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 25장에서 마키아벨리는 "운이 인간사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묻는다.... 마키아벨리는 우리의 자유가 완전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데, 운은 대단히 강력한데다가 "우리 행동의 절반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우리의 숙명이 전적으로 운의 손아귀에 안에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인간의 자유를 없애버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신의 우리의 자유와 우리에게 속한 영광을 빼앗지 않기 위해 모든 일을 도맡아하려 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고수하며, 우리 행동의 절반 정도는 운의 지배를 받기보다는 순수하게 우리의 통제 아래에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_퀜틴 스키너, <마키아벨리>, p69


 퀜틴 스키너(Quetin Skinner, 1940 ~ )는 <마키아벨리 Machiavelli>를 통해 그의 삶을 '외교관', '군주의 조언자', '자유의 이론가', '피렌체의 역사가'로 구분하고, 각각의 시기를 그의 대표작인 <군주론 II Principe> <로마사 논고 Discourses on Livy>, <피렌체사 Istorie Fiorentine>을 개괄한다. 스키너는 <마키아벨리>에서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를 특히 비중있게 서술하는데, 이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운(運 fortuna)'과 '비르투 virtu'다. 스키너는 마키아벨리가 이들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을 따르는 대신 자신만의 새로운 해석을 내렸다고 해석한다. 구체적으로, '포르투나'와 관련해서는 보에티우스(Ancius Boethius, AD 480~524)와, '비르투'와 관련해서는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BC 106 ~ BC 43),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 BC 4 ~ AD 65)와 대립하면서 자신만의 이론을 펼쳤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운과의 동맹을 기대할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운의 여신이 우리를 향해 미소 짓게 할 수 있는가? 마키아벨리의 대답은 도덕가들이 이미 내놓은 답변들을 정확하게 되풀이하고 있다. 그는 운의 여신이 용감한 자, "덜 신중하고 더 공격적인" 자의 친구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녀가 주로 비르(vir), 즉 진정한 남자다움을 가진 남성의 비르투에 반응한다는 생각을 발전시켜나간다._퀜틴 스키너, <마키아벨리>, p70


 고대의 저자들과 인문주의자들의 도덕관념에 따르면 통치자로 하여금 권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고 그에게 영광을 가져다줄 수 있는 주된 자질은 후함, 자비로움, 경건함, 정의감이라는 비르투였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에게 있어 비르투를 갖춘 군주란 국가의 보전을 위해 어떤 일이든 기꺼이 필요에 따라 행동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리하여 비르투라는 용어는 - 그것이 도덕적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 목표를 달성하게 만들어주는 일련의 자질들을 의미하게 된다._퀜틴 스키너, <마키아벨리>, p109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는 포르투나의 '중요성'을 무시하지 않았지만 동시에 포르투나의 '절대성'도 인정하지 않았다. 포르투나는 격정적이며 변화무쌍하며, 비르투가 없는 이들을 경멸하기에, 시의적절한 행동과 기민함, 때로는 상대를 속일 수 있는 양면성 등이 마키아벨리의 비르투에 속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들 덕목 역시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 또한 상황에 따라 비르투가 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마키아벨리의 비르투는 절대 덕목이 아니다.  


 마키아벨리의 정치적 신념이란 바로 국가를 성공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단서가 상황의 힘을 인정하는 것,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자신의 행동을 시류(時流)와 조화시키는 것이라는 생각을 의미한다._퀜틴 스키너, <마키아벨리>, p98


 절대 덕목과 절대 질서를 부정하는 마키아벨리의 논리는 <로마사 논고>로 이어진다. <군주론>에서의 비르투가 군주의 덕목이라면, <로마사 논고>에서 비르투는 시민의 자질이다. 때문에, '비르투의 확산'은 <로마사 논고>의 또 다른 주제가 된다.


 마키아벨리는 비르투라는 핵심적인 개념을 분석함에 있어 기본적으로 자신이 <군주론>에서 이미 제시했던 노선을 따라갔다. <로마사 논고>에서는 만일 어느 도시가 위대함을 성취하고자 한다면 시민 전체가 이와 동일한 자질을 소유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을 펼쳤다._퀜틴 스키너, <마키아벨리>, p126


 어떻게 해야 비르투라는 핵심적인 자질을 시민들에게 폭넓게 심어줄 수 있을까? 마키아벨리는 좋은 운이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인정한다.(p127)... "초기의 운"이 필요한 이유는 공화국이나 군주국을 수립하는 일이 "대중의 비르투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없으며, 대중의 "다양한 의견들"은 "적합한 정부를 구성하는데" 늘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왕국 혹은 공화국을 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살아 있는 동안 현명하게 통치하는 한 명의 군주를 갖는 것"보다는 이후의 운이 "대중의 비르투"에 의지할 수 있도록 "국가를 조직할 수 있는 군주"를 갖는 것이다. 국가통치술의 가장 심오한 비결은 어떻게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_퀜틴 스키너, <마키아벨리>, p129


 결국, 마키아벨리는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포르투나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한 비르투를 자신의 주저들인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에서 강조했다. <군주론>에서는 1인 군주의 비르투가 강조되었다면, <로마사 논고>에서는 공화정에서의 시민들의 비르투가 강조되었다는 점에서 이들간에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공화정에서 시민들의 비르투를 갖추기 위해서는 '불쏘시개' 역할을 할 모범이 될 1인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본다면, <로마사 논고>는 <군주정>의 확대된 형태로도 읽힐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바라본다면 우리는 두 저서 사이에 연속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처럼 스키너의 <마키아벨리>는 마키아벨리의 삶과 저서를 잘 연결시키는 좋은 입문서다. 이를 바탕으로 마키아벨리를 정리하는 계획을 세워보자. 먼저, 보에티우스, 키케로, 세네카들의 철학 <로마사 논고>의 바탕이 된 <리비우스의 로마사>를 개별 리뷰에서 정리하는 것으로 계획을 잡으면 어떨까. 이와 함께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 몽테스키외(Montesquieu Charles Louis de Secondat, 1689 ~ 1755)의 <로마인의 흥망성쇠 원인론 Considerations sur les causes de la grandeur des Romains et de leur decadence>을 정리한다면 마키아벨리 사상은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 1937 ~ )의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마키아벨리의 어록>을 추가하는 것을 지금은 말리고 싶다.

 

말이 나온 김에 이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하고 페이퍼를 마무리하자. 시오노 나나미는 마키아벨리의 입을 빌려 체사레 보르지아에 대해 '이탈리아의 통일이라는 대업을 눈 앞에 두고 포르투나의 버림을 받은 비운의 인물'로 그려내며, 마키아벨리가 그의 죽음을 애석해했다고 해석한다. 이는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마키아벨리 어록>등에도 이어지지만, 이는 스키너의 해석과는 다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체사레의 몰락을 가져온 교황 율리우스2세(Iulius PP. II, 1443 ~ 1513)와 같은 수준의 평가를 내리는 반면,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의 카이사르(Imperator Julius Caesar, BC 100 ~ BC 44)의 재현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소설이라는 장르의 특성 상 이를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에 일단은 미루도록 하자. 소설 속 이야기와 사실을 구분할 필요가 있는 것은 <삼국지연의 三國志演義>와 정사 <삼국지 三國志>에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라 여겨진다. 그리고, 이런 고생을 하는 것은 내가 마지막이길 바란다...


 마키아벨리는 보르자가 가진 통치자로서의 자질을 흠모했지만, 놀라운 정도로 지나친 자신감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1502년 10월 마키아벨리는 "내가 이곳(이몰라)에 있는 동안 수립된 공작의 정부는 그의 좋은 운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고 기록했다. 이듬해 초 그는 더욱 못마땅한 어조로 공작이 여전히 자신의 "전례 없는 행운"에 의존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고 언급했다. 1503년 10월에 다시 한번 보르자를 가까이서 관찰할 기회가 생겼을 때, 그가 이전에 가졌던 의혹들은 보르자가 가진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확신으로 굳어져갔다._퀜틴 스키너, <마키아벨리>, p33


 마키아벨리는 보르자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인 판단은 <외교문서집> 못지 않게 <군주론>에서도 부정적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운으로 자신의 지위를 얻었으며", 운이 떠나자마자 그 지위를 잃게 되었다는 것이다._퀜틴 스키너, <마키아벨리>, p36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21-05-23 18: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큰글씨책으로 가지고 있어요. 더클래식 책입니다.
군주가 되었거든 인색하라, 라는 글을 흥미롭게 읽었어요. 고전을 읽는 시간은 인간에 대해 연구하는 시간 같아요.
참 흥미로운 존재입니다, 인간은.

겨울호랑이 2021-05-24 06:52   좋아요 2 | URL
그렇습니다. 고전에 담긴 인간상이 오늘날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그 자체로 인간 본성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는 것이 고전의 매력이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