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소는 『사회계약론Le Contrat social』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공적인 신체personne publique를 옛날에는 도시국가cité라 불렀으며, 이제는 공화국république또는 정치체corps politique(국가)라 부른다. 그리고 그 구성원들은 국가를 세 가지로 구별해서 부른다.
수동적인 경우état, 능동적인 경우souverain(주권자), 그리고 다른 나라와 비교할 경우puissance를 구별하는 것이다. 게다가 국가와 결합한 사람associés을 집단적으로 인민peuple이라 부르며, 주권을 행사하는 경우 시민citoyens, 국가의 법률에 복종하는 경우 신민sujets(국민)이라 부른다."
이것이 프랑스 혁명을 왕이 만든 법률에 수동적으로 복종하던 ‘신민‘이 국회를 만들어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는 ‘시민‘으로 탄생하는 과정이었다고 이해하는 근거다.

헌법문제, 재정문제, 농업·상업·상업재판소 문제, 종교·성직자·교육·병원·풍속 문제, 입법문제,
그리고 파리에 한정된 문제를 6개 부문으로 나누어 차례로 다루었다.
"프랑스 군주정에서 입법권은 국민에게 속하며 왕과 함께 나눈다. 왕만이 법을 집행할 수 있다. 국민만이 세금을 신설할 수 있고 전국신분회는 3년마다 열리며 해산하기 전에 반드시 다음에 모일 날짜와 장소를정한다. 신분회 대표를 선출하는 기초의회도 자동적으로 모인다. 군주는 신성하고 침해할 수 없는 존재다. 왕위는 왕실의 장자상속법을 지켜 세습한다."

왕은 왕국의 조화와 행복을 언급하고 번영을 얘기했지만 이미 왕과 제3신분 대표 사이의 거리만큼 귀족이나 성직자의 특권층과 평민 사이의 거리도 좁힐 수 없는 것임을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의 예복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2,000명 정도의 참관인은 중앙홀에서 일어나는 연극 같은 장면이 앙시앵레짐의 모습을그대로 담고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그 모습 속에서 이미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참관인은 연극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는 정치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처럼 앙시앙레짐 시대에는 전혀 불가능했던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날 이후 프랑스의 정치는 대중에게 공개될 것이다.

시에예스 신부는 계속해서 말했다.
"비록 가끔 먹구름이 낀다 해도 우리는 언제나 우리를 이끌어줄 빛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슨 권한을 행사하고 무슨 임무를 수행하려고 프랑스 방방곡곡에서 여기 모였는지 스스로 물어봅시다. 우리는 단지 명령을 받은 사람입니까, 왕의 관리란 말입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복종하고 물러나야겠지요. 그러나우리는 인민이 보낸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용기를 내서 자유롭게 우리의 임무를 수행합시다. (.....)우리는 맹세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맹세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프랑스 인민의 권리를 되찾아주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인민은 우리에게 헌법을 요구합니다. 우리가 없으면 누가 헌법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아니면 누가 헌법을 만들겠습니까? 여러분의 선거인들을 대표할 권리를 그 어떤 힘으로 빼앗을 수 있단 말입니까?"
시에예스 신부의 말이 끝나자 우레 같은 박수가 터졌고 국회는 이미 결의한 내용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수구세력은 어떠한 개혁도 싫어한다. 이 같은 사람은 기득권을 잃어가는 과정에서 개혁세력을 증오하게된다. 개혁도 바라지 않는데 하물며 혁명까지야. 그런 사람은 진정한 반혁명anti-révolution의 성향을 보여준다.  1789년 프랑스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자신에게 불리하기 때문에 도저히 참고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7월부터 보따리를 싸들고 외국으로 나갔다. 왕의 작은 동생 아르투아 백작이 대표적인 사례다. 엄밀히 말해 이러한 수구세력은 혁명을 증오한다.
그러나 혁명세력이 ‘애국자‘라는 이름을 얻고 반대세력을 억압하는 상태에서 외국으로 가지 못하는 사람은 혁명의 흐름에 억지로 끌려간다.

장 조레스의 말대로 파리 시민이 바스티유 요새와 감옥을 정복했다면 농민은 그 나름의 ‘봉건적 바스티유‘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 그것은 그들에게 케케묵은 문서를 뒤져가면서 세금을 걷어가는 영주들의 저택이었다. 모든 농촌 지역이 들고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많은 지역이 무질서를 경험했다. 노르망디의관목숲 지역(캉과 알랑송의 초원지대 서쪽)과 에노, 오트 알자스에서 농민은 성관(군주나 귀족의 별장)과 수도원으로 쳐들어가  문서를 불태우고 영주권을 포기하도록 강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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