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람시가 묘사하는 위기 국면은 잠재적인 혁명적 상황이 아니라 ‘병적 징후’들로 가득한 ‘공백기’였다. 그람시는 낡은 것으로 되돌아가는 상황을 배제하지는 않았지만, ‘지성의 비관주의’와 반대되는 ‘의지의 낙관주의’를 품은 채 이런 병적 징후들이 진보를 위한 기회를 제공하기를 기대했다. 낡은 것과 새로운 것 사이에 놓인 공백기의 주요한 특징은 불확실성이다.

오래된 강둑이 뒤에 있지만, 반대편은 아직 또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물살 때문에 뒤로 밀려서 빠져 죽을 위험도 있다. 어떤 일이 생길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두려움과 불안, 공포에 짓눌린다.

1945년 이전의 유럽은 우파 권위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다. 감옥에서 그람시는 모름지기 지식인 혁명가라면 언제나 해야 하는 일을 했다. 패배의 원인을 고찰한 것이다. 그람시는 또한 당시에 자본주의의 심각한 좌절이라고 여겨진 사태, 즉 1929년 대공황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가운데 글을 썼다. 어떤 이들에게 대공황은 오랫동안 기다리고 오래전부터 예측된 자본주의의 위기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좌파는 재기하지 못했다. 노동계급이 처한 상황은 참담했다.

히틀러가 권력을 잡기 3년 전인 1930년, 이탈리아 남부 투리에 있는 파시스트 감옥에서 이탈리아 공산당 지도자 안토니오 그람시는 이 유명한 고찰을 글로 남겼다. 낡은 것은 죽어가는데 새로운 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때 위기는 생겨난다. 이 공백기에 다양한 병적 징후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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