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의 우화 - 개인의 악덕, 사회의 이익
버나드 맨더빌 지음, 최윤재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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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나드 맨더빌(Bernald Mandeville, 1670 ~ 1733)은 <꿀벌의 우화 The Fable of the bees>를 통해 개인의 악덕이 사회의 이익과 연결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맨더빌은 먼저, 우화 속에서 비록 개인적으로는 사악하지만 경제적으로는 풍요롭고, 법과 치안이 잘 유지되는 꿀벌들의 사회를 제시한다. 이러한 사악함 때문에 결국 꿀벌들은 신(神)의 노여움을 사서 미덕(美德)이라 불리는 '정직'을 사회 질서로 받아들이게 되고 이후 꿀벌 사회의 풍요는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 전체 줄거리다.


 이리하여 모든 구석이 다 악으로 가득한데

그래도 전체를 보면 낙원이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그들을 존경하여

평화로울 땐 아첨하고 전쟁을 하면 두려워하니

돈과 삶이 풍족한 그곳은

모든 벌집의 으뜸이었다.

이것이 이 나라의 축복이니

저들의 죄악이 저들을 위대하게 만든 것이었다.(155 - 162) (p104) <꿀벌의 우화> 中


 악의 뿌리가 되는 탐욕은

비뚤어지고 해로운 몹쓸 악덕으로서

방탕이라고 하는 고상한 죄악에

종노릇을 하게 되었으니

사치는 가난뱅이 백만에 일자리를 주었고 

얄미운 오만은 또 다른 백만을 먹여 살렸다. (177 - 182) (p106) <꿀벌의 우화> 中


 이렇게 악덕은 교모하게 재주 부려

시간과 일이 더해지면서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 놓았다.

이것이 참된 기쁨이요 즐거움이요 넉넉함이어서

그 높이로 치자면 아주 못하는 놈조차도

예전에 잘살던 놈보다 더 잘살게 되었으니 

여기에 더 보탤 것은 없을 것이다. (197 - 203) (p106) <꿀벌의 우화> 中

 

  <꿀벌의 우화>의 부제는 '개인의 악덕, 사회의 이익'이다. 저자는 어떤 이유로 이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명제를 제시한 것일까. 저자 맨더빌은 <꿀벌의 우화>를 통해 개인의 방탕, 사치, 명예욕, 뽐내는 마음 pride, 이기심, 탐욕, 쾌락 등의 악덕 vice이 미덕  virtue보다 사회를 끌어갈 더 큰 동력을 제공하는 요인으로 해석한다. 이는 사람들은 본래 욕망에 이끌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고서는 힘을 다하지 않는다. 잠자는 욕망을 깨워주는 것이 없다면 사람이 지닌 탁월함과 능력은 언제까지나 드러나지 않을 것이고, 열정이 빠진 몸뚱이는 바람 한 줄기 없는 가운데 육중하게 서 있는 풍차나 매한가지다.(p158)... 그러나 검소하고 정직한 사회를 갖고 싶다면 가장 좋은 정책은 사람을 단순한 자연 상태 그대로 두고 사람 수가 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이나 없어도 되는 물건은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고, 욕망을 불러일으키거나 지식을 높일만한 것은 다 치워서 손대지 못하게 해야 한다.(p160)  <꿀벌의 우화> 中 

  

 위와 같은 맨더빌의 주장은 "개인의 악덕은, 솜씨 좋은 정치인이 잘 다룬다면(by the dextrous management of a skillful politician), 사회의 이득이 될수 있다" - 해제 中 - 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맨더빌은 모든 개인이 악해져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악덕을 행하는 주체는 지도층으로 한정된다. 지도층들은 '사치'를 하더라도 언제든 자신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사회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의 사치(소비)를 통해 돈이 돌기 때문에, 지도층들의 악덕은 사회의 미덕으로 연결된다. 그렇다면, 가난한 이들에게 적용되는 덕목은 무엇일까?


 사치가 가장 지나치게 나타나는 것은 건물, 가구, 마차 그리고 옷이다. 그러나 깨끗한 옥양목을 입었다고 해서 무명을 입었을 때보다 사람이 약해지지는 않는다.(p150)... 전쟁의 고생과 피로를 몸으로 견뎌내는 일은 앞장설 사람들 몫인데, 이들은 나라에서 가장 천하고 가난한, 죽어라고 일만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전쟁에 휘말린 사람들로서 사치가 말썽 부릴까봐 걱정해야 한다면, 그 걱정은 기껏해야 장교를 넘어서지 않는다.(p151)... 제 할 일을 하고 명예심을 충분히 갖춘 사람은 위험에 익숙해지기만 하면 언제나 능력있는 장교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사치는, 남의 돈을 쓰는 게 아니라 제 돈을 쓰는 한, 절대로 나라에 해가 되지 않는다.(p155) <꿀벌의 우화> 中


 반면, 가난한 이들- 노동을 제공하는 이들-에게 사치는 허용되지 않는 덕목이다. 이들은 평소 궂은 일을 하는 집단이며, 이들에게 높은 임금을 제공할 경우 일할 의욕이 감퇴되어 사회가 필요하는 노동이 제공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노동계급에게는 검약이라는 사회적 미덕을 강조하고, 극한 상황에서 생활하도록 유지하는 것이 사회 전체의 이익으로 연결된다.


 꾸준히 손을 써서 게으름을 줄여주면 강제하지 않고서도 가난한 이들을 일하게 만들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을 무식하게 키우면 고생을 고생으로 느끼지 않도록 단련시킬 수 있다. 그들을 무식하게 키운다는 것은 앞서 이야기 했듯이 그들의 지식이 그들 하는 일 언저리를 넘어서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며, 적어도 그 한계를 넘도록 일부러 애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수단으로 채비하여 노동을 싸게 만들면, 틀림없이 다른 나라보다 싸게 팔 수 있으며, 우리 인구를 늘릴 수 있다. 이것이 무역에서 상대에 맞서는 멋지고 당당한 길이며, 다른 나라 사징에서 우리가 실력으로 이기는 길이다.(p207) <꿀벌의 우화> 中


 결국, 우리는 <꿀벌의 우화>에서 그려지고 있는 '개인의 악덕, 사회의 이익'의 모습은 결국 '지배층의 악덕과 기득권의 이익'임을 확인하게 된다. 지배층의 사악한 행위가 사회에 유익한 반면, 기존의 미덕인 금욕 self- denial, 겸손, 연민, 자선, 자기희생, 공공심 등은 이제 가난한 이들이 지켜야 하는 덕목이라는 맨더빌의 도발적인 물음에 대해 누군가는 대답을 해야했다. 그리고, 두 학자가 다른 분야에서 각각 응답하게 된다.


 경제학적으로는 아담 스미스(Adam Smith, 1723 ~ 1790)가 <도덕감정론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1759)와 <국부론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1776)을 통해서, 철학적으로는 칸트(Immanuel Kant, 1724 ~ 1804)가 <순수이성비판 純粹理性批判, Kritik der reinen Vernunft>(1781)에서 맨더빌의 주장을 반박한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을 통해 개인의 이기심이 아닌 타인에 대한 연민이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과 이러한 사회가 어떻게 스스로를 통제하며 부강해질 수 있는가를 <국부론>을 통해 말하고 있다. 그리고,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을 통해 감성 뿐 아니라 오성(지성)의 역할을 제시하며, 맨더빌의 본능(욕망)에 대한 반론을 펼치고 있다. 이후에도 여러 학자들이 <꿀벌의 우화>의 내용을 계승하거나 또는 비판하는 등 이 책은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쳐왔다.


 <꿀벌의 우화>가 당대에 출판되었을 때, '사악한 책'이라 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아마도 이는 누구나 알지만 결코 입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가 아닐까. 그리고, 그 이야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꿀벌의 우화> 가 과거가 아닌 지금도 유효하다는 점이 현대 우리 사회의 비극이라 여겨진다. 


 과거 감춰졌던 수많은 사회문제가 드러나고 있는 요즘이다.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과거의 문제에 대한 해결을 위해서 당대의 석학(碩學)들의 물음과 대답을 살펴보는 것은 분명 의미있는 일이라 여겨진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꿀벌의 우화>를 다시 읽어봐야 하는 이유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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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7 16: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27 17: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8-06-27 2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도덕감정론을 밑줄을 치며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저의 서재와 배경이 같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오래 사용해 왔는데 싫증이 나지 않고 여전히 좋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6-27 20:30   좋아요 1 | URL
^^:) 아 그러셨군요. 여름에 잘 어울리는 배경이라 이번에 바꿨습니다. 배경색이 옅지만 질리지 않아 좋네요. 페크님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6-27 2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별 다섯 개는 절대, 쌍수를 들고 반대합니다. ^^

겨울호랑이 2018-06-27 22:27   좋아요 1 | URL
북다이제스터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도는 충분히 이해되고 저 또한 공감합니다. 책 내용에는 저도 반대합니다만, 후대에 미친 영향을 생각하면 높게 평가가 되네요.. 「다크 나이트」에서 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같은 느낌이랄까요 ㅋ 제 별점은 그런 의미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6-27 22:32   좋아요 1 | URL
히스 레저 연기에 별 다섯 개는 격하게 찬성합니다. ㅎ 연기가 정말 대단했구요. 하지만 이 책은 정말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칸트나 스미스가 반론을 내도록 자극하기도 했지만 거의 대부분이 이 책의 논리가 당연하다고 받아들였단 점에서 전 이 책에 반대합니다. ^^

겨울호랑이 2018-06-27 22:38   좋아요 0 | URL
네. 주류경제학계통인 신고전학파, 케인즈학파 모두 깊은 영향을 받은 것을 보면, 매우 나쁜 영향을 미친 사상가임이 분명합니다^^:)

서니데이 2018-06-30 2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일부터 7월이 시작됩니다. 7월에는 기분 좋은 일들 가득한 시간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겨울호랑이님,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8-06-30 21:42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장마와 태풍이 함께 오는 비로 7월이 시작될 것 같네요. 서니데이님도 건강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반기 여시기 바랍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거대질량 2022-01-13 1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 알짜 요약리뷰네요. 잘읽고갑니다.

2022-01-13 2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육은 엄마와 아빠가 함께 해야 하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부모의 과업이다. 그 시작은 출산 후가 아니라 배 속의 아이를 키우는 임신 기간부터다. 예비아빠의 역할은 부모가 되는 과정에 동참하며 엄마를 외롭게 방치하지 않는 것이다.(p71)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서」가 다른 육아서와 구별되는 지점은 아빠 역할의 한계를 인정한다는 점이다. 최근 TV 프로그램과 유튜브 채널에서는 적극적인 아빠의 참여가 표현되지만, 출산 단계에 있어 ‘신 앞에 선 단독자‘의 위치에 있는 엄마 역할을 대신할 수는 없다.

책 본문에서 출산에 대한 어려움을 직접 나눌 수 없기에, 출산 시 ‘엄마 - 아기‘의 관계가 잘 설정될 수 있도록 보조자로서 아빠의 역할을 짚었다는 점이 가장 인상 깊게 남는다.

그리고, 본문에서는 ‘부모가 되는 철학시리즈‘라는 제목에 맞게 게슈탈트 심리학, 볼비의 애착이론, 아들러 심리학을 통해 부모 역할에 대한 저자의 이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신뢰감을 주면서도어려움없이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한 책이라 여겨진다. 그렇지만, 독자에게 육아의 방향성을 지시하는 느낌을 주기도 하기에 이러한 부분은 마치 자기계발서를 읽는듯한 느낌을 준다. 육아라는 현실은 이론처럼 책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수많은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 부분을 책에서는 놓치지 않았나 생각하게 된다.

어느새 결혼 10년차 남편, 7살 아이의 아빠가 되어 버렸다.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보면, 육아서에 나와 있는대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쉽지 않음을 확인하게 된다. 우리는 사람들이고, 현실은 이론과 다르기 때문이다.
또, 교육과 심리학에 관한 이론도 시대에 따라 바뀌기 때문에 이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 또한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책에 있는 수많은 이론과 ‘하지 말아야할‘ 주의 사항과 ‘해야 할‘ 당위성은 책을 읽고 덮어두자. 그리고, 아빠들이 아이였을 때 엄마, 아빠에게 느꼈던 아쉬웠던 부분을 아이가 느끼지 않도록 신경쓴다면 훌륭한 아빠까지는 못되어도, 좋은 아빠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빠도 아빠는 처음이라서」는 아빠들에게 자신이 있어야할 지점을 지도로 알려준다는 점에서 좋은 책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지도의 그 지점으로 가는 것은 온전히 아빠의 몫이다...

좋은 아빠 육아책을 선물해주신 이웃님께 감사말씀을 전하며 리뷰를 마칩니다. 잘 읽었습니다^^:)

ps. [사진] 아이들은 무의식 중에도 부모를 따라하기 마련입니다. 잠자는 동안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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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6 2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26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꾸는섬 2018-06-26 2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자는 모습이 똑 닮았어요.
저희집도 이런 사진이 있었는데ㅎㅎㅎ
보기 좋아요.^^

겨울호랑이 2018-06-27 06:46   좋아요 0 | URL
이렇게 닮았나하는 생각이 드는 사진이라 재밌어 올려봤습니다. ㅋ 꿈꾸는섬님 감사합니다^^:).

만화애니비평 2018-06-27 0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이 아닌데도 겨울잠 자는 호랑이었습니다..ㅎㅎ

겨울호랑이 2018-06-27 09:20   좋아요 1 | URL
^^:) 네 몇 년 전 초여름날 낮잠 자는 모습입니다.ㅋㅋ 잘 땐 몰랐는데, 아내가 자는 모습을 보고 너무 재밌다고 하네요. 잠자는 유전자의 힘이라고 할까요.ㅋㅋ

단발머리 2018-06-27 0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희집에도 겨울호랑이님 사진과 완전 비슷한 사진의 ‘아버지-아들‘ 버전이 있거든요.
집집마다 이런 사진이 있나봐요.
찍히는 사람이 아니라, 찍는 사람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겨울호랑이 2018-06-27 09:37   좋아요 0 | URL
^^:) 재밌는 사진을 보며 웃음을 나눌 수 있는 관계가 가족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함께 있기만 해도 즐거운. 저도 제가 찍혀 다행이라 생각합니다.ㅋㅋ 그리고, 찍어주는 사람이 있어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단발머리님 즐겁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8-06-27 1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27 1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27 1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27 1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트 2018-06-30 2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넘 보기 좋은 사진이네요. 겨울호랑이님 글 잘 읽었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8-06-30 23:2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김유나리님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AgalmA 2018-07-03 0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 누가 누구를 지치게 했는지 모르겠는 현장 사진이네요ㅋㅋ

겨울호랑이 2018-07-03 06:48   좋아요 1 | URL
아마도 서로가 서로에게 지치지 않았나 싶네요 ㅋㅋ
 

 <동방 기독교와 동서문명>은 중국에 경교(景敎)라는 이름으로 전래된 네스토리우스파 교회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네스토리우스 파의 생성과 중앙아시아, 중국으로의 진출과 소멸등의 과정 속에서 이들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가 무엇인지 본문의 내용을 따라 가보도록 하자.  

 

 안티오키아 태생이고, AD 427년부터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를 지낸 네스토리우스(Nestorius, 4C 말 ~ 451)가 이끄는 이단은 교회의 분열을 낳았으며, 근본적으로 그리스도론적인 특성을 지닌다. 그는 그리스도에게 두 개의 본성 즉 신성과 인성이 실재하며, 마리아에게는 '하느님의 어머니'란 호칭도, '신의 어머니(Theotokos / Deipara)'란 호칭도 붙일 수 없고, 단지 그리스도의 어머니라고만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칼게돈 공의회(AD 451)에서는 단성설을 거부했으며, 네스토리우스의 논문을 지적하면서 그리스도가 두 가지 본성, 즉 인성과 신성을 가진 유일한 위격 位格이라고 선언했다. 불만을 품은 네스토리우스 추종자들은 자치적인 교회를 설립했으며, 이 교회는 이슬람교가 도래하기 전까지 폭넓게 확산될 운명이었다. 즉 민족 교회가 된 페르시아, 아라비아, 시리아, 인도, 심지어는 수백년 동안 여러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살아남은 중국까지 확산되었다.(p155)' <중세 1 : 야만인,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도의 시대> 中


[지도] 네스토리우스 교회의 전파(출처 : http://rolfgross.dreamhosters.com/ManandhisGods/CHRIST/Christianity.html)

 

 동방으로의 전교는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갔다. 이것은 로마 제국의 박해를 피해 영내를 빠져나와 파르티아 왕조가 지배하던 메소포타미아로 이주한 사람들의 수가 늘어난 것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적어도 2세기 말까지는 이란을 거쳐 박트리아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 부근- 지방까지 퍼지게 되었다.(p101) <동방 기독교와 동서문명> 中


 AD 5세기경 칼게돈 공의회에서 인정받지 못한 네스토리우스파 교회는 로마를 떠나 사산조 페르시아로 전파 되면서 중앙아시아로 진출하지만, 로마의 기독교 공인 이후 이들은 박해를 당하게 되었다. 페르시아에서 박해를 당한 이들 네스토리우스 일파는 중앙아시아를 건너 중국에까지 진출하게 되는데, 여기서 잠시 당대(唐代) 세워진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샤푸르 2세의 치세(AD 309 ~ 379)에 기독교도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는 중요한 사건이 벌어졌다. 그것은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AD 312 년에 기독교로의 개종을 선언하고 이어서 AD 324년에는 동서로 분열되어 있던 제국의 통일이라는 위업을 달성한 것이다... AD 318년부터 시작된 박해는 처음에는 부분적이었지만, AD 339년 이후에는 전면적인 형태로 확대되었다.(p104) <동방 기독교와 동서문명> 中


대진경교유행중국비


 연구자별로 여러 학설이 제기되고 있지만, 정수일 교수에 따르면 이 비(碑)는 네스토리우스파보다 정통 기독교에 근거한 기독교도에 의해 세워진 것이다. 네스토리우스파는 중국에서 기존 종교와 타협을 모색하다가 자리잡지 못하고 소멸하게 되었다는 것이며, 이는 <동방 기독교와 동서문명>의 저자 김호동 교수와 일치된 견해다. 그렇다면, 중국에서도 소멸한 이들 네스토리우스파는 어디로 갔을까. 


[사진] 대진경교유행중국비( 출처 : 위키백과)

 

 [대진경교유행중국비] 비문에 보이는 경교의 기본 교리와 전도상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당대(唐代) 경교는 신관이나 성관, 구원관 등 기본 교리에 입각해 판단하면 정통 기독교에 바탕한 고대 동방 기독교의 일파다. 2) 당대 경교는 비록 페르시아 기독교라는 징검다리를 통하여 어떤 상관성은 찾아볼 수 있으나 이단으로 모함된 네스토리우스파 그 자체이거나 또는 그 동전(東傳) 동문(同門)은 아니다.  3) 당대 경교는 시종일관 외래적 이방 요소를 탈피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타종교와 융화, 타협하고 왕치위본주의적인 전도를 표방함으로써 250여년이란 짧지 않은 생존 기간을 갖고도 토착화하지 못한 채 종당에는 중원 일원에서 멸적하고 말았다.(p97) <문명교류사 연구> 中


 비문의 서두에 천명된 경교 교리의 핵심 내용은 서방의 정통교단에서 주장하는 삼위일체론과 그리스도 양성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전교활동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 핵심적인 관념을 불교나 도교의 용어에서 차용하던 것은 불가피했을 것이다.(p127) <동방 기독교와 동서문명> 中


  네스토리우스 파는 중국에서 벗어나 육로 실크로드 인근 도시를 대상으로 선교를 강화했고, 이들은 중앙아시아에서 점차 세력을 확대해나갈 수 있었다. 이들의 주된 선교지였던 중앙아시아는 몽골도 포함되는데, 이 지역의 유력부족장 역시 네스토리우스교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이로부터 사제왕 요한 전설의 한 갈래가 태어나게 되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경교는 9세기 후반 이래로 중국 본토에서는 종교적 탄압과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서 거의 소멸되는 운명을 맞았지만, 실크로드 연변의 도시와 촌락들에서는 오히려 확고한 근거지를 확보하면서 교세를 넓혀나갔고, 오대십국 시대 이래로 줄곧 이민족의 통치하에 들어간 북중국에서도 그런 대로 명맥을 보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네스토리우스교가 이처럼 중앙 아시아와 중국 서부, 북부에서 강한 생명력을 보여주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당대 중국의 경우와는 달리 많은 수의 현지주민들을 개종시켜 신도로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p170) <동방 기독교와 동서문명> 中


사제왕 요한 전설 그리고 소멸


 이슬람 세력에 의해 포위된 중세 유럽인들에게 저 멀리 어디엔가 기독교 왕국이 있다는 전설은 널리 퍼져 있었다. 사제왕 요한 전설 속의 나라는 아프리카의 에디오피아로 생각되어지기도 했으며, 중앙아시아의 어느 왕국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 중에서 중앙아시아의 사제왕 요한은 칭기스칸(Cinggis Qaγan, AD 1155 ~ 1227)과 대립했던 커레이트 족의 옹 칸으로 생각되어지고 있다.


 칭기스 칸은 처음에 몽골리아 최강의 세력을 자랑하던 케레이트족의 옹 칸 - 본명은 토그릴- 휘화에 있으면서 그를 도와 여러 차례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몽골비사>에 의하면 개띠 해인 AD 1202년에 전투가 벌어져 케레이트측이 패배하고 옹 칸은 전사하고 말았던 것이다. 케레이트족은 이미 오래 전부터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를 믿어왔고, 딸인 소르칵타니 베키 역시 기독교도였다. 따라서 옹 칸은 사제왕 요한으로 불릴 만한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던 셈이었다.(p61) <동방 기독교와 동서문명> 中


 <몽골비사>에 따르면 케레이트의 옹 칸은 칭기스 칸의 아버지 예수게이 때부터 깊은 동맹의 관계였으나, 몽골의 세력이 커지면서 결국 케레이트/ 나이만 부족은 몽골 부족으로 병합되고, 옹 칸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서, 사제왕 요한의 전설은 끝나게 된다. 그렇지만, 사제왕 요한의 전설은 포르투갈의 바스쿠 다 가마(Vasco da Gama, AD 1460 ~ 1524)의 항해 목적 중 하나가 기독교 왕국의 발견이라는 점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오랫동안 유럽인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케레이드의 옹 칸은 선대 예수게이 칸 시절에,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예수게이 칸과 의형제를 맺었다. 의형제를 맺게 된 내력은 옹 칸이 자기 아버지 코르차코스 보이록 칸(소생)의 동생들을 죽이려고 했기 때문에 작은아버지 구르 칸과 싸움이 일어났다. 그런데 싸움에 져서 카라온 협곡으로 숨어들었다가 겨우 100명만 데리고 빠져 나와 예수게이 칸에게 오게 되었다. 예수게이 칸은 그를 자기에게 오게 하고, 자기 군대를 출동시켜 구르 칸을 카신 쪽으로 몰아내고 그 백성을 도로 빼앗아 옹 칸에게 돌려주었다. 그 일로 해서 두 사람은 의형제가 된 것이었다.(150) (p118) <몽골비사> 中 

 

 옹칸과 셍굼은 몸만 빼어 달아나다가 옹 칸이 목이 말라 디딕 사칼의 네쿤 오손에 들어갔다가 나이만의 전초 코리 수베치의 지역에 들게 되었다. 코리 수베치가 옹 칸을 체포했다. "나는 옹 칸이다"하고 신분을 밝혔으나 못 알아보고, 안 믿고 거기서 죽였다.(165)(p165) <몽골비사> 中


 옹 칸의 딸인 소르칵타니 벡키는 쿠빌라이 칸의 어머니이기도 했다. 그래서, 원나라에서 네스토리우스파의 경교는 별다른 탄압을 받지 않고 세력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이들은 AD 14세기 중반 흑사병(黑死病, Black Death)에 의해 공동체가 붕괴되며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오아시스나 초원의 교역로를 따라서 소규모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던 네스토리우스 교도들의 경우 흑사병의 엄습은 거의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가져다 주었을 것이다. 이시크 쿨 호반의 공동묘지에서 발견된 비석들이 AD 1345년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는 사실은 그곳의 기독교 공동체가 흑사병으로 소멸되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p293)<동방 기독교와 동서문명> 中


 네스토리우스 파 교회의 문화 공헌


 이처럼 네스토리우스 파 교회는 역사속으로 소멸되었지만, 이들이 이슬람과 중국 사회에 남긴 영향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이슬람 문명은 이들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s, BC 384 ~ 322) 등을 비롯한 고대 그리스 문화를 습득할 수 있었으며, 중국 문명은 이들로 인해 기독교의 요소들을 불교 안으로 받아들이면서 보다 사상적으로 심화될 수 있었다. 


 이 시기에 이슬람의 현자들은 두 가지 경로로 그리스의 과학에 대한 문헌을 접할 수 있었다. 한 가지 방법은 당시 비잔티움 제국의 중심 도시들에 남아 있던 그리스어 원본이었으며, 다른 방법은 네스토리우스교도들이 그리스의 원본을 시리아로 번역한 2차 사료였다. 네스토리우스 교도들은 6~7세기에 페르시아 동쪽 지방에 위치한 준디스하푸르와 같은 도시에서 활동했고, 이곳은 당시 중요한 문화적 중심지로 성장했다.(p444) <중세 1 : 야만인,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도의 시대> 中


 우리에게 이단으로 알려진 네스토리우스 파 교회의 존재는 아직 낯설기만 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최근 불국사에서 발견된 돌십자가를 통해 이들이 일찍이 우리 문화에 영향을 주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비록 그 영향은 미미했겠지만. 


[사진] 불국사 돌 십자가(출처 : http://photohs.co.kr/xe/baejae/677)

 

 중국에 전파된 고대 동방 기독교의 일파인 경교(景敎)의 이러한 융화와 타협의 일면을 이해하는 것은 인접한 한반도에 유입된 기독교의 실체를 알아내는 데 귀감이 될 수 있다. 더욱이 유입된 기독교가 경교라고 가정할 때, 불국사 경내에 십자가가 묻혀 있을 수도 있으며, 불교 속에 기독교적 요소가, 기독교 속에 불교적 요소가 섞여 있을 법도 하다는 판단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위에서 지적한 불교 속의 기독교적 요소는 어디까지나 불교 유입의 수반품에 불과한 것이지, 결코 종교로서의 기독교 자체의 직접적인 유입이나 전파라고는 볼 수 없다. 이것은 일종의 초전에 불과한 것이다.(p599) <고대문명교류사> 中


 네스토리우스 파는 유럽에서 이단으로 낙인찍힌 인정받지 못한 집단이었다. 그렇지만, 이들을 통해서 동양과 서양이 교류하고 다양한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우리의 사회와 역사는 이처럼 기억되지 않는 이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면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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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6 13: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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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6 14: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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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7 12: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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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7 13: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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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중고서점에 마음에 드는 책이 나온 것을 확인하고 이것저것을 챙겨서 서점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책이 위치한 곳에 가도 책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서점의 이곳저곳을 헤매다가 다른 누군가의 장바구니 안에 담겨진 책들을 확인하게 되었네요... 가슴이 덜컥 내려 앉을 정도는 아니지만,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사실,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기에 그렇게 새로울 것도 없습니다만, 그래도 사람인지라...... 


어제 갑자기 예전 인상깊게 봤던 영화 대사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만나야할 사람은 언젠가 꼭 만나게 된다고 들었어요.  - 영화 <접속> 中 - 


 결혼 이전 사귀던 여자친구들(?)과 헤어질 때마다 생각했었던 대사들 중 하나입니다.(아마도 다른 내용은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달을, 나와 함께 할 누군가도 나를 생각하면서 바라보고 있을꺼야.'로 기억됩니다. 지금 돌아보니 닭살입니다.)


 지금은 그 때는 알지 못했던 누군가와 함께 같이, 그리고 그 때는 예상치 못했던 1인과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달을 바라볼 수 있으니, 작은 행복이라 여겨집니다. 20여년 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지만, 사람 인생은 생각대로 흘러가는 것만은 아닌 듯 합니다.


 만나야 할 책은 언젠가 만나겠지요. 아니면, 정말 읽고 싶으면 지금 가서 사서 볼 수 있으니 아쉬워할 필요 없는데 제 욕심이 지나쳤나 봅니다.


 지금은 사라진 종로 3가역에 있었던 피카디리 극장의 모습을 담고 있는 <접속> OST를 올리면서 페이퍼를 갈무리 합니다. 이웃분들 모두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PS. 예전 영화가 좋은 것은 그 내용과 함께 자신의 추억도 같이 재생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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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4 18: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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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4 18: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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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6-24 18: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운명이라는 것은 노력하는 자에게 우연이란 다리를 놓아준다” 이 말은 어느 영화에서 나왔을까요? 퀴즈입니다! (검색 금지, 다 보고 있음ㅋ)

겨울호랑이 2018-06-24 19:01   좋아요 1 | URL
이런... 검색하지 않으니 모르겠습니다 ㅜㅜ. 검색해보니 「엽기적인 그녀」군요. ㅋ 이 영화는 인터넷 원작처럼 헤어졌어야 더 애틋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2018-06-24 18: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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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4 18: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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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6-24 2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 검색하면 나오겠죠 ㅎㅎㅎㅎ

겨울호랑이 2018-06-24 21:18   좋아요 1 | URL
네, 찾아보니 <엽기적인 그녀>였습니다.^^:) 봤었는데 전혀 기억하지 못했네요.ㅋ

2018-06-24 20: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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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4 21: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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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4 21: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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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4 21: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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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6-24 2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오래 전에 이 영화 시사회를
동숭홀에선가 봤었습니다... 한참 영화를 보던
시절이었지요.

한석규-전도연 그리고 당시만 해도 신인이었던
추상미 씨를 무대인사로 만나게 되었는데,
아무도 추상미 씨를 거들떠도 보지 않아 참으로
무안해 하던 기억이 나네요.

한석규의 무대 매너는 정말 최고였습니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유니텔 시절의 추억이라고
나 할까요.

겨울호랑이 2018-06-24 22:37   좋아요 0 | URL
레삭매냐님께서도 영화와 관련된 추억이 있으시군요^^:) 지금도 유니텔, 하이텔, 천리안 접속음을 들으면 저 역시 과거로 소환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탱💕📖🗣 2018-06-28 1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영화 이름은 기억 안나지만 조승우와 이나영 나왔던 영화도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나네요. 밀레니엄 감성을 영화로나마 느낄 수 있게되어서 재미있었어요.

겨울호랑이 2018-06-28 12:17   좋아요 1 | URL
영화 「후아유」아닌가 싶네요. 지금은 중견배우로 성장한 이들의 신인 시절 모습을 보면 마치 우리 예전을 보는 듯 합니다^^:)
 

[지도] 정화함대가 개척한 해상실크로드(출처 :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5/23/2016052302399.html)

 

 인도양에서 홍해의 남단 병목에 있는 아덴(Aden)을 지나 홍해에 진입한 후 북상하다가 아라비아 반도 서안에서 육로로 연결된다... 이렇게 해로와 육로가 결합된 이 교역로에서 인도 상인들이 화물을 아덴까지 해로로 운송하면 거기에서 아랍인이나 그리스인들이 화물을 넘겨받아 지중해 연안 일대에 육로로 운송한다.(p148) <씰크로드 학> 中 

 

 고대 문명권들 간의 교통로인 실크로드(silk road)는 육상과 해상으로 이어져 있었다. 해상 실크로드에서 아덴은 아프리카와 유럽으로 들어가는 관문(關門) 역할을 하는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음을 우리는 지도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아덴의 역사는 동서양을 잇는 중요한 위치만큼이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아라비아 반도 서남단 예멘의 국제무역항. 아라비아 반도의 서남단, 아라비아해와 홍해의 접점인 아덴만에 자리하고 있다. 화산의 화구(火口)에 지어진 항구도시로 서구 열강들이 일찍부터 관심을 가졌다. 1513 ~ 1538년 및 1547 ~ 1548년에 포르투갈이 점령한 바 있으며, 이후 오스만 투르크를 거쳐 술탄 라헤지가 통치하였다. 이 지역에 눈독을 들이던 영국은 1839년 아덴을 할양받아 인도 총독부의 관할하에 두었으며 1937년부터 독립식민지로 운영해왔다. 1967년 아덴 사태 이후 예멘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남예멘의 수도가 되었다가 남북 예멘이 통일되자 수도의 지위를 잃었다. 아덴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일찍부터 이곳은 유향(乳香), 몰약(沒藥), 계피(桂皮) 등 향신료의 집산지이자 중계 무역지였다.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면서 아덴의 중요성은 더욱더 부각되었다.(p481) <실크로드 사전> 中


 고대로부터 해상 무역항으로서 번성했던 아덴이었지만, 19세기에 들어 강대국간의 대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러시아의 남진 정책과 이를 저지하려는 영국간의 대립은 역사에서는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 1813 ~ 1907)으로 불리운다. 지리적으로는 서쪽으로는 크림반도로부터 동쪽으로는 조선에까지, 나이팅게일(Florence Nightingale, 1820 ~ 1910)로 유명한 크림전쟁(Guerre de Crimee, 1853 ~ 1856)과 영국에 의한 조선의 거문도 점령(1885 ~ 1887)이 이 기간에 일어난 사건들이었다. 


  예카테리나 대제는 러시아가 동쪽으로만 확장해야 하는 것은 아니니, 남쪽으로도 내려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예카데리나 대제의 군대는 흑해 연안을 차지하고 튀르크족을 유럽에서 몰아내기 위해 오스만 군대와 전투를 벌였다... 수세기 동안 힌두쿠시 산맥과 페르시아 고원은 인도를 정복하려면 거쳐가는 중간 대기 구역 노릇을 해왔다. 영국의 지도자들은 이 전선을 따라 모든 지역에서 러시아의 전진을 막아야만 한다고 결정했다. 그렇게 '그레이트 게임'이 시작됐다. '그레이트 게임'은 북쪽의 러시아 제국과 남쪽의 대영 제국 사이 지역을 지배하고자 영국과 러시아가 벌인 분쟁에 영국 소설가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이 붙인 이름이다.(p378)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中



[지도] 그레이트 게임(출처 : <조르주 뒤비의 지도로 보는 세계사>(p251)) 中


 이러한 일련의 역사 흐름 속에서 아덴은 영국의 손에 넘어가기도 했으나, 1960년대에는 다시 소련의 영향력에 놓이는 등 예멘은 냉전(cold war) 대립의 중심에 있었던 분단(分斷)국이었다는 면에서 우리와 여러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아덴을 점령한 영국과 오스만 투르크의 협정 속에서 예멘은 1904년 남북으로 분할되었고, 우리 역시 해방 이후 미국과 소련의 이익에 따라 남북이 분할 점령된 아픈 역사를 경험한 바 있다. 

 

 1948년에 남과 북에 두 개의 공화국이 수립되기 훨씬 전에, 한국인들은 양쪽 편으로 갈렸고 워싱턴과 모스끄바가 그런 양자택일을 강화함으로써 한국은 해방 후 몇개월 만에 사실상 분당되었던 것이다. 한국의 분단에는 어떤 역사적인 정당성도 없었다. 만약 어떤 동아시아 나라를 분단했어야 했다면 그것은 일본이었다. 그 대신 한국과 중국과 베트남이 모두 2차 대전의 여파로 분단되었다... 38선이 한국인들에게 유일하게 중요한 선, 필요한 모든 수단을 다해 제거해야 할 경계가 되었다. 우리가 냉전에서 연상하는 모든 정체적, 이데올로기적 분단들이야말로 한국분단의 이유였다.(p262)...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현대사> 中

 

 

 소련 군함들은 1960년대 말에 인도양에 배치되어 수단, 예멘, 소말리아에서 새로 정권을 잡은 혁명 정부들을 지원했다. 소련이 여러 해 동안 세심하게 관계를 구축해 온 세력들이었다. 이를 통해 소련은 아덴, 모가디슈, 바르바라 등에 부러워할 만한 발판을 확보했다. 따라서 소련은 수에즈 운하 접근을 옥죌 수 있게 되었다. 미국 정책 입안자들이 오랫동안 두려워하던 일이었다. (p727) <실크로드 세계사 : 고대 제국에서 G2 시대까지> 中  


 그리고 1990년대 이후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의 영향으로 공산권이 몰락하면서, 소련의 2차 세계대전 후 생겨난 여러 분단국들 중 한국을 제외한 베트남(1975), 독일(1990), 예멘(1990) 모두 통일이 되었다. 그렇지만, 오랜 기간의 분단에서 오는 갈등과 석유를 둘러싼 남북의 대립으로 인한 난민 발생은 예멘의 현재 문제이기도 하다. 


 최근(2018년) 제주도에 온 500여면의 예멘 난민과 관련한 사회적 논란이 뜨겁다. 난민을 받아들여야할 것인가, 아니면 거부해야할 것인가의 문제는 국내외적으로 많은 고려요인이 있고, 사회적 합의도 이끌어야 하는 풀기 어려운 우리 사회의 과제라 여겨진다. 그렇지만,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강대국의 이익에 의해 희생되어왔던 약소국의 아품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난민을 받아들이는 문제의 출발을 보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 이유에는 유엔난민기구(UNHCR)의 출발이대한민국의 구호와 재건을 목적으로 유엔한국재건단(UNKRA)설립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도 추가된다.


관련기사 : https://www.unhcr.or.kr/unhcr/html/001/001004001001001.html


[사진] 한국과 난민(출처 : https://www.unhcr.or.kr/unhcr/mobile/contents/activity04.jsp)


 이러한 논란의 중간과정에서 이슬람에 대한 사회적 혐오가 확산된다는 점은 걱정스러운 지점이다. 이슬람에 대한 이야기까지 하려면 페이퍼가 너무 길어지기에 다음 기회로 넘기겠지만 적어도 이들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자세는 다음의 이야기 속에서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면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그 율법 교사는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율법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루카 10 : 28 ~ 37)


 "You shall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He replied to him, "You have answered correctly ; do this and you will live." But because he wished to justify himself, he said to Jesus, "And who is my neighbor?"... Which of these three, in your opinion, was neighbor to the robbers' victim?" He answered, "The one who treated him with mercy." Jesus said to him, "Go and do likewise."(Lk 10 : 28 ~ 37)


PS. 만약 사마리아인에게 치료 받은 청년이 후에 강도를 만난 다른 이를 못 본 척 외면한다면, 그는 다른 이들로부터 몇 배로 비난받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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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3 10: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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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3 10: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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