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 2권에 가장 큰 반전(?)은 정하섭과 소화의 관계설정이라 생각된다. 이와 더불어 한국 현대사와 관련되어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이 이번 <태백산맥>2권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으며 이를 중심으로 이번 페이퍼를 정리해본다.


 1. 근친상간 문제 : 천륜(天倫)인가 아니면 인륜(人倫)인가


<택백산맥> 에서 소화는 정하섭을 사랑하고 있으나, 이들은 사실 이복남매 관계다. 그리고, 본인들은 이러한 사이를 알지 못한다. 이들의 관계를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는 소화의 어머니 월녀. 그렇지만, 어머니 월녀는 병에 걸려 이러한 사실을 말할 수 없는 처지이기에 이 사실을 딸에게 말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러한 충격적인 사실은 그녀를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이끈다.


 '어머니의 표정은 누그러지지 않았다. 부릅뜬 눈에 이상한 빛이 서렸다. 그녀는 몸이 달고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안 뒤여, 안 뒤여, 술도가 집 아들허고는 하늘이 두 쪽이 나도 그 짓 혀서는 안 뒤여. 월녀는 목이 찢어지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이년아, 머시가 신령님 뜻이냐. 신령님이 천벌 내릴 죄럴 니년이 저질러뿌린겨. 이년아, 넋 나간 년아. 이 일얼 워째야 쓸 것이다냐. 월녀는 정신이 아찔아찔해지기 시작했다. 딸의 얼굴이 대중없이 흔들렸다. 숨길이 막혀왔다.(p67)'

 

가족간의 근친상간을 다룬 작품으로 잘 알려진 <오이디푸스왕>을 살펴보면, 오이디푸스와 그의 어머니 이오카스테는 결혼하여 자녀를 두고 있다. 테바이를 휩쓴 재난의 원인이 그들의 근친상간임을 지목했을 때, 이오카스테 역시 이를 견디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한다.


 '자살하셨어요. 하지만 여러분들은 그 광경을 보지 못하셨으니, 그 참상은 알지 못하실 거에요. 하지만 저 불쌍하신 마님께서 겪으신 고통을 내가 기억나는 대로 여러분들에게 들려드리겠어요. 마님께서는 미친 듯 현관에 들어서시더니 두 손 끝으로 머리털을 쥐어뜯으시며 곧장 결혼침대로 달려가셨어요... 그분께서는 누가 신호라도 하는 양 무섭게 고함을 지르며 이중의 문으로 달려가시더니 걸쇠에서 빗장을 뜯어내며 방안으로 뛰어드셨어요. 그리고 방안에서 우리는 흔들리는 밧줄의 꼬인 고에 마님께서 목을 매달고 계신 것을 보았어요.(1236 ~ 1264)' <오이디푸스 왕>


[그림] 오이디푸스왕(르누아르) (출처 : http://www.bhgoo.com/2011/56460)

 

 '소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소화가 혼자서 장례를 치렀다...... 앞으로 외롭겠다...... 무당 노릇은 할래나.......(p216)'


 <태백산맥>에서 소화는 자신이 근친상간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기에, 어머지의 장례를 자신의 손으로 치룰 수 있었다. 


 '그분께서 마님의 옷에 꽂혀 있던 황금 브로치를 뽑아 드시더니 자신의 두 눈알을 푹 찌르시며 대략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말예요. "이제 너희들은 내가 겪고 있고, 내가 저지른 끔찍한 일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너희들은 보아서는 안 된 사람들을 충분히 오랫동안 보았으면서도 내가 알고자 했던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했으니, 앞으로는 어둠 속에서 지내도록 하라!"(1265 ~ 1274)'


 반면, 오이디푸스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자신의 눈을 스스로 찌르게 된다. 이처럼 같은 근친상간이 원인이 되었음에도, 다르게 처신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을 알았는가, 아닌가의 차이일 것이다. 물론 자녀를 둔 오이디푸스와는 달리 소화는 후에 아이를 유산하게 되어 자식이라는 끈을 도중에 놓치기도 하지만. 우리가 천륜(天倫)이라고 부르는 도덕적 질서가 절대적인 것인가, 상대적인 것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2. 사회주의에 대한 상반된 시선


 작품 중 염상진은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로의 길이 우리 민족이 이루는 진정한 해방구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염상진의 생각일 뿐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공산주의자들의 투쟁 이념이었을 것이다. 이들에게 공산주의는 우리가 가야할 유일한 길이었다.


 '반도땅의 역사의 길이가 반만년(半萬年)이라고 했다. 그 장구한 세월을 무턱대고 자랑 삼으려 한다. 세월의 길이가 왜 자랑감이 될 수 있는 것인가. 그건 배부른자, 인민대중의 생혈을 빨고 살아온 자들의 타령이고 최면술인 것이다. 그 긴 세월이 진정 자알이 되려면 계급 없는 사회로 나아갔어야 한다... 끝도 없는 착취의 역사일 뿐이었는데 그 세월을 무엇으로 자랑 삼는다는 것인가. 단군이 최초에 나라를 세울 때 그 건국이념이 홍익인간(弘益人間)이었다고 한다. 그 말은 누가 만들어낸 뻔뻔스런 잠꼬대인가... 해방은 반도땅의 역사 위에서 단순한 의미일 수가 없다. 자멸한 조선 봉건 왕조 위에 새 역사를 창조해야 할 중차대한 기점이 바로 해방인 것이다... 남쪽 땅에는 민주주의라는 미명 아래 지주계급과 친일 세력이 합세하여 남쪽만의 나라를 세우고 만 것이다. 사회주의의 건설, 그것만이 최선의 길이고 유일한 길일 뿐이다.(p144)'


 반면, 공산주의를 바라보는 다른 시선 역시 <태백산맥>에서 소개되고 있다. 유물론(唯物論)을 내세우는 이념(理念)으로 '종교를 부정하는 종교'를 바라보는 스님의 소리를 통해 공산주의의 한계 역시 제시된다. 공산주의자들에게 타도의 대상이 된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공포스러울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공포가 다른 편 역시 극단으로 모는 것은 아닌지. 이들에게 공산주의자들은 '다른 지주'에 불과했다.


 '불심 없는 인간, 아니 불심 없는 남자의 집단이 얼마나 무서운 동물의 집단인가를 생생하게 목격했던 것이다. 공산주의라는 그들의 집단이 내세우는 유물사상(唯物思想)이란 애당초 불심 같은 것은 완전히 묵살하고 있었다. 오로지 물질만을 좇는 그들은 앞뒤를 분간하지 않는 살인집단이었다... 그들 집단을 혐오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인간을 위한 새 세상을 만든다는 사람들이 살인을 너무나도 쉽게 저질렀기 때문이다. 물질을 탐한 지주들이 야수만도 못하다면 그 물질을 빼앗기 위해서 살인을 서슴지 않는 그 집단도 결국은 지주들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p275)'


3. 분단의 이유


 <태백산맥>에서는 곳곳에서 김범우, 염상진, 서민영의 목소리를 통해 당대의 현실인식이 제시되고 있다. 마치 영화에서 정면 클로즈업 샷으로 관객들을 향해 말을 하듯, 독자들에게 상황설명을 하는 대목이 여러 곳에서 표현되고 있고, 이는 우리의 현대사 인식을 새롭게 한다. 


[사진] 정면 클로즈 업 샷 :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 中


 '연합국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미국은 특히 일본 문제에 있어서는 발언권이 절대적이었지요. 일본을 도맡다시피 해서 싸운 것이 바로 미국이니까요. 그래서 미국은 일본 열도를 독일식으로 나눠먹지 않고 독식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건 태평양으로 뻗치는 소련의 힘을 견제하는 동시에 태평양 전체를 장악할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그 계획에 따라 당연히 한반도 분할이 필요했고, 독일에서와는 달리 일본 쪽에 전적이 미미한 소련은 한반도의 반이나마 차지하는 데 동의한 것입니다.(p303)'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일본 대신 우리가 분단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다른 한 편으로, 우리가 아직도 '종북', '빨갱이' 등의 문제에 좌우되지 못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답답함 역시 느끼게 된다. 우리 현대사의 비극은 일제 식민지 시대 이후 모든 문제가 지금도 진행형이라는데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에게 해방은 식민지 시대의 종식이 아니라 새로운 식민지 시대의 개막이었습니다. 전 시대에는 일본을 공동의 적으로 삼는 민족적 명제나 자존이 있었습니다만, 이제는 백인들이 만들어낸 "이즘"이라는 것에 최면이 걸리고 마취되어 우리끼리 적을 삼아 살육을 자행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해방 후부터 지금까지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즘을 일단 정치도구화한 이상 상호 양보는 있을 수 없습니다. 정치적 실현을 위한 상호 상승작용만 있을 뿐입니다. 그것이 정치생리이며 힘의 역학입니다. 벌써 서로를 괴뢰라고 공공연하게 욕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유치하고 졸렬하고 파렴치한 짓들입니까. 그러나 그 뻔뻔스러움과 무모함과 이율배반이 곧 우리의 정치현실입니다. 비판이나 선택이 용납되지 않는 획일적 모순의 질서에 줄을 맞춰야 하는 것이 앞으로의 우리의 길입니다.(p304)'


'최익승은 "빨갱이"란 말을 무수히 되풀이했다. 그 말은 지칭(指稱)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호칭(呼稱)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건 말이 아니었다. 공격의 무기였다. 지칭이든 호칭이든 그 말이 되풀이될때마다 기묘한 마력으로 육박해왔다... "빨갱이"라는 말은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라는 말과는 그 색깔이나 냄새나 느낌이 판이하게 달랐다. 그건 극악한 범죄자의 대명사였고 극형의 죄목이었다. 그 말은 해방 이후 수삼 년에 걸쳐 그 어떤 말보다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렸다... 그 말이 정치적 사회적으로 선택의 자유권을 상실한 지는 오래되었지만 생존권까지 좌우하게 된 상황임을 새삼스럽게 확인해야 했다.(p20)


3. 소화(素花)와 소화(小花) : 흰 꽃과 작은 꽃


 '정 참봉은 월녀를 끌어안고 목이 메었다. 월녀는 그 품에서 비로소 쏟아지기 시작하는 눈물을 흘렸다. 정 참봉이 조끼주머니에서 꺼낸 한지에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소화 素花"였다.(p83)'


 <태백산맥>을 읽다보니 '소화'라는 여주인공의 이름에 관심이 가게 된다. '흰 꽃'이라는 뜻을 가진 '소화'라는 이름을 통해 내가 가진 종교적 배경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가톨릭 성녀(聖女) '소화 데레사'를 연상하게 된다.


 '리지외의 테레스(데레사)(Therese of Lisieux, 1873년 1월 2일 ~ 1897년 9월 30일)는 프랑스 맨발의 카르멜회 수녀로, 오늘날 널리 존경받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이다. 본명은 마리 프랑수아즈 테레스 마르탱(Marie Francoise-Therese Martin)이며, 리지외의 성 테레스(Saint Therese of Lisieux)라고도 한다. 예수의 작은 꽃, 단순히 작은 꽃(소화, 小花)이라고도 불린다. 테레스는 1873년 1월 2일 프랑스 알랑송 루 세인트 블레이즈(Rue Saint-Blaise)[1]에서 태어났다. 4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가르멜회 수녀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14세 때 가르멜회 입회를 바랐지만, 나이를 이유로 허락되지 않았다. 1889년 4월 가르멜회에 입회하여 "아기예수의 데레사"라는 이름을 받는다. 1894년 7월 28일 아버지 루이가 사망하였다. 테레스는 1897년 9월 30일, 결핵으로 24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출처 : 위키백과]


 신령님을 모시는 무녀(巫女) 소화(素花) 와 예수님을 따랐던 소화(小花)의 삶은 그들의 종교, 나라가 달랐던 것만큼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 각자의 위치에서 어려운 선택을 해야하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신의 신(神)에게 전적으로 의탁하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종교적 인간의 원형(原形)을 발견하게 된다.


[사진] 성녀 소화 데레사(출처 : http://www.carmel.kr/Theresa)


<태백산맥>에는 한국 현대사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있지만, 그것만으로 작품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를 온전히 설명하지는 못할 것이다. 당대의 세계사적인 흐름과 개인사적인 내용, 개인의 내면이 서로 잘 조화되면서 현실을 그려내고 있기에 <태백산맥>이 우리시대 고전의 반열에 오른 것은 아닐까.


ps. <태백산맥>의 향토성은 전라도 사투리에서 배어나오는데, <태백산맥>을 표준영어로 번역한다면 그 맛이 상당히 반감될 듯하다. <태백산맥>의 번역본은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지 궁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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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5 2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5 2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7 1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17-09-25 2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태백산맥에서 이렇게 여러 가지를 뻗어내시다니..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김범우, 염상진 넘 멋져..!하며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ㅋㅋ
오.. 영어라니 그 구수함을 번역하는 게 어찌 가능할까요. 그 감칠맛나는 욕설은 또.. 전혀 상상이 안 되네요;;

겨울호랑이 2017-09-25 22:03   좋아요 1 | URL
^^: 독서괭님 감사합니다. 제가 여러가지를 썼습니다만, 강원도에 있는 태백산맥을 남쪽에 있는 벌교까지 끌어내린 작가만 하겠습니까 ㅋ 대하소설이다보니 이런저런 감상거리가 떠오른 것 같습니다. 언어에 혼이 실렸다는 것을 「태백산맥」을 통해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외국어교육도 우리 정서를 외국인들에게 공감시킬 수 있는 능력향상으로 초점을 두어야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cyrus 2017-09-25 2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복남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막장 드라마의 기본 요소는 간혹 문학작품에서도 나오는군요. ^^;;

겨울호랑이 2017-09-26 06:47   좋아요 0 | URL
^^: 저도 많은 문학을 접하지 못해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도저히 의지만으로 넘을 수 없는 장벽 중 하나가 우리가 ‘인륜‘이라고 부르는 것들에 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AgalmA 2017-09-26 07: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화론을 알면 알수록 재밌는 것이 근친상간이 진화생물학적으로 돌연변이를 많이 만들어내죠. 결국 자멸로 향하는 길. 현실 속 근친상간은 윤리적 터부로 굳어졌지만 생물학적으로도 나쁜 결과란 말이죠. 프로이트는 근친상간의 금지는 사회학적 과정이었다고 봤지만서도.
현재의 국가 대 국가도 이데올로기적 대결로 볼 것만도 아닌 것이 생존을 위해 무리 생활을 하던 동물적 생활방식이 그대로 이어져 온 것이라고 봐요. 근대 사회, 도시의 탄생 등 거창하게 말해도 어쩐지 그 본질은 원시와 다르지 않습니다. 고차원적으로 보려 하지만 그건 우리의 착각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겨울호랑이 2017-09-26 08:05   좋아요 1 | URL
^^: AgalmA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생물학적으로 근친상간을 통한 종족의 번식은 나쁜 형질의 유전자가 도태되지 않고, 계승/강화되면서 부작용을 유발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생물들은 근친교배를 피하게 되고, 이는 결국 교류의 확장 또는 영역의 확장으로 이어지는 것 같네요. 이러한 부분이 인간의 집단인 국가로도 확대된다고 말씀하신 의견에 공감합니다. 아울러, 이렇게 극단적으로 확장되어 보편성=특수성인 되버린 시점, 더이상 확장될 수 없는 시점이 되면 그때부터 쇠퇴가 시작된다고도 생각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