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소 군도는 자기 혼자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전국적인 흐름에 맞추어 발전했다. 국내에 실업자가 많았을 때는, 구태여 죄수들의 노동력을 이용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체포 목적은 노동력 동원이 아니라, 방해자를 제거하는 데 있었다._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3>


  알렉산드르 솔제니친(Aleksandr Solzhenitsyn, 1918 ~ 2008)의 <수용소 군도 3>에서는 수용소의 성격 그리고 목적들이 표현된다. 작가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적군(독일군)의 포로 수용소로서 기능한 수용소 군도가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체제 반대 세력의 숙청 수단으로 활용되었음을 고발한다. 이와 함께, 비록 수용소의 성격은 바뀌었지만, 죄수들의 강제 노동이라는 기능은 바뀌지 않았음도 독자들은 확인한다.


 전쟁 중인 상태와 전쟁 후의 상태에서 부족한 것은 생산이다. 전시에는 군수물자가, 전후에는 생활용품과 사회기반시설(SOC)이 부족하다는 차이가 있지만, 국가 체제의 유지를 위해서는 안정되고 충분한 공급이 필요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 지배계급에게 수용소 군도의 수감은 반체제 인사 제거와 노동력 공급이라는 두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이었다.  반면, 이러한 사실은 수용소에 수감된 이들에게 사회로부터의 격리와 한계 상황으로 내몰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 강요된 노동 속에 그들은 열렬한 의식적 창조의 최고 형태 중 하나를 찾아냈다. 스딸린에게는 '어딘가' 죄수들에 의한 대규모의 건설이 필요하고, 확실하게 다량의 노동력과 인명(꿀라끄 박멸 결과 발생한 잉여 인간)을 삼켜야하고, 살인용 독가스와 효과는 같으면서도 비용은 더 싸야 했다... 수용소 내의 경쟁과 돌격 작업 운동은 <보상의 모든 체계>와 결부되어, 그 보상이 돌격 작업 운동을 '촉진'하지 않으면 안된다. 경쟁의 중요 기반은 이윤 원리에 있다._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3>


 모든 것은 생산 지수에 의존하게 된다. 식사도! 주거도! 의복도! 속옷과 목욕하는 날도! 기한 전의 석방도! 휴식도! 면회도! 예를 들면 돌격 작업반원의 배지를 주는 것은 -순수한 사회주의적 형태의 권장이라 하겠다.... 균형 잡힌 질서가 확립되고, 이윽고 죄수들 자신도 그것을 유일하게 적합한 것으로 생각할 정도로 익숙해졌다. 그리고 우리도 이 책에서 그런 식으로 기술할 생각이다. - '재교육' 보다는 오히려 '노동'에 중점을 둔 질서를._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3>


 국가는 이렇게까지 잔인해서는 안 된다. 국민을 이렇게 위선으로 몰아서는 안 된다. 죄수들은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한다. - 뚜흐따(속임수)와 암모날(폭약)이 없었더라면 운하도 건설되지 못했을 것이다 - 라고. 이 모든 것이 군도의 기반인 것이다._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3> 


 <수용소 군도>에서는 강제 수감된 이들의 처절한 생활과 한계 상황에 몰린 이들이 무너져 가는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극한 상황 속에서 정신은 붕괴되고, 자신의 연약한 몸 하나에 의지해 살아가는 죄수들의 모습은 독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들 죄수들을 동정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대신, 같은 아픔을 공감(共感)한다. 수용소를 국가 체제로 바꾸어 생각해보면 어떨까. 다소 지나친 감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수용소에 수감된 죄수들도 수용소를 원해서 간 것은 아니었고, 우리가 한 나라에서 태어난 것도 우리의 희망과는 무관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한 걸음 나가서 이들 사회 내의 질서를 본다면 이러한 생각은 더 굳어진다.


 수용소에서 이루어지는 육체적 가혹행위는 우리가 국가(또는 사회)에 반대되는 행위를 했을 때 행해지는 다른 징벌과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라도 분명 같은 의도로 이루어지는 행위가 아닐까. 또한,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사회, 가난과 배고픔으로 약자들을 억압하는 질서, 약자들을 분열시켜 지배층에 대항하지 못하게 하는 정치, 자본을 가진 이들의 예외 등은 수용소에서도 예외없이 적용되었다. 지금 우리 현재의 모습과 수용소의 모습이 이처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때, 과연 누가 누구를 동정할 수 있을까?


 수용소에서는 약자를 잘 때린다. 작업 할당계들이나 반장들뿐만 아니라 일부 죄수들도 자기가 아직 약하지 않다는 것을 자기 자신에게 납득시키기 위하여 약자를 괴롭힌다. 인간이 타인한테 잔혹한 짓을 하지 않고서는 자기의 힘을 믿을 수 없는 동물이라면 하는 수 없지 않겠는가?... '기아' 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은 수백년 전에 발견된 것이다! (그리하여 이 '기아'에 대해, 굶주린 자는 배부른 놈에 대해 반드시 반란을 일으킨다는 '진보적 이론' 전체가 성립된다.) 인간 자신이 의식적으로 죽으려고 결단하지 않는 한, 기아는 모든 한 사람 한 사람을 지배하고 있다._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3> 


 수용소 군도는 과거에 얻은 습성 중에서 단 한 가지만은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무뢰한과 파렴치범들을 고무시키는 일이었다. 파렴치범에게는 수용소에서 전보다 더 높은 '지도적인 지위'가 부여되었다... (스딸린의) 은사를 받은 것은 형사범이나 경범죄 죄수들이었다. 그들은 이미 수용소를 떠나고 있기 때문에 생산의 배가에 호응해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정치범들이었다._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3> 


 1백만 루블로 건강은 살 수 없겠지만, 자유는 살 수 있어, 권력도 살 수 있어. 인간도 살 수 있어. 그런 백만장자는 사회에 얼마든지 있어._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3> 


 <수용소 군도 3>을 통해 1940년대 소련의 강제 수용소를 읽지만, 동시에 2020년대 우리 사회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고, 공감하는 것. 수용소의 비극은 과거지만, 우리의 비극은 진행중이라는 점이 더 가슴아프게 다가온다. 어쩌면, <수용소 군도>는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 ~ 1950)의 <동물농장 Animal Farm>보다 더 직접적인 풍자 소설일지도 모르겠다. 차이가 있다면, <동물 농장>이 동물 농장을 통해 소련을 풍자했다면, <수용소 군도>는 소련을 통해 우리 사회를 풍자한 것이 아닐까를 생각해 보며, <수용소 군도 3>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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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1-29 10: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본주의 사회구조 자체도 나름의 착취구조를 가지고 있으니까 <권력>은 어떤 이데올로기에서든 약자를 핍박하고 착취하는것 같아요. 3권(저에겐 고비였어요;) 완독 수고하셨습니다.👍👍👍

겨울호랑이 2021-01-29 12:31   좋아요 2 | URL
<수용소 군도 3>에서 그려지는 수용소 내의 질서가 본질적으로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우리 삶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이러한 모습이 공산주의 체제 내의 수용소였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을 갖는다기 보다는, 미미님 말씀처럼 체제와 관계없는 사회의 근본적인 질서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러한 생각이 발전하면 인간 사회 발전에 대한 회의로 갈 수도 있지 않을까도 생각해 보네요... 제겐 작가가 써내려간 수용소의 의의가 전체 내용의 중간 부분에 배치되어 적절했다고 보여집니다. 아직 갈 길이 머네요. 미미님 감사합니다.^^:)

scott 2021-01-29 10: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백만 루블로 건강은 살 수 없겠지만, 자유는 살 수 있어, 권력도 살 수 있어. 인간도 살 수 있어. 그런 백만장자는 사회에 얼마든지 있어]밑줄 쫘악~👍👍👍

겨울호랑이 2021-01-29 12:34   좋아요 2 | URL
해당 구절과 관련해서, 저는 페르낭 브로델이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 말한,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의 구분이 떠올랐습니다. 공산주의, 자본주의 등의 체제와 관계없이 부족한 물건을 상대에게 주고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얻는 교환 경제의 모습은 인류가 오랜 사회 생활을 통해 이뤄온 삶의 모습이기에, 그 사이에서 생겨난 힘의 불균형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는 어렵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scott님 감사합니다.^^:)
 

나는 죽었습니다... 아니, 춤추고 있습니다.

빨리? 빨리가 뭐였지?
아, 그러고 보니 나도 날마다 아빠에게
˝아빠, 빨리빨리!˝하고 졸랐지만,
여기는 빨리나 아직이나
얼른얼른 같은 건 없어요.

「춤추는 고양이 차짱」에서 말하는 주인공은 죽은 고양이다. 배고프지도, 슬프지도 않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없는 하늘나라에서 춤추는 고양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죽음에 대한 두려움, 슬픔은 온전하게 남겨진 이들만의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이와 함께 이별이 남긴 감정 또한 우리가 이별해야할 것들이 아닐까. 우리 모두는 죽는 존재이기에...

슬프냐고요? 아니요.
언젠가 엄마 아빠도 이 곳으로 올 거 잖아요.

나 역시 떠나보내고, 떠나갈 사람임을 생각한다면, 차짱과 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일까? 예쁜 그림책이지만, 무겁게 다가오는 주제를 다룬 책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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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1-27 15: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귀요미 역쉬 집이 쵝오! 겨울호랑이님 가족이 얼마나 잘보살펴주셨으면 털에서 윤기와 미모스러운 자태 ㅋㅋㅋ연의와 영원히 행복하게 냐옹~˙Ⱉ˙

겨울호랑이 2021-01-27 16:04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scott님. 가출하고 돌아와서 처음에는 개냥이처럼 붙어다니더니, 2개월 정도 지나니 다시 본색이 드러나네요. ㅋㅋ

페크pek0501 2021-01-27 15: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귀엽당~~
강아지와 고양이 중 하나를 고르라면 저는 새침해 보이는 고양이를 키우겠어요.

겨울호랑이 2021-01-27 16:05   좋아요 1 | URL
강아지와 고양이는 키우는 맛이 다른 것 같아요. 사람과 다정하게 교감이 필요하다면 강아지를, 밀당을 원한다면 고양이가 더 좋은 친구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북다이제스터 2021-01-27 2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넘 예쁜데요~~~^^

겨울호랑이 2021-01-27 20:1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귀요미가 가출했다 돌아와 좀 성숙해졌네요 ㅋ ^^:)

NamGiKim 2021-01-28 14: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야용이 넘 예쁘군요. 참고로 저는 시추 키웁니다. 애완동물이 삶에서 많은 기쁨을 주는 것을 할아버지랑 같이 살면서 느낍니다.

겨울호랑이 2021-01-28 14:3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NamGiKim님. 말씀하신 바와 같이 사람이 없는 다른 점을 동물들이 갖고 있기에, 그들과의 소통을 통해 또 다른 즐거움과 기쁨 그리고 깨달음을 알아갑니다. 아마도 그것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겠지요... 물론, 속을 썩이는 부분도 있지만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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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이론은 이론이 아니다. 오늘날까지 많은 이론학자들이 M이론이 가질 수 있다고, 또는 가져야 한다고 여기는 구조를 어설프게 두드려 맞추고 있지만, 누구도 M이론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엄밀히 말해서 M이론은 고유의 11차원 초끈이론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추정'이다. 1999년 처음 세상에 나와 베스트셀러가 된 브라이언 그린의 <엘러건트 유니버스>같은 대중 과학서적은 웅변조로 M이론을 설명했다(p222)... 초끈 연구는 하나가 아닌 두 개의 거대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다. 바로 끈과 초대칭이다. 그리고 둘 중 어느 것도 경험적 근거가 없다. 두 아이디어는 자연이 이러할 것이라는 '추정'으로부터 유도된 것이며, 현재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점 입자 개념과 계층 문제 같은 구조가 지닌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나온 것이다.._ 짐 배겟, <퀀텀 스페이스>, p223


 짐 베것(Jim Baggott, 1957 ~ )의 <퀀텀 스페이스 Quantum Space: Loop Quantum Gravity and the Search for the Structure of Space, Time, and the Universe>는 고리양자중력 이론(Loop Quantum Gravity, LQG)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카를로 로벨리(Carlo Rovelli, 1956 ~ )와 리 스몰린(Lee Smolin, 1955 ~ )의 이론을 소개한 대중 교양서적 속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초끈이론' 그리고 'M이론'에 대한 비판이다.


 개인적으로는 미치오 카쿠(Michio Kaku, 1947 ~  ), 브라이언 그린(Brian Randolph Greene, 1963 ~  ), 리사 랜들(Lisa Randall, 1962 ~  ) 등 초끈이론에 해당하는 책들을 먼저 접했기에 이에 대한 비판에 더 관심이 간다. 사실, 초끈이론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에 서 있는 물리학자 중에는 2020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로저 펜로즈(Sir Roger Penrose, 1931 ~ )도 추가된다. 펜로즈는 그의 저서 <실체에 이르는 길 The Road to Reality>에서 초끈 이론을 비판하는데, 이들 초끈이론 비판론자들의 주된 내용은 다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초끈이론은 시공간(Space-Time)의 자유도를 고정적인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과 숨겨진 6차원의 다양체(칼라비 야우 다양체 Calabi-Yau manifold)의 값이 확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기억하자. 이것(초끈이론)은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설명하는 공간과 시간의 본질을 전부 끌어다가 양자장이론과 대단히 비슷한 구조로 풀어낸 이론이었다. 이 이론은 지저분하고 지루한 재규격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풀리는 방정식들을 내놓았고, 이 방정식의 풀이는 좌표계를 어떻게 선택하더라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다시 말해, 모든 종류의 배경 시공간에 독립적이다._ 짐 베것, <퀀텀 스페이스>, p220

 

 에드워드 위튼은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끈이론은 중력을 예견하는 놀라운 특성을 갖고 있다." 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 말도 했다. "중력이 끈이론을 통해 유도된다는 것은 이론물리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이다." 그러나 끈이론은 차원문제 이외에도 (적어도 지금까지는) "멱급수로 전개되는 건드림이론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한계를 갖는다(끈이론에서 실행되는 계산은 대부분 끈상수에 대한 멱급수로 표현된다.) 상대성이론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것이 끈이론의 심각한 한계이며, , 근본적인 원리에서 출발한 아인슈타인 일반상대성이론과 비슷한 수준의 이론이 결코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p604)...  끈이론은 중력을 서술하는 이론임을 자처하지만, 사실은 시공간 계량의 역학적 자유도를 적절하게 서술하지 못하고 있다. 시공간은 끈의 자유로운 이동을 허용하는 '고정된' 배경일 뿐이다. _로저 펜로즈, <실체에 이르는 길>, p605


 초끈 이론이 갖는 가장 큰 매력이 자연계의 네 가지 힘인 전자기력, 강한 핵력, 약한 핵력, 중력을 하나로 묶는 궁극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 ToE)에 가까이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양자물리학의 세계에 어울리지 않은 고정된 시공간의 가정은 고전 역학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인상을 준다. 또한, 궁극의 이론으로서 초끈 이론이 가진 매력이 단순히 수많은 가능성들의 나열에 그친다면, 배것이 지적한 바와 같이 다른 가능성 또한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이 지점에서 짐 베것과 로저 펜로즈, 카를로 로벨리의 비판은 공통점을 갖는다.


 초끈 이론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변종 초끈이론과 추가적인 공간 차원을 숨기는 칼라비-야우 공간의 개수가 마구잡이로 늘었지만 그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 기준을 알 수 없어서 이론의 고유성이 사라진 것이었다.(p220)... 초끈 이론학자들은 초끈이론이 만물의 이론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자 '유일한 기회'라고 확신했다. 이 분야에 속한 이들은 만물의 이론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중력의 양자이론으로 갈 수 있는 다른 길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았다._ 짐 베것, <퀀텀 스페이스>, p221


사실 끈이론학자들은 내(펜로즈)가 언급하지 않은 다른 문제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이론의 '유일성 uniqueness'에 관한 문제이다. 끈이론에 의하면 10차원 우주의 상당 부분은 컴팩트한 프랑크 스케일의 6차원 다양체 y안에 '돌돌 말려 있다.' 이 6차원 다양체의 정체는 무엇일까? 왜 우주는 하필 이런 곳에 말려 있는 것일까? 끈이론학자들은 여기에 초대칭과 적절한 차원, 리치 평평성을 비록한 물리학의 기본 조건을 몇 개 부과하면 유일한 답을 얻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동일한 가능성을 가진 답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_로저 펜로즈, <실체에 이르는 길>, p624


 초끈 이론의 핵심이 바로 '숨겨진 차원'이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초끈 이론가들에게 숨겨진 차원은 일종의 '본유 관념(本有觀念, innate idea)'가 아닌가 여겨진다. 숨겨진 여분의 차원에 대한 가정 없이는 10차원 이상의 세계를 말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들의 논쟁은 과거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간의 대립을 떠올리게도 한다.


 물리적 실체의 본성에 대해 양자이론이 말하는 불편한 사실 중 일부를 외면하려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해도, 일단 입자물리의 표준모형의 양자장이론이 말해주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정리해야 한다. 이 이론에서는 기본 물질 입자들과 힘 입자들이 힉스장과 어느 정도의 세기로 상호작용을 하는지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이 이론을 가지고 기본 원리에서 출발해 입자들의 질량을 계산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대신 실험으로 질량을 측정해 일일이 수작업으로 방정식에 대입해야 한다. 이와 비슷하게, 물질 입자들 사이에서 작용하는 힘의 상대적 세기도 알아낼 방법이 없다. 그저 측정할 수 있을 뿐이다._ 짐 베것, <퀀텀 스페이스>, p136 


[사진] Solvay Conference(출처 : Amazon.com)

 

 또한, <퀀텀 스페이스>안의 초끈이론과 이에 대한 비판을 읽으면서 1927년 제5차 솔베이 회의에서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 1901 ~ 1976) 의 불확정성 원리를 둘러싼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 ~ 1955)와 보어(Aage Niels Bohr, 1885 ~ 1962)의 논쟁을 보는 듯하여 자못 흥미롭게 느껴진다. 이들의 이론에 대해 어느 쪽이 더 치밀한 논리를 갖는가를 판단하기에는 아직 실력이 부족하지만, 일반 대중들을 향해 지지를 호소하는 그들의 논리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현대 물리학에 대한 논쟁은 치열하게 진행 중이기에 일반 독자로서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세계적인 석학들의 백가쟁명(百家爭鳴)의 모습을 통해 조금은 성장해간다는 것은 분명 독서가 주는 기쁨 중의 하나일 것이다...


 칼라비-야우 다양체와 우주의 모양에 대해서는 경문수학산책에서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어 여기에 소개한다. 또는 뉴턴코리아에서 발행하는 뉴턴 하이라이트 시리즈도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아 함께 올린다...











 ps. 빛의 속도(光速)을 우리는 절대 속도이고, 어떤 것도 빛보다 빠를 수 없다는 것이 물리학의 기본 가정이지만, 이것은 우리가 실험과학을 통해 얻게 되는 결과에 의존한 가정이 아닐까. 우리가 '보는 것(seeing)'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며, 보는 것은 눈으로 들어온 빛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빛의 속도가 절대 속도라는 가정은 우리 인식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빛의 속도는 아마도 생각의 속도와 같을 것이다...


 말 이전에 보는 행위가 있다. 아이들은 말을 배우기에 앞서 사물을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 그러나 보는 행위가 말에 앞선다는 것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보는 행위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결정해 준다.(p9)... 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또는 우리가 믿고 있는 것에 영향을 받는다._ 존 버거, <다른 방식으로 보기>,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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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21-01-25 19: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1차원 초끈이론이 반드시 존재해야… 10차원 우주… 6차원 다양체 … 이해불가… 합니다 ;;

겨울호랑이 2021-01-25 19:37   좋아요 2 | URL
저도 읽긴 합니다만... 수식을 따라가면서 이해하기는 일반 독자 수준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것 같아요. 기껏해야 물리학자들이 도출한 최종 공식 속의 변수들의 관계를 음미하고 의미를 생각하는 수준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인 것 같네요... ㅜㅜ

북다이제스터 2021-01-25 19: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존 버거의 글로 마무리가 넘 좋습니다.
본다는 경험을 넘어선 추측과 이론은, 예를 들어 선험적인 것은, 여전히 의구심이 많습니다.
경험도 믿을 건 못되지만 경험조차 없는 건 어찌 판단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

겨울호랑이 2021-01-25 20:34   좋아요 1 | URL
^^:) 감사합니다. 요즘 북다이제스터님의 독서 주제와 살짝 만나는 지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북다이제스터님의 글에서 흄에 대한 북다이제스터님의 애정을 발견한다면 제가 너무 나간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mini74 2021-01-25 2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관심있는 분야라 저희집에 있는 책들이 보이네요. 읽어보려 노력했지만 ㅠㅠ 전 까막눈인걸로 ㅎㅎ

겨울호랑이 2021-01-25 22:54   좋아요 1 | URL
^^:) 누구나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의 책을 좋아하고 그쪽으로 손이 가는 것 같아요. 저도 관심이 없는 분야의 책은 선뜻 손이 가질 않네요...

mini74 2021-01-26 00:22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님 포스팅 읽으니 또 도전해보고 싶은 맘이 생깁니다. 엘리건트 유니버스부터 한 번 읽어볼까 합니다 *^^*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어요 ~

겨울호랑이 2021-01-26 06:58   좋아요 1 | URL
mini74님 즐거운 독서 되세요! 감사합니다^^:)

단발머리 2021-01-26 07: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겨울호랑이님 포스팅을 읽는 것으로 갈음합니다. 어제 읽은 아주 얇은 책에서 만난 끈이론이 이렇게나 반갑네요.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해요^^

겨울호랑이 2021-01-26 10:21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감사합니다. 봄비같은 겨울비가 내리네요. 따뜻하고 평안한 하루 되세요!^^:)
 

 

 언론이 그 자체로서 이미 권력의 실체 가운데 중요한 부분이라는 점은 그 이후에도 한국 언론의 독특한 성격으로 규정된다._민주언론시민연합, <보도지침 1986 그리고 2016>, p31

 

  뉴스타파에서 제작한 <족벌, 두 신문 이야기>는 언론 권력의 두 핵심인 <동아일보 東亞日報>와 <조선일보 朝鮮日報>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영화는 1988년 5공 청산 청문회에 출석한 두 언론 사주(社主)들의 증언의 진실을 찾는 구성을 갖는데, 그 과정에서 이른바 '민족정간지'라 주장하는 이들의 허위가 낱낱이 벗겨진다. 일본언론보다 더 일왕을 추종한 두 언론들. 일왕 생일 때마다 일장기를 게재한 이들 신문의 경쟁적 행태를 보노라면 과연 1936년도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살을 했던 동아일보가 맞는지 의심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한결같이 일장기를 신문 1면에 올린 조선일보는 신뢰성은 없지만, 황국신민일보로서 일관성은 있다 하겠다...  이와 관련하여 다소 내용이 길지만, <친일인명사전>에 실린 두 신문 사주들의 친일 행적을 옮겨 본다.


김성수(金性洙, 1891 ~ 1955) 보성전문학교 교장, 동아일보 사장.


 1891년 10월 11일 전라북도 고창에서 태어났다. 호는 인촌(仁村)이다... 1919년 3.1운동에 참여했다. 1919년 10월 조선총독부로부터 경성방직 설립 인가를 받았고, 동아일보 설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1920년 7월부터 동아일보 사장으로 일했다... 1937년 7월에 일어난 중일전쟁의 의미를 널리 확산시키기 위해 마련된 경성방송국의 라디오 시국강좌를 7월 30일과 8월 2일 이틀동안 담당했다. 같은 해 8월 경성군사후원연맹에 국방헌금 1,000원을 헌납했다... 조선에서 징병제 실시가 결정되자 1943년 8월 5일자 <매일신보>에 "문약(文弱)의 고질(痼疾)을 버리고 상무기풍을 조장하라"는 징병격려문을 기고했다. 이 글에서 징병제 실시로 비로소 조선인이 명실상부한 황국신민이 되었다면서 지난 오백년 동안 문약했던 조선의 분위기를 일신할 기회를 얻었다고 주장했다... _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p426


 방응모(方應謨, 1884 ~ ?) 조광 발행인. 조선일보 사장.


 1884년 1월 3일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호는 춘해(春海)이며, 뒤에 계초(啓礎)로 고쳤다... 1922년 <동아일보> 정주분국을 인수한 뒤 지국으로 승격되자 정주지국장에 임명되었다... 금광개발에 뛰어들어 1924년 평안북도 삭주의 교동광업소를 인수하고 경영을 확대하여 굴지의 광산업자로 성장했다... 1932년 6월부터 <조선일보> 영업국장으로 활동하다가 1933년 3월 <조선일보>의 경영권을 인수하여 부사장에 취임했다. 같은 달 조선군사령부 애국부에 고사기관총(제16호) 구입비로 1,000원을 헌납했다. 같은 해 7월 조선일보 사장에 취임해 1940년 8월 폐간 때까지 재직했다... 1936년 <동아일보>와 <조선중앙일보>가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정간과 강제휴간을 당하자, 경쟁관계에 있던 <조선일보>는 전국적으로 발전자축회를 개최하는 등 이를 사세 확장의 기회로 이용했다... 1937년 2월 원산의 순회 강연에서는 "우리 조선일보는 다른 어떤 신문도 따라오지 못하는 확고한 신념에서 비국민적 행위를 단연 배격하여 종국까지 조선일보사가 이미 정해 놓은 방침에 한뜻으로 매진한다."는 망언을 서슴지 않아 참석자들에게 봉변을 당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증일전쟁 개전 직후인 1937년 7월 11일에 열린 <조선일보> 간부회의에서 주필 서춘이 '일본군, 중국군, 장개석 씨' 등으로 쓰던 용어를 '아군, 황군, 지나 장개석'으로 고치고 일본 국민의 입장에서 논설을 쓸 것을 주장했다. 방응모는 일장기말소사건으로 <동아일보>가 이미 몇 십만원의 손해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3.1운동 때처럼 신문이 민중을 지도할 수 없다면서 서춘의 입장을 지지했다. 이후 <조선일보> 지면은 '국민적 입장'으로 변했다는 조선총독부의 평가를 받았고, <조선일보> 안팎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편집방침은 바뀌지 않았다. <조선일보>의 지면 변화와 함께 방응모도 일제의 침략전쟁을 옹호하는 활동에 나섰다._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p173


  <족벌, 두 신문 이야기>에서는 1940년에 이루어진 강제 폐간 마저도 저항이 아닌 비즈니스 였음을 밝히고 있지만, 더 이상의 상세 내용 소개는 영화를 보는 이들의 즐거움을 빼앗는 것이기에 이만 줄인다. 해방 이후 슬그머니 복간한 두 신문들은 미군정(美軍政)하에서, 박정희(朴正熙, 1917 ~ 1979)의 군사정부 하에서 사실상 기관지 역할을 하면서 권력화되었다. 해방 전후 이들 신문들의 행적은 <보도 지침>에서 옮겨본다.


 제도 언론을 대표하는 <동아일보> 나 <조선일보>는 유난히 민족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다. 이것은 그러나 그들이 해방 전부터 줄곧 권력의 토양 한가운데 뿌리박고, 언론이기 때문에 언론이라는 수단을 통해 철저하게 자신을 위장해서 민중 위에 군림해 온 증거 이상의 것이 되지 못한다. 일제하 한국 언론은 일제의 이른바 문화통치의 소산으로 태어나 식민지 백성과 침략자 사이를 제도적으로나 사실상으로나 완충시키고 일본식 식민통치 방식의 일부로 기능하면서 자기를 유지해왔다. 해방 후 그들은 미군의 '우호 점령'이라는 우호적 상황 아래서 사실상 유일한 토착 실질 권력으로 인정받아 그 물적, 인적 영향력을 십분 활용하여 이니셔티브를 잡았다. 언론이 좌익세력과 민족세력을 배제하는 한편,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승만을 끌어들여 그들의 반민족적 본질을 다시 은폐하고, 그들이 만든 체제 안에서 <동아일보>를 주축으로 그 왼편에 자리 잡은 것이다. _민주언론시민연합, <보도지침 1986 그리고 2016>, p31


 언론 매체와 언론인. 두 족벌 언론들은 1971년 언론자유수호운동(言論自由守護運動)을 통해 참다운 언론의 역할을 수행하려는 언론인들에게 해직으로 응답하는 대신, 그들이 벌인 투쟁의 명예는 자신들이 가져가며 다수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언론이라고 자부해왔음도 우리는 영화에서 지켜보게 된다. 정의와 진리 대신 비즈니스를 추구하는 이들이 1980년대 군사정권의 보도지침을 충실하게 따랐던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태는 계속 진행형이다. 


 재직 당시 본인(신홍범)은 기자로서의 직업적 사명을 충실하게 해내기 위해 양심에 따라 훌륭한 신문을 만들어 보려고 노력하던 평범한 기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 평범한 기자들은 그 후 수많은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 언론에 대한 권력의 압력과 탄압에 맞부딪히게 된 것이다. 기관원들이 거의 상주하다시피 신문사에 출입하면서 언론을 통제하는가 하면 보도기사와 관련하여 기자들과 신문사의 간부들이 연행되는 일이 잦아지게 되었다. 숨 막힐 것만 같은 억압적인 공포 분위기가 신문사의 편집국을 지배하게 되었다.(p421)... 국민 앞에 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자책 속에서 드디어 기자들은 언론자유운동을 벌이게 되었고 그러고는 마침내 무참하게 대량해직되었다. 이같이 언론자유를 외치는 기자들을 언론기업주라는 사람이 언론 현장으로부터 내몰았던 것이다. 그들은 그 피 묻은 손으로 권력과 손을 잡고 1975년 3월 이후부터 이 땅에 제도언론을 만들어 내게 되었던 것이다._민주언론시민연합, <보도지침 1986 그리고 2016>, p422 


  <족벌, 두 신문 이야기> 속에서 여러 생각을 해본다. 이른바 정론지라고 하는 언론사들의 부끄러운 민낯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닌 역사의 문제라는 사실, 그리고 창간 100주년을 앞두고 있는 두 신문사들의 오랜 역사 동안 우리가 알지 못한 진정한 언론인들의 숨은 노력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진실 속에서 짙은 배신감과 희망 또한 발견한다. 이 땅에 썩은 언론 매체는 분명 있지만, 또한 진정한 언론인들도 있다는 사실. 기업으로서 언론 매체와 진실을 좇는 언론인을 우리는 구분해야 하지 않을까를 또한 생각한다. 그 어느 때보다 언론개혁의 목소리가 높은 지금 <족벌, 두 신문 이야기>는 우리에게 분명 많은 것을 말해주는 영화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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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1-25 09: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느 분석기사를 보니,
일등 신문이라고 떠드는 신문사 매출
의 70%가 광고매출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언론은 철저하게 기업이 주
는 단물, 광고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업의 뜻대로 움직이는 기관지라고
해도 무방할 듯 합니다. 자고로 물주
에게 저항하는 언론은 없었으니 말이죠.

겨울호랑이 2021-01-25 19:29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족벌, 두 신문 이야기>에서도 그들의 기사형 광고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낚시형 광고를 통해 기업의 상품에는 신뢰성을 부여하고 대가로 돈을 받아 챙기는 그들의 관행을 지켜보노라면, 얼마전 유튜버들의 뒷광고 논란은 오히려 귀여운 수준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레삭매냐님 말씀처럼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의 공공재에 관한 문제는 분명 우리가 깊이 고민할 문제라 여겨집니다. ^^:)

samadhi(眞我) 2021-02-08 15: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는 민족정론지가 ˝굿모닝 충청˝으로 바뀌었지요. ㅋㅋ

겨울호랑이 2021-02-08 16:06   좋아요 0 | URL
보편적인 상식과 객관적인 진실을 전하는 언론 매체를 자본주의 사회에서 찾기란 참 힘든 것 같습니다. 자본이 없으면 기반이 약해서 오래 뿌리내리지 못하고, 생존을 위해 자본을 따라가면 변질되는 것을 보면서 자본주의 세계에서 바르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긴 합니다만....

samadhi(眞我) 2021-02-08 16:10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도 자본에 굴하기 쉬운데 하물며 큰 권력(?)은 오죽할까요. 그 돈 없으면 망하는 단체, 조직들이 돈 앞에 권력 앞에 당당하기란 쉽지 않겠지만. 숱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책임은 어쩌려는지. 갈수록 이게 아닌데 하고 생각이 드는 현상들이 일어나고 우린 그걸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마는 듯합니다.

겨울호랑이 2021-02-08 16:16   좋아요 1 | URL
어쩌면 어렸을 때 배워왔던 것처럼 큰 사람이 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사는 작은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어렵고 행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대가 바뀐 것인지, 개인의 가치가 바뀐 것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samadhi(眞我) 2021-02-08 16:19   좋아요 1 | URL
맞아요. 저도 요즘 들어 아무것도 되지 말자. 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러고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구요. 그냥 삶을 살아가며 한없이 열린 상태로 깨어나자고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어요.