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어 바깥에서 - 노예와 여성, 노동자와 소수자가 바꾼 쓰기의 역사
박홍규 지음 / 틈새의시간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표준어바깥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표준어 바깥에서>를 읽고 나면 글쓰기란 절실한 곳에서 시작되는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글을 쓸 자격이 있다고 인정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문자권력 바깥에 있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만의 언어로 세상을 기록해왔는지를 보여준다.

저자가 거듭 강조하는 ‘문자권력’이라는 말은 이 책을 관통하는 중요한 열쇠다. 과거에는 글을 읽고 쓰는 능력 자체가 권력이었다. 누구나 글을 배울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여성과 노동자, 가난한 사람들에게 글쓰기는 애초에 허락되지 않거나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문학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 책에 등장하는 작가들은 그런 경계 바깥에서 글을 썼다. 그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문학이란 처음부터 문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자신의 삶을 외면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절실함에서 비롯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는 전쟁에서 손을 다치고, 전쟁 노예로 붙잡히고, 가난 때문에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그는 감옥에서 집필한 대작 돈키호테로 인정받긴 했지만 가난과 고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위대한 작품과 그 작품을 쓴 사람의 비참한 현실 사이의 간극이 놀라웠다. 작품의 명성은 작가의 삶까지 보상해 주지 않는다. 우리가 위대한 문학이라고 부르는 것의 이면에는 정작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 한 인간의 삶이 놓여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톰 소여의 모험>으로 익숙한 마크 트웨인이 차별받고 억압받는 노동자들을 위해 목소리를 냈다는 사실도 새롭게 다가왔다. 문학은 개인의 상상력과 재능을 증명하는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누군가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사회가 당연하게 여기는 부당함에 질문을 던지는 일이기도 하다. 어빈 웰시의 『트레인스포팅』에 대한 설명 역시 인상적이었다. 약물과 파격적인 소재 때문에 그저 자극적인 이야기로만 생각했던 작품이, 사실은 대처 시대 이후 산업이 무너지고 노동의 미래가 사라진 자리에 남겨진 청년들의 삶을 보여주는 사회풍자라는 점이 놀라웠다. 한 개인의 파괴적인 모습 뒤에는 그를 그렇게 만든 사회의 조건이 있다. 문학은 바로 그 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이라는 저자의 말에 가장 깊이 공감하게 된 인물은 마이아 에켈뢰브였다. 가난 속에서 아이들을 기르고 바닥을 청소하며 살아가면서도 글쓰기를 놓지 않았던 사람.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그동안 글을 쓰지 못했던 이유들을 떠올렸다. 시간이 없어서,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아서, 좀 더 잘 쓸 수 있을 때 시작해야 할 것 같아서. 그럴듯한 이유를 늘어놓았지만, 어쩌면 나는 글을 쓰기 전에 먼저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었고, 누군가에게 보여줄 만한 결과를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아이들이 얼지 않도록 뜨개질과 코바느질을 했다.(...)
쓰레기통에서 건져 올린 종이에 몰래 글을 쓰고,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사무실을 청소했다. 233쪽

에켈뢰브의 삶은 그런 생각을 돌아보게 했다. 글쓰기는 무언가 대단한 영광을 얻기 위해 시작하는 일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 내 안에 쌓인 생각과 감정을 어떻게든 밖으로 꺼내놓아야 해서 쓰는 일에 가까울 것이다. 남의 문장을 흉내 내고 이미 인정받은 글의 형식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결국 글은 자기 안에서 길어 올린 것이어야 한다. 서툴더라도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삶을 써야 한다. 그것이 글쓰기의 출발점일 것이다.

<표준어 바깥에서>는 문학의 역사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책인 동시에, 글을 쓰려는 사람에게 건네는 하나의 권유다. 언젠가 충분히 준비된 사람이 되기를 기다리는 대신, 지금의 나를 통과한 생각들을 지금의 언어로 기록하는 것. 글쓰기의 자격을 바깥에서 구하지 않는 것. 문자권력의 바깥에서 시작된 수많은 글이 문학의 역사를 바꾸었듯, 나 역시 누군가의 인정을 기다리기 전에 내 안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야 한다. 이 책이 내게 남긴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바로 그것이다. 글은 특별한 사람에게 허락된 권리가 아니라, 쓰고자 하는 사람이 자신의 삶으로 시작하는 일이다. #박홍규 #틈새의시간 @timeofgap_pub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주의를 기울이는 법
롭 워커 지음, 이혜진 옮김 / 마주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일주일에 단 한 시간만이라도,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데 쓴다고  상상해보자. 그러면 우리가 보고, 감각하고, 생각하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질까? (…)

그리고 얼마나 재미있어질까? 13쪽


롭 워커의 <주의를 기울이는 법>과 함께 ‘주의를 기울이며’ 보낸 지난 몇 주, 내게는 어떤 변화가, 얼마나 즐거운 일들이 있었을까. 같은 것을 다르게 보거나, 같은 장소를 다른 때에 관찰하는 등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여러가지 다양한 방식을 안내하는 이 책에는 난이도에 따른 표기로 바로 해볼 수 있는 것, 어느정도의 준비가 필요한 방식등을 점의 갯수로 구분할 수 있다. 그래서 저자 역시 이 책을 순차적이 아니라 골라서 읽는 등 맘에 드는 방식대로 읽어도 좋다고 권한다. 그래서 내가 택한 방식은 바로 해볼 수 있는 쉬운 방법부터 적용해보았다. 내게만 쉬운 방법들도 있었는데 그 이유는 평소에도 주변을 살피는 편인데다 저자가 직접적으로 언급한 <아티스테 웨이>에서 제안한 ‘아티스트 데이트’를 20여년 전부터 비정기적으로 해왔기 때문이다.


캐머런의 프로그램은 창의성을 ‘회복한다’는 개념을 중심으로 짜여 있는데, 그는 매주 ‘아티스트 데이트’를 일정에 넣으라고 말한다. 아티스트 데이트란 “일주일에 한 번,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무언가를 탐험하러 혼자 떠나는 축제 같은 외출” 이다. 79쪽


날을 정해서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일을 한다는 점에서 분명 아티스트 데이트는 훌륭하지만 롭 워커의 <주의를 기울이는 법>의 핵심은 우리의 시도가 반드시 생산적인 것과 이어질 필요는 없다고 처음부터 이야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상을 오랜 시간 찬찬히 살피는 방식이라든가, 미술관 여기저기를 살펴가며 먼지를 찾아내는 일들이 마냥 즐거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비엔날레 전시 관람 때 이 책을 가져간 이유도 그동안 전시해설과 전공자이거나 문화예술교육사로서의 시선을 내려놓고 아이와 함께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


“미술관은 우리가 사물을 특정한 방식으로 보게 만드는 특수한 공간이다. 미술관은 ‘보는 법’을 가르쳐주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쩌면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한 훈련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112쪽


무언가 메모하고 설명하려던 기존의 나를 내려놓고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눈에 들어와 마음을 붙잡는 작품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아이는 탁구와 관련된 작품앞에서 쉴새없이 움직였고, 레고만보기 작품 앞에선 오랜시간을 미동도 없이 앉아있었다. 그야말로 ‘주의를 기울이며’ 바라보았다. 


보들레르는 이렇게 썼다. “아이는 모든 것을 새롭게 본다. 언제나 취해 있다.” (…)

이것이 바로 “유년기의 천재성, 삶의 어떤 측면도 진부하게 여기지 않는 천재성”이다. 138쪽


최근 피아노 독주부터 교향곡 그리고 포크송에 이르기까지 거장들의 음반을 들으며 평전을 읽고 있는데 ‘이선 하인’이 제안한 ‘선택적 듣기’(난이도 해볼만함)를 시도해보았다. 이 책을 읽었기에 해볼 수 있었던 경험이었고, 그 경험은 정말이지 이 책을 관통해 가장 권하고 싶은 ‘주의를 기울이는 방법’ 중 하나였다. 한 곡의 노래가 시작되면 그 안에서 특정 소리(보컬도 무방)를 정해 집중해서 듣는 것이다. 비틀즈의 팬이 이선의 방식을 통해 비틀즈 앨범을 듣고선 “평생 흑백으로 보던 것을 컬러로 보는 것 같다”(172쪽)라고 말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시도는 했으나 완벽하게 마무리 하지 못한 것은 ‘디지털 묵언’이다. 난이도가 ‘해볼만함’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어떤 것보다 어렵게 느껴져 개인적으로 조금 당황했다. 오히려 실생활에서 묵언을 하는 것보다 ‘디지털 묵언’이 더 어려운 시대라고 느껴졌다. 이처럼 저자가 정한 난이도가 독자마다 다 다를테니 이 새롭고 즐거운 경험을 직접 해보길 권한다. 생각하는 방식이 분명 달라질 것이다.


#주의를기울이는법 #롭워커 #마주 @maju_publishing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 / 헤르멘 헤세 /문예춘추사

지난 8월, 여름이 이제 끝났구나 싶었는데 9월 한 달 내내 여름못지 않은 더위로 가을이 찾아왔다는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헤르만 헤세의 <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를 읽는 동안 참 여러 번 눈을 들어 주변을 둘러 보았던 것 같다. 크고 작은 공원에서, 혹은 얕은 뒷동산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누구보다 계절의 변화를 빠르게 보여주는 시든 꽃잎에서 헤세가 이야기한 글자들이 오고 갔다.

만약 내가 마음속으로 바라는 것처럼 나라 사이에 경계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이 세상에는 아마 전쟁도 없고 국경 폐쇄도 사라질 것이다.
경계보다도 더 혐오스럽고 어리석은 것도 없다.

이전 문단에서는 ‘경계선들을 넘어선다는 것의 멋짐’을 이야기하는데 이 부분을 읽을 때 떠오른 사람이 다른 아닌 아티스트 백남준이었다. 그의 작품 중 TV정원은 살아있는 화초들 사이로 강렬하게 빛을 내뿜는 TV가 곳곳에 놓여져있다. 주사선 색의 변화가 마치 계절의 변화처럼 느껴졌다던 백남준은 TV속 영상을 다름아닌 <글로벌 그루브> 푸티지 영상으로 채웠다. 노래와 춤으로만 구성된 영상에서 경계, 서로 다른 언어로 인한 불편함이 저절로 잊혀진다. 헤세가 백남준의 TV정원을 걷는 상상을 잠시 해보며 마법사가 되고 싶었다던 헤세의 말의 비디오로 응수했을 두 사람의 관계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런 위트 또한 헤세의 글에 잘 드러난다.

길고 딱딱하게 말라 버린 나무뿌리, 오래되어 조금씩 깨지고 색이 변한 돌, 물 위에 떠다니는 기름 얼룩, 유리잔 속에서 튀어오르는 물방울까지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위대한 마력을 지닌 것처럼 보였다. 197쪽

이전에는 관심이 없어 몰랐을 수도 있겠지만 최근 인기있는 책들을 펼쳐보면 흙, 돌, 가벼운 산책 그리고 명상이 참 많은 것 같다. 헌데 한 권 한 권 읽어보면 또 그 맛이 다 달랐다. 똑같은 초록이지만 저마다 다른 모양과 향내를 가진 식물처럼 책들도 그런 모습이었다. 헤세의 말처럼 그런 책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서두에 밝힌 것처럼 저절로 읽던 페이지에 손을 넣어두고 고개를 들어 나무를, 바람을 그리고 발아래 놓인 흙과 작은 돌들을 굴려보게 된다. 그런 감각을 가장 잘 나눌 수 있는 대상은 어린 내 자녀였다.

새로 글자를 배우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어린아이는 어떤 시구나 격언을 읽더라도 곧 습득해 버린다. (…)
그리고 이미 상당한 독서 능력에 도달하더라도, 그러한 시구나 책들에 등을 돌리지 않는다. 297쪽

중간에 많은 내용을 중략하였기에 조금 말을 보태면, 어린 시절 마음에 들었던 시구나 글들을 발견하더라도 이어지는 문장처럼 그것을 여전히 기억한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내가 기억하는 문장은 잘 아는데 아이에게는 물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자연과 더불어 있는 순간이 결코 지루하지 않을 아이는 어떤 문장을 마음에 넣어두었을지 궁금하다. 책 뒷편에 모아놓은 필사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아이의 소중함을 책을 읽으며 새삼 느꼈던 것 같다. 마음이 소란스러울 때나 혹은 적당히 차분해진 순간에도 곁에 두고 읽고 필사하기에 참 좋은 책을 만났다.

#헤르만헤세 #필사 #그리움이나를밀고간다 #문예춘추사 @moonchusa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어떤 계절은 영원하지 ㅣ 꿈꾸는돌 47
하유지 지음 / 돌베개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어떤 계절은 영원하지 / 하유지 / 돌베개

“그런데 어쩐지 좀 불안하지 않아?”
이렇게 말해 놓고 깨달았다. 추동하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라는 것을.
“뭐가 내가 계속 아빠 대타로 일하게 될까 봐?”
“아니 그냥,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게.” 30쪽

부모님을 도와 배달일을 하는 추동하와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오한봄. 실수로 아래층에 자꾸 배달실수를 저지르는 추동하를 학원에서 우연하게 만나 대화를 이어가게 된다. 초반에는 엄마가 있지만 없는 상태의 한봄이가 안쓰럽기도 하고, 그래서 엄마의 연락처를 일부러 외우지 않으려는 모습도 어느정도 이해가 되었다. 무엇보다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사실은 나이와 상관없이 불안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한봄의 할머니는 심장이 좋지 않아 곧 수술을 받아야 할 상황에 놓이고 그로인해 그동안 만날 수 없었던 한봄의 엄마가 원래 있어야 할 그 자리에 들어온다는 사실에 마음이 더 괴로워진다. 마치 배송완료 문자를 받고 문을 열었지만 택배가 문 밖에 있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수학 과외를 제안했을 때부터 엄마에 관해 털어놓기로 결심했는지도 모른다. 산이란 묘한 공간이었다. 크고 작고 높고 낮은 나무 사이를 걷다 보면 주변에 다른 등산객이 있는데도 동하와 나, 단둘만 존재하는 우주가 펼쳐지는 느낌이었다. 73쪽

봄과 동하의 사이가 조금씩 가까워지는 만큼 반대로 힘겹게 만드는 대상도 당연히 존재한다. 인생의 세 사람의 자리를 헤아려보며 규림과 할머니로 두 사람의 자리는 채워졌지만 남은 한자리를 누가 대신해줄 수 있을지 가늠하는 봄이의 마음의 독자인 나 또한 읽을수록 그 마음이 느껴져 안쓰러웠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과 지인이라도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한다지만 “우리 사이에는 이정도 간격이 있지 않을까(104쪽).”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봄이의 마음이 안타까웠고, 동시에 엄마의 입장에서는 그 자리를 자신이 채울 수 있는 것 혹은 채워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나중에 어른이 되고 이 세상에 얼마간 지쳐 버렸을 때, 우리는 여전히 우리일까? 우리 곁에 우리가 있을까? 모를 일이다. 내가 확신하는 것은 단 하나, 지금 내 옆에 동하가 있다는 사실, 동하 옆에 내가 있다는 진실. 132쪽

예전에는 청소년 소설을 읽을 때면 어른보다 더 현명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마음을 다잡는 아이들의 모습이 조금 불편하게 느껴졌었다. 어째서 이 아이들은 이토록 어른도 하기 어려운 마음정리와 상대에 대한 배려가 가능할까, 남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지 못한 결핍을 채우기 위함일까, 이또한 글을 지은 어른이 아이에게 기대하는 바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계절은 영원하지>의 인물들은 어른의 기대치에 맞는 모습이라기 보다는 아이들도 충분히 자신의 미래를 염려하고 또 준비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두려워하지 마!” 라고 이제는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는 봄이처럼 막연한 미래때문에 불안한 이들이 힘을 낼 수 있기를. ‘작가의 말’에서 한봄과 동하의 말처럼 언제, 어디선가 꼭 다시 두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예술로 읽는 스페인
백인필 지음 / 디이니셔티브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우리가 그림을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그림이 좋아서일 수도, 특정 작품이나 화가에 매료되어 그 흔적을 쫓는 것일 수도 있다. (…)
그런데 오백여 년의 서양미술사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볼 때, 그림을 왜 보는지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미술사야말로 인류가 걸어온 발자취이기 때문이라고. 153쪽

스페인 전문해설사가 들려주는 스페인, <예술로 읽는 스페인>을 연휴 전부터 읽기 시작했다. 책에서 언급한 바에 따르면 유럽 3대 미술관으로 루브르, 우피치 그리고 스페인의 프라도 미술관이 해당된다는데 안타깝게도 프라도 미술관만은 아직 못가봤다. 그래서 어쩌면 더 기대도 컸고, 흥미롭게 읽었는지도 모른다. 위의 발췌문을 보면 알겠지만 이 책은 예술로 출발한다고 해서 널리 알려진 미술작품들을 설명하기 보다는 스페인의 역사부터 시작된다. 이슬람과 가톨릭 영향권에서 어떻게 변화가 일어났는지, 내전에 의한 아픔이 어떻게 표현되고 집시들의 슬픔은 또 어떻게 예술로 변모하게 되었는지를 읽는 동안 너튜브를 통해 구슬픈 기타연주를 듣기도하고, 플라멩코 공연을 감상하기도 했다. 특히 가우디의 이야기는 최근 구매한 가우디 평전을 옆에 두고 동시에 읽다보니 강연을 듣는 듯한 기분이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이 졸업장을 천재에게 주는 것인지 미치광이에게 주는 것인지 모르겠다. 다만 시간이 진실을 밝혀 줄 것이다.” 72쪽

시간이 밝혀준 바에 따르면 가우디는 천재, 그것도 신앙심과 자신만의 건축철학이 확고했던 아티스트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과 관련된 내용만 조금 알고 있었는데 책에 소개된 카사 건축물들을 보며 감탄을 연발했다. ‘카사 밀라’의 경우 풍자화가 나올만큼 당시에는 혹평을 받았다고 하는데 비전문가인 내게는 물결이 흐르듯 곡선으로 이루어진 외관과 투박한듯 자연스러운 옥상까지 멋있게만 보였다. 물론 편의에 따라 내부를 개조한 건축주의 아내 로사리오의 입장도 납득이 가긴 했다. 집의 가장 큰 효용은 ‘편의와 안정’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가우디가 설계한 원상태의 집을 개조하진 않았을 것 같다. 가우디의 ‘가스등’에 새겨진 에르메스 문양이나 트렌카디스 기법으로 장식된 벤치 그리고 깨어진 컵이나 그릇을 활용하여 제작된 부분을 꼼꼼하게 들여다보고픈 충동도 들었다. 물론 가우디하면 빼놓을 수 파사드의 성가정 조각과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의 이름이 조각된 스테인드글라스도 아이와 함께 꼭 보고 싶었다.

드디어 미술관과 회화작품에 대한 내용으로 넘어오면, 저자에게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내게는 박민규 작가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초판본 표지로 각인되어 있는 그림인데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작가와 작품명은 몰라도 그림이 담고 있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공주의 오른편에는 왜소증을 지닌 두 인물이 있다. 독일 출신의 마리 바르볼라와 이탈리아 출신의 니콜라시토 페르투사토로, 이들은 궁정에서 살면서 왕족과 귀족을 위한 여흥을 맡거나 어린 왕자와 공주의 곁을 지키며 수발을 들었다. (…) 그러나 벨라스케스는 달랐다. 세상에 존재하는지조차 잘 드러나지 않던 이들을, 궁의 떳떳한 구성원으로서 담담하게, 차별 없이 그린 것이다. 185쪽

이 작품 뿐 아니라 <브레다의 항복> 을 보더라도 전쟁의 승리만큼이나 패자에 대한 존중을 보면, 벨라스케스의 시선이 소외되어 있거나 미처 생각지 못한 곳에도 머물렀음을 느끼게 해준다. 개인적으로 도슨트로 활동하면서 보람을 느낄 때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설명을 들어서 알게 되었어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다. 잘 모르기도 했지만 이미 안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에 있어서도 새로이 알게된 것이 훨씬 더 많았다. 누군가에게 특정 대상에 대해 이야기할 때 결론에 이르러 화자와 청자의 의견이 같아지는 것만큼 아름다운 대화가 있을까. 스페인을, 스페인의 예술을 아름다운 대화로 마주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예술로읽는스페인 #백인필 #디이니셔티브 #가우디 #스페인
@4i.publishe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