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가 - 몸으로 익히고 삶으로 깨닫는 앎의 철학
요로 다케시 지음, 최화연 옮김 / 김영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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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니들이 게 맛을 알아?
오래 전 광고이지만 여전히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한 햄버거 광고 속 노인이 물어본다. 게 맛을 아느냐고. 우리가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자기의 기준이나 사회가 생각하는 공통된 마음에서 비롯된 결과를 아느냐를 묻는 것과 같다. 그렇다보니 게 맛을 안다는 것이 노인의 물음처럼 그 기준을 무엇에 두느냐에 따라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다. 이 책은 ‘게 맛’ 을 포함한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아는 것’에 대해 깊은 질문을 던진다. 그러니 300페이지도 안되는 책을 거의 매일같이 질문에 답하고 쓰면서 읽었다. 그리고 이 서평은 책을 읽고 최소한 이정도는 알게 되었다고 답하는 장(場)이기도 하다.

사람이 달라졌다는 건 과거의 자신은 죽고 새로운 자신이 태어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를 반복하는 것이 배움입니다. 40쪽

책을 읽는 동안 위의 문장을 참 여러번 필사했다. 성인이 자신을 죽이고 신에게 자신을 맡겨야 한다는 것이 비자조적이며 의존적(인 것이 틀린 것은 아니나)이라기 보다는 이전의 나를 버리지 않고 새로운 나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틀린 것이다. 그러니 수행자들에게도, 실험과 반복을 거치는 수학자들에게도 위의 문구는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단순히 과거의 나를 버리는 것 뿐 아니라 ‘내가 고정되어 있다는 생각’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저자는 정보와 사람을 두고 고정된 것과 변화는 것으로 보았다. 우리의 이름이라는 정보는 그대로이기 때문에 남들에게 보여지는 그 ‘정보’를 위해 고정된 상태이지 않은 나를 끼워맞추고 있으니 힘들고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런가하면 자연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도 인상 깊었다.

왜 자연을 없는 셈 칠까요? 빈터의 나무에는 사회적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도시에서는 매매 가능한 것만 ‘있다’고 인식합니다. 43쪽
요즘은 소설도 ‘사람을 대하는 세계’가 중심인 경우가 많습니다. (…)
옛 소설은 그렇지 않았죠. 꽃, 새, 나무, 달이 있었습니다. 자연의 풍경은 인간의 외부에서 인간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넓어집니다. 141-142쪽
자연과 어울려 지내기 위해서는 성실한 노력에 더해 예측 불가능한 것을 참아내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보면 도시에 사는 현대인이 노력, 끈기, 인내를 싫어하는 것도 이해는 됩니다. 주변에 자연이 없으니 자연과 어울리는 데 필요한 성격을 딱히 요구받지 않습니다. 198-199쪽

자연을 떠올렸을 때 처음에는 귀농하는 사람들이 떠올랐고, 이후에 ‘돌봄’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했을 때에는 사람도 자연도 서로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적정의 돌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공개된 이후 최근까지도 화제가 되는 드라마 <미지의 서울> 속 성격 빼고는 외형이 완벽하게 같은 쌍둥이 자매 이야기가 떠올랐다. 서울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회사를 다니는 미래와 고향에서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지만 딱히 직업은 없는 미지가 자리를 잠시 자리를 바꾸어 살아가는 동안의 이야기를 담았다. 도심에 살던 미래도 끈기와 노력 그리고 인내가 있었지만 자신과 타인을 돌보는 것에는 미숙했다. 미숙한 것은 미래 뿐 아니라 미지도 마찬가지이며 그 드라마를 보는 나와 같은 사람들도 당연히 어느 부분 ‘미숙’하다. 그들이 사람과 자연에게 부대껴가며 ‘알아가고 성숙되어 가는 과정’을 보며 변화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책을 읽는 동안 나도 그런 과정을 거쳤던게 아닐까. 머리로는 알면서 잘 안되었던 것, 내 아이에게 개성을 바라면서도 결국 공통된 무언가는 충족시켜야 한다는 은근하게 던졌던 폭력적인 기대 등이 그러했다. 우리가 약속한 언어와 언어밖의 세상을 알려주고, 자연에서만 기를 수 있는 신체성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 이 책은 그런 많은 과정들의 마중물이 되었다.

#우리는무엇을안다고말할수있는가 #요로다케시 #감각클럽 #제노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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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사람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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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사람

•엄마. 꿈에서 사람들이 엄청 많이 죽었어.
엄마. 왜 아무 말이 없어.
엄마. 나 너무 무서운 꿈을 꿨다니까.

단 한 사람.
제목이 왜 단 한 사람일까. 생각해봤다. 단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관한 이야기일까. 제목을 보자마자 그냥 샀던 책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첫 페이지 조차 읽지를 못하고 시간이 흘러만 갔다. 그리고 지난 밤과 새벽 사이, 단 한 사람을 구하기위해 수없이 많은 죽음을 목격해야 했던 그녀들의 이야기, 단 한 사람을 읽었다.

•금화가 보기에 엄마는 다른 엄마들과 확실히 다른 면이 있었다. 자식들에게 잔소리하지 않고, 사소한 일로 화를 내거나 기뻐하지 않고, 책을 많이 읽고, 자기만의 고민에 잠겨서,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금화는 그런 엄마가 정말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특별하다는 건 어쨌거나 극단적으로 선택하자면 긍정어에 속했다. 유별난게 아니라 특별하다는 건 누군가에게 소중하단 의미가 되기도 했고,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했다. 금화에게 엄마 미수가 그랬다. 엄마인 내가 그런 미수를 보았다면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아이들을 기르는 동안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고? 사소한 거에 화를 내거나 기뻐하지 않았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어 처음에는 특별하게 보다가 결국 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여러가지 사연을 만들고 무너뜨렸을 것이다. 단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그녀가 치르는 희생따윈 전혀 짐작도 못하고서.

•언제나 어디에서나 어른들은 “너무 멀리 가지마”라고 했다. 그럴수록 금화는 더 멀리 가고 싶었다. 아주 멀리까지 가서 사람들이 마침내 자기를 그리워하게끔, 자기를 먼저 찾게끔 만들고 싶었다.

소설을 읽는 동안 이 부분만큼 나를 섬뜩하게 한 부분은 없었다. 겁이 많은 내가 아이에게 늘 그랬었다. 멀리가지 말라고. 엄마 시야에서 사라지지 말라고. 아이는 요즘 거실에 앉아 놀면서도 무섭다고 말했다. 엄마가 보이지 않아 혼자 있는 것 같다고. 혼자라서 너무 무섭다고. 그런 찰나에 저 문장을 읽고보니 모든 것이 내 탓인것 같았다. 나는 엄마니까. 목화의 말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건 신에게 구걸할 일이 늘어난다는 것’이니까.

•목수야. 다 보고 있었어. 여기 모든 존재가. 그런데 아무도 돕지 않았어.

인간들이 어느 날 다 큰 나무를 거침없이 베어버렸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죽었다. 아니 나무들이 베어지는 사이사이 인간들이 죽었다. 아무도 돕지 않은 건 나무일까. 아니면 여전한 사람들의 무관심일까. 그 안에 나는 해당되지 않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중개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뭔지 알아?
목수는 짐작하여 대답했다.
글쎄, 살려달라는 말?
목화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사랑한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해 후회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나는 때때로 그 말을 듣지 못해 마지막 순간에 더 크게 후회할까 불필요한 걱정을 하곤 했다. 사랑한다는 말. 그 말을 하지 않았어도 정말 상대가 모를 수 있었을까. 미수가 언젠가 자신의 사랑을 깨닫게 될 거라고 믿었던 임천자처럼 우린 다 이미 알고 있지 않을까. 내가 그들에게 사랑받고 있으며, 그들도 내가 자신들을 사랑하고 있음을.

단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어디선가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너무 먹먹해진다. 그들이 구한 단 한 사람 때문이 아니라 구하지 못한 다른 사람들안에 속하지 않은 나 때문에, 나의 하루가 자꾸 되감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먹먹했다. 마음은 더 잘 해내고 싶은데 일순간 내가 왜? 혹은 나만 왜? 라는 질문이 갑자기 차오른다. 그렇다고 해도 <단 한 사람>을 읽은 나와 그 이전의 나는 조금 다른 질문을 던제가 될 것 만 같다. 이 먹먹함을 목화처럼 부담으로 생각하지 말아야지. 이 먹먹함을 짐으로 여기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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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브 오브 본즈 - 호모 날레디, 인류 진화사를 뒤흔든 신인류의 발견과 다시 읽는 인류의 기원
리 버거.존 호크스 지음, 김정아 옮김 / 알레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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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브오브본즈 #리버거 #존호크스 #호모날레디 #과학책추천 #인류학 #고고학 #알레 #과학드림추천 #이상희교수추천 #인류의기원

유인원과 별반 다를바 없는 모습에서 점차 현 인류와 흡사하게 변화되는 그림을 본 적이 있다. 다만 그 그림처럼 인류가 점차적으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란 건 <케이브 오브 본즈>를 읽으며 알게 되었다. 또 흔히 머리가 큰 아이를 보며 ‘공부를 잘 하겠네’ 라고 말하던 농담도 더는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현 인류의 삼분의 일 크기의 뇌를 가졌으면서도 시신을 매장하는 ‘장례문화’라는 것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누구냐하면 바로 호모 날레디, ‘별’(남아프리카공화국 공용어)이란 의미를 가진 호모 날레디다. 호모 날레디의 발견이 놀라운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라이징 스타에서 발견한 것은 그야말로 놀라움 그 자체였다. 우리 호모 사피엔스 종이 처음 생겨난 시기에 아직 인간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새로운 종도 함께 무대에 등장했다.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이 첫 발을 뗐을 때 호모 날레디는 이미 이 세상에 존재했다. 51쪽

호모 날레디, 그들이 했으리라고 짐작되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선 우리처럼 걸을 수 있었고, 팔을 이용해 무언가에 오를 수 있을 뿐 아니라 아이들에게 늘 강조하는 ‘소근육 활동’이 가능했다. 이런 연구가 이뤄진 곳이 ‘동굴’이며, ‘뼈’라는 사실을 읽는 동안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초반에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그들이 연구하는 대상은 이미 죽은 존재이며, 안전을 위해 동굴로 직접 들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밝혀진 바에 의하연 아주 강력한 턱과 이빨을 가진 존재에게 끌려 들어가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추정되는 경우도 있다. 호미닌의 연구가 놀랍기도 하면서 한 편으로는 나라는 존재가 만약 이곳이 아닌 그곳에 있었다면 어떠했을지를 생각하면 아찔하기도 하다. 그런 긴박한 상황에서 매장문화가 있었다는 것 자체가 ‘장례’라는 것이 두뇌가 발달 된 일부 동물들에게서 보이는 문화라는 것에 또 한 번 숙연해졌다.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존이 내게 보여준 영상은 유골이 슈트 아래로 떨어져 디날레디 표면에 가만히 있다가 흙에 뒤덮인 것이 아님을 처음으로 밝힌 명확한 증거였다. 누군가가 굴에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시신을 넣은 다음 흙으로 덮었다. 131쪽

물론 심각한 가정만 한 것은 아니고 호미닌들이 많이 발견된 지역이나 그 인근 국가에서 태어났다면 고고학에 관심이 지금보다는 더 깊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또 호모 날레디의 골격을 뼈 들을 모아 한 사람의 모형처럼 합친 모습도 컬러 사진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살을 입혔을 때는 아주 오래 전에 살았던 호미닌처럼 느껴진 것과는 달리 뼈만 보면 역시나 같은 ‘호모’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신기했다. 결국 ‘뼈 란 말인가’. 결국 그 뼈를 명확하게 여러 가정과 애매함을 벗어나기 위해 저자는 직접 어둠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한 지점이기도 하다.

“내일 내가 디날레디 굴에 직접 들어가려고 합니다.”
발표를 마친 나는 단원들의 눈빛을 둘러보았다. 케네일루는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슈트를 여러 차례 통과한 그에 견주면 내 몸은 살을 뺐는데도 두 배는 컸다. 163쪽

인디아나 존스를 포함 동굴이나 탐사대가 동굴 속을 탐험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면 그 곳이 결코 넓고 안전한 장소가 아니라는 것은 알 것이다. 저자는 심지어 비좁은 슈트를 통과하기 위해 25kg 이나 감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첫 장에는 돌에 배가 긁히기도 한다. 얼마전 읽었던 <편안함의 습격>이란 책의 저자 역시 험난한 탐험을 앞두고 건강관리 하는 장면이 등장해서 흥미를 진폭되었는데 케이브 오브 본즈도 마찬가지로 흥미로웠다. 그런가하면 책을 읽다보면 문단과 문단을 나누는 표식(#)이 있다. 저자의 말처럼 마치 태그를 달 때 사용하는 기호와 흡사한 모습이다. 동굴을 여러 번 오가면서도 놓쳤던 그 새김무늬를 발견했을 때 저자는 이를 두고 ‘어마어마하게 중대한 사건’이라고 적었다. 단순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서로 조금씩 다른 문양들이며 동시에 사람이 아닌 종들도 거의 흡사한 무늬를 남겼다는 사실도 알게 된 무늬였기 때문이다. 유사한 무늬를 새겼으면서도 어느 한 종은 사람이 다른 한 종은 유인원으로. 또 생각이 많아지는 부분이었다. 어쩜 이렇게 인류학책이 재미있을수가! 넷플릭스로 볼 때 보다 더 재미있는 건 역시 독서의 힘이랄까! @allez_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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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속의 향기 - 다람살라에서의 38년, 청정 비구의 순례와 수행과 봉사의 기록
청전 지음 / 담앤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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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속의향기 #청천 #수행 #dharamsala

그림자 속의 향기

“자신의 길을 잃지 말고,
다른 사람 마음을 어지럽히지 말라! 라마 어른 스님, 61쪽

기독교 구약성경의 야훼 신을 대변한다는 예언자들의 활동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늘 그들은 미래를 말하는 게 아닌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뭘 해야 하는가를 말하며, 잘못되어 가는 것은 그 자리에서 질타를 했다. 40쪽

“종교란 가지가 무성한 한 그루의 나무와 같다. 가지로 보면 그 수가 많지만, 줄기로 보면 단 하나뿐이다.”
마하트마 간디, 143쪽

기도란, 첫째, 남이 안 보이는 데서 하는 것이다. 190쪽

순례란 순수 내면의 내적인 자기 변화가 와야 한다. (...)
순례 이후 자기 삶에 변화를 가져오는 게 성지순례의 목적인 것이다. 240쪽

나는 사람을 돕는 일이 최고의 불공이라고 법문 시간에 늘 반복하여 말한다. 207쪽

한국에서 나고 자라 교대에 진학했던 청년이 먼 나라 인도 다람살라에서 38년을 청빈한 비구로써 수행하고 봉사하며 살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사회에 대한 환멸과 타락한 종교와 종교인들을 떠나 자리한 그곳에서 청전 스님이 만난 성인들의 이야기가 시작부터 마음을 경건하게 만든다. 철저한 금욕과 최소한의 음식만 허락하며 깊고 깊은 수도원 지하방에서 혹은 겨우 한 사람 정도가 기거할 수 있는 작은 방에서 수행하는 이들도 있지만 청전 스님처럼 세상 속에 속해있으면서도 온전히 홀로 수행하는 이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모든 이야기가 진지하고 무겁고 비판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이따금 스님께서 경험한 진귀한 체험과 기적이란 말로 밖에 설명되지 않는 신비한 이야기들을 듣고 있자니 마치 천일동안 살의를 접고 이야기를 들었던 누군가의 모습이 내게서 비친다. 좋은 말씀이 마음 속 악함을 물리치듯, 스님께서 적어간 글자들이 내 안에서 여전한 욕망과 이웃에게 눈 돌리지 못하는 나의 비겁함과 옹졸함을 찬찬히 깨뜨려주신다. 무엇보다 불자가 아닌 나와 같은 이들에게도 간디가 남긴 위의 말처럼 순수하고 선한 마음을 가진 이들의 신앙과 믿음이 결코 폭력과 와해로 이어지지 않고 각자의 열심으로 선을 이룬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수행과 봉사와 관련된 이야기 외에도 노스님들을 모시고 바다여행을 가고, 순례여행을 다녀오신 이야기, 대학교 강연을 마치고 마치 군대에서 꿀 같은 휴가를 받고 나와 식도락을 즐겼 듯 방문한 나라와 이웃한 국가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들려주시는 가톨릭 신부와 스님들의 이야기가 재미도 있고 깊이도 있어 좋았다.

비가 몹시 내리던 날도, 무더위에 마음마저 무뎌지던 날에도 청전 스님의 글 덕분에 덜 흐트러지고 완전히 무너지지 않을 수 있어 감사하다. 스님은 물론 스님이 계시는 인도와 한국의 거처를 찾는 모든 이들에게 평화와 안녕한 날들이 이어지길 낮은 마음으로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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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제인 오스틴 - 최초의 문학이 된 여자들
홍수민 지음 / 들녘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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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여성들이 물려준 업적을 현대의 여성 작가와 독자들이 계승함으로써,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여성 문학의 연속성이 만들어졌습니다. 여성 문학의 이러한 면은 고전이라는 “수세기 너머에 가 닿을 너른 바다” 앞에서 우리가 즐겁게 유영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12쪽

저자의 제인 오스틴의 여성 문학의 시작점인 줄 알았으나 문학사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니 그 이전의 이미 여성 문학 서사를 발견한다. 덕분에 나와 같은 독자는 쉽게 접하지 못했던 고전 문학속 여성 작가들의 작품의 주요 내용과 집필 배경 등을 흥미롭고 유쾌한 문체로 만날 수 있었다. 과거의 여성 작가들은 생계를 위해 집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문학은 물론 일반적인 교육을 받는다는 것도 흔하지 않아 ‘독학으로 글을 배워(10쪽)’ 오히려 주제나 문체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었다고 한다. 또 직접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보다는 편지형식을 차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여성의 편지쓰기는 남성의 편지쓰기와는 조금 다른 양상이기 때문에 감정을 어루만지고 탐구하는데에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형식이었다고 한다. 책은 총 6장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순서와 상관없이 읽어도 무방하다. 특히 12세기, 엘로이즈의 이야기는 범죄소설에 등장할 법한 내용이라 제대로 읽고 있는 것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당대 석학이자 유명인사였던 서른아홉의 아벨라르가 사랑이란 이름으로 22살이나 어린 엘로이즈에게 저지른 것은 범죄라고 밖엔 보이지 않는다.

교육을 한다는 이유로 사랑이 요망하는 별실, 떨어진 방이 제공되었네. 책이 펼쳐져 있었지만, 철학 공부보다는 사랑의 이야기가 더 많았고, 학문의 설명보다는 입맞춤이 더 빈번했으며, 내 손은 나의 책으로 가는 일보다 더 자주 그녀의 가슴으로 갔던 것이네. (…) 의혹을 보다 잘 피하기 위하여 때로 나는 매질을 가하기 까지 했다네, 그것은 분노의 매질이 아닌 사랑의 매질이었으며…63쪽

그녀가 아벨라르에게 당한 것은 엄연히 폭력이었다. 결과적으로 엘로이즈는 결혼이 아닌 여성 수도자가 되어 자신이 바라던 ‘아스파스아’와 같은 삶을 살았고 무엇보다 여성철학자로서 공적인 문서에도 그 기록이 남았을 만큼 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았다. 신을 향한 그녀의 열정과 철학에 대한 학구적 열망이 그녀 자신 뿐 아니라 여성들의 삶을 남성과 사회로 인해 강제당하고 억압으로 끝맺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 셈이다. 특히 여성의 교육적 기회가 남성에 비해 현저히 부족할 뿐 아니라 금기에 가까웠던 상황을 적확하게 보았을 뿐 아니라 ‘1405년 <여성들의 도시>를 집필’(101쪽) 하였다. 다만 이 책은 현재 절판 상태라 비포 제인 오스틴을 계기로 재출간 소식이 들려오길 개인적으로 간절하게 소망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술이 가장 부흥했던 14세기~16세기는 어땠을지 궁금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역시나 르네상스라고 해서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심지어 오히려 이전보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떨어지고 통제는 더 심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7세기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여성의 공적활동은 금기였지만 그럼에도 벤의 작품이 인기를 얻었다는 것이다. 물론 여성혐오는 여전했기 때문에 남성이 아닌 여성이 쓴 성적 표현에 대해 비난을 멈추지 않았지만 그녀는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정면으로 돌파했을 뿐 아니라 당당하게 펜으로 대응했다.

남성 작가들은 가장 문란한 생활을 하고 가장 음란한 작품을 쓰고 사람들은 그것을 보려고 몰려들지만 단지 여성이 썼다는 이유로 부도덕한 것으로 여긴다. (…) 내가 요구하는 것이라고는 나의 남성적 부분 내 안의 시인에 대한 특권이다. (149-150쪽)

여성 작가들이 남긴 문학들은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독학으로 익혀 생계를 위해 소명처럼 쓴 글들이 대부분이라서 형식과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하고 다채롭게 넘나든다. 여성혐오나 차별적 사회체재는 그녀들의 신념을 지속적으로 무너뜨리려고 애쓰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지만 책을 읽는 내내 탄성이 나올 만큼 여성 스스로가 여성의 이야기를 쓰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고전 문학에서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새로이 많이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저자의 바람을 넘어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성별을 넘어 ‘쓰고자 하는 열의’에 차올랐다는 사실일 것이다. #비포제인오스틴 #홍수민 @dulnyouk_pub #여성작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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