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뉴스가 당신의 마음을 극도로 망가뜨린다 싶으면 그냥 뉴스를 꺼버려라. 공포가 마음속에 끼어들 틈을 주지 마라. 잠시도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뉴스 앞에서 무력하게 얼어붙어 있어봤자 백해무익이다. - P31

 뉴스를 보지 않는 것은 전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트위터를 하지 않는 것은 전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연결을 끊어버리는 것은 전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 P31

 자살은 20~34세 청년의 가장 큰 사망 원인이다. 또한 50세 이하 남성의 주요 사망 원인이기도 하다(내가 사는 영국의 데이터이긴 하지만,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암울한 통계치가 나와 있다). 이런 죽음의 상당수는 미연에 방지가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남자답게 행동하라‘는 주문을 무시하고 진정한 내면의 힘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남성과 여성 모두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힘을 갖춰야 한다. - P44

 4. 자기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들은 걱정도 하지 마라. 뉴스 안엔 온통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일투성이다. 대신 뭐든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가령, 관심이 가는 이슈에 대해 경각심을 높이고, 열렬히 옹호하는 대의명분이 있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기여하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은 그냥 받아들여라.

5. 눈에 보이는 것이 다 나쁜 뉴스라고 해서 좋은 뉴스거리가 없는 건 아니란 걸 기억하자. 지금도 수많은 곳에서 좋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병원에서, 결혼식에서, 학교에서, 사무실에서, 산부인과 분만실에서, 공항의 도착 게이트에서, 침실에서, 받은메일함에서, 거리에서, 낯선 이의 친절한 미소에서, 매일의 일상에서 십억 가지의 경이로운 일이 눈에 띄지 않게 벌어지고 있다. - P66

마음의 병을 앓으면서 내가 배운 한 가지 교훈은, ‘회복‘이 ‘받아들임‘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일단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변화를 시도해볼 수 있다. 우리는 충격 자체에 충격받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공포심 자체 때문에 공포 상태에 빠지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방법과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 때문에 좌절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세상엔 만병통치약이나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사랑과 친절을 베풀고, 혼돈 속에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위치에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그리고 자꾸만 우리 마음을 닫아버리려고 하는 이 세상에서 항상 마음을 넓게, 활짝 열어두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 P68

 현대인들에게 가장 장사가 잘되는 것들의 핵심은 결국 ‘다른 무언가가 되려고 노력하면 지금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 P83

4 세상에 이미 존재하는 누군가와 비슷해지려고 노력하지 마라. 당신이 가진 색다름을 즐겨라.

6 남이 당신을 보는 부정적 관점이 당신이 스스로를 보는 관점이 되게 하지 마라. 절대로.

7 스스로에 대해 안 좋은 생각이 들 때면, 인스타그램을 멀리하라.

8 기억하라. 당신 외에는 그 누구도 당신의 얼굴이 어떤지 진심으로 신경 쓰지 않는다. - P101

정신 질환에 대한 사회적 낙인 문제가 점차 개선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마도 우울증이나 공황 발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상황이 나아졌다는 점에 대해선 그들의 말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알코올의존증이나 자해, 경계선 성격장애, 섭식 장애, 강박행동 장애, 약물중독은 그 개선된 범위에 포함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이런 질환들은 심지어 정말 훌륭한 사람들의 너그러운 마음까지 시험에 들게 한다. 그게 바로 정신 질환의 문제다. 그 사람이 걸린 ‘병‘을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것은 쉽다. 하지만 그 병이 유발하는 ‘행동‘을 기준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지 않기란 훨씬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눈에는 그 이유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 P105

집단적으로 미쳐 있고 문화 자체가 병들어 있을 땐, 치료는커녕 병이 있다는 걸 진단하기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사회의 조류가 우리를 특정 방향으로 끌고 가더라도 만약 그 방향이 우리를 불행에 빠뜨려 헤어나지 못하게 한다면, 우리는 다른 방향으로 수영하는 법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자신의 진실을 향해, 수많은 딴짓거리가 숨겨둔 진실을 향해 물을 거슬러 갈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생사가 거기에 달려 있을 수도 있다. - P109

삶을 제대로 만끽하고 싶다면, 우리가 앞으로도 절대 읽거나 시청하지 못할 것들, 말이나 행동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은 이제 그만 생각하자. 지금부터는 어떻게 하면 우리의 한계 안에서 이 세상을 경험하고 즐길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인간다운 차원에서 살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내가 할 수 없는 수백만 가지 대신 할 수 있는 소수의 일에 힘을 쏟고, 세상에 내가 한 명 더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지 않고, 좀 더 소소한 과제를 탐색하고, 위풍당당한 독립적 존재가 될 수 있을지, 세상에 하나뿐인 원조로 살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 P120

그런데 어떤 외적 요인들은, 가령 술, 담배, 시끄러운 음악, 수많은 인파 같은 요인들은 심지어 내 상태를 악화시킬 수 있었다. 세상이 내 안으로 파고드는 셈이었다. 우리가 잘하고 있든 못하고 있든 상관없이, 세상은 항상 우리를 자극해댄다. - P125

걷기가 실내에서든 실외에서든 상관없이 우리의 정신에 좋은 활동이라고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쇼핑센터에서 걸었던 사람 중 44퍼센트는 그곳에서 걸으면서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 같았다고 대답했다. 반면 숲속을 걸었던 90퍼센트의 사람은 자존감이 높아지는 걸 느꼈다고 대답했다. - P131

운동은 우울증부터 ADHD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정신적 문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P141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이 이분법에 시달리고 있다. 가령, 일의 세계는 정신적인 직업과 육체적인 직업으로 나뉜다. 흔히 지능과 ‘고등교육‘이라는 자질을 갖춰야 하는 ‘전문적인‘ 직업과, 일반적으로 육체노동을 뜻하며 그 가치가 저평가되고 있는 ‘비숙련‘ 직업으로,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로 구분되는 식이다.
 몸의 움직임에도 지능이 있다. 춤 지능, 운동 지능 같은 것들. 그런데 우리는 어릴 때부터 무심코 아이들을 갈래짓고, 이것으로 그들의 진로, 즉 ‘저임금의 육체노동‘이냐, ‘엑셀 스프레드시트를 들여다보는 고소득직이냐‘를 결정한다. 문화 역시 고급과 저급으로 나눈다. 우리를 웃게 해주는 책이나 마음에 감동을 주는 책들은 우리를 ‘생각‘하게 만드는 책보다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 P143

현대인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기분상으로는 시간이 전혀 없는 것 같지만, 실제로 시간이 없는 건 아니다. 기분상으로는 자신이 못생긴 것 같지만, 실제로 못생긴 건 아니다. 기분상으로는 걱정스럽지만, 실제로 걱정을 해야 하는 건 아니다. 기분상으로는 자신이 충분히 성취하지 못한 것 같지만, 실제로 충분히 성취하지 못한 건 아니다. 기분상으로는 자신에게 부족한 점이 많은 것 같지만, 그 기분 때문에 자신이 덜 완전한 존재가 되는 건 아니다.
 기분을 버리면, 내게 필요한 시간은 나에게 있다. - P152

밤에 일곱 시간에서 아홉 시간의 수면을 취하라는 것이 WHO의 권장 기준이지만 그 권고를 따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 P154

가장 좋은 방법은 사실 간단하다. 전문가들의 일관된 조언은 규칙적 생활을 하고, 카페인과 니코틴, 늦은 시각의 지나친 음주를 피하고, 이른 아침 운동을 하고, 밤에 과식하지 말고, 자기 전에 휴식을 취하고, 낮 동안에 햇볕을 좀 쬐라는 것이다. - P160

영국의 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OXFAM의 2017년 보고서에 의하면, 세계 제일의 억만장자 여덟 명이 소유한 부가 하위층 36억 명의 자산과 맞먹는다. - P162

2015년에 핀란드 국립산업보건안전원에서 과도한 업무와 알코올 간의 연관성을 살펴보는 연구를 수행해 결과를 발표했다. 이 분야에서는 가장 대규모로 진행된 연구였는데, 이들은 14개 나라 33만 3천 명의 근로자 데이터를 수집하여, 우리의 근무 시간이 늘어날수록 우리가 마시는 술의 양도 늘어난다는 결론을 얻었다. - P165

우리는 주 5일 근무를 마치 자연의 섭리인 것처럼 받아들인다. 일을 하지 않을 때는 자꾸만 나도 모르게 죄책감이 든다. 그 옛날의 벤저민 프랭클린처럼 ‘시간은 돈‘이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되뇌면서, 돈이 운에 좌우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실제로 엄청나게 긴 시간을 일하는 수많은 사람이 평생 일 한번 해보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적은 돈을 소유하고 있다. - P165

10 지금의 일 문화는 종종 인간성을 말살시킨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이 우리를 병들게 하거나 불행하게 하지는 않는지 진단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따져봐야 한다. 마치 인생이라는 달리기 시합에서 계속 지고 있는 것처럼 일에 대한 세상의 공식이 우리를 끊임없이 뒤처진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는 이유로, 우리는 스스로에게 얼마나 많은 압력을 부과하고 있는가. 어떻게든 따라잡아보려고 몸부림치기만 할 뿐, 감히 우리는 잠시 멈춰 서서 무엇이 자기에게 정말로 좋은 것인지 고민해볼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 P166

무너지지 않고 일하는 10가지 방법
1 좋아하는 일을 하려고 노력하라. 일하는 게 즐거워지면 솜씨도 좋아질 것이다. 일이 즐거우면 일처럼 느껴지지도 않을 것이다. 일을 일종의 결실을 얻는 놀이처럼 생각해보라.

2 더 많은 일을 처리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마라. 가능한 한 일을 덜 처리하는 것에 목표를 둬라. 일의 미니멀리스트가 되라. 미니멀리즘은 더 적은 것을 가지고 더 많은 것을 하는 것이다. 요즘의 일하는 방식은 더 많은 것을 가지고도 더 적게 하는 것에 치중되어 있는 것 같다. 활동의 양과 성취의 양이 언제나 동급이 되는 것은 아니다.

6 가능하면 이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는 방식으로 일하려고 노력하라. 이 세상이 우리를 만든다.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면, 우리도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7 자기 자신에게 잘 대해줘라. 일의 부정적 측면이 월급이 주는 장점보다 더 크다면, 그 일은 하지 마라. 누가 자신의 권위를 사용해 당신을 괴롭히고 공격한다면 절대 용납하지 마라. 지금 하는 일이 정말 싫은가? 그런데 점심시간에라도 밖으로 나가 일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밖으로 나가라. 그리고 절대 다시 돌아가지 마라.

8 자신의 일을 실제보다 중요하게 생각하지 마라. 버트런드 러셀도 말했지만, "신경쇠약의 임박을 알리는 증상 중에는 자기 일이 무지막지하게 중요하다고 여기는 신념도 포함된다."

9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일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라.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단 한 번뿐이다. 그 삶을 오롯이 자신만의 것으로 사는 것이 언제나 가장 옳다. - P167

세일럼 마녀 재판부터 비틀즈 열광 현상까지, 개인의 감정이 집단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던 사례는 수천 가지가 넘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신기하면서도 섬뜩한 사례 중 하나는 15세기 프랑스의 한 수녀원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어느 날 그곳의 수녀 한 명이 고양이처럼 야옹 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곧 다른 수녀들도 똑같이 야옹거리기 시작했고, 몇 달도 지나지 않아 수녀들이 한꺼번에 큰 소리의 고양이 울음 합창을 매일 몇 시간씩 해대는 통에 근처 마을 주민들이 기겁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지방 당국이 군대를 보내 채찍질 형벌을 내리겠다고 위협한 뒤에야 수녀들은 고양이 울음을 멈췄다.
 기이한 사례는 더 있다. 1518년 유럽 스트라스부르에서 발생한 집단 무도 발작 사례는 약 400명의 사람이 실신할 정도까지 장장 한 달 내내 쉬지 않고 춤을 춘 사건인데, 결국 사망한 사람들도 있었다. 납득할 만한 원인도, 심지어 음악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
 그리고 지금, 우리에겐 ‘인터넷‘이라는 테크놀로지가 있다. 이 기술 덕분에 연대 집단행동의 기회와 빈도가 증가했다. 노래, 트윗, 고양이 영상 등 다양한 정보가 날마다 매시간 단위로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간다. ‘바이러스처럼‘이라는 말은 인간 본성과 기술이 결합하여 생기는 전염성 효과를 묘사하기에 정말 딱 맞는 용어다. 그리고 알다시피, 영상이나 제품, 트윗 같은 것만 전염될 수 있는 게 아니다. 감정도 전염될 수 있다.
 빈틈없이 연결된 세상은 ‘다 같이 한꺼번에‘ 미쳐버릴 가능성도 함께 품고 있는 셈이다. - P180

불교승려 틱낫한은 자신의 저서 『힘의 기술The Art of Power』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마음이 설레고 신이 나면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우리가 흥분해 있으면 마음은 평온하지 않다. 진정한 행복은 평온함에 기반한다." - P245

2018년 킹스칼리지런던에서 수행한 연구 조사는 하늘을 보는 것이 우리의 정신 건강에 도움 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여기엔 단순히 하늘뿐 아니라 나무를 보거나 새의 지저귐 소리를 듣는 것, 야외에서 머무르고 자연과 가까이 교감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는 것도 포함된다.
……
자연적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모든 사람이 긍정적 효과를 얻긴 하지만, 특히 중독, ADHD, 반사회적 성격장애, 양극성 장애 같은 정신 건강 문제에 빠지기 쉬운 성향의 사람들이 더욱 큰 도움을 얻는다는 결과를 발견했다. 이 연구 진행에 기여한 안드레아 메켈리 박사는 "자연에 단기간만 노출되어도 정신 건강에 유익한 영향을 미쳤고, 그 영향의 정도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라고 결론 내렸다. - P259

6 좋은 책을 하나 골라서 자리 잡고 앉아 읽어보자. 살다 보면 가끔 길을 잃고 헤메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떄가 생긴다. 그럴 때 책은 나 자신에게 다시 돌아오는 길이 되어준다. 그 사실을 꼭 기억하자. 더 많이 읽을수록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다. 고난의 시간을 헤쳐나갈 나만의 길을 더 잘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7 나 자신을 어떤 기준 안에 가두지 말자. 내 이름, 성별, 국적, 성 정체성, 페이스북 프로파일의 틀에 갇혀 눈멀지 말자. 노자는 말했다, "지금의 나를 놓아야 비로소 장차의 내가 된다"고.

22 나 자신을 한마디로 규정 지으려 하지 말자. 이제 그만, 내가 누구인지 정의해보겠다는 생각을 버리자. 철학자 앨런 왓츠도 말했다시피 "너 자신을 정의하려 하는 것은 자기가 자기 이빨을 깨물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24 느껴지지 않는 감정을 애써 느끼려 하지 말자. 내가 되지 못할 누군가 또는 무언가가 되려고 애쓰지 말자. 그렇게 안간힘을 쓰다가는 결국 지쳐 쓰러지고 말 것이다.

25 세상과 연결되고 말고는 와이파이와는 전혀 상관없다.

28 지금 당장 사랑을 하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무언가가 있다면 지금 즉시 행동에 옮기자. 거침없이 사랑하자. 사심을 버리고 세상 밖으로 나가 사랑을 마구 남발하자.

29 죄의식을 갖지 말자. 물론 소시오패스가 아닌 이상 요즘 같은 세상에서 죄의식을 조금이라도 느끼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온갖 죄책감이 뒤섞여 나를 어지럽힌다. 세상 어딘가에 굶주리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죄책감, 자동차를 타고 플라스틱을 사용하면서 느끼는 환경에 대한 죄책감, 은밀한 욕망 또는 부도덕한 욕망에 대한 죄책감, 다른 이들이 기대하는 수준의 사람이 아니라는 죄책감, 남들은 다 할 수 있는 일을 못 해서 드는 죄책감, 병에 걸렸다는 죄책감, 살아 있다는 죄책감, 이놈의 죄책감…… 전부 쓸데없다.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 되지 않는다. 예전에 무슨 잘못을 저질렀든 더는 거기에 붙잡혀 있지 말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좋은 일을 하자. -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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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약성은 진정한 인간관계로 들어가는 길이며, 진정으로 매력적인 사람이 되는 방법이다. 이와 관련하여 심리학자 로버트 글로버는 "사람들은 서로의 모난 면에 끌린다."라고 말했다.
 당신의 모난 면을 드러내라. 완벽해지려고 시도하지 말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라. 거절과 실수를 받아들이고 계속 나아가라. 당신은 더 크고 강한 사람이니까. 마침내 당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여성을 만난다면(반드시 그럴 것이다), 그녀의 애정 속에서 기뻐하라. - P56

진실은 언제나 드러난다. 당신 내면의 취약성은 속일 수 없고, 정직함도 속일 수 없다.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연애에 관한 대부분의 조언은 여성의 통찰력을 과소평가한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상대의 감정, 의도, 사회적 신호를 직관적으로 잘 알아챈다. 우리는 재치 있는 대사를 떠올리고 외우면서, 이렇게 작업 거는 것을 여자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다. 그건 그녀에게 어렵지 않은 일이다. - P74

 독서를 많이 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종종 어떤 책에서 얻은 최고의 아이디어는 그 책의 주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 P190

 그녀는 바로 당신이 그 남자가 되기를 원한다. 그녀는 속으로 당신을 응원하고 있다. 그녀는 당신을 거절하고 싶지 않다. 새로운 남자가 다가올 때마다 그녀는 속으로 ‘제발, 제발, 제발 그 남자가 되어 줘. 내가 거절할 수 없는 매력적인 남자가 되어 줘.‘라고 외치고 있다. 그런데 남자가 어색하게 말을 더듬으며 불편한 농담을 한다. 그녀는 다시 거절해야 하는 불편한 상황에 놓인다. - P221

 이러한 개념을 여자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에도 적용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여자에 대한 불안을 없애야만 한다고 생각하면, 그 생각이 오히려 불안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신경생물학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을 피하려 하거나 억누르려 할수록, 오히려 두려움이 더 강해진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불교에서는 ‘저항하는 것은 지속된다‘라는 말이 있다. 두려움과 불안을 다루는 올바른 방법은 그 감정이 정상이며 당신의 일부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만나는 여성에게 이런 감정을 숨기지 않는 것이다. - P226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행동에 옮길 때 용기가 길러진다. 무언가 두렵고, 보이지 않는 힘이 당신을 붙잡는 것처럼 느껴질 때, 이를 뚫고 나아가면 내면에 용기가 쌓인다.
 용기는 습관이며, 훈련의 결과이다. 다른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느낌이 들더라도, 처음에 하고자 했던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용기가 두려움에 맞서 행동하는 것이라면, 훈련은 나태함이나 피로에 맞서 행동하는 것이다. - P233

 무엇을 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는, 적극적인 쪽으로 행동하라. 더 대담한 행동을 선택하라. 안전하고 소심하게 기회를 기다린다면, 당신의 매력이 시들어 버릴 수 있다. - P235

 역설적으로 여성에게 소름 끼치는 느낌을 주지 않고 취약성을 나누기 위해서는, 일부 여성들이 당신에 대해 소름 끼친다고 느낄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다행인 것은 거절과 마찬가지로, 취약성을 드러내고 위험을 감수할수록 그런 상황은 더 적게 발생한다는 것이다. - P247

 데이트를 직장 면접처럼 만들지 마라. 저녁 식사 데이트를 그런 식으로 끌고 가는 남자들이 많다. 대신, 당신의 이야기를 먼저 공유함으로써 그녀의 이야기를 이끌어내라. - P301

 "만약 그것이 선물이라면?"
 당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그것이 아무리 나쁘고 암울하게 느껴지더라도, 스스로 "만약 그것이 선물이라면?"이라고 물어보라. 그리고 그것이 선물일 수 있다고 생각해 보라.
 감정의 세계에서 절대적인 것은 없다. 당신은 그 경험에서 무엇을 배울지 선택할 수 있으며, 당신에게 필요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경험을 축복이나 선물이라고 결론 내리는 것은 어떨까. -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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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고용, 표준적인 가족상, 정해진 궤도로 운행하는 인생, ‘남자다움‘, 지배적인 남성성 등의 ‘정규성=정답‘에서 탈락하고 이탈한 다수자 남성 중 일부. 이들이 약자 남성이다. - P72

그렇다면 차라리 타인의 인정을 기대하지 말고, 좀 더 능동적으로 당사자 의식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자신을 소수자, 사회적 약자로 보지는 않겠지만 비정규 남성(약자 남성)임을 인지해야 한다.
 인정에서 자각으로. 그리고 책임으로. 약자 남성으로 살아가는 우리들 또한 이러한 의식으로 각성해야 한다.
 비정규적이고 주변적인 남성들은 어쩌면 남성 특권에 보호받은 패권적인 ‘남자다움‘과는 다른 가치관, 즉 성과주의, 능력주의, 우생학, 가부장제 가치관을 대체할 급진적이고 근원적인 가치관을 발견해낼 기회를 얻은 것일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고 돈도 없고 무지하고 무능한 남성들이,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공격하는 행동을 극복하고, 행복하고 착실하게 살아간다면 그것 자체로 혁명적인 실천이 아닐까?
 이러한 생활 방식, 이렇게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는 같은 길을 뒤따라올 남성들에게 작은 빛과 용기를 줄 것이다. - P77

일상의 소소한 일들이 삶에 매우 중요할지도 모른다. 일만 하지 말고 취미생활을 즐기고 주변에 관계를 쌓아 조금씩 인간관계를 확장한다. 그리고 ‘남자다움‘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는 나만의 생활 방식을 탐색해 간다. - P102

회사 일에 열정을 불태우는 남성상, 가부장적인 아버지상, 자유로운 사고방식의 지적인 육아남, 사회적 기업가의 이미지만 주어진다. 오타쿠, 초식남 등의 모델도 있지만, 다수자 남성들에게도 더 다양하고 다채로운, 그럭저럭 즐겁고 행복한, 그리고 폭력적이지 않은 인생 모델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남성들에게도 해방감이 필요하다. - P107

일상에서 적절하게 자신을 돌보는 훈련과 연습을 다시 배우지 않으면 자신을 방치하거나, 눌려 있던 감정이 폭발해 타인이나 자기 자신에게 폭력적인 공격을 하게 된다.
 이것이 이른바 남성의 ‘폭발‘ 문제다. 평소에 꾹 참고 담아두다가 한 번에 폭력을 폭발시킨다. 어쩌면 하고 싶었던 말을 애써 누르고 참다가 ‘고백‘하는 일종의 ‘고백주의‘와 표리의 관계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터지기 일보 직전인 풍선의 바람을 조금씩 빼듯이, 일상의 관계에서부터 조금씩 감정과 불안을 꺼내고 얕지도 깊지도 않은 관계를 맺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한꺼번에 모든 상처를 고백하고 다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꺼내어 공유한다. 이런 식으로 남성성을 부지런히 유지보수하는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 눈물 흘리기, 약함을 받아들이기, ‘남자답게‘ 참지 않고 싫으면 싫다고, 괴로우면 괴롭다고 분명하게 말하기. 나보다 약한 사람을 감정적으로 대하기 전에 나의 상처받은 목소리와 내면의 감정에 세심하게 귀 기울이기.
 이러한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P158

아무도 죽이지 않고, 자기 자신도 죽이지 않고, 현재와 미래의 누군가를 위해서도 아닌 무익하고 쓸모없는 일을, 죽음이 오는 그날까지 계속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인생의 ‘헛수고‘이자 급진적인 인내이며, 우울하고 시시한 인생을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목숨을 바치는 것이다.
 약자 남성의 존엄을 안고…….
 자살하지 않는 이유는 삶에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자살에 에너지를 쓴다는 게 쓸데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죽이지 않는 이유는 타인의 생명이 소중하다거나 그들의 인생이 가치 있어서가 아니라 살인도 쓸데없기 때문이다. 자살이 쓸데없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여기에는 이런 소극적인 의미밖에 없다.
 그리고 이걸로 충분하다.
 온갖 구원과 인정에서 외면당하고 ‘괴로움‘ 속에 계속 머무르면, 이 괴로움은 남자의 자존심이 아니라 약자 남성의 존엄(dignity)으로 거듭난다.
 약자 남성의 존엄(dignity of incel).
 비록 사랑도 없고, 타인의 인정도 없고, 자기 돌봄도 없고, 남성 동성 친구들 간의 형제애가 없어도 ‘그냥 살기‘(조르조 아감벤)를 완수할 수 있다.
 여성이나 사회적 약자를 미워하지 않고, 인정 욕구가 비뚤어져 다크 히어로가 되지도 말고, 바냐 아저씨처럼 작은, 그래서 위대한 존엄을 끝까지 지켜내자.
 언젠간 인정도 받고 사랑도 받을 수 있다든가, 속마음을 다 말할 수 있는 친구들과 취미를 함께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다든가, 그런 있지도 않은 희망을 꿈꾸느라 현실을 속이는 일은 이제 그만하자.
 그저 지루한 이 일을, 이 인생을, 사랑받지도 사랑하지도 않고, 죽이지도 죽지도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이뤄내자.
 여기에도 존엄은 있다. 분명 허무주의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내면에서는 이를 초월하는 ‘한낱 인생‘의 존엄이 있다. 분명 있다. 있어야만 한다.
 3장에서도 설명했지만, ‘가짜 적‘을 오인해 미워하거나 싸워서는 안 된다. 중요한 건 사회 구조에서 진짜 ‘적대성‘을 찾아내고 멈추지 않고 싸울 의지다(인셀 레프트의 길). 하지마 혹시 이마저도 좌절된다면, 완전히 쓸데없고 시시한 이 인생을 죽을 때까지 인내해야 한다.
 적으로 착각하고 절대 증오하지도 죽이지도 않는 것, 이 또한 약자 남성의 작은 존엄을 지켜나가는 일이다.
 이 인생을 ‘허무에게 바치는 제물‘(소설가, 시인 나카이 히데오의 표현)로 삼는 것이다.
 이 또한 인셀의 내면에 있는 ‘악‘,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에 나온 그 ‘악‘과 용감하게 맞서고 싸우는 방법이 아닐까? - P204

이 세상의 남성들은 자신을 돌볼 줄 알아야 한다. 비폭력적인 호모소셜 우정과 취미를 공유해야 한다. 서로를 돌보는 관계만 있어서는 부족하다. 우정만 있어도 부족하다.
 그렇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약자 남성들이 현대 사회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에 제대로 절망하는 것이다. 이 절망 위에 올라서면 두 가지 길이 생긴다고 지금의 나는 믿고 있다. 나머지는 각자의 실존적 결단 문제다.
 한쪽에는 이 쓸모없는 인생을 끝까지 살아내고, 계속해서 ‘노동‘하는 ‘그냥 인생‘을 완수하겠다는 존엄이 있다. 다른 한쪽에는 가짜 적에 대한 증오가 아닌, 쓸모없음을 강요하는 사회를 향한 분노가 있고, 사회 변혁으로 가는 실천이 있다.
 전자는 아무리 허무해도 일상의 일에 계속 전념하고, 이 허무를 타인과 자신을 향하는 폭력으로 바꾸지 않는 것이다. 4장에서 나온 바냐 아저씨의 길이자, ‘인셀의 품격‘이라 할 수 있는 비폭력적인 길에 해당한다.
 후자는 약자 남성이 강요받는 굴욕에 직면한 뒤 ‘절망하는 용기‘(지젝)를 안고 사회를 향한 분노를 점화시키는 것이다. 4장 마지막에 나온 인셀 레프트의 길에 해당한다. 『바냐 아저씨』에서는 아스트로프의 길에 가깝다.
 약자 남성들은 두 가지 길을 동시에, 왔다 갔다 하며, 모순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
 만약 아스트로프의 길(인셀 레프트)을 가지 못한다고 해 보자. 허무주의에 빠져 이상주의 사회로 바꾸고자 하는 길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제는 생활을 버티고, 그 누구도 죽이지도 증오하지도 않고, 자신을 죽이지도 않고, 평화롭게 조용하게 멸망하는 것, 허무한 인생을 완주하는 것, 남아 있는 길은 이것뿐이다. 누군가를 증오하거나 어딘가에 불지르는 길을 고르지 않는다면.
 하지만 어떻게 해볼 수도 없는 수치와 굴욕이 치밀어 오를 때도 있다. 겨우 이러려고 태어난 게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바로 이 순간, 자기 부정으로 향하려는 수치심과 굴욕을 사회적 분노로 바꿔보자. 사회운동을 하라는 말이 아니다. 생각은 그만하고 행동하라는 말도 아니다.
 내 안의 굴욕과 분노를 공적인 장소에서 작은 말로 표현해 보자. 아주 짧은 말이라도 자기 자신을 위해, 타인을 위해, 이 사회가 바뀌길 희망하며 시도해 보자. 그렇게 투쟁하는 것이다.
 지금의 내 안에는 둘로 분열된 감정이 있고, 세 가지 길이 있다. 이 감정들은 모순된다. 하지만 우선은 이 모순과 당혹감에 머물러 있자. - P216

모순에 찢겨 나가면서 이 시시한 인생을 살아가자.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 살 수 있다‘(오쿠다 다미오).
 꿋꿋이 살다 죽음이 오는 그날까지, 긴긴 시간에서 오는 지겨움을 견딜 수 없다 해도, 잔여물 같은, 덤 같은, 이유도 의미도 없는 시시한 인생을 끝까지 살아남도록 하자! - P218

그러나 나는 실제 인생에서는 기본적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 별 볼 일 없고, 부유하지도 않고, 특별한 재능도 없는 평범한 중년 남성이 어떻게 하면 빈둥빈둥 한가롭게, 크게 무리하지 않고 그럭저럭 즐겁고 행복하게 살다 죽을 수 있을까? - P220

화려하지도 훌륭하지도 않고, 수수하고 눈에 띄지 않는 인생이어도, 매일 숱한 약함과 우둔함에 괴로워하고 스스로 한심하다고 줄곧 고민하는 무딘 인생이어도, 가끔 ‘궤도‘에서 이탈하는 불안정한 인생이어도, 그럭저럭 즐겁고 재미있게, 그럭저럭 남들에게 잘해주면서 살다가 죽고 싶다.
 이런 걸 매일 소소히 바라면서 최대한 열심히 살려고 한다. 물론 가끔은 게을러지거나, 늘어지거나, 창피해하면서. - P221

현재를 살아가는 남성들 주변에는, 흔히 찾을 수 있는 인생의 모델, 별 볼 일 없는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델이 의외로 없는 것이 아닐까?
 왠지 이런 것들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극단적인 마초의 ‘남자다움‘, 가부장적 아버지상, 자기 계발로 승자가 되려는 남성상, 자유주의 성향의 똑똑한 남성상……. ‘남성의 인생 모델은 있긴 있지만, 더 선택지가 다양해지고 ‘이야기‘가 늘어나면 좋겠다. 모델이 더 많아지고 다양해지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했다.
 ‘음지에 사는 별 볼 일 없는 중장년 남성들이 모여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 속 이야기를 털어놓고 서로를 돌보고 약점을 공유할 수 있다. 호모소셜도 형제애도 아닌 남성 간 관계가 더 많아지면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들었다.
 본문에서도 언급했듯, 남성들은 ‘남자답다는 갑옷‘ 안에 상처 입은 마음을 숨겨두는 것 같다.
 필요한 돌봄과 적절한 처치 없이 지내다간 ‘남자의 상처‘를 아내나 어머니, 젊은 여성 같은 ‘여성‘에게 치유받길 기대하거나 무의식중에 강요하게 된다.
 자신을 방치하거나 쌓아둔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고, 타인과 자신을 폭력적으로 공격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일상에서 적절한 자기 돌봄을 훈련하고 연습해두는 일은 중요하다.
 일상의 소통에서 솔직한 감정과 불안을 조금씩 꺼내거나, 미리 김을 좀 빼거나, 얕지도 깊지도 않은 관계 쌓기가 중요한지도 모른다.
 즉, 고통과 상처 일부를 조금씩 꺼내 일상에서 공유하고, ‘남자‘로서의 생활을 부지런히 유지해가는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약함을 받아들이고, ‘남자답게‘ 참지 않고, 싫으면 싫다고 괴로우면 괴롭다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
 이런 소박한 행동이 의외로 중요하지 않을까?
 둔하고 별 볼 일 없어도, 다시 오지 않을 이 인생에서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도, 상처와 약함을 꾹 눌러 담는 대신 껴안을 수 있는 생활 방식을 조금씩 일상에서 실천해 보고 시행착오를 겪고 싶다.
 그때가 오면 가끔은 사회적인 문제도 고민해 볼 수 있기를, 행동할 수 있기를.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이 책이 각자의 길을 찾는 데 약간의 실마리라도 제공한다면 기쁘겠다.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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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선언에 대한 내 반론의 핵심은 모든 사람이 위대한 일을 할 필요는 없다는 거야. 세연은 세상을 바꾸고 사람들의 존경을 얻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 무가치한 것처럼 얘기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잖아. 우리가 호모사피엔스라는 동물 종으로서 잘 가꿔진 숲길을 걸을 때 거부할 수 없는 작고 소소한 기쁨을 맛본다면, 그 숲을 지키고 가꾸는 일에 가치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어. 좋은 음악이나 그림, 음식을 즐기는 데서 오는 즐거움은 본능적인 것이고,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만들거나 만드는 기술을 갈고 닦는 데에는 왜 우리가 그걸 해야 하는지, 거기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애써 설명해야 할 필요가 없어. 그러니 그런 일을 하면서 보내는 삶에도 가치는 있는 거야.
 ‘인정에 대한 욕구‘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패배나 사회 변혁이 없어도 적절한 수준에서 채워질 수 있을 것 같아. 실제로 평범한 사람들은 승진을 하거나 표창을 받았을 때 그런 욕구가 풀렸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어떤 업적에 대한 욕망이랄까, 자부심을 충족시키는 데에도 그 거래를 내가 성사시켰다, 저 건물을 짓는 데 내가 참여했다, 저 길을 여는 데 내가 힘을 보탰다, 저 정책이 바뀌는 데 나도 일조했다, 이런 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우리 앞의 세대라고 해서 그 사람 중 어느 누구 한 명이 자기 힘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것은 아니잖아. 그네들이 가진 자부심도 하나하나 쪼개놓고 보면 나도 가방 하나 들고 해외 출장 나가봤다, 밤새워 일해봤다, 거리에서 돌 던져봤다, 그런 일들 아닌가.
 세연이라면 이런 생각을 한심하다고 여기겠지만 오히려 이제 와서 나는 지금의 내 태도가 어른스러운 것이고, 남은 사람들이나 후대에 태어난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 신경을 쓴 세연의 태도가 어린아이 같은 거라고 봐. - P297

우리 사회에 모순이 쌓이지 않는다는 세연의 주장에 나는 찬성하지 않는다. 세상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힘은 이제 없을 수도 있지만 우리 시대에 태풍은 곧 몇 번 들이치리라 생각한다. 그때 그 에너지를 이용하면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많은 일을. 그건 그 에너지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 P332

나는 20대가 스스로 자신의 과업을 찾아주길 바란다. 내게 20대는 여러 흥미로운 주제 중 하나일 뿐이다. 반면 젊은이들에게는 과업을 찾는 일이 바로 그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는 길이다.
 이 책에서도 인용한 새뮤얼 헌팅턴의 말처럼, 사람은 적수가 누구인지 알 때만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된다. 20대를 정의하는 각종 담론이 대체로 공허한 이유는 그 청년 세대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자신들의 과업을 찾는 것이 바로 지금의 20대에게 부여된 가장 중요한 임무인지도 모르겠다. - P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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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실패

19세기 후반,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전통 사회와 현대사회의 본질적인 차이에 대해 놀라운 발견을 했다. 전통 사회의 경우, 작은 공동체를 이루어 살면서 생계 수단의 진로가 신의 손에 달려 있다고 여겼다. 개인적인 성취에 대한 기대가 적었기 때문에 실패의 순간이 닥쳐도 괴로움의 한계가 정해져 있었다. 좌절이 한 인간으로서의 가치 전체에 대해 내려지는 평결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완벽을 기대하지 않았으며, 불운한 일이 일어나도 자신을 혹독하게 비판하는 식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무릎을 꿇고 하늘에 애원할 뿐이었다. 하지만 뒤르켐은 현대사회가 스스로 실패를 인정한 사람들에게 훨씬 더 잔혹한 대가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낙오자들은 더 이상 불운 탓을 할 수 없으며, 내세에서 구원받으리라는 희망도 품을 수 없었다. 마치 책임질 사람은 오로지 한 명뿐이고 적절한 대응도 하나뿐인 듯 말이다. 현대성에 대한 중요한 고발장이라 할 수 있는 책에서 뒤르켐이 밝힌 것처럼, 현대 사회의 자살률은 전통 사회의 열 배에 이른다. 현대인은 성공에 더 많이 열광할 뿐만 아니라 실패할 경우 훨씬 쉽게 목숨을 끊는 경향이 있다. - P15

이론적으로 사람이 세상 모든 책을 읽을 수 있었던 마지막 시기는 1450년경이었다. 우리는 정말 많이 알면서도 참으로 적게 이해한다. - P17

6—오두막

현대 지성사를 이끈 수많은 인물이 세상에서 고립된 곳으로 물러나 은둔함으로써 혼돈과 거리를 두었던 것, 그리고 그곳에서 혼돈을 이해하고자 시도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니체는 스위스 알프스의 오두막으로, 비트겐슈타인은 노르웨이 피오르의 오두막으로, 하이데거는 ‘검은 숲‘의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쓴 글은 전형적이지 않을지 모르나, 그들 내면의 혼란에는 전형적인 측면이 있었다. 앞으로도 우리가 오두막에 살 일은 없겠지만, 우리에게도 오두막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을 날카롭게 감지하고 있다. - P18

7—감성

우리는 계속해서 웃으라는, 좋은 하루를 보내라는, 즐겁게 지내라는, 휴일에는 환호성을 지르라는, 살아 있다는 사실에 열광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그런 요구가 없어도 이미 무척이나 어려운 일인데 말이다. 현대는 우리가 가진 근본적인 권리인 울적할 권리를, 비생산적일 권리를, 퉁명스러울 권리를, 혼란스러워할 권리를 박탈했다. 행복이 표준 상태여야 한다는 주장이야말로 현대가 우리에게 저지른 핵심적인 부당 행위다. 독일 철학자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현대 미국이 압도적인 악당을 만들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가 언급한 치어리더의 우두머리 격인 악당은 바로 월트 디즈니다. - P19

하지만 소비라는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인류가 자신에게 필요한 것과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정확히 구별하는 데 유난히 서툴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이 번성하는 데 꼭 필요한 것과 겉보기에는 매혹적이되 사실 알고 보면 자신을 해치거나 손상시킬지 모르는 것 사이의 차이를 제대로 식별하는 데 이례적으로 형편없다는 사실은 소크라테스 이래 철학의 근본 원리였다. - P30

우리는 소비의 주된 문제점을 (흥정에 실패한다거나 하는) 가격의 측면이라는 틀에 넣어 바라보지만, 오류는 더 근본적인 데 있을지 모른다. 성공적인 지출은 우리가 획득한 것과 느끼는 방식 사이의 내밀한 연결고리를 파악하는 데 달려 있다. 우리가 쓸모없는 제품(이는 에클레어일 수도, 주택이나 신발, 교육일 수도 있다)을 고르는 까닭은 자신의 본성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불완전한 소비자로 나아가는 이유는 삶의 다른 많은 영역에서 실수하는 것과 똑같은 이유다. 즉 우리가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훈련받지 못한 아마추어이기 때문이며, 또한 자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 P30

하지만 심오한 의미에서 보자면, 우리가 무엇에 돈을 쓰는가는 중요하다. 수십억 소비자의 선택이 모여 사회의 성격과 삶의 유형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더 나은 종류의 수요와 더 나쁜 종류의 수요라는 것이 존재한다. 총기에 대한 수요는 교육에 대한 수요보다 덜 ‘바람직한‘ 것이다. 건강식에 대한 수요는 옥수수시럽을 듬뿍 뿌린 디저트에 대한 수요보다 ‘더 나은‘ 것이다. - P38

사실, 렘브란트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듯, 우리는 결점 많고 연약한 이들을 가장 깊이 사랑하게 된다. - P48

현대 광고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바로 늘 긍정적인 메시지만 전달하려고 하고, 슬프거나 우울한 느낌을 주는 광고를 거부하는 것이다.

삶이라는 상태는 본질적으로 비극적이다. 커다란 슬픔이나 상실을 겪지 않고 보내는 날이 거의 없다. 세상 모든 게 근본적으로 슬픔에 괴로워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살아가려면 많은 특권을 누리거나 시야가 좁디좁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광고는 마치 활기, 평온, 낙관주의가 일반적인 상태인 듯, 우리는 항상 오해받지도 않고 좌절하지도 않으며 죽어야 할 필요도 없는 것처럼 끊임없이 우리에게 반가이 인사를 건넨다. 광고 작업은 물건 구입으로 해결되지 않는 영혼의 침체 상태에 대한 두려움을 전제로 한다. 마치 도취한 행복감 외에 다른 마음 상태를 인지하는 게 상업 사회 전체를 한순간에 붕괴시키기라도 하는 듯 군다. 하지만 이런 성마른 감정과 태도는 우리가 슬플 때마다 당황하지 않고 우리의 기분에 공감해 주는 사람들에게, 우리를 즐겁게 해주거나 빠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의무감 따위를 느끼지 않고 품위 있는 삶 속에서도 슬픔, 고독, 혼란이 자리 잡을 적법한 자리를 인정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크게 감사하고 있는지를 잊어버리게 만든다. - P51

따라서 물질적 대상이 성취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우리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노력과 이해가 중요하다. 안정은 특정 목적지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노천탕에 몸을 담근다고 해서 찾아오지 않는다. 오랫동안 묻혀 있던 불안의 희미한 근원을 시간을 들여 끈기 있게 탐구함으로써 얻을 수있다. 마찬가지로, 우정이란 특정 상표의 청량음료에서 마술처럼 출현하지 않는다. 우정은 우리 자신이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그 누군가의 주변에 머물며 담대하게 약점을 드러내고, 그 누군가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을 상상력을 동원해 해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요구한다. 화목한 가족은 새 시계를 획득한다고 해서 완성되지 않는다. 사춘기의 수많은 시련 앞에서 발휘할 수 있는 인내심, 그리고 일시적으로는 긴장과 비난을 수반할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적절한 선을 그을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 P64

역사에서는 늘 끔찍한 일들이 벌어진다. 하지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신중하게 그러모은 최악의 사건에 규칙적으로 노출된 적은 지금껏 없었다. 매일 신문을 읽는다는 것은 자발적으로 공포의 강물에 몸을 적시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신문은 여간해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별난 가능성을 열심히 강조함으로써 사람들이 이 행성을 디스토피아적 늪으로 생각하도록 가르쳤다. 그곳은 낯선 사람들이 끊임없이 여학생을 유괴하여 토막을 내는 곳이었고, 아기들이 밤마다 납치되는 곳이었으며, 물이 불어난 싸늘한 강에 기차들이 노상 떨어지는 곳이었고, 모든 간호사가 소아성애자이며 모든 정부 관리자가 사기꾼인 곳이었다. 그리하여 신뢰하거나 희망을 품거나 휴식하거나 영감을 얻는 것 따위가 터무니없는 일이 되어버린 장소로 여기도록 가르친 것이다.

신문은 사건을 보다 명확히 살펴볼 계몽의 도구인 척했지만, 결국은 실제 삶의 모습을 모호하게 만들고 말았다. 신문은 대부분 사람이 친절하다는 사실을, 기차는 대부분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사실을, 정부에서도 감동적이고 훌륭한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날들은 조용히 별일 없이 지나간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대서양 횡단 케이블, 기자회견, 해외 지국 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문은 우리에게 ‘정보를 제공‘하기는커녕 오히려 우리를 사람, 기술, 그리고 정부의 진정한 본질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그리하여 매일 뉴스를 접할 방법은 없었지만 자신의 감각적인 경험을 통해 현실을 그려낼 줄 알았던 중세 시대의 문맹 농부보다도 더 아는 게 적은 상태가 되었다. - P71

신문이 우리에게 말하지 않는 것은 이에 대한 가장 현명한 조치가 현대 사회에서는 일어날 확률이 낮을뿐더러 마치 금기처럼 들리는 조치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 조치란 바로 귀를 막는 것, 하다못해 좀 덜 듣는 것이다. 온갖 불법행위와 무능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 재무부 관리들의 사진에다 대고 호응 없는 연설을 계속 해대지 않는 것, 철도 노선의 전화로 인해 다음에 벌어질 일이 무엇일지 자꾸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과 그 외의 다른 수많은 문제들이 중요하긴 할 테다. 하지만 신문이 암시하는 것과는 달리, 사실 이런 문제들은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는 정부의 혼란을 정리해야 하고, 경제에 대한 거창한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야 하며, 도로 공사 계획이 지연되는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 우리 발등에 떨어진 불은 아니다. 운명은 우리에게 다른 모습의 부담을 지운다. 우리의 책임은 덜 칭송받고 덜 돋보이는 곳에 있다. 우리의 책임은 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이지만 필사적으로 상황에 대처하고자 하는 아이, 자신의 역할을 혼란스러워하는 동료, 그리고 불안정하고 좀체 알수 없는 우리의 마음에 있다. 그러므로 가장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은 알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야 더 중요하면서도 자기 가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다른 문제들이 응당 가져야 할 중요성을 회복할 수 있을 테니까.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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