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더스 Builders Vol.1 : Origin
빌더스 편집부 지음 / 아임웹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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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01

▌BUILDERS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들 이야기를 담은 매거진

<Builders> 창간소식을 들었을 때 브랜드의 탄생을 포함해 창업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잡지라는 점에서 관심이 컸었다. 아직 구체적으로 사업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가 태어난 이후 부터 이전보다는 유연해졌다고는 해도 일반적인 근무시간은 대부분의 교육기관의 근무시간과도 동일하기 때문에 개인사업에 대한 미련 혹은 호기심은 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자본이 넉넉한 것도, 뚜렷한 컨셉이나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무턱대고 저지를 수는 없었다. 미리 말하자면 <Builders> 그런 내게 꼭 필요한 때에 만난 좋은 매거진이었다.

◦Vol.01 Origin 그렇게 시작됐다

이번 호의 주제가 ‘그렇게 시작됐다’로 표지에 적힌 유아른을 시작으로 에세이와 일러스트로 만날 수 있는 여러 브랜드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초기 창업비용과 직원수부터 간략하게 브랜드 창업시 영감이 되어준 건축물이나 도서 그리고 나라에 이르기까지 편안하게 때로는 밑줄까지 꼼꼼하게 그어가며 읽었다. 그렇게 읽다보니 반드시 ‘창업’이 아니더라도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가 많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브랜드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 제각각인데 어떤 브랜드는 각잡고 시작한 반면 우연을 계기로 얼떨경에 시작한 브랜드도 있었다. 그런가하면 초기에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었던 방식을 제조와 유통문제로 과감하게 개혁한 브랜드도 있었고, 처음부터 가졌던 창업 마인드를 유지하고자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브랜드를 이어가는 곳도 있었다. 결국 정해진 답이 있다기 보다는 자신이 왜 브랜드를 시작했고, 소비자와 어떤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브랜드 공여사들의 인터뷰 내용 중에 다음의 문장이 크게 와닿았다.

◦대표님들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는 부분이 그분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과는 다른 경우가 많다는 거예요. 36쪽

개개인을 하나의 브랜드라고 볼 때, ‘항상 무언가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들기 마련이다. 나의 경우를 보더라도 무언가를 끊임없이 배우고 있다. 마치 배움의 중독된 것처럼. 헌데 정말 그것이 내게 필요한 부분인가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배워서 남주나, 배워서 나쁠 게 없다.’ 등의 말들이 변명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가하면 스테니 브랜드의 경우 나 또한 스테인리스 제품을 선호하는 편인데 늘 연마하는 작업이 힘겨웠었다. 고객에게 출고되기 전 연마작업을 마쳐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 스테니 대표는 한 발 더나아가 ‘연마작업이 필요없는 제품 생산’을 꿈꿨고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냈다. 과거의 누군가도 생각은 했겠지만 반복되는 실패 과정에서 견뎌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브랜드마다 시련이 찾아왔을 때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대해서도 인터뷰에 담겨져 있었다.

◦”집에 돈이 많거나, 친구 중에 연예인이 있거나, 가족이 공장을 해야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라는 이야기였죠. 처음엔 씁쓸했지만, 곱씹을수록 그 말 속에 힌트가 보이더라고요. 결국 여러 번 시도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98쪽

이미 창업을 했거나, 실패의 경험이 있다면 그런 맥락으로 <Builders>를 보아도 좋을 것 같다. 그렇다고 대부분 1인 사업자로 시작한 브랜드라며 규모가 작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읽으면서 초기의 이런 어려움이 있었는지 전혀 짐작조차 못했던 브랜드들도 상당하다. 그러니 ‘내 사업’, ‘아이디어 개발’은 물론 믿을 수 있는 브랜드를 찾고 있는 소비자들에게도 유용한 매거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감각적인 사진과 레이아웃은 덤이랄까.

#builders #브랜드 #매거진빌더스 #아임웹 #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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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나간 세상에서 아픈 사람들 -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정신과 의사의 생존 가이드
조애나 치크 지음, 제효영 옮김 / 심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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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You, It‘s the World:

정신나간 세상에서 아픈 사람들 / 조애나 치크 / 제효영 역 @simsimbooks @prunsoop

이 책의 원제만 봐도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무엇인지는 짐작할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책을 읽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지만 미리 고백하자면, 공감보다는 더 중요한 무언가를 느끼게 했던 책이었고,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적어볼까 싶다.

나는 해저에 가라앉은 어린 소녀다. 나는 배 밑바닥에 있는 십대 소년이며, 경매장에 전시된 젊은 여성이다. 나는 남들이 믿는 신에 관해 노래하던 할머니다. (…)
나는 나를 사냥하는 사람이다. 44~45쪽

위의 발췌문은 1장에서 인용된 라마 로드 오언스가 자신의 몸에 남아 있는 트라우마와 비극을 표현한 글의 일부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개인적으로 내가 겪은 아픔과 남겨진 트라우마를 이렇게 위로부터 거슬러 올라가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그것은 철저하게 ‘나’ 개인에게 한정되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반복적으로 나를 흔든 것은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연대하며 공동체적으로 서로가 함께 회복할 때 비로소 온전한 치유가 가능하다는 지점이었다.

그러므로 더 큰 공동체와 시스템 전체가 치유되어야 트라우마에서 회복될 수 있다. 안전한 사람들과 살고 있고, 공정한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믿음이 회복되어야 요란하게 울려대는 경보도 잦아든다. 167쪽

이 부분에서 특히 마음에 남은 것은 고통을 ‘경보’로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불이 나면 화재경보기가 울리듯, 불편함과 절망, 분노와 두려움도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정신적인 것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신체적인 반응으로도 등장한다. 어쩌면 이런 부분은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특정 장면이 오래도록 각인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그 생각을 그대로 유지하고 간직하는 것은 위험하다.

생각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자유롭게 살 수도 있고, 생각에 속박되어 살 수도 있다. 때로는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생각에 빼앗긴 힘부터 되찾아야 한다. 354쪽

최근 자신의 생각을 온전히 믿지 말라, 생각에서 벗어나라, 틀릴 수도 있다와 같은 문구가 들어간 책들이 많이 출간되었고, 그때마다 챙겨서 읽곤 했다. 생각의 잘못을 알아차린 것에서 끝나지 않고 잘 다스리는 방법, 편집하는 방법에 대해 서술된 부분이 그래서 유용하고 참 고맙게 느껴졌다. 물론 책을 읽고 나면 당장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느끼는 불안과 슬픔을 바라보는 방식은 조금 달라질 수 있다. ‘왜 나는 이럴까’라고 묻는 대신 ‘지금 내 마음은 무엇을 알려주고 있을까’라고 물어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신 나간 세상에서 아픈 것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것, 그리고 혼자만의 문제라고 여기지 않는 것이다. 나를 돌보는 일에서 시작해 주변을 살피고,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며,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조금씩 건강하게 만들어가는 것. 이 책은 그 길을 생각해보게 하는 따뜻한 안내서가 되어준다.

#정신나간세상에서아픈사람들 #조애나치크 #itsnotyouitstheworld
#트라우마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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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란 무엇인가 - 노동 멸시의 역사를 넘어 노동 민주주의로 박홍규의 사상사 3
박홍규 지음 / 들녘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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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란 무엇인가 / 박홍규의 사상사 / 들녘

우리는 왜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생각할까. 너무 당연하게 들어온 말이라 ‘왜’라는 질문을 해본 적조차 없는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일하는 것은 좋은 것이고, 게으름은 나쁜 것이라고 배워왔다. 박홍규의 <노동이란 무엇인가>는 바로 그 익숙한 생각에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노동이란 인류의 반 이상을 차지한 노예나 농노가 하는 것이라는 노동관이 오랜 역사를 통해 형성되어 인류 역사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그 노예는 대부분 외국인이었기에 외국인 혐오라는 인종차별과도 결부되었습니다. 52쪽
고대 그리스에서 상업이나 육체노동은 천시되었습니다. (플라톤의) 국가에 따르면 상인은 위계질서의 최하층을 차지합니다. 150쪽
18세기 3분기 이후 노예 가격이 폭등하고 식민지 노예가 많아지며(…) 임금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더 이익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 이와 함께 노예제 폐지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258쪽
그(밀)는 여성의 경제적 독립이 노동계급의 독립과 유사하다고 보았으며, 주로 여성의 가사 노동이 성평등을 이루기 위해 안정되어야 하는 필수적이고 생산적인 노동이라고 주장(…)326쪽

저자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상가들이 노동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살펴본다. 노동을 노예나 농노가 하는 천한 일로 여긴 사상도 있었고, 종교적 의미를 부여해 노동을 신성하게 만든 생각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여성의 노동이나 노동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혁명과도 같은 의견을 제시한 사람을 마주할 때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다. 반대로 노동에서 인간의 자유와 창조성을 찾으려 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를 통해 저자는 노동을 무조건 찬양하지도, 노동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만을 이상으로 삼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오랫동안 들어온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말도 재고의 여지가 있다. 열심히 일하는 것 자체보다 왜 일하는지,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 그 노동에서 노동자 자신은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특히 기술이 발전하면 노동에서 인간이 조금 더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디지털 시대에는 오히려 일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려워졌다는 저자의 문제의식이 인상적이었다. 효율과 생산성을 높이는 일이 언제나 인간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모리스는 노동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즉 좋은 노동과 나쁜 노동입니다. 좋은 노동은 생활에 축복이나 빛이 되지만, 나쁜 노동은 저주이자 짐이 됩니다. 418쪽
사실 물질을 이동시키는 것이 어느 정도는 우리 존재에 필요하지만, 그것을 인간 삶의 목적이라고 강조할 필요는 없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셰익스피어보다 노동자 한 사람이 더 우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474쪽

저자가 노동의 역사를 이토록 넓게 훑어보는 이유도 결국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노동을 해야만 가치 있는 인간이 되는 것도 아니고, 노동 자체가 무의미한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자신의 노동에서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말하는 ‘노동 유토피아’도 모든 사람이 더 많이 일하는 세상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위해 노동시간을 줄이고 기본적인 삶을 보장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노동과 활동을 선택할 수 있는 세상으로 다가왔다. 결국 이 책을 읽고 내가 생각하게 된 것은 노동을 없애자는 이야기가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노동의 당위와 노동 숭배가 지배하는 사람의 논리가 되어,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노동을 요구하는 허울이 되지 않으려면 노동은 강제에서 자발성으로 옮겨가야 한다. 내가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알고, 내가 선택한 일을 통해 나의 능력과 창조성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기후 위기를 비롯하여 어느 때보다 살기 어렵게 된 시대이지만 그럴수록 원칙에 충실한 삶, 다양하고 자유로운 노동을 추구해야 합니다. 550쪽

노동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인간이 노동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저자는 이에 대한 답으로 ‘자유로운 노동’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나를 포함해 다른 독자들은 어떤 답을 내놓았을까.우리가 노동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고 ‘사고하는 노동’이 가능할 때, 아마도 자유로운 노동도 가능해지리라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이 책을 먼저 읽는 것이 순서다.

#노동이란무엇인가 #박홍규 #노동 #들녘 @dulnyouk_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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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지식산문 O 10
존 비게닛 지음, 김명남 옮김 / 복복서가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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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여러 얼굴을 마주하다

존 비게닛의 <침묵>을 읽기 전까지 내가 생각했던 침묵은 비교적 단순했다. 소음이 거의 폭력처럼 느껴지는 세상에서 잠시 귀를 닫고 마음을 쉬게 하는 것, 심신을 정화하는 명상적인 시간 같은 것이었다. 존 케이지의 <4분 33초>처럼 침묵이 예술이 될 수도 있고, 나와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는 포용의 의미로 확장될 수도 있겠다는 정도였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나니 침묵은 그렇게 한 방향으로만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역사와 사회, 종교와 예술, 고통과 폭력의 자리에서 침묵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특히 교정시설에서의 침묵에 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아이를 훈육할 때 때리기보다는 혼자 방에서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이 낫다고 쉽게 말한다. 나 역시 그런 방식이 비교적 평화로운 훈육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침묵과 고립이 사람의 도덕성을 회복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인간을 피폐하게 만들고 퇴행시킬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이 달라졌다. 극단적인 경우일 수 있겠지만, 누군가에게 강요된 고립과 침묵은 절망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해보았다.

저자가 청소년기에 사제가 되기 위해 수도원에 머물렀던 경험도 기억에 남는다. 그곳에서 말을 삼가고 침묵하는 생활을 경험했지만, 사제들의 모습이나 자신의 신앙심이 부족해서 사제의 길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그곳의 침묵 자체가 어딘가 불편했다고 말하는 부분이 와닿았다. 침묵은 평온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기도 한다는 것을 느꼈다.

독서에 대한 이야기도 새롭게 다가왔다.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저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잠시 자신의 생각을 멈춘다. 나는 독서를 저자와 핑퐁처럼 생각을 주고받는 행위라고만 생각했는데, 깊이 몰입한다는 것은 한동안 나의 생각을 멈추고 다른 사람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저자가 허리케인으로 삶의 터전을 잃고 겪은 충격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그 몰입의 경험마저 이전과 같을 수 없었을 것 같다. 현실을 잠시 잊기 위해 영화와 독서에 몰입할 수 있었던 사람이 더 이상 현실을 놓을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여성들의 침묵에 관한 이야기,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깊은 바다에서 고래들의 의사소통이 방해받는 이야기도 오래 남았다. 특히 마지막 문장이 마음 아팠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고래들이 늘어나고, 결국 더 많은 고래들이 혼자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 “그래서 침묵의 미래는 과연 어떨까? 더 많은 외로운 고래들이 아닐까.‘(223쪽)라는 마지막 문장 앞에서 침묵이 더 이상 고요하고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침묵에도 지켜야 할 침묵과 깨뜨려야 할 침묵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를 위한 침묵은 필요하지만, 처벌을 위한 침묵, 학살과 폭력을 은폐하기 위한 침묵, 상대의 침묵을 강제로 끊어내기 위한 고문은 결코 같은 의미의 침묵일 수 없다. 결국 이 책은 침묵하라고 말하는 책이 아니라,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좋은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침묵을 조금은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존비게닛 #침묵 #지식산문o시리즈 #silence
@bokbokseoga_publis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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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꽃 세트 - 전2권 (한정판 케이스 + 조정래 작가노트)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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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장편소설 서리꽃 1, 2권 서평

“오늘이 십오 일이지? 가자, 꽃구경하게.”
절에서 나오며 이재이가 말했다. (…)
“눈 맞으며 피는 꽃?”
윤소인이 의아하게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언젠가 말했지? 남도의 서러움이 맺힌 꽃이라고.” 2권 73쪽

눈을 맞으며 피는 서러운 동백꽃. 조정래 작가의 장편소설 <서리꽃>은 슬픈 사랑의 노래다. 슬픈 사랑이란 무엇일까. 이뤄지지 않는 사랑일 수도 있고, 혼자서만 애태우는 그런 사랑이 슬플수도 있다. 얼마나 슬픈 사랑일지를 기대하며 페이지를 펼쳤는데 ‘작가의 말’이 먼저 등장한다. 한 자리에 오래 앉아 긴 시간 팔을 움직이는 직업의 아픔은 터널 증후군 수준이 아니었다. 스스로 바라보기에도 끔찍할 만큼 엄청난 대수술까지 감내해야하는 것이 ‘작가’였다. 모든 작가가 그런 것은 아닐테지만 어쨌거나 ‘글을 쓰다가 책상에 엎드려 죽는 것이 소원(작가의 말 참조)’인 작가의 작품을 마주하려니 엄숙함이 느껴졌다. 맨 위에 발췌문에 바로 이야기의 두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이재이와 윤소인. 철학과를 졸업한 재벌집 아드님과 꿈이 화가였으나 가난때문에 꿈을 포기한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미술가 윤소인. 이재이는 시를 썼고, 윤소인은 그 시를 돋보일 수 있는 그림을 고흐의 별 그림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윤소인이 고흐의 작품에서 힌트를 얻은 것은 그녀의 아버지, 꿈을 포기했던 아버지가 좋아했던 화가였기 때문이다. 그런 윤소인을 사랑하는 이재이는 닥치는대로 고흐의 화보집을 구해 읽고 또 읽는다. 소설을 통해, 이 소설을 집필한 작가의 노력 덕분에 소설을 읽으면서도 고흐의 작품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렸다. 그 뿐인가. 종교와 무관하게 불교에 대해, 석가모니가 그 오래전 이미 설파한 차별없음에 대해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런데 무엇이 그들의 사랑을 슬픈 사랑으로 묶어놓았을까.

이재이는 처음 미술학원을 찾아갔을 때, 지하 2층으로 내려가며 ‘공기가 나쁠 텐데’ 하는 생각으로 기분이 석연찮았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지하 이 층에서 몇 년 동안 미세먼지 가득한 탁한 공기를 마셨으니…..” 1권 269쪽

윤소인. 아버지가 바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원해 그림을 그렸고, 그림을 통해 아버지와 더 가까이할 수 있었지만 어쩌면 그 그림 때문에 마음에도 몸에도 상처가 생겼다. 이재이는 사랑하는 윤소인의 아픔을 탓하고 원망하는데 세월을 낭비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윤소인을 회복시키는 것, 그것만 생각한다. 그 생각은 관련 정보를 찾아보게 하고, 공부하게 하고, 무엇보다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놓을 뿐이다. 윤소인을 포기하면, 모르고 살았으면 이재이의 삶이 더 평안했을까? 그런 질문의 답을 찾을 여유가 없었다. 윤소인을 위한 유럽여행은 독자들을 위한 여행이기도 했다. 고흐의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 떠난 여행길에서 독자는 90미터가 넘는 모네의 수련을 만나기도 하고, 무명이었던 고흐의 실력을 알아본 로댕의 컬렉션 이야기도 듣는다. 1권에서 마주한 제주와 제주오름처럼 2권에서도 직접 감상했던 옛일을 떠올리며 읽다보니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다. 하지만 그런중에도 이 슬픈사랑이 어떻게 끝이날까 두렵기도 했다.

소설을 읽으면서 인물들의 감정에 몰입하는 경우도 있고, 그들의 직업이나 가족이나 지인에게 더 마음이 붙들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서리꽃>의 경우는 인물들의 전공도 전공이지만 날로 심각해지는 사회문제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결국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가상세계에서 잠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삶속으로 가져와 지금의 나를 돌아보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슬픈사랑 이야기라도 그저 슬프기만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정래 #서리꽃 #소설 #작가 #해냄
@haina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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