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론>의 저자가 내가 박수갈채를 보낸 수백 가지 훌륭한 것을 말하기는 했지만 사실 우리의 체계는 매우 다르다. 우리 각자의 의견이 많은 점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두 고대인들 각각의 이론과 거리가 있기도 하지만 그의 체계는 아리스토텔레스에 더 가깝고 나의 체계는 플라톤에 더 가깝다. 그는 더 대중적이고 나는 어떤 경우에 어쩔 수 없이 약간 더 난해하고(acroamatique) 더 추상적이다._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신인간지성론 1 >, p20


 존 로크 (John Locke, 1632 ~ 1704)의 <인간지성론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과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 ~ 1716)의 <신인간지성론 Nouveaux Essais sur l’entendement humain>. 이 두 권의 책의 관계는 이란성 쌍둥이와 같다. 본유관념으로부터 시작해서 학문의 분류에까지 같은 목차를 공유했다는 점에서 형식적으로는 일치하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각각 경험론과 합리론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내용상으로는 대척점에 있다. 고대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 BC 384 ~ 322)와 플라톤(Platon, BC 428/427 ~ BC 348/347), 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 ~ 1274)와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Hipponensis, 354 ~ 430)가 서로 다른 방향성을 갖는다면, 근세에서는  로크와 라이프니츠의 체계가 이들을 대신한다. 여러 주제 중에서 가장 첨예하게 부딪히는 본유관념(innate idea)과 관련한 내용을 잠시 살펴보자. 개인적으로 '경험'과 '관념'을 강조한 이 대목이 <인간지성론>과 <신인간지성론>의 가장 큰 차이를 나타낸다고 생각된다. 


 이제 마음이 이른바 백지(white paper)라고 가정해보자. 이 백지에는 어떤 글자도 적혀 있지 않으며 어떤 관념도 없다. 그럼 어떻게 하여 이 백지에 어떤 글자나 관념이 있게 되는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나는 한 마디로 경험(experience)에서라고 대답한다. 우리의 모든 지식은 궁극적으로 경험에서 유래한다._존 로크, <인간지성론 1>, p150


 필라레테스  : "영혼이 처음에는 빈 서판(Table Rase)이고 어떠한 기호들도 없으며 어떤 관념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가정하는 우리 쪽 사람들은 영혼이 어떻게 관념을 얻게 되는지, 그리고 무엇을 통해서 그렇게 많은 양의 관념을 획득하는지 묻습니다. 이에 대해서 그들은 한 마디로 대답합니다. 경험을 통해서!"


 테오필루스 : 제 생각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이야기하는 이 빈 서판은 자연이 허락하지 않은, 그리고 단지 철학자들의 불완전한 개념에 기초한 허구(fiction)일 뿐입니다.... 제가 한 증명에 따르며, 영혼이든 물체든 모든 실체적인 것은 각각의 다른 실체들과 고유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실체는 내재적 명명들(denominations intrinseques)에 의해서 다른 실체와 다릅니다. 저 빈 서판에 대해서 그렇게 많이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그 빈 서판에서 관념들을 제거하고 난 후에는 거기에 무엇이 남는지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_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신인간지성론 1 >, p118


 세상에는 여러 라이벌들이 있다. 그리고, 자신의 저서에서 상대방들의 주장을 인용하여 비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인간지성론>과 <신인간지성론>과 같이 책 내용 전반에 걸쳐 첨예하게 대립하는 책들은 찾기 어렵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경험'과 '관념'에서 출발한 생각의 차이가 계속 이어지기에, 독자들은 경험론과 합리론의 만날 수 없는 차이를 실감하게 되고, 마치 눈 앞에서 불꽃튀는 두 사상가들의 대결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리뷰에서 다루기로 하자. 


 그동안 정리를 미뤄두었던 <인간지성론>부터 먼저 정리를 시작해서 <신인간지성론>, 코플스턴의 <합리론> <영국경험론>으로 나아가면 어느 정도 정리가 될 듯하다. 물론, 마무리는 <칸트>가 되어야 근대철학 마무리가 된다 하겠지만.


 상황을 봐서 번외편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에 관하여>, 스티븐 핑거(Steven

Pinker, 1954 ~ )의 <빈 서판 Blank State>까지 다룰 수 있다면, 인간 지성과 관련한 고대부터 현대까지 내용을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약간 다른 주제지만, 인공지능(AI)과 관련해서는 앨런 튜링(Alan Mathison Turing, 1912 ~ 1954)부터 시작해서 다시 정리할 계획을 세워본다. 정말, 독서의 길은 끝이 없는 듯하다. 예전에 이럴 줄 알았더라면... 달라졌을까?...


[출처] 만화 슬램덩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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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7-05 23:3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이렇게 엄청나게 읽고 소화하시는 겨울호랑이님도요?!! 마지막 슬램덩크 대사 저는 더 격하게 공감입니다.😭

겨울호랑이 2021-07-05 23:39   좋아요 4 | URL
에고 아니에요... 예전에 어찌나 놀았던지 요즘은 놀다 지쳐서 책을 봅니다... ㅜㅜ

독서괭 2021-07-06 13:12   좋아요 4 | URL
미미님 글이 제마음이네요ㅋㅋ

오거서 2021-07-06 19:40   좋아요 4 | URL
저 컷에 요즘 제 모습이 담긴 것 같아요…

붕붕툐툐 2021-07-06 21: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진짜 너무 멋지셔~ 읽는 책 수준 봐... 하.... 짱짱!!👍👍

겨울호랑이 2021-07-06 21:37   좋아요 3 | URL
에고 아닙니다... 부족함이 많아 책을 읽긴 합니다만... 제것으로 만들기에는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