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욱 교수의 <철학은 결말을 바꾼다>의 부제는 '삶의 무의미를 건너는 연습'이다.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주위를 둘러보거나 특정된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하면 모든 게 다 허무하게,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저자의 전작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를 읽으며 '질문을 던지는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기회를 얻었다면, 이번에는 그렇게 던져진 질문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으리란 기대감에 읽기 시작했다.
요컨데 우리는 존재 유지에 골몰하기에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아니며, 혀가 즐겁기 때문에 음식을 입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그러기에 식사는 존재 유지를 위한 노역의 일부가 아니라, 이 노역으로부터 잠시 풀려나 얻는 휴식과 쾌락이 된다. 16쪽
60분, 즉 한 시간 정도였던 점심시간이 복지가 잘 되어 있는 회사의 경우에는 그보다 30분가량 더 주어지거나, 아예 근무시간 내에 자유롭게 카페테리아를 드나들 수 있는 경우도 있다. 20여 년 전, 내가 처음 마케팅 부서 신입으로 일하던 시절에는 그런 회사에서 근무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런 회사를 운영하고자 했던 대표님의 지원으로, 몇 차례 마케팅 세미나에 참가할 기회를 얻은 적이 있었다.
그 세미나에서 본 사무실은 책상이 한곳에 모여 있지 않았다. 마치 사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작은 사무실을 가진 듯한 구조였고, 넓은 창을 통해 들여다본 공간은 외화 드라마 속 청소년들의 아지트처럼 꾸며져 있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창의적인 공간’을 재현해 둔 것 같았다. 그때 함께 세미나에 참가했던 동료와 나눈 첫 소감이 이랬다.
“이런 곳에서 일하면 없던 창의력도 생겨나겠네.”
그곳에는 함께 어울려 가볍게 오락을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이를 통해 나는 저자가 말하는 ‘먹방에 심취하는 것’과 동시에 ‘홀로 식사하는 것’이 초래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근무할 때는 철저히 자신의 방 안에서 ‘고독’한 상태에 있다가, 그 문을 여는 순간 ‘더불어 있음’을 느끼게 되는 것 — 이는 ‘고독’과 ‘더불어 있음’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양자를 오가는 무한한 순환 궤도가 인간의 운명이며, 이 궤도를 혹시 선순환의 고리로 만들 수 있을지 인간은 골똘히 궁리해볼 뿐(62쪽).”
그런가 하면, 당시 마케팅 업무를 배우던 나의 현재 직업은 그와 크게 관련이 없다. 물론 “마케팅과 무관한 직종은 없다”는 말이 있으니 완전히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는 지금 한 기업이나 단체의 마케팅 담당자는 아니다. 문득 생각해 본다.
만약 내가 그 길을 계속 걸었다면 어땠을까?
만약 그때 관련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과 사랑에 빠졌다면 또 어땠을까?
아니면, 애초에 내가 마케팅을 그만둔 이유가 악덕 거래사 대표 때문이었다면?
숲속의 길 가운데 하나로 들어서듯, 한 사람을 만나거나 지나치거나 하는 작은 차이가, 여러 가능 세계 가운데 하나를 우리 미래의 현실로 만든다. 29쪽
우리가 선택하는 것만 우리의 결말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사소하게는 먹었던 음식이나 입었던 옷 마저도, 그런 작은 차이가 우리의 현실과 결말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다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될 때도 있다. '한마디로 인간의 삶은 개개인의 독자적인 경험,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경험으로 이루어진다.'(139쪽)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읽다보면 자주 인용되는 작품과 철학가 그리고 사상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빠르게 정독하고 싶고 좀 더 깊이 마주하고 싶은 책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다. 책의 시작부터 그리고 어느정도 나의 삶 속에 철학적 지점과 연결된 부분이 확인되어가는 지점에서 다시금 인용되어 등장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무언가 앎이나 예언으로는 깨닫지 못하고 '경험'을 통해 나아가게 되는 방향이 헤겔의 <<정신현상학>>과도 이어진다. 또 그 경험을 통해 우리가 특정 경험으로부터 도망치거나 회피하는 것에 대해 사르트르의 글을 인용하는 다음의 부분은 책의 초반, '악'조차 다양성에 속해있다는 것이 결국 좋은 성공의 경험만으로 인생을 채울 수 없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장도리로 못을 박는 경험을 실제로 해보지 않고는 내가 장도리를 잘 다루는지, 못을 잘 박는 재주가 있는지 결코 알 수 없다. 경험만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경험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없는지', '즉 우리가 어떤 '유한한 존재'인지 깨닫게 해준다. 143쪽
책의 도입부가 '음식'과 관련한 내용이라 아주 용이하게 철학책에 빠져들었을 뿐 아니라 왜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 '삶을 잘 살기 위한'것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데 역시나 좋았다. 철학자 한 사람에서 출발하는 방법도 나름의 이점이 있는 것처럼 이렇게 잘 버무려서 최고의 맛을 내는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