 모든 경험적 증거가 우리에게 이 명제들이 참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왜 미국인들은 그토록 과학에 무지한가? 리얼리티 쇼, 사이비과학, 유명 연예인에 관한 가십 같은 쓸모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는 미디어에 큰 책임이 있음은 확실하다. 그들이 다루는 과학조차도 흔히 왜곡되거나 완전히 틀린 내용일 정도로 희석되고 지나치게 단순화된다. 대부분의 과학자가 이를 가장 큰 문제로 보고 있음은 분명하다.

사회학자 그레고리 폴Gregory Paul11과 종교사회학자 필 주커만Phil Zuckerman12 등의 학자가 지적한 대로 종교적 영향력이 가장 낮은 유럽 국가들은 생활수준이 매우 높고 웰빙well-being에 대한 인식이 강한 국가들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강력한 사회안전망(공공 의료보험, 직업 안정성, 은퇴 및 휴가에 대한 우수한 복지, 훌륭한 보육 프로그램 등)을 갖추고 있다. 이들 국가(특히 스칸디나비아 3국과 독일)의 국민들 대부분은 더 이상 세속적인 생존의 문제를 걱정하지 않는다.

지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원자는 산소다. 지각의 거의 모든 물질은 산화물의 형태로 존재한다. 산화는 생명이 에너지를 얻는 방법이기도 하다. 무생물은 규소를 뼈대로 한다. 생물은 탄소가 뼈대다. 규소와 탄소가 모두 14족 원자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물리학자의 입장에서 궁금한 것은 이들은 어떤 원자로 되어 있을까하는 거다. 지구의 생명체는 주로 산소, 탄소, 질소, 수소의 네 가지 원자로 되어 있다. 반면, 지구 자신은 산소, 규소, 알루미늄, 마그네슘, 칼슘, 철의 여섯 가지 원자가 질량의 98%를 구성한다. 생물과 무생물 모두에서 산소가 등장한다. 산소야말로 ‘모든 물질은 원자로 되어 있다’는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우주에 가장 많이 존재하는 수소도 공통으로 등장하지만, 너무 가벼워서 쉽게 날아가 버린다. 질소는 대기의 75%를 이루고 있으니 지구의 중요한 일원이다. 그래서 지구의 무생물과 비교할 때 생명만이 갖는 특별한 원자는 바로 탄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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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 동아시아 냉전과 식민지·전쟁범죄의 청산
김영호 외 엮음 / 메디치미디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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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에 있어 샌프란시스코 체제란 냉전체제와 동의어라 할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자체가 한국전쟁의 발발을 계기로 성립되었으며, 이후 냉전 대립에 의해 분열된 동아시아 지역질서를 구조화시킨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일본의 전쟁 및 식민지 지배의 책임과 청산이라는 역사적 과제가 실종되어 지금까지 많은 문제를 남기고 있다. 과거의 전쟁과 대립을 해소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에 더하여 '냉전'이라는 세계적인 이데올로기 대립이 밀려오면서, 동아시아의 탈식민화 과정이 새로운 전쟁과 분쟁으로 격화되었다. _ 김영호 외,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 p288/459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안에는 체제가 끼친 영향과 관련한 주제가 국내외 학자들에 의해 폭넓게 다루어진다. 고대 신라 시대로부터 현대의 한반도정책프로세스를, 유럽으로부터 동아시아 이르는 지역을 다루기에 다소 산만하게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인 학자들의 공통된 인식은 '샌프란시스코 체제 = 냉전체제'다. 결국, 본문에서 언급된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극복은 냉전 체제의 극복을 말하며, 한반도 평화정착으로부터 시작되어 아시아 공동체로 안착하기 위한 여러 문제 인식과 방안이 제기된다. 그렇다면,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남긴 문제는 무엇인가?

미국의 동아시아 근대사 연구의 권위자 존 다우어 John W. Dower 교수는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유산을 다음 8가지로 요약하였다. 오키나와와 두 개의 일본, 한/중/러와의 영토 분쟁, 일본 내의 미군기지, 일본 재무장과 미국의 핵우산, 역사문제들, 중국 봉쇄와 일본의 아시아로부터의 이탈, 일본의 예속적 독립이다. 이들 8가지 모두가 한국과 관계가 깊지만, 특히 독도 영토문제와 역사문제 등이 중요하다. _ 김영호 외,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 p14/459

1949년 중국공산당에 의한 중국 본토 점령과 1950년의 한국전쟁은 샌프란시스코 회담의 성격을 크게 변화시켰다. 전후 빠른 속도로 아시아 지역에서 공산주의 세력이 확장되면서, 일본을 최후의 보루로 지키고자 했던 미국의 의중이 강화조약에 반영되면서,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세계대전의 종결이 아닌 새로운 전쟁을 위한 체제로 변질되었다. 그 결과 우리에게는 영토문제와 역사문제가 부정적인 유산으로 남겨지게 되었다.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전쟁을 끝낸 것이 아니라 계속하게 만든 국제적인 국가체제다. 샌프란시스코 체제에서 적군 진영은 북조선과 중화인민공화국 그리고 뒤에 숨은 소련으로 구성됐다... 일본 자위대는 명목상으로는 그 전쟁의 미군 진영 잠재전력에는 포함돼 있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오키나와를 포함한 일본열도 전체를 포괄하고, 그 통합성과 안전을 보장했다. 이 체제 내에서 일본은 미군의 주요 후방 지원자로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_ 김영호 외,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 p57/459

결과적으로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전챙책임자가 아니라 전후 미국의 가장 강력한 파트너로서 공인받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독일이 해외 식민지를 모두 상실한 것에 반해, 일본은 자국 영토의 상당 부분을 보존할 수 있었고,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의 배후기지로서 비공식적인 마셜플랜(Marshall Plan)의 수혜국이 될 수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가장 부정적인 유산은 전쟁책임에 관한 문제다. 조약문에는 왜 '평화'를 회복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리적 설명이 부재했다. 1947년 이탈리아 강화조약에서 연합국은 '3국 동맹'으로 구성된 '추축국'의 일원인 파시스트 정권하의 이탈리아가 침약전쟁을 개시했다는 점을 분명히 명시했다. 이 조약에서는 추축국에서 탈퇴한 이탈리아에 대해 분명한 전쟁책임이 조약문에 명시된 반면 샌프란시스코 체제에서는 전쟁 책임이 물어지지 않았다. _ 김영호 외,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 p93/459

일본에 대한 미국의 우호적인 태도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모호한 조문(條文)으로 현실화되었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케 되면서 수많은 분쟁지역이 생겨났다. 서로가 영유권을 주장하고 정치상황에 따라 긴장이 고조되지만 결코, 지역적인 충돌을 넘어서지 않는 분단선. 이러한 분단선은 아시아 전체를 항상 긴장과 분열상태로 남겨놓는 역할을 하면서 이들 지역에 대한 일본(그리고 미국)의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는 기능을 해왔다.

평화조약의 모호한 자구들은 부주의 탓도 실수탓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문제들은 의도적으로 미해결인 채로 남겨진 것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파생된 영토분쟁들 - 북방영토/남쿠릴열도, 독도/다케시마, 센카쿠/댜오위(오키나와), 스프래틀리/난샤 그리고 파라셀/시샤 문제들 - 모두 "애치슨 라인 Acheson Line" 곧 1950년 1월에 발표된, 서태평양에 대한 미국의 냉전 방위선 주변에 나란히 포진해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_ 김영호 외,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 p48/459

이와 함께, 일본에 대한 관대한 조치는 일본인들에게 과거사에 대한 반성의 기회 또한 빼앗아갔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의 2차례 이루어진 원자폭탄 투하는 일본에게 전범이라는 죄의식보다 세계 유일의 원폭 피해국이라는 피해의식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관대한 처분으로 그 근거를 확보하면서 일본은 동일한 피해국으로서 자국의 이익을 확보하는데 열중하는 모습을 보이며 주변국과의 갈등을 키워왔다. 미국의 비호 아래.

일본인들뿐만 아니라 외국의 연구자들도 거듭 얘기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전후 일본사회에서 거의 모든 단체들이 공유하고 있는 피해의식이다. 전쟁책임 문제를 반성적으로 바라보는 진보주의자들도차도 이런 피해의식의 징후를 보였다. 예컨대 이에나가 사부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제국 일본은 사람들의 자유와 권리를 손상시키고,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일본국민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데 대한 책임이 있다. 그리고 연합국 쪽, 특히 미국과 소련도 일본에 고통을 안겨주었다. _ 김영호 외,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 p83/459

국제무대에서 발설한 아베의 메세지는 보편적 가치, 민주주의, 기본 인권과 법치였으나 2019년 그의 각료들 19명 가운데 15명 그리고 거의 모든 자민당 당료들은 일본회의라는 조직의 수중에 있던 자들이었다. 신보수주의, 신국가/민족주의 그리고 역사 수정주의의 우익적이고 반동적인 혼합체인 일본회의는 그 극단주의 또는 극우 국가/민족주의 때문에 지금의 다른 어떤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용인될 수 없을 것이다._ 김영호 외,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 p32/459

우리는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를 통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의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위한 강화조약이, 오히려 냉전(冷戰)의 출발점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동시에, 우리의 분단문제가 갖는 세계사적인 의미와 함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결코 단순방정식이 아님도 거듭 확인하게 된다. 중국의 대만 문제, 일본의 오키나와 문제, 러시아 북방 영토 문제와도 맞닿아 있는 고차방정식이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분단에서 평화 정착 나아가 통일까지 나아가는 길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도 자연히 깨닫게 된다. 예상보다 깊은 분단 체제의 의미를 샌프란시스코 체제 안에서 확인하면서, 이제는 분단문제를 단순히 친일세력 극복이라는 관점보다 한 단계 높은 세계사적 수준에서 조망할 필요가 있음을 생각하면서 리뷰를 갈무리한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일본의 식민지 침략범죄 및 아시아/태평양 전쟁범죄를 징치하기 위하여 시작되었으나 중국의 공산화와 한국전쟁의 발발을 맞아 냉전전략의 일환으로 변질되었고, 일본을 동아시아 반공전선의 지역 중심으로 끌어들이는 조약이 되어 버렸다. 이와 같은 변질 과정에서 식민지범죄, 전쟁범죄의 청산은 물 건너갔고, 과거 청산없는 동아시아, 과거청산 없는 한일 관계의 전후사가 전개되었다. 그리하여 베르사유 조약이 독일에 대한 과도한 징벌로 오히려 히틀러 등장의 온상이 된 것과는 반대로, 전범국가 일본에 대한 너무나 관대한 처분은 일본을 전쟁 피해자로 착각하게 만들고 파시즘을 부활시키는 기회가 되었다. _ 김영호 외,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 p5/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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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대통령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참석 때는 ‘인사비서관 배우자 동행, 김건희 여사 장신구 논란 등이 더 부각되었다.
‘비속어 논란‘ 뒤 잊지 말아야 할 두장면이 있다. 윤석열 정부가 이번 순방 외교의 실질적 과제로 내세운 한·미, 한·일정상회담은 각각 ‘48초 환담‘과 ‘약식회담‘으로 마무리됐다. 두만남 모두 구체적성과보다는 원칙적 입장을 재확인하는데 그쳤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걸까.  - P12

표적은 MBC였다. MBC가 9월22일오전 10시7분 모든 언론사 중 최초로 윤대통령의 발언을 보도한 영상에서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안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는 자막을 단것을 문제 삼았다.
공격은 크게 세 갈래로 나누어 진행됐다. ①MBC가 대통령의 발언을 정확히확인도 못한 채 단정적인 자막을 달아 보도해 ②국익을 훼손했으며 ③엠바고(보도 시점 유예) 해제전 보도내용을 더불어민주당(민주당)에 유출하는 ‘정언유책‘을 저질렀다는 주장이다. - P16

영빈관 논란의 본질이자,
윤석열 정부의 중장기 리스크로 평가되는 대통령실 용산 이전에 따른 전반적인추가 비용 문제에 대해서도 종합적인 집행 계획을 내놓는 등 논란을 수습할 만한돌파구를 찾지 못한 상황이다.
대통령실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되고대응에 대한 비판도 반복된다. 인적 개편효과가 드러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이를두고 대통령실 안팎에선 ‘초기 구성 과정과 개편 내용을 뜯어보면 진단이 잘못됐고, 혼선은 예고됐으며, 앞으로도 반복될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P19

논쟁이 진행 중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였던 올리비에블랑샤르나 래리 서머스 하버드 대학교수는 실업을 크게 늘려야, 즉 성장을 크게후퇴시켜야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성장을 어지간하게 줄이면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없다는 이 같은 전망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필립스곡선(Phillips curve)이 ‘누워 있다‘는연구들과 긴밀히 연결된다. - P22

최근 사태의 핵심은 결국 미국 달러의 초강세다. 달러 가치가 다른 통화에대해 지나치게 오르면서, 해당 국가들의경제적 취약성이 증폭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달러 초강세의 가장 두드러진 원인은급속한 금리인상이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올해 초 사실상 0%였던 기준금리를 불과 아홉 달 사이에 3.0~3.25%로 올렸다. 이전엔 한 번올릴 때마다 0.25%포인트씩 인상했다. - P25

온라인에서 이용자는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포털또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수많은 뉴스에 노출된다. 그 결과 나는뉴스를, 특히 중요한 뉴스를 충분히 소비하고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문제는 정말로 중요한 뉴스가, 그중에서도 좋은 뉴스가이들을 제대로 찾아갈 수 있는지 여부다. - P34

일본에서 코로나19 방역을 주도하는법적 지위는 중앙정부가 아니라 ‘도도부현(한국의 광역지자체에 해당)‘이 가진다. 지자체마다 지역 상황에 맞춰 대응할수 있다는 이점이 있지만, 중대본(국무총리)-중수본(보건복지부)-방대본(질병관리청) 체계를 갖춘 한국처럼 일사불란한 방역은 이뤄지지 못했다. 정부의 빈틈을 메운 것은 지역사회에 뿌리내린 의료기관들이었다.  - P39

아베 전 총리의 국장에 대한 반대 여론은 구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와 아베 전 총리, 자민당의 커넥션에 대한의혹이 크게 작용했다. 아베 전 총리의 저격이 통일교에 대한 원한 때문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지면서 아베 전 총리와 자민당의 ‘통일교와의 밀월관계‘가 하나둘씩파헤쳐지기 시작했다. 결국 지난 7~8월40~50%이던 국장반대여론이 9월에는절반을 훌쩍 넘어섰다. 보수 신문인 <닛케이>와 <산케이 신문> 조사에서조차응답자의 60%가 국장에 반대했다. - P47

최근 몇 년, 국내 드라마 업계는 어느분야보다 OTT 플랫폼의 영향력이커지는 걸 실감했다. 한 방송사 소속A 드라마 감독은 "대체로 내수시장을겨냥하고, 일부 해외시장을 타깃으로하던 과거와 달리 처음부터 해외를염두에 두면서 해외 OTT 플랫폼의 힘이확실히 세졌다"라고 말했다. 전에는방송국에서 만들고 편성한 드라마를해외에 직접 판매해야 했는데 지금은그럴 필요가 없다. OTT 회사에일괄적으로 판매하고 제작비를 회수할수 있기 때문이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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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륭제의 일구통상 정책은 해안의 통제와 무역 이익의 획득이라는 두 가지 욕구를 하나도 포기하지 않으려 하면서도, 전자가 후자를 압도해 가는 분기점을 보여 준다. 균형을 잃어버린 치우침 현상은 1784년까지 더욱 강화되었다.

대운하 시대의 동남 연해에 대한 상품 교역과 관련한 해양 정책은 사실상 국가 안보와 이를 뒷받침해 주는 물적 기반에 대한 고려 속에서 변화되는 변경 정책의 일환이었다. 피터 퍼듀(Peter Perdue)는 청조가 준가르 제국 정복을 통해 서북 변경에서 거둔 승리에 도취된 나머지 서북 변경의 정책 기조를 그대로 동남의 해양 변경 정책에 적용했다고 해석했다.

압도적인 경제력을 기반으로 한 강남의 문화적인 힘은 건륭제에게 경계심도 불러일으켰으나 결국은 여섯 번이나 강남으로 향하는 구심력으로 작용했다. 성공의 사다리인 과거에서 강남인들이 보여 주었던 힘은 대단했고, 점차 권력의 상층부는 강남 출신 인사들로 채워졌다.

대운하 시대에 최적화된 국가 운영의 패러다임이 해양을 포괄하는 방향으로 전향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한, 인도양과 태평양을 통해 압박해 들어오는 해상 세계의 위협과 요구 속에서 중화 질서가 와해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따라서 19세기 중엽의 아편전쟁과 19세기 후반의 청일전쟁에서 당한 잇단 패배는 한때의 강점이 약점의 근원으로 급속히 전환되었던 18세기 후반의 역설적인 상황에서 기인한 것이다.

대운하 시대와 그 이후에도 중국의 해안 지역에서는 돈을 벌기 위해 해양으로 진출하려는 욕구와 시도가 끊임없이 이어졌던 것이다. 대운하로 물자 조달에 문제를 못 느끼던 북경의 집권자들만이 해양으로의 진출 의욕이 결여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해적들이 투항하면서 청조의 관리들이 19세기 초엽에도 해양 방어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잘못된 안전 의식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대운하 시대에 통제할 수 없는 해양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작동함으로써 조량 해운을 억제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더 나아가 조공이라는 외피로 통제 가능한 범주에서 제한된 항구를 개방하거나 밀무역을 묵인하게 되었던 것이다. 정화의 원정에서 보여 주었던 해상에 대한 힘과 능력이 있었는데도 북경 조정은 안보를 최우선시했기에 그 힘을 최대한 억제하거나 통제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이것이 대운하 시대 중국의 바다 공포증에 대한 역사학자로서의 예의 바른 해석이다.

장구한 역사를 가진 중국의 대운하 물류 시스템은 사실상 19세기 후반기에 막을 내렸다. 마침 19세기는 기선(汽船)과 철도와 같은 근대적인 운송수단이 도입되는 시기였으므로 점차 이용률이 감소했던 대운하는 마치 전근대적인 운송로의 대표적인 퇴물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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