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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스키외 & 토크빌 : 개인이 아닌 시민으로 살기>는 <법의 정신>의 저자 몽테스키외와 <미국의 민주주의> 토크빌의 사상을 다룬 기초 입문서이며, 지식인 마을 시리즈 중 일부다. 저자인 홍태영 교수가 생각하는 몽테스키외와 토크빌의 사상은 무엇일까. 바로 본문으로 들어가 보자.


1. 몽테스키외(Charles-Louis de Secondat, Baron de La Brede et de Montesquieu, 1689 ~ 1755)


 '<페르시아인의 편지>에서부터 몽테스키외는 프랑스의 군주정이 동양이나 유럽의 역사 속에서 발견되는 전제군주정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법의 정신> 후반부의 서술을 통해 몽테스키외는 봉건법 및 당시의 군주정 성격에 관한 논쟁에 참여했다... 그는 프랑스 군주제의 절제된(moderate) 특징이 중간 권력(귀족 계급)에 의한 구조적인 균형과 명예에 대한 열정에서 기인한다고 보았다.'(p92)


 '프랑스 국민을 절제된 국민으로 만들기 위해 몽테스키외는 "권력 균형과 명예의 원칙"을 제시했다. 다음으로 권력 균형과 명예의 원칙이 가능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귀족정의 요소가 보존되고 강화되기를 희망"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서히 힘을 얻고 있는 상업정신에 대한 인식을 위의 원칙들과 결합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가 바라보았던 곳이 영국이었고, 프랑스가 영국과 같은 "상업적 공화국"이 되기를 바랐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연관되어 서로가 서로를 규정하는 형태를 취하지만 가장 중요한 조건은 "귀족이라는 중간 계급의 권력"이 절대적이었다.'(p93)


2.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 1805 ~ 1859)


 '<미국의 민주주의> 1권과 <미국의 민주주의>2권을 통해 토크빌은 민주주의에 대해 지속적으로 성찰하고 있으며, 공공정신에 대한 강조 및 정치적 제도와 선택을 결정짓는 이념과 습속에 대한 강조는 두 권의 책을 관통하는 지배적인 사고라 할 수 있다.'(p137)


 '토크빌은 민주주의에 민주주의적 통치 능력을 부여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필요했던 것이 자유였고, 이는 더 나아가 "정치적 자유"로 특화된다. 정치적 자유는 고립된 개인들을 연결시킴으로써 그들에게 공동체 의식을 부과한다. "평등이 만들어낸 악덕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한 가지 치유책밖에 없다. 그것은 정치적 자유다.".'(p154)


 '프랑스는 비록 혁명을 통해 절대왕정을 무너뜨렸지만, 동시에 중앙집권화라는 거대한 권력에 의존함으로써 민주주의적 평등화가 만들어내는 전제주의로 귀결된 것이다. 이에 비해 미국은 연방정부와 주정부, 코뮌으로 구성된 지방분권적 정치 구조를 통해 권력이 중앙으로 집중되는 현상을 막고 있다. 특히 자유로운 인민의 힘이 위치하는 곳은 바로 가장 기초적인 단위인 코뮌이다.'(p157)


저자가 추천하는 몽테스키외와 토크빌 관련 추천 도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책의 출판년도가 2006년이기에 절판된 책도 있고, 재출간책도 있기에 출판사는 다소 차이가 있기도 합니다. 


PS. 지식인 마을 시리즈를 읽고 여러 리뷰를 작성했습니다만, 입문서 리뷰를 쓰는 것이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다른 방식으로 정리해보던 중 섣부르게 요약하는 것보다 저자가 정리한 내용 소개와 추천 도서를 함께 정리하는 편이 보다 적절한 방식이라 생각되어 이와 같이 정리해 봅니다. 사회 계약론과 민주주의에 관심있는 이웃분들은 아래의책들로 즐거운 독서를 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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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7-07-29 09: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어제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의 번외편(?) 그동안 티비에 미방영됐던 부분을 보는데,
그들이 더 좋아졌어요.
윤이상, 젠트리피케이션, 냉동인간 얘기 등을 하는데,
지극히 개인적인 발언인듯 하면서도 정치적인 접근을 놓치지 않더군요.
정말로 좋아서 즐기는 수다로 날밤 새는 게 보였달까요.

위에 언급하신 책들은 하나도 읽은게 없지만,
어제 봤던 저 프로그램이 생각나서 몇 자 적어봅니다~^^

겨울호랑이 2017-07-29 09:51   좋아요 0 | URL
저는 ‘알.쓸.신.잡‘을 본 적 없지만, 여러 이웃분들께서 많이 소개해 주셔서 간접적으로 인기를 느꼈습니다. 번외편을 했다고 하니 이제 프로그램이 종영된 것 같군요. 양철나무꾼님께서 많이 아쉬우셨듯 합니다. 저도 책 소개를 일단 했지만, 저 역시 다 읽지는 못해서... ㅜㅜ 일단 목록을 만들어 놓고 차차 이웃분들과 함께 성장하는데 뜻을 두려고 합니다.^^:
 

 

살다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마음에 드는 일만큼이나 많이 생긴다. 특히 내 마음에 상처를 줄 정도로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감정을 느낀다. 화 anger다. 그럴때 되도록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하는 편인데, 오늘따라 '화'를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화에 대하여>와 관련 책들을 를 펼쳐들고 화에 대해 정리해 보고 싶다. 오늘 페이퍼는 <화에 대하여>를 중심으로 다른 현인 賢人들의 '화'에 대한 단상 短想 들이다.


 <화에 대하여 on anger>는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 BC 4 ~ AD 65)가 저술한 '화'에 대한 책이다. 세네카는 이 책에서 먼저 화에 대해서 정의를 내린다. 세네카에게 있어 화는 '이성 理性'의 적이다. 그리고, 플루타르코스(Ploutarchos, AD 50? ~ 120?) 에 따르면 화는 '고통'과 '쾌락'과 '오만'의 씨앗이다.


 '화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는 우리 스토아 철학파와 별반 다르지 않다. 화는 "고통을 고통으로 갚아주고자 하는 강한 욕망"이라고 그는 말한다... 화는 이성의 적이지만, 오직 이성이 존재하는 곳에서만 생겨난다.'(p35) 

'제논은 씨앗이 혼의 모든 능력에서 추출한 혼합물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분노는 모든 감정에서 추출한 씨앗의 혼합물인 것 같네. 분노는 고통과 쾌락과 오만에서 추출되었기 때문일세.'(p93) <분노의 억제에 관하여> 플루타르코스 中 


 다른 한편으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 ~ 322)는 '온유'를 '성마름'과  '성깔 없음'의 중용이라고 파악하고, 어느 정도의 분노는 우리 삶에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적당한 화는 우리 삶에서 필요한 것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세네카에 의해 논파된다.

 

  '온유함은 분노 憤怒 와 관련된 중용 中庸 이다... 분노가 지나침은 성마름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 원인은 많고 다양하지만 여기서 느끼는 감정은 분노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화낼 일로, 당연히 화내야 할 사람들에게, 적당한 방법으로, 적당한 만큼, 적당할 때에, 적당한 기간 동안 분노하는 사람은 칭찬받는다. 그런 사람은 온유한 사람일 것이다.'(p161) <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 中

 

아리스토텔레스는 분노를 적당하게 표현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세네카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결코 화를 내는 것이 유리하지 않음을 주장하면서 신중하게 살피고 자제심을 발휘할 것을 요청한다. 세네카에게 진중함은 선 善인 반면, 화는 악 惡이다.


'우리는 전투와 전쟁에서조차 화가 유리한 수단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화는  조급함을 부르고, 적을 위험에 빠뜨리고자 하는 욕망은 경솔함을 불러들여 오히려 우리 자신을 위험에 빠뜨린다. 가장 믿을 만한 지혜는 상황을 오랫동안 신중하게 살피고, 끝까지 자제심을 발휘하고, 정해진 목표를 향해 천천히 나아가는 것이다.'(p54)


 <화에 대하여>에서 세네카는 화를 내는 대상에 따라 화의 종류를 구분하고 있다. 먼저,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낮은 위치에 놓은 이들(부하 직원, 어린 자녀 등)의 잘못에 대하여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에 대한 세네카의 조언은  '꾸짖되, 화내지 말라' 는 말로 요약된다.


  '잘못을 저지른 자는 훈계를 통해서든 강제력을 동원해서든 부드럽게 때로는 엄격하게 그 행동을 교정해주어야 한다. 남들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그 자신을 위해서도 우리는 그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꾸짖되 화를 내서는 안 된다. 치유의 대상인 환자에게 화를 내는 의사가 어디 있는가?'(p60)


 '우리는 자신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대상에게 화를 내지만, 심지어 그런 능력이 없는 대상에게도 화를 낸다.(p127)... 아이들에게 혹은 분별력에서 아이보다 나을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 것도 바보 같은 짓이다. 공정한 심판관의 눈으로 보면, 그런 사람들이 저지르는 잘못은 무지함에서 나오는 것이며, 따라서 무죄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p128)


 어린아이들에 대한 체벌 문제에 대해 몽테뉴(Michel Eyquem de Montaigne, 1533 ~ 1592) 역시 세네카와 같은 시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어째서 부친들과 교사들이 분노해 어린아이들을 때리고 벌 주는 것이 허용된단 말인가? 그것은 이미 징계가 아니다. 그것은 보복이다. 징계는 어린아이에게는 약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의사가 그의 환자에게 흥분해서 화를 낸다면, 그대로 참고 볼 일인가? 우리 자신도 올바르게 처신하려면, 분노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동안 결코 하인들에게 손을 대서는 안 될 일이다.'(p785) <몽테뉴 수상록> 몽테뉴 中


  또한 자연 재해 등 어쩔 수 없는 재난에 대해 우리는 애써 의미를 부여하거나 화를 낼 것이 아니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이런 불가항력적인 것에 대해 우리는 화를 낼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바다의 야만성에 대해, 가혹한 홍수에 대해, 좀처럼 물러가지 않는 동장군에 대해 신들을 탓하며 화를 내는 것은 미치거나 진리를 알지 못하는 자들의 행동이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에게 해를 입히기도 하고 혜택을 주기도 하는 이런 자연 현상들은 특별히 우리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은 자신의 법칙대로 움직일 뿐이며, 그것을 통해서 신의 의지가 실행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런 엄청난 일들을 불러일으킬 만큼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이 모든 현상들은 우리에게 해를 끼치기 위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이런 일들은 우리의 행복에 이바지한다.'(p129)


  이처럼 우리는 여하한 상황에서도 화를 내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가 나는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지금 당장 화가 났을 때 우리는 화에 대한 반응을 최대한 늦추거나,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을 통해 보다 신중하게 문제에 대처할 수 있다.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직접 확인하면서, 화의 폐해를 직접 깨닫는 것은 우리에게 큰 깨달음을 줄 것이다. 


  '화에 대한 최고의 대책은 그것을 늦추는 것이다. 처음부터 용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심사숙고하기 위해 화의 유예를 요구하라. 화가 처음에 맹렬한 기세로 습격할 때는 타격이 크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뒤로 물러선다. 한꺼번에 화의 뿌리를 뽑으려고 애쓰지 마라. 하나씩 하나씩 조금씩 뽑아서 버리면 언젠가는 화를 전부 없앨 수 있을 것이다.'(p134)


 '섹스티우스가 말했듯이, 어떤 사람들은 화가 날 때 화난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보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을 받았다. 그들은 자신의 모습이 그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다는 데에 충격을 받았다... 화보다 빨리 우리를 광기로 이끄는 길은 없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화의 발작을 수습하지 못하고 한 번 놓아버린 정신을 다시는 되찾지 못하기도 한다. 광란이 아이아스를 자살로 내몰았고 화가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p153)


 [그림] 오딧세우스(왼편)과 절망하는 아이아스(오른편) (출처 : 중앙시사매거진)


 그리고, 매일 자신의 성찰 省察하면서 자신의 감각을 강하게 단련시킬 것을 권고한다. 분노의 원인에 대해서 플루타르코스 역시 세네카와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다. 플루타르코스와 몽테뉴는 자신의 조절을 통해 화를 억제할 것을 제안한다. 

마치 은나라를 세운 탕왕 湯王이 세숫대야에 '구일신일일신우일신(苟日新日日新又日新)' 아홉 글자를 새겨 세수할 때마다 스스로를 반성하고 새롭게 변화하려는 다짐을 늘 일깨웠던 것처럼 매일 새롭게 변화하려는 노력은 보다 우리를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심각한 표정으로 수행하고 있는 일들 중에 심각하거나 중요한 일은 하나도 없다. 이는 화가 광기의 한 형태이며, 네가 하찮은 일에 대단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네가탐하는 것이 하찮은 것이기에, 남에게서 빼앗지 못하면 가질 수 없는 것이기에 네가 추구하는 것으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 내분과 증오가 일어난다.(p233)... 네 감각 또한 강해져야 한다. 마음이 감각을 타락시키는 일을 그만두기만 하면 감각이란 원래 참을성이 있고 무던하다. 그러므로 너는 매일 마음을 점검하고 다스려야 한다.'(p235)


 '마치 살이 심하게 가격당하면 부어오르듯, 허약한 혼일수록 남에게 고통주기를 좋아한다네. 그래서 그들은 혼이 허약한 만큼 더 심한 분노를 느끼게 되는 것이지... 이렇듯 분노는 무엇보다도 허약함 탓에 혼의 괴로움과 고통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네.'(p75) <분노의 억제에 관하여> 플루타르코스 中


 '분노를 조절하려면 잔혹하게 자기를 억제해야만 한다. 나로서는 격정치고, 그것을 덮어가며 버티어 나가는 데 이렇게 힘든 것을 알지 못한다.(p789)... 분노라는 무기가 우리를 잡고 있는 것이지, 우리가 이 무기를 잡고 있는 것은 아니다.'(p792)  <몽테뉴 수상록> 몽테뉴 中


 '그러니까 친구여, 분노의 폭정에서 벗어나는 최상의 방법은, 분노가 우리더러 고함을 지르고 노려보고 가슴을 치라고 명령을 하더라도, 말을 듣지 않거나 복종하지 않는 것이라네. 오히려 우리는 평정을 유지하고 마치 정염이 질병인 양 격렬한 동작과 고함 소리로 정염을 악화시켜서는 안 되네.'(p68) <분노의 억제에 관하여> 플루타르코스 中


 <화에 대하여>, <분노의 억제에 관하여>, <수상록>에서 저자들은 화에 대해서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수천 년의 세월을 사이에 두고 현인들의 화에 대한 관점이 공통점이 있다는 것은 반대로, 화에 대한 이들의 말이 진리라는 반증이라 생각된다. 


  요즘은 우리 주변에서 너무 화를 가슴에 쌓아두면 병이 된다고 하면서 이를 밖으로 표출시키라는 말이 참으라는 말보다 많이 들린다. 홧병이 생길수 있기에, 이 역시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화를 밖으로 버리고 나면 내 마음은 평화로울 수 있을까? 내 마음이 화가 생기기 쉬운 상태라면 결국 나는 자주 화를 내서 평안을 얻을 수 밖에 없으리라. 그리고, 화를 내는 주기는 조금씩 더 짧아지고, 나중에는 내 자신이 화 그자체가 될 것이다.  그전에 자신을 스스로 단련해가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옛 현인들은 말하는 것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분노 대신 선인 善人들은 무엇을 선택하는가에 대한 세네카의 조언을 마지막으로 '화'에 대한 이번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반론 : "선한 사람은 자기 아버지나 아들이 칼에 찔리는 것을 보고도 울거나 실신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선한 사람은 흔들리거나 주저함 없이 자신의 의무를 수행할 것이며 선한 사람으로서 합당히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다. 만일 나의 아버지가 죽임을 당하는 순간이라면, 나는 그를 지킬 것이다.'(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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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구석시골총각 2017-06-16 22:1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같은 저자의 화 다스리기란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요. 당시 원했던 부분보다는 학문이라는 느낌이 강해서 실망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 책은 어떨지 또 궁금해집니다^^:

겨울호랑이 2017-06-16 22:26   좋아요 2 | URL
그렇군요^^: 저는 촌구석시골총각님과 반대로 「화 다스리기」를 읽지 못했네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읽어봐야겠네요^^: 촌구석시골총각님 감사합니다.

oren 2017-06-17 00: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분노‘만큼 흥미로운 격정도 드문 것 같아요. 겨울호랑이 님께서도 소개해 주셨듯이, 아리스토텔레스, 세네카, 플루타르코스, 몽테뉴 등 숱한 철학자들이 이 주제로 수많은 이야기들을 쏟아 놓았고, 나중에 애덤 스미스도 <도덕감정론>을 통해 ‘분노의 감정 연구‘에 한몫 단단히 거들었던 듯합니다.

철학과는 별도로 이름난 문학작품에서 자주 다뤘던 주제 또한 ‘분노‘였던 건 어찌보면 너무 당연한 듯싶은데, 따져 보니 희랍 고전들 가운데서도 ‘분노‘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 정말 많네요. 소포클레스의 <아이아스>, <엘렉트라>,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 <휩폴리토스>, <엘렉트라>, <오레스테스> 등이 모두 분노와 복수를 다루고 있고, 셰익스피어의 <햄릿>이나 <코리올라누스>도 마찬가지고요.(<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등장하는 50명의 인물 가운데 ‘분노‘로 가장 명성을 떨친 인물이 아마도 코리올라누스가 아닐까 싶은데, 셰익스피어도 ‘그의 분노‘에 깊은 감명(?)을 받은 끝에 기어이 자신의 ‘마지막 사극 작품‘으로 연극무대에 올렸더군요.) 2,800년 전에 쓰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도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핵심 주제였으니 달리 무슨 긴 말이 더 필요할까 싶기도 합니다. 저도 한때 ‘분노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글을 끄적거리다 (머리에 떠오르는 작품들이 너무나 많아서) 그만 둔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겨울호랑이 님의 글 덕분에 그 흥미로운 주제를 다시금 떠올리게 되어 새삼 반갑네요. 제게 낯익은 책들도 반갑고요^^

겨울호랑이 2017-06-17 07:23   좋아요 2 | URL
^^: 분노를 다룬 작품이 정말 많군요. 특히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은 평소에도 관심있었는데 oren님께서 말씀하시니 더욱 관심이 갑니다... 분노라는 소재는 특히 고대 그리스에서 주목받던 소재였던 것 같습니다. 아직 oren님께서 언급하신 작품 다수를 읽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읽어야겠습니다. 항상 좋은 책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oren님 행복한 주말 되세요^^:

서니데이 2017-06-17 0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를 참는 것도 좋지 않지만 화를 내는 것도 좋지 않다는, 전에 읽었던 내용이 생각났어요. 어느 쪽도 쉽진 않지만 화를 많이 내면서 사는 것도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잘 쓰지 못하는 것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밤이 되어도 덥네요.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님 좋은밤되세요.^^

겨울호랑이 2017-06-17 07:25   좋아요 2 | URL
어느 정도는 여유있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자신을 성장시키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 길이 쉽지 않은 것이 문제이겠지만요.ㅜㅜ 서니데이님 더운 날 오늘도 건강하게 보내세요^^:

2017-06-17 0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17 0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6-17 08: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를 분출하여 해소할 수 있는 취미가 있어야 합니다. 개인이 즐길 수 있는 취미가 없으면 세상 사는 재미가 느껴지지 않아요.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고, 여러가지 불만이 생길 겁니다. 그래서 안 좋은 방향으로 화를 표출하는 일이 생겨요.

겨울호랑이 2017-06-17 08:41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 그래서 ‘놀이하는 인간‘ 이 되어야할 것 같네요. cyrus님께서 요즘 작성하고 계신 ‘셜록 홈즈‘ 페이퍼도 진중한 놀이라 생각됩니다.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 ~ 1716)는 데카르트(Rene Descarte, 1596 ~ 1650),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 ~ 1677)와 더불어 대륙의 합리론( rationalism, 合理論)을 대표하는 철학자들이다. 이들의 철학은 실체(substance 實體)에 대한 인식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데 이들의 차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라이프니츠의 철학은 데카르트나 스피노자와 마찬가지로 실체 개념에 근거하지만, 정신과 물질의 관계나 실체의 수에 관해서는 그들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데카르트는 세 종류 실체, 즉 신과 정신과 물질을 인정했고, 스피노자는 신만을 실체로 승인했다. 데카르트 철학에서 연장 延長, extention이 물질의 본질인데 반해, 스피노자의 철학에서는 연장(extension 延長)과 사유(thought 思惟)가 둘 다 신의 속성이다. 라이프니츠에 따르면 연장은 실체의 속성이 되지 못한다.... 결국 그는 "단자(單子 monad)'라는 무한 수의 실체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p750)


그 중에서도  라이프니츠의 '단자론(單子論) : 모나드 Monadologie'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자. <철학사전>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단자)에 관한 형이상학설을 지칭한다. 그는 모나드(monad)란 넓이를 갖고 있지도 않고 모양도 없으며 분할할 수도  없는 단순한 실체라 보았다. 모나드는 힘, 작용(作用)을 실체화한 것으로 이것이 무수하게 모여 세계를 이루고 있다. 모나드의 작용은 표현(representation)이다. 이것은 표상 작용이지만, 여기에는 명암이 있으며, 무의식적인 어두운 표현을 갖는 것은 물질적인 모나드 즉 '벌거벗은 모나드', '잠자는 모나드'라 불리며, 영혼이나 이성적인 정신의 모나드는 밝은 표현 작용을 갖는 것이다. 모나드의 명암의 이행은 연속적이며 비약이 없고, 물질과 정신은 단지 정도의 차이라고 생각된다. 최고의 모나드는 신(神)이며 모나드는 신의 뜻에 의해서만 창조되고 또한 소멸된다. '


[사진]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출처:http://egloos.zum.com/eggry/v/4102702] (별다른 이유는 없지만, 모나드에서 '포스 (force)'가 느껴졌다.)



모나드는 창(窓)을 갖고 있지 않다.


'모나드는 각각 내적 법칙에 따라 자기발전하는 것으로 서로는 어떠한 작용도 미치지 않는다. 그는 이것을 '모나드는 창을 갖고 있지 않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모나드는 독자적인 방식으로 세계를 표현하는 '우주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따라서 모나드 간에는 서로 대응 관계가 있으며 연락과 조화가 있다.'


예정조화(harmonie preetablie)


'이러한 것들은 신이 미리 정한 것이며, 이러한 그의 '예정조화(豫定調和, pre-established harmony)' 사상에 의해서 기계론과 목적론의 대립이 극복되었으며 또한 심신(心身)의 대응관계가 설명되고 있다. 그의 비유에 따르면 이 대응관계는 뛰어난 기술자가 만든 두 개의 시계가 시각이 언제나 일치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을 통해서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세계는 작은 단자로 구성되어있다는 내용을 통해 고대 그리스 철학의 원자론(原子論)과 주기율표, 생명공학의 DNA와 연계성 등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예정조화를 통해 기독교의 예정설(豫定說 doctrine of predestination ; 세계와 인간에 관한 일은 모두 전능한 신에 의해 미리 정해져 있고, 인간의 구원도 신의 계획 속에 예정되어 있다는 기독교의 가르침. 칼뱅주의 교의에서 특히 중시)등과 차이점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그중에서도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데모크리토스(Demokritos, BC 460 ~ 370)와 루크레티우스(Titus Lucretius Carus, BC 99 ~ 55)의 원자론에 대해서 살펴보자.


'데모크리토스는 장소(ho topos)를 허공, 아무것도 아닌 것(to ouden), 한정되지 않은 것(to apeiron)이라는 이름들로 부르는 한편, 실체(ousia)들 각각을 어떤 것(to den), 꽉찬 것(to naston), 있는 것이라고 부른다.' -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 ~ 322) <천체에 관하여> 주석 295.1 -  (p546)


'이들(레우키포스, 데모크리토스, 에피쿠로스)은 근원(archai)은 그 수가 무한하다고 말했으며, 그것들은 꽉 차 있고 허공(kenon)을 갖지도 않기 때문에 자를 수도 없고(atomoi) 분할할 수도 없으며(adiairetoi) 영향을 받지도 않는다고(apatheis) 생각했다. 왜냐하면 분할은 물체들 속에 있는 허공 때문에 일어난다고 그들은 말했기 때문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천체에 관하여> 주석 242.18 - (p547)


'데모크리토스가 온갖 형태(원자)로 이루어진 회오리가 전체로부터 떨어져나왔다.(apokrithenail)고 말할 때 (그러나 어떻게, 그리고 어떤 까닭으로 그러한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는 저절로 (t'automaton)와 우연(偶然 tyche)으로부터 그것을 산출해 내는 것 같다.' - 아리스토텔레스 <자연학> 주석 327.24-25 -  (p559)


'여기에 다음 것이 덧붙여진다. 즉 자연은 각각의 것들을 다시금 그 자신의 알갱이로 해체한다는 것, 사물들을 결코 무(無)가 되도록 파괴하지 않는다는 것이.'(제1권 215)


'그렇지만 모든 것이 물체적 본성으로 모든 방면에서 에워싸여 잡혀 있는 것이 아니다. 사물들 안에는 빈곳(inane)이 있기 때문이다.'(제1권 330)


'사물들에는 자연의 법에 의해 각 종류의 것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또 무엇을 할 수 없는지 신성하게 정해져 있으므로, 그것은 결코 변할 수 없고, 모든 것이 다음과 같이 정해져 있다... 그들은 당연히, 바꿀수 없는 질료로 된 몸 또한 가져야만 한다.'(제1권 584 ~ 592)


'이에 덧붙여, 최소의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각각의 가장 작은 몸체들은 무한한 부분들로 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물들의 총합과 최소의 것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전혀 차이날 게 없으리라.'(제1권 615 ~ 620)


라이프니츠의 모나드에 대한 배경지식을 가지고 그의 사상에 대해 차례로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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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1 08: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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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1 09: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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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카 Ethica>의 원제는 스피노자(Benedictus de Spinoza, 1632 ~ 1677) 가 1675년에 저술한 책으로 원제는 <기하학적 순서로 증명된 윤리학, Ethica, ordine geometrico demonstrata> 이다.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기하학(幾何學)적 구조를 가지고 있어 유클리드(Euclid, BC 325 ~ BC 265),의 <원론 Elements>을 연상케 한다.


 

 


 











책세상에서 출판된 <에티카>는 서문과 부록을 부분 번역한 입문서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리뷰]에서는 강영계 교수가 번역한 <에티카>를 통해 전체적인 내용을 정리하고자 한다. [리뷰] 전 이번 [페이퍼]에서는 용어 해설과 구조에 대한 파악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살펴보자.


스피노자의 <에티카>는 수학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마치 수학식에서 개개의 변수(變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처럼 <에티카>에서는 그가 사용한 용어(用語)의 의미를가 중요하다. 특히, 그가 사용한 용어 중 일부는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 ~ 1650)와 같은 용어, 다른 의미를 가지기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데카르트의 '神'과 스피노자의 '神'은 다른 의미를 가진다.)


1. 용어 해설(출처 : 책세상)


가. 관념 idea : 정신의 작용에 의한 개념 형성

나. 변용 affectio : 실체에 의존하는 존재. 특히, 개별자와 빈번하게 동의어로 사용

다. 본질 essentia 혹은 본성 natura : 어떤 존재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핵심적인 요소

라. 선(좋음) bonum : 우리에게 유용하다고 확실히 우리가 아는 것

마. 악(나쁨) malum : 어떤 선을 우리가 소유하지 못하게 방해한다고 확실히 우리가 아는 것

바. 속성 attributum : 실체를 실질적으로 이루고 있고 또한 실체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요소로서 사유와 연장 등이 대표적인 실체의 속성임

사. 실체 substantia  : 다른 어떤 것에 의존하지 않는 자립적 존재

아. 양태 modus : 실체에 의존하는 모든 존재

자. 욕망 cupiditas : 각각의 사물이 갖고 있는 자기 보존의 힘을 심리학적으로 달리 표현한 것

차. 욕구 appetitus : 인간의 신체와 정신 모두에 관계하는 욕망(자기 보존의 힘)


2. <에티카>의 구조(構造)


<에티카>에서는 기하학적 구조에 따라 '신(神)', '정신의 본성과 기원', '정서의 기원과 본성', '인간의 예속 또는 정서의 힘', '지성의 능력 또는 인간의 자유' 등 5가지 내용에 대해 스피노자의 주장을 증명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그 중에서  '제1부 신에 대하여' 중 [신 존재 증명 정리]에 해당하는 내용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정리 1. 실체(substantia)는 본성상 자신의 변용(變容 affectio)에 앞선다.

정리 3. 서로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사물들은 그것들 중 하나가 다른 것의 원인이 될 수 없다.

정리 5. 사물의 본성 안에는 동일한 본성이나 속성을 가지는 둘 또는 다수의 실체가 존재할 수 없다.

정리 7. 실체의 본성에는 존재가 속한다.

정리 8. 모든 실체는 필연적으로 무한하다.

정리10. 실체의 각 속성은 그 자체를 통해 파악하지 않으면 안된다.

정리 11. 신(神) 또는 각각 영원하고도 무한한 본질을 표현하는 무한한 속성으로 이루어진 실체는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한편, <신의 베틀>에서 소개한 괴델의 신 존재증명 방식은 다음과 같다.


공리1. (이분법) 속성은 그 부정이 부정적일 경우에만 긍정이다.

공리2. (닫힘) 속성은 긍정적인 속성을 가진 경우에만 긍정이다.

정리1. 긍정적 속성은 논리적으로 일관된다. (다시 말해 실례를 가질 수도 있다.)

정의. 모든 긍정적인 속성을 가지는 것만이 신적이다.

공리3. 신적이라는 것은 긍정적인 속성이다.

공리4. 긍정적인 속성이 되는 것은 (논리적으로) 필요하다.

정의. x가 P를 최소한으로 가지고 있을 경우에만 속성P는 x의 핵심이 된다.

정리2. x가 P를 최소한으로 가지고 있을 경우에만 속성 P는 x의 핵심이 된다.

정의. NE(x) : 핵심 속성을 가지고 있다면 x는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공리5.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은 신적이다.

정리3. 신적인 x는 반드시 몇몇 개가 존재한다. (p382)


<신의 베틀>를 읽었을 때는 미처 알지 못했으나, 지금 두 증명을 나란히 놓고 보니 괴델의 증명이 <에티카>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런 점을 고려했을 때 <에티카>는 '인문학 원론(人文學 原論)' 이라 생각된다.


3. 아리스토텔레스 4원인론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사물 생성의 조건이라는 의미에서의 원인으로 1)질료(質料, hyle, matter : 생성의 수동적인 가능성) 2) 형상(形相, eidos, form : 생성의 수동적인 가능성) 3) 운동의 시원(始原), 4) 목적 등 네 가지를 들었다.이렇게 일체의 존재는 질료와 형상의 결합이며, 가능성(질료)이 현실성(형상)으로 전화, 발전하는 것으로 보았다. 질료에는 수동성을, 형상에는 활동성을 부여함으로써 운동의 시원과 목적을 형상에 귀착시켰다. 여기에서 운동의 시원으로서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으면서 다른 것을 움직이는 것, 즉 '움직이지 않는 최총의 움직이는 것'으로 신(神)을 내세운다. [출처 : <철학사전> 중원문화, 2009]


4. 데카르트의 실체관 : 물심이원론(物心二元論)


데카르트는 신의 관념에서 실체에 관한 사상을 전개시켰다. 그는 중세에 성립한 신, 인간, 세계라는 개념을 신, 정신, 물체라는 개념으로 바꾸어 이것들을 실체(實體, substantia)라고 부른다. 실체란 그것이 존재하기 위해서 자기 이외에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정신(mens)'와 '물체(corpus)'는 '유한 실체'이고, '신'은 '무한 실체'이다. 정신과 물체는 넓은 의미의 실체일 뿐이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신은 정신과 물체라는 두 실체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매개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의 사상은 정신과 물체에 집중하고 있다. 정신의 속성(attributa)은 '사유(cogitato)' 이고, 물체의 속성은 '연장(extensio)'이다. 이 사유와 연장(延長)은 서로 아무런 상관 관계도 없기 때문에 서로 어떠한 공통점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인간에 있어서는 정신과 육체가 뇌 속의 '송과선(松果腺, glans pinealis)'에서 서로 접촉한다는 철학적으로 석연치 않은 주장을 하고 있다.(상호 작용설) [출처 : <철학사전> 중원문화, 2009]



[그림] 송과선[출처 : http://www.aistudy.com/physiology/nature_edelman.htm]


5, <에티카>의 정의 (출처 : 서광사 版)


 가. 제1부 신에 대하여 [정의]


1) 나는 자기 원인이란 그것의 본질이 존재를 포함하는 것, 또는 그것의 본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2) 같은 본성을 가진 다른 것에 의하여 한정될 수 있는 사물은 자신의 유(類) 안에서 (in suo genere) 유한하다고 일컬어진다.

3) 나는 실체란 자신 안에 있으며 자신에 의하여 생각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4) 나는 속성이란 지성이 실체에 관하여 실체의 본질을 구성하고 있다고 지각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5) 나는 양태(樣態)를 실체의 변용(變容 affectio)으로, 또는 다른 것 안에 있으면서 다른 것에 의하여 생각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6) 나는 신을 절대적으로 무한한 존재, 즉 모든 것이 각각 영원하고 무한한 본질을 표현하는 무한한 속성으로 이루어진 실체로 이해한다.

7) 오직 자신의 본성의 필연성에 의해서만 존재하며, 자기 자신에 따라서만 행동하게끔 결정되는 것은 자유롭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것에 의하여 특정하게 규정된 방식으로 존재하고 작용하도록 결정되는 것은 필연적이라거나 강제되었다고 한다.

8) 나는 존재가 영원한 것에 대한 단순한 정의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한, 영원성을 통하여 존재 자체를 이해한다.


나. 제2부 정신의 본성과 기원에 대하여 [정의]


1) 내가 이해하는 물체는 신이 연장된 사물로 고찰되는 한에서 신의 본질을 어떤 일정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양태이다.

2) 그것이 주어지면 사물이 필연적으로 정립되고 그것이 제거되면 사물이 필연적으로 없어지는 것, 또는 그것이 없으면 사물이 그리고 반대로 사물이 없으면 그것이 있을 수도 생각될 수도 없는 그러한 것을 나는 어떤 사물의 본질이라고 한다.

3) 정신은 사유하는 것이므로, 정신이 형성하는 정신의 개념을 나는 관념으로 이해한다.

4) 내가 이해하는 타당한 과념이란, 그 자체로서 대상과의 관계를 떠나서 고찰되는 한에서 참다운 관념의 모든 성질이나 내적 특징을 소유하는 관념이다.

5) 지속은 존재의 무규정적인 연속이다.

6) 나는 실재성과 완전성을 동일한 것으로 이해한다.

7) 내가 이해하는 개물은 유한하며 제한된 존재를 갖는다. 


다. 제3부 정서의 기원과 본성에 대하여 [정의]


1) 어떤 원인의 결과가 그 원인에 의하여 명석 판명하게 지각될 수 있을 때 나는 이 원인을 타당한 원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어떤 원인의 결과가 그 원인 자체에 의하여 이해될 수 없을 때 나는 그 원인을 타당하지 않은 또는 부분적인 원인이라고 한다.

2) 타당한 원인으로 되어 있는 어떤 것이 우리의 내부나 외부에 생길 때, 곧 (앞의 정의에 의하여) 우리의 본성만에 의하여 명석 판명하게 이해될 수 있는 어떤 것이 우리들의 본성에서 우리의 내부나 외부에 생길 때, 나는 우리가 작용한다고 말한다. 이와 반대로 우리가 단지 부분적 원인에 불과한 어떤 것이 우리의 내부에 생기거나 우리의 본성에서 생길 때, 나는 우리들이 작용을 받는다고 말한다.

3) 나는 정서를 신체의 활동 능력을 증대시키거나 감소시키고, 촉진하거나 저해하는 신체의 변용인 동시에 그러한 변용의 관념으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그러한 변용의 어떤 타당한 원인이 될 수 있다면,  그 경우 나는 정서를 능동으로 이해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수동으로 이해한다.


라. 제4부 인간의 예속 또는 정서의 힘에 대하여 [정의]


1) 우리들에게 유익하다고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을 나는 선(bonum)으로 이해한다.

2) 반대로 우리들이 선한 어떤 것을 소유하는 데 방해되는 사실을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을 나는 악(malum)으로 이해한다.

3) 우리가 오직 개물의 본질에만 주의할 경우, 개물의 존재를 필연적으로 정립하거나 필연적으로 배제하는 어떤 것도 발견하지 않는 한 나는 개물을 우연적이라고 한다.

4) 개물(個物)을 반드시 새기게 하는 원인에 우리가 주의할 경우, 그 원인이 개물을 산출하도록 결정되어 있는지의 여부를 우리들이 알지 못하는 한 나는 그 개물을 가능적이라고 한다.

5) 나는 인간을 서로 다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을 반대되는 정서로 이해한다.

6) 우리들은 공간적 거리를 시간적 거리와 마찬가지로 특정한 한계까지만 명백하게 표상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이 존재하는 시간이 우리가 보통 명백하게 표상하는 간격보다 한층 더 긴 간격으로 현재에서 떨어져 있다고 표상되는 모든 대상을 우리는 현재에서 동일한 거리만큼 떨어져 있는 것처럼 표상하며, 이것을 하나의 시점으로 귀착시킨다.

7) 우리들로 하여금 어떤 것을 하게끔 하는 목적을 나는 충동으로 이해한다.

8) 덕과 능력을 나는 동일한 것으로 이해한다.


6. 영원의 상(相) 아래서 (sub specie aeternitatis)


스피노자는 합리주의적 입장에서 감각에 의한 인식에 대해 이성에 의한 인식을 수립하였고, 이것을 감각에 의한 인식보다 우위에 두었으며, 이성이 논리적인 필연성을 통해 얻은 인식을 '영원의 상 아래에서' 파악하였는데, 이것은 세계의 진실을 포착한 초(超_)시간적인 인식이다.

[출처 : <철학사전> 중원문화, 2009]


위와 같은 전체 그림을 가지고 <에티카>를 [리뷰]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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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3 16: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23 17: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03-23 19: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티카>에 별 다섯 개 주신 사유가 막 궁금해 집니다. 기대하고 있습니다, 리뷰...^^

겨울호랑이 2017-03-23 19:54   좋아요 1 | URL
^^: 부족하나마 곧 마무리한 후 올리겠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03-23 19:59   좋아요 2 | URL
리뷰와 페이퍼 쓰임을 나누시고 리뷰 에 기대감 상승 시키고 계십니다. 전 넘 좋고 기대감 만빵입니다. ^ ^
전 여전히 리뷰와 페이퍼에 아직도 정체성을 잘 부여하지 못 하고 있습니다. ㅠㅠ

겨울호랑이 2017-03-23 20:04   좋아요 2 | URL
북다이제스터님께서 기대해 주시니 감사하면서도 긴장되네요^^: 숙제 검사 받기 전 학생 심정입니다 ㅋㅋ

북다이제스터 2017-03-23 20:07   좋아요 2 | URL
부담 드리려고 한 건 아니구요.
저도 근래 난생처음 <에티카> 해제 읽어서 제가 느낀게 맞는지 확인하고 싶은 기대감 때문에요. ^^

겨울호랑이 2017-03-23 20:10   좋아요 1 | URL
네^^: 북다이제스터님. 저도 농담입니다. 이렇게 서로 생각을 나누면 다같이 발전하겠지요^^: 저도 즐겁습니다!

나와같다면 2017-03-23 19: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학교 첫 레포트가 <에티카> 였는데..
그때는 이해하지도 못하고 썼었던것 같아요..

오늘은 삼년만에 올라온 세월호의 참혹한 모습 때문인지 맘이 안 좋네요..

겨울호랑이 2017-03-23 19:56   좋아요 1 | URL
저도 세월호를 보니 슬픔과 분노가 다시 올라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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